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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ㆍ특집

판이한 시절을 살아온 두 세대의 눈으로 본 ‘퓨리오사’

영화란 1만 명이 본다면 1만 개의 해석과 감상이 나올 수 있는 예술 장르다. 각자가 가진 세계관과 처한 입장, 정치·경제·사회적 문제를 대하는 태도에 따라 관객마다 다른 감상문을 남길 수 있다는 이야기. 그렇다면, 영화 해석과 감상에 세대 차이도 존재할까? 이 궁금증을 해소하고자 동일한 영화를 선택해 서로 다른 지향과 목표를 가지고 판이한 시절을 살아온 두 세대가 리뷰를 써보기로 했다. X세대인 본지 홍성식(1971년생) 특집부장과 MZ세대인 성지영(2002년생) 인턴기자가 이 흥미로운 실험에 참여했다. 리뷰 대상으로 지목된 영화는 ‘퓨리오사: 매드 맥스 사가’다. / 편집자 주 X세대의 눈“영화란 답답하고 변화 없는 일상에서 잠시 벗어나 신나는 꿈을 꾸는 순간”이라 말하는 이들에겐 이 영화와의 만남이 더없이 즐거운 시간이었을 게 분명하다.골라 뽑은 미남·미녀 주연배우의 흠 잡을 것없는 연기에 전작(前作)에서도 이미 증명된 조지 밀러 감독의 스릴감 넘치는 연출, 여기에 박진감 가득한 자동차 추격신과 사실적인 전투신 등 할리우드 스타일의 다양한 흥미 유발 요소들까지.최근 개봉해 흥행 가도를 거침없이 달려가는 영화 ‘퓨리오사: 매드맥스 사가’ 이야기다. ‘대중예술로서의 영화’ ‘산업으로서의 영화’에 포커스를 맞출 것 같으면 이 작품은 비판의 여지를 거의 주지 않는다.일단 시원시원하고 재밌다. 음악과 미술 등 각종 예술 장르가 유기적으로 결합해 최고의 상업성을 갖춘 매력적인 상품으로 탄생했다는 것도 부정할 수 없는 사실. 게다가 영화의 스토리는 ‘구조’라는 단어를 사용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간단하다.평화와 안정을 지향하는 작은 공동체에서 살던 여자아이가 악당에게 엄마를 잃는다. 소녀의 불구대천(不俱戴天) 원수가 된 사람은 폐허로 변한 세상에서 에너지의 독점을 통해 인간을 지배하려는 독특한 캐릭터의 악당. 소녀는 지난하고 힘겨운 과정을 거쳐 악당의 숨통을 끊는 것으로 복수에 성공한다.2시간이 훌쩍 넘는 꽤 긴 영화를 단 160자로 요약할 수 있다는 건 ‘퓨리오사: 매드맥스 사가’는 관람 시간 내내 고민할 게 하나도 없는 영화라는 뜻이 아닐까?‘재밌는 상업영화=철학이 부재한 유치한 작품’이란 등식은 독선적이고 낡아 보인다. 그렇다고 이 등식이 무용할까?재미에 초점을 맞추고 영화를 선택하는 관객이 있다면, “영화란 한가한 인간들의 시간 때우기용 팝콘이 아닌 변혁의 수단”이라 말하는 관객도 분명 존재한다.사회 진화와 인간의 성장 과정에서 영화가 미치는 힘을 믿는 이들에겐 ‘퓨리오사: 매드맥스 사가’를 보고 있는 시간이 지겹고 무료했을 터.왜냐? 영화의 핵심이자 키워드라 할 수 있는 퓨리오사가 갖은 모욕과 고통을 견디며 아이에서 성인으로 성장하는 과정엔 인간적 성찰과 복합적 고뇌가 빠져 있다.그저 “내 엄마를 죽인 원수를 기필코 갚고야 말겠다”는 20세기식 단순한 절치부심(切齒腐心)만으로 세련된 21세기 영화팬들에게 수긍의 고개 끄덕임을 얻어낼 수 있을까?대부분의 인간은 영화 속 퓨리오사처럼 그렇게 단순한 존재가 아니다. 행동의 저변에 그 행동을 추동하는 수십, 수백 가지의 이유를 가지는 게 보편의 인간. 복수심 하나만으로 평생을 사는 사람은 극히 드물거나 아예 없다.‘퓨리오사: 매드맥스 사가’의 또 다른 주인공이라 할 악당 디멘투스의 캐릭터 역시 단선적이고 맹목적으로 느껴진다. ‘좋은 영화’의 기본이라 할 인물의 캐릭터 형성에 실패한 것이다. 이는 영화의 핍진성을 떨어뜨리는 치명적인 결점이다.‘문명’이라 부를만한 것들은 모조리 사라지고, 모래바람 부는 황량한 땅에 합리적이지 못한 극단의 이데올로기를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들. 그들 사이에서 벌어지는 갈등과 반목에 카메라를 들이댄 영화 ‘퓨리오사: 매드맥스 사가’.극장에 들어서기 전엔 우리의 기대와는 달리 디스토피아가 돼버린 미래와 그런 세상을 살아가야 하는 인간들에 관한 철학적 성찰이 아주 조금은 보일 것이라 기대했다. 그러나, 기대는 기대만으로 끝났다. 매번 속으면서도 할리우드의 영화 홍보 방식에 또 속았다는 느낌. 영화를 본 후 입맛이 씁쓸했다. MZ세대의 눈액션 영화를 좋아하지 않는다. 극장에 앉은 148분 중 120분 이상을 누군가를 찌르고 협박하는 영상물을 왜 봐야 하는지 이해하기 어렵다. ‘퓨리오사: 매드맥스 사가’ 포스터를 본 순간부터 영화관에 들어가는 순간까지 어깨는 움츠린 채로, 눈은 반쯤 감은 채로 영화를 봤다.‘퓨리오사: 매드맥스 사가’는 2015년에 개봉된 ‘매드맥스: 분노의 도로’의 이전 이야기를 다루는 작품. 퓨리오사는 ‘시타델’의 사령관으로 황무지가 된 세상에서 물을 차지하고 있는 임모탄의 충실한 부하다. 최근 공개된 ‘퓨리오사: 매드맥스 사가’에서는 그녀가 어떻게 시타델이 들어오게 되었고, 왜 갑자기 임모탄을 배신하게 되었는지에 대한 이야기가 담겼다.영화를 보면서 퓨리오사의 MBTI가 ESTP임을 확신했다. 그 이유는 기자라면 절대 하지 않았을 선택들을 너무 많이 했기 때문. 기자는 ENFJ로 퓨리오사와 정반대되는 사람이다. 퓨리오사는 모험심이 넘치다 못해 지나치고, 의리에 휘둘리는 인간이라 도망칠 수 있는 상황에도 다시 위험 속으로 뛰어든다. 물론 그녀의 극단적인 성격들로 인해 148분이라는 긴 러닝타임이 짧게 느껴지긴 하지만.퓨리오사는 어머니를 죽이고 시타델로 자신을 팔아버린 디멘투스를 죽이고, 고향인 ‘풍요의 땅’으로 돌아가기 위해 시타델로부터 도망치려 한다. 원했던 결과를 이루기 위해선 시타델의 상위 계층에 속해야 했다. 그랬기에 퓨리오사가 임모탄의 충실한 사령관인 척했던 것.영화에서 가장 인상 깊은 장면은 퓨리오사가 디멘투스에 머리에 총을 겨눈 채 나누는 대화다. 디멘투스 자신을 죽이려는 퓨리오사를 향해 “우리는 이미 죽은 자들이야”라고 말한다. 이 말은 즉 자신이 가지고 있는 생명 그 자체의 소중함은 잃은 채 죽음에서 오는 자극만을 쫓고 있는 본인과 퓨리오사는 이미 정식적으론 죽은 자들이며, 퓨리오사가 자신을 죽이더라도 허망할 것이라는 것을 의미하는 듯하다.디멘투스의 말엔 어느 정도 일리가 있다. ‘이에는 이 눈에는 눈’ 식의 복수는 결국 복수를 하고자 하는 상대와 나를 동일한 존재로 만든다. 그럼에도 복수까지의 여정은 늘 짜릿하기에 퓨리오사는 복수를 멈출 수 없었던 게 아닐지.일부 관객은 디멘투스가 죽지도 살지도 못하는 입장에 처한 마지막 장면을 보면서 ‘사이다’를 느꼈는지 모르겠지만 기자는 이 장면이 찜찜했다. 복수가 주는 짧은 짜릿함을 느끼기 위해 복수를 하고자 하는 대상과 같은 존재가 되는 건 적어도 기자에겐 어리석은 일처럼 보인 탓이다. ‘매드맥스’ 시리즈는 황무지가 된 세상에서 물, 무기, 기름을 차지한 세 집단들의 생존기를 담은 영화다. 그런데, 인간이 물, 무기, 기름이라는 ‘자연물’ 을 완전히 소유 하고 이를 기반으로 권력을 휘두르는 것이 당연한 걸까?감독은 자연물을 기괴한 형태로 소유하고 있는 세 집단을 등장시킴으로써 ‘인간이 궁극적으로 완전히 소유할 수 있는 것이 존재하는가?’라는 무겁고 철학적인 질문을 대중들에게 던지고 싶었던 것 같다.자연에서 오는 것들 중 우리가 완전히 소유 할 수 있는 건 없다. 잠시 그걸 가졌다고 착각할 뿐, 결국 그 모든 것들은 자연에게 돌려줘야 한다.퓨리오사도 디멘투스에 대한 복수는 ‘소유’했지만. 그의 생명까지 온전히 ‘소유’할 수는 없었다. 과연 퓨리오사에겐 디멘투스의 생명의 빼앗는 방식의 복수만이 유일했던 것일까? ‘퓨리오사: 매드맥스 사가’는 이런 의문을 부르는 영화다./홍성식·성지영 인턴기자

2024-06-04

백두대간 초목 푸르게 푸르게… “산림은 가꾸고 지키는 것”

기후 온난화로 인한 기후 재앙이 지구촌을 뒤덮고 있다. 대형 산불과 극강의 호우로 인한 각종 재난으로 고통받고 있다. 급속한 산업화에 따른 과도한 탄소배출과 무분별한 도시개발 등으로 인한 자연생태계 파괴에서 비롯되고 있다. 기후 위기 극복은 우리의 소중한 산림자원을 지키고 가꾸는데서 출발해야 한다는 진단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산림자원은 대형 산불과 집중호우로 인한 산사태, 창궐하는 재선충병 등으로 파괴되고 있다. 이에 대한 예방대책은 물론 지속적인 숲가꾸기 사업을 통해 산림생태계를 보존하는 일이 무엇보다 시급하다. 백두대간을 중심으로 도시전체가 산으로 둘러싸인 문경시의 산림행정은 기후 위기의 최전선에 서있다. □ 백두대간 산림보호백두대간은 백두산에서 시작해 금강산, 설악산, 태백산, 소백산을 거쳐 지리산으로 이어지는 큰 산줄기를 일컫는다.문경시에는 황장산, 조령산, 희양산, 대야산이 백두대간에 속해있다. 백두대간 전체 길이 1400㎞ 중 110㎞에 이른다. 황장산과 조령산은 대한민국 100대 명산에 포함되어 있다.백두대간은 대한민국 국토의 중심 축이며, 수려한 경관을 간직한 생태계의 보고로 우리나라의 자연문화유산이기도 하다. 우리나라는 지난 2005년 백두대간 보호에 관한 법률을 제정해 법률로서 보호하고 있다.올해 4월 산림청은 경북도, 문경시와 함께 지구의 날의 기념하기 위해 백두대간 하늘재에서 백두대간사랑운동 캠페인을 개최했다. 문경시는 이처럼 중요한 백두대간 산림생태계를 지키고 관리하고 있다.□ 산림보호의 최대적 산불우리는 최근 5년 내 울진과 포항, 안동을 비롯한 경북전역에 대형산불이 잇따라 엄청난 산림이 훼손됐다. 기후변화로 산불은 점점 더 대형화되고 있고, 인적, 물적 피해도 예상을 뛰어넘을 만큼 막대하다.산불예방을 위해 봄철 2월 1일부터 5월 15일까지를 산불조심 기간으로 정해 산불대책 본부를 운영한다. 대책본부는 산불예방활동과 산불조기 발견을 위해 읍면동별 산불감시원을 배치하여 감시활동을 강화하고, 산불발생 시 진화를 위해 산불전문예방진화대 대책 본부하에 운영하고 있다.문경시는 산불발생 시 초동진화를 위해 3400ℓ급 헬기를 상주시와 공동 임차해 운영하고 있다.가을철 산불은 10월 1일부터 12월 15일까지 산불조심 기간으로 정해 운영한다. 봄철에 비해 산불 발생빈도나 피해규모 면에서 상대적으로 양호하지만 산불은 인명피해와 막대한 재산피해를 유발하는 만큼 예방활동과 진화에 있어 봄철과 동일하게 대책본부를 운영한다. 산불진화진화는 필수 전문인력인 산불전문예방진화대가 상당부분을 담당하고 있으나, 진화조직은 비정규직 약 40명으로 봄철 4개월, 가을철 2개월간 운영된다. 전문성 향상 측면에서 한계가 있어 이에 대한 중앙부처의 대책이 필요한 실정이다. □ 대형산사태 예방여름철 장마와 극한강우로 인한 산사태가 재난분야 아킬레스건으로 작용한다. 지난해 문경시와 예천군, 영주시, 봉화군은 기록적 폭우로 인해 많은 엄청난 피해를 입었고, 아직도 그때의 악몽에 시달리고 있다.문경시도 집중호우로 인해 2명의 안타까운 인명피해가 났고, 농경지 유실, 도로 파손, 산사태 등으로 신음하고 있다.산사태는 예측이 어려운데다 순식간에 산림 내 토석류가 흘러내려 큰 피해가 발생한다.산사태 예방을 위해 사방댐 건설과 계류보전사업을 통해 유속의 흐름을 원활히 하고, 계곡으로부터 유출되는 토석류를 막아주는 사방사업 확대 추진이 불가피한 상황이다.무엇보다 산사태로 인한 인명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서는 집중호우 시 안전한 곳으로 대피하는 것이다.과거 집중호우 시 대피에 대한 인식이 부족해 많은 인명피해가 발생했던 사례를 거울삼아 대피체계를 구축하고 주민들의 인식이 강화되고 대피가 일상화되어야 할 것이다. 문경시는 산사태 발생에 대비해 363곳을 산사태 취약지역으로 지정해 특별 관리하고 있다. 산사태 취약지역은 사방댐 건설 등 사방사업을 우선 추진하게 되고 주기적으로 모니터링을 실시하고 있으며 매년 취약지역을 확대하고 있다.문경시는 올해 집중호우에 대비하가 위해 마을 단위의 대피소 안전여부를 전문기관에 용역을 의뢰해 부적정 판정을 받은 대피소를 보다 안전한 곳으로 재지정할 계획이다.지방은 고령화로 인해 거소주민의 상당수가 연로하거나 몸이 불편한 분들이 많아 대피소가 있다 하더라도 신속한 대피에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는 게 현실이다.문경시는 이에 따라 소방서와 경찰서와 합동으로 부상자나 몸이 불편한 주민 대피 훈련을 상시적으로 하고 있다.□ 재선충병 방제우리나라 산림은 소나무가 주를 이루고 있다. 1998년 우리나라에 소나무의 위기가 찾아왔다. 1905년 일본에서 최초로 발생한 소나무재선충병이 1998년 부산에서 발생해 현재 전국적으로 확산된 상황이다.정부는 2005년도 소나무재선충병방제특별법을 제정하여 본격적인 방제작업을 실시하고 있다. 소나무재선충병은 단기간에 급속히 나무를 고사시키는 시들음병으로 한 번 감염되면 치료 회복이 불가능하고 100% 고사해 흔히 소나무에이즈라고 불리기도 한다. 이처럼 소나무재선충병은 현재 치료방법이 없어 병에 걸린 나무를 제거해 추가 확산을 방지하는 방법을 사용하고 있다.지금은 지역에 맞는 방제방법을 택하고 있고, 항공방제, 약제방제, 천적활용 등 다양한 방제방법을 시도하고 있다.문경시 산림보호팀은 소나무재선충병 확산을 저지하기 위해 고사목 제거, 수간주사, 항공방제 등을 실시해 최상단 백두대간까지 확산 하는 것을 막기 위해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 숲을 가꾸는 산림행정산림보호팀의 특별한 업무 중 하나가 산림을 지키고 가꾸는 일이다. 문경시 산림녹지과는 산림경영팀, 산지관리팀, 산림보호팀, 녹지조경팀, 산림휴양팀으로 구성돼 산림행정을 펼치고 있다.산림경영팀은 숲가꾸기사업과 입목벌채허가, 백두대간주민지원사업 등 업무를 추진하고 있으며, 그중 주목할 업무는 백두대간주민지원사업이다.백두대간주민지원사업은 지리적으로 백두대간과 인접해 산림경영에 있어 상대적으로 불리한 지역(문경읍, 가은읍, 농암면, 동로면) 주민들을 대상으로 각종 보조 사업을 추진한다.산지관리팀은 산지의 이용적 측면에서 산지를 농업인 주택 및 창고 등 산지전용허가와 쇄골재용, 토목용, 건축용재 생산을 하기 위한 토석채취허가, 광물생산 관련시설 설치를 위한 산지일시사용허가 등의 업무를 추진하고 있다. 녹지조경팀은 유휴토지를 활용해 숲조성, 소공원조성, 가로수 조성 및 관리의 업무를 추진하고 있다. 산림보호팀은 산림 내 불법임산물채취, 불법산지전용, 불법입목벌채 등 산림 내 위법행위에 대해 조사와 수사를 거쳐 검찰청에 사건을 송치하는 업무를 한다. 산림휴양팀은 문경시 10대 중점추진 업무인 문경새재하늘길조성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올해 문경읍의 랜드마크인 봉명산 출렁다리를 준공해 문경을 찾는 많은 관광객들에게 볼거리 즐길거리를 제공하고 있다.신현국 문경시장은 “각종 재난에 대한 대비를 철저히 하여 안전한 문경시를 만들기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며, 특히 산불, 산사태 등 산림재난에 대해 유관기관과 면밀히 소통하고 철저한 준비를 통해 재난 피해를 최소화 하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강남진기자75kangnj@kbmaeil.com

2024-05-30

“고향을 찾아가는 일은 묻었던 옛 기억을 소환하는 일”

한 사람이 한 가지 일을 제대로 잘하기도 어려운 세상이다.그런데, 묵직한 중저음으로 노래하는 가수이자, 사람들의 가슴을 울리는 음악을 만드는 작곡가, 거기에 사진전시회를 열 정도의 카메라 촬영 실력을 갖췄고, 대학에서 한국 대중음악 역사를 학생들에게 가르쳤으며, 글까지 잘 쓰는 사람이 있다면 누구나 이런 질문을 던질 법하다.“그게 대체 누구야?”중언부언 하지 않고 바로 답한다.“이지상(58)이다.”1998년 첫 번째 음반 ‘사람이 사는 마을’을 필두로 몇 해 전엔 여섯 번째 음반 ‘나의 늙은 애인아’를 대중들에게 선보인 이지상은 노래와 작곡 활동 외에도 여행기 ‘스파시바, 시베리아’와 ‘여행자를 위한 에세이 북(北)’을 출간하며 음악 만들기와 글쓰기 2가지 측면 모두에서 발군의 실력을 보여 왔다. 바로 그 재능 승한 이지상이 또 한 권의 책을 자신의 프로필에 보탰다. 이름하여 ‘포천’(21세기북스 출간). ‘대한민국 도슨트-한국의 땅과 사람에 관한 이야기’라는 부제가 붙은 서적이다.경기도 포천시는 이지상의 고향. 이번 책에서 그는 포천의 산과 호수, 숲과 거리를 수십 번 거듭 살펴 걸으며, 제 고향의 진면목과 숨겨진 아름다움을 독자들에게 소개한다. 앞서 언급된 ‘도슨트(docent)’는 안내자 혹은, 길잡이로 해석이 가능한 단어다.책에 수록돼 포천시의 매력을 유감없이 보여주는 사진도 모두 이지상이 직접 촬영한 것이다. ‘팔방미인(八方美人)이 쓴 흥미로운 책’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고향에 대한 애정과 그리움은 경기도 사람과 대구·경북 사람이 다를 수 없다. 그래서다. 이지상에게 전화를 걸어 인터뷰를 부탁했다.“그럽시다.” 시원하고 흔쾌한 대답으로 시작된 기자와 이지상의 제법 길었던 대화. 아래 그걸 요약해 독자들께 전한다. ‘포천, 대한민국 도슨트-한국의 땅과 사람에 관한 이야기’ -포천은 당신의 고향이다. 그러나, 그것과 고향에 관한 책을 쓰는 건 다른 문제다. 집필의 이유는.△출판사로부터 집필 의뢰를 받았다. 대한민국의 곳곳을 책을 엮어 안내하는 ‘도슨트 시리즈’를 기획 중이었는데 ‘포천’편을 내가 쓰게 된 거다. 지역의 역사와 문학과 문화가 어우러지는 심도 깊은 인문 안내서 집필을 주문받았다. 책방을 꼭 넣어달라는 부탁이 인상적이었다.-읽어보니 취재를 위해 소요된 시간과 공력이 적지 않았을 듯하다. 지치고 힘들 때 에너지는 어디에서 얻었나.△계약서에 도장 찍고 출판까지 4년 정도 걸렸다. 첫 문장을 바로 시작하지 못했고 최초 6개월 정도의 사전 취재를 거친 후 취재와 집필을 반복하는 형식이었다. 고향을 찾아가는 일은 묻어 두었던 옛 기억을 소환하는 일이다. 찾아가는 동네마다 생각나는 이름이 있었다. 각색되지 않고 고스란히 내 머릿속에 저장돼 있던 오래된 풍경들은 더없이 좋았다. 집필 기간은 3년 정도였는데 지칠 일이 없었던 이유는 그때마다 충전되는 그리움이라는 양식이 있었기 때문인 듯하다.-포천은 당신이 ‘나의 하느님’이라 부르는 어머니가 살다가 돌아가신 곳이다. 거길 다녔으니 당연지사 어머니를 떠올렸을 텐데.△난 자연을 신으로 믿는 사람이다. 내가 익혀왔던 자연의 중심에는 언제나 어머니가 있었다. 모든 순간 내가 신께 나의 기도로 의지할 수 있었던 이유는 내가 믿는 신이 어머니의 모습이라고 생각해서다. 포천의 25곳을 선정하고 100여 번을 넘게 다니면서 그리움의 흔적을 적어내는 일은 거기서 어머니와 나눈 대화였다고 해도 무방하다. 아픈 다리로 절며 평생을 사신 어머니가 장터로 가신 길을 함께 다녔고, 생전의 어머니가 한 번도 다녀가지 못했던 포천의 명소도 함께 걸었다. ‘여기 참 좋다’라고 분명히 말씀하셨을 어머니의 육성을 환청으로나마 듣는 순간이었다. -출간 과정에서 행복했던 순간과 힘겨웠던 순간은.△어려웠던 일이라… 내가 원하는 장면을 보기 위해 새벽부터 서둘러야 하는 일이 많았다. 울미마을 연꽃이나 산정호수의 잔물결은 새벽안개가 있어야 했다. 또한 밤늦게 까지 머물러야 하는 시간도 있었다. 명성산 갈대밭의 우체통은 저녁 무렵이어야 했고, 한탄강 하늘다리위에는 꼭 별이 있어야 했으니까. 명성산에서 하산할 땐 위험한 순간도 있었다. 반면 행복한 기억도 많이 떠올렸다. 학창시절을 함께 보냈던 벗들의 이름을 기억할 때였다. 어느 동네를 가든 떠오르는 이름들이 있었고, 그 이름을 대면 동네 사람들은 마치 오래된 이웃처럼 반겨줬다. 그 중에는 벌써 세상을 등진 이름들도 있었다. 하지만, 안타까움과 회한조차 그리움으로 여겨지는 순간이었다.-책에는 포천의 명소가 여럿 등장한다. 그중 딱 한 곳만을 골라야 하는 사람에겐 어떤 곳을 추천하고 싶은지.△서점 ‘무아의 계절’이다. ‘이건 현실이지만 멋지군’이란 영화의 명대사를 고스란히 옮겨놓은 공간이다. 경영난에 언제 문을 닫을지도 모를 위태로운 공간이기도 했다. 미래의 불안을 책과 함께 이겨내려는 서점의 모든 것이 아름다웠다. ‘책이 나오기 전에 서점이 사라지면 어떡하지’란 걱정을 한 적도 있다. 다행히 공간을 옮겨 상가가 많은 곳에서 잘 운영되고 있다고 한다. 나와 같은 삶의 불안을 내재하고 있어 더 애정이 가는 공간이다. -본업이 가수다. 그럼에도 정확한 단어 선택과 유려한 문장의 조합이 썩 좋아 보였다. 문장 강화를 위해 특별한 노력을 했는지. 당신만의 글쓰기 노하우가 있는 건가.△대학에서 국문학과를 다녔지만 글 쓰는 것과는 무관한 학교 생활을 했다. 다만 노래를 만들고, 시대와 불화하는 삶을 살면서 주워들은 얘기가 많았던 것 같다. 굳이 노하우를 묻는다면 어떤 창작을 하건 오래 걸린다. 분량과 무관하게 글 한 편, 노래 한 곡 만드는데 보통 이틀이나 사나흘 밤을 샌다.-이번 책의 제목이며, 당신의 고향인 ‘포천’은 어떤 매력이 있는 곳인지.△잘나지는 못했지만 모나지 않은 사람들이 많이 사는 곳이 아닐까 싶다. 내가 누구라고 우쭐댈 필요도 없고, 또한 같은 이유로 비굴해질 필요도 없는 평범한 사람들의 도시다. -당신 존재의 2가지 측면 즉, 가수와 글을 쓰는 사람으로서 각각의 계획은.△다가올 가을에 7집 음반을 발매해야 한다. 기다리는 사람은 없어도 해야 할 일은 해야겠기에(웃음). 노래는 준비가 돼있다. 제목을 ‘천천히 순하고 뜨끈하게’로 해볼까 생각 중이다. 발매 후엔 당연히 콘서트도 열 계획이다. 또, 연말까지 순천 와온해변을 무대로 생의 가치를 재점검하고 새로운 삶을 기약하는 책을 써야 한다. 계약 기간을 훌쩍 넘겼는데 아직 시작을 못했다. 2년 동안 와온해변을 숱하게 다녔다. 지난해 9월엔 사진전도 열었다. 5년쯤 뒤 다시 준비할 사진전을 위해서도 열심히 발품을 팔아야 한다.-마지막으로 덧붙일 말이 있다면.△포천을 소개하는 책이지만, 포천을 매개로 한 ‘자기 고백서’로 읽어주시면 더 좋겠다. 나와 비슷한 삶을 살았거나, 비슷한 생각을 하거나, 비슷한 언어를 쓰는 사람들이 적지 않을 거라고 여긴다. 이 책을 통해 그들과 교감할 수 있다면 좋겠다. /홍성식기자 hss@kbmaeil.com

2024-05-28

영주에 생활·문화인프라 갖춘 청년들의 보금자리 들어선다

영주시에 지방소멸 위기에 대응할 지역활력타운이 들어선다. 2024년 지역활력타운 조성 공모사업에 선정됐기 때문이다.영주시는 최근 국가산단 최종 승인과 영주댐 준공에 따라 산업, 문화, 레저 등 다양한 부분에 성장 가능성을 높이고 있다.이는 영주시의 미래를 밝게 하는 청신호다. 지역활력타운은 행정안전부, 국토교통부, 문화체육관광부 등 8개 중앙부처가 합동으로 청년층·은퇴자 등의 지역 정착을 지원하는 사업으로 주거·문화·복지·일자리 등을 복합 지원해 살기 좋은 주거단지를 조성하는 사업이다.영주시는 최근 국가산단과 영주댐 준공에 따른 산업, 문화, 관광 레저 기반이 확충되면서 이를 뒷받침 할 정주여건 등 대도시 수준의 생활서비스 필요성에 대한 주민 요구가 높아지고 있다.이런 가운데 지역활력타운 선정은 영주시로서는 미래 성장 예측의 가능성을 높여주는 성과물이라 할 수 있다.지역활력타운 조성사업은 주거, 생활인프라, 생활서비스가 연계된 인구유입 활력 플랫폼을 구축, 영주의 새로운 생활거점을 조성해 지방소멸 위기에 대응하고 필수 생활 서비스를 통합적으로 지원하는 신거점으로 만들어 나가게 된다. □ 사업계획지역활력타운은 청년인구 유입 여건 조성과 지역 주민 활력 제고를 위해 주거, 생활인프라, 생활서비스가 연계된 인구유입 및 활력 플랫폼 조성에 중점을 두고 시행된다.2027년 첨단베어링 국가산업단지 조성 및 지역 대기업 SK스페셜티의 추가 투자로 일자리가 늘어나 유입 청년 근로자의 지역정착 유인에도 큰 역할을 할 전망이다.이 사업은 신도심 대비 인프라가 부족한 구도심 권역에 거점 인프라를 조성해 열악한 지역 정주여건을 개선, 대도시 수준의 삶의 질을 보장하게 된다.HIVE(벌집)처럼 북새통을 이루는 영주시 지역활력타운은 신규 산업단지 조성과 청년창업 특화프로젝트 운영으로 청년인구 유입과 정착 플랫폼을 구축하게 된다.생활SOC 재배치로 도심 균형발전 및 지역공동체 활성화와 구도심 활력을 위해 주거, 인프라, 서비스가 결합된 생활거점 공간으로 조성한다.지역활력타운 조성을 두고 시민들은 크게 반기고 있다.공모 사업 신청 전 시민들의 의견은 청년 및 신혼부부를 위한 주거공간 부족과 정주 불만족해소, 지역 유입 청년들을 위한 저렴하고 쾌적한 주거공간 확충의 필요성을 지적했다.이와 함께 영주형 주민 정주여건 개선과 서비스 부족, 신도심 중심의 도시 인프라, 국가산단 등 투자 기업에 의한 청년 유입과 이에 따른 주거공간 확충의 필요성을 들었다.이번 지역활력타운 사업이 확정되면서 지역민들의 의견 및 지적 사항이 해소되게 됐다. □ 추진 방향지역활력타운은 총사업비 693억원을 투입해 하망동 514번지 일원 4만3088㎡에 조성된다.주요사업 내용은 크게 3개 분야로 구분된다.주거부분은 청년·신혼부부를 위한 연립형 타운하우스 70세대 주거단지 조성과 생활인프라 부문은 복합커뮤니티센터에서 교육, 창업, 문화예술, 공동체 활성화 공간이 마련된다.실내스포츠복합시설에는 수영장, 다목적체육관, 건강증진센터, 체육특화 돌봄 공간 등으로 구성된다.생활서비스 부분은 주거, 인프라 시설과 연계 제공되는 특화 생활 서비스 공간으로 Hi Live는 새로운 주거와 정주공간으로 정착지원과 지역 융화, Hi Vive는 교육, 문화, 청년창업 등 교류의장, Hi Five는 체육특화 돌봄, 웰니스 건강증진 공간으로 조성된다.지역활력타운은 지역여건 고려 및 연계방안을 통한 인프라 구축, 지역 활성화를 도모하는데 역점을 둔다.특히 주민건강증진을 위한 의료서비스, 보육환경 만족도를 높여줄 영유아, 어린이 교육, 행정서비스 접근 편의 증진, 골목상권 회복을 위한 생필품 구매 및 로컬브랜딩 활성화, 편리한 금융서비스, 도서대여와 놀이방, 문화프로그램 운영, 아동, 노인, 장애인복지 통합 서비스, 교육환경 개선, 공원녹지 조성 등 주거 만족도를 높이게 된다.이뿐만 아니라 다양한 홍보 컨텐츠를 활용해 지역활력타운 홍보 및 유입대상자들의 관심을 유발하는 홍보계획을 수립해 추진한다.홍보활동은 하이브 홈페이지 제작 등 브랜드를 활용한 영주시 홍보와 지역활력타운 시설 상시 안내, 연간 월간 이벤트 등을 다양한 SNS를 통해 홍보하게 된다. 홍보는 영주시와 도슨트, 영주시관광협의회, 입주민협의체가 주체가 된다. □ 기대효과지역활력타운 사업의 기대 효과는 무엇보다 주민 만족도 제고 및 지역경제 파급 효과와 주민 생활여건 개선 부분이다.시는 주민 삶의 질 향상을 위한 가능성 부분에 대해 수요자 니즈에 맞춘 지역활력타운 조성으로 주민 생활여건을 향상시키는데 중점을 두고 있다. 이를 위해 실수요자의 의견을 고려 주거, 생활인프라, 생활서비스를 구성해 제공하고 구도심 지역을 지역활력타운 인프라 및 서비스 연계로 입주자와 지역민의 생활여건을 개선하는데 역점을 두고 있다.영주첨단베어링 국가산업단지 조성과 지역 대기업 SK스페셜티의 대규모 추가 투자 등으로 유입되는 청년 근로자의 지역정착을 유인하고 구도심 권역에 거점 인프라를 조성, 대도시 수준의 생활서비스를 제공을 위해 영주시는 행정력을 집중하게 된다.영주시의 미래를 위해 청년층의 안정적 정착을 위한 지역의 정주 여건 개선과 낙후된 구도심 발전을 위한 획기적 계기 마련을 위해 현재 지역에서 추진 중인 대규모 사업들과 더불어 지역을 떠난 청년들을 유입해 도시 활력을 높일 수 있는 다양한 사업을 추진하는 등 영주 발전을 전략적으로 실현해 나가게 된다.지역활력타운 조성으로 지역주민 일자리 창출 및 지역경제 파급 효과는 1258억원의 생산유발 효과와 513억원의 부가가치유발효과, 742명의 취업 효과가 발생할 것으로 전망된다.시는 사업유지 및 관리계획의 적절성을 위해 체계적이고 안정적인 운영 관리를 위한 민관협업 체계를 구축할 방침이다.협력체계 구축은 유관기관, 입주자 등 6개 기관 협력으로 운영위원회를 구성해 주거, 생활인프라, 생활서비스별 협력 체계를 마련한다.시는 사업의 연계성과 종합적인 성과를 도출하고자 시민과의 소통을 통한 현장 요구 해소 등 다양한 협의를 바탕으로 사업을 추진해 나갈 계획이다.전국 243여개의 지방자치단체들 중 광역 및 인구밀집 도시 일부를 제외한 대부분의 지자체는 비슷한 환경의 지역 문화, 관광자원, 산업기반, 교육 자원을 갖고 있다.각 지자체는 지역 발전을 위해 다양한 아이디어를 발굴하고 시책으로 적극 추진하지만 기대만큼 성장하지 못하는 것도 현실이다.지방자치시대가 되면서 주민들의 요구와 그 다양성도 세분화되고 있다. 또한, 지역주민의 동시다발적인 숙원사업의 요구도 늘어가고 있다. 이러한 주민 요구는 지방재정으로는 해결하지 못하는 숙제이기도 하다.그러나 이번 영주시의 2024년 지역활력타운 조성 공모사업 선정은 영주시가 한층 더 발전하는 새로운 변화의 기회가 될 것이라는 시민들의 기대치가 높아지고 있다./김세동기자 kimsdyj@kbmaeil.com

2024-05-26

작지만 강한 도시 청송… 크게 펼치는 ‘보편 복지 시스템’

한국이라면 어느 시·군이랄 것 없다. 이전 시대와는 변별되는 개별 지방자치단체의 복지 정책 개발과 실행에 골몰하는 게 21세기를 규정하는 하나의 키워드가 됐다.경상북도의 크지 않은 지자체지만 청송군 역시 이런 시대적 흐름에 눈 돌릴 수는 없는 일. 청송은 빼어난 자연 풍광에 사람들의 마음을 평화와 안정으로 이끄는 맑은 공기로 요약되는 ‘작지만 강한 도시’다.여기에 더해 지역에 거주하는 군민들을 위한 복지 정책의 입안과 수립에도 여념이 없는 게 청송군의 오늘이다.윤경희 청송군수는 올 초 2024년 복지 정책의 핵심을 “군민이 원하는 곳에 맞춤으로 들어서는 보편복지의 실현”이라고 요약했다. 이는 군민 중심의 사회안전망 구축이라는 과제와 함께 쉼 없이 추진돼야 할 프로젝트가 아닐 수 없다. 아래에서 ‘모두가 행복으로 한 걸음 다가서는 청송군’ 복지 시스템의 핵심을 요약해본다. □ 이웃이 이웃을 도울 수 있는 시스템의 수립과 실행청송군은 올해 사회적 약자에 대한 복지 사각지대를 해소하고, 노인·아동·청소년·여성·다문화가정 등 다양한 계층에게 적합한 복지서비스를 지원해 군민 모두가 행복한 맞춤 복지를 구현해나갈 방침이라고 천명했다.이를 위해 사회보장수급가구(기초생활보장, 기초연금, 차상위계층 등) 결정에 사회보장시스템을 활용한 조사, 방문 실태 확인 등으로 적정한 급여를 결정하겠다는 계획이다.또한 인적·소득재산 변동사항을 수시로 조사해 수급 자격을 정비함으로써 최저생활 보장과 생활안정 지원을 위한 맞춤형보장급여를 제공한다는 방침이다.더불어 이웃이 이웃을 돌보는 인적안전망, 이를테면 가칭 ‘안녕 살피미’의 창립, 지역사회보장협의체의 원활한 운영 시스템을 구축해 복지 위기가구를 조기에 발견하고, 주민 조직화 및 주민 역량의 강화로 지역민이 주도적으로 마을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마을복지계획을 수립·실천할 수 있도록 돕는다.또한, 올해 신규 사업으로 고독사 및 사회적 고립가구 예방사업을 추진키 위해 상시 발굴 지원체계를 구축한다. 이는 민·관 협력 사회적 고립가구 해소 캠페인으로 구체화 된다는 것이 군의 부연이다. 고독사 위험가구에 대해서는 통합사례 관리, IoT 장비를 통한 스마트 안부 확인과 상시 모니터링을 실시하고, 중장년 1인가구를 위한 요리교실 등도 운영해 건강한 식생활까지 지원하게 된다. □ 국가유공자와 가족에 대한 지원도 대폭 강화숱한 시련의 역사 속에서 구국·호국 의지를 불태우다 목숨을 잃은 국가유공자와 그 가족에 대한 예우와 지원도 강화한다는 게 청송군의 의지다.참전명예 수당, 보훈예우 수당, 참전배우자 수당을 제때에 지급하고, 소외되기 쉬운 장애인들의 사회 참여와 소득 기회를 제공하기 위해서는 장애인 일자리 제공과 확대 시책을 보다 넓힐 예정이다.지역의 노인들이 쾌적한 휴식 공간에서 편안한 시간을 보낼 수 있도록 경로당을 보수하고, 경로당 운영 지원도 지속적으로 추진한다. 특히 경로당에 소파, 테이블, 의자 등 입식 시설을 보급해 연로한 지역민들의 건강하고 편안한 생활을 조력한다는 것도 청송군의 복지 방침 중 하나다.더불어 기초연금 인상, 어르신 목욕비 지원, 노인 일자리와 사회활동 지원사업 참여자를 매년 확대해 노령층의 안정적 소득기반을 조성하고, 사회참여 기회도 늘여나갈 계획이다.노인교실과 ‘경로당 행복선생님 사업’ 운영도 그 폭이 확대된다. 경로당에 대한 전폭적 지원을 통해 지역 노인층의 건강한 여가활동을 지원하고, 일상생활을 혼자 수행하기 어려운 취약 노인들에게는 맞춤돌봄 서비스와 독거노인 응급안전안심 서비스를 제공해 일상생활 유지를 가능토록 할 예정이다. 이런 것이 바로 “실질적인 사회 안정망 확충”이라고 전문가들도 입을 모은다.맞춤형 보육서비스 제공 또한 청송군이 주목하는 문제다. 아이 키우기 좋은 보육환경 조성은 한국사회 어느 곳 할 것 없는 주요한 과제. □ 지역 노령층에게는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도움 제공청송군은 부모급여, 영유아보육료, 가정양육수당 등을 다양한 형태로 지원해 양육가정의 경제적 부담을 줄이고, 노후화된 보육시설에 대한 환경개선사업으로 안전한 보육환경을 만들어 나갈 것이라는 청사진도 이미 제시했다.저소득 한부모가족·미혼가족·조손가족 등이 가족의 친밀함을 느끼고, 밀착감을 유지할 수 있도록 돕는 것도 소홀히 할 수 없다. 건강하고 문화적인 생활을 영위할 수 있도록 내실 있는 지원사업을 수행함으로써 한부모가족의 생활안정과 자립기반 조성에 도움을 주는 것에도 윤 군수는 큰 관심을 가지고 있다.아이 돌봄 서비스 제공과 양육 공백의 최소화, 결혼이민 여성을 대상으로 한 한국어 교육 등도 청송군을 복지가 실현된 지자체로 만드는 프로젝트의 하나다.이를 위해 청송군은 결혼이민 여성의 한국사회 조기 적응을 적극적으로 지원함으로써 다문화가족 자녀의 효과적 언어 발달과 기초학습의 기회 확장에도 도움을 줄 것이라 약속했다. 드림스타트사업·지역아동센터·다함께돌봄센터 운영, 청소년방과 후 아카데미 활성화, 청소년 보호육성사업 등은 이를 위한 구체적 프로젝트로 지목될 수 있다.방과 후 학교의 운영은 학교 교육 지원 차원에서 백안시할 수 없다. 중·고등학교 신입생 교복 구입비 지원과 고등학교 무상교육 지원 역시 공공성 강화 차원의 문제이니 그냥 두고 볼 수 없을 터. 청송인재양성원을 통한 지역 학생들의 교육 의지 고취도 이런 차원에서 함께 해석될 수 있을 듯하다.이처럼 위에 언급된 청송군의 각종 복지 프로트와 관련해 윤경희 군수는 “희망과 용기를 북돋아주는 복지 정책, 그리고 군민의 삶이 보다 안정될 수 있는 정책의 꾸준하고 지속적인 추진으로 모두가 빠짐없이 행복한 청송을 만들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는 다짐을 알려왔다. 이 약속의 현실적 실현에 주목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김종철·홍성식 기자

2024-05-22

구미, 산업도시 이미지 벗고 낭만과 문화가 흐르는 도시로

구미시가 민선 8기에 들어서면서 산업도시의 의미지를 벗어내고 낭만과 문화가 흐르는 도시로 변모하고 있다. 특히, 새로운 공공디자인과 지역 특색을 살린 참신한 콘텐츠로 구미만의 색깔을 입히면서 시민들의 호응과 더불어 도시의 이미지를 바꿔가고 있다.구미의 주요 도심에는 새롭게 설치된 대형 조형물들이 방문객들의 이목을 끌고, 야간경관을 활용한 수변공간 조성, 특색있는 관광·스포츠 인프라 확충을 통해 회색도시 이미지를 벗고 역동적이고 매력적인 도시로 변화 중이다.김장호 구미시장은 “지역 특색을 살린 새로운 시도들이 호응을 얻으며, 무미건조했던 산업도시 구미의 색깔이 바뀌고 있다”며 “앞으로도 구미의 지속적인 변화와 다채로운 매력 발산을 기대해 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 구미만의 대형 조형물…도시경관 업그레이드올해 경북도민체육대회를 개최한 구미시는 6년 만에 종합우승을 달성하며 대회를 성공적으로 마무리했다. 대회를 준비하며 도시 주요 길목에 대형 조형물을 설치해 도시경관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했다. 도시의 관문인 구미IC 진출로에 대형 ‘WELCOME GUMI’ 조형물을 설치해 방문객들에게 환영 메시지를 전하고, 시민운동장 앞 광장에는 선수들의 열정과 노력을 상징하는 ‘승리의 주먹’을, 운동장 전면에는 넓이 67m의 초대형 입체조형물로 이목을 끌었다.경기장 앞 회전교차로에는 다이내믹한 육상경기 조형물도 설치했다. 각각의 조형물에는 경관조명이 있어 야간에도 아름다운 모습을 감상할 수 있다.시는 앞으로 주요 장소에 미디어 콘텐츠가 담긴 대형 조형물과 서울에서나 볼 수 있었던 ‘미디어아트 월’도 추가 설치해 시민들에게 수준 높은 영상 콘텐츠를 제공할 예정이다. □ 비산 나룻길과 지산 샛강 생태공원 명소화 사업지난 2월 개방한 낙동강 탐방로 ‘비산 나룻길’은 비산 나루터에서 구미천 종점부까지 이어지는 길이 1㎞의 산책로로 총 55억 원의 사업비를 투입해 수상 보도교와 데크길로 해당 구간을 연결했다. 낙동강을 따라 조성된 ‘비산 나룻길’은 강가의 아름다운 풍경과 잘 보존된 자연생태계를 감상하며 걸을 수 있어 구미의 새로운 힐링 공간으로 떠오르고 있다.시는 낙동강과 구미천이 만나는 지점에 있는 갈대 습지 1.3㎞ 거리에 탐방로를 조성한다. 탐방로는 습지에 다양한 야생 동·식물이 서식하는 만큼 상세한 계획 수립과 하천점용 등의 절차를 거쳐 올해 연말에 개방될 예정이다.도심과 가까운 곳에 자리 잡은 지산 샛강 생태공원은 봄에는 벚꽃, 여름에는 연꽃, 겨울에는 천연기념물 큰고니의 도래 등 천혜의 자연을 시민들에게 선물하고 있다.시는 전국 3대 천연기념물 큰고니를 상징하는 큰고니 부부 상징 조형물을 데크 광장에 설치해 볼거리를 제공하고 있다. 또 황토 맨발 길 체험에 대한 수요 급증에 따라 지산 샛강 생태공원 기존 산책로에 황토 맨발 길 시범 구간(L=250m)을 조성해 큰 호응을 얻고 있다. 여기에 황토길, 황토풀, 황토볼, 세족장, 신발장도 설치했다. 올해는 황토 맨발 길을 추가로 연장(L=750m)해 다양한 체험 공간을 확충해 구미의‘핫 플레이스’로 조성해 나갈 계획이다. □ 야간경관 활용, 아름다운 야경 선물시는 최근 자연과 빛, 조명이 어우러지는 수변공간과 도심 속 골목 정원 조성으로 시민들에게 아름다운 야경을 선물하고 있다.지산샛강 생태공원 둘레길의 벚나무에 경관조명 250개를 설치하고 민들레와 초승달, 갈대 조명 등 특색있는 야간조명으로 야경 맛집으로 소문났다.비산나룻길에는 165개의 핸드레일바 경관조명과 43개의 보안등을 설치해, 야간에도 화려한 조명과 함께 산책이 가능해 시민들의 야간산책 코스로 사랑받고 있다.원평동 금오천 일원에는 옹벽의 실루엣과 어우러져 환상적인 분위기를 연출하는 옹벽경관등과 벚꽃나무에 수목투과등을 설치해 금오천을 방문한 시민들에게 멋진 볼거리를 제공하고 있다.여기에 야간조도를 더 높이고 주요 길목에 미디어를 활용한 특화연출조명 설치로 더욱 풍성한 볼거리를 선사할 예정이다. 금리단길(각산 마을) 골목길과 문화광장 등에 6개의 포토존과 디자인 가로등, 시간대별 다른 로고라이팅 연출로 거리경관을 개선했다.또 마을 주민들이 자생적으로 가드닝팀(gardening-team)을 결성하고 골목 벽면과 유휴지에 장미와 화초를 심어 생동감과 향기가 있는 마을길을 조성했다.산호대교에는 배면부를 특징적으로 표현하는 특화연출조명을 설치하고, 낙동강 체육공원에도 30억원을 투자해 디지털 기술을 활용한 조형물과 미디어아트를 설치할 계획이다. □ 파크골프장과 인조 잔디 야구장 조성도내 최다 홀수의 파크골프장을 보유한 구미시는 지난 4월 지역 파크골프장 7개소(장애인파크골프장 포함)의 잔디보호 및 생육을 위한 휴장을 마치고 전면 재개장했다.휴장기간 홀컵 주변 잔디 보식, 배토 작업, 잔디보호 매트 및 복합 잔디 설치, 주차장 차선도색 등 시설물 정비를 완료했다. 또 구미파크골프장의 재래식 화장실을 철거하고 수세식 화장실 3개소를 설치했다. 올해 총 9억원의 예산을 투입해 시설 개선 및 이용자 편의증진 사업으로 최상의 파크골프장 환경을 조성할 계획이다.시는 구미대교 아래 낙동강변에 전국대회가 가능한 공인 규격의 인조 잔디 야구장(3면)을 지난 4월 개장했다. 기존 흙 구장 3면 야구장(3만6000㎡ 규모)에 총사업비 40억원을 투입해 인조 잔디, 휀스, 더그아웃, 본부석 등을 설치했다.또 올해 지산 낙동강 체육공원에 인조 잔디 야구장 1면을 추가로 조성해 총 4면의 정규 공인 규격의 야구장으로 각종 전국 단위 대회를 유치해 스포츠 도시로써의 위상도 높여나갈 계획이다.□머무르고 싶은 도시, 체류형 관광인프라 조성회색 산업도시 구미에 낭만이 가득한 관광 인프라가 늘어나며, 머무르고 싶은 도시로 변하고 있다.지난 4월 구미 원도심인 새마을중앙시장에서 개장한 낭만야시장은 개막 당일 3만명의 구름인파가 몰려 대박을 터트렸다. 다른 야시장과 차별화된 콘텐츠와 특색있는 메뉴로 인기몰이에 성공했다는 평가를 받으며, 전통시장 활성화와 원도심 부흥의 신호탄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도심 속 힐링공간으로 새롭게 각광받고 있는 지산샛강 생태공원은 맨발걷기와 아름다운 야경, 무인카페 고니벅스로 인기몰이 중이다. 지난 3월 벚꽃 개화 기간에만 6만명의 방문객이 찾았으며, 구미시민과 함께 인근 지역에서도 발걸음이 이어지고 있다.구미의 대표적인 젊은이들의 거리인 금리단길은 로컬 크리에이터와 협업해 북카페 거리로 조성하고 있으며, 전선지중화, 보행로 개선 작업을 통해 보행자 특화거리로 변화를 꾀하고 있다.이 밖에도 구미의 교촌통닭 1호점을 테마로 한 특화거리 조성을 비롯해 진평동 먹자골목과 송정동 송정맛길 등 젊은 세대들의 입맛과 관심을 사로잡을 특색있는 문화거리 조성에도 박차를 가하고 있다./김락현기자 kimrh@kbmaeil.com

2024-05-21

“과감히 생략하는 용기… 보이지 않는 것들을 보는 방법”

푸른 바다가 지척에서 일렁이는 포항에서 유년과 소녀시절을 보낸 시인 이소연(41)이 깔끔하게 단장된 매혹적인 산문집을 출간했다. 이름하여 ‘그저 예뻐서 마음에 품는 단어’.10년 전 시인으로 등단한 이소연은 그간 ‘나는 천천히 죽어갈 소녀가 필요하다’ ‘거의 모든 기쁨’이란 제목을 단 시집을 펴내며 서서히 그러나, 성실하게 자신만의 문학 세계를 구축해가고 있는 젊은 작가다.운문으로 구축된 시와는 달리 에세이 혹은, 수필이라 불리는 문학 장르는 산문을 사용해 만들어진다. 한국 문단을 떠도는 흥미로운 풍문 가운데 하나가 “산문을 주로 써온 작가는 운문을 잘 쓰는 경우가 드물다. 그러나, 운문을 쓰는 시인들은 산문을 못 쓰는 경우가 드물다”는 이야기다. 그렇다. 대부분의 시인은 수필도 잘 쓴다.그런 통상적인 기대를 가지고 이소연의 산문집을 펼쳐들었다. 기자의 예상과 풍문은 틀리지 않았다. 조그맣고 앙증맞은 판형의 산문집(수필집이라 불러도 무방하다) ‘그저 예뻐서 마음에 품는 단어’는 여름날 먹는 시원한 국수처럼 술술 넘어가듯 읽혔다. 뿐 아니다. 행간에 담긴 의미와 메시지의 무게도 만만찮았다. 기대 이상의 즐거운 독서였음을 고백한다.이소연의 산문집에선 세계와 인간의 내밀한 본질을 시인의 예민한 촉수로 더듬어낸 눈 밝은 문장을 곳곳에서 어렵지 않게 발견해낼 수 있다. 이는 쉽게 이루지 못할 인정할만한 작가적 성취다. 예컨대 아래와 같은 것들. ‘그저 예뻐서 마음에 품는 단어’ 중 ‘보이지 않는 것들을 보는 방법’이란 소제목을 단 글의 몇 문장을 인용한다.“(전략)…중국 북송 황제 휘종이 궁중의 화가들에게 ‘말발굽에 묻은 꽃향기’를 그리라고 했다. 눈에 보이지도 않는 꽃향기를 어찌 그리란 말인가. 화원 하나가 말발굽을 쫓아가는 나비 떼를 그린 그림이 휘종의 마음을 흡족하게 했다고 한다. 누군가 내게 참새 지저귀는 소리를 그리라고 하면 인동덩굴을 가득 그려 놓으면 될까? 휘종이 깊은 산속에 감춰져 보이지 않는 절을 그리라고 하는데도 많은 화가가 눈에 보이는 절을 그리는 데 집착했다고 한다. 그 마음도 이해가 간다. 내가 말하지 않아서 알아주지 않으면 어떡하지? 그럴 땐 결심이나 용기가 필요하다. 누군가는 내 의도를 정확히 읽어 내리라는 기대 속에서 과감히 생략하는 용기 말이다. 보이지 않는 것을 보이지 않는 상태로 둘 수 있는 사람만이 그릴 수 있는 것이 있다.…(후략)”마지막 책장을 넘겨 책 읽기를 끝내니, 산문집 ‘그저 예뻐서 마음에 품는 단어’가 어떤 경로를 통해 탄생한 것이고, 이소연은 ‘이걸 무슨 마음으로 썼을까’라는 게 궁금해졌다.그래서다. 스무 살에 포항을 떠나 현재는 서울에 살고 있는 이소연에게 질문지를 보냈다. 보통의 독자들이 던질만한 질문 몇 가지가 쓰였다. 다음은 그 물음을 접하고 친절하게 보내온 이소연의 답변을 요약한 것이다. -포항에서 유년을 보낸 것으로 안다. 기억 속에 남아있는 인상적인 풍경은.△고등학교 졸업할 때까지 포항에서 머물렀다. 부모님은 아직 포항에 있다. 산문집 곳곳에 포항에 대한 기억이 담겨 있다. 아홉 살 때까지 살았던 동네 풍경이 생생히 떠오른다. 산 밑에 자리한 집까지는 버스가 다니지 않아 연일사거리에서 한참 걸어 들어가야 했다. 그 하염없이 이어지던 길이, 양쪽으론 논밭뿐인 그 후끈후끈한 여름길이 자꾸 떠오른다. 어머니가 아픈 날 데리고 그 길을 걸어 나오는 동안 병이 낫곤 했다. 이상했다. 보건소 문이 닫혀 진료를 받지 못했는데도 보건소 옆 슈퍼에서 사이다 한 병 마시면 병이 낫곤 했으니까.-시집을 2권 낸 시인이다. 시와 산문을 쓸 때는 마음가짐이 다를 듯하다.△시를 쓸 땐 본업의 마음이 있다. 더 고심하고 애쓰는 시간이 힘들면서도 힘들지가 않다. 노력이 허투루 돌아가도 아깝지가 않다. 시를 쓰고 나면 기분이 좋다. 할 일을 한 것 같은 느낌이랄까. 반면 산문을 쓸 때는 고심하고 애쓰는 시간보다 솔직하고 싶다는 욕망에 시달리는 것 같다. 시에서도 솔직하려 하지만, 그것과는 다른 차원의 솔직함이 산문에는 있다. 말 안 해도 아는 것과 말을 해야 아는 것의 차이인가 싶기도 하다. 시는 이미지와 이미지 사이를 건너뛰어도 사유를 만들어 놓고 산문은 쓰는 과정을 통해서, 뭔가에 대해서 알아가는 느낌 속에 사유가 있었다.-2014년 ‘한국경제’ 신춘문예로 등단했으니, 10년차 시인이다. 시는 무엇이고, 시인은 어떤 존재인가.△시는 과거를 현재로 살아가게 하는 일이고 나와 나를 대면하게 하는 일이기도 하다. 봄이라 포항 곳곳에 아카시아 꽃이 만발했다, 아카시아 꽃을 보니 백일장 나가던 때가 떠올랐다. 백일장 장소가 수도산이었던 것 같다. 마치 이미지가 과거와 현재를 이어 놓는 사다리 같다. 10년차 시인이 되어서 작은 변화라면 이제는 시를 쓰는 일이 두렵지 않다. 물론 예전에도 두렵지 않았다. 그때는 몰라서 두려운지 몰랐다. 모르면 용감하다는 말처럼. 지금도 역시 시를 모르지만 실패가 단순히 실패만은 아니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나에게 시는 그저 쓰는 과정일 뿐이다.-산문집 출간의 계기가 있었는지.△‘한국경제신문’에 2022년 4월부터 칼럼을 연재했다. 오피니언을 눈여겨 본 편집자가 있어 제안 받았다. 출판사에서 새롭게 원고를 집필하라고 했으면 산문집 출간이 어려웠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다행히 연재 마감 덕분에 매달 원고가 차곡차곡 쌓여가고 있었고, 그간 여기 저기 발표한 산문들도 결이 비슷해 함께 모았더니 한 권의 산문이 됐다.-산문집 제목이 좋다. ‘그저 예뻐서 마음에 품는 단어’. 직접 지은 것인지,△세상 여기저기에 놓인 글감들은 그저 예쁜 것 같다. 그것에게 다가갈 수 있는 힘을 준다. 글을 쓰려면 먼저 다가가는 마음이 필요하지 않은가. 요즘 속이 안 좋아 한약을 먹고 있다. 그 탓에 밀가루 음식을 피하는 중이다. 밀가루 아닌 것들과 친해져야 하는데 그것을 찾는 일이 시를 찾는 일과 비슷한 것 같다. 자꾸 먹을 수 없는 것에 가 닿게 한다. ‘그저 예뻐서 마음에 품는 단어’라는 제목은 ‘포란의 계절’ 산문의 첫 문장에서 따온 것이다. 그저 예뻐서 마음에 품는 단어는 ‘포란(抱卵)’이다. 동물이 알을 품는 행위를 뜻하는 말이지만, 나는 이 말을 봄과 나란히 두며, 많은 걸 품었다. 글이라는 건 말을 말로서 지나가게 하는 것이 아니라 품게 해서 좋다. -시와 산문, 통칭해 문학은 인간에게 어떤 역할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하나.△아직도 문학은 읽고 싶은 이들에게, 사유하고자하는 이들에게 파동을 일으킨다. 문학에 관심 없어 보이는 것 같지만 내가 느끼기엔 그렇지 않다. 많은 이들이 아직 시를 좋아하고 문학에 관심을 가진다.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블로그 등의 SNS채널마다 공유하는 문학들이 있고 난 그것들에 영향을 받는다. 적어도 문학은 나에게 힘을 발휘하고 있고, 내가 아는 문학을 좋아하는 이들에게 힘을 발휘하고 있다.-주목하는 동년배 작가는 누구이고, 주목의 이유는.△김은지 시인이 생각난다. 이제 거의 버릇처럼 튀어나오는 이름이다. 같이 활동을 많이 한다. 김현 시인, 유현아 시인도 있다. ‘해변’이라는 공간을 함께 운영하고 있다. 주목하는 이유는 함께하기 때문이다. 함께하는 이들의 작품을 주목하지 않고 나를 가꿔 나갈 수는 없다. 그밖에 철공소에서 일하는 사람, 소금가마니를 지고 히말라야를 오르는 사람, 절벽을 타고 올라 꿀을 따는 사람들이 내가 주목하는 미래의 작가다. 이런 분들의 삶을 들여다보고 싶다. 거기에 이야기가 있기 때문이다.-시인으로서 단기 계획과 중장기 계획은.△5월 마지막 날 출판사 ‘창비’에서 세 번째 시집 ‘콜리플라워’가 출간될 예정이다. 그리고 청소년 시집 출간과 오피니언 연재도 이어나가야 한다. 앞으로 다음 시집은 10년 동안 퇴고하겠다. 물론 그 안에 낼 수도 있다.(웃음)-‘그저 예뻐서 마음에 품는 단어’를 읽은 후 독자들이 보내준 가장 인상적인 의견은.△셋째 이모가 전해준 얘기다. 병원에 입원한 이모부에게 심심할 때 읽어보라고 ‘그저 예뻐서 마음에 품는 단어’를 선물했는데, 평소 책도 잘 안 읽고 대화도 거의 없는 사람이 ‘정말 재미있게 소설을 읽었다’며 책 내용을 상세하게 이야기 해주더라는 얘기였다. 에세이를 썼는데 소설로 이야기 한 게 너무 재밌어 기억에 남는다. 문학과는 거리가 먼 분이라 장르도 잘 모르시는 분도 재미있게 읽었다는 점이 좋았다. 나의 문학이 사람들에게 그렇게 쉽게 다가갈 수 있다면 좋겠다.-마지막으로 덧붙일 말이 있다면.△나를 낳아주고 품어준 아빠 엄마의 바다, 포항 바다에게 고맙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홍성식기자 hss@kbmaeil.com

2024-05-21

정상에서 내려다 본 형산강 파노라마 뷰, 잊지 못할 감동

한반도 동남부에 위치한 해양도시 포항에는 크고 작은 산들이 오밀조밀 펼쳐진다. 주로 서쪽으로 포진한 이 산들은 높낮이를 달리하며 제각각 존재 의미를 뽐낸다. 포항의 주산(主山)은 뭐니뭐니해도 내연산이다. 북구 송라면에서 산맥을 일으킨 내연산은 흥해에서 도음산과 만난 포항을 감싼다. 경주 강동을 끼고 남진하던 도음산은 양학산에 이르러 낮게 깔리며 호흡을 고른다.산맥은 다시 남쪽으로 뻗어가다 형산강에 막혀 형산과 제산으로 분기(分岐)하는데 이곳이 후술할 ‘형산, 제산 전설’의 배경이다. 형산강에서 수기(水氣)를 머금은 후 산세는 다시 남진해 운제산에서 포항의 산맥을 완성한다. 오늘 소개할 형산(兄山)은 포항의 산은 아니다. 그러나 내연-도음-양학의 산세를 이어받아 운제산에 연결되는 산중 정류장으로써 의미를 갖는다. 관할구역은 경주(강동면)에 위치해 행정상으로는 포항과 벗어나 있다. 그러나 포항 지곡동, 효자동, 연일읍과 가까워 포항 시민들이 아끼고 오르는 산이다. ◆ 신라 경순왕 때 처음으로 역사서에 등장형산이 위치한 곳은 경주시 강동면 국당리. 강의 남쪽에 자리 잡은 해발 257m의 낮은 산이다.사기에는 신라 왕궁에서 ‘중사’(中祀)를 치르는 북형산성(北兄山城)으로 언급돼 있다. 중사라면 국사(國祀)에 이은 다음 제례로 지금으로 치면 자치단체 축제에 해당한다.동국여지승람에도 ‘중사를 지냈다는 기록’과 ‘영천의 소산(所山)과 통하는 봉수대가 있었다’는 기록이 전한다.삼국사기 신라 경순왕 조(條)에 형산은 다시 한 번 역사에 등장한다, ‘강동, 안강 지역에 큰산(형산, 제산)이 붙어있어 매년 수해가 발생해 주민 피해가 컸는데 태자 김충을 시켜 산을 두 개로 갈라 재해에서 벗어났다’는 내용이다. 용이 승천하며 산줄기가 뚫리고, 물길이 열린 후 강동면 일대에 넓은 평야가 드러나니 이곳이 유금들이다.보통 두 산이 나란히 있을 때 큰산, 작은산이나 방위에 따른 동봉, 서봉으로 지칭하는데 이곳은 인칭을 썼고 더구나 형산, 제산처럼 혈연관계로 묶어 놓은 서사 구조가 특이하다.앞서 언급한 형산 설화엔 마의태자(김충)부터 용(龍) 신화까지 등장하는데 그만큼 형산이 신라인들의 의식 속에 크게 자리잡고 있었다는 방증이다.이후 형산은 역사 속에서 오랜 기간 등장하지 않다가 6·25 한국전쟁 때 ‘포항 형산강 방어전투’ 당시 구국의 요새로 등장하며 다시 한 번 현대사에 전면으로 등장한다. ◆ 왕룡사에서 내려다 본 형산강 뷰 백미형산에는 경순왕 조에 등장하는 형산, 제산 전설 외 크게 주목할 만한 역사적 사실이 없고, 정상에 있는 왕룡사가 거의 유일한 사적이다. 창건 연대나 창립 인물에 대한 상세한 기록도 없어 역사성, 기록성 면에서도 주목받지 못하는 곳이다.그러나 사찰 구석구석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뜻밖의 재미있는 사실들과 만나게 된다. 먼저 여행객들의 시선을 끄는 것은 절 동쪽에 위치한 약사여래불이다. 낮은 가부좌로 동해를 응시하는 부처의 눈길에서 ‘병에서 중생을 구제’하려는 인자함이 느껴진다. 부처를 향해 두 손을 모은 불자들의 모습에서 치유를 향한 강한 소망이 묻어난다.약사여래불 앞으로 작은 광장이 펼쳐지는 데 이곳이 형산강을 조망하는 최고의 포인트다. 연일대교, 형산대교에 이어 포스코의 힘찬 굴뚝과 영일만 앞바다까지 파노라마로 펼쳐져 포항의 경관과 정체성을 가장 잘 표현하고 있는 곳이다.정상에서 만난 한 시민은 “왕룡사는 형산강의 전체 조망을 드론 뷰 수준으로 관람할 수 있는 유일한 곳”이라며 “오션 뷰에 익숙한 포항 시민들이 다른 감흥을 찾아서 오기에 좋은 장소”라고 말한다. ◆ 태종 무열왕, 김유신 민간 신앙의 대상으로무량수전 옆에 있는 용왕전도 반드시 들러야 할 코스. 이곳엔 아주 특이한 유물이 전해진다. 바로 태종 무열왕과 김유신 장군의 목조상이다. 기록에 의하면 일제강점기부터 전해진다고 하는데 정확한 기원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가 없다.우선 두 인물을 모신 곳이 ‘용왕전’이라는 점에서 주목을 끈다. 보통 역사 속 인물들은 동상이나 초상화, 영정(影幀) 정도로 예우하는데 ‘전’(展)에 따로 모셨다는 것은 이 분들이 위인(偉人)을 넘어 반신(半神)수준의 숭배대상이 됐다는 것을 뜻한다. 중국에서 관우(關羽)가, 한국에서도 최영 장군이나 곽재우 장군 등이 사당에 봉양되면서 신앙의 대상으로 숭배되고 있는 현상과 유사하다. 일설에는 이 목조상이 경순왕과 마의태자라는 설이 있는데 이는 형산 일대를 신라 부흥운동과 연결해서 해석하는 시각이다.미학적 측면에서 이 목상들의 수준은 볼품이 없다. 그러나 삼국통일 위업을 달성한 두 영웅에게 향했던 민초들이 존경심은 조각의 완성도를 넘어 시공을 초월해 이어지고 있다.사찰의 가람 배치에서 재미있는 것이 산신각의 위치다. 아이 출산을 점지해준다는 산신각은 보통 절의 가장 외진 곳에 자리 잡고 있다. 대웅전이라는 훌륭한 기도처가 있고 그곳에는 전지전능한 석가모니가 있는데 왜 신도들은 외진 골방으로 찾아갈까.기도자에 초점을 맞춰보면 의문은 금방 풀린다. 이곳 출입자들은 대부분 아기를 희망하는 여성들이다. 여인들은 사찰 맨구석에서 신과 1대1로 만나 ‘직거래’로 소원을 이루려한다. 석가모니에 드리던 기도가 총알이 흩어지는 ‘산탄’(散彈) 이라면, 산신각은 단발로 목표물을 명중시키는 로켓으로써 의미를 갖는다고 하겠다. 북당마을-왕룡사-부조정-소형산 코스 인기형산을 오르는 루트는 다양하다. 강동면 북당마을에서 정상까지는 시멘트 포장이 돼 있어 자동차로 쉽게 접근할 수 있다. 10~30도를 오르내리는 경사도 때문에 익스트림을 즐기려는 자전거 동호인들도 자주 찾는다. 이분들에게 형산은 자전거 라이딩 외 왕룡사 참배나 형산강 뷰 관람이 목적이다.산행이 목적인 등산 마니아들에게도 형산은 다양한 코스를 열어놓고 있다. 정국사 입구-전망대-왕룡사-약사여래불을 돌아보는 2시간 코스가 일반적인 코스지만, 3~4km 코스에 성이 차지않는 마니아들은 왕룡사에서 반경을 넓혀 맞은 편의 부조정터-소형산으로 연장하기도 한다. 단 임도에서 진입로가 불분명하고, 등산로 표지판이 준비가 덜 되어 초행길, 초보 산행자들은 상당한 주의를 요한다.포항 사람들에게 바다는 늘 접하고 부딪히는 일상이다. 생업을 일궈 온 터전이고 삶의 수단으로써 의미를 갖는다. 늘 가까이에 있고, 손만 뻗으면 닿을 수 있기에 일찍부터 도시 발전과 문명을 일구는 기반이 되었다.포항의 문명을 말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곳이 있다. 바로 형산강이다. 고대부터 중국 한군현은 물론, 일본과 통하던 곳도 이곳이었다. 넉넉한 수량은 연일, 오천 뜰의 넉넉한 젖줄이 됐고, 수천년 동안 시민들의 생활용수, 상수원이 됐다.오션 뷰에 잠시 식상했던 독자라면, 다른 자극을 찾고 있던 시민이라면 주말쯤 한번 형산으로 오르길 추천한다.옅은 신록을 배경으로 강물이 은빛으로 일렁이고, 정극후(鄭克後·1577∼1658)가 ‘동방의 적벽’이라고 칭찬했던 형산강뷰가 발아래 펼쳐질 것이다./글·사진= 한상갑기자 arira6@kbmaeil.com

2024-05-09

위트와 흥미로 치장된 ‘시와 만화’의 행복한 결합

최근 출간된 오봉옥 시인의 웹툰시집 ‘달리지馬’. 이른바 ‘해방공간’으로 불렸던 1946년. 전남 화순의 탄광에서 미군정의 탄압에 맞서 탄부(炭夫)들이 궐기한다. 36명이 죽었고, 500여 명이 크게 다쳤다. 한국 근대사의 비극 중 하나로 기록된 이 사건이 1989년 스물여덟 살 청년시인에 의해 문학적으로 형상화된다. 장편 서사시 ‘붉은 산 검은 피’다.당시 한국은 군사정권이 통치하던 시절. ‘붉은 산 검은 피’를 펴낸 출판사와 시집을 쓴 작가 모두가 고통과 수난을 겪는다. 책에는 판매 금지의 붉은 딱지가 붙었고, 시인 오봉옥은 구속된다.이는 20세기 말 한국 문단의 비극적 풍경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사건 중 하나로도 기록됐다. 그랬다. 1989년은 정권의 입맛에 맞지 않은 시를 썼다는 이유로 작가를 감옥에 보낼 수도 있는 시대였다.세월은 흘렀다. 비분강개와 결기로 눈동자를 새파랗게 빛내던 젊은 시인 오봉옥은 이제 회갑을 넘긴 예순셋 중년의 교수가 됐다.최근 눈에 띄는 시집 한 권이 출간됐다. 제목은 ‘달리지 馬’. 앞서 언급한 오봉옥의 제6시집이다.헌데, 독특하다. 얼핏 봐선 만화책처럼 보인다. 언필칭 ‘웹툰시집’이란다. “이건 뭐지?”라는 혼잣말을 하며 오봉옥 시인에게 전화를 걸었다.물론, 세상은 변하고 사람도 변한다. 이건 ‘변화·발전’이라는 칼 마르크스의 낡은 레토릭이 아니더라도 모두가 인지하는 사실. 그 변화라는 순리에선 시인 또한 자유로울 수 없다.그럼에도 ‘붉은 산 검은 피’라는 무겁고 심각한 시집에서 비교적 가벼운 위트와 흥미로움으로 치장된 ‘달리지 馬’로의 변화가 어디에서부터 시작됐고, 그걸 작가 자신과 독자들은 어떻게 느끼는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었다.다음은 기자와 오봉옥 시인이 주고받은 이야기를 핵심만 요약한 것이다. 한국 문학, 특히 시에 관심이 조금이라도 있는 독자들이 ‘시인 오봉옥의 변화’ 어떻게 받아들일지 무척 궁금하다. 웹툰시집 ‘달리지馬’의 내용 중 한 부분. -‘웹툰시집’이라는 단어부터가 생경하다. 필자로서 이를 어떻게 정의하는지. 또, 만화와 시를 결합해 시집을 낸 이유는 무엇인지.△웹툰시집이 장르 혼합의 개념이니 생경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동안 시의 독자층이 줄어들고 있는 점을 안타깝게 생각해 왔다. 그건 활자매체의 영향력이 줄어드는 반면 영상매체의 영향력이 날로 커져가는 시대적 상황과 맞물려 있고, 또 한편으로는 시를 어느 사이 마니아들만 읽는 장르로 만들어버린 시(詩)문단 내부의 흐름과도 관계가 있다고 생각한다.그런 차원에서 고상하다고 할 수 있는 시를 웹툰과 결합한다면 시의 대중화에 기여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사실은 ‘웹툰시’라는 개념보다는 시라는 말을 앞세운 ‘포엠툰’이라는 개념을 쓰고 싶었는데 주위에서 그건 너무 생경하게 느껴진다는 말들을 많이 해 그냥 ‘웹툰시’로 쓴 것이다.-기존의 시와 웹툰시는 어떤 차이점이 있나. 쓴 사람으로서 웹툰시의 매력이나 장점은.△기존의 시들는 시의 여백까지를 독자가 스스로 느끼게 하는 측면에서 좋은 것 같고, 웹툰시는 어렵게 느껴지는 시를 보다 쉽게 읽을 수 있도록 만드는 장점이 있는 것 같다. ‘시인의 말’에서도 밝혔지만 시적 상상력이 만화에 영향을 주어 재미의 차원을 넘어서게 하고, 만화적 상상력이 시에 또 다른 영감을 줘 시의 세계가 더욱 더 넓어지기를 바라고 있다. 그러자면 그 둘의 창조적 결합이 중요하다. 웹툰시를 쓴다고 생각하니까 확실히 쉬우면서도 감동적인 작품을 쓰려는 의식이 앞서는 것 같았다.-출간 이후 동료 시인들과 독자들의 반응이 궁금하다.△사실 그 부분이 제일 궁금했다. 그런데 의외인 것은 시인들의 반응이었다. 일부 생경하게 느껴진다는 사람도 있었지만 대체적으로 흥미롭게 읽었다는 시인들이 많았고, 구체적으로 자기도 웹툰시집을 낼 수 있게 도움을 줄 수 있느냐는 말들을 많이 했다.독자들의 반응은 예상하는 바와 같았다. 쉽게 잘 읽힌다, 시가 이렇게 재밌을 줄 몰랐다, 아이들도 앉은 자리에서 끝까지 읽더라 등등 긍정적이었다. 얼마 전 ‘북토크’를 한 적 있는데 거기에서 사인을 받은 사람들이 자기 이름이 아닌 자식들이나 조카 이름을 써달라는 경우가 많아 흐뭇했다.-시집 ‘달리지馬’에선 마(馬) 자가 생물학적 동물부터, 명령형 어미 등 여러 의미로 변용돼 사용된다. 이를 의도했을 것 같은데.△웹툰시집을 낸다고 생각하니 말놀이가 곁들여지면 더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말놀이는 시를 끌고 가는 시적 화자와 달리 밖에 있는 시인이 시 속으로 들어와서 펼치는 천진난만한 행위다. 다시 말해 아이들이 펼치는 동화적 상상력과 같이 시인과 시적 화자가 넘나들고, 시의 안과 밖이 자유롭게 넘나들어야 한다. 이번 시집에선 말놀이를 세 가지의 형태로 드러내 보았다. 우선 ‘달리지馬’처럼 언어로서의 말놀이, 시 안의 등장인물들이 구어체로 드러낸 삶의 표현으로서의 말놀이, 말을 거꾸로 세우는 등의 형태로서의 말놀이가 그것이다. 이번 웹툰시집이 실험적 측면에서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고, 독자들 역시 그 부분을 긍정적으로 봐주셨으면 하는 바람이다.-어려운 일이겠지만, 이번 시집 수록작 중 딱 한 편만 읽어야 한다면 어떤 작품을 독자들에게 권하겠는가.△맞다. 한 편을 선택하는 게 늘 어렵다.(웃음) 굳이 하나를 고르자면 ‘자식 생각’이다.“휠체어 탄 울엄니 등산 간다는 나에게 말하시네./ 산에 가서 구절초를 보거든 그 냄새 쪼깨만 개비에 넣어 온나./ 오는 길에 바다에도 들를 거라는 말엔 또,/ 갯바닥에 가믄 파도소리도 쬠만 귓구녕에 담아오고 잉./ 그럼 구절초 한 다발 꺾고/ 파도소리도 녹음해 올게요 했더니/ 니가 날 걱정할까봐/ 괜시리 한번 혀보는 소리라며 손사래를 치신다./ 걱정 말라니 원./ 그걸 말씀이라고 하고 계신다.”이 시는 말놀이를 하는 어머니와 자식인 시적 화자의 대화로 이루어져 있다. 말놀이는 단지 흥미만을 자아내는 게 아니라 이 시의 경우처럼 눈물겨운 행위이기도 하다. 휠체어를 탄 어머니는 혼자 등산을 가면서 미안해하는 자식의 마음을 헤아리며 ‘구어’로써 말놀이를 하고, 자식은 그런 어머니를 향한 연민의 정서를 보여주고 있는데…. 그 마음들을 잘 헤아려보면 좋겠다. -1985년 등단이니 시력이 40년에 이르렀다. 시는 무엇이고, 시인은 어떤 사람인가.△특별한 성과도 없이 벌써 40년이 흘러버렸다. 글쎄 시는 뭘까? 그림은 손이 불러내는 시, 노래는 목이 토해내는 시, 춤은 몸이 쓰는 시라고 할 수 있는데 시는 정작 시가 아니어서 시가 된다고 생각한다.시는 그저 마음밭에서 절로 풀어지는 길이자 그 길 위에서 어느 한 사람의 순정한 영혼이 불러일으키는 한 줄기 바람일 뿐이다. 시를 쓴다고 생각하는 순간 좋은 시는 탄생하지 않는다. 자기도 모르게 나오는 한숨 같은 것, 눈물 같은 것, 하소연 같은 것이 시가 아닐까. 그러니 어느 촌부의 말 한 대목이 시이기도 하고, 어느 노동자의 일기 한 대목이 시이기도 하다.시라는 예술에 가장 잘 어울리는 말이 ‘무위이화(無爲而化)’라고 생각한다. 억지로 꾸미지 않고 저절로 이루어지는 것, 내 안에서 나도 모르게 절로 터져 나오는 것, 그것이 시가 아닐까 싶다.-앞으로의 계획은. 그리고, 100년이 흐른 후엔 어떤 시인으로 사람들에게 기억되고 싶은지.△살아서 가진 욕망을 죽은 뒤에까지 가져가고 싶진 않다. 그래서 그에 관해 깊이 생각해 본 적은 없다. 그냥 한 시대를 열심히 살았으니 그것으로 만족한다. 늘 피해가지 않고 부딪쳐서 돌파하려고 했다.첫 시집 ‘지리산 갈대꽃’(창비)은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빨치산 가족사를 전면에 드러냈다는 평가를 받았고, 두 번째 시집인 장편서사시 ‘붉은산 검은피’(실천문학)로 군사정권 하에서 필화를 겪고 투옥까지 되었지만 우리 역사에 묻혀있던 한 사건인 화순항쟁을 세상 밖으로 끄집어내 언론계나 학계의 연구로까지 이어지게 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을 것 같다.그리고 이번에 낸 여섯 번째 시집 ‘달리지馬’ 또한 국내외 최초의 웹툰시집이었다는 점에서 그 의미를 찾아볼 수 있지 않을까. 그런 차원에서 시적 역량에 대한 평가는 차치하고 최소한 ‘도전의 아이콘’ 정도로는 기억을 해주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앞으로도 그렇게 살 것이다. 뒷방 늙은이가 되고 싶진 않다. 죽을 때까지 아이처럼, 청년처럼 살고 싶다. 아이처럼 살기 위해서는 내 자신을 닦고 또 닦아야 한다. 청년처럼 살기 위해선 긴장을 잃지 않기 위해 끊임없이 공부하고 고민해야 할 것이다. /홍성식기자 hss@kbmaeil.com

2024-05-07

‘낙동강 7경’ 풍경 감상하며 ‘흥·끼·신명 축제’ 맘껏

안동시와 예천군이 주최하고 경북매일신문이 주관하는 ‘낙동강 7경 문화한마당’과 ‘안동 어린이 백일장및 사생대회’가 성황리에 열렸다.지난 3일 차전장군노국공주 축제 개막식 축하무대로 개최된 ‘안동 낙동강 7경 문화한마당’ 행사에는 1만여 명이 몰려 본격적인 축제의 개막을 알렸다.기웅 아재의 사회로 진행된 이날 무대에는 수많은 팬을 몰고 다니기로 유명한 가수 박서진, 김용빈, 박미영, 단비를 비롯해 여성 발라드 가수의 정점에 있는 백지영 등이 대거 출연해 화려한 무대를 꾸몄다. 권기창 시장은 “차전장군노국공주 축제는 낙동강 문화의 연장선상”이라며 “낙동강 보존 노력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이어 6일에는 안동에 거주하는 어린이들을 위한 ‘안동 어린이 백일장 및 사생대회’가 안동 탈춤공원 일원에서 개최됐다.지난 2007년 시작된 어린이 백일장 및 사생대회는 미래 꿈나무인 어린이들에게 창작의 즐거움을 전해주기 위한 문예마당으로 경북 북부지역을 대표하는 문화행사로 자리매김하고 있다.이번 대회는 안동과 도청신도시 등에 거주하는 어린이들과 학부모 등 300여 명이 참가해 그림과 글쓰기 등의 실력을 마음껏 뽐냈다.또한, 이날 행사장을 찾은 어린이들을 위한 레크리에이션과 마술쇼 버블 공연 등의 볼거리가 마련돼 지역의 어린이들에게 꿈과 희망을 선물했다.‘제11회 낙동강 7경 예천군 문화한마당’ 행사는 6일 오후 7시 한천체육공원 특설무대에서 화려하게 펼쳐졌다. 이날 행사는 김학동 군수와 최병욱 군의장을 비롯한 경북도의원, 군의원, 군민 등 2000여명이 함께 어우러져 서로 응원하고 화합하는 한마당잔치로 치러졌다.이번 행사는 ‘2024 예천활축제’ 마지막을 장식하는 특별 공연으로 혼성그룹 스페이스A, ‘내일은 국민가수’ 최연소 참가자인 김유하, 싱어송라이터 김원준 등 국내 최정상 인기가수들이 대거 출연해 특별한 공연을 펼치며 지역민과 관광객들에 축제의 즐거움을 선사했다.‘낙동강 7경 문화한마당’은 낙동강 수변생태공간을 홍보하고 낙동강 관광·레저 산업 육성을 통한 관광객 유치를 위해 매년 개최되고 있다. 올해 행사는 예천활축제장을 찾은 관람객에게 즐거움을 선사하기 위해 마련됐으며 지역경제활성화에도 크게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았다./정안진·피현진기자 □ 3일 안동 낙동강 7경 문화한마당 □ 6일 안동시 어린이 백일장·사생대회 □ 6일 예천 낙동강 7경 문화한마당 사진=이용선기자

2024-05-06

수천장 종이비행기 함께 날리며 ‘꿈과 희망’ 활짝

‘2024 포항 어린이날 큰 잔치’가 5일 포항 환호공원 일원에서 포항시 주최, 경북매일신문 주관으로 성황리에 개최됐다.‘즐거움이 퐝! 퐝!’이라는 주제로 제102회 어린이날을 기념해 열린 이번 행사는 비가 오는 궂은 날씨에도 어린이, 학부모 등 4000여 명이 환호공원을 가득 메웠다.기념식에는 이강덕 포항시장과 김정재 국회의원, 이상휘 국회의원 당선인, 백인규 포항시의회 의장과 김일만 포항시의회 부의장, 박용선 경북도의회 부의장, 김희수 경북도의원, 김형철·김종익 포항시의원, 천종복 포항교육장, 심학수 포항북부소방서장, 류득곤 포항남부소방서장, 최윤채 경북매일신문 사장 등 내빈들이 참석해 어린이날을 축하했다. 개막식의 종이비행기 던지기 퍼포먼스에서는 참가자 전원이 ‘비상하는 어린이들의 꿈과 희망을 응원’하는 수천장의 종이비행기를 던지는 장관을 연출했다.이날 행사에서는 버블·매직쇼와 방송댄스 등 식전 공연으로 시작해 아동권리헌장 낭독과 모범어린이 시상 등 기념식, 포항소년소녀합창단 어린이날 노래 합창이 이어졌다. 식후 축하공연으로는 지댄스 공연과 삐에로 공연, 퀴즈 대회 등이 열려 어린이들의 흥을 돋웠다.또 ‘경북 어린이 백일장 및 사생대회’도 이날 함께 진행됐다. 환호공원 여기저기에 어린이들이 삼삼오오 모여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면서 담소를 나누는 정겨운 모습을 연출했다.오전 10시부터 행사장 곳곳에 마련된 부스에서는 달란트 상점, 인생네컷, 페이스페인팅, 교통안전 증강현실 체험, 심폐소생술, 소방 안전 체험, 전통혼례 체험, 화분 받침대 만들기 등 다양한 체험활동 행사가 열렸다. 이강덕 시장은 “어린이들의 102번째 어린이날을 축하한다”면서 “우리 포항의 희망이고 꿈인 어린이 여러분들이 자랑스럽다”고 말했다.김정재 국회의원은 “여러분들이 좋아하는 일을 열심히 하는, 적극적이고 행복한 어린이가 됐으면 한다”고 했고 이상휘 국회의원 당선인은 “공부 보다는 건강하고 밝게 성장하는 어린이가 되길 바란다”고 전했다.백인규 시의회 의장은 “우리들의 미래고 희망인 어린이 여러분들이, 안전하고 행복할 수 있는 포항을 만들어가겠다”고 강조했고 최윤채 경북매일신문 사장은 “날씨가 심술궂지만, 오늘 하루 친구들과 신나고 즐겁고 재미있게 보내길 바란다”고 했다. /장은희기자·단정민 수습기자사진=이용선기자

2024-05-05

묵묵히 걸었던 800㎞ 여정… 길에게 인생을 묻고 나를 찾다

지난 시대와는 비교할 수 없이 평균 수명이 길어진 21세기. 그에 발맞춰 많은 이들이 ‘걷기 운동’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한지 이미 오래다. 동시에 주목받고 있는 국내외의 ‘걷기 좋은 길들’. 그 가운데 정점을 찍는 걷기 코스는 산티아고 순례길(El Camino de Santiago)이 아닐까 싶다. 이 길은 유럽에 산재한 여러 가지 루트로 출발해 최종 목적지인 스페인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Santiago de Compostela) 성당에 도착하는 유명한 도보 순례 코스. 산티아고 순례길 완주를 위해선 꽤 긴 시간이 필요하고, 비용도 적지 않게 사용되지만 의의로 한국에도 그곳을 다녀온 이들이 적지 않다. 기자 주변에도 이미 3~4명의 선후배가 산티아고 순례길을 다녀왔거나, 걸을 계획을 세우고 있다. 자그마치 800㎞에 이르는 이 순례길에선 저마다의 사연과 이유를 가지고 묵묵히 발걸음을 옮기는 이들을 볼 수 있다고 한다. 종교적 신념, 삶의 본질에 대한 고민, 미래에 관한 불안, 실패한 연애가 준 절망감, 희망과 꿈을 향한 도전…. 산티아고 순례길을 걷는 이들의 가슴 안에는 수만 가지 사연이 담겨있을 터.경북 포항시 청하면에서 태어나 미국 컬럼비아대학 교육학 박사 학위를 취득한 후 세종대에서 학생들을 가르친 김상국 명예교수는 어린 시절부터 새로운 시도와 도전을 두려워하지 않았던 사람이다. 바로 이 김 명예교수가 자신의 산티아고 순례길 완주 체험을 담은 책을 최근 출간했다. 이름하여 ‘잊혀진 나를 찾아가는 길’(도서출판 지식나무).그는 거기서 무엇을 보고, 누구를 만났으며, 어떤 걸 느끼고 돌아왔을까? 또한, 순례길 체험을 꿈꾸는 다른 이들에겐 무슨 말을 들려주고 싶을까? 그 궁금증을 풀기 위해 제법 긴 질문지를 보냈다. 김상국 명예교수와의 인터뷰는 몇 번의 통화와 이메일 수·발신으로 진행됐다. 아래 그와 주고받은 이야기를 요약해 옮긴다. -산티아고 순례길을 걷겠다고 결심한 이유는.△나이가 들수록 몸과 마음이 무기력해진 시점에서 Y대학 선배 교수의 산티아고 무용담을 듣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결심했다. 당시 나는 체중이 100kg이 넘어있었고 약간의 우울 증세도 있었다. 무기력해진 나를 바로 세울 수 있는 사람은 바로 나 자신이다. 더 나은 나를 만들기 위해 준비해나가기 시작했다. 또한, 젊은 시절의 믿음과 삶에 대한 열정을 되살리고 싶었다. 꿈을 포기하지 않으면 반드시 이루어진다는 신념은 늘 잠재되어 있었다. 그것을 다시 찾고 싶어서 결심했다.-순례길 800㎞를 걸었다. 어떤 준비를 했는지.△목표를 이루기 위해서는 체력과 정신력이 필요했다. 체력은 하루 6~8시간 활동할 수 있는 적응력이 필수조건이다. 다음엔 지루하고 반복적인 활동을 이겨낼 수 있는 마음가짐을 만들어야 한다. “난, 완주할 수 있다”란 비장한 각오가 필요했다. 이런 습관은 모든 분야에 적용된다.-가장 힘겨웠던 구간은.△대부분의 순례자가 첫날 피레네산맥을 넘어오는 과정이 가장 힘들었다고 말한다. 해발 1500m다. 첫째 날 신고식을 혹독하게 치러야 이 산을 넘어간다. 높은 산들로 몇 시간이고 내내 오르막만 전개되기 때문이다. 평야만 있는 곳에서 살아온 순례자들은 특히 힘들게 느껴진다. 한국의 대청봉, 천왕봉, 한라산 정도의 운동량이라고 비교하면 된다. -반면 가장 감동적이었던 구간은.△순례길은 매 구간 특색이 있어 감동을 준다. 그러나 많은 순례자가 감격의 눈물을 뿌리는 곳은 두 곳이다. ‘철의 십자가’와 순례길 종착지다. 철의 십자가는 순례길 중 가장 높은 위치에 있고, 또 3주 이상을 지나야 만날 수 있는 곳이다. 자신의 소중한 물건 하나를 십자가 아래 내려놓고 기도하는 곳이기도 하다. 이곳에 수많은 사연을 놓고 간다. 어떤 순례자가 하늘나라로 간 사랑하는 사람의 사진을 두고 가는 걸 봤다. 이 철의 십자가는 순례자들 소망의 안식처가 되고, 세상의 온갖 죄와 허물을 씻어내는 사랑의 강물이 된다.-순례길에서 만난 이들 중 기억에 남는 사람은.△나와 여러 번 대화를 나눈 순례자들이다. 그중 약 500㎞를 동행한 미국 제임스 목사와 각별했다. 그는 내게 “Are you a Christian?”이라 질문해 그렇다고 대답하자, 다시 “Are you a born again Christian?”이란 질문을 던졌다. 제임스 목사와 긴 구간을 동행하며 많은 것을 배우고 느꼈다. 산티아고의 길과 어우러져 보람과 가치를 느끼게 한 사람이다.-이번 책 ‘잊혀진 나를 찾아가는 길’은 어떤 방식으로 썼는지.△지금까지 산티아고 순례길을 3번 완주했다. 이 책에 실린 이야기는 최초 방문했을 때 메모해둔 기록을 바탕으로 쓴 것이다. 첫 번째 시기는 ‘코로나19 사태’가 시작되기 전 약 한 달 남짓이었고, 최근 세 번째 다녀온 건 코로나19로부터 자유로워진 2023년 봄이었다. 매번 출발은 설렘 반 긴장 반으로 시작되지만, 일단 길 위에 올라서면 새로운 힘이 솟아난다. 자연이 준 신비한 기운 때문이 아닐까 한다. -책 제목이 흥미롭다.△제목은 직접 지은 것이다. 누구에게나 꿈이 있다. 그 꿈이 마음속에서 선명해질 때 ‘집념과 열정’이 생긴다. 꿈은 가슴에 품는 힘이며, 성공보다는 행복을 만든다. 이러한 에너지, 즉 열정은 인생 후반부터 강도가 떨어지기도 한다. 또한 길들여진 익숙한 프레임 속에서 오래 살아가다 보면 꿈과 열정 없이 무미건조한 삶으로 이어진다. 내가 미국 유학 시절에 꿈과 열정을 쏟았던 모습을 다시 살리고 싶은 생각에 ‘잊혀진 나를 찾아서’란 주제를 사용했다.-산티아고 순례길을 완주하던 날엔 어떤 감정이었나.△종착지인 산티아고 대성당 앞에 다가가면 “아! 나도 할 수 있어”란 형용할 수 없는 감정이 밀려온다. 자신과의 싸움에서 이긴 결과다. 완주를 끝내고 얻은 성취감은 오랫동안 사라지지 않는다. 안도감과 함께, 건강하게 버텨 준 두 다리에 감사를 느꼈다. 체중이 8kg 빠지고 더 건강해진 느낌이었다. 순례길은 신비스러운 바다와 같다. 비가 오면 비를 맞고, 눈이 내리면 눈을 녹인다. 바람이 불면 녹색의 파도가 순례자의 가슴을 요동치게 한다.-순례길을 걷고자 하는 이들에겐 들려줄 조언은.△산티아고 순례길 800㎞는 체력과 마음의 준비가 필수다. 누구나 준비를 잘하면 무사히 완주가 가능하다. 준비 기간은 개인 차이가 있지만 6~12개월이면 충분하다. ‘길에서 만나는 외국인과 말이 통하지 않으면 어떻게 할까’라는 두려움보다 자신감에 더 큰 무게를 두면 된다. -앞으로도 길 위에서 삶의 해답을 찾을 생각인지.△나는 걷기를 무척 좋아한다. 올 봄에는 영국 바스(Bath) 지방을 걸으며 힘을 얻고 왔다. 내년에는 남아메리카 태양의 도시 혹은, 잃어버린 도시라고 알려진 페루 마추픽추(Machu Picchu)에 도전하고 싶다. 자연은 명화(名756B)다. 이것을 깨닫는 자는 자연이 아름답다는 것에 매력을 느낀다, 이게 바로 나를 멈추게 하지 않는 도전의식이다.-여행에 관해 젊은이들에게 조언한다면.△여행은 닫힌 마음을 열어주고, 자기주도적 인생 경험을 가능하게 만든다. 요즘 젊은이들은 익숙해진 편리함을 벗어나야 한다. 그 속에 빠질수록 무기력이 찾아온다. 스스로 배낭을 메고 도전하는 습관은 자신의 인생에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자발적인 여행 습관은 인생을 성숙하게 만든다.-마지막으로 덧붙일 말은.△현대 문명은 인간을 편리함에 익숙하게 만들고, 그 익숙함에 속아 몸과 마음이 점점 무기력해지고 있다. 인생은 단 한 번이다. 건강을 지키는 건 우리들의 고귀한 책무다. 걷기만 잘해도 ‘생활습관병’을 예방할 수 있다. 걷기는 언제 어디서나 할 수 있고, 돈도 들지 않는다. 건강한 삶을 원한다면 오늘부터 걷기를 시작하면 된다. 건강은 행복의 밑거름이다. 여러분이 찾는 행복은 바로 자신 안에 있다./홍성식기자 hss@kbmaeil.com

2024-04-30

울창한 소나무숲 거닐며 피톤치드 샤워, 건강은 기본 힐링까지

100대 명산을 오르는 것 보다 더 좋은 것은? 동네 뒷산을 200번 오르는 것이다. 어느 산이든 곁에 있는 산이 최고이고, 접근성이 가장 큰 미덕이다. 산은 인(仁)과 통하니 수양에 좋고, 유산소 운동인 등산은 자체로 훌륭 한 건강 수단이자 치료제다. 세계에서 스트레스 지수가 가장 높다는 한국 중장년들이 그나마 잘 버티고 있는 것은 그들을 품어주는 산들이 주변에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이번에 소개할 산은 바로 이 컨셉에 가장 잘 들어맞는 곳이다. 도심과 가까이 있고 험하지도 않아 운동화와 물병을 챙기면 언제든지 오를 수 있다. 공기나 물처럼 너무 가까이 있으면 소중한 줄을 모른다고 하는데 자칫 이 산도 이런 범주에 들까 염려되는 곳이다. 너른 품을 열어 일상에 지친 포항시민들을 넉넉히 품어주는 양학산(良鶴山)을 소개한다. ◆부학산, 양학산, 방장산 등 다양한 이름양학산은 부학산, 방장산, 연화산 등 다양한 이름으로 불린다. 본래 이름은 무엇일까. 먼저, 방장산은 방장산터널 일대의 낮은 구릉을, 연화산은 대성사(大聖寺) 인근의 산을 지칭하는 것으로 보인다. (전체성, 대표성 떨어짐) 다음 양학산은 ‘양학동’이라는 행정동이 들어선(1966년) 후 정해진 일종의 행정명으로 고유성면에서 실격이다.그런 의미에서 ‘학이 날아오른다’는 뜻의 부학(浮鶴)이 가장 대표성을 띠고, 운치도 있어 본래 이름에 가장 가깝다는 판단이다. 무엇보다 산 주변에 학, 황새와 관련된 설화도 많이 등장해 역사, 고증에서도 유리하다. 이 산은 양학동, 대이동, 학잠동에 걸쳐 있는데 동(洞) 유래가 재미있어 잠깐 소개한다. 먼저 양학동은 기존에 있던 ‘득량마을’과 ‘학잠마을’ 이름에서 한글자 씩 따와 이름이 유래됐다. 득량의 기원인 ‘득량곡’(得良谷)은 마을에 득량지(池)가 있어 농사와 양식걱정이 없는 마을이라는 유래를 갖고 있다. ‘학잠’(鶴岑)은 뒷산의 묏부리 모양이 학이 내려앉는 모습을 닮았다고 해서 비롯됐다고 한다.대이동(大梨洞의) 유래도 재밌다. ‘대잠동’(大岑洞과) ‘이동’(梨洞)의 이름이 합쳐진 것인데, 대잠은 마을 한가운데로 산줄기(岑)가 길게 뻗은 데서, 이동은 마을 입구에 큰 배나무가 있어 이 지명이 붙었다. ◆KCC스위첸-양학연당-포항시청 코스 유명보통 양학산 등산로의 기본 코스는 KCC 양학스위첸으로 올라 부학정-양학연당-산림조합 뒤편으로 오른 후 제3체력단련장-이마트(이동점)-이동삼성아파트-방장산터널-전망대를 거쳐 포항시청으로 내려오는 7.5km 코스가 주류를 이룬다.이 코스의 장점은 크고 작은 소나무숲이 계속 이어진다는 점. 거목들이 군락을 이루거나 역사적 서사를 간직한 것은 아니지만 크고 작은 숲을 펼쳐 산행객들에게 피톤치드 세례를 만끽하게 해준다.전국적으로 소나무 재선충이 극성을 부리고 있다지만 이쪽은 해풍(海風) 덕인지 아직은 선방하고 있는 것 같다. 20리길 등산로가 성에 덜 차는 준족들은 서쪽 이동산 쪽으로 진행하거나 동쪽 연화재를 거쳐 아치재로 연장하기도 한다.전체 산세는 고도 200m 급으로 낮은 편이지만 지세가 평온해 저질 체력(?)들도 부담없이 오를 수 있다. ◆전망대-양학연당-부학정 등 곳곳에 명소이제 본격 산행에 나서보자. KCC 양학스위첸을 들머리로 잡고 올라 1시간쯤 지나면 아담한 정자가 하나 나온다. 양학동과 대이동을 한눈에 굽어볼 수 있는 부학정(浮鶴亭)이다. 산세가 학의 형상을 띠고 있어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아쉬운 것은 정자 이름을 한글로 표기했다는 점. 유감스럽지만 한글 간판으로는 ‘학이 날아오르는 정취’를 전혀 느낄 수 없다. 팝송을 한글로 적어 부르는 느낌이랄까?다시 북쪽으로 20분쯤 진행하면 ‘양학연당’이 나온다. 등산로에서 살짝 비켜서 있어 잠시 밑으로 내려가야 한다. 여름이면 못에 연꽃이 만발해 주민들에게 눈 호강을 시켜준다. 역시 아쉬운 점은 안내·해설 표지판이 없어 ‘연당’(蓮堂)인지 ‘연당’(淵堂)인지 헷갈린다는 점.길은 산림조합 뒷산을 거쳐 제3체력단련장으로 연결된다. 서쪽으로 이동산을 잠시 조망하며 걷다보면 이마트(이동점)에 이르는데, 여기서 잠시 도로로 접어들어 이동삼성아파트까지 진행한다.이동중학교-방장산터널을 지나 비탈길을 잠시 거친 호흡으로 오르면 전체 등산로 하이라이트 ‘전망대’에 이른다. 양학산 최고의 뷰 포인트로 시티뷰, 오션뷰를 두루 즐길 수 있다. 전망대 난간에 서면 영일만의 푸른 파도, 송도해수욕장과 우리나라 근대화의 상징 포스코 전경을 한눈에 굽어볼 수 있다. 전망대에서 서쪽으로 길을 접어들어 하산하면 전체 등산로의 종점 포항시청이 나온다.바다가 민물과 해류를 가려 받아들이지 않듯, 산도 희노애락 정서를 모두 품어준다. 연인, 벗들과 함께 하는 산은 희락(喜樂)일 것이고, 자녀 진로의 고민이 있는 주부나 시름에 찬 중년들이 오르는 산은 노애(怒哀)의 어디쯤 일 것이다.맘대로 따라주지 않는 자식으로 고민한다면, 취업·진로 문제로 우울한 청춘이라면, 직장의 진퇴를 놓고 고민하는 중년이라면, 지금 뒷산으로 오르라. 어진(良) 학(鶴)이 답으로 이끌 것이다. 양학산 일대 재미있는 지명들양학산 일대는 1980년대 이후 대부분 아파트촌으로 변했지만 아직도 군데군데 전통부락들이 많이 남아 있다. 재미있는 옛 지명들을 소개한다.▷선달각단=옛날에 무과 벼슬인 선달(先達)을 지낸 사람이 이 마을에서 살았다고 해서 유래된 이름이다.▷사장골(師丈谷)=문씨라는 선비가 현재 양학초교 근처에서 자리를 잡고 아이들을 가르쳤다고 하는 데 이 일대를 사장골이라고 부른다.▷가마골=마을 지형이 가마솥처럼 생겼다고 해서 유래된 이름이다. 이름처럼 이 골짜기는 겨울에도 따뜻하고 늘 의식(衣食)이 넘친다고 한다.▷못안(池內), 신지(新池)=득량못 안쪽에 있는 마을을 일컫는다. 이 못은 물이 깨끗해 붕어, 잉어 등 물고기들이 많이 잡힌다고 한다.▷큰골, 큰동네=학잠동에서 가장 큰 마을이다. 1974년 포항시 최초 아파트인 학잠아파트(현재 대림힐타운)가 들어섰다. 마을 입구엔 1981년 개장된 양학 시장이 있다./글·사진=한상갑기자 arira6@kbmaeil.com

2024-04-25

동쪽 해변에서 마주한 석양, 장엄하고 쓸쓸함에 ‘뭉클’

매양 입버릇처럼 하는 말이지만, 시간의 속도는 그 무엇보다 빠르다. ‘푸른 용이 여의주를 물고 온다’는 갑진년 벽두에 술렁이는 마음으로 새해 희망을 설계하던 게 엊그제 같은데, 이미 올해의 1/3이 흘러버렸다.외투 깃을 올려 세우던 1~2월 추위가 지나고, 3월엔 개나리와 매화를 필두로 벚꽃과 목련 등 봄꽃들이 피었다 지고, 중국에서 몰려온 누런 황사에 따가운 눈을 부비며 넣어뒀던 마스크를 꺼내 낀 채 거리를 걸었던 4월도 이제 막바지다.때론 날이 궂고 미세먼지가 호흡기를 위협하는 날들도 있지만, 그래도 봄은 산책하기 좋은 계절. 굳이 독일 철학자 프리드리히 니체(1844~1900)의 “세상 모든 위대한 생각은 걸을 때 떠오른다”는 문장을 가져다 쓰지 않더라도.멀지 않은 거리에 해변 여러 개가 있어 마음만 먹으면 언제라도 푸른 바다와 부서지는 하얀 포말을 만날 수 있는 포항은 어떤 면에선 축복받은 도시다.한적한 4월의 주말 오후. 양덕동에 자리한 시내버스 207번과 600번 종점에서 20~30여 분만 걸으면 닿을 수 있는 죽천해수욕장으로 봄 산책을 나선 건 ‘오랜만에 자연 곁에서 걸어볼까’라는 가벼운 마음에서였다. 감히 니체 흉내를 내서 ‘위대한 생각’을 하겠다는 건 아니었고.□ 한산하고 고적한 죽천해변이 주는 즐거움최근 몇 년 새 각종 드라마와 TV 연예오락 프로그램을 통해 포항은 여행자들 사이에서 ‘떠오르는 핫 플레이스’가 됐다.드라마 촬영지로 이름을 알린 구룡포와 월포해수욕장엔 젊은 관광객들이 적지 않게 찾아와 과메기와 대게를 맛본 후 일본인 가옥거리를 돌아보고, 파도타기 등 해양 스포츠를 즐긴다.한국에선 드물게 시내 한복판에 위치한 영일대해수욕장은 다양한 형태의 카페와 주점, SNS로 유명해진 맛집이 집중적으로 몰려 있어 사철 20~30대 청년들로 북적인다.죽천해수욕장은 앞서 말한 유명 관광지처럼 대중적으로 잘 알려진 해변은 아니다. 그러나, 시끌벅적한 관광지가 아닌 한산하고 고적한 분위기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충분히 매력을 느낄만한 공간임에 분명하다.인터넷에서 한국의 주요 여행지와 숙박업소, 소문난 맛집 등을 사진과 함께 간략하게 안내하는 ‘트립인포’는 죽천해수욕장을 다음과 같이 소개하고 있다.“죽천해수욕장은 경북 포항시 북구 흥해읍 죽천리에 있다. 광활한 동해를 배경으로 차박을 즐기기 좋은 명소로 알려지면서 전국 각지에서 많은 캠퍼가 모여든다. 낚시를 즐기는 여행자들도 즐겨 찾고, 여름 휴가철이면 해수욕을 만끽하고자 찾아오는 가족 단위 여행객도 많다. 포항IC에서 가깝고, 주변에 포항 해상스카이워크와 환호공원이 있어 연계 여행에 나서기 수월하다.”직접 가서 확인한 결과 위의 소개 중 반은 맞고 반은 틀린 이야기였다. 시야가 확 트인 널찍한 모래밭과 시원스레 펼쳐진 바다 풍경은 동해에 접한 여느 마을처럼 분명 근사했다.하지만, 차박을 준비하거나, 물고기를 낚는 이들은 한 명도 보이지 않았다. 물론 사람이 드물었던 이유는 아직 해수욕장이 진가를 발휘하는 여름이 아닌 이유도 있었을 터. 포항 시내와 그리 멀지 않음에도 인적이 드문 촌락 같은 풍경.조그만 텃밭에서 기른 마늘을 손질하던 할머니 한 분이 처음 보는 낯선 사람임에도 망설임 없이 기자에게 말을 걸어왔다.“어디서 왔어요? 8월에 오면 여기가 해운대나 경포대 못지않게 좋아요. 그때가 되면 내가 저기서 성게국수랑 파전도 만들어 파니까, 한여름에 꼭 한 번 다시 와요.”낯선 거리를 걷는다는 건 이처럼 예상치 않은 소박한 환대와 만나는 기쁨을 주기도 한다. 이런 게 바로 ‘산책의 즐거움’ 아닐지. □ 산책길의 끝에서 떠올린 김광균의 시 한 편따스하고 환한 웃음을 주고받으며 할머니와 몇 마디 더 이야기를 나눈 후엔 무작정 해변 마을 골목을 걸어 다녔다. 별다른 목적 없이 푸른 파도를 곁에 두고 청량한 봄볕 아래서 1~2시간쯤 걷는다는 건 나이·성별과는 무관하게 꽤 즐거운 일.커피와 아이스크림, 맥주와 칵테일 등을 판매하는 올망졸망한 카페가 2~3군데 문을 열고 있었으나 손님이 많진 않았다.죽천해변의 가장 큰 매력은 ‘한적한 평화로움’이라 할 수 있을 듯했다. 그리고, 이윽고 해가 저물기 시작했다. 바다를 지척에 두고 보는 석양은 비단 서해만 아름답진 않다. 동쪽 바다의 지는 해도 장엄하고 쓸쓸하기는 마찬가지다.죽천해수욕장의 고졸한 풍경 속에서 지켜본 4월 막바지 저물녘은 자연스레 한 편의 시를 떠올리게 했으니, 김광균((1914~1993)의 쓴 20세기풍 노래 ‘와사등(瓦斯燈)’이다.차단한 등불이 하나 비인 하늘에 걸려 있다내 호올로 어딜 가라는 슬픈 신호냐긴 여름해 황망히 나래를 접고;늘어선 고층(高層) 창백한 묘석(墓石)같이 황혼에 젖어찬란한 야경 무성한 잡초인 양 헝클어진 채사념(思念) 벙어리 되어 입을 다물다피부의 바깥에 스미는 어둠낯설은 거리의 아우성 소리까닭도 없이 눈물겹고나공허한 군중의 행렬에 섞이어내 어디서 그리 무거운 비애를 지니고 왔기에길게 늘인 그림자 이다지 어두워내 어디로 어떻게 가라는 슬픈 신호기차단한 등불이 하나 비인 하늘에 걸리어 있다. □ 봄날 해변을 걸으며 깨달은 작은 진실북한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을 보냈지만 끝내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남한에서 죽음을 맞은 시인은 ‘피부의 바깥에 스미는 어둠’ 혹은, ‘공허한 군중의 행렬’에서 덧없는 인간의 삶을 읽어냈다.물리적으로 무게가 없는 그림자가 무겁게 느껴지고, ‘어디를 거쳐 어디로 가라’는 신호기가 차단된 세상에서 외롭지 않은 사람은 없다.또한, 고독하지 않은 생(生)도 없을 게 분명하다.죽천해변에서 마주한 석양은 세상에 존재하는 수많은 진실 중 작은 하나를 새삼 깨닫게 했다. 그건 바다의 가르침이었을까? 시인의 인생 해설이었을까?2005년 4월. 1개월 일정으로 인도 남부를 여행했다. 아라비아해(海)에 접한 고아(Goa)는 1960~1970년대 제도부터의 자유와 억압으로부터의 해방을 지향하는 히피(hippie)들의 성지로 이름이 높았다.1961년까진 포르투갈의 식민지였기에 소를 신성시하는 인도임에도 소고기 요리가 있는 지역. 인도이면서도 ‘인도다움’이 별반 느껴지지 않는 고아엔 수십 개의 해변이 있다.독일과 프랑스, 스웨덴과 네덜란드에서 온 젊은 여행자들은 짧게는 1~2주, 길게는 몇 개월씩 언주나, 팔롤렘, 콜람 등의 이름이 붙은 해변의 허름한 숙소에 머물며 진홍빛 석양과 어울려 논다. 낮에는 수영을 하고 밤에는 파티를 즐긴다.19년 전 바로 거기서 포항 죽천해변과 너무나 닮은 조용하고 한산한 베나울림해변을 만났다. 지는 해가 선사하는 심장 두근거림은 포항 죽천과 인도 베나울림이 다를 바 없었다. 바로 그 두근거림이 주제넘게 니체처럼 말하게 한다.“비록 덧없고 고독할지라도 삶은 포기해선 안 될 빛나는 어떤 것이다.”/홍성식기자 hss@kbmaeil.com

2024-04-23

청정자연·전통문화가 반기는 ‘체류형 관광 1번지’로

청정한 환경에 볼거리와 즐길거리 많은 청송군이 ‘산소 카페’라는 도시 슬로건에 어울리는 문화관광 환경 조성을 위해 적극 나서고 있다. 올해 다양한 관광 시책사업을 추진해 ‘함께하는 문화관광, 상생하는 산소카페 청송군’으로 도약을 준비 중인 것.지금은 관광의 트랜드가 바뀌고 있는 시대다. 유명세를 떨치는 관광지보다는 관광객이 몰리지 않는 여행지를 선호하는 경향이 두드러지고 있는 가운데, 오랜 역사와 전통이 살아있는 고택이 즐비하고 다양한 지질 현상이 만들어내는 깨끗한 생태환경이 보존돼 유네스코 세계지질공원으로 인증 받은 청송군이 관광객들의 눈길을 사로잡는 대표적 체류형 관광도시로 각광받고 있다. □문화관광도시 조성으로 지역경제 활성화청송군은 이러한 관광 트렌드에 발맞춰 체류형 관광도시로 발돋움하는 과정에서 크고 작은 관광사업을 통해 군의 특징을 살린 문화관광 정책을 추진함으로써 지역경제를 활성화할 예정이다. 특히 ‘산소카페 청송군’의 차별화된 청정자연과 유서 깊은 전통문화, 참신하고 다양한 문화 관광 콘텐츠를 융합해 한층 많아진 관광수요에 부합하는 지역 관광의 새로운 표준을 만들어갈 전략을 세우고 있다.청송군은 ‘주산지 관광지 조성사업’, ‘한옥스테이 사업’, ‘골목경제 회복 지원사업’ 등을 통해 유동 인구를 늘리고 지역 경제를 더불어 활성화시킬 복안을 가졌다. 특히 호텔과 글램핑장을 갖춘 이색 숙박시설을 조성해 젊은 세대와 가족 단위 여행객들이 지역에 더 오랫동안 머물게 하고, 달기 약수탕 거리 환경 개선과 메뉴 다양화로 관광객들의 입맛까지 사로잡을 수 있는 관광정책 다변화를 통해 청송형 관광사업의 외연을 확대해 나갈 예정이다.이와 함께 지역민들의 여가 생활과 건강까지 책임질 수 있는 청송 아웃도어 골프장과 진보면과 산남지역에 파크 골프장을 조성해 관광객들이 청송의 수려한 자연을 즐기는 공간으로 제공할 계획이다.더불어 청송을 대표하는 ‘청송사과축제’를 적극 활용해 관광 활성화를 이끌어 나간다는 계획도 세웠다. 올해 개최되는 제18회 청송사과축제는 새로운 프로그램 개발 등 청송사과축제만의 장점과 색깔을 담아내 청송사과의 브랜드 가치를 높이고, 청송군의 위상에 걸맞은 최고의 사과축제를 준비할 계획이다.이와 관련해 윤경희 청송군수는 “볼거리, 즐길거리, 먹을거리가 공존하고, 사람의 숨결까지 어우러진 최고의 문화관광 도시를 만들고 지역주민의 일자리를 늘려 관광을 통한 실질적인 지역경제 활성화를 이루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할 것”이라고 부연했다. □2024년 12월까지 ‘유네스코 세계지질공원’ 지위 유지청송군은 유네스코 세계지질공원의 첫 재인증에도 성공했다. 유네스코 세계지질공원 운영위원회는 지난해 9월 현장평가를 통해 청송 유네스코 세계지질공원 관리·운영 현황을 점검했고, 이를 토대로 유네스코 세계지질공원 최종이사회에서 재인증을 뜻하는 ‘그린카드(Green Card)’ 부여를 의결했다.지난해 6월 9일 공식 문서를 통해 유네스코 세계지질공원의 재인증을 확정받은 청송군은 ‘코로나19 사태’로 연기됐던 현장평가 기간을 포함해 2024년 12월까지 유네스코 세계지질공원이라는 세계적 브랜드 도시로서의 지위를 유지하게 됐다.유네스코 세계지질공원 집행이사회는 청송군이 2017년 최초 인증 당시 받았던 권고사항을 충실히 이행하였을 뿐 아니라, 지질유산과 문화유산의 연계, 지역주민 협력, 인구감소 및 기후변화 대처, 교육관광 프로그램 운영 등에 있어 유네스코가 추구하는 방향성과 취지에 맞게 세계지질공원을 관리·운영 했다는 점을 높이 평가했다.지난해 9월 청송군을 방문했던 현장평가단은 “지질공원 발전을 위한 청송군 관계자들과 지역주민의 적극적 지원과 노력이 돋보였다”며 “기후변화 및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한 지질공원 운영 목표와 지역주민 및 학교와의 협력은 전 세계 지질공원들이 벤치마킹할 만한 우수 사례로 판단된다”고 평했다.현장평가 위원장이었던 트란 탄 반(베트남)은 유네스코에서 세계지질공원을 그 취지에 맞게 운영한 세계지질공원에 부여하는 모범 운영 상(Best Practice Award)을 신청하라는 의견과 함께, 자신이 추천서를 제출하겠다는 의향을 내보였다.청송군은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인해 재인증 평가 기간이 조정됨에 따라, 내년에 두 번째 재인증 평가를 받게 됐다.두 번째 재인증을 위해 청송군은 지질공원 가시성 확대, 교육 및 관광프로그램 운영 대상 확대, 인프라 조성, 국내외 교류활동 추진 등 유네스코 세계지질공원 평가기준에 맞춘 지질공원 운영에 노력할 예정이다.□이색 숙박시설 만들고, 달기약수탕 거리 활성화최근 청송군은 경북도가 주관하는 ‘경북형 이색숙박시설 조성사업’ 공모에 최종 선정돼 사업비 100억 원을 확보했다. 이 공모사업은 글로벌 K-관광선도와 외국인 관광객 300만 명 시대를 여는 ‘경상북도 2030 관광 비전 목표’로 추진하는 사업이다.숙박시설 자체만으로 지역을 대표하는 관광자원이 되도록 유휴시설을 활용해 경북형 이색숙박시설을 조성하는 이번 사업의 대상지는 주왕산면 하의리 일원 청송양원(구 주왕산초등학교)으로 지난 2009년 청송군이 매입해 현재 예비군면대, 산불진화대 사무실 등으로 사용하고 있다.총사업비 100억 원으로 건축설계를 공모해 2026년 상반기 준공을 목표로 가족형호텔 15실, 청송사과 글램핑장 15곳, 바비큐장 15곳, 트리하우스 4곳, 라비에벨 카페식당, 야외물놀이장, 주차장 등을 조성할 계획이다. 호텔의 편안함과 캠핑의 즐거움, 그리고 산소카페 청송군의 아름다운 자연을 느낄 수 있는 이색 숙박시설을 조성한다는 것이 청송군의 각오다.또한, 이 사업은 청송의 주요 관광지인 주왕산, 주산지, 얼음골, 유교문화전시체험관 등 지역관광자원 연계와 관광객을 위한 체험관광 프로그램 개발로 이어져 일자리 창출과 지역경제 활성화에도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이외에도 청송군은 지난해에 이어 2년 연속으로 행정안전부 맞춤형 골목경제 활성화 공모사업에 선정됐다. 프로젝트의 세부 명칭은 ‘달빛 내려앉은 달기약수거리 활성화사업’이다.달빛 내려앉은 달기약수거리 활성화사업은 20억 원의 사업비로 수변테크 설치, 경관조명 설치, 노후된 약수탕 환경개선 등 가로환경개선사업을 진행하고, 관광객들의 체험과 휴식을 제공하기 위한 문화복합공간인 로컬 앵커스토어 건립 등도 추진한다.청송군은 이 공모사업을 통해 과거 달기약수탕의 명성을 되찾고 MZ세대들의 발길을 끌어들일 수 있도록 새롭게 단장해 달기약수탕 주변의 골목경제를 활성화 시킨다는 계획이다. 이에 더해 달기약수탕 상가지역 주민과 상인으로 구성된 골목경제 공동체 추진위원회를 구성해 지역주민과 상인이 주도적으로 참여하고 청송군이 협력해 사업을 추진해 나갈 방안도 마련된다. □맨발 걷기 명소로 주목받는 산소카페 청송정원이미 입소문을 통해 관광 랜드마크로 자리 잡은 ‘산소카페 청송정원’도 건강을 지켜주는 관광지로 주목받고 있다.4만2000평 규모의 백일홍 정원인 산소카페 청송정원은 연간 20만 명이 찾는다. 최근엔 맨발 걷기 열풍이 불고 있어 힐링 건강 명소로도 인기가 높다.실제로 청송정원에선 맨발로 걷는 관광객이나 군민들을 적지 않게 확인할 수 있다. 이는 맨발 걷기가 혈액 순환 개선과 활력 충전, 우울감 해소 등에 효과가 있어 사람들이 관심을 가진 결과로 해석된다.청송정원의 백일홍 향과 맑은 공기를 호흡하며 걷는 것은 자연의 아름다움을 느끼며 스트레스를 해소할 뿐 아니라, 혈액순환 촉진과 항산화 작용에도 도움이 되고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견해다. 청송정원 산책로에는 태양광으로 밤에도 불을 밝히는 안심가로등이 설치돼 있어 야간에도 안심하고 산책이 가능하다. 앞으로도 청송군은 맨발 걷기를 하는 이들을 위해 안내 입간판, 신발장 등 편의시설을 설치하고, 걷기 지도자를 초빙해 맨발 걷기의 기본 자세와 주의점 등을 교육하는 프로그램을 진행하게 된다.앞서 언급된 것처럼 문화관광의 활성화로 지역경제 발전을 모색하는 청송군의 노력은 현재도 활발하게 진행 중이다./김종철·홍성식기자

2024-04-22

선거 결과에 유권자들 일희일비, 나무 ‘불변성’에서 교훈 얻길

온 나라를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22대 국회의원 선거가 며칠 전 끝났다. 그 결과 야당은 크게 웃었고, 여당은 침통함을 감추지 못했다. 전 법무부장관이 만든 신생 정당은 기대 이상의 성과를 얻어 곧 개원될 국회에서 정치적 입지를 다지게 됐다. 필부(匹夫)에 불과한 기자로선 어느 당이 국회의 패권을 장악하건 입법 권력이 국민들에게 희망과 신뢰를 주는 방향으로 나아갔으면 하는 바람이다.기자의 기억 속에 자리한 첫 국회의원 선거는 1985년 실시된 12대 총선. 유세가 진행된 인근 초등학교 운동장이 시끌벅적했고, 목소리 높인 후보들 간의 모략과 비방, 선거운동원들 사이의 욕설과 주먹질을 보며 ‘참으로 개판이군’이란 생각을 감출 수 없었다. 그때부터였을 것이다. 기자는 선거를 통한 민주주의의 발전을 회의하는 사람이 됐다. 이를 ‘정치 허무주의’라고 비난할 사람도 없지 않겠으나, 어쨌건 지금도 여전히 한국의 정치와 정치인에게서 미래와 희망, 믿음과 화합을 기대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어디서 희망과 믿음을 찾아야 할까? 볼프강 폰 괴테(1749~1832)는 자신의 희곡 ‘파우스트’에서 악마 메피스토펠레스에게 이런 말을 하게 만든다.“모든 이론은 회색이며 오로지 영원한 것은 저 생명의 나무 뿐이다.”이 문장에 등장하는 ‘나무’가 정확히 어떤 상징과 은유로 사용된 것인지에 관해서는 수백 년 동안 견해가 분분했다. 아직도 해답이 나오지 않았다. 문학의 해석에서 정답이란 없는 것이기도 하고.다만, 다른 예술 장르에선 ‘나무’가 어떤 은유와 상징으로 등장하는지 살펴본다면 해답에 조금은 가까이 접근할 수 있지 않을까? ▲시인 로트레아몽이 노래한 ‘나무’는…에스파냐어를 사용한 작가 중 ‘19세기 최고의 표상주의 시인’으로 추앙받는 이지도르 뒤카스(1846~1870·로트레아몽)가 쓴 단 한 줄짜리 짧은 시가 있다.많은 독자들이 읽었으나, 정작 그 안에 담긴 함의를 제대로 읽어내기는 어려운 단시(短詩).시인을 꿈꾸던 수많은 문학청년들에게 ‘이런 걸 써낼 수 있어야 한다면 나는 절대 시인이 될 수 없겠구나’라는 깊이 모를 절망과 ‘기필코 나도 인간의 심장을 떨리게 하는 이런 좋은 시를 쓰고야말겠다’는 뜨거운 열망을 동시에 안겨준 작품. ‘나무’라는 제목을 단 시의 전문은 다음과 같다.‘나무는 자신의 위대함을 모른다.’겸손할 줄 모르는 오만과 스스로의 능력과 주제를 파악하지 못하는 것에서 오는 터무니없는 자만에 콧대만 높던 문학소년들에게 로트레아몽의 ‘나무’가 던진 충격은 컸다.하나를 알고도 열을 아는 것처럼 짐짓 목소리를 높이던 문청들을 한없는 자기반성 속으로 이끌었던 이 시는 “나무는 왜 위대한가”라는 의문을 동시에 던진다. 시인을 꿈꾸던 적지 않은 이들이 살아온 시간은 혹시 그것에 대한 해답을 찾기 위한 과정이 아니었을까?영화팬들에겐 두려움과 역겨움이 싫으면서도 공포영화에 집착하는 시절이 있다. 커다란 전정가위로 사람의 목을 잘라버리고, 바나나를 먹는 살찐 여자의 목에 나이프를 꽂는 미국 호러물에서부터 하얀 옷을 입은 귀신이 음습한 별장 지붕 위를 날아다니는 한국의 괴기영화까지.공포영화에 대한 집착은 인간 외부에 자의와는 무관하게 존재하는 두려움을 떨치기 위한 목적의식 때문이었을 터. 원래 젊은 시절이란 ‘자기 자신’ 외에는 아무 것도 무서워하지 않는다는 걸 보여주고 싶은 열망에 휘둘리는 때이기에 그랬을 것이다.그런데, 그 공포영화들마다 나무가 등장했다. 늪지의 가장자리에 머리를 푼 원귀의 모습으로, 또는 불어오는 바람에 몸을 뒤채는 은빛 여우의 울음을 울며.그렇다면 나무의 은유 중 하나인 ‘위대함’이란 인간이 범접할 수 없는 어떤 두려움을 그 안에 간직함으로써 얻어진 것일까? ▲‘나무’가 상징하는 두려움과 사랑하지만, 단순한 공포의 대상이 위대함이 될 수 없다는 걸 깨닫는 순간 ‘그건 아니다’라는 대답을 어렵지 않게 체득할 수 있다.오랜 기간 한국을 철권통치한 군부 출신 정치인 박정희나 전두환이 두려움의 대상일 수는 있지만, 그들이 위대했느냐 그렇지 않았느냐는 또 다른 차원의 문제인 것처럼.길게는 수십 년, 때로는 수백·수천 년을 한 자리에 꼿꼿하게 서서 비바람을 견딘다는 불변의 오만함 탓일까. 나무는 영원불멸의 사랑을 은유하는 대상으로도 곧잘 사용돼 왔다. 강제규 감독의 ‘은행나무 침대’, 노무현 정권 초기 문화관광부 장관으로 일한 이창동 감독의 ‘오아시스’가 현실에서의 그 사례다.저 먼 신라시대부터 20세기 말까지 자그마치 1천500년을 살아온 은행나무로 만든 침대에 전생(前生)에 목숨을 걸만큼 절실하게 사랑했던 여인의 혼이 들어있다는 설정(은행나무 침대)과 비록 성치 못한 몸이지만 서로의 아픔과 고통, 힘겨운 영혼까지 온전히 끌어안은 두 사람의 끈끈한 애정을 한밤에 베어지는 나무를 통해 형상화해낸 영화(오아시스).‘은행나무 침대’와 ‘오아시스’는 우리로 하여금 “나무의 위대함이란 불변하는 사랑을 은유함으로써 증명되는 것이 아닐까”란 독백을 하게 만든다.그러나 이 역시 만족스런 해답은 아니었다. 세상에는 남녀 간의 사랑 외에도 불변하는 것이 너무나 많다는 것을 이미 알아버린 이후였기에. ▲희망·믿음, 무엇으로도 파괴할 수 없는 것1990년대 중반. 우연히 극장에서 만난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의 ‘희생’은 많은 관객들의 감수성을 자극하며 ‘나무’에 관한 예상치 못한 깨달음을 선물했다.“태초에 말(言)이 있었다고 한다.그러나, 너는 그와는 무관하게 침묵하고 있구나. 마치 일생 말없이 물속을 헤엄치는 철갑상어처럼.”이 독백으로 시작하는 구 소련 거장의 영화는 “바람 속을 떠가는 구름의 소리까지 카메라에 담아냈다”는 영화평론가들의 극찬과 함께 ‘주목할 만한 20세기 영화’ 중 한 편으로 기록된다.영화 ‘희생’이 전하는 메시지는 의외로 간명하다. 사람을 구원하는 것은 다른 무엇이 아닌 ‘어떤 상황에서도 희망은 사라지지 않는다’라는 믿음. 이처럼 간단하지만 변하지 않는 진리의 잠언이 담긴 영화 ‘희생’.그렇다. 오늘날 현실에서 정치와 정치인이 주는 실망과 환멸이 아무리 크다 해도 그건 인간이 존재하는 한 사라지지 않을 ‘희망을 믿는 사람들’을 이길 수 없고, 그래서도 안 된다.‘희생’에 등장하는 아버지가 이미 죽은 나무에 물을 주면서도 포기하지 못했던 생명에 대한 외경과 부활에의 믿음. 우리의 생은 바로 그런 희망과 신뢰란 벽돌로 축조돼 왔고 앞으로도 그것들로 만들어져 나갈 것이 분명하다./홍성식기자 hss@kbmaeil.com

2024-04-16

70층 랜드마크 타워 오르니 ‘야경천국’이 열렸다

일본 여행이 붐을 이루고 있다. 벚꽃 계절을 맞아 도쿄나 오사카, 후쿠오카 등 일본의 대도시로 여행을 떠난다. 요코하마는 도쿄도에 속해있는 매력적인 항구도시지만 의외로 잘 찾지 않는 곳이기도 하다. 오래전 일본 요코하마를 찾은 적이 있었다. 요코하마 항구도시의 후미진 이자카야에서 경쾌한 노래가 흘러나왔다. ‘블루나이트 요코하마’가 반복되는 이 노래는 이시다 아유미라는 가수가 부른 엔카였다. “거리에 네온사인이 너무도 아름답네요 요코하마 푸른 등 요코하마 당신과 두 사람 행복해요 언제나처럼 사랑의 말을 요코하마 푸른 등 요코하마….” 나중에야 가사를 알게 됐지만 당시에도 항구의 불빛은 아름다웠다. 블루나이트 요코하마는 일본 대중문화가 개방되기 전에 들어와 큰 인기를 끌었던 노래다. 20년이 지나 요코하마를 다시 찾으니 항구는 상전벽해를 거듭했고 푸른 등이 반짝이던 항구는 영롱하기 이를 데 없는 불빛이 보태져 빛의 향연을 펼치고 있었다. 요코하마는 높은 자부심과 빼어난 패션 감각을 지닌 사람들이 사는 도시이자 최첨단과 레트로가 뒤섞인 매력적인 도시였다. ◇ 미나토미라이21 계획으로 성장한 도시요코하마는 도쿄를 자주 찾는 관광객도 의외로 잘 들르지 않는 곳이다. 도쿄 인근의 잘 알려진 관광지인 가마쿠라를 가기 전에 들르는 이들은 있어도 작정하고 요코하마를 찾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터놓고 이야기하자면 요코하마에는 이름만 들어도 알 만한 관광지가 거의 없다. 그런데도 요코하마를 찾은 이들은 요코하마에 묘한 매력이 있다고 말한다. 요코하마는 원래 160년 정도의 짧은 역사를 지닌 젊은 도시다. 에도시대(1603~1867)만 해도 겨우 100가구가 사는 반농반어의 초라한 어촌마을이었다. 개항이 되면서 사람들이 몰렸지만 간토대지진과 미군 대공습(1945)으로 도심 절반이 파괴됐다.요코하마가 일어서기 시작한 것은 1960년대부터다. 경제 고도 성장기인 1963년 취임한 아스카타 이치오 시장은 국제문화도시를 만들겠다는 야심찬 계획을 세우고 도심부를 강화하는 미나토미라이21 프로젝트를 추진했다. 미래의 항구를 새롭게 그리겠다는 뜻을 담은 미나토미라이21 프로젝트는 요코하마가 자립해 살 수 있는 토대를 만들고 수도권 기능 분담을 목적으로 계획됐다. 1.86㎢에 이르는 바다를 메우고 그 땅에 주택지를 조성했다.현재는 쇼핑몰과 미술관 공원이 들어서서 요코하마의 주요한 관광 코스가 됐다. 오산바시 국제여객터미널에서 바라본 고층빌딩 밀집지역은 풍경이 아름다워 사람들이 즐겨찾는 명소 중 하나다. 환상적인 야경 스카이라인에 탄성이 절로 나온다. ◇ 근대의 상징이 된 뉴그랜드호텔미나토미라이역 21지구의 도심 재개발 사례 중 대표적인 예가 미나토미라이역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는 요코하마 아카렌가 창고다. 붉은 창고라는 뜻의 아카렌가는 영화나 드라마 촬영지로 종종 이용되는 이색적인 곳이다. 아카렌가는 1911~1913년 다이쇼 시대 정부의 보세 창고로 세워진 두 동의 붉은 별돌 건물로 이뤄져 있다. 원래 이곳은 일본 최초의 근대적 항만시설이었다고 한다. 1989년 창고의 사명을 다한 후 9년 동안 역사적 건조물로서 복원공사를 거쳐 2002년 문화상업시설로 새롭게 문을 열었다.아카렌가 창고 1호관은 다양한 기념품점이 들어서 있다. 일본에서도 인기가 높은 요코하마 베스트나 아카렌가 데포 등이 입점해 있다. 2층은 전시나 파티 공간, 3층은 연극과 콘서트 공간 등으로 활용되고 있다. 아카렌가 창고 2호관은 층마다 서로 다른 테마로 꾸며져 있다. 1층은 세계 각국 요리를 선보이는 캐주얼 레스토랑과 카페, 소품전문점 등이 있고 2층은 고급 엔티크 가구점, 3층은 중국 요리 전문 레스토랑과 바가 들어서 있다. 아카렌가 창고는 밤이면 더 아름답다. 벽돌 주위로 불빛이 일제히 빛나면서 환상적인 분위기를 연출한다.서구 문물이 들어오던 시절의 유산은 요코하마 곳곳에 근대 서양식 건축물로 고스란히 남아 있다. 그중 하나가 1927년 문을 연 뉴그랜드호텔이다. 간토대지진으로 폐허가 된 땅에 세워진 근대식 건축물은 요코하마를 발전시키고 싶어 한 당시 사람들의 염원이 모인 곳이기도 하다. 벌써 90년의 세월이 흘렀는데도 뉴그랜드호텔은 마치 세월이 비켜간 듯 당시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조금 촌스러운 느낌이 드는 푸른 융단에 육중해 보이는 돌계단, 마치 천장까지 이어질 듯한 높고 긴 유리창, 탁자와 의자까지 클래식하다. 심지어 90년 전에 만들어진 엘리베이터가 지금도 작동하고 있다. 요코하마의 역사와 같이한 호텔이다 보니 2차대전 당시 점령군으로 일본을 통치했던 맥아더 장군은 물론 찰리 채플린, 베이브 루스도 이곳에 묵은 적이 있다. 이 호텔 2대 총주방장이 만든 나폴리탄 스파게티는 지금도 호텔의 주메뉴일 뿐만 아니라 일본 전역에서 즐겨먹는 스파게티의 원조가 됐다. 1991년 신관이 새롭게 문을 열었지만 중후하고 클래식한 분위기 때문인지 구관에 투숙객이 더 많은 것은 물론 많은 이가 찾는 관광명소가 됐다. ◇ 요코하마 관광의 백미 눈부신 야경요코하마 관광의 백미는 야경이다. 일본에 수많은 야경 명소가 있지만 요코하마 야경은 3대 야경이니 5대 야경이니 하는 순위에 포함되지 않는다. 요코하마 야경은 이미 다른 야경지의 수준을 넘어섰다고 요코하마 사람들은 자랑한다. 요코하마 사람들의 자부심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실제로 야경을 보면 놀랄 만큼 눈부시다.요코하마의 야경 포인트 중 한 곳은 70층짜리 랜드마크 타워에서 관람하는 것이다. 랜드마크타워는 미국 건축가 휴 스티븐스의 설계로 1993년 지어진 296m 초고층 빌딩이다. 오사카의 아베노 하루카스(300m)가 건설되기 전까지 일본에서 가장 높은 빌딩이었다. 세계에서 두 번째로 빠른 엘리베이터로 약 40초(분속 740m) 만에 69층 전망대에 오르면 요코하마의 전경이 360도로 펼쳐진다. 전망대는 오후 5시부터 야경을 찍으려는 사람들로 붐비기 시작한다. 저마다 삼각대를 걸쳐놓고 요코하마항과 도쿄 도심까지 알록달록하게 펼쳐진 색의 향연을 카메라에 담기 위해 자리 다툼을 벌인다. 요코하마항 풍경도 빼어나지만 후지산을 중심으로 서서히 지는 낙조는 한 폭의 그림처럼 매력적이다.랜드마크타워 바로 옆에는 160여 개의 상점과 레스토랑이 밀집해 있는 대형 쇼핑몰인 랜드마크플라자가 있다. 해외 유명 브랜드와 일본 디자이너 편집숍이 들어서 있다. 랜드마크플라자 옆에는 로마 원형경기장처럼 생긴 도크야드가든이 이채롭다. 원래 이곳은 1896년에 선박 및 항만 관련 시설 정비용 도크로 지어진 곳이다. 선박들이 점차 대형화되면서 조선소가 옮겨갔고, 제기능을 상실했다가 1995년 국가 중요문화재로 지정돼 현재 모습으로 복원됐다.야경을 찍을 수 있는 또 하나의 명소는 아카렌가 창고에서 멀지 않은 요코하마항 오산바시에서 미나토미라이지구를 바라보는 풍경이다. 고층 빌딩들이 일제히 불을 밝히고 대관람차가 시간대에 맞춰 돌아가기 시작한다. 바야흐로 빛의 축제가 펼쳐진다. 이곳이 야경천국 요코하마다. /일본 요코하마=글·사진 최병일 여행전문기자

2024-04-11

‘승자와 패자의 드라마’ 볼만한 정치 영화 어때요

“실정을 거듭하는 정권을 심판하자”는 구호와 “야당의 부도덕한 범법자들에게 표를 주면 안 된다”는 주장이 대립하는 2024년 봄이 지나고 있다. 오늘은 22대 국회의원 선거일. 가파르게 상승하는 물가와 뉴스를 통해 연일 들려오는 국회의원 후보자들의 탈법과 불법 사례, 양보와 화합이 아닌 극한 대결로만 치닫는 정치권을 보고 있으면 “봄은 왔으나 봄이 봄 같지 않다”는 끌탕이 절로 나온다. 그러나, 여당과 야당 모두에게 실망했다고 해서 유권자로서의 권리를 포기할 수는 없는 일. 정치학자들의 말처럼 ‘선거란 최선이 아닌 차악을 선택하는 행위’다. 식상한 레토릭이지만 ‘나의 소중한 한 표’가 이 땅 민주주의 발전에 기여할 것이기에 다시 투표장으로 향하는 발걸음들. 일찌감치 투표를 끝낸 독자들이 있다면 오후엔 아래 추천하는 영화를 보며 한국의 정치와 선거에 관해 곰곰이 생각하는 시간을 가져보길 권한다. 자연스레 현실에서의 국회의원 선거를 떠올리게 하는 ‘특별시민’배우 최민식이 뿜어내는 아우라(Aura)를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영화 ‘명량’에서 열세에 몰린 조선 장군의 고뇌를 연기할 때도, 타자의 고통에 전혀 반응하지 않는 연쇄살인범으로 변신한 ‘악마를 보았다’에서도, 크나큰 상처를 지낸 채 살아가는 지리산 호랑이 사냥꾼으로 분한 영화 ‘대호’에 출연했을 때도 그는 돌올했다.사람에 따라 평가는 갈리지만, 최민식이 ‘연기 잘하는 배우’란 걸 부정할 영화팬은 많지 않을 듯하다. 그가 지닌 가장 큰 장점은 캐릭터와의 밀착력이다. 감독과 관객이 원하는 존재로의 자연스러운 변신, 영화 속 인물로의 완벽한 몰입.“배우라면 그게 당연하다”고 말할 수 있겠으나, 최민식 정도의 변신과 몰입은 아무나 흉내 낼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라는 게 기자의 생각이다.출연하는 영화마다 자신의 존재를 각인시켜온 최민식이 3선 국회의원 출신의 재선 서울시장으로 나오는 영화가 ‘특별시민’이다.비단 한국만이 아니다. 세계 어느 곳 할 것 없이 정치인들이 벌이는 최고의 이벤트라 할 선거를 꼼꼼히 들여다보면 ‘쇼(Show)’라는 단어가 발견될 게 분명하다.‘특별시민’은 눈앞에 닥친 선거의 승리를 위한 정치인들의 복마전과 이전투구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유권자들 앞에서는 “국민 행복과 공공의 이익을 위하여”를 외치다가 이내 돌아서서 “나와 가족의 이익을 위하여”라며 음흉하게 웃는 정치인과 선거의 어두운 이면에 카메라를 들이댄 것이다. ‘특별시민’의 무대가 되는 공간은 한국의 서울시. 서울시청사는 물론, 여의도 국회의사당과 청와대까지 거침없이 비추는 연출자 박인제 감독의 카메라는 2024년 4월 현재 진행되고 있는 국회의원 선거를 자연스레 떠올리게 만든다.‘특별시민’은 상영 시간 내내 영화와 현실의 경계에서 쓴웃음을 짓게 한다. 거듭되는 저급한 수준의 네거티브 공세와 공작 정치의 향기가 진하게 풍겨오는 선거캠프의 운동원들, 함량 미달의 정치인을 그럴듯하게 포장하기 위한 억지스러운 미디어 연출… 이쯤 되니 ‘특별시민’은 허구를 재료로 만든 극영화가 아닌 사실에 근거한 다큐멘터리처럼 보일 지경이다. 시종 흥미와 긴장감을 유지하는 사실적 연출은 ‘특별시민’을 특별하게 느껴지게 한다. 이는 박인제가 성취한 연출의 승리다.하지만, 박 감독이 이룬 작은 승리의 배후에는 영화 속 서울시장 후보 변종구의 큰 승리가 있다.젊은이들의 관심을 끌기 위해서라면 래퍼 분장도 마다치 않고, 묘하게 조작된 동영상을 통해 대중들의 마음을 들었다 놓았다 하며 선량한 정치인을 가장하는 변종구. 그러면서도 아내에게는 폭력적이고, 아랫사람에게는 권위적인 이중성을 시시때때로 드러내는 변종구….누구라 특정할 것도 없이 우리는 지금까지의 한국 정치 현실에서 얼마나 많은 ‘변종구’를 봐왔던가. 거기서 생긴 실망감이 ‘정치(선거) 허무주의’로 이어졌다고 하면 지나친 과장일까? 그렇지 않아 보인다.최민식은 다중성을 지닌 자신의 극 중 캐릭터 변종구를 완벽하게 소화해냈다. 앞서 말한 능수능란한 영화적 변신과 몰입을 통해. ‘특별시민’이 최소한 ‘재밌는 영화’로는 불릴 수 있는 이유다.그리고 마지막으로 하나 더. 정치와 정치인을 다룬 이전의 한국 영화들과 달리 ‘특별시민’은 끝까지 선과 악에 대한 감독의 자의적 가치 판단을 드러내지 않는다. 그 모호함이 세련됨으로 관객들에게 다가오는 건 영화가 주는 덤이다. 부패한 정치인과 조직폭력배에 관한 영화적 성찰 ‘레전드’20세기를 통틀어 ‘가장 용감했던 여기자’를 꼽으라면 누구도 감히 이의를 제기하기 어렵다. 오리아나 팔라치(1929~2006)가 바로 그 위치를 점한 사람이란 것에 관해.레지스탕스 아버지 밑에서 태어나, 2차 세계대전을 겪으며 수많은 죽음의 고비를 넘겼다. 뿐이랴. 베트남 전쟁의 포화 속으로 겁 없이 뛰어들었고, 혁명이 한창이던 멕시코에서는 총에 맞기도 했다.세상 대부분의 남자들이 두려워하던 이란의 아야툴라 호메이니, 리비아의 무아마르 카다피, 미국의 국무장관 헨리 키신저 앞에서도 기죽지 않고 자신이 주도해 인터뷰를 이어가던 무시무시한 여자.바로 이 오리아나 팔라치가 아래와 같은 말을 했다. “당신이 만난 권력의 최정점에 섰던 정치인들의 공통적인 특징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답하면서다.“그들은 보통의 사람들보다 똑똑하지도 선량하지도 않았어요. 좋은 가정교육을 받지도 못했고, 상대의 아픔을 공감할 수 있는 능력도 없습니다. 게다가 배려와 연민에서는 아주 먼 사람들이었죠. 그들이 가진 능력이라곤, 어떠한 수단을 써서라도 자신의 욕망을 이루려 했으며, 그 욕망을 이루기 위해서는 몹시 악랄한 수단도 마다치 않았다는 것이죠.”유명한 영국의 조직폭력배 형제 이야기를 다룬 영화 ‘레전드’를 보면서, 왜 이탈리아 출신의 여기자 오리아나의 진술이 떠올랐는지….조금 오래된 이야기지만 기자가 젊었던 시절 ‘L.A 컨피덴셜’을 보고 놀랐던 적이 있다.치고 빠지는 능수능란한 할리우드적 전술로 자국만이 아니라, 한국에서도 성공을 거둔 이 영화의 시나리오 작가는 브라이언 헬겔랜드. 아카데미 각색상을 받은 그가 만들었다는 것에 기대를 걸고 ‘레전드’와 만났다.그런데, 결론을 말하자면 영화는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연출에선 힘이 빠졌고, 주연 톰 하디를 제외한 나머지 배우들의 캐릭터는 이전 이탈리아 마피아를 소재로 한 영화나, 1930년대 금주법 시대를 그린 미국 갱스터영화의 복사판이었다. 영화 ‘레전드’ 포스터. /영화 홈페이지 얼핏얼핏 비치는 ‘깡패도 휴머니티가 있다’는 식의 짜 맞추기식 화면 구성의 동어반복도 눈 높은 갱스터영화 팬이라면 참고 봐주기 힘든 수준.‘레전드’의 꽤 긴 상영 시간을 지겹지 않게 만드는 게 있다면, 1인 2역을 맡아 빼어난 연기로 이를 소화한 톰 하디(레지 크레이·로니 크레이 분)의 열연 정도다.어린 시절 나치의 폭격으로 정신이 이상해진 동생 로니와 그에 비해 훨씬 이성적인 쌍둥이 형 레지의 캐릭터를 동시에 연기하긴 어려웠을 게 명약관화한 일. 그럼에도 톰 하디는 군계일학의 연기력으로 이를 극복해낸다. 영화 ‘레전드’의 미덕을 하나만 더 꼽으라면 이렇게 말할 수 있겠다. “조직폭력배와 부패한 정치인은 결국 동질이형(同質異形)의 인간이란 걸 재치 있게 보여 준다”고.영화에서 묘사되는 런던의 고위직 경찰 간부와 영국의 상원의원은 추악하고, 위선적인 정도가 깡패와 다를 바 없다. 아니 오히려 더하다. 앞서 언급한 오리아나 팔라치의 진술과 유사하게.다행히 ‘우의’를 통한 에두른 세상의 비판이 ‘레전드’ 속엔 눈곱만치라도 담겼다. 이것이 난파 직전의 영화를 구하는 주요한 키워드로 역할 한다. 그나마 다행이다.영화가 끝나고, 마지막 엔딩 자막이 올라올 때 실화를 바탕으로 했다는 영화답게 ‘레전드’는 형제 조직폭력배 레지 크레이와 로니 크레이가 어떻게 최후를 맞았는지 알려준다. 그때 문득 떠오른 생각 하나.만약 ‘독설가’인 이탈이라 여기자 오리아나 팔라치가 아직도 살아있다면 이런 말을 ‘레전드’의 감독 브라이언 헬겔랜드에게 하지 않았을까.“영국이건 한국이건 조직폭력배와 부패한 정치인이 동일한 유전자를 가진 사람이라는 걸 여태 몰랐던 겁니까?”/홍성식기자 hss@kbmaeil.com

2024-04-09

“고사리손도 힘 보태요” 착한 나눔도시 경산 주목

경산은 역사적으로 고대 도시인 압독국의 도읍으로, 김유신 장군이 삼국통일의 전초기지로 삼았던 곳으로 유명하다.지역에 불교 기도 도량으로 유명한 팔공산 관봉 갓바위가 있으나 지역보다는 대구의 명물로 알려지며 지역 유명세에 보탬이 되지 못하고 있다.또 대추와 묘목 등 농산물로 이름을 알리고 10개 이상의 대학과 대학생, 부설 연구기관 등으로 교육도시로 불리고 있지만 지금 가장 다가오는 단어는 ‘착한 나눔 도시 경산’이다.경산의 착한 나눔은 착한 가게 1호가 탄생한 2009년부터 시작되었다고 볼 수 있다.이후 지역 경기의 부침에 따라 나눔의 손길에도 변화가 있었지만 어려움 속에도 나눔을 실천하는 손길은 끊이지 않고 15명의 지역 아너소사이어티를 배출한 가슴이 풍요로운 나눔 도시의 대명사가 되고 있다.사회가 우리에서 개인으로 변하고 너와 나의 구별이 명확한 시대를 살고 있지만 작은 나눔이 모여 큰 울림으로 다가온다. 경산시는 많은 시민들이 작은 나눔의 기쁨을 맛볼 수 있는 사회분위기 조성에 나서고 있다. □ 착한 가게착한 가게는 중소규모의 자영업에 종사하며 매출액의 일정부분을 정기적으로 기부에 동참하는 가게로 매장을 경영하는 자영업자나 중소기업, 가맹점, 학원, 병원 등 어떠한 업종의 가게도 참여할 수 있다.2009년 1호점이 탄생한 지역의 착한 가게는 나눔에 대한 견해가 유명 단체를 통한 국제적인 나눔 등을 선호한 까닭에 2015년까지 45호에 머무는 정체기를 겪었으나 2016년 경산시가 ‘나눔 문화 원년’을 선포하며 활성화돼 경북도 내 1위를 차지했다.이후 2020년까지 543호, 2023년까지 776호까지 증가해 착한 나눔을 실천하고 있다.나눔을 실천하는 착한가게 주인들은 “비록 많지 않은 금액이지만 지역에서 가게를 운영하며 생긴 수익으로 지역의 어려운 이웃을 도울 수 있어 기쁘고 앞으로도 주변을 돌아보는 일에 관심을 가지겠다”고 밝혀 착한 나눔 온도를 지속시키는 데 큰 역할을 하고 있다. □ 착한 일터착한 일터는 직장인의 나눔 프로그램으로 2016년 4월 경산시청 직원 900여 명이 가입을 시작으로 2016년에 6개소, 2017년 55개소가 가입하는 등 현재 73개소의 착한 일터가 있지만, 퇴직 등의 영향으로 현재에는 735명이 착한 일터에 동참하며 경산지역 나눔의 든든한 버팀목이 되고 있다.착한 일터는 2016년부터 지난해까지 30억125만9천955원의 나눔을 실천했다.□ 기부데이 한마당 축제지역의 나눔 문화 확산과 복지 사각지대 해소를 위해 경산시가 2016년부터 시작한 ‘기부데이 및 사랑 나눔 한마당 축제’는 지역민과 사회의 관심을 위해 같은 해 8일 8일부터 9월 5일까지 ‘2016 경산시 기부데이 기념표어 공모전’을 개최해 ‘사랑은 행복으로, 기부는 실천으로’라는 최우수 표어를 선정해 시상하고 10월 22일 실내체육관 어귀마당에서 첫 기부데이 행사를 진행했다.이후 코로나19 영향으로 2020년과 2021년 개최하지 못했으나 지속적인 개최로 지역의 나눔 문화를 일깨우고 있으며 올해도 10월 26일에 개최할 예정이다.지난해 10월 21일 열린 ‘2023 꽃피다 기부데이 한마당 축제’는 ‘나눔이 있는 곳, 행복이 있습니다’를 주제로 열려 현장 모금 캠페인에 많은 시민이 동참해 공무원 착한 일터 모금액을 포함해 8천819만5천 원의 귀중한 손길을 모았었다. □ 아너소사이어티 15명 배출아너소사이어티는 주로 학업 상으로 뛰어난 학생이나 학계에서 유의미한 연구성과를 이룬 연구자들을 대상으로 하는 학문적인 의미이나 사랑의 열매의 아너소사이어티는 1억 원 이상을 기부하였거나 5년 이내 납부를 약정한 개인 고액 기부자들의 모임을 말한다.즉 사회문제에 관심과 이해를 바탕으로 참여와 지원을 통해 더 밝은 내일을 여는 사회지도자들의 모임이다.경산지역에서 아너소사이어티의 탄생은 2014년 동원금속(주) 이은우 대표가 1호를 기록한 이후 2014년 1명, 2015년 2명, 2017년 3명, 2019년 2명, 2020년 3명, 2021년과 2022년 1명씩, 2024년 1명의 아너소사이어티가 탄생하는 등 15명의 아너소사이어티가 탄생했지만 안타깝게도 2명의 아너소사이어티가 여러 가지 사정으로 약속을 지키지 못해 클럽에서 퇴출당했다.경산지역 아너소사이어티 클럽 가입 멤버는 이은우 동원금속(주) 대표, 송병관 은석철강(주) 대표, 손동수 약사암 회주, 권호흥 권치과 원장, 박왕서 삼현이피에스 대표, 반용석 반치과 원장, 이봉희 (주)보성산업 대표, 주재동 동도농산 대표, 김용봉 (주)와이쓰리 대표, 반성명 옥산가스 대표, 프랭크 페이건 목사, 서영수 서광농장 대표, 예선혜 승원치과 대표, 김홍탁 조일산업(주) 대표, 이형주 희성산업(주) 대표 등이다.인구 30만 명 미만의 중소도시에서 15명의 아너소사이어티를 배출했다는 것은 대단히 칭찬받을 일이다.□ 희망 나눔 캠페인세 개의 빨간 열매가 하나로 묶인 사랑의 열매로 대표되는 희망 나눔 캠페인에도 경산시민들은 적극적이다.세 개의 빨간 열매는 각각 나와 가족, 이웃을 뜻하며 열매의 빨간색은 사랑의 마음을 상징한다.그 열매를 하나로 묶은 것은 더불어 하는 사회를 이루자는 의미다.경산시는 ‘희망 2023 나눔 캠페인’에서 11억3천만 원 목표에 13억473만1천207원을 모금해 115%를 달성했고 ‘희망 2024 나눔 캠페인’에서도 12억2천만 원의 모금목표에 14억1천만 원을 모금해 역시 115%를 달성했다.이는 희망 나눔 캠페인 모금액 중 최고액으로 어려운 경제 상황 속에서도 나눔의 열기가 식지 않은 결과다.나눔의 손길에는 고사리손에서 나온 동전을 모아 온 유치원생들의 저금통, 시민들의 정성 어린 기부, 기관단체들의 십시일반, 시상금을 내어놓은 공무원 등 각계각층의 온정이 넘쳤다. 성금 외에도 식료품과 화장품, 생필품 등 다양한 물품이 기부됐다. 이 밖에도 경산시민의 나눔 활동은 곳곳에서 눈에 띈다.안전지원과 회복지원, 돌봄 지원으로 안전한 일상 회복을 위해 사랑의 열매가 추진한 ‘일상 회복 착!착!착! 나눔 캠페인’에서도 경북도 내에서 1위를 기록할 만큼 열정을 보였고 시시때때로 나눔을 실천한 소식이 전해진다.경북사회복지공동모금회와 시, 경산시백천사회복지관이 협약으로 지역의 복지 사각지대의 어려운 이웃을 발굴해 맞춤형 서비스로 생계안정과 자립을 지원하고 있다.조현일 경산시장은 “시민들이 뜨겁게 보여준 나눔,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이웃을 먼저 생각하는 시민과 기업, 단체들에 감사드리며 십시일반으로 모아준 소중한 사랑이 주변의 소외된 이웃들이 힘찬 발걸음을 내디딜 수 있는 희망이 되도록 뒷받침하고 행정적으로 도울 수 있는 방법을 강구하겠다”며 “착한 나눔 도시 경산의 시장으로 근무하는 것이 너무 자랑스럽다”고 밝혔다./심한식기자 shs1127@kbmaeil.com

2024-04-07

이게 라오스 나눔 정신, 새벽 ‘탁발 행렬’에 감동

2008년 루앙프라방에 취재를 왔던 뉴욕타임스 기자의 시야에 이상한 장면이 눈에 들어왔다. 여명 속에서 희미하게 행렬을 이루고 있는 탁발승들의 모습이었다.주황색 장삼을 걸친 승려들이 사원을 따라 걸을 때 그들을 맞아주는 또 하나의 행렬, 그것은 바로 마을 사람들이었다.주민들은 새벽에 정성껏 준비한 과일, 밥, 떡을 승려의 바구니에 넣었고 탁발승들은 합장으로 공양을 받았다. 그날 ‘일용할 양식’이 그릇에 차면 승려들은 다시 밥이며 쌀을 다시 주민들의 바구니에 넣어주는데, 이 밥은 주변 소수민족이나 마을 빈곤층의 식탁에 올려졌다. 주민들의 식량이 절에 올려지고, 그 쌀이 다시 기층 민중에게 내려오는 선(善)순환 구조는 이기주의, 승자독식 시스템에 익숙한 미국 기자에게 경이(驚異) 그 자체였을 것이다.장엄한 의식에 감명 받은 기자는 현장에서 특집을 써내려갔고, 이 기사 덕에 루앙프라방은 ‘죽기 전에 꼭 와봐야 할 관광지’에 선정되었다. ◆ 고대부터 라오스 문명을 일군 곳 ‘제2의 수도’ 위상라오스를 ‘시간이 멈추는 곳’ ‘영혼을 치유하는 힐링의 도시’라고 표현할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도시가 루앙프라방이다.해발 700m 고도에 위치한 이 곳은 고대부터 타이족, 라오족이 문명을 일궈 온 곳. 메콩강과 남칸강이 합류해 풍요로운 대지와 용수를 제공했는데, 이를 바탕으로 라오스의 ‘제2 수도’로 성장할 수 있었다.1353년부터 약 200년간 란싼왕국의 수도로 자리잡은 덕에 당시 왕궁과 불교 유적들이 많이 남아 있다. 특히 ‘사원의 도시’라고 부를 만큼 이들 사찰은 양, 질적인 면에서 라오스 불교문화를 대표해 도시 자체가 유네스코 세계 문화유산으로 지정돼 있다.이런 도시 명성과 위상에 비해 사실 루앙프라방은 인구 6만의 소도시에 불과하다. 그러나 라오스 역사 1천년을 말할 때 한 왕조의 탄생지였고, 오랜 기간 라오스의 정신적 지주였던 만큼 사원들을 중심으로 지역 문화, 전통이 잘 보존돼 있다.이 도시에서 두 달을 머물렀던 무라카미 하루키는 여행에서의 사색을 꼼꼼히 적어 내려갔다. 이 책엔 느린 걸음으로 도시를 산책했던 작가의 관조(觀照)가 잘 나타나 있다. 그 결과 루앙프라방은 그의 베스트 여행지 10곳에 당당히 랭크되었고, 책 제목(‘라오스엔 대체 뭐가 있는데요?’)에까지 오르는 영광을 얻게 되었다. ◆ 여명 속 탁발행렬, 라오스의 나눔 정신 잘 나타나전 세계 여행객들의 버킷리스트 중 하나가 된 루앙프라방의 탁발행렬. 관람의 그 첫 문은 수면(睡眠)을 단축하는 불편을 감수해야 되는 일이었다. 오전 5시 알람 소리에 잠을 깬 일행은 버스를 타고 사원들이 물려있는 시내로 향했다.아직은 어둠이 사위(四圍)를 삼킨 이른 새벽, 관광객들과 보시(布施)에 나선 마을 주민들이 사원의 담장 밑에 늘어서 있었다.잠시 후 흐릿한 어둠 속에서 주황색 가사를 입은 승려들의 행렬이 나타났다. 하루에 첫 출발을 적선(積善)으로 시작하는 보시 행렬이요, 베풂으로 새벽을 여는 나눔의 행진이었다.이런 나눔 덕에 동남아의 최빈국 라오스에서는 주민들이 기아(飢餓)를 면할 수 있었고, 이런 공동체 미덕은 마을을 하나로 묶어주는 정신적 지주로 작용했다.승려 중에는 소년들도 많았는데 일부는 잠에서 덜 깬 듯 졸린 눈으로 행진을 하는 친구들도 있었다. 주민들은 이 동자승을 위해 과자, 초콜릿을 공양한다. 동심은 동심인지라 이들은 바구니 가득 과자, 사탕을 집어넣고 있었는데, 이들 역시 바구니가 차면 마을 어린이들과 나누는 것을 잊지 않았다.미국 언론에 알려질 당시만 해도 이 보시 행렬은 종교, 제의(祭儀) 기능에 충실했지만 지금은 일종의 퍼포먼스, 관광상품 정도로 퇴색되었다고 한다. 일행 중 몇 명이 이 체험에 참여했는데 밥, 바구니와 공양할 자리를 빌리는데 3달러를 내야 했다.이런 상업화의 비난과 관계없이 이 행진은 우리에게 깊은 여운으로 남았다. 구세군 냄비를 피해 돌아가고, 몇 천원 전화 다이얼링에도 인색한 우리에게 이 행렬은 자신을 돌아보는 계기가 되었다. ◆ 꽝시폭포 비취빛 물빛, 푸시산 노을 감상도 필수 코스루앙프라방이 라오스인들의 ‘정신적 지주’로 기능해 종교, 사상적인 면에서 중요성을 인정받고 있지만 이 도시는 자연경관, 문화재 등 관광자원 면에서도 빠지지 않는다.루앙프라방에서 가장 유명한 곳은 크로아티아의 플리트비체를 닮았다는 꽝시폭포.밀림으로 뒤덮인 숲속에 카르스트 지형이 빚은 계단식 웅덩이에 찰랑거리는 에메랄드 물빛은 관광객들을 동화 속 나라로 이끈다. 옥색 물빛이 수직으로 낙하하는 폭포 앞에서면 관광객들은 그 위용과 풍경에 압도돼 버린다.일정에 쫓긴 한국인들은 한두 시간 투어로 끝내지만 서양인들은 수영복, 튜브, 간식까지 가져와 반나절씩 머물고 간다.라오맥주(Lao Beer)를 마시며 석양을 감상할 수 있는 푸시산도 놓쳐서는 안 될 코스. ‘신성한 산’이라는 뜻의 푸시산은 시내 어디서든 볼 수 있어 교통의 기준, 랜드마크 역할을 한다. 총 328개의 계단을 올라야 하는 탓에 여성, 노약자, 어르신들은 힘들 수 있지만 대신 노역에 대한 대가는 확실히 보장된다. 관광객들은 이곳에 오를 때 커피와 이곳 특산물인 라오맥주를 가져가는데 이는 석양을 감상할 때 ‘조미료’로 쓰기 위해서다.일행이 도착할 무렵 이미 정상에는 관광객들이 빽빽이 들어차있었다. 바쁜 일정 관계로 일몰을 끝까지 감상하지 못했지만 맥주를 마시며 일몰을 기다리는 관광객들의 모습은 자체로 풍경이 되었다.메콩강을 붉게 물들인 노을이 저녁이 왔음을 알린다. 노을 사이로 선착장에 한무리 배낭 여행자들이 내린다. 그 배엔 다시 일정을 모두 마친 여행객들로 채워지며 관광객들이 교차한다.선착장에도 낮과 밤의 자리가 바뀌었다. 루앙프라방의 밤은 아주 천천히 찾아온다. 그 게으른 밤에 의지해 우리도 잠을 청한다.5일 일정이 모두 끝났고, 우리에게 주어진 70시간이 순식간에 흘러가 버렸다. 문득 스치는 한가지 의문. 라오스에서는 시간이 천천히 흐른다는데 이 ‘시간의 역설’은 왜 우리에게는 적용되지 않는 걸까. 더 낮추지 못하고, 더 내려 놓지 못해서였을까. 우리가 느낀 이 시간 지체(遲滯)는 라오스가 우리에게 던져 준 화두였다./글·사진 = 한상갑기자 arira6@kbmaeil.com끝

2024-04-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