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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커피믹스의 재발견

홍석봉정치에디터 경북 봉화의 매몰된 광산에서 광부 2명이 221시간 만에 기적의 생환을 했다. 두 광부의 생환에는 작업 투입 때 챙겼던 커피믹스 30봉지가 양식 역할을 한 것으로 나타났다. 믹스커피는 칼로리가 높고 다양한 영양소가 포함돼 있다.최초의 인스턴트 커피는 미국의 남북전쟁 중에 탄생했다. 1차 대전 때는 인스턴트 분말 커피가 개발됐다. 2차 대전 중에 수혈을 쉽게 할 수 있는 혈장 동결 건조 기술이 개발됐다. 전쟁이 끝나고 이 기술이 커피에 적용됐다.세계 최초의 커피믹스는 1976년 12월 동서식품이 개발했다. 커피와 설탕, 프림을 일정 비율로 섞어 커피를 타는 고민을 없앴다. 커피믹스는 1980년대까지는 그다지 인기가 없었다. 당시 사무실에 커피를 타는 직원이 따로 있었기 때문이다.1997년 IMF 외환위기가 전환점이 됐다. 구조조정으로 일손이 부족해진 사무실에서 커피는 각자 타 마시는 것이 원칙이 됐다.이후 커피믹스는 한국인의 애호식품이 됐다. 커피믹스는 한국을 찾는 외국 관광객들에게도 인기다. 귀국때 가장 많이 사가는 상품이 됐다. 지난 2016년 한 여행사가 외국인 관광객을 대상으로 ‘가장 맛있는 한국 차’를 조사한 결과 커피믹스가 식혜, 수정과, 매실차 등을 큰 차이로 누르고 1위를 차지했다.특허청의 ‘우리나라를 빛낸 발명품’ 투표에서도 커피믹스가 훈민정음, 거북선, 금속활자, 온돌에 이어 당당히 5위에 오르는 기염을 토했다. 커피믹스는 해외에서도 인기다. 편리하면서도 합리적인 가격, 뛰어난 맛 때문이다. 한류 열풍은 커피믹스 수요를 크게 늘리고 있다. 1봉지에 100원에 불과한 커피믹스가 사람 생명을 구했다. 커피믹스가 이제 ‘비상식량’ 필수품이 됐다./홍석봉(정치에디터)

2022-11-07

‘맑은물 하이웨이’

남광현 ​​​​​​​대구경북연구원 선임연구위원 지난 2일 안동댐 기념탑에서 대구시와 안동시는 안동·임하댐의 맑은물 공급과 상생발전을 위한 업무협약을 체결했다. 대구시의 ‘맑은물 하이웨이’ 사업과 안동시의 ‘낙동강유역 광역상수도 구축’ 사업이 상호소통된 결과이다.1991년 낙동강 페놀사고 이후 30년이 지난 시점에서 대구시의 상수원을 강물에서 댐물로 전량 전환하는 사업의 출발점이 되는 날이다. 그동안 대구시는 안전한 상수원 확보를 위해 취수원 다변화에 노력하여 낙동강 본류와 댐, 강변여과수 등 다양한 대상을 검토하였다. 최근까지 정부가 적극 개입하여 유량과 수질, 경제성 측면에서 유리한 낙동강 해평취수장 취수를 추진하여 왔으나 이해관계자 간 갈등으로 결국 안동·임하댐으로 선회하였다.영남권 시도연구원이 공동으로 ‘깨끗하고 안전한 영남권 물관리 체계 구축방안’ 연구의 목적으로 2021년 6월에 영남권 주민 약 2천500명을 대상으로 의견조사를 실시하였다. 주요 음용수 이용형태를 물어본 결과 정수기가 47.3%로 가장 높았고 다음으로 병입생수 27.6%, 수돗물 23.2%, 지하수·약수 1.9%의 순으로 나타나 주민들은 주 음용수 이용에 안전성을 중시하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조사자 지역 대비 수돗물 품질이 우수할 것 같은 도시를 선택하는 질문에서는 경북 안동이 35.1%로 가장 높게 나타났다. 이 조사결과로 보면 ‘맑은물 하이웨이’ 사업은 지역민의 수요에 매우 부합한다.그런데 위의 주민 의견조사에서 대구지역민에 대해 상수도 경영 개선 및 수돗물 품질 향상, 물 낭비 예방을 위해 수도요금을 인상하는 의견에 대해 물은 결과, 반대하는 응답 비중이 61.6%로 찬성(38.4%)에 비해 매우 높게 나타났다. 수도요금 인상 반대는 성별로는 여성(65.7%)이, 직업으로는 가정주부(65.7%)가 주택유형으로는 상가주택(85.7%)이 상대적으로 높게 나타났다.물값 인상이 불가피한 ‘맑은물 하이웨이’ 사업은 가능한 모든 수단을 동원해 물값 상승을 억제해야 하고 수요자의 특성을 반영해야 한다는 것을 시사한다. 또한 낙동강 상류 댐 이전에 따른 본류 수질관리 약화에 대비하여야 하고 안동시를 비롯한 상류지역 주민과의 상생협력 사업으로 신뢰기반을 지속적으로 쌓아야 한다.대구시와 인구규모, 도시위상 등에서 공통점이 많아 자주 비교되는 일본 제3의 도시 나고야시가 상류 지자체와 맑은 물 확보와 경제협력 등에서 근래 10년 이상 협력해온 사례는 우리의 물 갈등 해결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2010년부터 나고야시는 상류의 4개 현소속 많은 기초 자치단체와 연대 강화를 위해 지방자치단체장회의, 특산물판매시장, 상하류기업간 상담회, 유역민연대심포지엄, 나고야의수원·기소삼강유역 연대사업기부금 등을 추진해 왔으며, 유역연대 모범지역으로 일본수대상 특별상을 수상하였다.안동시는 ‘낙동강유역 광역상수도 구축’ 사업을 통해 침체된 지역경제를 부흥하고자 하는데, 우수 물기업 유치와 인재 양성을 통한 물산업 진흥이 필요하다. 대구시는 ‘맑은물 하이웨이’ 사업을 통해 맑은 물과 이에 대한 대가만 오가는 것이 아니라 양 지역간 신뢰와 이해가 소통되도록 해야 한다.

2022-11-07

우리들의 마음속은 어떤 형태를 띠고 있을까

대학에서 학생들과 강의를 하다 보면, 종종 정해져 있는 길에서 벗어나 도저히 해결될 기미조차 보이지 않는 질문을 의도적으로 던질 때가 종종 있다. 문학 전공의 소설론 수업에서 늘 그렇듯 진행되기 마련인, 소설의 플롯이나 시점 같은 이야기들에 학생들이 더 이상 눈을 빛내지도 않고, 선생 역시 슬슬 이야기가 지루해질 때쯤이 되면, 슬며시 이런 질문을 던져 본다. 지금 당신의 마음속에는 어떤 생각이 흘러가고 있는가. 그것은 어떤 형태인가, 또 어떤 색깔인가. 그래, 지금 이 지루한 이야기를 들으며 어딘가 너머에 있는 세계를 더듬으며 딴 공상을 하는 바로 이 순간. 마음속에 떠오르는 생각들은 물길처럼 흘러가고 있을까? 아니면 제멋대로 메모를 붙여놓은 메모판처럼 얼룩덜룩한 상상들이 겹쳐 하나의 풍경을 이루고 있을까? 세상 많은 것이 그렇듯, 이 질문에는 정답 같은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사람들의 마음속은 모두 제각각이고, 누구도 다른 사람의 마음속으로는 들어갈 수 없으니 말이다.다만 이 물음은 어느새 지루해져 버린 소설에 대해 강의하는 목소리를 배경음악 삼아 어딘가 저 먼 상상의 세계를 떠돌고 있던 마음들을 끌어모아 자기 자신의 마음을 관찰하게 하는 힘이 있다.우리의 마음속이 어떤 형태를 띠고 있는가 하는 물음에 정답 같은 것이 존재하지 않다는 것을 안다고 해서 호기심이 사라지거나 포기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더 궁금해진다. 우리가 가만히 무언가를 생각하고 있을 때, 우리의 마음속에서 생각은 어떻게 흘러가고 있는가? 지금 무심코 생각이 흐른다고 쓰긴 했지만, 생각이 흐른다고 하는 것도 인간 사고에 대한 하나의 모델이다. 미국의 심리학자였던 윌리엄 모리스(William Morris)가 제안했던 ‘의식의 흐름’ 같은 것이 그런 모델이었다. 생각이 흐른다고 한다면, 인간의 사고가 문장처럼 머릿속에서 순서대로 떠오르고 사라져 가는 장면이 상상된다. 우리가 책을 읽는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어쩌면 우리가 인간의 마음속이 언어로 구성되어 있다는 것은 어쩌면 착각일지도 모른다. 우리는 언어로만 사고하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희부윰하고 불투명한 이미지들이 마음속에 떠올랐다가 사라지고, 떠올랐다가 사라지는 과정들이 우리가 무언가를 생각하는 과정이다. 그 이미지는 사진이나 영상처럼 시청각적인 것일 수도 있고, 음악처럼 순수하게 청각적인 것이기도 하며, 때론 가려움 같은 촉각적 상상이나, 달콤함 같은 미각적 상상을 동반하기도 한다.인간이 꾸는 꿈이 그렇듯, 인간의 마음속에서 떠올리는 생각도 아마 제각각일 것이다. 내용에 따라, 그 사람이 자라온 환경에 따라 천차만별일지도 모른다. 다만,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습니까?” 하고 질문을 받게 된다면, 불행하게도 인간인 우리가 그 질문에 답할 수 있는 수단은 아직 언어밖에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니 마치 인간의 마음이 온통 언어로 되어 있는 것 같은 착각이 생겼는지도 모른다. 말을 하지 않아도 아는 사이라는 것도 있다고 하지만, 대체 말을 통해 자신의 마음속에 떠오른 생각을 말하지 않으면 대체 어떻게 알 수 있단 말인가. 또 누군가의 책을 읽다 보면, 그 사람의 마음속에서 떠오르는 생각을 따라 나 역시 흘러가는 것처럼 느껴지지 않는가. 인간의 마음이 언어로만 되어 있지야 않겠지만, 아직은 언어를 통해서만 우리가 타인의 마음속에, 혹은 자신의 마음속에 다가갈 수 있다는 사실만큼은 분명한 것이다.답이 없는 물음에 답하고 있자니, 잠시 모였던 학생들의 마음이 또 어딘가 다른 곳을 향해 떠나고 있다. 나 역시 오늘의 강의를 마무리하기 위해 급한 마음을 재촉하기 시작한다. /홍익대 교수 송민호

2022-11-07

바닥에는 검은 진흙이 <Ⅷ>

-그렇구나. 알았다. 기분은 좀 어떠냐? 요즘은 어디에 마음을 쓰고 있느냐?영권이 인호에게 물었다.-아버님께서 말씀하셨던 운이라는 것을 시험해보고 있습니다.-내가? 내가 운을 이야기한 적 있느냐?-예. 저번에 남해에서. 이런저런. 아버님의 좋은 운이 지속되셨으면 하는 생각도 했습니다.-고맙구나. 잘 다녀 오거라.인호는 고개를 숙여 인사를 했다. 그리고 나갔다. 많이 섭섭한가 보군. 남해에서의 대화를 아직 기억하고 있다니. 이 년이나 지난 일을. 영권이 혼잣말을 했다. 영권은 마음이 불편했지만 딱히 달리 할 것은 없었다.전화가 왔다. 필립이었다.-웬일이신가? 우리 다음 주에 만날 텐데?-네. 만나야지요. 제가 차를 보내겠습니다. 공개된 곳에서 뵙기가 좀 그래서 조용한 곳으로 마련해두었습니다. 편안히 오시면 됩니다.-알겠네.약속한 날 저녁 필립이 보낸 차가 왔다. 회사에 소속된 차는 아닌 듯했다. 나름 철저하군. 생각보다 믿음이 가는데. 어쩌면 제 아비보다 낫겠어. 영권은 뒷좌석에 기대 필립과 나누어야 할 이야기들을 머릿속으로 정리했다. 차는 서울을 벗어나 강원도 쪽으로 향했다. 운전사가 운전석 창을 열었다. 무겁고 싸늘한 밤공기가 차 안으로 들어왔다.영권이 웃옷의 단추를 채우며 말했다.-춥지 않은가? 나는 좀 추운데.-아, 넵. 차 안 공기가 탁한 것 같아서요. 곧 닫겠습니다. 죄송합니다.물어보지도 않고 문을 열다니 기본이 안 되어 있군.태극기를 들고 앞장서 걷고 있는 가이드 뒤로 시의원들이 삼삼오오 그룹을 지어 따라가고 있었다. 귀에 꽂은 이어폰으로 가이드의 음성이 들렸다.-지금 보고 계신 이 강의 이름은 네바 강입니다. 생페테르부르크를 가로지르는 큰 강이죠. 강물의 색을 한 번 보시겠어요? 잘 보시면 강물의 색이 푸르지가 않고 검을 것입니다. 이건 강바닥 때문에 그렇습니다. 이 도시가 건설되기 전, 이 근처는 모두 늪이었다고 합니다. 도시를 건설하면서 강이 형성되었는데요. 그래서 늪의 검은 흙들이 강의 바닥을 이루고 있습니다. 물이 검은 것이 아니라 바닥이 검어서 강이 검게 보이는 거지요. 거꾸로 생각하면 물이 맑아서 그렇다는 뜻도 됩니다. 깊이가 이십육 미터 정도 됩니다. 생각보다 깊지요?넓고 깊은 강의 표면이 바람에 흔들렸다. 흔들리는 표면은 파도가 되어 강 가장자리의 벽으로 와 부딪쳤다.-빠지지 않게 조심하십시오. 여기는 깊고 물살이 빨라서 사고가 잘 납니다.가이드의 주의가 있었다. 자유 시간 십오 분을 줄 테니 둘러보시라는 말과 함께 가이드의 음성은 사라졌다. 인호는 강의 가장자리로 다가갔다. 강물의 색을 보고 싶었다. 가이드의 말처럼 검었다. 검은 강 위로 은색의 물방울들이 튀었다.지금쯤이겠지. 깊고 검은 강을 바라보며 인호는 생각했다. 저 강 아래 깊은 곳에 검은 진흙들이 있을 줄 어찌 알겠어. 누군가 설명해주지 않는다면 절대로 알 수가 없지. 이 강물을 모두 마셔버리거나, 전부 바다로 쓸어낸다면 몰라도. 아니면 강으로 들어가 바닥까지 내려가 보거나. 그렇지. 바닥은 아무도 몰라. 아버지, 그동안 수고하셨어요. 이제 강바닥을 한 번 보셔야지요. 바닥에는 검은 진흙들이 있답니다.이번에는 떨리지 않았다. 물건을 들어낼 일이 없으니 지난번보다 쉬운 일이라 생각했다. 직접 해야 할 일도 아니었다.노마는 백미러로 영권을 보았다. 뒷좌석 등받이에 기댄 채 눈을 감고 있었다.-저기, 의원님.-뭔가?-안전벨트를 매시겠습니까? 가는 길이 조금 험해서 그럽니다.-험한 길을 험하지 않게 가야 베테랑 운전사인 것 아닌가? 최필립 회장, 그래 이제는 회장이라고 불러도 되겠지. 최필립 회장이 고용한 운전사면 베테랑일 텐데.-베테랑입니다. 이제 곧 베테랑에게도 험한 길에 들어설 것입니다.-알겠네.영권은 뒷좌석 안전벨트를 찾아 매었다. 딸칵 소리가 났다.운전하다 물속으로 들어가면 되는 거야. 그리고 뒤돌아보지 말고 나와 그러면 돼. 필립이 말했었다. 그러면 되는 일이었다.왼편으로 검은 저수지가 보였다. 이윽고 무언가 수면을 흔들며 저수지로 들어갔다. 어둠 속 수면에 비친 달빛이 부서졌다. 그리고 한동안 아무 일도 없었다. 이곳, 여기에서 무슨 일이 벌어졌어. 부서진 가드레일이 말해주었지만 거들떠보는 이는 없었다.이틀 뒤 보좌관이 영권의 실종신고를 했다. CCTV를 분석한 경찰이 강원도의 한 저수지에서 영권이 타고 있던 차량을 건져냈다. 영권의 차가운 몸에서 오직 한 곳 왼쪽 가슴속 인공 심장만이 굳은 핏덩이를 애써 밀어내고 있었다. /김강 소설가

2022-11-07

울릉도대피소 지하주차장건설로…학교 운동장 등 활용 필요

김두한 기자경북부 울릉도에 2일 오전 8시55분 갑자기 민방위 사이렌이 울리기 시작했다. 영문을 모르는 울릉도 주민들은 이태원 사고 사망자를 위한 묵념의 사이렌인 줄 알았다. 하지만, 사이렌이 1분을 넘기면서 계속 울리자 주민들은 불안하기 시작했다. 일부는 TV를 보던 중 북한이 울릉도를 향해 미사일을 발사했다는 자막을 봤다. 그러나 사이렌과 어떤 관계인지 아무도 몰랐다. 미사일이 울릉도를 향해 날아오자 공습경보가 내려 사이렌이 자동으로 울렸다. 것 그러자 더 불안해졌다. 어떻게 하라는 메시지도 없고 사이렌만 3분 이상 울렸다.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 공황상태에 빠졌다. 울릉군청에 문의해도 자신들도 무슨 영문인지 모른다는 것. 사이렌 소리가 중단됐고 각 방송에서 북한이 탄도미사일을 발사했고 속초 동쪽 57㎞ 지점 울릉도 서북쪽 167km 지점에 떨어졌다는 것이다. 하지만, 북한이 제 발사할 우려가 있다며 집에서 대피소로 이동할 준비를 하고 대기하라고 자막을 통해 계속 공지했다. 공습경보 메뉴얼에는 대피소로 대비해야 한다는 것이다. 울릉도에 대피소가 어디 있는지 울릉도에서 70년 가까이 살고 30년 넘게 기자생활을 한 필자도 모른다. 그래서 국민재난안전포털 등에 확인해 본 결과 대피소는 완전 엉터리다. 대피소에 대해 더 거론할 필요도 없지만, 울릉읍 관내 지정된 대피소에 울릉군민들이 대피하면 이태원사고보다 훨씬 압사 위험이 크다. 따라서 대피소라 할 수 없다. 여기에 관광객까지 겹친다면 이태원보다 몇 수십 배 위험하다. 또한, 이 대피소는 모두 큰 건물지하다. 만약 미사일을 큰 건물을 겨냥해 발사하면 대피한 주민들은 모두 지하에서 목숨을 잃을 밖에 없는 구조다. 대피소가 아니라 그냥 지하이며 현재 모두 다른 기능으로 사용되고 있다. 울릉도에 미사일이 날아오면 그냥 집 있는 게 더 안전하다. 정부는 국민의 안전이 최우선 과제다. 그대로 방치 울릉도 주민들을 사지로 내몰 수는 없다. 현재 울릉도는 대형 여객선취항으로 관광객 크게 증가 주차난을 겪고 있다, 앞으로 비행기가 취항하면 주차난을 더욱 심각하다. 따라서 주차난과 대피소를 동시에 해결할 방법이 있다. 울릉읍 내에는 울릉초등, 울릉중, 울릉고등학교, 학생체육관이 있다, 이들의 운동장은 모두 지상에서 3~5m 높은 곳에 위치, 지하로 뚫지 않고 옆으로 파고들어가면 된다. 울릉도주차난은 무조건 해결해야 하는 과제다. 따라서 정부의 예산을 투입 앞당겨달라는 것이다. 이와 함께 울릉읍 저동~도동~사동 간 터널을 건설하는 것이다. 이것도 과거에 거론된 사항이다. 일주도로 구간 중 도동~저동, 도동~사동 간은 언덕을 넘어야 하므로 겨울철 차량의 스파크 타이어장착으로 도로가 파손이 심하다. 터널을 뚫으며 도로파손방지는 물론, 시간 단축과 원활한 차량흐름으로 울릉읍 도동항과 시가지 교통 혼잡완화 등 쾌적한 시가지를 조성할 수 있다. 무엇보다 이를 통해 울릉주민들은 위한 대단위 대피소를 확보할 수 있기 때문에 일거양득이 될 수 있어 반드시 검토해야 할 울릉도의 가장 큰 현안 사업이다./김두한기자kimdh@kbmaeil.com

2022-11-07

은행나무 유감

강길수 수필가 가로수 은행나무잎들이 황록색으로 물들기 시작한다. 머지않아 은행잎들은 노랗게 변신할 것이다. 샛노란 얼굴로, 새봄처럼 가을을 밝힐 은행잎…. 불어오는 하늬바람에 은행나무낙엽이 노랑나비 되어 팔랑팔랑 추는 군무를 바라보는 가슴은 기쁨이자 슬픔이며, 멀고도 가까운 저 너머 세상에 대한 두려움이자, 기대이기도 하다.은행 종자 떨어진 가을 보도(步道)엔 아슬아슬 인생길 곡예가 공연된다. 떨어진 은행을 요리조리 피하며 걷는 사람들의 모습이 바로 공연이다. 실수로 은행을 밟으면, 신발 밑창에 그 외종피의 고약한 냄새가 착 달라붙는다. 한 번 뭍은 냄새는 그냥 두면 오래 가 사람 기분을 언짢게 한다. 악취를 없애려면, 신발 바닥을 꼼꼼히 씻어내야 하는 고역을 치러내야만 한다.수년 전 한 가을날, 아내가 비닐봉지에 껍질을 까지 않은 은행 두어 줌을 담아왔다. ‘가로수 은행은 중금속 오염으로 먹으면 안 될 거’라는 말에, 시골에 사는 이로부터 은행을 얻은 친구가 그 일부를 나눠준 것이란다. ‘냄새나서 어쩌려고’ 하는 내 걱정에, 다음 날 남편 출근 뒤 혼자 펜치로 작업하였단다.며칠 후, 펜치를 쓰려고 봉지에서 꺼내는데, 은행 악취가 장난이 아니었다. 펜치의 손잡이 수지(樹脂) 부분에 은행 냄새가 밴 것이다. 아내가 은행 외종피를 벗긴 고무장갑을 끼고 펜치로 중종피를 제거했나 보다. 펜치와 함께 들어있던 공구들의 손잡이에도 냄새가 났다. 퐁퐁 탄 물로 공구들을 꼼꼼히 씻었다. 냄새가 조금 줄었을 뿐, 없어지지 않았다. 수년이 지난 지금도 펜치 손잡이는 은행 냄새가 제법 난다.은행나무를 ‘살아있는 화석’이라 한단다. 신생대에 번성했는데, 고생대인 2억 7천만 년 전 화석도 발견되었다니 말이다. 긴 세월, 많은 기후환경의 변화에도 살아남은 은행나무의 비결은 무엇일까. 연구자가 아니기에 과학적 추론은 어렵지만, 환경 적응력이 뛰어나기 때문이리라. 외종피의 악취나, 몸체에 다른 나무들보다 해충이 없는 점 등을 보면 은행나무는 자기 보호력 강화 쪽으로 진화한 지혜로운 나무다.인간이 개체로는 약하지만, 공동체가 되면 지구의 어떤 생물 종보다 강한 것은 은행나무를 닮아서가 아닐까. 천부적 지능으로 도구 만들고, 집 지으며, 옷 짓고, 문화와 과학기술문명을 이루었으니 말이다. 인간의 지능을 다른 생명이 본다면 은행의 외종피 같지 않을까. 그들이 감히 범접할 수 없는 ‘인간 문명’이란 고약한 냄새를 풍기며, 맘대로 온갖 생명을 주무르고 재미로 죽이기도 하니까.사람은 떨어진 은행을 피할 수 있고, 줍거나 따 먹을 수도 있다. 하지만, 다른 생명은 인간을 그리할 수가 없다. 이성(理性)보다 지능을 앞세워 물질문명에 치중한 인간의 생활 행태는, 기후변화를 불러와 지구촌 뭇 생명이 생존 위협을 받기에 이르렀다. 은행나무는 생존에 필요한 진화만 한다. 반면 인간은, 생존을 넘어 욕망만 채우려 자연의 하소연을 외면해왔다. 이는, 인간이 지구촌을 공멸의 길로 떠밀고 있음이다.인간이 은행나무의 지혜라도 좀 닮아가면 좋겠다.

2022-11-06

‘크라우드 매니지먼트’라고요?

유영희 인문글쓰기 강사·작가 10월 29일 서울 용산에서 일어나서도 안 되고 일어날 수 없는 대참사가 일어난 지 일주일이 지났다. 정부는 발빠르게 여러 가지 수습책을 제시했다. 수습책에는 단어 사용을 제한하는 것까지 포함되어 있었다. 교통사고로 서너 명이 한꺼번에 죽어도 참사라고 하는데, 156명이 한 곳에서 갑자기 죽은 일에 참사를 쓰지 말고 사고를 사용하라고 지시했다는 뉴스를 보면서 이런 정부가 정말 책임감을 느끼고 있을까 하는 의심이 강하게 들었다.이태원에 부정적인 이미지가 씌워지는 것을 막기 위해서라는 명분은 변명처럼 보인다. 이태원에 부정적인 이미지가 씌워지는 것을 정말 염려했다면, 맨해튼 테러가 아니라 9·11 테러라고 한 선례처럼, 이태원이라는 지명을 빼고 10·29라는 날짜를 써야 한다는 국어학자 신지영 교수의 지적은 백번 옳다. 많은 희생자를 내고 붕괴한 삼풍백화점이나 성수대교는 새로 지으면 위험이 사라지지만, 이태원이라는 지역은 새로 만들 수 없으니 사건 이름에 지역을 넣은 것은 그 지역에 영원히 낙인을 찍게 되기 때문이다. 그래도 거기까지는 생각 못 했을 수도 있지, 너무 나쁘게 생각하지는 말자, 참사라고 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으니 큰 걱정은 하지 않았다.그러나 한덕수 총리가 외신 기자 회견에서 이번 참사 원인이 크라우드 매니지먼트의 부족때문이라고 강조하고, 윤석열 대통령 역시 국무회의에서 드론 등 디지털 역량을 개발하고 크라우드 매니지먼트 시스템을 구축하라고 한 대목에서는 검고 끈적한 덩어리가 목을 누르는 것 같은 좌절감이 들었다.먼저 이번 10·29 참사가 디지털 역량 부족 때문이라는 분석에 동의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미 사건 발생 네 시간 전부터 신고 전화가 빗발쳤고, 박희영 용산구청장도 당시 그 근처에 있었다고 한다. 게다가 ‘서울시 실시간 도시 데이터’ 시스템이 이미 지난 9월 1일 개발이 완료되어 있었다. 이 시스템은 서울시 여러 지역의 실시간 혼잡도를 5분마다 집계해서 바로 보여준다. 관심만 있다면 충분히 위험을 예상할 수 있었다. 그런데 혼잡과 위험이 예상되는 그날 아무도 모니터링을 하지 않았다고 한다. 책임자의 안전불감증이 문제지, 디지털 역량이 부족해서, 드론이 없어서 참사가 일어난 것이 아니다.그러나 원인 분석과 대안의 부당함과 비현실성 때문에 좌절감이 든 것만은 아니다. 그보다는 ‘크라우드 매니지먼트’를 힘주어 말하는 그들의 태도에서 기막힌 것을 발견했다는 듯한 당당함과 무감정이 보였기 때문이다. ‘죽다’나 ‘다치다’보다 ‘사망’이나 ‘부상’이라는 한자어만 써도 그것은 활자화된 표현이 되고 나의 삶에서 멀어지는 느낌이 든다. 한자어조차 이렇게 생생함을 떨어뜨리는데, 영어는 더 말할 나위 없다. ‘크라우드 매니지먼트 시스템’이라는 단어를 사용하는 순간, 이 참사의 책임은 기술에 전가되고 보호해야 할 시민은 관리 대상으로 전락해 버렸다. 희생자를 진정으로 애도하는 방법은 10·29 참사의 원인과 책임 소재를 밝히는 일이다. 그날이 빨리 오기를 바란다.

2022-11-06

땀 흘린 훈련이 생명을 지킨다

김진국 고문 북한이 연일 미사일을 쏘아댄다. 대포는 수백 발씩 쏘고, 군용기 180대를 출동시켰다. 곧 제7차 핵실험이 예상된다. 한·미 안보협의회의(SCM)는 공동성명에서 ‘김정은 정권 종말’을 거론하며 경고했다. 공포로 주저앉을 일은 아니다. 그렇지만 남의 일처럼 여기는 터무니없는 낙관론은 안 된다.지난 2일 울릉도에 공습경보가 울렸다. 하루 미사일 25발을 쏜 날이다. 북한이 6·25 이후 처음으로 북방한계선(NLL) 너머 울릉도 방향으로 탄도미사일을 쏘았다. 다행히 미사일은 속초 앞 바다에서 더 비행하지 않고 떨어졌다. 그렇지만 실전 경보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 주민들은 설마 하는 마음에 민방위 훈련이거나 이태원 참사 추모 사이렌이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그러니 대피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수업을 계속하는 학교도 있었다. 울릉군도 우왕좌왕했다. 공습경보를 발령한 지 24분이 지나서야 대피하라는 문자 메시지를 보냈다. 재난 주관방송사인 KBS는 100분이 넘어서야 공습경보 자막을 내보냈다. 정해진 매뉴얼을 지키지 않았다. 미사일이 실제로 육지까지 날아왔다고 상상하면 아찔하다. 2010년 연평도 포격에서 보았듯이 ‘설마’는 없다.북한이 처음 핵실험을 했을 때는 화들짝 놀랐다. 그런데 실전 배치 단계에 와서는 무신경하다. 북한이 연일 도발해도 전쟁은 없다고 믿는다. 왜 위기를 조장하느냐며 방어체계 구축을 반대하는 사람도 있다.서울 이태원에서는 아까운 젊은이 156명이 사망했다. 어처구니없는 참사다. 여기서도 ‘설마’ 하고 안이했다. 경찰은 훈련 없는 울릉도 주민만도 못했다. 관할지인 용산경찰서장은 사고가 발생한 지 50분이 지난 밤 11시 5분 이태원 파출소에 도착했다. 소방 당국은 사고 발생 직후부터 경찰에 15번이나 지원을 요청했다. 요청한 지 한 시간이 지나서야 기동대 배치 지시가 떨어졌다. 사전 예방은커녕 사후 긴급 요청에도 먹통이었다. 나사가 풀렸다.112치안종합상황실에는 사고 3시간 전부터 시민 신고가 들어왔다. 그런데 상황실장은 참사가 난 뒤에도 1시간 24분이나 상황실을 비웠다. 집에 있던 서울경찰청장은 이때 상황실장으로부터 처음 보고받았다. 경찰청장은 서울이 아닌 제천에서 지인들과 저녁을 먹고 전화도, 문자도 연락이 되지 않다 다음날 0시15분에야 전화를 받았다. 용산구청장은 참사 당일 고향인 의령 축제에 갔다 돌아와 이태원에 인파가 많다고 걱정하면서도 지역구 의원인 권영세 통일부 장관 등에게 알렸다. 구청이나 경찰, 소방 같은 공식 조직에 연락하고, 사고 예방에 나서지 않고, 집으로 갔다. 같은 당파끼리만 놀던 조선시대도 아니고….군의 준비 태세도 불안하다. 북한이 미사일 25발을 쏜 2일 대응 사격한 미사일 3발 중 2발이 실패했다. 패트리엇 1발은 발사에 실패했다. 천궁은 날아가다 자폭했다. 지난달 4일 밤에 대응 발사한 현무-2C 탄도미사일은 뒤로 날아가 군부대에 떨어졌다. 그다음 날 쏜 에이태큼스 미사일 2발 중 1발은 표적으로 가지 못하고 추적 신호가 끊어졌다.북한은 한·미 군사훈련을 중단하라고 요구한다. 아무리 시뮬레이션이 훌륭해도 실전연습만 못 하다. 우크라이나는 러시아의 위협에 대응해 수도 키이우에 핵 공격용 특별방공호 425개를 만들었다고 한다. 대피 훈련의 땀이 국민의 생명을 지킨다. 심폐소생술(CPR)을 할 수 있는 사람이 없어 쓰러진 사람을 방치할 수는 없다. 적어도 공습경보가 울릴 때 내가 어디로 피해야 하는지, 화생방 상황에서는 무엇을 해야 하는지는 알아야 한다.경북 봉화 광산에 매몰됐던 광부 두 명이 무사히 구조됐다. 절망적인 상황이었지만 최선의 조치를 하며 구조를 기다렸다. 평소 매뉴얼을 잘 익히고, 그대로 한 덕분이다. ‘징비록’에 일본 사신이 기생을 동원해 성대한 잔치를 베풀어준 상주 목사를 이렇게 조롱하는 대목이 나온다. “이 늙은이는 여러 해 전쟁을 치르느라 수염과 머리가 다 하얘졌지만, 귀공은 기생들의 춤과 노래 속에서 아무 걱정 없이 지냈는데 머리칼이 왜 하얘졌소?” 서애(西厓)가 남긴 충고대로 ‘유비무환(有備無患)’이다. /본사 고문김진국△1959년 11월 30일 경남 밀양 출생 △서울대학교 정치학 학사 △현)중앙SUNDAY 고문, 제15대 관훈클럽정신영기금 이사장, 경북매일신문 고문 △중앙일보 대기자, 중앙일보 논설주간,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부회장 역임

2022-11-06

인생이 뭔가 싶을 때 꺼내 보는 책

잊지 못할 한 권의 책을 고르기 위해 꽤나 오랜 시간 책장 앞을 서성였다.책장에 꽂힌 수많은 책 가운데서도 감명 깊게 읽었으나 한 번 읽고 나면 손이 가지 않는 책이 있고, 두고두고 곁에 두고 꺼내 보게 되는 책이 있다.나에게는 ‘니체의 말’이 그런 책이었다. 벌써 여러 번 읽고 있지만 당시의 감정과 상황에 따라 다가오는 느낌이 매번 다르게 다가오기 때문이다.‘니체의 말’은 20세기 철학사상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독일 철학자 니체(1844~1900)가 생에 남긴 말들을 엮은 잠언집으로 자신에 대하여, 기쁨에 대하여, 삶에 대하여, 마음에 대하여, 사랑과 지성, 그리고 아름다움에 대하여 많은 이야기들을 담고 있다.보이지 않는 미래가 불안한 젊은이도, 저물어가는 인생에 허무함을 느끼는 어른도 만약 지금 어딘지 모르게 답답할 때, 누군가의 조언이 필요할 때, 이 책을 만난다면 좋겠다.용기가 없어 망설이는 이에게는 “공포심의 정체라는 것은 현재 자신의 마음 상태가 어떠한가에 달려있다. 그리고 그것은 자신의 힘으로 얼마든지 변화시킬 수 있다. 자신의 마음이기에”이라는 말로 용기를 전하고, 삶의 방향성에 대해 고민하는 이에게는 “지금 이 인생을 다시 한 번 완전히 똑같이 살아도 좋다는 마음으로 살아라”는 단순하지만 묵직한 말로 큰 울림을 준다.사람들은 어떤 어려움에 부딪히면 일단 과거 자신의 경험에서 해답을 찾기 위해 노력한다.하지만 인간의 경험이란 한계가 있는 것이기에 다른 사람들이 걸어온 과정 속에서 배우고 성장하기도 한다.내적 성장을 위한 가장 좋은 방법은 직접 겪어보는 것이겠지만 세상을 살아가는 데 경험해보지 못한 일들을 간접적으로나마 접할 수 있는 방법으로는 단연 독서가 최고의 방법이다.바쁜 일상에서 책을 가까이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지만, 책을 읽는 행위 자체가 자신을 가다듬고 생각을 정리하는 시간이 되기에 일상에서 책 읽는 시간만큼은 꼭 필요하다. 박남서 영주시장 책 가운데서도 삶의 지혜와 철학이 담긴 고전은, 인류 삶의 현장을 고스란히 담고 있기에 사람을 이해하고 앞으로의 계획을 세우는 데 훌륭한 나침반이 되어준다. 나 역시 독서 시간을 따로 내지는 못하더라도, 틈틈이 책을 가까이 두려고 노력하고 있다. 특히나 행정의 일선에서 시민들의 삶을 살펴야 하는 자리에 있으면 사람들의 삶을 이해하고, 그들이 무엇이 필요한지를 알아가는 과정이 매우 중요하기에 나를 포함한 시청의 모든 공무원들이 독서를 통해 유연한 사고의 폭을 넓혀가기를 바란다. 그리하여 사회를, 시민의 삶을 조금이라도 좋은 방향으로 만들어 나가기 위해 더 고민하게 되기를 기대한다.영주는 선비도시로, 독서의 중요성을 어느 곳보다 잘 알고 있는 지역이라 자부한다. 선비들이 글 읽기를 게을리하지 않았던 것은 그 속에서 지혜를 찾기 위함이었다. 선비들의 독서의 힘이 지혜로, 지혜가 통찰력으로, 통찰이 창의력으로 발전하는 과정을 깊이 알고 있었던 사람들이라는 생각을 해본다. 선비들의 글 읽기를 통해 삶의 방향에 대해 고민하고 길을 찾았듯이,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 또한 독서를 통해 새로운 시대를 이끌어 갈 ‘정신’과 ‘지혜’를 찾게 되길 바란다.독서는 문화자본을 상속받는 가장 좋은 수단이다. 어려움에 부딪히는 순간, 나를 비추어보고 앞으로 나갈 길에 대해 생각해보고 싶다면 ‘니체의 말’이라는 훌륭한 스승을 만나보길 바란다. 그 어떤 멘토보다 확실하고 정확하게 나아갈 방향을 안내해줄 것이다.

2022-11-06

공황장애, ‘지피지기면 백전불태’

사공정규동국의대 정신건강의학과 교수·의학박사 ‘손자병법’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구절은 바로 ‘지피지기(知彼知己)면 백전불태(百戰不殆)’이다.이 구절을 “공황장애를 알고 나를 알면 공황발작이 백번와도 위태롭지 않다”라고 생각해 본다.먼저 공황장애, 공황발작의 본질에 대해 알아보겠다. 이해를 돕기 위해 화재경보기와 비유(比喩)해 본다. 화재 예방과 빠른 화재 진압을 위해서 건물에 설치된 화재경보기는 매우 중요하다. 그런데 화재경보기가 고장이 나서 불이 났는데도 작동을 안 한다면 문제이고 반대로 지나치게 예민해서 담배 연기에도 작동한다면 이 역시 문제이다.화재경보기가 고장 났다는 생각을 전혀 하지 못하는 상태에서 화재경보기가 울린다면 건물 안에 있던 사람들은 공포에 질려 우왕좌왕할 것이다.이처럼 우리 뇌 속에도 일종의 불안 경보기가 있다. 이 불안 경보기는 자율신경중추인 뇌간의 청반(locus ceruleus)으로 알려졌고, 인간의 긴급대처 반응을 주관한다.불안경보기는 밤길에 강도를 만난다든가 하는 위급 상황이 일어나면 자동으로 작동해서 우리로 하여금 재빨리 도망치게 하거나 맞서 싸울 수 있도록 준비시켜 주는 기능을 한다. 만일 위험이 닥쳤음에도 불안 경보기가 작동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멍하니 있다가 생명을 잃게 될 확률이 높고 반대로 불안 경보기가 너무 예민해서 긴장하거나 두려워할 응급 상황이 아닌데도 공황 발작이 시도 때도 없이 나타난다면 이 역시 문제이다.공황장애를 앓는 사람이 불안 경보기가 예민해서 공황발작이 온다는 생각을 전혀 하지 못하는 상태라면 그 불안과 공포는 더욱 커질 것이다.이제, 공황발작을 의인화해서 공황발작의 입장에서 이야기 해보겠다. 나는 공황발작이다. 나는 예고 없이 갑자기 사람들을 방문한다. 나는 나의 방문객(공황발작을 겪는 사람)에게, 밤에 외진 길을 가다가 호랑이를 바로 앞에 만난 것처럼 심장을 급격하게 두근거리게 하고 가슴이 답답해지며 숨이 막혀 질식할 것 같은 호흡 곤란 등의 정말 뜬금없는, 갑작스러운 신체적 증상을 나타나게 한다.나의 방문객은 ‘이제 죽겠구나’하는 엄청난 공포감과 불안감으로 나를 마주한다. 심지어 내가 방문하지 않을 때조차도 내가 또 오지 않을까 하는 예기불안(anticipatory anxiety)을 느끼며, 심장질환이나 호흡기 질환, 뇌졸중 등의 신체적 질병으로 죽지 않을까 걱정하게 한다.자라를 보고 놀란 사람이 비슷하게 생긴 솥뚜껑만 봐도 소스라치듯, 나를 만난 유사한 상황이나 장소를 피하게 된다. 결국, 나의 방문객은 공황장애가 깊어지면서 갈 수 없는 곳, 삶 전체에서 할 수 없는 것이 늘어나기 시작하고 방문객의 삶은 위축되며 삶의 반경도 좁아지는 등 공포와 불안은 일상화된다.나는 나에 대한 비밀을 이야기하겠다. “내가 보여주는 갑작스런 신체적 증상은 비록 그 순간 힘들고 괴롭다고 하더라도 나의 방문객이 나를 가만히 바라볼 수만 있다면 짧게는 수분이내 아무리 길어도 일반적으로 1시간을 넘지 못한다는 사실이다. 또 나는 우리 속에 있는 호랑이와 같아서 나의 방문객 생명을 앗아갈 수 없다. 이제는, 예비 공황장애 환자인 우리의 입장을 생각해보자. 우리는 상황이 우리를 힘들게 한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상황에 대한 잘못된 생각이 우리를 힘들게 하는 경우가 더 많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우리는 자신의 생각을 인식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인식을 못할 만큼 자동으로 빠르게 반응해 우리가 생각을 유심히 바라보지 않으면 알기 어려운 경우가 더 많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이러한 생각을 정신의학적 용어로 ‘자동적 사고(automatic thought)’라 한다. 대부분의 경우 자동적 사고는 매우 빨라서 우리가 인식하기 힘들다. 많은 경우 자동적 사고는 부정적으로 왜곡되어 있다.공황장애에서의 대표적인 왜곡된 자동적 사고는 ‘파국적 해석 오류(carastrophic misinterpretation)’이다. 예를 들어 공황 발작의 신체증상을 죽을 것 같다고 잘못 생각을 한다면 오히려 교감 신경계가 더 흥분돼 더 불안해질 것이다.또 공황발작이 오면 그 결과는 엄청난 것이어서 자신이 아무 대처도 할 수 없을 것 같다고 잘못 생각을 한다면 공황장애는 더 악화 될 것이다. 공황 발작이나 공황 증상에 대한 정확한 이해 그리고 파국적 해석 오류의 왜곡된 자동적 사고와 이에 뒤따르는 역기능적 행동을 바로 잡아 주는 일은 공황장애 인지행동치료(Cognitive Behavioral Therapy·CBT)의 시작이다. 공황장애의 인지행동치료는 미국정신과의사협회의 공황장애 치료지침과 한국형 공황장애 치료지침에서도 약물치료와 더불어 가장 권고하는 치료이다. 우리의 삶에서도 우리를 고통스럽게 하는 것은 상황 자체가 아니라 그 상황을 해석하는 방식이듯 공황장애도 공황발작이라는 증상 자체의 문제보다 그 증상을 바라보는 생각과 행동이 더 중요하다.오늘 필자가 드리고 싶은 말은 공황장애를 편견(偏見)으로 보지 말고 정견(正見)으로 보자는 것이다.공황장애를 알고 나를 알면 공황발작이 백번와도 위태롭지 않다. 즉, 공황장애를 정확하게 알고 나의 생각과 행동을 정확하게 알면 공황장애는 위태롭지 않다는 것이다.

2022-11-06

블라인드 초래하는 블라인드 채용

서의호포스텍 명예교수·산업경영공학 최근 연구계에는 신선한 소식이 있었다. 윤석열 대통령이 정부출연연구기관 등에 대해 우선적으로 공공기관 블라인드 채용을 전면적으로 폐지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전임 정부가 시작한 블라인드 채용은 최소한 국가 성장의 동력이 되는 과학기술 분야에 있어서만큼이라도 자유로운 채용 조건을 제공하여 우리나라의 과학 기술의 발전을 촉진하겠다는 뜻이 담겨져 있다.이번 발표는 과학기술계의 지속적인 요구에 부응하는 차원에서 마련된 것으로 알려졌다. 25개 출연연 중 18개 연구소가 블라인드 채용의 폐해를 지적했고 반대했다고 한다. 블라인드 채용으로 인해 연구기관의 연구능력이 떨어지는 문제는 과학기술계에선 숙원사업처럼 여겨져왔던 이슈이며, 현 정부가 인재를 효율적으로 발굴하여 과학기술을 증진시켜 강국을 만들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라고 정부는 설명하고 있다. 그동안 과학계에는 단시간의 면접으로는 업무적합도 판단이 힘들다고 보고 정부에 여러 차례 건의했고, 일부 의원들이 과학계 블라인드 채용을 완화하는 법안도 발의했었지만 정치적 논리에 밀려왔다.‘블라인드 채용’이란 무엇인가? 눈을 가린다는 영어 블라인드(Blind)와 채용을 합친 개념이다. 채용할 때 학력, 경력 등의 흔히 스펙이라고 불리는 요소를 보지 않고 그 사람의 인성, 업무와의 적합성 등을 고려하여 채용하는 것을 의미한다. 특히 학력이 철저히 배제된다. 윤석열 정부의 블라인드 채용 폐지 방침에 대하여 일부 교육시민단체와 노동계 일부가 반발했다. 블라인드 채용 제도가 후퇴할 경우 학벌과 인맥을 중시하는 채용·인사가 더욱 확대될 수 있다는 우려를 표했다. 실제 국내 기업에서 학력에 따른 차별 등 불이익이 남아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지난해 국가인권실태조사를 확인한 결과, 채용이나 승진 등에서 학력·학벌의 차별을 겪었다는 실태가 발표된 적도 있다. 일리있는 반발이기도 하다. 그러나 블라인드 채용이 공정한 채용인가 하는 판단도 쉽지 않다. 5년 전 2017년 문재인 정부는 ‘공공부문 블라인드 채용 의무화’를 제시했으며, 소위 ‘평등한 기회, 공정한 과정을 위한 블라인드 채용 추진방안’을 발표했다. 그러나 엄격히 말하면, 문 정부의 ‘블라인드 채용’은 성별, 학벌, 출신지역 등에 대한 의무할당제를 포함한 채용이므로 블라인드 채용이라고 말하기도 힘들다.블라인드 채용이 공정하게 진행되는가 또는 자기의 스펙이 깡그리 무시되어도 좋은가 하는 것은 또다른 문제를 낳고 있다. 블라인드 채용에는 스펙을 어필하려는 편법이 쓰일 수밖에 없다. 가령 이메일 주소 기재란에 대학 이름이 들어가는 도메인을 쓰면 대학을 표시할 수 있다. 동아리 활동 기재란에 학교의 이름을 알 수 있는 동아리를 적거나 주소지를 학교 기숙사 혹은 학교 인근의 주소지로 적는 방법 등이다. 그래서 2017년 하반기부터 채용을 진행하는 다수의 공공 기관에서는 해당 행위를 한 지원자에게 불이익을 주겠다고 경고를 하고 있다.이런 상황에서 응시자는 어떻게 자기를 나타낼 수 있는지 방향을 잡기 힘들다. 블라인드 채용에 반대하는 심사자는 거꾸로 면접 대상자의 스펙을 유추해 보려고 애쓰는 현상도 나타난다. 인성과 업무적합성을 그 짧은 시간에 어떻게 완벽하게 판단할 수 있을 것인가? 그 짧은 시간에 오판을 하게 되면 오히려 그것이 공정을 해치는 것일 것이다. 학력과 학점, 경력 모두 한 사람의 노력의 결과물이며 업무적합성에 대한 충분한 보조 자료인데 수십 년간의 노력을 모두 무시하고 짧은 시간에 능력을 평가하는 것이 과연 공정하고 정확한 평가인지 의심스럽다.최근 조사에서 기업의 인사담당자가 50:50으로 의견이 갈라졌다는 것은 통계의 함정이다. 블라인드 채용하는 기업이 30%인데 조사는 이러한 기업을 상대로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나머지 70% 기업을 조사해 보면 다른 결과가 나왔을 것이다. 무엇보다도 연구중심의 기업이나 연구기관들에게 블라인드 채용은 큰 문제를 야기시키고 있다.다른 국가들을 보면 공공 부문 채용에서 지원자의 출신 학교·전공·학점이 드러나는 것을 원천적으로 금지한 사례는 없다. 공정을 중시하는 미국에서도 그러한 사례를 본 적이 없다. 대학이나 연구소에 원서를 낼 때도, 회사에 입사지원을 할 때 이력서에는 반드시 학력과 경력을 쓰게 되어 있다. 블라인드 채용(Blind Hiring)제도의 진정한 의미는 외국에서는 다르다. 이는 지원자의 이름이나 성별, 나이 등을 나타내지 못하게 하여 남녀 차별과 연령차별을 막자는 의도이지 학력, 경력, 스펙을 표현하지 못하게 하는 것은 아니다. 교수직이나 연구직에서는 학력, 경력이 매우 중요한 지표가 된다. 지원자는 자기 능력을 표현하기 위해 모든 과거의 노력을 제출할 권리와 의무가 있다. 과거 문재인 정부의 블라인드 채용은 공정이기 보다는 노력한 자에 대한 또 다른 차별일 뿐일 수도 있다.블라인드 채용이 공정이라는 개념에 대하여 다시 한 번 재고를 해야 한다. 우수 인재를 구별하지 못하는 블라인드를 초래하는 블라인드 채용을 적절하게 개선하면서도 능력에도 불구하고 대학 출신 같은 학력으로 불리함을 감수하지 않도록 하는 운영의 묘가 필요하다. 블라인드 즉 장님을 만드는 무조건적 블라인드 채용이 되어서는 안 된다.

2022-11-06

주민이 행복한 명품 도시 남구 만들기

조재구 대구 남구청장 대구 남구는 예전부터 앞산이라는 천혜의 자연환경과 함께 살기 좋은 부자 도시로 명성이 자자했다.“대구에서 소문난 부자는 다 남구에 산다”라고 할 정도로 앞산 아래 고래등 같은 기와집이 즐비했다.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급변하는 산업 구조에 적응하지 못한 탓일까. 도심의 노후화로 인한 인구 감소 및 고령화가 가속화되면서, 과거 남구의 화려한 명성은 점차로 빛이 바래고 설상가상 젊은이들의 이탈로 점점 활기를 잃어갔다.4년 전, 구청장으로 임기를 시작할 무렵, 우리 남구는 더 이상 지체할 수 없는 변화의 기로에 서 있었다. 이 모든 상황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오직 뼈를 깎는 혁신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앞산 정상에서 남구를 내려다보며 굳게 다짐했다. 우리 남구의 명성을 되찾고 다시 활기찬 명품도시로 만들어 보겠다고. 그날부터 변화하는 남구를 위한 첫걸음이 시작됐다.먼저, ‘왜 남구에 젊은이들이 살지 않을까’를 고민했다. 무엇보다 지하철 1호선과 3호선이 인접해 편리한 교통환경으로 도심의 접근성도 좋고, 지역 내에 대학병원이 두 곳이나 있으며, 앞으로는 맑은 신천이 흐르고 뒤로는 대구시민의 휴식처인 앞산이 품어주니, 어디에 내놓아도 손색이 없는 살기 좋은 남구인데 말이다.이유는 생각보다 간단했다. 바로 노후화된 주거환경이었다. 그래서 가장 먼저 남구의 노후화된 주거환경을 개선하기 위해 재개발·재건축을 중점적으로 추진했다.그 결과, 남구는 4년 만에 깜짝 놀랄 정도로 상전벽해(桑田碧海)했다. 신천과 앞산을 바라보는 멋진 조망권을 가진 새로운 주거환경에 반한 젊은이들이 점차 우리 남구로 찾아들었다. 어르신들로만 가득 찼던 도심에 드디어 젊은이와 아이들의 목소리가 들리기 시작한 것이다.남구에 찾아온 이 희망을 바탕으로 ‘앞으로 구청장으로서 무엇을 해야 할까’ 많은 고민 끝에 낸 답은 바로, 남구에 활력을 더해 줄 앞산을 중심으로 한 문화관광사업의 완성이다.앞산은 대구 도심에 위치, 접근성이 좋고, 산책로와 등산로가 잘 갖춰져 있어 대구시민들이 즐겨 찾는 명소이기에 이곳의 개발은 상징적이다.그래서 나는 지난 4년 동안 남구의 자산인 앞산을 중심으로 앞산해넘이전망대와 앞산빨래터공원 및 앞산하늘다리 조성으로 ‘집 가까이에서 즐길 수 있는 문화관광지 조성’의 초석을 다졌다.제일 먼저 조성된 일몰 시간의 앞산해넘이 전망대는 붉은 노을이 황홀한 장관이다. 전국적으로 유명한 해맞이 전망대는 많지만 도심에서 일몰을 감상하는 해넘이 전망대는 드물어서 그런지 입소문을 타면서 아름다운 일몰과 함께 대구의 야경을 감상하려는 전국 각지의 관광객들이 모이고 있다.또한, 앞산해넘이전망대를 잇는 앞산 하늘다리는 앞산순환도로를 가로지르는 첫 경관 교량으로, 해넘이 전망대에 이어 또 하나의 야간 경관 명소가 되었다. 교량 중앙에 설치한 하트 모양의 조형물은 연인은 물론 소중한 이들이 서로의 마음을 전하기에 좋은 장소로 크게 각광받고 있다.앞산해넘이전망대 아래에 있는 앞산빨래터공원에는 관광객의 편의 증진을 위해 지하에 89면의 공영주차장을 조성하고, 지상에는 보기만 해도 가슴이 뻥 뚫리는 벽천분수와 공연 무대가 딸린 2천300㎡ 규모의 공원을 새롭게 단장해 앞산 해넘이 전망대, 앞산 하늘다리와 함께 앞산테마공원의 중심지로 급부상했다.그 덕분인지, 요즘 주말에 앞산으로 산책을 나가 보면 앞산 일대를 찾는 젊은이들이 부쩍 많이 늘었다. 젊은 연인들이 앞산하늘다리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어 SNS에 올리기도 하고, 앞산빨래터공원에서 반려동물과 산책을 하는 이들로 북적이면서 자연스럽게 이 일대에 유명 커피체인점과 음식점들이 하나, 둘 들어서고 있다.이렇게 앞산을 중심으로 앞산빨래터공원과 앞산해넘이전망대, 앞산 하늘다리 그리고 명품 도심형 캠핑장까지 전국 최고의 관광 테마파크가 조성된 것이다.앞으로의 4년도 남구 구석구석에 잠재된 관광자원을 활성화해 남구민들에게는 편안한 힐링 휴식처로, 남구를 찾는 관광객들에게는 명품 문화 관광 도시로 거듭나 지역경제에도 활력을 불어넣어 주민이 행복한 활기찬 도시, 명품 남구로 다시 한번 도약하기를 기대한다.

2022-11-06

두 얼굴

경주 남산에는 많은 얼굴이 있다. 감실부처, 석불입상, 삼릉계곡 선각육존불, 등 바위마다 부처님이 새겨져 있다. 부처님의 형상은 같은 것 같지만 가만히 비교해보면 다 다르다. 얼굴에서 손의 위치까지 나름의 의미를 품고 있는데, 오늘은 아직 못 본 부처님을 찾아 비탈길을 오른다.열암 골짜기 7부 능선쯤 축대에 오르자, 시커먼 그늘막이 가로막는다. 그 안에 커다란 너럭바위 하나가 놓여 있다. 좀 더 자세히 보려 허리를 숙이고 다가갔다. 아랫면에 얼굴이 있었다. 코가 땅에 닿을 듯 말 듯 5cm 차이로 땅을 바라보고 있다. 말로만 듣던 엎어진 부처님이다.한눈에 보기에도 부처님은 잘 생겼다. 오뚝하게 솟은 코와 내리뜬 길고 날카로운 눈매는 타원형 얼굴을 잘 받쳐준다. 도톰하고 부드럽게 처리된 입술에 후덕한 성정이 도드라져 보인다. 깨달음의 과정을 거치면 해탈에 이를 수 있다는 것을 목주름(三道)이 보여준다. 풍화가 비켜 간 얼굴은 너무도 말짱해서 오히려 신비롭게 느껴진다.이렇게 수려한 부처님이면 오롯이 서서 세상을 향해 자비로운 미소를 지어야 한다. 그런데 왜 엎어져 천년이 넘도록 땅을 응시하고 있는 것일까. 그동안 이 골짜기에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언제, 누가 또 어떻게 발견했을까.저만치 언덕 위에 석불좌상이 보인다. 다가가 보니, 멀리서 보던 모습과 다르다. 여러 조각을 잇고 붙여 원형을 복원했으나 그 흔적이 그대로 남았다. 석불좌상은 목이 잘리고 광배 자락이 동강이 났다. 새는 어깨에 앉았다가 똥이나 싸고 가고 비는 깨끗이 씻어줄 것이다. 그런데 만신창이가 되었으니, 누군가의 소행이 틀림없다. 부처님의 이지러진 입을 보면서 나도 안타까워 얼굴이 일그러지고 만다.우연이 겹치면 필연이 된다. 매년 이곳을 찾는 등산객이 무엇에 홀린 듯 앉아 있다가 동강 난 석불좌상의 불두를 발견했다. 그래서 당국에 신고했고 문화재 담당관이 근처를 돌며 깨진 부처님의 잔해를 찾았다. 너럭바위에 앉아 잠시 쉴 겸 숨을 고르는데 그 아래 빈 곳이 있었다. 고개를 숙여 보니 가지런히 모은 손이 보였다고 한다. 엎어진 부처님은 그렇게 발견되었다. 세상의 얼굴이 험상궂을 때였다. 못 배우고 힘없는 백성은 귀족들에게 노동력을 착취당했다. 일하고도 제대로 품삯을 셈하지 못해 허방에 농사를 짓는 날이 많았다. 가난은 가난을 물고 늘어지고 배부른 귀족의 배는 나날이 불러갔다. 그런데도 누구 하나 불공정한 세상을 나무라지 않았다. 분노에 찬 백성들은 들고일어나 무엇이든 두드려 부수었다.‘세 차례 크게 지진이 있었고 그 소리가 성난 우렛소리처럼 커서 말이 모두 피하고 담장과 성첩이 무너지고 사람들이 모두 놀라…. 팔도가 다 마찬가지였다.’조선명종실록에 기록된 사실이다. 한반도에도 지진이 일어났다. 어느 날 땅이 흔들렸다. 기왓장이 떨어지고 담장이 무너졌다. 천재지변은 곧 하늘이 내리는 벌이다. 여진으로 땅이 밤낮없이 몸을 떨자 백성들은 두려움에 떨었다. 인간 세상이 험악해지자 분노를 참지 못한 하늘이 세상을 흔들어버렸다고 여기던 시절이었다. 이순혜 수필가 부처님도 지진으로 엎어졌다고 추정된다. 엎어진 김에 쉰다고 오늘까지 쉬어버렸는지 모른다. 그렇지 않아도 꼴 보기 싫은 세상인데 일어나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세상을 외면한 부처는 천년 넘도록 얼굴을 온전하게 보전하고 있다. 두 눈 부릅뜨고 나무라던 석불좌상은 만신창이가 되었다. 인간의 두 얼굴이 만들어낸 아이러니다.이지러진 얼굴로 세상을 내려다보는 석불좌상은 무슨 생각을 할까. 이것이 바로 너희 세상의 얼굴이라고 꾸짖는 것일까. 아니면 너희 세상이 평화로울 수 있다면 나 하나쯤 만신창이가 되어도 좋다고 너그러이 용서하는 것일까. 문득, 어리석은 백성을 용서하시라 무릎 꿇고 싶다.내려오는 길에 엎어진 부처님을 다시 본다. 부처님이 일어나 만신창이가 된 부처님을 보면 가슴이 얼마나 아플까. 이제는 일어나세요. 청하자니 세상의 얼굴이 부끄럽다.

2022-11-06

징비록의 교훈

우정구 논설위원 징비록(懲毖錄)은 임진왜란 당시 영의정과 군무를 총괄하는 도체찰사 직위에 있었던 서애 류성룡이 전쟁이 끝나고 고향으로 돌아와 쓴 책이다. 국정과 군무의 최고 책임자였기에 7년에 걸친 임진왜란의 원인과 전황, 조선과 일본·명나라와의 외교관계, 전투성과, 백성의 생활상 등에 대해 비교적 상세한 기록을 남겼다.특히 그는 전쟁 전의 배경에 대해서도 자세히 기술해 전쟁을 미리 막지 못한 것에 대한 반성의 메시지도 책에 담았다. 또 책은 임진왜란을 자국 중심으로 바라보았던 중국과 일본의 왜곡된 역사관을 바로잡는데도 크게 기여했다. 그는 “난중의 일은 부끄러울 따름이다”라고 적어 스스로 반성한다는 뜻을 책에서 밝혔다.역사학자 에드워드 카는 “역사는 과거와 현재의 끊임없는 대화”라고 말했으나 그 속에서 우리가 건질 수 있는 것은 교훈을 얻는 데 있다. 징비록을 쓴 류성룡은 비록 남인이라는 정파의 일원이었지만 임란의 역사적 사실에 대해서는 비교적 객관적으로 기술했다.역사학자 토인비는 “지난 역사에서 교훈을 얻지 못하는 민족은 그 비극의 역사를 되풀이해 당할 것”이라 말했다.북한의 미사일 도발로 한반도의 위기감이 점증하는 분위기다. 한미 국방장관이 만나 “미국의 전략자산을 한국에 적시적으로 전개할 것”을 밝혔으나 북한의 비상식적 도발 행위로 보아 북한의 핵능력 고도화 의지를 얼마나 억제할지는 미지수다.징비는 “잘못을 미리 징계하여 후환을 경계하자”는 뜻이다. 임진왜란은 우리 민족이 기억하는 가장 참혹한 재앙의 역사적 사건이다. 징비록이 남긴 역사적 교훈을 반면교사 삼아 안보 경각심을 일깨워야 한다. 재난을 한번 당하고도 대비하지 않는 어리석음은 없어야 한다. /우정구(논설위원)

2022-11-06

대구 여성영화제

김규종 경북대 교수 2012년에 시작되어 올해로 열한 번째를 맞은 ‘대구 여성영화제’가 지난 11월 3일부터 5일까지 열렸다. “우리는 거침없이 나아간다”는 표어를 내건 주최측의 주장이 마음에 닿는다.‘여성과 소수자들에 대한 혐오와 차별에 대해 영화로 이야기하고 연대하고자 합니다.’ 성소수자와 미혼모, 트랜스젠더, 딸을 잃어버린 어머니, 일자리 구하는 청소년, 갈등하고 대립하는 모녀, 사회적 참사로 가족을 잃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가 앞다투어 상영되었다.우리 사회에서 여성과 소수자의 입지는 제대로 마련된 적이 없다. 대규모 참사가 일어난 이태원(梨泰院)의 옛 이름 가운데 하나가 동명(同名)의 이태원(異胎院)이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임진왜란 당시 왜놈들에게 겁탈당하고 그들의 씨를 가진 여성들이 모여 살았다는 곳 이태원! 임란 이후 불과 38년 만에 당한 병자호란 대참사의 희생자인 환향녀(還鄕女)들이 호로자식(胡虜子息)들과 함께 거주한 곳 이태원! 한 서린 여인들의 보금자리 이태원!여성의 시련은 12,000년 전 형성된 홀로세의 기후 조건에서 10,000년 전 시작된 농업혁명이 시발점이다. 농경과 목축의 계급사회에서 사회·경제적 지위 하락을 경험해야 했던 여성들이 처음으로 제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 것은 1,800년대 후반의 일이다. 그 후 여성들의 권리 찾기는 숱한 시행착오를 겪으면서도 일정하게 성과를 거두었다. 하지만 한국에서 여성의 지위는 밑바닥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으니 안타까운 일이다.여성과 함께 고통을 감내하는 사회적 소수자들이 적잖게 자리하고 있음은 불문가지의 일이다. ‘대구 여성영화제’가 여성과 소수자들에게 초점(焦點)을 맞춘 영화를 상영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문제는 11년을 지나오면서 영화제를 추진해온 담당자들이 계속 겪어야 했고 겪고 있는 대구시의 무관심과 냉담함이다.문화관광 부서에 가서 재정문제와 홍보를 말하면 그들은 여성 관련 부서로 가라고 한다. 여성 관련 부서에 가서 지원을 호소하면 문화관광으로 가라고 하는 어처구니없는 일이 11년을 넘어섰다. ‘컬러풀’도 모자라 ‘파워풀’을 내건 대구시장들의 문화적 문맹과 정치적 맹목은 날이 갈수록 극심하다. 아직도 토건에 목을 매는 그들의 근시안적인 행정은 21세기 세계와 너무나 동떨어져 있다.대구시장은 ‘금호강 르네상스’라는 구호와 더불어 5천400억을 들여 강바닥을 할퀴고 자전거길을 내고 각종 오락 시설을 만들겠다고 한다. 단군 이래 가장 악질적인 4대강 사업의 아류이자 판박이로 대구시의 재정을 고갈하려는 저의가 무엇인지 궁금하다. 5천400억을 들여 시민들의 눈에 훤히 보이는 성과를 바탕으로 그가 꿈꾸는 것이 무엇인지, 삼척동자도 알지 않을까?!열렬 여성들이 11년째 열고 있는 ‘대구 여성영화제’에 최소한도의 재정적인 지원과 인간적인 예의가 필요한 시점이 아닌가 한다. 21세기 세계는 이른바 시멘트 콘크리트의 하드웨어가 아니라 문화와 예술의 소프트웨어가 좌지우지한다. 그 점 명징하게 이해했으면 좋겠다.

2022-11-06

안전 소홀, 일상이 된 ‘공포’

홍석봉 정치에디터 세계 10위권 경제대국과 문화 강국의 자긍심이 산산이 무너졌다. 어쩌다 이 지경이 됐나. 왜 이렇게 빈발하는 후진국형 참사에 치를 떨어야 하는가. 생때같은 자식을 잃은 부모와 가족의 참담한 아픔은 어떻게 달랠 것인가. 잊을만하면 발생하는 어처구니없는 참사다. 국민들의 가슴이 시커멓게 타들어간다. 언제 어디서 또 어떤 유형의 사고가 발생할지 몰라서다.안전을 책임지는 장관은 책임 회피성 발언으로 국민 가슴을 후벼 팠다. 파문이 확산되자 사과했다. 비난은 숙지지 않았다. 장관 파면 주장이 나오고 있다. 서울시장과 경찰·소방청장이 줄이어 국민 앞에 사과하고 고개 숙였다.당국의 대처 소홀은 지탄받아 마땅하다. 압사 사고 위험을 호소하는 112신고가 잇따랐지만 외면했다. 3년 만의 사회적거리두기가 없어진 핼러윈 행사에 10만 이상 인파가 예측됐지만 행정과 경찰은 손 놓고 있었다. 많은 조짐이 있었는데도 대책 마련을 등한히 했다. 경찰의 부실 대응과 늑장 보고도 속속 드러나고 있다. 책임 추궁이 불가피해졌다.이태원 참사는 대통령을 비롯한 정부 모두의 책임이다. 예로부터 가뭄과 홍수 등 기상재해로 큰 피해가 발생하면 임금이 ‘부덕의 소치’라며 기우제를 지내고 하늘에 빌었다. 국민에게 용서를 구하지는 못할 망정 책임을 발뺌했다. 윤석열 정부의 도덕성과 능력이 의심받는 이유다. 국민 마음을 헤아려야 했다.사태 수습과 보상 등 문제가 남았다. 이제 윤석열 대통령이 나서야 한다. 국민에게 대응 부실을 사과해야 한다. 더 이상 안전 소홀로 국민의 생명과 재산이 위협받는 일은 없도록 하겠다는 의지를 보여야 한다.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8월 수도권을 강타한 집중호우 피해 상황을 점검하며 “국민의 안전에 대해 국가가 무한책임을 지겠다”고 말한 바 있다. 국민의 생명과 재산 보호는 공직자의 직무라는 점과 국민 안전에 대한 책임 의식을 강조한 발언이다.국내외 전문가 진단도 쏟아졌다. 밀집된 군중이 통제되지 않은 상태에서 안전 조치가 전혀 없었다고 했다. 사전 준비만 제대로 했어도 충격적인 인명 사고는 막을 수 있었다는 분석이다. 과밀 상황에 익숙해진 국민들의 무감각도 문제로 지적됐다. 이순신 장군은 평소 철저한 계획과 준비로 전쟁에서 이겼다. 안전에 요행은 없다.정부는 뒤늦게 주최자가 없는 행사도 안전관리를 강화할 수 있도록 법 개정을 추진한다고 했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치기’의 뒷북 행정이다. 그래도 구멍 난 외양간은 반드시 고쳐야 한다.이태원 참사에는 우리 사회 곳곳에 스며 있는 안전불감증의 기제가 여지없이 작동했다. 우리는 대구지하철과 세월호, 이태원 참사 등 몸서리치는 사고를 겪었다. 공포가 일상이 됐다. 그렇게 안전을 강조하고 투자했지만 아직도 구멍투성이다. 중대재해처벌법 등 법망을 촘촘히 갖췄지만 별무효과인 듯 하다.항상 안전에 대비하는 국민 의식이 필요하다. 애도 국면이 끝나면 바로 책임추궁과 보상에 들어갈 것이다. 국민 세금이 투입돼야 한다. 언제쯤 일상이 된 ‘공포’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2022-11-03

5센티의 기적

우정구 논설위원 마애(磨崖)란 자연암반이나 절벽에 부조나 선각 등으로 새긴 그림이나 글씨를 말한다. 다양한 마애조각 중 불상이나 보살상 등을 주제로 조각한 것을 마애불상이라 부른다.마애불상은 기원전 인도 석굴사원 조영에서 시작한 것으로 학계는 보고 있다. 이후 서역을 거쳐 중국으로 전파됐고, 우리나라에는 6∼7세기경 백제에 가장 먼저 들어온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충남 태안군 동문리에 있는 백제시대 마애삼존불 입상이 우리나라에서는 가장 오래된 마애불로 전해지고 있다.마애불상으로 등록된 문화재(2020년)는 국보 6점, 보물 20점, 시도지정 문화재 50점 등이 있다.‘5센티의 기적’으로 잘 알려진 경주 남산 열암곡 마애불을 바로 세우기 위한 고불식이 지난달 31일 마애불 현장에서 있었다.2007년 5월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가 열암곡 석불좌상 보수를 위해 작업하던 중 엎어진 채 발견된 이 불상은 약 600여 년전 지진으로 넘어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이 불상은 지진으로 넘어질 때 암반과 불과 5센티 간격을 두고도 부딪치지 않아 얼굴 등이 온전히 보존돼 ‘5센티의 기적’이라는 별명이 붙어 있다. 보존상태가 양호하고 오뚝한 콧날과 이지적인 부처님 모습이 신라시대를 대표할 부처님 상이라 한다.그동안 마애불을 바로 세우기 위해 불교계와 문화재청 등이 여러 번 논의를 벌였으나 무게가 80t에 이르고 산비탈에 있어 원형 손상 없이 바로 세우는 것이 현실적으로 쉽지 않아 지금껏 발견 상태로 보존해 왔다.지진과 오랜 세월의 풍파에도 원형이 잘 보존돼 국보급은 된다는 이 불상은 발견부터 많은 스토리를 품어 더 흥미를 준다. 원형 복구의 기대감이 크다./우정구(논설위원)

2022-11-03

김소연 변호사의 추도사

김병래 수필가·시조시인 우리의 미래는 물론 젊은이들에게 달려있다. 젊은이들이 올바른 역사관과 가치관을 가질 때 우리나라 미래는 밝을 것이다. 반대로 왜곡되고 편협한 가치관과 역사관을 가진 젊은이들에게 보다 나은 미래를 기대할 수는 없을 터이다. 그래서 젊은이들이 대부분 좌경화되었다는 건 우려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지난 10월 26일 박정희 대통령 43주기 추도식에서 낭독한 김소연 변호사의 추도사는 그런 현실을 적시하고 있어 적지 않은 충격이었다.“저희 세대에게 대통령 박정희에 대한 이미지는 ‘악마’ 그 자체였습니다. 386 운동권들이 차지한 전교조와 학원가 강사들의 재미있는 역사 수업 사이사이에 뿌려지는 충격적인 단어들은 감성이 충만한 사춘기 학생들에게 매우 자극적이고 충격적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런 자극과 충격은, 성인이 되어서도 그 세뇌된 이미지가 뇌리에 깊이 박혀 대한민국 국민들을 먹여 살린 ‘영웅 박정희’를, 국민들을 핍박한 ‘악마’로 각인시켜왔던 것입니다”김 변호사는 1981년생으로 박정희 대통령 서거 후에 태어난 40대 초반이다. 그의 추도사를 들어보면 오늘날 대한민국의 젊은 세대가, 그 중에서도 40대들이 왜 그토록 좌편향적인지를 알게 된다. 할아버지 할머니 세대에 있었던 6·25전쟁의 참화나 새마을운동 따위는 아득한 구시대의 고리타분한 이야기로 들렸고, 반면 386운동권들은 세련되고, 똑똑하고, 요즘 말로 굉장히 힙한, 젊은 삼촌·이모들 같았기에 더욱 친근하고 닮고 싶었던 거라고 했다.“386 운동권 세대의 ‘민주화 운동’은 마치 영웅의 일화 같았고, 폭력과 억압, 최루탄을 뚫고 ‘독재정권 타도’를 외치는 모습은, 과장되고 미화되어 영화와 드라마의 소재가 되었습니다. 저희 같은 세대들은 경험해본 적도 없는 최루탄 냄새가 마치 나는 듯했고, 영화 속 동료가 군홧발에 짓밟혀 죽어 나갈 때는 분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구호를 외치고 노래를 부르며 함께 도피하는 장면에서는 마치 직접 경험했던 로맨틱한 추억처럼 느껴지기도 했습니다”그러니 눈이 오나 비가 오나 태극기를 들고 광화문 거리에 나오는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얼마나 한심스러웠겠는가. 그 노인네들이 열악한 환경의 공장에서, 열사의 나라 건설현장에서, 서독의 탄광에서, 베트남 전쟁터에서 피와 땀과 눈물을 흘린 대가로 최빈국 대한민국이 이만큼 살게 되었다는 것을, “태어나 보니 잘 사는 나라였다”는 세대가 어찌 알 것인가. 오늘날 자신들이 누리는 풍요가 그렇게 비하하고 조롱하고 혐오하는 늙은이들이 피땀으로 심은 나무의 열매라는 것을.그러나 김소연 변호사의 다음과 같은 말은 우리에게 일말의 안도와 기대를 갖게 한다. “여전히 30년이 넘도록 스무 살 캠퍼스 낭만과 최루탄의 향기에 빠져 거기서 헤어나오지 못하는 불행한 세대인, 우리 선배 386 운동권 일부는 정치권에 남아 철 지난 이념선동을 반복하고 있습니다. 저희 MZ세대가, 이들을, 이 불쌍한 386들을, 스스로의 굴레에서 자유롭게 빠져나오고 해방될 수 있도록, 그리고 진정한 민주화를 이룰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2022-11-03

축제 속의 질서의식

윤영대 수필가 울긋불긋 화려한 단풍을 보며 축제 분위기의 가을을 즐겨야 할 10월의 마지막 주말, 뜻하지 않은 대규모 인명 사고 소식에 망연자실한 체 우리 사회의 질서의식을 생각해 보았다.10월 29일 밤 10시경, 내가 넓은 영일만 밤바다의 정취를 즐기고 있을 때 서울 이태원에서는 외국풍의 핼러윈 축제의 흥겨운 한때를 즐기려던 많은 젊은이들이 좁은 골목길에서 서로에게 막히고 밀려 쓰러지고 압사(壓死)당하는 ‘이태원 참사’가 일어난 것이다. 그동안 코로나로 3년간이나 억눌렸던 마음을 털어내려고 모여들었다가 졸지에 참변을 당한 것이다. 국가기념일도 아닌 날에 상업적, 신 문화적인 행사로 정착하며 귀신이나 괴물 분장을 한 채로 돌아다니는 축제로 미국과 일본 등 몇 나라에서만 즐기고 우리에게는 20여 년 전부터 알려지기 시작한 것이다.이번 사고의 발단은 ‘노 마스크’의 자유로움으로 약 10만 명 이상의 인파가 좁은 언덕 골목길을 통제 없이 쏠려 다닌 탓이다. 사고가 나기 전부터 10여 건의 112신고를 받았다지만 그에 대한 발 빠른 대응이 미흡했고 안전 관리 부실 또한 책임을 벗어날 수 없겠다. 예년 많은 인파가 몰려왔다는 사실을 기초로 안전 대책을 세우고 시민의 긴급신고에는 정확한 판단과 함께 대응책을 마련하고 출동하여 구조했어야 했다. ‘압사 될 것 같다’, ‘아수라장이다’라며 경찰의 통제를 요구했던 시민들의 희망도 꺼져갔고 중고생 6명을 포함한 20~30대 젊은이들 154명의 죽음이 참으로 안타깝다.이러한 압사 사건은 외국에서도 일어났었다. 최근 10월 1일 인도네시아 동부 자바지역에서 벌어진 프로축구장 난동으로 174명이 사망하기도 했고, 작년 4월 이스라엘 종교축제에서 44명이 압사당하기도 했다. 이들처럼 평지에서도 질서가 깨어지면 군중들은 그 파도에 휩쓸리게 된다. 더구나 경사가 있는 폭 4m 길이 40m 정도의 좁은 골목길에서 300여 명의 사상자가 발생한 것은 아마 세계 기록이겠다. 우리가 자랑스러운 문화와 기술, 경제 대국으로 나아가는데 이러한 어이없는 사고가 났으니 외국 여러 나라도 놀라움을 금치 못하고 위로를 보내고 있다. 우리도 반성해야 한다. 정부는 용산구를 특별재난지역으로 선포하며 11월 5일까지를 국가 애도기간으로 정하고 합동 분향소도 설치하여 추모함과 동시에 사건의 원인을 찾고 있다.이번 사고로 외국인 관광객 유치 계획에 차질이 생길지도 모르겠지만 앞으로는 이러한 참사가 없도록 학생들뿐만 아니라 일반 시민들에게도 안전교육이 필요하겠다. 경찰과 소방대원을 도와 심폐소생술(CPR)을 하거나 환자를 이송하는 등 ‘얼굴 없는 의인들’도 많았다. 항상 준비하는 마음으로 일상생활에서의 사고에 대비하며 살아가야 한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친다’며 사고 난 후의 대책 마련에 핀잔을 주고 있지만, 그래도 외양간을 잘 고쳐서 이러한 일이 재발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이미 저질러진 일, 엎질러진 그릇이기는 하지만 희생자에 대해서는 진정한 애도의 마음을 품고 동시에 그들 가족과 그 현장을 목격한 사람들이 가지게 될 트라우마도 잘 치료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어야 한다.

2022-11-03

전 세계 탄소중립(Net Zero) 전환, 대만도 실행 돌입

린천푸 주한 대만 총영사 전세계의 탄소 중립을 실현하기 위한 전환 노력이 시작되었다. ‘파리 협정’은 국제 협력 메커니즘의 혁신적 규범도 점진적으로 발전해야 함을 강조함과 동시에, 모든 국가의 광범위한 협력을 필요로 함을 강조하고 있다. 대만은 국제사회와 협력할 의지와 능력이 있으며, 미래 세대를 위한 지속 가능한 환경을 보장하기 위한 전세계적인 탄소 중립 전환 노력을 실천해 나갈 것이다.대만은 세계 21위의 경제주체로 인도 태평양 지역의 경제적 번영과 안정에 중요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특히 대만의 반도체 산업은 국제 공급망에서 중추적인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신기술을 통해 생산과정에서 에너지 사용을 줄이고, 지속적인 반도체 혁신을 통해 전자 제품의 다양한 스마트 응용 프로그램을 구현해내고, 글로벌 에너지 절약을 추진해 나가고 있다.대만은 탄소 중립 노력을 구체적으로 실현하며, 이미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다. 2022년 5월까지 재생 에너지의 누적 설치 용량은 12.3GW로, 2016년에 비해 1.6배나 크게 증가했다. 그 결과, 2005년에서 2020년까지 대만의 GDP는 79% 증가한 데 반해 같은 기간 온실 가스 배출 총량은 45% 감소했다. 대만은 경제성장과 온실 가스 배출량이 더 이상 비례하지 않음을 보여준 사례로 평가받는다.대만 차이잉원 총통은 2021년 4월 22일 지구의 날, ‘2050 탄소중립 전환’ 추진을 발표했다. 곧이어 ‘대만 2050 탄소중립 배출 노선 및 정책’을 공표하고 “에너지, 산업, 생활과 사회” 등 4대 전환 정책을 추진하기로 했다. 동시에 ‘과학기술 RD’ 및 ‘연관 법안’을 2대 주요 기반으로 풍력/태양열, 수소 에너지, 미래 지향적 에너지, 전력 시스템과 에너지 저장, 에너지 절약 및 탄소 포집 저장 및 활용, 운송수단의 전기화 및 비탄소화, 자원 재활용과 제로 폐기, 천연 탄소 싱크(흡수원), 탄소중립 생활, 녹색 금융 및 공정한 변혁 등 12개 항목의 관련 정책을 통해 구체적으로 실행하고 있다.특히 지속가능 에너지, 저탄소, 재활용, 탄소 네거티브, 사회과학 등 5개 분야에서 탄소중립 전환에 필요한 과학기술 연구개발 기반에 속도를 더해가고 있다. ‘기후변화대응법’은 2050년 탄소 중립을 목표로 명확하게 설정하여, 기후 관리 효율성을 높이고, 기후변화 적응 전문 대책을 업데이트 및 정보 공개 및 대중 참여 강화해 나갈 것이다.또한, ‘탄소 가격 책정’ 메커니즘을 도입해 경제적 인센티브를 통한 배출 감소 촉진과 저탄소 녹색 성장을 주도하며, 점차적으로 기후에 대한 법적 기반을 완성해 나갈 방침이다. 대만은 2050년 탄소배출 제로 정책을 통해 경제성장을 촉진하고 민간 투자를 독려하며 일자리 창출 및 에너지 자립과 사회 복지를 향상시켜 대만 발전의 새로운 원동력이 되도록 할 것이다.안타까운 것은 대만이 정치적 편견으로 인해 국제기구에서 배제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로 인해 대만은 글로벌 기후 문제에 실질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길이 막혀 있다. 따라서 국제 상황을 실시간으로 파악하기 곤란하고, 관련 업무도 제대로 수행하기 어렵다. 이는 결과적으로는 전세계 기후 관리의 공백을 초래시킬 가능성을 높일 것이다.실제, 제한된 고유 에너지 보유 및 대외 무역 중심의 경제 시스템을 가진 대만이 만약 ‘파리 협정’과 연계된 국제 협력에 참여할 수 없다면, 향후 대만의 산업 녹색화 프로세스에 차질이 불가피하다. 또 국제 산업의 안정적인 공급망에도 큰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이다. 대만은 국제 감축 메커니즘에 공정하게 참여하지 못함으로써 글로벌 탄소국경조정제도에 따르는 위협에도 직면해 있다. 반도체 산업을 주도하는 대만이 탄소중립 실현 문제로 큰 타격을 입게 되면 이는 국제 협력의 효율성을 떨어뜨리고 세계 경제에도 피해를 주게 될 것이다.탄소 중립의 추진은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집단적, 세대적 책임이다. 국제사회가 함께 협력해야만 탄소 중립 목표를 달성할 수 있다. 지난 2년 코로나19 기간 동안, 대만은 이미 세계적으로 가장 우호적이고 잠재력 있는 나라임을 증명하였다. 대만은 글로벌 기후변화 대응을 위한 국제협력 메카니즘에 참여할 수 있는 기회를 동등하게 부여 받아야 한다. 국제사회에서 대만의 이러한 노력을 지지해 주기를 당부 드린다. 더 나아가 대만이 국제사회의 모든 분야에서 공정하고 의미 있게 참여할 수 있는 기회를 얻고 보장되기를 희망한다.

2022-11-02

심폐소생술

홍석봉정치에디터 심폐소생술(CPR)에 대한 관심이 부쩍 높아졌다. 이태원 참사가 계기다. 사고 현장에서 심폐소생술로 생명을 건진 이들이 많았던 때문이다. 참사 당시 현장에 CPR 방법을 아는 사람이 많았더라면 희생자를 줄일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이에 CPR 방법을 배우겠다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는 것이다.사고 당일 서울 이태원의 참사 현장에서 심정지 상태에 빠진 환자 수십 명이 도로 위에서 CPR 조치를 받았다. 다급한 상황 속에 한 명이라도 더 살려보려고 안간힘을 쓴 시민들의 사연이 SNS로 전해졌다. 사고를 목격한 의대생과 간호대생이 사고 현장에서 밤새 CPR을 했다는 글도 있다.이후 SNS와 인터넷에는 ‘자동심장충격기(AED)’ 사용법과 CPR 방법 게시물이 속속 게시됐다. 응급처치 강습 기관에도 시민 문의가 부쩍 늘었다.현재 초·중·고 학생은 학교에서 CPR을 포함한 응급처치 교육을 배운다. 군과 민방위교육, 산업현장 등에도 단골 프로그램이 됐다.심장마비 환자의 경우 목격자가 즉시 CPR을 하면 생명을 구할 수 있는 확률이 3배 이상 높다고 한다. CPR은 사람의 생명줄이나 다름 없는 것이다.심폐소생술은 심폐 기능이 정지하거나 호흡이 멎었을 때 사용하는 응급처치다. 병원에 도착하기 전까지 숨이 멎지 않도록 지연시킨다. 심정지가 발생하면 늦어도 4분 이내에 심폐소생술을 해야 한다. 병원 치료 때까지 계속해야 한다, 그래야 환자를 살릴 수 있다. 일부 논란도 있다. 여성에게 심폐소생술을 시도했다가 ‘성추행범’으로 몰릴 수 있다. 하지만 생명이 위험한 상황에서 이뤄진 심폐소생술은 긴급 처치만으로는 강제추행죄가 성립되지 않는다. 국민 모두가 심폐소생술을 배워야 할 때다./홍석봉(정치에디터)

2022-11-02

문화경쟁력

장규열 한동대 교수 대한민국이 문화로 떴다. K-pop과 한국영화의 성공이 줄을 이었다. 국경과 세대를 넘는 유행이 생겨났고 한국을 찾는 관광객이 늘어났다. 한국말 배우기 열풍이 일었으며 한국문화를 모방하려는 외국인들이 적잖이 보였다. 코로나 언덕을 넘으며 관심과 흥미가 더 높아지길 기대한다. 정치와 경제의 분위기가 조금씩 바뀌고 한국을 바라보는 바깥의 시선에도 변화가 있다. 글로벌시대의 역동성은 무엇이든 때에 따라 다르게 평가하고 해석한다. 한국과 한국문화는 그간의 긍정적인 이해를 지속적으로 누릴 수 있을까. 문화는 어떻게 경쟁력을 가질 수 있을까.우리만의 문화인가. 우리만 할 수 있는 스토리를 가지고 있는지 여부는 문화가 지속적으로 생명력을 가질 것인지를 결정한다고 한다. 다른 어느 곳에서도 만나지 못했던 콘텐츠를 보여주는가. 문화에 담긴 이야기를 그 곳이 아니면 들을 수 없을 때, 콘텐츠를 장소와 동일시하여 그 스토리를 만나고 경험하기 위하여 반복적으로 찾는다고 한다.케이컬처(K-culture)가 아니면 느껴보지 못할 감동과 맥락을 전달할 때, 우리 문화의 경쟁력과 영향력은 배가된다. 성공을 경험한 우리의 콘텐츠가 전혀 새로운 감동을 담고 있는지 끊임없이 살펴야 한다.문화가 젊어야 한다. 이야기가 세대를 관통하면서도, 특히 ‘다음세대’가 함께 즐기고 누릴 수 있을 때 문화는 경쟁력을 가진다. 전통적인 옛이야기일수록 오늘의 콘텐츠로 새롭게 만들어 전달해야 한다. 우리만의 오래된 이야기가 아무리 많아도, 젊은이들과 함께 호흡하지 못하면 생명을 잃고 가치를 전달할 수 없게 된다.문화적 자긍심은 세대를 넘어 전달이 가능할 때 그 힘을 발휘하게 된다. 문화적 환경이 글로벌하게 펼쳐질수록 콘텐츠를 오늘의 세대와 어울리도록 다시 만들어야 한다. 문화원형의 근원적인 생명력을 되살리기 위해서 젊은 세대와 함께 향유하는 문화적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초연결(super-connectedness)이 현실이 되었다. 지구상 어느 곳과도 실시간으로 연결되는 글로벌세상에서 문화도 그런 환경에 걸맞게 진화해야 한다. 이야기에 실렸을 가치와 내용을 적절하게 전달하고 공유해야 한다. 우리만의 전통과 기준을 고집하기보다 현재적이며 글로벌한 가치를 이끌어낼 가능성을 찾아야 한다. 세계인과 함께 즐기며 호흡할 콘텐츠를 지향해야 하고 끊임없이 그들의 반응을 관찰하고 반영하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기술과 방역, 경제와 한류로 쌓아온 나라의 저력을 지속적인 경쟁력으로 승화시키려면 우리의 이야기가 세계시민들과 함께 호흡하도록 다듬어야 한다.문화의 경쟁력은 그 콘텐츠가 독창적이면서 젊은 세대와 세계인의 감각과 함께 할 때 형성된다. 디지털과 초연결의 새로운 사회환경에도 주목하여 문화적 영향력을 만들고 확장하여 갔으면 한다. 나라의 영향력은 문화의 힘과 비례한다. 21세기 대한민국의 경쟁력은 케이컬처의 지속적인 성공으로 지지될 터이다. 경제가 바깥의 울타리를 만들어 낸다면, 문화는 속깊은 자긍심의 뿌리를 제공한다.

2022-11-02

이태원 핼러윈 참사와 트라우마의 치유

노승욱 포스텍 교수·인문사회학부 핼러윈 데이를 이틀 앞둔 지난달 29일 밤에 서울 이태원에서 참사가 발생했다. 비좁고 비탈진 골목길에 몰려든 대규모의 축제 인파가 넘어지면서 압사 사고가 일어난 것이다. 청춘들의 축제는 삽시간에 비극으로 탈바꿈했다. 현재 156명의 사망자 중에는 외국인도 26명 포함돼 있다. 전 세계가 서울 한복판에서 벌어진 참사에 놀라면서 애도를 표하고 있다.10만여 명의 인파가 쏟아져 나왔지만, 현장에는 200명도 안 되는 경찰이 배치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경찰 인력은 현장 통제보다는 범죄 예방에 집중했다고 한다. 보행자들이 몰린 골목길의 안전 관리는 사각지대에 놓여 있었던 셈이다. 앞뒤로 꽉 막힌 골목에는 안전도 꽉 막혀 있었다. 결국 사고 사흘 만에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과 윤희근 경찰청장이 대국민 사과를 했다.정부는 이번 달 5일까지를 국가애도기간으로 지정했다. 이태원이 속한 용산구는 특별재난지역으로 선포됐다. 참사를 미연에 막지는 못했지만, 정부 당국은 총력을 기울여 사고를 수습하고 재발 방지책을 마련해야 한다. 동시에 이번 사고를 직간접적으로 겪은 사람들에게 발생한 트라우마의 치유에도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대한신경정신의학회는 사고 다음 날 성명서를 냈다. 이번 참사로 사망한 분들의 유가족을 비롯한 많은 국민의 큰 충격이 예상된다면서 대규모 정신건강 지원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또한 여과 없이 사고 당시의 영상을 퍼뜨리는 행동을 중단하라고 촉구했다. 주목할 점은 현장 영상이나 뉴스를 반복해서 보는 행동이 스스로의 건강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음을 경고했다는 것이다.‘트라우마의 이해와 치유’의 저자인 캐롤린 요더는 텔레비전에 방영되는 사건을 보는 것만으로도 트라우마가 발생할 수 있다고 말한다. 직접적이든, 간접적이든 트라우마를 겪은 집단은 폭넓은 두려움, 공포, 무기력감, 분노 등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이다. 충격적인 사건이 많은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치게 될 때 이를 사회적 혹은 집단적 트라우마라고 부를 수 있다.필자는 포항 지진 일주년에 발표했던 연구 보고서에서 집단적 트라우마 체험을 조사한 바 있다. 당시 지진 진앙지와 인접했던 대학교의 학생과 교수를 인터뷰했었는데, 이들에게서 중층적인 트라우마를 발견할 수 있었다. 학생들은 지진으로 인한 일차적 트라우마와 함께 자극적인 언론 보도와 SNS 전파를 통한 이차적 트라우마를 겪고 있었다. 실제 지진보다 방송에 보도된 내용을 보고 더 큰 충격을 받았다는 교수의 말은 의미심장했다.이번 참사의 경우 참혹한 현장의 모습과 심폐소생술 장면 등이 방송과 SNS를 통해 전 국민에게 전해졌다. 언론에서는 사건 관련 보도를 할 때 유가족들의 심정을 한번 더 헤아려 주기 바란다. 시민들도 SNS를 통해 참사 현장의 모습을 공유하는 것을 자제해야 한다. 지금은 슬픔을 당한 분들을 위로하며 함께 울어야 할 때이다. 진심으로 서로를 보듬을 때 트라우마로 막혀 있던 마음에 치유의 길이 열린다는 것을 유념해야 한다.

2022-11-02

대한민국은 안전한가

김규인 수필가 SK CC 데이터센터의 화재로 국내 최대 플랫폼 기업인 카카오의 서비스는 멈췄다. 5천만 명이 이용하는 카카오톡, 3천700만 명의 카카오페이, 3천만 명의 카카오T 이용자는 일시에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돈이 있어도 물건을 사거나 점심을 먹고도 식사비를 치르지 못해 애를 먹었다.화재로 카카오톡뿐만 아니라 카카오페이, 카카오택시 등 관련 서비스가 모두 사라졌다. 영업하지 못하는 소상공인은 며칠 동안 빈 점포를 지켜야 했고 택시 기사는 울리지 않는 콜을 기다리며 손님을 찾아 나섰다. 이것도 지쳤는지 그늘에 차를 세워놓고 쉬고 있었다. 쉬는 것은 그들만이 아니었다. 카카오 서비스에 의존하는 대한민국의 일상이 멈춰버렸다.집안의 가장인 어린 소녀가 일하다가 기계에 끼어서 죽고 건축공사 현장은 사고가 끊이지 않는다. 오늘도 일어난 교통사고는 내일이면 다시 발생한다. 매일 일어나기에 사고는 일어나는 것이라고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것은 아닐까. 사고를 예측하고 미리 대비하지 않으면 정말 큰 사고가 일어난다.괴산에서 규모 4.1의 지진이 발생했고 핼러윈 축제에 참여한 많은 젊은이를 한순간에 잃었다. 한마디로 언제 어떤 상황이 발생할지 모르는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다. 여러 일을 겪으면서 우리의 삶이 일시에 멈출 수도 있다는 불안감에 휩싸인다.대한민국은 안전한가 하는 의문을 품지 않을 수가 없다. 이번 사태가 테러에 의한 것이 아니라 단순한 화재로 인한 것이기에 근심은 더 깊어진다. 대한민국을 혼란스럽게 할 불순한 목적으로 일을 저지른다면 꼼짝없이 당할 수밖에 없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서다. 의도를 가지고 계획적으로 달려들면 큰일이 날 수도 있겠다는 것은 나 혼자만의 생각일까.조선왕조실록을 보관했던 사고는 2층 건물로 1층을 띄워 지어서 아래쪽으로 바람이 통하고, 이중으로 담을 쌓아 사고 바깥을 둘러 산불이 나도 건물 안쪽으로 불이 번지는 것을 막았다. 지붕은 크게 지어서 비가 와도 건물 안으로 들이치지 못했다. 창문도 비를 막기 위해 처마 위쪽으로 바짝 높여 냈으며, 아래쪽에도 창문을 만들어 통풍이 잘되게 하였다. 멀리 떨어진 곳에 여러 개의 사고를 지어 실록을 보관했다.궤짝 안에 보관하는 실록도 기름종이로 덮고 오랜 보관으로 붙는 것을 막으려고 책과 책 사이는 질 좋은 종이를 끼워 뒀다. 약재를 넣어 벌레 침입을 막았으며 악귀를 쫓기 위해 붉은 보자기로 싸고 궤짝을 자물쇠로 채웠다. 기록의 나라 조선은 그저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철저히 준비하고 만일의 사태에 대비하는 마음이 있었기에 가능하다. 그러한 우리 민족의 철두철미한 유전자는 다 어디로 갔을까. 비용을 줄이고자 당연히 갖추어야 할 것을 미루고 독촉에 쫓겨 안전은 자꾸 뒤로 밀린다.까탈스러울 정도로 일을 처리하던 우리의 철저한 정신은 어디로 갔을까. 안전을 무시한 가운데 세계 일류는 만들어지지 않는다. 높이 올라가는 첨단의 기술일수록 그 토대는 튼튼해야 한다. 안전과 기술의 균형을 맞추고 서로를 위한 배려의 손길이 더해질 때 가능하다.

2022-11-02

솜사탕과 풍선

배문경 수필가 하늘엔 솜사탕 같은 구름이 뭉게뭉게 피어있다. 그 아래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십여 미터씩 줄지어 서 있다. 아이들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신나는 표정이다. 어른들도 옛 생각에 젖어 있다.신라문화제의 일환으로 각 기관이 행사를 진행했다. 경주문인협회에서는 향가 시 낭송대회와 독서삼품과 백일장을 개최했다. 가을이라 여기저기 놀이도 많고 볼거리도 많다 보니 사람들을 많이 모이게 할 행사로 성공하기 어려웠다. 그래서 생각한 것이 솜사탕과 풍선아트였다. 무료라는 배너를 설치하고 두 사람이 열심히 솜사탕 부스에서 분홍 설탕, 노랑 설탕, 보라 설탕을 넣고 동그란 솜사탕을 만들기 시작했다. 아이들이 엄마 손을 이끌고 와서는 하나씩 손에 쥐고는 달콤한 세상을 맛본다. 연인들의 표정도 달짝지근하다.하늘은 푸르고 아이들의 싱싱한 웃음이 공중으로 흩어졌다. 여기저기 장난치며 뛰노는 아이들이 있으니 대회는 사람들로 붐볐다. 긴 풍선에 기계로 바람을 넣자 길게 부풀어 올랐다. 순식간에 귀여운 푸들이 되고 해맑은 해바라기가 되었다. 천막 곳곳에 붙어있는 여러 모양의 풍선 모양에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선물을 받으려고 긴 줄이다.어릴 적 운동회가 생각난다.나는 달리기 선수였다. 파란색 체육복을 입고 만국기가 휘날리는 학교 운동장으로 들어서면 축제 분위기였다. 학교 입구 쪽은 커다란 가마솥에서 벌건 기름기가 도는 육개장이 김을 내며 끓고 있었다. 그 옆에는 낮술에 찌든 동네 아저씨 서넛이 소주잔을 기울이고 있었다.만국기가 운동장의 담장과 건물 기둥에 대각선으로 연결되어 펄럭였다. 나는 공책 서너 권을 옆구리에 끼고 집으로 갈 수 있다는 자신감에 들떠 있었다. 단거리 육상과 멀리뛰기 선수였기에 운동회 날은 휘파람 소리가 저절로 새어 나왔다.특히 바통을 이어받아 운동장을 반 바퀴 도는 릴레이 경기에서 운동회의 승부가 결정되곤 했다. 지고 있을 때 그것을 승리로 이끄는 사람이 결국 그날의 주인공이 되었다. 아슬아슬하게 상대방을 이기고 바통을 넘겨줄 때 숨은 턱에 차고 응원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울렸다. 여자아이들보다는 남자아이들이 결정적인 승리를 이끌 때가 많았다.그때도 운동장 한쪽에는 솜사탕을 만들어 팔던 아저씨가 있었다. 설탕을 한 숟가락 넣으면 빙빙 돌아가던 기계는 거미줄 같은 설탕 줄을 대신 내놓았다. 그러면 나무젓가락으로 휘휘 저어 나무젓가락 끝에 감기 시작했다. 그러면 하얀 솜사탕이 조금씩 커지기 시작했다. 아이들이 서로 기계 옆에 붙어 서서 눈을 떼지 못했다. 하나 사서 베어 물던 아이는 의기양양한 모습으로 한쪽을 떼서 입에 넣으며 약을 올렸다.내가 솜사탕을 먹었을 때는 달라붙던 설탕의 눅진함이 입과 손가락에 쩍쩍 붙었다. 설탕의 달달함이 지금도 느껴지는 듯하다.지나간 시간은 늘 기억에 풍선처럼 부풀려져 있다. 갖가지 색깔의 풍선에는 상상의 바람이 가득했다. 작게 불면 볼품이 없고 크게 아주 크게 불다 보면 제 부피를 넘어서서 ‘펑’하며 터져 조각나 버리던 풍선, 각각의 인생처럼 다양한 색으로 하늘을 수놓듯이 다양한 삶이 인생길을 만든다.부풀어 터질듯했던 유년의 기억 속 편린들이다. 다양한 색의 솜사탕처럼 갖가지 꿈들이 세상에 무지개를 만들던 시절이었다. 그때는 지금의 저 아이들처럼 한껏 아름다운 꿈을 지니고 내달릴 힘들이 넘쳤었다. 달콤하고 향긋한 나이가 있다면 초등학교 때가 아니었을까.그러고 보니 어느 사이 풍선은 힘이 빠져 탄력 없이 손아귀에 쉽게 잡힌다. 솜사탕은 부풀었던 설탕의 꿈들이 녹아 혓바닥과 손가락에서 달짝지근한 맛으로 스며든다. 나이를 먹는다는 것은 점차 부피가 줄어드는 것인지 모른다.한때 부풀고 달아올라 뭔가 새로운 세상을 향해 가슴 벅차던 시절을 지나오니 이젠 바람이 빠져 말랑하다. 편안한 중년의 오후다.

2022-11-02

예측 불가능한 해양생태계

몇 해 전 통영 사량도 앞바다에서 스노클링(물안경과 오리발, 스노클 정도의 간단한 장비들을 이용하여 잠수를 즐기는 스포츠)을 한 적이 있었다.바다 속 해초를 보며 물 위를 둥둥 떠다니는데 갑자기 신기한 물고기 하나가 눈에 띄었다. 꼬리에 형광물질을 묻힌 듯한 모습은 기존 우리가 알던 물고기와 사뭇 달랐다. 자세히 살펴보니 형형색색의 무리들이 산호와 해초 사이를 유영 중이었다. 백화현상으로 곳곳이 하얗게 변한 바닥과 열대어 모습의 물고기까지 마주하니 묘한 감정이 일었다. 우리나라 대표적인 청정해역에서 직시한 바닷속 풍경은 예상보다 훨씬 빨리 변하고 있었고, 그래서 더욱 가슴 아팠다. 바다사막화와 기후변화, 급격하게 다가오는 우리의 뼈아픈 현실이었다.이런 상황을 반영하듯 해양수산부는 지난 달 ‘기후변화가 바꾼 우리 바닷속 풍경’이라는 제목의 도감을 발간했다. 우리 바다에 살고 있는 대표적인 열대·아열대 해양생물 180종의 생태학적 특징을 담은 도감으로, 해양생태계의 변화를 그려냈다고 한다. 통영 사량도 일대에서 봤던 어종이 실제 아열대 해양생물임을 확인하는 순간이자, 해수온 상승으로 우리 바다 생물들이 북쪽으로 이동 중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지피지기 백전백승. 즉, 열대·아열대 해양생태계의 특성을 알아야 우리 바다의 변화에 대응 가능하다는 부연 설명도 함께였다. 도감에 따르면, 남해안의 대표적인 어패류인 소라는 300km가 떨어진 경북 울진에서도 서식이 가능하며, 기수갈고둥 역시 경북 울진에서 강원도 삼척까지 활동반경을 넓혔다고 한다. 그만큼 바다가 따뜻해지고 그에 맞춰 해양생물들도 이동 중이라는 의미다.기후변화로 인한 해수온과 해류의 변화는 해양생태계의 서식지 이동뿐만 아니라 생태계의 예측불가능성을 불러오기도 한다. 대표적인 경우가 최근 남해안과 부산에 출몰한 정어리 떼다. 지난달부터 정어리 떼 수만 마리가 마산과 부산 일대에 나타났다. 마산만의 경우 좁은 해역에 정어리 떼가 갑자기 유입돼 산소부족으로 집단 폐사하는 일이 발생했다. 부산에서는 떼 지어 이동하다 다시 종적을 감추었다고 한다. 국립수산과학원이 원인규명에 나섰지만 아직 뚜렷한 이유를 찾지 못하고 있다. 다만 과거 개체수가 많았던 정어리 떼가 수십 년째 줄어들다가 최근에 다시 늘어났을 것이라고 짐작할 뿐이다. 이는 최근 동해에서 잡히기 시작한 참치와 비슷한 맥락이다.동해에 참치(참다랑어)가 잡히기 시작한 것은 2018년부터다.열대·온대성 기후에 사는 참치는 원양어업의 대표적인 어종으로 국내에서는 찾아보기 힘들었다. 수온 상승으로 참치 떼가 한반도까지 이동하면서 정치망(자루 모양의 그물에 테와 깔때기 장치를 한 어구로, 대상 생물이 들어가기는 쉬우나 되돌아 나오기 어렵도록 장치한 그물)에 걸리기 시작했고 어민들은 이를 어판장에 내다 팔았다.하지만 국제적인 쿼터에 묶여 있는 참치를 모두 처분하는 데에는 한계가 따랐다. 결국 어민들은 그물에 걸린 참치를 먼 바다에 버리기 시작했고, 최근에는 그 사체들이 해류에 떠밀려 동해안 해수욕장을 덮치는 일까지 발생했다. 지금도 동해어민들이 쿼터제를 폐지해달라고 시위하는 이유다.기후변화로 해양생태계가 변하는 일은 이제 일상이다. 그래서 어족자원이 고갈되거나 어종이 다변화하는 등의 생태계 흐름에 능동적인 대응이 어렵다. 원인을 찾고 피해를 최소화하고 그에 걸맞은 제도를 개선하는 등의 후속조치가 따를 뿐이다. 세상 모든 이치가 그렇듯이 예측불확실성은 불안을 낳는다. 생태계라고 해서 다르지 않다.해양생태계의 이상 현상은 우리가 대처하기 어려운 상황들을 촉발시키고 이를 반복할 확률이 높다. 원인을 알지 못하기 때문에 전혀 다른 인과에서 문제가 발생하기도 한다. 정현미 작가 당장 참치 쿼터제를 풀면 갑자기 늘어난 어족자원으로 이득을 취할 수 있다. 어민 뿐만 아니라 소비자 역시 고급어종의 횟감을 즐길 수 있다. 다만 마구잡이 참치어업으로 멸종위기에 처했던 전철을 또다시 밟을 수 있을 것이다. 참치는 쿼터제 덕분에 다시 개체수가 늘었다는 가설이 현재 가장 설득력 있다. 동시에 참치의 증가로 다른 어종에서 피해가 발생할 수도 있다. 우리가 알지 못하는 생태계의 오묘한 균형은 언제, 어디서든 일어나고 있기 때문이다.해양생태계의 예측불가능성은 앞으로 더 자주, 더 많은 어종에서 발생할 것이다. 기후변화가 가져올 모든 가능성을 현재의 기술로 예측하는 것이 어려울 뿐만 아니라 생태계의 자정능력 역시 전혀 다른 방향으로 작용할 수 있다. 적극적이고 능동적인 대응이 필요한 이유이자 기후변화를 늦춰야 하는 당위다.빠른 시일 내에 정어리 떼가 출몰한 이유를 알아내고 열대어종 180종이 아닌, 더 많은 어종의 도감이 계속 발간되길 기대해본다.

2022-11-02

욕망만 간단히

몇 해 전, 2학기 첫 수업에서 동급생들보다 예닐곱 살 많은 한 학생이 재직증명서를 내밀며 방송작가로 일하고 있어 출석이 어렵다고, 대신 매주 과제를 성실히 제출하겠다며 출석에 관한 양해를 부탁했다. 취업자의 대체 출석을 조건부 허용하는 학칙도 있고 해서 ‘성실한 과제 제출’을 전제로 허락했다. 매 학기마다 1주차에는 수업 소개, 진도 및 평가 계획, 목표 등을 안내하고, 표절, 무단인용, 중복제출 등 창작물과 과제물에 대한 창작윤리를 강조한다.이스마일 카다레의 ‘꿈의 궁전’을 읽고 어느 부분이 매혹적인 판타지로 다가왔는지를 짧게 써 내는 것이 첫 번째 과제였다. 출석 인정을 해줘서 감사하다는 인사와 함께 메일에 첨부된 과제물을 열어보았다. 어느 블로그에 올라와 있는 책 리뷰를 그대로 긁어서는 종결어미와 부사만 슬쩍 바꿔 자기 글인 양 제출한 것이었다. 2주차 수업에서 출석을 부르며 한 사람씩 과제 피드백을 해줬는데, 자리에 없는 그 학생 순서에서 “(책을) 안 읽고 쓴 것 같아요… 짜깁기한 것 같은데”라고 말했다. 다른 학생들에게도 경각심을 주고 싶었다.내가 한 이야기가 그 학생에게 전해졌는지 수업 이틀 뒤 “제가 없는 자리에서 제 이야기를 나쁘게 하셨다면서요? 직접 연락해 말씀하셔야지, 그렇게 뒷담화하시니까 불쾌하네요” 하는 장문의 항의 문자를 받았다. 없는 자리에서 이야기한 건 불쾌할 수 있겠다 싶어 그 부분을 사과했다. 또 한 번 날이 선, 나를 훈계하는 투의 문자가 날아들었다. 답을 하려다 이게 뭐하는 짓인가 싶어 관뒀다. 울릉도 도동 터미널에서 포항으로 가는 여객선을 기다리던 환한 가을날이었다.불쾌하긴 했지만 금방 잊어버렸다. 행여나 감정적으로 불이익을 준다고 여길까봐 그 학생의 과제물과 시험답안은 객관적으로, 아니 더 너그럽게 평가했다. 학칙은 취업 학생에게 줄 수 있는 점수를 제한하고 있는데, 그 범위 안에서 최고점을 줬다.그리고 1년쯤 지난 어느 날, 그 학생으로부터 메시지가 왔다. 미리보기 화면에는 “선생님, ㅇㅇㅇ입니다. 이번에 제 책이 나왔습니다”까지 적혀 있어 내게 책을 보내주려 주소를 묻는 건줄 알았다. 메시지를 열어보니 온라인 서점 구매 링크와 함께 “관심 부탁드립니다”라고 써져 있었다. 인사말 같은 건 없었다. 씁쓸했다.지난 학기 성적 입력을 마치고, 한 학생으로부터 성적 정정 요청 메일을 받았다. 아주 길게 써내려 간 장문에는 수업에 대한 칭찬, 감사 인사와 함께 자신이 왜 A+를 받지 못했는지 의아하다는 질문, 자신이 얼마나 성실하고 뛰어난 학생인지 설득하려는 주장, “교수님의 강의가 제 인생에서 큰 깨달음을 준 수업으로 기억될 것 같습니다. 하지만 부디 그 기억이 조금이라도 더 긍정적으로 기억되게 도와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라는 귀여운 협박(?)까지 담겨 있었다. 이병철 문학평론가이자 시인. 낚시와 야구 등 활동적인 스포츠도 좋아하며,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다음날, 안타까움과 미안함을 담아 답메일을 보냈다. 그 학생 성적을 올려주면, 다른 학생을 내려야 하기 때문이다. 성적은 정정할 수 없지만, 미안한 마음을 담아 내가 쓴 책들을 보내주고 싶었다. 혹시라도 받길 원한다면 주소를 남겨달라고 했다. 메일을 보냄과 거의 동시에 ‘수신확인’ 상태가 ‘읽음’이 되었다. 아마 정정 요청이 받아지기만을 기다리고 있던 모양이다. 빠뜨린 내용이 있어 10여분 뒤 메일을 하나 더 보냈다. 마음이 몹시 상했는지 나중에 보낸 메일은 내내 읽지 않다가 닷새쯤 지나서야 읽었다. 두 개의 메일을 보냈지만 아무런 답이 없었다. 자기 필요에 의해 할 말을 했고, 요구가 관철되지 않았으므로 더는 용건 없다는 것일 테다. 이 학생에게 주려고 포장해놓은 책 꾸러미를 풀었다. 씁쓸했다.요즘 학생들이 생각하는 ‘용건만 간단히’의 의미가 이런 것일까? 요즘 세대는 더 이상 예의를 배우지 않는다. 나도 아직 30대이고 미혼이지만, 3040 부모들이 “하고 싶은 대로 다 해”, “우리 애한테 왜 그래요” 방식으로 아이를 키우는 게 영 마뜩찮다. 부모의 훈육 탓만은 아니다. 각자도생의 이기적 사회 풍조에서 젊은 세대가 배울 만한 어른이 없다는 생각도 든다. 그렇게 점점, 사람과 사람 사이에 ‘마음’은 사라지고 ‘욕망’만 남는 듯하다. MZ세대의 ‘용건만 간단히’는 어쩌면 ‘욕망만 간단히’가 아닐까? 씁쓸하다.

2022-11-01

마라탕의 인기는 어디까지?

최근 집근처에서 산책을 하다 깜짝 놀랐다. 최근 2-3년 사이에 마라탕 가게가 부쩍 늘었다는 게 확연히 눈에 띄었기 때문이다. 마라탕은 2010년대 중국인과 유학생을 대상으로 알려지기 시작했고, 특히 최근 3-4년부터 마라탕 열풍이 지속되며 약 32개의 마라탕 브랜드가 국내에 생겨났다. 그 중 일부는 100개 이상의 프랜차이즈 사업을 펼칠 정도로 활발한 행보를 보여주고 있다.마라탕이란 중국 쓰촨을 기반으로 하여 둥베이 지방을 거쳐 만들어진 중국 요리다. 한자로 마(痲)는 저리다 혹은 마비 라는 뜻을 지녔고, 라(辣)는 맵다, 탕(71D9)은 뜨겁다는 뜻을 지녔다. 초피나 팔각, 정향 등 다양한 향신료를 가열해 향을 낸 기름에 육수를 부은 다음 채소나 고기, 버섯, 두부 등의 식재료를 넣고 끓이는 탕요리다.마라탕의 유행은 계속되고 있다. 네이버 기준 검색량 키워드를 조회해보았을 때 ‘마라탕’의 월간 검색량 조회수는 총 40만건으로 나타났다. 연령별 검색 비율은 10대 27.7%로 가장 높게 나왔고, 그 다음은 20대 27.6%로 나왔다. 더 재미있는 건 여성의 비율과 남성의 비율이 확연히 차이가 난다는 점이었는데, 여성은 73.0%, 남성은 26.9%로 조사되었다. 10대 대표 간식이라 불리는 ‘떡볶이’의 월간 검색량은 월 24만 8천건이었다. 떡볶이의 24만 보다 훨씬 높은 40만 건이라는 검색량은 마라탕의 인기가 얼마나 대단한지 실감해볼 수 있었다.또한 마라탕 선호가 성별과 연령대에 따라 다르게 나타난다는 조사 결과도 있다. 2022년 7월 기준으로 한 카드 회사가 체크카드를 발급한 회원의 ‘음식점 이용금액’ 소비 패턴을 분석했더니, 중·고등학생 여학생의 마라/샹궈 음식점 이용금액이 3위를 차지했다. 4위는 떡볶이가 뒤따랐다. 반면 중고등 남학생은 1위 배달/야식, 2위 햄버거, 3위 커피전문점으로 마라/샹궈 음식점에서의 이용금액은 순위에 없을 정도로 두드러져 보이지 않았다.이렇게 Z세대 여학생 사이에서 마라탕이 유행한 이유는 뭘까? 알싸하고 자극적이라 국물조차 먹지 않는다는 중국 마라탕과는 달리, 한국 마라탕은 대부분 사골 국물을 주로 쓴다. 매운 국물에 푹 절여진 야채와 고기 그리고 어묵을 한꺼번에 먹을 수 있어 국밥만큼이나 든든한 한끼라는 특징이 있다. 또한 한국 특유의 달거나 시원한 매운 맛이 아닌, ‘알싸하고 얼얼한 매움’은 마라탕에서만 즐길 수 있는 낯설고 이국적인 맛을 지녀 더욱 중독성을 지닌다.또한 마라탕은 내가 원하는 재료를 마음껏 커스터마이징해서 먹을 수 있단 특징이 있다. 먹고 싶은 채소와 고기, 어묵, 해산물 등 수십 가지 재료를 취향대로 담아 카운터에 내면 무게에 따라 가격을 책정한 뒤 주방에서 조리를 한 다음 내어준다. 금액 또한 저렴하다. 기성세대는 이러한 주문 방식이 다소 번잡하고 귀찮게 느껴질 수 있지만 Z세대는 자신의 입맛과 취향, 그리고 개성을 반영하는 과정을 즐기고 소비한다는 점이 흥미롭다. 윤여진 2018년 매일신문 신춘문예 시 부문에 당선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현재보다 미래가 기대되는 젊은 작가. 마라탕의 유행 덕분에 인터넷뿐만 아니라 마트나 슈퍼에서도 마라탕 소스나 각종 향신료, 재료 등을 쉽게 구매할 수 있게 되었다. 국내 대형 식품회사에서 한국인 입맛에 맞추어 자극적인 향신료를 빼고 사골 육수를 사용한 마라 소스를 앞다투어 출시하고 있어, 기호대로 선택할 수 있단 이점이 있다. 또한 하이디라오나 라오간마 등의 중국 현지에서도 유명한 브랜드 상품도 쉽게 찾아볼 수 있고, 요리 과정 또한 쉽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집에서 직접 마라탕을 만들어 먹기도 한다. 유튜브에선 이미 마라탕 먹방(마라탕 만들기)’ 영상이 조회수 964만회를 기록하고 있고, ‘야식으론 절대 먹지 마라 마라탕’이란 제목을 가진 동영상은 약 734만회라는 조회수를 지니고 있을 정도다.이젠 길거리를 걷다보면 마라탕 외에도 마라 국밥이나 마라 떡볶이, 마라 라면, 마라 부대찌개, 마라 치킨 등 마라를 활용한 다양한 음식이 출시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하지만 마라탕은 나트륨이 많은 음식이라 자주 먹게 된다면 고혈압이나 심혈관 질환 같은 질병에 노출될 수 있다. 되도록 국물을 마시는 건 자제해야 한다고 하지만, 입이 얼어붙은 듯한 마라의 얼얼한 중독성에 빠지게 되면 국물을 참을 수 없게 된다. 특히 날이 쌀쌀해진 저녁엔 각종 채소를 넣은 마라탕이 생각난다. 맛있는 음식으로 오늘의 스트레스를 잠시 잊을 수 있다니, 단순하고 가벼운 쪽으로 마음이 기우는 가을날이다.

2022-11-01

국가애도기간

우정구 논설위원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이 서거하자 영국 정부는 장례식이 있는 날까지 국가애도기간으로 정하고 애도와 관련한 지침을 발표했다.“행사 및 스포츠 경기를 취소하거나 연기하는 것을 고려할 수는 있지만 의무 사항은 아니다. 개별조직의 재량에 달렸다”고 했다. 하지만 많은 단체가 애도지침을 수용하고 여왕의 국가공헌을 기리고 존경의 뜻을 표시했다. 영국의 가장 전통있는 백화점 중 하나는 그날 매장을 닫았다.또 노동계는 파업을 중단하고, 일부 금융기관은 금리 인상을 일주일 연기하는 결정도 했다.국가애도기간은 사회에서 존경받는 사람이 사망했거나 많은 희생자를 낸 사고가 발생했을 때 국가가 그들을 애도하고 추도하기 위해 정한 날이다.우리나라는 2010년 천안함 피격사건으로 46명의 용사가 순직한 사건이 발생했을 때 그들의 애국정신을 기리기 위해 애도기간을 정한 바 있다.155명의 희생자와 152명의 부상자를 낸 이태원 핼로윈 참사와 관련해 정부는 오는 5일까지 애도기간으로 정했다. 이 기간 동안 관공서는 조기를 게양하고 공무원은 근조리본을 달고 근무하며 그들의 희생을 애도한다.우리 역시 강제된 요구는 없다. 그럼에도 각종 행사들이 줄줄이 취소 내지 연기되었다. 방송의 주말 연예프로그램도 결방하고 연예인의 팬미팅조차도 연기가 되는 추모 분위기가 이어지고 있다.애도기간 동안 국민 모두는 숙연한 마음가짐으로 그들의 넋을 위로하는 추모의 시간을 갖는 것이 올바른 태도다.특히 꽃다운 젊은이의 목숨을 지켜주지 못한 기성세대는 그 책임을 통감하고 통렬한 반성의 시간을 갖는 기간이어야 한다./우정구(논설위원)

2022-11-01

지금은 政爭·혐오 발언 자제할 때다

심충택 논설위원 서울 이태원 핼러윈 참사와 관련해 여야가 지난달 31일 정쟁을 중단하자고 뜻을 같이했지만 그야말로 작심삼일(作心三日)이다. 주호영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사고 직후 의원들에게 지역구 활동을 포함한 모든 정치·체육활동을 중단하라는 긴급 메시지를 보냈다. 당 지도부가 보낸 공문에는 언행 주의, 불필요한 공개 활동·사적 모임 자제, 음주 행위나 사회관계망서비스(SNS) 게시 자제 등의 내용이 담겨있었다.더불어민주당도 이태원 참사가 발생한 이후 긴급 최고위원회의를 열고 초당적 협력을 약속했다. 이재명 대표는 “무엇보다 사고 수습에 만전을 기해야 할 때다. 정부의 사고 수습과 치유를 위한 노력에 초당적으로 적극 협력하겠다”고 약속했다. 민주당은 당 대표실 뒤에 걸린 ‘야당탄압 규탄! 보복수사 중단!’ 문구를 하얀색 천으로 가리기도 했으며, 주호영 대표는 민주당과 이재명 대표에게 감사하다는 인사까지 했다.그렇지만 정치인들의 자제는 여기까지였다. 청년들의 안타까운 죽음을 정쟁의 도구로 이용하려는 듯한 조짐이 민주당에서 나타나기 시작했다.민주당 정청래 최고위원은 현 정부를 겨냥해 “일방통행 조치만 있었어도, 안전 요원을 배치만 했어도, 인파의 흐름을 모니터링만 했어도 일어나지 않을 사고였다. 정부와 서울시는 주최 측이 없는 행사였다고 말하지 말라”며 정부·지자체 책임론을 제기했다. 고민정 최고위원은 “서울시에서 관리하고 있는 서울교통공사에서 지하철 무정차 통과를 시켰을 법도 한데 이것도 조치가 이루어지지 않았다”고 비난했다. 방송인 김어준씨도 “이 사고를 정치적으로 이용하지 말라고 하는데, 아니다. 이건 정치 문제가 맞다”며 끼어들었다.우리 국민 모두에겐 지난 2014년 발생한 세월호 참사가 아픈 트라우마로 남아 있다. 그 당시 정치권이 앞장서 진행한 극단적인 진영싸움은 지금도 여전히 진행 중이다.앞으로 이태원 참사의 충격은 한동안 지속될 것이다. 청년들의 허망한 죽음을 슬퍼하는 국민들 앞에서 정치권이 이를 정쟁의 도구로 삼는 듯한 언행을 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대표적으로 참사가 발생하자마자 민주당 민주연구원의 남영희 부원장이 윤석열 대통령 하야를 주장한 것은 사회혼란만 부추기지 사고수습에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비판이다. 남 부원장 발언 이후 약속이나 한 듯이 SNS나 각종 댓글에서 대통령 탄핵을 주장하는 등의 정치적 발언이 이어지고 있다. 지금 온라인에는 이태원 참사와 관련한 각종 유언비어와 가짜뉴스가 번지고 있다. 특히 희생자를 조롱하거나 혐오하는 내용의 게시물도 올라와 유가족들의 슬픔을 가중시키고 있다.지금 우리가 할 일은 희생자 명복을 빌고 그 가족의 슬픔을 나누는 것이다. 성숙한 시민 의식으로 정부의 사고 수습과 원인 규명, 지원책 마련을 차분히 지켜봐야 한다. 근본적으로 왜 이런 사태가 발생했는지를 따져보고 또 대책을 마련해서 두 번 다시 유사사례가 재발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래서 국가애도기간을 일주일 간으로 정한 것이 아니겠는가.

2022-11-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