위로가기 버튼
오피니언

다한증과 자율신경

무더운 여름이 찾아오면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땀을 흘린다. 이는 체온을 조절하고 몸 안의 열을 밖으로 내보내기 위한 생리적 반응이다. 하지만 평소보다 지나치게 많은 땀을 흘리거나, 더운 상황이 아님에도 땀이 멈추지 않아 일상생활에 불편을 겪는 사람들도 있다. 이러한 증상은 단순한 체질이 아니라 다한증이나 자율신경실조 같은 병적 상태로 볼 수도 있다. 여름철에는 이러한 증상이 더욱 두드러지게 나타나며, 특히 더위에 민감한 사람일수록 이로 인한 피로와 스트레스가 누적되기 쉽다. 한의학에서는 몸의 기운이 부족해 땀구멍을 조절하는 기능이 약해져 발생하는 기허형 다한증과 열이 많은 체질이 더욱 과항진 되어 땀이 나는 열독형 다한증 그리고 갱년기나 화병처럼 스트레스를 받아 열이 훅 오르면서 땀이 나는 음허형 다한증이 있다. 기허형은 조금만 움직여도 쉽게 지치고 땀이 나며 땀을 많이 흘린 후엔 머리가 어지럽거나 팔다리에 힘이 빠지는 증상을 호소한다. 열독형은 평소에도 땀이 많긴 하지만 열이 과항진 되면 시도 때도 없이 땀이 나서 일상 생활을 하기 힘들 정도이다. 밥을 먹거나 조금만 움직여도 땀이 나고 시간이 지나면 서서히 체력이 떨어진다. 그리고 갱년기나 화병으로 인한 다한증은 열이 순간 오르면서 땀이 훅 나는 경우가 많은데 증상의 경중에 따라 하루 수차례에서 수십 차례 발생하고 이런 경우는 수면에 문제가 있는 경우가 많다. 이는 모두 자율신경실조증으로 귀결되며 치료는 각 증에 맞게 자율신경을 회복하는 한약과 자율신경을 조절하는 약침을 쓰면 해결할 수 있다. 기운이 허한 사람은 황기나 인삼같은 약재를 써 기력을 보충하고 빠져나간 땀을 보충할 진액을 생성한다. 열이 많은 사람은 석고나 황련을 써서 처방을 해 몸의 열을 식히고 심장의 열을 식힐 수가 있다. 화병 같은 스트레스 관련은 치자나 시호를 이용해서 처방을 하면 불면과 가슴 두근거림 열이 훅 뜨면서 땀이 나는 증상 등을 개선할 수 있다. 이와 더불어 약침요법도 병행할 수 있다. 우리 척추는 오장육부와 대응이 되는데 실제 흉추에서 나오는 신경은 오장육부와 연결되어 이 신경에 약침을 놓으면 오장육부의 상태를 개선시킬 수가 있다. 이와 함께 경동맥 밑에 있는 성상신경과 근처의 부교감 신경에 약침을 놓아 자율신경을 조절할 수도 있다. 생활 관리도 치료만큼 중요하다. 덥다고 차가운 음료나 냉방을 과도하게 이용하면 오히려 면역력이 약해져 체온조절과 열 배출에 어려움을 겪어 다한증이 더 심해질 수 있다. 실내 온도는 외부와 5도 이상 차이 나지 않도록 하고 반신욕이나 족욕을 통해 체온을 안정시키고 하루 30분 가량의 가벼운 유산소 운동을 통해 몸의 면역력을 올리는 것이 좋다. 여름은 단순히 더운 계절이 아니다. 몸 안의 열과 수분, 기혈의 균형이 크게 흔들리는 시기다. 땀이 많은 사람일수록 자율신경이 예민한 사람일수록 이 계절을 버텨내기가 쉽지 않다. 그러나 한의학은 그 균형을 회복시켜주는 고유한 치료의 원리가 있다. 기와 음을 보하며 교감과 부교감의 리듬을 되찾아주는 섬세한 한방적 접근이야말로 여름철 다한증과 자율신경실조증으로 고생하는 이들에게 진정한 해답이 될 수 있다. /박용호 포항참사랑송광한의원장

2025-06-18

아이가 자란다는 것은

아이가 자라면 한 그릇 밥을 먹는다. 어른 몫의 공기밥 하나를 거뜬히 다 먹는다. 숙주나물, 호박나물, 콩나물에 가지 반찬까지 갖은 채소 반찬을 즐겨 먹는 손자는 학교 급식 시간에 선생님의 칭찬을 도맡아 듣는다고 했다. 매운 김치도 곧잘 먹어 친구들의 부러움을 산다고 자랑하곤 했다. 한식당엘 가면 된장찌개와 배추나물을 제 앞에다 끌어다 놓고 먹는 어른 식성의 아이는 된장에 밥을 말다시피 먹고는 빈 그릇을 보이며 한 공기를 더 시켜 달라기도 한다. 어릴 때 고기를 즐겨 먹지 않아 애태우던 식성도 변해, 이제는 성인 한 사람 몫의 고기도 너끈히 먹어 치운다. 오늘 저녁 차려준 만둣국을 맛나게 다 먹고는 국물에 밥 말아 먹어도 돼요? 밥 한 공기를 뚝딱 해치운다. 아침을 차려 주면 마다하지 않고 다 먹고 학교 간다며 제 엄마도 흐뭇해 자랑하곤 한다. 많이 잘 먹으니 또래보다 좀 작은 몸이 이제 쑥쑥 커지려나 기대가 잔뜩 된다. 아이가 자라는 만큼 아이의 사회도 확장되는 것도 알겠다. 최근 매일 하굣길을 도와주면서 아이의 일상을 더 가까이 관찰하게 되었다. 교실에서 나온 손자는 운동장을 거쳐 정문까지 오면서 만난 거의 모든 아이들과 인사를 나누고, 몸 부딪쳐 장난치고 얘기를 하는 걸 멀찍이서 본다. 2학년인 손녀는 내 손 꼭 잡고 교실에서 있었던 일을 조잘대는데, 큰 아이는 다르다. 손자는 이제 친구를 집으로 데리고 오기도 한다. 휴대폰으로 만날 시간을 약속해 정하고, 심지어는 우리집에까지 와서 하루종일 놀기도 한다. 게임기만 가지고 놀길래 체스와 퍼즐을 줘도 저희끼리 잘 논다. 스스럼없이 할머니집에 친구를 데리고 오는 게 흐뭇해 같이 놀러도 가고 밥까지 차려준다. 제 아빠의 어린 시절을 생각나게 하는 손자다. 일 년에 서너 번 만나는 사촌누이 정도의 가족이 아이의 사회 영역의 전부인 줄 알았다. 이제 친구를 디딤돌 삼아 점점 더 넓은 세상으로 단단히 발 디뎌 걸어가겠지 싶다. 아이가 자라면 부끄러움도 자라는가 보다. 학교에 가지고 가는 물병이나 우산 취향이 싹 바뀌었다. 손녀는 분홍의 인형 그림 있는 물병, 손자는 파란색 로봇 그림의 물병이었다. 우산도 장화도 남녀 구분이 확실했었다. 어느 비오는 날 하굣길에 무늬 있는 우산을 가져다줬더니 유치하고 부끄럽다며 쓰지 않으려 해 달래느라 애를 먹었다. 원래 네 것이었잖았냐고 해도 막무가내였다. 이젠 검정우산이 아니면 절대 쓰지 않는다며 제 엄마도 웃는다. 하루는 내 옷매무새에 깜짝 놀라며 얘기하는 말에 내가 되려 놀랐다. 민소매 위에 재킷을 입었던 내가 차 안에서 잠시 재킷을 벗고 있었다. 재킷을 들고 차에서 내리는데 민소매 차림의 나를 보더니 눈을 동그랗게 뜨며 소리지르듯 말한다. 할머니 옷이 왜 그래? 빨리 옷 입어···. 그리고 하는 말이 더 가관이다. 부끄럽단 말이야···. 얼른 재킷을 둘러 걸치며 헛웃음을 삼켰다. 아이가 크면서 부끄러움도 알아 커지는 것 같다. 어딘가서 배운 짧고 야트막한 상식 자랑에 맞장구를 쳐주었더니 이런 소리를 들었다. 할머니랑 지적 수준이 맞아서 좋아···. 자라는 손자의 지적 수준에 맞춰 주려면 할머니의 공부도 끝이 없으려나 싶기도 하다. /이정옥 위덕대 명예교수

2025-06-18

질문은 기자의 존재 이유

각기 다른 견해가 있을 수 있겠으나, 본질적으로 기자란 ‘묻는 사람’이다. 배우는 연기를 함으로써, 가수는 노래를 부르는 것으로, 경찰은 도둑을 잡아서 자신의 존재를 증명한다. 그럼 기자는? 질문하는 것이 기자의 존재증명 방식이다. 그게 무시무시한 권력자건 파렴치한 범죄자건 취재 대상 앞에서 묻는 걸 멈춘다면 그는 더 이상 기자일 수 없다. 20세기를 통틀어 핵심적인 내용을 가장 잘 묻고, 상대로부터 독자들이 만족할 만한 답변을 끌어냈던 여성 기자가 있었다. 이탈리아의 오리아나 팔라치(1929~2006). 이란의 호메이니, 인도의 간디, 중국의 등소평, 리비아의 카다피, 미국의 헨리 키신저 등이 그녀의 질문 앞에서 쩔쩔맸던 사람들. 한 명 예외 없이 세계적 거물임에도 팔라치의 질문엔 거침이 없었다. ‘내가 이런 걸 물으면 혹시 그들이 화내지 않을까’라는 생각 자체를 하지 않았다. 그런 태도가 없었다면 팔라치가 세기를 뛰어넘어 아직도 ‘기자의 한 전범(典範)’으로 기억될 까닭이 없다. 새롭게 들어선 이재명 정부의 첫 번째 국무총리 후보자로 지명된 김민석 의원의 과거와 관련된 껄끄러운 질문을 한 기자가 김민석과 더불어민주당 지지자들로부터 비난받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인터넷 공간에선 차마 입에 올리기조차 힘든 인신공격도 없지 않다고 한다. 그 기자는 자신의 일을 했을 뿐이다. 앞서 말했듯 기자란 묻는 것으로 존재를 증명하는 사람이니. 대장장이가 칼을 만든다고 “그 칼에 의해 사람이 죽을 수도 있는데, 왜 칼을 만드냐”고 질타하는 건 얼마나 무지한 짓인가. 기자에게 “왜 묻느냐”고 난리치는 것도 마찬가지다. /홍성식(기획특집부장)

2025-06-18

고층 아파트와 멈춰 선 제철공장

포항의 스카이라인이 달라진다. 구도심이든 신도심이든 어디를 가도 고층 아파트가 불쑥불쑥 솟아오른다. 분양홍보 현수막이 요란하고 카페 골목에는 젊은 얼굴들도 간간이 보인다. 겉보기에 포항은 여전히 살아 움직이는 도시다. 그럼에도 발밑을 들여다보면 사정은 다르다. 최근 현대제철 포항 제2공장이 조업을 중단했다. 공장은 에너지 가격 상승과 수익성 악화 속에 멈추고 말았다. 지역고용에 직결되는데도 공장 가동중단은 너무도 조용히 이뤄졌고, 조업 재개의 기약은 오리무중이다. 이는 상징적이다. 철강산업으로 뿌리내리고 성장해온 포항이 더 이상 과실을 누릴 수 없는 시대가 왔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포스코라는 ‘산업수도’의 심장 외에도 현대제철이라는 대형 플레이어가 존재하던 포항의 산업 지형에 틈이 생긴 것이다. 포항은 너무 오랫동안 철강 한 우물만 파왔다. 철강으로 번 재정이 도시 인프라를 일으켰고 지역 대학과 병원, 학교와 상권을 지탱해 왔다. 지금은 글로벌 철강 수요가 꺾이고 탄소중립 규제는 산업 자체를 흔든다. 정부가 추진하는 산업구조 전환전략은 수도권과 세종, 충청권에만 집중되는 양상이다. 현대제철의 침잠은 예사롭지 않다. 포항은 점점 ‘철강 다음’이 필요해지는 도시지만, 아직 그 해답은 뚜렷하게 보이지 않는다. 더욱 두려운 바는 도시의 인구구조다. 포항의 인구는 50만 아래로 떨어졌고 청년층의 유실이 멈추지 않는다. 교육과 일자리, 문화와 경제 인프라 모두가 수도권에 집중된 상황에서 지방 도시의 쇠퇴는 예정된 수순이다. 그럼에도 여전히 신규아파트 단지는 속속 들어서고, 부동산 개발은 활기를 띤다. 산업이 줄어드는데, 왜 주거는 늘어나는가. 개발 논리의 비틀림에서 비롯된 현상이 아닌가 우려스럽다. 도시의 미래보다 눈앞의 단기수익에 매달리는 구조가 혹 아닐까. 철강산업이 위기를 맞았지만 도시는 분양가에 집착하고 부동산개발에 열을 올린다. 대학은 지역과의 소통이나 연계가 없고 청년대학생들은 수도권만 바라본다. 새 정부가 출범했다. 이재명 정부는 지방의 균형발전과 혁신을 말하지만, 그 메시지가 지역의 현실이 되기까지는 시간이 걸린다. 지역에서는 변함없이 정당 간 정치싸움과 예산 따내기 공방이 계속된다. 위기를 본질적으로 다루지 않는다. 지역의 위기를 ‘철강의 일시적 부진’으로만 여긴다면 더 큰 위기가 엄습할 터이다. 포항은 산업전환과 도시 재설계라는 이중과제 앞에 섰다. 철강을 넘어서는 산업기반을 어디까지 확보하고 유치할 것인지, 그 과정에서 지역의 대학과 기업의 역할은 무엇인지, 포항이 기른 청년들은 무엇을 할 것인지 진지한 계획과 협력, 실천과 투자가 필요하다. 정부의 관심과 투자에만 턱을 괴고 기다리는 시대는 끝났다. 지자체, 기업, 대학, 시민이 함께 움직여야 한다. 잊지 말아야 할 또 한 가닥은 ‘삶의 질’이다. 청년이 지역에 머물기 위해 필요한 건 일자리만이 아니다. 아이를 안심하고 키울 수 있는 교육과 돌봄, 젊은 세대가 문화를 소비하고 생산할 수 있는 공간, 노년 세대가 외롭지 않게 지낼 수 있는 복지 시스템이 도시의 경쟁력을 만든다. 포항은 여전히 가능성이 높은 도시다. 가능성을 미래가치로 만들려면 온 도시가 함께 움직여야 한다. /장규열 고문

2025-06-18

다가온 우수기, 실효성 있는 대비가 필요하다

‘힌남노’가 포항을 휩쓴 지 2여 년. 그 상처는 여전히 도시 곳곳에 남아 있다. 당시 오천읍 냉천의 범람으로 인명피해 10명, 재산피해 약 1조7000억, 기업피해 포스코 포함 92개 기업이 약 1조5000여억 원 이라는 막대한 피해를 입었다. 그 끔찍했던 기억이 잊히기도 전에 또다시 올 우수기가 시작됐다. 포항은 태생적으로 침수에 취약한 도시다. 현재 시가지는 죽도·송도·대도·해도·상도 등 5개의 작은 모래섬 사이를 메워가며 형성됐다. 해수면과 고도차가 거의 없는 이 지형은 집중호우 시 배수가 지연되거나 역류가 발생하기 쉬운 조건이다. 여기에 국가하천인 형산강 하류와 동해에 접한 개방적 지형은 태풍과 집중호우가 겹치면 내륙과 해양 양쪽에서 물이 밀려드는 이중고를 초래하는 형태다. 포항시도 이에 대비는 해왔다. 현재 도심에 크고 작은 배수펌프장 14곳과 27개 간이펌프 시설을 운영 중이다. 환경부도 2022년 이후 포항을 하수도정비 중점관리지역으로 지정, 빗물펌프장 11개소 신ㆍ증설 총사업비 3557억 원을 투입하는 등 배수 능력 기준을 20~30년 빈도에서 50년 빈도로 상향(해당 사업은 2028년까지 단계적으로 마무리될 예정)시키고 있다. 수해 대비에 어마어마한 예산이 들어간다는 것은 포항의 침수 취약성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대목이자, 현장 유지 상태가 허술하면 언제든지 위험 요소가 발생해 인재로 연결될 가능성이 있음을 보여준다. 시는 올해도 우수기 대비 하수관로 33km를 정비하고, 빗물받이 2만여 개 준설 등 우수기를 앞두고 대응하고 있다고 밝히고 있다. 그러나 수치는 그저 일의 총량일 뿐임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아직 포항에는 위험 현장이 수두룩하다. 형산빗물배수펌프장 경우는 대표적 사례다. 이곳은 전동기 1100마력 2대 등 배수 능력이 401만7600t/일(분당2790t)에 불과, 집중 호우 시 고장 나 잠시 멈추기라도 하면 일대가 물바다가 될 수밖에 없다. 야산 절취가 많은 KTX신도시를 포함한 대형 개발 현장 13곳에 대한 철저한 점검도 시급하다. 이곳은 장마철마다 반복되는 토사 유출과 임시 가설물 붕괴는 언제든지 일어날 수가 있다. 지진으로 손상된 노후 하수관로는 우려스럽고 남구 일원, 오천읍, 학산지구 등의 지역은 하수 역류가 여전히 예상되고 있다. 특히 학산지구 도시침수예방사업은 우수저류시설, 배수펌프, 관로 정비 등 침수 저감 효과가 기대되는 프로젝트지만, 연계된 학산천 생태하천 복원사업이 일정 지연을 겪고 있으면서 수량의 유입·유출 수리 체계의 불균형이 생기면 일대 피해가 불가피하다. GIS DB를 활용한 침수 이력 지도 구축, 실시간 강우·수위 감지, 배수시설 자동 제어 시스템 도입 등을 통해 기술 기반의 선제 대응 체계를 마련한 스마트 도시침수 시스템도 위기 상황에서 얼마나 유기적으로 작동하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당장은 아니더라도 이 시점에서 포항시는 현 상황에만 매몰되지 말고 국외의 침수 대응도 연구했으면 한다. 가까운 일본의 경우 도시 침수 저감을 위해 주택과 건물에 빗물을 일시적으로 저장하는 지연배수(遅延排水) 정책을 운용하고 있다. 이는 레인 가든, 빗물 저류 탱크, 침투 시설, 도시 저류 공간 등을 통해 빗물을 곧바로 하수도로 흘려보내지 않고 머물게 하여 하수처리 부담을 줄이는 분산형 빗물 관리 방식이다. 도쿄도, 오사카시, 요코하마시 등은 이를 법제화하거나 설치비 보조, 개발 허가 기준 등으로 실효성을 높이고 있다. 국내에서도 유사한 ‘저영향개발(LID)’ 개념이 점차 확산되고 있으니 보다 적극적으로 도입했으면 한다. 최근 들어 나타나는 이상기후 변화에도 대비해야 할 것이다. 시는 지금까지 집중호우 시 순간적으로 쏟아지는 빗물을 몇 년 빈도로 설계하여 통수단면을 확보해 왔다. 대형 펌프장 증설 등도 이에 근거, 강제 배수 계획을 수립하고 있으나 이상기후로 인한 폭우에는 대응이 역부족이다. 포항시는 지금까지 다양한 제도와 시스템, 예산을 동원해 침수 대응에 총력을 기울였으며 현재도 적극적으로 움직이고 있다. 그러나 수치와 실행계획, 실적 보고서보다 앞서야 할 것은 현장의 체감과 실효성일 것이다. 건축조례제정이나 제도개선을 통한 지연 배수 정책 등을 조속히 도입했으면 한다. 시민의 안전은 ‘대응’이 아니라 ‘예방’ 속에서 지켜져야 한다. 이 원칙이야말로 우수기를 맞은 지금, 가장 절실한 기준이다. 아직도 힌남노 태풍 피해에 대해선 인재냐, 자연재해냐를 놓고 책임 소재를 가리는 형사재판 항소심이 진행 중이다. 민관이 잘 대응해서 이제는 그런 수준 이하의 논쟁이 사라졌으면 한다. /임창희기자 lch8601@kbmaeil.com

2025-06-18

나에게 보내는 편지

엽서 한 통이 도착했다. 엽서에 적힌 날짜는 작년 이맘때, 손 글씨가 어색하고 낯설었다. 주소도 이름도 나였지만 그 문장은 현재의 내가 아니라 과거의 내가 써 보낸 것이었다. 발신인도 수신인도 내 이름이었다. 현재의 나는 과거의 나를 조우했다. 간절곶, 바다를 마주한 그 끝자락에서 나는 나에게 편지를 썼다. 한 해가 지나 도착한 그 편지는 뜻밖에도 현재에 깊이 잠들어 버린 나의 본질적 자아를 깨워주었다. 결국은 오늘도 과거가 될 것이기에 지금 이 순간을 진심으로 써 내려가고 싶어졌다. 그 진심이 먼 훗날 또 나를 다시 일으킬 것임을 나는 알아간다. 살다 보면 자신을 잃어버릴 때가 있다. 사람들을 돌보며 사는 일이 내 삶의 한복판이 되어 있었다. 교회 교사로, 구역을 돌보는 일로, 가족의 울타리로, 일터의 누군가로 나는 늘 누군가의 뒤에서 등을 밀고 다리를 붙잡고 눈물을 닦아주었다. 어느 순간부터 나는, 나에게 무관심했다. 아니 오히려 나의 슬픔이나 지친 일상이 사지처럼 느껴졌다. 그러던 어느 겨울, 간절곶을 찾았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먼저 해가 뜬다는 수식어처럼 나에게도 막연한 무언가가 새롭게 떠오르길 바랐다. 파도 소리에 마음을 씻으며 ‘소망 우체통’에 편지를 넣었다. 단단히 닫힌 붉은 우체통은 바람 앞에 묵묵히 서 있었고 나는 그 안에 나의 계획과 다짐, 아무도 몰라주더라도 나만이 체감하는 삶을 대하는 나의 존중, 약간의 불안함과 기대를 함께 밀어 넣었다. 그날 나는 처음으로 나 자신을 위로했다. 정약용은 유배지 강진에서 ‘수오재기’를 썼다. ‘수오’는 ‘나를 지킨다’는 뜻이다. 남이 아니라 나 자신을 지키기 위한 작은 집을 짓고 그 안에서 자신의 내면을 성찰하며 글을 남긴 정약용. 나라에서 쫓겨 학문도 단절되고 명예도 무너진 자리에서 그는 다시 ‘나’를 세웠다. 그 글의 한 구절이 떠올랐다. “사람은 스스로를 지킬 수 있어야 한다. 군자가 군자다울 수 있는 것도, 날마다 나를 살피는 데 있다.” 나를 세우는 편지는 나를 살피는 마음에서 시작되었다. 누군가에게 인정받기 위한 문장이 아닌, 세상에 보이기 위한 수사가 아닌, 그저 내 마음의 중심에 귀 기울이는 글. 그게 바로 1년 전 내가 나에게 쓴 편지였다. 까맣게 잊고 있었던 그 편지는 내 손에서 계속 머물렀다. 읽고 또 읽으며 지금의 ‘나’가 본질적 ‘나’를 찾아가는 시간을 충분히 허비하게 했다. 읽는 내내 알 수 없는 감정이 나를 울컥하게 만들었다. 1년 전 나는 참 대견했구나. 힘들었지만 포기하지 않았고, 흔들렸지만 무너지지 않았다고 적어 놓은 그 몇 줄이 어깨를 토닥여 주는 것만 같았다. ‘잘 살아내고 있구나’라고 나는 내게 말했다. 우체통이 보이는 바닷가에 앉아 나에게 편지를 쓰고 따뜻한 커피를 마시며 맞았던 차가운 바람들이, 부서져 날아오던 사람들의 이야기 소리들이, 편린처럼 다가와 지금의 나를 그곳에 앉혀 놓은 듯 했다. 나쁘지 않았다. 이따금은 나를 위해 편지를 써야겠다. 누구를 위한 위로도 중요하지만 나를 위한 위로는 더욱 절실하니까. 그리고 그 편지는 꼭 1년 후에 받아도 좋겠다. 시간을 두고 돌아온 문장은 내 삶을 한 발짝 떨어져 보게 하고 과거의 내가 지금의 나를 격려하게 한다. 편지는 삶이라는 바닷속에 흘려보낸 나날들을 거슬러 오르는 조용한 거울이 된다. 무심코 지나친 감정들, 스쳐버린 나의 얼굴을 다시 비추며 우리가 얼마나 자주 스스로를 잊고 살아가는지를 일깨운다. 시간이라는 발효를 거친 문장은 이제야 드러나는 마음의 결을 또렷이 보여주고 어디에서 왔는지 어디로 가야 하는지를 조용히 묻는다. 간절곶 바다 앞, 우체통을 다시 찾아갈 것이다. 붉은 철문을 여닫으며 조용히 나를 담아볼 것이다. 그리고 ‘수오재’처럼 나를 지키는 글을 한 줄씩 쓸 것이다. 편지는 언젠가 내게로 와서 내가 놓치고 지나온 마음들을 꺼내어 펼쳐 보인다. 그 속에 다짐보다 흔들림이 계획보다 숨결이 담겨 있어서 비로소 살아냈다는 사실을 알아차린다. 편지는 과거의 내가 건넨 인사이며 미래의 나를 지켜내는 조용한 약속이 될 것이다. /작가

2025-06-17

세르비아, 상처만 남은 도시들 ①고도(古都) 스메데레보

세르비아 수도 베오그라드에서 동쪽을 향해 버스로 한 시간을 달리면 스메데레보가 나온다. 인구 7만 명이 채 되지 않은 도시지만, 베오그라드 지척에 있는 만큼 유구한 역사를 간직하고 있다. 도나우강이 도심을 감싸며 흐르고, 낡은 석축성벽이 우뚝 솟아서 “옛날 옛적에···.”로 시작하는 폭력의 역사를 서둘러 입을 연다. 로마제국 당시에는 로마 땅이었다가 오스만제국 시절에는 이슬람 땅이자 세르비아 수도 역할을 톡톡히 해낸 침탈과 아픔이 담긴 저력(?)의 도시다. 그리고 오스만과 헝가리 국경을 긋는 지리적 전략적 요충지였다가, 제2차 세계대전이 터지고 독일군 긴 장화발이 장악하면서 하켄크로이츠 폭력을 온 몸으로 맞아야 했다. 인간의 능력은 창조와 건설에 발휘되지만, 모방과 파괴에 더욱 뛰어난 재능을 자랑한다. 이 도시를 찾는 사람은 주로 낡아 초라하기까지 한 스메데레보의 성을 보기 위해서다. 도나우강과 사바강 합류 지점에 서 있는 베오그라드 칼레메그단처럼 도나우강과 스메데레보 도심을 관통하는 예자바강 사이 두물머리, 혹은 합수머리에 버티고 있어 사람들은 ‘물 위의 성’이라고 부른다. 성으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기차역을 지나야 했다. 성 입구 허물어져가는 성벽과 마치 띠처럼 어울리는, 언제부턴가 멈춘 녹슨 열차의 처연한 모습은 시공을 뛰어넘는 역사의 현장이었다. 스메데레보성은 1430년 무렵 세르비아공국 군주 브란코비치 명에 의해 세워졌다. 물론 장기간 공성에 대비한 수성의 역할이 성 내부 곳곳에서 어렴풋이 나타난다. 성벽 두께 2m, 한눈에 보아도 콘스탄티노플 성벽을 본뜬 거대한 돌들로 이루어진 비잔티움 스타일이다. 25m 높이 망루(성 전체에 25개의 망루가 있었다고 함), 우물, 화장실, 마구간, 계급과 신분의 차에 따라 거처의 높낮이 차이도 애써 찾아보았다. 한 곳에서 알게 모르게 복원작업이 이루어지고 있긴 하다만, 지원금이 딸려서인지 급할 것이 없는 모습이다. 세월에 허물어지고, 인간에 의해 파괴되고, 원형은 상상으로도 거의 불가능하니 입체 그림을 그려내는 소프트웨어 성능도 딸리는 까닭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르비아에서 무척 드물게 보존상태가 좋은 편이라니 할 말을 잊는다. 관광객 낙서에 온몸을 그대로 맡기는 구간도 있다. 우리나라 청잣빛 하늘을 닮은, 도도하게 흐르는 물길을 바라보며 마음을 풀어 놓고 그야말로 멍 때리기에 좋은 곳이다. 그러나 늘 시간을 급조해 바쁘게 살아가는 사람은 형태를 잃어버린 채 서 있는 성채 구석구석을 돌아다니기에 바빴다. 돌계단과 금방이라도 허물어질 듯한 나무계단을 오르내리며 전쟁의 화급함을 상상했다. 아비규환 속 절규도 그렸다. 그러다 좁은 아치형 통로를 몇 개 돌아서자 탁 트인 망루에 이방인이 올라서 있었다. 건너편 도나우강을 바라보는 망루가 외성(外城)의 존재를 알렸다. 독일 남부 산악지방에서 발원해 흑해로 흘러드는 물길 그 아랫부분에 속하는 스메데레보 도나우강은 그래서 더 넓고 잔잔하며, 한적하기까지 하다. 다분히 세월에 삭아 내린 성채와 고색창연하게 어울리며 장엄하기까지 했다. 허물어지는 성벽 아래를 걷는 젊은 아낙과 조막만한 아이는 무슨 생각을 할까. 해맑은 아이 얼굴을 바라보며 동방의 수도자 글이 생각났다. “네가 무한한 사랑과 하나가 되는 순간에 겸손해지기를 바란다.” 신의 은총을 입은 순간에 잊지 말아야할 메멘토 모리(Memento mori)! 이방인에게 또 하나 잊을 수 없는 것은 역시 낯선 곳에서 먹거리다. 스메데레보성, 길차길옆 작은 식당, 낡은 비닐조각으로 안과 밖의 경계를 구분하고 있었지만, 그곳에 머리를 숙인 채 우연히 들어서서 맛본, 메뉴판을 들고서도 도무지 이름을 읽을 수 없는 음식이었다. 빵과 빵 사이에 두께 2cm 됨직한 다진 쇠고기를 넣고 토마토를 비롯해 양파 등 채소가 가득 들었다. 우리나라 햄버그와는 맛은 물론, 크기에 있어서도 비교가 안 된다. 대․중․소가 있어 가장 작은 것을 주문했다. 상상했던 것보다 어마어마한 크기라서 실수로 잘못 나온 줄 알았다. 인근 막노동으로 생계를 이어가는 사람들을 위한 음식이란다. 포장해가는 손님이 대부분이다. 넌지시 분주하기 짝이 없는 주방을 훔쳐보다가 깜짝 놀랐다. 훈제불판에서 익어가는 고기 중 가장 큰 것이 우리나라 개다리소반 너비만 했다. 콜라와 곁들여 먹는 맛 또한 일품이다. 사이사이 구멍이 숭숭 뚫린 부드럽고 촉촉한 빵과 잘 구워진 다진 고기가 잘 어울렸다. 때마침 참새 두 마리가 나눠먹자며 교대로 식탁에 앉는다. 저 쪼끄만 참새조차도 제 눈에는 낯선 이방인 생김이 만만한 게다. 공원 의자에서 장바구니를 들고 캔 음료를 마시는 노인들의 주름진 얼굴에 인생의 황혼에서 맛보는 여유를 보았다. 따스한 햇살 아래 꾸벅꾸벅 조는 할아버지 옆에 앉아 말을 거는 할머니 모습은 이보다 행복한 표정이 세상에 또 있을까 싶다. 저들에 의해 폭력이 생산되고, 폭력에 오롯이 노출된 과거를 뭐라 설명해야 할까. /스토리텔링 작가

2025-06-17

신뢰는 경영의 전부다

신뢰와 경영은 매우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으며, 신뢰는 조직의 성과, 혁신, 협업, 지속 가능성 등에 핵심적인 영향을 미친다. 신뢰는 경영의 모든 기반이 되며, 조직은 상호 믿음과 배려, 존중하는 문화가 되면 신뢰 경영이 된다. 신뢰가 높은 조직은 불필요한 확인 절차와 감시가 줄어들어 의사결정과 실행이 빨라진다. 서로 믿고 협력하므로 부서 간, 개인 간 장벽이 낮아지고, 협력 촉진으로 시너지가 창출된다. 리더가 신뢰를 받으면 구성원은 자발적으로 따르고 몰입한다. 신뢰는 불확실한 상황에서도 조직 구성원이 리더와 조직의 의도를 신뢰하고, 변화에 적응하는 수용성이 증가한다. 또한 신뢰는 직원의 창의성, 도전 정신, 책임감 등을 자극하는 성과와 혁신에 긍정적인 영향을 준다. 신뢰 경영의 핵심 요소는 정직과 일관성이다. 말과 행동이 다르지 않고, 원칙을 지키며 일관된 기준을 유지하는 일이다. 정보의 공유, 결정 과정의 공개, 열린 피드백의 문화 조성 등 투명한 소통이 신뢰와 건강한 조직을 만들어 간다. 인사, 보상, 평가가 객관적이고 신뢰받을 수 있는 기준을 기반으로 공정한 시스템 운영이 필요하다. 직원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다양성을 인정하며 수용하는 경청과 존중하는 문화가 중요하다. 실수나 제안이 비난 받지 않는 환경 조성과 창의성을 십분 발휘할 수 있는 심리적 안전 확보가 필요하다. 리더는 솔선수범하며 책임지고, 실패 시 변명보다 책임지는 태도를 보임으로서 신뢰받는 리더십이 중요하다. 고객, 직원, 협력사와 단기성과보다 장기적 관계 지향형으로 만들어 가야 한다. 조직에 신뢰가 무너지면, 구성원들이 진심을 숨기고, 방어적이며, 정보를 공유하지 않아 소통이 단절된다. 책임 소재를 회피하고 실수 은폐 및 책임 전가가 빈번해진다. 신뢰가 없는 조직은 만족도가 낮아 우수 인재가 떠나고, 구성원들이 최소한의 노력만 하여 적극적인 참여가 줄어 저성과가 고착된다. 조직 내 이익을 위한 눈치 보기와 줄서기로 내부 갈등 및 정치화 되는 현상을 초래한다. 필자가, 김포에 있는 대형 송유관 제조 중소기업을 컨설팅 할 때 일이다. 아버지 창업주와 아들 생산 이사와 불신의 관계가 깊어 조직과 일에 불균형이 일어난다. 아들은 주차장에 아버지 차가 보이면 돌아가 버리는 소통의 부재였다. 하부 조직 라인과 임원 층에서도 눈치 보는 문화가 팽배하고, 모든 일의 정보와 의사 결정 과정이 순탄하지 못하여 시너지 창출은 요원한 것이다. 종합 진단을 통해 회사의 방향을 설정하고, 경영 목표, 전략, 실행계획, 운영 제도, 조직 역할 등 혁신활동을 체계화 하고, 생산 전무를 중심으로 의사결정 라인을 정립하며 불협화음을 줄여 나갔다. 대형 배관 제조업체 특성에 맞게 용접 등 주요 용역 업체 대표를 포함하는 협의체를 운영하며, 조직의 불협화음을 줄이고, 의사 결정의 효율성을 높여 나갔다. 부자(父子) 간의 인간적 신뢰는 한계가 있지만 회사 일의 추진과 의사 결정 상의 문제는 해소되었다. 조직 운영에 기본은 신뢰이고, 신뢰가 없는 경영은 한 순간에 무너진다. 좋은 기업을 향한 신뢰는 경영의 전부인 것이다. /정상철 미래혁신경영연구소 대표·경영학 박사

2025-06-17

소월의 ‘진달래꽃’ 시집 발간 100주년

시원한 그늘을 즐겨 찾게 되는 계절이다. 어디선가 풀피리 소리가 정겹게 들리고, 먼 곳의 뻐꾸기 울음소리는 드문드문 한가함의 여운을 더하는 것 같다. 바람결에 흘러가는 구름은 유유자적 시를 쓰는가 하면, 나날이 벼려지는 햇살에 무성해지는 풀과 나무들은 하루가 다르게 초록의 시편을 엮어내는 것 같다. 유월의 자연현상 그대로가 시의 여울처럼 흐르고 사람들은 자연을 누리는 것만으로도 시의 행간을 거니는 것처럼 보인다. 초목에서 뿜어지는 향긋한 냄새며 새들의 지저귐과 나뭇잎이 스치는 소리 등을 가만히 듣거나 보고 있노라면 자연과 바람이 전하는 시의 운율과 리듬에 아늑히 젖어드는 것 같다. 마치 들판이나 산 속에서 잠을 자다 보면 자연의 아늑함과 편안함에서 느껴지는 기운으로 ‘잠의 맛’이 달라지듯이, 자연에서 머무는 그 자체가 힐링이고 위안이 아닐까 싶다. 그렇기에 자연은 시의 보고(寶庫)이며 예술의 총본산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좋은 시는 ‘영혼을 치유해주는 약’처럼 현실의 삶에 지치고 힘들어하는 사람들의 가슴에 따스한 위로와 치유가 되기도 할 것이다. 한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시인 김소월의 ‘진달래꽃’이 1925년 매문사(賣文社)에서 발행된 지 올해 100주년을 맞게 됐다. 김소월 시인이 생전에 발간한 유일한 시집으로 대표적인 ‘진달래꽃’을 비롯해 ‘먼 후일’, ‘산유화’, ‘초혼’, ‘왕십리’, ‘개여울’, ‘나는 세상모르고 살았노라’ 등 많은 수작 127편의 작품이 수록돼 있다. 이 땅에 최초의 자유시가 나온 지 약 106년쯤 되고 보면 외국에 비해서 그다지 역사가 깊은 편은 아니지만, 당시 일제강점기 상황을 고려해볼 때 초창기부터 상당한 센세이션을 불러 일으키며 창작의 열기가 퍼져 나갔던 것으로 보인다. 김소월 시인은 우리의 한글을 가장 아름답고 맛깔스럽게 표현해서 암흑의 시대를 그리움의 언어로 위로해 준 시인으로 평가받는다. ‘진달래꽃’은 한스러운 민족 정서를 민요 가락과 민중의 일상어로 표현해 한국 독자들에게 가장 사랑받는 한국 현대시를 꽃 피운 기적과도 같은 시집이며, 한국 근대 시문학사에 중요한 위치에 있는 점이 인정돼 2011년 ‘진달래꽃’ 2종 4권이 등록문화재로 등록되기도 했다. 일반 대중들에게 다소 생소한 100년 전 김소월의 시집 ‘진달래꽃’ 초판 복각본(復刻本)이 서울의 ‘푸른사상사’에서 출간돼 비상한 관심을 끌고 있다. 한글 맞춤법, 활자, 세로쓰기 등이 현재와는 판이하지만, 손 안에 들어오는 작은 크기의 초판 그대로의 완벽한 복간으로 최고의 선본(善本)임을 자임하고 있다. 그에 발맞춰 (사)일월문화원과 ‘시뜨락’에서는 복각본 편저자를 다음 주 포항으로 초청해 김소월 주제의 특별강연과 김소월 시 초판 원본으로 낭송하기, 시극 공연, 독자와의 대화 등의 시낭송 북콘서트를 풍성하게 준비하고 있어서 벌써부터 주목된다. 나라를 빼앗긴 깊고 무거운 어둠의 시대를 가볍고 찬란한 빛으로 바꿔준 김소월의 아름답고 맛있는 시편들로, 고단한 일상의 위로와 메마른 감성을 적셔주는 치유의 공감을 더해 ‘진달래꽃’ 발간 100주년 의의가 되새겨지길 기대해 본다. /강성태 시조시인·서예가

2025-06-17

과잉 관광

최근 오버투어리즘(Over Tourism)으로 불리는 과잉 관광이 유럽 남부지역 등지에서 논란을 일으키고 있다. 지난 15일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는 약 1000여 명의 시민들이 도심 고급 상점가에서 바르셀로나를 찾은 관광객에게 물총을 쏘고 “관광객은 집으로 가라” 등의 피켓을 들고 시위를 벌였다. 바르셀로나는 인구 160만명의 도시이나 지난해 경우 2600만명의 관광객이 방문해 현지 주민들 일상생활에 큰 불편을 주고 있다는 것이 시위 이유다. 관광객의 과잉 유입으로 물가가 오르고 교통 혼잡이나 주차난 등 현지 주민들이 겪는 불편함이 이만저만 아니라는 것이다. 스페인의 다른 관광지 그라나다와 이탈리아 나폴리, 베네치아 등에서도 이와 비슷한 시위가 잇따라 벌어지고 있다고 한다. 도시마다 많은 관광객의 방문으로 도시 인프라를 늘려야 하는 부담이 생기고 문화유산 훼손이나 상업화 경향 등 사회 문제가 곧잘 등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작년 7월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은 항구에 입항하는 크루즈선을 현재 190척에서 내년까지 100척으로 줄이기로 했다. 무분별한 관광객 유입에 따른 해양 오염을 막고 깨끗한 환경에서 살고 싶어 하는 주민들의 욕구를 충족시켜주기 위해서라 한다. 관광산업 진작을 위해 관광객 유치에 심혈을 기울이는 우리의 처지에서 보면 배부른 얘기로 들릴지 모르지만 한편으로 과잉으로 유입된 관광객이 유발하는 각종 공해 등을 생각하면 이해가 되는 면도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제주도와 서울 북촌한옥마을, 부산 감천문화마을 등 일부 지역에서 과잉 관광의 부작용이 논란을 빚은 바 있다. 그러나 관광을 국가 주요 산업으로 삼으려는 우리나라에선 아직은 과잉 관광은 낯선 풍경이다. /우정구(논설위원)

2025-06-17

장·차관 국민추천제, 성과낼 수 있을까

이재명 정부 장·차관에 대한 하마평이 무성한 가운데 대통령실은 그저께(16일) 고위급 공직 후보자에 대한 국민추천제(‘진짜 일꾼찾기 프로젝트’) 시행 현황과 관련해 “15일까지 7만4000여 건이 접수됐다”고 밝혔다. 프로젝트 추진 한 주 만이다. 추천자리는 직위별(정무직, 개방형 직위, 공공기관장 및 임원, 정부위원회 위원 등), 전문분야(31개)별로 나눠져 있으며, 본인 추천도 가능하도록 했다. 이재명 대통령의 대선 공약이기도 한 이 프로젝트에 대해서는 기대와 우려가 교차하고 있다. 기존의 밀실인사나 낙하산인사 등 각종 인사 논란을 피하고 시민이 직접 참여하는 인사제도라는 점에서는 파격적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자칫 인기투표로 흐를 가능성이 있다는 우려가 있다. 일각에서는 어차피 누군가를 앉히는 데 명분을 구하려는 것일 수도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 프로젝트 시행 첫날에는 법무부 장관, 보건복지부 장관, 검찰총장 추천이 가장 많이 들어왔다고 한다. 일부 정치인은 ‘셀프 추천’을 해 눈총을 받았다. SNS에 게시된 흥미있는 정부 부처별 추천케이스를 보면, 문화체육부 장관 후보에 아이유, 봉준호, 유재석 등 유명 인사가 추천됐고, 방송통신위원장에 진보 진영 지지를 받는 방송인 김어준씨가 추천됐다. ‘환자 중심 의료개혁’을 캐치프레이즈로 내건 새정부 보건복지부 장관에 대한 추천도 많았다. 부산시의사회는 이국종 국군대전병원장을 장관 후보로 추천하면서 “의료 최전선의 외상외과학 교수로서 뛰어난 전문성과 헌신을 보였고, 군인으로서도 국가와 국민을 위해 남다른 책임감과 사명감으로 일해왔다”는 사유를 밝혔다. 검찰총장에는 ‘검찰개혁’을 주장해온 임은정 부장검사 추천도 올라왔다. 임 부장검사는 자신의 SNS에 “법무부와 검찰을 바로 세워달라는 연락을 많이 받았다. 그 추천에 담긴 기대와 열망이 무겁고 뭉클하다”는 소감을 밝히기도 했다. 일부 누리꾼은 ‘여성가족부 폐지’ 공약을 내걸었던 이준석 개혁신당 의원을 여성가족부 장관으로, 부정선거를 주장해온 황교안 전 국무총리를 선거관리위원장에 추천했다는 게시글을 올리기도 했다. 장·차관 국민추천 프로젝트는 노무현·문재인 정부 때도 시도를 했지만 성과를 내지 못했다. 당시에도 정부 고위직 인사를 희화화하는 창구가 되거나, 공직 인사가 업무 역량이 아닌 포퓰리즘으로 흐를 수 있다는 비판이 제기됐었다. 대통령실 강유정 대변인은 SNS에 ‘국민추천제가 인기투표냐’는 글이 다수 올라오는 것에 대해 “인기투표가 아니다. 추천 횟수는 참고사항”이라고 반박했다. 실제 국민 추천제를 통해 접수된 국민 추천 인사 명단은 데이터베이스화 작업을 거쳐 대통령실 공직기강비서관실의 인사 검증과 공개 검증 절차를 밟는다. ‘인사는 만사(萬事)’라는 말이 있다. 대통령실이 갖고 있는 인사풀은 제한적일 수밖에 없기 때문에 전국 곳곳에 흩어진 인재를 국민추천으로 발탁하는 제도는 긍정적인 발상이다. 이번에 추천된 다양한 인사를 어떻게 적재적소에 활용하느냐에 따라 새 정부의 역량이 달라질 수 있다. /심충택논설위원

2025-06-17

조상 묘 깎고 도로를 내버린 영덕국유림관리소

영덕군 병곡면 산골 마을 한쪽에 수십 년을 자리를 지켜온 조상의 묘가 어느 날 사라졌다. 국유림을 가로질러 낸 임도 공사 때문이었다. 공사를 진행한 기관은 영덕국유림관리소와 영덕군산림조합이다. 이들은 “묘지의 존재를 몰랐다”며 유족에게는 150만 원의 보상금을 제안했다. 하지만 묘 하나를 없애는 일은 단순히 ‘땅’의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한 가문이 세대에 걸쳐 지켜온 기억, 정체성, 그리고 뿌리를 파괴하는 행위다. 수십 년간 마을 사람들이 알고 있던 묘소를 국가기관이 몰랐다면 그것은 무능이고, 알고도 무시했다면 그것은 폭력이다. 어느 쪽이든 그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해당 관청은 “절차대로 진행했다”고 해명했다. 그러나 국민이 묻는 것은 법적 정당성이 아니다. 그 절차가 과연 사람을 위한 것이었는가, 공동체를 존중했는가이다. 국가가 존재해야 할 이유는 효율이 아니라, 사람의 존엄을 지키기 위해서다. 이 사건은 단지 한 가족의 비극으로 끝나지 않는다. 오늘 당장의 피해자는 해당 유족일지 몰라도 내일은 우리 누구라도 당할 수 있는 일이다. 한 번 무너진 공권력의 윤리는 쉽게 회복되지 않는다. 그 피해는 특정 개인을 넘어 사회 전체를 병들게 만든다. 국가는 도로를 낼 수 있다. 그러나 그 길이 사람의 기억과 역사를 짓밟아서는 안 된다. 조상의 묘를 파헤치고도 “몰랐다”는 말 한마디로 끝낼 수 있다면 그런 사회는 결국 공동체도, 역사도 지켜내지 못한다. 지금 필요한 것은 단순한 보상이 아니다. 책임 있는 공식 사과, 관련자 문책, 그리고 다시는 이런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하는 제도적 보완이 시급하다. 이 사안은 단순한 행정 실수가 아닌, 구조적 문제로 인식해야 한다. 영덕국유림관리소 입장에선 사라진 것이 묘소가 있던 땅 한 평이지 몰라도 그곳에는 유족들의 각가지 사연과 추억과 기억, 그리고 유구한 시간이 얽혀 있다. 우리들은 수천여년을 그런 인연을 통해 기대며 살아왔다. 어쩌면 그것이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들의 뿌리이기도 하다. 사소하고 아주 작은 것이라도 소중히 여기고 아껴주는 그런 국가기관을 옆에 두고 싶다. /박윤식기자 newsyd@kbmaeil.com [정정보도문] 영덕 국유림 임도 개설 중 묘지 훼손 관련 경북매일은 2025년 6월 16일 ‘영덕군 국유림 임대 개설 공사 중 수십년 조상 묘소 통째로 사라져’ 및 ‘조상 묘 깎고 도로를 내버린 영덕국유림관리사무소’ 제목의 기사에서, 영덕국유림관리소가 임도 개설 공사를 추진하면서 수십 년 전부터 있던 묘소를 무연고지로 판단해 유족의 동의 없이 훼손했다고 보도하였습니다. 그러나 확인 결과, 영덕국유림관리소는 임도 개설 공사 전과 공사 중에도 봉분의 흔적을 추정할 수 있는 분묘나 석물을 발견하지 못하였고, 보도시점에 영덕국유림관리소 직원이 ‘무연고지로 판단해 정식 절차에 따라 처리했다’라는 취지의 인터뷰를 한 사실이 없는 것으로 확인돼 이를 바로잡습니다. 이 보도는 언론중재위원회의 조정에 따른 것입니다.

2025-06-17

불길 속 숨겨진 방패, 방화문 닫기로 안전한 일상을 지키자

포항의 밤하늘 아래, 불빛이 반짝이는 도시. 그러나 그 빛나는 순간에도 보이지 않는 위협이 우리의 일상을 노리고 있다. 그것은 바로 ‘화재’라는 이름의 재앙이다. 이 위협으로부터 우리를 지키기 위한 간단하지만 강력한 메시지를 전달하고자 한다. 그 메시지의 핵심은 바로 ‘방화문 닫기’이다. 방화문은 단순한 문이 아니다. 그것은 불길로부터 우리를 보호하는 든든한 방패이며, 연기와 유독가스로부터 우리의 생명을 지켜주는 생명의 울타리와 같다. 화재 발생 시 닫힌 방화문은 불길이 번지는 속도를 현저히 늦추고, 피난 시간을 확보해 준다. 이는 곧 인명과 재산의 피해를 최소화하는 결정적인 요소가 된다. 방화문은 단순히 물리적인 장벽 이상의 역할을 한다. 화재 발생 시, 고온의 열과 연기가 빠르게 확산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 설계된 방화문은 특정 시간 동안 구조적 안정성을 유지하며 불길을 차단한다. 일반적으로 30분에서 1시간 이상 견딜 수 있도록 내화 성능을 갖추고 있으며, 이는 건물 내 사람들이 안전하게 대피할 수 있는 충분한 시간을 제공한다. 특히, 방화문에는 단열재가 내장되어 있어 열전도를 막아주고, 문 주변의 틈새를 최소화하기 위한 실링 기술이 적용돼 있다. 이러한 기술적 특성 덕분에 방화문은 화재 확산을 효과적으로 억제하며, 인접 공간으로의 연기 유입을 방지한다. 그러나 많은 이들이 간과하는 사실은 방화문의 역할을 ‘비상 탈출구’라고만 생각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이유로 오히려 열어두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혹은 방화문 닫기의 중요성을 인식하지 못하고, 문을 열어둔 채로 방치하거나 평상시 문을 열어놓고 지내는 경우가 종종 발생한다. 이는 화재 발생 시 큰 위험을 초래할 수 있다. 화재 발생 시 방화문이 조금이라도 열려 있거나 손상되어 있다면, 그 효과는 급격히 떨어진다. 우리는 ‘방화문 닫기는 안전의 시작’임을 기억해야 한다. 이는 화재 예방의 첫걸음이며, 우리가 매일 실천해야 할 작은 습관이다. 또한, 방화문이 잘 설치돼 있더라도 방화문의 성능을 지속적으로 유지하기 위해서는 정기적인 점검이 필수다. 도어클로저는 시간이 지나면서 마모되거나 오작동할 가능성이 있어, 주기적으로 문이 잘 닫히는지, 완전히 밀폐되는지 확인하고 정상 작동 여부를 확인해야 한다. 그리고 문틀이나 바닥에 장애물이 없는지 살펴보는 작은 관심이 필요하다. 이와 함께 방화문에 부착된 각종 표지와 비상등 역시 화재 발생 시 대피에 혼선을 주진 않는지 섬세한 확인이 필요하다. 이러한 작은 실천이 모일 때 큰 화재를 막는 힘이 된다. 방화문 닫기는 단순한 규칙이 아니라 우리 모두의 안전을 지키는 첫걸음이며, 가족과 이웃의 생명을 보호하는 소중한 습관이다. 화재는 예고 없이 찾아오지만, 우리가 미리 준비하고 예방한다면 그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다. 오늘부터라도 방화문 닫기를 실천해 안전한 일상을 만들어가자. ‘방화문 닫기’ 사소하지만, 중요한 이 행동이 우리 모두에게 안전한 내일을 선사할 것이다. 방화문을 닫는 작은 행동의 실천 하나로, 사랑하는 사람들과 소중한 일상을 지켜나가길 바란다. 안전한 내일을 위해 지금 이 순간부터 바로 방화문 닫기를 실천하자.

2025-06-16

6월, 대전리에서

6월의 시원한 바닷바람에 태극기가 대문마다 펄럭인다. 송라면 대전1리다. 업무차 왔다. 포항에 오래 살면서도 여태 이 마을을 찾지 못했다. 일이 생겨서야 왔다고 생각하니 지역 역사에 무심했던 나 자신이 부끄러웠다. 3‧1운동 때, 이곳 대전리에서도 만세운동을 벌였다는 사실은 전에 문학 모임에서 들은 적은 있었다. 하지만, 흘러가는 말로 들었던 나는 별 관심 두지 않았었다. 헌법 전문에 들어갈 정도로 우리 역사에 큰 이정표를 남긴, 민족의 독립운동을 먼 과거의 일로 가벼이 여기고 만 것이다. 가만히 “3‧1운동과 6월···.”이라고 되뇌어본다. 1919년 3월 1일. 경술국치 후 일제강점기 10년 차에, 전국 방방곡곡에서 나라를 빼앗긴 국민이 분연히 일어나 ‘대한독립 만세운동’을 일으켰다. 곧, 외세 지배에 대한 한민족 공동체의 자생적 항거였다. 한편, ‘6월’을 생각하면 먼저 떠오르는 게 민족 최대의 비극 6‧25다. 하늘은 왜 민족상잔의 6월에 내가 대전리를 찾게 하였을까. 포항시 자료에 따르면 대전리 만세운동은 1919년 3월 11~12일 포항면 여천장터(현 육거리 일대) 만세운동에 이어, 3월 22일 청하장터, 3월 27일 대전리 두곡 숲으로 이어졌다. 또, 4월 1일 연일, 동해, 장기, 오천, 대송, 4월 2일 기계, 죽장, 신광, 청하, 송라, 흥해로 확산이 되었다. 참가 연인원 2,900명, 사망자 40명, 부상자 380명, 피검자 320명이나 되는 큰 만세운동이었다. 대전리에는 ‘대전 3‧1의거 기념비’와 ‘포항 만세촌 대전 3‧1의거 기념관’과 대동수(大東數)라 불리는 두곡숲이 있다. 기념관에는 ‘대전 14인 3‧1 의사’들의 넋이 숨 쉬는 유물들이 전시되어 있다. 한 시골 마을에서 14명의 3‧1 의사가 나온 것은 투철한 독립정신, ‘대전리 3‧1정신’의 발로였을 터다. 3‧1운동은 독립운동으로 이어져 1945년 8‧15해방의 원동력이 되었다. 하지만, 외세에 힘입은 불완전한 해방이었기에 나라가 남북으로 갈리는 비운도 맞았다. 그 와중에 남한은 1948년 7월 12일 헌법을 제정, 공포함으로써 자유민주주의 대한민국을 탄생시켰다. 북한은 소련식 공산주의 체제로 되어, 민족 분단 역사를 만들고 말았다. 6월은 ‘호국보훈의 달’이다. 6‧25 한국 전쟁의 달이기 때문일 테다. 나무위키의 6‧25전쟁 자료에는, 한국군과 유엔군의 인명피해가 전사 17만8569명, 부상 55만5022명, 실종, 포로 4만1769명이다. 또, 북한과 중공군 인명피해 112만5000명, 남한 민간인 99만978명, 북한 민간인 150만 명, 기타 피난민 240만여 명, 미망인 20만여 명, 고아 10만여 명에 이른다. 너무 크나큰 비극이다. 집집에 태극기를 달고 이어온 ‘대전리 3‧1 정신’은, ‘6‧25의 달 6월’에다 무엇을 말해줄까. 이렇게 말하리라. “6월이여, 그대는 외세 소련 공산주의 체제를 끌어들여 민족 최대의 동족상잔 6‧25 비극을 만든 달이지 않나. 그러니, 그대 유월이여! 이제부터라도 대전리 3‧1정신을 본받아 핵무기도, 내부 체제전쟁도 바로 없애고 민족 공존공영의 길로 나서기를 진심으로 바란다네. 꼭, 그리하기를 비네!···.” /강길수 수필가

2025-06-16

제사에 관한 에피소드

오래전 일이다. 친동생처럼 지냈던 경남에 살고 있는 후배 부부가 갑자기 찾아왔다. 용건은 간단했다. 부부의 고민 사항이 하나 있는데, 나에게 그 답을 구하고 싶다는 것이었다. 부부 사이의 고민 사항이라는 게 뻔한 것이 아닌가. 그런데, 동생 부부가 나에게 던진 질문은 의외였다. “제사를 지내야 하는가요?” 듣고 나서 순간 웃음이 나왔지만, 이혼 상담보다 더 심각한 부부의 분위기가 나의 웃음을 안으로 들이키게 만들었다. 두 사람의 표정에서 이건 보통 문제가 아니라는 걸 직감했다. 지난 세월 제사로 얼룩진 동생 가족의 일상이 그려졌다. 나의 답변에 따라 한쪽은 완전하게 패배하는 그런 순간이었다. 나는 부부에게 두 가지 요구조건을 걸었다. 위대한(?) 답변에 대한 나름의 대가를 요구한 셈이었다. 제사에 대하여 일찍이 결론을 내고 있었던 나의 입장도 있었지만, 나의 답변으로 인하여 한쪽이 입게 될 상처가 눈앞에 어른거렸기 때문이다. 첫째, 나의 답변대로 실천할 것, 둘째, 이 결정으로 인하여 상대방에 대하여 어떠한 원망도 하지 않을 것. 부부는 맹세하였다. 답변대로 실천하면서 살아가겠노라고. 절대 상대를 원망하지 않겠노라고. “지금 이 순간부터 제사는 지내지 마라” 그때, 동생의 얼굴에는 어두운 그림자가, 제수씨의 얼굴에는 옅은 미소가 스쳤던 걸 나는 아직도 기억한다. 평소 완고한 성격의 동생은 자신의 완전한 패배를 순순히 받아들였다. 답을 구한 상대가 왜 나였는지, 무슨 연유로 제사의 생사를 결정하려고 하였는지의 사연에 대하여 묻지 않았다. 제사에 대한 위대한 대화가 있다. 최시형과 손병희 사이에서 주고받은 대화이다. 의암이 물었다. “스승님 제사란 무엇인가요?” 해월이 답하였다. “위패를 너 자신을 행하게 하는 것” 즉 제사는 자신을 위해 지내는 것이라는 통찰이 담긴 대화이다. 나에게 있어 제사라는 단어는 옛말이다. 나는 매일 제사를 지내고 있으므로 따로 제사를 지낼 필요도 없다. 제사는, ‘조상이 후손에게 바라는 그 무엇을 실천하는 행위 자체’라고 생각한다. 위패를 자신을 향하게 한다는 것은, 자신이 삶의 주인공이 되어 모든 것을 자신의 책임하에 더 잘 살아가기를 스스로 다짐하라는 뜻이 아닐까. 제사를 고집하는 사람의 내면세계에는 욕망과 집착 및 권위라는 달갑지 않는 심리적 기제가 작동할 가능성이 많다. 제사는 오래된 잘못된 문화라 생각한다, 늦었지만 과감히 제사상을 치우자. 진정한 제사가 무엇인지 우리는 이미 알고 있다. 천 번의 제사보다, 한 번의 가족 나들이가 나으리라. 동생 부부가 하동으로 내려간 이후 지금까지 계란이 끊이질 않는다. 답변에 대한 실천의 징표이기도 하지만, 실천 이상으로 얻은 것이 있다는 뜻이리라. 인문학당 도반 한 분이 나에게 깨달음이란 무엇인가에 대하여 질문한 적이 있다. 깨달음이란 존재하지 않지만, 굳이 깨닫고 싶다면 그냥 하지 않으면 된다는 것이 나의 답이었다. 단지 하지 않음으로써, 삶의 많은 부분에서 도에 이를 수 있다. 술 담배 끊으면 되고, 싸우지 않으면 되고, 화내지 않으면 된다. 제사! 일러 무삼하리요. /공봉학 변호사

2025-06-16

서두르지 않는다

내가 관여하는 한 학회에 아주 오랫동안 활동을 영상 기록으로 담아오는 선생님이 계시다. 봄이 무르익은 어느 날, 인사동 하고도 선천(宣川)이라, 평안북도 지명을 딴 곳에서 어려운 학회를 지원해준 원로 어른들 모시고 점심식사를 했다. 그날도 역시 이 선생님께서 처음부터 끝까지 촬영을 해주셨다. 내가 이 학회에 관여하며 일해온 십여 년 동안 한결같이 보아온 모습이셨다. 국문학계, 거기서 현대문학 쪽에는 학회들이 많다. 작가 이름을 딴 학회도 많고, 주제나 영역을 가리키는 이름을 가진 곳도 많다. 어떤 학회는 그 연구 대상 작가의 이름이 아직 높지 않아서 고생하기도 한다. 또 어떤 학회는 첨예해서 논쟁이나 논란의 대상이 되기 쉬울 수도 있다. 그런 곳에서 오랫동안 일하기는 결코 쉽지 않다. 돈으로 보상받기도 어렵고 많은 이들의 보편적인 지지를 받지도 못하는 상황에서 남들 안 하는 궂은일을 계속해 나가기란 극난하다. 점심 자리가 파하고 선천 대문 앞에 나가 사진들을 찍었다. 사진 찍는 어른들 모습을 보니 그 십여 년 사이에 많이도 변하셨다. 몸이 눈에 띄게 불편해지신 분들도 계시다. 이곳 인사동 골목과 선천의 연륜만큼 오래 버티고 서 오신 분들인 것이었다. 가만히 생각하기에 이 어른들의 한 가지 모습 있어, 그것은 한결같다는 것, 변하지 않고 계속해 나가신다는 것이다. 사진 찍는 일도 끝나자 이제 차담(茶談)을 나눌 차례다. 나는 이쯤에서 다른 일을 위해 떠나야 한다. 어른들이 골목 안쪽으로 천천히 걸어들 가시고, 이제 선천 앞 공터에는 촬영하시는 선생님과 나만 남았다. 장비를 정리하시는 선생님께 다가가 여쭈어본다. ―요즘 세상이 참 어지럽지요? 늘 고생하시는 선생님께 친밀감을 표현하기 위한 말이었다. ―글쎄요. 세상에는 나 모르는 원리나 메커니즘이 있는 것 같아요. 오래, 가만히 생각해 보니 그래. 그걸 내가 바꿀 수는 없는 것 같고,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할 뿐이지요. 선생님은 한 번도 당신이 하시는 일에 어려움을 호소하거나 불평을 말씀하신 적이 없었다. 오늘 시국에 연루되어 고초를 겪고 있던 한 분의 보석이 허가되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열흘 남짓만 있으면 벌써 6개월이 흐르고 그러면 자동으로 구속 취소가 되어 나오게 된다 한다. 벌써 시간이 그렇게나 흐른 것이었다. 지난 사나흘 사이에는 저 멀리 중동에서 이스라엘이 이란을 공습해서 군 수뇌부들, 핵 과학자들이 죽고, 핵시설과 유전이 파괴되었다 한다. 우크라이나와 러시아의 전쟁도 상황이 무척이나 뒤바뀐 듯도 하다. 멀리서 들려오는 소식은 ‘나비효과’도 아니어서 내일의 이곳이 변화할 것을 시사할 수도 있다. 세상을 걱정하는 선배 한 분이 전화를 하셨다. ―이제 세상은 우리 손을 떠난 것 같아. 요즘 벌어지는 일들을 보니 그래. 가만히 우리 할 일 하며 때가 어떻게 오는지 기다릴 줄 알아야 해. 딴은 그렇다. 이 땅에서 벌어지는 일들은 세계를 움직이는 크나큰 원리며 메커니즘의 하나로서 나타난 것이리라. 이 작은 개체의 생각과 눈으로 보이지 ‘바람’을 다 헤아리랴. 서두르지 않는다. 기다린다. 내 일을 버리지 않는다. 그것이다. /방민호 서울대 교수·국문과

2025-06-16

일본의 쌀값 폭등이 던진 화두

1918년 일본 도야마(富山)현에서 ‘쌀 소동’이 일어났다. 1차 세계대전 말기 전시(戰時)동원 체제에서 군량미 수매를 시작한 후 쌀값이 폭등했기 때문이다. 농민·시민이 대규모 폭동에 가담해 약 6만 건의 시위가 발생하고 2만5천명이 체포됐다. 이 사건은 당시 내각 수반인 테라우치가 사퇴하면서 겨우 일단락 됐다. 1세기가 지난 현재 일본에서 다시 쌀값 폭등이 일본 열도를 강타하고 있다. 도심 쇼핑몰에서 쌀을 사기위해 오픈-런을 하는 장면은 자체로 충격이다. 세계 3위 경제대국에서 일어난 이런 유통 왜곡 현상은 우리의 평안한 일상이 언제든지 거두어질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최근 폭염으로 인한 흉작, 지나친 감산(減産)정책, 관광객 증가로 인한 쌀 소비 급증 등이 원인으로 지적되지만 전문가들은 유통 구조 왜곡과 도매상들의 사재기를 이유로 들고 있다. 쌀 과잉생산, 정책·보조금·직불금 확대에 농촌 고령화까지 우리 농업현실이 일본과 쌍둥이처럼 닮았다는 점에서 이 사건은 우리에게 많은 시사점을 던져준다. 언제 우리도 쌀값 폭등 같은 유통 대란이 일어날지 모르고, 군사적 긴장 수위가 높은 우리 지형에서 그 파장은 상상 이상이 될 수 있다. ‘In the East rice is more than just food.’ 격언처럼 동양에서 쌀은 식품 이상의 대상이다. 쌀은 자체로 인문학적 ‘양식’인데다 쓰기에 따라 안보 수단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번 일본 사태를 계기로 한국 역시 농정 체질을 전환해야 한다는 지적이 높다. 농민을 규제 대상으로 보지 않고, 식량 안보의 동반자로 대우해야 한다는 것이다. 오늘 밥상에 올라오는 한 공기 밥을 단순한 ‘식품’이 아닌 ‘국가 자산’으로 바라보는 것, 일본 쌀값 소동이 우리에게 준 교훈이다. /한상갑(경북부 에디터)

2025-06-16

개구리는 움츠려야 멀리 뛴다

국민의힘 지지율이 폭락했다. 정치판에는 주식시장과 달리 서킷브레이커도 없다. 여기가 바닥이라고 자신할 수도 없다. 지난주 한국갤럽 조사에 따르면 국민의힘 지지율이 전주보다 15%포인트나 떨어진 21%였다. 반면 민주당 지지율은 4%포인트 오른 46%로, 국민의힘보다 두 배가 넘었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더 불안하다. 대구·경북(TK)을 제외한 다른 지역은 모두 민주당 지지율이 높았다. 지금 이대로라면 내년 지방선거에서 대구 시장과 경북지사를 제외하고는 모두 민주당이 차지한다는 말이다. 국회의원 선거도 마찬가지다. 완전한 ‘TK 자민련’이다. 지난 대통령 선거 결과를 국회의원 선거구별로 비교했을 때 국민의힘은 99석밖에 얻지 못했다고 중앙일보가 보도했다. 그 런데 국민의힘은 반성은커녕 거기서도 낭떠러지 아래로 뛰어내렸다. TK에서도 크게 앞선 게 아니다. 국민의힘이 40%로 민주당 32%를 겨우 앞섰다. 국민의힘 핵심 지지층인 60대(54%→25%)와 70대 이상(61%→30%)에서 한 주 만에 반토막 났다. 한국갤럽 조사만 그런 경향을 보인 것이 아니다. 4개 여론조사기관이 합동한 전국지표조사(NBS)에서도 민주당 45%, 국민의힘 23%로 갑절 차이를 보였다.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 홈페이지 참조) 지난 대통령 선거가 비상계엄과 탄핵에 대한 심판이라면, 이번 조사 결과는 선거 이후 국민의힘의 사후 처리에 대한 실망이다. 국민의 지지를 받지 못한 이유를 찾아 반성하고, 고치려는 노력은 전혀 없었다. 파산하고 남은 부스러기를 서로 차지하려고 싸우는 모습에서 회생 가능성조차 찾을 수 없는 절망이다. 정치는 ‘살아 움직이는 생물’이다. 그렇지만 이러고도 국민의힘이 다음 선거를 치를 수 있을까. 선거 뒤 국민의힘이 한 일은 분란뿐이다. 선거 패배 책임을 서로 떠밀었다. 먹을 것이나 있는 것도 아니다. 행정부도, 국회도 민주당 정권에 다 넘겨줬다. 사법부까지 넘어갈 위기다. 다 팽개치고, 알량한 당권에 목을 맨다. 국민의힘 김용태 비상대책위원장은 10일 “선거에서 이긴 정당처럼 행동하는 의원과 원외 당협위원장들이 많다”라고 말했다. 쪽박을 찼지만, 그 쪽박을 두고 싸우는 모양새다. 선거에 졌으니, 당을 정비하는 건 당연하다. 그렇지만 당권 경쟁에서 상대의 약점을 들추느라 정작 당이 해야 할 일을 잊어버렸다. 국민의힘은 정권을 빼앗겼다. 무장 강도에게 빼앗긴 게 아니다. 임기를 절반이나 남긴 정권을 스스로 갖다 바쳤다. 일반 상식으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비상계엄을 시도했다. 그래 놓고는 탄핵에 찬성한 의원들을 탓한다. 탄핵 이후에도 탄핵 반대를 당론으로 유지하겠다고 고집한다. 탄핵안이 국회를 통과하지 못한들, 저항하는 시민은 어떻게 막을 건가. 발포라도 해야 했다는 건가. 시민과 무장 군인이 대치할 때 실수로라도 발포할까, 폭력이 발생할까, 가슴을 졸였다. 비상계엄에 성공한들 몇 년을 끌고 갈 수 있을까. 그런 체제로 다시 집권할 수 있을 거로 생각했을까. 그야말로 망상이다. 일부 국민의힘 의원은 “계속 탄핵 반대 활동을 해왔는데, 어떻게 당론을 무효화하느냐”라고 말한다. 이미 해온 일은 반성할 수도, 뒤집을 수도 없다는 말이다. 그러면 선거도 계속 지겠다는 생각인가. 국민의힘이 “내가 잘못한 게 없다”라고 한다면, 선거는 왜 졌나. 나는 잘못한 게 없으니, 국민더러 반성하고, 다르게 투표하라고 훈계하는 오만함과 다르지 않다. 좋건 싫건 선거는 국민의 심판이다. 그 결과는 겸허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국민을 물갈이할 수는 없다. 국민을 계몽해 투표 경향을 바꾸겠다는 건 독재자의 논리다. 왜 졌는지 냉철하게 분석하고, 반성해야 한다. 윤석열 전 대통령 방탄이 보수의 목표가 될 수는 없다. 정치인도 잘못할 수 있다. 다만 그 결과에 책임을 져야 한다. 개구리도 움츠려야 높이 뛸 수 있다. 물론 의원들의 지역구에 따라 여론이 다를 수 있다. 그렇다고 의원마다 자기 이익만 지키려 움직이면, 정권을 포기해야 한다. 여론이 추락하는 데는 이유가 있다. 영국의 자유당처럼 사라지느냐, 재건하느냐, 국민의힘이 기로에 서 있다. 김진국 △1959년 11월 30일 경남 밀양 출생 △서울대학교 정치학 학사 △현)경북매일신문 고문 △중앙일보 대기자, 중앙일보 논설주간, 제15대 관훈클럽정신영기금 이사장,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부회장 역임

2025-06-15

울릉도의 경제기반은 안전한 공항과 오징어 풍어

울릉도가 안고 있는 당면 현안은 울릉공항 건설과 연근해 오징어 어업 활성화 대책 등으로 요약되고 있다. 이 가운데 최대 과제는 지역 관광활성화를 위한 안전한 울릉공항 건설이다. 울릉공항은 2022년 5월 첫 케이슨 함을 거치 후 3년 동안 케이슨 거치 작업이 진행됐고 올해 5월 마지막 30번 함 거치가 완료됐다. 울릉공항은 2028년 상반기 개항을 목표로 현재 전체 공정률이 62.69%이다. 케이슨 거치 완료한 뒤 공항부지 조성을 위해 가두봉 절취 작업 및 해상 매립작업이 이어진다. 하지만, 지난해 연말 안타까운 무안공항 참사 이후 울릉의 미래 교통의 핵심이라고 할 울릉공항의 안전성에 대해 재고하는 계기가 됐다. 또한 앞으로 주력 기종으로 예상되는 80인승 항공기 기종의 안정적인 이착륙을 위해 활주로 길이와 종단안전구역이 현 수준 보다 더 필요하다고 보고 있다. 우선 현재 울릉공항 활주로와 종단안전구역 길이는 각각 1200m와 90m로 공사가 진행 중인데 활주로 시설 등급 중 최저수준이다. 따라서 80인승 항공기 기종이 안정적으로 운영하려면 항공기의 이착륙 중량을 크게 줄여서 운항 할 수밖에 없다. 이는 곧 탑승인원과 적재화물의 감소로 이어져 경제적 측면에서 수익이 크게 나지 않는 구조가 된다. 또한, 기상청 자료에 근거하여 최근 5년 동안 최대 순간 풍속이 25노트 이상인 날이 연평균 138일 정도이며 풍속이 25노트 이상이면 80인승 항공기는 결항률과 사고 발생률이 증가할 가능성이 커진다. 더불어 5년간 연평균 강수량은 1538mm, 강수일 수는 144일이다. 이 수준은 우리나라 최대 강수 지역에 준하는 수준이다. 이 또한 결항률에 영향을 미칠 것으로 판단된다. 이러한 이유로 인해 활주로와 종단안전구역 연장을 지속적으로 요구하고 있다. 울릉공항 활주로 연장 추진위원회라는 상설 시민단체를 구성해 활주로 연장 필요성에 대해 지역사회의 공감대 확산과 대정부 건의 활동을 지속적으로 해나가고 있다. 울릉도는 관광산업에 버금가는 지역 경제기반으로 오징어 어업을 들 수 있다. 최근 ‘금징어’라 불리며 자취를 감추었던 울릉도 오징어가 올해 다시 울릉도 앞바다에 조금씩 그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회복의 조짐이 과연 단순한 반짝 현상인지, 아니면 기후환경의 구조적 변화 속에서 얻어낸 값진 전조인지에 대해선 더 면밀한 관찰이 필요하다.   2024년 울릉도 해역은 5월 기준 평균 수온이 15.8~17.2° C 수준으로, 오징어가 선호하는 수온범위보다 높았고 특히 6월에는 수온이 상승하며, 어군이 빠르게 북상했거나 수심 깊은 곳으로 이탈해 저동항 기준 조업량은 거의 전무했다.   반면, 2025년 올해는 상대적으로 늦은 수온 상승세를 보였다. 5월 내내 오징어 생육에 이상적인 수온을 유지했고, 이는 올해 5월 후반~6월 초 단기 반짝 풍어로 나타났다.   이 차이는 단순한 계절적 요동일 수도 있지만, 기후 변화 속 ‘예외적 적정 수온 구간의 회귀’로 보는 전문가들도 있다. 오징어 회유 경로에 수온이 미치는 영향은 크다는 것을 울릉도에서 오징어 조업을 하는 분들이라면 모두다 알 것이다. 올해 5월 이상적인 수온 안정은 오징어 조업 조건에 분명히 긍정적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단기적 회복 속에서 간과해서는 안 될 변화도 있다. 바로, 열대·아열대 어종의 북상이다. 6월 들어 울릉도 연안 수온은 18° C에 도달했고, 이는 이미 오징어의 적정 상한선에 가까워진 온도다. 실제로 작년에는 아열대성 플랑크톤이 울릉도·독도 해역에 출현했다는 보고가 있었다.   이는 단순한 ‘수온 상승’ 그 이상의 변화다. 생태계 재편이 시작되었고, 우리가 익숙했던 ‘울릉도의 해산물 풍경’ 자체가 바뀌는 것이다.   올해 오징어가 ‘잠시’ 모습을 드러냈다는 사실은 분명 반갑다. 그러나 문제는 앞으로도 오징어가 이 바다에 머물 수 있을지, 그리고 지속적인 어획이 가능한 구조로 회복될 수 있을지다.   기후변화로 인한 수온 불안정성은 물론이고, 여전히 반복되는 남획, 야간 집어 조업의 집중도 등은 오징어 자원에 악영향을 준다. 울릉도 인근 해역이 더 이상 ‘조업 최적지’로 남지 않을 가능성도 염두에 둬야 한다.   이제는 풍어 소식만 반가워할 것이 아니라, 바다를 바라보는 시선 자체를 전환해야 할 때다. 오징어 한 마리의 귀환을 ‘복귀’라 치부하기보다는, 해양 변화 전환기를 맞이하고자 끊임없이 변화를 추구하고 다른 판로를 개척해 나가야 할 시기이다.

2025-06-15

안전한 피난처, 굴항

버스에 오른다. 비 오는 주말 아침 시간이어서 거리는 한적하다. 비에 젖은 가로수들이 유난히 청명하다. 봄이 무르익고 있다. 관광버스에 오르는 회원들의 얼굴에는 비에 젖은 설렘과 낯선 곳을 향한 호기심이 서려 있다. 종일 내리는 비와 벗하며 간 마지막 장소는 사천에 있는 대방진 굴항이었다. 바다 쪽에서 보면 잘 보이지 않지만 좁은 입구를 통과해 들어오면 넓고 잔잔한 항이 있다. 이곳은 고려시대 말, 남해안에 빈번하게 침입하던 왜구의 약탈을 막기 위해 설치된 ‘구라량영’이 있던 곳으로 알려져 있다. 조선시대에 구라량이 폐쇄된 후 순조 때 다시 둑을 쌓았고 1820년경에 완공되었다. 임진왜란 때에는 충무공 이순신 장군이 수군기지로도 이용해 거북선을 숨겨두었다. 병선에 굴이 달라붙지 않도록 민물로 채웠다는 이야기도 있다. 굴항 주변을 찬찬히 한 바퀴 돈다. 수령 200년 이상의 팽나무와 소나무가 숲을 이루는 이곳은 당시 병사들의 활터로도 사용되었다고 한다. 아래를 내려다보며 왜구를 피해 이곳으로 들어와 숨죽였을 당시를 그려본다. 그들에게 이 작은 항구는 아마도 든든한 피난처였을 것이다. 엄마는 깔끔하고 집안일을 잘하는 사람이었지만 칭찬에 인색했다. 또한 스킨십도 별로 없었다. 삼남매의 맏이인 내게는 더 그랬던 것 같다. 할머니와 사이가 그다지 좋지 않았던 엄마는 자주 내가 할머니를 닮았다고 했다. 본인이 싫어하는 사람을 닮은 나를 좋아할 리 없다고 짐작하게 되었다. 초등학교 5학년 때였다. 옆집 가족과 덕수궁에서 열리는 전시회에 갔다. 신고 있던 운동화가 작아서 발이 너무 아팠다. 다른 사람들이 구경하고 나오는 동안 나는 전시관 앞에서 기다리기로 했다. 한참 시간이 지나도 일행이 나오지 않아 불안이 점점 커져 갔다. 끝까지 기다리지 못하고 결국 아픈 발을 끌고 전시관 안으로 들어갔다. 전시관을 다 돌아보았지만 엄마도 동생도 옆집 식구들도 보이지 않았다. 나를 두고 다들 가버렸나 생각하니 울컥 울음이 나올 것 같았다. 무작정 덕수궁을 나왔다. 길은 모르고 가진 돈은 없고 운동화는 작아서 발이 너무 아파 서러움이 몰려왔다. 집이 있을 것이라 짐작되는 방향으로 무작정 걸었다. 2시간은 족히 걸은 것 같았다. 집을 찾지 못할 거라는 불안은 다리의 아픔을 잊게 만들었다. 멀리 동대문이 보였다. 비로소 마음이 조금 놓이기 시작했다. 조금 돌아오긴 했지만 동대문에서 집까지는 찾아갈 자신이 있었기 때문이다. 빨리 가야되겠단 생각에 걸음을 재촉하는데, 버스 창문 너머로 누군가 내 이름을 크게 불렀다. 엄마였다. 안도의 한숨도 잠깐, 슬그머니 걱정이 올라왔다. 집에 가면 얼마나 혼날까 하는 생각이 문득 든 까닭이었다. 버스에서 뛰어내린 엄마는 울면서 나를 꼭 안아 주었다. 넉넉지 못한 형편이라 제때 발에 맞는 운동화를 사 주지 못함에 미안해했다. 밤늦도록 숨죽여 우는 엄마의 모습을 보면서 미안함을 느꼈지만 엄마가 나를 사랑하고 있다는 생각에 포근했고 그제사 안심이 되었다. 73개 면의 주민들이 동원되어 둑을 쌓았다. 활처럼 굽은 만을 만들어 병선의 정박지로 사용하던 굴항은 본래의 목적은 상실하였고 주민들이 선착장으로 이용하고 있었다. 팽나무가 굽어보는 이곳은 인근에 한려해상국립공원에 속하는 학섬과 늑도와 함께 관광명소가 되었다. 든든한 굴항이었던 엄마는 이제 연약한 육신을 가지고 투병 중이다. 심한 골다공증으로 등이 많이 굽었고 탈장으로 고생 중이지만 나이가 많아 수술도 불가하다. 큰딸인 내가 서울에서 울산으로 이사 온 후 꼭 와보고 싶다고 했는데 한 번도 오질 못하고 있다. 어린 나에게 엄마는 은신처가 되어주었듯 노쇠한 엄마에겐 내가 그 역할을 해야 하리라. 하지만 아픔을 견디며 하루하루를 살아내는 엄마가 아직도 내겐 든든한 피난처이다. 풍파에 지치고 사는 일이 아득해질 때면 여전히 엄마를 찾아간다. 굴항은 팽나무와 함께 고요하다. 오늘도 자신을 찾아오는 사람들에게 가만가만 옛일을 들려주고 있다. 종일 내리는 비에 항구의 물결이 살랑인다. 내 마음도 촉촉이 젖어간다. /시조시인 전영숙

2025-06-15

어떤 탈선의 추억

대부분 낚시인들이 그렇듯 나도 아버지께 낚시를 배웠다. 아버지와의 낚시는 내 유년의 가장 큰 행복이었으나, 그것은 IMF 사태로 부서졌다. 사업 망한 아버지는 지방을 전전하는 행상이 되어 내가 성인이 될 때까지 뵙기조차 힘들었다. 그렇게 아버지와의 낚시는 흘러간 추억이 되고 말았다. 벌써 25년 전 일이다. 문득 낚시가 사무치게 그리웠다. 학교를 땡땡이치고 낚시터로 향했다. 책가방 대신 낚시 가방을 메고 교복 입은 학생들을 피해 터벅터벅 걸었다. 사당역에서 777번을 탔다. “학생이요”라고 안 하고 주머니에서 현금을 꺼내 요금통에 넣었다. 수원역에 내려 다시 버스를 갈아타고는 화성 봉담읍 해병대사령부까지 왔다. 도로변에는 애기똥풀이 가득 피어 있고, 화물차 매연 아지랑이 너머로 휴가 나가는 군인들이 신나 보였다. ‘화성’ 하면 사람들은 영화 ‘살인의 추억’을 떠올리지만 내게는 ‘탈선의 추억’이 깃든 도시다. 아버지와 이따금 찾던 낚시터, 먼저 매점부터 들렀다. 혼자 왔느냐는 관리인의 물음에 나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며 입장료 만이천 원을 냈다. 돌아갈 차비 말고는 한 푼도 없었으므로 빵 한 개조차 살 수 없었다. 낚싯대를 부채꼴로 펼쳐 놓고 내 키만큼 찌를 맞춰 채비를 던졌다. 아버지께 배운 낚시 방법들을 몸이 다 기억하고 있었다. 한 주 전 내린 장맛비 때문인지 수심이 깊어 찌가 자꾸만 가라앉았다. 찌고무를 30센티미터쯤 올리자 그제야 어느 정도 수심이 맞았다. 저 물에 빠지면 나도 머리끝까지 잠기겠지, 그러면 나도 세상도 다 사라질 텐데… 낭만적 우울은 그 나이 때 감기 같은 것이었다. 붉은 노을을 되비추는 물을 바라보고 있으면 나도 모르게 그 속으로 빨려 들어갈 것만 같았다. 저 속에는 온가족이 함께 모여 앉아 밥 먹던 저녁의 웃음소리가, 온갖 그리운 얼굴들이, 그리고 아버지가 있지는 않을까? 교복 대신 조숙한 쓸쓸함을 입고 찌를 바라보는 동안 산새 소리, 황소개구리 우는 소리, 트럭들이 지나가는 소리, 저쪽 저수지 건너에서 불빛들이 하나 둘 켜지는 소리가 귓가에 글썽거리며 저녁이 왔다. 수면 위로 어둠이 내려앉자 야광찌 불빛들이 어릴 적 내 방 천장에 붙여놓았던 형광별 스티커처럼 반짝였다. 모기가 성가시게 굴어도, 이른 열대야가 목덜미에 땀을 흐르게 해도 그저 물과 하늘 사이의 허공만 바라보았다. 때때로 멍해질 때마다 찌가 올라오는 바람에, 붕어 몇 마리 놓치고는 씩씩, 욕이나 내뱉으면서 밤낚시는 깊어졌다. 옆자리에서 어른들 몇이 술판을 벌였다. 한 아저씨가 “이리 와서 소주 한 잔 해요”하며 손짓했다. 하루 종일 굶어 배가 고팠다. 가스버너에 올린 코펠 속에서 라면이 끓고 있고, 신문지 위에는 편육과 치킨이 펼쳐져 있었다. 맛있는 냄새에 혼이 나갈 지경이었다. “스무 살이에요” 거짓말을 하고는 그 사이로 비집고 들어가 종이컵에 소주를 받아 마셨다. 허겁지겁 라면을 집어 먹었다. 어른들은 알면서도 모르는 척 종이컵에 소주를 따라주었다. 불콰하게 취해 자리로 돌아와 떡밥을 새로 갈아 던졌다. 이리저리 비틀거리면서 캄캄한 물을 바라보니 입질은 없는데 야광찌 불이 춤을 췄다. 꼭 빠가사리나 메기가 찌를 끌고 난리치는 것처럼 보였다. ‘소년도 아니고 어른도 아닌 나는 돌아갈 곳이 없는데, 만이천원짜리 결석이 끝나면 어디로 가야할까?’ 지쳐버린 내 그림자가 나를 붙잡고는 어디로도 못 가게 하는 밤이었다. 술을 마신 탓인지 가슴 속에 불덩이가 얹힌 것만 같았다. 지금 생각해봐도 우스운 것은, 밤 깊은 저수지에서 머리에 피도 안 마른 놈이 소주에 취해서는 한숨 푹푹 쉬며 “울었소 소리쳤소 이 가슴이 터지도록” 노래를 부른 일이다. 나는 여태까지 아버지가 마이크 잡고 노래 부르는 것을 딱 한 번 봤는데, 내가 어릴 때 할머니 환갑잔치에서 아버지가 부른 노래가 ‘울고 넘는 박달재’다. 가슴이 터지도록 소리치고 싶었던 질풍노도의 밤, 그러지 못하고 나지막이 노래를 중얼거린 것은 “밤낚시 할 때는 절대 조용해야 한다”던 아버지의 가르침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그 다음은 기억도 나지 않는다. 의자에 앉아 잠깐 졸았더니 아침이었다. 나는 지금도 낚시를 할 때면 ‘울고 넘는 박달재’를 흥얼거리곤 한다. /이병철(시인)

2025-06-15

러브 이즈 본

초여름으로 향해 가는 계절, 나는 계절이 바뀔 때마다 아주 미약한 우울감을 함께 느끼는데, 그럴 때엔 초록으로 물든 강변을 약간의 땀이 날 때 까지 빠르게 걷다가 집으로 돌아온다. 찬 물로 샤워를 하고 나서 섬유유연제 향기가 나는 얇고 부드러운 여름 잠옷으로 환복을 한 뒤, 냉장고 앞에 선다. 오늘을 위해 약 한 달 전부터 준비한 청량감이 느껴지는 화이트 와인과 마트 직원의 추천을 받은 프랑스산 치즈를 사왔기 때문. 주황빛으로 저무는 커다란 창문을 활짝 열어 놓고선 자연풍을 맞으며 와인을 따면 묵은 고민이 씻겨가듯 기분이 나아진다. 치즈와 햄도 먹기 좋게 그릇에 놓은 뒤 계절이 바뀔 때에 생각 나는 영화, <스타이즈본>을 튼다. 외모 콤플렉스를 앓고 있는 여주인공 엘리는 식당 주방에서 일하지만, 노래에 놀라운 재능을 갖고 있다. 낮에는 식당 주방에 일하고 밤엔 공연을 하던 와중, 우연히 톱스타 잭슨 메인을 만난다. 남주인공 잭슨 메인은 당시 최고의 스타로 이름을 알린 유명 가수이지만, 어쩐지 그는 밤새 술을 마시고도 집에 돌아가지 않고 길거리를 방황한다. 그런 잭슨은 앨리가 일하는 바에서 우연히 방문하고, 앨리를 만나 점차 사랑이 깊어지게 되는 이야기다. 동시에 앨리는 잭슨을 만나면서 유명한 가수로 데뷔하여 점차 성공하지만 오히려 앨리와는 반대로 잭슨은 어린 시절의 상처와 예술가적 고뇌 속에서 점차 병들어 가며, 영화는 점차 파국으로 치닫는다. <스타이즈본>은 국내에서 2018년 10월쯤 개봉했으며, 나는 그때 실연에 대한 고뇌로 하루하루 생각에 깊게 잠겨 있던 때였다. 사랑은 대체 언제 돌보아야 하는지, 돌봄과 동시에 어느 타이밍에 어느 정도의 크기로 주고 받아야 하는 것인지에 대해 몰랐고, 그 정답을 알고 싶었기에 무척이나 괴로웠다. 하지만 점차 외로운 의문 속에 빠졌고, 그 상황이 너무나 답답하면서도 안타까웠다. 그래서 그날도 무작정 걷다 영화관에 도착하게 되었고, 우연히 스타이즈본을 관람하게 되었다. 목이 탄 사람처럼 어딘가 불편해진 채로 영화를 관람했는데, 사랑과 동반되는 온갖 상처와 허무함, 조급함과 괴로움, 상대보다 내가 더 우선시되는 알량함과 이기적임 같은 수많은 감정을 모조리 느끼게 했기 때문이다. 영화는 주인공들의 감정이 폭발하면서 결국 상황이 최악으로 악화된다. 잭슨의 추모 현장에서 앨리는 잭슨을 위한 노래를 부르며 결국 이야기를 끝내게 된다. 영화를 다 보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엔 어쩐지 눈물이 났다. 허탈감이 몸을 감싸며, 결국 사랑은 정해진 답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 감각이 다 소진될 때 까지 가쁘게 걸었던 그날의 기억이, 실은 아직도 생생하다. 사랑은 연인 관계가 끝나고 나서도 아주 오랫동안 이어진다. 미련과 집착에서부터 멀리 벗어날 지라도, 이따금 한 번씩 수면 아래서 떠오른다. 멍하니 누워 있을 때, 소란스럽던 공간에서 빠져나와 조용히 적막에 잠길 때, 무언가 무력하다고 느낄 때에 종종 그 시기의 내가 생각난다. 지난 인연과 시기에 대한 아쉬움이나 미련은 아니다. 처음 겪었던 감정의 소용돌이를 온 몸으로 맞았던 그 때의 기억이 강렬했기 때문이다. <스타 이즈 본>은 사랑 이야기다. 앨리와 잭슨은 비록 좋지 못한 결말을 맞이했지만, 앨리는 영화의 막바지에서 잭슨을 영원히 기억할 것이라고 말한다. 나는 계절이 바뀔 때마다 영화 속에서 그들의 사랑 이야기를 다시금 처음부터 보지만, 앨리는 이야기 끝 너머에서 잭슨을 오랫동안 가슴 속에 품으며 그녀만의 방식으로 사랑을 이어가고 있을 것이다. 사랑의 끝은 계속해서 비참할 수 있지만 우린 늘 애써 노력한다. 애써 고민하고, 애써 내가 가진 것을 나누고, 애써 표현하고 존중한다. 그 애씀이 내게 더 많은 감정의 풍요를 가져다주고, 더 나은 사람이 되게끔 하며 결국 더 행복해지게 한다. 사랑이 죽어가는 만큼, 내게도 하루하루 수많은 사랑이 태어난다. 나날이 깊어가는 부모님에 대한 사랑, 연인에 대한 사랑, 동생과 친구들과 새롭게 만나는 사람들에게까지. 편안함과 존경과 애정 같은 감정의 교류를 자연스럽게 하며 많은 것을 체화하고 있다. 동시에 이미 종지부를 내린 사랑들도 많이 생각한다. 마음처럼 되지 않았던, 무언가 시작하기도 전에 저물었던 수많은 아쉬움의 형태들. 이따금 생각하며 사랑으로 이름을 붙일 수 있고, 지난 사랑을 생각할 때마다 더 나은 사람이 되겠다는 확신이 생기므로 외려 감사하다. 어찌됐든 우리 모두가 사랑으로 오래 행복했으면 좋겠다. /윤여진(시인)

2025-06-15

그렇게 설명하면 됩니다

인터넷의 알고리즘은 기가 막히다. 최근 경험한 사연은 이렇다. 갑자기 코쿤과 박나래가 대화하는 영상이 떴다. 업로드된 날짜를 보니 3개월 전에 방송된 프로그램이다. 코쿤은 ‘소식좌’로 유명한 사람이라 그의 영상이 뜨면 내 두둑한 살집을 생각하며 즐겨 본다. 박나래가 코쿤에게 평소 화내는 것을 본 적이 없는데 화를 참는 건지 화가 안 나는 건지 묻는다. 그러자 코쿤은 제대 이후 한 번도 화낸 적이 없다면서 화낸다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라서 화를 안 낸다고 한다. 지극히 당연한 말이다. 그런데 코쿤 같은 사람이 현실에 많은 것은 아니다. 며칠 전 민주당에서 새 원내대표 선출이 있었다. 후보로 나온 김병기 의원이 아들 취직 과정에 부당한 압력을 가한 적이 있다는 뉴스가 나왔다. 언젠가 김병기 의원 지역구 주민에게서 그를 둘러싼 논란을 들은 적이 있어 지인의 sns에 사실 확인이 필요한 것 아닌가 하는 댓글을 달았다가 모르는 사람에게 봉변을 당했다. 의혹이 있다면 설명하면 될 일이지 왜 그렇게 화를 내는지 이해하기 어려웠다. 그런데 그 일이 있고 난 후 바로 코쿤 영상이 뜬 것이다. 이런 일이 있고 나니 지난달 대선 후보 2차 토론 때 인상적인 장면이 떠오른다. 이재명 후보가 이준석 후보에게 12∙3 계엄 때 국회에 들어와 의결하지 않고 왜 밖에 있었느냐면서 정말 의결에 참여할 의지가 있었는지 물었다. 이에 대해 이준석 후보는 이미 의결 시간이 5분 남짓밖에 안 남았고 의결 정족수가 채워졌다는 소식을 받았기에 군인들이 의원을 막았다는 증거를 남기기 위해 들어가지 않았다고 상세하게 대답했다. 그러자 이재명 후보가 ‘그렇게 설명하면 됩니다’하고 받아들이는 장면이다. 이 말에는 함축적인 의미가 있었다. 이준석 후보가 토론에 임하는 태도가 사뭇 화난 듯한 모습이었기 때문이다. 결국 대선 후보 3차 토론회에서 했던 이준석 후보의 발언 하나가 삐-처리되었고 이준석 의원을 제명하라는 청원이 13일 오후 기준 56만 명이 넘었다. 윤석열 전 대통령 탄핵 청원 143만 명에 이어 역대 2위라고 한다. 마감일이 내달 4일이라 청원인 숫자는 더 늘겠지만 현재 56만 명으로도 국민적 분노가 얼마나 큰지 짐작할 수 있다. 본인도 그럴 리가 없다고 놀랐다고 한다. 나는 이렇게 많은 사람이 제명 청원에 찬성한 것은 그 발언 하나 때문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3회에 걸친 토론 내내 눈을 부릅뜨고 화난 얼굴로 공격적인 태도를 취했던 것이 그 발언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에 영향을 주었을 것이다. 설명하기보다 분노하기를 선택하는 것은 우리의 일상에서도 흔히 벌어지는 일이다. 나와 입장이 다른 상대를 만났을 때 자칫 잘못하면 그 분노가 종이에 기름 부은 듯 쉽게 불타오른다. 그러나 분노의 심연을 들여다보면 옳음에 대한 신념보다는 다른 이유가 도사리고 있는 경우도 많다. 언젠가 정치적 입장이 다른 친구를 격한 말로 비난했다가 내 마음속 질투를 발견하고 낯이 뜨거웠던 적이 있다. 설명하기를 선택하려면 코쿤처럼 생각하기와 함께 내 마음 돌보기도 필수다. /유영희 덕성여대 평생교육원 교수

2025-06-15

이제, 시민이 행복한 포항을 이야기할 때이다

요즘처럼 세상이 빠르게 변하는 시대는 처음이다. 세계 경제와 기술 변화, 복잡한 국제 정세, 물가와 기후 문제까지 시민의 삶 곳곳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그 속에서 정치가 던져야 할 질문은 언제나 같다. “시민 한 사람 한 사람이 오늘 하루를 더 안정적으로 살아가고 있는가?”   지방이 이 역할을 해줘야 할 때이다. 청년들이 떠나고 고령화가 가속되는 현실, 지역 경제의 뿌리가 흔들리는 모습은 포항도 예외가 아니다. 우리는 자랑스럽게 성장해 왔지만, 이제는 새로운 전환의 시기를 맞고 있다.   바닷가 작은 어촌에서 시작해 세계적인 철강 도시로 도약한 포항은 많은 도전을 이겨냈다. 하지만 철강에 의존하는 산업구조, 청년 유출, 농어촌 소외 등 우리가 안고 있는 숙제도 분명하다. 이제 철강을 넘어 AI, 바이오, 수소, 디지털 신산업 중심의 미래 산업으로 새 성장동력을 키워야 할 때이다.   바이오 특화단지, 수소 산업 클러스터, AI 기반 신산업 육성은 선택이 아니라 생존의 조건이다. 하지만 산업의 성장만으로 시민이 행복해지는 것은 아니다. 기업이 성장해도 시민의 삶이 불안하면 그 성장은 의미가 없다.   필자는 평소에 ‘청년이 일할 수 있고, 어르신이 평안하고, 아이들이 뛰어놀 수 있는 도시’, ‘가족이 살기 좋은 도시’를 꿈꾸고, 그런 도시를 그려가기 위해 현장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있다.   우선 남구와 북구, 도심과 내륙, 바다와 농촌이 함께 숨 쉬는 도시여야 한다. 오천의 산업단지, 흥해의 신도시, 구룡포·영일만의 어촌, 송라·기계의 농촌이 저마다 특색을 살려 어우러질 때 포항은 진짜 온전한 도시가 된다. 포항의 힘은 언제나 균형 속에서 빛났다.   행정 역시 책상이 아니라 시민의 일상에서 시작돼야 한다고 믿는다. 좁은 통학로, 끊긴 버스노선, 고장 난 빗물받이…. 그 작은 불편 하나하나가 바로 행정의 출발점이다, 늘 보고서보다 현장에서 답을 찾고 직접 뛰었던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이처럼 시민과 함께 만드는 행정이야말로 진짜 행정이다. 예산을 어떻게 쓰고, 복지를 어떻게 설계할지 시민이 논의하고 결정하는 구조가 필요하다. 참여예산제, 시민감사단, 주민자치회, 동네별 정책 플랫폼 등은 보여주기용이 아니라 행정의 본질이 되어야 한다.   정치는 결국 갈등을 조율하는 일이다. 지방행정은 싸움이 아니라 서로 조금씩 양보하며 모두가 살아가는 구조를 만드는 것이어야 한다. 노동자와 기업인, 어민과 산업단지, 농민과 유통업자 모두가 함께 가야 한다.   포항은 수많은 위기 속에서도 시민들이 지켜낸 저력이 있는 도시이다. 태풍과 지진, 산업위기 속에서도 한 걸음씩 앞으로 나아왔다. 이제 그 저력을 바탕으로 한 번 더 도약할 시간이다.   바이오·수소·AI 산업이 포항의 성장을 이끌고, 청년이 돌아오고, 어르신이 평안하고, 아이들이 웃으며 뛰어노는 도시. 도심과 농어촌이 고르게 살아 숨 쉬는 도시. 환경과 복지가 함께 성장하는 도시.   이 모든 그림은 결코 먼 이야기가 아니다. 의지만 있다면 우리는 충분히 해낼 수 있다. 시민이 행복한 포항, 살맛 나는 포항. 이제 함께 만들어 갈 시간이다. /김일만 포항시의회 의장

2025-06-15

서울 집값 상승과 지방 민심

서울지역의 집값 상승세가 심상찮다. 한국부동산원이 조사한 6월 둘째 주 서울 아파트매매가격지수는 전주 대비 0.26% 증가하는 등 19주 연속 큰 폭으로 오르고 있다. 이재명 대통령이 취임한 첫 주의 상승 폭은 올 최고를 기록했으며, 서울 전 지역에서 상승세가 이어지고 있다. 매도자가 물건을 회수하거나 가격을 올려 다시 내놓는 사례가 다반사로 일어나고 있다고 한다. 같은 기간 대구지역의 아파트 매매가격은 81주째 하락세를 기록했다. 전세가격은 86주째 떨어져 서울과는 매우 대조적이다. 서울지역 집값이 오르는 이유에 대해 전문가들은 금리인하 전망, 추경예산 살포에 따른 유동성 증가, 진보 정부에서는 집값이 오른다는 속설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탓으로 보고 있다. 하지만 이런 요인들이 왜 지방에는 적용되지 않는지 의아해하는 사람이 적지 않다. 집값은 기본적으로 안정되는 것이 바람직하다. 하지만 대구처럼 81주째 하락하는 것은 정상이라 할 수 없다. 특히 서울의 집값은 상승하는데 지방의 집값 폭락은 지방에 사는 사람에게 상대적 박탈감을 준다는 점에서 서울과 지방간 또 다른 역차별이다. 집값의 변동은 개인의 재산이 늘고 줄고 하는 문제라 이보다 더 민감한 사안이 없다. 서울 사람은 가만히 앉아서 수억 원을 버는데 지방에 산다는 이유로 재산을 까먹는 일이 벌어진다면 지방의 민심이 좋을 리 없다. 지금 추세라면 과거에도 그랬지만 모든 투자가 서울로 쏠려 수도권 블랙홀은 더 심화될 것이 뻔하다. 정부가 말하는 지역균형발전도 사실상 공염불이 된다. 서울 집값은 안정시키고 지방 집값은 정상화시키는 균형잡힌 정책이 나와야 한다. /우정구(논설위원)

2025-06-15

‘리박 스쿨’을 생각한다

낯선 이름의 단체가 눈과 귀를 자극한다. 듣도 보도 못한 ‘리박 스쿨 Rhee Park School’이다. ‘리박 스쿨’은 ‘이승만 박정희 학교’를 어설픈 영어로 단순화한 것이다. 2023년 7월에 개설된 그들의 홈페이지에는 ‘대한민국 역사 지킴이’라는 부제(副題)가 달려 있다. 그들이 추구하는 대상이 역사를 중심으로 진행될 것을 예고하는 부제다. 이 조직의 본질을 명료하게 드러내는 문장은 다음과 같다. “자유를 지키고 싶다면 이승만과 박정희를 배우라.” 이 구절 바로 다음에 “이승만 건국 대통령의 근대화와 자유 정신, 한강의 기적을 만든 박정희 부국 대통령의 산업화를 연구하는 아카데미 단체입니다.” 하는 설명이 뒤따른다. ‘리박 스쿨’은 부패하고 타락한 전직 대통령들의 가르침을 추종하는 단체다. 그들이 설립한 연구소와 협회는 역사 체험을 바탕으로 한 조직적인 이념 전파, 한국과 일본의 친교와 상생을 목적으로 한다. 이런 과업 수행을 위해 그자들은 주니어 역사 교실, 바로 보는 현대사 같은 사업에 매진해 왔다. 이승만과 박정희로 대표되는 친일 극우 이념을 역사로 포장하여 나이 든 세대는 물론이려니와 어린 세대까지 세뇌하려던 정황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 탐사 전문 매체에 따르면, ‘리박 스쿨’은 국민의 힘 같은 보수 정치권을 지지하는 ‘자손군(댓글로 나라를 구하는 자유 손가락 군대)’을 운영해 왔다. ‘리박 스쿨’은 최소 4년 전부터 다수 보수단체에 ‘자손군’ 양성 방법을 강의함으로써 조직적인 댓글 공작원들을 길러온 것이다. 그런 까닭에 일부 언론 매체는 ‘리박 스쿨’을 ‘자손군’ 양성 사관학교로 규정한다. 이와 아울러 ‘리박 스쿨’은 늘봄학교 강사 자격증을 발급해 초등학교에서 왜곡된 친일 극우 역사관을 전파했다는 의혹도 받고 있다. 언론 보도에 따르면, 대선 댓글 조작 의혹을 받는 ‘리박 스쿨’ 손효숙 대표는 여러 가지 이름의 보수단체를 동시에 운영하면서 어린 학생들을 상대로 뉴라이트 역사관을 전파해 왔다고 한다. 내란 수괴가 즐겨 사용한 용어 ‘자유’가 ‘리박 스쿨’ 곳곳에서 되풀이되고 있음에 주목해야 한다. 자유 정신, 자유 손가락, 자유 대한민국 같은 표현에 담긴 ‘자유’를 다시 생각한다. 자유의 대전제는 책임과 의무다. 대한민국 헌법과 법률이 규정하는 한도 내에서 우리는 자유를 선언하고, 실천하며 살아간다. 특정 집단과 조직만을 위한 자유는 정신적 폭력과 다르지 않다. 우리는 이승만이 건국한 나라가 아니라, 3·1 운동으로 건립된 임시정부가 세운 대한민국에 살고 있다. 이승만은 3·15 부정선거를 일으켰다가 시민들에게 쫓겨난 독재자에 불과하다. 그들이 부국 대통령 운운하는 박정희는 영구집권을 획책하다가 부하에게 사살된 타락한 권력자다. 수많은 노동자와 농민의 피땀 어린 희생 덕분에 우리는 가난과 후진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자유 대한을 부르짖는 자들이 내세우는 한국과 일본의 상생과 친교는 뉴라이트 역사관으로 무장한 자들의 최종목표를 드러낸다. 일본의 일개 신민(臣民)으로 살고 싶은 친일 부역 극우 맹동주의자들의 망발과 망언과 책동이 나의 조국 대한민국에서 영원히 사라지기를 바란다. /김규종 경북대 명예교수

2025-06-15

포항지진 트라우마, 통합적인 대응책으로 지혜롭게 대응해야

포항지역 ‘핫이슈’로 떠오른 포항지진에 관심을 두면서 개인 및 집단 트라우마의 유사성과 차이점에 대해 깊이 생각하게 됐다. 지진충격으로 50만 포항시민들이 경험한 공포와 고통은 집단 트라우마에 해당한다. 시민들은 재산상의 피해는 물론이고 불면증, 악몽, 불안 등의 정신적 고통도 받았다. 단기간이 아닌 오랜 세월 동안 생활의 안정감을 훼손하는 상처, 즉 트라우마를 남겼다. 상처의 깊이와 정도에 따라 개인별로 심리적 치유가 필요하지만, 시민들이 공유한 집단적 상처도 함께 치유해야 한다. 지진 재난의 의미를 재정의하고 기억하며 기념하는 상징물 설치, 가해자의 진정성 있는 사과, 그리고 정신적 피해에 대한 위자료 배상은 집단 트라우마 치유의 방법이다. 정부가 시민들에게 진정성 있는 사과를 하고, 시민들의 불안과 고통을 덜어주는 가시적인 노력을 기울일 때 아픔과 분노의 기억을 긍정적으로 재구성할 수 있다. 포항시민들은 지진 트라우마에 대해 정부와 관계자들이 어떤 태도를 보였는지를 잘 알고 있다. 포항시와 시민단체, 언론이 포항 지진의 발생 원인 규명과 포항 지진 특별법 제정 과정에서 헌신적인 역할을 했다는 사실도 인식하고 있다. 지역의 일부 변호사와 시민들은 정신적 고통에 따른 정신적 위자료 청구 소송에서도 승소했다. 포항시민이 민사 2심 소송에 참여함으로써 지진 트라우마를 통해 소속감, 공동체 의식, 연대성 및 정체성을 확인하는데 기여했다. 집단 트라우마는 또 다른 중요한 특징이 있다. 책임을 져야 할 기관과 행위자는 시간이 지남에 따라 변신한다. 이들은 자신의 책임을 회피하거나 약화시키며, 피해자가 자신의 기억을 점차 잊도록 유도하는 ‘망각의 전략’을 은밀하게 동원한다. 포항지진 발생 이후 정부는 지진의 진상을 규명하고 재산 피해에 대한 보상을 위한 지원금 지급, 새 집 제공, 그리고 도시 재생을 위한 복지시설 신축 등 가시적인 조치를 취했다. 분노를 급히 가라앉히기 위한 전략으로 볼 수 있다. 이후 정부측 변신의 조짐은 2024년 8월 검찰의 수사 결과에서 보였다. 지진과 관련해 정부 관계자들을 불기소 처분하겠다는 발표에서 시작됐다. 이어 지난 5월 13일 고등법원 재판관들은 민사 1심 판결을 뒤집는 판결을 내렸다. 정부는 유명 로펌의 변호사를 동원해 책임에서 벗어날 수 있는 구실과 명분을 제공받았다. 아직 대법원의 판결이 남아 있는 상황이지만 정부는 유명 로펌의 변호사를 통해 1조 5000억 원의 예산을 절감하는 큰 효과를 거뒀고, 변호사는 성공 보수를 받을 기회를 얻었다. 정부가 계속해서 ‘고통과 불안의 방관자’로 변신할 수 있을지는 두고 볼 일이다. 중요한 것은 포항시민들도 함께 변신해야 한다는 점이다. 지진의 책임자를 명확히 하고, 피해에 대한 배상을 받을 수 있는 결집력과 실천력을 갖출 필요가 있다. 포항지역의 변호사와 법학자들은 대구고등법원에서 패소한 결과를 대법원에서 파기환송하도록 ‘상소문’을 최대한 잘 작성해 대응해야 한다. 지진 피해자로서 피해 보상을 받을 권리를 가진 주체임을 개인 혹은 집단 행동으로 보여야 한다. 지진 트라우마 치유가 개인적인 차원에 그쳐서는 안 되며 집단의 고통으로 재정의해야 한다. 과학적, 법적, 제도적, 심리적, 집단적 치유를 ‘통합적인 대응’으로 전환하고, 우선순위를 정해 지혜롭게 대처해야 한다. /양만재 포항지역사회복지연구소장

2025-06-12

감정의 공공성

21대 대선이 이재명 정부의 탄생을 알리며 마무리됐다. 지난 선거 과정을 복기할 필요가 있을 텐데, 관련하여 주목할 만한 통계 지표가 있어 짧게 다뤄보고자 한다. 한국갤럽의 최근 조사에 따르면 이재명 대통령을 뽑은 유권자 다수는 ‘계엄심판/내란종식’(27%)과 ‘직무/행정 능력’(17%)을 투표 이유로 꼽은 반면, 김문수 후보를 택한 사람들은 ‘도덕성/청렴’(33%)과 ‘이재명이 싫어서’(30%)였다고 한다. 비상계엄과 탄핵 이후에 이루어진 대선이었음에도, 보수 유권자들 상당수는 상대 후보에 대한 반감만으로 투표를 했다는 것이다. 물론 인간의 악감정에 편승하는 정치가 출현한 게 어제오늘의 일은 아니지만, 언제까지 이런 혐오 사회를 방치해야 하는지 모르겠다. 새 정부 출범에 발맞추어, 모두가 자기감정을 돌아볼 시간을 가져봤으면 한다. 일본의 문학평론가 오쓰카 에이지는 이성과 합리가 아니라 감정의 교환이 사회를 움직이는 유일한 엔진이 되고, 무엇보다 사람들이 감정 이외의 커뮤니케이션을 기피하게 되는 상태의 지속을 “감정화하는 사회”라고 정의한 바 있다. 즉 사람들의 자기 표출이 감정의 형태로만 드러나고, 바로 그러한 감정을 기반으로 해서만 유일한 관계성이 통용되는 사회가 굳어졌다는 것이다. 이런 사회에서는 타인의 행위와 감정에 대한 공감이 사회 구성의 근간에 놓이게 된다. 하지만 우리가 속한 세상에서는 공감할 수 있는 것보다는 공감하지 못하는 존재나 의견을 더 많이 마주하며 살아야 한다. 감정적인 공감만으로는 제대로 된 사회가 형성될 수 없는 것이다. 분명 인간은 공감을 통해 연결된다. 그러나 공감할 수 없는 감정과 행동을 어떻게 이해해야할지를 묻는 단계를 건너뛰고 공감이 커다란 감정으로 직결되는 것은 위험하다. 공감하기 어려운 사람들에 대한 배타적 자세를 자명하게 수용하고 자기와 의견이나 생각이 ‘다른’ 차원의 지평을 이성적으로 판단하기보다는 감정적으로 멀리하는 것이 사회적 태도로 성립해버리면 정치 그 자체가 실종되기 때문이다. 바로 이 지점에서 오쓰카 에이지는 아담스미스가 말한 “도덕감정론”에서의 자기 내면의 ‘중립적 관찰자’를 강조하고 있다. 나의 감정과 타인의 감정을 직접 공명시키는 게 아니라 자기 내면에 중립적 관찰자를 두고 그것이 자신과 타인의 감정 및 행위의 적절성을 판단하는 기준을 형성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자기의 감정을 스스로 다스리고 반성적으로 돌아봐야한다는 제안이기도 하다. 사실 이 자체는 너무 당연한 삶의 자세 아닌가? 자기가 너무 ‘감정적’으로 살고 있는 건 아닌지 모두가 매번 점검하며 살고 있지 않나? 이 당연한 태도가 왜 매번 정치의 영역에서는 소실되는지도 다시금 성찰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공감할 수 없는 감정을 오직 불쾌하다고만 받아들이고, 정작 그러한 불쾌함의 성격을 판단하거나 관찰해줄 중립적 시선은 존재하지 않는다. 이성적이고 사회적인 분석보다는 단번에 감정적으로 이해될 수 있는 것만을 선호하는 정신을 우리는 ‘반지성주의’라 부를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우리의 감정 바깥에 설 필요가 있다. 자기감정을 공공화하는 일은 여기서부터 가능하다. /허민 문학연구자

2025-06-12

나의 장례식은 웃음이 많았으면 좋겠다

소대(燒臺)에서 연기가 나는 것을 보니 막재가 있었나 보다. 절집에서 망자의 옷가지나 소지품을 태우는 장소를 ‘소대’라고 한다. 검은 옷을 입은 유족들이 분주하게 움직인다. 이제 집으로 돌아갈 시간인 모양이다. 슬퍼하는 이도 있고 서로 장난치며 웃는 이도 있다. 생전 어디선가 한번 지나쳤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문뜩 들어 법당에 차려진 망자의 영정 사진을 힐끗 쳐다봤다. 생전 처음 보는 얼굴이다. 늙지도, 젊지도 않은 남자다. 영가단에 합장하여 예를 표했다. 요즘은 찾으래야 찾기 힘든 곳이 장의사 간판이다. 길을 걷다 보면 동네마다 관을 잔뜩 쌓아놓은 가게가 보이곤 했다. 당시엔 집에서 장사를 지내는 풍습이 있었다. 객사하면 시체가 원혼이 붙은 채 구천을 떠돈다고 생각했고 악귀로 변해 사람들에게 해코지한다는 말을 찰떡같이 믿었기에 어떻게 해서든 시신을 집으로 모시려고 애썼다. 병원에 있다가도 죽을 때가 되면 집으로 모시게 된다. 수구초심(首丘初心)이라고 여우도 죽을 때 제가 살던 굴이 있는 언덕 쪽으로 머리를 둔다고 하지 않는가. 예전에는 돌아가시기 전에 집으로 모셔가면 좋으련만 세상살이가 다 마음대로 되는 것이 아니라 갑자기 숨을 거두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그땐 병원에서는 시신 입에다 수동식 인공호흡기를 물리고 열심히 공기를 손으로 주입하면서 집으로 모셨단다. 그러고는 마치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났다는 표정으로 한마디 한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바로 돌아가셨습니다. 집에 돌아오신 줄 아셨나 봅니다.” 망자의 가족인들 이미 돌아가셨는지 알지만, 편하게 집에서 돌아가신 것으로 치부하고 장례 절차를 밟게 된다. 전화로 장의사 부르고 곧이어 염한다고 가족들은 시신 곁에 모여야 한다. 이때부터 집안에 곡소리가 끊이지 않는다. 정이 많았던 할머니셨고 많이 따랐지만, 이상하게 그날은 무서웠다. 아마 정을 떼고 가시려고 했나 보다. 세상이 바뀌었다. 요즘은 거의 다 객사한다. 집에서 장례 치르는 집이 없다. 옛날엔 상을 당하면 상주는 삼일을 불식(不食)한다고 하여 음식을 먹지 않는다. 그래서 상주에게 미음이나 죽 같은 것을 가져와서 먹이곤 했다. 요즘은 상주도 잘 먹고 잘 자고 샤워 시설까지 갖춘 방에서 잘 씻는다. 아버지 돌아가셨을 때 씻는 것은 고사하고 양치도 못 해 입에서 군내가 진동한 기억이 난다. 슬프다고 너나없이 술을 권하던지 정신은 해롱거렸고 속은 거북했다. 삼베옷에 살갗이 쓸려서 밤엔 따갑고 쓰라렸다. 지금은 삼베옷과 대나무가 사라졌다. 서양처럼 검은 양복 빼입고 있으면 된다. 모든 것을 상조회에서 와 조금도 불편함 없이 해 준다. 서세원 장례식장에서 개그맨 김정렬이 선배의 마지막 가는 길에 춤을 춘 것이 화제였다. 세상 구경 제대로 하는 기안84라는 친구는 마다가스카르라는 나라에서 기이한 장례문화를 소개한다. 다 같이 춤을 추는 축제 같은 장례문화였다. 지금까지 변화된 장례문화를 볼 때 내가 언제 죽을지는 모르지만, 그때는 장례문화가 지금보다는 확연하게 달라져 있지 않을까. 내 장례식에는 슬픔보다는 웃음이 더 많았으면 싶다. 그리고 제사상 차림 같은 것은 없이 그냥 하늘로 가고 싶다. 많이 먹으면 무거워 잘 날지 못할지도 모르니 말이다. 마지막에도 웃고 싶을 뿐이다. /노병철 수필가

2025-06-12

軍에 군기가 없다면

군인이란 국가와 국민을 보호하기 위해 설립된 부대조직의 일원으로 이들은 전투에 필요한 장비와 기술을 갖추고 항상 전쟁에 대비하는 집단이다. 중국 고사에 등장하는 침과대적(枕戈待敵)은 군인들이 창을 베개 삼아 자면서 적과 대처하는 모습을 표현한 한자 말이다. 밤낮없이 전투태세를 갖추고 있는 군인이야말로 진정한 국민의 군인이다. 이처럼 군은 언제 어느 때나 경계 태세를 게을리 할 수 없고, 전쟁이 나면 목숨도 기꺼이 바쳐야 군인답다 할 것이다. 백제 계백장군의 황산벌 전쟁은 전투에서 승리한 나당연합군의 위력보다는 나라의 존망을 걸고 끝까지 목숨으로 항전한 계백과 그의 부하들의 얘기가 훨씬 감동적이다. 군인정신은 전쟁의 승패를 좌우하는 필수 요소임으로 군에서는 군인정신을 최고의 덕목으로 삼는다. 군인 복무 규율에도 군인정신은 임전무퇴의 기상과 죽음을 무릅 쓴 숭고한 애국애족 정신이라 한다. 군대의 명령은 태산과 같이 무겁다는 말은 군인정신의 중요함을 가르치는 교훈이다. 군의 기강을 이르는 군기(軍紀)는 상명하복의 지휘체제를 유지하는 규율이다. 지금은 군부대도 민주화 바람의 영향을 받아 과거 같은 살벌한 군기는 없겠지만 그래도 군은 군기의 엄격함이 있어야 기강이 서는 법이다. 대구 50사단에서 황당한 총기 분실 사고가 발생했다. 신병이 소총을 렌터카에 두고 내린 사실이 사흘 뒤에 알려지고 그제서야 총기가 회수되는 위험천만한 일이 벌어진 것이다. 당연히 군의 기강 해이가 도마에 올랐다. 군에 군기가 없으면 오합지졸 소리밖에 듣지 못한다. /우정구(논설위원)

2025-06-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