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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거제의 작은 섬, 씨릉섬과 그 주변 이야기

‘씨릉섬’이라니, 섬의 이름이 독특하다. 그런데 또 제목을 정해 글을 쓰려니 명칭 또한 애매하다. 씨릉섬은 거제도의 섬일까, 칠천도의 섬일까. 경남 남부 해상의 거제도는 제주도 다음으로 큰 섬이다. 한국의 섬 도시 중에서 유일한 자치 시로, 73개의 부속 섬을 거느리고 있다. 10개의 유인도와 63개의 무인도로 이루어졌는데, 그중에 가장 큰 부속섬이 바로 칠천도(七川島)다. 칠천도는 거제도의 북쪽 끝 장목면에서 서쪽에 보이는 섬이다. 일곱 개의 하천이 있다고 해서 칠천도지만, 예전에는 옻나무가 많아 이름에 옻 칠(漆) 자를 쓰기도 했다. 부산에서 거가대교를 지난 뒤 칠천연륙교를 건너면 어렵지 않게 들어갈 수 있다. 해안 일주도로에서 시시각각으로 변하는 풍광과 칠천도 최고봉 옥녀봉에서 내려다보는 경치는 그 무엇과도 비견할 수가 없는데, 옥녀봉 남쪽 1,2km 지점에 위치한 작은 섬이 바로 씨릉섬이다. 씨릉섬은 옥황상제의 딸 옥녀의 설화가 깃든 섬이다. ‘거제도 설화 전집’에 의하면 “옛날 옛적, 하늘나라 옥황상제에게는 딸이 있었는데 그녀는 아주 아름답고 총명한 공주였다고 한다. 그런데 어느 날 큰 실수를 저질렀고, 공주를 너무 사랑한 옥황상제도 하늘나라의 규칙을 어길 수 없었기에 눈물을 머금고 딸을 거제 땅 칠천도로 쫓아내고 말았다. 그렇게 딸은 지상으로 내려와 외로운 나날을 보내게 되었고, 거제도 사람들은 그녀를 ‘옥녀’라고 불렀다. 오로지 하늘나라로 올라갈 날만을 기다리던 공주는 세월이 흐르면서 점점 지쳐버렸고, 결국에는 산이 되고 말았다. 그 산이 바로 칠천도의 최고봉 옥녀봉이라고 한다. 칠천도에 머무르던 옥녀는 무료한 시간을 달래기 위해 매일 거문고를 타면서 노래를 불렀는데, 아름다운 음악 소리는 바다 건너까지 울려 퍼졌고, 그 매혹적인 선율에 용왕신이 바다에서 올라와 그녀의 거문고 반주에 맞춰 북을 쳤다고 한다. 두 사람이 함께 연주하는 모습이 얼마나 아름답고 즐거운 광경이었던지, 옥녀의 거문고 소리에 맞춰 섬도 즐거워서 ‘씨릉씨릉’ 소리를 내었다고 한다. 그 섬이 바로 ‘씨릉섬’이고, 용왕신이 북으로 이용한 섬이 씨릉섬 옆에 있는데, 섬의 모양이 북처럼 생겼다고 해서 ‘북섬’이라고 부른다고 한다. 지금도 바람이 불고 파도가 높이 칠 때면 씨릉섬과 북섬은 ‘둥둥’ 북소리를 낸다고 한다.” 송포 아랫마을에서 조망하는 수야방도 인도 교와 수야방도 전경. 행정상으로 씨릉섬은 경남 거제시 하청면 연구리 산 79번지다. 전체 면적은 7만 8985㎡로, 사람이 살지 않는 ‘무인도서’다. ‘무인도서’란 바다로 둘러싸여 있고 만조 시에 해수면 위로 드러나는 자연적으로 형성된 땅으로서 사람이 거주하지 아니하는 곳을 말한다. 그 씨릉섬이 지난 7월부터 드디어 베일을 벗었다. 사람이 드나들지 않은 섬에 출렁다리가 놓인 것이다. 한갓지던 해변에는 떠들썩함이 하루 이틀 밀려들더니 이제는 일상이 되고 말았다. 필자도 진작에 한번 찾아들고 싶었지만, 차일피일 미루기만 했다. 꽃 피는 봄보다, 녹음이 드리워지는 여름보다, 색동옷으로 갈아입는 가을보다,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나신처럼 그대로 자신을 드러내는 겨울의 모습을 보기 위해서였다. 씨릉섬 출렁다리는 길이 200m, 폭 2m 규모로 조성되었다. 칠천도 칠천량해전공원 해안로에서 바다를 가로질러 씨릉섬과 연결되었다. 다리의 입구는 두 개로, 데크계단과 무장애 길이다. 남녀노소 누구나 이용할 수 있는 무장애 길은, 교통약자를 위해 별도의 경사로를 조성해 휠체어 이용자도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 출렁다리 넘은 씨릉섬에는, 길이 1,488m의 해안산책로와 5개의 쉼터가 있다. 섬의 입구인 정자목 쉼터에서 시계 반대 방향으로 돌아보면 봉우리, 물빛, 초록바람 쉼터를 차례로 만나고, 다시 돌아 나오면서는 너울 쉼터를 만날 수 있다. 초록바람 쉼터는 씨릉섬의 정상부를 겸했는데 푸르른 소나무 숲과 더불어 애기동백꽃을 만날 수 있다. 왕복 거리는 3.6km, 산책 소요 시간은 약 1시간 정도로 대부분이 나무 그늘로 조성되어 사계절 언제 찾아도 좋다. 씨릉섬을 한바퀴 다 돌아 나오는 길, 푸르른 소나무 숲이 돋보이는 너울 쉼터 부근에서 북섬이 보였다. 그런데 그곳에서 애절하게 울어대던 새들의 목소리가 잊히질 않는다. 하늘로 올라가지 못한 옥녀의 그리움과 칠천량해전에서 참패한 조선 수군의 아우성이 나도 모르게 떠올랐다. 바람이 불 때마다 흔들리며 일렁이는 대나무 숲과 묘한 분위기가 만들어져 발걸음이 쉬이 떨어지지 않았다. 먼 길을 달려 거제도까지 갔다면 씨릉섬 하나만으로는 부족할 수도 있다. 지척에 임진왜란 7년의 해전사 중 유일하게 우리 수군이 패배한 전투인 칠천량해전을 기억하기 위한 칠천량해전공원과 차량으로 5분 거리에 수야방도(垂也防島)라는 섬이 있다. 지홍석 수필가 칠천량해전은 1597년 7월 원균의 지휘 아래 조선 수군이 왜군과 전투를 벌였다가 전함 180척 중 150척이 침몰하면서 1만여 명의 병사가 숨진 조선 수군 최대의 패전을 기록한 공원이고, 수야방도는 대곡리 송포마을 아래 바닷가에 뾰족한 땅끝이 반도를 형성하고 있는 작은 섬이다. 10,036㎡의 무인도로 트레킹 길이 개설되어 있는데 도보 여행자들에게 인기가 있는 곳이다. 2017년 칠천도 본섬 송포 아랫마을과 연결하는 수야방도 인도교가 가설되어, 언제나 부담 없이 다녀올 수가 있다. 한 바퀴 천천히 돌아보는 데 1시간이 채 걸리지 않는다. 정상에 설치된 정자에 오르면 일망무제의 조망이 가능하다. 고성의 구절산과 마산 진동면의 해안 모습, 진해의 장복산과 불모산을 두루 조망할 수 있는 최고의 조망처다. 아직은 때 묻지 않은 푸른 숲을 간직한 씨릉섬이다. 오랫동안 거제의 숨은 보석 중 하나로 손꼽힌 섬이기도 하다. 가족과 연인, 어떠한 모임도 만족할 만한 부담 없는 탐방지다. 출렁다리를 건너서 만나는 아름다운 풍경과 울창한 나무들 사이의 산책로는 힐링에 제격이다. 그래도 부족하다면 칠천량해전공원과 수야방도 트레킹은 여행의 아쉬운 부분들을 채울 수 있는 마지막 퍼즐이 될 것이다. /지홍석 수필가

2025-01-07

다시 일어설 기회

허민 문학연구자 실패와 실수, 후회와 불안, 후퇴와 망설임은 모두가 기피할 순 있어도 살다 보면 마주해야만 하는 단어들이다. 아니 마주한다기보단 끌어안고 지낸다는 말이 정확하겠다. 저마다 성공과 행복의 기준은 다르겠지만, 그런 기쁨보다는 반대의 경우가 더 일상적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소설을 공부하게 된 이유도 비슷했다. 내게 소설은 뒤로 물러서는 사람들의 이야기였다. 앞만 보며 달리다가도 돌부리에 걸려 넘어지고, 때론 거대한 벽에 막혀 뒷걸음질 치곤 하는 가장 보통의 실패를 담은 양식이 소설 아닌가 싶었던 거다. 인생의 승자보다는 패자가 될 확률이 높아 보이기도 했고, 승리를 자임할 수 있는 상황보다는 패배를 받아들여야 하는 순간에 익숙해질 필요가 있다고 판단했다. 소설과 문학은 슬픔과 불행을 끌어안는 장르라고 여기고 있었다. 그런 소설의 반의어가 있다면 자기계발서 아닐까? 자기계발이란 타인과의 경쟁을 세계의 이치로 받아들이고, 그러한 다툼 속에서 출세를 노리는 병법에 다름 아니라는 의미에서 그렇다. 나도 한때는 정말 많이 읽었던 것 같다. 그렇게 읽다 보니 한 가지 깨달은 사실이 있다. 자기계발서는 각자의 삶이 잘되길 바라는 당연한 마음에서 읽는다기보다는 잘 되지 못 할 수도 있다는 불안을 애써 지연하기 위해 찾게 되는 글이라는 거였다. 성공을 위한 지침대로 산다는 게 가능한지도 모르겠지만, 그렇게 산다 해도 승리를 보장받지 못한다는 초조함이 모두를 궁지로 내몰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미래에 대한 불안과 우려가 사회를 굴러가게 하는 일종의 원리로서 작동하는 시대의 비참은 그렇게 반복 형성되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지나간 선택에 대한 후회와 그러한 감회에서 비롯되는 자기에 대한 의혹에서야말로 지성이 발현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일본의 사상가 우치다 다쓰루는 지성이란 자기가 알고 있는 것들에 대한 확신이 아니라 오히려 그에 대한 의심으로부터 발생하는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또 다른 철학자 아즈마 히로키는 인간이면 누구나 실수를 저지르는 만큼 그것을 바로잡을 수 있는 시도를 사상의 언어로 포착해야 한다며 “정정 가능성의 철학”을 논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남는 문제가 있다. 자기의 잘못을 정정할 수 있는 기회조차 누구나 가질 수 있는 건 아니기 때문이다. 사회적 불평등의 기원은 결국 다시 일어설 수 있는 기회의 차별에서 비롯되는 것 아닌가 한다. 나는 모두에게 ‘플랜B’를 수행할 수 있는 권리가 있다고 생각한다. ‘플랜B’란 모두가 범할 수 있는 과오로부터 다만 좌절에 머무는 게 아니라, 그 다음을 모색할 수 있게 하는 가능성의 이름이다. 물론 그 가능성에는 개인적인 다짐과 용기를 넘어서 제도적인 뒷받침도 필요하다. 잘 살고 싶다는 마음은 누구에게나 있음에도 자기 삶을 바로 잡을 수 있는 여지에는 왜 사회적인 격차가 작동할까? 더구나 팬데믹 이후 장기 불황 속에서 극단적인 경제적 양극화가 야기되고 있기도 하다. 즉 누군가는 평범하게 살아가기조차 쉽지 않다는 말이다. 이러한 시대 상황에서 차선과 대안, 보완과 처방은 사회적 동물로서 존재하는 인간의 조건을 구성하게 됐다. 한국 사회의 가장 긴급한 과제로서 ‘플랜B’의 사회적 보장이 필요하다.

2025-01-06

새해엔 희망 하나는 품고 살아야

김규인 수필가 새해 첫날의 전국 날씨는 제주도를 제외하고는 모두 영하의 날씨다. 차가운 바람으로 거리를 걷는 사람들은 옷깃을 여민다. 정치는 어수선하고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는 환율은 우리의 마음을 졸인다. 기업체 경영자는 트럼프의 등장에 줄어드는 수익과 높아질 관세장벽에 근심이 늘어난다. 살아내야만 하는 서민들의 팍팍한 살림살이는 생활에 꼭 필요한 물건을 사는 데도 몇 번이나 계산기를 두드린다. 모두가 힘들어하는 시기에도 살아갈 수 있는 것은 도움의 손길 때문이다. 하루에 1만원씩, 1년간 모아 365만원을 기탁한 붕어빵을 파는 김남수 씨의 나눔이 우리 마음을 따뜻하게 한다. 건강이 허락할 때까지 나눔을 실천한다고 다짐한다. 어려운 형편에도 이웃을 돕는 일을 기쁨으로 여기는 사람들이 있기에 추운 겨울을 이겨낸다. 서귀포시 안덕면사무소 이은선 팀장은 경조사를 보며 답례품으로 받은 150만원의 상품권을 아동 학대 예방 및 보호 지원을 위해 내놓았다. 학대 피해 아동에 기쁨과 희망의 선물이기를 바라는 그 마음이 고맙다. 이 팀장은 존셈봉사회 소속으로 꾸준히 봉사활동을 한다. 봉사는 이렇게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을 가까이서 보고 잘 아는 사람들이 많이 한다. 구두를 수선해 하루 1만원씩 모아 365만원을 기부한 구둣방 부부도 우리 마음을 따뜻하게 한다. 김주술 씨와 아내 최영심 씨는 힘든 시절을 겪고 나서 고통을 겪는 사람들의 마음을 헤아리며 나눔을 시작했다. 나눔을 통해 더 행복하며 얻는 것도 많다고 한다. 힘든 삶을 이겨낸 그들이 내미는 손길에서 따스함을 느낀다. 전주의 얼굴 없는 천사가 남긴 상자에는 5만원권 지폐 뭉치 8000만원을 포함하여 8003만8850원이 있었다. 그의 누적 성금은 10억4483만6520원에 이른다. 25년째 이웃을 돕는 그의 선행을 보며 진정한 봉사가 무엇인지를 배운다. 많은 돈을 내면서도 자신을 드러내지 않는 봉사의 참뜻을 배운다. 작은 도움에도 자신을 드러내기 바쁜 것이 요즈음 형태인데 말이다. 이들 외에도 각종 단체의 선행은 줄을 잇는다. 자선 경기를 열거나 자선 바자회 수익으로 이웃을 돕는 단체와 성금을 모은 산업체, 지속적인 선행을 하는 연예인들과 그들의 팬클럽 회원들이 불경기에도 이웃을 돕는다. 남을 돕는 것은 어려울 때 더 빛을 발하는 것 같다. 그들의 마음이 헛되지 않게 힘든 시기를 보내는 사람들이 잘 이겨내기를 빈다. 어쩌면 남을 돕는다는 것은 어려움을 겪어보지 않은 사람들은 하기 힘들다. 겪어보지 않았기에 가난이 얼마나 고통스러운지 잘 모른다. 돈이 없어 끼니를 굶어보았거나, 기업체는 파산 직전까지 내몰렸거나, 연예인들은 긴 무명의 시간을 보낸 경험이 있기에 아픔을 안다. 그러하기에 남을 돕는 일에 앞장선다. 약한 자들에게 이번 겨울은 길고 혹독하다. 힘든 시간에 옆에서 손 내밀어주는 누군가가 있다면 이겨낼 수 있을 것이다. 손으로 전해지는 따스한 기운에 힘을 내고 언젠가는 밝게 웃을 것이다. 새해엔 어려워도 누구나 희망 하나 품고, 웃음 가득한 한 해가 되면 좋겠다.

2025-01-06

폐지

먼지를 뒤집어쓴 덮개를 걷는다. 헌책이 와르르 무너진다. 읽고는 쟁여놓은 책들이다. 해묵은 것들이 이렇게 많았나 싶다. 라면 상자에 책을 담았다. 네 상자 째 들고 나갔을 때, 마침 파지를 줍는 할아버지가 오고 있었다. 키가 자그마한 할아버지는 항상 모자를 쓰고 다녔다. 하루는 밀짚모자를 쓰고 또 하루는 꽃이 달린 여자 모자를 썼다. 모자가 자주 바뀌어서 동네 사람들은 모자할아버지라고 불렀다. 할아버지는 책 더미를 보며 잇몸을 가득 드러냈다. 오늘은 횡재수가 들었다며 수레에 실린 짐들을 밀어내고 빈자리를 만들었다. 내가 거들려 하자 할아버지는 지저분해진다며 만류했다. 마지막 상자를 들고 나가자 할아버지가 상자 밑에 깔린 신문을 들어 보이며 말했다. “새댁, 참기름 짰어? 신문에서 고소한 냄새가 나네” 참기름? 그럴 리가 없었다. 고소한 냄새가 콧속으로 스며들었다. 엄마는 비싼 참기름은 아들에게, 싼 들기름은 딸인 나에게 주었다. 마음이 바뀌지 않고는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엄마의 편애는 눈에 훤히 보였다. 어쩌다 내가 상을 받아 와도 ‘우리 아들이 받아야 하는데’하며 속을 드러냈다. 내 아이가 전교 1등을 해도 ‘친손주가 잘해야 하는데’ 하며 굳이 하지 않아도 될 말을 쏟아냈다. 엄마의 지갑 속에는 오빠네 가족들의 사진만 환하게 웃고 있다. 오빠에겐 늘 새 밥에 금방 한 반찬을 차려주지만 내가 가면 ‘어제 먹던 돈가스 있는데 데워 먹을래’ 하며 식어빠진 말을 던진다. 부리나케 들어와 싱크대 문을 열었다. 가지런히 놓인 두 개의 병을 식탁 위에 올려놓았다. 병뚜껑을 여니 고소한 냄새가 솔솔 풍겼다. 웃음이 실실 났다. 엄마의 실수가 고소해서다. 전화기를 들었다가 놓았다. 실수일까, 진심일까, 머릿속이 복잡해지면서 갑자기 참기름이 먹고 싶었다. 양푼에 밥통에 있는 밥을 모두 퍼 담았다. 열무를 꺼내어 넣고 김치도 잘게 썰고 계란 프라이도 부치고 김 가루를 뿌렸다. 고추장과 참기름을 듬뿍 넣었다. 꼬신내가 숲의 향기처럼 기분 좋게 내 몸에 먼저 닿았다. 그릇을 덮고 수저를 두 개 챙겨 재활용품 수집장으로 내려갔다. 김경아 작가 할아버지는 만선이 된 리어카를 끈으로 묶고 있었다. 할아버지 좀 쉬었다 일하라고 엄마가 준 참기름으로 밥을 비벼왔다고 했다. 할아버지는 손사래를 쳤다. 그러면서 이내 묶었던 끈을 풀고는 신문지를 꺼냈다. 겹겹이 포개어 자리를 두 개 만들고 손바닥으로 탁탁 치니 어느새 평평해졌다. 함께 밥을 먹긴 처음이었다. 나는 양 볼이 미어터지도록 밥을 밀어 넣으며 아들만 챙기는 엄마에게 켜켜이 쌓인 감정들을 꺼내 놓았다. 구석구석 묵은 감정들이 하나씩 실체를 드러냈다. 당신도 어머니 이야기를 풀어 놓았다. 어머니가 일찍 돌아가셔서 늘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으로 할아버지는 여자 모자를 쓰고 다닌다고 했다. 모(母)는 어미고 자(子)는 아들이므로 모자를 쓰면 어머니와 함께 있다는 느낌이 든다고 말했다. 참기름이면 어떻고 들기름이면 또 어떤가. 손수 짜서 보내주는 엄마가 있는 새댁이 부럽다고 하셨다. 그러고는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할아버지의 말을 들으며 나는 숟가락질만 했다. 설움도 서운함도 함께 담아 비벼 먹는데 갑자기 가슴속에서 무언가가 울컥 솟아올랐다. 나는 몸을 돌렸다. 눈물이 났다. 엄마가 원하는 ‘착한 딸’로 살아온 지난 감정들이 빛바랜 스냅 사진 속에 들어 있는 끝없는 이야기처럼 불쑥 올라왔다. 뫼비우스의 띠처럼 영원히 반복될 감정의 멍에일지도 모를 일이다. 다 비워내고 지친 마음이 들어가 쉴 자리를 만들어 주고 싶었다. “오늘 참기름 실컷 먹었으니 이제 앙금은 리어카에 하나도 남김없이 다 내려놓아요. 고물상에 가서 폐지도 팔고 새댁 묵은 감정까지 팔고 오지요.” 할아버지는 몸을 일으켰다. 내게 환한 웃음을 보이고는 다시 리어카를 끌었다. 내 마음은 조금이나마 가벼워졌지만 내 묵은 감정까지 실은 할아버지의 리어카는 무거워보였다. 할아버지의 리어카가 보이지 않고서야 나는 집으로 들어왔다. /김경아 작가

2025-01-06

도쿄대생들에게 하고 싶었던 이야기

2024년 12월 18일에는 도쿄대 18호관에서 2시간에 걸쳐 저의 조촐한 강연이 있었습니다. 처음부터 학교 측으로부터 제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자유롭게 해달라는 부탁을 받았는데요. 그래서 제가 생각한 주제가 ‘21세기 한국의 다문화 소설’에 대한 것이었습니다. 사실 저는 도쿄에 오기 전에, 21세기에 발표된 한국 다문화 소설과 관련하여, ‘다문화시대의 한국소설 읽기’(2015), ‘이질적인 선율들이 넘치는 세계’(2021)라는 두 권의 졸저를 출판한 바 있습니다. 제가 강연주제로 ‘한국의 다문화 소설’을 정한 이유는, 21세기에 들어와 한국 사회에 새롭게 등장한 결혼이주여성이나 이주노동자들을 형상화한 소설들을 통해, 우회적으로 일본 사회 내 재일한인문제나 과거사 등에 대한 인식을 환기시키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강연은 크게 ‘다문화 소설을 연구하게 된 계기’와 ‘21세기 다문화소설의 실상’이라는 두 부분으로 준비했는데요. 오늘 이 지면에서 하고 싶은 이야기는, ‘다문화 소설을 연구하게 된 계기’와 관련된 것입니다. 본래 저의 전공은 식민지 시대(1910-1945) 한국문학으로서, 특히 저는 식민지 시대 한반도의 핵심적인 시대적 과제에 충실했던 작가들에게 관심이 많았습니다. 그랬던 제가 한국의 다문화 소설을 연구하게 된 계기는 사소하다면 사소할 수 있는, 우연한 발견 때문이었습니다. 어느 날 당시 베스트셀러로 큰 인기를 끌고 있던 김려령의 ‘완득이’(창비, 2008)를 읽게 되었는데요. 이 작품은 장애인 아버지와 베트남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반항아 도완득이 질풍노도의 고교 시절을 보내며 겪는 이야기를 그려낸 성장소설입니다. 그런데 ‘완득이’라는 작품은 식민지 시기 일본에서 활동했던 김사량의 ‘빛 속으로’(문예수도, 1939.10)와 너무나 비슷했던 것입니다. 일본의 최고문학상인 아쿠다가와상 최종심에까지 오른 ‘빛 속으로’는 일제 말기 도쿄를 배경으로 하여, 일본 출신의 아버지와 조선 출신의 어머니를 둔 국제아 야마다 하루오가 자신 안에 있던 ‘조선적인 것’을 부정하다, 南先生(남선생, 미나미 센세)을 만나 자신의 ‘조선적인 것’을 인정하게 되는 이야기입니다. ‘완득이’에서 베트남 출신 어머니와 한국인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난 도완득은 ‘빛 속으로’의 국제아인 야마다 하루오에 대응되며, 어둠 속에 방치된 완득이를 사회로 이끌어주는 동주 선생은 南先生에 대응됩니다. 두 소설의 어머니들은 모두 인종적·계급적·젠더적 모순이 중첩되어 고통 받는 서발턴(하위주체, subaltern)이라고 볼 수 있는데요. 이러한 유사성은 1939년과 2008년의 시간적 거리와 도쿄와 서울이라는 공간적 차이에도 불구하고, 다른 민족이나 인종이 어울려 살아가면서 벌어지는 갈등과 고통이 현재진행형이기에 발생한 것입니다. 그렇기에 ‘빛 속으로’는 일제 말기에 쓰여진 ‘완득이’이며, ‘완득이’는 21세기에 쓰여진 ‘빛 속으로’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김사량(1914-1950)은 평양 대부호의 아들로 태어나, 동경제대에서 수학했는데요. ‘빛 속으로’의 南先生(남선생, 미나미센세)도 제국대학 학생으로 세틀먼트(settlement)에서 빈민가의 아이들을 가르치면서 야마다 하루오를 만나게 됩니다. “원래 S협회는 제대帝大 학생 중심의 인보사업(隣保事業) 단체로 탁아부나 아동부를 시작으로 시민교육부, 구매조합, 무료의료부 등도 있어서, 이 빈민지대에서는 친밀도가 높았다.”라는 문장에서 알 수 있듯이, 동경제대 학생들이 중심이 된 사회봉사단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저는 2017년에 몇 명의 한일 연구자들과 동경제대 세틀먼트(정식명칭은 동경제대 야나기시마 세틀먼트)가 있던 곳을 찾아간 적이 었었는데요. 그 터에는 다른 민가가 자리 잡고 대신 한 블록 떨어진 야나기시마 놀이터에 세틀먼트를 기념하는 표지판만이 남아서 그때의 일을 증언해 주고 있었습니다. 이번에 강연을 준비하며 다시 야나기시마 놀이터를 찾으니, 2024년 2월에 새로 만들어져 사진 등이 보강된 표지판이 맞아 주었습니다. 이경재 숭실대 교수 ‘빛 속으로’에서 하루오의 엄마인 정순은 일제 말기 재일조선인이 겪은 고통과 수난을 가장 선명하게 보여주는 인물입니다. 정순은 남편 한베에게 끔찍한 학대와 폭행을 당합니다. 정순은 자신이 조선인이어서 학대를 당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기에 자신의 학대받는 처지를 당연시하는데요. 더욱 끔찍한 것은 정순이 아들인 하루오가 조선인이라는 이유로 자신을 배척하는 일도 감내한다는 점입니다. 한국의 강의실에서 ‘빛 속으로’를 학생들과 함께 읽으면, 저를 비롯한 학생들은 조선 출신이라는 이유로 정순이 겪는 고통과 그런 어머니를 부정하는 어린 하루오의 모습에 큰 충격을 받고는 합니다. 그런데 70년 후에 한국에서 창작된 소설에서도, 국적과 위치만 바뀐 채 이러한 고통이 반복되고 있었던 겁니다. 이전에 이 연재에서도 다룬 바 있는 재일한인들의 소설에는 정순이나 하루오가 겪은 일이 70년이 지난 일본에서도 나타나고 있었는데요. 제가 도쿄대생들에게 하고 싶었던 말은 어찌 보면 너무나 단순한 꿈, 인종이나 민족이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차별받는 일이 없는 사회를 향한 꿈에 대한 것이었습니다.

2025-01-06

여섯 살 모차르트의 첫 연주여행

홍성식 (기획특집부장) 불멸할 것이 자명한 클래식 작곡가 아마데우스 모차르트(1756~1791)가 태어난 잘츠부르크에 가본 적이 있다. 녹음 우거진 여름이었다. 운 좋게도 공연이 열리고 있었다. 모차르트 추모음악회는 천재 작곡가를 자랑스러워하는 고향 사람들과 그곳을 찾은 관광객 모두를 즐겁게 했다. 연주된 모든 곡들이 좋았다. 18세기 비엔나 고전파를 대표하는 모차르트는 35년의 짧은 삶을 살았지만 시간과 공간을 뛰어넘어 사람들을 감동시킨 수많은 곡들을 작곡했다. 요한 세바스찬 바흐, 루트비히 판 베토벤과 더불어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한 작곡가로 칭송받는 그는 “음악 역사의 기적” “성스러운 인간”이라고 숭배받기까지 한다. 지금으로부터 263년 전인 1762년 1월 7일은 바로 그 모차르트가 첫 번째 연주여행을 떠난 날이다. 당시 모차르트는 겨우 여섯 살이었다. 걸음마를 시작할 때부터 아버지와 누나의 악기 연주를 들으며 자란 그는 음악에 탁월한 재능을 보였다. 세 살 때 쳄발로를 연주했고, 다섯 살 때는 작곡을 해낼 정도. 그러니, 아장거리는 걸음걸이의 여섯 살 아이가 유럽 전역으로 연주를 위한 여행을 떠났다 해도 믿지 않을 도리가 없다. 그러나, 이 천재 아이의 삶이 마냥 행복했던 것만은 아니다. 음악 외에 다른 것에는 관심을 가질 시간이 없었으니 세상 이치에 어두웠고, 작곡이 아닌 다른 분야의 해석력은 백치에 가까웠다는 이야기가 떠돈다. 유럽의 겨울도 한국처럼 춥다. 꽁꽁 언 고사리손으로 이 도시에서 저 도시로 옮겨 다니며 피아노를 쳤던 여섯 살 모차르트를 떠올리면 부럽다기보다는 측은하다. /홍성식(기획특집부장)

2025-01-06

‘1987년 체제’의 위기

방민호 서울대 교수·국문과 지난 한 달 간, 숨가쁜 나날들이었다. 비상계엄령에 대한 국회의 탄핵안 가결, 한덕수 국무총리 대통령 권한대행의 탄핵, 대행의 대행에 의한 헌법재판소 판사 임명, 무안 공항의 제주항공 비행기 동체착륙 폭발 대참사, 대통령에 대한 체포영장 발부 등의 사건이 숨가쁘게 이어졌다. 많은 국민들은 순진한 면이 있다. 그네들은 티비가 연출하는 조작된 이미지들에 ‘사로잡힌다’. 물론 그게 끝은 아니다. 과연, 이 연속적인 사태의 귀결점은 어디일까? 필자는 현금의 상황을 ‘1987년 체제’의 파국으로 진단한다. ‘1987년 체제’란 1987년 6월 10일에 시작된 ‘6월 항쟁’에 의해 수립된 현재의 헌법적 체제를 의미한다. 유신체제에서 신군부 정권까지 국민들은 자기 손으로 대통령을 선출하는 권리를 누리지 못했다. 1987년의 6월 항쟁은 대통령과 국회의원을 자기 손으로 뽑는 국민주권 원리를 실질적으로 회복한 역사적 혁명이다.‘1987년 체제’란 직선제로 상징되는 국민주권의 공준 체제다. ‘1987년 체제’의 또 하나의 특징이 있다. 이 또한 본질적이다. 신군부의 ‘기만적인’‘6·29 선언’ 이후 새로운 요구와 도전의 물결이 일기 시작했다.‘7~8월 노동자 대투쟁’이 그것이다. 1987년 체제는 이 민중적 요구와 권리를 헌법적으로, 국가정체적으로 인정하고 보장하는 체제다. 때문에 이 체제는 항상적인 ‘위기 체제’이기도 하다. 민중들의 요구는 이 체제에서 합법적, 합헌적이다. 이 체제는 항상적인 위기에 시달릴 수밖에 없다. 우리는 늘 위기를 겪지만 감내해야 한다. 위기 속의 ‘영구혁명’은 우리가 누리는 자유의 대가다. 이와 같은 전제 위에서, 현재의 파국적 상황은 어떤 의미를 함축하고 있는가? 많은 이들에게 계엄령은 반민중적 독재 체제를 수립하기 위한 시대착오적 도발로 이해된다. 대통령은 군사독재 세력을 계승한 ‘국힘’을 대표하는 존재이고, 이 세력의 독재주의적 도발이 충격적으로 시도된 것이다. 과연 그러한가? 대통령은 어째서 비상계엄을 선포해야 했던가? 그는 그날 국가 체제를 유지하기 위해 비상 수단을 동원한 것이라고 했다. 만약, 대통령의 주장대로, 지금 우리가 ‘1987년 체제’의 제1원리인 국민주권의 원리를 침해, 침탈당한 상황이고, 국민들이 이를 채 깨닫지 못한 상태라면, 그런 조건 속에서의 민중적 ‘영구혁명’은 전체주의의 도래를 의미할 뿐이다. 지금 성행하는 국가권력에 의한 불법 체포·수사·구속, 언론 조작을 통한 여론 유도, 군중 심리의 억압, 인민 재판적 지목 양상 등은 바로 전체주의의 대표적 요소들이 아닐 수 없다. 부정선거 시스템의 존재와 작동 여부는 월드 와이드 웹이 지배하는 가상현실 세계의 작동 원리와 불가분리의 관계가 있다. 많은 서구국가들과 티이완이 아날로그적인 수개표를 고집한 데 반해 한국의 중앙선관위는 국민에 의해 통제되지 않는 전산 개표를 투명하다고 강변해 왔다. 과연 무엇이 진실인가? 진실에 가까운가? 필자는 생각한다. 사태의 진실은 우리가 보았다고 생각한 것과는 언제나 많이 달랐다고. 여기서는 필자 또한 예외는 될 수 없을 것이다.

2025-01-06

아들에게 물려주고 싶은 세상

묵은 한 해를 떠나보내고 새로운 한 해를 맞이하였다. 떠나보낸 어떤 것에 대한 인상은 마지막 모습에 의해 좌우되기도 하는데, 그런 측면에서 보았을 때 2024년은 많은 이들에게 아름답게 기억되기는 어려울 것 같다. 대통령의 계엄 선포를 둘러싼 정치권의 갈등과 혼란, 그에 따른 심각한 경제적 타격, 결코 일어나서는 안 되었을 끔찍한 참사. 2024년은 분노와 슬픔으로 얼룩진 한 해로 많은 이들의 기억 속에 남을 것 같다. 그러나 나라는 한 개인에게는 조금 특별한 의미를 가진 해로 기억될 것이 분명하다. 2024년은 내가 나의 아들을 처음 품에 안은 해이고, 아빠라는 존재로 다시 태어난 해이기 때문이다. 새해를 맞이하는 기분은 이전과 다르다. 나의 세상을 화려하게 만들어가는 일보다 아들에게 아름다운 세상을 열어주는 일 쪽에 삶의 비중을 더 두기로 결심한 터라 이전과는 조금 다른 염원을 가슴에 품게 되는 것이다. 아들은 하루가 다르게 자라며 빠른 속도로 세상을 향해 나아가게 될 것이다. 나는 소망한다. 아들이 만날 세상이 부디 험하고 추운 곳이 아니라 부드럽고 따뜻한 곳이기를. 내가 물려줄 세상이 한 번 살아볼 만한 아름다운 곳이기를. 그런 세상을 구체적으로 설명하자면 여러 가지 이야기를 해야 할 것 같다. 먼저, 나는 아들의 세상에 희망이라는 것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당장은 힘겹더라도 버텨내고 나면 지금보다는 분명히 나아지리라는 확신을 갖고 살 수 있는 세상이길 바란다. 나는 이 사회와 국가에 희망이 있다고 믿고 싶은 사람이다. 그런데 요즘은 자꾸만 마음이 약해지곤 한다. 1%대까지 떨어져버린 경제 성장률, 국가의 존폐를 걱정하게 만드는 인구 지표들, 그럼에도 불구하고 뚜렷한 대책을 내어놓기는커녕 이미 이 나라를 지키며 열심히 경제활동을 하는 사람들마저 맥 빠지게 만들고 급기야는 떠나고 싶은 마음을 품게 만드는 정치권의 행태. 개개인이 노력한다면 정말로 다시 좋았던 시절을 회복하고 다음 세대에게 지난 세대가 살았던 세상보다 풍요로운 세상을 물려줄 수 있는 것인지에 대해서 이제는 아무런 확신도 가질 수가 없다. 언젠가 아들에게 희망이라는 단어를 설명해 주어야 할 텐데, 그것이 너무나 어려운 일이 되어버렸다. 더 늦기 전에 정신 차려야 할 사람들이 정신을 차리고 근본적인 대책을 마련하여 국민들로 하여금 이 나라를 포기하지 않게 해 주었으면 좋겠다. 또한, 서로에 대한 믿음 속에서 살아갈 수 있는 세상을 물려주고 싶다. 누군가가 나를 해할 것이란 의심 없이, 내가 잘못하지 않았는데도 불행한 사건이 내게 일어날 수 있다는 공포 없이 살 수 있는 세상 말이다. 우리는 이미 이웃의 SNS 게시물을 이용하여 딥페이크 성범죄를 저지르는 장면을 목격한 바 있다. 부동산 전세 사기를 당해 괴로워하는 모습도 주변에서 여러 번 볼 수 있었다. 규칙을 어기는 것을 넘어 자신의 욕망을 위해 타인에게 신체적·정서적 위해를 가하고, 아무렇지도 않게 남의 것을 빼앗곤 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아직 너무나 작고 연약한 나의 아들을 지켜내야 한다는 사실이 끔찍할 정도로 괴롭고 두렵다. 내 아들을 그러지 않는 인간으로 길러내야 하는 것으로 충분했으면 좋겠다. 내가 타인을 해하지 않는다면 타인도 나를 해하지 않는다는 믿음을 가르치고 싶다. 강백수 세상을 깊이 있게 바라보는 싱어송라이터이자 시인. 원고지와 오선지를 넘나들며 우리 시대를 탐구 중이다. 마지막으로 이야기 하고 싶은 것은 어떤 상황에서도 정의가 승리하는 공정한 세상이다. 그것은 악행을 저지르고 타인에게 피해를 끼친 사람이라면 지위의 고하나 재산의 많고 적음과 관계없이 똑같이 처벌 받는 세상이다. 다른 이들을 두렵게 만든 이, 자기 자신을 지키기 위해 공동체에 피해를 끼친 이, 사람들을 현혹시키고 세상을 어지럽게 만드는 이가 권력으로부터 비호 받지 않는 세상을 물려주고 싶다. 그것이 전제되지 않는다면 어떻게 내 소중한 내 아들에게 바르게, 정직하게 살라고 가르칠 수 있겠는가. 지금 우리 집 책장에 꽂혀 있는 동화책에는 선한 자는 상을 받고 악한 자는 벌을 받는다는 이야기가 적혀있을 것이다. 그것이 진리라고 가르치고 싶다. 너무나 당연한 것들이 당연하지 않게 되었다. 내가 품고 있는 새해 소망이 대단한 것이 아닌데 왜 이렇게 허황된 것처럼 느껴지는 것인가. 누가 세상을 이렇게 만든 것인가. 나는 내 세대가 안타까운 세대로 기록되길 바란다. 마지막으로 혼란을 겪은 세대, 비록 자신들은 한 때 불안과 절망 속에서 살았을지언정 다음 세대에게는 평화와 희망을 물려준 세대라고 평가받길 간절히 바란다. 나의 아들은 부디 내가 살았던 것보다 나은 세상에서 살 수 있다면, 그리고 우리 모두 작년보다는 나은 올해를 살 수 있다면 좋겠다.

2025-01-06

보통의 날

슬픔과 분노는 사람을 지치게 만든다. /언스플래쉬 그날은 참 이상했다. 2월에 출산 예정이던 새언니가 조산 기운으로 병원에 입원하게 되었다. 이제 17개월 된 첫째 조카를 돌봐줄 사람을 찾지 못해 부모님이 급하게 아이를 데리고 본가로 가고 있다는 연락을 받았다. 나는 감기 기운과 잡다한 일 처리를 요구하는 연락 때문에 괴로워하던 중이었다. 나의 몸 상태가 실수로 이어지는 것은 아닌지 전전긍긍하며 체크리스트를 정리했다. 급한 것부터 차근차근 처리하자 싶었는데 아무것도 손에 잡히지 않았다. 나는 수시로 스마트폰을 들여다봤다.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본 뉴스, 제주항공 여객기 사고 소식 때문이었다. 어떤 기적을 바라며 간절히 기도하던. 그러나 끝내 고개를 떨굴 수밖에 없던. 그렇게 되었구나, 하고 중얼거리던 날. 다음 날 강의가 끝나자마자 곧바로 본가로 향했다. 잠깐이라도 조카의 얼굴을 보고 오자는 생각 때문이었다. 그렇지 않아도 엉망인 컨디션에 장거리 운전까지 더하니 몸이 금방이라도 두 동강 날 것만 같았다. 조카의 상태는 나보다 훨씬 심각했다. 고열에 시달리며 새벽 내내 잠을 이루지 못했다. 하루아침에 부모와 떨어져 지내야 하는 심리적 압박이 육체적 형태로 발현된 것 같았다. 부모님은 회사로 출퇴근해야 했으므로 아이를 돌보는 손이 턱 없이 부족했다. 결국 내가 본가에 일주일을 머무르며 함께 조카를 돌보기로 했다. 조카의 상태는 호전되었지만 나는 그렇지 못했다. 제대로 쉬질 못하니 감기 기운은 점점 더 심해졌고 끝내야 할 일은 줄어들기는커녕 쌓여만 갔다. 약기운에 취해 꾸벅꾸벅 졸고 있었는데 조카가 자지러지게 우는 소리가 들렸다. 화들짝 놀라서 달려가 보니 주위가 엉망이었다. 손이 닿는 곳은 물론이고 서랍장 안의 모든 물건을 꺼내서 아무렇게나 던져 놓고 있던 것이다. 조카가 양손에 쥔 뾰족한 물건을 보자 등골이 서늘해졌다. 익숙한 공간에 당연하게 놓인 것들이 무시무시한 흉기로 보이는 순간이었다. 평소였다면 그런 조카의 행동에 이토록 큰 두려움을 느끼지 않았을 것이다. 아이의 왕성한 호기심 정도로 치부하고 차분히 상황을 정리했을 것이다. 부드러운 인형이나 소리가 나는 장난감처럼 무해한 것들로 유인하며 아이의 관심을 끄는 건 어렵지 않았다. 그러나 나는 완전히 지쳐 있었다. 엉엉 우는 아이를 뒤로한 채 위험한 구석이 있는 것들을 모조리 숨겼다. 절대 다쳐서는 안 돼. 조그만 생채기라도 나선 안 돼. 그런 마음으로 억척스럽게 조카를 안았다. 그렇게 새해가 밝았다. 덕담을 건네는 연락이 없었다면 새해라는 것도 인지하지 못했을 것이 분명한 새해였다. 안부를 묻는 메시지를 쉽게 열어볼 엄두가 나지 않았다. 좋은 일 가득한 새해 되세요. 그런 상투적인 답장을 쓰는 것조차 힘이 들었다. 건강히 지내라는 말, 그런 것들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내 머릿속은 어두운 형체가 단단히 똬리를 틀고 있었다. 혼돈과 혼란, 죽음에 관한 것들. 문은강 ‘춤추는 고복희와 원더랜드’로 주목받은 소설가. 2017년 서울신문 신춘문예를 통해 작가로 등단했다. 다음 주에 예정된 수업을 위해 다시 집으로 올라오면서 나는 조금 울었다. 하나의 이유가 있어서가 아니었다. 사소한 일에도 덜컥 겁이 났다. 평범한 하루가 큰 불행으로 확장될 것만 같았다. 와중에 자꾸만 잠이 쏟아졌다. 운전대를 잡은 손이 느슨해졌다. 도로 위로 가벼운 눈이 흩날렸다. 생각해 보면 이러한 감정 상태가 꽤 오래 지속되고 있는 듯하다. 세상의 나쁜 일들이 하나도 해결되고 있지 않은 것 같은 불안에 잠식당하는 중이다. 슬픔과 분노는 사람을 지치게 만든다. 상황에 체념하게 되고 허무와 냉소로 나아간다. 나는 그런 마음을 경계하고자 부단히 노력하는 사람인데 둔탁한 손이 내 무릎을 툭 꺾는 기분이다. 이것은 비단 나만의 이야기는 아닐 것이다. 황망한 비극은 우리 삶과 얼마나 맞닿아 있는가. 더 이상 겪고 싶지 않은 고통이 반복되고 있다. 따져 보니 그날로부터 일주일이 지났다. 아득한 터널을 지나는 기분은 여전하다. 뉴스를 통해 사람들이 움직인다는 소식을 본다. 자신의 일상을 위해, 기꺼이 도움의 손을 내밀기 위해. 그런 면에서 연재 중인 지면이 있다는 것이 감사하다. 변명의 여지없이 마감이라는 책임을 지켜야만 하는 일이 있다는 사실, 그 하나만으로 나는 순식간에 보통의 날로 돌아온다. 어쩌면 우리를 슬픔의 한복판으로 데려가는 것도, 일상으로 되돌려놓는 것도, 이 가냘픈 책임감의 몫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마음이 원위치로 돌아오기까지 시간이 걸릴지는 몰라도, 궤도가 포물선을 그리며 조금씩 이동하고 있다. 보통의 날을 향해.

2025-01-06

O. J. 심슨은 돈도 명예도 다 잃었다

김진국 고문 공수처가 윤석열 대통령 체포영장을 집행하는데 1차 실패했다. 윤 대통령이 경호처와 경호부대를 동원해 철벽을 쳤기 때문이다. 계엄이나 마찬가지로 TV로, 유튜브로 생중계됐다. 해외에도 실시간으로 전달됐다. 한남동 일대를 시위군중이 점령했다. 누가 옳으냐를 떠나 나라 망신이다. 1994년 미국 LA 경찰이 한 살인 혐의자가 차로 도주하는 것을 추격하는 상황이 중계됐다. 뉴스 전문 채널인 CNN은 물론 지상파 방송들도 생중계했다. 방송국은 헬기까지 동원했다. 한국 TV도 CNN을 그대로 보여줬다. 고속도로로 달아나는 차를 보면서 곧 그를 체포해 감옥에 보낼 것이라고 믿었다. 그가 유명한 미식축구 선수인 O. J. 심슨이다. 그와 이혼한 전처와 식당 종업원이 피살된 채 발견됐고, 혈흔을 비롯한 여러 증거가 그를 지목하고 있었다. 검찰이 소환한 날 친구에게 자신이 죽이지 않았다는 편지를 남기고 잠적했다. 이틀 뒤 경찰이 그를 찾아냈으나 도주극을 펼쳤다. 이 사건이 유명해진 건 그가 무죄 평결로 풀려났기 때문이다. 그는 300만~600만 달러(약 44억~88억 원)로 쟁쟁한 변호인들을 고용했다. 통계와 확률까지 동원해 그를 무죄로 만들었다. 유전무죄(有錢無罪)의 사례로 자주 인용되는 사건이다. 뒤에 그는 탈세로 체포되기도 하고, 강도 혐의로 33년 형을 받아 수감되기도 했다. 심슨이 떠오른 것은 윤 대통령 측 변호인들의 말 때문이다. 그때 비싼 수임료를 챙긴 변호인들이 온갖 요설로 배심원을 헷갈리게 했다. 이번 사건은 온국민이 TV로 지켜봤다. 수사당국이 발표한 것이라면 조작 의혹을 제기할 수도 있다. 그런데 당시 국회를 포위하고, 정치인을 체포하기 위해 나섰던 특수부대 사령관들이 직접 TV에서 증언했다. 변호사들의 현란한 법 논리가 이해하기 어렵다. 상식으로 판단할 때 헌법 규정에 어긋나는 일이 분명하다. 헌법은 대통령에게 위기 시 나라를 보호하라고 계엄령을 발동할 권한을 부여했다. 국회에는 해제권을 주어 대통령의 독단을 견제하도록 했다. 그런데 무력으로 국회를 무력화해 헌법상 권한인 해제를 막았다. 헌법 질서를 파괴했고, 무력으로 국민이 위임한 것보다 더 많은 권력을 쥐려 했다. 명백한 친위쿠데타다. 그런데도 물리력에 막혀 법을 집행하지 못한다면, 심슨보다 더한 사례로 인용될 게 뻔하다. 당당하다면 법정에서 다투는 게 옳다. 부하를 희생시키고, 국론과 국민을 쪼개고, 국정과 국법 질서를 마비시키고… 그런다고 없는 일이 될 수 있나. 모래 속에 머리를 처박은 타조를 보는 것같아 낯이 뜨겁다. 수사 주체를 둘러싼 논란도 어이가 없다. 특정인을 위해 졸속으로 검수완박을 밀어붙이다 이런 꼴이 됐다. 그렇지만 혼선이 생기면 결국 누가 정리해야 하나. 법원이 할 수밖에 없지 않나. 그런데도 법원의 영장마저 ‘불법’이라고 주장하며 물리력으로 집행을 막았다. 형사소송법 110조, 111조의 예외로 했다는 부분이다. 보안시설 책임자가 허락하지 않으면 들어갈 수 없다는 조항이다. 관저 최고 책임자는 대통령 본인이다. 법원이 영장에 예외를 명시하지 않으면 대통령이 스스로 걸어 나오지 않는 한 영원히 체포할 수 없다. 말장난이다. 윤 대통령 스스로 출두해 조사받으면 아무 문제가 없다. 힘없고, 불쌍한 국민만 법을 지켜야 하나. 그게 나라냐. 기묘사화 때 나뭇잎에 ‘주초위왕’(走肖爲王)이라는 글을 써놓고, 조광조를 모함했다. 말도 안 되는 주장도 반복하면, 믿고 싶은 사람은 빠져든다. 총선 민심은 윤 대통령이 뒤집어놨다. 이제 와 부정선거 탓으로 돌려 그때의 행동을 칭찬이라도 받을 건가. 부정이라는 핑계로 선거 결과를 투표가 아닌 총칼로 뒤집으려는 건가. 선거 부정이 있었다면 법 절차로 해결해야 한다. 불법을 바로잡기 위해 더 큰 불법행위를 한다는 건 명분이 되지 못한다. 전직 검찰총장이 법 절차를 깡그리 무시하고, 불법으로 무장 군인을 동원해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말을 믿어야 하나. 이번 사태도 숨어서 큰소리칠 게 아니라 법정에서, 헌법재판소에서 따지면 될 일이다. 합법적 절차를 포기하고 어떻게 민주주의를 하나. 김진국 △1959년 11월 30일 경남 밀양 출생 △서울대학교 정치학 학사 △현)경북매일신문 고문 △중앙일보 대기자, 중앙일보 논설주간, 제15대 관훈클럽정신영기금 이사장,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부회장 역임

2025-01-05

일자리 창출이 최고의 복지다

김장호 구미시장 현대 사회에서 일자리는 시민들의 행복을 높이는 핵심 요소다. 세계은행 연구에 따르면 고용률이 1% 증가하면 빈곤율이 평균 0.7% 감소하는 것으로 나타나 안정적인 일자리가 빈곤 해결의 중요한 열쇠임을 보여준다. OECD 보고서 역시 고용률이 높은 국가일수록 국민 행복 지수가 높고, 특히 정규직 종사자의 삶의 만족도가 더 높다고 지적한다. 그러나 2023년 대한민국의 고용률(69.2%)은 OECD 평균(70.1%)에 미치지 못하며, 스웨덴(77.4%), 네덜란드(82.4%), 독일(77.4%) 등 복지 선진국과 비교해 크게 낮은 수준이어서 ‘최고의 복지는 일자리’라는 금언(金言)의 의미를 되새기게 한다. 민선 8기 구미시는 ‘좋은 일자리가 최고의 복지’라는 시정 철학을 바탕으로 지속 가능한 일자리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이와 동시에 반도체 특화단지, 방산혁신클러스터, 기회발전특구 등 주요 국책 프로젝트 유치에 성공함으로써 기업 친화적 환경을 조성해 왔다. 이를 통해 기업에 세제 및 재정 지원, 규제 특례, 정주 여건 개선 등 다양한 혜택을 제공하며 기업 하기 좋은 도시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이러한 노력의 결실로 민선 8기 출범 이후 현재까지 604개 기업으로부터 8조 1,807억 원의 투자를 유치하고, 5,615명의 고용을 창출했다. 특히 작년에는 263개 기업에서 3조 8,493억 원의 투자를 유치하는 성과를 거뒀는데 이는 기업 하기 좋은 도시를 만들기 위한 구미시의 끊임없는 노력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구미시는 지역 기업의 어려움을 해결하기 위해 ‘기업애로대책팀’을 운영하며 지난 2년 6개월간 110건의 민원 중 76건을 해결해 70%의 높은 해결률을 기록했다. 이 팀은 법률, 특허, 세무, 노무 등 다양한 분야의 전문 상담 서비스를 제공하고, ‘기업애로 바로톡’과 ‘기업애로 상담관’ 제도를 통해 현장의 목소리를 신속하게 반영하고 있다. 또한, 구미시는 투자 유치의 장애요소였던 규제 개선에도 적극적으로 힘써왔다. 지난해 5산단에 2조 원 규모의 수소연료전지발전소와 AI데이터센터를 유치하는 과정에서 관계 부처와의 긴밀한 협의 끝에 용도변경 허가를 이끌어내며 투자 유치에 성공했다. 이를 토대로 구미시는 앞으로 지속적인 AI 분야 투자 유치를 통해 글로벌 AI데이터 허브로 도약할 계획이다. 소상공인과 자영업자 지원을 위해서는 관내 업체의 참여 기회를 확대하고자 관급 계약에서 분할 발주를 제도화하고, 소상공인 특례 보증 및 이차보전 지원 규모를 대폭 확대하여 민생경제 회복을 지원하고 있다. 그리고, 35개소 1,868면의 시민행복주차장을 포함한 권역별 공영주차장 신규 조성을 통해 전통시장 등 지역 경제 활성화와 중소기업·소상공인 지원을 위한 기반을 한층 강화하고 있다. 지난해 7월에는 도내 최초로 ‘원스톱 민원팀’을 신설하여 복합 민원을 효율적으로 해결하며 기업들의 신뢰를 얻고 있다. 이 팀은 복잡한 이해관계로 지난 6년간 해결하지 못한 기업의 침수 피해를 단기간 내 조율하는 등 베테랑 팀장들의 높은 전문성과 현장 이해력을 바탕으로 기업 높은 호응을 얻고 있다. 아울러 지역 기업을 직접 방문해 현장의 목소리를 먼저 들으면서 투자유치의 패러다임도 바꿔나갔다. 이를 통해 ‘낙동강 변 진출입로 확보’, ‘낙석 위험 절개지 사면 정비’ 등 다양한 기업애로 사항을 해결하며 기업애로 원스톱 처리시스템을 확립했다. 이러한 다각적인 노력을 통해 구미시는 지역 경제를 활성화하고 시민들의 행복을 제고하는 데 실질적인 성과를 거두고 있다. 구미시는 민선 8기 출범 이전 ‘대한민국 행복지도’에서 전국 228개 지자체 중 하위 20%에 해당하는 E등급이라는 오명을 얻었던 도시다. 하지만, 지난해 11월에는 ‘도시브랜드평판지수’에서 전국 1위를 차지했으며, 2024년 ‘경상북도 투자유치대상’에서 대상을 수상하고, ‘한국지방자치경쟁력지수’ 평가에서 도내 종합 1위를 기록하는 등 괄목할 만한 성과를 이루며 그동안의 오명을 말끔히 씻어내고 있다. 이러한 고무적인 성과는 구미시의 밝은 미래를 보여주는 청신호라 할 수 있다. 구미시는 앞으로도 일자리 창출을 통해 시민의 삶을 개선하고 지역 경제를 활성화하는 한편, 시민 복지 증진에 전력을 다할 계획이다. 을사년 새해를 맞아 41만 시민 여러분의 관심과 참여를 바탕으로 구미시의 새 희망과 혁신은 계속 이어져 나갈 것이다.

2025-01-05

첫 줄이 써진다면

이희정 시인 흰쌀이 익어 밥이 되는 기적을 기다린다 식기를 가지런히 엎어두고 물기가 마르길 기다리듯이 푸릇한 것들의 꼭지를 따서 찬물에 헹군다 비릿한 것들의 상처를 벌려 내장을 꺼낸다 (중략) 슬픔을 슬퍼하는 사람이 오로지 슬퍼 보인다 사람인 것에 지쳐가는 사람만이 오로지 사람다워 보인다 안식과 평화를 냉장고에서 꺼내 아침상을 차린다 나쁜 일들을 쓰다듬어주던 크나큰 두 손이 지붕 위에서 퍼드덕거릴 때 햇살이 집안을 만건곤하게 비출 때 미역이 제 몸을 부풀려 국물을 만드는 기적을 간장 냄새와 참기름 냄새가 돕고 있다 살점을 떼어낸 듯한 묵상이 눈물처럼 밥상에 뚝뚝 떨어진다 쪼그리고 앉아 무릎을 모은다 -김소연, ‘생일’부분, (‘수학자의 아침’, 문학과지성사, 2013) 운명이 중력에 맞서는 힘겨운 날들이다. 하루키는 “역사가 인간에게 보여주는 가장 중요한 명제는‘그 당시 앞일이 어떻게 될지는 어느 누구도 알지 못했습니다’라는 것인지도 모른다”고 했다.(1Q84) 김소연 시인(1967년~)은 “안식과 평화를 냉장고에서 꺼내”기적이라고 말하는 생일 밥상을 차려내고 있다. 시에서 화자는 눈처럼 흰 쌀밥을 지었지만, 나는 전날 밤 오래 삶아 놓은 팥에 찹쌀과 멥쌀을 반반 섞어 전기밥솥에 앉혔다. 팥은 나쁜 일을 막는 벽사진경의 염을 지녔다기에. 하지만 팬에 기름을 두르고 약한 불에서 센불로 이동하며 비릿하게 익어가는 해동 도미의 살냄새를 앓아야 했다. 거기에 푸른 잎사귀를 데쳐 조물조물 무친 나물에서 풍겨 나오는 참기름의 고소한 풍미까지. 다시 들춰 보는‘새천년 희망증서’는 오래전 즈믄둥이로 태어난 첫 아이에게 노벨평화상을 받은 대통령이 보낸 첫 증서였다. 함께 딸려 온 선물 모빌과 함께 출생아 조사라는 행정절차를 거치느라 늦게 당도했다. 언제나 기다리는 것들은 아직이거나, 때를 지나기 마련인가. 천장에 달린 모빌은 제때 기능하지 못했다. 그러나 누군가를 지나쳐 간 때란 누군가에는 쓸모가 되는 아이러니가 운명이고 중력이기도 해서 다음 아이에게 와서는 쓸모가 되기도 한다. “슬픔을 슬퍼하는 사람”“사람인 것에 지쳐가는 사람”이 “오로지 슬퍼 보이”고“오로지 아름다워 보이”는 이 아이러니가 슬픔에 대한 애도가 아니라면 무엇이겠는가. 그러니 시집 발문에 얹힌 황현산의“씩씩한 시인 김소연이 가장 깊은 슬픔으로 짠 시간이기에 슬프다. 슬픔만이 진정으로 씩씩한 것을 만든다는 아이러니가 슬프다”는 위무의 서신마저 애도가 된다. 세상의 멸망을 막아 보겠다는 시인의 열망이 미명의 중력을 통과할 때 붉은 해가 떠오른다. 지난해 머나먼 타국 열기구 위에서 맞은 일출의 순간, 아스라한 상공을 오르기 전 열심히 반복 학습했던 건 다름 아닌 랜딩 연습이었음을. “미역이 제 몸을 부풀려 국물을 만드는 기적” 그 위에 두 손 꼭 모으며 첫 줄은 써질 것이라는 희망에 간절함을 얹어 보는 것이다. “햇살이 만건곤하게 비출 때”

2025-01-05

구미시의 공연장 대관취소 후유증

류승완 경북부 정치적 문제에 대해 자신의 견해를 뚜렷하게 밝혀온 가수 이승환의 구미 공연 취소를 놓고 구미시가 몸살을 앓고 있다. 5일 구미시청 입구에는 김장호 구미시장의 공연장 대관 취소를 환영하고 지지하는 화환 150여개가 즐비하게 늘어서 있다. 화환말고도 구미시는 김시장의 대관 취소 결단을 칭찬하는 시민 단체의 화환띠들만 따로 선별해 나무들 사이 전시해 놓고 있다. 이들 화환에는 “김장호 시장님, 보수의 성지 구미를 지켜주셔서 감사합니다”, “시장님의 결단을 응원합니다” 등의 환영 지지일색의 메시지가 실려 시청 입구를 오가는 시민들의 눈길을 끌고 있다. 이같은 전시행위에는 김시장의 공연장 대관 취소를 지지하는 시민들의 응원이 계속 이어지고 있다는 점을 여러 여론층에 홍보하고 과시하려는 구미시의 의도가 다분히 엿보인다. 반면 구미시 홈페이지 자유게시판에는 구미시의 공연장 대관 취소를 반대하는 비난 글이 쇄도하고 있다. 공연취소가 처음 알려진 지난해 12월23일 하루동안 시 홈페이지에는 평소 게시물의 150여배에 달하는 800여개의 의견이 실렸다. 이중 80~90% 이상이 김 시장의 대관 취소를 비난하는 글들이다. ‘문화를 정치로 선동하는 구미시장’, ‘예술의 자유도 보장없는 문화 무덤도시’ 등이 실린 게시판에는 가수 이승환의 팬들뿐 아니라 표현의 자유 침해를 우려하는 일반 시민들의 글이 다수 포함되어 있다. 5일까지 구미시 홈페이지에는 대관 취소에 대한 1500여개의 찬반양론 의견글이 실려 시민들간 극단적 양면 대결과 분열이 갈수록 심화되고 있는 양상이다. 김 시장은 공연장 대관 취소 결정에 대해 “정치적 배경이 아니라 공연을 반대한 보수단체 회원들과 가수 이승환 팬들간 물리적 충돌을 방지하기 위한 안전문제 때문”이란 이유를 들었다. 그러나 공연장 대관 취소에 대한 반향은 김시장의 당초 의도와는 달리 시간이 지날수록 정치적 문제로 확대되고 있다. 특히 일부에서는 윤석열 대통령의 탄핵시국으로 보수 진보간 갈등이 심화되고 있는 시점에서 김 시장의 대관 취소 결단이 그의 정치적 입지를 더욱 탄탄하게 만들 것으로 진단하고 있다. 즉 보수색이 우세한 구미에서 공연장 대관 취소 결정이 김 시장에게는 정치적으로 손해볼게 없다는 계산이 자리잡고 있다는 지적이다. 그러나 가수 이승환은 김 시장을 상대로 손해배상소송을 제기하기로 한데 이어 지난해 12월 29일 정치적 발언을 하지 않도록 요구한 서약서 요청이 표현의 자유를 막는 위헌임을 확인하는 헌법소원을 준비중이다. 또 가수 이승환 측이 요구한 손해배상소송 청구금액은 이승환 가수측 1억원과 공연 예매자 1인당 50만원 등 수 억원에 이를 것으로 예상된다. 법조계에서는 손해배상소송이 가수 이승환 측에 다소 유리할 것이란 전망이 우세하다. 소송을 마치기까지 많은 시간이 걸리겠지만 김 시장의 공연장 대관 취소 결정은 앞으로도 두고두고 구미시의 행정은 물론 김시장의 정치적 행보에도 발목을 잡을 가능성이 농후해지고 있다. /ryusw@kbmaeil.com

2025-01-05

아주 보통의 하루

우정구 논설위원 영국 속담 한토막 소개한다. “하루만 행복하려면 이발소에 가라, 일주일을 행복하려면 결혼을 하라, 한 달을 행복하려면 말을 사라, 일 년을 행복하려면 집을 사라, 평생을 행복하려면 정직하게 살아라” 평생을 정직하게 살아가는 것이 얼마나 힘든 삶인지를 교훈적으로 가르치면서 정직한 생활 자체가 행복의 중요 요소임을 시사하는 내용이다. 많은 사람에게 인생의 목표가 무엇인지를 묻는다면 대다수가 행복한 삶을 영위하는 것이라 대답할 것이다. 고대의 위대한 철학자가 인생의 목표는 행복이라고 말해서가 아니라 사람은 본능적으로 행복을 추구하는 마음을 가졌기 때문이다. 그러면 무엇이 행복인가라는 물음에 대한 대답은 각기 다르다. 행복이란 가치가 매우 주관적이고 포괄적 개념이어서다. 사전에는 부족함이나 불안감을 느끼지 않고 안심해 하는 심리적 상태를 행복으로 규정하고 있다. 말하자면 정신적으로나 물질적으로 만족을 느껴야 하는 안정된 심리상태인데, 이는 개인이 느끼는 정도에 따라 행복의 편차가 있을 수 있다. 트렌드 분석지 ‘트렌드 코리아 2025’가 올해 트렌드 중 하나로 ‘아보하’를 꼽았다. “아주 보통의 하루”를 줄인 말로 특별히 행복하거나 불행하지도 않은 평범한 하루란 의미다. 그저 출근하고 퇴근해 가족과 함께 즐거운 저녁 시간을 보낼 수 있는 무탈 무사한 일상을 말하는 것이다. 무한경쟁 시대에 지쳐 살아온 현대인의 반발 심리가 낳은 트렌드인지 알 수는 없다. 그러나 남을 의식하지 않고 자신의 삶에 집중하는 삶의 자세가 될 것 같아 트렌드의 흐름에 관심이 간다. /우정구(논설위원)

2025-01-05

정치의 사법화, 우려된다

윤희정 편집부국장대우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탄핵 심판 사건을 심리 중인 헌법재판소에 국민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12·3 비상계엄 사태 이후 전개되는 정국 현상은 마치 온 국민이 어지러운 불량 롤러코스터에 타고 있는 형국이다. 허점도 계속 드러나고 있다. 한 나라의 최고 권력자에 대한 탄핵 여부를 결정하는 일인 만큼 ‘시급성’ 못지않게 ‘신뢰성’에도 무게를 두는 게 중요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다. 헌법재판소는 지난 3일 진행한 윤 대통령 탄핵 심판 사건 2차 변론준비기일에서 변론기일을 통지했다. 헌재가 발표한 변론기일은 오는 14일부터 2월 4일까지 5차례다. 일정대로라면 주당 2회꼴로 재판이 진행되는 셈이다. 변론준비기일을 마친 후 국회 측 대리인단은 “예상대로 변론기일을 진행하게 돼 다행”이라고 밝혔지만, 윤 대통령 측은 “방어권을 제한하고 신중한 심리를 저해한다”고 반발하고 있다. 법조계와 정치권에서 큰 논란이 된 것은 국회 탄핵소추단이 이날 탄핵 사유에 적시된 ‘형법상 내란죄’를 철회하겠다고 밝힌 일이다. 국회가 지난달 14일 통과시킨 윤 대통령 탄핵소추 의결서에는 ‘형법의 내란죄, 직권남용죄 등 중대 범죄’가 탄핵 핵심 사유로 명시돼 있다. 이를 제외하겠다고 나선 것은 결국 탄핵을 주도한 야당이 재판 속도를 앞당기려는 전략이라는 것이 법조계 안팎의 시각이다. 윤 대통령 측은 “이번 탄핵 심판은 내란죄 성립을 토대로 한 것인데, 내란죄를 뺀다면 탄핵소추 의결 자체가 무효 아니냐”며 반발했다. 헌재는 국회 측에 추가 서면 자료를 제출하라고 요구했다. ‘내란죄’ 포함 여부는 오는 14일부터 진행되는 정식 변론기일에서 결정될 전망이다. 학계에선 “탄핵소추 의결서에 담긴 내란죄를 임의로 배제한다면, 심판 절차의 적법성 논란이 일 수 있다”는 지적과 함께 ‘소추 사기’라는 주장까지 제기된다. 이호선 국민대 법대 학장은 ‘내란죄’를 소추 사유에서 빼려면 국회의 예비 심판인 탄핵소추안을 다시 의결해야 한다는 견해를 밝혔다. 이 학장은 “헌재는 이번 탄핵을 즉시 각하해야 한다”고 촉구하기도 했다. 현재의 정국에서 헌법재판소의 존재감이나 역할은 다른 기관을 압도한다. 마치 이 나라의 운명이 헌법재판소의 결정에 통째로 맡겨진 듯한 상황이다. 민주화 이후 한국의 정치변동을 주도하는 주체는 소수의 정치지도자에서 사법부로 넘어가는 추세다.‘정치의 사법화(judicialization of politics)’경향이 뚜렷해지고 있다는 분석도 제기된다. 이 시점에 가장 경계해야 할 일은 사법부가 극단적인 정치분위기에 휩싸여 흔들리는 것이다. 이미 두 차례나 대통령 탄핵소추를 경험한 우리로서는 그 이후 얼마나 뒷말과 혼돈이 깊었는지를 반추해야 한다. 미국의 경우, 닉슨 대통령을 탄핵할 때 조사를 2년간이나 했다. 클린턴 대통령도 1년 이상 조사를 진행했다. 최소한 국민 누구나 고개를 끄덕일 수 있을 정도로 충분한 증거와 법리를 확보한 다음에 결정해야 한다는 교훈을 남기고 있다. 여야갈등을 겪는 국가 주요현안마다 정치과정이 아닌 사법절차를 통해 해결책을 찾는, 정치의 사법화가 크게 우려스럽다. 하루빨리 극단적 진영정치가 청산되고 대화와 타협의 정치가 복원되길 기대한다.

2025-01-05

간절한 소망

유영희 작가 며칠 전 동네 인쇄소에 갔다가 사장에게 인상 깊은 말을 들었다. 매스컴에 자주 오르는 지역 국회의원을 언급하며 ‘그 의원은 영혼이 없는 사람 같아요. 이 동네 주민이 아니라는 데도 굳이 들어와서 선거 운동을 하는데, 말 한마디 진정성이 없고 시선은 어디를 보고 있는지 모르겠어요. 이 동네 주민들은 어떻게 그런 사람을 찍어줄까요?’ 한다. 20년 넘게 단골로 다녔어도 인쇄 업무 이외의 대화는 한 적이 없는데 얼마나 답답하면 저런 말을 할까 놀랐고, 관찰과 표현의 섬세함에 또 놀랐다. 철학자 피터 비에리는 소설을 쓸 때는 파스칼 메르시어라는 필명을 사용한다. 그의 장편소설 ‘언어의 무게’에는 주인공 레이랜드가 독일어 책을 영어로 번역하다가 독일어에서는 쉼표가 있지만 영어에서는 빼야 하지 않을까 고민한다. 친구 버크에게 물어보니, 버크는 이렇게 대답한다. “쉼표가 중요하군. 없애면 유치하게 들리네. 짧고 건조해. …. 쉼표는 모든 것을 바꾸네. 진부하고 단순한 문장을 쉼표가 위대한 문장으로 만드네.” 피터 비에리라는 본명으로 발표한 철학책, ‘자기 결정’에서 그는 ‘글을 쓰고 나면 다른 사람이 된다.’고까지 말한다. 비단 글을 쓸 때만 언어의 무게를 살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일상 언어에서도 언어는 한없는 무게를 가지고 있다. 게다가 현대 사회에서는 모든 언어가 글로 변환되므로 언어를 세심하게 써야 할 필요성은 더 커졌다. 글로 쓰든 말로 하든 이렇게 언어는 밖으로 표현되고 나면 그 말을 사용한 사람에게 지대한 영향을 끼치니, 그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의 생각과 인격을 만든다. 그래서 조지 오웰의 ‘1984’에서도 독재국가를 유지하기 위해 언어를 관리했다. 지난달 23일, 윤상현 국민의힘 의원이 트랙터를 몰고 상경 시위를 한 전국농민회총연맹을 두고 “몽둥이가 답”이라고 해서 물의를 일으켰다. 전농의 트랙터 행렬에 대해 나중에 경찰이 허용한 것을 보면 불법이 아니지만, 설령 불법이라 하더라도 국회의원이 ‘몽둥이가 답’이라는 언어를 사용한 것은 매우 유감스럽다. 언어는 대상을 향하는 것이지만 결국 자신에게 돌아와 그 사람의 인격을 만든다. 윤상현 의원의 행보가 나날이 극단으로 치닫는 것은 그가 사용하는 언어 때문일지도 모른다. 해리 G. 프랭크퍼트는 ‘개소리에 대하여’라는 책에서 개소리가 거짓말보다 위험하다고 한다. 거짓말은 진리를 알고 있다는 점에서 진리를 존중하는 것이지만 개소리는 진실을 전혀 상관하지 않기 때문이다. 나아가 저자는 말하는 이가 진정성을 가지고 한 말도 진리에 대한 존중이 없으면 개소리가 될 수 있다고 말한다. 사회지도층이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는 개소리도 불사한다면 우리 사회는 혼란을 벗어날 수 없다. 한편, 옳음을 지향해가는 것은 마땅히 해야 할 일이지만, 그름에 대해 거친 감정과 극단적 언어로 대응하는 것도 경계할 일이다. 그런 대응으로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거니와 말하는 사람의 인격도 무너뜨린다. 사회지도층은 물론이고, 우리 모두 새해에는 언어의 무거움을 의식하는 한 해가 되기를 소망해본다.

2025-01-05

말 말 말

▲ 김규종경북대 교수·인문대학 답답하고 혼란한 정국이 연말을 지나 새해까지 이어지고 있다. 분노와 탐욕에서 시작된 권력자의 독단이 온 나라를 통분(痛忿)의 소용돌이 속으로 몰아넣는다. 거리에서 광장에서 지하철에서 울려 퍼지는 탄식과 한숨의 물결이 끊이지 않는다. 엄동설한에 거리로 나서야 하는 이 나라 민초(民草)들의 꽉 막힌 가슴을 어떻게 풀어줄 수 있을지 숙고해봐도 뾰족한 수가 없다. 요즘 새삼스레 한나 아렌트(H. Arendt)가 머릿속에 떠오른다. 유대인으로 미국에서 활동한 여성 철학자 아렌트는 ‘예루살렘의 아이히만’(1963)에서 ‘악의 평범성’이란 개념을 주창한다. 숱한 유대인을 가스실로 보낸 아돌프 아이히만은 악마가 아니라, 자상한 가장이자 성실한 공무원이었다는 것이다. 사악한 인간이 평범한 얼굴 모습을 가지고 있었다는 쓸쓸한 괴담(怪談).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에서 아렌트가 주장한 핵심은 생각하지 못하는 인간이 불러일으키는 파괴적이고 궤멸적인 결과다. 아이히만은 자신이 일상적으로 행하는 서명 하나가 얼마나 많은 생명을 죽음으로 인도하는지 전혀 사유하지 않았다. 그는 국가가 시키는 대로, 히틀러의 명령에 따라 공무원으로서 자신의 직분을 다했을 따름이라고 겸손하게 강변했다. 생각은 말을 낳고, 말은 행동으로 나타난다고 아렌트는 설파한다. 온전하게 생각하지 못하는 사람은 말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말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사람은 올바르게 행동하지 못한다고 아렌트는 주장한다. 깊은 사유와 숙고 없이 내던져지는 언어는 저급한 수준의 행동으로 드러날 수밖에 없다. 말과 행동은 그 인간의 사유와 인식 수준의 명징한 지표이기 때문이다. 언어와 행동의 일치를 보이는 사람들은 고도의 인식과 사유의 소유자라는 공통분모를 가진다. 의식하지 못하는 순간에 터져 나오는 말은 그 사람의 일상적인 생각을 고스란히 드러내 보인다. 아무 근거 없이 발화되는 언어는 없으며, 무엇보다 견디기 어려운 고통의 순간에 드러나는 인간의 행동은 그가 가진 사유와 인식의 모든 것을 가감 없이 재연(再演)한다. 그런 까닭에 우리가 평소 의식하지 않고 뇌까리는 말은 부지불식간(不知不識間)에 우리의 정신세계를 담고 있다. 언론을 통해 날마다 까발려지는 권력자와 그 부역자들의 언어를 들으며 떠올리는 것은 그들의 빈곤하고 구차한 사유와 인식의 수준이다. 이순(耳順)을 넘긴 자들의 언어가 저토록 천박하고 어처구니없다는 사실에 놀라지 않을 수 없다. 호모사피엔스는 놀라운 능력이 있다. 인간은 육체적으로 보면 맹금류는 물론 어류에게도 미치지 못하는 면이 많지만, 지적이고 정신적인 면에서는 최상위에 자리한다. 그래서 사람은 만물의 영장이라고 자부하는 것이다. 인간의 정신세계를 심화-확장하는 방편 가운데 하나가 독서와 사색이다. 이런 작업에 기초하여 인간은 사회의 지도적인 지위에 오르게 된다. 시중에 떠도는 말과 말에서 들어보거나 생각해볼 만한 문장 하나 만나기 어려운 현실에 아연실색한다. 아, 저런 자들이 나와 내 어린 것들의 ‘지금과 여기’는 물론 앞날까지 감당했구나, 하는 깊은 절망과 쓰라린 자책이 나의 가슴을 통렬하게 후벼파는 나날이 이어지고 있다.

2025-01-05

고전으로 세상읽기 ② 격물(格物), 사물의 이치를 파고 들다

인간의 이성 능력 향상에 있어 그 출발인 ‘경험’ 또는 ‘사실 관찰’을 뜻하는 ‘격물(格物)이 있습니다. 격물이 넓어지기 위해서는 네가지 단계로 인식이 넓어져야 합니다. 먼저 무엇을 알아야 하는가?(사물)가 필요하고 ‘어떻게 잘 알 수 있는가?’(태도) 이성은 왜 윤리와 지식이어야 하는가?’ 마지막으로 이름을 이해하라(정명)고 고전에서 말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무엇을 알아야 할까요. 안다는 것은 ‘자연의 이치’, ‘사람의 이치’를 아는 것입니다. 주희는 ‘주자어류’ 〈대학이경하〉 편에서 “격물에서의 물(物)은 사물(事物)을 가리킨다.”고 말합니다. ‘사물’의 사전적 의미는 ‘일과 물건을 아울러 이르는 말’로, ‘사’는 ‘일 사(事)’라는 한자 의미 그대로 능동적 작용인 ‘인간의 행위’를 말하고, ‘물’은 한자 의미 그대로 수동적 대상인 ‘자연적 물질’을 말합니다. 율곡 이이는 ‘성학집요’ 〈궁리〉 편에서 “자연과 사람의 이치는 당연히 모두 파고들어야 한다. 다만 자연은 그 범위가 매우 넓어 간략히 말하고, 사람에게 있는 이치는 긴요하고 절실해 상세히 말한다 - 중략- 가까이서 얻은 지식과 경험을 유추해 끝까지 확장해 나가면 ‘한 자연의 세밀한 부분’이나 ‘한 사람의 작은 행위’까지 그 이치를 통찰하지 못할 것이 없다.”고 말합니다. 사물에 다가가 그 사물의 이치를 파고드는 ‘격물’은 다름 아닌 ‘사람에 대한 이치’와 ‘자연에 대한 이치’, 즉 학문의 범주로 말하면 ‘인문과학’과 ‘자연과학’의 대상을 그 대상으로 합니다. 우리가 무엇인가를 안다고 할 때, 그 앎은 흔히 단순한 앎, 지식, 과학, 지혜 차원으로 단계를 나눠볼 수 있습니다. ‘단순한 앎’은 ‘어떤 사실이나 존재, 상태에 대해 의식이나 감각으로 깨닫거나 느끼는 것’입니다. 그리고 ‘지식’은 간접적인 배움이나 직접적인 경험을 통해 갖게 된 ‘명확한 인식이나 이해’를 말합니다. 이런 지식이 특정한 목적을 위해 보편성과 객관성을 확보하고 체계를 갖추면 ‘과학’이 됩니다. 지혜는 ‘이치에 맞게 적절하게 일을 처리하는 정신적 능력’을 의미하며, 때로는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와 같은, 지식이나 과학의 범주를 넘어선 질문에 대한 해법 제시 능력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과학은 대상에 따라 크게 ‘자연과학’, ‘사회과학’, ‘인문과학’으로 나뉩니다. 그리고 ‘좁은 의미’로는 ‘자연과학’만을, ‘넓은 의미’로는 ‘자연과학’, ‘사회과학’, ‘인문과학’ 모두를, 또 때로는 ‘자연과학’과 ‘사회과학’만을 ‘과학’이라 부르기도 합니다. 과학의 범주가 들쑥날쑥한 것은 ‘보편적인 진리나 법칙의 발견을 목적으로 한 체계적인 지식’이라는 ‘과학’의 정의에 사실은 ‘자연과학’만 정확하게 맞아떨어지기 때문입니다. 다른 둘은, 둘 중에서도 특히 ‘인문과학’은 이 정의와 상당히 거리가 있습니다. 사실의 관찰과 실험에 의한 합리성과 실증성 확보에 ‘자연과학’은 전형적으로 충실하지만, 뒤의 ‘인문과학’ 쪽으로 갈수록 그 충실도는 크게 떨어집니다. 세 분야 사이에 그런 차이가 나는 이유는 자명합니다. ‘자연과학’의 대상인 ‘자연’은 물질적이고 구체적이어서 인과관계에 있어 기계적인 반면, ‘인문과학’의 주요 대상인 ‘인간’은 의지적이고 심지어 때로는 창조적이기까지 해 규칙화할 수 없고 객관화하기도 어렵기 때문입니다. ‘인문과학’을 보통 ‘인문과학’이라 하지 않고 흔히 그냥 ‘인문학’이라 부르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인간의 집단인 사회를 연구 대상으로 하는 ‘사회과학’은 ‘자연과학’과 ‘인문과학’의 중간 정도라 할 수 있습니다. 연구 대상인 사람들의 사회적 행위가 반드시 사람으로만 이루어지지 않고 자연인 물질도 함께 개재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경제학’과 같은 경우, 사람들의 행위가 연구의 중심이기도 하지만 그 행위가 재화와 관계되는 만큼 당연히 물질인 재화도 함께 연구 대상이 됩니다. 학문 범주 설정에 있어서의 모호함은 ‘자연’의 속성을 바탕으로 한 ‘과학’ 측면에서만 발생하지 않습니다. ‘인문학’ 입장에서도 발생합니다. ‘인간’의 속성과 문화 등에 대한 지식을 다룰 때 직접적으로는 인간과 인간의 문화만이 그 대상이지만 넓게 보면 사실 인간이 만들어가는 ‘사회’ 역시 여기에 해당됩니다. 그리고 인간이 자신들의 의지와 창조의 대상으로 삼는 ‘자연’도 관련이 전혀 없을 수 없습니다. 따라서 ‘인문학’의 영역을 따질 때 좁은 의미로는 그 범주가 ‘인문과학’에 한정되지만, 넓은 의미로는 ‘사회과학’, 심지어 ‘자연과학’까지 포함되기도 합니다. 사물에 나아가 그 이치를 살피는 ‘격물’의 대상은 기본적으로 ‘사람에 대한 이치’, 즉 ‘인문과학’과 ‘자연에 대한 이치’, 즉 ‘자연과학’의 기본 지식들입니다. 그리고 둘의 혼합이라 할 수 있는 ‘사회과학’의 기본 지식 역시 격물의 대상입니다. 그러면 ‘사물에 다가가 그 이치를 살피는’ 격물에서 구체적으로 우리는 무엇을 알아야 할까요? 먼저 민주 국가의 주인 된 자로서 ‘시민 역할을 올바로 하기 위한 것들’을 알아야 합니다. 민주주의, 자유, 평등과 같은 민주주의 핵심 가치들에 대한 개념적·역사적 명확한 지식, ‘권리와 의무의 균형’에 대한 체화된 지식과 같은 것들이 그것들입니다. 더불어 우리나라와 같은, 남북 간 이데올로기 대립이라는 특수 상황에서는 경제체제로서의 ‘자본주의’, ‘사회주의(공산주의)’에 대한 정확한 개념 구분 및 각각의 장단점, 경제체제(자본주의 vs 사회주의 또는 공산주의)와 정치체제(민주주의 vs 전체주의)의 구별에 대한 내용도 명확히 알아야 합니다. 정치는 사람들의 삶을 규정하는 가장 기본적이고도 근본적인 환경입니다. 그리고 민주주의에서 그 정치 환경은 결국 주권자인 시민들 스스로가 정합니다. 따라서 21세기 우리나라 상황에서 민주주의와 관련된 핵심 개념들과 남북 간 대치의 본질을 정확히 이해하는 것은 이 땅에서 주권자로서의 역할을 제대로 행사하기 위해, 그리고 상식이 통하는 건강한 사회를 만드는 데 있어 그 무엇보다 우선되는 일들입니다. 정치와 관련된 지식들은 주로 ‘사회과학’에 해당되고, 그 원리나 역사적 배경은 철학, 역사 등의 ‘인문학’이 담당합니다. 두 번째로 ‘자신과 가족 부양을 위한 경제 능력 확보에 필요한 지식’을 갖추어야 합니다. 21c 보편적 경제 환경은 시장경제(Market economy)입니다. 시장경제에서는 누구나 모두 상인입니다. 어느 한 사람 예외 없이 시장을 통해 자신의 재능을 팔아 자신과 가족의 생활을 영위합니다. 재능은 그것이 기술이든 지식이든 경쟁력 또는 상품으로서 가치가 있을 때 비로소 시장에서 거래됩니다. 따라서 현대인은 모두 생계를 위해 자신의 재능과 관련된 전문지식을 갖춰야 합니다. 전문가로서의 제대로 된 지식을 갖추지 못하면 인간으로서의 최소한의 문화생활을 포기해야 하거나 심한 경우 생계 자체를 위협받을 수 있습니다. 전문지식은 생계와 관련된 재능의 분야에 따라 그 주요 영역이 ‘자연과학’이거나 ‘사회과학’ 또는 ‘인문학’일 수 있습니다. 한 사회 속 사람들의 욕구와 삶의 방식이 다양해지고, 또 삶의 수준이 생존 지향에서 가치·의미 지향적으로 바뀌어 가면서 생계 관련 전문지식의 영역은 ‘자연과학’에서 ‘사회과학’으로, 그리고 또 ‘인문학’으로 확장되어 갑니다. 신동기 작가(경영학 박사) 신동기인문경영연구소 대표 세 번째로 문화 또는 인간의 근원과 관련된 지식 또는 지혜를 갖추어야 합니다. 인간은 빵만으로 살지 않습니다. 오로지 황금만을 향해 달리지도 않습니다. 아름다움, 공감, 염치, 자존감, 인정, 공존, 명예, 자기희생, 자기만의 삶의 의미와 같은, 다른 동물들에서는 절대로 찾아볼 수 없는 정신적 가치를 추구하기도 합니다. 정신적 가치 추구는 그 가치 추구 자체로 본인 스스로 행복해지고 또 스스로를 존중하는 마음이 들게 합니다. 때로는 인간의 탐욕을 제어하거나 인간 합리성의 한계를 보완함으로써 실질적인 이익을 가져다주기도 합니다. 정신적 가치와 관련된 지식 또는 지혜는 주로 인문학이 제공합니다. 인문학은 존재하는 것들의 원리와 근본을 돌아보게 하고, 자연과학·사회과학에 새로운 관점, 긴 호흡의 나아갈 방향을 제시하기도 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인간을 더욱 인간답게, 동물 아닌 인간답게 만드는 역할을 합니다. 인간은 정치·경제·문화적으로 두루 건강할 때 현실에 굳건히 발을 딛고 각자 자신만의 의미 있는 삶을 추구할 수 있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이성적 시민’이 되어야 하고, ‘자립 능력을 갖춘 경제인’이 되어야 하고, ‘자기실현을 추구하는 교양인’이 되어야 합니다. ‘이성’과 ‘자립 능력’, ‘교양’은 ‘무엇인가를 아는 것’, ‘격물格物’로부터 시작됩니다.

2025-01-05

‘천상운집’의 해

우정구 논설위원 해가 바뀌면 누구나 한번쯤은 새롭게 각오를 다지게 마련이다. 비록 작심삼일(作心三日)이 될지는 모르나 올 한해를 어떤 마음으로 맞이하며 가야 할지 각오를 다지는 것은 좋은 일이다. 그래서 지방자치단체나 직장 등에서는 구성원이 한 목표로 일치단결해 나아갈 수 있게 시의적절한 사자성어를 선택해 연초에 발표한다. SK그룹 최태원 회장은 신년사에서 “어려움을 알고 행동으로 옮기는 용기가 필요하다”는 뜻의 ‘지난이행(知難而行)’을 꼽았다고 한다. 위중한 국내외 경제 상황을 잘 인식하고 대응하자는 의도로 보인다. 중소기업계서는 신년 각오로 “인내심을 발휘해 어려움을 이겨낸다”는 뜻의 ‘인내외양(忍耐外揚)’을 선택했다. 앞으로 닥칠 경제적 어려움을 잘 견뎌내자는 뜻이다. 상당수 단체장도 신년 화두로 사자성어를 내세우고 있다. 지역민에게 새해 각오와 시정 의지를 밝히는 데 목적이 있다. “성과에 안주하지 말고 더욱 발전하자”는 ‘마부정제(馬不停蹄)’나 “뿌리가 튼튼해야 가지가 무성하다”는 ‘근고지영(根固枝榮)’, “호랑이처럼 예리하게 보고 소처럼 우직하게 걸어간다”는 ‘호시우행(虎視牛行)’, “이슬방울이 모여 바다를 이룬다”는 ‘노적성해(露積成海)’ 등은 단체장이 잘 인용하는 글귀다. 반면에 개인들은 “근심과 걱정이 없는 한해가 되라”는 ‘무사무려(無思無慮)’, “성공은 포기하지 않음에 있다”는 ‘공재불사(功在不舍)’, “스스로 힘쓰고 쉬지 않는다”는 ‘자강불식(自强不息)’과 같은 덕담이나 개인적 희망을 소재로 삼는다. 정국 불안으로 혼란스러운 모든 국민에게 올해는 온갖 복되고 좋은 일이 구름처럼 모여든다는 ‘천상운집(千祥雲集)’의 해가 되길 기원해 본다. /우정구(논설위원)

2025-01-02

가짜뉴스는 민주주의를 좀먹는 ‘독’

이상휘 국회의원(국민의힘·포항 남·울릉) 포항시 남구·울릉군 주민과 경북매일신문 독자 여러분, 희망찬 2025년 새해가 밝았습니다. 새해에는 지역 사회와 모든 가정에 건강과 행복이 가득하기를 기원합니다. 하지만 새로운 해를 맞이하며 우리 사회가 직면한 중요한 과제가 있습니다. 바로 가짜뉴스로 인해 신뢰 사회의 기반이 위협받고 있는 문제입니다. 최근 가짜뉴스 확산은 단순한 정보 문제가 아니라 민주주의와 공동체 자체를 위협하는 심각한 사회적 요인으로 대두되고 있습니다. 디지털 미디어와 소셜미디어의 급속한 발전은 가짜뉴스가 빠르게 퍼지도록 만들었으며, 그 여파는 우리 사회 전반에 걸쳐 심각한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가짜뉴스는 특정 개인이나 단체의 문제를 넘어선 사회적 위협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이는 민주주의의 핵심 요소인 건강한 여론 형성과 신뢰 사회를 무너뜨리고, 사회적 갈등을 조장하며, 국민 간 신뢰를 약화시키는 결과를 초래하고 있습니다. 이로 인해 정책에 대한 왜곡된 인식이 심어지고, 이는 지역사회의 결속력과 발전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습니다. 대표적인 사례로 2020년 미국 대선에서 부정선거와 관련된 가짜뉴스가 미국 사회를 심각하게 분열시킨 일을 들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도 허위 정보로 인해 여론이 왜곡되는 사례는 빈번합니다. 2022년 윤석열 대통령과 당시 한동훈 법무부 장관에 대한 청담동 심야 술자리 의혹은 경찰 조사 결과 사실이 아닌 것으로 밝혀졌지만, 이러한 가짜뉴스는 국민의 신뢰를 훼손하고 사회적 혼란을 야기하는 결과를 낳았습니다. 이제는 가짜뉴스 문제를 방관해서는 안 됩니다. 이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기술적 접근과 법적 제도의 조화가 필수적입니다. AI 기술을 활용한 가짜뉴스 탐지 시스템 개발은 초기 단계에서 허위 정보 확산을 차단하는 데 큰 역할을 할 수 있습니다. 또한, 법적 제도를 강화해 가짜뉴스의 생산자와 유포자에게 책임을 묻는 체계를 구축해야 합니다. 다만, 표현의 자유를 존중하며 허위 정보의 남용을 막기 위한 세심한 기준도 필요합니다. 가짜뉴스를 근본적으로 줄이기 위해서는 국민 모두가 정보를 비판적으로 수용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를 위해 초·중·고등학교 교육과정에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을 포함시키고, 시민들이 스스로 정보를 검증하는 방법을 익힐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야 합니다. 언론사와 플랫폼 기업은 가짜뉴스 문제를 방관하지 말고, 자체적인 검증 시스템을 구축해 책임감을 가지고 운영해야 합니다. 특히, 정치권 역시 가짜뉴스 문제에서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 때로는 정치권이 가짜뉴스의 피해자가 되기도 하지만, 반대로 이를 이용하려는 유혹에 빠지기도 합니다. 그러나 민주적 가치를 지키기 위해 정치권이 먼저 책임감을 가지고 가짜뉴스 문제 해결에 앞장서야 할 때입니다. 새해에는 가짜뉴스를 극복하고 신뢰와 진실에 기반한 건강한 사회를 구축하기 위해 모두가 함께 힘을 모아야 합니다. 이러한 노력이 결실을 맺어 우리 사회가 다시금 신뢰와 화합의 기반 위에 우뚝 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밝은 새해, 모두의 삶에 평화와 행복이 가득하기를 기원합니다.

2025-01-02

해넘이, 해맞이

윤영대 전 포항대 교수 해가 바뀌었다. 태양은 변함이 없는데 연도(年度)가 바뀌었다는 말이다. 갑진년 마지막 날 해넘이를 보려고 기계읍 변두리 시골집으로 갔었다. 마을 앞을 나서면 봉좌산과 운주산이 나란히 서 있는데 저녁 하늘이 붉게 물들더니 이내 봉좌산 허리에 황금빛 태양이 걸린다. 일몰 시간은 5시 20분경, 찬란하게 빛나던 태양이 산 뒤로 숨어버리고 들판은 어둠에 젖는다. 산의 실루엣을 보며 두 손을 모았다. 한 해를 무사히 잘 보냈다는 감사의 마음으로…. 저 태양은 14시간 뒤 다시 동해에 떠오르겠지. 한 해의 끝날 자정에 마음을 편히 하고 보신각 타종행사의 TV 화면을 본다. 여느 때 같으면 화려한 불꽃놀이와 함께 신나는 공연이 있겠지만 올해는 조용하게 시민 대표 15명이 종방망이로 33번 울릴 뿐이었다. 청천벽력 같은 제주항공의 무안공항 참사로 179명이 사망하여 1월 4일까지 국가 애도 기간으로 정한 탓이다. 연말을 맞아 방콕 여행을 다녀와서는 공항에 내리지도 못하고 다시 하늘나라로 올라가 버린 영혼들을 추모하기 위한 것으로 전국의 새해맞이 타종행사는 축소되거나 취소되어 새해를 즐기지 못하고 분향소 앞에 묵념하게 되어 축제가 추모의 장으로 바뀌어진 것이다. 사고 경위에 대한 조사가 착실히 진행되고 있겠지만 여러가지 의혹을 풀어서 다시는 그러한 대형 참사가 발생하지 않도록 해야 할 것이다. 가뜩이나 계엄과 탄핵의 어지러움에 울화통이 터지는데 울고 싶은 심정의 국민은 얼마나 많을까? 그러나 어김없이 또 새날은 밝았다. 차가운 새벽에 해돋이를 보려고 두껍게 입고 영일대 바닷가로 걸어 나갔더니 수많은 사람들이 해변으로 이어진 골목을 메우며 걸어가고 있었다. 먼동이 튼 바닷가에는 이미 발 디딜 틈이 없고 바닷물이 밀려오는 모래밭에 길게 늘어선 모습 또한 장관이다. 인파를 헤치며 영일대 쪽으로 걸어갔더니 입구는 막아두었고 바리케이드가 길게 쳐져있었다. 광장에는 어느 사찰에서 떡국을 끓여 나누어주고 있기에 한 그릇 받아서 먹고는 일출을 기다리는 인파 사이로 파고드니 영일만 건너 호미반도 위로 해가 솟는다. 어제저녁 봉좌산 뒤로 사라졌던 그 해는 다시 솟아올랐지만 이제 을사년의 해이다. 가슴에 손을 모으고 위태로운 국가의 안녕과 집안의 평온을 빌었다. 해가 가장 먼저 뜨는 호미곶에도 전국에서 온 3만여 명의 인파가 상생의 손 해맞이를 보러왔지만 공식행사는 취소되고 해맞이 공원에 설치한 추모의 벽에 글을 남길 뿐이었다. 새해를 맞아 경북도는 초일류 국가를 위해 ‘멈추지 않는 도전, 희망의 경북 시대’를 신년 화두로 내 걸었고, 포항시는 ‘미래 성장, 도시 활력, 시민 중심, 생활 행복’ 등 4대 시정 목표를 세워 바이오, 수소, 2차전지 등 3개 분야 특화단지 조성과 함께 POEX(포항국제컨벤션센터) 추진에 힘을 쏟겠다고 한다. 탄핵 정국으로 고환율, 고물가, 고금리 등 민생 경제의 어려움과 미국 트럼프 취임 후 예상되는 국제정세도 걱정이 크겠지만 ‘매일이 새해 첫날이라고 생각하라’는 오프라 윈프리의 말처럼 빛나는 한 해가 되도록 스스로 응원하며 다독이자. 작년에 못다한 일들을 아쉬워하지 말고 새해엔 더 적극적으로 실천하며 마음속의 종을 울려보자.

2025-01-02

날아라, 부화하는 날들이여

김병래 수필가·시조시인 30일이나 31일씩 들어 있는 달력 한 장이 서른 개 들이 계란 한 판을 연상시켜서이다. 그러니까 나는 올해도 부화를 기다리는 유정란 열두 판을 선물로 받은 셈이다. 언젠가는 날마다 갈아 끼워야 하는 365일치 배터리라는 생각을 해본 적도 있지만, 그보다는 유정란이란 상상이 훨씬 더 유정(有情)하고 생기롭지 않은가. 하루에 한 알씩 부화를 기다리는 365일이 주어졌다는 생각은, 그냥 상상일 뿐이지만 삶을 한층 설레고 새롭게 한다. 모든 씨앗이 그러하듯 유정란은 하나의 생명체로서의 발현을 꿈꾸는 가능태이다. 우리의 삶도 나날이 새롭게 태어나는 생명일 때 가장 의미 있고 벅찬 감동이 있지 않겠는가? 개미 챗바퀴 돌듯 그날이 그날인 일상이지만 이렇듯 마음먹기에 따라서는 하루하루가 부화고 탄생인 삶일 수도 있는 것이다. 모든 살아있는 것들은 시시각각 새로워지는 것이고, 그것이 바로 삶의 본질이 아니겠는가. 상나라를 건국한 탕왕이 어느 날 새벽 동녘 하늘을 바라보며 어떻게 나라를 잘 다스릴지를 고민하고 있을 때, 마침 붉은 해가 웅장한 자태로 떠오르기 시작했다. 그 순간 탄성이 터져 나왔다. “그 많은 날, 해돋이를 보았건만 저 해는 지난날의 해가 아니다! 오늘 완전히 새로운 해가 뜨는구나.” 함께 정사(政事)를 논하던 신하 이윤이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그렇습니다. 매일 새로운 해가 뜨기에 저 해는 만물을 기를 수 있는 것이지요.” 그 말을 듣고 왕은 놀라 신하에게 되물었다. “진정, 그렇구려! 그렇다면 짐은 어찌해야 저 해와 같이 만백성을 기를 수 있는가?” 이윤이 대답했다. “사람이 매일 새롭고자 한다면 책을 보는 것입니다. 매일 책을 보고, 매일 생각하며, 매일 현자(賢者)와 의논한다면 왕께서는 저 태양처럼 새롭고 매일 새로우며 또 날마다 새로울 것입니다.” 이 말에 왕은 크게 기뻐하여 그 충언(忠言)을 잊지 않으려고 구리세숫대야에 새기도록 했으며, 매일 세수할 때마다 되새겼다고 한다. 그 문장은 다음과 같다. ‘구일신(苟日新) 일일신(日日新) 우일신(又日新) 즉, 진실로 새로워지기 위해서는, 날마다 새로워야 하고 또 새로워야 한다.’ 사람의 몸을 구성하고 있는 세포는 30조 개 안팎인데, 그 중의 대부분은 80일 가량이면 새 것으로 교체된다고 한다. 아이들은 하루가 다르게 성장을 하지만 노인들은 하루가 다르게 늙어간다. 하지만 늙어가는 과정이라고 새로움이 없는 게 아니다. 수백 년 된 고목에도 새잎이 나오고 꽃이 피고 열매가 열리듯, 살아있는 동안은 누구나 나날이 새로운 것이다. 시국이 하도 혼란하고 위태로워 해가 바뀌어도 도무지 새해 같지가 않다. 그렇다고 포기하고 주저앉을 게 아니라, 그럴수록 우리의 모든 날들이 부화하여 새로운 세상이 열리도록 각오를 다질 일이다.

2025-01-02

뱀의 지혜로 위기를 기회로 뒤집자

김진국 고문 해마다 ‘다사다난’(多事多難)이라고 한다. 그럼에도 2024년만큼 힘든 해가 있었는가 싶다. 극단적인 대결 정치로 국정이 마비 상태였다. 대화와 타협이라는 민주주의 기본 틀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건국 이래 처음 경험해 보는 일들이 수없이 벌어졌다. 마침내 연말에는 비상계엄이라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에 항공 사고까지 덮쳤다. 올해도 만만치 않아 보인다. 시련은 한편으로는 기회다. 문제가 감추어졌을 때보다 드러났을 때 해결할 여지가 생긴다. 2024년의 힘들고, 어둡고, 암울했던 일들을 털어버리고, 새로운 발전을 향해 도약하는 희망의 한 해를 만들도록 노력하자. 2025년은 을사(乙巳)년이다. 음양오행으로 따지면 천간 을(乙)은 나무와 푸른색이다. 나무는 끊임없이 자란다. 생명력, 성장, 유연성을 상징한다. 지지 사 (巳)는 뱀과 불이다. 뱀은 허물을 벗고, 새로운 모습으로 태어나는 성질을 갖고 있다. 변화와 재생, 지혜를 상징한다. 뒤돌아보면 을사년의 역사는 참담했다. 1905 을사년에 을사늑약이 체결됐다. 조선의 외교권을 일본에 빼앗겼다. 1545 을사년은 대규모 사화로 100명 가까운 사람이 유배와 죽임을 당했다. 왕비들의 친정인 파평 윤씨 가문에서, 대윤과 소윤이 왕위 계승을 둘러싸고 싸웠다. 이를 계기로 외척이 전횡하고, 훈구파가 장악하는 조선 말 당쟁의 틀이 굳어졌다. 윤석열 대통령은 탄핵 심판과 함께 내란죄로 형사재판도 받는다. 유죄든 무죄든 엄청난 변화를 피할 수 없다. 탄핵 심판이 노무현 전 대통령 때는 2개월, 박근혜 전 대통령 때는 3개월 걸렸다. 형사재판과 함께 가는 점이 박 전 대통령과 가깝다. 헌법재판소가 심판정족수를 채우지 못한 데다 윤 대통령이 철저히 법적 다툼을 준비하고 있어 박 전 대통령 때보다 더 길어질 것 같다. 헌법재판소법에는 사건 접수(12월 14일) 후 180일 이내에 선고하게 돼 있다. 그렇지만 헌법재판관 두 명이 4월 18일 퇴임할 예정이라 그전에는 선고할 것으로 기대한다. 탄핵이 인용되면 60일 이내에 대통령 선거를 치러야 한다. 상반기 중에 선거를 치른다는 말이다. 기각하면 윤 대통령이 복귀한다. 윤 대통령은 헌재의 보증 아래 비상계엄을 다시 발동하고, 정치활동을 제한할 수 있다. 보복과 저항의 엄청난 혼란이 뒤따른다. 윤 대통령이 계엄을 자제해도 야당이 윤 대통령을 심하게 흔들 가능성이 있다. 임기 말과 겹쳐 예측하기 어려운 정국으로 들어간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에 대한 재판의 향방도 큰 변수다. 탄핵이 인용되고, 이 대표의 피선거권 제한이 확정된다면 새판을 짜는 큰 변화가 시작된다. 지난 대통령 선거는 증오의 선거였다. 조국의 강으로 갈라져 양 진영이 모두 흥분했다. 국가 발전보다, 미운 정치인을 응징하는 것이 목표였다. 그런 선거를 반복하면 안 된다. 민주화와 근대화에 모두 성공한 빛나는 성과를 분풀이, 화풀이에 낭비할 수는 없다. 자식들을 500년 전 당쟁 속으로 다시 던져넣을 수는 없다. 트럼프의 재등장으로 세계 각국이 비상이다. 우리만 집안싸움이다. 트럼프 정부는 북한을 핵보유국으로 인정하며 협상하려 한다. 한국의 방위비 분담금을 10배 올리고, 한국에 추가 관세를 물리려 한다. 정치 불안정에 외국 자본이 탈출한다. 중요한 것은 먹고사는 문제다. 정치 리스크가 경제 리스크를 재생산하고, 증폭하지 않도록 막아야 한다. 민주주의는 좋든 싫든 경쟁 정당의 집권을 인정해야 한다. 그 가능성을 참지 못하면 전체주의다. 북한 정권, 나치 정권이 된다. 대통령 권력과 의회 권력의 분점(分占)과 극단적인 대결에 대한 회의론이 커진다. 그렇지만 개헌은 차기 대권을 노리는 정치인, 임기가 많이 남은 국회의원들이 동의해야 가능하다. 어느 쪽으로 가건, 중요한 것은 국민이다. 정치인은 국민을 따라올 수밖에 없다. 아무 것도 할 수 없게 맞물린 정치판을 뒤집을 기회다. 국민이 깨어나야 한다. 뱀은 지혜의 상징이다. 냉철한 뱀의 지혜로 어려움을 이겨내면, 답답했던 정치에 숨통을 틀 수 있다. 할 수 있다는 희망을 품자. 희망이 살아 있는한 앞날은 밝다. △1959년 11월 30일 경남 밀양 출생 △서울대학교 정치학 학사 △현)경북매일신문 고문 △중앙일보 대기자, 중앙일보 논설주간, 제15대 관훈클럽정신영기금 이사장,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부회장 역임

2025-01-01

을사년은 포근하게

장규열 고문 뱀의 해, 2025년이 밝았다. 새해를 맞으며 모두 희망과 기대를 품는다. 지난 한 해, 나라 곳곳에서 많은 어려움을 겪었던 만큼 을사년에는 더 나은 세상을 기대하는 마음이 한 가득이다. 2024년 내내 사회를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한 단어가 있다, ‘국민’. ‘국민’은 늘 사용하면서도 그 깊이와 의미를 자주 놓치는 낱말이다. ‘국민’이라는 단어는 근대 국가의 형성과 함께 등장한 개념으로, 서구에서 발전한 국민국가 모델이 조선 말기와 대한제국 시기에 영향을 미쳤다. 특히, 일제의 강압 속에서 독립과 자주를 외쳤던 3·1 운동에서 두드러졌으며,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설립 과정에서 ‘국민’은 단순한 주민이 아니라 주권의식을 가진 정치적 주체로 정체성이 빛나기 시작하였다. 이후 대한민국 헌법이 제정되면서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선언은 국민의 주권을 분명히 한 역사적 전환점이었습니다. 4·19와 5·18을 거치면서 보다 든든해 졌으며 촛불혁명으로 더욱 그 진가를 발휘하였다. 정치가 ‘국민’을 대하는 태도도 시대와 상황에 따라 달라졌다. 민주주의는 ‘국민의,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 정치 체제를 의미한다. 하지만 현실 정치에서 국민의 목소리가 왜곡되거나 소수의 이해관계에 의해 침해되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정치인들이 선거철마다 ‘국민’을 외치지만, 정작 권력을 잡고 나서는 그 국민의 삶을 외면하는 모습은 오늘까지 이어진다. 지난 몇 년 동안 우리는 ‘국민’이라는 단어가 정치적 수사로 변질되는 사례를 누차 목격했다. 정치적 갈등이 심화되면서 ‘국민’은 때로는 편가르기의 도구로, 때로는 지지층 결집을 위한 수단으로 이용되었다. 급기야 국민 스스로 정치에 대한 불신을 가지게 만들었으며, 사회적 단합을 저해하는 요인이 되었다. 국민이 국민에게 배반당한 꼴이 아니었을까. 국민이 스스로를 바라보는 태도는 어떻게 바뀌었을까. 국민은 각자의 위치에서 최선을 다하며 생업을 이어가고 가족을 부양하며 사회를 이루어간다. 최근 우리 사회에서 나타난 갈등과 분열은 국민 개인 간의 신뢰마저 약화시키는 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지역, 성별, 세대, 이념의 차이가 깊어질수록 ‘국민’이라는 단어가 담고 있는 연대와 공동체 의식은 희미해져 간다. 2025년 새해에는 국민이 서로에 대한 신뢰와 연대를 회복하는 노력이 절실하게 기대된다. 정치와 언론이 꾸며낸 프레임 속에 자신을 가두기보다는 이웃과의 대화를 통해 공동체의 의미를 다시 돌아볼 필요가 있다. ‘국민’이라는 단어가 지닌 진정한 힘은 개인의 삶을 넘어 서로를 연결하고 더 나은 사회공동체를 만드는 데 있지 않을까. 새해에는 정치가 진정으로 국민을 모든 생각의 중심에 두었으면 한다. 정치적 논쟁은 치열할수록 좋다. 논쟁의 중심에 항상 국민의 삶과 미래가 자리 잡아야 한다. 120년 전 을사년을 기억한다. 국치 한일합방의 슬픈 역사를 기록했던 기억이 을사년에 있어 ‘을씨년스럽다’ 하였다. 올해 을사년은 국민이 국민을 보듬고 정치가 국민을 헤아리는 ‘포근한’ 을사년이 되었으면 한다.

2025-01-01

북한군, 새해엔 고향으로

홍성식 (기획특집부장) 자신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남의 나라 전쟁터에 보내진다는 건 개인의 고통인 동시에 국가적 비극이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계속되는 지역으로 북한 군인들이 파병됐다는 소식에 이어 그들 중 다수가 전투 중 사망하거나 다치고 있다는 뉴스가 들려온다. 청춘의 한 시절을 군대에서 보낸 한국 남성들은 그들의 처지가 안타까워 혀를 찬다. 미국 정부에 따르면 변변찮은 장비만을 갖추고 전장에 투입된 북한군 1000여 명이 벌써 사망했다고 한다. 북한군은 주로 우크라이나 군대가 점령한 러시아 쿠르스크 인근에서 목숨을 잃었다. 미국 고위 당국자의 지적처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자신들의 땅을 되찾기 위해 외국 군대(북한군)를 동원한 건 몹시 우려스러운 일”이 분명하다.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러시아와 북한군 장교들이 병사들의 투항을 막기 위해 처형도 불사하고 있다”는 끔찍한 이야기를 전했다. 북한 군인들은 고향에 남겨진 가족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기 위해 생포될 위기에 처하면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는 말까지 떠돈다. 만약 이게 사실이라면 무고한 청년들을 죽인 죄를 누구에게 물어야 할까? 2차대전 시기. 러시아는 전쟁이 뭔지도 모르는 시골 청년들을 징집해 3명당 총 1자루만을 주고 독일군의 포탄이 쏟아지는 전장으로 내몰았다. 20세기의 비극이 21세기에도 반복되고 있는 러시아. 그 비극의 대상이 북한 젊은이들로 옮겨간 형국이다. 2025년 새해가 밝았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의 포연이 하루바삐 걷히고, 끌려간 북한 군인들이 고향으로 돌아가 부모형제와 재회할 수 있기를 진심으로 빈다. /홍성식(기획특집부장)

2025-01-01

인체를 교정하는 허리다리 운동법

박용호 포항참사랑송광한의원장 인간이 똑바로 섰을 때 골반은 전방 회전하고 고관절은 내회전된다. 바로 서 있을 때 몸을 펴면 대부분 이런 자세가 만들어진다. 네발로 걷는 짐승과 달리 인간은 척추가 수직으로 펼쳐져 있다. 여기에 무거운 머리까지 위에 달려 있어 수직 힘을 받는 척추가 안정적인 모습을 취하려면 목은 C자, 등은 역 C자, 허리는 C자 형태로 되어야 한다. 척추가 스프링 같은 모양으로 약간씩 구부러져야 탄력적으로 중력의 힘을 무리 없이 받을 수 있다. 근골격계 문제로 오는 대부분의 환자는 위에서 말한 정상적인 몸의 구조와 완전히 반대의 모습을 하고 내원한다. 허리는 역 C자 형태로 굽어 굴곡이 사라지고 골반은 후방 회전하면서 고관절은 외회전된다. 허리가 아파 어기적거리며 팔자걸음으로 걷는 모습을 상상하면 된다. 이런 자세가 만들어지면 디스크가 받는 압력이 한쪽으로 심해지고 천장관절을 결합하는 인대에 무리가 가게 되고 자연스럽게 고관절과 무릎, 발목까지 문제가 생긴다. 이런 불편한 자세를 교정하지 않으면 허리나 골반, 고관절의 통증이 생기다가 어느 순간 급성 통증으로 발전한다. 이를 방치해 시간이 흐르면 만성 통증으로 발전한다. 급성 통증일 때 빨리 치료를 하는 것이 중요하고 통증이 반복해서 발생하면 자세에 문제가 있는 것이다. 요추, 장골, 고관절 중 어디에 문제가 있는지, 왜 문제가 있는지 파악해야 하고 치료가 끝났다면 자세를 바로잡는 운동을 해야 한다. 여기서 제시하는 훈련과 운동은 힘들지 않으니 시간이 되면 TV를 보면서 꾸준히 반복해 주면 좋은 결과를 볼 수 있다. 발과 무릎을 붙인 상태에서 엉덩이를 살짝 뒤로 뺀다. 양손은 양 옆구리나 장골에 손을 올리고 허리를 편다. 변형된 스쾃 자세라고 보면 되는데 발과 무릎을 붙이면 하체의 외전이 있든 내전이 있든 자연스레 돌아간 하체가 정상 범위로 돌아온다. 엉덩이를 뺀 후 허리를 펴면 굽은 허리가 자연스레 C자형으로 펴지고 대퇴사두근과 허리 기립근 주변 근육들에 힘이 들어간다. 5~10초간 힘이 들면 몸을 다 펴서 쉬었다가 다시 반복해 주면 된다. 주의해야 할 것은 스쾃과 다르게 엉덩이를 뒤로 많이 빼야 하고 무릎이 앞으로 나오면 안 된다. 이 자세만 꾸준히 반복해 주면 처음에 말한 하체의 무너진 구조가 바로잡힙니다. 생각보다 어렵지 않다. 바로 누워 우측 고관절을 굽힌 후 좌측 손으로 우측 무릎을 잡는다. 좌측 손으로 무릎을 당기면 자연스레 우측 허리 쪽이 좌측으로 넘어가면서 스트레칭이 된다. 이때 상체는 바닥에 붙여놓으면 된다. 추나를 할 때 허리와 상체를 반대로 돌리면서 스트레칭을 시켜주는 룸바 롤과 같은 자세다. 이 자세를 좌우 반복해 주면 된다. 또 누운 상태에서 한쪽 다리를 굽힌 후 양손으로 허벅지 후면을 잡고 깍지를 낀다. 깍지를 풀지 않은 상태에서 다리를 쭉 펴면 대둔근, 햄스트링, 종아리가 당긴다. 단축된 햄스트링이 풀리면 자연스레 허리 근육이 풀리게 되고 허리가 튼튼해진다. 양쪽을 반복해서 하면 되고 시간이 되면 아침저녁으로 10번씩 한다. 오랜 시간 꾸준히 하면 근력도 좋아지고 통증이 많이 줄어든다.

2025-01-01

영화 ‘퍼펙트 데이즈’를 보다

이정옥위덕대 명예교수 도쿄 변두리의 허름한 이층집. 이른 새벽 노인의 빗질 소리에 깬 주인공은 어슴프레 푸른 창문을 보고 벌떡 일어난다. 이부자리를 개고 양치와 면도를 한 뒤 보랏빛 조명의 테라스에서 키우는 분재에 정성스레 물을 준다. 의식처럼 작업복으로 갈아입고 현관 입구에 가지런히 둔 자동차 열쇠와 카메라를 챙기고, 동전을 몇 개 집어 문을 나서면서 바로 쳐다보는 하늘에 엷은 미소를 짓는다. 집 앞 자판기에서 캔커피를 하나 사서 자동차에 올라 카세트에 올드팝 테이프를 넣고 출근길에 오른다. 중년의 남자, 그는 도쿄 공중화장실 청소부다. 과묵한 성격의 주인공은 화장실 청소부란 직분에 더없이 충실하다. 수많은 화장실을 돌아다니며 정성껏 청소하고 점심땐 공원이나 신사의 벤치에서 샌드위치와 우유로 점심을 때우면서 나뭇가지 사이로 비치는 햇살을 카메라로 촬영한다. 퇴근 후에는 자전거를 타고 목욕탕에서 하루의 피로를 빡빡 씻고, 단골 식당에서 술 한 잔을 곁들여 저녁을 먹고 돌아와 책을 읽다 잠든다. 일주일에 하루는 코인세탁소에서 청소복을 빨고, 헌책방에 들러 책을 사거나, 사진관에 가서 필름을 맡기고, 인화된 사진을 찾고, 또 하나의 필름을 사서 카메라에 넣는다. 철없는 동료청소부와 그의 애인, 화장실에서 만난 아이나 외국인 여성이나 취객, 단골식당 주인이나 또 다른 단골술집의 여사장, 단골 헌책방 여주인, 점심때 공원의 옆 벤치에 앉아 역시 샌드위치를 먹는 여성은 모두 그의 일상의 오브제이며, 그의 하루 루틴은 완벽하다 못해 단단하다. 영화는 그의 이런 일상을 연속적으로 보여준다. 어느날 퇴근하니 외삼촌을 찾아온 조카가 계단에 앉아있다. 이제 무슨 사건이 나나보다. 드디어 그의 일상에 균열이 생기고 변화가 생기나 보다 기대했지만 아니었다. 조카에게 침실을 내주고 좁은 창고방에서 자는 것 외엔 바뀌는 게 없다. 오히려 조카가 그의 일상에 스며든다. 함께 화장실 청소에 나선 조카는 그와 같이 공원 벤치에 앉아 샌드위치를 먹고 카메라로 사진을 찍고, 목욕탕에도 같이 가고, 삼촌의 책을 읽으며 잠든다. 여동생이 조카를 데려가자 끝. 사춘기 소녀 조카의 가출도 그의 일상을 흔들지 못했다. 단 하루 동료청소부가 일을 관두자 두 배 늘어난 일로 피곤한 하루, 컵라면으로 저녁을 때우지만 신입이 오자 그의 루틴은 다시 탄성을 찾는다. 이정희 교수가 꼭 보라고 추천한 영화 ‘퍼펙트 데이즈’는 그저 사건 하나 없이 반복되는 주인공의 일상을 보여준다. 다큐멘터리보다 더 심심한 스토리지만 오히려 울림이 크다. 무겁고 험하고 슬픈 사건들로 넘쳐나는 뉴스를 외면한 지 달포가 다 돼간다. TV에서 뉴스를 피하려니 자연 영화를 찾게 되었고, 지난여름부터 별렀던 영화를 하필 지금 봤다. 주인공의 심심하고 충실한 나날은 그가 정성껏 닦아놓은 화장실의 거울만큼 빛나고 변기만큼 정갈하다. 그의 흑백 사진 속 나뭇잎 같은 무채색의 일상이 얼마나 귀하고 값진가를 깨닫게 된다. 비행기 추락 속보가 일요일 아침을 삼켜버린 후 TV에는 슬픔이 넘치니 새해 복 많이 받으란 인사가 송구하다. 소소하되 행복하고 충만하되 무탈한 일상은 영화 속에서만 가능한 것인가.

2025-01-01

성찰의 정치로 희망의 새해를

변창구 대구가톨릭대 명예교수·정치학 한 해를 돌아보는 마지막 날이다. 성찰과 반성은 발전의 원천이다. 맹자(孟子)는 정치의 기본을 ‘자반(自反)’, 즉 ‘스스로를 성찰하는 것’이라 했고, 마하트마 간디(Mahatma Gandhi)는 ‘성찰만이 미래를 바꿀 수 있다’고 하면서 ‘성찰이 곧 희망’이라고 했다. ‘절망의 정치’를 ‘희망의 정치’로 바꾸려면 반드시 ‘비판적 자기성찰’이 있어야하는 까닭이다. 정치인들은 무엇을 성찰해야 하는가?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정치인의 소명을 망각하고 권력에 혈안이 된 자신을 돌아보는 것이다. ‘권력이라는 마약’에 중독되면 초심을 잃고 괴물이 된다. 작은 권력보다는 큰 권력, 초선의원보다는 다선의원이 ‘권력의 노예’로 전락할 위험성이 훨씬 더 크다. 정치인들의 자가당착·표리부동·내로남불 행태는 권력욕 때문에 이성을 잃고 괴물이 되었다는 반증이다. 먼저 여당의 정치행태를 보자. “비상계엄은 중대한 잘못”이라고 지적한 권성동 원내대표가 탄핵에는 ‘부결이 당론’이라고 했다. 자가당착이다. ‘친윤 좌장’이라는 사적 관계가 공적 판단을 그르친 것이다. 게다가 친윤 의원들이 공격하는 ‘배신자’는 누구인가? 민의에 역행하여 계엄을 선포한 대통령인가, 아니면 그것을 막은 국회의원들인가? 국민 70%가 요구하는 탄핵에 반대한 의원이 배신자인가, 아니면 찬성한 의원이 배신자인가? 누가 누구를 배신했다는 말인가? 동료를 배신자로 낙인찍기 전에 먼저 자신이 진짜 배신자가 아닌지 성찰해야 한다. ‘권력만 쫓는 불나방’은 결국 불에 타서 죽지만, 민의를 받드는 정치인은 결코 죽지 않는다. 야당의 정치행태는 또한 어떤가? 계엄과 탄핵의 책임은 물론 대통령에게 있지만, 그 원인을 제공한 것은 야당의 입법권력 폭주였다. 이재명 사건의 담당 판·검사들을 겁박·탄핵하고, 대통령 권한대행인 한덕수 총리 탄핵까지 서슴지 않으니 민주당의 정치적 의도를 의심할 수밖에 없다. 게다가 법원과 헌재의 독립성을 훼손하는 교활한 ‘법꾸라지(법+미꾸라지)’행태는 또 어떤가? 이재명에 대한 재판은 수단 방법 가리지 않고 지연시키면서 윤석열 탄핵심판은 온갖 정치적 압력으로 판결을 독촉하고 있다. 이러한 이중적 정치행태는 전형적 내로남불이자 자기모순이 아닌가? 지금 민주당에게 가장 시급한 것은 공정과 정의에 대한 자기성찰이다. 이처럼 독선과 아집의 ‘극단적 양극화 정치’는 민주주의를 죽이는 망국의 길이다. 성찰을 모르는 정치인들이 대권을 잡는다고 한들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사람만 바뀔 뿐, 정치는 전혀 바뀌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공멸의 정치’에서는 정치적 이해득실에 따른 권모술수가 지배하지만, 성찰을 통한 ‘상생의 정치’에서는 모두가 함께하는 공동체적 노력이 이루어질 수 있다. ‘성찰 없는 권력은 괴물’이기 때문에 정치인은 권력을 탐하기 전에 ‘먼저 인간이 되어야’ 한다. 권력만 쫓아다니는 ‘불나방 정치’는 저물어가는 저 석양에 묻어버리고, 새해에는 ‘성찰의 정치’로 국민에게 희망을 줄 수 있기를 바란다.

2024-12-30

슬프지 않은 죽음이야 없겠지만…

홍성식 (기획특집부장) 살 부비고 살며 일생 눈물과 웃음을 함께해 온 식구는 부정할 수 없는 공동의 운명체다. 식구 가운데 하나가 영원히 사라진다는 건 인간에게 뼈가 저리는 고통과 상실감을 준다. 그래서다. 부모형제가 죽은 상가(喪家)에 가보면 여자들은 호곡하고, 남자들은 소리 없이 운다. 동서와 고금이 다를 바 없다. 비록 그 죽음이 예견되고 준비된 것이라 할지라도 아버지와 어머니, 형과 누이를 잃는다는 건 견디기 힘든 아픔이다. 그런데, 식구의 죽음이 전혀 예상치 못한 곳에서 난데없이 닥친다면 그걸 받아들여야 하는 남아있는 자들의 슬픔은 얼마나 클까? 지난 29일 제주항공 비행기가 무안공항에서 추락했다. 탑승자 중 생존한 사람은 겨우 2명. 179명의 아까운 목숨이 충돌에 의한 충격과 화마(火魔)에 휩싸여 사라졌다.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 불의의 사고였다. 현장은 참혹했다. 참사가 발생한 무안공항에 모여든 탑승자의 식구들은 차가운 시신으로 변한 어머니와 딸, 아버지와 아들, 손자와 손녀, 사위와 며느리를 마주해야 했을 터. 유족들의 놀라움과 서러움은 통곡과 혼절로 이어졌다. 희생자 중엔 겨우 세 살배기 아기와 대학입시를 끝낸 10대 후반 학생들도 있었다. 아들과 며느리, 손자까지를 한꺼번에 잃은 한 여성은 끝내 넋을 잃었다고 한다. 자식을 앞세운 참척(慘慽)의 아픔을 누가 어떤 방식으로 위로할 수 있을까. 평생 트라우마에 시달릴 유족들 앞에선 어떤 말도 하기가 어렵다. 그저 이번 사고로 숨진 이들의 명복을 빌고, 유사한 상황이 재발하지 않도록 철저한 사후 조치가 있기를 바랄 뿐. /홍성식(기획특집부장)

2024-12-30

방언이 유용하게 활용되기를 바란다

이상규 경북대 명예교수 전 국립국어원장 ‘詩와 方言 이야기’를 통해서 1920년대와 1940년대 그리고 현대의 시와 소설이 담아내는 언어들이 생물의 종 다양성이 중요하듯이 한국어라는 언어를 구성하는 다양한 지역 방언의 중요성을 새삼 깨닫는 기회였기를 희망해왔다. 문학과 언어에 대한 본질이 지니고 있던 기본적인 시각이 사대에 따라 바뀔 수도 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근본적으로 세상과 불화할 목적으로 문학 창작을 하는 작가들은 없겠지만 극한적 위기의 시대를 만나면 평범했던 얼굴을 했던 악인들이 나타나고 거칠고 앙칼진 목소리도 나타난다. 좀 더 관대해지고 싶지만 그렇지 못한 토착의 목소리를 동원하듯 민낯의 얼굴을 한 살아 있는 방언이 현실적 소통 세계로 더 활발하게 걸어 나온다면 우리들의 모국어는 훨씬 다양해지고 풍족해질 수 있을 것이다. 자연환경과 긴밀하게 접촉하면서 발전해 온 토착 언어 속에는 그 지역의 자연환경에 대한 상세한 지식 정보가 담겨 있다. 이 토착 지식정보가 어떤 식으로든 우리 모두가 의존하는 자원을 관리하는데 유용한 통찰력을 줄 수 있다. 생약 의약품의 4분의 1이 세계의 열대 우림에서 생산된다. 태평양 연안의 주목 나무껍질을 이용하여 난소암 치료제인 택솔을 생산할 수 있다. 과학 발전을 위한 다음 단계의 정보가 오지의 삼림 속에 있는 어느 이름 없는 토착 언어에 담겨 있을지도 모른다. 북극 이누이트족은 얼음과 눈을 세상에서 가장 다양한 이름으로 불러오고 있다. 에반 티 프리처드가 쓰고 강자모가 옮긴‘시계가 없는 나라(No Word for Time)’(2006)에 따르면 미국 원주민 언어인 미크맥어에는 가을 나무 사이로 불어오는 바람 소리로 나무의 이름을 붙였다고 한다. 해양 생물학자 R. E. 요하네스가 1894년 만난 팔라우 어부는 컴퓨터와 관련된 어휘는 단 하나도 알지 못하지만 3백 가지 이상의 물고기의 이름은 기억하고 있었다. 입에서 입으로 전해오는 독특한 문화적 요소들이 언어의 절멸과 함께 사라질 수 있다. 언어 다양성과 생물 다양성이 상실되는 과정 간에는 비슷한 점이 매우 많다. 과거에는 생물 다양성의 상실은 인간의 개입 없이 진행되었으나 최근에는 인간이 환경을 바꾸어 놓은 탓에 유례없는 대규모의 멸종 사태가 벌어지고 있다. 소멸해가는 토착 언어 속에도 새롭게 찾아내어 유용하게 활용할 자원이 엄청나게 숨어 있다는 말이다. 언어의 붕괴 현상도 전 세계적 생태계의 붕괴 현상의 일부로 이해할 수 있다. 인위적인 언어 정책이 언어의 절멸을 더욱 가속시키는 요인이 되고 있다. 15세기 유럽의 해외 진출, 18세기 산업혁명, 19세기 도시화된 국가, 20세기 과학 혁명과 같은 인류 역사의 대변혁이 환경 변화와 함께 인간의 삶의 방식을 획일적으로 바꾸어 놓았다. 언어 절멸의 문제가 중요한 주제로 받아들여지지 않은 이유는 언어가 많이 있으면 의사소통뿐만 아니라 경제 발전이나 현대화에 장애가 된다는 잘못된 생각 때문이다. 인도가 다중 언어로 인해 분열되었고 영어권은 단일 언어여서 단합을 이루었다는 생각은 착각이다. 공통 언어를 사용하고 있어도 정치적 단합이나 통합을 이루지 못한 북아일랜드나 소말리아, 구소련 공화국의 사례도 있지 않은가. 예루살렘의 거리 표지판은 다중 언어로 되어 있는데 정치적 상황에 따라 영어, 아랍어, 히브리어가 위아래의 순서가 달리 배치되는 매우 흥미로운 현상을 보인다. 1919년부터 1948년 사이 팔레스타인이 영국 통치 하에 있을 때에는‘영어-아랍어-히브리어’의 순서였지만 요르단 사람이 예루살렘을 점령했을 때에는‘아랍어-영어-히브리어’의 순으로, 1967년 이스라엘이 예루살렘을 탈환했을 때에는‘히브리어-영어-아랍어’의 순위로 재배열되었다. 이처럼 언어는 전 세계에 걸쳐 정치적 투쟁의 과정에서 핵심적 역할을 한다. 언어와 방언 역시 정치나 문화적 힘에 따라 우열의 순위가 바뀔 수도 있다. 문학에 나타나는 방언의 중요성에 대한 칼럼 연재를 이제 마무리하려고 한다. 언어의 변종은 생태적 경쟁의 상태에서 때로는 충돌하기도 하지만 때로는 예루살렘의 거리 표지판처럼 상생적인 힘을 갖기도 한다. 문학 언어로서의 방언의 소중함에 대한 성찰을 통해 방언 사용이 지역 문화와 관광에 효율적으로 활용될 수 있도록 확장되기를 바란다. 방언을 지역사회의 각종 안내간판으로 적극 활용할 수 있는 지역사회의 인식이 확대되기를 바란다.

2024-12-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