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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정치인이 배워야 할 송해 선생의 낮춤 리더십

배한동경북대 명예교수·정치학 전 국민의 사랑을 받던 송해 선생이 세상을 떠났다. 1927년 황해도 재령 출신의 95세의 송해는 지난 10일 대구 송해공원 부인 곁에 안장되었다.전쟁이 한창이던 1952년 그는 단신 서해를 건너 월남하여 바다 해(海)를 그의 예명으로 하였다.그는 해주예술전문학교 출신이었지만 구봉서, 배삼룡, 서영춘, 이기동 등 유명 코미디언의 조연에 지나지 않았다. 61세이던 1988년부터 34년간 ‘전국노래자랑’MC로 발탁되어 누구나 그를 모를 사람이 없을 정도로 유명해졌다. 그의 프로에 출연한 사람이 천여 명이 넘었으며 송가인, 임영웅, 이찬원 등 수많은 가수를 배출했다. 기네스북에는 그를 세계 최고령 음악 진행자로 등재하였다. 정부는 그에게 금관문화 대훈장을 추서하였다. 그가 95세까지 연예인 활동을 하면서 국민의 심금을 울린 비결은 무엇일까. 한마디로 국민 눈높이에 맞춘 그의 서민적인 낮춤의 처신 때문이다.송해의 인생 궤적을 돌아볼 때 그에게 배워야 할 교훈이 너무나 많다. 그는 무대에서 뿐 아니라 일상에서도 언제나 낮은 자세를 유지했다. 우리 정치인들의 표를 얻기 위한 낮은 자세가 아닌 몸에 밴 겸손 때문이다.이 나라 정치인들부터 배워야 할 처신이다. 그의 대중 친화적인 이미지는 결코 하루아침에 이뤄진 것이 아니다. 그는 언제나 낮은 자세를 통해 소통의 중요함을 일깨워 주었다.전국 방방 곳곳의 노래자랑에 앞서 그는 현지 대중목욕탕부터 찾았다. 그는 대중탕의 뜨거운 몰속에 몸을 담그고 그곳 사람과 자연스럽게 대화를 하였다. 모두 지역 사정을 파악하고 주민들의 정서까지 읽기 위함이다. 무대에 서면 그는 먼저 그 지역민의 긍지부터 살려 주었다. 어린이에서부터 고령 출연자에게 눈높이 대화를 나누었다. 현지의 특산물을 무엇이든 맛있게 먹고, 구수한 덕담까지 이어갔다. 이 나라 정치인들은 송해로부터 지역 민심 파악 방법부터 배워야 할 것이다.송해의 인생에도 구비마다 어려움이 많았다. 작달만한 키에 두꺼비상의 얼굴, 무명 악극단 시절의 배고픔, 경쟁이 치열한 코미디계에서 생존 어느 것 하나 어렵지 않은 것이 없었다. 그는 남하한 후 6·25 전쟁 중 통신병 생활을 하다 1953년 부대 선임의 동생과 결혼을 하였다. 군 제대 후 1955년 창공악극단에서 겨우 입에 풀칠을 하였다.연예인으로서 커가던 그는 1974년 사랑하는 23세 외아들을 교통사고로 잃었다. 응급실에 들어가면서 ‘아버지 살려 주세요’란 말만 남기고 그는 세상을 떠나 버렸다. 자식이 죽으면 부모의 가슴에 묻는다고 그의 가슴에는 늘 아들이 묻혀 있었다. 부인마저 2018년 세상을 떠났다. 보통사람이면 모든 것을 접어야 환갑 나이에 그는 노래자랑 MC로 재출발하였다. 나도 일요일의 노래자랑 프로그램은 재미있게 보았다. 그는 자신의 불행을 위트와 재담으로 우리 국민의 청량제 역할을 하였다. 우리 정치인 중 삶에 지친 국민들에게 그처럼 희망의 빛이 된 사람은 몇이나 있을까.이처럼 송해 선생은 우리들에게 많은 것을 남기고 세상을 떴다.송해는 평양 노래자랑까지 다녀왔지만 그가 그렇게도 애타게 그리던 고향 재령 땅은 밟지 못했다. 요즘 우리 정치의 당면 과제로 화합이나 통합이라는 화두를 많이 던진다. 이는 자신부터 낮추고 상대를 존중하는 낮은 자세에서 출발해야 한다.송해는 무대에서 여성과 남성, 어린이와 노인, 외국 근로자를 똑같은 눈높이로 대우하였다. 그의 얼굴에서는 거만과 교만의 빛을 찾아볼 수 없고 웃음만 있을 뿐이다. 그래서 그는 어린이뿐 아니라 할머니로부터도 ‘오빠’라는 애칭을 받았다. 그의 소탈한 자세는 이 나라 최장수 프로의 비결이 되었다. 그는 지극히 한국적인 무대에서 민중의 애환을 진솔하게 보여주고, 밑으로부터 존경받는 서민적 리더십의 진수를 보여주었다. 그에게는 평범 속의 비범이 있었기 때문이다.송해 선생은 이제 대구 지역 송해공원 부근에 그의 조강지처와 함께 조용히 안장되었다. 6·25를 몸으로 겪고 국민들의 애환을 함께한 최장수 국민 MC인 그가 편안히 영면하시길 빈다.우리나라의 국력은 경제뿐 아니라 문화·스포츠계까지 세계로 펼쳐 나가고 있다. 그러나 이 나라 정치는 아직도 혼돈과 갈등만 반복되고 있다. 인간 송해의 인간적인 소탈함과 대중 친화적 자세는 이 나라 정치인이 반드시 벤치마킹해야 할 덕목이다.그는 코미디와 노래, 나아가 MC를 통해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의 벗이 되었다. 그는 서민과 함께한 인정 넘치는 할아버지 처신을 통해 국민을 하나로 이끌어 주었다. 그의 처신과 리더십은 결코 위장되고 가식적이 아닌 소외된 사람의 참된 벗이 되었다. 그는 우리 문화계의 거장으로 존중받아야 할 것이다.이 지역민들이 그의 묘소를 찾아 그의 영원한 안식을 기원해주길 바란다. 편히 영면하소서. 이 나라 문화의 거장 송해 선생님!

2022-06-19

하늘길로 미래를 여는 수성구

김대권 대구 수성구청장 30년 전 레전드 만화영화 ‘우주의 원더키디’에서 주인공 옆에는 트랜스포머처럼 변신하는 로봇 ‘코보트’가 있었다. 평소에는 로봇의 모습을 하고 있다가 급박한 상황이나 필요한 순간 비행기로 변신한다. 영화 ‘백 투 더 퓨처’와 ‘제 5원소’에도 플라잉카가 등장한다.SF 영화에서만 날아다닌다고 생각했던 꿈의 자동차가 현실에 등장하기 시작했다. 향후 대도시권의 지상교통 혼잡이 지속될 것으로 전망되면서 지상이 아닌 상공을 나는 3차원의 새로운 대안모델로 2020년 6월 4일 정부는 2025년 상용 서비스 개시를 목표로 한국형 도심항공교통(UAM) 로드맵을 발표했다. 여기서 UAM은 도시 내 또는 도시 간 짧은 거리를 단시간 내 도달할 수 있는 혁신적인 교통수단이다.드론산업은 ICT, 인공지능, 빅테이터 등 다양한 4차산업 기술과 융·복합하는 미래산업의 핵심이라 할 수 있다. 드론은 최근 물류, 소방 등 활용범위도 넓어지고 있으며, 하드웨어 제작, 관제시스템, 드론 서비스 등 다양한 분야에서 산업 시장의 외연도 크게 진행되고 있다.기본적으로 도시가 교통 중심에서 멀어지면 도시로 사람을 끌어들이기 힘들다. 지금 대구는 광역철도, 엑스코선, 대구경북통합신공항, 시청사 이전, 서대구 역세권 개발 등 대구의 중심축이 바뀌는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수성구 역시 대공원개발, 법원·검찰청 이전, 도시철도 3호선 연장 등이 계획돼 있고, 연호지구와 수성알파시티의 개발로 비즈니스 수요가 늘어나고, 관련인구도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높아지는 경제규모, 항공수요, 교통혼잡도 등을 고려해 볼 때 수성구에 교통거점이 필요하다.수성구는 2020년 10월 28일 대구시와 공동 주최한 ‘제1회 세계문화산업포럼’에서 도시비전을 포함한 미래도시 계획을 발표하면서 하늘이 자유로운 도시‘Sky Free City’를 수성구의 미래비전으로 선정했다. 그 해 11월 중순에는 미래유망 성장동력 산업인 드론택시 서비스를 지방 최초로 실증했다. 드론·UAM 사업을 선도하는 수성구의 본격적인 투자가 시작됐다고 볼 수 있다.2021년에는 대구·경북권 및 전국 기초 자치구 최초로 국토교통부 공모사업인 ‘2021년 드론 실증도시 구축사업’에 선정됐다.수성구 전체 면적의 50%를 차지하는 도심 내 산간지역 자연생태 보전을 위한 산불감시/소화탄 진화/조난자 물자수송/야생동물 정찰 및 퇴치의 과제를 성공적으로 추진했으며, 10월 시연회를 통해 점검을 마쳤다.2022년 1월에는 구의회, 대구시, 국토부, 한국공항공사 등 관계자 40여명이 참여한 가운데 ‘대구수성 UAM 인프라 구축’이라는 주제로 전문가 포럼을 개최했고, 포럼 사전 행사로 개최 장소인 수성호텔에서 책, 샌드위치·음료를 실은 드론으로 4㎞를 비행해 용지봉 정상(629m)까지 자율비행을 선보였으며, 인명구조용 PAV(개인용비행체)로 고층건물에서 환자 더미를 지상으로 이송하는 장면도 영상 송출 했다.이 날 포럼에서는 국토교통부 등 각 분야 전문가들이 5군지사 이전 터에 UAM 특화도시 구상을 위한 방향을 제시했다.올해는 구립도서관 드론 책배송 서비스 용역을 자체 구비 예산을 편성하여 추진한다. 용역기간 7개월로 도서관 상호대차서비스(다른 도서관 책을 가까운 도서관에 대여·반납)와 주민 독서문화 확산서비스(지역 내 거점시설에 도서 배송)를 추진하고, 향후 수성구가 드론산업에 대한 지속가능하고 독자적으로 사업 추진할 수 있는 솔루션을 구상할 계획이다.플라잉카가 우리 삶을 획기적으로 변화시킬 것이라는 데는 이견이 없다. 교통체증은 물론 장애물 없는 하늘길을 자유롭게 오가고 수직 이착륙이 가능해 물류 운송비용 등 사회적 비용까지 절감할 수 있다.수성구의 UAM관련 미래 로드맵은 지금까지의 축적된 경험을 바탕으로 수성못과 용지봉을 잇는 케이블카를 대신할 운행 비즈니스모델 개발, 수성못 상공이 무대가 되는 드론을 활용한 공연, 2030년을 목표로 5군수이전 후적지에 드론택시 메인 공항을 유치하는 계획이다.인구감소로 인한 지방소멸의 위기를 극복하고 수도권과 지방의 격차에 대응하기 위해 ‘도전과 결단, 모험’이 필요한 시점에서 첨단산업과 미래교통의 중심지를 선점하는 것이 수성구의 미래를 대비하는 길이다.

2022-06-19

하늘빛 서정

우리네 삶을 표현하는 방법은 다양하다. 그림을 그리는 사람은 붓을 잡고, 악기를 다루는 사람은 악보를 보며, 글을 쓰는 사람은 펜을 든다. 인류가 시작한 처음부터 우리의 삶에는 많은 일이 일어났다. 슬퍼하거나 노하거나, 기쁘고 즐거운 일은 항상 있다. 때론 삶이 우리를 속일지라도 그렇게 살아간다. 이웃과 더불어 살며 와글와글하는 세상사의 이야기를 연재한다.무작정 떠난 길이다. 한참을 걷다가 바다를 바라보는데, 하늘에 새 한 마리가 날아간다. 호젓한 날갯짓을 보니 내 안에 웅크리고 있던 새가 하늘로 날아오른다.하늘은 어디에 가나 있었다. 고샅길에서 공깃돌을 주울 때도, 길가 작은 연못에도 구름을 머금은 채 내려와 있었다. 하늘도 마음이 있는지 먹구름이 끼다가 비가 오다가 언제 그랬냐는 듯 햇살을 쏟아냈다. 흐린 날에는 우울하고 맑은 날에는 개고, 하늘의 표정은 어린 마음에 고스란히 투영되었다. 가끔 하늘은 두려운 존재였다. 서쪽 하늘에서 몰려오는 먹구름을 보면 가슴 깊은 곳에서 두려움이 밀려왔다. 기억의 창고 한구석에 감춰둔 용서받지 않은 잘못이 쥐구멍을 찾아 허둥댔다. 후드득후드득 빗방울이 떨어지면 누구에게도 들키고 싶지 않은 부끄러움이 지붕 아래로 숨어들었다.살짝만 건드려도 감수성이 터지던 시절, 말간 하늘에 떠 있는 한 점 구름을 보면 마음속에 뭉게뭉게 피어나는 그 무엇이 있었다. 무거운 책가방과 교복을 벗어 던지고 숙제와 시험이 없는 세상으로 떠나고 싶었다.하늘을 보며 때로는 여행자가 되고 싶었다. 구름 위에 누워 산을 넘고 바다를 건너면 낙타를 탄 여행자를 만나고 아라비아 양탄자를 탄 소년도 만나겠지. 내가 사는 세상을 한 바퀴 돌아보고 싶은 나는 이다음에 어른이 되면 세계를 일주하겠다는 야무진 꿈을 꾸었다.삶의 개척자가 되고 나서 하늘을 보지 않았다. 땅의 것에 충실 하느라, 주부가 되어 아이들을 키우며 모든 것은 가족 중심으로 돌아갔다. 배낭을 메고 산길을 걸으며 하늘빛 서정을 담는 일은 일상에서 제외되었다. 하늘을 보며 상상하는 일은 한가한 몽상가의 사치이고 현실주의에 빠진 내게 비생산적인 일이었다. 하늘은 내 심상에서 점점 멀어졌다. 아이들을 다 키우고 숨을 돌릴 무렵, 하늘에 매달리는 일이 생겼다. 땅의 것을 채우기에 바빴던 내가 나를 돌보지 않았음이다. 그런데도 왜 하필이면 나에게 이런 병이 왔는지 원망했다. 또 왜 나냐고 회색빛 하늘 향해 주먹을 날렸다. 그러다 두려움이 밀려와 살려달라고 하늘을 보고 떼를 부렸다. 이순혜 수필가 수술을 앞두고 오히려 차분했다. 지금껏 쏟아냈던 다짐을 되새기며 나붓이 엎드렸다. 앞으로 하늘을 볼 수 있게만 해달라고. 수술실에 들어갈 때까지 하늘만 생각했다. 스르륵 앞이 캄캄해졌다. 긴 수술 후 마취에서 깨어나자 가장 먼저 하늘이 보고 싶었다. 휠체어에 앉아 바라본 하늘이 이토록 시리고 투명하다니. 뜨거운 눈물이 온몸을 적셨다. 상상의 날개는 살아있는 자에게 주는 하늘의 축복이었다. 하늘을 가만히 올려다본다. 숱한 이야기가 하늘로 올라가 숨어있었다. 하늘 깊이 낚싯대를 드리우면 선녀를 닮은 물고기가 입질할 것 같고, 하늘로 올라간 오누이가 금빛 두레박을 타고 내려올 것 같았다. 상상의 그물을 깊이 올렸다가 내리면 싱싱한 이야기들이 은빛 비늘을 파닥이며 우르르 쏟아졌다.하늘은 다채롭다. 구름이 뭉게뭉게 피어나다가 사라지고, 온갖 그림을 그렸다가 어느새 싹 지워버린다. 소나기를 퍼붓다가 언제 그랬냐는 듯 말갛게 능청을 떤다. 가끔은 무지개를 띄워 사람들의 마음을 채색한다. 심상이 마음껏 뛰어놀 수 있는 푸른 도화지, 만약 하늘이 없다면 사람의 마음은 무채색일 것이다. 하늘하늘, 하늘은 어감조차 가볍다. 사람의 마음에 바탕색이 있다면 그것은 하늘빛이다.

2022-06-19

여름 한가운데서

김규종 경북대 교수 6월 21일은 하지(夏至)다. 북반구에서 밤이 가장 짧고 낮이 가장 긴 날이 하짓날이다. 여름의 정점이다.본디 빛을 좋아하고, 어둠을 꺼리는 성정인지라, 아파트와 거리를 두었다. 해가 늦게 떠서 일찍 사라지는 시멘트 콘크리트 건축물. 촌에서는 해가 일찍 떠서 늦게까지 사위를 밝힌다. 그런 밝음은 사람을 무연하게 행복하게 해준다. 층간소음에 괴로워했던 기억도 사라진 지 오래다.상강(霜降) 지나고 입동(立冬) 거치면서 낮은 짧아지고 밤이 길어지기 시작하면 상황이 역전된다. 시골의 고요는 거룩하고 심오하기가 비할 데가 없기로, 처연함과 쓸쓸함을 형언하기 어렵다. 절집처럼 소음과 차폐되고, 빛도 제한적이어서 적막과 고요는 깊어간다. 그런 연유로 내가 봄의 찬미자가 되었는지 모르겠다. 풀과 나무에 초록의 신생이 찾아들어 생명의 환희와 약동(躍動)이 춤추는 시절이 봄이기에.여름은 봄의 기운이 하늘까지 뻗치는 계절이고, 하지는 여름의 절정이기에 특별한 날이다. 때마침 지구 주변의 오행성(五行星) 수성, 금성, 화성, 목성, 토성이 나란히 배열되는 장관이 펼쳐진다니 반가운 일이다. 6월 중순 이후 2~3주에 걸쳐 우주의 진기한 잔칫상이 우리를 행복으로 인도할 터. 곳곳에서 아마추어 관측대회가 열릴 것이라는 언론보도가 나오고 있다.우리가 범하는 실수 하나는 대상에 관한 무관심과 태무심(殆無心)에서 온다. 우리 옆에 있는 사람이나 사물은 지나치게 익숙하여 그것을 당연시하기 쉽다. 하지만 정작 대상의 부재가 발생하고, 부재 기간이 길어지면 대상의 소중함을 비로소 인식하게 된다. 두말할 나위 없이 나도 같은 실수를 여러 번 되풀이했더랬다. 그래서다. 이번 여름을 깊이 느끼고 고마운 마음을 갖기로 한 까닭은 그래서다.여름 한가운데서 덥다느니 습하다느니 짜증이 난다느니 하면서 여름을 원망하곤 했던 부질없는 행태를 반성하면서 여름에 고마운 마음을 전하기로 한 것이다. 요즘 마당에 황금물결로 피어난 루드베키아와 드물게 얼굴을 내미는 낮분홍달맞이꽃, 시절이 조금 지난 자주달개비를 볼라치면 경탄이 절로 나온다. 그래, 생명의 환희는 저렇게 작고 여린 것들에도 얼마든지 가능해, 혼잣말한다. 그러다 문득 눈길 닿은 곳에 원추리의 길고 미끈한 꽃대가 솟아올랐다.원추리가 피어나고, 여름 한 철을 호령하는 큰 키의 참나리가 화려하게 몸을 열면 여름은 슬슬 떠나갈 태세를 갖추기 시작할 터다. 하지만 그 사품에도 땅속 어딘가에서는 상사화(相思花)가 개화할 시기를 저울질하면서 숨 쉬고 있을 것이다.하기야 얼마 전 텃밭에 나 있는 작은 구멍에 무엇인가 들어있길래 살폈더니 올여름 우화(羽化) 기다리는 매미 유충이었다. 아하, 그렇구나. 매미가 창공을 향해 날아오를 때가 가까운 게로구나! 작은 한숨과 탄식이 뒤따른다.지하세계에서 5∼6년 견디고서 지상의 보름 남짓한 날 살아보려는 매미의 고단한 생이 울컥 다가온다. 그렇다! 삶은 언제 어디서든 의미가 있는 법. 여름 한가운데서 여름을 찬미해본다!

2022-06-19

경제 회생에 사활 걸어야

우정구 논설위원 대통령 지지율은 현 정권에 대한 사회 구성원의 평가를 종합적으로 반영한 것이라 항상 국민의 관심 앞에 놓여있다. 대통령의 국정 수행평가를 국민이 긍정적으로 보느냐 그렇지 않느냐 하기 때문에 정부 정책을 판단하는 자료로도 유용하다.대통령의 지지율은 대체로 임기 초에는 높게 나오고 임기 말이면 떨어지는 경향이 있다. 이는 새 대통령에 대한 국민적 기대감과 취임 이후 나타난 국민적 실망감 등이 반영된 결과로 해석한다.최근 미국의 바이든 대통령의 지지율이 비록 오차범위 내지만 전임인 트럼프 전 대통령에 뒤지는 여론조사가 나와 눈길을 끈다. 야후뉴스와 여론조사기관 유거브가 미국인 1천541명을 상대로 조사한 결과 차기 대선 가상대결에서 바이든은 응답자의 42%, 트럼프는 44%의 지지를 얻었다. 두 사람 다 2024년 대선 출마 의사를 밝힌 상태여서 이번 여론조사가 더 흥미롭게 전파되고 있다.전문가들은 바이든이 뒤진 것을 두고 코로나19 대유행으로 미국 내 공급망이 붕괴되고 우크라이나 전쟁의 장기화, 유가폭등 등 미국 물가불안정 등이 원인이라 분석했다. 실제로 여론조사에서도 61%의 응답자가 바이든의 경제정책을 반대한다고 답했다.대통령 지지율에 경제가 미치는 영향은 날로 커진다. 전문가들은 경제적 환경이 발전하고 경제에 대한 국민의 인식과 반응이 과거에 비해 월등히 높아진 탓으로 분석한다.퍼펙트 스톰(초대형 복합위기)을 우려하는 등 국내경제가 최악의 위기로 몰리고 있다. 한 여론조사기관은 응답자의 절반 이상이 국내경제를 비관적으로 본다는 결과도 내놨다. 이런 상황에서 윤석열 대통령 지지율이 처음으로 50% 아래로 떨어졌다. 경제 회생에 사활을 걸어야 할 때다./우정구(논설위원)

2022-06-19

0.2와 2.0

박상영 ​​​​​​​대구가톨릭대 교수 얼마 전의 일이다. 모 프로젝트 연구제안서 공모의 심사 위원으로 들어갔을 때였다. 많은 글 중 유난히 눈에 띄는 글 하나가 있었다. 단박에 공모자가 꽤 오랫동안 고심해서 쓴 것임을 알 수 있었고, 아이디어도 남들이 생각지 못한 매우 참신한 것인데다 아이디어의 실효성을 증명하기 위해 제시한 자료들도 정확해 읽는 내내 감탄을 마지않던 글이었다. 참으로 오랜 가뭄에 내린 단비처럼 반가운 글이어서 나는 당연히 그게 선정 리스트에 오를 줄 알았다. 그런데 결국은 떨어졌다. 까닭은, 유명한 심사위원장이 그 글은 제쳐놓고 다른 글들을 중심으로 먼저 이야기를 풀어갔기 때문인데, 그 글을 제쳐놓은 이유는 또, 글이 너무 독창적인데다 별 이름 없는 지방의 소위 삼류 대학 출신의 것이라 제시한 이론의 실효성도 의심스럽다는 것이었다.세상에는 새로운 생각과 시도를 하면서, 남들이 가지 않는 길을 가는 이들이 있다. 남이 보지 못한 것을 보고, 남이 생각지 못한 것을 생각하면서 역사에 한 획을 긋곤 하는 이들의 삶이, 늘 꽃길이기만 한 것은 아니다. 제왕이 갖추어야 할 중요한 것이 ‘인(仁)’이라 했던 공자의 사상도 당시에는 ‘현실감 떨어지는 이론’이라 배척받았고, 당시 대세이던 천동설에 반해 지동설을 주장한 코페르니쿠스적 발견을 여러 각도로 지지한 갈릴레이도, 종교재판에 회부되며 혹독한 수난을 겪었으며, ‘갈루아의 이론’으로 유명한 프랑스의 수학자 갈루아의 방정식론도, 당시 프랑스 학사원에서 등한시되었고 사후에야 그 이론의 위대함이 세상에 알려졌다.눈이 두 개라고 사물을 더 잘 보는 것이 결코 아니다. 0.2의 시력을 지닌 두 개의 눈으로 사물을 보는 것과 2.0의 시력을 지닌 한 개의 눈으로 사물을 보는 것, 어느 것이 더 선명히 잘 보일까. 장자의 ‘소요유’에는 재미난 이야기가 하나 있다. 북쪽 바다에 큰 물고기 한 마리가 변해서 된 새, 대붕(大鵬)이 큰 날개짓을 하고자 때를 기다리는 것을 보고, 메추라기가 숲 풀 사이에서 날개를 퍼덕거리는 게 날 수 있는 가장 높은 것인데 대붕이 어딜 가려는가 하고 비웃는 얘기가 바로 그것이다. 이에 장자는 “작은 뜻은 큰 뜻에 미칠 수 없고, 이끼와 버섯은 달이 차고 이지러짐을 모르고, 매미는 봄, 가을을 알지 못한다”고 하였다.그렇다. 덧셈·뺄셈만 아는 이는 곱셈·나누기를 하는 사람을 이해못하고 이상하게까지 보이는 법이다. 그러나 세상은 덧셈·뺄셈만 아는, 매미같이 여름 한 철만 아는, 두 개의 눈이나 0.2의 흐릿한 시력을 지닌 그런 이들에 의해서가 아니라 곱셈·나누기를 아는, 사시사철을 아는, 애꾸눈일지언정 2.0의 시력을 지닌, 그러한 이들에 의해 달라지는 법이다. 좋은 글을 쓰고도 여러 선입견으로 그 독창성을 인정받지 못한 공모자의 글도 언젠가는 빛을 발하리라.바야흐로 6월 하순, 한창 뜨거웠던 3월 대선과 6월 지방선거도 모두 끝나고 이제 새로운 시대의 변혁을 꿈꾸는 바람들이 많은 요즘이다. 모쪼록 0.2의 흐릿한 시력이 아닌, 2.0의 선명한 시력으로, 다들 지난 정부의 공과를 잘 살펴 한층 더 발전된 모습을 보여주는 중앙·지방 정부가 될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2022-06-19

어떤 위로

유영희 인문글쓰기 강사·작가 20부작 드라마 ‘우리들의 블루스’가 시청자들에게 감동과 생각거리를 주고 끝났다. 정주행은 하지 못했지만, 짧은 영상을 보다가 아주 인상적인 장면을 만났다. 18화에서 동네 형들이 동석에게 너를 이해한다면서 그래도 암에 걸린 엄마의 마지막 소원은 들어주어야 한다고 압박하자 동석이 소리지르는 모습이다. 동석 엄마는 남편도 죽고 딸도 바다에서 죽자 해녀를 할 수 없어 동석 친구의 아버지에게 첩으로 들어갔기에 동석은 엄마에게 원망이 깊은 상태다.“형들은 형님 어멍이 형님 보는 앞에서 형님 친구 아방 방에 들어가서 불 딱 끄고 부스럭부스럭 이불 소리 내면서 자는 거 본 거 있어? 날 이해해? 뭘 이해해? 내가 제일 싫어하는 말이 이해한다는 말이야.” 나중에 동석은 선아에게 전화를 걸어 어멍이 종철 아방 첩으로 들어가면서 자기를 작은 어멍이라 부르라 했을 때 못한다고 하자 싸대기를 개 패듯이 팼다고 말한다.이런 동석의 말을 듣자니, 일본의 유명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끼의 단편 소설 ‘타일랜드’가 생각난다. ‘타일랜드’의 주인공 사쓰키는 갑상선 전문의인데, 30년 전에 강제로 낙태한 일로 마음속에 돌이 박혀 있다. 사쓰키는 방콕에 갔다가 운전을 맡은 니밋의 소개로 점쟁이 노파를 만나게 된다. 점쟁이의 조언에 마음이 열린 사쓰키가 니밋에게 자신의 과거를 이야기하려고 하자 니밋은 말을 한다고 마음이 서로 통하는 일은 없다며 듣기를 거부한다.같이 보고 겪은 일도 사람마다 이해하는 것이 달라 소통하기 어려울 때가 많다. 동네 형들이 동석이 겪은 일들을 알고 있다 하더라도, 아니 직접 보았다고 하더라도 어린 동석의 마음을 이해하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니밋의 말이 극단적인 것처럼 보이지만, 그는 이해의 한계를 처절하게 체득한 사람일 뿐이다.부모라도 자식의 마음을 알기는 쉽지 않다. ‘오은영의 금쪽같은 내 새끼’에는 자식을 이해할 수 없어서 상담을 청한 부모들이 나온다. 부모라도 자식의 사정을 시시콜콜 다 알 수 없고, 안다고 해도 자식의 감정을 이해하기 어렵다. 그러니 타인의 고통을 이해하기는 불가능에 가깝다. 오히려 이해한다는 말이 폭력일 때도 많다.며칠 전, 친구가 희소암 치료를 위해 병원에 입원했다. 눈물이 났지만, 그저 내 맘대로 내 사정으로 흐르는 눈물일 뿐, 그가 느낄 황당함, 분노, 좌절감, 무력감 등 이루 말할 수 없는 복잡한 감정을 이해했기 때문이라고 할 수는 없다.그러나 소통의 한계를 인정하면 이해받지 못할 것이라고 지레 좌절할 것도 아니고, 이해할 수 없다고 포기할 것도 아니다. 오히려 이때 뜻밖에 소통이 일어난다. 선아는 동석이 묵혀두었던 말을 다 하라고 응원하며 들어주었고, 니밋은 몇 번의 대화로 사쓰키의 고통을 눈치채고 점쟁이 노파에게 데려가 주었다. 그러고 보니, 병원에 입원한 친구를 위해서는 그가 얼마나 두려운지 얼마나 아픈지 말할 수 있게 나 자신이 의연해지는 방법도 있겠다. 그것은 분명 위로는 아니지만 위로일지도 모른다.

2022-06-19

인수위는 점령군 아니다

심한식 경북부 전국을 휘몰아친 제8회 전국동시지방선거의 여파가 어느 정도 가라앉았지만, 당선인 주변 일부 인사들의 꼴불견이 구설에 올라 유권자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하고 있다.개정된 지방자치법 제105조에 따라 초선인 민선 제8대 자치단체장의 업무를 돕고자 자치단체들은 인수위원회를 구성하고 당선인이 15~20명의 인수위원을 임명했다.경산시도 15명의 인수위원을 조현일 경산 당선자가 임명하며 인수위원 면면이 구설에 올랐지만, 당선인이 누릴 승리 월계관이라는 점에서 양보할 수 있다.하지만, 자치단체 운영에 따른 자료를 준비하는 것이 업무인 인수위원들이 전쟁에서 승리에 도취한 점령군 행세를 한다면 말이 달라진다.인수위원회는 권력기관도, 피감기관도 아닌 새롭게 행정업무를 담당할 자치단체장의 업무를 준비해주는 한시적인 기구이지만 업무보고가 행정사무감사가 되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는 등 곳곳에서 인수위 활동이 도마에 올랐다. 앞으로도 경산시장직 인수위원회의 활동기간이 상당 기간 남아 있다. 인수위원들은 자신의 이름이 인수위원에 올랐다는 것에 자존심을 가지는 것은 좋지만 시정(군정)을 간섭할 수 있다는 어리석은 생각에서 반드시 벗어나야 한다.인수위원들을 관리해야 할 당선인들도 현실을 바로 보아야 한다.당선의 기쁨을 누렸지만, 유권자의 50% 이상이 투표에 참여하지 않았다는 서글픈 현실을 항상 생각해야 하고 정책과 공약이 아닌 지역정서가 선거판을 좌우했다는 점, 선거로 지역 민심이 요동쳤다는 현실을 잊지 말기 바란다.여기에 당선인의 주변 인물로 채워졌다는 인식이 강한 인수위원회의 활동이 구설에 오르면 당선인도 구설에서 벗어날 수 없고 만약 이들이 시정(군정)에 개입한 정황이 드러나면 험난한 앞날이 될 것이다.우리의 역사는 권력의 주위에 있던 인물들이 자신의 이익을 탐했던 기록으로 가득하다는 것을 되돌아 볼 때 선거캠프에 관여했던 인사들의 언행에도 제동을 걸어 구설을 방지하기 바란다.인수위원회 소속 인사들은 주요 현장과 현안들을 살펴보며 허황한 제언이 아닌 지역을 위한 시책들의 올바른 방향성을 제시하고 한시적인 기구의 사명으로 인수위원으로 참여했던 사실이 부끄럽지 않고 명예가 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주기 바란다./shs1127@kbmaeil.com

2022-06-16

식량위기의 엄습

우크라이나는 동유럽의 내륙에 위치한 나라다. 면적은 남한의 약 6배 크기다. 산지가 별로 없고 토질이 매우 좋다. 국토 대부분이 지력이 풍부해 비료가 필요없는 비옥한 땅을 가진 나라다.예로부터 세계적인 곡창지대로 유명하며 2011년에는 곡물수출량이 세계 3위를 마크했다. 유럽의 빵공장이라는 별명도 가졌다.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100일을 넘기면서 우크라이나 곡창지대가 심각히 붕괴되고 공급망까지 막히면서 전세계적 식량위기를 불러오고 있다. 특히 밀을 주식으로 하고 있는 유럽과 아프리카 국가들은 지금의 상태가 지속되면 식탁에서 빵이 사라질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 휩싸여 있다고 한다.최근 우크라이나 키이우경제연구소는 보고서를 통해 러시아의 침공으로 자국의 농지, 농기계, 가축 등의 피해액이 43억달러(약 5조5천억원)에 달한다고 발표했다. 농업피해의 절반은 지뢰와 포탄 잔해 등으로 토양오염과 수확하지 못한 작물이며, 피해액의 4분의1 정도는 농기계 파괴로 인한 것이라고 밝혔다. 우크라이나 농림부도 경작지의 25%가 상실됐다고 밝힌 바 있다.유엔세계식량계획(WFP)과 식량농업기구(FAO)는 공동으로 분쟁과 폭염, 홍수 등과 같은 기상이변으로 식량 가격이 폭등해 세계 수십개국 수백만명이 빈곤과 굶주림에 몰리고 있다고 했다. 이들 단체는 에티오피아, 소말리아 등 아프리카 6개국을 재난에 직면한 최고 경계국가로 꼽았다.우크라이나에는 현재 2천만t의 곡물이 저장돼 있지만 러시아의 항구 봉쇄로 제대로 수출을 할 수 없는 상황이다. 우크라이나 전쟁이 장기화할수록 세계는 식량난이란 큰 위기를 맞게 될 전망이다. 한국도 예외일 수는 없다./우정구(논설위원)

2022-06-16

블랙리스트 논란 이제는 끝내자

김진호 서울취재본부장 정권교체기에는 전 정권의 국정철학에 적극 동조하며 협력했던 정무직 공무원들의 거취가 항상 문제가 된다.당사자들은 조금이라도 자리를 더 지키고 싶어하는 반면 새 정부에서는 자신들의 사람으로 채우고 싶어한다. 그러다보니 반강제적이거나 우회적인 압박을 통해 사퇴를 강요한다.이 과정에서 불거지는 것이 바로 블랙리스트 논란이다. 최근에 기소된 백운규 전 장관의 산업부 블랙리스트 사건도 마찬가지다.2017년 문재인 정부가 출범하고 산업통상자원부 박 모 국장이 박근혜 정부가 임명한 산업통상자원부 산하 8개 공공기관장들에 대해 임기가 남았음에도 불구하고 자진 사퇴를 종용힌 사건이다. 그동안 문재인 정부의 압박으로 인해 수사를 진행하지 못하다가 3년만인 올해 정권이 바뀌고 나서야 다시 검찰수사가 진행되고 있다.우리 정치권에서 블랙리스트가 처음 거론된 것은 1980년대다. 1984년 ‘민주노동자 블랙리스트 철폐 대책위원회’구성 후 1970~80년대 노동탄압 블랙리스트가 존재한다는 사실이 처음 알려졌다.이명박 정부때는 인권위 블랙리스트로 인권위 직원들을 솎아낸 후 정권의 입맛에 어울리는 인사들을 임명했으며, 4대강 사업에 반대한 단체와 인물을 탄압하기 위한‘4대강 블랙리스트’를 작성했다는 의혹도 있었다. 문화예술계와 방송계 블랙리스트도 드러났다.박근혜 정부에서도 당시 국정교과서를 반대하는 연구자를 탄압한 역사학계 블랙리스트, 국립대 총장 인사 개입에 영향을 준 교육부 블랙리스트, 문화예술계와 과학기술계 블랙리스트가 말썽이 됐다. 문재인 정부에서도 블랙리스트 사건은 반복됐다. 환경부 블랙리스트 사건으로 김은경 전 환경부 장관은 실형을 선고받은 바 있다.정치권은 정치권대로 시끄럽다. 야당은 “정치보복 수사”라며 방어막을 펼쳤고, 국민의힘은 “문재인 정부가 수사하면 적폐청산이고, 윤석열 정부가 수사하면 정치보복이냐”라며 꼬집었다.정권이 교체될 때마다 반복되는 ‘알박기 인사’논란이나 블랙리스트 사건은 사라져야 한다. 해결방안은 명확하다. 더불어민주당 우상호 위원장의 말처럼 정권이 바뀌면 청와대와 정부, 여당 쪽에서 (공공기관장을) 추천하고 함께 일을 하고, 대통령 임기가 끝나면 기관장 임기도 종료시키면 된다. 임기제 공무원의 임기를 대통령과 맞추는 법제도의 정비가 필요하다는 것이다.정치권이 이제껏 해법을 알면서도 제도정비를 않은 것은 무책임한 태도로 지탄받아야 한다. 지금이라도 정부의 정무직 인사 제도를 개선해야 한다. 그래서 다음 정부 때부터라도 알박기 인사로 새롭게 국정을 운영하려는 정부의 발목을 잡는 행태는 사라져야 한다.생각해보라. 대통령제 정부에서 대통령이 바뀌었는데, 전임 대통령이 임명한 대통령 자문위원회 수장과 위원들이 그대로 자리를 지킨다는 게 말이 될 법한 일인가.불합리한 인사제도를 진작 바꾸지 않은 채 ‘알박기 인사’니 ‘블랙리스트’니 공방만 일삼는 정치권의 각성을 촉구한다.

2022-06-16

‘여야의 내로남불’

탄탄 스님 불교중앙박물관장·동국대 출강 대통령의 부인 김건희 여사가 지난 13일 경남 김해 봉하마을을 방문하면서 10년지기 지인과 동행한 것을 두고 온 세상이 시끄럽다.‘무속인 아니냐’는 얘기가 유포되다가 사실이 아닌 것으로 드러나자, 공적인 자리에 사적 지인이 동행한 것은 옳지 않다며 연일 비판이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야당도 뒤질세라 ‘공사 구분을 하지 못한 채 문제를 일으키고 있다’, ‘비선 논란을 자초한다’고 신명이 난 듯 총공세를 퍼붓고 있다. 필자 생각으로는 참 해도 너무들 한 것 같다.‘내로 남불’도 이쯤이면 금메달감이다.세상은 끈으로 서로 얽혀 있다. 불가(佛家)에서는 이를 흔히들 인연(因緣)이라 말한다. 선하게 얽혀 있으면 무슨 문제가 있을까마는 만약 원한으로 서로 악하게 맺혀 있다면 삶이 고달파진다. 세상은 사람과 사람이 맺음으로 살아가는 것인데, 이것이 곧 인간관계다. 결(結)이란 끈으로 매는 것이고, 해(解)는 묶은 끈을 푼다는 것이다. 사람의 일생은 태어나면서부터 세상사에 이리저리 맺고 얽히어(結者) 시작하지만, 죽을 때는 그 모든 것을 풀고(解之) 가야 한다. 우리 모두는 세상사(事) 관계 속에서, 또 살아가는 사이에 너와 내가 얽히고 위와 아래가 얽히고, 과거와 현재가 얽혀 있다. 정치도 돌고 돌아서, 어제의 야당은 여당이 되었으며 여당은 야당이 되었다. 당연, 영원토록 살아 있을 권력도 없을 터다. 저물어 버린 권력에게 다시 신새벽이 오지 말라는 법도 없지 않는가.인간이 사회를 떠나서 살 수 없듯이 가족 관계도 집도 미시적으로는 사회다. 또, 친구들과의 만남도 사회이고, 이웃이나 마을, 교회나 사찰도, 정당 활동도, 우리에게는 사회이다. 다만, 사회에서는 자신에게는 한없이 관대하고 남에게는 철저한 이들이 적잖음을 우린 종종 목격한다. 잘난 체 하고 뽐내며 다른 사람을 무시하는가 하면 헛소문을 만들어 사람들 사이를 갈라놓는, 마구니 짓이 일상인 이들 곁에는 훗날 아무도 남아 있지 않는다. 김 여사의 일거수일투족은 주목 대상이 될 수는 있다. 그러나 한 자연인을 애써 비판과 혹평으로 몰아 인격 살인을 자행하는 것은 재고가 필요하다. 더구나 대통령 부인의 친구라 하여서 험한 욕설과 인신공격을 가하는 것은 법도에도 어긋난다. 일부 비호감 여론을 활용한 공격이라는 것 외에는 더 할 말이 없다. ‘취모구자(吹毛求疵)’라는 말이 있다. 터럭을 불어서 작은 허물을 찾아낸다는 뜻이다.짐승의 몸에 난 흠은 털에 가려서 잘 보이지 않는다. 입으로 불어서 털을 헤치고 흠을 찾아내는 것이니 남의 허물을 억지로 들추는 일을 말한다. 중국의 철학자 가운데 법의 중요성을 주장한 한비자의 ‘군자는 터럭을 불어서 남의 허물을 찾지 않는다’는 말에서 나왔다. 작은 허물도 없는 완벽한 사람은 오히려 인간적인 매력이 없어서 가까이 다가서기 어렵다. 어느 누구나 작은 결점은 지니고 있다. 남의 장점보다 결점이 먼저 보이는 것은 가랑잎이 솔잎더러 바스락거린다고 말하는 것과 같은 이치다. 붓다께서는 이러한 말씀을 하신다. “남의 허물을 찾아내어 항상 불평을 품는 사람은 번뇌의 때가 점점 자라며 그의 번뇌는 계속 불어난다.”

2022-06-16

청와대, 국민 품으로

윤영대 수필가 지난 5월 10일 청와대가 개방돼 국민의 품으로 돌아왔다. 대통령 집무실과 관저의 기능을 가지고 ‘대한민국 권부의 심장’으로 숨겨져 왔던 대통령궁이 74년 만에 그 비밀의 문을 연 것이다. 가보고 싶었지만 인터넷 사전예약을 통해 당첨되어야 했기에 생각만 하고 있었는데 때마침 단체 관광 기회가 있어 기꺼이 따라나섰다.이른 아침 출발하여 정오가 지나 청와대 분수를 돌아 도착해보니 일요일이라 엄청난 관광객이 몰려 있었다. 입장은 세 곳 정문과 춘추문, 영빈문인데 우리는 영빈문으로 갔다. 안내원이 일일이 인원수를 확인하여 들여보내 주어 경복궁 후원이었던 넓고 깨끗한 뜰로 들어가니 오래된 현대식 건물인 영빈관이 단정하게 손님을 반긴다. 대규모 회의와 국빈영접 등 행사를 했던 곳이다. 10여 분을 줄 서서 기다렸다가 입장하여 덧신을 신고 대접견실에 들어서니 정면 중앙벽에는 봉황과 무궁화 문양이, 둥근 천정에는 커다란 샹들리에가 화려하고, 원형 테이블 3개와 태극기만 있을 뿐 한국적 맛을 느낄 장식과 시설의 부족함이 느껴진다. 사진만 찍고 나오니 벽면 아래쪽 박정희 대통령의 ‘머릿돌’ 글씨가 선명하다. 다음에 본관을 보려고 뒷문을 빠져나가 보니 긴 행렬이 이어져 있고 그 끝이 구 본관이 있던 수궁(守宮)터다. ‘천하제일복지’라는 비석 앞에서부터 약 45분 정도 구불구불 따라 걸으며 신비로운 소나무와 벙커도 곁눈질하며 대정원에 들어서니 푸른 기와와 전통 목조 구조의 궁궐건축 양식이 아름다운 본관이 북악산을 머리에 이고 위엄이 있다. 1층 로비 입구에서 덧신을 신고 붉은 카펫을 따라가며, 임명장을 수여하던 충무실과 유백색 벽에 커다란 ‘통영항’ 그림이 걸려있는 인왕실을 둘러보고 2층으로 올라갔다. 대통령 집무실은 정갈하고 소박하지만 너무 크다. 텅 빈 책꽂이와 책상 위에 몇 권의 책이라도 놓였으면…. 황금색 벽면과 천정이 화려한 접견실도 보고 다시 1층으로 내려와 영부인 집무·접견실인 무궁화실을 들여다보니 역대 영부인 11명의 사진이 걸려있어 유일한 볼거리다. 다 보고 나오니 15분 걸렸다.시간은 빠듯한데 허전한 마음에 구경욕심이 발동하여, 바로 관저로 향하는 일행을 빠져 나와 북악산 등산로의 계단 길을 뛰어올라 미남불이라는 석조여래좌상과 이승만 대통령의 현판 글씨가 멋진 오운정(五雲亭)을 보았다. 숲 위로 광화문 풍경이 보이는 오솔길을 내려오니 땀이 흠뻑 하여 작은 연못 속 돌에 동전 1개를 던져보았다. 마지막으로 관저에 갔는데 줄을 서지 않아 바로 인수문(仁壽門)으로 들어갔다. 전통한옥으로 침실, 주방 등이 있으나 들어가 볼 수는 없고 한 바퀴 돌며 열린 문으로 들여다보았다. 대통령 부부가 살기에는 넓은 것 같다.부근의 침류각(枕流閣)도 둘러보고 춘추문으로 갔더니 헬기장에는 천막이 늘어서 있다. 이어 청와대에서 가장 아름답다는 정원인 녹지원을 지나며 아름드리 반송과 소나무 숲속의 상춘재(常春齋)를 멀리서 보고는 정문을 나와 청와대를 되돌아보았다.앞으로 잘 가꾸어 아름다운 공원과 역사박물관 등 국민을 위한 역사문화공간으로 거듭나기를 희망해본다.

2022-06-16

사진 감상문

양태순수필가 가던 걸음을 멈추게 하는 것들이 있다. 시선을 붙잡는 예쁜 물건과 반가운 얼굴을 보거나 튀는 행동을 볼 때다. 익숙한 멜로디, 그림과 사진에는 눈은 물론 마음까지 빼앗기고 만다. 그런 일은 계획되지 않고 불시에 일어나는 현상이어서 느낌의 파동이 크다. 어두컴컴한 복도에서 만난 사진이 그랬다.할머니가 시원하게 웃는 모습이다. 건물 이층에 자리한 작은 휴게 공간에 걸려 있는 사진이다. 밤이라 간접 조명이 있어도 사물이 어른거려 계단을 조심히 올라와 소파로 가던 나는 홀린 듯 사진 앞으로 갔다. 할머니의 얼굴에서 빛이 나고 있었다. 팝콘인가 싶어 자세히 보는데 이였다. 순간 뒤통수를 맞은 듯 번개가 일었다. 감당키 어려운 선한 기운이 몸에 들어와 심장을 마구 두드리는지 가슴이 둥당거렸다. 나는 할머니의 입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것 같았다. 말보다 먼저 찰칵찰칵 소리가 났다.아침에 지난밤 찍은 사진을 불러냈다. 밤새 되돌려 본 마음에 담은 이미지가 헛것일까 떨렸다. 숨을 길게 쉬었다. 서서히 전체적인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밝은 데서 찬찬히 보니 밤과는 다른 순박한 평화로움이 그곳에 있었다. 낡은 소쿠리와 버석한 손, 검게 탄 얼굴이 말쑥하게 피어나는 꽃 같은 웃음이다. 난전에서 채소를 파는 할머니가 앉은 자세로 쳐다보며 웃고 있는데 할머니 앞에는 분명 누군가 서 있겠지만 사진사는 그것은 생략한 채 웃음만 드러내었다.사진 속 할머니의 하나뿐인 이는 머리말이었다. 그것만으로 살아온 날들이 읽혔다. 아랫니 윗니 스물여덟 개의 이가 난바다를 헤쳐오면서 흔들리고 흔들려서 끔찍한 치통의 밤을 지새며 뭉그러졌을 것이다. 그뿐일까. 뭉그러진 이를 뱉지도 못하고 꾹 삼키고는 위에서 주물럭거린 시간이 또 얼마였을지 가늠할 수 없다. 길게 잇대어진 삶의 터널을 통과하느라 갖은 애를 썼을 것임이 분명하다. 그럴 때마다 새겨진 무늬는 밭고랑 같은 주름으로 남았다. 낱낱의 주름은 일기였고 남을 탓하기보다 그저 자신이 노력하면 되리라는 다짐의 연속으로 채워진 날이었다. 할머니는 폭우와 폭풍을 맨몸으로 맞서 왔기에 티끌 같은 부끄러움도 없을 것이다. 그래서 저 웃음은 진흙 속에서 무심으로 피워낸 에필로그다. 참 아름다운 책을 읽은 기분이다.아름답다는 말은 감동을 포함한다. 살아보니 감동할 일이 드물다. 여리던 마음은 세상사 격랑을 건너느라 점차 무디어지고 자신을 돌아볼 여유가 없다. 웬만해선 좋다와 멋지다를 적절히 섞어 감정의 구색을 맞춘다. 하지만 하늘을 붉게 물들이며 노동자의 하루를 경건히 갈무리 하는 노을의 품은 아득한 아름다움이다. 그리고 자신이 가진 것을 사랑이란 이름으로 부지런히 퍼주는 넉넉한 씀씀이 또한 가치 있는 아름다움이다. 그럴 때면 나는 조용하고 엄숙한 감동으로 떨린다.꾸미지 않은 모습이 작품이 된다. 사진사가 시장에서 만난 할머니에게 사진을 찍는다고 이렇게 해주세요, 주문을 했더라면 할머니는 어쩔 줄 몰라 어색함이 묻어났을 것이다. 작가는 프로답게 보이지 않는 곳에서 위치와 각도를 달리하며 수백 장을 찍었고 그중에 하나를 건졌지 싶다. 아마도 종일토록 렌즈를 조였다 풀었다 하며 예술혼을 불태웠으리라. 한 사람의 삶을 필름에 압축하는 작업을 하는 사람으로서 진심으로 상대를 이해하고 존중했으리라는 믿음이 생겼다.사진은 수명이 길다. 나를 기억하는 사람들이 눈을 감을 때까지 살아있다. 종이나 손전화의 사진은 보관 상태에 따라 분실되기도 하고 오래되면 품은 이야기가 흐릿해진다. 하지만 눈으로 찍은 사진은 시간이 지날수록 더 선명해진다. 따로 시간을 내지 않아도 순간순간 되살림 기능이 활성화되기 때문이다.인물을 찍는 사진작가는 삶의 여러 형태를 보여준다. 오래된 골목이나 시장, 노동자와 공원에서 시간을 보내는 모두를 수식어 없이 담아낸다. 무심코 지은 표정이야말로 진솔한 인생을 담은 책이다. 어느 것 하나가 더 대단하다고 말하지 않는다. 담백하게 보여준다. 삶이란 바다에서 나름의 방법으로 최선을 다해 나아가고 있는 모두가 훌륭하며 잘 살아내고 있다는 위로를 건넨다. 덧붙여 스스로를 안아 대견하다 다독였으면 하는 바람도 얹은 듯하다.

2022-06-15

바다와 교감하기

5월부터 내리쬐던 볕의 강렬함이 남달랐다. 덩달아 한낮의 더위를 피해 산과 바다로 향하는 이들도 많아졌다. 여기에 더해 사회적 거리두기가 막바지에 이르자 야외는 다시 인파로 북적였다. 사실, 날씨의 변화에 따라 자유로이 거닐 수 있는 환경을 되찾았다는 것만으로도 위안이다.최근 밤바다를 찾은 이유도 이와 비슷하다. 철썩이는 파도 소리를 배경으로 깊은 상념에 젖었다. 폭죽놀이를 하는 사람들과 이를 제지하는 경찰과의 가벼운 실랑이로 일상회복 현장을 만나기도 했다.파도소리가 심리적 안정을 준다는 상식을 뒷받침하듯이 곧 평온과 여유가 찾아왔다. 바닷물의 음이온 입자들이 해변가를 맴돌고, 해풍이 귓가를 스치는 환경에서 사람들은 곧잘 이완된다고 한다. 과학적으로 입증된 데이터다. 흔히 말하는 해양치유 효과의 일부이기도 하다.바다를 찾는 이들은 쉽게 바다에 마음을 내준다. 잔잔히 일렁이는 수평선 너머의 바다를 바라보고 있으면 혼란이 가라앉는 경험을 하곤 한다. 온 몸의 힘을 빼고 물위에 둥둥 떠 있을 때의 이완과 비슷하다. 불안 강도가 높고, 만성질병으로 인한 통증이 잦은 경우 심신안정 등 치유효과가 뛰어나다고 한다. 일종의 바다와의 교감이다. 발이 푹푹 빠지는 모래를 밟으며 걷는 동안 뺨에 전해지는 해풍의 시원함을 만끽하는 것. 바다와의 대화가 아닐까 싶다.바다 생물과 사람 간 교감은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나의 문어 선생님’에서 자세히 그려내고 있다. 문어의 지능이 반려견과 비슷하다는 것은 익히 알려져 있었지만, 실제 사람과 깊은 교감을 나누는 모습은 화제가 됐다. 친근해진 사람과 손가락 놀이를 하고, 포식자에게 공격당해 상실감에 젖어있는 모습 등이 대표적이다. 다큐는 문어를 통해 교감 뿐만 아니라 새끼를 낳고 죽어가는 모습을 통해 생애의 애틋함까지 담아냈다.돌고래 체험도 대표적인 사례다. 상업적인 체험으로 질타를 받았지만, 여전히 성행하는 이유는 사람과 돌고래 간 교감 때문일 것이다. 특히 임신부들이 돌고래를 만난 기억은 특별하게 회자된다. 뱃속 아이 태동이 심해졌다거나, 돌고래들이 임신부를 둘러싸고 빙빙 도는 행동을 보였다는 등 다양한 체험담이 들린다. 돌고래의 초음파에 반응하는 뱃속 태아의 행동이 늘상 이슈의 중심이다. 태아가 돌고래와 어떻게 교감을 나누는지는 알 수 없지만, 분명한 것은 이들 사이에 뭔가 있다는 것이다.바다생물로 한정 짓지 않으면 동물 간 교감의 대표격은 ‘동물매개치료’다. 치료사와 내담자 간의 신뢰를 쌓는 데에 동물을 매개, 심리적인 치료효과를 높이는 방법이다. 반려견 등 동물이 갖고 있는 정서적 교감능력을 활용해 내담자의 긴장도를 낮추고 통증을 줄이는 등 다양한 심리 치료효과를 내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내담자는 동물을 통해 낯선 상황에 대한 적응력을 높이고 치료사를 신뢰하며 편안한 마음 상태에서 상담에 응하게 된다고 한다.사람은 기본적으로 관계를 통해서 정서적 안정감을 찾는다. 부모관계든 연인관계 등 다양한 관계를 통해 존재를 확인받고 유대를 맺고 앞으로 나아간다. 관계는 교감의 전제이자 존재의 이유인 셈이다. 문어가 매일 정해진 시간에 자신을 찾아오는 다큐멘터리 감독에게 마음을 연 것처럼, 해양생물도 비슷한 패턴을 가진다. 돌고래가 태아에게 보낸 초음파도 관계 맺기의 일종일 것이다. 정현미작가 우리는 코로나 팬데믹을 통해 ‘교감’과 ‘관계’라는 게 어떤 의미인지 뼈저리게 알게 됐다. 관계를 맺지 않았을 뿐인데, 코로나 블루와 각종 정서적 불안증상이 사회 전반을 드리웠다. 결국 사람은 홀로 설 수 없다는 반증이다. 코로나 팬데믹은 극단적인 단절의 상황에 놓였을 때, 관계의 변화를 보여주는 일종의 사회적인 실험이기도 했다. 홀로 바다와 산, 들을 찾는 이들이 많아진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이제는 삼삼오오 모여 바다에서 모래와 해풍, 파도소리에 치유 받지만 누구나 단절의 기억과 낯섦이 어떤 것인지 인식하게 됐다.관계를 통해 교감을 맺는 것은 모든 생명체의 동일한 행동 패턴이다. 그 속에서 따뜻한 위안과 위로, 삶의 동력을 얻는다. 문어 이야기를 촬영한 감독 역시 심한 번아웃을 경험한 후 어린 시절의 바다를 찾았고, 그곳에서 문어의 생태를 관찰하게 됐다.삶의 난간에 부딪혔을 때 고향을 찾아 추억을 회상하고 관계를 반추하는 것 역시 좋은 과거와 교감하는 행위일 것이다. 누구나 어린 시절의 물놀이 기억에는 즐거움이 가득하다. 물이 주는 물질의 특성뿐만 아니라 함께 놀이를 했던 관계의 추억 때문이기도 하다.이제 본격적으로 물놀이 시즌이 찾아올 것이다. 연중 개장하는 해수욕장까지 생긴다고 한다. 단절의 기억을 치유하는 방법은 결국 다시 함께하는 행위이지 않을까. 올해 여름은 작정하고 바다와 친해볼 예정이다. 무의식 속에 갇힌 기억을 딛고 다시 관계 속에서 교감하는 것, 많은 이들이 바다에서 위로받기를 희망해본다.

2022-06-15

나를 식혀 주세요

김규인수필가 6월까지 산불이 꺼질 줄 모른다. 1986년 이후 산림청이 산불통계를 집계한 이후 6월에도 대형으로 산불이 난 건 이번이 처음이다. 이제까지 우리나라는 건조한 봄에 집중적으로 산불이 났다. 최근에는 산불 발생이 길어져 6월에도 예년에 비해 산불 발생 위험이 30∼50% 높아졌고, 가뭄으로 전국에 산불 경보가 발령됐다.6월의 산불은 생나뭇잎을 태우며 나는 짙은 연기로 소방관의 시야를 가린다. 그렇지 않아도 무덥고 건조한 기후에 방화복까지 입은 소방관의 산불 진화를 어렵게 한다. 산불을 끄는 소방 헬기가 고압선을 피해 곡예 운전을 한다. 헬기가 장애물에 부딪히는 사고가 날까 봐 지켜보는 사람은 안절부절못한다. 이래저래 진화작업은 더디다. 강한 바람은 이 봉우리에서 저 봉우리로 불씨를 옮기며 빠르게 산불을 퍼뜨린다. 초속 11m 이상의 강풍은 부지런히 물을 나르며 불을 끄는 산불 진화대원의 노력도 보람 없이 죽어가는 불씨를 보란 듯이 살려낸다. 불은 소방 헬기의 바람을 일으키는 동분서주를 비웃기라도 하듯이 빠른 속도로 방향을 바꾸며 번진다. 매스컴에서는 산불의 원인을 분석한다. 비가 오지 않아 건조해진 날씨를 탓한다. 6월은 예년이면 장마로 물난리를 걱정하는 시기이니 그럴 만도 하다. 산림 당국의 50년 만의 가뭄이라는 발표는 어쩌면 올 것이 왔다는 생각이 들게 한다. 이제는 산불이 발생하고 오래 지속되는 것은 기후변화 때문인 것을 직접 몸으로 느낀다. 나무가 우거진 산은 홍수를 막고 물을 가두었다가 천천히 내보내며, 수많은 동물과 식물을 보듬어 살아간다. 산이 있기에 가능한 일이다. 가장 중요한 일은 이산화탄소를 잡아먹고 산소를 생산하는 것이다. 산이 있어 지구온난화를 막고 산소를 마시고 사람이 살아갈 수 있다. 산불은 모든 것을 먹어 치운다. 파괴된 자연으로 생물다양성은 줄어들고 비가 오면 감당할 수 없을 만큼의 홍수 피해를 일으킨다. 산성비와 대기오염을 심화시키고 산불로 인한 이산화탄소의 발생으로 지구온난화는 빠른 속도로 일어난다. 악순환이 반복되는 것이다. 국가 정책도 탄소 저감을 실천하는 것과는 거리가 멀다. 말로만 친환경을 외치면서 화력발전을 늘린다. 먹다가 남거나 과잉으로 생산한 음식은 비닐봉지도 뜯지 않은 채로 쓰레기통에 버려진다. 사람들이 신선도를 따지는 사이에 음식물이 썩으면서 나오는 이산화탄소는 지구가 견딜 수 없는 상태로 만든다. 온난화로 인한 피해가 지구 곳곳에서 일어난다. 먹이를 구하지 못한 북극곰은 고사 위기에 처해 있고 빙하는 쉬지 않고 녹는다. 높아진 해수면에 나라를 잃고, 수년간 계속된 가뭄으로 먹을 물을 구하지 못한 동식물과 사람들이 말라간다. 먼 나라의 일이 아니다. 바로 앞에 닥친 우리들의 문제이다. 오늘도 손쉬운 일회용품의 사용은 코로나에 편승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고, 잘 썩지 않는 쓰레기는 쌓여만 간다. 사람들의 편의만을 내세운 이기주의로 지구가 중병에 시달린다. 더워진 몸을 식히지 못하고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고서도 외면한다. 지구가 자신을 태우면서 전하는 말을 지금이라도 새겨들어야 한다.“나를 식혀 주세요”

2022-06-15

소울리스좌를 따라 하는 이유

노승욱포스텍 교수·인문사회학부 “옷 머리 신발 양말 다~다 젖습니다. 물에 젖고 물만 맞는 여기는 아마존 아! 마! 존조로존조로존~!”최근 게시된 지 2개월여 만에 유튜브 조회 수 1천922만 회를 기록한 동영상이 폭발적인 반응을 얻고 있다. 인기몰이의 주인공은 유명 놀이공원의 전직 캐스트(기간제 노동자)인 김한나 씨다. 그녀는 본명보다 ‘소울리스좌(soulless座)’라는 별명으로 더 유명하다.해당 동영상은 ‘아마존 익스프레스’라는 놀이기구 체험에 대한 안내 멘트를 랩으로 표현한 것이다. 흥겨운 랩이 전달하는 유일한 주제는 ‘이 보트를 타면 젖는다’이다. 무심한 눈길과 기계적인 몸짓의 래퍼는 또렷한 발음으로 ‘주의 사항(물에 젖음)’을 2분 30초 동안 재미있는 가사로 전달한다.소울리스좌는 ‘영혼 없이(soulless) 일하면서 최고의 경지(본좌·本座)에 오른 직장인’을 뜻한다. 얼핏 들으면 부정적이면서 속되게 느껴지는 이 말이 2030세대 직장인들에게는 큰 공감을 얻으면서 긍정의 프레임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특히 감정노동자에게 ‘소울리스’는 마음의 에너지를 균형 있게 조절하는 방법으로 인식되기도 한다.필자는 주변의 2030세대에게 소울리스좌 현상에 대해 물어보았다. 청년 직장인들은 주어진 업무는 능숙하게 수행하지만, 감정과 에너지는 절제하는 캐릭터로 소울리스좌를 인식하고 있었다. 평생직장을 바라기 힘든 사회 여건과 인생의 큰 그림을 그리기 어려운 비정규직 일자리가 많은 상황도 젊은 세대가 소울리스좌에 공감하는 원인 같았다.그렇다면 김한나 씨 본인은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최근 ‘BBC 뉴스 코리아’와의 인터뷰에서 김 씨는 “영혼이 없다는 것이 최선을 다하지 않는다는 뜻은 아닌 것 같다. 최적의 효율을 찾아서 일한다는 뜻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동안 최선을 다해서 일했고, 현재는 그 결과물이라고 답하는 그녀의 얼굴은 밝고 환했다.소울리스좌 현상은 우리가 흔히 말하는 ‘프로페셔널’의 의미를 재정의해 주고 있다. 출중한 능력과 무한한 열정이 조화를 이룬 사람을 프로라고 한다면, 소울리스좌는 무언가 부족해 보일 수 있다. 그렇지만 어느 네티즌이 “목소리는 힘차지만 눈에 영혼이 없는 그녀는 프로다”라고 쓴 댓글처럼 청년 세대의 가치관은 바뀌고 있다.소울리즈좌는 사람들에게 ‘따라 하기’의 욕망을 부추긴다. 처음에는 재미있는 가사와 흥겨운 리듬을 따라 하지만, 점차 자신의 영혼은 안녕한지 돌아보게 된다. 영혼이 없어 보이는 표정에서 ‘내 영혼은 소중히 지킨다’는 무언의 다짐을 읽어 내기도 한다. 23세의 소울리스좌가 젊은 직장인들에게 일종의 롤 모델이 되고 있다.김한나 씨는 현재 같은 직장의 홍보팀으로 자리를 옮겨서 일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한동안 ‘소울리스좌 열풍’은 계속될 듯하다. 어쩌면 2030세대의 인식은 이미 변화하고 있었고, 소울리스좌 현상은 때마침 나타난 것일 수도 있다. ‘소울리스’가 ‘번아웃’의 대안으로 우리 사회에 자리잡을 수 있을까. 청년 세대의 영혼에 응원의 메시지를 보낸다.

2022-06-15

문화가 살아야 지역이 산다

장규열 한동대 교수 포항은 어떤 도시일까.포스코가 등장하여 국가산업화의 중심지역이었다.반세기가 지난 오늘, 지역이 포스코만으로 버틸 수가 없다. 상상과 창의를 발휘하여 새로운 포항을 만들어야 한다.디지털이 초래한 초연결사회(Superconnected Society)를 맞아 국내뿐 아니라 세계와도 함께 호흡하는 지역이 되어야 한다. 최근 보이는 포항의 변화를 반기면서도, 보다 역동적인 탈바꿈을 이끌어 세상이 주목하는 도시가 되었으면 한다. 지역의 자연조건과 문화토양은 더할 나위없이 탁월하다. 천혜의 바다와 수평선은 낭만과 향수를 부르기에 충분하고 풍성한 문화적 자산은 오늘의 콘텐츠로 다시 태어나기를 기다린다. 문화와 관광에 차별화와 탁월함을 보태면 포항은 세계 굴지의 중심도시로 도약하기에 손색이 없다.첫째, 전통문화에 기반을 둔 콘텐츠가 좋은 내용을 담고 있어도 ‘다음세대’와 ‘글로벌관객’의 관심을 끌어야 한다. 지역이 초연결사회에 적극적으로 응답하는 콘텐츠적 솔루션을 찾아야 한다. 전통콘텐츠를 발굴하는 일이 소중한 만큼, 오늘 관객들이 환호하려면 새롭게 각색하고 연출하여 다양한 플랫폼으로 승화시켜야 한다. 우리가 가진 문화원형이 가장 뿌리깊은 가능성을 가졌음은 분명하다. 문화원형을 내일의 콘텐츠로 재탄생시켜야 할 책임이 오늘 우리에게 있다. 포항과 지역이 가진 문화적 토양은 그럴 가능성으로 가득하다. 우리의 옛것을 미래자산으로 변화시킬 상상력이 필요하다.둘째, 문화도 개발해야 한다. 전통문화만 문화일까. 오늘 이 자리에서도 문화는 숨쉬듯 움직이며 새로운 모습으로 태어난다. 완전한 새것을 기대하기 보다 이미 있었던 것들을 새롭게 해석하고 신박하게 연결하여 이전에는 없었던 신선한 무엇을 탄생시켜야 한다. 아이폰이 그랬고 BTS가 보여주고 있다. 모방과 추격의 전성기는 막을 내렸다. 창의와 상상력으로 ‘다음문화’의 문을 열어야 한다. 신선한 충격은 문화와 트렌드가 불러와야 한다. 청년들이 지역에서 미래를 찾도록 유도하려면 그들의 싱싱한 생각과 느낌에 공감하고 격려해 주어야 한다. 문화도 적극적으로 개발해야 한다.셋째, 글로벌환경에 주목해야 한다. 나라 안 경쟁의 틀을 넘어야 한다. 세계적 트렌드와 글로벌 시장의 흐름을 읽어야 한다. 세상의 시선을 의식하면서 우리 문화의 디테일을 다듬어야 한다. 세계적 콘텐츠를 겨냥하는 포항의 문화를 탄생시켜야 한다. 세상의 벽은 의외로 낮았다. 한국문화는 이미 세계적 수준에 올라서 있다. 지역의 콘텐츠가 글로벌 맥락에 통하지 말라는 법이 있는가. 국내 다른 도시들과 협력과 협업도 진행하면서 적극적인 문화적 세계화에 시동을 걸어야 한다. 도시와 지역들 뿐 아니라 세계시장의 브랜드들과도 연계와 협력의 가능성을 열어가야 한다.‘다음포항’의 열쇠는 ‘포항문화’가 열어갔으면 한다. 포항이 만들어 보여주는 문화콘텐츠가 도시브랜딩의 새 길을 제시했으면 한다. 상상과 창의로 승부해야 한다. 문화가 살아야 지역이 살고, 지역이 살아야 나라가 산다.

2022-06-15

택시합승제

15일부터 택시합승제가 시행돼 40년 만에 택시 합승이 가능하게 됐다. 국토교통부는 플랫폼택시 합승 허용기준을 마련하는 ‘택시운송사업의 발전에 관한 법률 시행규칙’ 개정안이 이날부터 시행된다고 발표했다.현재 서울에서는 지난 2019년부터 규제샌드박스 제도를 활용해 코나투스가 심야시간대에 ‘반반택시’를 운영하고 있어 앞으로 ‘반반택시’는 정식 서비스가 가능하게 됐다. 우선 합승 중개는 승객 모두가 플랫폼을 통해 신청한 경우에 한해서만 이뤄질 수 있다.신청한 승객의 본인 확인을 거친 후 합승을 중개해야 한다. 즉 길거리에서 임의로 합승 승객을 태울 수 없다는 의미다. 또 합승하는 모든 승객이 합승 상대방의 탑승 시점과 위치를 알 수 있도록 해야 하며, 앉을 수 있는 좌석 정보도 탑승 전에 승객에게 알려야 한다.동성(同性) 간의 합승도 시행된다. 경형·소형·중형택시 차량을 통한 합승은 같은 성별끼리만 이뤄지도록 해야 한다. 단 대형택시의 경우 성별 제한이 적용되지 않는다. 이와 함께 차량 안에서 위험 상황 발생 시 경찰 또는 고객센터에 긴급신고 할 수 있는 기능을 갖춰야 하며, 신고방법을 탑승 전에 승객에게 알려야 한다.만일 기존의 플랫폼가맹 또는 플랫폼중개사업자가 합승 서비스를 운영하려는 경우에는 승객 안전·보호 기준을 갖춰 관할 관청에 사업계획변경을 신청해야 한다. 플랫폼가맹 사업자의 경우 합승 서비스를 1개 시·도에서만 하려는 경우에는 해당 시·도, 2개 이상 시·도인 경우에는 국토교통부에 신청하면 된다.단 플랫폼중개사업자는 합승 서비스 운영지역과 상관없이 국토교통부에 신청해야 한다. 플랫폼 택시 서비스에 합승이 허용되면 심야택시 승차난을 일부 완화하는 효과가 기대된다./김진호(서울취재본부장)

2022-06-15

송해 할아버지 안녕히 가세요

송해 할아버지 이제 편히 쉬세요. 덕분에 행복했어요. /연합뉴스 송해 할아버지가 돌아가셨다. 선생님이나 어르신 등 여러 호칭이 있지만 이 글에서는 할아버지라고 부르고 싶다.친할아버지가 돌아가신 뒤로 누구에게 “할아버지!” 부른 일이 없었다. 슬픔과 애틋함, 그리고 사랑을 담아, 할아버지! 참 오랜만에 불러본다. 송해 할아버지… 할아버지!실시간 인기 검색어에 송해 할아버지가 오르면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혹시 무슨 일이 생겼을까 봐. 주무시는 할아버지의 코에 손을 갖다대보는 어린 손자처럼, 조마조마했다. 나만 그런 게 아니라 온 국민이 다 그랬다.여섯 해 전 죽도시장 ‘울릉도 돼지집’에서 머릿고기에 탁주 마시는데, 주인 할머니가 울상이었다.송해 할배 돌아가셨대서 시장 사람들 다 종일 일이 손에 안 잡힌다고. “헛소문이래요. 멀쩡하시대요” 말씀드리자 옆집 아주머니에게 “만우절도 아닌데 왜 거짓말해! 악썽루머 싸이버 수사대에 의뢰한단다!” 역정을 냈다.그 모습이 재밌어 큭큭 웃었다. “건강하단다! 어이고 오래 살겠다!”라던 돼지집 할머니 예언대로라면 백 살은 넘기셨어야 하건만, 너무 일찍 가셨다. 코로나로 야외 공개방송이 중단되면서 에너지를 잃어버리신 게 아닌가 싶다. 계속 팔도를 돌아다니며 무대에 올랐다면 10년은 더 사셨을 것이다.장수의 아이콘이셨다. 제임스 딘, 엘비스 프레슬리, 체 게바라, 레이 찰스보다 형님이고, 그레이스 켈리에게는 오빠이자 마릴린 먼로에게는 한 해 아래 동생이셨다. 백 년 가까운 세월을 살았으니 천수를 누리셨다. 말년에 무의미한 연명치료 받으며 고생하다 가신 것도 아니니 어찌 보면 호상이라고 할 수도 있다. 그럼에도 황망하고 먹먹한 것은, 그분은 정말 천 년 만 년 사실 줄 알았기 때문이다. 언제나 우리 곁에 계실 줄로만 알았다.어린 시절, 일요일 정오가 되면 늘 “전구우욱~! 노래자랑!” 외치는 소리와 함께 “딴따단 딴따단딴” 흥겨운 오프닝 음악이 집안을 가득 채웠다. 아버지와 함께 목욕탕에 가도 “전구우욱~!”, 엄마랑 동네 국수집에 잔치국수 먹으러 가도 “노래자랑!”, 친구네 집에 놀러가도 “딴따단 딴따단딴”, 쌀집에 떡 찾으러 심부름 가도 “딩동댕동” 어느 곳에서나 ‘노래자랑’이었다. 괜히 ‘전국’이라는 총체성의 명사가 붙은 게 아니다. 앞집, 옆집, 뒷집, 너 나 아무개 할 것 없이 누구나 틀어놓는 프로그램, 안 봐도 틀어놓는 프로그램이 ‘전국 노래자랑’이었고, ‘일요일의 남자’ 송해 할아버지의 익살맞고 다정한 음성은 공기처럼, 물처럼 늘 있는 것이었다.온몸에 꿀벌을 두르고 무대에 오른 양봉업자 아저씨 때문에 벌에 쏘이기도 하고, 짜디짠 어리굴젓을 한 움큼 집어 입에 넣어주는 아주머니 손길을 거절 못해 우물우물 잡수기도 하고, 김인협 악단장(2012년 별세)에게 용돈을 갈취(?)해 어린아이들 나눠주기도 하고, 때로는 꼬마아이와, 때로는 백 세 어르신과 함께 덩실덩실 춤추기도 하셨다.‘전국 노래자랑’에는 각 지역의 고유한 특색이 늘 살아 숨 쉬고, 가족과 이웃 공동체의 따뜻한 온정이 있고, 서민의 웃음과 눈물, 삶의 애환과 고락이 흥건했다. 전국 노래자랑이 방영되는 일요일 점심이면 온 나라가 다 시장터고, 약수터고, 광장이고, 가설무대였다. 이병철 문학평론가이자 시인. 낚시와 야구 등 활동적인 스포츠도 좋아하며,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요양병원에 오래 누워 계셔서 이제는 보지도, 거의 듣지도 못하는 나의 할머니께서 ‘테레비’에 나오는 사람 중 가장 좋아하는 분이 송해 할아버지셨다.문맹인데다 눈과 귀가 어두운 할머니는 당신이 아는 기초적이고 직관적인 언어를 조합해 의미를 만들곤 하셨는데, 매주 일요일 정오가 되면 전국 노래자랑이라는 프로그램 이름 대신 늘 ‘산에서 노래하는 거’ 틀어달라고 내게 부탁하시곤 했다.“그 할아버지 웃겨 죽겠어”라며 박장대소하던 할머니와 함께 계란을 삶아 까먹던 그 일요일, 내가 가장 행복했던 시절의 그 모든 일요일들에 언제나 송해 할아버지가 계셨다. 이제 요양병원 면회가 허용되지만, 할머니 귀에 보청기를 껴 드리고 “할머니!”하고 불러볼 수 있지만, 송해 할아버지 소식은 차마 전하지 못할 것 같다.모두의 할아버지에게 작별 인사를 드려야겠다. 송해 할아버지 편히 쉬세요. 덕분에 행복했어요. 이제는 하늘나라에서 “천구우욱~! 노래자랑!” 신나게 외쳐주세요. 이땅의 우리는 아무리 힘들고 괴로워도 할아버지를 기억하며 웃을게요.

2022-06-14

오늘도 나마스떼

요가에서 중요한 건 꾸준함이다. /언스플래쉬 일상이 고되게 느껴질 땐 매트 위로 오른다. 유튜브 즐겨 찾기에 저장해둔 요가 영상을 틀면 잔잔하고도 낮은 선생님의 음성이 수련의 시작을 알린다.요가는 몸의 상하좌우를 균일하게 늘리는 스트레칭으로 시작한다. 어느 한쪽의 방향에 치우치지 않게 몸의 오른쪽을 늘리면 그 다음은 왼쪽을 늘린다. 일직선으로 서 있는 ‘타다이사’나 자세는 머리부터 시작해서 어깨, 골반, 무릎, 발끝까지 일자로 곧게 버티고 서 있는다. 어느 부위 하나 불룩 나오거나 들어가지 않게 힘을 주어 반듯함을 유지한다.소 자세인 ‘비틸라아사나’와 고양이 자세인 ‘마리쟈아사나’, 테이블 자세 등 순서에 맞춰 자세를 취한다. 상체를 길게 늘어뜨려 근육에 자극을 주거나 느슨하게 푸는 이완을 반복하며 몸의 신경이 구석구석 연결되어 있음을 느낀다. 정강이와 종아리 순으로 자극을 옮기고, 오른쪽 손바닥에만 무게를 집중하는 등 의도한 대로 힘을 분산시켜 내 몸에 크고 작은 부위가 자리하고 있음을 느껴본다. 신경이 세밀하게 자리하고 있음이 느껴질 때면 살아있다는 감각이 생생히 전해져서 만족스럽다.요가는 겉으로 매우 정적인 듯 보이면서도 굉장히 동적이다. ‘8개의 가지’란 뜻을 지닌 ‘아쉬탕가’는 60가지 이상의 시퀀스를 쉬지 않고 빠르게 이어서 동작한다. 아직 수련이 부족한 난 뻣뻣한 몸으로 겨우 몇 가지 동작만 해내고, 이마저도 얼마 지나지 않아 흠뻑 땀으로 젖어 기진맥진해버릴 정도다.주로 즐겨하는 ‘빈야사’는 산스크리트어로 연결하다란 뜻을 가졌다. 다양한 동작을 자유로운 흐름으로 이어가는데 개인적으로 아쉬탕가보다 조금 수월하게 느껴진다. 흐름에 맞추어 동작을 행하다 보면 꼭 안무를 추는 것 같기도 하다. 반복적이지만 리듬이 있고 이야기에 기승전결이 있듯 순서에 따라 동작에 깊이감이 존재한다.이외에도 정말 많은 요가 종류가 있지만, 유튜브 영상 속 선생님께선 수련을 할 땐 늘 새로운 경험을 마주해야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씀하셨다. 특히 매번 같은 동작을 반복하다 보면 지루하다고 느껴질 수 있는데, 그럴 때 일수록 움직임 하나하나를 각기 다르게 바라보고 느끼도록 연습해야 한다고 하셨다.하나의 자세를 새롭게 바라보고 임하는 것. 사실 요즘 나의 근황은 썩 좋지 못했다. 비슷한 나날과 비슷한 감정으로 존재하는 동안 나 스스로를 방치하다시피 살아갔지만, 사실 그 누구보다 절실히 새로운 삶의 의미를 찾고 싶어 힘을 응축시킨 채 웅크려 있었다. 그러던 와중 익숙한 것에서의 낯섦을 찾으며 매번 새로움을 경험하고 수련해야 한다는 영상 속 요가 선생님의 말씀에 얼마나 크게 안도했는지 모른다. 본격적으로 요가를 배우고 싶어 최근 집 근처에 위치한 학원에 등록했다. 총 16명이 모이는 오전반으로 아침부터 부지런히 사람들이 모여든다. 매트를 깔고 일정한 거리에서 각자의 수련을 진행하는 동안 학원 원장님은 옆 사람과 본인의 자세를 비교하면 안 된다는 말을 자주 하신다. 자세를 따라가는 것도 중요하지만 어려운 동작 부분에선 무리하지 않고 가만히 숨을 고르는 것 또한 중요하다고 하셨다. 윤여진 2018년 매일신문 신춘문예 시 부문에 당선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현재보다 미래가 기대되는 젊은 작가. 신기하게도 매번 매트 위로 오를 때마다 같은 동작임에도 수월히 해낼 때가 있고, 유독 어느 날엔 어렵게 느껴지기도 한다. 날씨도 온도와 습도가 다르게 바뀌듯, 사람의 감정과 체력도 마찬가지라서 해낼 수 있는 것과 없는 것이 매번 다를 수 있음을 알게 되었다. 그러니 중요한 건 꾸준함이다. 새롭게 바라보며 늘 겸손하게 같은 자세를 유지하고 단련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걸 요가를 통해 배웠다.수업을 가는 오전 열시와 끝나고 집으로 향하는 열한시 반은 같은 길을 걸을지라도 많은 부분이 다르게 보인다. 거리를 오가는 사람들이나 미세하게 다르게 변한 나무의 그림자, 바람의 세기까지 계속해서 변화하는 시공간의 흐름에 따라 새로움을 찾을 수 있도록 유연한 생각을 지녀보려 한다. 그것이 실패와 좌절뿐일지라도 말이다.정상에 오르지 않아도 산행을 만끽할 수 있고, 높이 오르지 않아도 아름다운 풍경을 감상할 수 있음을 알려준 요가 선생님의 말씀을 되짚어보면서 요가의 끝은 합장으로 마무리 한다. 합장 자세는 평온함이자 자기 자신에게 되돌아오는 몸짓이라 한다. 손바닥을 맞대어 우뚝하고도 도저한 산을 흉내내며 오늘도 작게 말해본다. 나마스떼.

2022-06-14

정치가 부추기는 심각한 ‘보복사회’

심충택 논설위원 주로 마피아 영화의 단골메뉴인 보복범죄가 우리사회의 심각한 병리현상으로 부상하고 있다. 사회구성원을 극도의 증오심으로 편 갈라온 진영·팬덤정치의 영향이 크다. 지난 9일 방화 용의자를 포함해 7명의 사망자를 낸 대구 범어동 변호사 사무실 방화사건도 이러한 병든 사회분위기를 여실히 반영하고 있다.타지역에 거주했던 용의자 천 씨는 부동산 신탁 주식회사에 투자한 자신의 돈을 돌려받기 위해 7년전인 지난 2015년부터 소송에 쫓기며 살았던 것으로 보인다. 재판에 참석하기 위해 월세를 얻은 집도 법원에 가까운 범어동 작은 아파트였다고 한다. 천씨의 변호를 맡은 변호사는 “재판결과(5억9천만원 추심금청구소송 패소)가 나오자 천씨는 침울한 표정만 지었고 아무말이 없었다. 해당 재판 외에도 많은 소송에서 패소하며 경제적 어려움을 호소했다”고 했다. 안타까운 요소도 있지만, 소송결과에 앙심을 품고 저지른 ‘보복테러’는 결코 용납될 수 없는 반인륜적 행위다.이번 참사(慘事)를 계기로 우리사회는 각 분야에 만연하고 있는 ‘보복행위’ 근절에 대해 공론화할 필요가 있다.특히 각급학교에서 발생하고 있는 학부모와 교사, 또는 학생과 교사간의 폭행행위는 심각한 실정이다. 몇 년 전 대구에서 학생체벌에 불만을 품은 학부모가 수업 중인 30대 여교사의 머리채를 붙잡고 벽에 머리를 내리치는 등 폭력을 휘두른 사건은 아직도 잊히지 않는다. 여성 자영업자들이 불친절하다는 등의 단순한 이유로 범죄의 표적이 되는 가 하면, 도로위의 보복운전은 일상화되다시피 하고 있다. 최근 한 통계에 따르면, 자동차 운전자 2천명 가운데 ‘보복운전 경험이 있다’고 대답한 비율이 40%에 육박하고 있다고 한다.문재인 정부들어 심화된 진영싸움과 팬덤정치는 보복사회의 위기를 한층 더 고조시키고 있다. 특정 정치인에 무조건적 충성심을 가진 팬덤은 온라인 좌표 찍기, 게시판 댓글 도배, 특정인을 겨냥한 문자 폭탄 등을 도구로 사용하면서 사회를 극도로 오염시키고 있다.문 전 대통령이 퇴임한 후 살고 있는 경남 양산 평산마을에서 진행되고 있는 보수시위단체들의 시위도 진영정치가 낳은 보복성 일탈행위로 볼 수 있다. 시위대는 엄청난 소음을 내는 방식으로 집회를 해 인근주민들까지 환청이나 식용부진, 불면증에 시달릴 만큼 고통이 크다고 한다.문 전 대통령은 ‘문빠’로 불리는 팬덤의 문자폭탄이 당 안팎의 건전한 비판 기능을 위축시킨다는 비판이 있었지만, 이를 ‘양념’이라며 묵인했었다.한국헌법학회장을 지낸 신평 변호사는 이와관련,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문 전 대통령 집 주위에서 떠드는 이들도 잘못이지만, 이 모든 일의 시초에는 문 전 대통령의 팬덤정치 편승과 방치, 조장이 있다”고 말했다.보수단체의 양산시위에 맞서 진보성향단체인 ‘서울의 소리’가 윤석열 대통령의 사저인 서울 서초동 아파트에서 앞으로 규탄시위를 이어나갈 모양이다. 새 정부가 들어섰지만 한 치의 양보 없는 진영싸움이 계속돼 우리사회의 병리현상을 더욱 악화시키고 있다.

2022-06-14

“지방근무가 싫다”

우정구 논설위원 우리 속담에 “등굽은 나무가 선산을 지킨다”는 말이 있다. 곧고 잘자란 나무는 쉽게 목수 눈에 띄어 통째로 베어져 건물의 기둥으로 사용되는 데 반해 등굽은 나무는 쓸모가 없어 누구도 거덜떠보지 않아 고향산천을 지키고 있다는 뜻이다. 잘난 자식은 출세를 위해 도시로 떠나고 못난 자식만이 고향에 남아 늙은 부모를 봉양하는 세태를 풍자한 표현이다.언제부턴가 “말은 나면 제주도로 보내고 사람은 서울로 보내라”는 말이 생겨났다. 사람은 서울로 가야 제대로 된 출세를 할 수 있다. 서울은 사람과 돈과 권력이 모이는 곳이기 때문이다. 이곳에서의 출세야 말로 진정한 출세라는 뜻이다.국토 면적의 12%에 불과한 수도권에 인구의 절반 이상이 몰려 살고 있다. 한 나라 수도에 인구가 몰리는 것은 당연한 추세지만 우리처럼 인구 집중도가 지나치게 높은 곳은 세계적으로 드물다.1970년대만 해도 나라 인구의 28% 정도가 수도권에 살고 나머지 72%는 지방에 분산해 살았다. 그러나 도시화 과정을 거치면서 지난 50년 내내 지방의 인구는 수도권으로 몰려와 지금과 같은 언밸런스가 생겼다. 지금도 매년 수만명의 젊은이가 직장을 찾아 수도권으로 상경한다.수도권은 더이상 발디딜 틈이 없을만큼 복잡하다. 주거공간이 부족하고 교통 혼잡은 물론 비싼 물가로 생활하기도 버겁다.대한상의가 수도권 청년 구직자(24∼34세)를 대상으로 설문 조사를 했더니 응답자의 73%가 “지방근무는 싫다”고 대답했다. 회사 선택의 기준도 연봉과 근무지역을 가장 중시했다. 청년들의 마음을 붙잡을 묘책이 나오지 않는 한 지방도시 소멸 문제는 요원한 숙제일 것 같다. 안타깝다./우정구(논설위원)

2022-06-14

선거 결과는 국민의힘 지지의 반영일까

이명균 창원대 명예교수 대선과 지방선거 모두 국민의힘이 승리하였다. 대선은 0.73%라는 미소한 차이였으나 지방선거는 압승이었다. 이를 두고 국민들이 민주당이 아닌 국민의힘을 지지했다고 해석하는 것 같다. 그러나 대선에서는 국민들이 윤석열 후보를 선택한 것이지 국민의힘을 지지한 것은 아니며, 지방선거에서 국민의힘이 압승한 것 역시 국민의힘에 대한 지지성향이 그대로 나타난 결과가 아니라고 본다. 대선에선 당시 여당과 여당후보가 싫은 많은 국민들로부터 떠밀려 대통령 후보가 되었던 야당 후보를 찍은 것이고, 지방선거에서는 소위 ‘검수완박법’ 처리와 일부 희한한 공천과 황당한 공약 등 야당의 자충수를 보며 새 대통령에 대한 기대심리로 여당에 압승의 결과를 안겨준 것이지 국민의힘에 대한 지지 의미로 여당 후보를 많이 찍은 것은 아니라고 생각된다. 이유야 어떻든 국민의힘이 지방선거에서 압승함으로써 정부와 여당은 국정운영에 상당한 힘과 자신감을 얻게 되었으니 국민들의 기대에 꼭 부응해주기 바란다. 건전한 비판은 야당의 것이라도 받아들이려고 노력하되 비난이나 억지소리에 대해선, 명백한 왜곡이나 허위 내용이 있다면 사실 여부에 대해서만 솔직하고 분명하게 밝히고, 불필요하게 맞붙어 싸우는 일은 삼가는 것이 바람직하다. 대응할 필요가 없는 사항들에 같이 응수하느라 힘이나 정신을 쏟지 말고 정부의 올바른 정책들의 수행에 대하여 국민들의 이해, 도움 또는 협조를 구할 사항들을 설명하고 설득하느라 열심인 모습들을 보여주면 좋겠다. 정책의 수립과 수행이 법과 원칙, 공정과 상식 위에서 이루어진다면 비록 당장은 힘들더라도 다수의 국민들은 잘 따르고 적극 협조할 것이다.새 대통령은, 외람된 말이지만 보수 성향의 국민들로부터는 은혜를 입었을지언정 정치권의 보수진영에 대해서는 도움을 받았기 보다는 오히려 정권을 되찾는 혜택을 주었다고 생각한다. 새 대통령의 정부는 당의 명분이나 진영의 이해관계에 얽매이지 말고 국민과 민생을 위한 정책수립과 수행에 매진할 것으로 믿는다. 국민들에게 지금 가장 필요하고 어려운 문제는 경제 살리기와 청년일자리 창출, 그리고 장단기의 저출산 대책일 것이다. 인구는 계속 줄어들고 돈을 벌어야 할 사람들이 돈벌 곳이 없는데, 돈 쓸 사람들을 기다리는 자영업자들은 더 늘어나는 상황이니 나라 사정이 이중 삼중으로 어려워지는 느낌이다. 정부와 여당은 이러한 문제들을 풀기 위해 목숨까지는 아니라도 혼신의 힘을 다하길 희망한다.오래전 우스개로 ‘정치인과 정자(精子)의 공통점은 그 수많은 개체들 중 인간될 것이 하나 있을까말까 한 것이고, 차이점은 정자는 인간되려고 난자를 향해 달리며 최대의 노력을 하는데 정치인은 인간되려는 노력조차도 하지 않는 것’이라는 말이 있었다. 권력을 탐하면서 허울 좋은 행위나 열성으로 가장하여 자신만의 욕심을 은밀하게 달성하려는 기성의 교활한 정치인들과는 달리 경험은 없지만 정치 때가 묻지 않은 새 대통령이 이끄는 현 정부는 국민들에게 솔직하면서도 열심히 노력하는 모습을 보여주길 간절히 기대해본다.

2022-06-14

깔끔하게 물러나자

조현태수필가 며칠 전, 아홉산 숲에 다녀왔다. 규모가 약 오십삼만 평방미터에 달한다고 하니 수목원을 방불케 한다. ‘아홉 봉우리’에서 이름 지어진 이 독특한 숲에는 적송, 편백나무, 삼나무, 서어나무, 맹종죽 등이 무리지어 있다. 개인명의(남평문씨)로 조성되고 가꾸어 왔는데 현재는 ‘아홉산 숲 사랑 시민 모임’을 통해 관리되고 있다.가장 인상적이고 대표되는 수종이 대나무였다. 대나무는 땅속줄기(뿌리 줄기)에 마디마다 뿌리와 싹을 갖추고 있다가 삼사 년이 지나면 싹이 자라나온다. 성장 속도는 점차 가속된다는데 땅 밖으로 나타날 무렵에는 하루에 몇 센티미터 정도이다가 최적의 성장환경이 되면 일 미터를 넘게 자라기도 한다. 예를 들어 죽순에 모자를 걸어놓고 이틀만 지나도 그것을 내릴 수 없는 높이로 올라가 있다고 한다. 대나무는 외떡잎식물로 관다발은 있으나 부름켜가 없어서 몇 년을 자라도 굵기와 높이는 성장하지 않고 단단히 굳어지기만 하기 때문에 나이테가 없다. 보통 나무들과는 다른 특성을 지니고 있다. 또 죽순은 약간의 독성이 있다는데 종족번식을 위한 자신의 방어기전일 수도 있겠다. 죽순과 껍질에는 니아신, 나트륨, 레티놀, 베타카로틴, 단백질, 각종 비타민과 식이섬유 등이 함유되어 있어 훌륭한 식재료 중의 하나다. ‘죽순껍질 차’도 있다는데 구입해 마셔보고 싶다.오늘은 대나무 예찬보다 죽순껍질을 말하려고 한다. 대나무가 두어 달 자라면 성장을 멈추고 껍질을 떨어뜨린다. 죽순에는 줄기 자체에 보다 껍질에 더 많은 생장호르몬이 들어 있다. 생장호르몬이란 세포를 분열시키고 분열 된 세포를 크게 자라도록 하는 물질이므로 죽순에서 껍질을 제거해 버리면 자라지 못하여 난쟁이 대나무가 된다. 또 죽순 겉을 싸고 있는 껍질은 연한 본체를 보호하는 역할도 한다.인간에게 ‘부모’란 죽순의 껍질과 같아야 한다. 좋은 가르침과 영양분을 공급하고 자식이 다치거나 어긋나지 않도록 긴밀하게 소통해야 한다. 어릴 때일수록 밀착하여서 보호막 역할을 하다가 어느 시기가 되면 자식에게서 완전히 벗어나야 한다. 부모의 역할은 자식이 성장하여 독립할 때까지면 족하다. 그 시기는 이십대 초반쯤이 아닐까 한다. 어느 부모인들 자식 귀한 줄 모르겠냐만 소중할수록 스스로 터득하고 단단해지도록 그 길을 안내해 주어야 한다.다들 그렇게 알고 있는 듯하다. 과잉보호나 도를 넘는 간섭을 보며 혀를 끌끌 차던 사람도 자신의 자식만은 예외인 듯 놓아주지 못하는 전형적 내로남불 형식이다. 왜 그럴까 생각해본다. 부모의 시각에서 보면 모든 자식은 왠지 서툴러 보이고 힘겨워 보인다. 왜냐면 성장기를 거쳐 온 사람과 이제 성장기에 다다른 사람의 차이니까. 결론은 부모와 자식 간에 차이가 나야 당연하지 않은가. 그냥 지켜보지 못하는 애착심이 발동하면 자식이 부모의 궤도에 이르기까지 소요되는 시간과 노력이 희석된다.대나무 껍질이 떨어지지 않고 마디마디 달라붙어서 감싸고 있으면 이미 대나무 모습이 아니다. 매우 볼썽사납고 거추장스럽다. 깔끔하게 물러나자.

2022-06-14

한 여성이 ‘중세’시대에 신청한 결투의 시작

영화 ‘라스트 듀얼 : 최후의 결투’는 중세 유럽, 흑사병이 일어난 지 30년, 영국과 프랑스의 백년전쟁 중간지점 프랑스 북부에서 실제로 일어난 사건이다. 백년전쟁은 중세시대 마지막에 걸친 전쟁으로 중세를 지배했던 모든 것들의 기준, 즉 신앙적 기준이 정점에 달했던 시기다. 신앙적 기준이 정점에 달했다는 것은 완성의 의미와는 다르다. 그렇다고 더 깊어지거나 강해졌다기보다는 형식적인 표현의 완고함이라고 하는 게 좋겠다.국가의 개념에 있어서 동양의 그것과는 차이를 보였다. 중세시대를 배경으로 하는 영화에서 흔히 보이는 기사임명식과 충성서약에 함유된 의미는 일종의 ‘계약관계’를 맺었다는 의식의 근엄한 형식이다. 중세유럽의 왕은 많은 귀족 중에 선출된 한 명으로 공통의 이익을 위해 존재하는 자이기도 했다. 각각의 귀족은 그들의 땅을 차지하고 그들의 이익이 침해될 때 함께 하겠다는 이익을 내포한 ‘계약’이었다. 중세유럽의 충성서약이 이익을 기반으로 할 때, 동양의 충성은 ‘명분의 서약’이 강했다. 동서양이 모두 순혈주의를 중시하였지만 동양의 명분이 ‘우리’를 내세울 때 유럽의 오로지 ‘가문’의 명분, 나의 이익이 중심에 있었다. 서약은 이익의 향방에 따라 번복되었고, 국가라는 대의적 명분보다는 나의 이익이라는 명분 속에서 강하게 작용했다. 중세 유럽의 전쟁 양상은 혈통과 땅의 소유주들간의 전쟁이었다. 동맹은 명분보다는 이익에 민감했고, 국가와 백성보다는 나의 영토, 나의 이익에 따라 대상을 바꾸었다. 이것이 중세에 있어서 동양보다 유럽의 전쟁 양상이 복잡하고 혼란스러운 이유이기도 하다.동양이 절대왕권이었던데 반해 유럽은 상하관계이기는 하지만 절대적인 권력으로 지배할 수 없는 계약관계일 뿐이었다. 왕이 모든 것을 판단하고 해결하는 최고의 권력이었던 동양에 반해 유럽에서의 왕은 해결사이기보다는 중재자의 위치에 놓인 것이다. 일원화된 권력으로 최종 판단자로서의 위치에 있었던 왕과 중재자로써 종교재판과 세속재판이라는 이원화된 재판이 존재했던 것이 중세 유럽이었다.교회의 법으로 판결을 내렸던 종교재판과 왕의 권력으로 판결을 내렸던 세속재판에서도 해결하지 못했던 것은 다시 신의 이름으로 운명에 의한 재판을 진행했는데 그것이 바로 이 영화의 핵심사건인 ‘신명재판(결투재판)’이다.재판의 결과에도 억울함을 해결하지 못했을 때 최후의 수단으로 호소하는 방식으로 활용되었던 것이 중세유럽의 결투재판이었다. 이해가 충돌하는 당사자들이 정의로운 신에게 심판을 맡기자는 의미로 목숨을 건 결투를 통해 ‘신은 공정하다’는 믿음이 낳은 수단이었다.이 시대에 여자는 하나의 온전한 인격체이기 이전에 재산의 일부였다. 당연히 결혼은 정치적이며 경제적인 관점에서 이루어지는 계약관계의 일종이었다. 영화 속에서 카루주의 부인이 자크에게 강간을 당했을 때 죄명은 ‘재산권 침해’였다. 종교재판과 세속재판에서도 사실을 밝히지 못하자 카루주는 가문과 자신의 명예를 위해 결투재판을 신청한다. 명분에 여성의 의견과 존재는 무시되고, 그 운명마저 비이성적인 결투에 맡겨진다. 영화는 같은 이야기를 3부로 나눠서 반복한다. 각자의 관점에서 그들이 기억하고 말하고 싶은 것들을 중심으로 하나의 사건을 다르게 서술하고 있다. 카루주와 자크의 관점에 카루주의 부인 마르그리트의 시점에서 이야기가 반복된다. 이는 구로자와 아키라 감독의 영화 ‘라쇼몽’의 형식을 따른다.차이는 끝까지 진실의 모호성을 유지했던 ‘라쇼몽’에 반해 ‘라스트 듀얼’의 마지막 3부인 마르그르티의 시점이 시작되기 전 ‘진실(The Truth)’이라는 부제목으로 시작된다는 점이다.중세시대에서조차 그 잔인함과 비이성적인 제도로써 인식되었던 결투재판은 ‘마지막 결투’를 끝으로 더이상 시행되지 않았다. 네델란드의 미술사가 요한 하위징아는 ‘중세의 가을’에서 “중세 후기의 잔인한 사법 처리가 우리의 관심을 끄는 부분은 그 변태적인 메스꺼움이 아니다. 오히려 그런 법 집행으로부터 중세인들이 느꼈던 둔감하면서도 동물같은 만족감, 시골 장터 같은 떠들썩한 여흥이 우리에게 충격을 준다”라고 했다.리들리 스콧 감독은 ‘하나의 여흥과 구경거리’로 전락할 수 있었던 역사적 사실 속에서 자신의 영화는 남자들의 명예를 건 결투가 아니라 중세시대라는 세상과 여주인공인 마르그리트의 대결이라는 시대적 결투의 시작이라는 분명한 화두를 던지고 있다. /(주)Engine42 대표 김규형

2022-06-13

올림퍼스의 노예들 <Ⅴ>

/삽화 이건욱 -그래. 이 녀석이 말귀를 못 알아먹는 것 같아. 귀에 대고 소리를 높여야 겨우 움직인다니까. 신제품이라면서 귀는 내 귀하고 비슷해. 들리는 대도 못 들은 척하는 건지. 사람 자식처럼 말이야.가끔 있는 경우였다. 말의 패턴과 음성의 높낮이 등을 인식하고 구별하는 센서나 프로그램의 문제일 가능성이 높았다. 생산 공장에서 처음 설정해놓은 조건을 사용자에 맞게 바꾸지 않아 발생한 일일 수도 있었다. 설정이나 반응조건만 살짝 손을 대면 되겠지만 노마는 먼저 구조적인 이유가 있는지 살펴야 했다.-조금 시간이 걸리겠습니다. 저 신경 쓰지 마시고 다른 일, 하실 일 있으시면 일 보십시오.-그래도 집안에 누가 들어와 있는데 신경을 안 쓸 수가 있나. 나는 저 뒤 소파에 앉아 있을 테니 자네야말로 신경 쓰지 말고 일 보게.노마의 곁에 서 있던 노인은 거실 뒤 소파로 가 앉았다. 티브이를 켰다. 시사프로가 방영되고 있었다. 티브이의 음량이 높았다.-우리가 가진 것이라고 해야 건물 하나, 살고 있는 집 한 채 밖에 없는데 재산세를 올리는 것이 말이 돼?노인이 말했다. 노마는 자신에게 하는 말인 줄 알고 네? 하고 대답을 했다. 곧 노인의 혼잣말임을 알았다.-결국 우리 같은 노인네들 돈 뺏어 가는 것밖에 더 돼? 우리가 젊어서 낸 세금이 얼만데. 차라리 소득세를 조금 더 올려야지. 그게 맞지.세금 관련된 주제의 방송이었다.-기사 양반은 어떻게 생각해?노인이 물었다. 노마는 대답을 하지도 고개를 돌리지도 않았다. 로봇을 수리하느라 듣지 못한 척 로봇을 살폈다. 로봇은 구조적으로는 이상 없었다. 이상 없습니다, 당장 말하고 일어서도 되는 일이었지만 노마는 서두르지 않았다. 일찍 마친다고 일찍 퇴근하는 것은 아니다.-다음 선거에서는 무조건 노인들에게 혜택을 많이 주겠다는 당을 찍어야 해. 기사 양반도 언젠가는 늙을 것 아니야. 그때를 생각하면서 지금 잘 판단해야지. 길게 보고 표를 줘야 해. 노인들 표에다가 기사 양반 같은 젊은 표까지 합치면 안 될 일이 없지. 그렇지 않아? 하긴 젊은 사람들 표까지 필요하겠어? 노인들 표만 제대로 모여도 충분하지. 아무렴.노마가 자신의 이야기를 듣든 말든 노인은 상관하지 않고 이야기했다. 노마도 노인이 말을 하든 말든 자신의 일을 했다. 노마가 반응을 보이지 않자 노인도 흥이 나지 않는 듯했다. 한동안 티브이의 패널들 목소리만 울렸다. 가만히 있던 노인이 무언가 생각이 난 듯 전화기를 찾아 어딘가에 전화를 걸었다. 노마는 노인의 통화가 끝나면 로봇의 현재 상황을 설명하고 방문 관리를 마칠 참이었다.이번 달까지 벌써 세 달째야. 곧 다음 달로 넘어가. 그러면 네 달째고. 이러면 안 되지. 월세를 많이 받는 것도 아니고, 오 년째 그대로인데. 날짜라도 지켜줘야지. 내가 참다 참다 전화하는 거야. 그래그래, 알아. 어렵지. 다 어렵지. 어렵지만 지킬 것은 지켜야지. 젊은 사람이 일 처리를 이렇게 하면 안 돼.노인의 전화가 끝나고 노마는 노인에게 상황을 설명했다. 구조적으로는 이상 없다는 이야기,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로봇이 노인의 말투와 음성의 크기, 발음의 특성 등을 학습해서 명령을 정확하게 수행하게 된다는 이야기, 그 시간을 기다릴 수 있으면 그것이 제일 좋은 방법이라는 설명을 했다. 혹시 기다릴 여유가 없다면 지금 이 자리에서 노인에게 맞게 약간 수정해 드릴 수 있다는 말을 덧붙였다.-무슨 말이야? 조금 쉽게 설명을 해 봐.-한 달 정도 이 로봇과 꾸준히 대화를 하시면 로봇이 저절로 어르신 말을 알아듣게 됩니다.-그러면 내가 이 녀석을 가르치는 거잖아. 로봇 회사는 아무것도 안 하는 거네.-잘 배우는 로봇을 만들어 드린 거지요.노마는 신발을 신은 뒤 노인에게 인사를 했다. 노인이 노마에게 물었다.-내가 다음 주부터 한 달간 제주도에 가 있을 건데 저 로봇 그냥 두어도 되는 거지? 지난번 로봇은 그냥 두어도 알아서 잘하던데. 이번 것도 그렇겠지?노마는 차에 올라탔다. 운전석에 앉아 시동을 걸려다 문득 아비가 했던 말들이 떠올랐다. 집에서, 바깥에서 대화의 소재가 떨어지면 아비가 습관처럼 꺼내는 이야기였다. 복지회관에서 만난 노인들과 공원이든 찻집이든 앉아 시간을 보내는 중에도 빠지지 않고 꺼내들었다.지금까지 이런 세상은 없었단 말이지. 다 같이 놀자는 이야기가 아니라 열심히 일한 자 이제 쉬어도 된다는 거지. 그 녀석들 말대로 전 국민 기본 소득으로 했어 봐. 젊은 사람이나 늙은 사람이나 놀자 판이 되었을 거잖아. 젊었을 때는 열심히 일해야지. 그래야 노년을 즐길 자격이 생기는 거야. 예전보다 훨씬 좋아졌지. 젊어서 고생했다고 편안한 노후를 보장해준 때가 있었나? 고생한다고 돈이 벌어지나? 지금은 젊었을 때 돈을 벌어 놓지 못해도 누구나 편안한 노후를 보낼 수 있게 해주니 얼마나 좋아. 부모가 돈을 많이 벌어 놓지 않았다고 원망하는 그런 자식들 있지? 웃긴 짬뽕들이지. 요즘 같은 세상에 부모가 돈이 좀 있다 해서 그게 자기들 것이 될 것 같아. 내가, 자네가 언제 죽을 줄 알아서. 다 내 것이지./김강 소설가

2022-06-13

장수마을의 9가지 생활습관

전 세계에서 가장 건강하게 오래 사는 사람들이 모인 장수마을 사람들은 어떻게 살아갈까.인구 통계학적 연구를 통해 장수의 비결을 밝히고 건강 장수를 추구하는 ‘블루 존’프로젝트 창시자 댄 뷰트너에 따르면 장수하는 사람들은 9가지 특정 생활 습관이 있다. 자연스럽게 움직이기, 목적의식, 단순한 생활, 80%만 먹기, 채식, 하루 와인 한 두잔, 신앙심, 가족 우선, 올바른 관계 맺기 등이다. 특히 블루 존에서 공개한 전 세계 장수마을 가운데 이탈리아 반도 서쪽 바다에 위치한 사르데냐는 면적 2만4천89㎢로 약 164만명이 살고 있다. 2004년 블루 존 연구팀에 의해 최초로 장수 비결 연구가 시작된 곳으로, 이 곳 사람들은 매우 활동적이고 낚시와 농사를 직접 지으며 살아간다. 현지에서 수확한 식재료로 건강한 음식을 만들어 먹는다.지역 사회 결속력도 중요하다. 마을 사람들이 모여 함께 웃고 떠들며 식사를 하는 풍경을 흔히 볼 수 있다. 사르데냐 사람들의 장수 비결은 ‘가족 우선주의’, ‘산책하기’, ‘노인 공경’, ‘하루 한두잔 레드 와인 마시기’, ‘친구와 함께 웃기’, ‘산양유 마시기’ 등이었다. 95~107세 장수 노인들을 대상으로 성격 검사를 한 연구에 따르면 이들은 항상 유머 감각을 유지하고,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특징을 보였다. 늘 웃고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것이 장수의 지름길이란 얘기다.끝으로 장수에 도움 되는 식사법은 △매일 25g 이상의 섬유질을 섭취하도록 하고 △간식은 호두나 피스타치오 같은 견과류로 하며, △오메가-3가 풍부한 생선을 일주일에 2~3차례 먹고, △저지방 요구르트(요거트)를 매일 먹는 것이다. 장수비결은 세계 어디서나 누구에게나 대등소이하다./김진호(서울취재본부장)

2022-06-13

‘극단’의 시대, ‘균형’의 가치

변창구 대구가톨릭대 교수·국제정치학 나라가 거꾸로 가고 있다. 디지털혁명의 시대정신은 균형과 통합인데, 우리사회는 오히려 극단과 분열이 심화되고 있다. 좌우의 극단주의자들이 주도하는 팬덤(fandom)정치 때문에 중도의 합리주의자들은 설 자리를 잃었다. 흑백의 극단론자들이 판치는 나라에서 회색은 기회주의자로 매도되고 있을 뿐이다.누가 천사이고 누가 악마인가? 붉은색과 푸른색의 안경을 쓴 두 사람이 자신이 본 세상의 색깔이 옳다고 싸우고 있다. 서로 다르게 정의(定義)한 선택적 정의(正義)는 객관성이 없다. 독선에 빠진 보수진영이 대선·지선·총선 등 3연패(連敗) 후에 비로소 혁신을 모색했던 것처럼, 진보진영 역시 대선에 이어서 지선에서도 참패했으니 이제 극단과 오만의 정치를 청산할지 두고 볼 일이다.인간은 신이 아니다. 생명과 능력의 유한성을 특징으로 하는 인간이 전지전능한 ‘신의 흉내’를 내서는 안 된다. 신격화된 인간이 지배하는 독제체제의 문제가 무엇인지는 너무나 자명하다.파스칼(B. Pascal)이 갈파했듯이 “인간은 천사도 아니고 야수도 아닌 중간적 존재”다. ‘인간의 본질이 회색’인데, 나는 백색이고 당신은 흑색이라고 서로를 비판, 공격하고 있으니 참으로 무지하고 오만하다. 확증편향과 선택적 정의, 내로남불과 흑백논리가 지배하는 ‘야만의 시대’는 이성적 시민들이 살아가기 힘든 세상이다.이 극단의 시대를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모순이 공존하는 현실을 인정하고 ‘균형의 가치’를 수용하는 것이다. 유교에서의 ‘중용(中庸)’, 불교에서의 ‘중도(中道)’, 그리고 아리스토텔레스 윤리학에서 말하는 ‘중용’이 모두 균형의 중요성을 역설하고 있다.중용이란 “지나치거나 모자람이 없으며, 어느 한 쪽에 치우치지 않는 것”이고, 불교의 근본입장인 중도는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는 바른 도리”를 말한다. 이처럼 동서양에 관계없이 모든 성인들은 하나같이 삶의 중심과 균형의 중요성을 가르치고 있다.‘균형’이란 이성의 힘으로 충동과 감정을 억제함으로써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으려는 의지의 결과물이다. ‘균형의 힘’을 역설하는 중용철학은 어느 한쪽을 개조하기 보다는 있는 그대로를 인정하고 조화를 모색하는데 무게를 둔다. 중용에서 말하는 ‘중(中)’은 ‘단순한 가운데’가 아니라 ‘균형·중심·불편부당’을 의미한다.정치적 인간의 공동체에서 상이한 입장과 상충하는 이익을 조화시키기 위해서는 역지사지(易地思之)의 자세로 균형점을 찾아갈 수밖에 없다.정의의 여신, ‘유스티티아(Justitia)’가 들고 있는 저울은 ‘공정성’과 ‘공평성’을 상징한다. 저울이 무게중심을 잃으면 균형을 유지할 수 없다. 기울어진 저울처럼 균형감각을 상실한 극단주의자는 사이비종교의 광신도(狂信徒)처럼 비이성적이고 반사회적이다.흑백·독선·아집의 언어들이 분열·대립·투쟁의 일상화로 이어져 지금 나라는 벼랑 끝에 서 있다. 이 야만적인 극단의 시대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균형의 가치를 제대로 깨닫지 않으면 안 된다.

2022-06-13

나누고 베풀고 누리며…

강성태 시조시인·서예가 초목이 두터워지며 여름날이 성큼 다가오고 있다. 꽃 피는 봄보다 녹음이 우거진 여름 초입이 더 경치가 좋다(綠陰芳草勝花時)는 걸 보이기라도 하듯이, 잎새는 생기발랄하게 짙어가며 한껏 푸르름을 드러내고 있다. 새들은 숲이나 하늘에서 맘껏 지저귀다가 날아오르고, 작물과 과수는 때맞춰 내리는 비에 싱싱하게 일렁이거나 도톰한 풋열매를 보듬으며 자양분을 채우고 있다. 땅과 하늘 사이에 생장의 기운이 가득하고 마음껏 즐기며 누리는 6월은 누리달이라고도 한다.거침없었던 코로나19의 기세가 서서히 꺾여가자 발목 잡던 제한과 규제도 적잖이 완화조치가 내려져 다행스럽기만 하다. 실로 얼마만에 누려보는 일상의 기쁨이던가. 실외 마스크 의무 착용이 해제되어 새싹들의 운동회가 3년만에 다시 열리고 대학에서는 젊음과 열정의 축제가 부활되는가 하면, 다양한 음악적 장르가 융합된 창작뮤지컬이 관객들과 직접 소통하는 대면공연으로 열리는 등 지역의 문화와 축제, 체육 등의 행사가 크거나 작게 재개되는 추세다. 밝고 활기차게 문화생활을 즐기고 체육활동에 임하는 모습은 여유롭기만 하다. 당연히 누려야 하고 생각나는 대로 즐겨야 할 일인데도, 느닷없이 가로막히고 애써 참아야 했으니 오죽이나 갑갑하고 애가 탔을까? 이러한 문화, 야외활동 못지않게 지역사회의 어려움과 취약한 계층에 대한 배려와 관심으로 나눔과 베풂의 손길이 더해지고 있어서 눈길을 끌고 있다. 이미 지난 봄부터 코로나 상황을 고려하여 조금씩 계속적으로 이어왔지만, 6월 들어 봇물 터지듯이 활발하게 움직여지고 있으니 참으로 가상하고 고무적인 일이 아닐 수 없다. 다름아닌 포스코가 지역사회를 위해 대대적으로 펼치고 있는 상생협력과 봉사활동에 대한 얘기다.포스코는 오늘부터 6월 25일까지 12일간 ‘글로벌 모범시민위크’로 정하고, 포스코가 진출한 전 세계 53개국 포스코그룹의 기업시민 구성원인 임직원들이 동시다발로 봉사활동에 두루 참여하는 특별봉사주간을 운영한다. 2010년부터 실시해온 이와 같은 활동은 포스코가 50여년간 지역사회와 함께해 온 인연을 바탕으로 봉사와 나눔을 통해 상생과 화합의 장이 되도록 추진하는 것으로, 올해는 포스코의 발자취 재발견, 지역생태 보전, 지역사회 돌봄과 나눔 등의 테마로 진행된다. 포항의 경우 환호공원 스페이스워크 일대에 나무심기와 자매마을 시설물 보수, 해양 생태계 보전, 취약계층 나눔 등의 활동을 전개함으로써 지역사회와 더불어 함께 발전하는 친환경 포스코의 이미지가 제고될 전망이다.작은 것이라도 함께 나누고 베풀 때 아름답고 감동적으로 다가온다. 코로나로 인한 단절과 소외의 아쉬움이 커진 현실에 포스코의 이 같은 일련의 활동은 가뭄 끝의 단비 마냥 지역사회의 그늘지고 미진한 부분을 다소 촉촉하게 적셔줄 것이다. 마침 내일로 예정된 누리호 2차 발사의 성공적인 궤도진입을 바라는 것처럼 누리달에 펼치는 포스코의 나눔활동도 지속적인 추진동력으로 지역과 사회를 밝히고 돌보는 모범적인 궤도에 진입하여 일상에서 마음껏 봉사활동을 즐기고 누리길 기대해본다.

2022-06-13

가만히 보면 하늘도 순전히 내 편

오낙률 시인·국악인 저 지난주 말, 그러니까 6월 5일엔 그토록 기다리던 단비가 내렸다. 약 40 여일 만의 비 구경이어서 아직도 그 고마움이 여운으로 남는다. 비록 가뭄 해소에 충분하지는 않았지만 오랜 가뭄 끝에 내린 비라서, 우리 농민들에겐 돈으로 환산하기 어려울 만치 엄청난 하늘의 선물이 아니었나 싶다.한창 가뭄이 심하던 무렵, 필자도 약 2천여 평의 밭에 고구마를 심었다. 햇볕이 너무 강하고 땅이 지나치게 건조한 탓에 비가 내리지 않는 상황이 며칠만 더 지속된다면 애써 심은 고구마 싹이 모조리 말라버릴 것 같은 위기감을 느꼈지만, 계절이 바쁜 탓에 헛수고의 위험을 무릅쓰고 진행한 작업이었다. 그런데 고구마심기 작업이 거의 끝나는 시점에 맞추어 이틀에 걸쳐 단비가 내렸으니 ‘가만히 보면 하늘도 순전히 내 편’이라는 오만한 생각이 드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일 지도 모를 일이다. 자연의 측면에서 보면 뭇 생명의 삶이라는 것이 물의 순환로에 서서 쉼 없이 물의 순환 활동을 돕고 있는 행위 그 자체에 지나지 않는다. 수왕지절(水旺之節)이라는 여름철이면 며칠만 비가 내리지 않아도 극심한 가뭄에 허덕이게 되는데. 비가 내리지 않는 곳에서의 생명 활동이란 가뭄을 못 이겨 벌겋게 말라가는 길가의 산야초처럼, 최소한의 생명력조차도 위협받는 그런 불안한 삶이 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사람들은 가끔 가뭄에 말라서 죽은 식물을 보며 그 죽음의 원인을 오해한다. 식물이든 동물이든 물이 없어서 죽음을 맞이한다는 것은, 물이 없는 곳에서는 그 생명이 필요치 않다는 뜻이다. 그것은 물이 없어서 죽음을 맞이하는 게 아니라 물이 없는 곳에서는 그 어떤 생명도 필요치 않다는 대자연의 절대 법칙이 작용하기 때문이다. 이 땅에 처음 생명이 살기 시작한 후로 물을 찾아 군집을 이루며 사는 생명 무리는 다분히 그들의 자의가 아니라, 대자연의 힘 즉, 순전히 타의에 의해서 삶의 위치를 부여받는 것이라 말할 수 있는 것이다.“물이 흐른다./낮은 곶으로 무게를 내려놓으며/흐름을 추억하며 흐른다.//때로는 곤두박질치며 흘러야 하는/그런 숙명이 있어,/물망초 꽃잎에 쉬어가는 순간을/삶이라 했다.//미나리꽃 하얀/ 자작나무 응달을 지나/물봉선 군락이/ 연붉은 화원을 이루는 여울목에서/꽃으로 머물던 시절/먼저 자라를 털고 일어나 여정을 재촉하는 물이 있어/그것을 이별이라 했다.//이별이란/ 앞서가는 물의 순탄한 흐름을/손 모아 기도하는 일이다./이별이란/횡(橫)으로 흐르던 물이 비좁은 여울을 지날 때/종(縱)으로 흐르는 일이다.”-오낙률 시집 ‘봄은 안 오고 꽃만 피었네’중에서세상은 오직 물의 순환을 위한 공간일 뿐이다. 인간을 포함한 지상 모든 생명체는 물이 순환하는 물길에 해당한다. 지금 순간에도 내 몸을 통해서, 혹은 저기 산야의 푸르디푸른 나무들의 잎을 통해서 물은 끊임없이 순환의 여정에 드는 것이다. 다만 그 길을 따라 흐르는 물은 오직 티 없이 깨끗하고 맑은 물일 뿐, 아직 정제되지 못한 탁한 물은 지표의 하천을 타고 바다로 흐르거나 어느 시골 마을의 논바닥으로 흘러들어 몇 날의 햇볕을 받으며 정제의 과정에 드는 것이다.

2022-06-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