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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시문학파가 토착방언으로 쓴 시의 성취

이상규 경북대 명예교수 전 국립국어원장 만해, 소월, 상화 등 20년대의 대표적인 근대 시인들은 그 시대의 다른 시인들에 비해 특별한 시적 성취를 이룩해 내었다고 평가된다. 그 이유로 시대 의식이 뛰어났다는 점과 토착어 지향의 시어를 사용한 것을 손꼽을 수 있다. 그들의 시작품은 서정성이나 시적 리듬을 살리기 위해 한자어를 피한 대신 토착어 지향을 뚜렷하게 드러내 주고 있다. 20년대 말에서 30년대에 걸쳐 우리는 새로운 시인들을 만나게 되는데 이들에게 있어서도 토착어 지향성은 한결 두드러졌고 시의 세련성은 배가되었다. 1930년에 발간된 순수시 동인지 ‘시문학’은 박용철을 비롯하여 김영랑, 정인보, 변영로, 신석정, 이하윤 등이 그 중심적인 작가였다. 그들은 새로운 시어의 연마와 세련된 시상으로 세칭 ‘기교파’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일군의 시인들이다. ‘시문학’파로 알려져 있는 시인들에게서 우리는 근대시의 세련미를 갖춘 시들을 만나게 된다. 특히 김영랑이나 박용철은 순수한 토착어를 효율적으로 활용하여 토속의 울림을 가진 리듬을 확보했다. ‘시문학’의 동인이었던 정지용은 현대시문학사에 매우 눈부신 시의 자취를 남겼다. 1927년에 발표된 정지용의 대표작 ‘향수’는 뛰어난 서정적 시와 노래로서 우리의 눈과 귀에 매우 익다. “넓은 벌 동쪽 끝으로/옛이야기 지줄대는 실개천이 회돌아 나가고/얼룩백이 황소가/해설피 금빛 게으른 울음을 우는 곳/-그곳이 참하 꿈엔들 잊힐리야.//질화로에 제가 식어지면/뷔인 밭에 봄바람 소리 말을 달리고/엷은 졸음에 겨운/늙으신 아버지가 짚벼개를 돋아 고이시는 곳/그곳이 참하 꿈엔들 잊힐리야.” 이 시에 나타나는 토착방언은 시인이 의도적으로 지향했던 고향의 그리움을 불러오는 수단이 될 뿐만 아니라 서정적 운율을 유효하게 맞출 수 있는 의도된 방식으로 채택되었다. 시에 등장하는 토착방언은 대부분의 우리나라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고향에 대한 추억과 신화에 대한 믿음을 환기시켜 준다. 어린 시절 자란 고향에 대한 그리움의 모티브가 방언으로 나타나 한결 강력한 호소력을 발휘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토착 방언은 본래 민중의 말이다. 또 외래어나 한자어처럼 어른들만의 말이 아니기 때문에 어른과 아이들이 공유하고 있는 말이다. 방언 시어는 잃어버린 낙원, 곧 고향에 깃들어 있던 말이기 때문에 시의 모티브와 각별한 조화를 이룬다. 고향의 재발견이 토착 방언의 발견으로 이어지고 그것이 다시 시인의 자기동질성으로 이어져 있다는 점에서 정지용은 우리 현대시문학사에서 소중하고 견고한 위치를 차지하게 된다. 정지용은 ‘문장’지의 시 추천위원으로 있으면서 1939년 박목월·조지훈·박두진 등의 청록파 시인을 발굴하여 등단시켰다. 이로써 30년대 순수 ‘시문학의 전통이 끊이지 않고 이어지게 되었다. 1936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벽(壁)’이라는 작품으로 등단한 미당 서정주의 토대를 마련해 준 것도 ‘시문학’ 동인들의 영향이었다. ‘시문학’파의 토착어 세련성에 대한 강력한 반발에서 시적 출발을 했다고 할 수 있는 미당 서정주조차도 처녀 시집 ‘화사집’에서는 가급적 한자어를 배제한 덕분에 한층 더 높은 시적 성취에 도달하였다. 서정주의 ‘자화상’이라는 시를 살펴보자. “애비는 종이었다. 밤이 깊어도 오지 않았다./파뿌리같이 늙은 할머니와 대추꽃이 한주 서 있을 뿐이었다./어매는 달을 두고 풋살구가 꼭 하나만 먹고 싶다 하였으나…./흙으로 바람벽한 호롱불 밑에 손톱이 깜한 에미의 아들/갑오년이라든가 바다에 나가서는 돌아오지 않는다 하는 외할아버지의 숱 많은 머리털과/그 크다란 눈이 나는 닮았다 한다.” 파격적인 호소력을 가진 ‘자화상’의 첫 부분이 이렇게 토착적 고유어로 조직되어 있음에 반해서 한자어를 의도적으로 무절제하게 사용하고 있는 ‘정오의 언덕에서’, ‘웅계’, ‘문’ 등의 작품은 오히려 시적 설득력을 잃고 있음이 역력해 보인다. 훌륭한 시는 시인의 작가 의식과 함께 고양된 감정의 통합된 산물이다. 시인의 몸에서 울려나오는 시어로 꾸려낸 텍스트가 청각과 시각의 공명을 일으키는 효율적인 수단임을 알 수 있다. 여기에서 시어로서의 방언의 효용성을 확인할 수가 있다. ‘시문학’파에서 ‘청록파’로 이어지는 서정의 시적 물결을 일으킨 일군의 근대 시인들에게 토착적인 방언은 시작(詩作)에 있어서 매우 소중한 재료였다.

2024-12-16

발칸반도 폭력의 뇌관, 한반도와 닮은 침략의 땅

인류 역사상 가장 비극의 땅으로 알려진 발칸반도는 이름만큼 수많은 침략자에 의해 짓밟힌 사연을 품고 있다. 마치 3천 번 이상 이민족 침략에 시달린 한반도와 매우 흡사하다. 아름답기 그지없는, 진정 하늘이 내린 경이의 풍광을 자랑하는 곳이면서 동시에 수많은 신화가 살아 숨 쉬는 발칸반도다. 유럽문화의 모태이자 신들이 지배했던 땅 그리스, 작지만 자존과 감성이 충만한 나라 슬로베니아, 선남선녀들이 에너지를 발산하는 크로아티아, 힘과 저력이 넘치는 잠재적 강국 세르비아, 세 민족이 한 나라로 살아가는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 자칭 로마인 영광을 간직한 루마니아, 늘 힘이 넘쳐 주체할 수 없었던 불가리아, 이탈리아어로 ‘검은 산’을 불리는 험난한 산악지형의 몬테네그로, 발칸반도에 슬라브족이 들어오기 훨씬 이전부터 터전을 닦았던 알바니아, 그리고 필자의 가슴에 감동과 분노를 동시에 심어주었던 코소보도 있다. 그 이면에는 ‘세계의 화약고’란 수식어가 붙은 팽팽한 긴장이 서린 지역이란 사실이 슬프게 했다. 천몇백 년을 이어온 폭력의 과거가 씨앗이 되어 또 다른 폭력의 줄기로 굳건하게 자라고, 끝나지 않는 분쟁의 촉수가 꿈틀거리며, 종교와 민족, 역사를 따라나선 질긴 인연, 문화와 인물이 뒤섞여 도무지 풀리지 않은 엉킨 실타래 같은 반도다. 일곱 개의 국경과 맞댄 채, 여섯의 공화국이, 다섯의 민족으로, 네 개의 언어와, 셋의 종교, 그리고 두 개의 문자로 뒤섞인 채 하나의 국가를 이룩했던 구유고슬라비아 휴면계좌가 폭력의 미련을 유혹하는 땅이다. 길 잃은 역사를 따라 과거를 잊지 말자고 사람 저마다의 가슴에 붉은 기운이 요동치는 기운서린 터다. 한반도 땅 2.5배, 산이 많은 녹색의 땅, 동양과 서양이 만나는 교차점, 고대 로마제국의 첫 침략의 대상이 되었던 땅, 달마티아, 일리리아, 트라키아, 불가리아, 헬라스 등 각각의 지역에 흩어져 살던 터전이다. 더 있다. 불안한 평화를 이어가는 현재 진행형의 분쟁지역, 너무 많은 억척의 사연을 생산해 돌이킬 수 없는 상처를 품은 채 오늘을 살아가는 사람들, 제국의 포화를 고스란히 견딘 질긴 민족들이 뒤엉킨 한을 품은 땅, 가장 민족적인 것이 가장 인간적이라고 철석같이 믿는 사람들, 작은 산줄기 좁은 물줄기에도 슬픔과 기쁨, 환희와 아픔이 교차하는 애환의 터전, 건물 외벽의 포탄 자국이 가슴에 납덩어리처럼 붙어버린 현실, 폭력을 좋아하진 않지만, 국가와 민족을 위해서라면 언제든지 응할 준비가 되어 있다는 민족, 순진한 사람을 선동해 민족이란 이름으로 살육을 정당화하게 만든 영웅이 누워있는 땅, 그런 까닭에 그 누구도 쉬이 해결의 열쇠를 쥘 엄두조차 내지 못하는…. 이 뿐일까? 가톨릭과 이슬람 종교분쟁의 뇌관이 여전히 작동하는 땅, 나락으로 떨어진 인격이 애국이란 이름으로 재포장 되는 곳, 이웃과의 갈등은 물론 같은 나라임에도 성격을 달리해 불운한 동거를 이어가는 이상한 나라가 있는 반도, 나의 신은 절대자요, 너의 신은 악이라는 이분법적 사고가 정당한 사회, 복수가 정의와 미덕으로 포장된 나라, 이웃과 원수를 사랑하라는 절대자의 말을 당당하게 무시하면서도 천국에 가려는 인간이 북적대는 곳, 그래도 희망이란 기름으로 번들번들 칠한 십자가가 도서관보다 많은 세상, 비장감이 억눌러 슬프면서 비통함을 상대방 응징의 꿈으로 대체시킨 사람이 살아가는 땅이다. 동방 페르시아제국의 질긴 욕망으로 인해 입은 상처, 알렉산드로스로 시작되는 폭력 미화는 비잔티움제국으로 이어지고, 로마의 땅이 되었다가, 같은 기독교도인 십자군의 약탈, 질풍노도 훈족의 발칸 유린에 이어 이슬람 제국의 침탈, 몽골군 파죽지세의 잔혹사, 전대미문 사마르칸트 티무르의 이유 없는 살육전, 노르만족의 민족이동에는 필연적으로 따르는 폭력, 나폴레옹도 이 대열에 빠질 수 없다. 그리고 두 차례의 세계대전을 겪으면서 어제의 적이 오늘의 동지가 되고, 오늘의 동지가 같은 하늘 아래서 결코 함께할 수 없는 원수로 돌변하는 상황은 이들 표현대로 진정 신의 뜻이었다. 크로아티아 민족주의, 대세르비아주의, 대슬라브주의, 그리고 어떻게든 살아남으려는 소수와 인간의 욕망이 부추긴 폭거는 정의와 부정의가 아니라 피아구분조차 할 수 없었다. 20세기에 일어난 인종청소, 민족주의 이름으로 행해진 살육의 드라마는 21세기에 와서도 그 징후는 잠들 기미조차 없다. “집에 불이 나기 전에 굴뚝을 수리하고 아궁이를 고친 사람의 공로는 아무도 알아주는 이 없지만, 불 난 뒤에 수염을 거슬려가며 옷섶을 태우면서 뛰어다닌 사람의 공로만을 널리 인정하지 말라” 묵자의 말이다. 전쟁으로 공을 세운 사람만 떠받들지 말고, 평화의 시대를 위해서 일하는 사람도 가슴에 새기란 뜻이다. /박필우 스토리텔링 작가

2024-12-16

연어 이야기

매년 10월에서 11월이면 북태평양을 회유하던 연어 떼가 산란을 위해 강원도 양양 남대천, 삼척 오십천 등으로 돌아온다. 10월 1일부터 10일까지 단 열흘간 내수면에서의 연어 포획이 허용되는데, 이 기간 동안 남대천에서는 연어를 만나려는 플라이낚시인들과 루어낚시인들이 강물에 몸을 담근 채 길게 늘어선 모습을 볼 수 있기도 하다. 인터넷에 올라온 연어 낚시 사진을 보면서 연어를 다룬 두 문학 작품을 떠올렸다. 고형렬의 에세이 ‘은빛 물고기’와 안도현의 ‘연어‘가 그것이다. 두 작품 모두 시인이 쓴 산문으로 연어의 생애를 소재로 삼았다는 공통점이 있다. 연어는 모천회귀(母川回歸) 한다. 하천에서 부화한 물고기가 바다로 가서 성어로 자란 다음 산란을 하러 자기가 태어난 강으로 회귀하는 현상을 말한다. 모천(母川)은 말 그대로 ‘어머니 강’이라는 뜻이다. 연어는 먼 바다로 떠났다가 자신이 태어난 강으로 돌아와서 산란 후 죽는다. 남대천, 오십천뿐만 아니라 최근엔 울산 태화강, 낙동강 하구에서도 연어가 발견됐는데, 낙동강에는 30여년 만에 연어가 나타난 것이라고 한다. ‘은빛 물고기’는 시인인 저자가 “남대천에 연어가 돌아왔다”는 신문 기사 한 토막을 읽고는 10년 넘게 연어의 일생을 추적하며 쓴 장편 산문이다. 장편 산문이라는 겉 형식은 물론 한 편의 문학작품 안에 픽션과 논픽션이 끊임없이 교차하면서 시적 은유와 잠언, 소설적 서사, 자전적 에세이, 자연과학적 사실이 공존하는 속 구조는 무척 보기 드문 것이다. 강원도 양양에서부터 캄차카반도, 아무르 강, 오호츠크 해, 베링 해로 이어지는 대자연에 대한 시적 묘사, 탄생과 성장, 죽음 등 인간의 실존적 고뇌에 대한 깊은 성찰의 언어는 우리말이 지닌 아름다움의 놀라운 진경을 보여준다. ‘연어‘ 역시 시인인 저자가 쓴 작품으로, 한 낚시전문잡지에 연어에 대한 글을 기고한 것이 계기가 되어 집필한 소설이다. ‘어른을 위한 동화’라는 부제가 붙었는데, ‘어른’과 ‘동화’가 서로 충돌한다는 점에서 이 작품은 동화적 내용을 지닌 소설로 보는 편이 마땅하다. 연어를 의인화하여 사랑, 연민, 외로움, 슬픔, 자기존재의 주체성 모색 등 인간 보편의 감정과 존재론적 성찰을 담아낸 ’연어‘는 1996년 초판 발행 후 지금껏 무려 100만부가 팔린 스테디셀러다. 시적인 문체와 연어의 생태에 기초한 간결하면서도 속도감 있는 스토리 전개로 대중 독자의 사랑을 받았다. 지난 2019년, 러시아 아무르강으로 ‘타이멘’이라는 물고기를 잡으러 2주 동안 낚시를 다녀왔다. 하바롭스크에서 차로 비포장도로를 10시간, 보트로 물길을 2시간 달려 도착한 아무르강 정글에서 러시아 낚시꾼들과 생활하면서 ‘지구상 모든 연어의 아버지’라는, 현지인들에게 신령한 물고기로 여겨지는 타이멘 낚시에 도전했고, 성공했다. 내 생애 첫 번째 타이멘은 1m 10cm였는데, 그 녀석을 품에 안고서는 감격스러워 눈물을 흘렸다. 나를 만나기 위해 이 친구가 강물처럼 노을처럼 수천만 년을 헤엄쳐 왔다는 생각이 들어 뭉클했다. 이병철 문학평론가이자 시인. 낚시와 야구 등 활동적인 스포츠도 좋아하며,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그때 2주간 전화, 인터넷 등 문명과 완전히 차단된 정글에서 지낸 시간이 마치 한 평생 같았다. 그런데 돌아와 보니 문명 세계에서 2주는 그저 찰나에 불과했다. 내가 살던 세상은 여전히 분주하고, 거짓말처럼 아무 일도 없고, 가족들은 전화를 심드렁하게 받고, 공백을 염려한 일터는 나 없이도 잘 돌아가고…. 내게는 까마득하고 느리게만 흐르던 시간이 문명 세계에서는 쏜살 같이 흐른 것이다. 시간은 절대적 개념이 아니라 상대적 개념이고, 모험의 세계와 일상의 세계에는 서로 다른 중력이 작용한다는 걸 알았다. ‘그래, 나는 낚시를 다녀온 게 아니라 아무르강이라는 영원의 풍경, 저 너머의 한 세상을 살다 왔구나’ 낚시를 다녀와서는 잠꼬대 같은 혼잣말을 했던 기억이 난다. 연어의 생태를 다룬 문학 작품이 또 나온다면 저자는 아마 내가 될 것이다. 치어일 때 자신이 태어난 강을 떠나 드넓은 대양에서 성어로 성장하여 일생의 대부분을 보낸 뒤 산란을 위해 모천으로 돌아오는 연어의 생태에 관해서는 아직도 다 밝혀지지 않은 미지의 영역이 많다. 미지란 늘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므로, 연어의 탄생부터 이동, 그리고 모천회귀와 산란, 죽음으로 이어지는 신비한 생태적 습성은 상상력을 자극하는 훌륭한 문학적 소재이기 때문이다.

2024-12-16

어둠을 밝히는 사람들

나약한 인간으로 놓여 무엇을 읽고 쓰고... /언스플래쉬 고통은 묵히면 묵힐수록 그 크기가 배가 된다. 하루에도 몇 번씩 먹기 싫은 알약을 억지로 삼키는 것처럼 몸과 마음 모두가 불편한 그 감각이 너무나도 생생했다. 그리고 그 고통이 시간이 지나면서 결국 나를 지배했고 그것이 결국 죄책감이란 이름을 가진 불편함이란 걸 너무나 잘 알았다. 문제를 인식하고 정면으로 돌파하는 일은 참 어렵다. 마음이 불편하고 신경을 쓰는 것이 괴롭고 어느 한쪽을 선택하여 남는 일들이 혹여나 후회가 되지 않을까 노심초사해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밤마다 눈을 감고 생각을 하지 않기 위해 애썼으나 쉽지 않았다. 무언가 써야만 할 것 같은 데 아무것도 쓰여지지 않을 때 나의 연약함이 드러났고 그 연약함 속에서 무력하게 몸을 묻으며 나날이 무언가 잘못되고 있단 감각을 도무지 지울 수 없었다. 씻겨지지 않는 오랜 얼룩, 피부 깊숙이 자리 잡은 점처럼 고통에도 무뎌지지만 어느날 갑자기 아무런 이유도 없이 결심은 선다. 그 근처를 배회하고 있을 때쯤 뒷목이 뻐근해지기 시작하더니 일종의 신호처럼 확고한 결심이 들기 시작했다. 그 길로 버스를 탔고 버스는 중간에 서울대교에 진입하진 못했지만 비교적 사람이 적은 한적한 곳에 나를 내려주었다. 이 길로 쭉 가면 서울대교를 건널 수 있을 것이란 버스 기사의 말을 되뇌이며 이미 대교를 빠져나오는 수많은 인파를 거슬러 나는 여의도로 향했다. 그곳은 축제 분위기였다. 깃발이 나부끼고 형형색색의 조명은 어둠을 밝히며 빠르게 흔들렸다. 누군가는 아이돌 응원봉을 흔들며 노래를 불렀고, 흘러나오는 최신 유행곡에 맞추어 춤을 추는 이들도 있었다. 깃발을 흔드는 사람, 그 뒤를 따라가는 사람, 셀카를 찍는 가족, 질서 유지하는 사람들, 쓰레기를 아무렇지 않게 땅에 버리는 사람, 그리고 그 뒤를 따라가 쓰레기를 주워 한 곳에 차곡차곡 모으는 사람들 등. 인간이라는 모습으로 서로가 서로에게 영향을 미치는 무리 속에서 나는 얼어붙은 몸과 가빠지는 호흡을 붙잡으려 애썼고, 그때 불현 듯 한강 작가의 노벨상 수상 소감을 떠올렸다. 우리가 태어난 이유, 고통과 사랑이 존재하는 이유, 수천 년 동안 문학이 던져온 질문이자 현재까지도 계속되는 그 질문과 수많은 의미들. 나는 어떤 언어를 쓰고 상상하며 세계와 연결되고 있는지. 나아가 나는 이 세계 속에서 어떤 나약한 인간으로 놓여 무엇을 읽고 쓰고 있는지. 가파르게 오르던 호흡을 잠잠히 누르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녀가 8살 때 처마 밑에 비를 피하며 다른 사람을 보았고 또 다른 나를 보며 연결됨을 느꼈다면, 근래의 나는 그 환함 속에서 나와 같은 얼굴을 한 사람들을 발견할 수 있었고, 같은 노래를 들으며 연결되고 있음을 느꼈다. 이어 필연적으로 문학을 읽고 쓰는 작업은 생명을 파괴하는 모든 행위에 반대되는 위치에 서 있다는 그녀의 음성을 거듭 떠올리며 무엇을 위해 읽고 어떤 것에 시선을 맞추어야 하는지 미지의 길을 밝히는 작은 호롱불이 켜지는 장면을 포착했다. 다시 집으로 가기 위해 돌아선 길, 수많은 인파 탓에 버스 정류장까지 걸어가는 길이 꽉 막혀 빠르게 걸을 수 없었다, 아주 천천히 앞사람의 보폭에 맞추어 걷고,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느릿하게 집으로 향해 걸어왔다. 윤여진 2018년 매일신문 신춘문예 시 부문에 당선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현재보다 미래가 기대되는 젊은 작가. 집으로 돌아와 깨끗한 물로 씻고 훈훈한 공기로 몸을 덥히며, 내 등 뒤를 밝히던 수많은 조명들을 떠올렸다. 뒤에서 길을 밝히던 색색의 응원봉들. 누군가가 뒤따라오며 그 응원봉을 흔들었는진 알 순 없지만, 불명확했던 모든 불안과 일종의 죄책감 같은 것들이 선명해지는 동시에 조금씩 소멸하는 느낌이 들었다. 다행이었다. 생각을 마치자 근래 극도로 높아져갔던 초조함을 잠재울 수 있었다. 18살, 점심시간마다 도서관 문학 코너 책장에 숨던 그때를 기억한다. 활자 속에 있으면 현재의 고통이 조금이나마 물러가는 것 같아 계속해서 손이 가는 대로 책 속에 고개를 묻던 그때. 아무도 나를 알아채지 못하고 스쳐지나가던 그 때에, 책장 맨 아래에 꽂혀 있던 소년이 온다를 기억한다. 그때의 나를 거울로 자세히 살피지 않아 어떤 모습인진 영영 알 순 없으나 환희와 열망과 결이 다른 슬픔에 사로잡혔던 감각은 생생히 기억한다. 한 사람이 가진 문을 두드려 그 속을 기어코 들어가 사건과 사람을 이해하는 일은 내가 문학을 택한 이유인 동시에 계속해서 살아가게 하는 원동력이었음을. 아주 오랜 시간이 지나서야 다시금 떠올려보는 감각이었다.

2024-12-16

잘못된 한 사람을 따라가면 미래가 없다

김진국 고문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이 14일 국회를 통과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에 이어 보수 대통령이 잇달아 탄핵 심판을 받는다. 보수 유권자로서는 기가 막힐 일이다. 믿고 뽑아 놓았더니 보수 세력을 파멸의 위기로 몰아넣었다. 이러다 차기는커녕 차차기도 기대를 접어야 할 판이다. 박 전 대통령은 가까운 사람을 너무 믿은 탓이다. 직접 돈을 착복한 것은 아니다. 그런데 윤 대통령은 본인이 자초했다. 비상계엄 상황을 만들어 선포했다. 법에 정해진 요건을 충족하지 못했다. 계엄을 해제하지 못하도록 국회를 폐쇄하려 했다. 국회의원을 끌어내고, 정치인들을 감금하라고 지시했다는 증언이 나왔다. 조국 전 의원은 12일 대법원에서 징역 2년을 확정받았다. 가만히 있었으면 이재명 민주당 대표의 사법 리스크도 심각한 상태다. 선거법 위반 사건 1심에서는 10년 동안 공직선거에 나서지 못하는 ‘1년 형’을 선고받았다. 재판이 줄줄이 이어진다. 그런데 윤 대통령이 비상계엄이라는 엉뚱한 일을 벌여 모든 걸 망치는 것 아니냐고 걱정하는 보수인사도 있다. 대통령 선거가 끝난 뒤 미국 검찰은 트럼프에 대한 기소를 모두 취소했다. 이런 큰일을 저질러놓고도 반성하지 않는다. 평균적인 국민 정서와는 공감하지 못한다. 지난주 한국갤럽 조사에서 윤 대통령 지지도는 11%였다. 85%는 잘못하고 있다고 답했다. 보수 세력의 기반인 대구·경북만 놓고 봐도 지지도가 16%에 불과하다. 비상계엄이 내란이라는 의견이 71%, 탄핵하라는 응답도 75%였다. 대구·경북에서도 62%가 탄핵에 찬성했다.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 홈페이지 참조) 그런데도 윤 대통령은 12일 담화에서 하야(下野)는 없다며, 차라리 탄핵하라고 큰소리쳤다. 그러면서 “마지막 순간까지 국민 여러분과 함께 싸우겠다”라고 말했다. 국민의 85%가 잘못한다고 답하는데, 탄핵으로 대통령 자리에서 끌어내리라고 요구하는데, 누구와 싸우겠다는 건가. 윤 대통령은 14일 저녁 국회에서 탄핵소추안이 통과된 뒤에도 “결코 포기하지 않겠다”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정치적 사망 선고를 받고도 소송으로 이기려는 생각이 기가 막힌다. 개인적인 망상을 위해 보수 세력을 궤멸시키려는 꼴이다. 그런데도 이에 동조하고, 부추기는 정치인들은 또 뭔가. 목적이 옳으면 어떤 수단을 써도 용납된다고 생각하는 정치인이 많다. 믿지 않아도 그렇게 합리화한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참모였던 엄창록 씨를 모델로 한 ‘킹메이커’란 영화가 그런 내용이다. 잘못된 수단을 정당화할 만큼 대단한 목적이 도대체 무엇인가. 자기가 권력을 쥐는 것 아닌가. 윤 대통령은 반헌법적 친위 쿠데타로 무엇을 하려 했나. 선거를 하면 국민이 표를 줬을까. 선거가 없는 정치체제를 국민이 용납할까. 철부지 같은 망상이다. 독수독과(毒樹毒果) 이론이 있다. 판사들은 확실한 증거라도 그것을 얻는 과정이 잘못됐으면 인정하지 않는다. 목적도 중요하지만, 과정이 더 중요하다는 말이다. 민주주의도 그렇다. 번거롭고 불편해도 민주적 절차를 지키지 않으면 쉽게 부서진다. 법조용어에 ‘별건(別件)수사’라는 말도 있다. 혐의를 입증하기 어려우면 수사 과정에서 알게 된 다른 혐의를 이용해 피의자를 압박하는 수사방식이다. 윤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합리화하는 논리가 그런 식이다. 그는 ‘자유민주주의와 법치’를 세우려 했다고 주장했다. 자유민주주의야말로 법을 존중해야 한다. 상대를 인정하고, 참고, 대화해야 한다. 그는 탄핵소추 뒤 담화에서 “숙의와 배려의 정치로 바뀌어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헛웃음이 났다. 그가 취임 초, 아니 그 뒤 어느 한순간이라도 ‘숙의와 배려의 정치’를 했다면 사태가 이 지경이 되지는 않았다. 그는 야당 정치인은 물론 여당 정치인도 피의자 보듯 했다. 윤 대통령이 검사 시절 “사람에게 충성하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한 사람에게 충성하고, 그 외 인물을 논 속의 피 취급해 모두 뽑아버리면 미래가 없다. 윤 대통령이 갑자기 보수정당 후보가 된 것은 후보감이 없었기 때문이다. 보수 세력은 또 그 전철을 밟고 있다. 잘못된 길을 가는 한 사람에게 끌려다니면 미래가 없다. 김진국 △1959년 11월 30일 경남 밀양 출생 △서울대학교 정치학 학사 △현)경북매일신문 고문 △중앙일보 대기자, 중앙일보 논설주간, 제15대 관훈클럽정신영기금 이사장,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부회장 역임

2024-12-15

‘이성을 잃은 권력’의 비극

변창구 대구가톨릭대 명예교수·정치학 한밤중에 느닷없이 선포된 비상계엄은 ‘이성을 잃은 권력’의 자폭이었다. 기회 있을 때마다 ‘자유’와 ‘민주주의’를 지키겠다고 역설한 바로 그 대통령이 ‘자유’와 ‘민주주의’를 짓밟았다. 정치적 실패와 각종 의혹을 돌파하기 위한 전술이었겠지만, 어리석은 오판으로 자기무덤을 팠다. 제왕적 권력이 이성을 잃으면 자신은 물론, 국가적 불행을 초래한다. 민의의 전당인 국회를 “범죄자 집단의 소굴”로 규정하고 의원들을 체포하려 했다. 국민으로부터 위임받은 권력으로 국민에게 총부리를 겨눈 것이나 다름없다. ‘자해공갈소동’을 지켜보아야 했던 국민들의 심경은 참담했다. 국무회의에서 장관들의 반대와 우려도 무시하고 밀어붙였다니 기가 막힌다. 오죽하면 여당대표까지 나서서 계엄을 막겠다고 국회로 뛰어갔겠는가. 국회에서 탄핵소추안이 통과됨으로써 사실상 정치생명이 끝난 대통령은 자업자득(自業自得)이지만, 그로 인한 정치적 혼란이 문제다. 야당은 이재명의 사법리스크를 돌파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로 판단하여 여당에 대한 정치공세를 강화하는 한편, 헌법재판소의 최종판결에 대비하여 집권을 위한 정치적 환경조성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반면 수세에 몰린 여당은 이재명의 2심 및 대법원 판결이 조속히 나오기를 기대하고 있을 뿐, 대통령의 직무정지에 따른 대행체제에서 국정을 효율적으로 뒷받침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이처럼 여야는 서로 다른 정치셈법으로 탄핵정국을 정략적으로 이용하려 하지만, 국민이 동의하지 않는 한 그 어떠한 술수도 성공할 수 없다. 특히 본의 아니게 죄인이 되어버린 여당은 정치적 위기일수록 꼼수를 버리고 정도(正道)를 가야 민심을 얻고 미래를 기약할 수 있다. 향후 여당의 운명은 민심을 따르느냐 아니면 탄핵이 소추된 대통령을 따르느냐에 달려 있다. 비상계엄으로 내란혐의를 받아 수사선상에 있는 대통령과 결별하지 않는다면 분노한 민심이 용서하겠는가. 어려운 때일수록 ‘생즉사(生卽死)’이고 ‘사즉생(死卽生)’임을 명심해야 한다. 그럼에도 벼랑 끝에 서 있는 여당이 반성은커녕 친윤과 친한, 탄핵 찬성파와 반대파로 나뉘어 싸우고 있으니 어이가 없다. 대권은 이미 물 건너갔으니 당권이나 차지하고 금배지나 한 번 더 달아보겠다는 속셈인가. 성난 민심을 겸허히 받들 생각은 하지 않고 권력에 줄서서 잔머리 굴리면 보수는 궤멸이다. 대통령이 이성을 잃고 비상계엄을 획책하는 동안 아무것도 모른 체 권력만 쫓아다닌 허수아비들이 아직도 정신 못 차리고 다투는 꼴이 참으로 한심하다. 박근혜의 탄핵사가 증명하고 있듯이 ‘분당(分黨)은 공멸’이라는 사실을 벌써 잊었다는 말인가. 물론 정치공세의 고삐를 쥔 야당의 책임도 매우 무겁다. 여야 간 극한의 정쟁이 오늘의 비극을 초래했다는 사실은 야당도 부정하지는 못할 것이다. 민주주의에서 ‘여당의 불행이 야당의 행복’이 될 수는 없으며, 윤석열에 대한 분노가 이재명에 대한 면죄부를 의미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집행권력의 독선이 ‘비상계엄이라는 괴물’을 낳았듯이, 입법권력의 힘자랑이 탄핵정국에서도 계속되면 ‘무정부상태라는 괴물’을 낳게 될 것이다. 책임 있는 야당이라면 국가위기를 정략적으로 이용해서는 안 되며 민생 안정에 협력해야 한다. 권력은 마약처럼 중독성이 강하고 위험한 괴물이다. 괴물이 된 권력과 싸우다보면 자신도 모르게 어느새 괴물이 된다. 정치인이 권력정치에서 괴물이 되지 않으려면 ‘자신에 대한 비판적 성찰’이 일상화되어야 한다.

2024-12-15

고전에 답이 있다!

▲ 김규종경북대 교수·인문대학 살았다. 먹고 마시고 잠자는 것도, 생각하고 글 쓰고 사람 만나는 일도 허청허청하기만 했다. 마음속에서는 한 가지 물음만 얼굴을 내미는 것이다. “이게 뭐지?!” 2025년을 코앞에 둔 시점에 터져 나온 ‘비상계엄’이 내 삶을 쑥대밭으로 만들어버렸다. 경북매일신문에 연재하는 아주 짧은 글 ‘파안재에서’를 서둘러 쓰고, ‘청도 인문학’ 강의자료를 블로그에 올린 게 정신 활동의 전모(全貌)다. 문자 그대로 생물적 대사(代謝)활동을 했을 뿐, 살아있는 인간으로 존재했다고 보기 어려울 정도로 피폐한 열이틀의 시간이 지나간다. 한강 문학에 관한 스웨덴 한림원 종신회원 엘렌 맛손의 강평을 들은 것이 고작이다. 무엇이 문제일까, 하는 생각이 꼬리를 물었다. 나는 그것을 불가 (佛家)에서 가르치는 탐진치(貪瞋痴) 삼독(三毒)에서 찾는다. 탐욕, 분노, 어리석음에서 발원하는 세 가지 극독(劇毒)이 사태의 핵심에 자리한다. 생명 활동 과정에서 존재가 대면하는 탐진치 삼독을 숙고하지 않으면, 누구도 피해갈 수 없는 처참한 지경에 이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탐욕은 무엇인가를 향한 억제할 수 없는 지극한 갈망에 뿌리를 대고 있다. 탐욕은 정신적·물질적·영적(靈的)인 영역에 모두 적용된다. 억제할 수 없는 지극한 탐욕은 분노로 전화(轉化)된다. 얻고자 하는 바를 관철하지 못하면, 인간은 분노의 노예로 전락하기 쉽기 때문이다. 그것은 건강한 판단력 상실에 따른 추악한 어리석음으로 귀결(歸結)된다. “파렴치한 종북 반국가세력을 일거에 척결하기 위하여 비상계엄을 선포한다”는 말에 나는 경악했다. 세계 전역에 문화와 문학과 예술의 첨병으로 ‘한류’를 전파하는 21세기 나의 조국에 종북세력이 있는가?! 자신과 생각이 다른 사람과 집단은 ‘반국가세력’인가?! 권력자의 수사(修辭)와 명분이 아무리 엄중해도 ‘일거에 척결’하겠다는 발상은 또 얼마나 반민주적인가?! 그와 그들은 거기 멈추지 않았다. 계엄 사령관이 발표한 ‘포고령’의 처단한다는 단어는 너무도 끔찍하게 다가온다. 본업에 복귀하지 않는 의료인과 포고령 위반자를 계엄법 제14조에 의하여 처단하겠다는 조항은 얼마나 악랄한가?! 영장 없이 체포, 구금, 압수수색에 근거하여 위반자들을 처단하겠다는 악마 같은 ‘포고령’은 얼마나 무섭고 두려운 것인가?! 권력자와 그에 기생(寄生)한 부역자들의 행악질은 낱낱이 밝혀지겠지만, 그것은 1980년 5월 17일 희대(稀代)의 학살자 전두환이 내건 비상계엄과 전혀 다르지 않다. 광주 시민들의 민주적인 저항을 무한폭력으로 짓밟은 그들의 잔인성을 우리는 한강의 ‘소년이 온다’에서 확인한다. 왜 그들은 멈추지 않았을까?! 그것은 그들의 부패·무능·타락·패거리주의에 기초한다. 노자(老子)는 “만족을 알면 욕됨이 없고, 멈출 줄 알면 위태롭지 않아서 오래 갈 수 있다”고 했다. 최소한의 교양과 독서도 없는 자의 무지와 부패, 무능과 타락이 탄핵으로 이어진 것이다. 이번 사태가 우리 어린것들의 평화롭고 행복한 미래를 위한 반면교사가 되었으면 한다.

2024-12-15

미국식 네포티즘

우정구 논설위원 네포티즘(Nepotism)은 권력자가 가족이나 친척에게 관직이나 지위 등을 주는 것을 이르는 족벌주의 정치를 이르는 말이다. 조카(nephew)를 뜻하는 라틴어 네포스(nepos)에서 나온 말. 15∼16세기 교황들이 자신의 사생아를 조카로 위장시켜 특혜를 준 관행에서 유래된 말이라 한다. 최근 재능도 없으면서 스타 부모의 후광으로 인기와 돈을 버는 스타 부부 2세를 두고 할리우드에서는 ‘네포베이비’라는 비아냥이 유행한다고 한다. 미국은 우리와 달리 패밀리 정치가 공공연하게 이뤄지나 언론이나 국민은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경향이 있다. 존 F. 케네디가는 영향력 있는 정치 가문이다. 케네디 대통령은 그의 재임 시 동생 로버트 케네디를 35세 약관의 나이에 법무부 장관에 임명해 논란을 일으켰다. 그것이 계기가 돼 네포티즘 금지법이 만들어졌다. 그러나 부부가 잇따라 대선후보에 나왔던 클린턴 가문이나 부자가 대통령에 오른 부시 가문 등을 보면 미국의 네포티즘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도 네포티즘 논란에 자유롭지 않다. 그는 1기 집권 때 큰딸 이방카를 백악관 고문으로 임명한 바 있다. 지난 10일에는 장남 트럼프 주니어의 약혼자 킴벌리 길포일을 그리스 주재 미국대사로 지명했다. 그는 이보다 앞서 장녀 이방카의 시아버지를 프랑스 대사로, 둘째 딸의 시아버지는 아랍중동 문제담당 고문으로 지명했다. 외신에 의하면 트럼프 2기 인선의 특징으로 충성파 기용을 들었다. 트럼프 당선인이 특혜 논란에도 믿을 수 있는 패밀리 정치를 선택한 것도 충성심 때문인지 모른다. 우리 사회와 달리 미국사회에서 용인되는 네포티즘이 온전할 것인지는 더 지켜볼 대목이다. /우정구(논설위원)

2024-12-15

심상사성(心想事成)의 기적, 명량해전

장광일포스코 인재창조원 교수·컨설턴트 ‘청룡의 해’ 정기를 받은 지 엊그제 같은데 벌써 12월 중순이다. 필자는 올해를 뒤돌아보며 내년 ‘청사(靑蛇)의 해’를 맞아 가족과 함께 전라도로 여행을 떠났다. 간 곳은 여수부터 진도까지 남쪽 지역이며, 주로 이순신 장군의 유적지가 있는 곳이다. 이번 여행은 장군의 리더십도 다시 한번 가슴에 새기고, 그의 지혜도 배우며 힐링도 할 수 있는 좋은 추억이었다. 특히 진도 하면 모두가 잘 알고 있는 명량해전이 있었던 곳이다. 이 해전은 1597년 9월 16일 정유재란 초기에 있었던 해전으로 이순신 장군 휘하 조선 수군 12척으로 일본 수군 333척을 물리친 세계에서 가장 빛나는 최고의 해전이다. 적장의 간계로 장군을 투옥한 선조, 장군을 처형하려는 조정 대신들, 끝없이 장군을 괴롭히는 원균, 어머니의 별세 소식, 5개월간의 수감생활로 온전치 못한 몸, 칠전량 전투로 궤멸한 상태의 조선군과 배, 두려움에 떨고 있는 장수들, 1%의 가능성도 보이지 않는 최악의 조건을 딛고 대승을 거둔 비결은 과연 무엇일까? 정리해 본다. 어란포에서 한 어부가 왜적이 왔다는 헛소문을 퍼트리자 목을 베어 효시함으로 유언비어의 차단과 민심안정을 도모한 일, 명량해전 전 어란포 해전(8월 28일), 벽파진 해전(9월 7일)의 승리로 분위기 반전은 물론 장졸과의 신뢰를 회복한 일, 울돌목의 조수(潮水)의 흐름을 관찰하여 울돌목을 마주하는 최적의 지리(地利) 선정하고, 최선의 썰물 시간인 천시(天時)를 이용한 일, “병법에 이르기를 반드시 죽고자 하면 살고, 살고자 하면 죽는다.” (필사즉생, 필생즉사), “한 사람이 길목을 잘 지키면 천 명의 적도 두렵게 할 수 있다.” (일부강경 족구천부), 라는 말로 설득하여 전군을 통합한 일, 모두가 두려워 전선에서 2마장(약 800m) 밖으로 물러났을 때, 그의 배는 홀로 앞으로 돌진하여 현자와 총통으로 싸웠던 장군의 솔선수범이 비결이 아닐까 생각한다. 영국의 영웅 호레이쇼 넬슨은 “평생을 두고 경모(敬慕)하는 이는 서양에서는 네덜란드의 명장 미힐 더라위터르이며, 동양에서는 조선의 명장 이순신이다, 두 장수 중 갑으로 추천한다면 의심할 여지 없이 이순신 장군이다. 인격이나 창의적 천재성이나 도저히 그를 필적할 수는 없다”라고 하였다. 필자는 그곳에서 그를 기리며 ‘심상사성’이란 말을 다시 한번 가슴에 새기었다. 이 말을 풀어 쓰면 ‘마음에 생각한 것이 이루어진다.’라는 뜻으로 ‘간절히 바라고 생각하는 일이 실제로 이루어질 수 있다’라는 의미이다. 우리가 꿈꾸고 바라는 것을 이루기 위해서는 우선 마음속으로 깊이 새기고, 힘들어도 포기하지 않고 꾸준히 나아간다면 어느 순간 꿈이 현실이 되는 기적을 경험하게 된다는 것이다. 최악의 전투 조건에서 “마음에 간절히 원하고 바라면 반드시 이루어진다.”라는 심상사성의 절박함으로 전쟁을 기적처럼 대승으로 이끈 장군에게서, 기업도 이 말을 새겨, 갈수록 어려운 여건이지만, 다시 한번 도전적인 경영목표를 세우고, 힘든 과정을 이겨내어 원하는 바를 이루는 을사년이 되길 기대해 본다.

2024-12-15

천명을 유지하는 법

유영희 작가 지난주에 동양의 고전 ‘대학’ 15주 강의가 끝났다. ‘대학’이 편찬된 시기는 적어도 한나라 무제 때라고 하니 2천 년 동안 살아남은 책이라 쉽게 깎아내릴 것은 아니다. 더군다나 ‘대학’은 주자가 3강령, 8조목으로 체계화한 이래로 더 유명해졌고 유교가 지배하던 조선 사회에서 우리 문화에 깊이 뿌리박힌 데다 최근까지 중등 교육기관에서도 가르친 적이 있기 때문에 지금도 3강령 8조목을 알고 있는 사람이 많다. 그럼에도 현대 사회에서는 그 가치가 퇴색되고 있다. 그러나 이런 상황에서도 끝까지 참여한 수강생들은 ‘대학’을 처음 읽는다면서도 마지막에 가서는 이구동성으로 ‘대학’의 정치철학이 지금도 유효하다는 것을 발견하며 대학의 메시지에 감동했다. 그중에서 가장 수강생들의 마음을 끈 것은 ‘자신을 속이지 말라’와 ‘천명은 영원하지 않다’라는 두 문장이었다. ‘자신를 속이지 말라’는 것은 자신의 생각과 감정에 진실해지라는 말인데, 말은 쉬워도 자신의 진실함을 발견하고 인정하기가 생각보다 어렵다. 자기 분야에서 성공한 사람은 아마도 자신에게 진실할 줄을 알고 정성을 다했기 때문일 것이다. 수신서로도 유용하지만 자기계발서로도 손색이 없다. ‘천명은 영원하지 않다’는 문장은 요즘 상황과 맞물려 깊은 울림을 준 것 같다. 중국 고대 흥성했던 은나라의 예를 들며, 처음 탕왕이 은나라를 세울 때는 백성의 마음을 얻었기 때문인데, 주왕의 폭정으로 백성의 마음을 잃게 되자 주나라 무왕이 은나라를 무너뜨리고 주나라를 세웠다고 한다. 무왕이 백성의 마음을 대변했기 때문이다. 이렇게 천명은 어느 왕조에게 영원히 주어지지 않고 오직 백성에게 부모노릇을 제대로 했을 때만 주어진다고 강조한다. 통치자를 부모에 비유하는 것은 시대착오적이라고 무시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한편으로는 통치자의 의무를 강조하는 논리로 생각해도 손색이 없을 것 같다. 지금 기득권을 가진 사람들은 오직 자신의 사리사욕과 당리당략에만 몰두하고 있기 때문이다. 대통령 탄핵을 반대하는 사람들은 대통령의 계엄령 발동이 옳다고 생각해서가 아니라 당에서 배신자로 낙인찍히고 당이 무너질까봐 반대한다고 대놓고 말하고 있다. 물론, 지금의 야당도 이런 오류에서 자유로운 것은 아니다. 문재인 정부가 들어섰을 때 자신의 권력이 10년은 간다고 호언장담했던 인물도 있었다. 그런 오만으로 결국 정권이 바뀌었으니, 민심은 무섭도록 옳다. 대통령으로 선출되었을 때는 국민의 마음을 얻었기 때문이지만, 국민의 마음을 저버리면 천명은 언제든지 거두어진다. 이번 시민의 대통령 탄핵 시위는 천명이 거두어지는 과정이었다. 게다가 이번 시위는 놀랍도록 평화적이고 경쾌하게 진행되었다. 소녀시대의 ‘다시 만난 세상’ 같은 k-팝이 흘러나올 줄은 상상도 못했다. 예전에 화염병을 던지는 식의 비장하고 공격적인 시위 문화는 다 극복한 것만 같다. 잠시 혼란은 두 걸음을 내딛기 위한 한 걸음 후퇴일 뿐이다. 민심이 바로 천명이다. 이런 시민이 있는 한, 우리 사회는 건강하게 발전해갈 것이다.

2024-12-15

슬픔의 광야에서

이희정 시인 내가 화나고 성나는 날은 누군가 내 발등을 질겅질겅밟습니다 내가 위로받고 싶고 등을 기대고 싶은 날은 누군가 내 오른뺨과 왼뺨을 딱딱 때립니다 내가 지치고 곤고하고 쓸쓸한 날은 지난날 분별없이 뿌린 말의 씨앗, 정의 씨앗들이 크고 작은 비수가 되어 내 가슴에 꽂힙니다 오 하느님, 말을 제대로 건사하길 정을 제대로 바로잡기란 철없는 마흔에 얼마나 무거운 멍에인지요 나는 내 마음에 포르말린을 뿌릴 수는 없으므로 나는 내 따뜻한 피에 옥시풀을 섞을 수는 없으므로 나는 내 오관에 유한락스를 풀어 용량이 큰 미련과 정을 헹굴 수는 더욱 없으므로 어눌한 상처들이 덧난다 해도 덧난 상처들로 슬픔의 광야에 이른다 해도, 부처님이 될 수 없는 내 사지에 돌을 눌러둘 수는 없습니다 ―고정희 ‘무너지는 것들 옆에서’ 전문 (‘아름다운 사람 하나’, 문학동네) 역사는 반복되기도 한다. 우리는‘역사를’ 배울 것이 아니라 ‘역사에서’배워야 한다. 시간적으로나 공간적으로 반복될 때 생겨나는 것은 관계의 성질이다. 그러니까 복간본으로 만나는 고정희 시인의 숫자는 기수가 아니라 서수다. 반복되는 대비항들은 서로 대등하지 않다. 처음의 선행이 없었다면 복간은 개진되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복간이 부가적이라고 할 수 없다. 오히려 고정희 시인에게서 중요한 것은 반복성인지 모른다. 반복 속에는 그리움의 내성이 있다. 이 시집의 서문에서 그리움의 마음을‘I Miss You’라고 한다면‘내게서 당신이 빠져 있기(Miss) 때문에 충분한 존재가 될 수 없다’라는 소설가 쓰시마 유코의 아름다운 해석을 얹은 점은 이채롭다. 그렇다. 그녀에게 시는, 그 깎아지른 벼랑과 같은 생은, 무너지는 것들에 대해 혼신의 영혼을 바친 운명이었는지 모른다. 1948년 해남에서 태어나 1991년 지리산 등반 중 실족사로 43년의 생을 마감한 고정희 시인을 하나의 언어로 단정하기는 어렵다. 여성주의, 탈식민주의, 민중 의식, 그리고 장르의 실험, 기독교 의식 등 다양한 관점에서 시인의 장력을 가늠할 수 있다. 1980년대 시인으로 수렴되는 화자는 자신의 40대를 바라보고 있다. 더욱이 “화나고 성나는 날 / 위로받고 기대고 싶은 날 / 질겅질겅 밟히고 뺨을 딱딱 맞”는 화자는 오른뺨에서 왼뺨을 내주고 화를 내는 대신 발등을 내어준다. 시인의 종교적 죄의식이 드러나는 대목으로 여기에 이유 같은 것은 틈입하지 않는다. 그녀에게 중요한 질문은 정의란 무엇인가가 아니라, 나는 정의로운가 하는 것이다. 해서 이 시에서 정의는 성서 구절로 제시되는 것이 아니라 마음의 언어로 묘사된다. 시의 전반부와 후반부를 나누는 분기점은 “포르말린”“옥시풀”“유한락스”라는 화학제의 기표일 것이다. 상처받은 마음을 표백제로 위장해 지워버리겠다는 위악보다는 “자신의 따뜻한 피”와“용량이 큰 미련”과 “정”을 헹굴 수 없다는 기의가 승하다는 사실이다. 시인에게 이 지점은 중요한 선택이 되었을 것이다. 고정희의 시‘무너지는 것들 옆에서’는 바로 이 지점에서 비로소 개진되는 이야기다. 그 선택은 최선이 아닌 최악의 선택일 수 있다. 하지만 동시에 그건 속내를 짐작하기 어려울 정도로 수동적인 삶을 살아온 여성이라는 화자가 자신의 운명을 걸고 자신의 분명한 마음을 드러내 보이면서 주체적으로 해낸 최고의 선택일 수도 있을 것이다. 이때 화자가 자기 자신이 되는 경험 속으로 무거운 멍에를 딛고 걸음을 촉진해 보는 것이다. 인생의 거친 광야에서 “내 사지에 돌을 눌러 둘 수는 없”을 테니까. “어눌한 상처들이 덧난다 해도 / 덧난 상처들로 슬픔의 광야에 이른다 해도”

2024-12-15

물들어 올 때 노 젓는다

강영석 상주시장 물실호기(勿失好機) 하면 떠오르는 도시가 하나 있다. 바로 상주시다. 최근 상주시는 기업 지방이전 촉진 우수모델 공모사업, 국민안전체험관, 지역활력타운, 교육발전특구, 기회발전특구 등 각종 공모사업에 도전하면서 좋은 성과를 거둬왔다. 그러나 제대로 발걸음을 떼기도 전에 난제에 봉착해 있지만 아직까지 호기(好機)가 남아 있다. 바로 통합신청사와 연계되는 공간혁신구역 선도사업이다. 상주시는 올 6월 공간혁신구역 선도사업지로 선정되면서 쾌재를 부른 적이 있다. 공간혁신 구역 선도사업은 토지의 용도 제한을 없애고 용적률과 건폐율도 지자체가 자유롭게 정할 수 있어 융·복합적인 도시 개발이 가능한 특례구역을 말한다. 지방소멸위기에 놓여 있는 상주시의 입장에서는 말 그대로 호기(好機)인 셈이다. 이 공간혁신구역 선도사업은 상주시 통합신청사 건립사업이 선결과제다. 현 상주시청사는 1988년에 건립되어 여러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 건물 노후화로 인한 유지보수 비용 증가, 부지 확장성 부족, 협소한 업무 공간과 주차 공간, 건물 안전 진단 C등급 등으로 인해 신청사 건립이 필요하단 의견은 꾸준히 제기되어 왔다. 통합 신청사 건립이 무산된다면, 제3차 지진방재 종합계획에 따라 2025년까지 의무화된 현 청사 내진보강을 진행해야 하며, 이를 위해서는 200억 원 이상의 예산이 수반된다. 공사 기간 중 시청 각 부서는 모듈러 사무실과 민간 건물을 임차해 근무하게 될 것이며 이는 시민들의 불편으로 이어진다. 대부분 지자체가 그렇듯이 인구는 감소하고 있지만 행정수요는 증가하고 있다. 공유재산 및 물품 관리법에 따른 시청사의 면적에 견줘, 현 상주시청사의 경우 외부 사무공간까지 감안하면 증축이 불가하여 신축을 통한 공간확보가 불가피한 상황이다. 1995년 시·군 통합과 지방자치의 부활을 계기로 통합 신청사 건립은 상주시민 모두의 염원이었다. 이에 2001년 통합청사건립기금 설치 및 운영조례를 제정하고 통합청사건립기금을 적립하기 시작하여 현재까지 적립금은 1,334억원이 되었다. 지금까지 3번의 신청사 건립 시도와 좌절이 있었지만, 상주시는 4번째로 통합 신청사 건립을 추진하고 있다. 올해 7월에는 국토교통부 ‘공간혁신구역 선도사업지’에 경북에서 유일하게 최종후보지로 선정되는 쾌거를 이뤄내 현재 추진 중인 통합신청사 건립사업과 함께 큰 시너지효과를 내어 침체된 도심에 활력을 불어 넣어줄 것으로 기대된다. 공간혁신구역 선도사업은 국공유지가 대부분인 시청사, 문화회관 등 공공시설 이전 후적지에 공동주택, 비즈니스타운, 복합문화센터 등의 주거·업무·문화 공간이 공존하는 고밀·압축개발을 통해 인구소멸 및 도심쇠퇴에 대응하는 등 도심 공동화를 방지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상주시는 도심 활성화와 콤팩트시티 개발을 위해 각종 기반시설의 이전 후적지인 국·공유지를 활용, 복합적이고 압축된 개발을 추진할 계획이다. 공간혁신구역의 취지에 맞는 창의적이고 혁신적인 공간 활용 계획을 구체적으로 수립하고 있다. 아울러 신속한 사업 추진을 위한 전담팀을 즉시 구성하여 행정력을 집중할 예정이다. 상주시의 공간혁신구역 선도사업은 단순히 도시를 개발하는 것을 넘어, 상주시의 미래를 새롭게 그려나가는 중요한 기회가 될 것으로 보고, 공간혁신구역 개발 사업이 지역 경제에 미칠 긍정적인 영향을 기대하고 있다. 상주시는 이번 사업을 통해 1조원 이상의 생산 유발 효과와 4천억원 이상의 부가적인 경제 효과, 2,600명 이상의 일자리가 창출될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콤팩트시티 개발이 완료되면 인구 위기에서 탈피해 사람이 모이고, 일자리가 늘어나는 경쟁력 있는 도시이자, 청년들의 꿈이 실현되는 기회의 도시로 변모할 것이라 내다보고 있다. 풍부한 인프라와 잠재력을 바탕으로 혁신적인 도시 개발을 추진해 지속 가능한 도시 개발과 경제 활성화, 주민 삶의 질 향상을 목표로 하는 이번 프로젝트는 상주시를 더욱 활기찬 도시로 변화시키는 중요한 전환점이 될 것이다. 이러한 공간혁신구역 선도사업은 현 청사 이전을 전제로 한 이전 후적지 개발사업으로 선정됐고, 시청사 이전이 선행되어야 그 후의 모든 절차가 진행될 수 있다. 만약 통합 신청사 건립사업이 무산될 경우 공간혁신구역 선도사업 추진 또한 차질이 불가피해 보인다. 지난날의 호기를 놓친 아픈 기억을 기억해 이번에야말로 물실호기(勿失好機)의 자세로 적극적으로 기회를 잡아야 할 것이다.

2024-12-15

울릉도 용천수, 샘물로 개발돼 첫 출시…‘Vio 휘오 울림워터 성공 기대

경북부 김두한 기자 작은 섬 울릉도에서 생산되는 먹는 물은 자연정수 능력이 뛰어난 화산섬 깊은 땅속에서 용출되는 물로 미네랄이 풍부하다는 연구결과가 있다. 울릉군이 물을 생산하고자 각종 연구기관에 시험을 의뢰한 결과다.  10년 전부터 우수한 샘물을 판매하고자 울릉군이 노력했지만 먹는 샘물관리법 시행규칙에 따르면 용출수 표층수는 먹는 물로 판매할 수 없다. 지하 200m 암반에서 끌어올려야 한다. 하지만, 울릉도는 지하수를 생산할 수 없다, 굴착시 지반 붕괴 등으로 울릉도 물이 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울릉군은 용천수도 판매가 가능하도록 샘물관리법 시행규칙 개정에 나서 결국 울릉군에서 생산되는 물이 판매할 수 있게 됐다. 먹는 물 판매를 위해 10년 넘게 상위법과 싸워 이긴 것이다. 울릉샘물  ‘Vio 휘오 울림워터‘는 서울 강남구 갤러리아백화점에서 LG생활건강과 코카-콜라사 프리미엄 워터 라인으로 출시했다. 현재 국내 생수시장은 제주개발공사의 ’제주 삼다수‘와 롯데칠성음료 ’아이시스‘, 농심 ’백산수‘ 등 상위 세 브랜드가 전체 시장의 60%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울릉샘물은 동해 한가운데 청정섬이라는 특징과 자연환경이 깨끗한 화산섬에서 생산된다는 점, 우리나라 첫 나리분지 용출소에서 나오는 물이라는 점이 메리트다. 울릉도는 예로부터 물 좋기로 소문났다. 울릉도 샘물 생산을 위해 울릉군은 세계적인 생수회사 프랑스 에비앙을 방문, 각종 성분을 분석하고 시험하는 등 그동안 동부서주했다.  그간의 결과을 보면 울릉 용출수 샘물은 세계 어느 나라 물과 비교해도 성분이 우수하고 손색없음이 증명된다. 국내 먹는 샘물 시장은 해마다 규모가 커지고 있다. 시장조사기관 유로모니터에 따르면 2020년 1조 7700억원 수준이던 국내 생수시장은 이듬해 2조 1200억원으로 성장했다. 2023년엔 2조 7400억원에 이어 올해는 3조 1700억원에 달할 전망이다. 최근 3년 새 54.8%의 높은 시장 성장률을 기록하면서 시중에 유통 중인 생수 브랜드도 400종 이상으로 확대됐다.  물 시장 규모는 하루가 다르게 확대되지만 울림워터의 신규 브랜드가 연착륙하기에는 녹록치 않을 것으로 보인다. 기존 브랜드가 높은 인지도는 물론 로열티를 토대로 안정적인 점유율을 구축하면서 후발업체들이 유의미한 점유율 확보에 애를 먹을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여기에 대형마트와 편의점 등 유통업체가 직접 기획·제조해 유통 마진을 크게 줄여 판매하는 자체 브랜드(PB) 상품이 늘고 있다는 점도 부담이다. 하지만, '울림워터'는 충분한 경쟁력을 갖췄다고 생각한다. 우선 생산지가 청정지역 울릉도다. 유해한 공해업체 하나 없는, 말 그대로 순수 자연환경 그대로 보존되고 있는 곳이 울릉이다. 오염이라는 말 자체가 성랍하지 않는 그런 곳에서 생산되는 물, 당연히 믿어도 될터다. 지하암반수가 아니라 전국 최초로 용천수로 생산된다는 점도 비교 우위의 자산이다.   지하수가 암석이나 지층의 틈을 통해 지표면으로 자연스럽게 솟아난 지점을 용천이라고 하고 이 물을 용천수라 한다.  지하수가 이런저런 과정을 거쳐 지표로 올라오다보니 여과가 돼 물맛이 좋을 수 밖에 없다.  그동안 울릉군민들의 젖줄이었던 이 울릉용천수를 이제 국민들과 함께 먹기 위해 울릉군이 지난한 과정을 거쳐 상품화 했다. 깨끗하고 신박하며 깊은 물맛 등을 간직한 울릉샘물의 성공 가능성은 결코 낮지 않다. 국민들의 반응이 무척 기대된다.  /김두한기자kimdh@kbmaeil.com

2024-12-13

경북 동북 5개 군이 잘 사는 길

신광조​​​​​​​사실과 과학 시민네트워크 공동대표 한국은 2075년 ‘인구 소멸 1호 국가’가 될 것으로 예상되며, 2023년 합계출산율은 0.78명으로 세계 최저 수준이다. 경북 영양군의 인구는 올해 4월 기준 1만5920명으로, 다양한 정책을 통해 인구 감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인구가 적은 자치단체로는 울릉과 옹진군을 제외하면 강원도의 양구·화천, 경북 영양과 군위, 청송, 전북의 무주·진안·장수가 있으며, 이들 지역의 인구는 1만명에서 2만5000명 수준이다. 필자는 봉화·울진·영양·영덕·청송군의 통합을 주장한다. 이들 지역의 인구를 모두 합해도 10만명에 미치지 못하며, 50년 후에는 ‘공무원 반 주민 반’이라는 우스갯소리가 나올 수도 있기 때문이다. 무주·진안·장수 지역의 경우, 기초 자치단체장과 자치단체 의원들의 자리 보전을 위해 행정구역이 쪼개져 있다는 감을 지울 수 없다. 반면‘봉·울·영·영·청’ 5개 군은 모두 자존심과 자부심이 강한 지역이다. 인자(仁者)는 산을 좋아하고, 지자(智者)는 물을 좋아하며, 용자(勇者)는 바다를 좋아한다는 말처럼, 5개 군이 통합된다면 인·지·용(仁·智·勇)의 기상을 갖춘 인재들이 더욱 많이 탄생할 것이다. 이곳에서는 사과 향기와 산소를 느낄 수 있으며, 산양과 반딧불도 볼 수 있어 한국의 케렌시아와 같다. 영양은 고추로 유명하며, 오일도, 조지훈, 이문열 등 많은 문인을 배출했다. 최근 들어서는 한국 행정 정보화를 이끌었던 삼보컴퓨터 이용태 회장, 울진 두천에서 ‘반딧불이 보부상 주막촌’을 열고 제2의 새마을 운동을 일으키고 있는 나광호 동지가 동북 5군 출신이다. 사랑하는 경북 동북 5개 군 주민들을 행복하게 해 드릴 7송이 수선화를 준비해 드리고 싶다. 통합되는 경북 동북 5개 군을 ‘산소(酸素) 시’(푸른 시, 반딧불 시)로 부르고 싶다. 산소 시는 시장 이하 주민들께서 어떻게 하면 우리 국민을 기쁘고 즐겁고 행복하게 할까만 생각하면 된다. 그러면 살기 좋고 돈 많이 벌고 사람들 찾아오는 도시 된다. 첫째는 삼림이다. 바라보는 산 아닌 돈 되는 산 되어야 한다. 불과 쇠 시대에서 물과 나무 시대로 바뀐다. 독일·스위스처럼 벌채와 식목으로 산의 경제적 가치를 극대화하자. 둘째는 행정과 AI의 접목이다. 블록체인 도입으로 행정 개혁 선구자 도시가 산소 시가 되자. 유럽 에스토니아에서 배우면 된다. 삼보컴퓨터 이용태 회장께서 많은 도움을 줄 것이다. 셋째는 사과다. 청송 사과는 지금도 최고로 달고 맛있다. 세계 최고의 사과를 생산하여 와인도 만들고 국민 모두가 사과를 한 알씩 매일 먹도록 하자. 넷째는 에너지다. 영덕과 울진은 한국 에너지 생산 보물 단지다. 수소 경제까지 점령하자.‘전기 지역 차등 요금제’가 곧 실시된다. 산소 시가 싼 전기 요금으로 스마트 팜 천국이 된다. 다섯째는 마음 건강이다. 이상구 박사가 이곳 자연 휴양림에 산골 리조트를 설립하고 뉴스타트 운동을 벌이도록 하자. 여섯째는 관광 진주가 되자. 덕구온천은 라듐이 풍부한 천혜의 온천이다. 불영계곡과 패키지 관광 상품을 개발하면 된다. 일곱째는 ‘재즈’다. 한국 수력·원자력과 협조하여 아시아 최고의 재즈 페스티벌을 창설하자. 관광객이 몰려오고 울진 파도 식당 ‘곰칫국’ 인기가 폭발한다.

2024-12-12

양극화

우정구 논설위원 미국의 유명 사전출판사인 메리엄 웹스터는 올해의 단어로 양극화(Polarization)를 꼽았다. 미국의 대선 기간 동안 언론매체들이 가장 광범위하게 많이 사용한 단어라고 선정 배경을 밝혔다. 메리엄 웹스터는 2022년 올해의 단어로 한국인에게도 잘 알려진 가스라이팅(Gaslighting)을 뽑아 이를 유행시킨 출판사로 유명하다. 지난해는 “진짜의” “진품의” 뜻을 가진 어센틱(Authentic)을 올해의 단어로 선정한 바 있다. 출판사는 “우리가 목격한 것들을 더 이상 믿지 않는다”는 사회적 조류 때문이라 했다. 출판사는 올해 선정한 양극화에 대한 정의로 “뚜렷이 대조되는 두개의 대립으로 분할되는 것. 특히 한 사회나 집단의 의견 또는 신념, 이해관계가 양극단으로 집중되는 상태”라고 설명했다. 우리나라 사회에서도 양극화라는 말은 숱한 문제점을 던져주는 단어로 이해되고 있다. 사회 불평등 심화를 가르키는 말로 사회 중간계층이 줄어드는 현상을 말한다. 대표적 케이스로 부의 양극화와 서울과 지방의 양극화를 들 수 있다. 빈익빈 부익부를 조장하는 단어다. 개천에서 용이 난다는 말이 쑥 들어간 세상이 됐다. 가난한 환경에서도 열심히 노력하면 훌륭한 인물이 될 수 있다는 것이 사라진 세상이 됐다는 의미다. 잘사는 집 아이일수록 좋은 학원을 다니고 외국으로 유학까지 갈수 있어 성공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반면에 가난한 집 아이는 경제적 여유가 없어 좋은 직업을 가질 가능성이 낮다는 뜻이다. 우리 정치도 보수와 진보로 갈라져 양극단에 서 있다. 두 진영 간 대립과 갈등이 국론을 분열시키고 나라를 위태롭게 한다. 계엄사태 후폭풍도 그 연장선에 있는 것이다. /우정구(논설위원)

2024-12-12

비둘기에게 먹이를 주지마세요

윤영대전 포항대 교수 며칠 전 조금 풀린 날씨에 철길숲을 걸어보려고 갔었는데 낮게 걸린 현수막이 하나 보였다. “비둘기 먹이 주기 금지”-무슨 말이지? 하고 가까이 가봤더니 비둘기가 유해 야생동물로 지정 됐다는 것이었다. 평화의 상징인 하얀 비둘기가 해를 끼치는 동물이라니 이해가 되지 않았는데 야생생물 보호 및 관리에 관한 법률에 의하여 참새 까치 까마귀 등 15종류와 함께 유해 야생동물로 지정되었다는 것이다. 유해 조류로 보는 이유는 첫째, 잡식성이라 배설물이 깨끗할 리 없고 둘째, 배설물이 강한 산성이어서 문화재와 건축물을 훼손할 우려가 있으며 셋째, 이곳저곳 많이 날아다니기에 깃털의 바이러스로 인해 아토피성 피부염을 퍼뜨린다는 것이다. 이러한 이유로 유럽도 이미 비둘기와의 전쟁을 선포하였으며, 영국은 모이를 주었을 때 벌금부과를 하고, 프랑스는 집을 지어주고 산란하면 깨어버리고, 스위스는 알 바꿔치기를 하며, 미국은 불임약을 먹여서 개체 수를 줄인다는 것이다. 비둘기는 전 세계에 약 300여 종이 있으며 우리나라는 멧비둘기, 집비둘기와 천연기념물 215호인 흑비둘기를 포함하여 8종류가 있다. 이 중에서 집비둘기를 환경부가 유해 동물로 지정하자 동물보호단체에서는 비둘기를 곱게 보는 국민 정서를 감안하여 포획보다는 굶기거나 불임약을 주어 개체를 줄이는 방향을 제시하고 있다. 비둘기는 1년에 1~2회 번식하지만 도심에 살고있는 경우 4~5회 정도 번식하여 개체 수가 증가 하는데, 이는 도심에는 매와 황조롱이 같은 천적이 없기 때문이기도 하다. 우리나라 전역에 약 100만 마리 가량 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으며, 서울 경기에서 5년간 비둘기 수는 3배로 증가하였고 비둘기 관련 민원이 3000 건에 육박하고 있는데, 86아시안게임에서 3000 마리를 평화의 상징으로 날려 보낸 것이 개체 수 증가의 원인으로 보고 있다. 참새와 까치도 무리 지어 농작물과 과수에 피해를 주며 까마귀도 전신주에 앉아 전력시설에 장애를 주고 있다. 도심 속 비둘기는 몸을 씻을 만한 곳이 마땅찮아 깃털에 병균이 많이 붙어있다. 또 사람들이 먹고 버린 음식 찌꺼기를 주워 먹는 탓에 배설물로 뇌수막염이나 피부염 같은 질병을 옮기기도 한다. 하지만 몇몇 전문가들이 연구하고 조사한 결과로는 이런 일이 벌어질 가능성은 벼락 맞을 확률보다도 낮다고 한다. 내년부터는 지자체마다 비둘기 먹이 주기 금지에 대한 조례가 정해져 이를 위반할 경우 벌금을 물어야 할테니 공원이나 길에서 무리지어 노는 비둘기에게 먹이를 던져주며 즐기던 아이들은 어떻게 하나? 우리에게 ‘퍼주기 정책’, 즉 포퓰리즘이라는 것이 있다. 골목상권을 살린다는 지역화폐(지역사랑 상품권)의 국고지원 의무화 법안도 올해 세수 부족 30조원 이상으로 경제가 깊은 수렁에 빠지지나 않을지 우려되니, 좌파 정권에 의해 1970년대 부국에서 빈국으로 떨어진 베네수엘라를 교훈 삼아 우리 전 국민 1인당 25만원 현금 지급하겠다는 발상도 접어야한다. 스위스는 성인 월 300만원을 무상지급하려는 기본소득제를 국민 77%가 반대하였다. 일을 하지않으려는 도덕적 해이를 우려한 무차별 복지에 대한 반대였다.

2024-12-12

원자력 발전

강길수 수필가 며칠 전 한울 원자력발전소에 다녀왔다. 2년마다 한 번씩 업무차 가는데, 올해가 4번째다. 2018년 원자력 발전소 안에 처음 갔을 때, 놀란 게 셋이다. 우선, 깨끗함이다. 제철소, 화학 공장 등에서 일하며 만났던 현장들과는 차원 다르게 청결했다. 다음, 원자로 격납고 건물이 생각보다 거대했다. 멀리서는 별로 커 보이지 않았는데, 곁에 가니 훨씬 큰 규모였다. 그다음, 터빈 크기에 압도당했다. 내가 사는 3층짜리 아파트 한 동보다 터빈이 커 보였다. 백문이 불여일견인 웅장한 청정에너지 생산 현장이었다. 깨끗하고 거대한 발전소에 감탄하며 업무차 만난 직원에게, “이런 데 근무하면 일할 기분 절로 나겠어요!.”라고 했더니, 직원은 “그렇지도 않아요.”라며 약간은 걱정되는 표정을 지었었다. 왜냐고 묻는 말에, 새 정부의 탈원전 정책으로 앞날 걱정이 된다고 했었다. 한데, 올해는 많은 공사를 하고 있음이 한눈에 보였다. 원자력 발전은 청정에너지 생산의 으뜸이다. 방사능 위험의 약점에도 불구하고, 현재로서는 전력공급의 안정성, 신뢰성, 친환경성이 가장 우수하다고 평가된다. 2011년 후쿠시마 원전 사고로 지구촌에 탈원전 바람이 불었었다. 하지만, 탄소 배출 없는 원전을 늘리지 않고는 기후변화와 급증하는 전력 수요 대처할 수 없다는 인식이 보편화되었다. 재생에너지는 날씨나 조건에 따라 생산량이 변하기 때문이다. 지난 11월 15일 아제르바이잔에서 열린 제29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에서 ‘2050년까지 원전 발전량을 3배로 늘리겠다’는 선언에 서명한 국가가 25국에서 31국으로 늘었다. 한국은 기 서명국이다. 2022년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발발로 에너지값이 급등하고, AI 산업 성장도 전력난을 가중했다. ‘챗GPT’ 등 생성형 AI는 기존 검색엔진보다 10배의 전기를 소모한다고 한다. 문재인 전 대통령은 2016년 원전 재난영화 ‘판도라’를 본 뒤 코미디 같은 행태를 보였다. 원전 추가건설을 막고 탈핵, 탈원전 국가로 가야 한다고 했다. ‘신규 원전 전면 중단 및 건설계획 백지화, 신고리 5·6호기의 공사 중단 및 월성 1호기 폐쇄, 탈원전 로드맵 수립’을 대선 공약으로 내놨다. 전문가 참여 없는 탈원전 공약이었다 싶다. 취임 뒤 탈원전을 5년간 추진한 결과, 세계 최고 수준이던 한국의 원전 생태계는 생명력을 많이 잃었다. 다행히 윤석열 정부가 원전 생태계 정상화에 나섰다. 그러나 민주당의 예산 삭감으로 타격이 걱정된다. 언론에 보도된 25년 원전 관련 정부 예산/민주당삭감액은 이렇다. 원전 생태계 금융 지원 1500억/500억 삭감, 혁신형 소형모듈원자로(i-SMR) 기술 연구개발 사업 329억2000만/삭감, 원자력 생태계 지원 사업 112억/삭감, SMR 제작 지원 센터 구축 사업 예산 55억800만/삭감, 소듐 냉각 고속로(SFR) 연구개발 예산 70억/63억 삭감 등이다. 야당은 나라와 국민 삶은 안중에도 없이, 자기들 입맛에만 맞는 예산 주무르기를 멈추기 바란다. 또, 나라 살림에 전문가들이 참여하는 제도를 정치권과 정부가 만들기도 바란다.

2024-12-12

정치의 불안과 국민의 현실

장규열 고문 초등학교 때였나, 국군장병들을 위문하는 편지를 썼었다. 상투적으로 적었던 구절이 바로 ‘저희들의 하루하루를 편안하게 지켜주시는 국군 아저씨께….’가 아니었던가. 그 뜻을 이제야 새긴다. 대한민국은 편안한 밤을 잊어버렸다. 간밤에 또 무슨 일이 있었을까, 공연히 불안하고 마음이 쓰인다. 정치가 국민을 힘들게 한다. 최근 대한민국이 처한 현실은 국민에게 어둡고도 힘겹다. 대통령의 실책으로 촉발된 비상계엄 논란은 정치권의 혼란을 가중시켰으며, 언론은 이를 둘러싼 갈등과 대립을 부각시켰다. 국민의 하루하루는 정치권의 복잡한 셈법이나 첨예한 갈등과는 판이하게 다르다. 그럼에도, 정치적 혼란은 국민 개개인의 삶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물가는 치솟고, 경제는 침체되며, 청년들은 미래를 불안해 하고있다. 중소상공인들은 일상의 생계를 걱정하며, 직장인들은 끝없는 업무와 고용 불안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이러한 현실 속에서 정치권의 논쟁과 갈등은 국민에게는 사치로 보일 뿐이다. 탄핵이든 하야든, 자격정지든 혹은 조기대선이든, 국민의 삶을 실질적으로 바꾸지 못한다면 어디에서 의미를 찾아야 하나. 국민에게 소중한 소통의 통로여야 할 언론 또한 문제다. 갈등을 조명하고 이념 대립을 자극하는 기사는 많지만, 국민이 필요로 하는 정보와 문제해결을 위한 진중한 논의는 태부족이다. 보통사람 국민에게 좌와 우로 나뉘어 다툴 여력이 없다. 국민이 필요로 하는 것은 정치권의 자기보호적 논리가 아니라, 실질적으로 삶의 무게를 덜어줄 민생정책이다. 정부를 둘러싼 논란이 길어질수록, 정치와 국민의 간극은 더욱 벌어진다. 정치적 권력 다툼이 아닌, 국민의 삶을 중심에 두는 정치가 필요하다. 대통령의 책임을 묻는 문제는 헌법적 절차와 국민적 합의에 따라 조속히 해결해야 한다. 중요한 것은 그 과정에서 국민의 신뢰를 회복하고, 현재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실질적인 대안을 찾는 것이다. 정치권과 언론이 국민의 현실을 직시할 때다. 국민은 더 이상 정치적 혼란 속에서 갈피를 잃을 까닭이 없다. 정부와 정치권은 비상계엄 논란에서 시급히 벗어나, 국민의 삶에 실질적인 변화를 가져올 수 있는 방향으로 정책을 전환해야 한다. 무엇보다도, 서로를 비난하기 위한 정치가 아니라, 국민을 위한 정치를 회복해야 한다. 오늘도 국민은 자신의 자리에서 힘겹게 하루를 살아가고 있다. 정치권이 국민의 삶에 귀 기울이고, 실질적인 도움을 주기 위한 노력을 시작할 때, 이 어두운 현실을 넘어서는 희망의 불씨를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실책으로 비롯된 여러 어려움을 군을 동원하면서 무력으로 돌파하려 한 대통령은 나라와 국민 앞에 큰 실수를 하였다. 국민의 하루하루를 지켜야 했을 국군장병들을 정쟁의 도구로 사용하려 한 일은 용서받기 힘들다. 보통 사람의 평범한 일상이 편안하게 지켜지는 나라에 살고 싶다. 국민이 위임한 권한을 무겁게 여기며 해야 할 일에 최선을 다하는 대통령을 만나고 싶다. 국민이 편해야 나라가 편하다. 국민은 저녁마다 편안하게 잠들고 싶다.

2024-12-11

특전사 별들의 눈물

홍성식 (기획특집부장)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던 윤석열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가 국회의원들의 표결에 의해 해제된 이후 그 후폭풍이 거세다. 현재 검찰, 경찰,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가 앞을 다퉈 관련자들을 출국금지 하고, 소환하는 등 조처를 취하고 있는 상황. 비상계엄이 선포된 그날 밤 국회와 선관위 등에 출동한 부대의 지휘관들은 특히 곤혹스러움에 직면해 있다. 국회에 출석하거나, 유튜브에 출연하거나, 기자회견을 자청한 특전사령관과 1공수 여단장, 707특수임무단장 등은 ‘국민에게 걱정을 끼친 것에 대해 사과한다’는 의미로 눈물을 흘렸다. 특전사령부는 1979년 겨울에 전두환 군부의 명령으로 동원돼 쿠데타에 적극 가담했다는 불명예를 씻으려 45년간 노력해왔다. 이번 국회 출동으로 그 노력이 수포로 돌아갈 수도 있을 듯하다. 특전사는 한국전쟁 당시 큰 활약을 보인 켈로부대를 모체로 탄생한 부대다. 유사시 육·해·공의 어느 곳에서도 임무를 수행할 수 있도록 평소에 강한 훈련을 반복하는 한국 최정예 부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데, 전쟁이 일어난 것도 아니고, 국가 전복의 위기가 있었던 것도 아니며, 무장공비 등 외부의 적이 국토를 침탈한 것도 아닌데 국민의 대표들이 모여 있는 국회에 헬기를 타고 무장한 채 들어갔다는 건 ‘내란 중요임무 종사’의 죄를 물을 수도 있는 심각한 일이다. 반성의 눈물로 감정적 용서는 받을 수 있다. 그러나, 눈물만으론 법적 책임까지 피해갈 수는 없을 게 분명하다. 특전사에게도 이번 계엄 선포는 비극이다. 최고 지휘관들이 업무에서 배제된 수도방위사령부와 국군방첩사령부 장성들의 앞날도 혹한의 겨울밤처럼 어둡다. /홍성식(기획특집부장)

2024-12-11

삶과 길

이정옥위덕대 명예교수 나의 버킷리스트 중 일순위인 한국어해외봉사를 하려면 한국어교원 자격증 취득이 필요했다. 국어교사자격증도 있고, 국문과 대학교수 25년 경력이 있어도 외국인 대상 한국어교수와는 성격이 좀 다르다. 예전엔 국어교사 경력으로 대체인정해주었는데 법이 더 엄격해졌다. 자격증 취득을 위해 가장 빠르고 쉬운 방법을 찾아 검색했다. 원격평생학습 학점은행제가 가장 적당해 진흥원격평생교육원에 상담했다. 대부분의 사이버대학에서는 2년이 꼬박 소요된다는데 1년 반만에 가능하다기에 2026년 취득 목적으로 2주째 열공 중이다. 매주 개설되는 과목을 15주 동안 수강하고 쪽지시험, 중간고사, 기말고사도 치고, 과제 제출도 해야 한다. 강의 신청하면 먼저 자기소개서를 작성해야 한다는 상담사의 말이 있었다. 뭐 어려우랴 쓰면 되지 들어갔더니 좌우명, 취미, 각오를 적으라 했다. 좌우명이라…. 여태껏 좌우명을 따로 정해 둔 적이 없어 잠시 머뭇거렸다. 문득 20대부터 평생을 가르치는 직업에 있다가 70을 바라보는 이 나이에 또 공부하려고 컴퓨터 앞에 있는 내가 보였다. 그래서 이렇게 적어 넣었다. ‘삶은 영원한 배움의 연속이다.’ 지난 일요일 손주 둘을 데리고 영화관엘 갔다. 직장에 육아에 늘 잠이 모자란 아들과 며느리가 주말에 몰아서라도 잠자게 하고 싶었다. 나도 그러지 않았던가. 바깥놀이를 하기엔 추운 날씨라 생각하다 떠오른 게 영화였다. 마침 애들이 볼 만한 영화 ‘모아나2’가 상영 중이었다. 작년만 해도 혼자서 둘을 데리고 극장 가는 게 힘에 부쳤는데, 이젠 아니다. 영화관 입구 도착하자 나는 아들이 예매해 준 표를 키오스크에서 출력했다. 손주들은 또 다른 키오스크에 다가가 각자 원하는 팝콘과 음료를 능숙하게 선택했고 나는 카드만 넣어주면 되었다. 번호표를 뽑고는 기다렸다가 자기 번호를 부르면 찾아가는 것도 자연스럽다. 어두컴컴한 영화관에서 자리를 찾아 앉고, 앉자마자 좌우 팔걸이에 음료와 팝콘을 세팅하고는 영화가 시작되길 기다리며 간식을 먹고, 가운데 앉은 내 양쪽에서 팝콘을 번갈아 내 입에 넣어주는 것까지 뭐 하나 나무랄 일이 없다. 애니메이션 영화 ‘모아나2’는 여주인공 모아나가 리더가 되어 온갖 저주와 시련을 견디고 헤쳐 모험하는 무용담이다. 손주들은 금방 영화에 몰입했다. 우스운 장면에서는 유달리 크게 웃고, 어떤 장면에서는 주인공을 도와주려고 간섭하고 실패하면 탄식했다. 돌아오는 차안에서 영화 얘기를 나눴다. 의외로 세세한 장면들을 기억하고 복선으로 장치된 그림이나 벽화 따위를 말하는데 놀라웠다. 내가 잘 이해하지 못한 어떤 장면들은 설명해 주기도 했다. 특히 작중 인물들의 대사들을 또렷이 기억하는 게 신기했다. 손자는 ‘길을 헤매도 괜찮아. 다른 길을 찾을 수 있으니까.’라고 말한 마녀의 말을 기억한다고 했다. 손녀는 마우이도 ‘언제나 길은 있어’라고 말했다며 우겼다. 둘 다 옳은 말이다. 난 3000년 나이의 마우이가 ‘인생은 실패하고 배우고 죽는 거야’라고 말하는데 며칠 전 내가 썼던 좌우명과 유사해 살짝 소름 돋았다. 그래 우리의 삶은 길의 연속이지. 배움이라는 길.

2024-12-11

오십견 얼마나 치료를 해야 나을까?

박용호 포항참사랑송광한의원장 가장 치료가 어려운 질환이 뭐냐고 물어보면 단연코 오래된 오십견이라고 할 수 있다. 목 디스크, 허리디스크, 심한 두통도 정확하게 진단하고 근육, 인대, 신경에 침을 놓고 거기 맞는 약을 쓰면 아주 어렵지 않게 치료되는 경우가 많으나 오십견은 그렇지 않다. 심하게 굳은 경우는 팔을 앞으로 올렸을 때 90도 이상 올리지 못하고 팔을 옆으로 올리는 동작과 뒤로 하는 동작도 대부분 제한이 걸려 있다. 앞으로 올리는 것이 첫째 목표고 앞으로 올라가면 팔을 뒤로 등까지 닿게 하는 치료를 한다. 통증은 팔이 올라감에 따라 점점 좋아지기 때문에 통증에만 집중하는 것보다 팔이 얼마나 가벼워지고 많이 올라가는가에 집중을 해서 치료를 하는 것이 좋다. 오십견은 어깨에 통증이 발생하고 움직임에 제한이 생기는 질환으로, 정확한 명칭은 동결견 또는 유착성 관절낭염이라고 한다. 인터넷을 보면 증상 발병 후 1~2년이 지나면 회복된다고 하지만 실제 임상에서는 그렇지 않은 경우를 더 자주 보게 된다. 진성 오십견 환자의 통증은 아주 극심해서 팔이 아파서 전혀 잠을 자지 못하고 어떻게 움직여도 아프기 때문에 팔의 가동이 거의 불가능한 수준이다. 오십견은 회전근개와 연관되어 있기 때문에 회전근개를 풀어주는 것과 더불어 굳어있는 관절낭 근처를 풀어주는 치료를 기본으로 한다. 관절낭 주변을 풀어주는 것이 중요한데 이 부분을 강하게 압박하거나 추나를 해서 조금씩 움직임이 나아질 수 있게 치료를 한다. 추나는 경추, 견갑골, 쇄골, 상완골을 기능적으로 움직임을 개선할 수 있는 가동술 위주의 추나를 하게 되고 경추는 교정을 한다. 이와 더불어 오훼돌기와 뒤쪽의 견갑골 외측면 쪽을 강하게 압박을 해서 주변 근육들과 함께 부착 부를 풀어주면 효과적이다. 압박을 해서 풀어주는 치료는 상당한 뻐근함을 느낄 수 있지만, 하고 나면 시원한 느낌이 든다. 오십견은 정확한 위치에 치료를 하는 것이 특히 중요하다. 아픈 곳을 정확히 찾은 뒤 부항으로 피를 뽑아 아픈 부위의 압력을 줄이고 뭉쳐 있던 근육의 긴장을 푼 뒤 초음파로 직접 보면서 파열이나 염증 혹은 부어 있는 부위에 약침을 뿌려준다. 경추부의 문제를 동반하는 경우가 많은데 경추 쪽의 문제가 있다면 같이 치료를 한다. 경추는 신경 뿌리 쪽, 어깨는 오훼돌기 근처와 회전근개 부착부 그리고 견갑상 신경과 액와 신경 등 환자가 직접적으로 통증을 느끼는 곳에 용량이 많은 약침을 뿌려서 부드럽게 해주고 그동안 뭉쳐 있는 통증 물질들이 씻겨 갈 수 있게 한다. 통증이 심하면 매일 치료를 하고 치료가 됨에 따라 주 2~3회로 치료 횟수를 조정하고 3개월을 기본 단위로 치료를 한다. 한두 번 맞고 좋아지기는 힘들고 꾸준히 치료를 해야 하며 치료를 하지 않는 날은 어깨 심부 근육을 강화하고 혈액 순환을 돕는 약을 같이 처방받아 먹으면서 치료를 해야 한다. 허리 디스크보다 오래 걸리고 잘 낫지 않으며 짜증 나는 통증으로 쉽게 보지 말고 꾸준히 치료를 해야 한다. 가동 범위가 좋아지고 통증이 줄어든 기간이 3달을 넘으면 천천히 자연스레 회복이 된다. 이때도 쉬지 않고 치료를 해서 뿌리를 최대한 뽑는 것이 좋다.

2024-12-11

갈치 뼈 바르는 남자

윤명희 수필가 늦은 가을이 따뜻하다. 단풍 구경하고 오는 길에 작은 식당에 들어갔다. 시골 식당은 평소에는 농사일을 하는 외국인으로 줄을 잇는 경우가 많은데, 그날은 휴일이어서인지 한산했다. 나는 주문한 산채비빔밥이 나오기를 기다리며 벽에 걸린 TV를 올려다보았다. 그 아래 앉은뱅이 식탁을 사이에 두고 할아버지와 젊은이가 밥을 먹고 있었다. 얼굴색이 까무잡잡한 젊은 남자는 스물 두어 살 쯤 되어 보였고, 자그마한 체구의 할아버지는 등이 굽어 코가 비빔밥 그릇에 빠질 듯 했다. 식당아저씨가 갈치찌개가 담긴 양은냄비를 그들 앞에 놓았다. 젊은 남자가 얼른 가장 굵은 갈치 토막을 골라 제 앞으로 가져갔다. 젓가락으로 능숙하게 뼈를 바르기 시작했다. 나는 갈치에는 관심 없이 비빔밥만 먹고 있는 할아버지와 뼈 바르는 일에 열중하고 있는 그 남자를 번갈아 보았다. 외국노동자와의 인연이 좋지 않았던 나는 그가 가져간 굵은 갈치에 눈이 꽂혔다. 예전, 남편이 공장을 운영할 때였다. 용접한 구조물을 매끈하게 다듬는 일이 힘이 들어 직원들이 오래 견디지 못했다. 채용공고를 내자 베트남 청년이 왔다. 그는 어눌한 말로 숙소를 제공해 주어야 하고 인터넷을 할 수 있어야 한다고 했다. 우리는 오래 함께 하고픈 마음으로 흔쾌히 약속했다. 발음하기 힘든 그의 이름을 꾸웽이라 불렀다. 꾸웽을 사무실 위층에서 거주하게 했다. 그의 요구대로 컴퓨터를 주문해 인터넷을 연결해 주었다. 3층은 넓어 방이 4개 있지만, 하나만 사용하라고 했다. 나는 청소할 빗자루와 밀대를 새로 장만해 건네주었다. 생활비나마 아끼라고 선물로 들어온 물품들을 따로 챙겨주었다. 급히 처리해야 할 일이 있어 평소보다 일찍 출근 한 날이었다. 사무실 문을 여는 등 뒤로 3층으로 오르는 계단이 떠들썩했다. 짧은 치마를 입은 여자애들이 몇 명 내려오다 우리를 보고는 멈칫했다. 멋쩍은 인사를 한 그들이 부리나케 공장 밖으로 나갔다. 남편과 나는 모른 척 눈을 감았다. 퇴근시간이 좀 늦은 날은 나이가 많은 남자들까지 대문 밖에서 쭈뼛거리는 게 보였다. 남편이 꾸웽을 불러 외부 사람을 공장으로 불러들이면 안 된다고 몇 번이나 주의를 주었다. 일요일 저녁, 거래처에서 전화가 왔다. 아침 일찍 방문하라는 말에 남편과 나는 서류를 챙기러 공장으로 갔다. 3층 거실의 불빛이 환하게 비쳤다. 창으로 많은 남자와 여자들의 모습이 보였다. 사무실로 가는 입구 문을 열자 음악소리가 계단을 타고 내려왔다. 우리는 3층을 바라보며 한참 서 있었다. 다음날, 남편은 꾸웽을 사무실로 불렀다. 더 이상 같이 일 할 수 없는 이유를 조목조목 이야기하자, 그는 돈부터 달라고 손을 내밀었다. 미안하다는 말 한 마디 없이 가방을 챙겨 공장 문을 나서는 그를 창밖으로 내다보았다. 3층으로 올라갔다. 현관문을 열자, 거실 바닥에 옷가지와 술병이 널려있었다. 싱크대 위에는 미처 치우지 못한 기름 흔적과 음식 쓰레기가 너저분하고, 방마다 이불이 널려있었다. 3층을 대청소하면서 다시는 외국인을 직원으로 채용하지 않을 거라 다짐했다. 생선의 가장 큰 토막을 제 앞으로 챙기는 남자가 꾸웽을 떠올리게 해서 씁쓸했다. 그런데 뼈를 바른 젊은 남자가 갈치 살을 할아버지 밥 위에 올려놓았다. ‘너나 먹어’라는 할아버지의 말이 들렸다. 그 남자는 비빔밥을 퍼 먹으면서도 눈은 할아버지에 있었다. 할아버지가 밥을 떠 입에 넣자, 그는 다시 살을 집어 할아버지 숟가락에 올렸다. 할아버지는 그 갈치 살을 젊은 남자의 밥 위에 올려주고는 어서 먹으라는 손짓을 했다. 순간, 나는 혼란스러웠다. 다문화 가정의 손자인가 생각해봐도 젊은 남자의 피부는 완연한 동남아 태생으로 보였다. 도회지로 떠난 자식들 대신 할아버지를 돌보는 도우미인가? 할아버지는 지금까지 농사를 놓지 못했던 건 아닐까. 농사로 이어진 인연이 갈치 뼈를 발라주고, 할아버지의 컵에 물을 따르는 사이가 되었을까. 할아버지가 손으로 바닥을 짚고 일어서자, 젊은 남자가 호위하듯 바짝 붙는다. 식당 문을 열어주고, 신발까지 챙겨주는 그를 보고 또 보았다. 낡은 화물차에 오른 그들이 식당마당을 나서자, 신작로의 노란 은행잎이 그들 뒤를 따라간다. 나는 그들이 보이지 않을 때까지 눈으로 배웅했다.

2024-12-11

경북·대구 행정통합 신의 한 수가 될 수 있을까

권기창안동시장 경북도청 이전은, 구미와 포항을 중심으로 한 양극적 발전 축의 한계를 극복하고 균형, 발전 새로움이 조화되는 경북의 신성장거점도시를 만들어 도청신도시를 중심으로 새로운 발전 축을 형성하고자 하는 것이었다. 또한 정부 주요기관이 세종시로 남하하고, 도청이 안동으로 북상해 한반도 허리 경제권의 황금벨트를 구축, 환태평양시대로 나간다는 비전이었다. 그러나 도청을 옮긴 지 10년도 되지 않은 시점에, 다시 경북도는 균형발전을 위해 대구와 행정통합을 한다고 서두르고 있다. 그렇다면 과연 경상북도와 대구시의 주장처럼 행정통합이 신의 한 수가 될 수 있을까. 지방소멸과 저출산은 현재 우리나라의 최대 화두이다. 경북도와 대구시는 행정통합을 통해 지방소멸 위기를 극복하고 저출산 문제를 해결해, 수도권 1극 체재에 대응하는 균형발전을 이루겠다고 한다. 우리나라는 인구의 절반이 수도권에 거주하는 국가비상사태이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정치, 경제, 사회, 문화, 교육, 의료 등의 시스템을 지방으로 분산시켜야 한다. 저출산은 통합한다고 해결되는 것이 아니라 취업, 주거, 돌봄 등의 복합적인 문제가 해결돼야 한다. 지방에 살아도 수도권에 사는 것보다 삶의 질이 좋도록 시스템을 개선해야 하는 것이다. 이철우 지사는 대구를 뉴욕처럼 경제 수도로, 경북을 워싱턴처럼 행정 수도로 만들겠다고 한다. 무엇보다 행정 수도가 되려면 통합 청사의 소재지를 현재의 경북도청이 있는 안동으로 명시해야 하고, 이를 뒷받침할 수 있는 모든 유관기관의 이전이 담보되어야 한다. 또한 성공적인 행정수도가 되기 위해서는 문화, 교육, 의료 등의 인프라 조성과 함께 철도, 도로 등의 교통망 확충으로 주민의 편의성을 도모할 수 있는 정주 여건이 보장돼야 한다. 경북과 대구가 행정통합을 한다고 하니, 각 광역지지체가 통합하겠다고 한다. 그렇다면 지방자치법을 개정해 지방분권과 재정분권을 선제적으로 제시하고, 선입법 후 통합의 절차로 진행돼야 한다. 이렇게 해야 요구하는 특별법안이 중앙정부와 국회에서 받아들여지지 않는 우를 범하지 않게 된다. 실질적인 특례 없이 통합하면 빈껍데기만 남는 꼴이 될 수 있다. 중앙집권적 국가 운영의 한계로 지방정부의 저출산과 고령화에 따른 위기 대응 능력이 갈수록 약해진다. 지역의 정체성과 특성이 고려되지 않은 획일적인 국가 중심의 공공서비스로는 지역민의 욕구를 충족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정부의 대대적인 권한이양과 재정자립 조치가 선행돼야 하는 이유다. 지방분권 강화를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정부의 사무(권한)이양 확대이다. 특별 행정기관과 국가하천 준설 등 각종 개발계획과 인허가권은 반드시 이양돼야 한다. 경북도는 ‘경북의 힘으로 새로운 대한민국’을 열고자 한다. 대구는 경북에서 1981년 분리되었다. 대구 중심의 통합이 아닌, 경북 중심의 통합이 되어야 마땅하다. 수도권 1극 체재 대응하기 위해 행정통합이 필요하다면, 대구·경북 행정통합 또한 대구 쏠림으로 대구 1극 체재가 생겨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이렇게 해야만 경북의 정체성은 잃지 않으면서 균형발전이라는 목적을 이룰 수 있다. 정말 행정통합이 신의 한 수라면 경북을 중심으로, 22개 시·군이 다 함께 잘살 수 있는 발전전략을 세워 경북의 새로운 미래를 열어야 한다. “천천히 서둘러라.” ‘천천히’는, 어떤 일을 할 때 깊고, 넓게 사고하여 멀리 내다보라는 것이다. ‘서둘러라’는 모든 일에는 때가 있는 것으로 철저한 준비와 실행력이 뒷받침되었을 때 기회를 잡을 수 있다는 것이다. 천천히 서두르기, 결코 쉽지 않다. 명확한 방향을 설정하고 체계적인 전략을 수립해 목표를 향해 속도감 있게 매진하는 것, 이것이 “천천히 서둘러라”가 우리에게 주는 메시지이다. 치열하고 꼼꼼하게 준비하면서, 결정적 순간에 온 역량을 집중할 수 있는 자세와 지혜가 경북을 희망으로 만들어가는 힘이 될 것이다.

2024-12-11

‘尹의 거취’ 초읽기…하야냐, 탄핵이냐

심충택 논설위원 윤석열 대통령 운명이 풍전등화(風前燈火) 신세다. 비상계엄선포 수사당국이 그를 내란혐의 피의자로 입건하고 출국금지 조치도 했다. 검찰은 법과 원칙에 따라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엄정히 수사할 것이라며 윤 대통령의 긴급체포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았다. 혐의가 드러나면 기소되고 내란죄 처벌을 받을 수 있다. 여야는 ‘자진하야’와 ‘탄핵’으로 그를 압박하고 있다. 가장 빨리 차기 대선을 치르는 경우의 수는 여당안대로 윤 대통령이 조기에 자진하야 하는 것이다. 국회가 윤 대통령의 사직서를 접수하는 즉시 사임이 공식화되고, 그 뒤로 60일 내 대선이 치러지기 때문이다. 여당 일각에선 임기 단축 개헌을 통한 퇴진론도 나오고 있지만, 헌법에서 별도로 명시해 놓은 관련 규정이 없어 실현성이 낮다. 민주당은 그의 대통령직 유지에 “6초도 위험하다”는 강경입장을 고수하고 한다. 범야권 요구대로 윤 대통령이 탄핵당할 경우, 직무는 즉시 정지되지만 헌법재판소가 파면결정을 해야 대통령직에서 물러난다. 대선은 파면된 날부터 60일 이내에 치러진다. 헌재가 탄핵심사를 할 수 있는 법적 기간은 접수한 날로부터 180일 이내다. 헌재가 탄핵안을 기각하게 되면 윤 대통령은 국정에 복귀한다. 국민의힘은 가능한 한 윤 대통령의 퇴진시점을 늦추고 싶을 것이다. 대선이 이재명 민주당 대표의 공직선거법 위반 사건 확정 판결 이후에 치러지는 것이 가장 유리한 탓이다. 그러나 탄핵을 요구하는 거센 민심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지금 국민은 어느 지역 할 것 없이 윤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에 분노하고 있다. 친윤·친한 계파로 쪼개진 국민의힘으로선 탄핵을 요구하는 야당공세를 감당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 ‘장외집회’와 ‘검경 수사’가 윤 대통령 운명 결정의 가장 큰 변수가 될 가능성도 있다. 앞으로 탄핵찬성 인파가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당시의 촛불시위 규모로 커지면 민심을 의식할 수밖에 없는 여당 내에서 탄핵찬성 쪽으로 의사결정을 바꾸는 의원이 다수 나올 수 있다. 계엄 관련자들에 대한 검찰·경찰의 수사 과정에서 어떤 증거나 증언, 정황이 나올지도 관건이다. 비상계엄 사태 수사당국은 윤 대통령 입건과 함께 김용현 전 국방부장관에 대해 내란과 직권남용 혐의로 구속영장을 청구했고, 곽종근 특전사령관을 불러 조사했다. 검찰은 국군방첩사령부를 압수해 계엄당시 관련자료도 확보했다. 만약 수사과정에서 민심을 뒤흔들 내란죄 증거 또는 증언이 나오게 되면 윤 대통령에 대한 긴급체포가 이루어질 수도 있다. 포스트 계엄 후폭풍이 거세지면서 지금 국정은 사실상 마비상태다. 국가적 혼란이 일주일이상 지속되고 있지만 여권은 정국을 수습하지 못하고, 야권은 탄핵공세를 강화하면서 경제·외교·안보위기가 갈수록 심각해지고 있다. 북한도발에 대처할 국군통수권이 실제 공백상태고, 금융시장은 연일 휘청거린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취임식(내년 1월 20일)을 40여 일 앞두고 정상외교도 올스톱됐다. 대한민국이 국정 공백상태에서 빠져나올 수 있을지 걱정이다.

2024-12-10

정치가 경제의 리스크로

우정구 논설위원 한국전쟁 후 30년 호황을 누리던 일본 경제가 1991년부터 10년간 제로 성장을 했다. 이를 두고 일본의 경제학자로 노벨 경제학상 후보에 올랐던 모리시마 미치오는 ‘정치의 무능’때문이라는 지적을 해 주목을 받았다. 그는 1993년 자민당 55년 체제가 무너지면서 정치권이 권력 다툼에 빠져 경제를 등한시 했던 것이 일본경제 몰락의 원인이라고 지적했다. 일본경제의 실패 원인을 경제 구조에서 찾지 않고 정치 구조에서 바라본 특이한 분석이다. 우리나라에서 정치가 경제를 망친다는 이야기가 나온 것이 어제오늘의 일은 아니다. 한국사회의 정상화 길을 묻는 질문에 대부분 국민들은 정치쇄신에 있다고 답한다. 작년 11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30개 회원국 국민을 대상으로 국회 신뢰도를 조사한 결과, 한국이 28위를 차지했다. “국회를 신뢰한다”는 응답이 20.5%에 불과했다. 우리 밑에는 체코와 칠레 두 나라 뿐이었다. 시간이 조금 지난 조사지만 한국개발연구원이 우리나라 각 부문의 신뢰도를 조사해 보았더니 국회·정당에 대한 신뢰도가 10점 만점에 2∼3점으로 나왔다. 각 분야별 평균 점수 4.8점에 크게 못미쳤다. 옛말에 “백성이 살기 좋으면 왕이 누구인지 관심이 없다”는 말이 있다. 공자도 잘하는 정치는 백성에게 풍요로운 식량을 제공하는 것이라 했다. 즉 잘 먹고 잘 살게 하는 것이 정치의 기본이라는 뜻이다. 윤석열 대통령이 촉발한 계엄 사태로 정국이 대혼란에 빠져들고 있다. 대통령 탄핵을 둘러싼 정치권의 다툼이 우리 경제를 불확실성 지대로 몰아가고 있다. 정치가 경제의 최대 리스크로 등장한 꼴이다. /우정구(논설위원)

2024-12-10

비운의 용두사미

강성태 시조시인·서예가 유난히 뒤숭숭해지는 세모(歲暮)이다. 날씨는 점점 추워져 스산함을 더해가는데, 국정은 희대의 비상계엄사태 여파로 난파선이 된 듯 꽁꽁 얼어붙어 진퇴양난의 대혼란과 위기에 빠져 있다. 자선냄비 종소리와 크리스마스 캐럴이 울려 퍼져야 할 길거리가, 성난 민심의 성토와 여야의 극한 공방 대자보가 볼썽사납게 대치하고 있어 차분해져야 할 연말이 흉흉하고 괴괴하기만 하다. 이 무슨 마른 하늘에 날벼락(靑天霹靂)같은 일이던가. 어쩌자고 이러한 지경에 처하게 되었던가. 도무지 납득이 안 가고 이치와 순리에도 안 맞는 처사 앞에 대다수 국민들은 망연자실 한탄하고 격분과 단호함으로 전국 곳곳에 운집하여 탄핵과 처단을 외치고 있다. 그야말로 국정마비와 파탄, 민생불안으로 이어지는 일파만파의 거대한 소용돌이가 걷잡을 수 없이 일어나면서 온나라가 요동치고 총체적 난국에 휩싸여 걱정과 조바심으로 신음하는 형국이다. 12·3 계엄 논란 이후 1주일이 지났지만 정국 수습은커녕 정국 주도권을 쥔 야당의 정부와 여당을 향한 전방위 공세로 혼란이 더욱 가중되는 양상이다. 한국의 정치 불안으로 이미 국가신용도는 떨어졌고, 탄핵 정국으로 인한 정치적 마비가 경제에도 큰 타격을 줄 것이라고 외신들은 심각한 위기를 지적하고 있다. 앞으로 이어질 사회적 불안과 정치적 긴장, 불확실성이 높아지면 경기둔화 하방 리스크와 외부 역풍이 커져서 더 큰 어려움에 직면할 수 있는 상황이라 갈수록 우려스럽기만 하다. 사태수습과 해결의 실마리는 요원한데 당장 들이닥칠 영향과 피해는 추위 마냥 살갗을 파고드니 이 무슨 엄동의 돌변이란 말인가. 정말 아닌 밤 중의 홍두깨 같은 몸서리쳐지는 일련의 사태를 겪으면서 오랜 전에 탐독했었던 명심보감 순명 편이 떠오른다. ‘때가 오면 바람이 왕발(王勃)을 등왕각으로 보내고, 운이 물러가니 벼락이 천복비를 내리친다(時來風送6ED5王閣 運退雷轟薦福碑)’는 구절로, 운이 좋아서 때를 잘 만나면 중국 당대의 문학가 왕발과 같이 이름을 드날릴 수도 있지만, 운이 다하면 가난한 서생과 같이 열심히 노력을 하더라도 좋은 결과를 얻지 못할 수도 있다는 뜻을 담고 있다. 세상사 뜻과 같지 않고 운이 따라야 함을 가르치는 교훈이라 할 수 있다. 정치적인 기반이 취약하고 경험조차 전무한데, 순풍이 왕발을 등왕각으로 보내서 ‘등왕각 서’를 지어 사람들에게 회자되는 것처럼 천운을 타고 대통령이 되었지만, 운수가 쇠퇴하면 하루 밤새 벼락이 떨어져 ‘등왕각 서’ 비석이 부서지듯이 모든 일들이 수포로 돌아가 허사가 돼버린 12·3 내란사태가 아닌가 싶다. 아무리 결연하고 단호한 뜻이라도 절대적으로 시운(時運)을 타야 이룰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물고기는 물을 타고, 새는 바람을 타며, 인간은 때를 탄다’고 했는지도 모른다. 청룡의 기세로 힘차게 출발했던 갑진년이 끝자락에 2025년 을사년 푸른 뱀의 해에 섣불리 자리를 내줘 용두사미(龍頭蛇尾)로 전락한 듯싶어 씁쓸하고 안타깝기만 하다. 운이 따르면 바람이 불고, 운이 따르지 않으면 벼락이 친다.

2024-12-10

삶의 가치관과 국가경영

정상철 미래혁신경영연구소 대표·경영학 박사 삶의 가치관은 인생을 살아가면서 무엇을 중요하게 여기고 어떤 기준과 원칙에 따라 행동하는지에 대한 신념체계이다. 삶의 목표, 행복의 기준, 올바른 선택을 결정짓는 기반이 된다. 가치관은 개인의 경험, 교육, 성장의 문화적 배경 등으로 형성되며 삶의 방향을 제시한다. 사람의 인품을 볼 때 보이는 모습만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성장 배경을 보는 이유이다. 삶의 가치관이 바르게 형성되기 위해서는 자기 이해부터 시작된다. 자신의 성격, 능력, 관심사, 한계를 정확히 아는 것이 중요하다. 삶의 궁극적인 목표나 의미를 분명히 설정하는 것이 필요하고, 타인과 공동체에 대한 배려와 책임감을 바탕으로 한 윤리적 가치가 포함되어야 한다. 일과 인간관계, 건강, 경제적 안정 등 여러 요소의 균형을 추구해야 한다. 변화하는 환경 속에서도 스스로 발전하고 학습하는 태도가 필요하고 생각과 행동이 일치하며 가치관에 따라 실천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개인 삶의 가치관은 리더십으로 잇는 실 역할이며, 국가경영으로 이어진다. 국가경영이란 국가의 안보와 국민의 복지증진, 경제 발전, 사회 통합 등을 위해 국가의 자원과 정책을 체계적으로 관리하고 운영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를 통해 국가는 지속 가능하게 발전하고 국민들이 안정된 삶을 영위할 수 있도록 기반을 마련하는 일이다. 국가 지도자가 삶의 가치관이 잘못 형성되면 사회적 변화의 흐름에 인식 오류가 생길 수 있고 판단 오류와 방향 설정이 잘못 되어 나라의 혼란을 초래할 수 있다. 국가경영을 성공적으로 수행하기 위해서는 올바른 국가 비전과 이를 실현시킬 리더십, 일관된 소신이 필요하다. 두번째, 법치주의 사상이다. 공정하고 정의로운 법 집행을 통해 국가 시스템이 투명하게 운영되어야 한다. 셋째, 국민 참여이다. 진정성의 소통과 경청하는 자세, 국민 참여의 기회가 주어져야 한다. 민주적 절차를 통해 국민이 정책 결정에 참여하여야 한다. 넷째, 효율적 행정이다. 공공 자원과 정책을 효과적으로 활용하여 경제, 사회 문화 발전을 도모해야 한다. 다섯째, 국가의 주권과 영토를 보호하고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켜야 한다. 여섯째, 지속 가능한 경제 발전과 더불어 사회적 약자를 배려하는 분배 정책이 중요하다. 이러한 국가관과 가치관이 뒷받침 될 때 나라 경영은 국민의 신뢰를 얻고 국가 발전을 이루는 기반이 된다. 최근 선진 민주주의와 K-문화로 귀감이 되는 우리 나라가 나라님의 잘못된 인식과 판단으로 상상할 수 없는 혼란 정국을 야기했다. 이것은 나라 경영자의 삶의 가치관, 판단력, 성격과 인품에서 시작되는 것은 아닐까. 나라 경영의 성공한 인물들 공통점은 국가 비전이 명확하고 국민이 공감하는 뚜렷한 목표, 청렴하고 소신 있는 태도, 사회에 선한 영향력과 도덕적 가치관을 바탕으로 삶을 이끌어 갔다는 점이다. ‘수신제가치국평천하(修身齊家治國平天下)’라는 말을 굳이 하지 않더라도 국가 경영은 올바른 삶의 가치관에서 시작되는 것이다.

2024-12-10

‘나’를 만들었던 나의 모든 ‘감정’들에 대해서

전편에서 다섯 개의 감정을 캐릭터화했던 ‘인사이드 아웃’은 영화 속 2년의 시간이 흘러 ‘인사이드 아웃2’에서 네 개의 새로운 감정이 등장한다. 정확히 12살까지는 기쁨, 슬픔, 버럭, 까칠, 소심이라는 다섯 개의 감정으로도 아이의 감정을 표현하는데, 아니 성장과정을 그려나가는데 있어서 크게 무리가 없었다. 특정한 감정이 두드러지는 것이 아니라 여러 가지의 감정들이 뒤섞이며 조율되는 과정 속에서 가족이라는 울타리 속에서의 관계화 과정을 보여주었다. 이때까지 아이에게 세상의 중심은 ‘가족’이었다. 자신이 어떻게 가족 구성원이 될 수 있었으며, 그러기 위해서는 어떠한 감정으로 상대에게 가닿아야하는지, 스스로를 어떻게 드러내야하는지에 대한 감정의 작용을 보여주었다. ‘인사이드 아웃2’는 이제 막 13살이 된 라일리의 감정에 불안이, 당황, 따분, 부럽이라는 네 가지의 새로운 감정이 추가로 등장한다. 이전의 감정들과는 색깔과 결이 다르고 감정의 표현은 조합할 수 있는 경우의 수가 늘어난만큼 예측할 수 없는 방향으로 흘러간다. 지속적이지 않으며, 일관되지 않으며 출렁임과 가라앉음을 반복한다. 바로 사춘기로 접어든 것이다. 학교를 다니고 가족이라는 울타리에서 시작해 조금씩 바깥 세상과의 접촉을 늘려가면서 아이의 세계는 확정해 간다. 확장되어가는 세계 속에서 새로운 관계가 생겨나고, 그 관계 속에서 여러가지 감정들이 뒤섞이면서 가족애와는 다른 사회화 과정이 시작된다. 영화는 이를 자신의 경험에 대한 스스로의 판단에 의해 ‘신념의 섬’이 생겨나고 이를 통해서 ‘자아’라는 나무가 자라난다고 시각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경험의 축적에 의해 거대한 저수지같은 심연의 신념에서 자라나는 자아는 영화 초반부에 푸른빛의 나무 뿌리처럼 하나의 균질한 색깔들로 묘사된다. 새로운 감정의 등장과 함께 ‘불안’이라는 감정이 지배하는 사춘기를 그리고 있는 영화 중반부부터는 주황색의 또 다른 색깔의 신념들이 자라나면서 자아는 그 색깔을 바꾸어 간다. 사춘기는 아이도 아니고 어른도 아닌 그 어디쯤이다. 성숙되기 이전, 현재의 내가 아닌 아직 오지 않은 미래에 대한 막연한 불안감과 경우의 수들이 지배하는 심리. 그 심리의 기저에 깔린 불안이라는 감정이 왜, 어떻게 작용하는가를 감정의 의인화를 통해서 영화는 보여주고 있다. 영화 속에서 독창적이면서도 흥미로웠던 것은 의식과 무의식을 처리하는 작동원리를 시각화하여 보여주고 있었다는 것이다. 살아오면서 겪었던 경험들 속에서 잊어버리고 싶었던 것들, 혹은 잊어버렸던 것들에 대한 기억이 우리의 무의식 속에서 어떻게 처리되어지고 다시 되살아 나는가에 대한 재미난 의인화를 영화가 보여주고 있다. 어른도 아니고 아이도 아닌 불안정한 상태. 나날이 몸의 변화는 빠르게 진행되어 가지만 그 속도보다 느리게 경험과 지식은 쌓여가면서 그 간격을 ‘불안’이 장악하는 시기. 확장되어지는 세계 속에서 뒤떨어지지 않으려는 안간힘과 자신을 돋보이게 하려는 발칙하면서도 무모한 시도가 곧잘 실수로 이어지던 시기를 영화는 그리고 있다. ‘인사이드 아웃1’의 주인공이며 중심 감정은 기쁨이고 2편의 중심 감정은 불안이다. 이것은 살아 온 날들보다 살아가야할 날들이 많은 라일리의 입장에서는 이전까지 키워왔던 자아로는 감당하지 못할 그 무엇의 압박으로 작용하고 신념의 섬에서 과거의 자아를 부정하며 피어올리는 또 다른 자아가 자라나는 시기, 질풍노도의 시기 사춘기를 다룬다. 결말은 역시 전편과 같이 모든 감정들은 라일리의 삶을 만들어가는데 꼭 필요한 감정들이라는 것이다. 실수하는 나와 완벽하지 않은 나와 관계 속에서 좌충우돌하는 그 모든 모습, 있는 그대로의 모든 것들이 나를 만들어가는 것이라는 결론에 다다른다. 이 모든 것들이 바로 ‘나’라는 것이다. /(주)Engine42 대표

2024-12-10

포항 연일 대표숲 ‘연일신읍수(延日新邑藪)’ 복원 가능할까?

한반도의 겨울철 날씨는 서북풍이 매우 차갑고 매섭다. 이러한 기후 조건에 대응하기 위해 사람들은 집의 입지나 공간 구조에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예를 들어, 배산임수(背山臨水)의 지형을 갖춘 곳을 주거지로 선호하거나, 서북쪽에 산이나 나무가 부족한 경우에는 나무를 심어 바람을 막았다. 또한, 산이 없는 경우에는 흙으로 언덕을 만들어 그 위에 나무를 심어 주거지를 조성하기도 했다. 좌향론적 측면에서는 겨울철에 가장 오랜 시간 동안 햇빛을 받을 수 있는 서남향을 선호하는 경향이 두드러졌다. 또한, 방위에 따라 창과 문의 크기를 조절하거나, 북향인 경우에는 겨울철에 주로 사용하는 남쪽 문을 따로 두기도 했다. 조선시대 영일현은 김정호의 대동여지도를 기준으로 보면, 현재의 연일·대송·오천·동해·호미곶 대동배·남구 동 지역·북구 두호동에서 중앙동과 용흥동을 경계로 한 남쪽 지역을 말한다. 조선시대 군현별 지도 및 조선 전도 등을 수록한 ‘여지도(보물 제1593호, 편저 및 간행일자 미상-규장각 보관)’와 조선 후기 전국 군현 지도와 그 지방 형세를 수록한 ‘지승(편저, 간행일자 미상, 규장각 보관)’을 살펴보면, 둘 다 지도의 중앙에 남성리 영일읍성(구남성)이 그려져 있고, 동쪽에 성문이 하나만 보이며, 객사와 동헌은 직각 배치 형태를 보이고 있는데, 이는 주로 읍성 안의 땅이 비좁을 때 쓰는 공간구성 방안이다. 지도 우측면에는 형산강과 칠성천 사이 솔숲이 그려져 있고 ‘북송전(北松田)’이라는 글씨가 또렷하게 쓰여져 있다. 인공숲이라는 의미로 밭을 의미하는 田(전) 자를 쓴 것으로 보인다. 또한 조선후기 편찬된 전국 군현 지도집 ‘광여도(1737(영조13)∼1776년(영조52) 간행, 규장각)’와 조선후기 편찬된 경상도 군현 지도집 ‘영남지도(1745∼1767년 제작 추정, 보물 제1585호, 규장각)’에는 둘 다 지도의 중앙에 생지리 영일읍성(고읍성)이 그려져 있는데, 읍치 뒤편 형산강과 바닷가 쪽으로 산이 그려진 것은 바닷바람과 겨울 서북풍을 막는 비보(裨補) 용도의 인공 숲 북송전으로 추정되지만 글씨가 없다. 경북마을지 상권 282쪽(생지리 마을의 역사, 경상북도·경북향토사연구협의회, 1990)에 북송전의 근거가 될 듯한 내용이 있다. “1866년 현감 南順元 때 길이 7리, 너비 5리에 달하는 지역에 나무를 심어 큰 숲을 이루었는데, 지금은 느티나무와 팽나무 7-8그루만이 남아있다. 이곳을 생마루수(藪), 또는 연일신읍수(藪)라고 부른다.” 포항시사 연일읍 생지리 마을유래에는, “넓은 들판에 세차게 불어오는 바람을 막기 위해 팽나무와 느티나무를 6-8리로 심어 큰 숲을 이루었다. 이 나무들이 형산강 수로 변경과 도시화 과정에서 농지개발 등으로 훼손되었다”고 적고 있다. 광여도와 영남지도에서 영일현청이 연일읍 생지리 고읍성에 있을 때 연일읍 생지리에 ‘북송전’으로 추정되는 인공숲이 그려져 있지만, 여지도와 지승 지도에서 영일현청이 대송면 남성리 구남성에 있을 때, 이미 생지리에 ‘북송전’이 인공으로 만들어진 것으로 보면, ‘경북마을지’와 ‘포항시사’의 내용은 기존의 인공 숲에 추가로 숲 길이를 연장하였거나 죽은 나무를 베어내고 보식(補植)을 했던지, 아니면 대체목(代替木)을 심은 것으로 볼 수도 있겠다. 숲의 길이가 6∼8리라면 2.36km…3.14km 정도의 길이인데, 경북마을지의 폭 5리는 과장된 표현 같고, 길이가 5∼7리로 추정된다.‘포항시사’에서는 폭 언급이 없으나, 1938년 조선총독부에서 조사한‘조선의 임수’에 따르면, 장기 숲 폭이 393m, 흥해 북천수 폭이 150m 인 것을 보면, 북천수 폭에 가깝지 않았을까 유추해 볼 수 있다. 실제 ‘연일신읍수’로 추정되는 연일읍 생지리를 가보니 다행스럽게도 아직 흔적이 남아 있었다. 도시계획 도로를 개설하면서 훼손하고 남은 나무들이 일부 도로변에도 남아있고 자동차학원 부지 안에도 남아 있었는데, 연일읍 농업인 상담소 뒤편 도로(연일로 145번길-생지리496) 부지 북측 3그루, 남측 2그루, 자동차 운전학원(생지리136-5) 내 3그루 등 전체 8그루로 보이는데, 수종은 팽나무 7그루, 왕버들 1그루가 훼손의 아픔을 간직한 채 연일 대표 숲 ‘연일신읍수’의 흔적으로 남아 있었다. 2020년 정부는 ‘도시숲 조성법’을 제정했고, 각 지방자치단체는 도시 열섬 완화 숲, 미세먼지 차단 숲 등을 조성하는 데 힘을 쏟고 있다. 기후 위기에 대응하기 위해 새로운 숲을 만드는 일도 중요하지만, 선조들이 기후 환경에 지혜롭게 대응했던 숲을 복원하는 일 역시 더 이상 미뤄서는 안 된다. 조상들의 슬기로 조성된 인공 숲이 국가지정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어 관광객을 부르고, 시민들의 안식처로 사용되는 사례를 살펴보자. 박상구경주대 대학원 특임교수 통일신라 진성여왕 때 함양태수 최치원이 위천의 범람을 막고자 둑을 쌓고 그 둑을 따라 나무를 심어 숲을 만든 우리나라 최초의 인공 숲이 상림공원(천연기념물 제154호)이고, 1745년(조선 영조 21) 하동도호부사였던 전천상이 강바람과 강물의 범람을 막기 위해 하동 송림공원(천연기념물 제445호)을 만들었으며, 고려말 안동김씨 김자첨이 안동에서 의성 사촌마을로 이주해 오면서 ‘서쪽이 허하면 인물이 나지 않는다’고 하여 조성한 숲이 사촌마을 가로숲(천연기념물 제405호)이다. 이들 숲의 공통점은 인공 숲이고 후대에 성심성의껏 관리해서 국가지정 천연기념물이 되어 관광객들이 휴식처로 찾는 최고의 공원으로 자리매김하였으며, 지역민들에게는 건강한 허파와도 같은 최고의 선물이 된 것이다. ‘시작이 반이다.’ 연일 대표 숲 ‘연일신읍수’복원의 그림이 해마다 더해져 소나무와 팽나무 그리고 느티나무가 어우러져 형산강과 영일만의 바람에 힘차게 가지를 부딪기를 소망해 본다.

2024-12-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