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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수산물 유통환경의 미래

노르웨이산 고등어가 우리 식탁을 점령한지 꽤 됐다. 음식점 뿐만 아니라 각 가정에서도 손쉽게 노르웨이산 고등어를 구입해서 먹는다. 우리가 알던 그 고등어는 맞는데, 대신 좀 더 크고 통통한 게 특징이다. 수산강국인 노르웨이는 수산물 관리와 유통의 선진화로도 유명하다. 대형 어선에서 잡은 고등어가 선박 위의 컨베이어벨트에서 내려져 위판장의 자동선별기로 이동하는 모습은 노르웨이 수산업을 상징하는 대표적인 장면 중 하나다. 크기별로 선별 돼 담긴 박스는 차곡차곡 쌓여 경매 후 바로 냉동 창고로 보내진다. 양륙과 선별, 위판 어느 단계에서도 사람과의 접촉은 없다. 우리의 모습과는 사뭇 다르다.우리에게는 당일 잡힌 각종 수산물이 수협 위판장의 바닥에 깔려 경매하는 모습이 익숙하다. 물론 경매가 끝난 후에도 나무 상자에 실려 바닥에서 선별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앉은뱅이 의자에 앉은 7,80대 어르신들은 날렵한 손놀림으로 선별과 손질을 끝낸다, 그렇게 매일 항구 어귀에 마련된 널찍한 공간은 천막을 친 어판장이 되고, 경매가 끝난 휑한 공간은 주차장이나 빈 공간으로 남는다. 수산물 유통단계의 위생안전을 논하기에는 아직 갈 길이 먼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국내 수산물의 위생 및 유통관리와 달리, 수입수산물의 유통관리는 당장의 국민 먹거리 안전과 직결된다. 특히 일본 후쿠시마 인근의 수산물 안전이 비상이다. 이미 해양수산부 등 관계당국은 원전 사고 후 국제적 방법을 동원해 일본 후쿠시마 인근의 수산물 수입을 금지하고 있다. 당장의 문제는 내년부터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가 방출될 경우다. 일본은 2023년부터 오염수를 방출한다고 발표했다. 해류의 방향 등 조건을 따지면 우리에게 직접적인 영향이 미치는 것은 수년 후라고 하지만 불안감은 여전히 높을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후쿠시마 인근 뿐만 아니라 일본 전역의 수산물을 모두 수입 거절하기에도 한계가 있다.‘수입수산물 유통이력 제도’가 실효를 거둘 수 있도록 정부의 강력한 대응이 필요한 이유다. ‘수입수산물 유통이력제’는 해양수산부 장관이 고시하는 수산물을 수입하거나, 국내에서 거래하는 경우 유통단계별 거래명세를 의무적으로 신고하는 제도다. 식품 위생 및 안전 문제가 발생하면 강제적인 대응이 가능해 수입수산물 관리에 가장 우선시된다.사실 수입 수산물 뿐만 아니라 국내 수산물도 이력제를 시행하고 있다. 생산자와 중도매인 등 수산물을 취급하는 업체에서 ‘수산물 이력정보시스템’을 등록하면, 최종 소비자가 이를 확인할 수 있는 ‘수산물 이력제’가 운영 중이다. 다만, 강제성이 없고 업체에서 생산·유통·가공 과정에서 영업 정보 유출을 우려해 활성화되지 못했다. 해양수산부는 이 같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수산물 이력제의 정보를 ‘생산이력’으로만 단순화시키고, 이력마크가 부착된 수산물은 정부가 인정하는 제품이라는 사실을 적극 홍보하고 있다. 생산이력으로 공개정보를 국한시켜 업체의 수산물 이력제 동참을 이끌어내려는 복안인 셈이다. 물론 소비자들의 알권리를 충족시키고자 하는 의미도 담겼다.실제 많은 소비자들은 수산물을 구입할 때 가격보다는 신선도와 원산지를 중요시한다고 한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에서 조사한 식품소비행태조사에 따르면, 소비자들은 수산물의 신선도를 가장 중요시하며 그 다음으로 원산지와 수산물 외관을 확인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생산이력으로만 정보를 국한시켜도 일반 소비자들의 알권리는 어느 정도 보장되는 것이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수산물 위생과 안전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높은 것이 사실이다. 신선도가 가장 중요한데도 직거래 활성화가 더디고, 여전히 복잡한 유통단계를 거치기 때문이다. 코로나19의 여파로 수산물의 직거래가 비약적으로 늘었지만 전체 물량으로 따지면 여전히 미비한 수준이다. 얼마 전 우리나라 대표 이커머스(전자상거래) 업체가 한 지자체와 손잡고 수산물 직거래를 시작한다는 소식이 대대적으로 보도되기도 했다. 중간업자가 경매하는 등의 유통과정을 생략하고 산지 위판장에서 이커머스 업체가 주문과 재고관리, 배송을 완전히 맡아 직거래하는 형태다. 당연히 많은 이들의 관심을 받고 있다. 정현미 작가 이와 함께 해양수산부도 ‘청정 위판장 모델 구축사업’과 ‘수산물 유통단계 위생안전 체계 구축’에 나서고 있다. 즉, 위판장을 천막수준의 바닥 선별장이 아닌, 위판장과 하역장을 분리하고 저온경매가 가능한 시설을 만들겠다는 계획이다. 또 폐쇄형 구조로 저온 경매장을 만들고 자동선별기와 저온차량도 갖출 예정이라고 한다. 문제는 예산이다. 정부는 청정 위판장 모델 한 곳을 구축하는 데에도 수십 억 원이 소요될 것으로 예상한다. 실제 영광군 수협과 서천군 수협 등 4곳이 사업 대상으로 선정, 위판장의 변신을 꾀하고 있다.위생과 안전, 선진화 등에는 항상 그렇듯이 예산이 수반된다. 소득 수준이 높을수록 건강식으로 알려진 수산물의 섭취가 는다는 것이 정석이다. 우리나라 역시 최근 10년 사이 수산물 소비가 크게 늘었다. 국내 수산물 뿐만 아니라 수입 수산물의 소비량도 점차적으로 늘고 있다.시장이 커지면 당연히 선진화가 따라야 한다. 먹거리일 경우 더욱 그렇다. 우리나라의 위판장이 북유럽 국가의 모습을 재현하는 데에는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수산물의 위생과 안전이 현장에서부터 확고히 자리매김할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2022-10-19

마약드라마 ‘수리남’, 남의 일 아니다

심충택 논설위원 지난 2001년 5월, 대구사회에 마약투약자가 엄청난 속도로 확산되면서 빅뱅(Big Bang) 현상을 일으키고 있다는 기사를 쓴 적이 있다. 1980년대까지만 해도 연예인이나 유흥업소 종사자들의 전유물로 여겨져온 마약이 농민, 회사원, 주부, 대학생 등 ‘보통사람’에게까지 급속도로 번지고 있다는 내용이었다.당시 대구경찰에 붙잡힌 마약사범 기사를 찾아보니, 한 30대 주부는 살을 뺀다는 단순한 생각에 중국산 마약을 상습투약했고, 대학에 갓 입학한 한 학생은 히로뽕을 팔다 경찰에 붙잡혔다. 그 당시 경찰에 적발된 마약사범은 한해 전국적으로 1만명을 넘어섰다. 중국과 동남아 등지에서 값싼 마약류 밀수입이 급증하고 경제난으로 생활이 힘들어지면서 마약에 빠져드는 사람이 많았기 때문이다.빅뱅의 원인은 지금처럼 밀매책을 잡기도 어려웠지만 신종마약이 시장을 장악했기 때문이다. 마약이 살 빼는 약, 술 깨는 약, 정력제로 둔갑해 투약자들이 자신도 모른 채 중독이 되고 있었던 것이다. 그때 유행한 마약은 중국산 펜플루라민과 ‘도리도리’라고 불린 엑스터시(MDMA), 히로뽕에 카페인을 섞은 야바(YABA) 등이다. 가격이 2천~3천원대이고 알약형태로 돼 있어 누구가 쉽게 복용할 수 있었다.대검찰청이 지난 주말(14일), 마약과의 전쟁을 선포했다. 20년 전에도 우려했던 마약빅뱅이 현실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대검은 서울과 인천, 광주, 부산지검에 마약류 범죄만 담당하는 특별수사팀을 가동한다고 밝혔다. 이 수사팀엔 관세청·국정원·식약처 전문인력도 합류한다.검찰 통계에 따르면 올해 1월부터 7월까지 검거된 마약 사범만 모두 1만575명이다. 지난해 검찰이 압수한 마약은 1천296kg 정도인데, 5년전인 2017년(154.6kg)과 비교하면 8배가 늘어났다.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2.9%가 늘어난 수치지만, 실제 투약자는 상상을 초월할 것으로 보인다. 19세 이하 마약사범도 매년 가파른 증가세를 보인다.스마트폰이 보급되고 마약 유통경로가 온라인으로 음성화되면서 마약단속과 수사가 점점 어려워지는 것이 주요 원인이다. 이원석 검찰총장도 “집 안에서 마약을 SNS로 피자 한 판 값에 ‘직구’ 하는 것이 현실”이라고 했다.마약범죄를 근절시키기 위해선 검찰과 경찰 수사에 모든 국민이 협조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한번 손을 대면 영원한 파멸’이라는 말도 있듯이, 마약은 뇌를 망가뜨리고 투약자를 노예로 만든다. 환각과 환청에 시달리거나 금단현상으로 온몸을 떨며 고통받는 결말만 기다리고 있다. 마약에 중독됐다고 판단되는 사람들은 혼자서 고민하지 말고 하루라도 빨리 전문진료소를 찾아 치료를 받아야 한다.치료가 어렵지 않고 치료비도 무료라고 한다. 그리고 우리사회도 마약사범을 중범죄로 취급해서 정신병원에 입원시키는 것조차 꺼리는 풍토를 없애야 한다. 가정과 유흥업소, 캠핑장, 차량 안에서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독버섯처럼 퍼지는 마약을 잡지 못하면, 우리사회는 인기드라마였던 ‘수리남’과 같은 마약공화국이 된다.

2022-10-18

흔들리는 건강보험 재정

우정구 논설위원 의료보험제도는 우리나라의 대표적 복지정책의 하나로 손꼽힌다. 미국의 오바마 전 대통령도 극찬을 했다는 한국의 의료보험 시스템은 세계 최고 수준이라는 평판도 받는다.경제 대국인 미국은 개인의 의료비 지출이 세계 최고이면서 건강 수준은 OECD국가 중 하위권이다. 의료기관들 대부분이 사설기관에 의해 운영됨으로써 개인이 부담해야 하는 의료비가 상당하기 때문이다. 의료비 때문에 연간 수백만명이 가계 파산에 이르고 의료채무가 미국인 파산의 주요 원인이라고 하니 잘 사는 나라 미국의 아이러니다.의료보험제도란 여러 사람이 의료비를 모아 지불함으로써 많은 비용이 드는 의료서비스에 대한 부담을 줄이고 비용대비 효과를 극대화 하겠다는 제도다.문재인 전 대통령의 정책 가운데 가장 자랑스럽게 내세우는 것 중 하나가 ‘문재인 케어’로 불리는 건강보험보장성 강화 정책이다. 2019년 5월 더불어민주당 이해찬 당시 당대표는 문재인 출범 2주년을 맞아 최고위원회를 열고 그 자리서 “우리나라 건강보험제도가 제가 여러나라를 돌아다녀 본 바로 가장 우수한 제도라 생각한다”며 문재인 케어를 자랑스럽게 말한 적이 있다.코로나19 영향으로 병·의원 진료가 줄면서 흑자를 유지하던 건강보험재정이 내년부터 적자로 돌아설 것이란 분석이 나왔다. 기획재정부와 보건복지부에 의하면 내년에 당장 1조4천억원의 재정적자가 예상되고 이 상태로 가면 6년후인 2028년에는 재정이 바닥날 것이란 분석이다. 급격한 고령화와 재정사정을 고려않은 문 정부의 보장성 강화정책이 재정 악화의 주요 원인이라 한다. 보장성 강화란 재정투입이 불가피한데, 섣부른 정책 결정이 화를 자초한 셈이다. 지금이라도 빨리 손볼 것은 손봐야 한다. /우정구(논설위원)

2022-10-18

시간도 투자다

조현태 수필가 죽도어시장에서 싱싱한 고등어를 샀다. 제법 큰 놈으로 세 마리나 샀으니 한꺼번에 모두 먹어치울 재간이 없다. 한 마리만 구워도 실컷 먹을 분량이라 나머지 두 마리는 바로 냉동보관을 했다.그리고 한 주간쯤 지나 바짝 냉동된 생선을 전자레인지로 해동시켜 구웠다. 어째 냉동시키지 않았던 것과는 비교도 안 될 만큼 모양도 맛도 엉망이었다. 그렇다고 냉동된 상태로 바로 구울 수는 없지 않은가. 누가 가르쳐주기를 그러지 말고 냉장실에 옮겨 하루를 두었다가 구우라고 했다. 하여 남은 한 마리는 하루 동안 천천히 해동시켜 구웠는데 급하게 해동시킨 경우보다는 훨씬 좋았다.또 어떤 이가 해동 방법을 일러주었다. 소금과 식초를 미지근한 물에 풀어놓고 냉동생선을 담가 십여 분 지나면 된다고 했다. 그러니까 소금과 식초의 역할을 이용하면 빠른 해동에도 육질 손상이 덜 된다는 설명이었다. 소금은 바닷물과 비슷한 염도로 해동하므로 육즙 보호와 생선의 불순물 제거에 도움이 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식초는 생선살이 허물어지지 않게 하고 살균 효과도 있단다. 이 방법도 레인지 해동보다는 느리지만 상온해동보다는 매우 빠른 해동방법이다.어차피 어시장에서 소매하는 생선은 한 번 냉동했던 물건이다. 최대한의 선도를 유지하는 범위에서 해동하여 판매하는 것을 소비자가 또다시 냉동시킨 격이다. 이미 육질이 떨어진 생선에 전자파를 이용한 강제해동이 육질을 더욱 흔들어 놓은 상태가 아니겠는가. 상온에서 천천히 녹이면 육질이야 덜 상하겠지만 해동되는 과정에서 자칫 세균이 발생하는 우려도 있단다.어쨌거나 생선해동 이야기를 꺼낸 까닭은 너무 서두르는 일이 좋지만은 않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어서다. 빨리 해동하는 방법은 맛이 덜하고 느리게 녹이면 세균과 시간적 부담이 따른다. 그래서 전문가가 연구한 방법이 소금과 식초를 이용하라는 것이리라. 어쩌면 ‘빨리빨리’에 익숙한 한국적 방법에 접근하는 연구인지도 모른다.중요한 것은 활어가 아닌데 활어만큼의 품질을 바랄 수가 없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어떤 형태로든 투자한 만큼의 가치가 있을 터이다. 투자를 시간으로 하든지 소금과 식초 같은 물질로 하든지 아니면 새로운 방법을 개발하는 연구로 하든지.필자는 전문 요리사가 아니므로 가치가 떨어진 생선을 먹어도 나무랄 일은 아니다. 다만 더 좋은 방법을 가르쳐주는 일은 해당 분야에 전문가나 할 일이다. 만약에 필자가 전문 요리사였다면 뭉그러지고 비릿한 생선구이를 먹었겠는가.작금에 여러 분야에서 행해지고 있는 일들을 보면 비전문인은 없는 듯하다. 모두가 다 정치가요, 누구나 다 지도자요, 아무나 다 평론가요, 맞닥뜨리면 다 자신이 최고라고 으쓱거린다.요리사라면 최소한 소금과 식초의 역할 정도는 분명히 알고 있듯이 수많은 전문가들이 해당 분야의 세부사항 정도는 알고 전문가라고 하면 좋겠다. 그럴 능력이 없거든 비리고 뭉그러진 생선이나 먹어야지 않겠는가.

2022-10-18

한글날 국기 게양마저도

이명균 창원대 명예교수 지난 한글날, 아파트 같은 동(棟)의 총 90세대 중 필자 집을 포함 단 2세대가 국기를 달았다. 아파트 관리소에서 다른 국경일에는 국기게양 안내방송도 하는데 한글날엔 국기게양 방송조차도 하지 않았다. 우리나라 공식 국기게양일은 국경일인 삼일절, 제헌절, 광복절, 개천절, 한글날과 정부지정일인 현충일과 국군의 날이다.국경일들은 나름대로 의미가 있으며 그 정도를 본다면, 비록 신화이지만, 우리나라 뿌리가 시작된 단군왕검의 고조선건국을 새기는 개천절이 가장 중요할 것이며, 다음엔 일제치하에서 광복을 맞게 된 광복절을 꼽을 것이다. 그러나 필자 생각으론 광복절보다 한글날이 더 의미 깊고 중요한 날이 아닐까한다. 광복을 맞은 덕분에 한글이 생겨난 것이 아니라 좋은 우리 한글이 있었기에 진정한 광복을 맞을 수 있었다. 그렇다면 우리나라 국경일들 중 한글날이 둘째 아니면 셋째로 중요한 날인데, 태극기 게양은 최하위에 가까우니 안타깝기 그지없다.개인에게나 국가에 있어서나 언어의 기능과 작용이 중요하다는 것은 긴 설명이 필요 없을뿐더러, 우리 한글의 우수성은 아무리 강조하고 찬사하여도 결코 지나칠 수가 없다. 그런데 현재 우리 사회는 한글교육뿐만 아니라 한글에 대한 인식마저도 너무 부족하며, 외래어나 외국어표기를 쓰지 않으면 무지하거나 시대와 유행에 뒤지는 것처럼 여기는 것 같다.필자는 정치보도가 싫어서 TV뉴스를 거의 시청하지 않지만 신문을 통해 잠깐씩 접하게 되는 정치기사를 보면 세계 최고언어를 가진 나라에서 세계에서 가장 저질정치를 하고 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정치가 저질이 된 것은 정치인들의 말이 속악(俗惡)스럽고 그것이 행위로 나타나기 때문일 것이다. 국가와 국민을 위하는 모습을 거의 볼 수 없었던 근현대 정치사 속에서도 나라가 이 만큼 발전하게 된 것은 오로지 한글과 한글정신 그리고 국민들의 노력 덕분이라 생각한다.지금부터라도 한글을 잘 다듬고 바르게 사용하면서 우리 국민들의 생각과 정신을 더욱 정화시키고 다져서 혼란스럽고 기울어가는 나라를 바로잡아야 할 것이다. 최근 어느 도시에서는 시장과 교육감이 손잡고 영어 상용화 정책을 펴서 영어사용에 불편함이 없는 도시로 만들기로 했다는데, 이는 얼이 한참 빠진 정책이라고 생각한다. 우리 땅에서 우리 국민이 영어를 몰라도 아무런 불편이 없는데, 영어사용 외국인들의 불편함을 없애려고 영어상용 정책을 편다니 말이 되는 소리인가?외국관광객이나 외국기업 유치를 위한 방안이라면 영어상용화 정책 대신 외국인들을 위한 영어도우미 제도를 치밀하게 만들어 시행하는 것이 비용과 실용성에서 더 효율적일 것이며 영어구사능력자들의 고용창출에도 아주 효과적일 것이다. 언어란 인간의 생각과 정신을 지배한다. 당장 급하게는 힘들겠지만 한글 전용화까지는 아니라도 한글장려, 한글강화 또는 한글순화운동을 펴야한다. 영문학을 공부하고 가르치며 평생을 살아온 필자의 경험으로는 우리말을 잘 구사할 줄 알아야 외국어도 잘할 수 있으며, 우리말을 제대로 구사할 줄 모르면 정확하고 세련된 외국어를 구사하기가 어렵다.

2022-10-18

김천시의회, 개원 100일 기분 좋은 변화가 시작되다

나채복 경북부·김천 김천시의회가 지난 6.1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시민들의 새로운 변화에 대한 염원과 함께 지역의 새 일꾼이 선출됐다. 김천시의회는 18명의 의원 중 13명의 초선 의원이 승선해 김천 발전과 시민들의 행복을 향한 힘찬 출발을 했다. .제9대 김천시의회에서 눈여겨볼 가장 큰 변화 중에 하나는 바로 정례회를 대비한 사전 현장 방문이다. 상임위별 소속 위원들의 의기투합 속에 여러 차례 사업 현장을 방문하고 계속된 회의를 통해 처음 맞는 행정사무감사를 철저히 준비한 결과 시정의 잘못된 부분을 꼼꼼히 파헤쳐 정곡을 찌르는 등 감사기관으로서의 역할에 충실할 수 있었다.행정복지위원회는 김천시민의 숙원사업이자 최대 관심사인 김천시립추모공원과 통합보건타운, 올해 말 개관을 앞둔 율곡도서관 등을 방문하여 추진 경과를 살펴보고 문제점에 대한 대책을 논의했다. 또한, 참전유공자와 보훈대상자의 처우 개선을 당부하였고 김천시민에 대한 공공산후조리원의 이용료 감면율 확대를 요구했으며, 특히 김천시립추모공원건립 사업에 대해서는 주민대책위원회와 체결한 협약 사항 이행 요구와 함께 공기 지연에 따른 문제점을 지적하고 대책 마련을 촉구하며 시민들의 걱정을 덜어냈다.산업건설위원회는 많은 시민들이 기대하고 있는 신음근린공원과 미래 먹거리 사업으로 역점적으로 추진 중인 드론 실기시험장과 융복합 드론 플랫폼사업 현장, 원도심 활성화를 위한 감호지구 도시재생 뉴딜사업 현장을 방문하여 사업 추진 과정에서 안고 있는 문제점을 들여다보고 발전방안을 모색하는 의미 있는 시간을 가졌다. 특히, 신음근린공원 조성사업에 대해서는 공기 지연에 대한 대책 마련과 민원 발생에 따른 주민들과의 적극적인 소통을 주문했다.이러한 노력은 제9대 김천시의회가 개원 후 두 번의 임시회와 행정사무감사를 실시하는 정례회를 비롯해 시민들과 함께 호흡하는 다양한 의정활동으로 개원 당시 초선의원이 많다는 우려 섞인 시각에서 지난 100일간 지나온 당찬 여정으로 김천의 더 큰 내일을 기대하는 기분 좋은 변화가 시작 되고 있다. 김천시의회는 이명기 의장을 중심으로 새 얼굴들의 깊은 열의와 당찬 포부로부터 기분 좋은 변화가 시작된 김천시의회의 거침없는 행보가 이립(而立)을 넘은 시의회 역사에 의미 있는 발자취를 남기며 14만 김천시민의 삶에 어떤 긍정적인 변화를 가져올지 앞으로 더욱 기대된다./ncb7737@kbmaeil.com

2022-10-18

외로운 황홀함

밤에 홀로 유리를 닦는 것은…. /언스플래쉬 “유리에 차고 슬픈 것이 어른거린다/ 열없이 붙어 서서 입김을 흐리니/ 길들은 양 언 날개를 파다거린다/ 지우고 보고 지우고 보아도/ 새까만 밤이 밀려나가고 밀려와 부딪히고/ 물 먹은 별이, 반짝, 보석처럼 박힌다/ 밤에 홀로 유리를 닦는 것은/ 외로운 황홀한 심사이어니,/ 고운 폐혈관이 찢어진 채로/ 아아, 늬는 산새처럼 날아갔구나!”(정지용, ‘유리창 1’)정지용의 시 중에서 가장 좋아하는 작품이다. “길들은 양 언 날개를 파다거린다”라든가 “새까만 밤이 밀려나가고 밀려와 부딪치고/ 물 먹은 별이, 반짝 보석처럼 박힌다”와 같은 감각적인 묘사와 언어운용은 요즘의 어떤 시와 비교해도 세련되게 느껴진다. 이미지나 리듬감도 뛰어나지만, ‘유리창 1’을 아름다운 시로 기억하게 만드는 가장 핵심적 요인은 이 시 전체에 배어 있는 슬픔과 연민의 정서다.알려진 바 이 시는 지용이 폐렴으로 어린 나이에 죽은 아이를 그리며 쓴 작품이다. “밤에 홀로 유리를 닦는 것은 외로운 황홀한 심사이어니”라는 문장은 지용의 마음을 절절하게 나타내준다. “밤에 홀로 유리를 닦는 것”은 “고운 폐혈관이 찢어진 채로” “산새처럼 날아”간 아이가 있는 밤하늘을 보기 위함이다. 이는 “외로운 황홀한 심사”를 일으키는데, 죽은 아이를 생각하며 외로울 수는 있어도 황홀하기는 쉽지 않다. 외로움이 보편적 감정이라면 황홀함은 보편성을 넘어선, 시인이라는 예민한 존재만이 느낄 수 있는 특별한 정서일 것이다.죽은 아이가 날아간 밤하늘을 바라보니 슬프고 외로운데, “물 먹은 별이 반짝, 보석처럼 박힌” 풍경은 한없이 아름다워 황홀하다. 이 황홀함은 풍경에 의한 고취인 동시에 슬픔이라는 감정이 몰고 온 일종의 환각적 상태다. 슬픔 속에 오래 침잠되어 있다 보면 세상이 비현실적 공간으로 여겨진다. 사랑하는 이의 부재이든 육체의 고통 또는 현실의 절망이든 그것을 인정하고 싶지 않은 마음 때문이다.아이가 없는 현실에서는 외로우나 아이를 만나는 상상에서는 황홀하다. 그 황홀함은 세상에서 오직 ‘나’만, 아이의 죽음을 오롯이 살아내야 하는 부모만이 느낄 수 있다. 그래서 외로운 황홀한 심사다. 자녀를 먼저 저세상으로 보낸 부모를 칭하는 단어가 없는 것은, 누구도 그 마음을 알 수가 없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 어떤 언어로도 표현될 수 없는 슬픔, 그 슬픔 속에서 아이를 만나는 상상…. 삶도 죽음도 초월한 어느 곳에서 느끼는 그 감정이 바로 외로운 황홀함일 것이다. “외로운 심사”라고만 했으면 이 시는 아름다움이 덜 했을 것이다. “외롭고 황홀한”도 안 된다. 그렇게 쓸 경우 외로움과 황홀함은 각각 독립적인 감정의 상태이거나 서로 다른 두 감정의 연쇄작용일 뿐이다. 밤하늘을 보며 정지용이 느낀 외로움과 황홀함은 한 덩어리다. 그래서 오직 “외로운 황홀한 심사”여야만 한다. 외롭고도 황홀한 것이 아니라 외로운 황홀함이야말로 화자가 느끼는 적확한 감정이므로. 이병철 문학평론가이자 시인. 낚시와 야구 등 활동적인 스포츠도 좋아하며,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몇 해 전, 청소년 시 낭송 UCC 경연대회를 진행한 적이 있다. 그때 한 학생이 이 시를 애니메이션으로 만들었는데, “밤에 홀로 유리를 닦는 것”을 현대적으로 해석해냈다. 사월 바다에서 딸을 잃은 아버지가 팽목항에 주저앉아 스마트폰에 담긴 딸의 사진을 본다. 액정 위로 눈물이 하염없이 떨어져 내린다. 그렇게 “유리에 차고 슬픈 것이 어른거린”다. 화면 속 딸의 얼굴을 선명하게 보기 위해, 아버지는 밤에 홀로 액정을 닦는다. 그 “외로운 황홀한 심사”를 세상 사람들이 어찌 알 수 있을까?지난 9월, 태풍 힌남노가 몰고 온 수해로 소중한 목숨들이 스러졌다. 침수된 주차장에 차를 빼러 가는 엄마가 걱정돼 함께 나섰다가 숨진 중학생 김 군의 사연이 세상을 울렸다. 급박한 순간 엄마는 “너라도 살아야 한다”며 아들을 내보내려 했고, 아들은 “엄마, 사랑해요. 키워주셔서 감사합니다”라고 말했다. 야속한 하늘은 이 다정한 모자(母子)를 갈라놓고야 말았다. 살아남은 엄마의 마음을 감히 헤아릴 수 없다. 별이 되어 밤하늘로 날아갔을 거라고, 무엇이든 되어 다시 만날 거라고, 다음 세상에서도 엄마와 아들로 태어날 거라고…. 어떤 말로도 위로할 수 없는 외로움, 꿈속에서나마 아들을 만날 황홀함…. 언제 그랬냐는 듯 계절은 어느새 가을이다.

2022-10-18

탄소 발자국 줄이기

이산화탄소 배출은 지구온난화의 주요 원인이다. /언스플래쉬 다가오는 11월 24일부턴 일회용품 사용 제한이 확대된다. 현재는 대형 마트나 편의점 등에서 비닐봉투를 사용할 수 없지만, 대신 편의점이나 빵집 같은 경우엔 일정한 돈을 내면 사용할 수 있게 되어 있다.하지만 11월 24일부턴 편의점이나 빵집에서도 비닐봉투를 절대 구할 수 없게 되었다. 이젠 비닐봉투 대신 종량제 봉투, 부직포 가방, 또는 재활용이 가능한 순수 종이 재질로 된 종이봉투로 대체된다. 전 지구적 문제라고 할 수 있는 환경보호를 위한 어쩔 수 없는 조치로 읽힌다.카페에선 일회용 종이컵과 플라스틱 빨대, 그리고 뜨거운 음료를 젓는 플라스틱 막대까지 매장에서 사용할 수 없게 된다. 음료를 포장하는 경우 12월 2일부터는 일회용 컵 보증금제가 실행되는데, 일회용 컵을 사용한 뒤 반납하면 300원을 돌려받을 수 있다고 한다. 당근과 채찍을 병행하는 것으로 일회용품의 폐해를 줄이자는 것이다.대규모 점포에서의 우산 비닐 사용도 금지되고 야구장이나 콘서트장에서의 응원 용품도 제한되며, 계속되는 환경 문제를 줄이기 위해 일회용품 사용 규제가 확대되고 있다. 일회용품 사용 제한 이슈에 소비자들의 소비 형태는 앞으로 많은 변화를 불러올 것으로 보인다.환경 보호를 위한 소비자의 규제가 강화된 만큼, 그간 국제사회와 기업은 변화된 규제를 통해 어떠한 행보를 보이고 있는지 궁금해졌다.우리나라를 비롯해 전세계 국제사회는 환경보호에 관한 인식이 높아지면서 탄소발자국을 없애기 위한 대응책을 지속적으로 꾸준히 내놓고 있다. 2005년 EU는 탄소배출권 거래제(ETS) 방안을 세계 최초로 내놓으며 실행 중에 있다. 탄소배출권 거래제란 온실가수 감축 의무가 있는 국가에 배출 허용량을 부여하고, 한도를 초과할 경우 탄소배출에 대해 기업에 비용을 부담을 요구하는 것이다. 경제적 이익을 우선가치로 삼는 기업에게도 무형의 압박을 가하고 있는 것.하지만 EU 바깥에서 탄소누출 현상이 지속되자 EU는 2023년에 탄소 국경세(EU외 국가 제품에 적용하는 세금)를 도입하겠단 입장을 밝힌 상태다. 이러한 탄소배출권 거래제, 탄소 국경세 도입으로 인해 기후변화 이슈는 전세계적으로 중요한 화두로 자리잡으며, 지속적으로 전세계가 풀어나가야 할 중요한 과제가 되고 있다.지난 2015년 국내에 도입된 탄소 배출권 거래제는 정부가 전체 탄소 배출 허용 총량을 설정하고, 각 기업마다 일정 배출권을 부여한다. 기업은 할당 받은 배출권 범위 내에서 생산활동과 탄소를 배출할 수 있으며, 부족하거나 남는 경우에는 시장에서 배출권을 사거나 또는 팔 수 있도록 되어 있다.이렇게 제품 생산부터 폐기까지 적절한 탄소배출을 유지한 기업은 환경부가 인증한 탄소발자국 인증 라벨을 상품에 기입할 수 있다. 윤여진 2018년 매일신문 신춘문예 시 부문에 당선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현재보다 미래가 기대되는 젊은 작가. 지구온난화의 주요 원인인 이산화탄소 배출을 줄이기 위한 의도로 실행되고 있으나 정작 탄소발자국 라벨을 단 제품이 많지 않고, 나 또한 조사 직전까지 이 라벨의 정체를 몰랐단 점이 조금 부끄러웠다. 적극적인 홍보와 개개인의 관심이 필요해 보인다.미국의 생활 용품을 제조하는 한 거대 기업은 친환경 인증제품을 55개 등록하며 지속적인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이러한 55개의 인증받은 제품은 타 제품보다 60%가 넘는 조회수를 보이고 있다고 한다.이미 소비자들은 탄소중립 정책을 지향하는 기업을 지지하고 선택하고 있단 추세를 보인다는 뜻이다. 바람직한 변화다. 해외뿐만 아닌 최근 많은 국내 기업 또한 ESG(환경·사회·지배구조)의 경영 방식을 내세우며 친환경적 순환경제로의 전환을 실천하고 있다.이러한 행보에 관심을 가지며 탄소발자국 인증 제품 구매, 메탄가스 감소를 위한 고기 섭취 줄이기, 각종 일회용품 줄이기, 디지털 탄소발자국 줄이기 등, 나부터 실천할 수 있는 것들을 찾아 행동하는 것이 이 어려운 난제를 풀어나갈 수 있는 작은 실마리가 될 수 있지 않을까.공존과 상생을 위해 국제사회와 국가, 기업뿐만 아닌 개인의 관심 또한 필요한 때다.

2022-10-18

축제 같은 나날, 일상을 예술처럼

강성태 시조시인·서예가 먼 들녘 빛 어림이 나날이 짙어가고 있다. 온통 푸르던 산과 들이 차츰 붉고 누렇거나 갈빛을 띠며 물들어가고, 곡식과 과일이 익어가면서 들판의 축제를 벌이는 듯하다. 가을은 ‘모든 잎이 꽃이 되는 두번째의 봄’이라는 말처럼, 또 다른 설레임으로 다가오며 홍엽(紅葉)의 환호 속에 즐김과 누림의 축제가 곳곳에서 펼쳐지고 있다. 문화의 달이기도 한 10월은 춥지도 덥지도 않은 천랑기청(天朗氣淸)한 때라 야외활동이나 행락객이 많아지고, 지역별 특색을 살린 볼거리와 먹거리가 푸짐한 문화축제를 즐기려는 사람들로 붐비고 넘쳐난다.오감으로 느끼는 축제의 계절이기에 가을이 한결 풍성하고 설레는 것 같다. 코로나19 팬데믹에 억눌린 가슴을 한껏 펴고 지리한 바이러스의 아귀를 떨치기라도 하듯, 2~3년만에 재개되는 축제의 마당에 몸을 맡기고 흠뻑 빠져드는 모습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그렇게 편안히 즐기고 빠져드는 축제도 자신의 취향이나 스타일에 따라 다양하게 누릴 수 있다. 팬데믹을 거치면서 축제의 양상도 다변화돼, 메타버스를 활용한 가상과 현실의 결합이나 비대면 방식의 다양한 플랫폼으로 전개되는 등 온·오프라인에서의 다채로운 테마와 복합적인 콘텐츠를 접할 수 있어서 축제가 한결 흥미롭고 열기가 고조되기도 한다.그런 가운데 일상 속에서 축제를 손쉽게 만나고 여유롭게 예술을 감상할 수 있다면 보다 문화적인 삶이 윤택해지지 않을까? 이를테면 걸어가면서 길거리에 마련된 시화작품이나 공공미술 프로젝트를 둘러보며 이색적인 체험코너나 즉석 공연 이벤트에 참여하고, 아늑한 호텔방에 전시된 미술품이나 공예, 사진작품 등을 감상하게 된다면 그야말로 생활 속에 젖어드는 예술문화적인 삶에 한층 가까워질 것이다. 생활과 실용에 어우러지는 예술이야말로 대중의 공감을 불러일으키고 생활예술의 효용가치를 높여줄 것이다.아트페어는 그러한 관점에서 예술과 대중을 연결시키는 의미있는 매개체로 여겨진다. 미술관이나 전시장이 아닌 실생활이나 외출이 이뤄지는 공간에서 만날 수 있는 호텔아트페어나 뱅크아트페어, 호텔사진전 등은 객실이나 홀, 복도에 이색적인 작품전시와 홀로그램 영상 등으로 방 한 칸마다 갤러리 하나씩이 자리잡아 개성과 격조 있는 작품세계를 선보임으로써 관람객과 컬렉터의 관심을 사기도 한다. 포항에서는 지난 주 라한호텔과 포스텍 국제관에서 각각 독특한 주제의 호텔아트페어가 성황리에 열렸으며, 송도 코모도호텔에서는 ‘사진의 섬 송도’ 사진전이 해마다 절찬리에 열려 시민들의 발길이 이어지기도 했다.무릇 축제나 예술은 관객이나 향유층이 있어야 활기를 띨 수 있다. 아무리 소문난 잔치도 손님이 없으면 공염불에 불과하듯이, 난해하고 추상적인 작품의 발길 뜸한 관람보다는 쉽고 부담 없이 참여하여 재미있게 즐기는 생활문화형 예술이 각광받지 않을까 싶다. 예술이 일상적인 문화로 어우러져 매양 축제 같은 나날이 펼쳐지길 기대해본다.

2022-10-17

열정을 저축하자

김종찬 포스코인재창조원 교수·컨설턴트 한국에서 일하는 외국인들이 가장 빨리 배우는 말이 ‘빨리빨리’라고 한다. 과거 호출기를 사용하던 시절에도 ‘8282’를 표기하여 보내기도 했으니 한국인들의 ‘빨리빨리’ 문화는 오랜 기간 이어져 초고속으로 연결되는 디지털 혁명의 시대를 맞아 그 전파력이 더욱 가속화 되고 있는 듯하다. 혹자들은 이런 문화가 한국의 고도성장을 견인하는데 긍정적 에너지로 작용했다는 분석을 내 놓기도 한다.한국전쟁이 끝난 직후 명목 GDP 규모가 477억원에 불과했는데 이십 년이 지난 1973년에 5조원을 돌파하고 2006년 1천조 돌파에 이어 2021년에는 2천조가 넘는 성장의 결과로 대한민국은 세계 10대 경제대국으로 자타가 공인하는 선진국에 진입하였다. 기적적으로 부자 나라가 되는데 성공했지만 세계에 있는 200여 개의 나라 중 부자나라라 할 만한 곳은 서유럽과 북아메리카, 동아시아, 오세아니아에 있는 20여 개국 외에는 거의 없으니 우리나라의 현재 위치는 기적이라고 간단히 정리하기엔 그 논리가 빈약하게 느껴진다.빈국들은 전통적인 수출품인 커피, 바나나, 석유, 광물 등 1차 상품 생산에 머물러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제조업과 서비스산업이 주력인 선진국은 자연 자원을 직접 투입할 일이 없고, 양적으로나 질적으로 제한받는 농토, 광산, 어장도 필요 없이 생산량이 증가함에 따라 비용이 획기적으로 낮아지는 효과로 경쟁력을 키우면서 세계 시장점유율을 높여간다. 이를테면 소프트웨어나 첨단 산업에서는 첫 제품을 생산하기 위해서는 엄청난 비용이 들지만 그 뒤에 나오는 제품의 제작 단가는 대폭 낮아지게 되는 원리다.이렇게 수세기 동안 ‘제조업’이라는 용어는 기술변화와 무한 경쟁 속에서 나라를 부강하게 하는 공식이 되었으며, 이것이 헨리7세 때 영국에서 시작되어 유럽 대륙과 미국을 거쳐 한국과 대만이 거둔 성공의 유형이다. 이러한 제조업 중심의 시대에는 지식경제가 필연적이며 지식근로자 중심의 휴먼이 곧 캐피털이다. 자본과 노동력의 경계가 사라지는 시대라는 뜻이다. 이러한 성공의 뒤에는 조직에 지나치게 편중된 가치를 두게 되어 일과 개인을 동일시해 일에 올인하는 ‘워크홀릭’이 문제가 되기도 한다.일에 지나치게 올인하다 보면 자신 내부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법을 잊어버리게 된다. 내부 영혼에서 오는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지 않으면 쉽게 화내고 지치고 능률은 오르지 않고 종국엔 개인에도 조직에도 영향을 미치게 된다. 그 결과 회사와 자신을 동일시 하거나 회사 내 동료, 선배, 상사에게 분노를 투사하거나 일 외엔 아무것도 없는 듯 자신을 영혼에서 분리 시키거나 하는 일들이 벌어진다.일에 올인하지 말라는 말은 어떻게 보면 염치없고 뻔뻔하게 들리나, 아무 때나 아무 일에나 올인하지 말라는 뜻이다. 정작 올인해야 될 때가 되었을 때 열정도 체력도 탄성도 바닥난 상태라면 아무 소용이 없지 않은가? 그 덜어낸 20%를 오로지 자기를 위해 쓰자. 올인할 시기에 절대적으로 올인할 수 있기 위해서라도 내 열정의 20%는 덜어내어 늘 저축하기를 권한다.

2022-10-17

카톡 먹통과 유비무환

홍석봉정치에디터 국민 메신저인 ‘카카오톡’이 먹통이 됐다. 전 국민들이 한순간 혼란에 빠졌다. 국민 생활 전반에 큰 지장을 가져왔다. 개인과 집단 등 결제와 소통이 멈췄다. 카카오 관련 서비스에 의존하는 사람들이 큰 피해를 입었다.이번 사태는 국민들의 카톡 의존도와 위험을 동시에 깨닫게 해 주었다. 우리 생활에 카톡이 얼마만큼 깊숙이 들어와 있는지 실감케 했다. 인터넷이 일상화된 세상에 소통 수단 단절시 나타날 수 있는 일을 적나라하게 보여주었다. 85%의 시장점유율 만큼이나 카톡 상실감이 컸다. 대안을 찾아 나서는 이들도 있다.2018년 아현 KT전화국 화재 당시 국가통신망 붕괴로 국민들이 큰 혼란에 빠진 적이 있다. 하지만 금세 잊었다. 이번 카카오톡 먹통사태가 여실히 보여준다. 해당 기업에 비상 사태에 대비를 게을리한 책임을 묻고 재발방지책을 마련토록 해야 한다.조선시대 역사실록을 보관하기 위해 4대 사고를 운영했다. 같은 실록을 4곳에 분산, 보관함으로써 만일의 사태에 대비했다. 실록이 지금까지 온전히 전해지는 이유다.유비무환(有備無患)이라고 했다. 이순신 장군은 평소 철저한 계획과 준비로 전쟁에 대비했다. 그는 ‘요행’과 ‘만일’을 경계했다. 승리의 비결이다. 이순신의 유비무환은 쓰러져가는 나라를 구했다. 우리 사회의 안전불감증이 어떤 국가적 위험을 초래할지 모른다. 통신서비스가 불의의 사고로 먹통이 될 경우 국민의 일상의 불편은 물론 경제, 사회 활동이 마비될 우려가 크다. 전쟁 등 국가 비상사태때는 어떨까. 생각만 해도 아찔하다.차제에 국가의 시스템 보안 상태를 점검하고 2중, 3중의 안전장치가 필요하다./홍석봉(정치에디터)

2022-10-17

국민을 이기는 권력은 없다

변창구대구가톨릭대 교수·국제정치학 권력의 원천은 국민이다.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헌법 제1조 2항).고 했으니 국민을 이기는 권력은 존재할 수 없다. 권력을 잡은 여당은 물론, 권력을 잡으려는 야당도 명심해야 한다. ‘군주민수(君舟民水)’이니 배(대통령)를 띄우는 것도 물(국민)이요, 그 배를 전복시키는 것도 물이다.윤석열 정부에 대한 여론은 어떤가? 새 정부가 출범한지 5개월에 불과한데 민심은 싸늘하다. 기대가 컸으니 실망도 큰 것일까? 최근 여론조사(한국갤럽, 10월 2주차)에 의하면 대통령에 대한 부정평가(63%)가 긍정평가(28%)의 2배를 넘는다. 특히 주목할 것은 선거에서 캐스팅 보트(casting vote)를 쥐고 있는 중도층의 평가가 긍정 24%, 부정 66%이고, 정권의 핵심지지기반인 TK지역도 긍정 41%, 부정 52%로서 상당히 심각하다.어떻게 해야 민심을 다시 얻을 수 있을까? 그 해답은 이미 여론조사결과에 나와 있다. 부정평가의 구체적 요인은 경험·자질부족·무능(15%), 외교(13%), 전반적 잘못(10%), 민생/발언부주의/독단적(각 6%), 신뢰부족/인사(각 5%), 소통미흡(4%) 등이다.영국의 이코노미스트(Econo mist)가 “한국의 대통령은 기본을 배워야 한다”고 지적한 것은 우연이 아니었다. 우리 국민들도 정치초보인 대통령의 경험·자질부족·무능을 똑같이 걱정하고 있으니 말이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대통령의 이성적 리더십이 절실하다. 편견을 버리고 국민의 관점에서 고언(苦言)을 경청할 때 비로소 초보의 한계를 극복할 수 있다.대통령의 외교 설화(舌禍), 즉 비속어 ‘이××’에 대해서는 국민 다수가 사과해야 한다고 했다. 하이데거(M. Heidegger)가 “언어는 존재의 집”이라고 했듯이, 대통령의 말은 품격이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하지만 대통령은 사과하지 않았고, 여당은 MBC를 고발하여 프레임 전환을 시도함으로써 사태를 악화시켰다. 대통령과 대통령실의 정치미숙이었다. 국내언론은 물론이고, CNN·BBC·WP 등 해외언론도 이 사태를 언론탄압으로 규정했다.이들은 정권에 비판적인 MBC를 고발한 것은 대통령이 누누이 강조했던 ‘자유’를 스스로 침해함으로써 자기모순에 빠졌다고 비판했다.‘무신불립(無信不立)’이다. 윤 대통령은 “당무에 개입하지 않는다”고 하고서는 권성동에게 ‘체리 따봉’ 문자를 보냈다. 대통령이 “감사원은 독립기관”이라고 했는데, 감사원 사무총장은 “오늘 또 제대로 해명자료가 나갈 겁니다”라고 대통령실에 문자로 보고했다. 이처럼 언행이 일치되지 않는 일들이 반복되고 있으니 누가 대통령의 말을 믿겠는가?국민은 ‘이슈’ 자체보다 이슈를 다루는 대통령의 ‘태도’가 더욱 문제라고 보고 있다. 정치는 ‘사실의 게임’이 아니라 ‘인식의 게임’이다. 권력의 원천인 국민이 아니라고 인식하면 아닌 것이다.대통령의 균형 있는 문제인식과 겸손한 정치행태가 요구되는 이유다. 여론을 무시하고 국민과 싸우려는 대통령만큼 어리석은 권력은 없다.

2022-10-17

바닥에는 검은 진흙이 <Ⅴ>

꼭 새로워야 하는 것은 아니잖아. 아들이 아버지 대신 잘 해왔으니까 하는 말이지. 세상에 저런 효자가 어디 있나?인호를 잘 아는 사람이 인호를 감쌌다.국회의원 선거잖아. 효자 뽑기 대회가 아니고. 국회의원으로서 잘하는 것과 아들로서 잘하는 것은 다르지. 효자를 뽑는 선거라면 김인호를 당연히 뽑아주지. 하지만 이건 국회의원 선거야. 누가 뭐래도 국회의원은 중앙에서 정치력이 있어야지. 김 의원이 지역구에 잘 내려오지는 않지만 중앙에서 잘하잖아. 그만한 거물이 되는 게 어디 쉬워?입바른 사람의 바른 말은 인호의 귀에도, 영권의 귀에도 들어갔다. 영권이 인호를 불렀다.오랜만에 남해에 가서 공이나 한 번 치자.라운딩을 마치고 둘은 해안가를 찾았다. 테이블을 사이에 두고 마주 보고 앉았다.네가 이번 국회의원 선거를 준비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사실이냐?인호의 찻잔에 차를 따라주며 영권이 물었다.떨어지는 한이 있더라도 이번 선거에는 제가 출마해야 합니다. 이제는 영산시를 제게 내려주십시오.인호는 ‘양보해 주십시오.’라고 말하려다 말을 바꾸었다. 무례한 표현이라 생각했다.지금 네가 네 입으로 내려달라 말했듯이 다른 사람도 그렇게 본다. 누가 보아도 지역구 세습으로 보이지 않겠느냐. 우리나라는 기본적으로 세습에 대해 반감이 많다. 너의 좋은 의지가 좋게 해석되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떨어지는 한이 있더라도? 그게 무슨 말이냐. 선거에서는 지면 안 된다. 떨어지기 위해서 하는 선거는 없다. 선거와 정치는 오기로 하는 것이 아니다.대답을 준비하고 있었던 듯 영권이 말했다. 그러고는 테이블을 손톱으로 두드리며 인호의 얼굴을 보았다. 인호는 다른 지역구에라도 출마할 수 있게 해 달라 말했지만, 영권은 허락하지 않았다.아버지와 아들이 동시에 국회의원이 된 예도 없을뿐더러, 감당할 수 있는 돈도 없고, 그리고 인호가 다른 지역구에 출마하는 것은 그 지역구를 기반으로 한 다른 국회의원에게 도리가 아니라 말했다. 인호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앉아 있던 의자를 뒤로 밀어내고 그 자리에 무릎을 꿇었다. 인호가 말했다.이번에 나가지 않으면 앞으로도 기회가 없을 것 같습니다. 사람들이 김영권이나 김인호나 똑같다 그럽니다. 여기에 갇히면 저의 정치는 시작도 못해 보고 끝나는 겁니다.영권은 인호에게 일어서라 말하지 않았다. 물끄러미 인호를 쳐다보다 입을 열었다.너의 정치라. 인호야. 너는 정치가 무엇이라 생각하느냐?인호는 기다렸다는 듯 대답했다.정치란 사람들이 갈등 없이 만족하며 살 수 있는 제도와 환경을 만드는 것입니다.짧으면서도 단호했다. 인호는 스스로 만족했다. 그러나 영권의 대답은 달랐다.틀렸다. 너는 아직 정치를 모르는구나.그러면 무엇입니까?인호가 물었다.내가 답해주마. 정치는 권력을 가지기 위해 행하는 모든 것들이다. 선한 것이냐, 악한 것이냐의 구별은 의미 없다. 너는 권력에 대한 의지가 있느냐? 권력을 잡기 위해 무엇이든 할 수 있느냐? 그럴 수 없다면 너는 정치를 할 자격이 없다. 사람들? 스스로 목자 잃은 양이라 칭하는 것들은 권력의지를 확인하는 순간 순한 양이 되어 울타리로 들어온다. 그들은 정치의 결과물이지 목표가 아니다.영권은 무릎을 꿇고 앉아 있는 인호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을 이었다.인호야. 너의 인생에 너의 정치라는 것은 애초에 없었다. 정치인 김영권의 아들로 태어난 순간부터 김영권의 아들 김인호만 있을 뿐이지. 정치인 김영권을 위해 네가 있는 것이다. 정치를 하라고 너에게 지역구 관리를 맡긴 게 아니다. 이십년 전 너를 지역구로 내려 보내면서 정치를 배우라 말하지 않았다. 너는 정치인 김영권이 거목이 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거름이 되어야 하는 거다. 그게 너의 이번 생이다. 너의 정치? 너의 정치라는 것이 가능하려면 나와의 인연이 끝나고 나서야 가능하겠지. 내가 내 입으로 이 말을 하게 하다니. 내 아들이지만 너도 참 딱하다.영권은 말을 끝내고 인호를 일으켜 세웠다. 일어선 인호는 고개를 돌려 바다를 보았다. 썰물이었다. 해가 지는 방향으로 바닷물이 빠져나갔다. 물이 빠져나간 자리에 검고 거칠은 암초들이 덩어리지어 나타났다.썰물이네요. 저 아래에 검은 바위들이 저렇게 많이 놓여 있는 줄 몰랐습니다. 아버지는 알고 계셨습니까?이 년 전 그날. 남해였다.-이번에는 그쪽에서 먼저 연락이 왔어.인호와 필립이 만났다. 만식의 장례를 치른 지 열흘 정도 지났을 때였다.-연락이 왔다고? 먼저?인호가 물었다. 필립이 고개를 끄덕였다.-만나자고 하더라.-나보고 친해지라 해놓고 자기가 먼저 전화하는 건 뭔데?/김강 소설가

2022-10-17

태평양 너머에서 온 울긋불긋한 소식

요즘엔 문학 전공자가 아니고서는 ‘신소설’이라는 단어에는 그다지 익숙하지 않으실 것만 같다. ‘신소설’이란 이인직의 ‘혈의누’나 이해조의 ‘빈상설’, ‘월하가인’, 최찬식의 ‘추월색’ 같은 소설들처럼 대략 1906년 무렵부터 10~20년 정도를 풍미했던 소설 양식을 가리킨다. 학창 시절 문학 수업에서 들었던 희미한 기억을 떠올리실 분들도 계실지 모른다.애초에 뉴웨이브, 새로운 바람을 의미했던 ‘신파(新派)’가 낡디낡고 판에 박힌 멜로드라마를 가리키는 말이 되었고, 조선 이래의 고소설과는 차별되는 새로운 ‘신소설’이 이제는 백 년도 더 지난 하염없이 낡은 소설을 가리키는 용어가 되어 버린 것은 시간이란 어떤 것인가를 새삼스레 생각나게 하기도 한다. 이미 백 년 이상 전에 유행했던 ‘신소설’과 함께 그 소설이 출판된 단행본을 가리키는 ‘딱지본’이라는 단어 역시 생소하신 분들이 많으실 것이다.요즘엔 헌책방에 가도 좀처럼 눈에 띄지 않지만, 예전에는 구석에서 심심찮게 찾을 수 있던 겉표지가 화려한 원색으로 된 손바닥만하고 얄팍한 출판물을 가리키는 말이다. 그 표지가 색색으로 된 원색으로 ‘딱지’ 같다고 해서 얻게 된 별칭이다. 앞서 이인직의 ‘혈의누’나 ‘귀의성’ 같은 소설들은 신문에 연재되고 난 뒤에면 어김없이 이 딱지본으로 출간되곤 했고, 일제강점기를 전후한 언론 통제의 시대에 마땅히 연재할 신문을 얻지 못했던 수많은 무명작가들은 자신이 쓴 원고를 당시 출판사 격인 서방(書房)이나 서관(書館) 등에 매절 계약으로 넘겨 이름 없이 딱지본으로만 소설을 발표하는 일도 흔했다.신소설 작가 중에서 잘 알려진 이인직이나 이해조는 신문 지면을 통해 작품을 발표하고 딱지본으로 출판할 수 있던 운 좋은 작가였고, 김교제나 최찬식 등은 신문 지면을 얻지 못했으면서도 딱지본 출판 소설만으로 유명해졌던 저력 있는 작가였다.딱지본이 가지고 있는 가장 큰 특징은 역시 그 화려하게 노출된 표지 그림에 있었는데, 이전까지 한국식 제본이나 서구식 양장 제본에서 표지에 그림을 노출하는 일이 드물었던 것을 감안하면, 꽤 파격적인 시도였다.아무래도 당시의 기술로 컬러로 조금 두꺼운 표지에 인쇄한 것이다 보니 인쇄 상태나 제본 상태에 허술한 부분도 없지 않아, 오랫동안 보존하기 위한 책이라기보다는 금방 읽고 치우는 대중적인 소설에 가장 어울리는 출판양식이었을 것이다. 그래도, 이 딱지본 표지들을 보고 있자면, 당시 서점들 서가에 이처럼 울긋불긋한 그림들이 저마다의 이야기들을 가지고, 독자를 유혹하는 장면들이 생생하게 상상된다. 사실 이같은 딱지본의 표지가 아니더라도 이 속에 담긴 신소설의 내용들은 대부분 당시의 독자들의 감수성을 지극히 자극하는 것들이었다.악인의 음모에 빠진 주인공이 세상사의 어려움을 헤쳐나가면서 결국에는 행복한 결말에 이르게 된다는 권선징악의 주제가 대부분이긴 했지만, 신소설의 다양성은 줄거리의 구조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다루고 있던 기차나 기선, 담배 등의 새로운 문물과 화성돈(미국 워싱턴)이나 해삼위(블라디보스톡), 묵서가(멕시코), 포와(하와이) 등의 국외 공간을 그려내는 방식에 있었다. 누군가의 음모와 위협으로 인해 죽을 위기에 처했던 주인공이 기차나 기선을 타고 태평양을 넘나들면서 해결의 실마리를 얻게 되거나 잃었던 가족과 만나게 되는 과정은 당시의 독자들에게는 그야말로 쾌미를 주는 이야기에 다름 아니었을 것이다.특히 이제 막 세계에 대한 지리적 지식이 갖춰지기 시작했던 당시의 독자들에게 있어서 내 딸 같고, 내 아들 같은, 또는 내 누이 같고, 내 형님 같은 주인공들이 태평양 너머 어딘가에서 고난을 겪으면서도 학교를 졸업하고, 그간의 고생을 보상받는 것을 보는 경험은 그야말로 지극한 즐거움은 아니었을까./홍익대 교수 송민호

2022-10-17

북핵 이전에 내분으로 무너질 건가

김진국 고문 북한의 도발이 도를 넘고 있다. 지난 13일 밤 서해와 동해로 170여 발의 포격을 하고, 군용기 10여 대로 북방한계선 근처까지 위협 비행했다. 단거리탄도미사일(SRBM)도 쐈다. 올해 들어 탄도미사일을 24차례, 순항미사일을 3차례 발사했다. 14일 오후에도 다시 동해와 서해로 390여 발, 포격했다.전쟁 직전까지 위협 수위를 끌어올린 셈이다. 외부의 위협이 있으면 단합하는 게 정상적인 사회다. 그런데 우리는 내분이 더 커졌다. 민주당은 윤석열 대통령의 인기 하락을 가리기 위해 안보 위기를 과장한다고 주장한다. 유엔대표부 국정감사에서 민주당 의원들은 “우리가 미국 쫄따구냐” “관심을 끌어보려고 미사일을 쏘는 건데, 북한을 비난하면 대화에 도움이 되겠느냐”고 따졌다.아픈 역사가 반복된다. 1950년 북한 탱크가 내려올 때 국군은 휴일을 즐기고 있었다. 일본은 1853년 미국의 흑선(黑船)에 놀란 지 15년 만에 메이지유신에 성공하고, 열강 대열에 합류했다. 1876년 강화도조약을 맺은 조선은 세계정세에 눈을 감고, 일본과 중국·러시아 등 열강에 기댄 파벌싸움으로 갈팡질팡하다 나라를 빼앗겼다.더 이전 임진왜란 직전 조선통신사의 보고는 당파에 따라 달랐다. 아무 준비 없이 백성을 7년 전란에 몰아넣었다. 동인이나 서인이나 당쟁에 이용했다는 의심을 피하기 어렵다. 최근 정치권의 입씨름이 그 꼴이다. 정파에 따라 결론을 먼저 정해놓았다.말로만 초당 외교, 거국 안보다. 나라의 존망으로 도박한다. 진영으로 쪼개진 국민도 매한가지다. 북한의 핵 개발 소문에도 화들짝했던 민심이 실전 배치를 끝내고, 핵 위협을 쏟아부어도 강 건너 불구경한다. 끓는 물 속의 개구리다.김대중 전 대통령은 “북은 핵을 개발한 적도 없고, 개발할 능력도 없다”(2001년), 노무현 전 대통령은 “북핵의 증거가 없다”(2003년)라고 장담했다. 노 전 대통령은 또 “(핵 보유가 억제 수단이라는) 북한의 주장이 일리 있는 측면이 있다”, “다른 나라 핵은 되고, 왜 북핵은 안 되나?”라고 말했다. 문재인 전 대통령도 기회가 있을 때마다 “김정은 위원장이 얘기하는 ‘비핵화’는 국제사회가 바라는 ‘비핵화’와 같다”라며 북한의 ‘비핵화 의지’를 ‘보증’했다가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으로부터 “북한 태도가 왜 당신 얘기와 다르냐”라고 불평을 들었다.어떻게든 대화로 해결하려는 노력을 이해한다. 하지만 상황이 바뀌었는데도 모르는 체하면 멍청이다. 김정은은 “절대로 먼저 핵포기, 비핵화란 없으며, 그 어떤 협상도 흥정물도 없다”고 못 박았다. 대남 핵선제타격까지 법제화했다. 미국 카네기 국제평화재단의 안킷 팬다는 “비핵화 고집은 실패이자 촌극”이라고 지적했다. 김정은이 트럼프에게 보낸 편지는 핵보유국끼리의 협상에 남쪽이 낄 자리가 없다는 뜻을 분명히 밝히고 있다. 더구나 문재인 전 대통령을 평양에서 흥분할 정도로 접대한 직후 보낸 편지에서 그런 속내를 드러냈다는 점에서 소름이 끼친다.북한 핵무기가 자위용이라면 우리는 자위를 위해 가져도 되나. 필요한 것은 국민과 나라가 안전할 방도다. 평화적인 방법이 있다면 그것이 최선이다. 그렇지만 오른뺨을 때릴 때 왼뺨을 내밀어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오히려 오판을 불러 전쟁으로 유도할 수 있다. 평화적 해결을 모색해야 하지만 무력 도발을 제압할 힘도 갖추어야 한다. 핵 보유건, 전술핵 재배치건, 원점 타격이건, 수괴 참수건 다양한 시나리오를 검토하고, 최선의 방도를 찾아야 한다. 문 전 대통령은 자신이 그어놓은 ‘레드라인’을 올 초 북한이 넘었지만 뾰족한 대책이 없었다. 대화를 사정했지만, 북한은 참담한 욕설만 퍼부었다. 응징 수단이 없기 때문이다.종전선언, 평화협정은 그 약속이 깨졌을 때 대응 수단이 없으면 허망하다. 미 대륙이 핵 공격에 노출돼도 미국이 핵우산을 펼칠까. 남베트남은 파리평화협정에 직접 서명했다. 그러나 평화협정은 종잇조각에 불과했다. 미군이 철수하는 명분이었다. 우리는 어떻게 다른가. 그렇게 되면 우리는 어떻게 할 것인가. 내분으로 스스로 무너지는 일만은 없어야 한다. /본사 고문김진국△1959년 11월 30일 경남 밀양 출생 △서울대학교 정치학 학사 △현)중앙SUNDAY 고문, 제15대 관훈클럽정신영기금 이사장, 경북매일신문 고문 △중앙일보 대기자, 중앙일보 논설주간,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부회장 역임

2022-10-16

언제나 다시 찾고 싶은 울릉도 만들겠다

남한권 울릉군수 민선 8기를 새롭게 이끌어가게 되면서, 울릉도를 널리 알리고 세일즈하는 것에 중점을 두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울릉도 경제의 핵심 산업은 관광산업이고, 관광 산업이 잘 되려면 울릉도가 더욱 널리 알려지고 그로 인해 더 많은 사람이 울릉도를 방문하고 체험하는 것이 필수적이기 때문이다.이 지면을 보는 독자 여러분에게도 한 번쯤 울릉도에 오셔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시기를 권유하고 싶다. 울릉도는 남북한 통틀어 사람이 거주하는 환동해 유일한 섬이다. 이것이 진짜 매력과 가치다. 자연, 물, 공기, 산과 바다, 하늘까지 청명한 이곳에 오면 마음먹은 대로 힐링과 치유가 가능한 상쾌한 섬이다.앞으로, 울릉도산 모든 자원들의 우수성을 살려서 세계적 브랜드로 만들어 보려 한다. 울릉은 살아 숨 쉬는 공간, 즉 자연환경부터 시작해 산천에 나는 풀 한 포기까지 내륙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훌륭한 자원이 많다.관광 부분도 마찬가지이다. 잠깐 훑어보고 가는 단기간 여행지가 아니라 270만 년 전 화산폭발로 형성된 산과 바다, 협곡들까지 경험하고 체험할 수 있는 관광 루트를 형성해 나갈 것이다.울릉공항 개항에 발맞춘 관광 인프라 확충을 위해 민자 유치를 적극적으로 추진해서 관광, 레저, 휴양까지 가능하도록 직접 발로 뛰면서 울릉도를 세일즈할 예정이다.관광을 활성화하려면 앞서 언급했던 것처럼 울릉도의 매력을 홍보하고, 관광콘텐츠를 개발하는 등 관광과 직접적인 분야를 개선해가는 것도 물론 중요하다.지역의 성장 동력이 주민들에게서 나온다고 할 때, 현재 울릉도는 인구 소멸을 걱정해야 하는 위기상황이고, 특히 전반적인 정주여건의 열악함이 인구유출과 연결되는 중요한 문제점이다.울릉도의 정주여건을 구성하는 요소들은 대단히 많지만 섬이라는 특수한 상황에 있는 울릉에서 주요한 요소들을 꼽아보자면 의료, 교육, 문화, 물류 등이 있다.우선 의료 분야를 살펴보면, 울릉도 내부의 의료 역량을 높이는 것과 내부에서 해결할 수 없는 상태의 응급 환자 이송 체계를 더욱 상시적이고 신속하게 만드는 것 두 가지가 핵심 문제다. 시대적으로 친환경 관광수요가 증가하면서 울릉군의 관광객 환자 수가 급격히 증가하고 있다. 환자 수가 증가하면서 1차 의료 인력의 확보가 요구되는 상황에 대비, 의료 인력 보충 및 장비 확보를 위해 노력하겠다. 대학병원과의 의료 협약 추진을 통해 울릉 내부의 의료 역량을 높여가겠다. 또한, 상주 응급헬기 운영으로 응급 환자 이송 체계를 개선하겠다.교육의 경우, 울릉군 내에서 초중고교육은 물론, 대학교육까지 높은 수준으로 받도록 하는 것이 장기적인 목표이다. 울릉군 내부에서 교육을 대학교육까지 높은 수준으로 받을 수 있다면 교육으로 인한 인구 유출 방지는 물론이고 인구 유입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 구체적으로는 국제학교와 영어마을을 유치, 울릉중·고 명문 만들기 지원, 대학 분교 유치 등을 통해서 울릉도 내에서 완전한 교육을 받을 초석을 마련해나갈 것이다.문화의 경우, 도서 지역의 특수성 때문에 내륙 수준 이상으로 문화생활을 누리는 것이 힘든 상황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목표로 해야 할 것은 다양한 문화생활을 즐길 ‘울릉도만의 문화가 숨 쉬는 섬’을 만드는 것이다. 그러려면 각 분야 다양한 동아리 및 문화 단체 등을 지원 및 활성화하고, 유아나 청소년들도 어릴 적부터 함께 누릴 문화공간을 확충, 장기적으로 문화생활을 지속해나갈 환경을 만들어 나갈 것이다.마지막으로 물류 문제를 살펴보자면, 도서 지역이기에 내륙과의 물류 활성화를 위해서는 비용이 필연적으로 발생한다는 것이 본질적 원인이다. 이를 해결하고자 울릉군 차원에서 주민생필품 해상운송비 보조와 농수산물 택배비 무상지원 등을 통해 울릉의 물류가 매일 유통되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 현실적으로 최선이라 보인다.그런 의미에서 이번 민선 8기의 군정 목표는 ‘행복한 군민 다시 찾는 새 울릉’, 슬로건은 ‘새희망! 새울릉!’ 으로 정했다.군민이 주인이고 행복해야 한다는 것을 최우선 과제로 생각하고 앞으로 더욱 편안해지는 바닷길과 새롭게 열리는 하늘길을 통해 언제든 다시 찾을 울릉도로 더욱 새롭게 만들어보자는 신념을 담았다. 이러한 목표를 잊지 않고 울릉군이 관광지로서는 누구에게나 즐거운 시간을 제공할 관광지로, 삶의 터전으로서는 행복한 삶을 영위할 곳으로 새롭게 변화되도록 민선 8기 군정을 이끌어 가겠다.

2022-10-16

영웅들의 스승이자 인간 삶을 관장하는 사수자리와 남두육성

태양이 하늘의 별자리 사이를 지나는 길을 황도(黃道·ecliptic)라 하고, 이 황도에 자리한 12개의 별자리를 황도12궁이라 한다고 앞서 이야기했다. 황도12궁 가운데 아홉 번째 별자리가 바로 사수자리(궁수자리)다. 여름날 초저녁이면 남쪽 지평선에 S자 모양으로 이어진 웅장한 곡선의 별들이 나타난다. 이것이 그 유명한 전갈자리인데 그 옆에서 활을 겨눈 모습을 한 별자리가 사수자리다.사수자리는 머리와 가슴은 사람이지만 아래는 말의 모습을 한, 켄타우로스족 중 한 명인 케이론이다. 일반적으로 켄타우로스족은 성질이 거칠고 난폭했지만(헤라클레스 아내를 유혹하려다 죽은 네소스도 켄타우로스족이다), 케이론만큼은 그렇지 않았다. 그는 제우스 아버지 크로노스가 아내 레아 몰래 말로 변해서 오케아노스 딸 필리를 유혹해 태어난 아들이다. 케이론은 정의를 중요한 가치로 여겼고, 성격도 온화하고 선량해서 주위로부터 존경받았다. 특히 음악과 무예, 사냥과 예언 등에 뛰어났던 그는 헤라클레스에게 무예와 음악을 가르치는 등 신화에 등장하는 수많은 영웅의 스승이기도 하다.케이론은 신의 아들인 만큼 죽지 않고 영원히 사는 불사의 몸이었다. 하지만 헤라클레스의 실수로 물뱀 히드라의 독이 묻은 화살에 상처를 입고 말았다. 히드라 독은 그 어떤 약으로도 치료가 불가능했다. 불사의 몸인 케이론은 죽을 수도 없어 영원히 고통스러워할 수밖에 없었다. 이 모습을 두고 볼 수만은 없었던 제우스가 인간에게 불을 전해준 프로메테우스에게 불사의 몸을 양보하고 편안하게 죽음을 맞도록 해주었다. 그래서 케이론은 하늘에 올라가 활을 잡은 모습의 별자리가 되었다.다른 이야기도 있다. 그의 제자인 이아손이 헤라클레스 등 영웅들과 함께 콜키스로 황금 양모를 찾아 떠날 때였다. 이들을 안전하게 인도할 목적으로 스스로 하늘로 올라가 활을 잡은 채 별자리가 되었다는 내용이다. 케이론이 헤라클레스, 이아손, 아스클레피오스 등 뭇 영웅의 스승이지만 별다른 신화는 전해오지 않는다. 하지만 영웅들의 지혜와 무예는 그에게서부터 나온 것이니 그 역할은 중요하다 하겠다.재미있는 것은 이 사수자리에 한국과 중국에서 매우 신성시 하는 별자리가 포함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사수자리 가운데에 작은 북두칠성처럼 생긴 여섯 개의 별이 뚜렷하게 나타난다. 이를 두수(斗宿)라고 하는데 이는 하늘사당이라는 뜻이다. 이 별들을 북두칠성을 닮았다고 해서 ‘남두육성’이라 한다. 사람들은 북두칠성은 죽음을 관장하는 별로 여긴 것에 반해, 이 여섯 개의 별을 삶과 장수를 관장하는 별로 여겼다.우연하게도 프로메테우스에게 생명을 양보한 케이론과 삶을 관장하는 남두육성이 같은 별자리에서 묘한 대조를 이룬다. 이 별을 두고 백사 이항복은 임진왜란 당시 동래부사 송상현의 충절에 비유했으며, 김시습, 정지상 시에도 등장한다. 고소설 ‘임호은전(林虎隱傳)’에서는 난세를 헤쳐 가는 영웅 이야기가 담겨 있다. 이렇게 보면 동서양을 막론하고 인간 삶과 영웅을 상징하는 대표적인 별자리라고 할 수 있다.덧붙이면, 인간에게 불을 전해준 죄로 제우스의 노여움을 받은 프로메테우스는 코카서스의 바위에 묶여 독수리에게 간을 쪼이는 고통을 받는다. 이때 헤라클레스 도움으로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었으며, 케이론에 의해 영생을 부여받는 극적인 드라마틱한 주인공이 되었다. 인간 문화에 공헌했던 그에게 신화를 창조한 인간에 의해 보상이 주어졌다고 할 수 있다. /박필우 스토리텔러

2022-10-16

임신 중 운동, 약인가 독인가

박성률트레이닝과학연구소장동국대 의과대학 연구초빙교수 일반적으로 규칙적인 운동은 건강에 도움이 된다는 것은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다. 그러나 산모의 경우 운동이 본인과 태아에 나쁜 영향을 미칠지도 모른다는 막연한 두려움으로 산전에 하던 규칙적인 운동뿐만 아니라 일상적인 활동도 자제하려고 하는 경향을 보인다.임신 중 적합한 운동과 신체 활동은 더 나은 신체 감각을 제공하고 자신감을 높이며 두려움과 스트레스를 더 잘 처리하는 데 도움이 된다.또한 산모의 면역 체계를 강화하여 감염에 대응하고, 근육이 강화되어 보다 곧은 자세로 이어지고 임신 중에 흔히 발생하는 요통을 상당히 완화할 수 있다. 특히나 규칙적인 운동과 신체활동은 더 많은 산소가 폐와 혈관으로 들어가고 태반을 통해 아이에게도 전달된다. 임신 중에는 이전에 했던 거의 모든 운동을 계속할 수 있다. 다만 임산부에게 부적절한 자세나 동작과 부상 위험이 높은 운동 종목과 방법은 피해야한다.임신 첫 3개월 동안은 메스꺼움, 피로, 순환기 문제와 같은 증상이 두드러지며 유산의 위험이 가장 높다. 그러므로 가벼운 걷기나 요가와 필라테스와 같은 편안한 운동이 권장된다. 일반적으로 익스트림 스포츠와 투기종목을 제외한 모든 운동은 첫 12주 동안 허용되는데, 중강도 이상의 운동은 피해야 하며 충분한 휴식을 취하는 것이 중요하다. 일부 연구에서는 신체 활동이 활발한 여성이 조산할 위험이 더 낮다고 한다.임산부에게 특히 적합한 운동은 수영이다. 수중체조와 수중걷기도 적극 권장된다. 물의 부력은 모든 움직임을 더 쉽게 만들고 육체적인 부담을 줄여주기 때문이다. 수중 운동은 임산부에게 무중력 상태로 움직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여 등과 관절 치료에 도움이 되고, 시원한 물에서의 움직임은 림프 배수와 같은 역할을 하여 다리에 수분이 정체되는 것을 방지한다. 일반적으로 물의 온도는 18℃에서 25℃ 사이가 적당하다.수영의 여러 가지 영법 중 자유형과 배영은 큰 무리가 없다. 다만 평영은 머리를 높이 들어 올릴 때 목과 어깨 부위에 긴장이 생길 수 있으므로 영법을 할 때마다 머리를 물 아래로 쭉 뻗은 상태를 유지하는 것이 좋다. 그러나 잠수는 숨을 참는 것이 아이의 산소 공급을 방해하기 때문에 임산부에게 적합하지 않다. 특히 압축공기 실린더를 사용하는 다이빙은 태아에게 기형이나 폐색전증의 위험이 있으므로 피해야한다.임산부의 경우 유산소성 운동은 중강도 안의 범위에서 수행하도록 권장된다. 빠르게 걷기나 가볍게 뛰기는 일주일에 세 번 20분에서 최대 하루 45분까지 권장된다. 일반적으로 29세 이하의 임산부는 분당 135~150회, 30~39세는 분당 130~145회, 40세 이상은 분당 125~140회를 제안한다. 심박수는 임신 중 운동의 부하나 스트레스를 확인하는 좋은 방법이다. 따라서 항상 심박수 모니터를 착용하거나 때때로 휴식을 취하고 심박수를 직접 측정하는 것이 추천된다.그러나 임산부는 일반인과 다르게 운동 강도가 높아질수록 회복이 느리며 힘들게 인식할 수 있다. 운동 시 배뭉침이나 요통, 부종과 같은 증상을 포함하여 개인에 따라 생리적인 반응이 다르게 나타날 수 있어 주의 깊게 관찰되어야 한다. 임산부가 운동을 할 수 있는 빈도는 개인의 건강 및 체력 수준에 따라 다르다. 최근 독일체육대학교(German Sport University Cologne)에서 발표한 연구 결과에 의하면 주당 최대 3회까지 운동이 권장된다.출산 후 6주에서 8주의 산욕기에는 많은 생리적, 형태적 변화를 거치는데, 이 시기에도 운동이 권장된다. 산모의 느낌에 따라 출산 직후나 며칠이 지난 이후부터 운동이 가능하며, 의학적 문제가 없는 산모일 경우 간단한 운동부터 시작하여 점차 강도를 높여 주당 150분의 중등도 운동이 제안되기도 한다. 출산 후 회복기 운동은 복부 근육 강화와 에너지 소비 향상, 산후우울증 예방 및 스트레스 해소에 도움이 되고, 심혈관 건강 증진과 체중 감소에도 효과가 있으며 수면의 질도 높일 수 있다.이같이 임신 중이나 출산 후에도 운동의 효과와 중요성은 강조되고 있다. 최근 들어 국내에서도 활발한 임상 연구들이 진행되고 있다. 비체중 부하 운동인 고정식 자전거와 수영을 포함하여 임산부들이 가장 많이 참여하는 걷기 운동과 함께 근력 운동의 긍정적 효과도 밝혀지면서 다양한 운동 프로그램이 제안되고 있다.임신과 출산은 여자의 일생에서 경험하는 가장 큰일 중 하나다. 대체로 출산 후에는 임신 전에 비하여 체력이 일시적으로 저하하고, 임신 전의 상태로 돌아오는데 상당 시간이 걸린다. 또 증가한 체중은 출산 후에도 임신 전과 같이 되기 어렵다. 그러나 평소 운동을 하고 있는 여성은 임신 기간 중에도 꽤 높은 체력 수준을 유지하며 출산 후에도 체중 감소가 빠르다.운동은 두 개의 날이 있는 검과 같아서 잘못하면 오히려 독이 된다. 임산부의 건강상태, 체력수준, 운동습관, 생활환경 등을 충분히 고려하여 자신에 맞는 운동법과 운동량을 찾아서 하면 임신 중 운동은 약이 된다.

2022-10-16

‘에너지 자립’ 농지를 활용하면 된다

위현복(사)한국혁신연구원 이사장 문재인 정권은 임기를 8개월여 앞둔 2021년 9월 30일 ‘온실가스 감축목표(NDC)’를 발표했다. 2030년까지 온실가스 배출을 40% 감축(2018년 기준)하고, 신재생에너지 비중을 30%까지 늘린다는 목표였다. 산업계에서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목표’라며 부정적인 반응을 보인 반면, 주한 미국상공회의소 ‘AMCHAM’은 2030년까지 신재생에너지 비중을 오히려 35% 수준까지 늘려야 한다는 의견을 정부에 건의했다고 한다. 그 후 윤석열 정부가 지난 8월 3일 전력수급기본계획 초안을 발표하면서 2030년 신재생에너지 목표치를 30%에서 21.5%로 낮추자 이번에도 산업계에서 난리가 났다. 목표치가 너무 낮아 산업 경쟁력을 심각하게 훼손한다는 이유에서다. 온실가스 감축을 둘러싼 기업들의 무역환경이 급변하고 있는 것을 정부가 인식하지 못한 탓이라고 하겠다.지난 2020년 소니를 비롯한 상당수 일본 기업이 일본 정부가 재생에너지 발전 비중을 늘려주지 않는다면 일본을 떠나겠다고 경고한 적도 있다. 그러자 일본 정부는 2030년 신재생에너지 발전 목표를 20%대에서 38.6%로 늘렸다. 윤석열 정부가 신재생에너지 분야에서 국제흐름과는 거꾸로 가고 있는 것이라 할 수 있겠다.삼성전자, SK텔레콤 등이 참여하고 있는 ‘기업재생에너지 이니셔티브’가 기업 60여 곳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한 결과, 신재생에너지 발전 비중이 2030년까지 40%는 넘어야 해외 수준만큼의 재생에너지 조달이 가능할 것으로 내다봤다. 우리 정부 목표치 21.5%의 두 배다. 대한상공회의소가 최근 300개 제조업체를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한 결과에서도 대기업 10곳 중 3곳이 ‘협력사로부터 재생에너지 사용을 요구받는다’고 했다. 필요한 만큼 재생에너지를 사용할 수 없는 우리 기업들이 글로벌 시장에서 도태될 수 있는 상황에 부닥친 셈이다.우리나라는 신재생에너지 발전소 설립에 관한 법규가 따로 없어 국토부의 건축 시행령과 기초자치단체별 조례에 의거해 발전소 설립을 하고 있다. 이 때문에 시·군마다 신재생에너지 발전소 설립 규정이 다르다. 특히 태양광 발전소에 대한 주민들의 인식이 부정적(중금속 오염과 전자파 피해가 많다는 오해)이기 때문에 신재생에너지 발전 비중을 늘리는 데는 어려움이 많다.태양광 발전소를 논밭과 같은 농지에 설치하는 것도 힘들다. 농지법에 따라 규제를 하고 있기 때문에 비닐하우스보다 오염이 덜하고 설치가 쉬운데도 불구하고 태양광 발전소를 농지에 설치하는 것이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농민들이 농지에 태양광발전소를 설립할 경우에는 다양한 장점이 있다. 첫째, 소득에 있어서 쌀농사를 지으면 200평 기준 조수익이 100만 원 정도이지만, 태양광을 설치하면 조수익이 2천만원 정도로 20배 정도 된다. 둘째, 농사를 지으면 비료, 농약살포로 인해 환경파괴와 토양오염이 심각해진다. 그러나 태양광의 발전 원료인 햇볕은 무공해고 공짜다. 가끔씩 마른 수건으로 청소만 해주면 되고, 25년 쓴 자재는 100% 재활용되어 환경공해가 거의 없다. 셋째, 태양광 발전소 설립을 지주들이 직접 땅을 내놓는 ‘주민 주도형’으로 해서 마을 단위의 대규모로 할 경우 시공 자금 유치나 시공사 유치가 쉽고, 민원의 소지도 없어진다. ‘주민 주도형’으로 진행하면 행정기관에서 적극 지원도 유도할 수 있다. 넷째, 현재 농촌에는 고령화로 인해 농지는 방치되고 마을도 소멸되어가고 있다. 하지만 한마을당 3만 KW급 태양광 발전소 1기를 설립하면 양질의 일자리가 100개 정도 생겨 농촌을 새로운 삶의 터전으로 바꿀 수 있다. 위에서 열거한 것만으로도 농지에 태양광발전소를 설립해야 하는 이유가 차고 넘친다.신재생에너지 강국인 독일보다 한국이 신재생에너지 생산을 위한 여건이 훨씬 더 낫다. 독일은 우리보다 한참 북쪽인 북위 50° 이상에 대부분 국토가 있고 일조량도 1년 1천56시간(일 2.89시간)에 불과하지만, 우리나라는 국토가 대부분 38° 밑에 있고 일조량도 1천459시간(1일 3.99시간)으로 독일보다 38% 더 많다.독일은 오는 2030년 신재생에너지 65%, 2040년에는 80% 달성한다고 한다. 우리나라는 늦게 출발했으니만큼 2030년에는 40%, 2040년 60%, 2050년 80%를 꼭 달성할 수 있을 것이다. 국토의 4% 내외, 전국 농지의 25~30%에 태양광을 설치하면 가능한 목표다. 한국도 신재생에너지로 충분히 에너지 자립이 가능한 것이다.지금은 구한말의 개항 못지않게 에너지 안보가 중대한 시점이다. 그렇다고 에너지 안보를 달성하는 것이 어려운 일도 아니다. 국토의 4% 정도, 농지의 25~30% 정도만 태양광 발전소로 활용하면 충분히 에너지 안보, 에너지 자립이 가능하다. 그렇게 되면 농촌에 신재생에너지를 만드는 일자리가 대거 생겨나 기초자치단체 소멸을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1970년대부터 50여 년간에 걸쳐 일궈놓은 제조업 강국 대한민국을 신재생에너지 장벽에 부딪혀 망가뜨리는 어리석음을 윤석열 정부는 범하지 말아야 한다. 신재생에너지를 활용한 탄소중립 달성을 통해 21세기에도 전 세계에서 가장 기업하기 좋은 대한민국을 만드는데 정부와 기업, 국민 모두가 동참해야 한다.

2022-10-16

길에서 길로 길을 떠돌다

김규종 경북대 교수 길은 사람을 설레게 한다. 그 길이 새로운 길이든, 이미 익숙한 길이든 길은 나그네의 마음을 들뜨게 한다.2019년 한 해 동안 광주 전남대에서 교환교수로 있으면서 나는 광주와 대구, 청도와 광주를 뻔질나게 오고 갔다. 하지만 길을 나설 때마다 가슴을 채우는 설렘과 기대는 매번 다른 색깔과 향기로 다가온다. 타고난 역마살 덕택일지도 모를 일이다.신천대로를 지나 남대구 톨게이트를 거쳐 갈림길에 이른다. 예전의 구마고속도로와 지금의 달빛 고속도로가 갈려 나가는 길이다. 잠시 후 고령과 합천으로 이어지는 길과 만난다. 500년 넘도록 번성했던 대가야의 본거지 고령. 한국의 삼보사찰 가운데 하나로 팔만대장경을 소장하고 있는 해인사의 합천. 길은 다시 이어진다.내가 가본 곳 가운데 가장 빼어난 산세와 지세, 수세(水勢)를 자랑하는 거창이 지척이다. 북으로 남덕유산과 수도산, 동으로 두리봉과 비계산, 서로는 기백산과 금원산처럼 1천m 넘는 산들로 둘러싸인 분지. 황강과 남강, 위천이 들을 가로지른다. 크고 작은 분지에서 풍겨 나오는 여유로움이 서슬 퍼런 산들의 기백과 어울려 한 폭의 동양화를 연상시키기에 충분하다.거창을 지나 만나는 함양은 지리산 초입이다. 함양의 지명은 진나라 수도 함양에서 따왔기로 다소 우울하다. 함양 안의면에 있는 물레방아를 떠올리며 위안(慰安) 삼는다. 1780년 동지사의 일원으로 열하(熱河)를 다녀온 연암 선생이 청나라에서 본 물레방아를 처음 조선에 세운 곳이 함양 안의 고을이었다. 그것이 1792년이라 하니 못내 원망스러운 세월이다.함양과 지호지간(指呼之間)에 있는 도시가 전북 남원이다. 춘향과 이몽룡의 사랑이 얽힌 광한루가 널찍하게 자리한 예향이자 묵향 남원.언젠가 경북대 학생들을 인솔하여 졸업여행 마지막 기착지로 삼았던 광한루의 추억이 엊그제처럼 다가온다. 88고속도로로 서대구와 남원을 2시간 반에 주파했던 그 길이 새록새록 떠오른다. ‘너희가 언제 다시 남원에 오겠느냐. 같이 가보자!’ 하고 다독였던 36살 청춘의 나!남원을 뒤로하고 한참을 달려야 나타나는 순창. ‘남부군’의 지은이 이태가 1950년 9월 30일 얼떨결에 입산한 곳이 순창 엽운산(여분산)이다. 17개월 동안 남부군 빨치산으로 있다가 1952년 3월 지리산에서 군경에 체포되는 이태. 그가 남긴 시대의 기록 ‘남부군’을 소설가 이병주가 장편소설 ‘지리산’에서 표절한다. 차마 해서는 안 되는 글 도둑질을 감행한 ‘조선일보’의 작가 이병주!이제 광주도 지척이다. 대나무와 소쇄원으로 세간에 널리 알려진 담양이 나그네를 기다리고 있다. 대구 옆에 자리한 경산이나 청도처럼 담양은 광주의 배후도시 같기도 하지만, 나름의 독자적인 문화와 예술 그리고 먹을거리가 풍성한 고장이다.그리하여 길손은 마침내 광주에 이른다. 이런 길을 떠돌면서 우리의 풍요로운 산하와 역사와 이야기를 되새긴다. 가을이 깊어가는 시절, 달빛(광대) 고속도로 여행을 독자 제현께 권해드린다.

2022-10-16

코로나19 1000일

우정구 논설위원 지난 15일은 코로나19가 국내서 처음 발생한 지 1천일 되는 날이다. 약 2년 9개월이란 시간의 의미를 떠나 코로나19가 1천일 동안 우리사회에 미친 파장은 실로 천지개벽할 만큼 컸다.2019년 11월 중국 우한에서 처음 발생 보고된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로 국민의 절반이 이 질병에 감염되는 대기록을 세웠다. 직간접적인 이유로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해 3만명 가까운 사람이 목숨을 잃었다.1천일의 시간이 흘렀음에도 아직도 코로나 충격파가 우리사회를 억누르고 있다. 아직 하루 2만명 내외의 확진자가 발생한다. 9월 정부가 사회적 거리두기를 대폭 해제했지만 실내서는 여전히 마스크 생활을 이어가고 있다.전문가들은 이번 겨울 7번째 대유행도 예상한다. 특히 증상이 비슷한 독감과 더불어 함께 유행하는 트윈데믹을 걱정한다. 전문가에 따라서는 내년 봄 실내마스크도 벗을 수 있을 것이란 전망도 내놓으나 변이 바이러스 등장 등 예측불허의 변수는 여전하다. 어찌보면 질병과 싸워야 하는 인류의 운명 같아 보이기도 한다.1천일 동안 가장 많은 환자가 발생한 곳은 수도권이다. 대구신천지교회 신자를 중심으로 크게 번지면서 전국적으로 주목을 받았던 대구는 누적확진자 수에서 전국 7번째 줄에 섰다.예측대로 기저질환 소유 등 나이가 많은 고령층의 사망률이 높았다. 80세 이상이 59%, 60세 이상으로 확대하니 94%에 이르렀다.코로나19가 비대면 문화라는 새로운 영역을 만들면서 뉴노멀의 시대를 탄생시켰다. 하지만 그것이 인류 역사에 좋은 기록으로 남지는 않을 것이다. 1천일이 지났지만 코로나19는 아직도 아물지 않은 상처로 우리 곁에 머물고 있다./우정구(논설위원)

2022-10-16

살아있는 우스개

강길수 수필가 내 차례가 되었다.아주머니는 비닐봉지에 땅콩 한 됫박을 부어 넣었다. 앞서 샀던 여자분처럼 내게도 한 움큼 더 주기 위해 좌판의 땅콩을 집는 순간,“며칠 전 집사람이 사 왔었는데 무게가 모자라던데요.”라고 말하자, 아주머니는 두말 안 하고 두 움큼을 더 주었다. 이에 먼저 샀던 여자분이,“왜 이분에겐 더 줘요?” 하고 불평했다. 단박에 아주머니는, ‘살아있는 우스개’를 한 방 날리는 게 아닌가. 그 순간 나도, 여자분도 폭소가 터져 나왔다. 기분이 뛸 듯이 상쾌해졌다. 우스개의 요술에 빠졌나 보다. 발걸음 가볍게 집으로 돌아오는 길엔, 땅콩 봉지가 보무도 당당하게 갈바람에 나붓거렸다.우스개 한 마다가 이렇게 사람 기분을 좋게 하다니 신기했다. 서구인들이 유머를 기리며 사는 연유가 이해됐다. 일상에서 어떤 일로 좋아지는 기분과는 다른 차원의 존재론적 기쁨 혹은, 심연의 환희라고나 해야 할 즐거움이었다. 그러고 보니, 코로나 팬데믹 이후 하늘을 날듯 기분 좋은 일은 별로 기억나지 않는다. 아니 있어도, 사회적 분위기로 오늘 그 순간처럼 활짝 웃어보지 못했다.우리 사회는 ‘살아있는 우스개’를 잃어가는 게 아닐까. 대통령의 사적 우스개를 일부러 왜곡, 침소봉대 보도하여 국제적 물의를 일으켰던 언론과 같은 심보를 내가 가졌다면, 아주머니의 우스개를 어떻게 받아들여 처신했을까.“당신 꽃뱀이야? 언제 봤다고 날 좋다는 거야? 별 미친 여자 다 보겠네!” 하며 땅콩 봉지를 던지고, 난리 피우지 않았겠는가. 농담을 농담으로 듣지 않고, 우스개를 우스개로 주고받지 않는 자화상이 우리 사회라면, 중병이 든 게 분명하다. 나와 뜻이 다른 사람도, 이웃으로 함께 살아야 할 국가사회공동체의 한사람이다. 지난 수년간 우리는 이웃에게 ‘적폐란 올가미’를 씌워, 억지 단죄나 갈라치기를 일삼는 망국 정치를 경험했다.도대체 정치적 신념이 무엇이고, 정당이 뭐며, 좌파와 우파는 또 무엇들이란 말인가. 그것들이 함께 살고, 살아내야 할 가족과 이웃, 나라보다 중요하단 말인가. 정치 이데올로기 전에 아니, 모든 인위적 가치에 앞서 천부적이자 본원적인 양심이 사람의 마음에 새겨져 있지 않은가. 창에 때가 끼면 아무것도 볼 수 없다. 우리 사회의 창엔 지독한 때가 낀 게 분명하다. 나도, 너도, 그도 마음의 창에 덕지덕지 때가 붙어 있음이다.국본(國本)을 무너뜨릴 부정선거 의혹이 사실로 드러난 송사에도, 우리 사회는 무심하다. 피부로 느끼는 현실과 동떨어진 여론조사 결과로 왜곡해도, 공정성을 따지자는 소리가 없다. 선관위와 여론조사기관이 신이란 말인가. 양심과 이성을 별주부전 토끼의 간처럼 꺼내 두고 사는 사회가 우리의 자화상일까. 하긴, 우스개를 삼류정치 도구로 만드는 희한한 사회이니까. 우스개를 우스개로 주고받는 참 사회가 그립다.입가에 웃음꽃이 다시 피어난다. 땅콩 덤 주기의 불평을 한마디로 훅 날려버린 아주머니의 ‘살아있는 우스개’가, 지금도 귓바퀴를 맴도니까.“내는 남자가 더 좋니더!…”

2022-10-16

사랑의 범위

유영희 인문글쓰기 강사·작가 나는 점차로 프랑수아즈의 상냥함이나 뉘우침 또 여러 미덕들이 부엌 뒤채의 비극을 은폐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자신의 친척을 제외하고는, 멀리 떨어져 사는 사람의 불행에 대해서만 연민의 정을 느낀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전혀 모르는 사람들이 당한 불행을 신문에서 읽을 때면 눈물을 펑펑 흘리다가도, 그 불행의 대상이 다소나마 뚜렷한 모습으로 나타날 때면 눈물이 금방 말라 버리는 것이었다. 부엌 하녀가 출산한 후 어느 날 밤, 심한 복통으로 고생하는 하녀의 신음 소리를 듣다 못한 엄마가 침대에서 일어나 프랑수아즈를 깨웠지만, 프랑수아즈는 냉담하게 그 비명이 연극에 불과하며 주인 흉내를 내는 것이라고 말했다.프랑수아즈는 마르셀 프루스트의 장편 소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의 화자 ‘나’의 집에서 일하는 하녀이다. 프랑수아즈는 손자가 약한 감기라도 걸리면 한밤중에 길을 떠나 사십 리 길을 가서 필요한 것을 물어보고 돌아올 정도로 가족에게 헌신적이고, 신문에 나오는 불행한 사람에게도 동정심이 넘쳐흐르지만, 그 중간에 있는 자기 주변의 딱한 사람에게는 한치의 아량도 없다. 프랑수아즈는 부엌 하녀가 아스파라거스 냄새를 맡으면 천식 발작을 일으키는 것을 알고, 매일 아스파라거스 요리를 만들게 해서 집을 떠나게 한다.이런 프랑수아즈의 행동을 마음 놓고 조롱할 수 있는 사람은 그렇게 많지 않을 것이다. 자신을 돌아보면 많은 사람이 마음 한구석에 이런 마음을 감춰두고 있었음을 깨닫게 될 것이다. 가족에 대한 애정은 문제가 없지만, 아프리카에서 기아에 허덕이는 사람들에게는 기꺼이 후원금을 보내면서도 내 근처에 있는 불행한 사람들의 고통은 외면하기 쉽다.불현듯 프랑수아즈가 떠오른 것은 며칠 전 SNS에서 본 지인의 고민을 읽고 나서다. 지인은 지역의 의정감시단 활동을 비롯하여 독거 노인 도배 사업과 같은 봉사 활동도 많이 하고, 청년 주택 사업을 하며 지역 공동체 운동을 하며 살아왔는데 어쩌다가 몇 년 전부터 지방에서 숙박업을 하고 있다.그런데 보증금 100만원을 3개월 후에 내겠다는 입주 희망자를 받아야 하는지 고민이 된다며 SNS에 올린 그의 글을 본 것이 석 달 전이다. 자기를 찾아온 현금 100만원이 없는 40대 남자의 처지를 내치면 안 될 것 같은 마음이 든 것이다. 많은 페친이 반대했지만 지인은 결국 방을 내주었는데, 이제 또 보증금을 3개월 후로 미루니, 그동안 월세는 잘 내서 수락하기는 했지만 그래도 당황스럽다는 글을 며칠 전 올린 것이다.가까이에 있는 사람의 딱한 처지에 생각이 많아지는 것은 책임의 지속성과 광범위성 때문일 것이다. 멀리 있는 사람에게는 눈물을 흘리거나 월 몇 만원의 후원금을 내는 것만으로도 최선을 다했다는 생각이 들 수 있지만, 가까이에 있는 사람에게 관심을 가지면 감당하기 어렵거나 철회하기 어려워질까봐 두려운 것이다. 나 역시 이런 비슷한 고민이 있는 터라 자신도 보호하고 내 가까이에 있는 사람의 불행에도 관심 갖는 현명한 공감법을 배우고 싶다.

2022-10-16

불감증 사회

홍석봉정치에디터 유례없는 난국이다. 나라 안팎이 어수선하고 불안하다. 북의 김정은은 이틀에 한 번 꼴로 미사일을 쏘아댄다. 전 세계를 상대로 핵 도박을 하고 있다. 언제 우리 하늘에 불화살이 날아올지 모른다. 세계가 코로나19 충격파에 휘청대는 와중에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과 미·중 갈등으로 인한 경제난에 직면해 있다. 기업과 가계는 고물가·고환율·고금리의 늪에 빠져 허우적댄다. 작금의 엄중한 안보 및 경제상황은 자칫 온 국민을 혼란 속에 빠뜨릴 수 있다. 국민은 한시도 긴장을 늦출 수 없는 형편이다.이런 판국에 국내 정치는 정쟁의 수렁에 빠진 채 헤어나질 못 하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 마저 비속어 발언으로 체면을 심하게 구겼다. 야당은 옳다구나 싶어 때리고 있다. 국격을 실추시켰단다.정진석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은 ‘일본은 조선왕조와 전쟁을 한 적이 없다’는 페이스북 글 때문에 역사관을 의심받으며 화살받이가 됐다. 해명을 해도 씨알도 안 먹힌다. 달 대신 손가락 끝만 바라보는 저질 발목잡기에 다름 아니다. 본질을 왜곡한 흠집내기다.국정감사장은 호통과 고함만 난무한다. 서로 헐뜯기 바쁘다. 상대 실수나 말꼬리를 잡고 늘어지는 일이 본업이 됐다. 밥 먹듯이 거짓말을 하고, 법위에 군림한다. 서로 옳다고 우기고 자기편만 감싸고 돈다. 제 눈 속 들보에는 눈감고, 상대방의 티끌은 죽어라고 공격한다. 품격 있는 의연한 모습은 애당초 기대난이다. 국정을 질책하고 대안을 제시하는 모습은 찾기 어렵다. 국민 모두가 알고 있는 것을 본인들만 모른다. 국민들은 이를 혐오하면서도 정작 흐려진 물을 쏟으려 않는다.우리 사회에 위기 불감증이 만연해 있다. 국민은 너무 둔감하다. 애써 외면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다가 ‘주전자 속의 개구리’가 된다. 곳곳에서 경고등이 켜지고 있다. 하지만 수십년동안 계속된 남침 도발에 피로도가 누적된 때문인지 북의 위태위태한 도발에도 무감각하다.경제 한파가 닥쳐도 ‘험난한 IMF 파고도 넘었는데’라며 무심하다. 속이 곪는데도 모른다. 나라잃은 설움을 당하고 전쟁으로 국토가 만신창이가 된 아픈 기억조차 잊은 것 같다. 방심했다가는 언제 당하는지도 모르고 당한다. 남북간 전쟁은 상상조차 하기 싫다. 다시 IMF에 구걸하는 치욕도 되풀이 할 수는 없다.정부가 미국에 핵 공유를 요청했다고 한다. 핵을 머리에 이고 불안 속에서 살아갈 수만은 없다. 국정의 최우선 순위는 국가 안보다. 정부는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할 무한 책임이 있다. 핵 공유가 안 되면 자체 보유라도 해야 한다. 경제난 타개를 위해 선제적이고 총체적인 대응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오이 심은 곳에 오이가 나고 콩 심은 곳에 콩이 난다. 심은 대로 거둔다. 정치 싸움만 하고 있을 때가 아니다. 사회 곳곳의 경고음을 외면하다가는 언제 무슨 꼴을 당할지 모른다.대통령부터 서민까지 모두 제자리를 지키고 제 역할을 할 때만이 이 위기 국면을 탈 없이 넘길 수 있을 터이다. 죽는 줄도 모른 채 죽어가는‘주전자 속의 개구리’신세는 되지 않아야 한다.

2022-10-13

아마겟돈 상황

우정구 논설위원 아마겟돈은 기독교에서 쓰는 종교용어다. 선과 악의 세력 승부가 결정되는 최후의 싸움터를 의미한다. 소행성 충돌로 인한 지구의 종말을 뜻하기도 하나 전쟁사태 등으로 인류가 위험에 처하게 되는 상황에 비유적으로 쓰이기도 한다.러시아와 우크라이나간 전쟁이 갈수록 악화되는 상황이다. 우크라이나의 러시아 크림대교 폭발 븡괴로 러시아의 반격이 격화되고 있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를 비롯 전역에 80여발의 미사일을 발사하면서 일각에서는 러시아의 핵 사용 가능성도 점쳐지고 있다.미국 바이든 대통령이 “1962년 쿠바 미사일 위기 이후 지금처럼 아마겟돈 위기에 직면한 적은 없었다”고 말하며 러시아의 핵무기 사용 가능성을 부인하지 않았다. 그가 말한 아마겟돈을 ‘인류의 최후 전쟁’이라는 뜻으로 받아들인다면 세계는 말할 수 없는 일촉즉발의 위기에 봉착해 있는 셈이다.이런 가운데 한반도에서도 전술핵 배치 논의가 급물살을 타고 있다. 여당 내에서도 “우리도 우리를 지키기 위한 자위적 수단이 강구돼야 한다”는 주장도 힘을 실어가고 있다. “핵에는 핵으로 대응해야 한다”는 ‘공포의 균형’ 논리가 조금씩 주목을 받기 시작하고 있는 상황이다.최근 강도를 높이고 있는 북한의 미사일 도발이 남한에 대한 핵 공격을 전제로 한다는 점에서 국민적 불안감도 여느 때보다 높다. 북한 핵에 대한 우리의 대응방법이 “핵 보유가 유일하다”는 주장에 대해 국민들의 생각이 어떻게 모아질 지도 궁금하다.아마겟돈 위기를 논할 만큼 긴장감이 감도는 한반도 상황이라는 데 국민적 공감대와 경각심이 높아져야 할 때다./우정구(논설위원)

2022-10-13

표현의 자유

김병래 수필가·시조시인 한국만화영상진흥원이 주최한 전국학생만화공모전에서 카툰 부문 고등부 금상을 받은 ‘윤석열차’란 작품이 시빗거리가 되고 있다. 문화체육관광부가 ‘해당 작품을 시상한 것은 정치 편향적’이란 이유로 ‘엄중경고’를 하자 표현의 자유를 침해한다는 반발이 일었다.윤석열 대통령의 얼굴을 한 열차의 운전석에는 김건희 여사가 앉았고, 객실 창밖으로 법복을 입고 칼을 쳐든 검사들이 상체를 내밀고 있다. 기찻길 뒤로는 부서져가는 건물들이 보이고 열차 앞에는 노인, 아동, 군인, 여성들이 열차를 피해 도망치고 있다. 그림의 내용인즉, 윤석열 대통령은 검사들을 동원하여 국민들을 무차별 탄압하는데 그것을 김건희 여사가 조종하고 있다는 것이다. 굳이 우파의 입장이 아니더라도 사실에 근거한 풍자가 아니라 좌파들의 사악한 모함의 프레임을 대변한다는 걸 한눈에 알 수 있는 그림이다. 다른 작품보다 스토리, 연출, 창의성, 완성도가 높다는 것이 심사의원들의 판정 이유라 하지만 석연치 않은 불쾌감을 지울 수가 없다.표현의 자유는 헌법이 보장하는 기본권에 속한다. 대한민국의 모든 국민은 학문과 예술의 자유(헌법 제22조 1항)와 문화적 표현의 자유와 권리를 갖는다.(문화다양성의 보호와 증진에 관한 법률 제4조) 그러나 표현의 자유를 행사하는 과정에 타인의 명예나 권리, 공중도덕, 사회윤리를 침해해서는 안 되며(헌법 제21조 4항) 모든 자유와 권리는 국가안전보장·질서유지 또는 공공복리를 위하여 필요한 경우에 한하여 법률로써 제한할 수 있다.(헌법 제37조2항)표현의 자유라는 보편적 가치는 마땅히 존중되어야 하지만, 그것을 악용하여 타인의 명예를 훼손하거나 인격을 모욕해서는 안 된다. 형법 307조에는 공연히 사실을 적시하여 사람의 명예를 훼손한 자는 2년 이하의 징역이나 금고 또는 5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고, 공연히 허위의 사실을 적시하여 사람의 명예를 훼손한 자는 5년 이하의 징역, 10년 이하의 자격정지 또는 1천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고 명시되어 있다. 또한 형법 제311조에는 공연히 사람을 모욕한 자는 1년 이하의 징역이나 금고 또는 2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는 조항도 있다.위 사건의 경우 해당 학생의 예술적 재능은 인정할지라도, 아직 미성년인 학생들이 기성사회의 왜곡되고 편향된 정치적 정보를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여 혐오나 증오의 정서를 퍼뜨릴 수 있다는 점에서 악영향을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자유의 신장이란 인류가 추구하는 가치임에는 틀림없지만, 국가나 사회가 온전하지 않을 때는 최소한의 자유마저도 보장받을 수 없다는 실상에 대한 인식이 우선돼야 할 것이다.“표현의 자유를 포함한 기타 자유(양심의 자유, 종교의 자유, 표현의 자유 등)는 그것을 강제할 권력을 필요로 하며, 그 권력이 바로 국가다. 국가는 법과 경찰이라는 모습으로 그 질서를 강제하고, 그 질서를 방해하는 것은 범죄라 칭한다. 이러한 질서에서는 자유의 수호자인 국가에 복종하는 순종적인 시민만이 자유로운 인간이며, 거역하는 이는 무법자라는 역설이 탄생한다.”독일의 철학자 막스 슈티르너의 말이다.

2022-10-13

사라진 사람, 잊혀진 사람

윤영대 수필가 지난 태풍 힌남노 폭우 때 아파트 지하에서 실종된 9명을 구조했는데 생존 2명, 심정지 추정 7명이라는 보도를 보고 ‘실종(失踪)’이란 말을 되새겨본다. 실종은 첫째, 보호자 이탈, 납치, 가출 등 자의나 타의로 잠적한 경우로 살아있을 확률은 높지만 둘째, 재난에 의한 경우는 생사여부가 불분명하고 시신조차 수습하지 못하면 남겨진 가족들 마음에 상처가 크다.작년 실종자는 경찰서 신고 기준으로 하루 180명이나 된다고 하며, 지난 5년간 매년 4만여 명이 실종되어 아동 2만, 지적 자폐 정신장애자 8천, 치매가 1만2천이라 하는데 시민 제보와 경찰 당국의 추적 관리로 거의 다 무사히 가족의 품으로 돌아가고 미해제 인원은 3~15명 정도 남는다고 하니 놀랐던 마음이 풀린다. 어린이는 약취, 유인, 유기, 가출 등으로 미아 신고되거나 해외입양, 인신매매되는 일도 있고, 범죄 관련 사건도 일어나고 있다. 저출산으로 인한 인구 감소에 이러한 악조건도 발생하고 있어서 각 지자체는 2013년 ‘실종아동의 보호 및 지원에 관한 법률’ 개정으로 그 범위를 14세에서 18세 미만으로 확대했고, ‘모바일 안전 드림 앱’ 등으로 보완대책을 마련하고 있다. 어린이 실종 사건으로는 대구의 ‘개구리 소년들’이 옛 기억 속에 남아있다.한국전력 요금청구서 뒷면에는 매달 2명씩 실종아동의 사진과 함께 나이, 실종 일자와 장소, 키, 체중, 피부색, 심지어 흉터 등 신체 특징과 당시 입었던 옷, 신발 등도 알리고 있다. 보통 10세 미만의 아동들인데 0세 아이는 어떻게 잃어버렸는지? 80년에 실종된 3세 아이는 지금 40세가 넘었을 텐데 어디 무엇을 하고 있을까? 17세 여학생은 성범죄에 연루된 건 아닐까? 다 예쁘고 착해 보이는데 잃어버린 가족들의 마음은 얼마나 괴로웠을까…. 64년 3세였던 아이는 지금 살아있다면 60세가 넘은 할머니뻘인데, 가족이 아직도 찾고 있는 모양이니 안타깝다. 전국적으로 수천 개가 넘는 아동 보호시설은 사회 취약 계층을 보호한다는 명목으로 월 30만 원 보장비를 받고 있고 해외 입양하는 경우도 있다고 하니 이들도 잘 관리하여 아동의 안정적 자립을 도와주고 사라지는 아이들이 없도록 해야 한다. 요즈음 휴대폰의 ‘안전안내 문자’에는 코로나 확진자 수와 함께 실종자를 찾는 알림도 뜬다. 주로 60세 이상의 노인들이다. 외모와 인적 사항을 알리고 있지만 궁금하여 들어가 보면 거의 1주일 이내에 실종경보 해제가 되고 있음이 다행이다.노인 인구가 늘어남에 따라 무연고 사망과 자살 등 고독사가 증가하고 있다. 급격한 고령화와 가족해체 등으로 1인 가구와 독거노인이 늘어나는 추세인데 우리나라는 65세 이상 노인 901만 명 중 독거노인은 176만 명이며, 이 중에서 고독사가 3천600 명으로 4년 전보다 47% 증가했다고 한다. 22년 8월부터 ‘고독사 예방 및 관리 시범사업’을 경북을 비롯한 9개 시·도에서 시작하여 ‘따뜻한 동행, 모두가 행복한 사회’를 위한 첫걸음을 떼고 있다.세계적인 나라로 성장하고 있는 지금, 외롭게 잊혀진 사람과 사라지는 사람들에 대한 따뜻한 관심과 후원으로 밝은 사회를 이루었으면 한다.

2022-10-13

친족상도례

홍석봉정치에디터 친족 간에 발생한 재산 범죄의 처벌을 면해주는 형법의 ‘친족상도례’ 규정이 존폐 논란이 일고 있다. 방송인 ‘박수홍씨’ 사건이 계기가 됐다. 박씨의 친형이 박수홍이 번 돈을 관리하면서 횡령한 혐의로 구속됐다. 이에 박씨 부친이 돈을 횡령한 장본인은 자신이라고 주장하고 나서면서 ‘친족상도례’ 규정이 주목받고 있다. 횡령 주체가 부친이면 ‘친족상도례’ 규정이 적용된다.형법상 ‘친족상도례’는 직계혈족이나 배우자, 동거친족, 동거가족 등 사이의 절도·사기·횡령 등 재산 범죄를 처벌하지 않도록 한다. 그 외 친족의 재산 범죄는 고소가 있어야 처벌할 수 있는 친고죄로 규정한다.이 규정은 1953년 형법 제정시 가까운 친족 사이에 발생하는 재산범죄에 대해 가족들의 결정을 존중하고 국가 개입을 최소화하자는 취지로 도입됐다. 하지만 세월이 지나 친족 인식이 변하고 친족 간의 재산범죄가 늘면서 현실에 맞게 손질하거나 폐지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국회에서도 여러 차례 법개정이 시도됐다. 하지만 번번이 무산됐다. 이번 국회에도 개정 법안이 상정돼 있다. 법무부 장관도 국감에서 개정에 동의하기도 했다.법 개정은 쉽지는 않을 전망이다. 일각에서 이 제도가 가정 문제의 공권력 개입을 막는 순기능을 인정하면서도 가정문제에 대한 과도한 국가 개입은 경계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친고죄나 반의사불벌죄 같은 규정으로 대체하자는 제안도 있다. 헌법재판소는 “가정의 평온이 형사처벌로 깨지는 걸 막는 데 입법 취지가 있다”며 합헌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남보다 못한 가족이 많은 시대다. 소송할 정도면 가정은 이미 파탄난 상황이다. 현실에 맞는 개정이 필요하다./홍석봉(정치에디터)

2022-10-12

가을에 거둘 게 없다

장규열 한동대 교수 멋진 시월이 약속이나 한 듯 불현듯 싸늘하다. 추수를 앞둔 들판과 함께 올해의 결실을 생각한다. 무엇을 거두었는가. 연초에 다짐하였던 생각을 얼마나 건져올렸는가. 허비한 지난 시간이 아까와 무엇인가 새롭게 쌓겠다던 우리는 이 한 해 무엇을 하였는가. 온 백성이 고심하며 바꿔낸 정치판은 국민들에게 어떤 세상이 돌아왔는가. 나라와 민족은 앞으로 가고 있는지, 보통 사람들 삶은 나아졌는지 돌아보는 생각이 한가득이다. 가을에 되짚어 보람보다 의문만 쏟아진다면, 우리는 무엇을 잘못한 것일까. 어디에서 무엇이 잘못된 것일까. 어떻게 새로운 활로를 찾아야 할까.우선 순위가 잘못 설정되지 않았을까. 하루하루의 일상이 힘이 든 판에 뉴스는 전혀 다른 걱정을 전하는 게 아닌지. 고물가, 고환율, 고유가…. 높아서 어려워진 경제수치를 누구라도 적확하게 분석하고 적절하게 대응하고 있는지. 하루가 멀다하고 위기를 자아내는 북쪽 소식은 평화를 기대하는 민심과 얼마나 먼 것인지, 통일은 고사하고 대화와 협상을 이제는 잊어야 하는지.안에서도 밖에서도 자랑스런 나라가 되어야 할 터에, 유엔 인권이사국 선임에 실패한 경우는 어떻게 바라볼 것인지. 나라는 무엇으로 존재이유를 증명해야 하는지, 정권은 국민의 표심에 무엇으로 답을 해야 하는지, 국민은 어느 장단에 호흡을 같이 할 것인지.진심이 안 보인다. 문제를 지적하면 진정을 담아 그 문제를 고심해야 한다. 이전에도 같은 문제가 있었다는 말은 답이 아니다. 같은 문제가 켜켜이 반복되므로 이제는 해결해야 하는 게 아닌가.국민에게 문제로 발견된 사안은 모든 국민에게 문제가 아닐까. 여와 야가 따로 없고 보수와 진보를 겨룰 일이 아니다. 문제를 바로 보아 함께 지혜를 쏟아부어 해결에 이르는 용기와 강단을 만나고 싶다. 본질과 상관없이 말로 때우려 하거나 거짓으로 들통나는 일이 거푸 발생하면 국민은 금방 알아채 버린다. 진심이 빠지면, 금세 보인다.함께 넘으려는 생각이 없다. 가파른 언덕은 함께 넘어야 한다. 외교와 국방은 특히 그렇다. 국익으로만 똘똘 뭉친 상대국들 앞에 우리 안의 전선이 흩어지면 이길 수가 없다. 바깥에서 적이 닥치면 보수와 진보 가운데 누가 살아남을까. 나뉘어 이길 방법은 처음부터 없다.하나로 모아 송곳처럼 뚫어야 한다. 다른 생각을 모두 쏟아 좋은 돌파구를 찾아야 한다. 비난과 반대만으로 해결책은 찾아지지 않는다. 슬기로운 대안을 함께 찾겠다는 태도부터 정돈해야 한다. 날마다 다른 소리만 외치고 있으면 남들과 적들은 얼마나 좋을까. 말싸움에 이겨봤자 나라의 기둥이 흔들리면 어찌할 터인가.가을이 묻는다. 우리는 무엇으로 소중한 날들을 보내고 있는지. 약속처럼 결실로 다가오는 계절 앞에 우리는 어떤 답을 내어놓을 것인지. 우선순위를 다시 보아 중요하고 시급한 것이 무엇인지 살펴야 한다. 국민을 위한 진심을 회복해야 하며, 어려운 언덕을 함께 넘겠다는 다짐을 새롭게 해야 한다. 가을 앞에 부끄럽지 않은 겨레가 되어야 한다.

2022-10-12

임오(壬午)

육십갑자 중 열아홉 번째에 해당하는 임오(壬午)다.천간(天干)은 임수(壬水)이요, 지지(地支)는 오화(午火)다. 천간 임수(壬水)는 바다 또는 큰 호수를 나타낸다. 오화(午火)는 말(馬)을 상징한다.임오일주는 착할 때는 한없이 베풀고, 마음이 여려서 남의 말에 흔들리는 편이다. 하지만 한 번 한다고 마음먹으면 고집을 부리고 죽어도 타협하지 않는다.거짓이 없으면서도 지혜로운 성품이다. 책임과 의무에 관한 한 비교적 명확하게 경계를 지을 줄 아는 인물이다.온순하고 겁 많고 예민한 말(馬)은 항상 무리를 지어 생활을 한다. 태어날 때부터 죽을 때까지 항상 서서 생활을 하고, 아주 정숙하고 깨끗하다. 생활반경이 넓고 질주본능이 있다.소처럼 되새김질을 하지 않고, 소화기관이 직장으로 되어 있기 때문에 맑은 풀만 먹어야지 아무 것이나 먹었다가는 소화 장애를 일으킨다. 생활도, 먹는 것도, 자는 것도 엄격하다. 그리고 항상 달릴 준비가 되어있는 동물이다.임오일주는 ‘태양 아래 푸른 바다’로 무한한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그 바다에는 천기(天氣)가 농축되어 있으며, 태양의 기운을 받아 그 무엇인가를 생성하고 있는 것이다. 감수성이 풍부하며, 감각이 뛰어나다. 부드럽고 온유하면서도 은근한 고집과 끈기가 있다. 한 번 정한 목표는 반드시 달성하려고 노력한다.그리스신화에 나오는 포세이돈은 바다와 물, 땅, 말(馬)의 신이다. 그는 바다의 지배자이며, 바다를 제외한 강이나 호수 등의 모든 물이 그의 지배 하에 있었다. 포세이돈의 상징물은 삼지창이다. 상징하는 동물은 말, 돌고래, 황소, 물고기 등이다.미국 작가 허먼 멜빌(1819∼1891)의 소설 ‘모비딕’, 일명 ‘백경’은 1851년 쓰여진 해양문학의 최대 걸작으로 꼽히는 장편소설이다.거대한 흰고래 모비딕에게 한 쪽 다리를 잃은 에이허브선장은 마치 신에게 도전하는 그리스 신화의 영웅처럼 끝내 자신에게 다가올 비극적인 운명을 눈앞에 그리면서도 온갖 수단을 다 동원해서 집요하게 백경을 추격한다.그는 태양을 질투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물리치고, 마침내 인간성의 흔적조차 지워버리면서 자신의 운명을 신의 운명과 일치시키려는 듯 바다를 헤매고 다닌다. 결국에는 백경과 사흘 동안 사투를 벌린 끝에 에이허브 선장과 포경선 비쿼드호는 장열하게 전몰(戰歿)하고, 이슈마일만이 홀로 살아남아 이 이야기를 전해준다.멜빌이 죽은 지 30년 후에 재평가된 이 소설은 굉장히 큰 감동을 준다.흰고래에 목숨을 걸 정도로 집착한 선장은 죽게 되지만, 그래도 선장의 야망은 높이 살 만하다고 본다. 사람은 역시 한 가지 일을 하려면 거기에 몰두할 줄을 알아야 할 것 같다. 자기의 할 일이 무엇인지를 알고 있는 비쿼드호의 선원들은 세상 누구보다 가장 큰 열정과 야망을 품은 사람이 아닌가 생각 해 본다.그는 인간과 인생에 비극적 통찰을 한 상징주의 작가로, 19세기 미국이 낳은 가장 위대한 작가 중 한 사람으로 꼽힌다. 1등 항해사 스타벅의 이름 뒤에 에스(s)가 붙어 세계 최대의 커피체인점인 스타벅스의 이름이 되었다.임오년(壬午年)인 1882년에 큰일이 일어났다. 조선의 실권을 잡은 민비와 민씨일가는 1881년에 신식군대인 별기군을 창설했다.이는 양반 자제들로 이뤄져 있었고, 그들의 사병이나 다름없었다. 그렇기 때문에 기존의 구식군대들은 극심한 차별을 받게 된다.대량 해고사태를 겪기도 하고, 13개월이나 밀린 월급 중에서 겨우 한 달 치를 받았지만 그마저 모래와 썩은 쌀이 섞여 있었다.이에 분노한 구식군인들이 흥선대원군과 함께 민비와 그의 일가들을 제거하기 위해 반란을 일으키는 데 이것이 바로 임오군란이다.이때 재빨리 궁녀로 변장한 민비는 궁궐을 탈출했고, 아쉽게도 그녀의 목숨을 빼앗지 못한다. 그렇게 그녀는 충주로 피신가게 된다. 공포에 떨며 숨죽이고 있던 민비를 낯선 무녀가 찾아왔다. 무녀는 중전께서 이곳에 있다고 신령님께 들었다고 말했다. 저와 만난 날로부터 50일 이내에 환궁할 것이니, 걱정하지 않으셔도 된다고 했다.자신감을 얻은 민비는 청나라의 원조까지 요청하게 된다.물론 청나라는 마다할 리가 없었다. 청나라는 조선에 상륙해 흥선대원군을 납치하고, 구식군대를 진압한다. 그리고 믿을 수 없게도 무당의 말처럼 50일만에 궁궐로 복귀한다. 민비는 환궁할 때 그녀에게 ‘진실로 영험하다’는 의미의 진령군(眞靈君)이라는 군호를 내려주고, ‘언니’라 부르며 궁궐에서 함께 살았다. 매천 황현(1855∼1910)은 오하기문(梧下記聞)에 이 사실을 기록했다.이때부터 비극이 시작되었다. 끝까지 그 무녀의 말을 듣고 정치하다가 결국에는 을미년(1895년)에 민비시해사건이 일어났던 것이다. 천추의 한을 남기고 망국의 길로 갔던 우리에게는 기억하고 싶지 않은 사건이다. 류대창 명리연구자 이 시기에 이용익(1854∼1907)은 가난한 서민의 아들로 함경북도 명천에서 출생했고, 물장수를 하던 사람이다.1882년 임오군란이 일어났을 때 반란을 일으킨 군사들이 궁궐을 습격한 후 민영익의 집을 습격 했다. 이때 이용익이 민영익을 업고 담을 타고 도망갔는데, 어찌나 빠르게 이동했는지 민영익을 죽이려던 군사들이 놀라서 그만 멍하니 보고 있었다고 한다.이후 이용익의 도움으로 살아난 민영익은 그를 고종에서 천거했고, 장호원에 피신 한 고종의 정보통 역할을 했다.이때 그의 발은 말보다 빨랐다고 한다. 발이 빠르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고종과 민비의 눈에 띄었고 그 계기로 탁지부대신 자리에까지 올랐다. 구한말 관리 임용실태의 한 단면을 보여준다.19세기 말까지 동양의 한 모퉁이에서 소중화(小中華)의 강박관념에 빠져 우물 안 개구리 신세로 지내다가 외세의 물결에 휩쓸려 나라를 익사 직전의 상황으로 몰고 간 그들은 바다 위에 넘실되는 파도만 보고, 깊은 심연을 보지 못했다. 반성하지 않는 역사는 반드시 되풀이된다.

2022-10-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