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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락다운 세대

우정구 논설위원 한때 ‘이태백’이란 말이 유행한 적이 있다. “이십대 태반이 백수”라는 말의 줄인 것으로 우리사회 청년의 취업난을 빗댄 표현이다.비슷한 뜻의 N포세대가 있다. 모든 것을 포기한 세대라는 뜻이다. 원래는 연애, 결혼, 출산을 포기한 ‘삼포세대’에서 출발했다. 그러나 여기에 취업과 내집 마련이 추가되면서 ‘오포세대’로 변했고, 지금은 꿈과 희망까지 모든 것을 포기한 N포세대로 바뀐 것이다.중국도 젊은층 사이에 이와 비슷한 탕핑주의라는 말이 유행했다. “일할 것 없이 그냥 누워있는 게 낫다”는 젊은이의 자포자기식 사고를 꼬집은 표현이다. 이 말이 유행하자 급기야 중국 정부는 이를 금기어로 지정했다.일본에서 유행했던 ‘사토리세대’도 유사하다. 돈 버는 일은 물론 출세에도 관심이 없는 일본 젊은이의 사고를 빗댄 표현이다. 나라마다 젊은이의 생활 태도와 생각의 단면을 콕 찍어 만든 유행어가 생산되고 있으나 공교롭게도 모두가 비슷하다. 첨단과학이 발달하고 생활이 풍요로워져도 세상살기가 만만치 않다는 현실 세태를 반영한 결과다.2020년 국제노동기구는 코로나19로 ‘락다운(봉쇄)세대’의 출현을 예고했다. 코로나가 청년의 고용과 교육에 심각한 영향을 미치면서 한창 미래를 준비해야 할 젊은이의 모든 것을 앗아갈 거란 예고다.한 경제단체가 대학졸업예정자 등을 대상으로 취업인식 조사를 해봤더니 응답자의 66%가 “구직을 단념했다”고 답했다. 코로나로 인한 경기침체로 취업의 문이 좁아진 탓도 있으나 코로나 파고를 넘지 못한 젊은이의 상실감이 쌓여 나타난 결과일까 걱정이 된다.청년 위기의 시대다. 확실한 청년실업 대책부터 세워 청년이 사회로부터 봉쇄당하는 일이 없도록 하는 게 급하다./우정구(논설위원)

2022-10-25

陣地戰이 사회적 상식을 무너뜨린다

심충택 논설위원 한국사회는 지금 전형적인 ‘진지전’이 온·오프라인에서 동시에 벌어지고 있다. 진지전은 무솔리니 정권에 대항했던 좌파지식인 안토니오 그람시가 이탈리아 국민의 일상을 통제한 파쇼집단의 지배 메커니즘을 분석하면서 내놓은 헤게모니이론에서 나온 단어다. 그는 공산주의 혁명은 대중 영향력이 큰 유기적지식인(주로 언론·교육계 종사자)이 진지를 구축해 헤게모니를 장악하면 물리적 혁명 없이도 가능하다고 생각했다.그람시의 이 이론은 요즘 우리 사회에 그대로 적용되고 있다. 지난 주말 서울에서는 보수·진보 양대 진영이 대규모 집회를 했다. 자유통일당, 신자유연대 등 진보성향 단체들은 ‘자유통일 주사파 척결 국민대회’라는 타이틀로, 촛불승리전환행동 등 진보성향 단체들은 ‘윤석열 정부 규탄’이라는 이름으로 진지전을 전개했다. 이들은 서울 세종대로를 좌우 양쪽으로 갈라 “이재명·문재인을 구속하라”, “정치보복 윤석열은 퇴진하라”는 구호를 외치며 곳곳에서 몸싸움을 벌였다. 마치 나라를 양분(兩分)한 모습이었다.진보진영에는 민주당 초선 강경파 모임인 ‘처럼회’ 소속 김용민·황운하·민형배(무소속)·양이원영 의원과 안민석 의원 등도 참가했다. 학생단체인 전국학생수호연합은 지난 23일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광주의 한 중학교 교사가 좌파집회에 학생들이 참가할 것을 종용했다며 그 교사를 선거법 위반혐의로 고발하겠다고 했다. 그 교사는 학생과의 통화에서 “석열이 때려잡고 김건희는 감옥으로 보내자고 (집회)하는 거지”라는 말도 했다고 한다. 교사가 직접 나서 진지전에 어린학생까지 동원하는 사태가 지금 우리사회에서 공공연히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진보진영의 ‘진지’가 우리 사회 곳곳에 이미 견고한 요새를 만들고 있는 섬뜩한 느낌이 든다. 지난 2019년 고교생들이 교사의 정치편향 교육을 폭로하는 과정에서 “정치 교사들이 학생들의 영혼과 정신을 지배하려 한다”고 한 말이 떠오른다.보수와 진보진영의 진지전은 이재명 민주당 대표의 최측근인 김용 민주연구원 부원장에 대한 검찰수사가 진행되면서 더욱 격렬해지는 것 같다. 민주당 지도부는 현재 이 수사에 대해 “노무현 전 대통령을 향한 논두렁시계 사건을 떠올리게 한다. 지금은 모두가 일치단결하고 함께 싸워서 이겨내야 될 때”라며 검찰수사에 정면으로 맞서고 있다. 불법대선자금 수사는 유동규 전 성남도시개발공사 본부장의 검찰진술에 의해 하나하나 베일이 벗겨지고 있다. 유씨는 언론 인터뷰에서 “내가 지은 죗값은 내가 받고 이재명 민주당 대표 명령으로 한 것은 이재명이 받아야 한다”고 했다. 유씨는 이 대표의 성남시장 시절 측근으로, 대장동 특혜사건의 핵심인물이다.우려되는 것은 그동안 우리 국민이 공기처럼 익숙하게 받아들였던 자유민주주의 가치(법과 제도, 질서, 윤리, 관행)가 무너지고 있다는 것이다. 그람시는 이를두고 ‘권력이 상식적인 것을 비상식적인 것으로 만들고, 비상식인 것을 상식적인 것으로 만들어 국민을 통제한다’고 했다. 지금 우리사회가 불행하게도 이 과정을 거치는 것 같다.

2022-10-25

올바른 관계로 안동의 미래 꿈꾸자

신영복의 ‘담론’ 나를 곤혹스럽게 하는 질문이 있다. 그것은 다름 아닌 감명 깊게 읽은 책을 소개해 달라는 것이다. 그럴 때마다 바쁘게 살아간다는 핑계를 대며 책을 잘 읽지 못한다고, 후회스럽다는 말로 에둘러 답을 하며, 카프카의 말을 떠올릴 때가 있다. “책이란 우리 내부의 얼어붙은 바다를 깨기 위한 도끼가 되어야만 한다. 그것이 나의 믿음이다.” 신영복 선생도 “독서는 우리를 가두고 있는 견고한 인식을 망치로 깨트리라는 것”이라고 했다. 이런 의미에서 신영복 선생님의 ‘담론’을 소개하려고 한다.‘담론’은 우리가 살아가는 작은 공간부터 다양한 사람들의 삶까지 아우르는 깊이와 동양고전을 통한 깨달음을 주는 고찰까지 많은 이야기를 담고 있을 뿐 아니라, 스스로 자신을 돌아보며 깨달음을 터득하는 과정의 중요함을 새겨준다.특히, ‘담론’을 읽으면 관계의 중요성에 눈이 오래 머물고 밑줄을 긋게 된다. “모든 존재는 고립된 불변의 존재가 아니라 수많은 관계 속에 놓여있으며, 우리는 관계 속에서 정체성을 확립한다”고 하였으며 “정체성은 객관적 존재가 아니라 생성이며, 관계의 조직은 생성으로 탄생시키는 창조적 실천이다. 변화는 결코 개인을 단위로 완성된 형태로 나타나는 게 아니다.모든 변화는 가능성으로 잠재되어 있다가 당면의 상황 속에서, 영위하는 일 속에서, 그리고 함께하는 일 속에서 발현”되는 것이라고 한다. 레미제라블에서의 “땅을 갈고 파헤치면 모든 땅들은 상처받고 아파한다. 권기창 안동시장 그 씨앗이 싹을 틔우고 꽃피우는 것은 훨씬 뒤의 일이다”는 대사를 인용하고 고전의 아득한 미래가 바로 지금의 우리들일지 모른다 하셨다. 민선 8기를 맞은 안동시에도 많은 변화의 바람이 불었다. 안동의 100년 미래를 책임지는 성장동력을 확보하기 위해 부서 간 협업이 요구되는 업무가 많아졌다. 벽 속에 갇힌 생각의 틀을 깨부수고, 누군가의 말을 유연하게 받아들이는 태도, 올바른 관계 맺기를 통해 안동의 미래를 꿈꾸어야 한다.과감한 혁신과 변화, 유연하고 창조적인 사고와 결단력 적극적이고 긍정적인 자세로 시민과 소통하며 끊임없이 노력하는 자세가 필요한 때이다.민선 8기가 출범되면서 우리 안동시 직원에게 약속한 것이 있다. “공무원이 행복해야 안동시민이 행복하다. 일 잘하는 공무원이 대우받는 인사시스템을 구축하겠다.” 익숙하던 것과 결별을 통해 새로운 안동을 위해 고군분투하는 안동시 1천500여 직원에게 ‘담론’의 글귀를 새기며, 다시 한 번 약속한다.“언약은 강물처럼 흐르고 만남은 꽃처럼 피어나리”

2022-10-25

바이오가스 수소화

남광현 ​​​​​​​대구경북연구원 선임연구위원 하수찌꺼기, 분뇨, 가축분뇨, 음식물폐기물, 동·식물성 잔재물 등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즉각적인 반응은 머리에 떠오르기도 불편한 혐오스러운 쓰레기들로 우리 일상생활에서 즉시 사라져야 할 것들이라 생각할 것이다. 그런데 환경부는 이들을 에너지 잠재력이 큰 유기성 폐자원으로 새롭게 보고 있다. 신재생에너지 발전목표를 2030년에 21.5%로 설정한 우리나라 보다 2배나 높은 40%대를 웃도는 독일은 이런 유기성 폐자원을 이용해 2030년 신재생에너지 발전비중을 80%나 상향했다. 그야말로 독일은 버린 똥도 다시 보고 버리면 똥이지만 사용하면 돈이 된다는 개념이 확고하다.우리나라 유기성 폐자원 발생량은 생활수준의 향상과 함께 2010년 이후 10년간 15%정도 증가하였으며, 이중에서 가축분뇨가 차지하는 비율이 85%이상으로 가장 높고, 음식물폐기물이 8%이고 하수찌꺼기가 6.5%정도이다. 그런데 이것들은 지금까지 사료로 이용되거나 퇴·액비화되는게 대부분이고, 겨우 5.7% 정도만 바이오가스로 에너지화되어 왔다. 그런데 음식물폐기물은 가축전염병 예방 등을 위해 사료화가 점차 제한되고 있고, 하수처리장에 연계 처리도 시설용량 한계 등으로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 가축분뇨는 퇴액비화 방식으로 농경지에 과다 살포하여 작물로 미쳐 흡수되지 못하고 하천으로 유입되어 녹조 등 하천오염 문제의 가장 큰 원인이 되고 있다.이러한 유기성 폐자원으로 인한 환경적 부담은 줄이고 사회적 효용성을 높이는 방식으로 유기성 폐자원을 재활용할 필요가 있는데, 그 대표적 방식이 바이오가스로 재활용하는 것이다. 바이오가스 생산과 이용은 에너지 잠재력이 큰 유기성 폐자원의 효율적 이용을 도모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폐기물 분야에서 탄소중립을 달성하기 위한 최적의 방식이다. 그래서 지난 2021년 6월 30일 송옥주 국회의원 대표발의로, 2021년 9월 1일 임이자 국회의원 대표발의로 ‘유기성 폐자원을 활용한 바이오가스의 생산 및 이용 촉진법안’이 발의 되었는데 바이오가스의 생산과 소비 의무화 등이 규정되어 있다.바이오가스는 유기물이 공기가 없는 상태에서 미생물에 의해 분해(혐기성소화)되어 생성되는 가스로 주요성분으로는 메탄이 50~60%, 이산화탄소가 25~50%로 구성된다. 우리 몸이 음식을 섭취하면 위와 대장을 거치면서 유기성분이 분해되고 몸에서 가스(방귀)가 생겨서 배출되는 것과 같은 원리이다. 이러한 원리로 생성되는 바이오가스는 앞서 언급된 유기성폐자원 2종이상을 혼합처리할 경우 상호보완작용을 하게 되어 소화효율 향상으로 가스생산량이 증대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환경부는 유기성폐자원 개별시설을 하나의 시설로 통합하는 시범사업을 전개하고 국고보조율도 높였다.최근 탄소중립 수단으로 바이오가스에서 그린수소를 추출하여 연료로 활용하는 기술이 상용화되고 있다. 대구는 수소를 생산할 수 있는 바이오가스 자원이 광역도시 중 최대 규모이고, 경북은 풍부한 수소산업 인프라를 갖추고 있어서 수소의 생산과 공급 관점에서 서로 협력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2022-10-24

울릉 도동항 향나무

여객선을 타고 울릉도 관문인 도동항에 도착하면 산 중턱에 위풍당당한 향나무가 주민과 관광객을 반긴다. 도동항 동편 기암괴석 위에 우뚝 솟아 있는 이 향나무는 울릉도의 상징이자 문지기였다. 척박한 암벽에 뿌리내린 채 2천년 이상 세월 동안 울릉도를 묵묵히 지켜왔다. 뿌리 부분의 둘레가 4.3m, 높이 9.5m로 웅자가 남다른 향나무다.  그런데 울릉도의 상징인 이 향나무가 지난달 6일 울릉도를 덮친 태풍 힌남노에 의해 뿌리째 뽑혔다. 볼성 사납게 된 이 향나무는 그 고귀함은 뒤로한 채 자칫 낙석 등 또 다른 위험을 안게 됐다. 이에 울릉군국유림관리소와 울릉산악구조대가 지난 20일 밧줄과 앵커 등을 이용해 뽑힌 향나무를 바위에 결박하는 조치를 했다. 구조대는 이와 함께 향나무 위 부위를 잘라 남부산림청에 제공했다. 산림청은 이를 후계목 조성 및 생태 연구 등에 사용키로 했다. 울릉도 대표 향나무의 수난은 이뿐만 아니다. 수령 2천300년으로 조사된 우리나라 최고령 향나무가 또 있다. 도동 마을에서 바라보이는 이 향나무도 지난 1985년 10월 태풍 브랜다로 한쪽 가지가 꺾여나갔다. 울릉군이 긴급 보수해 현재 두 가닥 쇠줄에 의지한 채 가까스로 몸을 지탱하고 있다. 울릉도 대표 향나무의 잇단 수난이 안타깝기 그지없다. 이번에 뿌리가 뽑힌 향나무는 일제강점기 시절 도동항 사진에도 나온다. 울릉도 주민들은 섬사람들의 개척정신을 대변해 주는 향나무라며 자랑스럽게 여겨왔다. 이제 이 향나무의 기품 높은 풍광은 다시 보기 어려워졌다. 울릉도의 상징이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재생이 어렵다면 고목이라도 원형 복원해 재현할 수 있으면 좋겠다. 울릉도 향나무는 상징 이상의 가치가 있다. 또 피해목 주위에 비슷한 수령의 향나무가 여럿 남아 있다고 한다. 남은 향나무의 보존과 관리에도 더욱 신경써야 할 터이다. /홍석봉(정치에디터)

2022-10-24

방문객을 생각하는 축제·행사만이 성공할 수 있다

심한식 경북부 축제나 행사에서 꼭 필요한 것은 행사장을 찾는 방문객을 위한 배려다.얼마나 많은 사람이 행사장을 찾았는지보다 행사를 통해 어떤 배려를 받았는지가 또 행사장을 찾는 이유가 되기도 한다.(사)한국후계농업경영인 경산시연합회가 주최하고 주관한 제11회 경산대추축제농산물 한마당 행사가 22~23일 생활체육공원 어귀 마당에서 3년 만에 열렸다.코로나19의 여파로 3년 만에 열린 1억 7천만원의 시비로 열린 경산대추축제는 축제 즉 큰 잔치가 아닌 하나의 행사였다.현장을 찾는 방문객에 대한 배려보다는 자신들의 이익을 추구하는 행사로 보였다. 축제장에서 빠지지 않고 제공되는 시식용 대추를 찾을 수 없었고 방문객에게 제공되어야 할 주차장도 일부는 야시장으로 둔갑하고 나머지 주차공간도 야시장 상인들의 차량으로 채워져 주차공간을 찾아 헤매거나 위험한 도로변에 주차해야 했다.이달 중순에 청도반시축제를 열었던 청도군이 주차장을 확대하고 군민운동장도 주차장으로 개방해 방문객의 주차 편의를 제공한 사례와는 대비됐다.또 대추축제의 대표주자인 보은대추축제가 지난해보다 40%나 감소한 작황을 이유로 온라인축제로 전환한 것과 비교하면 제대로 된 물량도 확보하지 못하면서도 대면 축제로 강행한 이유가 궁금하다.일부에서는 행사장에 많은 사람이 모였다고 자랑한다.하지만, 22일 행사장 무대 앞에 마련된 좌석을 채운 이들은 개막식 초대 가수로 초청된 미스트롯(2) 眞 출신 양지은의 팬클럽회원들이었다.설치된 부스 중 사람이 모이는 곳은 대추 막걸리 등 무료 시식이 가능한 곳이었다.23일도 강진과 신승태, 김범룡 등 경산대추축제 기념 스타쇼에 출연하는 가수들을 보고자 행사장을 찾은 이들을 제외하면 지역특산물이라고 자랑하는 경산대추를 즐기고자 찾은 이들이 많지 않았다는 것이다.행사장을 둘러본 일부가 경산대추축제라는 이름보다는 농산물 한마당에 대추가 한 품목으로 판매되는 것이 차라리 낫겠다고 지적하는 의미를 경산시와 한국후계농업경영인 경산시연합회는 깊게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다. /shs1127@kbmaeil.com

2022-10-24

철강업과 자동차조립 산업 현장의 개선활동

엄주선 포스코 인재창조원 교수·컨설턴트 철강과 자동차 조립 산업은 우리가 일상에서 필요로 하는 소비재를 생산한다는 측면은 동일하지만 제품을 만드는 과정은 매우 다른 구조를 가지고 있다. 철강은 중후 장대한 설비를 한 번 설치하면 한 자리에 고정된 상태에서 생산하며 사람은 설비를 운영하는 능력이 중요하다. 그러나 자동차조립 산업은 필요에 따라 언제든 이동이 가능한 중·소형 설비가 많고 사람은 자동차의 여러 부품에 대한 숙련된 조립 능력이 중요하다. 이렇듯 설비의 형태와 사람의 필요 능력이 다르다 보니 개선 활동도 다른 구조를 하고 있다.두 산업의 대표격인 포스코와 도요타의 현장 개선활동 차이점을 보면 도요타는 개선의 방법론 자체가 생산방식으로 생산에 소요되는 시간(Lead Time)을 줄이고 공정내 불량이 발생하지 않도록 하는 구조이다. 이에 비해 포스코는 직접적인 생산 시간을 줄이기 보다는 사람이 설비를 학습하여 운용능력을 키우고 일상에서 유지관리 되도록 하여 고장과 같은 생산 장애를 줄이고 안전, 환경, 품질, 생산 상의 문제점을 찾아 과제로 해결하는 체계이다.좀 더 자세히 말하면 도요타생산방식은 생산시간 단축을 위해 ‘고객이 필요한 물건을 필요한 때 필요한 양만큼 생산한다’는 JIT(Just In Time)를 지향하며 목표는 Lead Time 단축이다. 이를 위해 자동차 1대를 생산하는 작업 시간인 Tact Time을 설정하여 표준작업으로 하고 생산공정에서 가공품 멈춤이 없도록 흐름을 만들고, 많은 부품을 빠르게 생산하기 위해 제품의 준비교체시간을 단축하여 생산단위를 줄여간다.공정내 품질개선을 위해서 생산과정에 불량이 생기면 설비가 스스로 정지하도록 사람의 지혜를 활용한 자동화라 하여, 사람과 기계의 일을 분리하고 사람은 실수를 예방하는 개선을 하고 기계는 이상이 감지되면 자동 정지하도록 하고 있다. 이러한 도요타생산방식의 내용은 초, 중, 고급 과정이 있어 직급별로 깊이가 다른 교육과 함께 성과에 대한 평가와 보상을 한다.장치산업인 포스코는 직접적인 생산방식보다는 ‘안전하고 일하기 좋은 작업환경 구축과 낭비제거를 통한 부가가치 창출’의 도구로 현장 개선활동을 QSS(Quick six Sigma)로 명명하여 일상활동, 과제활동, 솔선격려, 인재육성 4축으로 되어있다. 일상활동은 5S(정리, 정돈, 청소, 청결, 습관화)로 작업 환경을 개선하고, 위드마이머신으로 설비를 도입, 당시의 모습으로 복원하고 성능개선과 유지관리를 한다. 과제활동은 재해, 불량, 고장, 원가 지표를 직접 줄이기 위한 테마로 개선을 실시하며 직책자는 솔선으로 참여하고 격려 멘토링을 통해 지원하며 개선을 통해 직원역량이 향상되는 구조다.이 두 기업의 현장 혁신활동 공통점은 산업 특성에 맞는 나름의 개선 체계를 구축하고 지속한다는 점이다. 그 속에서 직원들의 역량이 향상되고 경영진과 직책자는 솔선으로 참여하고 지원하며 리더십을 발휘하고 현장경쟁력을 높인다는 것이다. 산업을 대표하는 이 두 기업의 현장 개선활동이 국내 기업들의 현장경쟁력 향상에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2022-10-24

마음의 습기 말리는 가을날

강성태 시조시인·서예가 높푸르러 가는 하늘에 떠도는 구름이 한가롭다. 누렇게 물결치며 여물어가던 들판에 수확의 손길이 더해지고, 언덕배기의 주홍빛 감들은 속소그레 대롱거리며 정겹게 익어가고 있다. 구절초, 쑥부쟁이가 반기는 들길을 거닐거나 산국(山菊), 감국(甘菊)이 손짓하는 산길을 오르다 보면, 문득 어디선가 피어나는 가을의 향기를 듣게 된다. 딱히 그 냄새가 보이거나 풍기지는 않지만, 지나가는 바람의 결이나 형형색색 물들어가는 잎새들의 몸짓에서 계절의 향긋함과 스산함이 잔잔한 울림으로 다가오는 것 같다. 우수(憂愁) 배인 향수(鄕愁)같고, 여수(旅愁)가 묻어나는 애수(哀愁)같은 아련하고도 애잔한 가을의 갈피에는 왠지 모를 시름을 떨쳐버릴 수 없다. 그래서 가을을 우수의 계절이라고 했던가?인간의 생애주기를 놓고 볼 때 가을은, 혈기왕성한 여름날에 비견되는 청장년(靑壯年)을 지나 결실과 숙성의 내공으로 직장이나 사회의 중추적인 역할을 해나가는 장년(長年)층에 해당되는 때라고 할 수 있다. 장성한 자녀들이 출가를 하게 되고 삶의 척추 같은 일터에서는 경험과 노하우가 축적돼 중책이 주어지기도 하는가 하면, 때에 따라서는 사회적인 역할과 기여가 커지는 오피니언 리더로서의 길잡이를 해야 하기도 한다. 앞만 보고 달려왔던 인생행로에 막간의 여유와 안도의 가슴으로 주변을 살피며, 내실과 농밀함으로 새로운 도전과 비전을 지향해야하는 때이기도 하다.그러한 차제에 삶의 전반적인 요소마다 이것저것 헤아리고 가늠하며 꼼꼼히 챙기고 보살피다 보니 어쩌면 근심 걱정이 떠날 수 없게 되는지도 모른다. 근심을 뜻하는 수(愁)는 가을철에 거둬들이는 벼(禾) 옆에 불(火)이 있는 걸 밑에서 받쳐주는 마음(心)이 조합된 한자이니, 잠시라도 마음을 놓을 수 없을 정도로 불안하고 거북스러운 상태를 일컫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즉, 풍요로운 결실을 수확하는 중에도 짐짓 걱정이 도사릴 수 있듯이, 가을걷이 같은 풍성한 삶의 숙성기에도 모종의 우려가 스며들고 파고들 수 있음을 암시하기에 가슴 한구석이 허허롭고 알 수 없는 수심(愁心)에 잠기게 되는지도 모른다.“서느런 바람 결에/구름밭 쟁기질로//번뇌도 빛이 되어/감감히 아려 오며//내 혼의 습기 말리는/서럽도록 부신 날!” -拙시조 ‘청추(淸秋)’전문사람은 어찌 보면 한평생을 외롭거나 시름 속에 살아가야 하기에 끝없는 나그네길이라 하는 걸까? 정처없이 떠도는 구름도 흩어졌다 모이면서 수시로 하늘의 눈물 같은 비를 내리는데, 하물며 인간세상에는 생로병사와 희로애락의 상념이 끊이질 않아 함께 있어도 쓸쓸하고 기쁨 속에서도 슬픔을 지워버릴 수 없는지도 모른다. 소리 없는 싸움터 같은 세파에 시달리는 자체가 고역일 수도 있을 터, 지치고 멍들게 하는 상흔이나 묵은 때를 지워버리는 것이 근심을 줄이는 것이리라. 눈물도 투명한 빛이 되어 흐를 것 같은 서럽도록 부신 날, 마음의 습기를 말리는 밝은 가을날을 엮어가자.

2022-10-24

바닥에는 검은 진흙이

필립의 잔에 붓고 남은 양주를 자기 잔에 부으며 인호가 말했다.-널 못 믿는 거지. 새삼스러운 일도 아니지. 이런 일이 한두 번이었냐. 조그마한 시에 틀어박혀 행사나 치르고 노인들 밥이나 챙겨주고 있으니 다른 일을 맡기기에는 네가 부족하다 생각하는 거지.-기회를 줘야 할 수 있지. 기회조차 주지 않는데 뭘 할 수 있겠어.인호가 필립의 말에 발끈하며 대답을 했다.-내가 그렇게 생각한다는 게 아니잖아. 어쨌든 생각보다 일이 쉬워질 것 같아. 억지로 기회를 만들지 않아도 될 것 같고. 이쪽에서 준비되면 다시 연락하겠다고 했어. 일단 약속을 잡고 만나는 것까지는 내가 할 거야. 이후에는 다른 사람이 해야지. 이번에도 노마가 하는 것이 맞을 것 같아. 이번 기회에 정리할 것도 정리하고. 아직 날짜를 잡지는 않았어. 아무래도 인호, 네가 우리나라에 없을 때가 좋을 것 같은데. 너 일정이 어떻게 되는지 말해줘, 지금. 장소는 좀 더 생각해볼게. 이번에는 물건을 꺼내지 않는 게 좋을 것 같아. 괜히 이상한 방향으로 주목을 받을 것 같아서. 이리저리 번거롭기도 하고.인호는 고개를 숙여 핸드폰을 보았다.-다음 달 십오 일부터 일주일간 러시아 출장이 있어. 영산시 시의원들 데리고 한 바퀴 도는 출장.인호가 스케줄 표를 보며 말했다.-그러면 그렇게 날짜를 잡는다. 십육 일 정도에 만나자고 할 테니까 그렇게 알고 있어. 정해지면 다시 연락 줄게-그런데 노마는? 괜찮겠어?인호는 문득 노마가 했던 말이 생각났다. 달아오른 노을을 보며 노마가 말했었다. 언젠가 우리 인간이 화성에 가는 날이 오겠죠? 화성은 노을이 파란색이라던데. 화성에서 제일 높은 산 이름이 뭔 줄 아세요? 올림퍼스래요, 올림퍼스. 그러면 화성에도 신들이 살고 있는 걸까요? 지긋지긋한 지구를 떠나 화성으로 가도 소용없는 건가요?-노마는 왜?-갑자기 노마가 했던 화성 이야기가 생각이 나서.-생각 많이 하지 마. 이번 기회에 보내주면 돼. 화성에 먼저 가 기다리고 있어라, 하지 뭐. 궁금증도 풀고. 좋겠네.-꼭 그래야 하나? 노마까지?인호는 맥주잔을 비웠다.-그래야지. 녀석이 그러더라고. 따지고 보면 호해도 나쁜 놈이라고. 아니 따질 필요도 없다고.-호해?-응, 호해. 그 말을 들으니 정신이 번쩍 들더군. 기분도 살짝 상하고. 굳이 핑계를 대자면 그런 이유야.나는 호해를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아. 늙고 병들어 죽음에 든 진시황을 보며 웃었겠지. 겉으로는 아니더라도 말이야. 진시황 이야기 알지? 들어 본 적은 있겠지. 신하들이 불로초를 찾아 진시황에게 바쳤다면, 불로초를 먹은 진시황이 불사의 몸이 되었다면 호해의 마음은 어땠을까? 언젠가 필립이 노마에게 말했다. 그럼요. 저도 읽을 만한 것, 들을 만한 이야기는 다 듣고 자랐습니다. 노마는 웃으며 대답했다. 그리고 덧붙였다. 그런데 따지고 보면, 아니 굳이 따지지 않더라도 말입니다. 호해도 나쁜 놈이잖아요. 그렇지 않아요?-알았어. 형이 그렇다면 그런 거겠지. 형이 하겠다는데 반대할 생각은 없어. 그저 물어본 거야. 궁금해서. 그러면 노마한테 약속한 것도?-그게 애초에 가능한 일이었겠어?-그렇지? 그래. 그런데 형.-말 해.인호가 필립에게 물었다.-직접 만나서 약속 잡을 거야?-아니, 만날 필요까지는 없지. 전화로도 충분할 것 같은데. 왜?인호는 필립의 아랫배를 가리키며 말했다.-형은 마음에 없는 말을 하거나 불안할 때 아랫배를 쓰다듬는 습관이 있어. 기억해. 조심하라고.필립이 영권에게 전화를 걸었다. 신호가 몇 번 가지 않아 영권이 전화를 받았다.-작은아버님. 잘 지내셨습니까. 저 필립입니다.-아이고. 잘 지낼 이유가 있나. 형님이 안 계시니 마음도 몸도 편하지가 않네. 조카님은 어떤가? 아버지 빈자리가 생각보다 크지?큰 몸통에서 울려 나오는 목소리가 컸다. 원래 크기도 했지만, 이번에는 유난히 힘을 주어 크게 말하는 것 같았다. 필립은 귀에서 전화기를 떼어 스피커폰 모드로 바꿨다.-아. 네. 그렇지 않아도 하루 네 번 꼬박꼬박 뵙고 있습니다.집을 나설 때 귀가할 때, 그리고 회사에 출근할 때 퇴근할 때. 필립은 그렇게 하루 네 번 만식을 보았다. 만식이 살아 있을 때보다 더 자주 마주했다. 두려움은 없었다. 오히려 당당한 걸음걸이를 보여주려 애썼다./김강 소설가

2022-10-24

양에게 안녕이라고 말하기까지

‘애프터 양’은 근원적인 슬픔을 내포한 영화다. 이 슬픔은 두 가지의 차이에서 기인한다. 하나는 삶의 주기가 다름에서 오는 것이다. 인간과 안드로이드가 함께 살고 있는 시기를 알 수 없는 미래, 탄생에서부터 죽음까지 일정한 성장과 성숙의 속도를 가진 인간에 비해 안드로이드의 탄생(생산)과 죽음(폐기)은 필요성에 의해 그 시기가 결정되며 인간과의 그것과는 다른 양태를 띤다.세월의 흐름에 따라 변화하는 인간의 모습과 생산되어 폐기되기까지 같은 모습으로 살아가는 안드로이드. 서로의 시간은 상대적이다. 일정한 삶의 주기를 살다가는 인간의 변화하는 모습과 대조적으로 안드로이드는 성능에 따른 삶의 주기를 변화되지 않는 모습으로 살아간다. 아니 작동한다고 해야할까.시간의 상대성은 ‘필요에 의해 설정된 관계’에 균열을 일으킨다. 차이는 점점 벌어지고 관계는 역전된다. 인간의 가족관계는 세월이라는 서열의 관계지만 인간과 안드로이드의 관계는 그것이 성립되지 않는다. 성장과 쇠퇴의 주기를 가진 인간과 지속적인 성장의 능력을 가진 안드로이드와의 차이 속에서 내재된 불균형의 슬픔이 담겨 있다.제이크와 카이라 부부는 중국인 아이 미카를 입양한다. 미카를 위해 중국인이라는 뿌리를 잊지 않게 하기 위해 중국에서 생산된, 중국인의 정체성을 이식한 안드로이드 ‘양’을 집안에 들인다. 그리고 ‘양’이 어느 날 작동을 멈추면서 문제가 발생한다.바로, 대체할 수 있는가 그렇지 않은가의 문제다. 집안의 가전제품이 작동을 멈출 때 그것을 수리하거나 새로운 제품으로 대체한다. 안도로이드 ‘양’은 인간의 필요에 의해 구매한 제품으로 시작해 대체될 수 없는 그 무엇인가의 영역으로 들어선다.가전제품을 대체할 때 기준은 기능과 성능이다. 안드로이드의 경우 기능과 성능만으로 대체할 수 없는 것이 존재한다. 이 지점에서 난감함과 함께 결이 다른 슬픔이 다가온다. 양이 작동을 멈췄을 때 불편함과 함께 당혹스러웠던 감정(소멸된 기능)이 다른 방향으로 번져간다.넉넉하지 못한 형편 때문에 정식 경로로 구매하지 않았던 양의 수리를 위해 여러 업체를 전전하면서 제이크는 양의 중심에 감춰진 기억 장치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우주에 떠있는 수많은 별들처럼 시각화된 양의 기억 장치 속에 기록된 시간은 제이크의 가족뿐만 아니라 그 이전까지 양이 거쳐왔던 관계들의 사소하면서 파편화된 순간들이 빼곡히 들어차 있다.저장된 기억의 기준은 무엇인가. 인간의 고유한 속성이라고 인식되었던 ‘기억을 통한 사유’의 과정이 안드로이드 양의 메모리에 자리잡고 있다. 제이크와 양의 대화 중에서 양은 “장소에 관해, 시간에 관해 진짜 기억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한다. 두서없이 기록된 것과 같은 양의 기억은 ‘진짜 기억”에 대한 자유의지의 결과를 보여주는 것이다. 추억에 대한 자유의지와 중국인의 정체성이 이식된 프로그램의 발현일지도 모르지만 나비를 수집하는 취미를 가진 안드로이드. 모두 주체성을 가진 존재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게 된다.그 의지는 인간이 그렇듯이 기억 속에 자리잡은 타인과의 관계, 인연이라는 끈으로 연결되어져 있다. 양은 이식된 프로그램 속에서 나름의 방식으로 인간의 사고와 감정을 갖는 존재로 진화하며 인간다움의 질문을 던진다.인간인 제이크의 기억과 안드로이드 양의 기억이 함께 놓인다. 제이크도 몰랐던 양의 기억 속에서 대체할 수 없는,제품이 아닌 이제는 떠나보내야하는 존재라는 깨달음에 도달한다. 인간의 관계처럼 이제 추억을 떠올리며 슬픔을 비로소 슬픔을 감내해야하는 시간이 다가왔음을. 온전히 슬픔이 남은 자의 몫일 때, 안드로이드 양도 “그래서 슬픈가”라는 질문을 남긴다. /(주)Engine42 대표

2022-10-24

군 생활 내내 힘이 돼준 지침서

등화가친(燈火可親)의 계절이다. 등화가친은 등잔불을 가까이하고 책을 읽는다는 의미다. 디지털 시대 속에 안타깝게도 독서 인구는 점점 줄고 있지만 한 나라의 경쟁력과 문화수준은 독서에서 나온다. 이 가을 시장군수를 비롯한 지역 리더들이 감명 깊게 읽은 책을 소개 한다. 과연 그들의 인생에 영향을 미친 책은 어떤 책일까? 문학책일까, 아니면 철학책일까, 아님, 사회과학서적 일까? 어떤 책이든 그들이 느낀 소감과 감명을 통해 그들의 내면에 담긴 진정성을 읽을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다. 이 코너를 통해 마음의 양식을 살찌우는 독서문화도 함께 확산되길 기대해본다. 편집자주나는 20세 때 고향 울릉도를 떠나 3군사관학교를 다녔다.이 시절 학교 내무반 관물대에 숨겨가며 읽은 책 ‘지와 사랑’(저자 헤르만헤세)이 가장 감명을 줬다.책속의 주인공이라고 볼 수 있는 골드문트와 그의 벗 나르치스는 다른 성향을 가지고 있고, 그로 인해 지와 사랑을 각각 추구하는 다른 삶을 살아가지만 평생에 걸쳐 우정을 지속하는 관계를 보여준다. 이처럼 이성간의 사랑이 아닌 숭고한 우정에 대한 이야기를 읽으며, 혹서의 유격훈련 기간 동안 전우애에 불타올랐던 시절이 떠오른다.‘지와 사랑’은 3군 사관학교를 졸업하고 장군이 되기까지 군 생활을 하면서 많은 교훈이 됐다.울릉도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3군사관학교로 진학했다. 내가 3군 사관학교를 다닐 당시 3군 사관학교 출신이 장군이 된다는 것은 상당히 어려운 길이었다.하지만 나는 어려운 길을 뚫고 꿈을 이루었다. 많은 사람들의 도움으로 울릉군 개척 이래 최초의 장군이 됐다. 3군 사관학교를 졸업하고는 되기 어렵다는 장군이 된 것이다. 남한권 울릉군수 이는 오로지 장군의 되겠다는 나의 신념이 큰 역할을 했지만 ‘지와 사랑’의 책을 통한 삶의 의미와 인간의 진정한 가치, 존중을 깨닫게 한 것이 큰 도움이 됐다는 사실을 부인할 수 없다.이 책은 이성의 사랑에서 볼 수 없는 숭고하고 아름다운 우정을 표현한 책이다. 1930년에 발표한 작품으로 삶의 의미와 인간의 진정한 가치와 존중을 깨닫게 하는 작품이다.‘나르치스’가 인간의 금욕을 절제하며 인간의 완성으로 다가간다면 반대로 ‘골드문트’는 인간의 근본적 욕구 즉 자신의 욕구를 순수하게 인정하면서 완성으로 다가간다.두 사람의 우정이 서로가 다름을 인정하고 각자의 방식으로 완성되어 가는 것이 마치 아름다운 인간의 내면 예술 작품을 완성해 가는 것을 느끼게 하는 아름다운 책이다.나의 어린 시절 울릉도에는 도서관과 서점이 없었고, 책을 읽는 일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젊은 시절 책을 많이 읽지 못한 것이 많은 후회로 남는다. 가을은 책읽기 참 좋은 계절이다, 책은 마음의 양식을 쌓는 길이다. 특히 학생들은 젊은 시절 책을 많이 읽기를 간곡히 바란다.‘지와 사랑’의 저자 헤르만 헤세는 1946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할 만큼 훌륭한 작가다. 1877년 7월 2일, 개신교 선교사인 부친 요하네스 헤세와 모친 마리 군데르트 사이에서 장남으로 태어났다. 출생지는 독일 제국 뷔르템베르크에 소재한 소도시 칼브(Calw). 부친이 선교사여서 그런지 엄격한 환경에서 자랐다. 어머니 또한 독실한 신자였다. 그의 이런 성장과정이 나를 감동시킨 ‘지와 사랑’을 탄생시켰다고 본다.

2022-10-23

경제·문화 강국 한국의 저급한 정치 위상

배한동 경북대 명예교수·정치학 한국의 ‘오징어 게임’은 미국 넷플릭스 드라마부분에서 남우주연상과 작품상을 수상했다. 송강호의 ‘기생충’ 아카데미상 수상에 이어 이번 수상은 한국 드라마가 세계적 수준이라는 것을 여실히 보여주었다. 기생충, 미나리, 오징어 등 지극히 한국적인 소재가 이제 세계인들의 관심을 끌고 그 우수성을 세계가 인정받은 결과이다.작품 ‘기생충’은 한국 사회의 빈부의 갈등구조, ‘오징어 게임’은 적자생존의 치열한 자본주의적 경쟁구도를 리얼하게 묘사하였다. 한국인 특유의 성취 욕구와 경쟁의식, 조급한 성공 스토리가 후기 자본주의 사회의 모순 구조를 잘 반영해준 결과이다.과거 우리는 우리 스스로를 업신여기고 비하하는 열등의식을 가진 적도 있다.이제 우리는 한국적인 정서와 끈기가 선진국에서도 먹혀든다는 확신마저 갖게 되었다. 한국의 영화, 음악, 음식, 언어까지 세계인들의 흥미와 관심을 끌고 있기 때문이다. 무척 다행한 일이며 한류(韓流)라는 이름의 우리의 문화가 한국의 국격을 높이고 있다.30년 전만 해도 우리가 해외여행을 나서면 일본인이냐고 자주 물어 곤혹스런 적이 많았다. 당시 일부 여행객 중에는 일일이 대답하기 귀찮아 ‘예스’라고 해버린 사람도 있었다.그러나 근년 세계 속의 한국 위상은 완전히 달라져 있다. 세계 어딜 가나 한국을 알아주고 ‘코리아’하면 엄지를 치켜세운다. 올림픽과 월드컵 4강 신화 시절 필리핀 어느 섬으로 봉사 활동을 떠난 적이 있다. 필리핀 오지의 초등학생들까지 우리 일행을 보고 붉은 악마의 구호 ‘대-한-민-국’을 외쳐 깜짝 놀랐다. 당시 베트남 등 동남아에서는 한국 드라마 ‘대장금’이 방영될 때 거리가 조용했다고 한다.우리는 이제 경제 규모면에서도 세계 10위권의 경제 강국이 되었다. 우리 경제가 2020년 기준 1인당 GDP가 일본을 앞서고, 최근 미국 와튼 스쿨에서는 한국의 국력이 세계 8위 일본을 앞질러 6위가 되었다는 소식까지 전하고 있다.우리 정치의 위상은 어떠한가. 1970년대 미국인들은 한국 정치를 미국에 수출하려는 현대 포니의 수준에도 미치지 못한다고 비아냥댔다. 이제 우리의 반도체와 스마트폰, 전기 자동차가 세계 최고 수준으로 치닫고 있다. 그러한데도 유독 우리 정치는 아직도 저질의 3류 정치에 머물러 있다. 우리는 그간 군부 쿠데타와 권위주의 독재를 청산하고 민주정부를 수립하였다. 우리 정치는 형식적인 제도적 측면의 민주정치의 틀을 갖추었으나 아직도 선진 민주 정치와는 거리가 멀다.두 번이나 정당 간 평화적 정권 교체를 이룩하였다. 그러나 우리 정치는 아직도 정쟁으로 치닫는 여야가 격렬하게 맞붙어 싸우는 네거티브 정치가 일상화 되었다. 정치의 본질이 ‘권위의 합리적 배분’ ‘갈등의 완화’ 과정인데 우리 정치는 너무 비합리적인 낭비의 정치가 계속되고 있다. 너도 살고 나도 사는 플러스의 정치가 아닌 너 죽고 나 살겠다는 마이너스 정치가 자행되고 있다. 우리 정치는 조선왕조의 노론백파와 남인의 당파 정치에 머물러 있다.이러한 혼탁한 정치판에서 언론마저 책임을 방기하고 정쟁을 더욱 부추기고 있다. 우리 정치 현실은 공정한 심판도 선수도 없는 진흙탕 싸움판이 계속되고 있다. 어쩌다 이런 질 낮은 정치의 악순환만 반복되고 있는가. 치열했던 지난 대선이 끝나고 여야의 입지가 바뀐 지 오래지만 여야는 선거 시의 마타도어 정치가 반복되고 있다. 까마귀 싸우는 골에 소수의 백로마저 찾을 수 없는 것이 우리 정치의 현실이다.국회에서 여야는 정책 대결이 아닌 사사건건 대립되고 고소 고발이 이어지고 있다. 시민 사회도 진영으로 갈리고 합리적인 무당층이나 중도층은 회색분자로 치부되어 침묵하는 실정이다. 이럴수록 진영에 착 달라붙은 ‘디지털 극단주의자’들이 정치의 갈등을 더욱 확대 재생산하고 있다. 여기에 양심적인 시민들의 정치인들에 대한 냉소와 불신은 더욱 커질 수밖에 없다.우리 정치를 이 나라의 경제나 문화 수준만큼이라도 끌어올릴 수는 없을까. 어디에서부터 매듭을 풀어야 할지 가슴이 답답하다.여야 정치인들부터 각성이 우선되어야 한다. 저질 정치의 일차적 책임은 정치인들에게 있기 때문이다. 여야 정치인들은 겉으로 민생과 공생을 외치지만 그 내면세계는 완전히 다르다. 여야의원들은 적대적 공생을 통해 권력과 특권을 향유하면서 차기 공천을 위한 충성 경쟁, 줄서기 정치에 몰입되어 있다.우선 여야는 우리 정치의 후진적이고 비생산적인 갈등 구도를 풀기 위한 특단의 긴급 조치를 취해야 한다. 여당은 조건 없이 지난 정권을 향한 ‘보복 정치’를 중단하고, 야당은 집권 세력을 향한 ‘발목잡기 정치’부터 중단해야 한다. 그러한 ‘역사적 대타협’이 상생의 출발점이기 되기 때문이다.

2022-10-23

교육부 존재의 의미

서의호 포스텍 명예교수·산업경영공학 교육부가 고위 공무원이 파견되던 국립대 사무국장 자리를 다른 부처 공무원과 민간에 개방한다고 발표했다.교육부가 임명하던 자리를 개방하고 총장이 사무국장 임용에 권한을 행사할 수 있도록 인사 개편을 추진한다고 밝혔다. 교육부 공무원 임용은 원칙적으로 배제된다고 한다.대학 사무국장은 예산 편성, 인사 업무 등을 총괄하는 주요 보직이다. 그동안, 대학에선 교육부의 사무국장 임용권이 대학 관리·통제 수단으로 변질했다며 총장에게 임용권을 줘야 한다는 목소리가 컸고 이에 이번 정부가 대학의 자율성·독립성 차원에서 화답을 한 것이다.지금까지 교육부의 대학 간섭은 늘 대학 자율성의 화두가 되어 왔다. 대학 교무회의에 참석하면 대학에서 가장 골치 아픈 논의가 어떤 학과의 정원을 줄여서 어떤 학과의 정원을 늘리느냐 하는 것이다. 이런 논의는 아마도 한국대학에서만 빚어지고 있는 기현상일 것이다. 가끔 대학입학정원 감축을 대학 자율에 맡긴다는 정책이 있긴 해도 기본적으로 한국에서는 대학정원 결정을 교육부가 갖고 있다. 이는 대학을 규제하는 무기로 종종 쓰인다.그동안 교육계에서는 “교육부가 없는 것이 최선의 정책이다”라는 자조적인 말이 있어왔다. 교육부가 대학지원을 무기로 입학정원에서부터 대학 구조조정까지 여러 가지로 대학을 규제하여 왔기 때문이다.한국은 고교 졸업자의 대부분이 대학에 가는 국가이며 이 비율은 OECD 국가 중 1위이다. 대학은 국가 경쟁력의 지표라는 점에서 교육부의 정책은 그만큼 중요하다.대학 진학률이 최상위인 반면 대학의 자율성은 최하위일지도 모른다. 자율화가 혼란을 초래한다는 이유와 교육부가 재정을 무기로 대학을 컨트롤 하겠다는 발상은 오랫동안 문제가 되어 왔다.교육부는 대학의 창의와 혁신을 지원하는 것이 가장 큰 바탕이 되어야 한다. 명시적으로 규정된 것만 허용하는 ‘포지티브 규제’보다는 최소한의 사항만 금지하는 ‘네거티브 규제’ 시스템으로 바꿔야 한다. 교육부가 정한 것 이외에는 대학이 무엇이든 자율적으로 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교육부가 해야 할 일과 하지 말아야 할 일을 혼동하고 있다. 상황이 좋을 때는 대학을 규제하지 않는 것이 교육부가 할 일이고 상황이 안 좋을 때는 대학을 도와주는 것이 교육부가 할 일이다.교육부 폐지가 최선이다라는 말이 안 나오려면 교육부가 해야 할 일과 하지 말아야 할 일을 좀 더 잘 구분해야 하고 ‘네거티브 규제’ 시스템으로 전면 개편해야 한다.입학정원 감소와 관련해서도 상황은 거꾸로 가고 있다. 대학을 규제하는 힘을 과시하기 위해 교육부가 평시에도 대학지원을 무기로 대학을 규제하고 있다가 위기 상황에서 대학의 고통은 대학자율에 맡기고 있는 것이다. 고통을 받게 될 지역 군소 대학이나 전문대 같은 취약 대학에 좀 더 많은 지원책을 입안하여 그러한 대학들이 입학정원 감소에도 불구하고 생존할 수 있는 지원책을 마련해 주어야 한다. 이러한 과정에서 평가는 필요하고 평가를 징계의 수단으로 사용하기보다는 어떤 도움을 줄 수 있는지의 잣대로 삼아야 한다. 평소에 규제의 칼을 사용하던 교육부는 이제 대학 생존을 위한 적극적인 정책을 펼 필요가 있다.교육부가 국립대 사무국장 자리를 다른 부처 공무원과 민간에 개방한다고 발표하면서 인사시스템을 획기적으로 바꿔 창조적·발전적인 조직으로 나아가기 위한 선택이라고 밝혔다. 매우 바람직한 발상으로 보인다.그런데 교육부가 국립대학 사무국장을 대기발령 낸 것에 대해 전국공무원노조 대학본부와 교육부공무원노동조합, 국가공무원노동조합이 철회를 촉구하고 나섰다. 특히 교육부 공무원의 반발이 심해 보인다.결국 자기들의 밥그릇을 지키겠다는 발상으로 보인다. 전문성을 표면에 내세웠지만 타 부처나 민간인에게도 이러한 전문성을 충분히 확보한 인재들은 많을 것이다. 다만, 공개 모집에 교육부 공무원도 응모 자격을 주는 것은 고려해 볼만하다. 아마도 그러한 자격을 주면 또다시 정실이 작용될 우려가 있기에 교육부 공무원은 배제된 것으로 보인다.다만, 이번 정책을 발표하기에 앞서 교육정책 전문가의 의견과 대학 현장의 목소리를 반영하는 과정의 토론회, 공청회 등을 거치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간다.공무원 노조는 현재의 개방형 직위의 문제점과 기존 사무국장의 출신별 호응적합도 내지 만족도 등의 조사·분석도 병행해 제대로 된 인사개편안이 마련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 점은 보완되어야 할 사항이다. 사실상 국립대학의 지속적 발전을 위해서는 이번 조치이외에도 장기적·체계적 방안이 필요하고 사무국장 공개모집안은 그런 장기 전략의 맥락 안에서 처리될 수 있을 것이다.교육부의 존재 유무를 떠나서 대부분의 국가가 교육부가 있다는 관점에서 교육부 폐지는 지나친 주장이지만, 교육부가 대학의 자율을 최대한 보장하는 교육정책을 펴는 것은 OECD 국가의 멤버로서 가장 기본적인 자격을 확보하는 것이다.이번 사무국장 개방안이 슬기롭게 해결되어 잘 진행되길 바라는 마음이다.

2022-10-23

또 조국의 늪에 빠질 건가

김진국 고문 지난 주말 서울 중심가. 광화문에서 대통령실이 있는 삼각지까지 중심 도로가 인파로 꽉 막혔다. 윤석열 대통령 퇴진과 특검을 요구하는 촛불집회와 이재명 민주당 대표와 문재인 전 대통령 구속을 요구하는 맞불집회가 곳곳에서 벌어졌다. 시내 교통은 마비됐다. 필자의 시내 중심가 사무실 창문 너머로 함성이 탱크 소리처럼 몰려온다.한국 정치에서 지역갈등이 망국병이라고 했다. 옳고 그른 합리적인 판단보다 우리 지역 출신이냐 아니냐로 편을 갈랐다. 지역감정만 극복하면 국민 통합이 될 거라고 믿었다. 김 전 대통령은 “춘향이의 한(恨)은 이 도령을 만나면 풀어진다”라고 말했다. 호남 출신 대통령을 만들었으니 해결됐다고 생각했다. 여야의 국정 경험으로 책임정치를 하리라 기대했다.기대는 기대에 그쳤다. 집권의 단맛을 본 뒤 선거 불복을 반복했다. 대선이 끝난 지 5개월 반. 대통령 퇴진을 요구하는 고성능 스피커 소리가 서울 하늘을 찢어놓았다. 수만 명이 촛불을 흔들었다. 국회 절대다수를 차지한 제1야당 소속 국회의원 일부도 참석했다. 반대쪽 집회에는 더 많이 모였다. 나라가 완전히 두 쪽이다. 합리적인 이성은 사라졌다.불과 3년 전, 비슷한 풍경이 있었다. 조국 사태 때다. ‘조국 수호, 검찰 개혁’을 내건 집권당 지지 세력은 서초동에, 그 반대 세력은 광화문에 모여 세 대결을 벌였다. 옳은 것도 없고, 틀린 것도 없다. 진실은 진흙탕 속에 내팽개쳐지고, 진영의 구호를 복창하는 깃발과 완장만 가득하다. 객관성이 생명인 언론사 사장마저 “딱 보니 100만 명”이라고 흥분했다.진실은 무시되고, 공정은 무너졌다. ‘기회는 평등하고, 과정은 공정하고, 결과는 정의로울 것’이라는 문재인 전 대통령의 화려한 수사는 공허했다. 그 대가는 분명했다. 배신감을 느낀 젊은이들이 돌아섰다. 20년 집권론이 무너지고, 10년 주기 정권 교체의 흐름도 끊어졌다. 조국의 짐을 민주당이 대신 짊어지고 자멸했다.이제 다시 민주당이 이재명 수호대가 됐다. 당 대표이기 때문이다. 대표 경선 때부터 이런 우려가 제기됐다. 민주당 안에는 불만이 있다. 조국 사태의 전철을 밟는다는 것이다. 김해영 전 의원은 “이재명 대표님, 그만하면 되었다. 이제 역사의 무대에서 내려와 주시라”라고 직설적으로 요구했다. 이런 의견이 소수가 아니다. 한 중진 의원은 “이 대표가 (김용 민주연구원 부원장을 압수 수색하도록) 민주당을 풀어줘야 한다”라며 “이런 생각이 민주당 의원의 절반을 넘을 것”이라고 자신했다.2016년 10월 최순실 게이트가 터진 이후 주말마다 서울 시내에서는 태극기 집회가 열렸다. 2020년 총선까지 매주 계속했다. 그렇지만 박근혜 전 대통령을 보호하지도 못했고, 민심으로부터 멀어져갔다. 소수 시위 세력끼리만 동질감을 느끼고, 위로했다. 선거 결과는 허망했다. 태극기 세력이 참패했다. 집권당에 5분의 3 의석을 허용했다. 국민의힘이 무너지는 데도 일조했다.박 전 대통령이 받은 22년 형 가운데 15년은 뇌물죄다. 대기업이 공익스포츠 재단 출연하고, 최순실 씨의 딸이 대기업 소유로 등기된 말을 탄 것을 뇌물이라고 인정했다. 국민 다수가 그것까지 권력형 범죄라고 생각했다. 태극기 집회가 고립된 이유다.이재명 대표는 그보다 나은가. 유동규 전 성남도시개발공사 본부장과 김용 부원장 혐의는 최순실 씨의 혐의보다 훨씬 구체적이다. 사업권과 허가라는 명확한 이권 관계가 있다. 금전 거래가 있었다면 범죄 혐의가 더 분명하다. 박 전 대통령은 현직 대통령이면서 탄핵당하고, 수사받았다. 없는 죄로 야당 정치인을 탄압해서는 안 된다. 하지만 야당 대표라는 것이 무조건 면죄부가 될 수는 없다. 닉슨 미국 대통령이나 다나카 일본 총리의 사례를 거론할 필요도 없다.민주당은 이번에도 대신 싸울 건가. 정치 탄압이라고 주장하려면 결백을 밝혀야 한다. 진실을 가지고 국민을 설득하지 못하면 수긍하기 어렵다. 조국 사태 때 의문을 품는 사람이 많았다. 그런데도 강경파의 선동에 휘말려 늪에 빠졌다. 선거를 치른 뒤에야 후회했다. 이제 대선에 이어 총선마저 망칠 수 있는 기로에 섰다. /본사고문

2022-10-23

꼬마들의 재잘거림 속에서

김규종 경북대 교수 오전 10시 반에 강의가 있는 아침은 여유롭다. 이번 학기 수업 가운데 사흘이 9시에 시작한다. 그런 아침나절에는 7시에 운전대를 잡아야 한다. 강의 내용을 미리 살피고, 이것저것 보충하려면 조금 서둘러야 한다.하지만 2교시 수업이 있는 이틀은 상대적으로 넉넉하다. 그런 날 아침 대학원동 앞 너른 인도에 꼬맹이들이 풍선을 하나씩 들고 저쪽에서 걸어온다. 재잘재잘 조잘조잘 웅얼웅얼하면서 손에 손 맞잡고 걸어오는 것이다.숫자 헤아리는 버릇이 있는 나는 아이들이 11명, 인솔 교사가 3인임을 확인한다. 네다섯 살 먹은 녀석들이 앙증맞게 내 옆을 지나간다. 가던 길 멈추고 돌아보던 나는 휴대전화를 꺼내 아이들 모습을 사진기에 담는다. 그리고 나지막하게 혼잣말한다. ‘세 명의 선생에 아이들이 열하나. 좋아졌네. 그래, 사람 대접받는 세상이 오긴 왔구나.’생각은 어린 시절로 치달린다. 내가 다닌 국민학교는 전국에서 학생수 3위를 자랑했다. 학년별로 18반에서 20반까지 있었고, 학급당 학생은 예사로 90명이 넘었다. 그 많은 학생을 담임 교사 한 사람이 책임져야 했다. 콩나물시루 같은 교실에서 우리는 뛰고 달리고 장난치고 도시락 먹고 공부하고 벌을 서가며 성장했다. 아이들이야 그렇다 쳐도 선생님들의 노고가 이만저만이 아니었음은 불문가지의 일이다.경제성장 한다고 교육 관련 비용을 국민 개개인에게 넘겨버린 정부 때문에 가난한 부모들은 육성회비 때문에 허리가 부러질 지경이었다. 한 집에 너덧 명의 자녀가 기본이었던 시절이었으니, 도시락 싸는 것도 대단한 일이었던 엄혹한 시기를 살아남아 머리에 서리가 내렸다. 그런 초로의 인생에 스치듯 다가온 유치원생들을 보니 감회가 남다르게 찾아왔던 게다.때마침 아침 바람이 차갑지 않고 햇살이 따사롭게 내리고 있어서 아이들의 가을 나들이를 축복해주고 있었다. ‘저 꼬맹이들이 내 나이가 되어도 우리 푸른별 지구가 건강해야 할 텐데’ 하는 생각이 고개를 든다. 근대 성립 이후, 특히 산업혁명 이후 인간이 불러온 지구 온난화는 분명히 재앙 수준이다. 1만2천년 전에 시작된 간빙기 홀로세의 기후 조건에 힘입은 인류문명이 지나치게 지구를 옥죄는 바람에 지구의 회복탄력성이 악화일로(惡化一路)를 걷고 있다.2020년대를 살아가는 우리가 지구 온난화를 최대한 저지하지 않는다면, 저 어린것들의 앞날은 보장하기 어렵게 된다. 가뜩이나 탐욕스럽게 젊은 세대의 등골을 빼먹은 한반도의 기성세대 아닌가?! 희대의 4대강 사업으로 사기 처먹고, 아파트와 원룸 가격 폭등시켜 젊은이들 피를 흡혈귀처럼 빨아 먹은 타락하고 노회한 세대 아닌가. 거기에 지구 온난화가 불러일으키는 최악의 환경파괴까지 덤터기 씌운다면 이건 정말 인간이라 불릴 자격조차 없는 파렴치다.평등이니 공정이니 하는 미사여구로 대중을 속여먹고 우려먹는 짓은 당장 그만두어야 한다. 초롱초롱하게 빛나는 저 어린것들의 눈동자 앞에서 새빨간 거짓말은 집어치워야 마땅하다. 저 아이들의 환한 미래를 위해서 이제라도 발 벗고 나설 일이다.

2022-10-23

마약과의 전쟁

우정구 논설위원 아편전쟁은 1840년과 1856년 두 차례 걸쳐 영국과 중국 사이 무역분쟁으로 인해 일어난 전쟁이다.청나라로 유출되는 은화(銀貨)를 회수하기 위해 영국이 청에 아편을 살포한 것이 원인이 됐지만 전쟁에서 패배한 중국은 그 대가로 홍콩을 내주게 된다. 1841년부터 156년동안 홍콩은 영국의 지배를 받는다.중국 역사에 가장 치욕스런 전쟁으로 남아 있기에 지금도 중국은 마약과 관련한 범죄에 대해선 무관용 원칙을 적용하는 강경 일변도다. 2014년 마약과 관련한 한국인이 체포되자 한국의 신변양도 요청에도 사형을 집행한 적도 있다.미국의 닉슨 대통령이 마약을 공공의 적으로 선포하면서 마약과의 전쟁이란 용어를 처음 사용했다. 이후 미국의 모든 대통령이 마약에 관한한 강경책을 폈으나 결과적으로 마약 이용자를 줄이는 데는 실패했다. 단순히 금지된 마약을 사용했을 뿐인데 많은 사람이 마약 전과자로 낙인되면서 오히려 직장을 구하지 못해 빈곤층이 더 늘어나는 역효과가 생긴 것이다.마약 청정국으로 알려진 우리나라도 마약관련 사범이 급증하고 있다. 경찰 발표에 의하면 2017년 이후 5년동안 마약밀수단속량이 무려 18.4배가 늘었다. 특히 연예인 등 일부 계층 중심으로 사용되던 것이 이젠 젊은층까지 광범위하게 번져 사회 문제가 되고 있다.윤석열 대통령이 경찰의 날 행사에 참석해 마약과의 전쟁에서 반드시 승리해 달라는 주문을 했다. 마약의 우리 사회침투가 그만큼 심각하다는 뜻이다. 마약은 중독성이 강해 한번 중독되면 빠져나오기 힘들어 패가망신의 지름길이라 한다. 마약에 대한 우리 사회의 경각심부터 높아져야겠다./우정구(논설위원)

2022-10-23

청년의 꿈과 도전이 실현되는 성장도시 만들겠다

권기창 안동시장 민선 8기 임기 시작 넉달이 되어간다. ‘위대한 시민, 새로운 안동’을 기치로 오직 시민들만 바라보며 시정혁신에 집중해왔다. 시민 중심으로 탈바꿈한 행정서비스에 시민이 크게 호응해 주면서 시정혁신에도 탄력이 붙었다.민선 8기 안동은 ‘활력 넘치는 성장 도시, 함께 만드는 희망 안동’을 시정목표로 전통과 현대, 미래가 공존하는 역동적인 도시, 인구 30만, 경제인구 50만, 관광객 1천만의 활력 넘치는 성장도시로 도약할 계획이다.안동·예천 행정구역 통합을 추진하고, 바이오·백신ㆍ대마ㆍ물산업 육성으로 일자리를 창출해 활력 넘치는 성장도시 안동을 만들어 가겠다.4차 산업 기반의 안동형 CT·IT·AI·메타버스 산업을 육성하고, 문화콘텐츠 창작·창업 지원으로 아이디어만 있으면 기회가 주어지고 청년의 꿈과 도전이 실현되는 안동을 만들어나갈 것이다.또한, 안동댐·안동역사·천리천을 관광 자원화하고, 중앙선 폐선구간 마라톤 코스를 개발하는 등 경유형 관광에서 체류형 관광으로 전환해 관광객 1천만 시대를 열어나가겠다.농촌 일손부족 문제를 해결해 희망 있는 농업, 살맛 나는 농촌으로 만들고, 농업 경쟁력을 확보해 살기 좋은 농촌을 조성하겠다.어린이와 다문화가족뿐만 아니라 노인과 장애인을 위한 교육과 복지의 공공성을 강화해 시민이 체감하고 함께 누리는 건강하고 따뜻한 도시를 실현하겠다.우선, 민선 8기 안동 시정은 미래 성장동력 확보와 현장 중심의 민원 해결이라는 투트랙 전략으로 추진한다.안동의 100년 미래를 책임지는 성장동력을 확보하기 위해 17개 분야, 110개 과제를 시민과 약속했다. 특히, 8대 핵심 공약에 지역의 숙원을 해결할 해법을 담았다.우선, 미래 신성장산업 육성으로 새로운 일자리를 창출하겠다. 국가산업단지를 조성해 바이오·백신·대마·물산업을 육성하고 기업 유치, 투자를 활성화해 글로벌 5대 백신 생산 중심지로 거듭날 계획이다.경북도청 이전 등으로 인한 원도심 공동화에도 적극적으로 대응한다. 구 안동역을 활용한 버스터미널을 신설해 원도심 접근성을 강화하고, 올해 열리는 안동국제탈춤페스티벌을 비롯한 지역 행사는 원도심에서 개최해 지역 상권 활성화에 직접적인 도움이 되도록 할 것이다.지역발전에 제한을 가져온 용도지역(자연환경보전지역) 변경에도 노력한다. 안동댐 주변 자연환경보전지역 일원에 과도한 이·삼중의 규제를 취락지구 중심으로 우선 용도지역 변경을 추진할 예정이다.공공의료 취약지로 꼽히는 안동을 포함한 경북북부권의 의료 불평등 해소를 위해 공공의과대학을 유치하고 대학병원 설립을 추진한다. 이를 통해 공공보건 의료전문인력을 양성하고 수준 높은 의료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도록 추진할 것이다.광역상수원 공급 체계를 구축해 수돗물을 반값으로 공급할 계획이다. 낙동강 하류 지역과 상생 협력하는 차원에서 깨끗한 물을 하류에 공급하고 이에 상응하는 상생 지원을 받아 안동·임하댐이 안동시민의 애물단지가 아닌 보물단지가 되도록 만들 것이다.이 밖에도 지역대학 대학생에게 무상등록금 지급으로 우수 인재의 유출을 막는다. 농번기 만성적인 일손 부족 현상을 근본적으로 해결하고자 외국인 계절근로자 제도를 전면적으로 도입한다.이와 함께, 시민들의 고충을 듣고 불편한 점은 즉시 고쳐 나가는 현장실천형 민원처리에 시정혁신의 큰 방점을 두고 있다. 24개 읍면동장과 SNS핫라인을 개설해 시민들의 삶 구석구석의 불편사항을 즉각 해소하고 관광거점도시에 걸맞은 깨끗한 도시 미관을 조성해 ‘클린 시티’를 실현할 것이다.한편으로, 시민과 함께 소통하고 공감하는 열린 시정을 만들고자 취임식을 시작으로 기관·단체장 중심의 ‘의전’문화를 시민 중심으로 개선했다. 각종 행사 시 내빈 소개를 없애고 권위적인 의전을 최소화할 뿐만 아니라 복장·보고체계 간소화를 실행하고 있다. 특히, 시청 조직도에 결재권자인 시장을 제일 아래로 내리고 시민들과 소통을 강화하고자 시장실뿐만 아니라 24개 읍·면·동장실은 1층으로 이전했다.과감한 혁신과 변화로 우리나라 지방자치의 모델이 되는 시장이 되고 싶다. 1천400여 공직자와 함께 유연하고 창조적인 사고와 결단력, 적극적이고 긍정적인 자세로 시민과 소통하며 끊임없이 노력할 것이다. 청년의 꿈과 도전이 실현되고 활력 넘치는 성장도시를 만들어 희망으로 두근두근하고, 청년들로 들썩들썩하는 안동을 반드시 만들겠다.

2022-10-23

독도야 잘 있느냐

독도, 홀로 있어 외로운 섬을 가슴에 품고 살았다. 보고 싶고 가고 싶고 쓰다듬고 싶었지만, 바쁘다는 핑계로 마음에서 자꾸 멀어졌다. 이번에는 큰마음 내서 나서기로 했다. 검푸른 망망대해에 외롭게 떠 있는 바위섬, 그곳에 있는 내 나라의 땅을 밟고 물비린내를 온몸으로 마셔보리라. 거기에는 질기게 뻗고 있을 풀뿌리, 갖가지 날짐승이 날아들고 있겠지. 달뿌리풀, 날개하늘나리, 섬괴불나무, 보리밥나무, 뿔쇠오리, 노랑지빠귀, 물수리, 괭이갈매기 등 이름도 예쁜 생명이 어우렁더우렁 군락을 이루고 있겠지.포항에서 나고 자라 지금은 지천명을 훌쩍 넘겼다. 호미곶에서 일출을 맞고 수평선 너머에는 독도가 있고, 이제는 독도를 만난다는 사실에 기분이 좋았다. 울릉도 동남쪽 뱃길 따라 이백 리, 세종실록지리지 강원도 울진현, 이사부, 안용복…, 동남쪽으로 난 뱃길을 따라가 보자. 지금껏 책으로만 익혔든 지식을 더 깊이 사랑할 수 있게 나선 길이다. 머리로만 사랑한다고 외친 곳, 독도의 등을 한 번쯤 쓰다듬어 주련다.아름다우면 사랑하게 되고, 사랑하게 되면 속속들이 알고 싶어진다. 독도가 그렇다. 심해 2천m에서 우뚝 솟아오른 동도, 서도는 동해 위에 핀 돌꽃이었다. 바닷속에는 해조류가 너울거리고 이를 터전으로 고기들이 별천지를 이룬다. 아름다움 아래 감춰진 보물은 그뿐만 아니었다. 망간단괴, 해양 심층수, 천연가스 등 돈으로 가치를 환산할 수 없는 자원이 많이 매장되어 있다. 바다는 우리의 미래를 풍요롭게 하는 자원의 보고였다.우리 땅의 동쪽 끝을 보고 싶어 배에 올랐다. 백 번 듣느니 한 번 보고 느끼는 게 낫지 않으랴. 이제는 손으로 바위를 만지고 괭이갈매기는 어떤 노래를 부르는지 직접 듣고 싶었다. 무엇보다도 항상 그곳에 있을 독도 경비대 아저씨들에게 인사 한마디 나누고 싶었다.독도를 알아가는 거리만큼 바닷길은 험난했다. 파도가 점점 높아져 배가 울렁거렸다. ‘독도는 우리 땅’이라는 궐기문장이 두 주먹에 아로새겨질 때쯤 뱃머리가 도동항에 닿았다. 파도가 방파제를 때리고 요란한 울릉도 바람이 나를 맞았다. 독도에 한 발짝 더 다가갈 수 있다는 기대에 바람쯤이야 대수롭지 않게 여기며 도동항에 내렸다. 한나절이 지나자 거칠었던 울릉도의 바람은 온순했다. 이순혜 수필가 다음 날, 바다는 길을 열어주었다. 어떤 이는 삼 대가 공덕을 쌓아야 길을 열어준다고 했다. 삼 대가 공을 쌓지는 못해도 독도에 가고자 하는 간절한 마음을 들어주었나 보다. ‘어여 오라’고 독도는 두 팔 벌려 우리를 맞이했다. 독도에서 꼭 하고 싶었던 게 있다. 마음껏 발로 쿵쿵거리며 뛰어다녔다. 사람 반 괭이갈매기 반 그리고 비릿한 냄새하고 눅눅한 바람이 하나가 되었다.동행한 벗들과 플래카드를 들고 사진을 찍었다. 한참을 정신없이 사진을 찍고 괭이갈매기를 찍고 서도와 동도를 카메라 셔터에 부지런히 담았다. 하나라도 빠짐없이 모두 담고 싶었다. 두고두고 꺼내 보려면 더 많은 것을 담아야 하겠다.웅성대는 사람과 조금 떨어진 곳에 갔다. 동해의 맑은 물이 독도의 끝자락에 닿은 곳에서 한참을 생각했다. 이 물이 흘러 더 동쪽으로 가겠구나. 거기에는 이곳을 노리는 무리가 있겠지. 오래전부터 있는 아름다운 이곳을 그들의 방법으로 흩트려 놓는구나. 내 마음을 알았는지 파도가 철썩거리며 바위에 와 부딪힌다. 가장 동쪽에 있는 우리 바닷물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비록 독도에 머무는 시간은 짧았지만, 그 여운은 오래갈 듯하다. 독도야 잘 있거라.

2022-10-23

신(信)

박상영 ​​​​​​​대구가톨릭대 교수 옛말에 ‘갖바치 내일 모레’라는 말이 있다. 갖바치들이 흔히 물건은 제 날짜에 만들지 않으면서, 약속한 날에 찾으러 가면 내일 오라 모레 오라 한다는 뜻이다. 한마디로 약속을 지키지 않는 사람을 비유해 이르는 말이다. 오래전 친척 어른 한 분이 하는 말이 고향 친구 하나가 사업을 했는데, 돈을 크게 빌려주었단다. 근데 이제 갚겠다며 전화 와서는 계좌번호를 불러달라 해서 기꺼이 계좌를 알려주고 반갑게 전화를 끊었는데 이제나저제나 소식이 없더니 얼마 지나 또 전화 와서는 계좌번호가 맞냐며 다시 불러달라더란다. 그제야 아, 이 사기꾼! 애초부터 갚을 생각 없으면서 괜히 주려는 척하는, 또 ‘척’하는 인생 하나 여기 있구나 했단다.인도의 정신적, 정치적 지도자인 마하트마 간디는 ‘사람의 동기를 의심하는 순간, 그의 모든 행동이 순수하게 보이지 않는다’라고 한 적이 있다. 물론 타인의 순수한 동기를 괜히 의심부터 하고 보는 것도 문제가 있지만 왠지 대화하면서 찝찝한 느낌이 들면 십중팔구 그 동기가 의심스러운 경우가 많은 것도 사실이다. 그러한 마음의 불편함은 바로 상대방을 이용해 자신의 이익을 계산하는 과정에서 알게 모르게 나오는 행동이나 말투 때문에 발생한다.심리학자들에 따르면 속는 자나 속이는 자나 모두 부정적인 심리 현상이 동시에 일어난다고 한다. 즉, 사람의 뇌는 상대를 속일 생각을 하는 순간부터 감정 담당 부위가 반사적으로 활성화되면서 상대에 대한 죄책감과 더불어 정서적 인지적 갈등을 겪게 된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많은 이들이 상대를 속이려는 것은 이러한 내적 갈등보다도 속임으로 인해 얻는 이득이 더 크게 다가오기 때문이라고. 곧 부정적인 정서를 담당하는 뇌와 보상 중추 뇌가 함께 활성화될 때, 후자가 더 크게 작동되면 그러한 행동이 자행된다는 것이다.이렇게 다른 두 영역을 관장하는 뇌가 동시에 활성화될 때 보상 중추 뇌의 유혹을 물리치기 위해서는, 바로 철저한 자기 인식과 관리가 필요하다. 즉 타인에게 해로운 불의는 절대 행하지 않고 내가 한 말은 꼭 지키려는 강한 의지 말이다. 철학자 에리히 프롬은 그래서, “자신을 신뢰할 수 있는 사람만이 타인을 신뢰할 수 있다”고 했고, 공자도 논어에서 “오랜 약속을 평생 잊지 않고 지킨다면 완성된 사람”이라 했던 것이다. 그만큼 자기 확신에 바탕을 두고 타자와의 신의를 지켜나가는 사람이라야 믿음직스럽고 달콤한 유혹도 단호히 거절할 수 있다.한곳에 오래 터 닦아 장사하려면 한순간 눈속임이 과연 통할까. 하물며 평생을 같이할 사람에게라면 그것이 비록 작은 거짓이라도 한번 잃은 신뢰를 어찌 회복할 수 있을까. 어느덧 가을도 중순을 넘어서고 있다. 울긋불긋 단풍들로 온 천지가 절경인 요즘, 멋지게 차려입고 단풍놀이 가는 것도 좋지만 국화차 한 잔에 가을 독서하며 그동안 곁에 있던 소중한 이들에게 과연 내가 얼마나 신의 있었던가를 한번 곱씹어보면 어떨까. 가을이 한층 더 풍성하게 다가올 테니 말이다. 물론 그렇다고 다리 밑에서 만나기로 한 여자와의 약속을 지키려고 홍수도 안 피하고 기다리다 마침내 익사한, 춘추 시대 미생처럼 되어선 안 될 일이지만.

2022-10-23

쳐다본다는 것

유영희 작가 삶이 얼마 남지 않은 사람에게 죽음이 가깝다는 것을 말할 것인가 말 것인가 하는 논쟁은 말해야 한다는 쪽으로 정리된 것 같다. 죽음을 준비할 시간을 주는 것이 좋다는 이유에서다. 오늘 있었던 모임의 한 참가자는, 의사가 자신의 암 재발 소식을 알리면서 최대 5년 살 수 있을 거라고 무덤덤하게 말하더라며 웃었다. 그녀가 웃을 수 있는 것은 그만큼 준비를 했다는 의미일 것이다.그러나 준비도 못 했는데 갑자기 죽음이 닥치기도 한다. 그럴 때는 죽은 이에게도 많은 회한이 남을 것이다. 그래서인지 죽은 사람이 등장하는 문학 작품을 종종 볼 수 있다. 극작가 손톤 와일더의 ‘우리 읍내’에도 그런 사람들이 나온다. 이 작품은 1938년 퓰리처 상 희곡 분야 수상작으로, 무대 감독이 해설자 역할을 하면서 극을 이끌어가는 독특한 형식을 가지고 있는데, 삶에서 무엇이 중요한지 잔잔하게 보여준다.극의 여자 주인공 에밀리는 출산하다 갑자기 죽게 된다. 공동묘지에는 죽은 이들이 모여 이야기를 나눈다. 이제 묘지에 막 들어선 에밀리는, 먼저 죽은 이들의 만류를 무시하고 해설자에게 전생으로 가고 싶다고 졸라 자신의 열두 번째 생일로 돌아가서 가족을 바라본다. 그리고 이내 금세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깨닫는다. 엄마는 에밀리 생일이라고 구하기 어려운 선물도 준비해주었고, 아빠도 강연 여행을 끝내고 돌아와서 에밀리의 생일을 축하했지만, 에밀리는 그들이 서로 쳐다보지 않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에밀리가 이 순간이 이렇게 빨리 지나가는데 왜 서로 쳐다보지 않느냐고 외치지만 소용이 없다.가족뿐 아니라 자신이 누리는 물건들이나 커피 한잔 하는 자신의 일상조차 제대로 느끼며 사는 사람은 거의 없다. 결국 너무나 아름다워 진가를 몰랐던 모든 사물에게 작별하며 에밀리는 이승을 완전히 떠난다.쳐다보기를 제대로 못 하는 가족이 에밀리 네만은 아닐 것이다. 서로 생일도 챙기고 여행도 하는 화목해 보이는 가족이라도 속을 들여다보면 그저 자신이 맡은 역할을 수행하는 것일 뿐 정작 중요한 서로 쳐다보기는 못하는 가정이 많다. 작은 충격이라도 들어오면 깨지기 쉬운 유리처럼 아슬아슬한 가정도 많다.행복해지고 싶다는 이유로 맹목의 열정에 사로잡혀 언제나 분주하게 친구를 만나거나 재물을 모으거나 권력을 추구하는 사람도 있지만, 그 과정에서 쳐다보기를 못해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주고 자신을 돌아보지 못한다면 그런 성취 역시 허울만 좋은 가족처럼 덧없다.무대 감독은, 산다는 것은 무지의 구름 속을 헤매면서 괜히 주위 사람들 감정이나 짓밟고, 마치 백만 년이나 살 듯 시간을 낭비하고, 늘 이기적인 정열에 사로잡혀 있다고 하면서, 인간과 항상 함께 하는 데도 인류가 까맣게 잊고 있는 영원한 무엇이 있다고 한다.“살면서 자기 삶을 제대로 깨닫는 사람이 있을까요? 매 순간마다요?” 에밀리의 이 물음은 우리가 죽음을 대비하는 가장 좋은 질문이다. 그리고 이 질문에 ‘그렇다’고 답하는 것이 무대 감독이 말한 영원한 그 무엇과 함께 하는 것이다.

2022-10-23

홍준표의 리더십과 상생

홍석봉 정치에디터 대구의 1인당 지역내총생산(GRDP)은 지난 1992년 이후 31년째 전국 꼴찌다. 가구 소득과 1인당 개인 소득은 8개 대도시 중 가장 낮다. 고령인구 비율은 8개 대도시 중 두 번째로 높다. 과학기술 혁신역량 전국 15위다.경북도 상황은 좋지 않다. 경북은 가구소득 17개 시도 중 꼴찌, 1인당 개인 소득 16위, 고령인구 비율 2위 등 각종 지표가 최하위권을 맴돌고 있다. 이게 대구·경북의 경제 현실이다. 처참하기 짝이 없다.홍준표 대구시장은 취임사에서 대한민국 3대 도시 영광을 되찾고 대구 중흥을 위해 혼신을 다하겠다며 각오를 밝혔었다. 그는 비상한 상황에서는 비상한 수단이 필요하다고 했다. 대구의 대전환과 부흥을 위해 우리 모두의 변화와 혁신을 요구했다. 각종 개혁방안을 내놓고 행정을 채찍질하며 일사천리로 달려나갔다.채무제로 선언과 조직 통폐합 등 홍준표식 일처리에 시민들은 환호했다. 그러다가 삐끗했다. 대구시의회가 제동을 걸고 시민단체와 언론도 불도저식 행정을 경계했다. 경북도와의 행정 협조도 어긋나기 시작했다. 홍준표 시장의 리더십이 시험대에 올랐다.이철우 경북도지사와 홍준표 대구시장의 ‘불협화음’이 국정감사에서 거론됐다. 홍 시장은 취임 후 경북도와 공동으로 추진하던 여러 대형 사업에 브레이크를 걸었다. 양 단체장이 삐걱대는 모습이 노정됐다. 국감 도마에 올랐다.대구 출신의 더불어민주당 조응천 의원이 경북도 국정감사에서 양 단체장이 현안마다 의견차를 보여 우려된다고 지적했다. 양 단체장 간의 엇박자를 내는 모습이 불안했던 모양이다.군위군 편입, 통합신공항 건설 등 대구와 협력해 풀어야 할 문제가 많은데 홍 시장과 협력과 소통을 의심했다. 권영진 전 시장 때 의욕적으로 추진했던 행정통합과 취수원 이전 문제 등 처리 방식이 마치 트럼프를 보는 것 같다고도 했다. 대구경북연구원 분리도 불협화음이 원인이 아닌지 캐물었다. 조 의원이 우려할 정도로 대구시장과 경북지사의 관계가 위태해 보였나 보다.이 지사는 불협화음을 일축하고 대구시와 협치 문제는 시간을 갖고 대화하겠다고 응수했다. 하지만 답변에는 홍 시장에 대한 불편한 심기가 묻어나왔다.홍 시장은 지금 안팎으로 불만 세력과 마주하고 있다. 그의 업무 추진 방식에 대한 반발이 적지 않다. 하지만 그는 개의치 않는 모습이다. 정면돌파를 택했다. 지역 사회에 대한 불만을 숨기지 않았다. ‘기득권 카르텔’로 규정, 자신이 추진하는 사업들에 딴지만 거는 불순한 세력으로 평가했다. “개가 짖어도 기차는 간다”며 오불관언이다.아프리카 속담에 “빨리 가려면 혼자 가고, 멀리 가려면 함께 가라”는 말이 있다. 백짓장도 맞들면 낫다고 했다. 통합신공항 등 지역 대형 사업의 시너지 효과를 보기 위해선 대구시와 경북도의 협력은 불가피하다. 상생이 필요하다.대구·경북은 한뿌리다. 한뿌리상생위원회까지 두고 지역 현안에 공동대처하기도 했다. 양 단체장의 손잡는 모습이 아쉽다. 찰떡 궁합은 아니더라도 호흡은 맞아야 하지 않나.

2022-10-20

부동산시장 10년 주기설

우정구 논설위원 수년간 급등세를 보이던 집값이 정부의 규제와 미국발 금리 인상이 시작되면서 속수무책으로 떨어지고 있다.이사철임에도 집을 사고자 하는 사람을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매수심리가 얼어붙어 일부 신축 아파트는 분양가를 밑도는 마이너스 피가 형성되고 있다. 또 살던 집이 안 팔려 새로 구입한 아파트에 입주를 못해 전전긍긍하는 이도 많다.이같이 부동산 경기가 침체되자 업계서는 “부동산시장 10년 주기설이 재현되는 것 같다”는 견해도 나온다. 10년 주기설은 부동산 가격이 10년 단위로 오르고 내리고를 반복하는 현상이다.이에 대해 전문가들은 “부동산 경기가 주기를 갖고 상승 하락하지만 주기를 특정하는 것은 맞지 않다”는 주장도 한다.그러나 올 들어 7월까지 주택 거래량을 살펴보면 10년 전인 2012년과는 비슷한 양상이다. 아파트 누적 거래량을 보면 올해와 10년 전이 연간 최저 거래량에서 나란히 1,2위를 기록하고 있을 정도다. 시기를 특정하지 않는다지만 공교롭게도 10년전과 지금의 침체 상황이 거의 닮은 꼴이다. 경제가 저성장 기조에 놓였을 때는 경기진작 효과가 큰 부동산 경기부터 먼저 살린다. 부동산 경기는 주택·건설 등 경제후방 효과가 크기 때문이다.대구와 경북에는 전국에서 가장 많은 미분양 아파트가 쌓여 있다. 전국 미분양 물량의 40%가 이곳에 있다. 게다가 신축을 준비 중인 아파트도 많아 부동산 경기가 장기 침체할까 걱정하는 사람도 많다.특히 중개업소, 인테리어업체, 이사짐센터 등 관련업계는 부동산 경기 침체로 경제적 어려움이 겹쳐 경기진작을 호소하고 있다. 부동산이 급등하는 것도 좋지 않지만 급락도 좋지 않다. 당국의 적절한 대책이 나와야 할 때다./우정구(논설위원)

2022-10-20

음미(吟味)하는 삶

김병래 수필가·시조시인 세상과 인생에는 음미해볼 만한 것들이 얼마든지 있다. 애호가들은 한 잔의 차나 와인을 두고도 많은 것을 음미해낸다. 그것을 대하는 태도부터가 다르다. 눈으로는 빛깔을 보고 코로 향기를 맡으며 한 모금씩 머금어 천천히 삼키면서 맛을 음미한다. 그래서 보통사람들은 느끼지 못하는 깊고 미세한 맛과 향까지를 감지해 낸다고 한다. 더 높은 경지에 오르기 위해서는 오감만을 사용하는데 그치지 않고 인문학적인 식견이나 미학적 감성까지 더해져야 한다는 것이다. 아는 만큼 보이고 볼 줄 알아야 느낄 수도 있다는 이치다.음미할 거리로 가장 좋은 것은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자연이다. 자연은 우리 생명의 원천이고 무궁무진한 신비가 아닌가. 풀꽃 한 송이 벌레 한 마리에서부터 바람과 구름과 해, 달, 별 어느 것에도 무한한 경이와 감동을 음미할 수가 있다. 생존의 절대적인 조건인 자연을 음미하는 것만으로도 세상은 충분히 살만한 것이 된다. 특히나 이렇게 눈부신 가을날에는 삼라만상이 찬란한 광휘에 휩싸여 있다. 이럴 때는 무얼 음미하고 말 것도 없이 그냥 감격의 도가니에 빠져 있으면 된다. 어떤 미망의 그늘도 없는 환희의 생명이면 되는 것이다.아무리 맛나고 질 좋은 음식이라도 허겁지겁 먹어서는 그 진미를 충분히 느낄 수가 없다. 반대로 거칠고 맛없는 음식도 천천히 씹으면서 음미해보면 나름의 맛이 나기도 한다. 부질없는 욕심에 쫓겨 허둥지둥 살다보면 무엇 하나 제대로 음미할 겨를이 없게 된다. 혹자는 욕망의 성취로 얻은 부와 권력과 명예를 만끽하는 거야말로 제대로 음미하는 게 아니냐고 하겠지만, 그것은 언제 꺼질지 모르는 거품에 불과하다. 더구나 그런 욕망을 쫓는 사람들에게 안주(安住)가 있겠는가. 더 높고 더 큰 것을 쫓아가기 바빠서 차분히 음미할 여유가 없는 것이다.가장 흔한 것이 가장 소중한 것이란 사실을 곧잘 잊고 산다. 세상에 공기처럼 흔한 게 없지만 우리 목숨을 부지하는데 공기보다 소중한 것도 없지 않은가. 값나가는 귀중품일수록 없어도 사는데 별 지장이 없지만, 공기나 물처럼 흔한 것일수록 생명을 유지하는데 필수라는 걸 잊곤 하는 것이다. 들판에 지천으로 자라는 잡초들이 생태계를 유지하는 주역이라는 것, 우리 생명이 필요로 하는 건 한 수레의 보화가 아니라 한잔의 물이라는 걸 알면서도 한사코 한눈을 파는 게 인심이다.영적 스승으로 일컬어지는 베트남의 틱낫한 스님은, 오직 들숨과 날숨의 호흡을 관찰하거나 걷는 것만으로도 종교적 깨달음에 이른다고 했다. 이미 지나간 일이나 아직 오지 않은 것에 붙잡혀 현재를 놓치지 말고, 지금 여기에 집중하는 것만으로 기쁨과 평화를 얻을 수 있다는 것이다. 나는 그것을 음미하는 삶으로 바꾸고 싶다. 관찰이나 집중보다는 음미라는 말이 더 구체적이고 직접적이지 않는가. 우리가 몸담고 있는 현실은 객관이나 추상일 수가 없으므로. 음미든 집중이든 서둘러서는 안 된다. 몸과 마음을 열어 놓고 천천히 걸어가야 한다. 많이 가질수록 그 무게에 눌리고 높이 올라갈수록 위태로운 게 세상의 이치다. 이미 주어진 것만으로도 벅차고 넘칠 수 있는 것이 음미하는 삶이다.

2022-10-20

통신 서비스의 먹통 사태

윤영대 수필가 지난 15일 오후 3시경 경기 성남시 판교에 있는 SK CC 센터의 카카오 데이터 센터에서 화재가 발생하여 카카오 서비스를 이용하고 있는 많은 이용자들이 불편을 겪은 사고가 발생했다. 화재는 8시간 만에 진화되었다고 하지만 여전히 일부 장애는 남아있다. 데이터 저장시설의 전기실 내 작은 배터리 1개에서 불꽃이 튀어 번진 후 전체에 옮겨붙어 소실된 것으로 봐서 누전이나 합선 등의 전기화재인 것 같고 화재진압에 물을 사용하지 못하여 더 커진 것으로 보인다.그날 나는 보경사 계곡을 탐방하며 보현암을 지나 스카이워크 전망대에서 단풍들기 시작하는 내연산 경치를 둘러보고 연산폭포로 내려와서 잘 찍혀진 사진을 가족 카톡방에 올렸다. 그런데 계곡을 내려오며 또 한 장을 보내려고 휴대폰을 펼치니 아까 보낸 사진이 가지 않았다고 되어있다. 간단한 문자를 보내봐도 전송되지 않고 ×자 표시가 뜬다. 계곡이라 통신상태가 좋지 않은가 보다 하며 더 내려와서 상생폭포에서 보내 보니 역시 불통이다. 이상하다고 생각하다가 모임 행사를 끝내고 귀가하였는데 아내도 카톡이 안된다고 한다. 참 이상한 일이다. 어찌 부부가 똑같이 동시에 통신장애를 당하다니…. 가족 해킹을 당했나 의아해하며 다른 SNS를 뒤지다 보니 카카오 데이터 센터 화재 소식이 있고, 카톡 서비스는 일시에 ‘먹통’이 되어 정보통신기술 강국인 대한민국이 일상을 멈추었다고 이용자들은 난리가 났다. 만약 그때 나에게 급한 일이 있었다면 어찌할 뻔했을까?카카오는 136개 기업을 가진 공용 플랫폼 기업이라 이번 메신저 정지로 택시 지하철 등 교통서비스와 은행 업무 및 금융서비스, 식당 배달업무에도 상당한 타격을 주었고 카카오 내비 등 PC버전에도 피해를 가져왔다. 근래 합병한 다음(daum)도 마찬가지로 장애가 발생했다. 유·무선 서비스는 국가 기간통신망으로 운영되고 있으나 카카오 같은 부가통신서비스는 제도권 밖이라 사고가 나면 경제와 사회를 마비시킬 우려가 있어 앞으로 법적으로 시스템을 보완하여 데이터의 이중화·이원화를 철저히 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통신시스템의 전력공급은 리튬배터리로 하며 급증하는 에너지 저장장치 ESS에 대해서도 화학적 방화시스템을 완벽하게 구축하여야 한다. 이번 사태를 보더라도 고전압 시스템도 아니고 또 기계적 설비도 아닌 만큼 전선 회로에 쌓인 먼지에 의한 발화가 아닐까 추측해본다. 이러한 미세한 부분의 스파크 때문에 온 나라가 통신 먹통이 된 사태를 당하고 보니 만약 전쟁이 일어나게 되어 적으로부터 공격을 받게 되면 엄청난 혼란에 빠지게 될 것 같다. 이뿐만 아니다. 앞으로 자율주행차와 드론과 같은 차세대 운송수단이 무선정보에 의해 운용될 경우 위치 정보 공급시스템에 사고가 발생하여 불통 된다면 자동차와 비행체는 방향과 위치를 잃고 말 것이다. 또 인위적 조작에 의해 범죄도 발생할 수도 있겠다. 조지 오웰의 소설 ‘1984’의 ‘빅 브러더’처럼 개인의 삶을 통제할 수도 있으려니 미래가 심히 우려된다. 이러한 통신 서비스 관리는 점점 더 엄격해지고 또한 빈틈이 없어야 할 것이다.

2022-10-20

일상 속 오아시스, 구미를 향해

박은희 구미시 문화체육관광국장 이번 주말 어디로 떠나 볼까. 코로나19 이후 본격적인 일상회복이 시작되면서 많은 사람들이 하는 고민이다.럭셔리 호텔에서 느긋한 시간을 갖는 ‘호캉스’도 장시간 비행 후에야 만날 수 있는 ‘해외 여행’의 즐거움도 이젠 흔한 경험이 되었다.새로운 경험이나 체험 등을 찾기 시작하면서 농촌이나 지방 소도시가 여행의 목적지가 되고 있다.트레킹을 비롯해 농촌에서 한달 살기, 시골점방 방문 등 MZ세대들이 보물찾기 하듯 나만의 여행지를 찾아 나서며 관광 트렌드를 바꾸고 있다. 팍팍하고 예측 불가능한 일상 속에서 나만의 오아시스가 되어 줄 숨겨진 어딘가를 원하는 욕구가 늘어난 까닭이다.구미시도 이러한 변화를 기회로 만들기 위해 만반의 준비를 하고 있다.구미의 대표적인 관광지로 가장 많은 관광객들이 찾아오는 금오산을 단순 등산체험에서 수요자를 위한 맞춤형 여행지로 변모시키는 프로젝트를 현재 중이다. 또 건강한 자연생태체험이 가능한 선산 산림휴양타운과 옥성자연휴양림을 중심으로는 선산권 ‘에코힐링 벨트’를 조성하고 검성지와 학서지 생태공원 활성화, 천생산 일원 힐링레포츠단지 등 특화관광자원화 사업도 추진하고 있다.지역 자원을 활용한 이색 콘텐츠 발굴도 빼놓을 수 없다. 지난 8월 휴가철을 겨냥해 처음으로 개최한 ‘구미 라면캠핑페스티벌’이 대표적이다.낙동강에 조성된 캠핑장과 산업단지 내 라면 생산기업을 연계한 ‘구미 라면캠핑페스티벌’은 산업유산을 관광자원으로 활용하는 획기적인 발상의 전환이라는 호평을 받았다.갓 튀긴 라면과 이색 체험이 함께하는 구미라면축제는 풍성한 볼거리, 먹거리, 놀거리 등 특화된 이색 콘텐츠를 업그레이 할 예정이여서 내년이 더욱 기대된다.매년 100만 명이 방문하는 낙동강 둔치는 앞으로 시민의 일상과 가까운 생활스포츠 관광콘텐츠로 채워질 예정이다. 캠핑 공간, 파크골프장을 비롯해 생활스포츠 시설을 대폭 확충하고 낙동강 수변 트레킹 코스 등 주변 관광지와 연계하는 시민레저공간도 조성된다.구미캠핑장 주차장도 기존 170면에 50면을 추가 조성하고, 한강공원에서나 볼 수 있었던 편의점을 구미 낙동강체육공원에 조성해 시민들의 편의성을 높일 계획이다. 산업도시 구미, 자연보호운동의 발상지 구미, 새마을운동의 종주도시 구미만을 기억하고 있다면 다시 한번 구미를 방문해 보길 권한다.꾹꾹 눌러두었던 삶 속 단 한 순간의 일탈이 아닌, 건조하고 불안한 일상 속 나만을 위로해 줄 특별한 경험을 만끽 할 수 있을 것이다. 함께하는 낭만문화도시 구미에서 여러분의 오아시스를 발견할 수 있다.

2022-10-19

글로벌호연지기

장규열 한동대 교수 하루가 멀다하고 큰 뉴스가 터진다. 오늘 뉴스가 어제 뉴스를 덮는다. 내일을 생각하면 어제는 이미 먼 옛날이다. 어제를 돌아보다 오늘을 놓치면 내일 힘들지도 모른다. 전쟁같은 삶 가운데 머뭇거릴 틈이 없다. 쏟아지는 일 가운데 정신없이 살아간다. 디지털과 온라인, 21세기와 4차산업혁명이 내게 어떤 의미가 있을까.지칠만도 하겠구만 끝도 없이 펼쳐진다. 그놈의 이념논쟁. 보수와 진보, 좌파와 우파. 세상은 빛의 속도로 바뀌어 가는데, 우리에게 말싸움은 끝나지 않는다. 도대체 언제까지 이래야 하는지. 돌아보면 지난 세기내내 세상이 힘들었지만, 이제는 그 누구도 그런 시비에 붙들리지 않는다.케케묵은 색깔논쟁이 한반도에만 살아있다. 우리는 왜 그러는 것일까. 바뀐 세상에 어울리는 나은 모습을 찾아야 하지 않을까. 이렇게 열린 세상에 북한이라고 꽁꽁 닫힌 태도를 언제까지 고집하지 못한다. 바뀐 판세에 바뀐 자세로 임해야 한다.이념에 빠진 정치권이 어처구니가 없지만, 변화의 소용돌이 가운데 멈춰 선 가닥도 있다. 내일을 준비한다는 교육이 그렇다. 새로운 세상의 모습을 따라는 간다지만 싱싱한 생각을 기르고 있는지 살펴야 한다. 펼쳐진 세상도 가르쳐야 하지만 다가올 미래를 가르쳐야 한다. 오늘을 고민하며 내일을 향하는 비전을 심어주어야 한다. 우리를 돌아보며 나라 밖을 겨냥하는 인성을 길러야 한다. 한반도는 좁다. 우리 안에도 생각거리가 없지 않지만, 여기만 생각하는 좁은 태도는 벗어던지도록 가르쳐야 한다. 한없이 너른 저 밖을 바라보는 시선을 길러야 한다. 세상과 우주를 견주는 ‘다음세대’를 준비해야 한다.글로벌호연지기(浩然之氣). 작은 마을에서 나라 끝까지 바라보라는 게 호연지기였다면, 한반도 너머 세상을 꿈꾸는 비전이 글로벌호연지기가 아닌가. 21세기에는 이념과 국경을 넘어 세상과 호흡하는 세대를 길러야 한다. 경상북도교육청이 세계교육의 표준이 되겠노라는 깃발을 들어올렸다. 반가운 마음과 함께 구체적인 이정표를 기대한다.경상북도가 세상의 구석일 까닭이 이제는 없다. 넘치는 자연자원, 풍성한 이야깃거리와 압도하는 전통가치는 글로벌교육을 겨냥하고도 남는다. 세상이 주목하고 글로벌로 나아가는 교육이 얼마든지 가능하다. 인터넷과 온라인은 초연결세상을 열어 세계는 언제 벌써 글로벌빌리지(Global village)로 변하고 있다. 세상을 터득하여 내일을 앞서가는 사람을 경북에서 길러야 한다.‘구습과 구태를 벗고 새로움과 신선함을 경험하려면 경북으로 오라’는 슬로건을 걸 수도 있지 않을까. 멋진 전통과 싱싱한 초현대가 함께 숨쉬는 지역에서 미래를 꿈꾸는 내일의 인재를 기르는 비전. 경북교육청이 올린 푯대가 구호에 그치지 않고 실천적인 과제를 쏟아낼 것으로 기대한다.세상은 넓고 할 일은 많다. 이념에 묻히고 우물에 갇힌 좁다락한 굴레는 벗어야 한다. 빠르게 변하는 세상을 더 빠르게 질러가는 교육을 구현해야 한다. 글로벌호연지기로 빛나는 경북교육을 기다린다.

2022-10-19

양곡관리법

홍석봉정치에디터 쌀이 남아돌아 난리다. 쌀 생산량은 매년 조금씩 준다. 반면 소비량은 더 많이 줄어 쌀이 남아돈다. 식습관 변화 탓이다. 정부는 올해 45만t의 쌀을 시장격리 조치하겠다고 발표했다. 역대 최대 물량이다. 올해 초과 생산량 25만t보다 20만t 더 많다. 공공비축미 45만t을 포함하면 올해 모두 90만t이 시장에서 격리된다. 과잉 생산에 따른 쌀값 하락을 막기 위한 고육지책이다.정부는 2005년 공공비축제를 도입했다. 이후 17차례 쌀을 시장격리해 초과 생산된 쌀 298만t을 매입했다. 5조4천억원을 썼다. 쌀 생산량은 변화가 크지 않지만 수요가 줄면서 쌀값이 지속 하락하고 있다. 여야가 쌀값 보장 방법을 두고 충돌하고 있다. 더불어민주당은 쌀이 시장격리 요건에 해당할 경우 초과생산량 전량을 격리 의무화하는 양곡관리법 개정안을 발의, 본회의 통과를 앞두고 있다. 농촌경제연구원은 양곡관리법이 시행되면 2030년까지 생산량이 연평균 46만8천t을 초과, 매년 1조443억원이 필요할 것으로 추산한다.반면 정부여당은 양곡관리법이 시행될 경우 벼 재배 농가가 늘어 쌀 공급 과잉이 심화될 것을 우려한다. 고령화된 농촌에서 벼는 손이 적게 가고 편하게 지을 수 있는 작물이다. 기계 영농과 관리가 가능, 선호도가 높다. 값을 보장해주면 벼 재배가 늘고 과잉생산은 증가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쌀의 과잉 생산을 막고 재고를 쌓지 않는 게 최선의 방안이다. 농민들이 다른 농작물을 재배하도록 유도하고 생산량을 조정하는 계획농정이 절실하다. 양곡관리법은 야당이 의석수로 밀어붙이면 ‘대통령 거부권’ 외에는 뾰족한 방법이 없다. 지금 정치권은 농심과 국익의 선택 기로에 섰다./홍석봉(정치에디터)

2022-10-19

윤동주의 귀환

노승욱 포스텍 교수·인문사회학부 “계절이 지나가는 하늘에는 가을로 가득 차 있습니다. 나는 아무 걱정도 없이 가을 속의 별들을 다 헤일 듯합니다.”윤동주 시인이 호적을 되찾은 후 맞은 첫 가을이다. 온 국민의 애송시인 ‘별 헤는 밤’을 읽는 느낌도 새롭다. 지난 8월 국가보훈처는 직계 후손이 없는 독립유공자 156명에게 대한민국의 호적을 부여했다. 윤동주와 그의 고종사촌 송몽규 지사는 같은 주소의 등록기준지를 갖게 됐다. 독립기념관의 주소인 ‘충남 천안시 동남구 목천읍 독립기념관로 1’이다.올해는 광복 77주년이자 윤동주 서거 77주년이기도 하다. 윤동주가 후쿠오카 형무소에서 일제에 의해 생체 실험을 당하다가 옥사한 것은 광복을 6개월 앞둔 시점이었다. 그의 장례식을 치른 다음 날 오랜 친구이자 동지였던 송몽규도 후쿠오카 형무소에서 옥사했다. 동갑내기 문사들은 이제 같은 호적을 갖게 됐다. 그토록 그리던 마음의 고향, 조국으로 귀환한 것이다.중국의 동북공정은 민족시인인 윤동주마저 그 대상으로 삼고 있다. 중국 최대 포털사이트인 바이두에서는 윤동주의 국적을 중국으로, 민족을 조선족으로 기술하고 있다. 우리 국민이 사랑하는 윤동주의 국적이 중국이라니 기가 찰 일이다. ‘별 헤는 밤’에서 윤동주는 패(佩), 경(鏡), 옥(玉) 등의 중국 이름을 언급하며 “이국 소녀”라고 일컫고 있다. 표준국어대사전에서는 이국(異國)을 “인정, 풍속 따위가 전혀 다른 남의 나라”로 기술하고 있다.윤동주의 집안은 함경북도 종성(鍾城)에서 북간도로 이주해 ‘명동촌(明東村)’을 만들었다. 신학문과 기독교를 받아들였던 명동촌은 항일 민족교육의 중심지로 성장했다. 명동촌에서 태어난 윤동주에게 중국은 ‘이국’이었고, ‘쉽게 씨워진 시’에 나오는 표현처럼 일본은 ‘남의 나라’였다. 윤동주가 마지막으로 집에 와서 유언처럼 남긴 말은 “우리말 인쇄물이 앞으로 사라질 것이니 무엇이나, 심지어 악보까지도 사서 모으라”는 것이었다.이번 달에 전남 광양시에서는 ‘백영(白影) 정병욱 선생 탄생 100주년 기념 특별전’이 열리고 있다. 정병욱은 윤동주와 연희전문학교를 함께 다니면서 같은 하숙집에서 지낸 인물이다. 그는 윤동주가 남긴 육필 시집인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를 세상에 알린 인물이기도 하다. 윤동주는 자필로 쓴 시집 세 권 중 한 권을 후배인 정병욱에게 맡겼다. 나머지 두 권이 분실되면서 정병욱이 고향집 마룻바닥 밑에 숨겨 놓았던 시집만이 세상의 빛을 보게 되었다.윤동주는 원래 자신의 시집 제목을 ‘병원(病院)’으로 지으려고 했다. 일제 치하에서 고통받고 있는 우리 민족에게 위로와 치유를 주고자 했기 때문이다. 그의 유고시집에 실린 ‘병원’과 ‘위로’라는 시는 이러한 주제 의식으로 쓰여졌다. 지금도 겨레의 위안이 되고 있는 윤동주의 시를 지켜냈던 정병욱 선생처럼 이제는 우리가 77년 만에 고국으로 귀환한 윤동주 시인의 정신적 유산을 지켜내야 할 때이다.

2022-10-19

지금은 미래를 설계할 때

김규인 수필가 코로나 감염자와 사망자 수가 줄어든다. 코로나는 사회의 많은 것을 바꾸었다. 마스크는 늘 착용해야 하고 불필요한 행동을 억제한다. 아예 집 밖으로 나오는 것을 꺼린다. 회사에선 재택근무가 늘어나고 이에 따라 많은 것이 바뀐다.출퇴근 교통 대란에서 사람들을 풀어주고 밤늦게까지 흥청거리던 유흥가는 한산해졌다. 만남을 위한 모임은 전화 한 통으로 대체하고 집으로 돌아가는 시간이 빨라졌다. 사람들 간의 관계는 조용히 이루어지고 가정적인 사람으로 된다. 가정주부는 이러한 상황을 은근히 반긴다.젊은이들이 결혼을 미루는 것은 무지막지하게 오른 생활비와 자녀 교육비 때문이라는 보고가 많다. 한 달간 벌어 생활비를 쓰고 나면 남는 돈이 별로 없어 자녀 키울 엄두를 내지 못한다는 말이다. 그래서인지 결혼하는데도 배우자를 구하는 조건 중 하나가 맞벌이 하는 사람을 찾는다. 젊은 사람들은 맞벌이를 강요하는 사회라고 말한다.재택근무가 확정된 회사에서는 집값이 싼 시외 지역으로 집을 얻는다. 집에 비용이 적게 드니 여유가 생겨 결혼하고 아이를 낳는다. 요즈음 나라마다 고민거리인 출산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실질적인 해결책이기도 하다. 근무와 육아를 같이 할 수 있는 여건이 되기 때문이다.기술이 무르익은 숙련 기술자의 퇴직 이유를 보면 나이 드신 부모를 모시기 때문이라고 한다. 부모를 보살피는 것도 온종일 하는 것은 아니다. 그래서 재택근무를 한다면 병행하는 것도 가능해진다. 재택근무는 출산율의 급격한 감소와 부모의 봉양에 따른 숙련 기술자의 퇴직을 막아 회사로서도 기술 인력 유출을 방지하는 효과가 있다.실제로 재택근무가 활성화한 미국에서는 이러한 효과를 톡톡히 본다. 근무 여건이 개선됨에 따라 우수 인력이 들어오고, 도심지의 사무실을 줄여 비용을 줄인다. 퇴직자의 감소로 기술 단절이 줄어들고 안정적인 인력수급이 이뤄져 수익이 늘어난다. 불필요한 전기의 사용이 줄어 운영비까지 줄어들어 수익개선에 크게 기여한다.재택근무는 출산율 감소와 고령 사회에 따른 인구의 급격한 감소 시기에 우수한 기술 인력 유치에 크게 도움이 되는 정책이다. 우리나라에서도 코로나에 따라 대기업 위주로 재택근무를 한다. 재택근무의 장점이 기업체 사이에 퍼져가므로 실시하는 회사도 늘어나는 추세이다. 그러나 회사에 따라 근무조건도 여건도 다르고, 업종에 따라서는 재택근무가 어려운 곳도 있다.이제는 국가에서 나서서 국가의 효율을 높이기 위한 여러 방안을 마련할 때가 왔다. 국가와 회사가 장기간의 프로젝트를 통해 근무 효율을 측정하고 출산과 고령화를 막을 수 있는 장기적인 연구와 계획을 세워야 한다. 이는 서울의 인구 과밀화를 막고 지방의 균형발전에도 도움을 준다.저출산과 고령화 문제는 시급하다. 시기를 놓치면 호미로 막을 것을 가래로도 막기 어려워진다. 대한민국이 새로운 희망의 세계로 나아가는가 그렇지 못한가는 지금의 선택에 달려있다. 코로나를 이겨냈듯이 젊은이들을 결혼하게 하고 출산율을 높이고 나이 든 사람을 활용하는 정책이 필요하다.

2022-10-19

‘지란지교를 꿈꾸며’

정미영 수필가 고등학교에 진학하면서 편지를 자주 썼다. 우리 집이 멀리 이사를 했던 탓에 초등학교 6학년 때부터 늘 함께 했던 친구들과 헤어졌기 때문이다. 아는 사람이라고는 단 1명도 없는 낯선 환경에 적응하려니 낯가림이 심했던 나로서는 섬에 고립된 것처럼 막막했다.휴대폰이 없던 시절이었다. 집 전화가 소통의 매개체였지만, 밤 9시까지 야간 학습을 하고 난 뒤에 통화를 한다는 것은 불가능했다. 대부분 아버지들이 퇴근하셨던 저녁 6시를 지나 남의 집에 전화를 건다는 것은 예의범절에 어긋난다고 부모님들에게 가르침을 받던 때였다.소소한 일상을 편지지에 옮겨 쓰고 나면 내 마음에 만족감이 꽃물 스며들 듯 번졌다.그 때 내 정신적으로 버팀목이 되어준 것은 편지였다.편지에는 습관처럼 우정에 관한 글귀를 적어 보냈다. 그 중에서 가장 많이 인용했던 것이 유안진 교수님의 ‘지란지교를 꿈꾸며’였다.참된 우정에 대한 작가 개인의 소망을 진솔하게 나열했는데, 나와 친구들도 그러자고, 무수히 새끼손가락을 걸며 약속했다. 향기로운 지초와 난초의 사귐처럼 맑고 깨끗하고, 변치 않은 우정을 꿈꿨다.그 덕분이었을까? 간절히 원하면 이루어진다더니 단짝 4명 중 1명의 친구와 마주보며 살고 있다. 결혼으로 고향을 떠나 타지방에 정착했는데, 친구 또한 같은 이유로 지금은 같은 아파트에 살고 있다. 40년 가깝게 이어지는 인연이 필연처럼 감사하다.시인의 작품에 드러나는 소망을 나는 적잖이 경험하고 있다. 아, 얼마나 행복한 일인가! 친구는 내가 아무 때나 찾아가 커피 한 잔을 달라고 해도 귀찮아하지 않는다. 끼니를 거르고 찾아가도 싫어하지 않고 집밥을 차려주며 내가 먹는 모습을 지켜봐 준다.나는 취미가 많지 않은 사람이다. 아날로그 유형이라 휴대폰이나 컴퓨터를 다루는 것이 능숙하지 않고, 음치라 노래를 못하고 몸치라 댄스를 못해, 문화센터에서 배울 생각은 아예 엄두를 못 낸다. 운동 신경이 둔해 시작하고 싶은 운동 또한 마뜩찮다.그런데 재주 없는 나에게도 관심이 가는 것이 하나 있다. 수필쓰기다. 내 친구는 내가 사유의 문장이나 감동적인 문장, 창의적으로 돋보이는 글을 쓰지 않더라도 타박하지 않는다. 내가 선택한 길에 후회하지 않고 아쉬워하지 않도록 응원한다. 잘하지 못해도 묵묵히 자신의 길을 걷다 보면, 훗날 성실성에 따른 예술적 성과가 나타날 수 있다는 것을 살아온 경험으로 터득했으리라.‘우정이라 하면 사람들은 관포지교를 말한다. 그러나 나는 친구를 괴롭히고 싶지 않듯이 나 또한 끝없는 인내로 베풀기만 할 재간이 없다. 나는 도 닦으며 살기를 바라지 않고, 내 친구도 성현 같아지기를 바라진 않는다.’ 책에서 작가는 성현처럼 생활하고 싶지 않다고 밝혔다. 나 또한 감정을 표현하는 부분에 있어서는 무조건 인내하는 것을 지향하지 않는다. 내 안의 감성을 친구에게 보여주는 것이 오히려 인간적이라 생각되며, 우리 사이에 더욱 신뢰가 쌓일 것이다.‘사람이 자기 아내나 남편, 제 형제나 제 자식하고만 사랑을 나눈다면 어찌 행복해질 수 있으랴. 서로 돕는 진실한 친구가 필요하다.’ 나는 내 친구가 나 외에 다른 특별한 사람들을 사랑한다고 질투하지 않겠다. 친구가 좋아하는 보랏빛 수국 속에서, 따뜻한 허브 차 속에서, 나를 가끔 떠올려 준다면 기쁘겠다.나는 우리가 수의를 입게 되는 날까지 건강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눈빛이 흐려지고 기운이 쇠약해 져도, 서로를 알아보지 못하는 일은 더더욱 없기를 기도한다. 남편이나 자식보다 더 오랫동안 나를 지켜본 내 친구를 알아보지 못한다면, 그녀 또한 나를 알아보지 못한다면, 얼마나 가슴 무너지는 일인가. 이것만 약속된다면 나는 세월 가는 것에 결코 초조하지 않는 삶을 살 것이다.‘세월이 흘러 묻힌 자리에 지란(芝蘭)이 돋아 피어, 맑고 높은 향기로 다시 만났으면.’ 나와 친구도 꼭 그랬으면, 참 좋겠다.

2022-10-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