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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투리 글쓰기를 지역 문화운동으로

이상규 경북대 명예교수 전 국립국어원장 ‘훈민정음 해례’ 정인지 후서에 “사방의 풍토가 서로 다르면 소리 기운이 또한 거기에 따라 달라진다(與四方風土區別 聲氣亦隨而異焉).”고 하였다. 서울 사람, 충청도 사람, 강원도 사람, 전라도 사람, 경상도 사람, 부산 사람이 각기 독특한 기질이나 성정의 차이가 있는 것은 지리나 풍토에 따른 지역적 특성 때문이다. 흔히들 경상도 사람들의 말소리가 다른 지역보다 더 억세고 투박하고 거칠다고 느끼는 것은 경상도 말씨의 강한 높낮이 때문인데 같은 경상도에서도 바닷가 사람들의 말씨가 더욱 억세게 느껴지는 것은 그들의 말소리가 파도소리를 이겨야 하는 삶의 터전 탓일지도 모른다. 이렇게 지역 방언은 오랜 시간 동안 누적된 삶의 전통과 성정이 어우러진 것이지만 1933년 국어맞춤법통일안이 제정되면서 서울 중심, 교양인 중심의 표준어 교육이 자리를 차지하면서 방언은 저절로 금기시되었고 억제되었다. 한때 방송 언어에서조차 사투리는 사용 금지되었던 시절이 있었다. 심지어 드라마에서는 출연 인물의 신분이나 직업적 특성에 따라 특정 지역 사투리 사용자로 배정하여 방언을 계급적 상징으로 다루기도 하였다. 대구 출신 민경식 감독이 1960년에 만든 영화 ‘경상도 사나이’는 주인공 김 기자(이대엽)와 여자 친구 순경(조미령)과의 러브스토리인데 당시 인기 배우였던 조미령이 마침 마산 출신이어서 실감나는 멋진 사투리로 연기를 했던 기억이 난다. 그 후 부산을 배경으로 한 영화 ‘친구’에서 부산 사투리는 ‘조폭’의 이미지로 크게 히트되었다. 시와 소설 그리고 희곡 등과 같은 문학 장르에서 방언은 작품의 시공간적 배경이나 문학 기교의 소중한 장치로서 끊임없이 사용되었다. 한국전쟁 이후 대구 시가지 풍광을 배경으로 한 김원일의 소설 ‘마당 깊은 집’(문학과지성사)이 대표적이다. “설령 점심밥을 굶어 배가 쪼매 고푸더라도 사나이 대장부가 될라카모 그 쭘은 꿋꿋이 참을 줄 알아야제.”에서 텍스트를 이해하려면 소리를 내어 읽어야 제 맛이 난다. 경남 하동 배경의 박경리의 ‘김약국의 딸들’(다산책방)에서도 마찬가지다. “시상에, 하도 기이하고 숭칙해서 말도 몬 하겠다. 우사스러서 우찌 살겠노, 어무이하고 그 말을 할라 카다가 차마 쇠가 안 떨어지더라.”이 소설에서 종종 발견되는 ‘하-모’에서처럼 동사의 어근 ‘하-’에 접속어미 결합형인 ‘하-마, 하-모’는 경상남북도를 가르는 매우 특징적인 말투이다. 물론 경북이나 경남 화자가 아니면 미묘한 차이를 알아차릴 수 없다. 하지만 최근 딥러링을 한 AI 소리지원 시스템이 어느 정도 이 같은 방언의 느낌을 고스란히 전달할 수 있을 정도로 큰 방언적 특성이다. 이제는 문학이 단순한 텍스트 전달 방식이 아닌 소리와 관련된 풍경까지 지원하는 시대가 눈앞으로 다가오고 있다. 세종대왕 시절에 이미 간파했듯이 중국어와 조선말이 다르고, 조선 내에서도 삼남지방의 풍기가 달라 살아가는 사람들의 성정이 다르듯 그들의 말씨도 차이가 난다. 그런데 그 말소리와 꼭 같이 적을 수 있는 문자가 ‘훈민정음’이라고 했는데 사실 현재 문어와 구어는 엄청나게 차이를 보인다. 특히 방언과 같은 지역의 소리는 소리대로 적지 않았다. 구어 일치가 아니라 오로지 표준어를 중심으로 한 문어 일치로 교육을 받은 결과 지방의 토속어 정보에는 어두울 수밖에 없다. 배우 최불암이 출연한 ‘한국인의 밥상’이라는 프로그램을 즐겨 보았다. 특히 산촌이나 어촌 지역의 식재료 이름은 엄청난 차이를 보여준다. 경남 하동 읍내시장 어물전 아지매가 몸을 일으키며 “배다구 몇 마리 사가이소”라고 외친다. ‘배다구’가 생선 이름인가 했더니 ‘배다구’는 생선 이름이 아니고 배에서 고기를 잡자말자 제 자리에서 소금 간을 쳐서 말린 고기를 뜻한다고 했다. 보리숭어나 민어 등 소금에 절여 말린 고기인 배다구를 사다가 맛있게 조림을 한 밥상을 차린다. “표준어 글쓰기”의 압박으로 토박이말을 빼앗긴 우리들의 글 속에서인들 방언을 마음 편하게 사용할 형편이 아직 안 된다. 그러나 선조들의 지적 체험과 정서적 감정이 듬뿍 배어 있는 향토말인 사투리 글쓰기로 지역 소멸을 막아내는 지역 사랑운동 한번 전개해 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2024-12-23

스즈란도오리에서 봉두난발의 이상을 만나다

‘대학의 거리’이자 ‘학생의 거리’이기도 한 진보초에는 일찍부터 중국인 유학생과 조선인 유학생들이 자리를 잡았습니다. 진보초에 모인 한국인 젊은이들 중의 하나가 이상(1910-1937)입니다. 제가 한 달에 한 번 세미나를 하기 위해 방문하는 센슈대학은 그 옛날 이상이 머물던 하숙방 근처여서, 세미나가 끝나 집으로 돌아올 때면 이상의 환영과 마주치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해보기도 하는데요. 이상은 1936년 10월 하순에 도쿄에 도착하여, 1937년 4월 17일 새벽 도쿄제대 부속병원에서 숨을 거둘 때까지, 진보초에 머물렀습니다. 그 흔한 ‘장학금’조차 없이 도쿄에 간 이상의 하숙방은, 당시 한국 문단의 총아가 머물기에는 참으로 초라했던 것 같습니다. 이상은 ‘권태’에서 자신이 이 방에서 “오들오들 떨고 있을 뿐”이라고 썼으며, ‘실화’에서는 “12월 23일 아침 나는 진보초 누옥 속에서 공복으로 하여 발열하였다”고 고백합니다. 문우인 김기림은 이 곳을 “구단(九段) 아래 꼬부라진 뒷골목 이층 골방”이라고, 김소운은 “진보초 뒷골목, 햇살이 들지 않는 좁은 이층 방”이라고 묘사했는데요. 모두가 추위와 가난과 어둠의 폐색된 이미지로 가득 차 있네요. 변동림과 결혼한 지 몇 개월밖에 되지 않았으며, 폐결핵이라는 불치병까지 앓았던 이상은 왜 진보초의 골방까지 가야만 했을까요? 1936년 시점에 도쿄란 오늘날처럼 저가 항공을 타고 2시간 30분이면 도착할 수 있는 곳이 아닙니다. 변동림은 남편의 임종을 지키기 위해, 경성에서 출발해 “열두 시간 기차를 타고 여덟 시간 연락선을 타고 또 스물네 시간 기차를 타고”서야 도쿄에 도착했다고 합니다. 이상은 작가였기에, 그의 진실은 작품을 통해 확인하는 수밖에 없는데요. 이상은 그 곤궁한 일본에서도 창작의 붓을 놓지 않고, 소설 ‘종생기’와 ‘실화’, 산문 ‘19세기식’과 ‘권태’ 그리고 몇 편의 편지를 남겼습니다. 이 중에서도 도쿄를 배경으로 한 유일한 소설인 ‘실화’는 ‘진보초의 이상’을 이해하는데 매우 중요한 작품입니다. 이상의 ‘실화’를 관통하는 것은 ‘비밀’입니다. 작품에는 “사람이 비밀(秘密)이 없다는 것은 재산(財産) 없는 것처럼 가난하고 허전한 일이다.”라는 문장이 세 번이나 반복됩니다. ‘나’는 죽음까지 약속했던 ‘연(姸)이’의 ‘비밀(불륜)’을 알고서는 강한 죽음 충동을 느끼다, 결국 진보초의 골방까지 건너갑니다. ‘비밀’은 ‘비밀’일 때만 의미가 있지만, ‘나’는 결코 연의 ‘비밀’을 ‘비밀’로 봉인할 수 없었던 겁니다. ‘내’가 ‘비밀’을 ‘비밀’로 간직할 수 없는 이유는 “슬플밖에·20세기(世紀)를 생활(生活)하는데 19세기 도덕성(道德性)밖에는 없으니 나는 영원(永遠)한 절름발이로다.”라는 말에서 알 수 있듯이, ‘19세기식 도덕’과 ‘20세기의 생활’ 사이에서 분열돼 있기 때문입니다. ‘나’는 이러한 분열을 자신의 한계 이전에 경성의 한계로 받아들인 것이고, 그렇기에 ‘19세기식 도덕’과는 무관해 보이는 ‘20세기식 생활’을 향해 목숨을 건 탈출을 시도했던 것은 아닐까요? 그래서인지 ‘내’가 도쿄에서 보려고 하는 것은 오직 ‘모던’에 관련된 것들 뿐입니다. 특히 ‘20세기식 생활’에 대한 관심은 스즈란도오리에서 가장 잘 나타나는데요. 은방울꽃 모양의 가로등(すずらんとう, 鈴蘭706F)에서 유래한 스즈란도오리는, 당시 근대문명의 본산인 영국의 런던에까지 이어지는 ‘20세기 생활’의 상징으로 등장합니다. 본래 스즈란도오리는 ‘환상의 차이나타운’으로 불릴 정도로 중국인들이 많이 살던 곳입니다. 진보초 근처에 중국인유학생회관 등이 생기면서 많은 중국인들이 모였고, 그들을 상대로 한 음식점 등이 이 거리에 집중적으로 생겨난 겁니다. 이 무렵 진보초의 스즈란도오리에 머물렀던 사람 중에는 루쉰이나 주은래 등의 유명인도 있습니다. 그러나 ‘20세기식 생활’을 목마르게 찾는 ‘내’가 원하는 것은 오직 ‘모던’이며 ‘서양’일 뿐니다. 이러한 사정은 섣달 대목을 맞아 곱게 장식한 스즈란도오리에서 “최후의 이십 전을 던져 타임스판 상용영어 사천자라는 서적”을 사는 모습에 잘 나타나 있습니다. 밥을 굶어가면서 마지막 남은 돈으로 영어사전을 살 정도로, ‘20세기식 생활’을 갈망했지만, ‘나’의 시도는 실패로 돌아갑니다. 이경재 숭실대 교수 실패의 이유는 근대도시로 발돋음하기 시작한 지 고작 반세기가 조금 지난 도쿄가 ‘20세기식 생활’만으로 가득할 리가 없기 때문입니다. 이상이 임종할 무렵 주변 사람들이 ‘프랑스식 코페 빵’을 구해다 줘도, ‘진짜’가 아니라며 짜증을 냈듯이, 도쿄에 진짜 ‘20세기식 생활’이 존재할 까닭이 없는 겁니다. 설령 이상이 도쿄가 아닌 파리에 간다고 해도, ‘진짜 프랑스식 코페 빵’을 찾을 수는 없겠죠. 이러한 사정은 작품 속에서 조선을 향한 향수를 달래라며 C양이 ‘나’의 양복 주머니에 꽂아준 ‘백국(白菊)을 잊어버리는 것(失花)’으로 드러납니다. 과연 저는 이상이 진보초의 골방까지 건너와 오들오들 떨다 죽어야만 했던 ‘비밀’을 풀어낸 걸까요. 이상의 삶과 작품은 밀도가 높아, 누구의 해석도 하나의 가능성으로 남겨질 수밖에 없는 운명인데요. 혹시 진보초의 어두운 뒷골목에서 봉두난발의 이상을 만난다면, 당신이 영란등 아래서 그토록 찾아 헤맨 것은 무엇이었는지 묻고 싶습니다.

2024-12-23

‘반민주세력’ 간판이라도 걸고 싶은가

김진국 고문 윤석열 대통령이 헌법재판소가 보낸 서류를 계속 거부한다. 지난 주말까지 다섯 차례다. 수사기관들의 출석 요구서도 받지 않는다. 대통령 비서실도, 관저의 경호원들도 ‘수취’를 거절한다. 그런데도 대통령이란 직위 때문에 경호의 벽을 넘지 못한다. 계엄 해제 직후 “법적·정치적 책임을 피하지 않겠다”라고 한 약속은 팽개쳐 버렸다. 당당하지 못하다. 쪼잔한 잔꾀로 배달원을 돌려보내는 분이 우리 대통령이라는 게 창피하다. 소송에서 유리하기 위해 합법적인 수단을 쓰는 게 왜 나쁘냐고 할 수도 있다. 그렇지만 그는 대한민국의 대통령이다. 개인의 이익을 위해 대통령만 가진 특권을 활용해 꼼수를 부리는 모습이 애처롭다. ‘공정’을 실현할 대통령으로 기대했던 국민으로서 허탈하다. 법적 소송만 해결하면 끝나는 일인가. 그보다 더 큰 문제는 국민 신뢰다. 국민이 믿지 못하면 정치인으로서 생명이 끝난다. 윤 대통령의 처신도 개인적으로 초라하고 궁상맞은 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그를 지지한 국민까지 참담하고 부끄럽게 만든다. 윤 대통령은 탄핵 심판과 내란죄 소송이 걸려 있다. 말을 아낄 수 있다. 그렇지만 이미 TV카메라 앞에서 하고 싶은 말을 다 하지 않았나. 그 많은 말 가운데 정작 국민이 기대한 사과는 없었다. 계엄 모의자를 제외한 온 국민이 충격받았다. 역사가 다시 1960년대, 80년대로 역주행했나 당황했다. 무장한 군인들의 움직임을 지켜보며 불행한 역사를 반복하는 건 아닌지 불안했다. 국민에게 사과부터 하는 게 도리다. 왜 그런 일을 벌였는지, 솔직하게 설명해야 한다. 그런데 사과는 없었다. 반성하는 말도 없었다. 왜 그런 일을 벌였는지 정직하게 털어놓지도 않았다. 그의 지시를 받은 지휘관들의 증언과는 전혀 상반된 변명만 늘어놨다. 모든 책임을 정적에게, 부하에게 떠넘겼다. 5천만 국민이 TV로, 유튜브로, 실시간으로 다 지켜봤다. 이제 와서 그것을 어떻게 뒤집겠다는 건가. 국민의힘은 또 어떤가. 비상계엄을 해제하는 데 동참한 동료의원을 ‘색출’하겠다고 한다. 다시 군사 독재라도 해야 한다는 생각인가. 스스로 쿠데타 세력이라고 자복하는 꼴이다. 그 입으로 어떻게 민주주의를 말할 수 있나. 대통령에게 의리를 지키려는 마음은 이해한다. 윤상현 의원은 그래야 의리 있다고 하고, 표도 준다고 말했다. 그렇지만 이게 의리로 따질 문제인가. 대한민국의 헌법 질서를 흔들었다. 민주주의를 거꾸로 돌릴뻔했다. 아무리 자기 편이라도 감싸는 데는 한계가 있다. 민주화를 위해 얼마나 많은 피와 땀을 흘렸는데…. 근대화 업적을 인정하는 것과 민주주의 체제를 뒤집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다. 윤 대통령은 검사 시절 “사람에게 충성하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그래서 윤 대통령이 보수의 후보가 될 수 있었다. 잘못한 일이 있으면 비판하고, 바로 잡을 수 있는 보수라야 지킬 가치가 있다. 무조건 권력자에게 충성하는 것은 왕조시대나 북한, 조폭들이 더 잘한다. 민주주의는 국민이 먼저다. 미래를 생각해야 한다. 어떤 나라를 만들어 자식들에게 물려줄 건가. 당장 우리 편의 잘못을 지적하고, 처벌하면 쓰리고 아프다. 그렇지만 곪은 것은 짜고, 도려내야 새살이 돋는다. 그래야 건강한 나라를 물려줄 수 있다. 어느 정당이나 연상되는 상징이 있다. 보수 정당에 쿠데타 정당, 군사정부 정당, 반의회주의 정당이라는 낙인이라도 찍고 싶은가. 야당을 외면하고, 자기 목소리를 내는 여당 대표는 모두 쫓아냈다. 쿠데타를 위한 준비로 보지 않겠나. 선거 부정 의혹이 있다면 헌법 질서 속에서 합법적으로 해결하는 게 옳다. 부정선거가 있었던들 무력으로 탈취한 서버는 증거로 쓸 수도 없다.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민주주의를 파괴한다는 게 제정신인가. 윤 대통령의 지지도가 폭락했다. 이제 국민의힘 지지율마저 민주당의 반토막으로 추락했다. 여론이 무엇을 요구하는지 아직도 모를까. 내 국회의원 배지만 지키면 된다는 건가. 소수 극우세력끼리 의리로 똘똘 뭉쳐 봐야 무엇을 할 수있나. 어차피 곧 치러야 할 대선은 어떻게 할 건가. 이러다가 다음 총선은 개헌선까지 내주기 십상이다. 김진국 △1959년 11월 30일 경남 밀양 출생 △서울대학교 정치학 학사 △현)경북매일신문 고문 △중앙일보 대기자, 중앙일보 논설주간, 제15대 관훈클럽정신영기금 이사장,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부회장 역임

2024-12-22

임금체불 없는 세상을 꿈꾸며

김진하 포항고용노동지청장 여러 언론기관에서 보도된 것처럼 2023년 체불근로자 수는 약 27만명, 임금체불 발생액은 약 1조8000억으로 역대 최고 수준을, 올해 상반기 체불근로자 수는 15만여 명, 임금체불액은 1조400억여 원으로 상반기 기준 최대 수준을 기록하였다. 임금체불이 근로자 개인에게 주는 금전적 손실 외에 가족에게 주는 심각한 경제적·심리적 영향 등 부작용을 잘 알고 있기에 지역 고용노동정책을 집행하는 기관의 책임자로서 고민이 깊어질 수밖에 없다. 임금체불은 경기부진의 영향을 가장 크게 받고 있으므로 상대적으로 경기가 좋지 않은 업종 중심으로 체불사건 접수가 늘고 금액이 커질 수밖에 없다. 우리 지청에 2022년 접수된 신고사건이 5188건에서 2023년 5730건으로 10.4% 증가한 것과 건설업과 제조업의 신고사건 비중이 51.5%를 차지한 사실은 경기가 전반적으로 좋지 않고 특히 건설업과 제조업의 경기가 더 좋지 않음을 보여주고 있는 방증이기도 하다. 지난 9월 23일 ‘상습 임금체불을 뿌리뽑기 위한 근로기준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했고, 개정된 근로기준법(시행일 2025년 10월 23일)은 상습 임금체불 사업주에 대한 경제적 제재 및 실효성 강화를 위한 제도적 장치를 포함, 상습 체불 사업주의 도덕적 해이에 강력히 대처할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됐다. 개정된 근로기준법은 △상습 임금체불 사업주에 대한 신용제재, 정부지원 등 제한, 공공입찰 시 불이익 등 경제적 제재 강화 △현재 퇴직자에게만 적용되는 미지급 임금 지연이자(100분의 20)의 재직 근로자 적용 △2회 이상 형사처벌을 받은 명단공개 사업주가 다시 임금을 체불하는 경우 반의사불벌죄(근로자가 원하면 사업주를 형사처벌하지 않음) 미적용 △명단공개 사업주가 체불임금을 미청산한 채 해외로 도피할 수 없도록 법무부장관에게 출국금지 요청가능 △상습 체불 등으로 손해를 입은 근로자가 법원에 손해배상(3배 이내의 금액)을 청구할 수 있게 하는 등 상습적인 체불 근절에 대한 정부와 국회의 의지를 반영하고 있고, 필자도 경영자협회 및 사업주 단체를 대상으로 개정 근로기준법에 대한 지도 및 홍보에 적극 나서고 있다. 올해 우리 지청은 사업주 등 인식개선을 통한 임금체불 예방, 발생한 체불임금의 신속 청산을 위한 집행 메커니즘 강화 등 임금체불 근절에 행정역량을 집중했다. 먼저 사업주 등 인식개선을 위해 신고사건 비중이 가장 높은 건설업, 제조업 등에 감독역량 집중, 노사단체 간담회, 상시 근로자 30인 미만 영세 사업장·특성화고 재학생·외국인 근로자 대상 맞춤형 노동법 교육 등을 실시했고, 상습·악의적 체불 사업주에 대한 체포·구속영장 등 강제수사 원칙 견지, 기관장의 고액·집단 체불 사업장 현장지도 등 임금체불 예방 및 청산 노력을 한층 강화했다. 이런 노력의 결과로 임금체불 지도해결율이 2023년 42.8% 대비 올해 12월 둘째 주 기준 61.8%로 높아진 것은 업무추진 방향성이 틀리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우리지청은 내년에도 사업주 등 인식 개선을 통한 임금체불 예방과 발생한 체불임금의 신속한 청산을 위해 꿋꿋이 노력할 것이다. 무엇보다 사업주분들이 임금체불이 근로자 및 지역경제에 미치는 악영향을 충분히 인지하고 임금체불 없는 건강한 일터 만들기에 최선의 노력을 해주시길 당부드린다.

2024-12-22

내 안의 ‘아이히만’을 경계하자

유영희 작가 “펄롱은 미시즈 윌슨을, 그분이 날마다 보여준 친절을, 어떻게 필롱을 가르치고 격려했는지를, 말이나 행동으로 하거나 하지 않은 사소한 것들을, 무얼 알았을지를 생각했다. 그것들이 한데 합해져서 하나의 삶을 이루었다.” 요즘 상영하고 있는 영화 ‘이처럼 사소한 것들’의 동명 소설에 나오는 한 문장이다. 주인공 빌 펄롱은 미혼모의 아들로 태어났는데 어머니마저 일찍 돌아가셔서 윌슨 부인의 집에서 자랐다. 영화에서는 펄롱이 딱한 아이들을 그냥 지나치지 못하는 친절한 사람으로만 표현되어 있는데, 소설에서는 일상의 반복을 넘어서는 의미 있는 삶을 살기 위해 고민하는 흔적이 보인다. ‘마흔을 바라보는 나이가 되었는데 어딘가로 가고 있는 것 같지도, 뭔가 발전하는 것 같지도 않았고, 때로 이 나날이 대체 무슨 의미가 있나 하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다’고 독백한다. 결국 펄롱은 부모에게 버림받고 수녀원에서 학대받는 미혼모를 구한다. 누구나 펄롱과 같은 선택을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인간이 타고나면서 선하다는 것은 동서양의 공통된 전통이지만, 현실의 인간은 이기적이고 심지어 사악하기까지 하다. 선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그런 인간의 본성을 거슬러야 한다. 그러니 선을 실현하려면 부단한 노력이 필요하다. 한편, 아돌프 아이히만은 세계 제2차대전 때 수백만 명의 유대인을 게토와 학살수용소로 추방했던 나치 전범이다. 한나 아렌트는 아이히만의 악함에 대해 그가 본래 악인이어서가 아니라 자신이 속한 세계와 그 안에 사는 사람들을 함께 생각하는 능력이 없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체포된 후 아이히만은 총통 체제에서 상급자의 지시를 따랐을 뿐이라고 자신을 합리화했지만, 한나 아렌트는 그가 나치에 협력한 것은 무사유의 결과라고 진단하면서 세계와 세계 안에 사는 사람에 대한 앎을 위해 노력하지 않았다고 비판한다. 영화로 돌아가면, 펄롱이 딱한 아이들에게 작은 친절이라도 베푼 것, 미시즈 윌슨이 하지 않은 사소한 것의 의미를 깨달을 수 있었던 것 모두 펄롱이 사유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런 비판이 아무리 정당해도 현실에서 사유하는 인간이 되기는 어렵다. 처음부터 사유하기에 관심이 없는 사람도 있겠고, 사유하다가 자기에게 닥칠 위험을 감지하고 포기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미혼모를 데리고 집으로 들어오는 펄롱의 얼굴에 번지는 미소는 앞으로 그에게 닥칠 고난을 극복할 수 있으리라는 희망을 준다. 고위 장성들이 12·3 비상계엄에 가담한 것이 밝혀지고 있다. 김대우 방첩사 수사단장은 국회 국방위원회에서 여인형 전 방첩사령관에게서 구금 시설과 체포 지시를 받았다고 증언했다. 그러나 그 역시 명령을 거부하는 소령을 구타하여 버스에 강제로 타게 한 사람이다. 그렇다고 그의 증언을 형량을 낮추려는 꼼수라고 폄하할 수만은 없다. 어쩌면 뒤늦은 사유의 결과일 수도 있다. 이번 사건을 통해서 현실의 안락을 위해 무사유를 선택한 결과가 사유의 고통보다 더 크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그를 통해 내 안에 도사리고 있는 아이히만을 경계해야 한다는 교훈을 얻는다.

2024-12-22

다시 찾아온 크리스마스

우정구 논설위원 기독교 전통에 따르면 크리스마스 선물은 세 명의 동방박사가 아기 예수에게 선물을 준 데서 유래했다고 한다. 어린아이들은 지금도 크리스마스가 되면 산타 할아버지가 와 선물을 주고 갈 거라고 믿는다. 그리스도 탄생을 기념하는 종교적 의미의 크리스마스 날이지만 이제 이날은 대중 모두가 즐기는 세계적 명절로 변했다. 크리스마스 선물은 명절을 축하하며 한해를 보내는 서로에게 감사와 사랑을 표현하는 관습으로 자리 잡았다. 작지만 정성이 담긴 크리스마스 선물은 한해를 보내는 아쉬움을 달래주는 소중한 정표다. 1906년 오 헨리가 발표한 단편소설 ‘크리스마스 선물’은 크리스마스 선물의 의미를 잘 담고 있다. 가난하지만 서로 사랑하고 살아가는 부부의 이야기는 이렇다. 남편에게는 할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시계가 유일한 자랑거리다. 아내는 길고 아름다운 황금색 머리카락을 자랑으로 살아가고 있다. 크리스마스를 맞아 부부는 서로에게 선물을 준비한다. 가난한 살림 때문에 아내는 고민 끝에 자신의 머리카락을 잘라 남편의 시계에 어울리는 시곗줄을 산다. 남편은 자신의 시계를 팔아 아내 머리를 빗을 멋진 머릿빗을 산다. 서로가 선물을 받아보면서 이제 각자에겐 소용이 없게 된 선물 앞에 눈물을 흘린다. 그렇지만 두 사람의 순수한 사랑은 큰 감동으로 울려온다. 크리스마스가 종교적 의미로 시작했지만 나라와 가정마다 축제로 이어진 것은 어려운 이웃을 돌보는 것과 같은 순수한 사랑이 있기 때문이다. 내일이 크리스마스 이브. 국민을 편가르고 사생결단식 싸움에 매몰된 한국 정치인에게 크리스마스는 어떤 의미로 존재하는 것일지 궁금하다. /우정구(논설위원)

2024-12-22

여성 시대

▲ 김규종경북대 교수·인문대학 12월 14일 대통령 탄핵소추가 가결된 후 다소 낯선 풍경이 눈길을 잡는다. 야권 6당 대표들이 국회 앞에 모인 시위대에게 인사말을 하는 자리였다. 그런데 발언권을 가진 대표자 6명 가운데 3명이 여성이다. 아, 우리나라가 많이 바뀌었구나, 하는 생각이 찾아드는 순간이다. 여성들의 ‘넘사벽’ 가운데 하나가 정치 영역인데, 그것도 어느새 변했구나, 하는 깨달음. 동서양 신화에서 최초로 등장하는 신은 예외 없이 여신이다. 그리스 신화의 가이아가 그렇고, 동북아시아 신화인 ‘천궁대전’에 등장하는 ‘아부카허허’가 그러하다. 제주도의 설문대할망 역시 여신이다. 이들 여신은 모두 창조신으로 온갖 생명을 세상으로 내보내는 근원적인 탄생의 주관자들이다. 그들이 있었기에 인간세계 또한 가능했던 셈이다. 12월 3일 밤 불시(不時)에 터져 나온 ‘비상계엄’으로 온 나라가 혼란과 암흑으로 빠져드는 시점에 계엄군의 총부리를 맞잡고 “부끄럽지도 않아!” 대갈일성 내지른 이는 30대 여성이었다. 그 후의 사태 진전에서도 여성들의 발길은 이어지고 있다. 최근 통계는 12월 7일과 14일에 거리로 광장으로 국회 앞으로 나온 시민들 가운데 27.6%가 20∼30대 여성이라고 알린다. 계엄 상황을 지켜보면서 맨 먼저 찾아온 생각이 왜 젊은 여성들의 시위 참여가 현저한가, 하는 문제였다. 무엇이 저들을 한겨울 맹추위를 무릅쓰고 거리로 나오게 한 것일까, 하는 것이었다. 그들 중에는 유모차를 끌고 나온 여성도 적잖았다고 언론은 전한다. 100만 인파 속에서는 혼자 몸도 버거울 텐데 유모차를 대동해서 겨울 한복판으로 나온 여성들이라니?! 나는 그들의 내면 깊은 곳에 세 가지 사건이 자리한다고 여긴다. 2002년 6월 월드컵 열기에 묻혀버렸다가 연말에 되살아난 ‘미선이-효순이 사건’이 첫 번째다. 당시 중학교 2년생이었던 그들은 길을 가다 속수무책으로 불귀의 객이 되었으나, 미국 고위층의 공식적인 사과나 위로 하나 받은 적 없다. 그로 인한 공분(公憤)을 공유한 세대가 지금 30대 중후반 여성들이다. 10년 전 4월 16일 벌어진 한낮의 참극 ‘세월호 대참사’에서 단원고교 2학년생 250명이 우리 눈앞에서 수장(水葬)되었다. 차마 저것이 21세기 대한민국에서 벌어진 사건이라는 충격적인 사실을 인정하기에 아주 오랜 시간이 걸렸던 대참사. 그들이 살아있었다면 올해 27살의 혈기방장한 청춘으로 세상살이 초년생으로 세상의 비의(秘義)를 배워나갈 시점이리라. 2년 전 2022년 10월 29일 일어난 ‘이태원 참사’도 빼놓을 수 없다. 159명의 사망자와 195명의 부상자를 낳은 안타까운 사건이 ‘이태원 참사’다. ‘이태원 참사’에 대해 현 정권은 온전한 사과나 책임자 처벌을 하지 않은 채 오늘에 이르렀다. 참사 희생자들 대부분이 청년층이었음을 우리는 기억하고 있다. 이들 세 가지 사건의 중심에 20∼30대 청년들이 자리한다. 여성은 생명을 향한 강렬한 애착과 보호하려는 열망이 있다. 생명을 잉태하고 보육하는 최고 책임자로서 여성은 생명의 주관자로 생동한다. 젊은 여성들이 맨손으로 무력에 대항하는 장면은 진정 아름답고 숭고한 것이 무엇인지 새삼 돌아보게 한다. 한국은 바야흐로 여성 시대다!

2024-12-22

미술은 시대를 반영한다

미술은 시대를 반영한다. 미술이 시대만을 반영하는 것은 아니지만, 미술은 시대도 반영한다. 그래서 때로는 미술을 시대를 비춰주는 거울이라 부르기도 한다. 이처럼 미술이 시대와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기 때문에 그 안에서 시대성과 역사성을 읽어 낼 수 있다. 미술이 변화해온 역사적인 자취를 되짚어 보면, 특히나 시대상과 아주 밀착된 미술이 발견된다. 18세기 중반에서 19세기 초반, 대략 1750년 무렵에서 1800년까지의 시기를 미술사에서는 ‘신고전주의’라고 부른다. 클래식이라고 부르는 고전주의는 고대 그리스와 로마의 예술을 모범으로 한다. 이미 15세기 이탈리아에서 고대를 모범으로 한 ‘르네상스’가 일어난 적이 있다. 르네상스를 고전주의라 부를 수 있기 때문에 그것과 구분하기 위해 18세기 중반 다시 한 번 일어난 고전주의를 ‘신고전주의’라고 부른다. 유럽인들은 학문이나 문학 혹은 예술 등 많은 정신문화 영역에서 자신들의 뿌리를 고대에서 찾았다. 고대 그리스와 로마는 유럽 문화의 근간이었고, 이런 이유로 유럽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고대에 대한 지식이 어느 정도 필요하다. 18세기 유럽인들을 흥분에 빠트린 사건이 일어났는데, 서기 79년 8월 24일 이탈리아 남부의 베수비오 화산이 폭발하면서 삼켜버린 고대 로마의 도시 폼페이와 헤라쿨라네움이 발굴된 것이다. 고고학적 발굴은 이제껏 책을 통해 간접적으로만 경험했던 고대의 유적을 직접 볼 수 있는 굉장한 기회를 제공해 주었다. 유럽 각국의 귀족들은 발굴 현장을 방문하기 위해 열광적으로 이탈리아로의 먼 여행길에 올랐다. 이 때 유행한 고대 유적지로의 여행을 ‘그랜드 투어’라고 부른다. 그랜드 투어에 올랐던 여행객들은 방문 현장에서 그곳의 풍경이 그려진 그림을 기념품으로 구매해 집으로 돌아갔다. 이것이 풍경화의 발달에 중요한 영향을 끼쳤다. 고대에 대한 증폭된 관심은 과도할 정도로 화려했던 바로크를 시들게 했다. 대신, 독일의 미술사학자 요한 요아킴 빙켈만의 표현처럼, ‘고귀한 단순함’과 ‘고요한 위대함’을 지닌 고대 미술의 이상적인 아름다움을 재발견했다. 이상화된 균형과 조화로운 아름다움, 불필요한 장식과 과도한 감정표현을 절제하면서 단순하지만 고결한, 내적 평온함과 존엄성을 추구한 신고전주의 양식이 나타났다. 신고전주의 미술을 대표하는 미술가는 프랑스의 자끄 루이 다비드(1748∼1825)이다. 다비드는 프랑스의 왕 루이 16세로부터 의뢰를 받아 1784년 로마에서 자신의 대표작이 될 ‘호라티우스 형제들의 맹세’를 완성했다. 화가는 고대 로마의 역사가 리비우스의 저서 ‘로마사’에 기록된 이야기에서 작품의 주제를 찾았다. 기원전 7세기 로마는 이웃해 있는 도시 국가 알바 롱가와 무력 충돌에 직면했다. 두 국가는 막대한 피해가 불가피한 전쟁 대신, 대표를 뽑아 결투를 시킨 후 승자를 결정하자는데 합의를 했다. 로마는 호라티우스 가문의 삼형제를, 알바 롱가는 쿠리아티우스 가문의 삼형제를 대표로 선발했다. 그런데 문제가 있었다. 호라티우스 가문의 딸 카밀라가 쿠리아티우스 형제 중 한 사람과 약혼한 상태였기 때문이다. 승리에 관계 없이 이 결투는 두 가문 모두에게 비극적인 결말을 가져다 줄 것이다. 결국 결투에서 승리한 것은 로마였다. 호라티우스 형제들 중 유일한 생존자가 집으로 돌아 왔을 때 여동생 카밀라는 약혼자의 죽음을 슬퍼하며 로마의 승리를 기뻐하지 않았다. 이것을 국가에 대한 배신으로 여긴 그는 자신의 칼로 여동생을 처단했다. 이 비극적인 이야기는 국가에 대한 의무와 애국심 그리고 개인이 겪게 되는 사적인 감정 사이의 충돌과 갈등을 상징적으로 드러낸다. 호라티우스는 국가에 대한 충성을 선택하는 대신 가족의 희생을 선택했다. 카밀라의 죽음은 전쟁의 잔혹함과 그로 인한 인간적 고통을 강조하는 한편, 국가의 승리 이면에 숨겨진 개인의 희생과 비극을 보여주기도 한다. 이 이야기의 주제는 분명해 보인다. 국가와 공공의 이익을 위해 개인의 감정은 희생될 수 있다. 이것이 고대 로마의 미덕이었다. /미술사학자  김석모

2024-12-22

자연의 맛, 겨울 바다의 선물 ‘파래’

겨울 바다의 찬 바람이 스쳐 지나갈 때쯤, 파래는 가장 신선한 모습으로 우리 식탁에 오른다. 겨울철 파래는 자연이 준 선물처럼 바다의 향과 푸르름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파래는 수온이 낮아지는 11월부터 2월 사이 가장 활발히 자란다. 겨울철의 차가운 물은 파래가 자라기에 최적의 환경을 제공하며, 이 시기에 채취한 파래는 그 향과 맛이 특히 뛰어나다. 봄의 방풍나물이라면 겨울 파래는 마치 봄나물의 풋풋함을 만나듯 차가운 이 계절의 무거운 입맛을 단숨에 되살려 준다. △ 양식 기술로 널리 퍼진 파래의 매력 파래는 자연산과 양식으로 나뉘며, 각각의 매력을 가지고 있다. 자연산 파래는 파도의 힘을 이겨내며 자라는 덕에 바다의 짠맛과 향이 진하고, 그 자체로도 자연의 풍미를 고스란히 담고 있다. 하지만 생산량이 적고 지역과 시기에 따라 품질이 달라지니 늘 맛보기란 쉽지 않다. 반면, 양식 파래는 양식 기술의 발달로 안정된 품질과 합리적인 가격을 자랑하며, 바닷가가 아닌 도심에서도 신선하게 즐길 수 있게 해주었다. 이 기술이 없었다면 아마도 파래는 지금처럼 대중적인 식재료가 아니라 특별한 계절의 미각으로만 남아 있었을지도 모른다. 양식 덕분에 우리는 바다의 맛을 일상에서도 느낄 수 있고, 고른 품질의 파래를 합리적인 가격에 만날 수 있기 때문에, 집에서도 쉽게 파래무침을 해 먹을 수 있으니 얼마나 다행인가. △ 말린 파래의 색다른 요리 변신 말린 파래는 건어물 코너에서 큰 직사각형의 형태로 쉽게 구할 수가 있다. 먹기 좋은 크기로 뜯은 후 기름 두른 팬에 바삭하게 볶은 다음 설탕과 맛소금을 살짝 뿌리면 간단 하지만 입맛을 돋우는 별미 반찬으로 완성된다. 두 번째로, 건조 파래를 맛나게 요리하는 추천 방법은 ‘건조 파래무침’이다. 커다란 볼에 마른 파래를 넣고 올리브 오일과, 물엿, 진간장, 깨소금을 넣고 양념이 배도록 조물조물 주물러 준다. 양념이 파래 속으로 고루 배여 들면 송송 썬 청고추, 홍고추를 넣고, 참기름을 넣어 한번 더 섞어 마무리해 주면 된다. 건조 파래무침의 맛은 쫄깃하고 양념이 주는 감칠맛에 밥 한 그릇이 순식간에 뚝딱이다. 또한, 건조 파래무침은 윤기 나는 검은빛에 청, 홍고추의 색감이 어우러져 품격 있는 밥상의 반찬으로도 손색이 없는 반찬으로 변신 된다. 그 외에도 건조 파래는 커터기에 갈아서 비빔국수 또는 볶음밥 위에 뿌리기만 해도 휼륭한 장식이자 맛을 더하는 비법이 된다. △ 파래, 바다에서 온 슈퍼푸드 저렴하지만 그 맛과 영양은 결코 가볍지 않은 파래는 저칼로리 식품으로, 식이섬유와 미네랄, 특히 칼슘과 철분이 풍부해 성장기 아이들부터 어르신까지 누구에게나 좋은 식재료이다. 또한 파래에 함유된 요오드는 갑상선 건강에 도움을 주고, 풍부한 비타민A와 C는 면역력을 강화시켜 겨울철 건강 관리에 탁월하다. 특히, 해조류 특유의 클로로필 성분은 해독작용과 장 건강에 기여하여 몸을 가볍게 만들어 준다. △ 파래가 자라는 환경과 산지 이야기 파래는 얕은 바다나 갯벌에 부착하여 자라며, 깨끗한 해양 환경에서 잘 번성한다. 주요 산지는 깨끗한 바다와 조석 간만의 차가 크고 염분과 영양분이 적절히 공급 되는 곳에서 잘 자라기 때문에 한국, 일본, 중국을 포함한 동아시아의 연안 지역에서 주로 생산된다. 한국은 특히 조석 간만의 차가 큰 지역에서 채취가 활발하여 우리나라에서는 전라남도 완도, 고흥, 진도 등지에서 고품질의 파래가 생산 된다. 파래는 손으로 직접 채취하거나 장대로 긁어내는 방식을 사용한다. 채취한 파래는 신선도를 유지하기 위해 빠르게 해수에 세척하고 분류하는 과정이 뒤따른다. 신선도가 중요한 만큼 산지에서 빠르게 유통망으로 보내지거나, 가공을 위해 별도로 처리된다. “바다의 싱그러운 맛을 간직한 파래로 겨울 밥상을 풍성하게 채워 보세요 ” △ 상큼한 파래무침 만들기 재료 파래 300g, 무 300g, 다진 마늘 1큰술, 상큼 소스(설탕 250g, 식초 250g, 액젓 100g, 물 150g) 만드는 방법 1. 파래 손질하기 : 신선한 파래는 푸른빛이 선명하며, 특유의 바다향이 강하다. 씻을 때 너무 오래 물에 불리지 말고, 물에 여러번 흔들어 헹궈 모래와 불순물을 제거한 다음 물기를 꼭 짜서 준비한다. 2. 무 절이기 : 무채는 길이 5센티 정도 가늘게 채 썰어 식초 3큰술, 설탕 3큰술 넣어 10분 정도 절여준 다음 물기를 적당히 없애 준비한다. 3. 소스 만들기 : 설탕 250g, 식초 250g, 액젓 100g, 물 150g을 섞어 상큼한 소스를 준비한다. 4. 양념하기 : 큰 볼에 파래, 절인 무, 마늘 한 큰술을 넣고 상큼 소스를 적당량 부어가며 버무린다. 5. 마무리 : 마지막으로 통깨, 참기름 한 큰술을 넣어 마무리한다. 박정남 전통음식칼럼니스트 TIP : 상큼함을 더하는 무 절이기 비법 무를 절일 때 소금대신 식초와 설탕을 사용하면 파래 무침이 짜지 않고 더욱 상큼하게 즐길 수 있다. 박정남 전통음식칼럼니스트 △대구가톨릭대학교 대학원 외식산업학 박사 △안동 1호 조리기능장 △안동종가음식체험관 연구원장 △대구가톨릭대학교 산학겸임 교수 △(주)예미정별채 수석셰프 겸 대표

2024-12-22

올해 ‘새로운 안동’으로 미래 100년 그림 그렸다

권기창 안동시장 민선 8기 반환점을 돌며 ‘새로운 안동’을 위해 달려온 안동시의 2024년이 이제 마무리돼간다. 올해 안동시는 자타가 공인하는 ‘문화도시 안동’으로서의 발전과 더불어, ‘산업도시 안동’으로 나아가기 위해 노력한 결과 다양한 성과를 거뒀다. ‘백절불굴 중력이산’, 백 번 꺾여도 굴하지 않고, 시민과 함께 힘을 모으면 큰 산을 옮길 수 있다는 자세로 한 해를 보낸 안동시의 주요 성과 중 △지방시대 3대 특구 석권 △사계절축제 정착 △서울광장에서 열린 직거래장터를 돌아본다. □ 전국에서 유일하게 3대 특구 석권 안동시는 대한민국 문화도시, 교육발전특구에 이어 기회발전특구에 선정되며 전국 지자체 중 유일하게 3대 특구를 석권했다. 문화도시는 지역의 특색있는 문화자원을 활용해 관광자원 등을 개발하고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한 것으로, 시는 ‘유쾌한 놀이문화도시, K-play hub-안동’을 비전으로 전통문화의 세계적 경쟁력을 확보할 사업을 추진한다. 교육발전특구는 지자체와 대학 그리고 기업이 함께 힘을 모아 공교육의 질을 높이기 위한 것으로, 시는 온종일 돌봄 체계를 구축하고 유네스코 세계유산을 활용한 K-인문 인성교육과 더불어 지역 산업과 연계한 인재 양성에 힘쓴다. 기회발전특구는 지방에 기업의 대규모 투자를 유치하기 위해 세제·재정지원, 규제특례, 정주여건 개선 등을 지원하는 것으로, 경북바이오 2차 일반산업단지로 이전하는 기업은 법인세 등 세금을 5년간 감면받고 각종 규제도 완화된다. 3대 특구 석권을 바탕으로 우리시는 신규 일자리 창출, 지역 혁신인재 양성, 관광 활성화 등을 통해 지역소멸 위기를 벗어나 사람이 오히려 찾아오는 안동을 만들고자 한다. □ 봄부터 겨울까지, 사계절 축제 정착 민선 8기부터 거리형, 참여형으로 전환한 사계절 축제가 정착 단계에 접어들고 있다. 그간 시는 ‘성공적인 축제는 축제를 찾는 관광객에게 그 도시의 좋은 이미지를 남기게 되며, 지역을 다시 방문하는 계기를 만들어 준다’는 생각으로 축제의 혁신에 노력해왔다. 올해 봄 차전장군노국공주축제 45만, 여름 수페스타 및 월영야행 30만, 가을 탈춤페스티벌 148만 명 방문으로 기록적인 성과를 이룩했으며 겨울에는 암산얼음축제가 열릴 예정이다. 특히 탈춤페스티벌은 유네스코 인류무형유산인 ‘한국의 탈춤’을 선보임은 물론, 역대 가장 많은 25개국 48개 해외 공연단과 함께했고, ‘더본존’을 통해 탈춤을 스토리텔링한 음식으로 방문객의 입맛을 충족시켰다는 평가와 함께 안동 먹거리의 가치를 확인하며 글로벌 축제로서의 가능성을 열었다. □ 안동의 맛과 멋으로 들썩인 서울광장 민선 8기 안동시는, 지역 농축특산물의 유통 혁신과 경쟁력을 확보, 전 세계로의 판로 확대를 위해 공격적이고 획기적인 판매 마케팅 전략을 추진하고 있다. 이에 따라 대도시 장터를 기획해 안동의 농축특산물로 직거래장터 ‘왔니껴 안동장터’를 열었다. 안동시 최초로 서울광장에서 진행한 직거래장터에서는 안동한우, 안동사과, 안동산약 마, 안동생강, 안동고구마, 안동간고등어와 더불어 백진주쌀, 안동문어 등의 품목을 판매하는 54개 농가·단체가 64개 부스에서 고객을 맞았다. 입소문을 타고 인근에서 찾아올 만큼 선풍적인 인기를 얻은 장터에는, 3일간 약 12만 명이 몰렸다. 그 결과 행사장에서 약 17억 원의 매출액을 올렸고, 현장 매진의 영향으로, 28일 방송된 홈쇼핑에서 안동사과가 완판을 기록하며 3억 원가량의 매출을 기록했다. 안동은 세계문화유산과 무형유산, 기록유산 등 유네스코 세계유산 3대 카테고리를 모두 보유하고 있으며, 관광거점도시와 대한민국 문화도시에 선정될 만큼 다양한 문화콘텐츠를 보유한 곳이다. 전통문화를 보여주는 것에서 벗어나, ‘안동이 만들고 세계가 즐기는’ 새로운 콘텐츠로 천만 관광객 시대를 열어야 한다. 또한, 문화도시로서 안동도 중요하지만, 시민의 삶의 질을 높이고 더욱 발전하기 위해서는 경제적인 성장도 중요하다. 미래 먹거리인 바이오·백신산업 성장과 기후변화에 따른 농업혁신에도 노력해, 적극적인 자세로 안동시의 미래 100년을 대비하겠다.

2024-12-22

미역줄기

미역줄기. “따르릉”전화벨이 울린다. 대부분 저녁을 회사에서 먹고 오는 남편이 오늘은 집에서 먹고 싶다며 일찍 온다고 한다. 오늘따라 아이들도 일찍 와서 오랜만에 가족이 다 모였다. 갑자기 내 손이 분주해졌다. 얼른 쌀을 씻어 전기밥솥에 올려놓고 반찬을 하려니 아무것도 없다. 장갑을 끼고 모자를 쓰고 빠른 걸음으로 집 앞에 있는 시장에 갔다. 겨울바람에 가지는 잎을 다 내어주어 앙상했다. 이곳저곳에 시린 손을 비비며 할머니들이 무와 배추 그리고 미역을 놓고 입김을 내고 있었다. 살아온 세월만큼이나 길게 느껴지는 시간을 보내고 계셨다. 벌써 가로등은 다 켜졌는데 할머니들은 언제 따뜻한 식탁으로 돌아갈까 못내 마음이 쓰인다. 미역줄기와 배추를 사서 집에 왔다. 나의 손은 바빴다. 된장찌개를 끓이려고 뚝배기에 멸치를 넣고 물을 우려냈다. 미역을 미지근한 물로 조물조물 씻다가 늘 이맘때면 나오는 미역을 보니 아버지 생각이 났다. 아버지는 무뚝뚝하시며 집안일에는 손 하나 까딱하지 않은 전형적인 경상도 남자였지만 막내딸인 나에게 만큼은 늘 따뜻한 서울 남자였다. 따뜻한 봄이면 함께 토끼풀을 뜯으러 다녔고 클로버, 국화꽃, 제비꽃의 이름을 가르쳐 주었다. 처음 배운 두발자전거에 토끼풀을 잔뜩 실어 만선의 기쁨을 누리는 어부처럼 마냥 신났고 겨울엔 강가에 모닥불을 피워 돌멩이를 주워 모아 물수제비 놀이에 하루해가 기울었다. 집에 돌아오는 길엔 시장에 들러 항상 미역줄기를 사오곤 했다. 내가 결혼을 하겠다고 남자를 데리고 갔을 때, 아버지는 마음에 들어 하지 않았다. 남편이 마음에 안 드는 것이 아니었다. 가슴시리도록 아까운 딸을 떠나보내기 싫어서 종일 우울해 하셨다. 결혼식 날 조용히 방에서 밤새 앨범만 뒤적였다고 하셨다. 앨범속의 나는 아버지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그저 행복하게 웃고만 있었을 것이다. 나는 아이를 낳고도 음악학원을 계속했다. 늘 바빴다. 학원이 친정과 가까이 있어서 마치면 거의 친정에 들렀다. 아버진 팔십이 넘은 나이에도 내가 갈 때마다 아랫목에 앉혔고 동그란 상에 보글보글 된장찌개를 끓여와 아버지 사랑만큼 따뜻한 저녁을 차려 주셨다. 아버지가 끓여준 된장찌개에는 늘 미역줄기가 들어 있었다. 미역줄기를 좋아 하는 딸에게 주는 아버지의 사랑이었다. 어느 여름날 뜨거운 햇볕 아래 해변을 걷던 중, 파도가 밀려오면서 모래 위에 널브러진 미역 줄기를 발견했다. 처음에는 그냥 흔한 해초로만 보였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니 바다에서 얼마나 긴 여정을 거쳐 여기까지 왔을까 하는 생각에 감탄이 일었다. 부서진 조개껍데기와 작은 돌에 수십 번을 긁혔겠지만 끝내 이곳까지 온 미역 줄기를 보며 유연함을 떠올렸다. 김경아 작가 바람을 거슬러 싸우기보다 흐름을 받아들이고 자신을 다듬어 가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에 대한 지혜를 배우게 되었다. 어쩌면 아버지는 마흔에 얻은 막내딸이 삶의 강물에서 고이지 않고 잘 흘러가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미역줄기를 넣어 찌개를 끓여냈을지도 모를 일이다. 내가 아무리 끓여 보아도 그 맛은 나지 않았다. 미역 줄기처럼 곧고 탱탱하시던 아버지가 미역 잎처럼 힘이 없고 약해지셨지만 늘 상을 들고 오시는 아버지의 모습은 선명하다. 된장찌개의 향은 밥상 위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내 가슴 깊이 말뚝처럼 박혀 있다. 하지만 그 향기가 한편을 아리게 한다. 아버지와 함께 식탁에 앉아 밥을 먹던 시간이 언제였던가. 가끔 내가 기대고 싶을 때 미역줄기가 든 아버지의 된장찌개는 그림처럼 떠오른다. 나이가 들수록 아름다운 단풍처럼 세월이 지날수록 아버지의 사랑은 더욱 그윽하게 다가왔다. 아버지의 사랑을 미역 줄기에 담아 나도 오늘 저녁 된장찌개에 넣어본다. 거센 파도가 와도 부러지지 않고 휘어지고 흩날리며 파도와 함께 춤추는 미역줄기처럼 우리 아이들도 세상의 바다에서 강하게 살아내길 바라는 마음으로 아이들을 바라본다. 미역 줄기의 향이 아버지의 손맛과 함께 식탁 위에 그윽하다.

2024-12-22

지갑 여는 게 애국

우정구 논설위원 조선 후기 실학자로 ‘북학의(北學議)’라는 책을 쓰고 청나라 등의 선진 문물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주장한 박제가의 우물론은 지금도 경제학에서 잘 인용되는 구절이다. “무릇 재물은 우물과 같다. 우물은 퍼서 쓸수록 자꾸 채워지는 것이고 이용하지 않으면 말라 버리는 것”이라 했다. 침체된 경제에는 절약이나 저축보다 소비가 미덕이라는 것을 주장한 그의 말이다. 그는 소비 부족이 기술개발의 중단, 실업자 유발, 생산위축과 경기침체를 가속화시킬 수 있으므로 생산과 소비의 균형적 모색이 필요하다고 했다. 사치를 부추긴다는 이유로 그의 주장은 당시 양반사회로부터 비난도 받았지만 조선 말기 사회분위기로 보아 놀라운 탁견이다. 일부 경제학자들은 그의 이런 이론이 유효수요 이론의 대가 케인스보다 150년 앞선 이론이라 칭찬하는 이도 있다. 1년 중 가장 붐비는 연말연시를 맞았으나 올해는 계엄 사태에 따른 탄핵 정국이 이어지면서 연말 특수가 실종됐다. 연말 특수를 애타게 기다리던 소상공인과 자영업자들은 직격탄을 맞았다. 음식점은 송년 모임이 잇따라 취소되고 호텔숙박업계도 오겠다는 고객들이 취소하는 바람에 비상이 걸렸다. 소상공인, 자영업자들은 우리 경제의 실핏줄과 같은 존재다. 골목경제가 제대로 돌지 않으면 국내경제 전반에 먹구름이 몰려들 수밖에 없다. 나라에 따라 내수경기 활성화만으로 국내경제가 잘 돌아가는 곳도 있다. 정부도 이런 상황을 직시, 공무원에게 송년회나 연말행사를 예정대로 진행할 것을 지시했다고 한다. 지금은 모두가 지갑을 열고 소비에 나서는 게 애국하는 길이다. /우정구(논설위원)

2024-12-19

예산안이 정쟁의 도구가 되어서는 안 된다

최은석 국회의원 지난 10일, 민주당이 2025년 예산안을 국회 본회의에서 단독 처리했다. 정부가 짠 예산안 677조4000억원에서 4조1000억원을 감액한 673조3000억원 규모이다. 야당 단독으로 예산안이 처리된 것은 헌정 사상 처음이다. 여야가 그동안 나라 살림인 예산안을 단독으로 처리하지 않은 것은 국민의 삶과 직결됐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재명의 민주당은 이런 국회 관례를 깨고 예산을 정쟁 수단으로 전락시켜 버렸다. 2025년 예산은 그 처리 절차와 내용적 측면에서 허점 투성이라 너무 걱정이 앞선다. 먼저, 민주당의 감액 예산은 절차적으로 중대한 하자를 지닌다. 매년 유지되던 예산 협상 절차가 올해는 완전히 무시되었다. 정부와 여당은 협상에 성실히 임했음에도, 민주당은 돌연 단독 처리하며 협상의 기회를 차단했다. 11월 말까지 협상 가능성을 열어두는 듯하더니 하루 만에 태도를 바꿨으며, 대통령실 관련 예산 7000억원을 추가 삭감하겠다며 정부와 여당을 압박했다. 본회의 직전까지 정부와 여당은 수정안을 제시하며 설득했지만, 민주당은 이를 끝내 거부했다. 밤낮없이 ‘예산 등 조정소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했던 필자로서는 허탈함을 감출 수 없었다. 내용적으로도 민생 경제와 국민 안전을 심각하게 저해할 우려가 크다. 예비비가 4조8000억원에서 2조4000억원으로 삭감되었다. 이는 2011년 수준으로 후퇴한 것으로, 예측 불가능한 상황에 긴급히 사용되는 재원의 본래 목적을 고려할 때 심각한 문제가 우려된다. 트럼프 2기 출범에 따른 경제 불확실성이 커지는 상황에서 예비비 축소는 민생과 국민 안전을 위협하는 무책임한 결정이 아닐 수 없다. 이재명 대표 수사에 대한 보복성 예산 삭감 또한 문제다. 마약범죄, 보이스피싱, 딥페이크 성범죄 등 민생 침해 범죄 대응을 위한 검찰의 특수활동비가 전액 삭감되었다. 이는 범죄 대응 역량을 약화시켜 국민 전체를 위험에 빠뜨릴 수 있다. RD 투자에도 심각한 차질이 예상된다. ‘글로벌’이 들어간 RD 사업을 마구잡이로 삭감하다 보니 국내 기업의 경쟁력을 키울 중요한 기회마저 모조리 박탈시켰다. 이는 대한민국의 미래를 준비하는 데 심각한 영향을 미칠 것이다. 민주당은 ‘이번 예산안 삭감은 민생에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고 강변했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청년도약계좌, 대학생 근로장학금, 청년정책 통합플랫폼 같은 사업들이 삭감됐으며, 저소득 아동 자산형성과 같은 경제 양극화 해소를 위한 사업도 삭감됐다. 아이 돌봄 지원 수당도 삭감됐고, 제대군인 사회복귀 지원 사업비도 삭감해 버렸다. 단언컨대, 이번 감액 예산안은 경제 위기와 민생을 전혀 고려하지 않았다. 민주당은 민생과 경제 문제 해결을 위한 협력은 뒤로 한 채, 정부가 받아들이기 어려운 감액안을 강행함으로써 국회를 사실상 ‘기능 부전’ 상태로 몰아넣었다. 후안무치(厚顔無恥)한 민주당은 정부 예산안을 무시하고 사상 초유의 야당 단독 감액 예산안을 처리해놓고, 대통령 직무가 정지되자 추경으로 예산을 늘리자고 한다. 도무지 종잡을 수가 없다. 민주당은 나라를 어렵게 하고 국민을 불안케 하는 입법과 예산 독주를 멈추고, 정부 여당과 함께하는 협치를 복원할 때 비로소 국민 앞에 바로 설 수 있을 것이다.

2024-12-19

대통령, 십자가 지다

강길수 수필가 12·3 비상계엄 선포로 대통령은 스스로 십자가를 졌다. 이에 나라는 광기에 빠졌다. 야당은 회기 쪼개기 꼼수로 14일 대통령 탄핵안을 두 번째 상정, 가 204표로 가결하였다. 여당의 이탈표 때문이란 보도다. 1야당 원내대표는 2차 대통령 탄핵소추안 제안설명에서 대통령을 ‘윤석열은’이라고 7번씩이나 호칭했다. 야만적 정치보복 실토이자, 도덕성도 팽개치는 장면이었다. 해괴한 건, 여당 대표의 야누스 얼굴이다, 권력욕에 누구와 내통이라도 했는지, 은혜를 배신으로 갚는 행태에 국민은 절망하였다. 자당 배출 대통령을 두 명째 탄핵하는 광란을 국민은 당했다. 여당 정치인이라면,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의 진의를 안 후에 탄핵 국회에 나갔어야 한다.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 제1 목적이 ‘부정선거 발본색원’이었다는 사실을 깬 국민은 다 아는데, 여당이 모를 리가 없다. 알고도 탄핵에 찬성한 자는 양의 탈을 쓴 이리다. 몰랐다면, 멍청이다. 미심쩍으면 제대로 알아보는 게 인간의 도리요, 의무다. 야당과 언론의 선동에 넘어갔다면 정치할 자격이 없다. 자기 당의 전 대표이자 총리, 전 국회의원, 경제학자, 변호사, 과학자, 전산학자 같은 이들이 ‘부정선거’를 근거 없이 주장하겠는가. 선관위의 투표 결과 발표 자료의 통계적 분석, 선거 소송에서 나온 수많은 부정 투표지 등을 근거로 많은 이가 6년째 부정선거를 외치고 있다. 그래도 우리 사회 주류는 ‘극우 유튜버의 음모론’이라 치부, 외면해 왔다. 이런 생각이 마음을 짓누른다. ‘진실이 두려워 가짜가 판치는 사회, 정의, 도덕, 윤리, 상식이 이념, 돈, 권력에 짓뭉개지는 야만과 광기의 사회, 이성적 인간을 외면한 정치인, 공직자, 법조인, 지식인, 언론인, 교육자, 종교인들이 주류가 된 사회. 선거를 장악, 50년 100년을 해 먹겠다고 장담하던 파렴치한 거악이 눈에 보이는데도 침묵하는 다수 국민….’ 선거를 빼앗긴 망국적 상황에 이른 나라를 구하고자 대통령은 계엄이란 외로운 십자가를 진 것이다. 그 십자가는 진실, 정의, 상식, 법치란 나무로 만들어졌다. 부정선거가 아니라고 보거나, 주류언론 보도를 그냥 따르는 사람들은 중앙선관위 홈피에 가서 선거별, 후보자별, 지역별 개표 결과 사전과 당일 수치들을 뜯어 보기 바란다. 통계학 상식이 없어도 이상 수치들임을 알 수 있다. 대법원판사와 지방법원장을 중앙과 지방의 선관위원장으로 정한 이유는, 그들이 공정하다고 보기 때문일 것이다. 한데, 지난 4·15총선 소송에서 대법원판사들이 보인 행태는 소인배였다. 배춧잎 투표지, 앞뒤 장이 붙은 투표지, 빳빳한 투표지 등 수많은 증거에도 불구하고 제 식구 감싸기로 모두 기각했으니 말이다. ‘선관위 공화국’이란 말이 괜히 나온 게 아니다. 다행히 일부 정당과 교계를 중심으로 부정선거 척결과 대통령 탄핵 반대 시위가 주류 언론의 외면에도 불구하고, 6년째 대규모로 이어왔다. 십자가는 신도들에게 구원의 빛이듯, 대통령의 십자가가 진실과 정의의 빛을 꼭 밝힌다고 믿고, 지지한다.

2024-12-19

한 해를 마무리 하며

윤영대전 포항대 교수 이제 올해도 열흘 정도밖에 남지 않았다. ‘청룡의 꿈’으로 시작된 갑진년이 마음의 평화를 심어주며 내 일상의 뒤안길로 사라지는 것이다. 하루하루 일상과 마음을 적어온 일기장을 다시 넘겨보니 꽤 많은 날들이 빈칸으로 남아있다. 매일 썼다고 생각했는데 하얀 공백으로 있으니 나의 게으름일까? 마음의 평화였을까? 어찌했던 큰 어려운 일없이 보내게 된 한 해였다고 생각하니 아쉬움과 후회 없는 날들의 추억으로 채워야겠다. 길거리에는 크리스마스와 연말을 축하하려는 장식 불빛이 현란하게 반짝이고 집에도 작은 꽃등을 달아두니 한 해의 정리와 함께 밝아오는 새해에 대한 마음이 곱게 물들어 온다. 그러나 느닷없이 터져버린 계엄 선포와 연이은 대통령 탄핵 소추로 국민은 충격과 허탈감에 빠졌으리라 보지만 나의 마음 또한 안정감을 찾지 못하고 있다. 이러한 정치적 소용돌이는 연말을 넘어 내년까지도 이어질 것으로 보여 내수침체, 환율 상승 등 경제 부분에 심각한 타격을 주고 있음이 안타깝다. 근래 부정 선거 논란에 휩싸인 국회의원 선거는 우리의 마음을 어둡게 하지만 금메달 13개로 세계 8위에 오른 파리올림픽은 우리의 자부심을 높였다. 나를 돌아본다. 크게 기뻐할 것도 심각하게 가슴을 졸였던 것도 없었던 평범한 1년이었나 보다. 올해 초에 계획했던 일들은 대부분 잘 처리했다고 생각한다. 먼저 문화원과 주민센터에서의 자기 계발 학습이다. 중국어를 배우며 덕분에 어학 실력을 쌓았고, 묵향을 맡으며 붓을 놀렸던 한글서예와 문인화 수업은 숨어있던 나의 취향을 일깨웠고 매주 동호인들과 목청껏 불렀던 가곡교실의 즐거움은 젊음으로 되돌아가는 듯한 희열을 느끼기도 했기에 내년에도 강좌에 적극 참여하여 늙어가는 내적 역량을 유지하고 싶다. 나이가 먹을수록 육체적 건강이 나빠지는 것은 당연하겠지만 큰 병 없이 1년을 지나왔다는 것 또한 다행이다. 작년 9월부터 시작한 맨발 걷기는 여전히 여러 숲길과 해변 모래밭을 걸었더니 작은 아픔이 사라지는 것 같고, 고교 동문들과의 매달 산행에도 참여하여 나름대로의 체력을 유지하여 왔다고 자부하고 있다. 정신적 활동은 뭐니해도 나의 글쓰기라 할 수 있다. 올해로 불혹의 나이가 된 형산수필 모임은 소담스럽게 가꾸어온 글밭의 낱알을 모아 제40집을 엮고 지난주 출판기념회를 하며 여러 문인들의 호응도 받고 보니 힘이 솟는다. 그 응원으로 신문칼럼도 수년간 계속하고 있으니 나대로의 글쓰기 힘을 기른 셈이다. 그러나 한 가지 약속을 지키지 못한 것이 독서인데 매달 독서량을 채우지 못해 반성하고 있다. 한 해를 마무리하며 가장 뿌듯한 것은 두 번의 가족 해외여행이다. 멀지 않은 베트남과 일본을 둘러보았지만 나의 버킷리스트를 이루었으니 내년에는 좀 더 먼 곳에 다녀오리라 마음먹고 차근차근 계획을 세우고 싶다. 며칠 남지 않은 날 동안에 지난 계획을 되돌아보고 점검하여 못다한 부분을 채우고, 가족과 지인들에게 연하장을 써 보내어 새해 인사를 해야겠다. 내년에도 ‘맑은 마음 밝은 얼굴 고운 말씨’로 살아가려 한다.

2024-12-19

비상계엄 정국, 진짜 위기는?

장규열 고문 ‘비상계엄’이란 글자만으로도 긴장이 돋는다. 나라를 관통한 계엄 상황은 국민에게 큰 충격을 주었으며, 미디어를 통해 전달된 모습은 의심과 불안을 동시에 키웠다. 법적 해석과 책임 공방이 이어지지만, 논란 속에 진짜 중요한 것들이 묻혀간다. 계엄이 내려진 이유와 목적이 무엇이었든, 국민은 깊은 불안에 시달린다. 밤마다 뉴스에 귀를 기울이느라 잠 못 이루는 날들이 이어졌고 공포와 혼란이 일상에 스며들었다. 그러는 가운데에도 현실의 위기들은 한 치의 양보없이 우리를 옥죄고 있다. 의료 대란, 언제까지 외면하는가. 해결의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대형 병원들의 진료 공백은 날이 갈수록 심화되고 있으며, 응급실과 중환자실에서 환자와 가족들의 근심은 깊어만 간다. 병원을 찾았다가 제대로 된 치료를 받지 못하고 발길을 돌리는 환자들의 절망감은 이루 말할 수 없다. 의대생들의 수업거부와 전공의들의 집단사직은 더 이상 개인의 문제가 아니다. 내년에 의료 시스템이 어떻게 돌아갈지 예측조차 어렵다. 의료는 나라의 기본적이고 필수적인 시스템이 아닌가. 방치한다면 그 피해는 산더미처럼 국민에게 돌아갈 뿐이다. 교육은 어떤가. 사회 전반에 걸쳐 교육시스템이 위기를 맞고 있다. 경제적 불평등이 교육격차를 심화시키고, 팬데믹 이후로 드러난 학습 공백은 여전히 채워지지 않는다. 미래를 책임져야 할 교육이 흔들리면, 피해는 수십 년 뒤 더 큰 문제로 돌아올 것이다. 정치권은 교육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실질적인 논의보다 상대를 비난하는 정쟁에만 몰두하고 있다. 경제가 위태롭다. 물가와 환율이 국민의 일상을 위협한다. 글로벌 경제의 불안정 가운데 우리 경제도 휘청거리지만, 대비책이 보이지 않는다. 중소기업과 자영업자들이 버티기조차 어려운 상황으로 몰리고 있다. 생활비가 급등하고 원자재 가격이 치솟으면서 서민들의 삶은 더욱 고단해진다. 국제정세도 불확실하다. 미국의 정권교체로 트럼프 행정부가 들어서면서 한미 관계는 새로운 시험대에 올라선다. 한반도를 둘러싼 갈등과 긴장이 늘 있지만, 이를 적절하게 대비하는 정치권 리더십의 모습은 찾아보기 힘들다. 정치는 무엇을 하는가. 정치는 국민의 삶을 책임져야 한다. 정치의 본질이며, 국민이 믿고 맡긴 권한의 존재 이유가 아닌가. 그럼에도 정치권은 국민의 걱정을 덜어줄 생각은 커녕 상대를 향한 비난과 정쟁에만 몰두하고 있다. 비상계엄이라는 엄중하고도 비극적인 상황 속에서도 여야는 서로를 탓하며 책임 공방에만 열을 올린다. 정치는 곧 국민이다. 정치인들이 국민의 목소리를 외면하고 정쟁에만 빠져 있는 동안 피해는 결국 국민이 짊어질 수 밖에 없다. 서로를 향해 비난하기 보다 국민의 삶을 바로잡아야 한다. 시선의 방향을 바꾸어야 하지 않을까. 서로를 노려볼 일이 아니라, 함께 국민을 바라보아야 한다. 정치가 존재하는 이유이고, 국민이 바라는 진정한 리더십이다. 국민이 보고 있다. 정치가 해결의 중심에 서야 하고 본연의 역할을 찾아야 한다. 무엇이 진짜 위기이고 무엇을 먼저 해야 하는지 살펴야 한다. 이제는 정치가 답을 할 시간이다.

2024-12-18

유명인들의 세금 체납

홍성식 (기획특집부장) 먼저 간략하게 백과사전을 인용한다. ‘모든 국민은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해 납세의 의무를 진다. 납세 의무의 구체적인 내용은 국회에서 통과된 법률로써 정한다. 대한민국 헌법은 조세 법률주의(租稅法律主義)의 원칙을 확립해 법률로써 조세의 종목과 세율을 정하고 있다.’ 재론의 여지가 있을까? 현대국가에선 소득이 있는 곳에 세금도 있다. 과세의 형평성에 관한 논란이야 예전부터 지금까지 없지 않았지만, 성실한 세금 납부는 한국이라는 공동체에서 더불어 살고 있는 구성원의 방기할 수 없는 책무다. 최근 국세청이 고액·상습 세금체납자의 명단을 공개했다. 여기엔 작가, 연예인, 방송에 출연한 요리사 등 적지 않은 유명인들이 포함돼 있다. 소설가 김진명은 종합소득세 등 28억9100만원의 세금을 체납했다고 한다. 그는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를 필두로 여러 권의 베스트셀러를 출간한 인기 높은 소설가다. 개그맨으로 활동한 이혁재의 체납액은 2억2300만원이다. 그가 대표로 있는 회사도 부가가치세 등 3억3000만원을 체납한 것으로 드러났다. 다수의 방송에서 이름을 알려 대중들에게 인지도가 높은 요리사 권영민(에드워드 권) 역시 종합소득세 3억4300만원을 내지 않았다. 가수 최성수 또한 장기체납자라고 한다. 고액의 소득은 개인의 능력만이 아니라 다수의 호의적 관심과 지원이 더해져야 얻어낼 수 있음은 불문가지(不問可知). 작가와 연예인이 특히 그렇다. 사회적 관계 속에서 큰돈을 벌어들인 사람이 사회적 책무에는 나 몰라라 눈을 돌린다면 그는 만인의 손가락질을 받을 수밖에 없고, 또한, 그것이 마땅하지 않을까. /홍성식(기획특집부장)

2024-12-18

서유당기(書遊堂記)

정미영 수필가 새뜻한 돋을볕이 어둠을 사르며 적막한 공간에 들어선다. 밤사이 아무런 움직임도, 아무런 소리도 없던 곳을 지배하던 절대 고요도 서둘러 아침에 자리를 양보하며 길을 떠난다. 여기는 어린이 도서관이다. 나는 ‘책과 노니는 집’ 즉 서유당(書遊堂)이라고 부른다. 우리나라의 어린이 도서관은 1979년 사직공원에 처음으로 생겼다. 1906년 평양에서 문을 연 최초의 공공도서관 ‘대동서관’이 지어진 뒤, 73년 만에 생겨났다. 어린이 도서관이라고 이름을 붙였어도 그때는 지금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였을 것이다. 종이로 된 출판물이 귀하던 시절이었다. 교과서나 참고서, 동화책 등을 깨끗하게 읽고 선배가 후배에게, 형이나 누나가 동생에게 물려주던 때였다. 아마도 조용히 독서하고 공부하려고 이용했던 일반 공공도서관처럼 정적(靜的)인 이미지가 강했을 것 같다. 그에 비해 요즘 어린이 도서관은 동적(動的)이다. 책과 연계해 인형극을 보여주거나 작가를 초청해 강연을 듣는 장소가 따로 마련되어 있고, 영화를 보는 시청각실, 다양한 활동을 할 수 있는 동아리방도 있다. 유아실에는 책을 가지고 도미노를 쌓는 아기들도 눈에 띄고, 소리 내어 읽어 주는 부모님도 있다. 모두 따사로운 눈빛으로 그들을 바라볼 뿐, 조용히 하라고 눈치를 주지 않는다. 그러니 이곳이야말로 책과 노니는 집이 아닐는지. 인생시계의 가을 중턱을 숨이 가쁘게 넘고 있는 나도 어린이 도서관에 자주 방문한다. 그곳에서 내가 책을 바라보는 마음은 별빛을 응시하는 것과 같다. 어두운 밤하늘을 끊임없는 호기심과 열정으로 바라보는 어린이들처럼 나의 눈동자도 책장 앞에서 지식의 환향(還向)을 꿈꾼다. 책들은 나에게 끝없는 발견의 여정을 약속하며, 상상력의 날개를 펴주는 비밀의 문으로 느껴진다. 나의 항로가 되고 책 속의 각 페이지는 알 수 없는 미지의 세계로 향하는 나침반과 같다. 호미곶을 마주하고 있다. 유달리 소금기 실린 바람의 인자들이 몸에 들러붙는 것만 같아 내 마음이 세차게 흔들린다. 땅 속 뿌리가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 물줄기를 찾듯, 독서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 나는 오늘도 도서관을 찾는다. 구룡포에 있는 폐교를 새로 단장해 개관한 바닷가 도서관이다. 운동장 벽면에 해초를 입에 물고 있는 거대한 고래 벽화가 있다. 바다가 아닌 하늘을 자유롭게 유영하는 것 같은 모습을 보니 내 가슴이 요동친다. 정신적 빈곤에 허덕이는 나도 다시 자유를 되찾고 싶다는 열망이 고조된다. 나는 열람실을 향해 자박자박 발걸음을 옮긴다. 서가 사이에 들어서자마자 종이가 만들어지기 전, 갈대를 엮어 글자를 쓰고 그림을 그렸던 파피루스를 떠올린다. 파피루스의 후예들인 종이책과 눈인사를 나눈다. 정갈하게 정리된 서가 사이를 오가며 서너 권의 책을 꺼내 들면, 작가의 소중한 글을 제각각의 공법으로 알차게 꾸민 출판사의 노력이 표지부터 물씬 전해진다. 책을 펼치면 주옥같은 언어의 황홀경이 펼쳐진다. 인생의 세밀한 구석들을 명증하게 들추어내는 책을 들여다볼 때면, 글을 쓰고 싶은 나로서는 자극을 받는다. 나도 우리네 인생사를 솔직하고 담백하게, 깊은 울림을 주는 문체를 사용해 진솔한 작품을 창작하고 싶다는 열망에 사로잡힌다. 내 글 속 청신한 문장들이 사람들의 마음속으로 날아가 선명하게 돋을새김 되어 빛나면 좋으련만. 큰 창 너머로 보이는 바다를 잠시나마 무념무상 바라본다. 그러다가 ‘독서는 마음의 창문을 넓히는 여정이다.’라고 했던 노자의 말을 떠올린다. 그 창문을 열고 들어온 지식과 경험은 나의 내면을 더 넓게 만들어 줄 것이다. 그리고 삶을 더 풍요롭게 만들어 주는 비결이리라. 나는 지금, 내면을 넓히고 삶을 풍요롭게 하려고, 서유당(書遊堂)을 거니는 중이다. 한 손에는 책이라는 나침반을 들고서, 내 생의 지도에 나만의 항로를 그려 넣는다. ※기(記)는 한문 산문 양식으로 성현의 말씀을 인용하고, 사실을 그대로 적는 글이다. 오늘날로 말하면 기록 문학이나 수필에 속한다.

2024-12-18

진전리 구판장

경주에서도 포항에서도 어정쩡한 곳에 잔뿌리 내린 세월 이마 위의 잔설 소모되어 낡았어도 그래도 정갈한 시간이 진열되어 있네 별 아니면 올려다 볼 일 없는 냇물 아니면 내려다 손 내밀 일 없는 라면 끓이듯 간편한 삶 못마땅함이 보글보글 끓는 냄비와 같은 일상 솜을 씹듯 두부 한 점 우물거리면 그래도 달래양념장 향긋함이 콧등을 짚는다 코팅 된 과자봉지처럼 빛나던 시절은 언제였는가 달콤함에 저당 잡혔든, 그렇게 부풀어만 있었던, 기실 편방(偏旁)이거나 부수적(附隨的)이었던, 하산의 의미를 총총 재촉하며 바라보는 저 널려있는 시간과 사건들이여 문득, 처연하게 찬란한 아직 남아 있는 길의 보푸라기 반짝 빛나다가 사라지는 것들의 야무진 허술함 처마에 걸린 명태코다리가 바람, 바다, 산의 울음에 건조되면서 시간을 관통한다, 상처는 스스로 여며야 한다. 진전리는 오천에서 경주 기림사로 가는 길에 있는 마을인데, 거기에 조그만 구판장이 있다. 두부와 도토리묵과 국수를 판다. 듬성듬성 등산객들이 들리는 곳이다. 뼈에 좋은 동동주를 주는데 마음에 더 특효약이다. 자궁과 같다. 느릅나무 아래 앉으면, 저승이 보인다. /이우근 이우근 포항고와 서울예대 문예창작과를 졸업했다.‘문학선’으로 작품활동을 시작해 시집으로 ‘개떡 같아도 찰떡처럼’, ‘빛 바른 외곽’이 있다. 박계현 포항고와 경북대 미술학과를 졸업했으며 개인전 10회를 비롯해 다수의 단체전과 초대전, 기획전, 국내외 아트페어에 참여했다. 현재 한국미술협회 회원이다.

2024-12-18

광풍의 계절

김병래 수필가·시조시인 우리나라는 삼면이 바다인 복합지형인데다 사계절이 뚜렷하기 때문에 바람의 종류도 참으로 다양하다. 봄날 남쪽에서 불어오는 온화한 바람은 만물을 소생케 하고 여름엔 열풍이 대지를 뜨겁게 달군다. 여름에서 가을로 바뀔 때쯤 천지를 뒤흔드는 태풍이 불기도 하고 겨울의 삭풍은 온 땅을 동토로 만들어 버린다. 오랜 세월 농경시대를 거쳐 오는 동안 그런 바람은 우리의 삶과 정서에 깊숙이 배어들어 민족적 기질이 되고 다채로운 문화를 형성하는 동인이 되기도 했다. 우리말에는 바람에 빗댄 말들이 많다. 신바람에서부터 한 때 유행하던 춤바람, 치맛바람이 있는가 하면, 바람맞다, 바람 넣다, 바람 타다, 바람 들다, 바람 잡다 등 여러 의미로도 쓰인다. 그 중에서도 신바람은 우리 민족의 고유한 기질과 문화적 특징을 나타내는 말이라고 할 수 있다. 그것은 단순한 감정표현을 넘어 한민족의 공동체적이고 역동적인 성격과 깊은 연관이 있다. 일상생활, 일, 놀이, 축제 등에서 열정적이고 긍정적인 에너지를 발산하며, 이를 통해 힘든 상황을 극복하려는 낙관적인 태도를 내포하기도 한다. 매스컴이 발달된 현대에는 바람이 ‘여론’이라는 형식으로 표현되기도 한다. 각종 언론이 주도하는 여론은 때로 강력한 바람이 되어 사회나 국가를 특정 방향으로 움직일 수도 있다. 특히 모바일인터넷 시대에 접어들면서 여론의 바람은 삽시간에 전국으로 확산되어 사회적 혼란을 야기하거나 국가 체제를 위협하는 힘이 되기도 하는 것이다. 지금 우리나라는 일진광풍이 전역을 휩쓸고 있다. 대통령 탄핵이라는 정치적 바람이다. 바람이 불면 대부분 민초들은 바람이 불어가는 방향으로 눕기 마련이다. 그래야 꺾이거나 뿌리 뽑히지 않기 때문이다. 물론 상당수는 자발적으로 바람에 합세하기도 한다. 그것은 거대한 세력의 일원이라는 뿌듯한 존재감을 느낄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할 터이다. 그러나 정치적 바람은 항상 일방적인 것은 아니다. 때로는 거센 맞바람에 부딪쳐서 바람의 방향이 바뀌기도 한다. 바람은 공기가 이동하면서 생기는 자연현상이다. 따뜻한 공기는 가벼워져 상승하고 차가운 공기는 무거워져 하강하는데, 이로 인해 고기압 지역과 저기압 지역이 형성된다. 공기가 고기압에서 저기압으로 이동하기 때문에 바람이 발생하는데, 기압의 차이가 클수록 바람의 세기가 강해지는 것이다. 그러나 일정기간 바람이 불고 나면 차츰 기압차가 줄어들어 바람이 멎기 마련이다. 정치적 바람은 자연현상과는 달리 저절로 소멸되지는 않는다. 반대편에서 또 하나의 고기압권을 형성해서 맞바람을 쳐야 기세를 꺾고 막을 수가 있다. 비상계엄 선포를 빌미로 재빨리 고기압권을 형성한 왼쪽바람이 일시에 전국을 강타한 것이 작금의 사태다. 하지만 이에 대항하는 오른쪽 세력도 만만치가 않다. 양대 바람이 서로 부딪쳐 일대 소용돌이를 일으키고 있다. 국민들이 어느 편에 더 많이 가담하는가에 따라 바람의 향방이 달라지고 그 결과는 선거에서 나타난다.

2024-12-18

안민가, 백성을 편안하게 하는 노래

이정옥 위덕대 명예교수 “임금은 아버지요/신하는 사랑하실 어머니요/백성은 어린 아이라고 생각하신다면/백성들이 임금의 사랑을 알 것입니다./열심히 사는 백성들을/배불리 먹여 다스린다면/‘내가 이 땅을 버리고 어디 가랴?’라고 백성들이 말한다면/나라가 유지될 줄 아실 것입니다./아, 임금은 임금답게, 신하는 신하답게, 백성은 백성답게 처신한다면/나라 안이 태평할 것입니다.” 삼국유사에 전하는 신라 향가 중의 하나인 ‘안민가(安民歌)’다. 제목처럼 백성을 편안하게 하는 비책을 노래하고 있다. 경덕왕 24년(745년) 3월 3일에 왕이 신하들과 함께 월성 남쪽에 행차서 훌륭한 고승을 찾으라 했다. 그가 바로 충담사(忠談師)였다. 충성스러운 말을 하는 스승이라는 이름이다. 충담사가 유명한 시인이라는 걸 익히 알고 있었던 왕은 자신을 위한 노래를 부탁했고 충담사는 즉석에서 ‘안민가’를 지어올렸다. ‘안민가’는 왕과 신하와 백성의 관계는 혈연관계와 같다고 비유했다. 왕은 아버지요, 신하는 어머니요, 백성은 자녀와 같다. 집안에서 아버지와 어머니와 아이들이 사랑과 신뢰를 바탕으로 자기 본분을 다하면 가정이 잘 유지된다. 나라도 이와 같으니 왕과 신하와 백성이 서로가 맡은 바 책무를 제대로만 다한다면 나라가 태평해질 것이요, 백성이 배부르면 나라를 떠날 일이 없을 것이다. 왕에 대한 따끔한 정치적 충언(忠言)이다. 이 노래는 현재 임금과 신하와 백성 각자가 제 역할을 못하여, 상호간 사랑과 신뢰가 무너졌고, 악정에 시달린 백성이 나라를 떠나려 하고 있으니 결국 나라가 태평하지 못함을 반증한다. 따라서 임금에게 그 책임을 묻고, 올바른 정치를 권고하는 뼈아픈 충간(忠諫)이다. 임금이 원한 임금을 위한 노래가 아니라 임금이 해야 할 일을 주문하는 눈물어린 충담(忠談)이다. 경덕왕이 죽기 1년 전이었다. 경덕왕 말년은 귀족들이 두 파로 대립된 세력이 각축을 벌이는 시대였다. 왕은 당시 정치상의 비리를 과감하게 청산하지 못했고, 의욕적인 중앙집권화 정책은 귀족세력의 강력한 반발로 실패로 돌아갔다. 대체적으로 학자들은 이 경덕왕과 충담사의 만남을 두 가지로 해석한다. 하나는 세간에 명성이 자자한 고승 충담사를 왕이 불러서 ‘안민가’를 짓게 했고 이를 통해서 귀족세력에게 무언의 압박을 가하려 했다는 것이다. 또 다른 해석은 ‘안민가’가 질타하는 대상은 귀족세력이 아니라 경덕왕이라는 것이다.‘안민가’는 왕에게 올리는 충언이고 그 핵심은 마지막 구절 “임금은 임금답게 신하는 신하답게 백성은 백성답게 한다면 나라가 태평할 것이니라.”에 있다고 본다. 이는 경덕왕의 치세가 “임금답지 못하고, 신하답지 못하고, 백성답지 못해서 나라가 태평하지 못하다”라는 현실의 역설적 증언이며, 결국 경덕왕의 치세가 잘못되었다는 비판이라는 해석이다. ‘안민가’는 지금으로부터 1200여 년 전의 작품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024년, 오늘의 상황에 딱 맞아떨어지는 노래라는 점에 소름끼치도록 놀랍다. 무소불위의 대통령, 정쟁에만 몰두한 국회에 넌덜머리가 난 국민은 이 나라를 떠나고 싶다. 온 국민이 불안에 떨고 우울감에 빠진 혼란의 이 시점에 충성스러운 이야기를 해 줄 이, 이 시대의 충담사는 어디에 있는가.

2024-12-18

위기는 새로운 성장의 기회

정상철 미래혁신경영연구소 대표·경영학 박사 사람은 삶을 살아가면서 세 번의 위기가 찾아 온다고 한다. 위기는 성장과 변화의 신호이기도 하다. 두려워하기보다 새로운 기회로 받아들이고 자신의 인생에서 더 나은 방향을 찾는 계기로 삼는 것이 중요하다. 위기(危機)는 95%의 위험과 5%의 기회가 함께 온다고 한다. 삶은 선택과 도전의 연속이고 5%의 희망을 향해 미래를 설계하고 도전하는 것이다. 도전하지 않는 자는 95%의 위험을 안고 주저 앉게 되고 도전하는 자는 위험의 구렁에서 벗어나 희망과 성장의 길로 향하는 것이다. 세계를 선도하는 기업들을 보면, 경영의 위기는 필연적으로 있었고 이를 어떻게 극복하는가에 따라 전통과 기업문화의 초석이 되기도 한다. 일본 교세라(Kyocera: 교토의 세라믹)와 NTT 독점기업에 도전한 통신전문기업 KDDI를 창업하고, 일본항공JAL을 재건한 이나모리 가즈오는 ‘위기는 어려움과 고통을 의미한다. 경제 불황과 불경기는 날이 갈수록 심해지고 있지만 그럴수록 적극적이고 낙관적인 태도로 맞서야 한다. 전 직원이 일치단결해 곤경을 돌파해야 한다. 경험에서 얻은 결론은 불황을 성장의 기회로 삼는다는 것이다’라고 말한다. 교세라는 100여 개국에 진출한 일본의 대표적인 글로벌 기업으로 첨단 세라믹 기술을 기반으로 다양한 산업 분야에서 활약하는 기업이다. 모든 판단과 행동의 기준은 ‘인간으로서 무엇이 옳은가’이고 도덕적이고 정직한 경영을 의미한다. 아메바 경영을 추구하며, 조직을 작은 단위(아메바)로 나누어 각 단위가 독립적이고 자율적으로 운영되도록 하여 책임감과 효율성을 높였다. 기술 혁신과 품질을 중시하며 세라믹 기술 발전과 반도체, 태양광, 정보기기 등 다양한 산업군에서 기술력을 인증 받고 있다. 2010년 일본 JAL은 막대한 부채와 비효율적인 경영으로 파산 신청을 했을 때 직원들의 사기진작부터 시행한 이나모리는 고객과 직원의 행복중시 경영으로 1년만에 흑자 전환에 성공하고 2012년에 재상장 하는 등 경영쇄신에 탁월한 능력을 보인다. 기업이 성장하기 위해서는 끊임없는 노력과 열정이 기본이고, 위기 상황에서도 항상 긍정적인 자세로 문제를 해결하려는 태도와 회사의 성장은 직원의 행복과 함께해야 한다는 신념이 여러 위기와 불황을 극복하는 원동력이 된 것이다. 매출보다 이익을 우선시 하고, 원가 절감을 통해 수익성 강화, 직원들이 스스로 ‘주인의식’을 가지고 일하는 문화 등의 경영 원칙이 위기 때마다 슬기롭게 이겨내는 기업 건강의 자양분 역할을 해 왔다. 최근 철강업에도 큰 위기가 오고 있다. 대내외 경영 흐름이 어렵고 경제 불황과 맞물려 철강 소비량이 급속히 줄어드는 경기 흐름은 피해 갈 수 없는 현실이 되고 있다. 불황이 올 때 흔들림 없는 버팀목은 기업 수장과 직원 모두가 하나가 되는 ‘기업문화’라 할 수 있다. 이나모리의 사람중심 경영철학과 아메바 경영을 통한 인간 존중, 일의 효율성 추구, 회사를 사랑하는 주인정신이 위기 극복의 단초가 될 것이다.

2024-12-17

플라스틱으로 신음하는 바다

강성태 시조시인·서예가 바다가 요동치고 있다. 길거리로 나온 민심의 파도마냥 만리 이랑을 달려온 파도가 뭍에 가까워지면서 방파제며 갯바위, 자갈, 모래톱에 사정없이 부닥치며 하얀 이빨을 드러내고 있다. 육지의 안부가 궁금해 늘 가볍게 찰랑거리던 몸짓으로 다가오던 파도가 최근에는 격정을 못이긴 듯 거칠게 밀려와서 산산이 부서지는 듯하다. 파도와 물결은 바다의 숨결처럼 늘 살아있고 깨어 있는 가슴으로 출렁대다가, 때로는 무언의 신음 마냥 온몸으로 맞닥뜨리며 항변할 때가 있다. 어쩌면 플라스틱으로 몸살을 앓는 바다환경의 심각성을 고발하기 위한 일종의 항거일까? 주위를 조금만 관심있게 살피고 주의 깊게 바라보면 무엇인가 불합리하게 왜곡되고, 심각할 정도의 문제와 모순 같은 현상이 도처에 깔려 있다. 그 중 대표적인 것이 환경오염과 같은 문제로, 특히 해양환경오염에 대한 문제는 과거 수십년 전부터 제기된 이슈로 전세계가 공감하는 사안이라 할 수 있다. 우리의 실생활에 미치지 않는 곳이 없을 정도로 편리함을 주는 플라스틱은, 미세플라스틱으로 장기간 분해되면서 물고기의 생태계에 영향을 미치고 결국 인간의 건강마저 위협하게 되는 환경 저해물질이다. 남한 면적의 16배 크기의 대규모로 태평양에 떠돌아다닌다는 이른바 ‘플라스틱 섬’의 실체는 어제오늘의 얘기가 아니다. 상아로 된 당구공의 ‘친환경’ 대체물질로 150여 년 전에 개발된 플라스틱이 현재는 기후위기, 환경오염, 생물다양성 감소의 주요 원인이 되었다. 우리의 생활 속에 밀접해지고 쓰임새가 많아진 플라스틱이 바다와 육상을 막론하고 오염문제와 환경문제를 유발하여 삶을 위협하고 있으니 새로운 시스템을 통해 지구환경을 되돌려야 할 때가 아닐까 싶다. 그래서 더 이상 플라스틱으로부터 지구가 고통받지 않도록 하기 위해 국제사회는 플라스틱 오염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근본적인 해결책과 실천 방안을 마련하고, 지속 가능한 협약 체결 및 강력한 제재를 추진해야 한다. 일회용 플라스틱의 생산 감축, 재사용, 포장재 줄이기, 리필재 사용 확대 등의 실천으로 플라스틱 줄이기에 적극 동참하여 오염 없는 미래를 함께 만들어 나가야 한다. 이에 대한 의미 있는 접근으로, 지난 11월 23일 한국 그린피스 주관으로 세계 16개 환경단체들과 부산 벡스코 일대에서 ‘플라스틱 생산 감축’ 촉구 행진이 열렸다. 포항에서는 포스코 해양환경지킴이봉사단 등 30여 명이 동참하여 ‘플라스틱 이제 그만(No More Plastic)’ 등의 피켓을 들고 구호를 외치며 캠페인에 합류했다. “일회용 플라스틱은 생산에 5초, 분해에 500년이 걸린다”는 말이 있듯이, 매년 4억t 이상의 플라스틱을 생산하는데 세계 정부와 기업이 나서 플라스틱 재질 개선과 생산량 감축에 적극 나서야 할 것이다. 국내 플라스틱 산업 역시 생산 감축을 기반으로 다회용기·재사용 시스템으로 전환하는 것이 바다를 살리고 환경을 지키는 해법이 아닐까 싶다.

2024-12-17

‘짧지만 긴 여운 …’ 소설가 김강의 엽편소설 이기전(李己傳) <하편>

시월의 어느 날이었다. 희수는 전학을 갔다. 희수는 전학을 간다고 기에게 따로 말하지 않았다. 누군가 희수가 결석을 했다고 이야기했고 담임선생님은 희수가 전학을 갔다고 대답했다. 그즈음 희수와 기는 짝이 아니었다. 여름방학 이후 둘은 멀어졌다. 그 해 여름, 비가 자주 그리고 많이 왔다. 여름 방학, 반 별로 야영을 가기로 되어있었다. 기의 반이 야영을 가기로 한 날 전날에 비가 왔다. 계곡마다 물이 많이 불어났다. 결국 기의 반은 학교 운동장에서 야영을 했다. 네 명씩 한 조가 되어 텐트를 쳤다. 기와 희수는 같은 조였다. 희수는 멀뚱히 서 있는 기를 끌고 와 밥 짓는 법을 가르쳐 주었다. 쌀은 어떻게 씻어야 하는지, 물은 얼마나 부어야 하는지. 몇 개의 조를 합쳐 팀을 만들었고 팀별 대항전으로 게임을 하고, 캠프파이어를 했다. 그리고 취침 시간이 되었다. 그 시간에 자는 아이들은 없었다. 어두운 와중에 축구를 하는 아이들도 있었고, 몇몇은 학교를 빠져나가 오락실로 향하기도 했다. 기와 희수와 같은 조였던 다른 두 명이 그랬다. 한 명은 축구를 하러 갔고, 한 명은 오락실로 갔다. 기와 희수만이 남았다. 기는 희수에게 우리도 축구하러 가자고 이야기 했지만, 희수는 그냥 텐트에 머물러 있기를 원했다. 둘은 누웠다. 텐트 천장에 매달아 둔 랜턴이 이리 저리 흔들렸다. 랜턴의 빛은 기를 비추기도 했고 희수를 비추기도 했다. 운동장 바닥이라 그런가? 잠자기에 불편한데 하고 기가 생각할 즈음, 혹시 잠들었어? 하고 희수가 물었다. -저기 있잖아. 기야. -왜? -뭐 하나 물어봐도 돼? 기가 고개를 돌려 희수를 보았다. 흔들리던 랜턴의 불빛이 잠시 멈췄다. 희수의 뺨을 비췄고 하얀 희수의 뺨은 발갛게 물들었다. -기. 너. 내가 널 좋아한다고 고백하면 어떻게 할 건데? 발갛게 물든 희수를 바라보던 기는 일어나 앉았다. 랜턴을 이리저리 돌려보다 말했다. -랜턴 건전지를 갈아야 할까봐. 어두워진 것 같아. 희수가 기를 따라 일어나 앉았다. -말 돌리지 말고 대답해봐. 기수는 랜턴을 풀어 내렸다. 가방을 뒤졌다. 건전지를 꺼내 랜턴 옆에 두고는 전구가 있는 부분을 돌려 풀면서 대답했다. -니 녀석이 날 좋아하는 건 잘 알지. 그러니까 내 옆에 붙어서 따라다니지. 희수는 기의 무릎에 손을 얹었고 기의 무릎을 흔들었다. -아니. 그런 거 말구. 사랑 같은 것 말이야. 기는 랜턴의 건전지를 꺼냈다. 새로운 건전지를 넣으려는데 건전지가 손에서 자꾸 빠져나갔다. 바닥에 떨어진 건전지를 주우려했지만 어두워서 그런지 잘 잡히지 않았다. 건전지를 찾아서 바닥을 더듬던 손에 희수의 손이 와 닿았다. 희수가 말했다. -내가 여자라면, 내가 언젠가 여자가 된다면 날 사랑해줄 수 있겠어? 다음날 둘은 서로에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야영 이후 방학이 끝나는 날까지 기는 희수를 만나지 않았다. 희수가 편지를 보내고 찾아오기도 했지만 기는 희수를 만나지도 답장을 하지도 않았다. 개학을 하는 날 기는 희수 옆에 앉지 않았다. 희수가 가방을 들고 다가와 기의 옆에 앉으려 했다. 기가 희수에게 말했다. -저리 가. 쳐다보지도 가까이 오지도 말을 걸지도 마 -언제 들어도 멋진 노래이지요. 멋진 날에 멋진 노래입니다. 이어 말씀드리겠습니다. 노래가 끝나자 디제이가 다시 말을 이었다. -저는 사과데이가 사과를 재배하시는 분들의 영농조합이나, 사과가 유명한 지방의 지방자치단체가 처음 제안했을 것이라 생각했었습니다. 그런데 찾아보니 그런 곳과는 관계가 없이 시작되었더라고요. 2002년 ‘학교폭력 대책 국민협의회’를 비롯한 시민단체가 학생, 교사, 학부모를 대상으로 화해와 용서의 운동을 벌이자는 취지로 시작했다고 합니다. 시월에 둘(2)이 사(4)과 한다는 의미로 날짜를 정했답니다. 학교 폭력이 계기가 되었다지만 어디 학교만의 문제겠습니까? ‘나’로 인해 마음 아팠을 사람들에게 일 년에 한 번 사과하고 용서받을 수 있는 기회를 갖자. 그런 취지의 내용이라면 우리 모두가 동참할 수 있는 일 아니겠습니까. 전 아무래도 좋습니다. 사과 농사 하시는 분들께 도움도 되고, 기회를 놓쳐 하지 못했던 사과도 하고, 서로 마음도 풀고. 나쁜 것은 지우고 좋은 것만 남기고. 오늘은 혼자서 좀 길게 떠들었습니다. 쉬었다 가겠습니다. 노래 하나 더 들어야지요. 참. 사과를 받으신 분은 꼭 사과를 하신 분 앞에서 사과를 크게 베어 물어야 한답니다. 그래야 사과를 받아준 것이 된다 하네요. 명심하십시오. 그게 핵심입니다. 한 반에 오십 명 남짓한 사람들이 모여 생활을 하다 보면 비밀이라는 것은 있을 수가 없다. 누가 누구와 친한지, 누구와 누구의 사이가 안 좋은지. 그리고 이런 놈도, 저런 놈도 있기 마련이다. 이런 놈들, 저런 놈들 중에 나쁜 놈들이 있었다. -어이. 희순. 희수 말고 희순 이라고 하자. 기랑 헤어졌다며. 이제 나랑 사귀자. 응. 뽀뽀도 좀 해주고. 이리 와봐. 나하고 사귀는 거다. 나쁜 놈들 중 한 녀석이 희수를 건드렸다. 희수를 자기 옆자리로 강제로 데리고 갔다. 희수는 소리를 지르기도 하고, 온 힘을 다해서 저항을 해보았지만 소용이 없었다. 누구도 나쁜 한 녀석과 맞서려 하지 않았다. 기 또한 뒤돌아보지 않았다. 희수를 위해 뭐라도 하면, 그것이 무엇이든 기와 희수는 한데 엮일 것이 분명했다. 둘이 사랑이라도 하는 거냐. 희수가 너의 여자친구인거냐. 누군가의 입에서 그런 이야기가 나올까 두려웠다. 기가 희수를 외면하는 동안 희수는 나쁜 녀석의 장난감이 되었다. 그해 가을 희수는 전학을 갔다. 녀석을 피해서였다. 학교를 옮겼다고 해서 새로운 인생을 살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나쁜 녀석들끼리는 서로 통하는 법이었고, 옮겨간 학교에도 나쁜 녀석들은 있었다. 희수에 대한 이야기는 금방 퍼졌고 희수는 그곳에서도 괴롭힘을 당하기 시작했다. 기에게는 평온이 찾아왔다. 희수가 사라졌다거나 자살했다는 소식을 듣기도 했지만 개의치 않았다. 깊지 않은 계곡위로 놓인 작은 다리를 지났다. 건너편 숲 나무들 사이로 청록의 슬레이트지붕이 보였다. 다리를 지나 제법 경사진 비탈길을 올랐다. 비탈길을 넘어서자 평지가 나왔고 평지의 끝에 청록의 대문과 청록의 슬레이트지붕을 가진 단층집이 있었다. 길 끝에는 청록의 대문이, 대문옆 벽에는 망원사라 적힌 현판이 매달려 있었다. 한자가 아닌 한글 현판이었다. 망자는 무슨 망자며 원자는 무슨 원자인지, 기는 궁금했지만 대문 앞에서 머뭇거리지는 않았고 마당으로 들어섰다. 청록 슬레이트지붕 아래의 허름한 법당에서 향내가 흘러나왔다. 마당 한구석에서 빨래를 하고 있던 공양주가 일어서서 기 쪽으로 다가왔다. 어찌 오셨냐. 그녀가 물었고 기는 스님을 만나러 왔다고 대답했다. 그녀는 먼저 부처님께 인사를 드려야 스님을 만날 수 있다고 했다. 기는 운세를 보거나 상담을 하러 온 것이 아니라고 말을 하려다 그만 두었다. 공양주의 안내대로 법당에 들어갔다. 백팔 배 정도는 해야 부처님께 인사를 한 것이고 절만 해서 되는 것도 아니라고 부처님께 최소한의 성의를 보여야 한다며 공양주는 불상 아래에 놓인 불전함을 가리켰다. 기는 백팔 배를 시작했다. 희수라면 어쩌지? 내가 기다. 이렇게 말하고 웃으며 손을 잡아야 하나. 그러면 희수가 그래 맞네. 우리 기네. 이렇게 다시 보게 되었네 하고 말하며 반길까? 나는 당신 같은 사람을 모르오. 나는 희수가 누군지도 모르오.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닐지도 모르니 찾지 마시오. 세상과 연을 끊었다며 돌아가라 말할까? 그래. 너 잘 만났다. 내 인생이 이렇게 된 것이 다 네 탓이니 책임을 져라. 왜 나만 이렇게 고생해야 하느냐. 탓을 할까? 이런 생각들이 땀과 함께 쏟아져 내렸다. -무슨 싸움 하듯 절을 하누. 보고 있는 부처님이 어지러우시겠어. 스님을 보러 왔으면 스님 볼 힘은 남겨둬야지. 부처님께 인사만 하다 갈 건가? 뒤에서 보고 있던 공양주가 기를 멈춰 세웠다. 잠시 앉아서 숨을 고른 후 기는 불전함에 지폐 몇 장을 넣었다. 불전함에 지폐를 넣는 것을 확인한 공양주가 스님의 방으로 들어갔다. 잠시 후 공양주가 기를 불렀다. 기와 스님은 마주서서 합장을 했다. -서 계시지 말고 앉으시지요. 스님은 ‘ㄱ’자로 손가락을 구부려 오른쪽 귀 뒤 머리를 긁으며 앉았고 기는 소반을 사이에 두고 스님과 마주 앉았다. 스님은 기의 얼굴을 한참 바라보다 텅 빈 소반 위로 시선을 고정한 채 염주를 돌리기 시작했다. 하나씩 하나씩 천천히 천천히 염주 구슬이 엄지손가락을 넘어 갔다. 스님은 염주를 돌렸고 기는 그것은 보았으며, 공양주는 차를 들고 들어오다 멈춰 섰다. 염주가 세 번 돌았다. 정확히 오십 네 개의 염주 구슬이 엄지손가락을 지나갔을 때 스님이 헛기침을 했다. -아니, 스님을 보러 오셨으면 이야기를 해야지. 뭐하시나. 무슨 이야기든 해보세요. 우리 스님이 다 들어주신다니까. 공양주가 소반에 차를 내려놓으며 기에게 말했다. 기는 네 라고 짧게 대답했지만 말을 잇지 않았다. 고개를 숙인 채 멈춰버린 염주를 쳐다보았다. 염주를 쥔 손이 고왔다. -오늘은 제가 먼저 이야기하지요. 스님이 기의 잔에 차를 따르며 입을 열었다. 기는 고개를 끄덕였다. -낯이 많이 익습니다. 처사님 얼굴이. 아마도 전생에 처사님과 제가 제법 사연이 있었나 봅니다. 나쁜 인연은 아니겠네요. 이렇게 부처님이 계신 곳에서 다시 만났으니까요. 하하. 아이고. 별 일이시네. 우리 스님이 먼저 이야기를 다 하시고, 옆에 있던 공양주가 방석을 가지고 와 자리를 잡았다. -부처님 앞에서 할 이야기는 아니지만 저도 기억하는 전생이 딱 하나 있습니다. 전생에 저는 버섯이었습니다. 꽃을 피우고 싶어 하는 버섯이었지요. 옆에 핀 예쁜 꽃들을 보며 버섯은 왜 꽃이 피울 수 없는지 억울하기도 했고 부럽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수십 년 피고 지는 꽃들을 바라보다 문득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꽃이 별 건가. 별과 나비가 찾아와 같이 놀아주면 그게 꽃이 아닌가. 그때부터 버섯은 자기를 꾸미기 시작했습니다. 머리 색깔도 빨강으로 바꾸고 향기도 만들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드디어 나비 한 마리가 찾아왔지요. 버섯은 너무나 기뻐서 가지고 있던 모든 향을 뿜어내었습니다. 바람이 불지 않는데도 바람이 불어오는 척, 바람에 흔들리는 꽃인 척 몸을 흔들었지요. 하지만 버섯의 빨강 머리에 앉았던 나비는 잠시 후 버섯이 꽃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차렸습니다. 그리고는 뒤돌아보지 않고 날아가 버렸습니다. 제가 기억하는 전생은 거기까지입니다. 그 뒤에 버섯이 어찌되었는지는 잘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뒷이야기가 중요하겠습니까? 어차피 전생인데. 옆에 앉아 있던 공양주가 하이고. 세상 살다 살다 별일이네. 별일이야. 내 앞에서는 전생이야기는 한 번도 꺼내지 않으시더니. 우리 스님한테 그런 전생이 있었어요? 하이고. 자신도 처음 듣는 이야기라며 하이고 하이고를 반복했다. -이제 해결되셨습니까? 꼭 자기 이야기를 해야 일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다른 사람 이야기를 듣기만 해도 술술 일이 풀려나가는 경우도 있지요. 하하. 그런데 처사님. 가지고 오신 종이가방에 든 것은 무엇입니까? 기는 아. 예. 하며 종이가방에 넣어 두었던 사과를 꺼내어 소반위에 올렸다. 공양주가 어. 사과네. 하며 스님을 쳐다보았다. 스님은 물끄러미 사과를 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사과의 빛깔이 참 곱네요. 빨강이네요. 처사님. 빨강의 보색이 뭔지 아십니까? 기는 스님의 얼굴을 보며 대답 없이 웃었다. 공양주는 스님과 기의 얼굴을 번갈아 살폈다. 스님은 공양주에게 종이를 가져다 달라 했다. -사과는 다시 저기 놓아두시고 제 글이나 하나 받아 가십시오. 우리 절에 오시는 분들에게 드리는 저의 답이지요. 스님은 글을 써내려갔다. 청산은 나를 보고……. (끝) 김강 소설가·내과의 김강(52)은 소설가인 동시에 내과의사고, 포항에서 ‘도서출판 득수’를 운영하는 출판사 대표이기도 하다. 2017년 단편 ‘우리 아빠’로 심훈문학대상을 받으며 등단했고, 단편집 ‘우리 언젠가 화성에 가겠지만’ ‘소비노동조합’을 썼다. 지난해엔 장편 ‘그래스프 리플렉스’를 펴내 문단과 독자들의 주목을 받았다.

2024-12-17

삶이 짐이 된 영케어러

우정구 논설위원 대구시가 최근 가족이라는 이유로 병든 부모를 돌보고 집안 일을 하며 생계를 책임지는 청춘돌봄이(영케어러) 311명을 발굴하고 이들을 지원키로 했다고 발표했다. 영케어러(Young Carer)는 질병이나 장애를 가진 가족을 부양하는 청소년, 청년들을 이르는 말이다. 13세에서 39세 이하의 영케어러들은 대개 하루 5시간 이상을 가족 돌봄 노동에 시달리고 있다. 그중 절반은 월 100만원 이하의 소득으로 살아간다. 일반적으로 이들 인구는 청년인구의 약 5% 정도로 추정한다. 국내에는 30만명의 영케어러가 있을 것으로 추정하나 정확한 통계는 없다고 한다. 자신의 꿈을 키우기에도 바쁜 나이에 가족의 생계 등을 돌봐야하는 그들에게는 삶 자체가 고달픔이다. 또래의 남들처럼 여행을 간다거나 스포츠를 즐기는 일 등은 아예 상상이 안 된다. 복지의 사각지대란 복지 혜택을 받아야 할 사람 중 정부의 복지 정책에 미치지 못하는 대상자를 말한다. 여러가지 사유가 있으나 소득, 가구유형, 거주지역 등의 요인에 의해 분류된다. 우리나라 복지분야 예산은 전체 예산의 3분의 1수준. 천문학적 금액이다. 많은 복지 예산을 배정하고도 복지혜택을 못받는다는 사람은 늘어만 간다. 한 통계에 의하면 복지 담당자의 약 40% 정도는 복지 사각지대가 있다는 인식을 갖고 있다. 눈부신 경제성장으로 국제적으로 한국은 잘사는 나라로 인식되지만 빈익빈 부익부 등의 문제로 여전히 복지는 우리사회의 과제다. 학업과 사회진출에 어려움을 겪는 젊은 영케어러에 대한 우리 사회의 관심은 복지정책의 새로운 진전이라 할만하다. /우정구(논설위원)

2024-12-17

윤석열·한동훈 갈등의 비극적 결말

심충택 논설위원 점입가경으로 치닫던 윤석열·한동훈 갈등이 결국 비극으로 막을 내렸다. 비상계엄 선포라는 충격적인 사태를 일으킨 윤 대통령은 지금 대통령실이 아니라 관저에서 변호인단과 탄핵심판에 대비하는 신세가 됐다. 비상계엄 사태를 수사하는 공조수사본부는 그에게 내란·직권남용 피의자 신분으로 출석해 조사를 받으라고 통보했다. 오늘 오전까지 정부과천청사에 있는 공수처 청사에 와서 조사를 받으라는 독촉이다. 공조본은 경찰청, 공수처, 국방부 수사기관이 모인 협의체다. 공조본에 빠진 검찰도 그에게 서울중앙지검으로 출석할 것을 통보했다. 계속 불응했다간, 언제 체포될지 모른다.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는 지난 16일 사퇴했다. 그는 이날 “모든 국민께 진심으로 죄송하다. 탄핵이 아닌 이 나라의 더 나은 길을 찾아보려 백방으로 노력했지만 결국 그러지 못했다”고 했다. 당 대표로 선출된 지 146일 만의 사퇴다. 지난연말 한 대표가 국민의힘 비대위원장으로 취임한 이후 끊이지 않았던 ‘윤·한 갈등’이 결국 ‘탄핵소추’와 ‘실각’이라는 비극으로 끝났다. 두 사람은 검사 시절 막역한 사이로 소문나 있다. 서울대 법대 선후배 관계이며, 검찰에서도 ‘특수통’ 선후배로서 각별한 인연을 맺어왔다. 이 때문에 윤 대통령 출범 이후 한 대표는 정권핵심으로 자리잡았다. 두 사람간의 마찰은 한 대표가 비대위원장을 맡으면서 시작됐다. 발단은 김건희 여사 문제였다. 김경율 비대위원이 김 여사를 마리 앙투아네트에 비유한 직후, 한 대표가 “명품백 수수 의혹에 대해 윤 대통령이 입장표명을 해야한다”고 말한 게 화근이 됐다. 그 후 해병대원 사건 외압 의혹, 김경수 전 경남지사 복권 이슈, 2026학년도 의대 증원 유예 문제 등으로 두 사람의 관계는 계속 악화됐다. 국민의힘 의원들은 이 과정에서 두 사람 간 충돌을 진화시키기는커녕, 오히려 계파를 형성해 싸움을 부추겼다. 지난 7월 전당대회 때는 한동훈 후보 공격을 사주한 정황이 담긴 대통령실 김대남 행정관의 녹취록이 공개되면서 갈등이 깊어졌다. 그 후에도 윤 대통령의 한 대표 패싱논란 등 두 사람의 갈등을 부채질하는 악재가 속출했고, 대통령 지지율은 바닥을 쳤다. 두 사람 간 충돌은 윤 대통령 비상계엄 선포 후 폭발했다. 국회 탄핵소추안 표결 직전 한 대표가 탄핵 찬성 입장을 밝히고 대통령 출당을 추진하자, 친윤계는 한 대표를 향한 사퇴 압박 수위를 높였다. 결국 친한계를 포함한 선출직 최고위원 전원 사퇴로 ‘한동훈 지도부’는 붕괴됐다. 한솥밥을 먹던 대통령과 여당 대표의 불신과 반목은 결국 당을 사분오열시켰다. 리얼미터가 지난주(12∼13일) 실시한 정당 지지도 조사결과 민주당은 52.4%, 국민의힘은 25.7%를 기록했다. 양당 간 지지도 격차가 26.7% 포인트나 벌어졌다.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 홈페이지 참조) 국민의힘이 내분을 수습하지 못하고 지리멸렬한다면 군소정당으로 추락할 수 있다. 조속히 당내부를 정비하고 당의 정체성을 확보해 여당으로서의 리더십을 발휘해야 한다.

2024-12-17

한국, 대설과 동지 사이

홍성식 (기획특집부장) 눈 내리는 여름이 없듯, 춥지 않은 겨울도 없다. 겨울은 매서운 바람과 차가운 바다가 외려 매력적인 계절이다. 적지 않은 이들이 겨울 낭만을 찾아 두꺼운 외투로 몸을 감싸고 동해의 해변을 걷는다. 친구와 연인, 가족과 함께. 드물게는 홀로 12월의 바닷가를 산책하는 이들도 있다. 절기는 대설(大雪)을 지나 동지(冬至)로 간다. 지금 한국은 겨울의 한복판으로 걸어 들어가는 입구에 서있다. 비단 기온만이 아니라, 사회 전 분야가 차갑게 얼어붙고 있어 많은 이들이 걱정이다. 정치는 혼란스럽고, 사회적 분위기는 우울과 분노를 오가고, 경제는 파탄 일보 직전이란 신호가 들어와 있는 상태다. 24절기 중 21번째 절기인 대설은 눈이 가장 많이 내린다는 뜻에서 붙여진 이름. 태양의 황경이 255도에 도달한 때다. 대설을 맞은 날 눈이 오면 이듬해엔 풍년이 든다는 이야기가 떠돈다. 동지는 태양이 황경 270도 위치에 있을 때를 지칭한다. 한 해 중 밤이 가장 길어진다. 올해는 21일이 동지다. 양력으로 동지가 음력 동짓달 초순에 들면 애동지, 중순에 들면 중동지, 그믐 무렵에 들면 노동지라고 한다. 이날은 팥죽을 먹는 풍습이 있다. 사람들의 출근길. 어깨 움츠러드는 추운 날씨를 온몸으로 느끼는 요즘이다. 그런데, 마음을 차갑게 하는 일들까지 자꾸 생긴다. 갑작스런 비상계엄 선포와 국민의 노여움, 대통령 탄핵 소추 표결을 둘러싼 갈등과 고위 장성들의 연이은 구속영장 발부…. 한 치 앞도 예측하기 힘든 눈보라 속 같은 이 겨울이 어서 지나고, 누구나 희망과 꿈을 이야기하는 다사로운 봄이 왔으면 하는 바람이 벌써부터 간절하다. /홍성식(기획특집부장)

2024-12-16

탄소중립과 청년

남광현 대구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 탄소중립은 현대 사회가 직면한 가장 중대한 과제 중 하나로, 이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개인과 지역 사회의 동참이 필수적이다. 특히, 청년 세대는 디지털 기술과 창의적 사고를 바탕으로 탄소중립 실천을 가속화 할 잠재력을 가지고 있다. 대구광역시는 이러한 청년들의 가능성을 적극 활용해 탄소중립 실천 문화 확산에 앞장서고 있다. 2024년 출범한 ‘대구 탄소중립 청년 서포터즈’는 지역 주민과 청년들이 함께 할 수 있는 새로운 변화를 만들어 가는데 기여하고 있다. 2024년 대구광역시 ‘탄소중립 청년 서포터즈 1기’는 4월부터 12월까지 약 9개월간 다양한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탄소중립 실천 확산에 앞장섰다. 서포터즈는 친환경 소비, 에너지 절약 등 5대 실천 분야를 주제로 카드뉴스, 영상, 블로그 포스팅 등 총 215개의 콘텐츠를 제작해 시민들과 소통했다. SNS 조회수는 약 2만8000회, 공감 및 긍정적 피드백은 20000건 이상을 기록하며 탄소중립 실천에 대한 대중의 관심을 성공적으로 끌어냈다. 서포터즈의 활동은 온라인 콘텐츠 제작에 국한되지 않았다. 이들은 지구의 날과 환경의 날 등 지역 행사를 직접 기획·운영하며 시민들과의 접점을 확대했다. 현장 이벤트와 부스 운영을 통해 탄소중립 실천 방법을 알리고, 기후위기의 심각성을 환기시키는 역할을 했다. 이러한 활동은 청년들이 단순히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을 넘어, 지역 사회를 변화시키는 중요한 주체로 자리 잡았음을 보여준다. 청년들은 탄소중립 실천의 핵심 세대다. 디지털 기술과 창의적 사고를 갖춘 MZ세대는 온·오프라인 캠페인을 통해 대중의 관심을 효과적으로 유도할 수 있다. ‘대구 탄소중립 청년 서포터즈’는 이러한 강점을 활용해 탄소중립 실천 문화 확산의 선두에 섰다. 앞으로의 과제는 청년들의 역량을 더욱 체계적으로 지원하고 확장하는 것이다. 2025년 대구시는 서포터즈 운영을 확대하며, 청년들이 더 많은 시민 참여형 프로젝트를 기획하고 실천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특히, 탄소중립 지식 콘텐츠 발굴과 온라인 챌린지 기획 등을 통해 청년들이 탄소중립 실천을 주도적으로 이끌도록 유도할 예정이다. 탄소중립은 단순히 환경 보호를 넘어, 미래세대를 위한 생존의 문제이다. 청년들은 창의성과 실천력을 바탕으로 탄소중립 실천의 주역이 될 수 있다. ‘대구 탄소중립 청년 서포터즈’의 활동은 이러한 가능성을 입증한 대표적인 사례로, 지역 주민과 청년들이 함께 미래를 만들어 갈 새로운 모델을 제시했다. 청년들이 중심이 되어 실천하는 탄소중립 캠페인은 지역사회를 넘어 전 국민적 움직임으로 확산될 수 있다. 이러한 청년들의 도전을 힘껏 응원해 주면 어떨까. 그렇게 된다면 지속 가능한 미래를 위해 함께 나아 갈 수 있을 것이다. 내년에는 이러한 탄소중립 실천의 주역인 청년의 도전과 성과 모델을 반영해 유소년, 장년 등 좀 더 다양한 세대에도 펼쳐지기를 바란다.

2024-12-16

책을 선물하자

김규인 수필가 2024년 12월 10일, 스웨덴 스톡홀름 콘서트홀에서 한강의 노벨상 시상식이 있었다. 한국인으로서도 아시아 여성으로서도 최초의 문학상 수상이다. 국내외에서 우울한 일만 가득했는데 오랜만에 활짝 웃었다. 문학의 변방이 아니라 원래 책을 열심히 읽는 문화민족임을 일깨워 준 기분 좋은 일이다. 블루 카펫 위에서 스웨덴 국왕으로부터 직접 노벨상을 받는 한강을 보면서 문화민족으로서의 자부심을 느꼈다. 한강의 수상 연설을 통해 문학에 대한 뿌리 깊은 열정을 느꼈으며 ‘시적 산문’이라는 그의 글을 다시 읽게 되었다. 한강의 수상은 개인의 영광이 아니라 문화민족인 대한민국의 기쁨이다. 한강은 2015년 황순원 문학상을 시작으로 맨부커상, 메디치 외국 문학상, 노벨문학상을 수상하였다. 특히 맨부커상 수상 이후 국내의 다른 작가들도 해외의 문학상 수상이 늘어났다. 이번 노벨문학상 수상으로 국내 작가들에 대한 번역도 많이 늘어날 것이다. 한국문학번역원의 번역 활동도 활발하다. 한강의 맨부커상 수상으로 국내 문학이 해외로 많이 소개되고 특히 노벨문학상 수상으로 관심이 늘어나 글을 쓰는 사람으로 여간 반가운 일이 아니다. 국내 출판사에서는 한강 작가의 작품집을 찍어내기에 바쁘고, 이는 다른 나라에서도 마찬가지다. 글 쓰는 사람으로서 가슴 뛰는 시간을 보냈다. 책을 잘 읽지 않는 요즈음에 줄을 서서 책을 사다니. 출판사도 글 쓰는 사람들도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그러나 텔레비전만 켜면 나오는 정치권의 뉴스로 오랜만에 불어온 문학책을 읽는 분위기가 사라지고 사람들은 피켓을 들고 거리로 나선다. 어떻게 불어온 문학 열풍인데 허무하게 사라지게 할 수는 없지 않은가. 제주에 유배된 스승을 위해 중국에서 책을 사서 제주로 가는 험한 뱃길을 통해 책을 전달한 제자 이상적과 추사 김정희의 이야기는 유명하다. 우리는 책을 소중히 한 민족이 아닌가. 책이 없어 아버지가 직접 글을 써서 책을 만들어 자식 공부를 시켰고, 만든 책을 선물하는 것은 우리 민족의 오랜 전통이다. 살림살이가 넉넉지 않은 젊은 시절에도 책을 선물하는 분위기는 있었다. 친구에게 자신이 좋아하는 책을 선물하고, 자식의 장래를 위해 책을 선물하던 우리다. 그러던 우리가 경제 규모가 커지고 디지털 문명이 급격히 발달함에 따라 책은 뒤로 밀려나기 시작했다. 책보다 더 비싼 선물을 해야만 직성이 풀리는 부모들은 휴대 전화를 선물하여 아이들에게서 책을 떼어버린다. 노벨의 나라 스웨덴에서는 노벨문학상을 받은 책을 선물하는 풍습이 있다. 노벨 주간이 되면 책을 사는 사람들이 서점으로 몰려들고 그 덕분에 주위에서 책을 읽는 사람들을 자주 보게 된다. 우리는 그보다 더한 글을 읽는 선비 정신이 있지 않은가. 몸속에 책을 읽는 유전자가 흐르지 않는가. 가까운 이들에게 책을 선물하자. 책을 받은 사람이 다른 책을 선물하고, 온 사회에 책을 읽는 분위기를 만들자. 책으로 보다 깊이 뿌리 내린 한류를 만들자. 텔레비전에서 뭐라고 하던 문학을 가까이 하자. 한강의 문학이 한류의 새로운 주역이 되기를 희망한다.

2024-12-16

갱년기에서 벗어나기

박용호 포항참사랑송광한의원장 갱년기는 다양한 증상으로 여성을 괴롭힌다. 쉽게 지나가는 사람도 있고 증상이 있더라도 몇 년 안에 회복되는 경우는 다행이다. 어떤 사람은 몇 년 혹은 십년이상 갱년기 증상으로 고통 받기도 한다. 남성 갱년기도 있다고 하나 이는 여성과는 다르다. 갱년기 증상은 여성에게만 있는 고유 질환이라 보는게 맞고 겪는 사람은 심각한 괴로움을 겪는다. 질병 또는 노화에 의해 난소기능이 감소하면 폐경과 관련된 신체적 및 심리적 변화를 겪는다. 이 폐경 전후시기를 갱년기라 말하고 시작은 40대에 접어들면서 월경이 불규칙 해지는 걸 시작이라고 본다. 증상은 수면장애와 심한 불면, 열이 훅 오르면서 땀이 나고, 어지럼증 및 두통 피부가려움 등의 신체 증상이 나타나고 정신적으론 우울감과 가슴이 답답해지는 듯한 증상들이 나타난다. 위의 모든 증상으로 고생하는 경우가 있고 일부 증상만 나타나면서 심하지 않게 넘어가는 사람도 있다. 폐경 전 1~2년 후부터 증상이 나타나고 폐경이 끝난 후 4~5년 정도까지도 고생을 한다. 살면서 받은 스트레스가 심할수록 현재의 증상이 심하고 마음 편하게 살면 증상이 약한 경향성을 띈다. 선천적으로 몸이 약하고 평소에도 심장이 자주 두근거리는 사람은 스트레스와 상관없이 증상이 생긴다. 스트레스 관련으로 증상의 경중이 생기는 것은 갱년기는 화병증상과 거의 동일하기 때문에 살면서 받았던 스트레스와 현재의 스트레스가 증상의 경중에 영향을 미친다. 갱년기 증상의 경중은 내 몸의 건강 상태와 스트레스 여부에 따라 달라진다고 볼 수 있다. 수십년 생활의 결과로 나오는 증상이라 보면 그동안의 생활 습관을 그대로 유지 한다면 좋아지긴 힘들다. 생활습관을 바꿔야 한다. 첫째 안하던 운동을 해야 한다. 빠른 걸음으로 걷기 운동은 아주 좋다. 30분에서 1시간 정도로 할 수 있는 만큼 하면 된다. 답답하면 밖으로 나가서 조금 숨이 차도록 걸으면 머릿속이 편해지고 잡념이 줄어들어 자연스레 명상의 효과도 난다. 두 번째로 열이 나는 음식들을 금해야 한다. 고춧가루, 홍삼, 커피, 에너지 드링크 등 힘이 나는 식품들은 가슴에 쌓인 열을 가중 시키니 자제 하는 것이 좋다. 셋째 내가 신경 쓰는 일들은 신경 쓴다고 해결되지 않는다. 맘을 편히 가지는 연습을 하고 집에 있을 때 눈을 감고 가만히 있으면 가슴의 화가 조금씩 내려간다. 시간을 들여 꾸준한 노력을 하면 인체는 보답을 한다. 집에 치자가 있다면 차로 달여 복용을 하면 갱년기 증상에 도움이 된다. 진하게 끓여 먹지 말고 약하게 해서 차처럼 해서 먹는 것이 좋다. 청국장이나 낫또와 같은 발효 콩도 가슴의 막힌 것을 뚫어 갱년기 증상을 완하 시켜줄 수 있으니 몸에 맞는다면 식품으로 자주 먹는 것이 좋다. 음식은 천천히 골고루 꼭꼭 씹어 삼키고 절대 빨리 먹으면 안 된다. 위장이 막히면 갱년기 증상은 더 심해지기 때문에 위장에 부담을 주지 않는 것이 좋다. 치료는 교감신경 항진을 줄여주는 쪽으로 처방과 함께 그에 맞는 자율신경조절 약침을 쓸 수 있다. 상부경추를 풀어 주면 머리로 가는 혈액순환과 신경전달이 원활해지므로 추나도 같이 겸해서 해주는 것이 좋다.

2024-12-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