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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공정하다는 착각

조현태수필가 마이클 샌델의 저서에 다음과 같은 글이 있다. 카지노 업계의 대부인 억만장자 셀던 에이들슨의 경우를 보자. 그는 세계 최고 부자 중의 한 사람이다. 그는 간호사나 의사보다 수천 배의 소득을 올리고 있다. 그러나 카지노 시장과 보건 시장이 모두 완전경쟁 시장이라고 할지라도 그 시장 가치가 그들의 사회 기여도를 나타내는 진실한 척도라고 볼 까닭은 없다. 그들이 소비자 수요에 얼마나 부응하느냐가 아니라 그들이 추구하는 목표의 도덕적 가치에 기여도가 좌우되기 때문이다. 사람들의 건강을 돌보는 일은 슬롯머신을 즐기고 싶어 하는 욕구를 충족시켜주는 일보다 더 큰 도덕적 중요성을 갖는다.(‘공정하다는 착각’p.223)운수와 선택을 비교하자면 능력과 자격의 판단이 불가피해진다. 도박에서 져야 마땅한 사람은 없다. 그러나 질 수도 있다는 리스크를 짊어진 도박사는 졌을 때 사회에 그의 판돈을 요구할 자격이 없다. 그의 불운은 자업자득이다.물론 어떤 경우는 과연 무엇을 ‘선택’으로 볼 것인지 모호해진다. 어떤 도박사들은 도박중독에 빠져있다. 슬롯머신은 도박사들이 노름을 끊지 못할 만큼씩만 이기도록 승률이 조작되어 있다. 이런 경우 도박은 선택이라기보다 약자를 이용해 먹는 강압의 결과로 읽을 수 있다. 그러나 사람들이 자유롭게 그런 리스크를 걸머지는 한, 행운 평등주의자들은 그들이 결과에 책임져야 한다고 본다. 그들은 자기 운명을 책임져야 마땅하다. 적어도 그런 일에 아무도 그에게 도움을 줘야할 의무가 없다는 점에서 말이다.무엇이 진정 자발적인 선택인가에 대한 친숙한 논쟁을 넘어서, 운수와 선택의 구분은 또 다른 고려 때문에 모호해진다. 보험의 가능성이다. 만약 내 집이 불타버렸다면 분명 그것은 운이 나쁜 것이다. 그러나 내가 화재보험을 들 수도 있었는데 들지 않았다면 ‘설마 불이 나겠어’라는 생각을 하며 매년 쓸데없이 보험금 내기를 아까워했다면? 화재 자체는 ‘눈먼 운’이라도, 보험을 들지 않은 나의 선택은 나의 불운을 ‘선택 운’으로 바꿔 놓는다. 보험에 들지 않기로 선택함으로써 나는 결과에 책임을 져야 하며 납세자들에게 내 집의 손상을 보상해 달라고 요구할 권리가 없다.(p.237)도박에서 잃은 판돈을 사회에 요구할 권리나, 화재보험에 들지 않고 불탄 손해를 보상해 달라는 요구는 마땅히 거부당해도 불평하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마약에 중독된 자가 마약을 구하지 못하면 곧 죽을 지경이어도 구할 수 없도록 법으로 제한한 것을 불법이라 하지도 않는다. 그것은 공정한 사회가 유지되기 위한 방편임을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기 때문이다.그렇듯이 일부 고위층이 직위나 욕심을 보전하기 위해 사회적 물의에 마약처럼 중독되어 있는 듯하다. 그런 사람일수록 공정한 고유 업무에 충실한 중이라고 한다. 그리고 떡고물이라도 얻으려고 그 주변을 맴돌며 열띤 응원까지 하는 모습도 보인다.이 현실을 두고 누가 책임질 것이며 어떻게 보상할 것인지 명쾌하게 해결해주는 끝판 왕 보험사는 없을까.

2022-11-01

‘퇴비장’을 ‘토양장’이란 용어로 하면서

이명균 창원대 명예교수 우리나라의 ‘장사 등에 관한 법률’(2007년 개정)에 따르면 사망한 사람을 ‘자연장’으로 치를 수 있는데, 자연장이란 화장한 유골의 골분(骨粉)을 흙과 섞어 용기사용 없이 또는 생화학적으로 분해 가능한 용기에 담아 수목·화초·잔디 등의 밑이나 주변에 묻어 장사하는 것을 말한다(법률 제2조). 이 장례 방법은 넓이는 가로세로 50센티미터 이하 그리고 깊이는 30센티미터 이상 땅을 파서 골분을 묻으면서 분묘를 만들지 않고 유골을 묻은 자리에 석물 등을 설치할 수 없으므로 아주 자연친화적이다. 초기엔 거부 반응도 많았으나 지금은 자연장법을 따르는 사례가 점점 늘어가고 있다.최근 신문기사에 의하면 미국에선 ‘퇴비장’이란 장사 방법이 시행되고 있다는데 이는 시신을, 전통적 매장이나 화장이 아니라 거름용 흙으로 만들어 처리하는 ‘인간 퇴비화 매장’(Human Composting Burial) 방식이며 이용이 늘어나는 추세라고 한다. 이 방식은 시신을 철제 용기에 담아 풀과 꽃, 나무 조각, 짚 등 생분해 원료를 더한 뒤 6~8주간 바람을 통하게 하여 미생물과 박테리아가 시신을 천천히 자연 분해하도록 하는 것이다. 매장은 시신 처리부터 관 제작까지 이산화탄소 배출이 많은 데다 생분해에 오랜 시간이 걸리며, 화장도 목재·연료 등 에너지 사용량이 많은데, 그에 비하여 퇴비장은 환경오염을 크게 줄일 수 있다는 것이다.그런데 일부 시민들은 퇴비장이 고인의 존엄성을 훼손하는 불경스러운 장례법이라는 이유로 반대하며, 가톨릭 교계 등에선 인간을 일회용품으로 만드는 행위로 생각하기 때문에 한편으론 예수 그리스도를 따라 육신의 부활을 믿기 때문에 퇴비장의 합법화에 반발한다고 한다. 하지만 성서의 창세기에 “하나님이 땅의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와 “하나님은 아담에게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니라’고 하셨다”는 구절이 있으니 가톨릭 교계에서도 생각을 조금만 달리한다면 퇴비장에 대해 반대할 사항이 아니라고 본다.필자가 주장하고 싶은 점은 미국에서는 어떻게 하든, ‘퇴비장’이란 용어를 ‘토양장’으로 바꾸어서 우리나라 자연장법에도 이 방법을 도입하면 좋겠다는 것이다. 낙엽이나 풀이 말라서 쌓이고 그것을 온갖 생물들이 이용하고 마지막에는 미생물까지 가세하면서 긴 세월에 걸쳐서 만들어진 결과물이 ‘토양’이다. 토양은 우리 인간에게 뿐만 아니라 지구상의 모든 생명체들에게는 기본적으로 물과 함께 꼭 필요하다. 일반적으로 ‘퇴비’라고 하면 옛 농사법에서 풀, 짚 등과 가축의 똥, 오줌 또는 그 밖의 잡살뱅이를 섞어서 만든 거름을 연상하게 되어 기분이나 느낌이 좋지 않을 것이나, ‘토양’은 지구상의 모든 생명체들에게 가장 소중한 요소인 흙이니 ‘토양장’이라 부른다면 부정적 생각이나 이미지는 많이 해소될 수 있을 것이다. 토양장으로 만들어진 토양을 고인이 좋아했던 장소 등에 뿌리거나 유족들의 뜻에 따라서는 집안의 나무나 화단에 뿌려서 유해를 가족 곁에 두며 고인의 모습을 기리는 것도 의미 있는 장례법일 것이다.

2022-11-01

초기 기독교미술의 앱스 모자이크

313년 콘스탄티누스 1세에 의해 밀라노 칙령이 발효되면서 로마제국은 기독교를 허용했다. 기독교도들은 바실리카라고 불리는 로마의 공공건물 구조를 모방해 교회를 지었고 벽면을 그림으로 장식했다.초기기독교 시기 가장 빈번하게 사용된 벽화기법은 모자이크였다. 모자이크는 아주 오래된 기법으로 작은 크기의 돌 조각이나 유리에 색을 입히고 그것을 배열해 그림을 그리는 방법이다. 섬세한 묘사를 기대하기는 어렵지만 관리가 용이하고 보존력이 탁월하며 무엇보다 빛을 받아 반짝이면 환상적인 분위기가 연출된다.교회가 지어지고 그곳을 그림으로 장식해야 했던 기술자들은 난생 처음 기독교라는 신생 종교의 가르침을 시각적으로 표현해야하는 과제를 안게 된다. 이들은 아직 창작하는 미술가가 아니라 제작하는 기술자였다. 재료를 능숙하게 다루어 형상을 만드는 일은 육체노동으로 여겨졌다. 교회를 장식해야하는 임무가 떨어졌을 때 이들이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은 자신들에게 익숙한 이미지에 기독교적인 내용을 입히는 것이었다. 로마의 산타 푸덴치아나(Santa Pudenziana) 교회 앱스 모자이크는 그 당시 기술자들이 어떤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하고 있는지 잘 보여준다.교회건축에서 앱스(apse)는 제단이 놓인 뒤쪽 공간의 끝 쪽 벽면을 가리킨다. 앱스의 상단 부분은 움푹 들어간 반구형으로 마무리되어 있으며 많은 경우 모자이크나 프레스코 장식이 들어간다. 산타 푸덴치아나의 앱스 모자이크는 420년경에 제작이 되었다. 로마에 남아 있는 가장 오래된 초기기독교 시기의 모자이크 작품이다.모자이크에는 옥좌에 앉으신 그리스도와 제자들의 모습이 묘사되어 있다.덥수룩한 수염의 중년으로 그려진 그리스도를 비롯해 모자이크에 등장하는 남성들은 모두 고대 로마의 의상인 토가(Toga)를 입고 있다.황금색의 화려한 토가는 그리스도의 위엄과 고귀함 그리고 성스러움을 드러낸다.값진 보석으로 장식된 화려한 황금 보좌에 앉은 그리스도는 오른팔을 넓게 펼치며 사도들에게 가르침을 주고 있다. 왼손으로 펼쳐 보이는 책에는 다음과 같은 라틴어 문구가 쓰여 있다. “Dominus conservator ecclesiae Pudentianae”, 번역하면 “주님이 푸덴치아나 교회의 보호자이시다”라는 뜻이다. 이 문구만 아니라면 모자이크가 묘사하는 장면을 로마의 어느 철학자가 제자들을 가르치는 장면이라 해석해도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을 것 같다.모자이크의 후경에는 견고하게 세워진 건축물들이 그려져 있다.흔히 천국을 상징하는 새로운 예루살렘으로 해석된다. 짙은 구름이 가득한 하늘에 무언가 신비로운 일이 벌어지고 있다. 예수 그리스도의 머리 위로 거대한 황금 십자가가 세속적 시공을 초월한 듯 하늘에 떠 있다. 십자가의 의미는 공공연하다. 인류의 타락, 죄와 심판, 그리스도의 수난과 죽음, 부활과 구원이라는 기독교 핵심교리를 함축해 상징하는 것이 십자가다. 인류 구원을 위한 그리스도의 고귀한 죽음을 상징하는 십자가 좌우로 실체를 알 수 없는 날개 달린 생명체가 보인다.십자가 주변에 떠있는 생명체들은 신약성서의 4복음서를 기록한 마태, 마가, 누가, 요한에 대한 상징이다.사람은 마태를, 사자는 마가를, 황소는 누가를, 독수리는 요한을 상징한다. 이 같은 상징의 성서적 근거는 요한계시록 4장에서 찾을 수 있다. 산타 푸덴치아나 앱스 모자이크에 묘사된 보좌에 앉으신 그리스도와 4복음서자들의 상징은 ‘영광의 그리스도(Majestas Domini)’라고 하는 독립된 도상으로 발전해 중세미술에 나타난다. /미술사학자 김석모

2022-10-31

바닥에는 검은 진흙이 <Ⅶ>

간혹 출근 시간 필립은 회사 사옥의 소나무 앞에서 소나무를 바라보며 서 있기도 했다. 어깨를 낮추어 뒤로 제치고, 턱을 아래로 당겨 내린, 가슴을 앞으로 내밀고 있는 필립을 보며 직원들은 만식에 대한 그리움이라 여겼지만 필립은 만식을 그리워한 적 없었다. 말하고 싶었다. 이 일은 이렇게 할 것이고 저것은 저렇게 처리할 것입니다. 듣고 싶었다. 나무 아래 만식의 대답을. 해답은 네가 알지. 나는 들어주기만 할 뿐이지. 만식은 생전에 이렇게 말해준 적 한 번도 없었다.필립이 늦은 퇴근을 하는 날이면 소나무는 회사를 나서는 필립의 등 뒤로 선선한 바람을 불어주었다. 겨울이 오면 세찬 바람을 막아 줄 소나무였다.필립은 소나무를 지나치며 혼잣말을 하곤 했다. 이제야 아버지로 오셨군요.-이제 다시 편해지셔야지요. 저도 이제 상황 파악이 거의 다 되었습니다. 이리저리 살펴보니 아버님이 작은아버님과 함께 하신 일이 제법 되던데. 이제 제가 집행을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필립의 말에 영권이 웃었다. 크게.-우리 조카님이 아버님의 유지를 받든다 하니 이제야 내 마음이 편해지네. 그 마음 씀씀이가 고맙네. 고마워. 그래 그 젊은 아가씨 뱃속의 아이는 어떻게 하기로 했나?-제 동생입니다. 아버님이 생전에 말씀하신 것도 있고.변호사에게 맡겨놓았거나 금고에 보관해 둔 유언장은 없었다. 만식이 필립을 만나 안나의 뱃속 아이에 대해 이야기했던 것이 유언이 되었다.필립은 만식의 부탁 중 가능한 것들은 모두 들어 줄 생각이었다. 필립은 아이가 건강하고 똑바르게 자라도록 도와야 했다. 당연한 일이라 생각했다. 노마와의 약속이기도 했다. 하지만 부탁과 약속은 그것들을 행하는 자의 의지에 기댄 것들이다.아이가 건강하고 똑바르게 자라 무엇을 하게 될지는 나중의 문제다. 그것 또한 필립에게 달려 있었다.-한번 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필립이 회전의자에 등을 기대며 물었다.-봐야지. 어디서 볼까? 나야 조카님이 편한 시간, 편한 장소면 다 좋아. 요즘 의회 일정도 없고.-다음 달 십오 일부터 이십이 일 사이에 편하신 시간을 말씀 주시면 그에 따르겠습니다. 저는 십육 일 정도면 좋을 것 같습니다. 선물 준비하는 시간이 좀 필요하기도 하고. 그래서 그렇습니다. 수행원 없이 만나시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요즘 분위기가 분위기인 만큼.-그래야겠지. 어디 보자. 그러면 내가 일정을 한번 확인하고 다시 말씀을 드리겠네. 뭐 특별한 일은 없을 거야. 어디서 볼까? 공이나 한번 칠까? 아니야. 조카가 공은 별로 좋아하는 것 같지 않더라고. 술은 어때? 술 좋아하나?-작은님 뜻하시는 대로 다 따르겠습니다만, 수행원 없이 만나려면 이번에는 특별한 일정은 안 만드시는 것이.-듣고 보니 그렇군. 알겠네.필립과 영권은 서로 전화를 먼저 끊으라며 실랑이를 했다. 결국 영권이 전화를 먼저 끊었다.영권과 통화를 끝낸 필립은 다시 인호에게 전화를 걸었다.-나야. 날짜를 잡았어. 먼저 말했던 대로 십육 일 만나기로 했어. 내용은 이전과 비슷하니까 모두 같이 볼 필요는 없을 것 같아. 너에게 구체적인 이야기는 하지 않을게. 굳이 듣고 굳이 알아서 좋을 건 없으니까. 그리고, 마지막으로 물을게. 넌 어때? 진행해도 되겠어?-네. 이미 마음먹은 일인걸요. 형님도 감당하셨잖아요.-그래, 그러면 러시아 가기 전에 들러서 얼굴이나 한번 뵙고 가도록 해. 어찌되었건 할 건 해야지.영산에서 아드님이 올라왔습니다. 지금 기다리고 있습니다.모니터에 메시지가 올라왔다.들어오라 해.인호가 방으로 들어와 영권 앞에 섰다. 영권이 고개를 들어 인호의 얼굴을 보았다.-살이 좀 빠졌나 보다. 얼굴의 턱 선이 보이는 구나-요 며칠 동안 잠을 설쳐서 그렇습니다. 신경 쓰지 마십시오.인호는 자신의 턱을 손으로 만지며 대답했다.-그래 무슨 일이냐?영권이 인호에게 물었다. 약속이나 전화 없이 영산시를 벗어나 영권의 사무실까지 오는 일은 흔한 일이 아니었다.-이틀 뒤 러시아에 갑니다. 영산시 시의원들 연수에 동행하기로 했습니다.-벌써 시간이 그리되었나? 십오 일인가?영권은 책상 달력을 보며 말했다.-네. 일주일 일정입니다. 인천공항으로 출국하는 거라서 조금 일찍 올라왔습니다. 이번에는 출발하기 전 아버님께 인사를 드리고 싶었습니다.-새삼스럽구나. 최 회장 아들에게서 전화가 왔었다. 십육 일 오후에 만나기로 했다. 혹시 같이 보겠느냐? 수행원 없이 만나기로 했지만, 너는 내 아들이니. 러시아 가는 것 취소하고. 연수 동행이야 한 번쯤 빠져도 되잖아?-아닙니다. 아버님 혼자 만나십시오. 필요 이상으로 깊이 알고 싶지 않습니다./김강 소설가

2022-10-31

메멘토 모리

변창구대구가톨릭대 교수·국제정치학 철학의 계절, 가을이 깊어가고 있다. 인생도 가을을 맞으면 생각이 깊어진다. 권력·재산·명예도 모두 한 때일 뿐, 영원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우리의 삶도 끝없는 세월의 변화 속에 존재하는 찰나(刹那)에 불과하다. 젊은 시절에 외면했던 죽음의 의미를 이해할 수 있는 나이가 되었으니 이제야 철이 드는 모양이다.메멘토 모리(Memento Mori)! 이 라틴어 격언은 ‘죽음을 기억하라’ 또는 ‘너는 반드시 죽는다는 것을 기억하라’는 의미다. 고대 로마에서는 개선장군이 시가행진을 할 때 노예를 시켜 ‘메멘토 모리’를 외치게 했고, 중세의 수도사들은 만날 때 마다 서로 나누는 인사말이 ‘메멘토 모리’였다. 승리의 환희 속에서도 죽음을 기억하고, 수행의 성찰 속에서도 죽음을 기억하라는 것이다.이처럼 우리는 왜 죽음을 기억해야 하는가?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인간의 실존적 의미를 깨닫기 위해서이다.하이데거(M. Heidegger)는 “죽음이 삶의 본래적 의미가 무엇인지를 들려준다.…. 죽음은 삶과 분리되는 것이 아니라 삶과 동시에 주어지는 것”이라고 했다. ‘살아간다는 것’은 곧 ‘죽어간다는 것’이기도 하다. 죽음은 삶의 가장 절실한 친구이자 삶의 일부이다. 때문에 삶과 죽음은 ‘모순(contradiction)이 아니라 역설(paradox)’로 이해되어야 한다. 메멘토 모리는 ‘죽음이 삶에 말하는 충고’이다. 죽음을 기억할 때 비로소 ‘삶의 본래성’을 회복함으로써 거짓된 삶으로부터 진정한 삶으로 거듭날 수 있기 때문이다.메멘토 모리는 우리에게 생명과 능력의 한계를 인식하고 언제나 겸손하라고 가르친다. 절정의 순간을 맞이한 개선장군의 뒤에서 노예가 ‘죽음을 기억하라’고 외친 까닭은 무엇인가? 너도 언젠가 죽음을 맞을 것이니 승리에 우쭐대지 말라는 것이다.생자필멸(生者必滅)이다. 그럼에도 정치권력·자본권력·언론권력 등 권력을 가진 자들은 오만과 독선에 빠져있으니 메멘토 모리의 가르침을 잊은 것 같다. 권불십년(權不十年)이요,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이다. 그러니 모두 목에 힘을 빼고 겸손하라.메멘토 모리는 ‘삶에 대한 회의’가 아니라 ‘삶에 대한 몰입’을 증대시킨다. 죽음을 외면한 삶은 온전한 삶이라고 할 수 없다. 톨스토이(L. Tolstoy)는 “죽음을 대면하고 살아갈 때 삶의 성장과 초월이 일어난다”고 했다. 우리가 죽음을 일상 속으로 끌어들이면 더욱 의미 있는 삶을 위해 숙고하게 된다. 메멘토 모리가 나의 마음을 움직이는 힘이 되면 누구나 추구하는 돈이나 권력이 아니라 내가 추구하고 싶은 것을 찾게 됨으로써 삶의 방향이 달라진다.가을이 지나면 겨울이 오듯이 인생의 겨울도 피할 수 없다. 죽음을 기억하며 사느냐, 죽음을 망각하고 사느냐에 따라 삶의 질은 달라진다.영원히 살 것처럼 착각하는 인생은 불행하다. 잘 죽기 위해서는 잘 살아야 하며, 잘 산다는 것은 ‘물질’이 아니라 ‘정신’의 문제다. 죽음 앞에서도 후회하지 않는 삶의 철학을 갖는 것이 중요한 이유다.

2022-10-31

헌화(獻花)

홍석봉 정치에디터 대한민국이 충격에 빠졌다. 국민들은 비통하고 참담함에 말을 잊었다. 채 꽃 피워보지도 못한 젊음이 거리에서 스러졌다. 즐거운 핼러윈 축제가 비극이 됐다. 희생자들이 전하는 사연마다 아픔이 절절히 배어 있다. 어떻게 이런 비극이 자꾸 되풀이 되는가.정부는 국가애도기간으로 정했다. 2010년 천안함 사건 이후 두 번째다. 특별재난지역으로 선포했다. 청춘이 짓밟혀도 국가는 없었다. 안전과 보호는 오간데 없었다.참사 현장에 헌화와 추모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희생자들의 넋을 달래고 위로하는 시민들의 가슴 아픈 애도다. 사이버 공간에서도 헌화와 추모글이 줄을 잇는다.헌화는 죽은 자에 대한 추모 의식이다. 동서양이 모두 비슷하다. 기원은 분명하지 않다. 고대의 종교 의식에서 유래된 것으로 추정된다. 죽은 자를 위해 꽃이나 풀을 부적으로 사용했다.고대 로마인들은 묘지 주변에 장미를 심어 영원한 봄을 기원했다. 장미 헌화는 중세까지 이어져왔다.동양에서는 국화를 헌화에 사용한다. 국화는 조의의 꽃말을 가졌다. 흰 국화는 서양에서 죽음을 의미한다. 개화기 때 들어온 헌화 풍습은 흰색을 선호하는 우리의 관례에서 비롯됐다. 장례식이나 추모행사 때 흰 국화를 사용하는 것은 망자의 안식과 영생을 기원하는 의미가 담겨 있다.우리나라에서 국화는 청순, 정조, 절개, 고결함을 상징한다. 국화의 고고한 기품과 절개를 높이 기렸다. 서리가 내린 가을에 홀로 피는 국화를 오상고절(傲霜孤節)이라고 했다. 죽음을 받아들이는 문화는 차이가 있지만 고인을 추모하는 염원은 동서양이 같다. 그래서 시들지 않은 생화를 사용한다. 국화의 계절에 흰 국화를 그대들에게 바치는 이 안타까움을 그대들은 아는가./홍석봉(정치에디터)

2022-10-31

낭송으로 피는 詩香

강성태 시조시인·서예가 잎들이 곱게 물들며 꽃처럼 피어나고 있다. 푸르기만 하던 숲에는 어느새 하늘빛 그리움이 내려앉아 잎새들은 저마다의 감성으로 노란빛을 띠거나 홍조(紅潮)의 가슴으로 땅을 향한 연서(戀書)를 쓰고 있다. 이른 홍엽(紅葉)들은 벌써 땅 위로 떨어지며 포도(鋪道) 위를 뒹구는 몸짓으로 가을의 서정을 노래하고 있고, 길섶의 들국화는 서리를 맞을수록 외려 꼿꼿하게 제 멋 떨구는 자태로 만추의 정취를 더해주고 있다. 빛과 색의 향연이 풍엽(楓葉)으로 펼쳐지는 들길이나 숲길에 들면, 가을의 소리가 잔잔히 들리는 것 같고 계절의 시가 저절로 흐르는 듯하다.가을에서 겨울로 치닫는 미틈달 11월은 시의 날(11월1일)로 시작된다. 언어의 다양성 확보, 인간의 내면 정화, 청소년 교육, 문화 교류의 수단 등 시의 다양한 역할을 알리고 시를 보호하기 위해 유네스코가 제정한 ‘세계 시의 날’은 매년 3월 21일이지만, 우리나라는 한국 최초의 신체시인 최남선의 ‘海에게서 少年에게’가 한국 최초의 월간지인 ‘소년’ 창간호에 발표된 1908년 11월 1일을 ‘시의 날’로 기념하고 있다. 시의 보존과 확장을 위해 시와 음악·미술·영화·연극 등 예술분야 간의 접목, 시 낭송회 개최, 홍보를 통한 시의 현대적 이미지 구축, 젊은 시인을 위한 중소 출판사업 등을 장려하고 있다.결실과 수확의 계절 답게 시의 날을 전후해서 포항지역에서는 시낭송회 등이 풍성하게 열리고 있어서 한결 넉넉하다. 분주한 일상 속에서도 안도의 가슴으로 시를 읽고 감상하며 생각을 가다듬을 수 있다는 것은, 그만큼 마음의 여유와 시의 힘을 알기 때문일 것이다. 한 편의 시에서 우주 삼라만상의 이치를 깨우칠 수 있고, 고뇌와 애환의 그루터기를 가늠하며 공감과 감정의 정화작용을 할 수도 있을 것이다. 또한 가슴에 품은 시를 목소리에 담아 낭송으로 울림을 주면 시의 향기가 세상에 널리 홀씨처럼 퍼지게 될 것이다.지난 주말, 구룡포를 사랑한 시인들과 시낭송가들이 구룡포수협 창립 100주년 및 마을시집 발간기념으로 흥취로운 시낭송 마당을 펼쳐서 고무적이었다. ‘漁花滿代 구룡포, 詩가 되다’를 주제로 시낭송, 시극, 시노래, 참여시인 낭송 등으로 시종 다채롭게 열려 구룡포 일대가 온통 시의 꽃으로 피어나는 듯했다. 또한 이번 주말, 포항시낭송회에서 주최하는 제1회 정기 시낭송 발표회는 오낙률 시인의 근작시를 ‘포항 12경, 四季로 만나다’로 각색해 시낭송과 영상, 성악과의 콜라보 등으로 이색적으로 펼쳐질 예정이라서 사뭇 기대되기도 한다.이러한 시낭송의 다양한 레퍼토리는 시를 낭송으로 승화시키는 언어예술로, 영혼을 맑게 하고 심금을 울려주며 힘겨움을 완화시키는 위안과 치유에 도움을 줄 것이다. 아름다운 세상을 감동과 행복으로 피어나게 하는 시낭송 문화가 풍요로운 가을의 서정을 한결 섬세하고 정갈하게 수놓아 줄 것이다.

2022-10-31

고객의 마음을 움직이는 힘, 세심한 배려

장광일포스코 인재창조원 교수·컨설턴트 핑거볼(손가락을 씻는 작은 물그릇)에 관한 유명한 일화가 있다. 영국 엘리자베스 여왕이 중국 고위 관리들을 초대하여 정찬(正餐)을 나눌 때이다. 서양식 식사법에 익숙하지 않았던 손님들은 핑거볼에 담긴 물이 손 닦는 물인지 모르고 마시는 해프닝이 일어났다. 이때 여왕은 손님들이 당황하지 않도록 자신도 그 물을 마셨던 것이다. 이 사건은 지금도 상대방에 대한 배려를 상징하는 이야기로 유명하다.나중에 엘리자베스 여왕의 배려 행동에 대해 듣고는 중국 고위 관리들이 큰 감동을 받았다고 한다. 이처럼 배려는 다른 사람들과 관계를 맺는 중요한 덕목이라 하겠다.배려하는 삶에 대해서는 초등학교 시절부터 지속적으로 듣고 배우지만 막상 몸소 실천하기는 쉽지가 않다. 상대방의 입장에서 이해하고 생각한다는 것은 의식적인 또다른 노력이 필요하기 때문에 생각만 가지고는 어렵다. 특히 복잡한 관계를 맺으며 살아가는 현재 시점에 서로에 대한 ‘세심한 배려’가 더욱 절실한 때라고 본다. 그래서인지 최근에는 기업 경영에서 ‘배려’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배려에 대해 LG그룹의 임원 교육 내용을 보면 모든 조직 구성원들이 자신의 역량을 최대한 발휘하게 만드는 첫걸음이 바로 배려라고 했다. 배려의 출발점은 높은 사람일수록 먼저 눈높이를 맞춰야 하고, ‘임원이 먼저 부하 직원들과 눈높이를 맞추려고 노력해야 한다’는 것이다. 상사가 개인적인 상황에 대해 배려해주는 모습을 보여주면 감사한 마음이 들고 그에 대한 보답으로 더욱 일에 몰입하게 된다는 논리다.혼다클리오 자동차 대리점 화장실에는 고객에 대한 세심한 배려 사례가 곳곳에 있다. 어항을 아름답게 꾸며서 분주한 세상을 잠시 잊도록 한 사례, 정성스럽게 포장된 기저귀가 있어서 드물지만 꼭 필요한 때 사용할 수 있도록 한 사례 등으로 일본 내 고객 만족도 1등 기업이 되기도 했다.사장은 ‘화장실은 그냥 볼일 보는 곳이면 되지’라는 생각을 한다면 서비스 산업에서 성공하기 어렵다. ‘세심한 배려없이 마케팅을 하지 마라. 서비스 산업에서 성공하고 싶으면 보이지 않는 곳까지 세심하게 배려해야 한다’라고 했다. ‘이런 것까지 신경 쓰다니’라는 마음이 드는 순간 고객은 감동과 감사의 마음을 느끼며 마음의 문을 활짝 열게 된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다.인간관계의 최고의 책으로 꼽히는 논어(論語)에 보면 물은 항상 낮은 곳으로 임하며, 아무리 높은 곳에서 떨어져도 깨지지 않고 하나가 되며, 장애물을 굽히고 적응함으로써 결국 바다에 이른다. 물처럼 서로 이해하고 포용하고 배려하는 것을 배우라고 했다.이번 칼럼에서 배려와 관련하여 직장 상사의 행동은 드라마틱하고 영웅 같은 이야기가 아니라, 지극히 평범한 것을 실천하는 것이다. 성공한 리더가 되는 길은 가장 가까운 곳에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서비스 경쟁력이 기업의 미래를 좌우하는 시대에 물처럼 세심한 배려로 성공하는 리더가 되길 기대해 본다.

2022-10-31

과거 청산, 오래 끌지 마라

정치가 얼어붙었다. 여야 협조를 기대하기는 당분간 어려울 듯하다. 검찰은 이재명 민주당 대표와 문재인 전 대통령을 거침없이 몰아가고 있다. 민주당은 헌정사상 처음으로 대통령의 국회 시정연설에 불참했다. 윤석열 대통령이 국회로 들어서는 입구에서 ‘야당탄압, 보복 수사 중단하라’라는 피켓을 들고 시위했다.민주 정치의 기본은 대화와 타협이다. 민주당은 국회 의석 299석 가운데 169석을 차지한 절대다수 정당이다. 민주당 협조가 없으면 임기 절반을 허송세월할 수도 있다. 대통령으로선 어떻게든 여야 관계를 풀어야 할 처지다. 그렇다고 이미 드러난 혐의를 덮으라고 하는 것도 부당한 수사 개입이다. 윤 대통령이 어려운 선택의 갈림길에 섰다.지난주 한국갤럽 여론조사에서 윤 대통령의 직무 수행 긍정률이 6주 만에 30%를 넘었다. 아직 지지율이 심각하게 바닥이다. 그렇지만 조금이라도 회복 조짐을 보이는 건 윤 대통령에게 고무적이다. 지지 이유에 대해 ‘국방·안보’(10%) 외에 ‘공정·정의·원칙’(9%)과 ‘부정부패·비리 척결’(5%) 등을 꼽았고, ‘공정·정의·원칙’은 지난주보다 6%포인트나 올랐다. 특히 보수층에서 지지가 오른 것은 이재명 민주당 대표 수사를 지지한 결과로 보인다. (자세한 내용은 중앙여론조사심의위 홈페이지 참조)윤 대통령이 먼저 고려해야 할 것은 국민의 기대다. 그는 검사 이외에 다른 경험이라고는 없다. 문재인 정부가 검찰총장에 임명할 때도 외골수라며 반대하는 의견이 많았다. 정치력이 없다는 말이다. 좋게 보면 수사에 내 편, 네 편이 없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가 잘하는 것은 바로 이 범죄 수사다. 그를 선택한 사람들이 기대한 것도 그것이다.그는 박근혜 정부 시절 대통령의 정통성을 건드리는 국가정보원 여론조작 사건을 맡아 수사 외압을 폭로하며 “나는 사람에게 충성하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박근혜·최순실 사건 수사팀장도 맡았다. 문재인 정부에선 조국 전 법무부 장관 비리 수사로 정권과 부딪쳐 검찰총장에서 쫓겨났다. 이 바람에 이념과 관계없이 수사에 엄정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런 평가가 대선 당시 국민의 불만과 맞아떨어졌다. 민주당 지지자들도 ‘조국의 강’을 건너지 못해 정권을 내놨다고 뒤늦게 반성했다. 그만큼 ‘내로남불’에 대한 국민의 불만이 컸다. 공정사회에 대한 열망이다. 그게 윤 대통령에게 맡겨진 소명이다. 경제나 다른 분야는 전문가에게 맡기더라도 그 일은 잘할 것이라는 기대다. 물론 다른 분야를 맡긴다는 게 말처럼 쉽지는 않다. 무엇보다 권력자가 겸손해야 하고, 제대로 된 전문가를 찾아야 한다.정적을 수사한다고 무조건 정치보복은 아니다. 이재명 대표의 혐의는 민주당 내부에서 먼저 제기했다. 과거 권위주의 정권은 법을 정치 탄압 수단으로 이용했다. 정치자금도 집권 세력이 독점했다. 그러나 이제 다르다. 정치인 범죄라고 눈 감으면 권력형 부패를 막을 수 없다. 진실을 밝혀야 정치보복인지 가릴 수 있다. 지금 거론되는 혐의들만 보면 지방정부의 전형적인 권력형 비리다. 여야를 떠나 척결해야 할 대상이다.대통령 중심제에서 임기 초는 중요하다. 이때를 놓치면 어려운 일을 처리하기 힘들다. 그 황금기를 여야 대치로 허비하고 있다. 그 힘을 국가 비전이 아니라 과거 청산에 쏟는 것도 안타깝다. 굳이 피할 수 없는 수사라면 속전속결 해야 한다. 그런 다음 빨리 반전을 꾀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혐의가 명확한 것만 손대는 게 옳다. 사소한 트집 잡기나 부풀리기, 견강부회는 피해야 한다. 대통령이 하지 않아도 될 정치권 논란까지 끼어들거나, 전선을 확장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내년 경제가 매우 어둡다. 야당 협조가 없으면 더 깊은 수렁에 빠질 수 있다. 어차피 지지율이 바닥이니 눈치 보지 말고 수사해야 한다는 주장이 있다. 내년 총선까지 수사를 끌고 가자는 유혹도 있다. 국민이 바보가 아니다. 정치적으로 계산하는 순간 수사는 역풍을 맞는다. 문재인 정부 5년간 계속된 ‘적폐 청산’만으로도 지겹다. 확실하게 혐의가 입증되는 것만으로 빨리 끝내지 않으면 박수가 야유로 변할 수 있다. 김진국 고문 김진국△1959년 11월 30일 경남 밀양 출생 △서울대학교 정치학 학사 △현)중앙SUNDAY 고문, 제15대 관훈클럽정신영기금 이사장, 경북매일신문 고문 △중앙일보 대기자, 중앙일보 논설주간,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부회장 역임/본사고문

2022-10-30

신재생에너지 정책, 독일에서 배우자

위현복 (사)한국혁신연구원 이사장 미국의 뉴욕 주가 2030년까지 신재생에너지 비중을 70%로 늘리고 2040년에 100% 달성하기 위해 캐나다 퀘벡 주로부터 신재생에너지를 수입한다는 내용이 최근 언론에 보도됐다.545km에 이르는 송전망 건립에만 45억달러(6조5천억 원)가 투입된다고 한다. 뉴욕의 환경운동가들은 “탄소중립을 일찍 시작했더라면 더 안전하게 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다. 기후위기는 피할 수 없고 당면한 문제인 만큼 최대한 빨리, 확실하게 논의해야 한다”고 밝혔다. 탄소중립 대비는 늦으면 늦을수록 더 큰 대가와 비용이 따른다는 교훈이다. 미국은 트럼프 대통령 당시 파리기후협약에서 탈퇴하는 등 탄소중립 시대정신을 역행하다 지금 혹독한 대가를 치르고 있다.뉴욕주의 신재생에너지 정책은 우리나라가 타산지석(他山之石)으로 삼아야 한다.우리 나라 신재생에너지 보급률은 지난해말 현재 7.2~8.1% 정도다. OECD 38개국(평균 28.0%) 중 꼴찌다. 반면 우리나라는 반도체(삼성·SK), 자동차(현대), 철강(포스코), 조선 등 세계 굴지의 제조업체들이 즐비해 있어 전력소비는 세계 8위에 랭크돼 있다.이런 상황에서 우리나라는 2050년까지 탄소중립, 즉 신재생에너지 100% 사용을 이루어내야 한다. 지금과 같은 정부와 산업계의 대응으로는 불가능에 가깝다. 탄소중립 정책과 관련한 우리나라 정책은 어지러울 정도로 오락가락하고 있다. 지난 2017년 국가온실가스감축목표(NDC) 발표 때는 2030년 발전비중을 20%로 제시했었다. 그 뒤 2021년 NDC 발표 때는 30.2%로 상향했다가 2022년 다시 21.5%로 낮춰 잡았다.산업계에선 2021년 발표된 2030년 신재생에너지 발전비중에 대해서는 ‘현실을 무시한 불가능한 목표치’라고 했다가, 올해 정부가 목표치를 낮추자 이번에는 “2030년 40% 이상은 돼야한다”며 롤러코스터식 반응을 보이고 있다.우리와 비슷한 제조업 강국인 독일과 비교해보면 우리나라 문제점이 무엇인지 알 수 있다. 독일은 지난 2016년 신재생에너지 비중이 29.3%였지만 2021년에는 40%를 상회했다. 독일은 신재생에너지 비중을 2035년에는 55~60%, 2050년에는 80% 늘리겠다는 목표를 세웠다가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이 발발하자 2050년 목표치를 100%로 늘렸다. 에너지 안보가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것을 전쟁과정에서 뼈저리게 터득했기 때문이다.독일의 신재생에너지 비중은 1990년까지만 해도 0%에 가까웠다. 그러다가 기후위기 대응의 중요성을 깨닫고 지난 2009년과 2014년 재생에너지 실행계획과 재생에너지법 제정을 통해 2050년 ‘탄소배출 제로’ 계획을 세운 것이다. 우리나라도 지난 9월 5일 삼성전자가 RE100 가입을 선언한 만큼 앞으로 대기업을 중심으로 신재생에너지 수요는 폭발적으로 늘어날 것이다.기업들은 곧 공급망을 포함해 RE100을 달성하지 못할 경우 무역장벽에 부딪히게 된다.만약 우리나라의 신재생에너지 발전 비중이 한계점에 달하게 되면 기업들은 어쩔 수 없이 한국을 떠나야 할 상황에 놓일 가능성도 있다. 삼성전자, SK, 현대, 기아자동차가 앞다퉈 미국에 공장을 건설하는 이유 중에는 신재생에너지 100% 공급이 가능한 새로운 산업생태계의 필요성도 포함돼 있다. 일본 소니사가 지난 2020년 신재생에너지 발전비중을 늘려주지 않으면 일본을 떠나겠다고 경고한 뒤, 일본정부가 부랴부랴 2030년 신재생에너지 발전목표를 20%대에서 38%로 상향한 것은, 남의 나라 일이 아니다.기업이 필요로 하는 신재생에너지를 충분히 제공하기 위해서는 우선 관련 법안 제정이 시급하다. 규제 위주로 제정된 각 지방자치단체의 조례정비도 하루빨리 이루어져야 한다. 그리고 태양광과 풍력 설비를 할 때마다 야기되는 민원 해소를 위해 ‘주민주도형’ 발전사업을 활성화시킬 필요가 있다.독일의 경우 지난 2009년과 2014년 재생에너지 실행계획과 재생에너지법 제정을 통해 신재생에너지 발전사업이 활성화되도록 했다. 재생에너지법에 의해 독일의 태양광발전시설(600만개 이상) 대다수는 개인이 설치해서 운영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대부분 발전사업자가 지주들이 토지를 임대해 발전소를 운영하기 때문에 수많은 민원이 제기된다. 태양광발전사업자들이 금융기관 대출로 대규모 토지를 임대해서 사업을 하다 보니 대출 비리, 민원쇄도 등의 부작용이 나타나는 것이다.발전사업을 주민주도형(지주, 기업, 금융기관, 시공사 참여)으로 하면 민원문제 해결, 과다대출에 따른 부작용도 사전에 방지할 수 있다. 그리고 마을단위 발전사업(한 마을에 최소 10MW 이상 30MW 정도)에 따른 규모의 경제도 실현된다. 마을단위 발전사업을 할 경우, 관리인력 일자리(1MW당 3명 정도)와 발전수익(논농사의 20배 이상 수익 기대)으로 농촌의 소멸을 막아낼 수 있다. 기업이 필요로 하는 충분한 신재생에너지 생산도 물론 가능하다.

2022-10-30

교사의 건강이 교육의 질이다

박성률트레이닝과학연구소장동국대 의과대학 연구초빙교수 최근 코로나19 등 교직 환경 다변화로 인해 교사의 정신적, 육체적 스트레스가 심각한 상황이다. 교사의 77%가 1개 부위 이상, 59.3%가 2개 이상, 43.5%가 3개 이상의 통증을 호소하고 있으며, 교사의 직무 스트레스 정도는 5단계 척도에서 평균 3.15로 일반 공무원 2.83, 기업체 직원 2.71에 비해 가장 높다. 일반 제조업에 종사하는 근로자와 비슷한 높은 노동 강도에도 불구하고 교사의 근골격계 질환과 직무 스트레스에 관한 의학적 조치와 인식 개선은 매우 낮은 실정이다.우선 교사들의 근골격계 질환에 대한 인식 개선이 시급하다. 교사의 근골격계 부위에 대한 치료경력에서 통증호소자 중 절반의 교사들이 허리가 쑤시거나 어깨가 욱신거리는 통증을 단순한 피로나 퇴행성 질환으로 여기고 치료를 미루는 것으로 조사됐다. 게다가 병원, 한의원 등 전문 의료기관에서 치료를 받은 비율은 23.3%에서 많게는 39.4%로 미미한 수준이다. 더군다나 허리 부위나 목 부위 통증 호소자 중 절반에 가까운 교사가 디스크 증상 의증으로 판단 된 후에나 전문적인 치료를 시작하는 등 근골격계 질환에 대한 인식이 낮아 예방과 관리에 한계가 있다.판서와 행정업무의 전산 처리를 매일 해야 하는 교사의 경우 물리적으로 반복되는 특정 자세가 신체 부위별 근골격계 질환의 원인이 된다. 또한 직무 스트레스, 직무 요구도, 사회 심리적 요인 등이 교사들의 근골격계 질환을 유발하는 데 영향을 미친다. 이러한 직무스트레스로 인해 심리적 부담이 생기게 되면 근육 긴장도가 증가하고, 근골격계 질환의 증상을 발생시키며, 때로는 증상에 대처하는 능력을 감소시킴으로써 증상을 더 악화시키기도 한다.그러므로 간단한 스트레칭, 근력강화 등을 위한 운동 프로그램이 필요하다. 교사의 근골격계 질환 예방과 관리를 위해 운동 프로그램을 교육현장에 적용했을 때 효과적이었다는 국내외 연구결과들이 많다. 사무직 근로자에서 근골격계 질환은 유병률이 높은 편이지만 간단하고 정기적인 스트레칭만으로도 예방이 가능한 질환이다. 운동요법이 근육의 가동 범위를 회복시키고 근막통증증후군 증상 완화에 도움을 주며, 경견완(목, 어깨, 팔)장애나 흉통, 요통의 치료에도 효과적인 것으로 보고되고 있다.더욱 눈여겨볼 점은 근골격계 질환과 직무스트레스는 상호 연관성이 있다는 것이다. 최근 연구결과에서 근골격계 질환을 가지고 있는 교사가 직무 스트레스 점수가 높게 나왔고, 직무 스트레스 치료 경험이 있는 교사가 근골격계 문제가 크다는 것이다. 이에 더해 교사의 경력이 많을수록 그리고 가사노동시간이 길수록 근골격계 질환 위험도가 높게 나왔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이런 유해요인을 교사 스스로 자각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이는 교사의 근골격계 질환에 대한 위험성을 스스로 파악하고 사전에 방지할 수 있는 대책 마련이 시급한 이유이기도하다.직무 스트레스는 고경력의 교사에게서 높게 나타났다. 스트레스 요인으로는 학생 인권은 지켜지는 반면 교권은 무너지고 있는 현 교육계의 권위상실로 인한 생활 지도의 어려움, 과도한 행정업무, 학부모 민원 응대 등을 들 수 있다. 학교급별에 따른 비교 자료를 보면 초등학교 교사가 고등학교 교사보다 스트레스 지수가 다소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교사의 업무 강도 조절과 근무환경 개선 등 대책 마련이 필요한 대목이다.한편 여가활동을 하지 않는 교사보다 여가활동을 하는 교사의 근골격계 질환 위험도와 직무 스트레스가 비교적 낮게 나타났다. 그러므로 교사들의 근골격계 질환을 예방하고 직무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대책으로 여가활동을 적극 장려할 필요가 있다.특히 교사들이 가장 많이 겪고 있는 만성요통은 유연성 증진, 근력 강화, 협응력 증진, 근지구력 향상과 동시에 생활 및 작업 자세 교정, 영양관리, 스트레스 관리 등 실기 위주 전문가교육을 통해 일상생활 속에서 스스로 관리할 수 있는 능력을 키워주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뿐만 아니라 규칙적이고 지속적인 유산소운동은 에너지대사에서 발생하는 산소유리기를 제거하는 효소의 활성을 증가시켜 근골격계 질환자들에게 인체에 유해한 물질들의 생성을 억제하고 제거하는 효과가 있는데, 이에 적합한 운동의 유형과 시간 그리고 강도 설정도 매우 중요하다 할 수 있다.사람을 가르치고 그의 삶을 좋은 방향으로 인도하는 선한 영향력을 주고자 하는 이들이 교사다. 그런데 교사들이 지쳐가고 있다. 그들은 초심을 잃지 않기 위해 애를 쓰지만 학교라는 현장이 만만치 않다. 교사의 직무수행도는 수업 및 전반적인 학교의 운영에 영향을 미치기에 무엇보다 교사의 건강과 안전은 교육의 질을 결정하는 중요한 요인이다.독일에서는 학교구성원 중 3명 이상이 그룹을 지어 운동치료를 원할 경우 스포츠지도사나 운동처방사 등 스포츠전문가들이 점심시간이나 일과 후 ‘찾아가는 서비스’를 통해 스트레칭, 근력강화운동, 스포츠마사지 등 근골격계 질환 예방을 위한 의학적 조치가 이루어진다는 사실이 이제 먼 나라 얘기가 아닌 듯하다.

2022-10-30

화합으로 새로운 희망울진을 위해 나아가다

손병복울진군수 울진군이 민선 8기 출범과 함께 ‘화합으로 새로운 희망울진’ 건설을 위한 첫 발걸음을 내디딘지 넉달이 됐다.민선 8기 울진군의 화두는 화합과 혁신이다.화합은 그 어떤 가치보다 위대한 힘을 가지고 있다.이에 지방선거 이후 지지 후보에 따라 나뉘었던 민심을 모으고, 군민들과 공직자의 단합된 힘으로 편견과 갈등이 없는 군민화합을 이루어 군의 경쟁력을 더욱 높여갈 것이다.두 번째 화두인 혁신은 희망울진으로 변화하기 위해 꼭 필요한 요소이다. 군정의 혁신을 통해 실용성 있고 실천 가능한 정책을 펼치고, 행정의 변화를 이끌어 낼 계획이다. 또한, 혁신으로 이룬 변화로 군민들이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는 든든한 기반을 마련해 갈 것이다.이러한 군정 추진을 위해 ‘실용적인 경제’, ‘차별화된 관광’, ‘감동주는 복지’ ‘섬기는 군정’을 군정 목표로 삼고 군민 모두가 잘사는 울진을 만들기 위한 준비를 차근차근 진행하고 있다.35년간 대기업에서 터득한 경영전략을 행정에 접목하여, 원하는 사람은 누구나 일할 수 있고, 일한 만큼 보상받을 수 있는 경제구조를 만들고 다른 지역과 구별될 수 있는 특별한 관광 아이템을 통해 관광객 1천만 시대를 열어가고자 한다.어르신들은 찾아가 돌보고, 장애인들에게는 든든한 힘이 되고, 다문화가족들은 따뜻하게 보살피는 맞춤형 복지 서비스로 군민들에게 감동을 주는 군정을 이끌어 갈 것이다.그러나 어떤 정책이나 방법보다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람의 힘이다.서로에 대한 신뢰와 존중은 화합을 이끌 것이고 그 화합이 발전을 이루어낼 수 있다.섬기는 군정을 통해 공직자는 군민을 존중하고 섬기며 즐겁게 일하고 신바람 나는 공직 분위기가 군민들에게는 양질의 서비스로 전달되고 군민에게 존중받으며 공직자로서 자긍심을 찾아가는 그런 공직 사회를 만들어 가고자 한다.민선 8기가 시작된 지 넉 달여. 짧다면 짧다 할 수 있는 시간이지만 그동안 희망을 보았고, 힘을 얻었고, 오랫동안 고민해온 군정을 구체화할 수 있게 되었다.울진의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기 위해 신한울3·4호기 건설 조기 재개를 위한 노력을 이어왔고 다행히 정부에서 착공 시기를 앞당기겠다고 발표함에 따라 침체 되어 있던 울진 경제에 희망의 빛이 드리웠다.화합과 혁신이라는 바탕 아래 민선 8기가 이루고자 하는 가장 궁극적인 목표는 군민들이 잘 먹고 잘 살 수 있는 울진군을 만드는 것이다.“군민들이 먹고사는 문제를 살피는 것은 군정의 최우선 과제입니다. 민선 8기 울진군은 경제부흥의 시대를 열어 가겠습니다”민선 8기는 울진 경제부흥 전략의 일환으로 글로벌 원전 최강국 중심도시를 건설을 목표로 삼고 취임과 더불어 적극적인 행보를 이어갔다.정부의 국정과제와 연계하여 추진했던 신한울 3, 4호기 착공이 2024년으로 앞당겨짐에 따라 하루라도 빨리 착공될 수 있도록 관련 부처, 사업자 등과 긴밀히 협력해 나갈 예정이다.각 읍·면 주민들과 간담회를 진행하며, 군민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였고 주민들이 보내는 신뢰와 응원의 마음을 느낄 수 있어 앞으로 군정을 이끌어 갈 힘을 얻었다.취임 이후 직원들과 그동안의 업무에 대한 보고와 앞으로 나아갈 방향에 대한 회의를 강행군으로 이어가며, 직원들과 함께 울진군 발전을 위한 구상을 구체화할 수 있었다.그리고 이제 한발 한발 내디디며 앞으로 나아갈 일만 남았다. ‘화합으로 새로운 희망울진’ 이라는 슬로건과 ‘실용적인 경제’, ‘차별화된 관광’, ‘감동주는 복지’, ‘섬기는 군정’의 군정 목표가 향하는 곳은 단 하나. 군민들이 잘 먹고 잘사는 행복한 울진을 만드는 것이다.너무나 단순한지만 이루기 쉽지 않은 것.군민들의 행복을 위해 민선 8기, 울진의 군정은 변화할 것이다. 다가갈 것이다. 그리고 실천할 것이다.

2022-10-30

황금사과를 지키는 용자리

용은 동·서양을 아울러 사람이 만들어 낸 상상의 동물로 신성한 존재로 주목받는다. 특히 동양에서는 제왕의 상징으로써, 임금의 옷을 용포, 앉는 자리를 용상이라고 한다. 또 과거 급제를 용문에 오른다 하여 등용문이라 불렀다. 용은 농사에 필요한 물을 관장하기도 하지만 불을 내뿜기도 하는 무서운 동물로 여겼다. 불교에서는 불법佛法을 수호하는 동물로 나타나기도 한다.별자리 중 북극성 근처에 용자리가 있다. 신화에 의하면 용의 임무는 헤스페리데스의 황금사과를 지키는 일이다. 이 황금사과는 제우스를 비롯해 신들이 노니는 정원에 심겨 있는데, 제우스와 헤라가 결혼식을 올릴 때 대지의 여신 가이아가 신부 헤라에게 선물한 것이다. 사람이 먹으면 늙지도 죽지도 않고 도리어 젊어지는 신비로운 열매여서, 헤라는 아름다운 목소리를 가졌다는 님프 헤스페리데스의 세 자매에게 이 나무를 보호하고 가꾸도록 했고, 용으로 하여금 사과나무를 지키게 했다.헤라클레스의 12가지 고난의 임무 중 열한 번째가 용이 지키고 있는 황금사과를 훔쳐 오는 일이었다. 헤스페리데스 세 자매 아버지 아틀라스 도움을 받으면 황금사과를 쉽게 얻을 수 있었다. 하지만 티탄족인 그의 일족이 제우스와의 전쟁에서 패한 후, 하늘의 질서를 어지럽혔다는 죄목으로 제우스로부터 영원히 하늘(천공天空)을 떠받치고 있으라는 벌을 받고 있었다.어쨌든 헤라클레스는 아틀라스를 찾아가 딸들에게 부탁하여 황금사과를 구해줄 수 없겠느냐고 부탁했다. 평생 하늘을 이고 있어야 하는 아틀라스로서는 자유의 몸으로 돌아갈 다시없는 기회가 아닐 수 없었다. 사연은 각설하고, 헤라클레스가 대신 천공을 떠받치고 있게 한 후 아틀라스가 황금사과를 구해왔다. 그런데 아틀라스는 자유의 몸을 간절히 원했다. 아틀라스가 한 가지 꾀를 냈다. 그가 황금사과를 들어 보이며 말했다.“자, 헤라클레스여! 그대가 원하는 황금사과가 여기에 있소. 그런데 이 사과를 가져오도록 명령한 에우리스테우스를 내 잠시 만나고 돌아올 터이니 그때까지 잠시만 있어 주시오.”이 말을 들은 헤라클레스는 아틀라스의 속셈을 금방 알아차렸다. 아틀라스가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것과 그렇게 되면 결국 자신이 평생 무거운 하늘을 떠받치고 있어야 한다는 것을…. 헤라클레스는 속지 않았다.“그렇게 하시오. 그렇지만 내 어깨가 아프니 그 위에 천을 댈 동안만 이 하늘을 잠시 들고 있어 주시오.”속으로 쾌재를 부른 아틀라스는 그렇게 하겠노라 대답하고는 들고 온 황금사과를 땅에 내려놓고 헤라클레스에게서 다시 하늘을 받아들었다. 헤라클레스는 이때를 놓치지 않고 땅에 놓인 황금사과를 가지고 왔던 길로 떠나버렸다. 헤라클레스에게 속은 아틀라스 표정을 여러분 나름대로 상상해 보시길 바란다.이 신화에 따르면 헤라클레스가 직접 용을 죽이고 황금사과를 구한 것은 아니다. 그러나 용을 죽이고 황금사과를 구했다는 신화도 따로 있다. 이 별자리는 작은곰자리 끝인 북극성 아래에서부터 길게 이어지는데, 헤라클레스자리 발아래에 있어 마치 용의 머리를 누르고 있는 것처럼 보여 상상한 듯하다.그리고 영원히 하늘을 떠받들고 있어야 하는 운명을 지닌 아틀라스에 대해서는 더 안타까운 이야기가 있다. 페르세우스가 머리카락이 수백 개의 뱀으로 된 메두사의 머리를 자르고 돌아오는 길에 천공을 떠받치고 있는 아틀라스를 만나 하룻밤 묵을 것을 청했다. 하지만 아틀라스는 어떤 이유에선지 거절했다. 화가 난 페르세우스가 메두사의 머리를 보여주었고, 아틀라스는 그만 돌로 변하고 말았다. 아틀라스의 이름 ‘tla’는 ‘견디다. 혹은 버티다’란 어원이 들어 있다. /박필우 스토리텔러

2022-10-30

이란 ‘히잡 시위’를 생각하다

김규종 경북대 교수 지난 10월 13일 22세 쿠르드족 여성 마흐사 아미니가 테헤란에서 이란 ‘도덕 경찰’에 체포된다. 그녀가 체포된 이유는 머리카락 일부가 보일 정도로 히잡을 제대로 쓰지 않았다는 것이 전부다.사흘 뒤에 의문사한 아미니를 추모하면서 ‘히잡 시위’가 불타올랐다. 히잡 시위의 슬로건은 ‘여성, 생명, 자유’다. 히잡 시위로 지금까지 사망자 200여 명과 2천명 이상의 구금자가 발생했다고 외신은 보도한다.검사 출신으로 검찰총장을 역임한 에브라힘 라이시 대통령이 7월 22일 제정한 ‘히잡과 순결의 날’이 히잡 시위의 원인 가운데 하나다. 여성 작가이자 예술가인 28세의 세피데 라슈노가 옷차림이 불량하다는 이유로 성희롱을 당한 끝에 체포되었는데, 그것의 근거가 ‘히잡과 순결의 날’이었다. 이란 여성들의 옷차림에 국가가 지시하고 명령하는 것이 일상화된 게다.히잡 시위가 걷잡을 수 없을 만큼 번지고 있는 까닭은 이란 정부의 통제적인 사회정책, 독재정치, 기득권 세력의 부정부패, 국제사회의 제재로 인한 심각한 경제 상황 등이다.1979년 호메이니가 주도한 혁명으로 팔레비 국왕이 쫓겨나고 이란에는 정교일치의 신정정치가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문제는 정보통신의 비약적인 발전으로 세계가 한 지붕 아래 살아가는 21세기에 시대착오적인 권위주의 정권이 득세하고 있다는 것이다.이란의 젊은 세대는 종교적인 억압에 불만을 품고 세속화를 추구하며 한류 열풍에 열광한다. 반면에 특권층은 부정부패로 엄청난 부를 축적하여 대를 물려가며 권력을 유지하고 있다고 전한다.이런 복합적인 상황에서 터져 나온 아미니의 의문사가 이란 청년들을 격동시킨 것이다. 여성들이 단순히 히잡을 안 쓰겠다고 일으킨 시위가 아니라는 점에 우리는 주목해야 한다.그들이 주장하는 여성과 생명과 자유에는 많은 것이 함축돼 있다. 여성 인권운동이 19세기 후반에 태동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지만 많은 나라에서 여성 인권은 사각지대에 있다. 팔레비 체제에서 자유롭게 살았던 이란 여성들에게 호메이니 체제와 그 연장은 질곡 그 자체다. 여성이 자기들이 옷차림을 스스로 결정하지 못하고, 남성들이 요구하는 대로 옷을 입어야 한다는 시대착오적인 면이 지적되어야 한다.생명의 근저에는 여성이 자리한다. 여성과 생명은 등가(等價)이며 언제나 등치(等値) 가능하다. 여성과 생명 모두에게 자기 의사(意思) 결정권이 부여되어야 함은 너무나 자명하다. 그들에게 자유가 주어져야 하는 것 또한 필연의 수순(手順)이다.여성들의 정치적-사회적-문화적 자기 결정권을 온전하게 부여하지 않는 나라는 분명히 독재국가이거나 인권 후진국이거나 시대착오적인 왕조 국가일 것이다.이란의 히잡 시위는 세계 곳곳의 동조 시위를 불러일으키고 있다. 그것은 이란 청년들의 시위에 담긴 정당성과 세계 시민들의 살아있는 연대 의식이 서로 결합한 까닭이다. 이란 청춘들의 목숨을 건 분투 노력을 강력히 지지하며 승리의 그 날을 간절히 기원한다.

2022-10-30

에어택시 시대

우정구 논설위원 UAM(Urban Air Mobility·도심항공교통)이란 항공기를 이용하여 사람과 화물운송을 담당하는 교통수단을 말한다. 기존의 여객기가 국가와 국가를 잇는 주로 장거리 중심이라면 UAM은 복잡한 도심내에서 이뤄지는 에어택시 기능의 항공교통 수단이라는 점이 다르다.기술적으로 극복해야 할 문제도 많다. 고층빌딩이 많은 도심 상공을 오가는 교통이어서 활주로 없이 수직 이착륙이 가능해야 한다. 안전성과 경제성도 담보돼야 한다.하늘을 날아다니는 자동차는 만화나 영화 속에서나 상상했던 일이다. 그러던 것이 현실로 곧 등장할 것 같다는 소식이다. 2019년 미국의 보잉사가 자율주행 방식으로 운행하는 하늘을 나는 자동차 시험비행에 성공하면서 세계 각국이 에어택시 개발에 경쟁적으로 뛰어들고 있다.전문가들은 빠르면 2024년 이후 하늘을 나는 택시가 상용화될 것이라 하고, 우리나라도 2026년쯤에는 상공을 나는 에어택시를 구경할 수 있을 거라 전망한다.대구시가 지자체로서 처음으로 미국의 항공우주분야 전문기업인 벨 텍스트론과 첨단항공 모빌리티산업 육성에 관한 업무협약을 맺었다. 2030년 대구경북 통합신공항 개항에 맞춰 도심항공교통 인프라 확장을 위한 준비작업에 박차를 가한다는 생각이다. 대구 도심에서 군위 신공항까지 에어택시가 운행되는 상상에 머물던 일이 머지않아 현실화된다는 것이다. 택시보다 6배 빠르면서 요금은 두배정도 비싼 에어택시의 등장은 상상만으로도 흥미롭다.에어택시 등장은 도심교통의 대혁명뿐 아니라 부동산 입지의 패러다임도 바꾸게 될거라 하니 모빌리티 산업이 지역에 미칠 파장에 촉각이 곤두선다. 통합 신공항 효과가 벌써부터 그 조짐을 보인 것이다. /우정구(논설위원)

2022-10-30

‘파친코’ 읽기를 권유함

이정희 위덕대 교수·일본언어문화학과 ‘역사는 우리를 저버렸지만, 그래도 상관없다.’소설 ‘파친코’의 첫 문장으로, 최근 TV에서도 책 소개로 흘러나오고 있다. 한번 들으면 잊혀지지 않을 정도로 강한 인상을 주는 문장이지만 곰곰이 되새겨보면 어려운 문장이다.역사는 우리 인간이 만들어가는 것이다. 그런데, 그 역사의 흐름의 방향이 우리가 추구하는 방향과는 다르게 흘러갔다는 이야기이다. 우리가 아닌 다른 사람들에 의해 역사의 방향이 틀어졌다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파친코’의 첫 문장 번역은 처음에는 ‘역사가 우리를 망쳐놨지만, 그래도 상관없다’였다. 이 문장은 원문을 보지 않더라도 틀린 문장이다. 역사가 신이 만들어 놓은 것이 아닌 이상, 역사가 우리를 망칠 수는 없지 않은가.원문은 ‘History has failed us, but no matter’이다. ‘fail’은 타동사로 ‘망치다’라는 의미로 번역하기에는 무리가 있다는 것이 영어를 할 줄 아는 사람들의 의견이다. 번역자는 독자들에게 좀 더 강한 인상을 주고자 ‘망쳐놨다’라는 단어를 사용했을 것이다. 그러나 잘못된 해석이다. 번역이 얼마나 중요한 가를 잘 보여주는 예인 것이다.올 7월 말에 한국에서 두 번째로 출판한 ‘파친코’에는 처음 번역한 문장을 수정해서 ‘역사는 우리를 저버렸지만, 그래도 상관없다’로 했다. 우리말의 ‘저버리다’가 이렇게 무게감 있게 다가오기는 처음이다.올 여름 나는 ‘파친코’를 미리 출판 예약으로 구입해서 그날로 다 읽어버렸다. 완독까지 며칠 걸릴 거라고 예상했는데, 하룻밤 사이에 다 읽고 말았다.책은 ‘파친코1’, ‘파친코2’로 700쪽이 넘는 장편소설이지만, 비교적 술술 읽혔다. 내용이 쉬워서가 아니다. 책을 읽는 사람으로 하여금 책 속으로 빠져들게 하는 힘이 있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우리의 이야기인 것이다.소설 속 시간적 배경은 1910년부터 1989년까지로 먼 옛날이야기가 아니다. 소설 속 공간적 배경은 한국, 일본, 그리고 미국이 등장한다. 올 해 읽은 책으로는 가장 울림이 컸다.‘파친코’는 우리의 이야기임에도 불구하고 한국에서보다 먼저 미국에서 출판되자마자 큰 반향을 일으켰고, ‘뉴욕타임즈’, ‘USA투데이’, 아마존, BBC 등 75개가 넘는 주요 매체에서 ‘올 해의 책’으로 선정되었다고 한다.또한 애플TV에서 동명의 드라마로 제작해서 전세계에 동시 공개되었다. 그리고 전세계 사람들이 ‘파친코’ 드라마를 보고 한국과 일본과의 역사적 관계를 알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문학이 지닌 파급력인 것이다.이제 우리의 이야기를 우리가 직시해야 한다. 먼저 소설 ‘파친코’ 읽기를 권유하고 싶다. ‘파친코’가 우리나라에서 베스트셀러가 된다면 전세계 독자들의 반응이 더 뜨거워질 것이다. 그리고 드라마 ‘파친코’도 하루 빨리 우리의 TV를 통해 쉽게 볼 수 있게 되기를 바랄 뿐이다.

2022-10-30

청춘의 축제를 탓할 수는 없다

유영희 인문글쓰기 강사·작가 지난 토요일, 평소보다 이른 시간에 잠이 들어서 그런지 새벽 세 시에 잠이 깨어 비몽사몽 중에 휴대폰을 확인하고 깜짝 놀랐다. 안전 안내 문자가 8통이나 와 있었기 때문이다. 뉴스를 찾아보니 서울 이태원에서 인파에 밀린 압사 사고 소식이 포털 첫 화면을 채우고 있었다. 잠이 확 달아나서 뉴스만 보았다. 뉴스를 새로 클릭할 때마다 사상자 숫자가 늘어나고 있었다. 30일 오후 5시 현재 사망자는 153명이라고 하지만 사망자는 더 늘어날 수 있다고 한다.뉴스에서는 사망자 소식과 함께 이런 일이 왜 일어났는지 분석이 요란하다. 한국식 할로윈 축제가 얄팍한 상술과 결합하여 변종이 되었다며 이참에 무분별한 외래문화 수용을 점검하자는 비판론도 보인다. 실제로 젊은이들의 할로윈 축제가 무분별한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하는 사람도 많다. 젊은이들의 빈약한 놀이 공간과 놀이 문화에 대해 안타까워하는 기사도 있다.나 역시 한때는 영어 유치원에 다니는 어린이들이 영어 이름을 지어 부르는 것도 걱정스럽게 여긴 적도 있다. 그러나 할로윈 축제가 외래 문화라고 해서, 또는 내가 관심 없다고 해서 그것을 즐기는 청춘을 나무랄 수는 없다. 할로윈 축제가 상술과 결합했다고 비난하거나, 젊은이들의 문화가 빈약하다고 성토하는 것도 공허하다. 축제를 즐기는 데 국적을 운운하는 것은 시대착오적인 발상이기도 하다.여기서 정말 중요한 문제는, 그 전날 금요일 같은 지역의 세계음식문화거리에서 수천 명이 모였을 때 사람들이 인파에 떠밀려 쓰러진 사고가 발생했는데도 마약과 성범죄만 대비했을 뿐 인파에 떠밀리는 압사 사고 대비는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그러나 4m 골목에 10여만 명 인파가 순식간에 몰렸을 리는 없다. 미리 대책 회의를 하지 못했다고 해도 인파가 늘어나는 추이를 살펴보고 용산경찰서는 대책을 마련했어야 한다. 유명 연예인의 콘서트에서도 할 수 있는 사고 예방을 하지 않았다는 것은 이 참사가 인재라는 것을 알 수 있다.그렇다고 지금 책임만 묻자는 것은 아니다. 지금은 사후 수습과 재발 방지가 더 중요하다. 방금 페이스북에 올라온 생명안전시민넷의 성명서를 보니, 모두 당연한 말이지만 간과하기 쉬운 내용이다. 그중에도 피해자들에 대해 함부로 말하거나 불확실한 정보가 확산되지 않도록 힘을 모아달라는 말에는 고개가 더욱 끄덕여진다. 사고의 원인을 파악하고 책임자를 처벌하며, 재발방지대책을 마련하는 것이 단시간에 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언론의 책임도 중요하다. 이런 재난 상황에도 조회 수를 늘리려고 무리하게 취재를 하거나, 자극적인 장면을 노출할 가능성이 많기 때문이다. 이미 한 지인은 트위터에서 사고 사진을 보고 충격을 많이 받았다고 한다.세월호 사건으로 304명이 죽은 지 8년 만에 서울 한복판에서 또 이런 참사가 일어났다. 무지와 방심이 빚은 참사라는 어른도 있지만, 청춘의 축제를 탓할 수는 없다. 젊은이들이 무지하고 방심해도 이런 대형 참사가 일어나지 않게 예방하는 것은 어른들의 몫이다.

2022-10-30

대구 수성유원지

우정구 논설위원 대구 수성유원지는 대구 12경의 하나로 소개되는 곳이다. 대구시민이 가족과 함께 즐겨찾는 장소이자 대구시민의 정서가 담겨 있는 유서 깊은 장소다.일제 강점기인 1924년 수성못 일대 농민들은 신천을 농업용수로 사용했으나 신천이 상수도로 사용되면서 농업용수 부족을 겪게 되자 일본인 미즈사키 린타로와 함께 저수량 70만t의 수성못을 축조하기에 이른다. 당시 축조에 공로가 컸던 미즈사키 린타로는 그의 유언에 따라 그의 묘가 수성못 부근에 조성돼 있다.수성유원지보다 수성못으로 더 알려진 이곳의 명물로 수성관광호텔(현재 호텔수성)을 꼽지 않을 수 없다. 대구 최초의 관광호텔로 고 박정희 대통령과의 인연으로 유명하다. 박 대통령이 대구에 오면 시내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이곳에 머물러 박정희 별장이라는 별명이 붙기도 했다. 지금도 그가 머물던 방이 남아 있어 관광용 객실로 팔려나간다 한다.1980년대까지만 해도 수성못 둘레에는 100개가 넘는 포장마차가 성행, 불야성을 이뤘으나 1991년 수성못 일대 정비가 시작되면서 모두 사라졌다.수성못 한쪽 편에는 대구에서 태어난 독립운동가이자 문학 시인인 이상화를 기념하기 위한 상화동산이 조성돼 있고 그의 시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의 시비도 세워져 있다. 홍준표 대구시장은 이곳에서 시장 출마를 선언해 당선이 됐다.대구 대표 명소인 수성못의 소유권을 한국농어촌공사에서 대구시나 수성구청으로 무상 이양하자는 법안이 국회에서 발의된다고 한다. 농업용수 기능이 사실상 폐지된 저수지를 지방자치단체로 넘겨 효용성을 높이자는 취지다. 수성못이 명소에 걸맞는 변신을 거듭할지도 주목된다./우정구(논설위원)

2022-10-27

‘아줌마’와 ‘여사님’

홍석봉정치에디터 한 상가(喪家)에서 있었던 일이다. 60대 상주가 문상객들을 맞으면서 상가 일을 돕던 여성에게 “아줌마”라고 부르며 음식을 요청했다. 그 순간 뒤돌아본 50대 여성은 표정이 굳어진 채 레이저 눈총을 쏘았다. ‘아줌마’라는 말에 감정을 상한 듯 했다.옆에 있던 상주의 지인이 ‘아차’ 싶어, “여사님!, 상주가 잘 몰라서 그런 모양인데 이해해주세요”라며 상주를 옆으로 밀어내 겨우 어색한 국면을 모면했다.요즘 상가의 여성 도우미를 ‘여사’로 부른다고 한다. 하지만 동석했던 문상객 다수가 그 상황이 이해되지 않은 듯 했다. 그 자리를 벗어나자마자 일행들은 ‘아줌마’라는 말이 상대를 비하하는 표현인지 여부를 두고 한바탕 논쟁을 벌였다.‘아줌마’라는 말은 ‘아주머니’라는 말의 낮춤말이다. 사전적 의미로 ‘아주머니’는 부모와 같은 항렬의 여자나 결혼한 여자를 예사롭게 이르거나 부르는 말이다. 아줌마는 그만큼 우리에게 스스럼없고 친근한 말이었다. 오랜 세월을 무탈하게 사용해 왔다. 하지만 아줌마가 어느 순간 비하의 표현이 됐고 금기어가 됐다. 잃어버린 ‘동무’처럼,‘ 여사님’이 대신했다.한때 방송인 김어준의 윤석열 대통령 부인 ‘김건희 씨’ 호칭이 논란이 됐다. 한 민간단체 대표가 ‘김건희 씨’ 호칭 사용을 두고 국가인권위에 진정한 것이다. 문재인·노무현 전 대통령의 배우자에게는 ‘여사’라는 존칭을 쓰면서 윤석열 대통령의 배우자에게는 ‘씨’를 사용한 것이 인격권 침해라는 것이다. 김건희 여사가 영부인 호칭을 안 쓰겠다고 밝히면서 일단락됐다. 이후 각종 언론 등에 ‘여사’가 통용됐다.문재인 전 대통령 부인 김정숙 여사도 같은 논란에 휩싸였던 적이 있다. 결국 지지자들의 요구에 따라 ‘여사’ 호칭이 굳어졌다. 대중의 언어 습관 변화 등을 고민한 결과였다. ‘00씨’라는 표현이 높임말임에도 불구, 이를 불편하게 여기는 사람들이 적지 않았던 것이다.북한에서는 ‘여사’가 김일성의 부인 김정숙이나 김정은의 부인 리설주에게만 사용하는 호칭이다. 감히 다른 사람은 사용하지 못한다. ‘존엄’을 해칠 수 있어서다.여사(女史)의 사전적 의미는 결혼한 여자 또는 사회적으로 이름 있는 여자를 높여 이르는 말이다. 현재는 다른 사람의 부인을 높여 부르거나 호칭이 마땅치 않은 나이 많은 여성을 ‘아줌마’ 대신 부를 때 사용한다.그런데 요즘 다수의 여성들이 근무하는 곳에는 ‘여사’가 일반적인 호칭으로 사용되는 추세다. 우편물 분류작업을 하는 우정실무원들도 현장에서 ‘여사님’으로 불린다. 할인점에서도 도급 여성 사원들에 대해 ‘여사님’이라고 부른다. 한때 ‘사장’호칭이 유행하던 시절이 있었다. 구멍가게 주인도 사장이고 너도나도 사장이라고 불렀고, 행세를 했다. 이젠 기업체의 ‘대표’와는 엄연히 구분돼 사용된다. 시류 변화에 따른 것이다.바야흐로 ‘여사 전성시대’다. 대통령 부인도 여사고, 노가다 현장의 여성도 ‘여사’다. ‘사장’ 호칭이 일반화된 것처럼 여사도 상하귀천이 없이 사용하는 호칭이 됐다. 그래도 정겨운 ‘아줌마’가 그립다.

2022-10-27

바닷가 소나무 숲속의 축제

윤영대수필가 올해의 포항스틸아트페스티벌이 15일간의 야외전시로 송도 바닷가에서 열리고 있다. 예년보다 조금은 소규모인 듯하고 다양한 볼거리가 없지만, 송림 솔밭 도시 숲에서 포항거리예술축제가 같이 열려서 푸근하게 바다와 숲을 보면서 우리 생활에서 희미해져 가는 듯한 삶의 맥을 짚어볼 수 있어 좋았다.스틸아트페스티벌은 ‘동행-공존하는 다양성’을 주제로 철강기업 작품 14개와 작가 작품 21개, 시민참여 작품 1개 등 총 36개 스틸아트가 맑은 가을 바닷바람이 불어오는 송도에서 푸른 바다, 하얀 모래밭을 배경으로 포항이 문화예술 도시로의 발전을 기원하듯이 ‘해보는 대로’에 줄지어 서 있다.먼저 입구 쪽 안내 부스로 가서 안내 책자와 문화 여권을 받고 천천히 투어를 시작했다. 하나하나 사진도 찍으며 살펴보니 부엉이, 오리 새들과 돌고래, 개복치 물고기도 있고 사슴, 고양이뿐만 아니라 예쁜 나비와 달팽이 등 곤충과 벌레도 철강으로 형상화되어 있다. 모두 인간과 공존하는 생명체들이다. 그 사이 서 있는 천사는 두 손 모아 무엇을 기도하고 있을까? 평화의 여신상이 50년 전 포항 시정목표인 ‘명랑한 문화도시’가 이루어진듯 힘차게 하늘로 두 손을 펼치고 있다.백사장에 늘어서 있는 체험 부스로 돌아오니 어린이와 손잡고 가족이 흥미롭게 기웃거린다. 캐리커처도 그려주고 한지·칠보 공예 체험을 통해 시민들의 참여를 이끌고 기념품도 나누어 주고 있었다. 나도 문화 여권에 ‘제목 맞추기’를 써넣어 스탬프도 찍고 체험 티켓을 사서 캐리커처도 그려 받고 종이꽃 액자도 만지작거려 보았다. 또 다음 날 밤에 다시 와 보니 찬란한 포스코 불빛과 검은 바다의 파도 소리에 스틸아트는 더욱 빛나고 있었다.‘포항거리예술축제’가 열리고 있는 길 건너 소나무 숲으로 가봤다. 금·토·일요일 사흘간 송도 솔밭 도시 숲에서 ‘우리, 좀 더 가까이’라는 주제로 숲속에 있는 구령대, 족구장, 정자뿐만 아니라 숲속 쉼터와 놀이터 데크 등에서 스무 개의 다양한 볼거리가 공연되고 있었다. 예술가와 시민을 잇고 다양성, 포용 그리고 연결이라는 시민참여 예술제에 포항의 16개 동호회가 참여하고 있었다. 주로 젊은이들이 몸짓으로 율동으로 또 연극으로, 관람하는 시민과 가까이서 또는 같이 움직이며 평범한 하루가 특별한 시간으로 느껴지는 경험을 하게 한다. 다 둘러보기는 어렵겠지만 숲길마다 흥겨운 가족 나들이 모습이 바로 축제다.‘요람’ 공연장 데크에서 체험으로 요람에 누워 어린이처럼 웃었지만 곧이어 시작된 1인극은 홀로 공간에서 맴도는 한 여배우의 모습이 각자의 생활 속 시공을 되새겨 보게 한다. 무대 옆을 흰 삿갓을 쓴 사람들이 줄지어 걸어가기에 뭔가 했더니 ‘숲을 거니는 싯구들’이라는 참여형 거리극이었다. 움직이는 거울에 나를 비춰보기도 했다.저녁나절, 송도 카페 문화거리에 불이 켜지기 시작하니 그것은 밤의 축제다. 카페와 치킨집, 그야말로 ‘까치집’에는 젊은이들의 웃음이 가득하다. 국제불빛축제가 취소된 포항의 바닷가에는 또 다른 축제가 시민들의 마음속에 불꽃을 터뜨리고 있었다.

2022-10-27

색깔론

김병래 수필가·시조시인 문재인 전 대통령은 ‘통혁당사건’으로 복역한 신영복을 가장 존경하는 인물이라고 했다. 사석에서 한 얘기가 아니라, 각국 정상급 인사들과 북한의 김여정 일행이 참석한 평창 동계올림픽 개막식에서 한 말이다. 자신의 사상적 일단을 세계만방에 천명한 셈이었다. 통혁당(통일혁명당)의 지도이념은 주체사상이며, 사회주의·공산주의 건설이 목적이었다. ‘반정부 및 반미 데모를 전개하는 등 대정부 공격과 반정부적 소요를 유발시키려는 데 주력했다’는 이유로 검거된 당원들 중 북한에 가서 로동당에 가입한 김종태, 김질락, 이문규는 사형에 처하고 신영복 등은 무기징역형을 받았다.위의 사건이 다시 소환된 것은 이번 국회 국정감사장에서였다. 전용기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김문수 경제사회노동위원장에게 “문재인 대통령이 종북주사파라고 생각하느냐?”고 묻자, “문 대통령이 신영복 선생을 가장 존경하는 사상가라고 한다면 확실하게 김일성주의자”라고 대답한 데서 비롯되었다. 김문수 위원장은 과거 노동운동을 한 경력이 있어서 신영복의 사상에 대해서는 잘 안다고 했다.‘우리 당이 민족의 태양, 김일성 장군의 혁명사상을 구현하기 위한 한국혁명의 전위당인 만큼 당원과 각계의 애국민중을 하나의 혁명전선으로 결속해야 할 것이라는 정치활동의 목표로부터 출발해 (중략) 우리들은 이 힘 있는 정치선전수단으로 보다 많은 김일성주의자를 육성하고 각계각층 애국민중을 하나의 혁명전선, 통일혁명의 깃발 아래 강고하게 결집시키도록 합시다.’ 통일혁명당 기관지 ‘혁명전선’에 실린 이 글을 보면 김 위원장이 왜 문 전 대통령을 김일성주의자라고 했는지 이해하게 된다.좌파들은 자신들을 향한 비판을 곧잘 색깔론이라고 매도한다. 요즘 세상에 빨갱이가 어디 있다고 ‘종북몰이’를 하느냐는 것이다. 좌파가 아닌 사람들 중에도 그들의 말에 동조를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하지만 대한민국에는 엄연히 종북 주사파들이 존재하는 것이 현실이다. 주사파 조직에서 활동하다 전향한 홍진표 국가인권위원회 상임위원은 2004년 10월 ‘월간조선’ 기고문에서 이렇게 말했다.“주사파는 1980년대 중반 이후 전대협, 한총련 등을 조직해 학생운동의 주도권을 잡았다. 이들은 소위 ‘金日成 原典(김일성 경전)’을 읽으며 북한 주도 통일 실현을 목표로 활동했다. 그들은 ‘위수김동(위대한 수령 김일성 동지)’친지김동(친애하는 지도자 김정일 동지)’이라는 호칭을 써가며 김일성과 김정일을 진심으로 추앙했다.”그 때의 주사파들이 문재인 정권과 더불어민주당의 핵심 인물들이라는 건 주지의 사실이다. 그들의 행보를 보면 지금도 사상적으로 완전히 전향을 한 것 같지는 않다. 겉으로는 내세우지 않는다고 해도 그들의 궁극적 지향점이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체제가 아니라는 걸 알 수 있다. 소위 ‘운동권’시절에 불태웠던 체제전복의 꿈이 얼마나 시대착오적인 망상인지를 아직도 깨닫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그들의 철저한 활동으로 좌경화된 사회일반의 의식전환을 위한 범국가적 혁신이 이 시대의 주요 당면과제이다.

2022-10-27

쌀쌀한 날씨, 뇌졸중은 언제나 조심

포항성모병원 신경과 차민주 진료과장 점점 쌀쌀해지 것이 가을이 성큼 다가온 것을 느끼게 하는 요즘 날씨이다.날씨가 추워질수록 혈관이 수축될 가능성이 크고 그로 말미암아 혈압이 높아지며 뇌졸중이 생길 확률이 높아진다. 겨울로 가는 길목의 10월이 뇌졸중의 날로 지정된 이유도 그것이라 생각된다.뇌졸중은 2018년도 기준 40명 중에 1명이 생길 수 있을 정도로 유병률이 높은 질환이다.뇌졸중은 시간다툼의 질환이다. 의술이 발달하기 전에는 뇌졸중이 생기더라도 특별한 치료 없이 지켜본다는 말 그대로일 정도로 비응급 질환이었다면, 최근에는 비약적인 의학발전으로 치료를 통해 획기적인 증상 호전을 기대할 수 있는 질환이 됐다.증상이 있을 때 뇌출혈이든 뇌경색이든 빠른 치료가 예후에 굉장한 영향을 많이 미치므로 증상이 있을 경우 빠른 내원이 필요하다.보통 뇌졸중의 증상으로는 구음장애부터, 팔다리 근력저하, 실어증, 시야 장애, 어지러움, 팔다리 감각이상, 심하게는 의식소실 등 다양한 양상을 보인다. 지금 나타나는 증상이 뇌졸중인지 아닌지 판단하기 어려울 수 있으므로 이상 증상이 있을 때는 즉시 응급실로 내원해 빠른 조치를 받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증상이 생겼을 때 빠른 치료가 좋은 예후를 보인다면 미리 예방하는 방법은 어떤 것이 있을까? 보통 뇌졸중의 원인 요소는 고혈압, 당뇨, 고지혈증, 담배, 그리고 노화이다.노화가 원인요소 중 하나이나 노화를 막을 수는 없지만 다른 원인들은 얼마든지 열심히 조절할 만한 질환이다. 고혈압이 있는 분들은 수시로 혈압을 측정해 약물 조절하는 것이 중요하고 당뇨도 혈당 체크, 식이 조절, 운동을 통해 조절이 필요하다. 또한 고지혈증도 약물치료 및 식이습관 관리, 운동으로 충분히 조절할 수 있는 질환이다.마지막으로 마음먹고 금연하는 것도 스스로 관리할 수 있는 요소라고 볼 수 있다.뇌졸중이 생기면 나로 인해 혹은 가족으로 인해 한 집안의 안녕이 달라진다. 화목한 가정도 사회도 건강으로부터 시작된다. 추워지는 날씨에도 건강한 식습관과 운동, 또한 빠른 대처로 모두 건강한 가을, 그리고 겨울을 보냈으면 좋겠다.

2022-10-27

노을풍경

양태순수필가 지난해부터 노을이 보고 싶어 올여름 꽃지해수욕장을 찾았다. 노을 명소로 가는 내내 심장박동이 빨라졌다. 도착했을 때는 이미 노을이 지고 있어 숨조차 참아가며 지켜보았다. 노을꽃이 막 만개하려는데 갑자기 구름이 몰려와 회색으로 덮었다. 조금만 기다리면 다시 수평선을 물들이는 장관을 볼 수 있겠지, 미련을 버리지 못했다. 동행한 이들은 이미 해가 꼴깍 넘어갔다고 돌아서자는데 먼 길 달려온 아쉬움에 발이 떨어지지 않았다.노을맞이는 늘 아쉬움으로 남는다. 짧은 시간에 찬란함이 스러지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기온과 바람, 대기의 맑은 정도에 따라 천차만별의 색으로 표현되기 때문이다. 너무 아름다워서 오만가지 생각이 일어섰다 사라지게 하는 노을, 그런 노을이 보고 싶었다. 사는 동안 겪은 숱한 감정을 색으로 보여주는 이력서 위의 잔잔한 위로가 느껴지는 노을 말이다. 짬을 내어 노을맞이를 나섰다. 도심의 가로수에는 가을이 도착하고 있었다. 지난달 시퍼렇던 잎들이 쏟아지는 햇살에 붉은빛을 끌어올리고 있었다. 나무 그늘이 적시는 보도블록도 흰색에서 좀 깊어진 회백색이다.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시골길로 방향을 잡았다.창문을 내리고 달렸다. 간들바람이 지나며 머리카락을 사라락 흔들자 달큼한 향기가 달려들었다, 곧 들이 다양한 노랑으로 펼쳐졌다. 벼가 노랗고, 누렇고, 황금빛으로 익어서 바람을 따라 물결쳤다. 어쩔 수 없는 농부의 딸인지 보는 것만으로 배가 불렀다. 오래된 기억들이 먼지 속에서 기지개를 켜고 일어났다.가을 들녘은 언제나 흥겨웠다. 주고받는 막걸리 사발이 넘치고 자식들에게 약속을 남발하는 부모님의 어깨가 펴지는 때였다. 그에 비해 일거리는 곳곳에 넘쳐났다. 새벽부터 부지런히 움직여 어둠이 처마를 지나 마당에 내려앉을 때쯤 손을 털고 저녁상에 앉았다. 저 들 어딘가에 있을 보고픈 이들을 쫓느라 눈길을 멀리까지 보냈다. 경적에 깜짝 놀라 정신을 차렸다. 볕내를 맡으며 넓은 들을 지나 한적한 카페에 들렀다. 유자를 머금은 향긋한 차를 마시며 카페를 기웃거리는 가을 풍경을 즐겼다. 카페 주변은 밭과 논이 었다. 창밖으로 계절을 건너가고 있는 억새의 흰 미소와 붉은 감이 만들어내는 등롱이 햇살 아래 느긋하다. 일바지를 입고 막바지 고추를 따는 아주머니의 굽어진 허리, 가을걷이하는 농부의 어깨에도 가을이 또랑또랑 익어가고 있었다. 참 푼푼한 가을이다.오후의 해는 짧았다. 카페를 나설 때 유리문에 빛이 고이고 있었다. 저무는 기운이 스멀스멀 들을 가로질러 오고, 계단을 내려오듯 태양이 성큼성큼 서산을 향했다. 해가 가는 방향으로 차를 몰았다. 천천히 속도를 맞추며 따라갔다. 산그림자 길어지는 산굽이를 지나고 물그림자 어룽지는 저수지를 지나 사과밭을 지났다. 옅은 그늘이 점점 진해지며 길게 내 뒤를 따라왔다. 어느 순간 파랗던 하늘에 색이 섞이고 있었다. 마음이 급했다. 여유를 버리고 달려 산마루에 차를 세웠다.능선 너머가 물들기 시작했다. 붉은 해가 산마루 위에서 호흡을 가다듬는 듯 하늘 자락이 붉으스름해지면서 하늘과 땅의 색이 시시각각 변했다. 땅의 색이 조금씩 짙어지다 경계를 지우듯 한가지 색으로 넓이를 키운다. 산들이 검푸르게 변하는 동안 하늘 모퉁이는 파랑에 은색, 금색, 주황, 빨강이 겹쳐졌다 갈라지기를 반복했다. 다른 색깔의 고무찰흙을 주물러 섞었을 때처럼 오묘한 색으로 물들고 있다. 거기에 지나가는 흰구름이 포개지니 남보라색이 스며들듯 피어났다. 마치 작은 산들 허리를 감싸 안고 계곡물이 찰랑거리는 듯하다. 황홀한 빛깔, 사람의 마음을 벅찬 감동으로 가득 채운다.노을맞이가 끝나고 머릿속 파노라마가 이어졌다. 마음만 부자였던 시절, 단골가게에서 주전자에 보글보글 물 끓는 소리를 베이스로 두런두런 일과를 풀어놓았던 무싯날의 말랑했던 시간들에 풍덩 빠졌다. 마음을 나누고 마음을 받았던 따뜻한 기억들이 가득했다. 지나간 날의 어느 페이지든 색색의 감정이 흘렀겠지만 훈훈한 정은 노을빛이었다. 어느덧 인생시계가 가을에 접어들었다. 생각의 갈래를 정리하여 단순화 시키는 작업이 아직은 길을 헤매는 중이다. 그러나 오늘의 노을맞이에 덧그리는 붓질이 살아갈 가을에 고운 노을풍경으로 피어날 수 있기를.

2022-10-26

계미(癸未)

육십갑자 중 20번째에 해당하는 계미(癸未)다. 천간(天干)은 계수(癸水)고, 지지(地支)는 미토(未土)다. 천간 계수(癸水)는 음수(陰水)로서 생물이 살아가는데 가장 필요한 물이다. 만물을 자양하는 근본이라 할 수 있다. 미토(未土)는 음토(陰土)이며, 동물은 양(羊)이다.계미일주는 음(陰)의 기운이다. 첫 인상이 조용하고 차분하다. 산길 옆 오솔길에 조용히 흘러내리는 시냇물 또는 옹달샘을 연상하게 한다. 자칫 소극적인 사람이 될 우려가 있고, 지혜롭지만 남자다움이 부족한 것이 흠이 될 수가 있다. 수동적이고 조용한 것이 문제가 될 수 있다. 평소에 자기표현을 많이 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기본적으로는 좋은 성품을 가지고 있다. 현실적인 면에서 타고난 능력도 남들보다는 훨씬 크다. 자기영역, 자기 울타리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사주에 양, 미(未)가 있으면 부모님께서 어디에 기도해서 낳은 사람들이 많다고도 한다. 뱀, 사(巳) 기운 못지않게 4차원 세계와 아주 인연이 깊다. 그러므로 영적인 아이디어가 속출하고 예술적이기도 하고 재능이 많은 편이다.계미일주는 겉은 부들부들하고 유연하지만, 내면은 기운을 축적하고 있는 것이 많아서 강력한 힘을 가지게 된다. 그 힘을 자기를 위해 쓰지 않고 널리 사람들에게 인정을 베풀기 때문에 선망의 대상이 된다. 희생정신은 숭고한 것이다. 희생이란 타고난 재능이며 능력이다. 그 능력이 있는 사람이 마음이든, 물질이든 베푼다면 무슨 원망이나 갈등이 있을 수 없다.계수(癸水)는 깊은 산속 계곡물이나 옹달샘처럼 차고 깨끗하다. 오염이 되지 않기 때문에 순수한 성분의 물이다. 물에도 급수에 따라 사는 물고기가 있다. 1급수에는 버들치, 열목어. 2급수에는 쉬리, 피라미, 은어. 3급수에는 붕어, 잉어, 메기. 4급수에는 거머리가 산다. 2급수까지는 식수로도 사용할 수 있다.옛날 어떤 나라가 있었다. 그 나라 안에는 ‘미치는 샘’이라는 곳이 있었다. 나라 안의 사람들은 모두 그 샘물을 마셨기 때문에 미치지 않은 사람이 없었다. 그러나 오직 임금만은 따로 샘을 파서 물을 마셨으므로 제 정신이었다. 미친 사람들이 볼 때 제 정신인 임금만 이상해 보였다. 그래서 여러 사람이 함께 임금을 붙잡아 앉히고는 진찰을 하고, 쑥으로 뜸을 뜨고, 은침으로 침을 놓고, 억지로 약을 마시게 하였지만 어느 한 가지도 효과를 보지 못하였다.임금은 끊임없이 괴로움을 당하다가 마침 그 샘에 이르게 되어서 그 물을 마셨다. 마침내 임금도 미치게 되었다.그 나라의 임금과 신하와 백성들이 모두 똑같이 미쳐 버렸다. 그제야 모든 사람이 함께 즐거워했다. 공동체를 위해 맹목적으로 모두 같아야 한다는 논리는 자칫 전체주의로 갈 수 있다. 다름을 인정하는 사회는 자유가 보장된 행복으로 가는 첫걸음이다.계미일주는 한여름의 뜨겁고 마른 땅에 단비가 내리는 물상이다. 미(未)는 아닐 미(未), 아직은 아니다라는 뜻이다. 미토(未土)는 느리고, 막중한 임무 때문에 모든 일에 신중함을 가지고 있다. 자의든 타의든 느리다. 미토는 여름을 마무리해서 가을의 결실로 넘겨주는 역할 때문에 신중하고 느린 것이다. 그것이 흙토(土)의 역할이다. 진토(辰土), 축토(丑土). 술토(戌土)도 동일하다.체코의 작가 밀란 쿤테라는 1994년에 발표한 소설 ‘느림’에서 “느림과 기억, 빠름과 망각 사이에는 은밀한 관계가 있다. 한 남자가 길을 걷고 있다고 생각해보라. 문득 그는 무언가를 생각하려고 하지만,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 순간 기계적으로 발걸음을 늦춘다. 반면 방금 어떤 괴로운 경험을 한 자는 이를 잊기 위해 자신도 모르게 발걸음을 재촉한다.”고 말했다.서두르지 않는 용기, 바쁘지 않은 아량을 가질 수 있도록 노력하자는 주장이다.또한 이런 문장도 있다. “어찌하여 느림의 즐거움은 사라져버렸는가? 아, 어디에 있는가, 옛날의 그 한량들은? 민요들 속에 그 게으른 주인공들, 이 방앗간 저 방앗간을 어슬렁거리며 총총한 별 아래 잠자던 그 방랑객들은? 시골길, 초원, 숲속의 빈터, 자연과 더불어 사라져버렸는가?” 이 대목은 소설 속 주인공이 시골 성(城)으로 가는 도중에 그의 차를 추월하려고 조바심을 부리며 뒤따라오는 자동차 모습을 생각하는 부분이다.“속도는 기술혁명이 인간에게 선사한 엑스터시의 형태이다. 오토바이 운전자와는 달리, 뛰어가는 사람은 언제나 자신의 육체 속에 있으며, 뛰면서 생기는 미묘한 신체적 변화와 가쁜 호흡을 생각할 수밖에 없다. 인간이 기계에 속도의 능력을 위임하고 나자 모든 게 변한다. 이때부터 그의 고유한 육체는 관심 밖에 있게 되고, 그는 속도 엑스터시에 몰입한다.” 류대창명리연구자 여기에서는 질주하는 오토바이 운전자와 뛰어가는 사람이 대조를 이루며 속도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그것은 인간의 속도와 기계의 속도의 차이점이며, 기술혁명이 변화시키는 세상에 대한 이야기다.작가가 따뜻한 시선을 보이는 쪽은 인간의 속도다. 자신과 자기 인생의 시간을 의식하는 속도, 그래서 그 신체적 한계를 알고 있으면서 그 한계를 즐길 줄 아는 인간의 속도다.밀란 쿤테라는 1968년 소비에트 침공으로 체코의 ‘프라하의 봄’에 참여하였다. 1975년에 자유로운 창작활동을 위해 프랑스로 망명했다. 지금 우리는 우크라이나의 전쟁 소식을 접하면서 핵을 머리에 인 채 살아가고 있다. 자유와 행복한 삶을 지키지 못한다면 그 대가는 함께 치르게 될 것이다.우리나라는 한국전쟁 이후 가장 못살던 나라에서 명실공히 열강의 반열에 들어간 세계 유일한 나라이다. 그런 빠른 성장이 유독 한국에만 가능케 된 이유는 한국인의 빨리빨리 때문이다. 빠름에 따른 풍요로움과 부작용은 분명히 있다. 이제는 빠른 걸음을 멈추고 지나온 길을 되돌아보면서 우리가 지켜야 할 가치를 찾을 때이다.

2022-10-26

나라의 백년

장규열 한동대 교수 나라에 가장 중요한 일은 무엇일까. 재정과 경제, 외교와 안보, 사회와 산업, 국방과 치안, 정치와 안정. 수다한 과제들 가운데 우리가 쉽게 놓치는 명제가 있다. 교육. ‘백년대계(百年大計)’는 먼 앞날을 내다보며 세우는 크나큰 계획이어야 하는데, 오늘 우리는 어떤가.대한민국 공동체는 지금 교육으로 다져야 할 내일을 고심하는가. 아이들에게 넘겨줄 세상에서 ‘다음세대’가 자신있게 살아가도록 가르치는가. 내일을 생각하는 교육이 오늘 우리에게 있는가. 무엇을 어떻게 다르게 가르쳐야 세상이 밝아질 수 있을까.경쟁. 무한경쟁. 약육강식과 적자생존으로 세상을 배웠다. 남을 누르고 이겨야만 성공하는 세상. 다툼과 반목이 일상이 되고 끝없는 비교만 넘치는 세상. 그런 끝에 만난 세상은 아름다웠을까. 싸움에서 이긴 자들이 좋은 세상을 만들었을까.펼쳐진 주변의 모습에는 상처만 가득할 뿐, 누구도 행복해 보이지 않는다. ‘경쟁’의 의미를 바꾸어야 한다. 경쟁의 진정한 뜻은 남과 다투는 게 아니라 자신을 이기는 게 아닐까. 남을 이겨 상처를 남기는 영광이 아니라 나를 이겨 건져 올리는 보람이 아닐까.궁극의 성공은 나 자신을 이겨내는 데 있음을 가르쳐야 한다. 게으름과 부족함을 스스로 이겨내는 나를 이기는 경쟁이야말로 거친 세상을 이기고 다음 세상을 준비하는 태도가 아닐까.선생님은 학생에게 어떤 사람일까. 끊임없이 격려하고 응원하며 더 나은 무엇을 향하여 나아가도록 날마다 부추기는 이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 반대로 실수를 지적하고 점수와 등수를 매기며 부족함을 드러내고 부끄럽게 만들고 있지나 않은지.학생이 오늘 무엇을 해도 ‘최선’을 던졌음을 인정해 주고 그보다 더 잘하도록 이끌어주는 선생님이 그리워진다. 학생의 존재를 있는 그대로 존중해 주며 오늘보다 나은 내일을 당겨다 주는 스승을 만나고 싶다. 배우려고 다가온 아이에게 잘못한 부분만 들추어내며 핀잔으로 가득한 하루를 만나게 한다면, 아이는 그 날 무엇을 배울까. 비난과 부정으로 가득한 인성이 되어 자신과 주변이 어두워지지 않을까.교육이 공동체를 키워야 한다. 일등만 대접받는 세상은 공평할 수가 없다. 잘난 사람만 득을 보는 사회는 공정하지 못하다.함께 사는 방법을 가르쳐야 하고 서로를 보듬는 공동체정신을 길러야 한다. 세상은 거칠고 힘든 다툼의 장소가 아니라 따뜻하고 친절하여 함께 하는 마음이 그득한 곳임을 일깨워야 한다. 한 사람도 놓고 가지 않는 교육을 실천해야 하며 모두 함께 즐거운 교육을 구현해야 한다.남들보다 자신을 이겨 성공에 이르도록 이끌고, 오늘보다 나은 내일을 당겨내도록 쉬지않고 격려하며, 누구도 포기하지 않아 모두 즐거운 보람으로 가득한 교육을 실천해야 한다.어찌 보면 당연했을 교육의 본질을 회복하여 따뜻한 공동체를 새롭게 세우는 기회를 교육계가 앞당겨야 한다. 나라의 백년을 준비하는 교육이 되어야 한다. 교육이 살아야 나라가 산다.

2022-10-26

추억의 우체통

홍석봉정치에디터 포항 송도해수욕장 산책길 위에 위치한 ‘추억의 소식통’이 이용객이 없어 흉물로 전락했다는 소식이다. 이 우체통은 지난 2016년 10월 송도동 새마을지도자협의회가 500만원을 들여 설치했다.과거 해맞이 관광명소로서 이름 높았던 해수욕장의 풍경을 되새기고 이곳을 방문한 시민과 관광객들이 추억을 간직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마련됐다. 편지지와 필기구를 갖춰 누구나 이용토록 했다. 우편물은 무료 발송해주었다. 카드나 편지를 부치면 작성일 기준 6개월 후 포항우체국을 통해 받아볼 수 있었다.이 우체통도 세월의 무게는 이기지 못했다. 해풍에 녹슬고 관리부실이 겹쳐 이용객이 뚝 끊겼다. 붉은색 페인트는 벗겨지고 녹슬어 상처 투성이가 됐다. 부스 안은 편지 대신 뿌연 먼지만 쌓였다. 누군가에게는 추억의 장소로 기억될 우체통이 관리부실로 흉물이 되고 말았다.김천의 소리길에는 지역출신 트로트 가수 김호중에게 마음을 전할 수 있는 ‘트바로티 우체통’이 설치돼 있다. 서울 용산공원에는 윤석열 정부가 국민 의견을 듣기 위해 마련한 ‘경청 우체통’도 있다. 구미의 ‘희망우체통’, 울산 간절곶의 ‘소망우체통’, 광주의 ‘듣는다우체통’, 현충원의 ‘하늘나라우체통’, 한때 관광지마다 설치돼 사연을 전달하던 ‘느린 우체통’ 등등….이색적인 이름의 ‘우체통’이 우리 주변에 하나 둘 등장해 관심을 끈다. 이용만큼 관리가 중요하다. 1년에 편지 한 통 쓰지 않는 요즘 세태다. 편지는 어느새 우리에게 추억의 하나로만 남아 있다. 편지를 대신하던 카카오톡의 먹통 사태가 편지에 대한 추억들이 새록새록 돋아나게 한다. 이색 우체통들이 편지로 사연을 전하던 설레임의 감성을 채워주고 있다./홍석봉(정치에디터)

2022-10-26

기술과 인간의 공존에 대한 물음

최병구 경상국립대 교수 지난 15일 경기도 성남시 판교의 카카오 데이터 센터 화재로 관련 업무가 갑작스럽게 중지된 시간, 나는 줌(ZOOM)으로 열린 회의와 학술대회에 참석하는 일정을 소화하고 있었다. 간사와 카카오톡으로 메시지를 주고받으며 학술대회를 진행하던 중 갑자기 메시지 전송이 되지 않았다. 최근 스마트 폰의 이상 징후가 자주 느껴지던 상황이라 급하게 데스크톱으로 카카오톡 메시지를 보냈지만, 문제는 해결되지 않았다. 그렇게 한참을 낑낑대는 동안 화재로 인한 업무 마비 가능성은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이전에도 데이터 센터 화재로 일상이 정지되는 순간이 있었다. 대표적인 사건이 2018년 11월, 서울 서대문구 KT 아현지사 화재로 일대의 망을 사용하는 기기들이 장애를 일으켰던 경우이다. 당시에도 보상 문제가 대두되고 데이터 센터의 중요성에 대한 논의가 있었다. 하지만 언제나 그렇듯, 우리는 당시의 기억을 잊고 공기처럼 데이터가 존재할 것이라 믿으며 살아왔다.이번 사태는 이전에는 비교적 짧은 시간에 그쳤던 불편함이 오래 지속되었다는 점, 카카오라는 플랫폼이 문제의 중심에 서 있다는 점에서 다르다. 카카오의 은행과 모빌리티 등은 대부분 24시간 안에 복구되었지만, 메일은 사태가 나고 4일이 지나서야 복구되었다. 다음 메일을 사용하는 사람들은 다른 메일로 우회하거나 중요한 메일을 수신하지 못할 수 있다는 불안감을 느껴야 했다.정부가 이번 사태를 국가 기반 통신망의 위기로 규정하며 카카오의 독점을 문제 삼고 나선 것은 환영할 만한 일이지만 어딘가 어색하다. 카카오라는 사기업과 국가 통신망이라는 공공성이 충돌하기 때문이다. IT 기술의 진보가 더욱 가속화될 미래에 국가의 역할은 거대 기업의 독점을 방지하는 것만으로 충분할까? 이번 일을 겪으며 첨단 기술의 이면에 대한 논의가 이루어지고 있다. 언제든 이번 사태가 반복될 수 있다는 점에서 예민하게 들여다볼 문제이다.거의 모든 사람이 갑작스런 불편함을 겪으며 시스템의 문제를 떠올리지는 못했을 것이다. 첨단 기술의 등장은 언제나 더 나은 세계를 상상한다. 카카오가 상징하는 IT 기술의 진보는 일상의 근본을 바꿔놓았다. 터치 몇 번으로 은행 업무를 마치고 쇼핑을 하거나 택시를 호출하는 것이 일상이 되었다. 이 모든 과정은 언제나 매끄럽고 흔들림 없이 진행될 것이라는 믿음을 전제로 한다. 하지만 이번 사태가 보여주는 바, 그 믿음은 사실상 허구에 가깝다. 단지 우리가 인식하지 못할 뿐이다.기술의 진보를 만들고 기계가 매끄럽게 돌아가기 위해서는 인간의 개입이 필요하다. 하지만 우리가 생각하는 기술의 미래에 인간은 존재하지 않는다. 카카오 플랫폼을 기반으로 이루어지는 산업의 특징도 바로 ‘인간’의 자리가 점점 사라진다는 것이다. 우리는 그것을 혁신으로 생각했다. 기술의 미래에 인간이 개입하는 것은 비효율적이라 생각한 까닭이다. 인간과 기계의 공진화는 어떻게 가능할지, 인간과 기계의 관계를 근본적으로 다시 설정해야 하는 시점이다.

2022-10-26

숲속에 들어

오낙률 시인·국악인 숲이라는 단어는 수풀의 준말이다. 수풀이란 나무들이 무성하게 우거지거나 꽉 들어찬 상태를 말한다. 따라서 숲이라는 단어를 인간의 도시에 비유하면, 나무의 사회 혹은 나무들의 도시라 해도 틀린 말은 아닐 것 같다.나무는 크고 작은 숲 하나를 이루기 위해 어떤 협력의 노고를 지출했을까? 아마도 큰 숲 하나를 이루기 위해 소나무는 소나무끼리 참나무는 참나무끼리 서로의 바람막이가 되어주며 서로 의지하며 자랐을 것은 짐작이 어렵지 않다. 그렇게 수풀을 이루며 사는 나무에까지 ‘숲’이라는 그들만의 사회가 분명히 요구되듯, 이 지상에서 사회의 울타리를 벗어나거나 소외되어 살아간다는 것은 그 어떤 생명이건 간에 지극히 어려운 삶이 되지 않을까 싶다.흔히 울창한 산림을 두고 자연의 보전상태가 좋다고 말한다. 그리고 우리는 그것을 숲이라 부른다. 그리고 날로 번잡해지고 규모화되며 빽빽하게 빌딩이 들어선 모습에서 우리는 또 그것을 ‘도시’라 이름 지었다. 그곳은, 깃들어 사는 종속만 다를 뿐 모두 자연 상관물들의 군락이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인간의 도시는 치열하리만치 행복을 추구하며 살아가는 도시임에도 불구하고 그 도시가 우리의 삶에 최적화된 도시일까? 하는 물음에는 선뜻 예스라고 대답하기 어려운 형편이다. 반대로 인간의 눈에 비치는 나무들의 도시는 언제나 조용하고 아름답고 평화롭기 그지없어 보인다, 나뭇가지를 비집고 내리쬐는 햇살을 받으며 동박새 한 쌍이 열심히 자연의 언어를 학습하고, 어느새 단풍이 들어버렸다며 낙엽 한 쌍이 쪼르르 소나무 발치 아래로 몸을 숨기며 산다.숲의 생태를 가만히 보면 산림이 오래되고 울창해질수록 그 산림에 자라는 수목의 개체 수는 반대로 줄어드는 특징이 있다. 숲을 이루는 나무들이 자라면서 점차 숲의 밀도가 올라가게 되고 그 때문에 주변의 나약한 나무가 자연 도태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러한 현상은 나무들의 밀도를 적정하게 조정하기 위한 자연현상에 해당한다. 그러한 자연의 평범한 원리를 생각하면 인간의 삶 또한 자연의 섭리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는 형편인데 점차 문명이 발달하면서 인류의 숲이 너무 과밀해져 가고 있어 걱정이다. 인류의 숲이 울창할수록 상대적 빈곤감에 허덕이는 극 빈곤층이 더 많이 생기게 되고, 그것은 머지않아 우리 사회가 영원히 안고 가야만 할 가장 큰 딜레마로 다가오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극 빈곤에 허덕이다가 가족을 동반하고 삶을 포기하는 사람들의 뉴스를 근래에 들어 자주 접한다. 이러한 현상은 앞서 말한 나무숲의 이야기에서처럼 문명이 발달할수록 점점 더 심해지게 될 것이다. 그러나 우리 인간은 저 숲속의 나무와는 달리 왕성한 의식 활동을 하는 만물의 영장에 해당하는 존재이다. 오랜 가뭄 끝에 내리는 단비일지라도 나누어 마실 줄 아는 지혜를 가진 자연물이다. 이제 그 극 빈곤에 허덕이는 이들을 구출하는 일이 우리 사회의 가장 시급한 과제임을 모든 국민이 분명하게 인지해야 한다. 그리고 확실하고도 안정적인 대책을 시급히 마련해야만 이 사회가 더욱 아름답고 무성한 숲이 되어 자손만대 번영을 누리지 않을까 싶다.

2022-10-26

당신은 정말 입을 가졌는가

10월 15일 경기도 평택시 소재의 제빵공장에서 직원 A씨가 기계에 몸이 끼여 사망했다. 위생을 위해 착용하고 있던 앞치마가 샌드위치 소스 배합기에 빨려 들어갔던 탓이었다. 기계에는 사고를 막기 위한 인터록과 같은 어떠한 장치나 설비도 되어 있지 않았고, 심지어 이와 같은 사고가 발생할 경우 대처하기 위한 매뉴얼조차 제대로 마련되어 있지 않았다. 결국 A씨는 사망했고, 그의 시신은 함께 일하던 노동자들의 손에 수습되었다. 사망 사고 이후에도 공장은 정상 가동되었다. 노동부에서 9대의 소스 배합기 가운데 자동 정지 장치가 없는 7대에 대해서만 작업 중지 명령을 했기에, SPL은 나머지 2개의 배합기 기계를 가동하여 공장을 가동시켰다. 사고가 난 배합기에 흰 천을 둘러둔 채. 그날 오후에서야 노동부는 사고가 발생한 3층 전체의 공정 중지를 명령했고, 해당 층의 작업은 정지되었다.해당 공장에서는 일주일 전에도 한 직원의 손이 기계에 끼이는 사고가 벌어졌었다고 한다. 공장 측에서는 그가 비정규직이라는 이유로 “기간제는 알아서 병원에 가라”고 말하곤 제대로 된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고 한다. 결국 그 직원은 택시를 타고 병원에 가 자비로 치료를 받았다고 한다. 그 사고 이후에도 마치 아무 일 없던 것처럼 공장은 샌드위치를 만들었고, A씨가 사망한 날에도 작업장은 아무런 일 없던 것처럼 가동되었다. 희고 깔끔한 공장에는 어떠한 핏자국도 없었고, 아무런 잡음도 없는 것처럼 보였다. 사고가 있던 다음날, SPC그룹은 자사의 파리바게트가 영국 런던에 1호점을 열게 되었다는 사실을 홍보하는 보도 자료를 대대적으로 배포하였다. SPC그룹의 회장이 공식적인 입장을 표한 것은 그로부터 이틀이 지나서였다.이은주 정의당 의원이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으로부터 받아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해당 공장에서는 2017년부터 2022년 9월까지 37명의 사람이 사망했다. 그 가운데 끼임 사고로 인해 사망한 사람의 숫자는 15명이다. 산업안전보건법 제33조 제1항에서는 “유해 또는 위험한 작업을 하거나 동력에 의하여 작동하는 기계·기구의 경우 유해·위험방지를 위한 방호조치를 하지 아니하고는 이를 양도·대여·설치 또는 사용해서는 안된다”고 밝히고 있다. 그러나 이는 “인터록 장치를 비롯한 방호 조치”를 해야 할 책임을 밝히는 것에 불과할 뿐, 인터록을 의무화하는 법안이라고 말하기는 어렵다.SPC 허영인 회장은 총 1000억원을 투자해 그룹 전반의 안전경영 시스템을 대폭 강화하겠다고 말했으며, 특히 사고가 일어난 SPC은 영업이익의 50% 가량을 산업안전 개선을 위해 투자하겠다고 대국민 사과 회견을 통해 밝혔다. 하지만 그 회견마저도 불과 두 시간여 전에 급하게 공지된 것이었고, 정작 SPC의 노동자들과 시민단체의 회원들은 출입을 가로막힌, 오직 기자들만을 대상으로 한 것이었다. 그리고 여기에서마저도, 허영인 회장은 질의응답조차 하지 않은 채 고작 15분 만에 자신들의 입장만을 표명하곤 사라졌다.이것이 우리가 지금 먹고 있는, 희고 보드랍고 깨끗한 샌드위치에 담긴 시간이다. 우리가 먹는 이 작고 흰 빵에 담긴 이야기를 나는 과연 얼마만큼이나 알아왔던가. 앎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그토록 편한 마음으로 먹을 수 있었을까? 알 수 없는 일이다. 그것이 꼭 샌드위치에만 국한된 일일까. 우리가 사용하는 모든 상품의 뒤에는 이처럼 무수히 많은 사건과 사고들이 점철되어 있을 것이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우리 또한 어떤 상품에 가리워진 사건과 사고의 당사자 혹은 목격자이다. 다만, 당신이 말하지 않아왔기에 아무도 알지 못하는 것일 뿐. 임지훈 2020년 문화일보, 서울신문 신춘문예 평론 부문에 당선된 문학평론가. 한양대 국문과 박사 과정을 수료했다. 보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우리에게는 입이 없다. SNS를 비롯한 뉴미디어 채널이 늘어나고, 누구나 자신의 채널을 만들어 콘텐츠를 제작하는 시대에 살고 있지만, 우리에게는 여전히 입이 없다. 그러니 ‘입’을 가진 사람들은 우리를 신경 쓰지 않는 것이다. 당신이 입을 가졌다고 생각하는 건 당신의 착각일 뿐이다. 그렇기에 저들은 여전히 똑같은 태도로 일관하는 것이다.할란 엘리슨의 소설 ‘나는 입이 없다 그러나 나는 비명을 질러야 한다’에서는 시스템 컴퓨터에 의해 모든 기능을 빼앗긴 채 액체 장난감으로 전락한 인간이 등장한다.당신을 그것을 단지 SF적인 상상력일 따름이라 치부할지도 모르겠다.하지만 지금 우리의 모습은 얼마나 다를까. 우리는 정말 입을 가졌는가? 자본주의라는 시스템 컴퓨터 속에서 우리가 가진 손, 발, 입, 눈, 귀와 같은 것들은 정말로 존재하는 것이라 할 수 있을까? 과연 그럴까? 그럼에도 세상은 왜 여전히 같은 사고를 반복하는 것일까.당신은 정말로, 자신이 입을 가지고 있다고 말할 수 있는가?

2022-10-25

빛 좋은 개살구 먹는 법

‘빛 좋은 개살구’를 현명하게 먹는 방법은 뭘까? /언스플래쉬 바야흐로 ‘보여주기’의 시대다. 자신의 일상을 전시하는 일은 어렵지 않고 그만큼이나 쉽게 타인의 삶을 볼 수 있게 되었다. 나의 옛 친구가 어떻게 살고 있는지 그리워지면 스마트폰을 들어 SNS를 켜면 된다. 지구 반대편에 있는 누군가의 하루가 궁금하면 유튜브에 접속해 영상을 시청하면 된다.현대사회에서 카카오톡, 페이스북, 블로그, 인스타그램과 같은 플랫폼을 이용하지 않는 사람은 드물다. 소셜 네트워크를 사용하지 않는다는 것은 단순히 구시대적이라는 감각을 넘어 타인과의 소통 자체가 불가능해지는 상황으로까지 치닫게 된다.이런 구조 속에서 자기를 보여주는 방식 또한 중요해졌다. 소위 MZ세대로 통칭되는 청년들은 스스로의 가치를 끊임없이 증명해야 하는 과제 앞에 놓였다. 그 어디보다 경쟁구조가 선명한 한국 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해선 이러한 증명이 필수불가결한 요소처럼 보인다. 가진 것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려고 하면 자신의 것이 너무나 조그맣다고 느끼기 쉽다. 그러다 보면 자연히 몸집을 부풀리기 마련이다.‘빛 좋은 개살구’라는 속담이 있다. SNS에서 인기라는 식당에 가면 앉을 자리가 없다. 문 앞에는 웨이팅하는 손님으로 인산인해를 이룬다. 오랜 시간을 기다려 받은 음식은 번지르르한 모양과는 달리 별로 특별한 것 없는 맛이다. 인기 연예인이 극찬했다는 화장품은 고급스러운 패키지에 비해 효과가 미미하고 백만 독자를 사로잡았다는 책에는 원론적인 이야기만 가득하다. 이처럼 겉으로 보기엔 좋아 보이는 것들도 깊게 들여다보면 실속이 없는 경우가 부지기수다.실제보다 더욱 멋들어지게 포장하는 것은 자의에 의한 것이기도 하지만 타의로 작동되는 일이기도 하다. 인기라는 거품이 꺼지고 자신의 실체가 드러날까 두려웠다는 유명 가수의 이야기처럼 자신을 세상에 내보이는 사람들은 어떠한 포장지에 싸이기 마련이다.우리는 모두 다른 조건을 가지고 삶을 시작한다. 누군가에게 당연하게 있는 것들을 만져 보지조차 못하고 자신에게 허용된 세계라는 느낌을 받기가 어렵다. 내가 가진 것이 나쁘지 않다는 것을 알기 위해서는 타인의 시선이 필요하고 거기에서 ‘보여주기’의 굴레는 더욱 공고해진다.SNS의 주요한 기능 중 하나는 나와 타인이 연결되어 있다고 느끼게 하는 것이다. 나는 9개월 동안 외국에 거주한 경험이 있는데, 그때의 외로움은 상상 이상이었다. 나만 빼고 세계가 빙글빙글 돌아가는 기분이었다. 나는 친구들과 SNS로 소통하면서 나 역시 이 세계에 공고하게 존재하고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인식하고자 했다. 그러나 그 때문에 현재의 시간에 집중하지 못하게 되었고 나의 하루가 얼마나 더 아름답고 빛나게 기록될 것인지에 대한 탐구에 돌입하게 되었다. 내가 누구와 만나는지, 무엇을 먹고, 어디에 가는지 보여주는 것으로 나의 가치가 정해진다고 생각했다. 한국에 돌아와서 가장 먼저 한 일은 인스타그램 계정을 삭제하는 것이었다.그때의 나는 나를 얼마나 훼손하면서 살고 있는지 인지조차 하지 못했다. 타인이 생각하는 나의 모습에 연연하며 최대한 완벽한 모습을 보여주고 싶어 했다. 그것은 당연히 어리석고 피곤한 일일 수밖에 없다.우리는 이러한 시대적 흐름을 완벽하게 벗어날 순 없다. 망망한 무인도에 완벽하게 고립되지 않는 한, 우리는 어딘가에 계속해서 노출될 것이다. 아날로그적 시대를 그리워하며 지금의 상황을 부정할 필요는 없다. 그저 현실에서 도피하는 일로 끝나버릴지도 모른다. 문은강 ‘춤추는 고복희와 원더랜드’로 주목받은 소설가. 2017년 서울신문 신춘문예를 통해 작가로 등단했다. ‘빛 좋은 개살구’를 현명하게 먹는 방법 중 하나는 개살구가 그저 ‘빛이 좋을 뿐’이라는 사실을 인지하는 것이다. 이거 생각보다 맛이 없잖아, 하고 실망하는 대신 허황된 빛을 가진 열매를 그 자체로 내버려 두는 것이다.누군가에겐 본질보다 보이는 모양 자체가 중요하게 여겨질지도 모르고 그것을 굳이 비난할 필요는 없다. 밍밍하고 맛이 떫은 것을 먹더라도 괜찮다. 우선은 이것이 무엇인지 ‘알고’ 먹자는 것이다.그러니 정말 싱싱하고 달콤한 과육을 원하는 이들은 응당 이러한 빛에 현혹되어서는 안 되겠다. 보여주는 것에만 매혹되는 것이 아니라 본질을 볼 수 있는 눈을 기르는 노력이 필요하다. 나 자신이 ‘빛 좋은 개살구’가 아닌지 끊임없이 되돌아보려는 시선 또한 중요하다.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 내 안에 있는 진짜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계속해서 생각해야 한다. 그러한 고민은 정보가 홍수처럼 범람하는 현대 사회에서 이리저리 휩쓸리지 않고 자신만의 길을 찾아갈 수 있는 단단한 힘이 될 것이다.

2022-10-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