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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여론조사가 항상 민심은 아니다

김진국 고문 윤석열 대통령 지지율이 10%대로 떨어진 여론조사가 나왔다. ‘여론조사 꽃’의 10월 둘째주 조사에서 윤 대통령이 ‘잘하고 있다’가 19.2%였다. ‘잘못하고 있다’는 무려 4배가 더 많은 80%였다. 지난주 한국갤럽조사에서는 지지율이 22%로 나왔으니, 큰 차이가 없다.(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 홈페이지 참조) ‘여론조사꽃’ 발표는 표본오차가 ±3.1%다. 6% 정도 차이는 차이도 아니다. 그렇지만 ‘10%대’라는 상징이 주는 충격은 어마어마하다. 여당에서조차 “10%대면 심리적 탄핵 상태”라는 말이 나온다. 여론조사 사이에 차이가 나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오차 범위를 명시해 놓기도 했다. 그런데 하필 그게 ‘여론조사 꽃’이어서 뒷말이 나온다. ‘여론조사꽃’은 김어준 씨가 TBS(교통방송) 뉴스 진행을 그만두고, 유튜브 방송을 시작하면서 만든 여론조사 업체다. 여러 번 구설수에 올랐다. 지난 총선 때 부산 해운대 갑 여론조사를 해 민주당 홍순헌 후보가 50.9%, 국민의힘 주진우 후보가 41.8% 나왔다며, 홍 후보와 전화를 연결해 응원했다. 일주일 뒤 선거 결과는 주 후보 53.7%, 홍 후보 44.61%였다. 일주일만에 뒤집힌 걸까. 지난 16일 부산 금정구청장 선거에서 비슷한 일이 있었다. ‘여론조사꽃’은 민주당 김경지 후보가 40.9%로 국민의힘 윤일현 후보(37.7%)를 오차범위 안에서 앞섰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선거 결과 윤 후보가 61%를 얻어 김 후보를 무려 22%포인트 차이로 이겼다. 열흘 사이에 이렇게 뒤집혔을까. 영부인 김건희 여사와 주고받은 문자를 공개해 파문을 일으킨 명태균 씨도 여론조사를 무기로 삼았다. 그가 여직원에게 전화로 여론조사 수치 조작을 지시하는 듯한 녹음이 공개됐다. 그는 선거 때 수시로 윤 대통령 부부와 전화와 문자를 했다고 주장했다. “(나를 구속하면) 한 달이면 (윤 대통령이) 하야하고 탄핵일 텐데 감당되겠나. 감당되면 하라고 할 것”이라고 큰 소리쳤다. 국민의힘 김재원 최고위원이 구속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자, 김 여사가 보낸 문자를 공개했다. “우리 오빠 용서해 줘, 무식하면 원래 그래, 지가 뭘 안다고”. 그러면서 김 최고위원이 방송에 나오면 매일 새로운 문자를 공개하겠다고 엄포를 놓았다. 김 최고위원은 바로 방송출연을 중단했다. 이 명 씨가 윤 대통령 부부에게 접근하고, 귀를 잡은 수단도 여론조사다. 여론조사가 우리 사회를 지배한다. 윤석열 대통령과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가 오늘 만난다. 가장 큰 논점이 김건희 여사 특검이다. 지난주 한국갤럽 조사에서 63%가 찬성했다. 이게 여론의 압력으로 작용한다. 원전을 할 건지 말건지, 국민연금을 몇 %나 올릴 건지, 온갖 사회적 이슈를 여론조사로 물어본다. 그런데 정말 제대로 조사한 여론인가. 심지어 명 씨는 “나한테오면 3개월이면 대통령 만든다”라고 큰소리쳤다. 정당 공천도 여론조사로 결정한다. 다른 요소가 있어도 여론조사가 결정적 힘이다. 오차 범위 안의 차이라도 승패가 갈라진다. 총선 때 여론조사는커녕 가장 정확하다는 출구조사도 맞힌 적이 없다. 그런데도 정확한지 여부는 불문이다. 2002년 대통령 선거에서 노무현-정몽준 후보는 여론조사로 단일화했다. 국회의원 후보는 물론 대통령 후보까지 여론조사가 결정하는 세상이다. 후보만 그런 게 아니다. 한국 사람은 다수에 잘 휩쓸린다. ‘친구 따라 강남간다’는 속담이 있을 정도다. 다른 사람이 하는 건 나도 해야 직성이 풀린다. 명품 가방을 다른 나라보다 비싸게 팔아도 오픈런 하는 이유다. 선거 때는 여론조사에만 관심이다. 여론조사에서 우세를 보이면 ‘밴드웨건 효과’가 나타난다. 열세 후보 지지자는 지레 투표를 포기하기도 한다. 사표(死票)를 만들지 않으려는 심리다. 그럴수록 여론조사가 엄정해야 한다. 낮은 응답률, 균형이 맞지 않은 표본은 가중치를 조정한다. 이걸 ‘마사지’라고 부른다. ‘마사지’가 조작의 명분이 되어서는 안 된다. 석 달이면 대통령을 만드는 바람몰이가 되어서도 안 된다. 이런 조작술에 민주주의를, 나라의 운명을 맡겨놓을 수는 없다. 김진국 △1959년 11월 30일 경남 밀양 출생 △서울대학교 정치학 학사 △현)경북매일신문 고문 △중앙일보 대기자, 중앙일보 논설주간, 제15대 관훈클럽정신영기금 이사장,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부회장 역임

2024-10-20

기록의 힘

김규종 경북대 명예교수 지난 10월 10일 목요일 저녁 경북대 교수들과 저녁 식사를 마치고 집에 돌아와서야 비로소 큰 경사가 났음을 안다. 한강 소설가가 노벨 문학상을 받게 됐다는 놀라운 소식을 뒤늦게 알게 된 것이다. 몇몇 단톡방이 그 소식으로 시끌벅적하고, 나도 늦게나마 축하 대열에 합류한다. 오래 살다 보니 정말 좋은 일이 생기는구나, 하는 소회(素懷)가 절로 일어난다. 한강의 수상을 축하하는 많은 댓글 가운데 “노벨 문학상을 번역 없이 읽을 수 있다니 참 기쁩니다!” 하는 문구가 인상적이고 유쾌하게 다가온다. 내가 진행하는 청도 인문학 화요(火曜) 강연회에 오랜만에 얼굴을 내보인 참가자는 환한 얼굴로 말한다. “한강의 노벨상 수상을 함께 기뻐하고 싶은데, 여기가 제일 좋은 곳 같아서 왔어요.” 프랑스 문학을 전공한 그녀는 인문학 강연 초기에 빠지지 않고 나오다가 영어 회화 공부 시간과 겹친다는 이유로 장기간 결석한 인물이다. 그날은 영어 회화 수업도 빠진 채 우리와 동석한 것이었다. ‘21세기 한국 대학의 문제점과 대응 방안’에 관한 강연을 마치고 뒤풀이하는 자리에서 우리는 다시 한강의 노벨상 수상을 주제로 이야기를 이어간다. 그러던 차 어느 날인가 한국 교육 방송(EBS) 유튜브에 반가운 얼굴이 나온다. 1996년 만 26세 앳된 얼굴의 한강 소설가가 모습을 드러내는 것이다. 화장기 하나 없는 얼굴과 청바지 차림의 청춘 한강이 ‘문학기행-한강의 여수의 사랑’이란 제목의 주인공으로 나온다. 나는 ‘그래, 역시 기록은 대단한 거야!’ 하며 혼잣말로 중얼거린다. 1994년 신춘문예로 등단한 한강은 1995년 3년 정도 여수에 머물면서 창작에 전념했다고 한다. 그 당시 나온 한강의 첫 번째 소설집 제목이 ‘여수의 사랑’이며, 표제작의 제목 역시 ‘여수의 사랑’이다. 한강은 ‘여수’에서 이중적인 의미를 포착한다. 문자 그대로 물이 아름다운 고장 ‘여수(麗水)’와 여행자의 우수인 ‘여수(旅愁)’를 떠올렸다고 그녀는 말한다. 그런 점에서 ‘여수의 사랑’에 등장하는 두 여인 가운데 ‘자흔’이란 이름에 한강이 부여한 자취와 흔적이란 의미도 단순하지 않다. 어린 시절에 부모에게 버려진 기억을 도저히 잊을 수 없는 인간의 쓸쓸한 내면 풍경을 적절하게 드러내는 이름 자흔. 이미 이 지점에서 스물댓 살 난 젊은 작가의 인식과 사유가 예사롭지 않게 다가온다. 교육 방송 ‘문학기행’에서 내가 주목하는 것은 한강의 소설 ‘여수의 사랑’이 아니라, 거의 무명에 가까운 앳된 소설가의 처녀작에 눈길을 주고 그녀와 소설을 기록으로 남긴 대목이다. 우리는 지금과 여기, 그리고 미래를 향한 열렬(熱烈)한 욕망으로 나날을 살아가기 일쑤다. 돌아봄이 불가능해진 광속(光速)의 21세기를 살아가는 인간이 돼버린 게 아닌가?! 그런데 교육 방송이 만든 28년 전 기록으로 우리는 시간 기계(타임머신)라도 탄 것처럼 과거의 여수와 한강을 만나는 것이다. 오늘의 한강을 가능하게 한 지난날의 한강을 돌이켜보면서 시간과 기록의 힘을 재삼재사 확인한다. 기록을 우리 일상의 일부로 만들어보면 어떨까?!

2024-10-20

반곡지가 아프다

우정구 논설위원 경북 경산시는 저수지 수가 전국에서 8번째로 많다. 300군데 이르는 저수지 가운데 1800년대 이전에 조성된 곳만 19곳이나 된다. 저수지 모양이 자라처럼 생겼다하여 자라 이름이 붙은 남산면의 자라지는 1725년 영조 2년에 조성된 못이다. 지금은 저수지로서 용도가 퇴색해 일부는 관광자원으로, 일부는 시민 산책로 등으로 활용되는 곳도 많다. 경산시에서도 역사와 문화, 경관 등이 뛰어난 저수지 10곳을 선정해 관광 명소화 작업을 진행 중이다. 남산면 소재 반곡지는 그중에 전국적 지명도가 있는 저수지다. 1903년 조성된 이곳에는 수백년 된 왕버들 20여 그루가 터널을 이루며 장관을 연출한다. 특히 왕버들이 저수지에 반영(反影)된 모습에서 시골의 정취와 삶의 여유로움을 느껴 찾는 이의 발길이 끊이질 않는다. 그리고 봄에 피는 복사꽃 풍경 또한 환상적이다. 2011년 문체부가 사진찍기 좋은 명소로 선정했고, 2013년에는 행안부 선정의 우리마을 향토자원 베스트 30선에도 뽑혔다. 드라마 대왕의 꿈, 아랑 사또전과 영화 허삼관 등이 촬영된 곳이다. 대구를 찾는 방문객이면 누구나 한번쯤 가고픈 곳이다. 안타깝게도 반곡지 저수지에 부영양화 현상이 일어나 저수지 위에 떠있는 개구리밥으로 인해 왕버들의 반영 모습을 볼 수 없다고 한다. 부영양화 현상은 생활하수나 농축산 폐수 등의 유기물질이 유입돼 일어난 수질 오염 상태다. 전국적 명소로 소문난 곳에 수질오염 문제가 생겼으니 당국에 대한 원망의 소리가 나오는 게 당연하다. 지역의 대표 명소에는 이름에 걸맞은 정성과 숨은 노력이 필요하다. 반곡지의 명예 회복을 서둘 때다. /우정구(논설위원)

2024-10-20

저작권료는 저작자의 목숨줄

유영희 작가 강의에 사용할 작품을 찾기 위해 여러 책을 찾아본다. 그중에는 중고등학교 교과서도 있다. 학창 시절에 배운 작품도 다시 발견하고, 새로운 작품도 많다. 아무리 좋은 작품이라도 교과서나 참고서에서 만나면 오직 시험공부의 대상이라는 생각에 감흥을 느끼지 못하지만, 나이 들어 다시 보면 새롭게 다가온다. 성인을 위한 글쓰기 강의에서 교과서 작품을 인용하는 이유다. 중고생 참고도서도 본다. 그런데 몇 년 전 청소년 참고서에 실린 글의 저자 P 씨를 만난 적이 있다. 반가운 마음에 아는 체를 하니 그는 자기 작품이 사용된 줄 전혀 몰랐다며 깜짝 놀란다. 그 참고서를 낸 출판사는 내로라하는 국어교육계 교사들이 편집진으로 참여하는 곳인데, 어떻게 그런 일이 있느냐며 함께 통탄하고 안타까워했다. P 씨가 그 출판사에 저작권료 요청을 하지 않겠다고 바로 마음을 정리하는 것을 보면서 미리 알려만 줬으면 저작권료를 안 받는다고 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했었다. 갑자기 이 기억이 소환된 것은 노벨문학상을 받은 한강 작가의 작품이 교과서에 11곳 사용되었음에도 저작권료를 한 푼도 못 받았다는 기사가 대서특필되었기 때문이다. 비단 한강뿐 아니라 다른 작가들도 저작권료를 지급받지 못했다고 한다. 이런 일이 발생한 것은 특이한 저작권료 지급 방식 때문이다. 저작권법 제25조 1, 2에 따르면, 공개된 저작물은 초중고등학교를 위한 교과용 도서에 사용할 수 있다. 그런데 출판사는 저작권료를 작가에게 직접 지불하지 않고 저작권법 제25조 6에 따라 한국문학예술저작권협회(문저협)에 지급하면 문저협에서 작가에게 지급한다. 왜 이런 방식을 채택했는지 궁금해서 한국문학예술저작권협회를 검색해보니, 저작자 권리보호 및 저작물의 공정한 이용을 도모하는 문화체육관광부 소관 사단법인으로서 2000년에 설립되어 문학예술 저작물의 저작(재산)권리를 신탁받아 관리하고 있다고 한다. 우리나라 초등학교 교과서는 국정 한 가지이지만, 중고등학교 교과서는 검정, 인정으로 구분되어 발행하고 고등학교 교과서만 해도 11종이나 된다. 이렇게 많은 교과서에서 자기 작품이 교과서에 실렸을 것을 생각하고 조사할 작가는 없을 것이다. 작가들은 자기 작품이 교과서에 실렸는지 모르고 있으니, 알아서 청구하기도 어렵다. 그런데도 문저협이 작가에게 적극적으로 통보하지 않으니, 저작자의 권리를 보호한다는 문저협이 저작권료를 중간에서 착복하는 모양새가 된 셈이다. 이번에 한강의 작품에 저작권료가 문제되자 문저협은 “한강 작가의 연락처를 몰라서 저작권료를 지급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러나 지급하지 않은 저작권료가 104억 원이나 된다니, 지급받지 못한 작가가 한두 명이 아니다. 문저협은 저작자의 생계와 직결되는 저작권료를 제대로 지급하기 위한 방안을 내놓는 것이 더 책임 있는 태도이다. 작품을 사용하는 출판사가 작가에게 미리 알려주는 것을 의무화하는 방법도 있겠고, 문저협이 저작자 명단을 확보하는 방법도 있겠다. 저작자의 권리를 보장하는 것은 우리 문화 발전에도 꼭 필요한 일이다.

2024-10-20

유압 설비의 유지와 개선

엄주선 포스코 인재창조원 교수·컨설턴트 처음 제철소 현장 견학을 하면서 입을 못 다물 정도로 깜짝 놀란 것이 열연공장에서 압연하는 모습이었다. 시뻘겋게 달아오른 철판이 가열로에서 나와 이송 롤을 타고 쿵쿵쿵하고 이동하여 거대한 소리와 함께 압연기에 압착되어 밀려 들어가는 것이다. 이후 물과 증기를 사방으로 내뿜으면서 압연기와 철판이 부딪치는 굉음이 몇 차례 반복되더니 어느 순간 길이가 길어지고 천둥과 같이 우르르 쿵 하는 소리와 함께 시계의 태엽처럼 말린 제품이 만들어지는 모습은 지금도 뇌리에 남아 심장을 울리는 듯하다. 이렇듯 시뻘겋게 달구어진 철판을 고객이 원하는 두께로 압연하는 과정에서 설비 제어를 위해 반드시 필요한 것이 유압이다. 유압의 기본원리는 17세기 프랑스의 수학자 블레즈 파스칼(Blaise Pascal)이 발견한 것으로 밀폐된 공간에서 가해진 압력은 유체의 모든 방향으로 균등하게 전달되며 그 힘은 동일한 압력에서는 면적에 비례하여 커진다는 것이다. 그래서 상대적으로 작은 힘으로 큰 힘을 전달 할 수 있어 산업현장에서 유용하게 사용되며 수리공장에서 자동차를 들어 올리는 리프트나 건설 현장의 중장비 항공기 렌딩기어 등 다양한 분야에 사용된다. 유압 장치는 강력한 힘 전달과 부드러운 움직임을 통한 정밀한 제어가 가능하다는 장점이 있지만 비압축성 유체를 사용하기 때문에 누유로 인한 주변환경 오염이 발생되고 온도가 낮으면 유체의 점도의 증가로 분자들이 느리게 움직여 서로 더 강하게 결합하게 되어 유체 흐름에 저항이 생겨 작동이 느려지며 온도가 너무 높으면 유체의 산화가 급격하게 진행되는 등 온도에 민감하고 화재에 취약한 단점이 있다. 그래서 유지관리가 어려우며 가장 중요한 것은 청결과 온도이다. 청결에 있어 첫째는 유압유의 청정도 관리로 각 부에 설치된 필터의 정기점검과 오일의 주기적 교체 공기와 수분의 차단이다. 둘째는 유압 기기와 주변을 깨끗하게 하여 외부로부터 발생하는 먼지나 이물이 혼입되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가장 쉬운 방법이지만 현장에 가 보면 제일 안되는 부분이기도 하다. 주변의 먼지나 이물로 인해 부품의 마모나 손상으로 성능이 저하되고 시스템 과열로 작동 불량이 발생하거나 고장과 가동 중단이 발생하게 된다. 또 다른 유지관리의 핵심은 유체의 적정한 온도관리이다. 유압유의 온도가 높으면 점도가 낮아지고 유압유의 윤활 성능이 저하되며 마찰과 마모가 증가하여 펌프 밸브 실린더 등 주요 부품의 손상이 발생된다. 고온이 지속되면 유압 부품의 열팽창과 고무와 씰 류의 열화로 이어지며 유압유의 산화가 가속화되어 슬러지나 바니시와 같은 찌꺼기가 발생하여 시스템 내부에 쌓이거나 필터를 막아 밸브의 작동에 영향을 끼칠 수 있다. 생산 현장의 유압 설비는 고장이 없어야 생산과 품질 모두 확보되며 작업자도 부담 없이 일을 할 수 있다. 많은 현장에서 작동에 문제가 없다고 관리를 소홀히 하여 큰 고장이나 화재로 이어지는 경우를 보았기에 청결과 온도의 중요성을 잊지 말고 실천하기를 권장한다.

2024-10-20

문경시, 한반도 교통의 중심지로 급부상한다

신현국 문경시장 문경시는 2024년에 이른바 한반도 교통의 중심지로 급부상할 전망이다. 오해 11월 개통을 목표로 막바지 공사가 한창인 고속철도는 완공 시 운행구간은 성남시 판교에서 종착역인 문경까지이다. 경기도 광주에서 수서로 이어지는 구간까지 연결되면 문경에서 수도권까지 1시간 9분 내에 접근이 가능해 진다. 문경은 예로부터 영남지역에서 한양으로 가는 길목에 위치해 있는 교통요충지이다. 과거 보러 가는 선비나 경상도에서 충청도 또는 멀게는 한양으로 향하는 보부상들의 주된 통행로였다. 문경은 또한 문경새재 즉 조령을 비롯해 하늘재, 이화령 등 굽이굽이 고개의 고장이기도 하다. 이렇게 길의 고장인 문경은 예로부터 타지역과의 접근성이 좋아진 데 비해, 상대적으로 관내 지역 간 이동을 위한 교통여건은 매우 열악한 상태이다. 문경시는 이에 따라 읍·면지역간 도로 개설 및 확·포장, 위험도로 정비, 도로 선형개량 등을 통해 지역 내 주민들의 이동에도 안전성과 편의를 도모할 계획이다. 먼저, 국토교통부 부산지방국토관리청에서 추진 중인 국가지원 지방도 32호선인 문경시 농암면 화산리에서 사현리까지의 도로 선형개량 사업을 벌인다. 이는 농암면 사현리를 시작으로 터널 1개소, 교량 3개소를 포함 총길이 5.36㎞의 도로 2차로 시설개량하는 사업이다. 이 사업에 소요되는 사업비는 약 427억원으로 현재 기본 및 실시설계용역이 추진 중이며, 2025년 하반기 착공 예정이다. 다음은 경북도에서 추진 중인 ‘문경~산북간 도로건설공사’이다. 지방도 923호선 중 문경읍 갈평리에서 산북면 가좌리 구간을 연결하는 도로 건설 사업이다. 사업량은 터널 포함 총길이 2.8㎞이며, 총사업비는 약 290억원이다. 현재 실시설계 마무리 단계에 있으며 2024년 하반기 착공을 앞두고 있다. 다음으로 경북도에서 추진 중인 ‘국도 59호선 문경 대상지구 위험도로 개량공사’를 들 수 있다. 현재 국도 59호선 중 산북면 대상리와 대하리 구간은 산북면 행정복지센터와 일반 상가 밀집 지역인 면 소재지를 통과하고 있다. 이 때문은 매일 주·정차 차량 등으로 인한 교통혼잡과 상습체증 등의 교통불편이 이어지고 있다. 이곳 교통혼잡 해소를 위한 해법으로 면소재지 중심과 시청 소재지, 동로면과 단양군 등지로 향하는 차량을 분리 통행시키는 것이 최대 현안 과제로 대두하고 있다. 시는 이 문제 해결을 위해 회전교차로를 포함하는 총길이 2.66㎞의 우회도로를 개설할 계획이다. 총사업비는 약 118억으로, 현재 보상 협의 진행 중이다. 마지막으로 시에서 추진하는 ‘지역연계 도로(단산터널) 개설공사’이다. 문경읍 당포리와 산북면 석봉리 사이에 있는 단산(해발 956m)을 터널로 통과하는 총길이 1.98㎞인 사업이다. 이 사업은 지난 2008년 사업 승인 후 양방향 진입로를 준공하였지만, 이후 국비 확보에 어려움을 겪으면서 사업의 궁극적인 목표인 터널 공사가 진행되지 못한 채 현재까지 주민 숙원으로 남아있다. 문경시의 지속적인 노력 끝에 2023년 국비 100억 원을 확보해 현재 실시설계 중이며 올해 말 착공을 목표로 추진중이다. 문경시는 집중적으로 도로개설·정비에 역점을 두고 단계를 밟아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이 사업들은 문경시의 발전을 위해 중앙부처, 경북도, 시가 함께 힘을 합쳐 이뤄낸 성과로써 지역 간 이동 거리 단축과 교통처리 능력 개선을 통해 주민 불편 해소 및 교통편의 증대, 물류비용 절감 등의 효과가 기대된다. 이와 더불어 문경새재 권역과 계곡, 천년고찰과 경천호반이 있는 산북·동로 권역으로 분리된 관광지를 하나로 연결해 대부분 1일 관광에 그쳤던 관광 형태가 1박2일 이상의 체류형 관광으로 변모시킨다.

2024-10-20

여기서 마음껏 ‘아프다가’

아프다가 담 밑에서하얀 돌을 보았다 오래 때가 묻은손가락 두 마디만 한아직 다 둥글어지지 않은 돌 좋겠다 너는,생명이 없어서 아무리 들여다봐도마주 보는 눈이 없다 어둑어둑 피 흘린 해가네 환한 언저리를 에워싸고나는 손을 뻗지 않았다무엇에게도 아프다가 돌아오다가 지워지는 길 위에쪼그려 앉았다가 손을 뻗지 않았다 ―한강,‘조용한 날들’ 전문 (‘서랍에 저녁을 넣어 두었다’, 문학과지성사) 오늘의 첫 대출 도서는 한강의 소설 ‘흰’이다. 노벨문학상 발표 이후 서점가는 물론 도서관의 풍경은 다르지 않을 것 같다. 한강 작품 찾아 읽기, 혹은 다시 읽기, 더해서 한강 작품 모아 읽기 등의 태그를 달아도 될 만큼 가히 노벨상 특수라 할법하다. 한강은 소설가로 알려져 있지만, 시인이기도 하다. 작가의 등단 시는 ‘문학과 사회’에 실려 있는데 이후 발표된 시들을 모아, 한강은 첫 시집‘서랍에 저녁을 넣어두었다(2013)’를 발간한다. 소설을 쓰는 중에 시를 써왔던 것들을 모아 출판한 것으로 작가에게 시와 소설의 경계는 그리 중요한 것이 아닌 듯하다. 한강의 시와 함께 소설을 읽으면 어떤 느낌일까. 특히 한강의 시편들과 소설인 듯 시인 듯 장르의 경계가 모호한‘흰’과‘하얀 돌’의 색채 이미지는 떼려야 뗄 수 없는 사실상 같은 돌이다. 마치 흰 돌 속으로 들어가기 위한 에필로그처럼 읽히니 말이다. 이처럼 작가의 시적인 비유와 묘사의 문체, 색채 이미지는 한강 작품이 호소하는 인물들의 절망과 고통을 생생하게 느끼게 하는 고유한 역할을 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한강 작가의 문체는‘눈’같다. 작품 속에 ‘눈’의 이미지가 자주 나오는 것은 하나의 서사전략이다. 이미지는 감각에 의해 선취되는데 주로 시각 이미지에 집중되어 전개된다. 그녀의 작품을 제대로 음미하려면 작가의 망설이는 듯한 느린 발화처럼, 소리 없이 내리는 눈처럼‘조용히’그리고 천천히 읽어야 한다. 결코 앉은자리에서 다 읽었다는 발화는 있을 수 없다. 이희정 시인 “오래전 그녀는 바닷가에서 흰 조약돌을 주웠다. 모래를 털어낸 뒤 바지 호주머니에 넣었고, 집에 돌아와서는 서랍에 넣어두었다. 가끔 그것을 꺼내 손바닥 위에 얹어보았다. 침묵을 가장 작고 단단한 사물로 응축시킬 수 있다면 그런 감촉일 거라고 생각했지만, 사실 속이 들여다보일 만큼 투명하지는 않았다. 침묵을 가장 작고 단단한 사물로 응축시킬 수 있다면 그런 감촉일 거라고 생각했다.” (소설,‘흰’에서‘흰 돌’부분) 작가는 무겁고도 아름다운 문체로 말한다. 환부에 흰 연고를 바르고 흰 거즈를 얹는다고 훼손된 부위가 복원되기는 어렵다. 복원할 수 없는 세상보다 복원할 수 없는 ‘사람’에 대한 촉각이 스며 있다. 고통과 상처의 촉각, 사랑의 촉각, 찢어지는 목소리의 촉각, 소리 없는 소리의 폭력이 감추어진 폭설의 촉각처럼 말이다. “나는 조용히 있고 싶다. 세계에 많은 고통이 있고, 우리는 좀 더 조용하게 있어야 한다.” (노벨문학상 수상 직후 작가의 인터뷰에서)

2024-10-20

울릉군의 A 의원의 ’오보’ 발언...‘울릉도 대중교통 운송사업의 재정지원’ 조례 관련

김두한 기자 울릉군의회가 발의한 ‘대중교통 운송사업의 재정지원’에 관한 조례에 대해 A 의원이 5분 발언을 통해 설명하면서  본지 기사를 ‘오보’라고 했다. ‘오보’ 발언은 본지가 지난 2022년 KBS가 조사 보도한 경북 도내 시·군 대중교통 버스 지원금에 대한 보도 자료를 인용했다.   당시 KBS는 버스 1대당 지원금이 영덕군 1억 4938만 원, 청도군 1억 3658만 원, 영양군 1억 3434만 원 등인데 울릉군 8054만 원이었다.   울릉도는 경사도로, 잦은 낙석 등 도로파손, 해풍으로 인한 차량훼손 등으로 버스의 내구연한이 짧아 육지보다 오히려 더 많이 지원해야 하지만 최하수준이다고 지적했다. 이 기사가 단순비교라 ‘오보’라는 것이다. 5분발언 뿐아니라 보도자료 등 몇 차례걸쳐 ‘오보’라고 했다. 울릉군이  5000만 원을 지원했다고 기사를 썼다면 버스회사를 편들기 위한 악이적  ‘오보’다.   단순비교라는 A 의원의 발언이 울릉도 도로사정을 감안 차량 내구연한이 짧아 더 지원해야 하기 때문에 단순비교가 안 된다고 발언했다면 맞는 말이다.   하지만, ‘오보’관련 내용은 육지는 새벽 일찍시작, 저녁 늦게까지 버스를 운행을 많이 하기 때문에 육지는 많이 지원하지만, 울릉군지원이 많아 단순비교가 안 된다는 뜻이다.   오보는 지차하고 그렇다면 과연 단순비교가 안 된다는 발언이 맞는 말일까. 차량은 이유를 불문하고 운행거리로 비교하면 가장 공정하다. 경북도 내 군부 농어촌버스 평균 운행시각은 대체로 오전 6시~오후 8시로 울릉군과 별차이 없다. (각 군부 지자체 홈페이지 참조) 영양군과 비교하면 영양군 평균 1대당 운행 거리는 260km 정도인 것으로 알려졌다. 울릉군은 섬 일주 버스를 기준으로 평균 235km이다. 하루 25km정도  차이는 있지만, 영양군 지원금 1억 3434만 원과 울릉군 8054만원은 단순비교라도 울릉군 지원이 적다.  내구연한을 따지면 비교도 안된다.  기초지자체 의원의 발언은 모두 녹음이 되고 기록해 역사로 남는다. 따라서 ‘오보’ 지적에 대해  반드시 바로잡아야한다. 근거 없는 ‘오보’ 주장은 의원의 인격 문제다.   어떤 근거로 단순비교가 안 된다고 발언했는지 더욱이 역사에 남을 ‘오보’ 발언을 했는지 이해가 안된다. 무소불위의 권력으로 마음대로 발언해도 된다는 뜻인지 묻고 싶다. 특히, 울릉군민이 위임한 권한으로 특정해 한 풀기씩 발언을 하면 안 된다. A 의원의 군민을 위한 귀중한 5분 발언이 근거없는 ‘오보’ 지적때문에 오보가 될 수 있다는 것을 명심하기 바란다. /김두한기자kimdh@kbmaeil.com

2024-10-20

삼성의 가을 야구

우정구 논설위원 가을 야구는 정규시즌이 끝난 후 진행되는 플레이오프와 한국시리즈를 포함한 개념이다. 정규시즌이 끝나는 시기가 9월 말에서 10월 초이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가을 야구란 이름이 붙었다. 특히 가을 야구가 관심을 끄는 것은 단순한 경기가 아니고 팀과 팬들로부터 성과를 평가받는 무대란 점에서 매우 중요하다. 마치 축구선수가 월드컵 본선에 진출한 것처럼 선수들에겐 팬들의 이목을 모으기 위한 절호의 기회가 되기도 한다. 프로야구가 대중의 인기를 끄는 요소로는 몇 가지 있다. 팀의 연고지가 정해져 있고 내가 좋아하는 선수와 팀이 분명하다는 것은 중요한 요소다. 거기에 구단의 팬 서비스와 응원문화가 팬들의 감성을 사로잡고 있는 것도 인기 이유다. 또 다른 특별한 이유가 있다. 가을 야구는 정기시즌 결과와 상관없이 모든 것이 초기화된 상태에서 시작한다는 것이다. 극적이면서 예측 불가능한 장면이 유독 가을 야구에서 자주 연출되는 이유다. 그만큼 긴박하고 긴장감 넘치는 경기가 많다는 뜻이다. 관중 또한 경기보는 재미가 크다. 한국 프로야구의 전통 명가이자 대구경북 연고팀인 삼성라이온즈가 플레이오프 1, 2차전을 승리로 이끄는 등 선전을 거듭하면서 역대급 기록을 세우고 있다. 삼성 홈구장인 라이온즈파크는 올해 30회 연속 매진 기록과 함께 전국 구장 최초로 시즌 100만명 관중 돌파를 기록했다. 요즘 대구시민에게 최고의 화제가 삼성 야구다. 남녀노소 구분없이 집집마다 온통 삼성 야구로 화제의 꽃을 피운다. 대구시민이 야구로 이렇게 즐거워한 적이 있었는지 기억이 없다. 한국시리즈를 향한 삼성의 질주에 팬들의 박수가 쏟아지고 있는 것이다. /우정구(논설위원)

2024-10-17

대구를 음악도시로 만들 수는 없을까?

신광조​​​​​​​사실과 과학 시민네트워크 공동대표 도시에서 과학기술이 ‘밥’이라면, 문화예술은 ‘반찬’이다. 살 맛 나는 대구를 위해, ‘음악도시 대구 만들기’를 제안한다. 미국 테네시주 내슈빌은 뮤직 시티다. 컨트리 음악의 세계적인 수도다. 트럼펫 연주가 루이 암스트롱은 미국 남부 뉴올리언즈시 재즈 카페가 배출한 스타다. 유럽의 도시는 고전에서 현대음악까지 화려하다. 빈은 비엔나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등 음악 본향이다. 런던은 록과 팝의 심장부다. 비틀즈는 리버풀 항구 야간무대에서 실력을 닦았다. 파리는 샹송과 재즈의 도시다. 로마는 오페라의 전당이다. 일본의 시즈오카현 서부 하마마츠시는 야마하가 풍금제작소를 설립한 이래 음악과 인연을 맺어왔다. 야마하에 이어 악기제조업체 카와이의 본사도 왔다. 하마마츠시 건물들은 악기를 형상화 한 것이 많다. 야마하, 키와이, 스즈키의 후원으로 개최되는 ‘하마마츠 국제음악 콩쿠르’는 전도양양한 뮤지션 등용문이다. 음악교류사업으로 아시아대표 음악문화도시가 되었다. 음악산업과 음악의 이미지를 살린 자동차 산업 그리고 관광활성화라는 세 마리 토끼를 한꺼번에 잡았다. 공자는 인(仁)은 시(詩)로 시작하고, 예(禮)로 서고, 음악으로 완성된다고 하였다. 자존심 강한 대구를 개성을 조화시키며 통합하는데 음악만큼 효과적인 수단은 없다. 연극의 4요소는 관객·배우·무대·희곡이다. 음악진흥전략을 펼치려면, 시민들이 음악을 사랑해야 되고, 무대가 있어야 하고, 훌륭한 음악가가 있어야 하고, 미친 기획자가 있어야 한다. 개별자들이 조금씩 손해보고 힘을 합쳐 기적 같은 큰 성과 창조가 음악도시 대구 만들기다. 2005년 5월, 서울 시청 앞 잔디광장은 서울시민을 살만하게 했다.‘조용필 콘서트 장’으로 탈바꿈하여 나이 지긋한 커플들이 ‘친구여’를 따라 불렀다. 많게는 10만원이 넘는 조용필 티켓 공연이 하늘에서 쏟아졌다. 모인 5만 시민 모두가 행복했다. 뉴욕 시민의 가장 큰 자부심은 센트럴 파크에서 열리는 보석같은 음악 공연을 무료로 즐길 수 있다는 것이다. 기업가나 재단들의 통 큰 후원금과 기획력 덕분이다. 뉴욕 사람들은 담요와 피크닉 가방을 들고 나와 귀한 공연을 공짜로 누릴 수 있다. 센트럴파크와 뉴욕을 사랑하지 않을 도리가 없다. 이 가을 청라언덕이 보이는 야외 언덕배기에서 임윤찬이 라흐마니노프의 ‘피아노 협주곡 3번’을 연주하면 대구시민은 기뻐 눈물을 흘리고, 많은 국민은 대구로 발길을 향할 것이다. 피아노 연주 전 대구가 낳은 세계적 소프라노 강혜정이 ‘별’과 ‘고향의 노래’를 소년소녀합창단과 같이 부르면 우리는 하나가 될 것이다. 서로 힘만 합치면 어려운 일이 결코 아니다. 대구 도심지 전통의 동인초교와 종로초교는 도심공동화 현상으로 큰 규모의 교사(校舍)가 텅텅 비어 있다. 빈 교실 활용, 시민들 사랑받는 ‘시민예술촌’을 조성하자. 문화예술 교육은 어린이만 받는 것이 아니다. 성인 어른들이 색소폰 등 악기를, 그림 데생을, 글짓기 문학을 배우면 된다. 공예품 만들기는 부업도 된다. 우리나라에서도 문화도시다운 문화도시 대구가 탄생할 것이다. 대구 시민들은 무한한 자부심을 느끼고, 대구 시민을 단합과 화합으로 이끌며, 이미지 제고로 지역경제를 활력 넘치게 할 것이다.

2024-10-17

지금의 시대정신(時代精神)

김병래수필가·시조시인 ‘한 시대의 지배적인 지적·정치적·사회적 동향을 나타내는 정신적 경향’을 시대정신이라고 한다. 독일 철학자 헤겔이 처음 사용한 말로, 그는 인류 역사의 어떤 시대이던 간에 그 시대를 관통하는 하나의 절대적인 정신이 있다고 보았다. 각 시대마다 역사적 배경, 문화적 변동, 사회적 변화 등과 관련하여 그 시대를 지배하는 독특한 사고방식이나 가치관이 형성되고, 그것이 철학, 예술, 정치, 경제, 사회 등 다양한 분야를 통해 표출된다는 것이다. 2024년 지금, 우리사회의 시대정신은 무엇인가? 아니 무엇이라야 하는가? 일제강점기에는 나라의 독립이 시대정신이었고, 해방 이후 제5공화국까지는 산업화와 민주화가 당면한 과제였다. 21세기에 들어선 오늘날 한국의 시대정신은 포용과 다양성, 기술혁신과 인간성의 조화, 지속가능한 환경, 사회적 정의, 글로벌 시민의식, 정치적 성숙과 같은 가치들을 바탕으로 정의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런 가치들을 추진하기 위해서는 파행을 거듭하고 있는 정국의 정상화가 우선되어야 한다. 지금 우리의 정치권은 도무지 정상이 아니다. 입법부의 다수의석을 차지한 야당이 국정을 마비시키고 사법부를 위협하는 초유의 사태를 벌이고 있다. 대한민국의 건국과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부정하는 종북주사파들이 주축이 된 야권은 애초부터 타협이나 공조의 대상이 아니었다. 더구나 당 대표의 사법리스크와 문재인정권 적폐에 대한 수사로 궁지에 몰린 야권·좌파 세력들은 활로를 찾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있다. 성질 고약한 놈이 장기를 두다가 외통수에 몰리면 패배를 인정하지 않으려고 장기판을 엎어버리는 것처럼, 지금 야권이 짜낸 사법리스크를 모면하기 위한 전략도 아예 국정의 판을 엎어버리는 것이다. 그것은 조기에 대통령을 끌어내리는 것이라고 공언하고 있다. 그러나 막상 윤석열 대통령은 탄핵을 당할 만큼 중대한 헌법이나 법률을 위배한 사실이 없다. 그래서 물고 늘어지는 것이 ‘약한 고리’로 보는 김건희 여사다. 문재인 정권 때부터 법무장관들이 윤석열을 검찰총장직에서 내쫓으려고 탈탈 털었던 것도 김 여사였다. 김 여사의 신중하지 못한 언행이 여러 가지 빌미를 제공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이 과연 대통령을 탄핵할 만큼 중대한 사유가 될 것 같지는 않다. 그렇다고 포기하고 물러설 야당이 아니다. 기왕에 판을 뒤엎기로 작정을 한 이상 무슨 짓이든 끝까지 밀어붙일 것이다. 그들이 간절히 바라는 것은 경제든 안보든 위기가 닥쳐 국정파탄을 초래하는 것이다. 그래야 윤석열을 끌어내리고 이재명이 정권을 잡을 수 있을 거라는 기대 때문이다. 그러니 그들의 안중에 나라와 국민 따위가 있을 리 없는 것이다. 교통질서를 위해서 교통법규의 준수가 필요하듯, 자유민주주의체제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먼저 법치가 바로 서야 한다. 검찰과 사법부가 제 기능을 다해서 사법정의가 실현되면 부화뇌동하는 민심도 안정과 상식을 회복할 것이다. 그것이 지금의 절실한 시대정신이다.

2024-10-17

섬나라가 되어버린 한국

윤영대 전 포항대 교수 지난 15일 정오쯤에 휴전선 철책에 막혀있던 경인선과 동해선의 북쪽에서 큰 폭발음이 들렸다고 합동참모본부에서 밝혔다. 북한이 남북 연결선인 길을 파괴하여 육로로 이어갈 수 있었던 평화의 길을 없애 버린 것이다. 작년 말 북한의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남북한을 ‘적대적 두 국가 관계’라고 선언한 뒤부터 북한의 낌새가 이상하게 감지되었다. 올해 5월과 7월에 동해선과 경인선의 철도 레일과 침목을 제거하였고 9월부터는 남측과 연결되는 도로와 철도를 끊어버리고 방어축성물을 쌓으려는 의도가 보여 긴장하고 있다. 작년 11월에는 그 두 곳의 도로 옆에 나뭇잎 지뢰 등을 매설했었다. 상호 우발사태를 방지하기 위해 미국 측에 통지문을 발송했다고 하지만 이제는 서로 걸어서 왕래할 수 있는 길은 판문점 공동경비구역(JSA)에 있는 통로만 남아있는 꼴이다. 이렇게 남북한 군사분계선이 통행 불가로 강화되었으니 우리 남한은 섬이 되어버린 모습이다. 우주에서 찍은 밤의 지구 모습을 보면 우리나라는 한반도가 아니고 북한 쪽이 까맣고 남한만이 밝은 불빛으로 빛나서 섬처럼 보여진다. 우리는 외국을 ‘해외’ 즉, ‘바다 건너’라고 말하듯이 외국을 가려면 반드시 비행기를 타거나 배를 타야만 된다. 차로써 또 걸어서는 국경을 넘을 수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 국민은 외국이라는 개념이 너무 멀고 낯설게 느껴지는 것일지도 모른다. 예전엔 외국 여행을 하다 보면 국경이라는 것이 참으로 이상하게 느껴졌다. 첫 유럽 여행할 때였다, 버스를 타고 프랑스에서 스위스로 넘어가는 도중에 작은 마을에서 잠시 버스가 서고 운전기사가 군인인 듯한 사람과 얘기를 나누고 차 안을 한번 힐끗 보고는 버스를 출발시켰다. 가이드가 알렸다. ‘스위스로 넘어왔다’고…. 그냥 길을 잘못 들어 지방 경찰에게 묻는 줄 알았는데 국경 검문소였던 것이다. 유럽은 이제 유럽연합(EU)이 되어 하나의 국가처럼 화폐도 통일하여 더욱 국경 개념이 없어졌고, 발칸반도의 여러 나라를 지날 때도 우리나라의 톨게이트 같은 곳에서 잠시 내려 걸어가면 국경 통과, 쉽게 다른 나라로 넘은 것이었다. 북한 때문에 섬 아닌 섬나라에 살아온 탓에 국경을 넘는다는 것을 어렵게 생각했던 나를 깨우쳐 주었다. 물론 옆 나라와 싸우고 있는 경우는 그렇지 않겠지만 다른 나라를 걸어서 넘어간다니 얼마나 신기하랴. 휴전선 철책으로 한 민족이 사는 호랑이 모양의 반도를 갈라놓아 오고 가지 못하는 비극의 나라, 장자(莊子)는 ‘형제는 수족과 같아서 끊어지면 잇기가 어렵다(手足斷時 難可續).’고 했다. 남북 이산가족 상봉과 금강산 관광 등으로 형제가 좀 가까워지나 했는데, 뭐가 틀어졌는지 4년 전 개성공단 내 남북공동연락사무소를 폭파하는 쇼를 벌였고 최근에는 폐기물 풍선을 남쪽으로 날려 보내는 등 다시 억지를 부리고 있다. 우크라이나 전쟁과 이스라엘-하마스 분쟁 등으로 시끄러운 세상이 끝나면 차를 타고 시베리아를 횡단하여 유럽까지 가보고 싶다. 아! 400㎞ 길이의 답답한 작은 섬나라 한국, 유라시아를 달리는 아시안하이웨이의 꿈은 언제 이루어질는지….

2024-10-17

한강의 ‘채식주의자’에 대한 미안함

이정옥 위덕대 명예교수 “〔속보〕노벨문학상에 소설가 한강… 한국 작가 최초 수상.” 지난 주 10일 저녁, TV를 무심히 보고 있는데, 자막으로 뜬 뉴스 속보를 보고 화들짝 놀라면서 나도 몰래 크게 손뼉을 쳤다. 옆에 있는 손자가 깜짝 놀라 나를 쳐다보더니, 저도 일단 같이 박수를 쳐준다. 그러면서 묻는다. 할머니 왜? 할머니 왜요? 우리나라의 한강이라는 소설가가 세계에서 가장 큰 상을 받는대. 우리나라 소설가가, 그것도 여성이, 또 그것도 젊은 나이의 소설가가…. 흥분된 마음에 믿기지가 않아 스마트폰으로 검색 확인했다. 몇 개의 속보가 같은 문장으로 떴다. 그 속보 아래에 생전 해보지도 않은 댓글을 달았다. “오늘 같이 기쁜 날이 또 있을까요?” 그날 밤 위덕대 이정희 교수와도 문학을 전공하는 교수로서의 기쁨을 문자를 주고받으며 설레는 밤을 잠 못 이루며 보냈다. 오늘은 아주 오랜만에, 정말 몇 년만에 형님이 전화를 주셨다. 올해 85세의 손윗시누님이시다. 깜짝 놀라 받으니 하시는 말씀이다. “한강 소설가가 노벨상을 받는다니 참 얼마나 훌륭하고 장한 일인지, 자네도 좋제? 문학 공부하는 자네가 생각나서 전화해 보네….” 이렇게 우리나라 모든 사람이 모처럼의 기쁜 소식에 한마음이 되었나 싶다. 누군가는 벼락같다고 하고, 누군가는 지구가 흔들렸다고 하고 심지어 아버지인 한승원 작가는 “세상이 꼭 발칵 뒤집어진 것 같은 느낌”이라고 했다. 무어라 더 표현할 말이 없을 정도로 기쁘고 떨린 가슴이 이 글을 쓰는 지금도 진정이 안 된다. 온 나라가 한강을 알고 많은 세계인이 그의 소설을 읽으려 할 것이니 어찌 흥분되지 않으랴. 그러면서도 한강의 소설, ‘채식주의자’에 얽힌 작은 에피소드를 떠올리니 몹시 무안해진다. 2017년 여름, 미국의 브링검영대학교에 초빙교수로 가게 되었다. 연구 비자를 얻기 위해서는 미국대사관에서 면접을 봐야했다. 나는 영어를 잘 못해 비자를 못 받을까 조마조마했다. 대기실엔 2~30명이 넘는 면접 대기자가 있었고, 여러 칸의 창구 너머엔 남녀 면접관들이 있었다. 여성면접관과 얘기를 나눌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며 초조한 마음을 누르고 있었다. 내 이름이 불렸고, 바람대로 여성면접관 앞으로 갈 수 있었다. 인사하고, 내가 영어를 잘하지 못한다고 미리 얘기했다. 그녀는 웃으면서, 전공을 물었다. 한국문학, 고전문학이라고 대답했더니 그녀는 대뜸 ‘채식주의자(The Vegetarian)’를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었다. 순간적으로 무슨 말이지? 당황해서 되물었고, 한강의 소설을 얘기하는 걸로 곧 알아차렸다. 2016년, 영국에서 맨부커 국제상을 수상한 그 책을 아는 것 같았다. 그즈음 나는 책을 사긴 했지만 내 취향이 아니라 다 읽진 못한 상태였다. 어깨를 으쓱하며 몇 페이지만 읽었고 그 이유는 재미없었기 때문이라고 대답했다. 그녀는 웃는 얼굴로 요란하게 손을 저어가며 꽤나 많은 얘기를 했다. 다는 못 알아들었지만 분명히 들린 말, 똑똑히 기억하는 말은 “불편했어요.(uncomfortable!)” 나도 그렇다고 냉큼 대답하며 마주 웃었다. ‘채식주의자’는 미국에 가져가서 다 읽은 후 거기에 사는 한국인 소설가에게 선물로 주었다. 갖고 있을 걸 그랬나 싶다.

2024-10-16

진시황제가 찾아 해맨 최고의 건강식(하)

박용호 포항참사랑송광한의원장 현미식과 다양한 종류의 야채들을 꼭꼭 씹어 그 안에 있는 영양소를 섭취하는 식단을 짜서 먹게 되는 소식은 아주 큰 부수적인 효과가 있다. 바로 그렇게 원하던 다이어트가 자연스레 된다는 것이다. 살이 빠지고 정신이 맑아지고 피로가 줄어드는 것을 알 수 있다. 소식으로 인해 탄수화물 섭취가 적기 때문에 자연스레 그동안 쌓여있던 지방을 태우면서 내가 필요한 에너지를 만든다. 살이 빠지는 것과 더불어 내 몸에 붙어있던 내장지방과 과잉 지방이 자연스레 연소 된다. 살이 빠지지만 처지는 살이 없이 이쁘게 살이 빠지게 된다. 몸에 쌓인 지방과 내장지방이 사라지면 그동안 나를 괴롭혔던 호르몬 불균형으로 인한 생리통이나 갱년기 등 다양한 증상들이 개선되고 사라진다. 위와 같이 소식은 자연스레 지방을 에너지원으로 써서 필요 없는 지방을 태운다. 일부러 탄수화물을 먹지 않고 지방을 먹는 케톤식이를 하기도 하는데 채식을 하면 그럴 필요가 없다. 일상적인 식사에서 자연스레 케톤식처럼 지방이 탄다. 케톤식은 암 환자들이 많이 하는 식이요법으로 암의 먹이가 되는 포도당을 안 먹거나 적게 먹고 그 대신 에너지원으로 지방을 먹어 암을 굶겨 죽여 괴사시키는 식단인데 미국이나 유럽 등에서 많은 연구가 되었으며 효과는 아주 우수한 것으로 보고 되고 있다. 채식을 하면 자연스레 이 과정이 진행된다. 요즘 유행하는 간헐적 단식이나 1일 1식 등도 위와 같이 지방을 태우는 식단이다. 간헐적 단식은 하루 16시간 정도 공복 상태를 유지하면 인체는 자연스레 지방을 태우게 되고 필요 없는 세포들을 스스로 처리한다는 이론이다. 그 효능이나 내용을 살펴보면 위에서 말한 채식의 장점과 크게 다르지 않다. 그러나 사람에 따라 1일 1식은 쉽지 않고 폭식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에 좀 더 쉽고 더 효과적인 채식 식이요법을 하는 것이 좋다. 간헐적 단식을 하는 사람들도 무작정 많이 먹고 또 먹고 싶은 것만을 먹는 것이 아닌 균형 잡힌 영양식단을 만든 다음 하는 것이 좋다. 채식의 장점은 크게 힘들지 않다는 점이다. 물론 그동안 먹던 것을 줄여나가고 포기해야 할 부분이 있지만 하루 두, 세끼 정상 식사를 하면 되고 그 식사의 양을 줄이고 질만 바꾸면 되는 것이다. 부족한 단백질은 두부나 콩 단백 등으로 보충하면 된다. 정 힘들면 소량의 생선이나 고기를 먹는 것도 난치병이 아닌 사람들은 충분히 허용된다. 그동안 적게 먹었던 채소를 많이 먹고 현미밥으로 바꾸면 된다. 한국 사람들은 결코 어렵지 않은 식단이다. 가끔 난 이렇게 먹는데 아프다고 하지만 실제론 그렇지 않다. 대충 밥에 국 반찬 몇 가지를 먹는 것은 편식이지 제대로 된 식단이 아니다. 잎 줄기 뿌리 등의 다양한 채소와 두부 등의 콩단백 그리고 현미밥. 꼭꼭 씹어서 입에서 죽을 삼킨다. 그리고 중간에 떡이나 주스 빵 국수 등을 절대 먹지 않는다. 견과류와 사과 같은 당지수가 낮은 과일은 간식으로 허용된다. 이렇게 하는 것이 제대로 된 채식 식단이다. 진시황이 찾아 헤매다가 결국 못찾은 불로초는 바로 내 눈앞에 있다. 이렇게 먹는 내가 바로 세계를 통일한 황제다.

2024-10-16

도서관 앞에서

윤명희 수필가 도서관 유리문을 밀고 나오다 멈췄다. 책 한권 빌려서 나오는 사이에 온 세상이 비에 젖었다. 우산은 차에 있고, 차는 주차장 끄트머리 나무 밑에 있다. 처마 밑에 우두커니 서서 하늘을 올려다본다. 떨어지는 빗방울이 굵다. 양철지붕 위를 우다닥 뛰어다니는 빗방울 소리를 들으며 책을 읽었던 옛 시간들이 지나간다. 내 나이 열두 살 즈음 우리 집에는 교과서 외에는 책이 없었다. 읽을거리가 있는 만화방 앞을 기웃거리는 날이 많았다. 어쩌다 생기는 용돈으로 1편을 보고, 또 기다려 겨우 2편을 보고나면 그 다음 편이 보고 싶어 갈급증이 났다. 나는 직접 노트에 다음 편 만화를 이어 그리기 시작했다. 수업시간에 만화를 그리다 선생님께 들켰다. 노트도 뺏기고, 손바닥까지 맞았다. 세상 무너진 표정을 한 내게 친구가 자기 집에 가서 같이 숙제하자고 했다. 친구네는 서부정류장 옆에 큰 식당을 했다. 식당은 늘 손님으로 북적여 매일 그 앞을 지나다니면서도 들어가 본 적은 없었다. 같이 공부할 거라는 친구의 말에 그녀의 엄마가 간식을 챙겨 주었다. 간식을 받아들고 방으로 들어가던 나는 숨이 멎는 것 같았다. 방의 한 벽면이 소공녀, 홍당무, 빨강머리 앤 등으로 가득했다. 나도 모르게 친구의 두 손을 덥석 잡았다. 다음날 아침 일찍, 친구네로 뛰었다. 숨을 몰아쉬며 식당 문틈 사이로 고개를 밀어 넣었다. “친구야! 학교가자” 한참 후, 잠옷 바람으로 나오는 그녀 뒤로 방에 들어가서 기다리라는 엄마의 말이 따라 나왔다. 나는 벌렁거리는 가슴을 안고, 방에 들어갔다. 그녀가 씻고 밥 먹을 동안 나는 숨 쉬는 것도 잊을 만큼 빠르게 책을 읽어내려 갔다. 학교 가야 할 시간은 여지없이 다가왔다. 미처 다 읽지 못한 빨강머리 앤을 빌려 가방에 넣었다. 방을 나서기 전, 내일 읽을 ‘소공녀’를 눈으로 찜했다. 다음날, 읽은 책을 꽂아두고 어제 찜한 책을 읽기 시작했다. 이야기 속의 주인공과 한 몸이 되어 책 속을 돌아다녔다. 가방을 챙기던 친구가 내게 재밌느냐고 물었다. 나는 한 장이라도 더 읽을 욕심에 대답도 제대로 하지 못했다. 매일 매일이 즐거운 나와는 달리 그녀는 갈수록 표정이 어두워져갔다. 그녀가 나 때문에 엄마에게 혼나는 일이 잦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나는 책장에 꽂힌 책을 다 읽을 때까지 모른 척 하려했다. 숙제를 끝내자, 친구가 내일부터는 따로 학교 가자고 했다. 마저 읽지 못한 책들을 돌아보며 떨어지지 않는 발길을 돌려야했다. 다시 만화방 앞을 기웃거리다, 만화책을 한 아름 빌려 가는 이웃집 오빠를 보았다. 그는 옆집 아저씨의 먼 친척뻘 되는 조카인데, 초등학교 졸업하자마자 아저씨를 도와 목재소에서 잡일을 했다. 그가 내게 슬쩍 다가와 저녁밥 먹고 오면 빌려주겠다고 했다. 나는 목재소 쪽문으로 사라지는 만화책을 한참 바라보았다. 나는 식구들 몰래 대문을 나섰다. 목재소 쪽문을 두드리자 기다렸다는 듯이 문이 열렸다. 책을 달라고 손을 내밀자, 그가 사무실 옆에 있는 쪽방을 눈짓했다. 책을 다 가져가라는 말에 나는 망설이지 않고 방에 들어가 한 아름 안고 나왔다. 방문을 나서자, 그가 가쁜 숨을 쉬며 다가왔다. 놀란 나는 책을 그의 얼굴을 향해 던지고 뒤도 돌아보지 않고 뛰었다. 펄떡거리는 심장이 온 몸에 열을 뿜어냈다. 밤새 앓았다. 열이 내리면서 만화방으로 가던 길이 내겐 없어졌다. 늘 허기졌던 책에 대한 열망은 중학교에 들어가면서 봇물이 터졌다. 방과 후, 나무 바닥이 삐걱거리는 2층 도서관으로 갔다. 책을 코에 대고 냄새를 맡은 후, 마치 조갈증 환자처럼 활자를 마시듯이 읽었다. 데미안을 읽으며 알에서 깨어나는 새로운 세계를 동경했다. 폭풍의 언덕에서 히디클리프의 사랑에 매료되었다. 집에서 학교 가는 길이 전부였던 내 시각이 책 속을 헤매고 다녔다. 시간을 넘고 공간을 넘어 마음껏 활보할 수 있는 자유를 느꼈다. 내 안의 출렁거림을 가라앉히는 것은 나이가 들어가도 언제나 책 속의 길에서 가능했다. 사는 일에 치이는 가운데서도 나는 활자 사이로 난 길을 걷는다. 그 길에서 만난 인연을 따라 걷고 걸어, 지금 도서관 앞에 서 있다.

2024-10-16

오천 장날

상설장이 되었다 해도 오일장은 잊으면 안 돼요 냄새를 확인하고 추억을 상기하고 옛날 떡과 술떡을, 도라지와 냉이를 상업적이지 않게 먹고 살 수 있거든요 라이센스 없는 토박이 장꾼들 습관처럼 출근하는 사람들 구석구석 노인네들 다 모여 콘크리트 담장 아래 쪼그리고 앉아 꼬박꼬박 졸며 봄 햇살 보다 더한 온기를 확인해요 안부 전하면서, 죽지 않으면 보고 또 본다고, 얼마나 고마운 일인가요 제철 봄나물 마중 나오신 거 캐고 뽑아 드리워 주신 거 야박한 가격에도 선뜻 내미는 손 핏줄 빳빳한 마른 손 짓이기 듯 비비는 어설픈 악수 오일장의 자기증명, 그 허술하지만 야무진 목숨들 칼국수 다섯 그릇 시켜 일곱 명 나눠 먹고 동해댁 문덕댁 용산댁 우리 잊지 말아요 멀고 먼 시선 아지랑이에 묻히고 인생, 엄지 검지 모아 팽 하니 푸는 콧물 같은 것 해 지기 전에 버스를 타야지 마지막 버스는 너무 늦기도 하고 우리 운명 같아서 지랄 같아 종일 앉아 있어 시큼한 허리 부축하며 이천원 나물 향기 열댓 봉지 헐렁한 봉지에 담아 집으로 가는 오천 오일장 아쉬워 머물고 싶어도 가슴에만 담아둘 마지막 풍경 더 이상 뜨거운 것은 없어도 더 이상 시들 거 없어도 다음 장날 못 나오면 와병 중이거나 죽은 줄 아시게. 해도동에서 태어났지만 오천에서 오래 살았다. 삶의 언어를 거기서 배웠다. 바탕을 형성하는 인성은 고급스러운 것이 아니었다. 낮은 것은 언제나 은은하다. 금빛이 아니라 은빛이어서 늘 은은하게 빛나고 있다. 흰 머리카락이 더 늘어가고 있다. /이우근 이우근 포항고와 서울예대 문예창작과를 졸업했다.‘문학선’으로 작품활동을 시작해 시집으로 ‘개떡 같아도 찰떡처럼’, ‘빛 바른 외곽’이 있다. 박계현 포항고와 경북대 미술학과를 졸업했으며 개인전 10회를 비롯해 다수의 단체전과 초대전, 기획전, 국내외 아트페어에 참여했다. 현재 한국미술협회 회원이다.

2024-10-16

낙하산을 폐지하라

장규열 고문 정부 기관 고위직 인사가 소위 ‘낙하산’ 관행에 따라 이루어지는 현상이 두드러지게 들린다. 같은 생각을 가진 실력 있는 인사를 기용한다는 생각에 일부 동의한다. 하지만 들리는 소리는 그 정도가 아니다. 업무 관련 전문성이나 업태 관련 적합성과는 무관해 보이는 마구잡이식 낙하산이 내려오는 일은 어찌해야 하는지. 이념의 좌우를 막론하고 우리 사회에서 ‘관행’으로 받아들여지는 인사 관행을 짚어보기로 한다. 첫째, 정부 행정의 전문성을 심대하게 저해한다. 고위공직자들은 국가정책을 설계하고 실행하는 중차대한 역할을 맡고 있으며, 모두 전문성과 경험을 요구하는 자리여야 한다. 그런 자리가 정치적 보은의 수단으로 전락하여 적합성과 전문성이 결여된 인사가 임명되면, 정책의 연속성이 사라지고 정책진행의 질적 저하를 초래한다. 복잡한 행정 업무와 국제관계를 다루는 자리일수록 이러한 문제는 더 큰 혼란을 불러올 것이다. 둘째, 이러한 인사는 공직사회 내 성실하게 일해 온 구성원들의 사기를 떨어뜨린다. 정권에 의해 고위직에 임명된 인사가 자신의 역량과 상관없이 자리만 차지하게 되면, 공직자들은 공정한 평가와 보상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불신을 갖게 되어 성실하게 업무를 수행하던 이들의 의욕을 꺾고 조직 내 불만과 불안정성을 가져올 터이다. 자신의 업무에 대해 깊이 이해하고 헌신해 온 공직자들이 전문성과 성과를 인정받지 못하고, 오히려 정치적 인사들에게 자리에서 밀려난다면 그로 인한 좌절감은 무엇으로 보상할 것인가. 장기적으로 공직사회 전반의 생산성과 효율성을 떨어뜨리는 해악이 된다. 셋째, 정치적 보은 인사는 조직문화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친다. 공직사회는 공공의 이익을 위해 일하는 집단이며 투명하고 객관적인 기준에 따라 운영되어야 한다. 인사과정이 정치적 논리로 휘둘리면, 조직 내 공정성에 대한 신뢰는 무너지고 내부 구성원들 사이에 건강한 경쟁 대신 불신과 갈등이 증폭될 수 밖에 없다. 상급자의 결정이 합리적인 기준에 따라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조직원들은 그 지침에 대한 신뢰를 잃고, 조직 운영 전반에 대해 회의감을 갖게 되지 않을까. 이는 조직 내 협력과 소통을 저해하고, 건강한 업무 환경을 해치는 주요 요인이 되고 말 것이다. 장기적으로는 정부에 대한 국민의 신뢰도를 떨어뜨린다. 국민들은 정부의 고위 공직자들이 공익을 위해 일하고 각자의 자리에서 최선의 정책을 만들어 낼 것을 기대한다. 인사 과정에서 전문성보다는 정치적 이해관계가 우선된다면, 국민들은 정부가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일하고 있지 않다는 인식을 가지게 될 것이다. 정부 정책에 대한 국민적 신뢰를 훼손하고, 궁극적으로 정부 운영의 정당성과 안정성을 약화시킨다. 국민적 신뢰가 떨어지면, 정책 추진의 동력이 줄어들고 국가의 발전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터이다. 인사가 만사다. 인적 구조가 건강해야 조직이 튼실하게 선다. 윗 자리를 부실하게 채우면 아랫 자리가 제대로 기능할 방법이 없다. 아무나 때우는 자리는 그 자리를 공직으로 인정해야 하는가부터 다시 물어야 한다. 무작정 낙하산을 폐지하고 공정하고 투명한 인사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

2024-10-16

남북, 군사적 충돌은 없어야

홍성식 (기획특집부장) 남한 정부와 북한 정부 사이의 긴장이 갈수록 고조되고 있다. 지난해 말.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앞으로 남북은 별개의 국가”라고 선언하며, 향후 평화와 공존을 위한 교류를 단절하겠다고 예고했다. 이후 올 여름 북한은 남북을 오가는 기찻길인 경의선과 동해선 철도를 틀어막았다. 그즈음 이른바 북한의 ‘오물 풍선’이 남쪽으로 날아왔고, 남한 역시 북쪽을 향해 고성능 스피커를 통한 비방 방송의 강도를 높였다. 그리고, 지난 15일 북한은 경의선·동해선 남북 연결도로 일부 구간을 폭파했다. 모두가 보란듯 환한 대낮에 벌어진 행위였다. 그 과정이 가감 없이 TV 화면으로 남한 사람들에게 전달됐다. 지구 위 거의 유일한 분단국가인 남한과 북한의 정치·군사적 갈등을 지켜보던 해외 언론은 “두 나라 사이의 긴장을 다소나마 완화해주던 상징물이 파괴됐다”고 보도했다. 위기의 현실화를 우려한 것이다. 그보다 며칠 전엔 평양에 무인기가 나타나 김정은 일가를 비난하는 선전물을 살포했다며, 이런 상황이 재발될 시 군사적 대응을 할 수도 있다는 북한의 경고가 있기도 했다. 겉으로 드러나는 모습으로 보자면 말 그대로 일촉즉발(一觸卽發)이다. 남북간 작은 오해가 군사적 충돌이라는 최악의 상황까지 야기할 가능성이 없지 않아 보인다. 일부에선 ‘전쟁 불사’를 이야기하지만, 최근 전쟁으로 인한 우크라이나와 팔레스타인의 참상을 볼 때 어떻게든 극단적 무력 충돌은 막아야 한다는 게 남한 국민 다수의 의견. 전쟁은 인류가 오랜 시간 축적한 정신과 물질유산을 파괴하고, 어두운 공멸의 터널 속에 갇히는 일이다. 남한과 북한 지도자 모두가 잊지 말아야 한다. /홍성식(기획특집부장)

2024-10-16

포항의 옛 이름은 갯메기

토박이 어르신들은 포항의 옛 이름이 갯메기 또는 갯미기였다고 말씀하신다. 젊은 사람들이 들으면 의아해 하겠지만, 한자와 한글 표현에 포항 사투리가 한몫 한 것이다. 포항에서는 청어의 눈을 꿰어 말렸다 녹히기를 반복한 것을 ‘관목’이라고 불렀다가 ‘관메기’로, 다시 ‘과메기’로 정착된 사례가 있다. 포항 지명도 초기에는 ‘갯목’으로 불리었다고 한다. 문맹인이 많았던 시절에 발음하기 편한대로 옮겨지는 말의 특성상 갯목이 자연스럽게 ‘갯메기’ 또는 ‘갯미기’가 됐을 것으로 추정된다. 포항이라는 이름은 한자로 浦(개 포), 項(목 항)이라 쓴다. 포항하면 항구(港口)도시가 각인되어서인지 浦(개 포), 港(항구 항) 이라고 적는 사람들이 주변에 꽤 많다. 수정해 주면 왜 浦項이 됐는지가 궁금하다고들 한다. 浦(개 포), 項(목 항)을 우리말로 풀면 갯목 또는 받침 ㅅ이 탈락되어 개목이 된다. 국어사전에 ‘개’는 강이나 내에 바닷물이 드나드는 곳이고, ‘목’은 척추동물의 머리와 몸통을 연결하는 부위라고 설명한다. 고속도로로 진입하거나 빠져나가는 곳을 나들목이라 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나들목에 대하여 사전에서는 “도로의 교차부가 입체교차로 되어 있어, 직진하는 자동차나 좌우 회전하는 자동차가 뒤얽히는 일이 없이 원활하게 진행되도록 연결하는 시설로서 ‘인터체인지’를 우리말로 순화한 용어이다.”라고 적고 있다. 포항에는 ‘개’자가 들어간 명칭이 몇몇 남아 있다. 호미곶 구만1리의 솥발이개, 우물개, 큰개와 구만2리 까꾸리개, 부느리개 등의 지명이 대표적이다. 포항시사 제3권(제10편 마을유래와 설화 제1장 마을유래 제1절 남구지역 7. 대보면 601쪽)에는 구만리의 지명 ‘개’ 자에 대한 기록이 남아있다. ‘구만1리 솥발이개는 보내 북리 갯마을로서 마을지형이 솥 같아 정족(鼎足)으로도 부르고, 우물개는 우물 부근에 형성된 작은 마을로서 웅글개로도 칭하며, 큰개는 우물개 북쪽 해안마을로서 앞 바다에는 암초(暗礁)가 많고 풍랑이 심하여 해난사고가 잦다’라고 명기 해 놓고 있다. 또한 ‘구만2리 까꾸리개는 큰개 서편에 속하는 갯마을로서 이 지역에 풍파가 심하면 고기들, 특히 청어(靑魚)가 뭍으로 밀려나오는 경우가 허다하여 갈구리로 끌었다는 뜻에서 지어진 지명으로 구포(鉤浦)로도 부르고, 부느리개는 서남단 해안 작은 어촌으로서 영일만(迎日灣) 굽이진 바다에 달빛 자욱한 모습이 가관(可觀)이라 분월개(芬月-)로 불렀다 한다. 지금은 마을이 철거되고 방파제만 남아 있으며, 분월포(芬月浦) 로도 부른다’라고 정리해 놨다. 바닷가 모래땅에 살며 풍을 막고 피를 맑게 해 준다는 ‘갯방풍’, 갯가에 자리 잡고 있는 ‘갯마을’등에서의 접두사 ‘갯’도 갯목의 ‘갯’과 같은 의미이다. 포항시사 제1권(제2편 역사 제5장 근대태동기 4. 포항지명 탄생 425쪽)에는 포항지명 탄생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포항의 지명이 공식적으로 처음 등장한 것은 영조7년(1731) 포항창진(浦項倉鎭)을 설치하면서다. 창진이 설치된 마을 이름은 원래 영일현 북면 대흥리였으나 이를 포항리로 개칭하고, 창진의 이름을 포항창진으로 명명하였다’ ‘포항이란 향호(鄕號)는 포항의 대흥산을 배경으로 형성된 형산강의 하류이자 지류로서 선박의 접안이 가능한 칠성강의 중요지점을 나타내는 우리말 지명인 갯메기(갯미기, 표준말은 갯목)의 한자화(개울·개·물가 浦자와 목 項자)로 이루어졌다. 갯목은 구 역전교(1980년대 초에 복개함) 지역이며, ’(이하 생략). 왜 포항을 항구가 있는 지역 즉 포항(浦港)이라 쓰지 않고 포항(浦項)이라고 했는지를 알 수 있게 해 준다. 경상북도의 무역항 및 연안항으로 지정된 항구를 살펴보면, 무역항인 포항항(浦項港), 연안항인 울릉항(鬱陵港)·후포항(厚浦港)·강구항(江口港)·구룡포항(九龍浦港), 그리고 연안항으로 추진 중인 감포항(甘浦港)이 있다. 포항·후포·구룡포·감포의 지명에서 모두가 같은 개 포(浦) 자를 쓰고 있는 점은 특이하다. 강가 또는 수변지역이라는 뜻에서 각자 포(浦)를 사용했을 것으로 보인다. 박상구경주대 대학원 특임교수 우리나라 다른 곳에서도 포항이나 갯목 또는 개목이라는 지명을 쓰는 곳이 다수 있다. 안동에서는 오랜 세월 시가지를 흐르는 낙동강 물길을 관리하기 위해 제방을 쌓고 증축한 곳을 포항제(浦項堤)라 부르고, 강변 임청각 앞에는 ‘개목나루’또는‘포항나루’라 불리는 장소가 있다. 동해시 구미동에도 북평시장에서 전천과 동해바다가 합류하는 길목에 갯목항이 있다. 홍성군 은하면 장척리에도 포항마을(개목)이 있다. 그 외에도 함경남도 함주군 포항리, 함경남도 신포시 포항동(개목), 함경북도 청진시 포항동 등이 있다. 이러한 장소의 특징은 인근에 물이 있고 또 물이 나가는 길목에 마을이 있다는 특징이 있다. 포항·갯목·개목 등의 지명은 마을 형국이 바다나 개울 목 또는 물 목에 위치하여 붙여진 지명임을 알 수 있는 것이다. 위 사례가 보여주듯 이들 지역과 경북 제1도시 포항의 지명 유래는 매우 닮아 있다. 입지적 측면과 지명이 갖는 상징성 등 상당 부분에서 동일한 공통점이 발견되는 것이다. 최근 들어 각 지자체들은 옛 지명을 속속 복원하고 있다. 옛 이름이 놀뫼인 논산은 놀뫼 공소, 놀뫼 새마을금고 등과 같은 장소명을 쓰고 있고, 옛 지명이 서라벌인 경주는 서라벌대로, 서라벌 문화회관 등 자랑스럽게 이름을 명명했다. 의성지역에는 삼한시대 초기 조문국이라는 부족국가가 있던 곳이라 조문국 박물관을 개관했고, 김해는 옛 이름은 금관가야 를 되살려 김해가야 테마파크, 김해가야 축제 등 장소명을 부각시켜 나가고 있다. 포항에도 갯목 시티 역사관, 갯목 광장, 갯메기 대로, 갯메기 체육관 등 포항의 정체성이 반영된 장소명이 생기기를 기대해 본다.

2024-10-15

아름답지만 슬프고, 유쾌한 만큼 우울한

인류는 어쩌면 전쟁이라는 끔찍한 운명으로부터 영영 벗어나지 못할 모양이다.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사이의 전쟁은 끝날 줄 모르고 장기화하고, 중동에서도 또 새롭게 전쟁 발발의 소식이 들려오는 것을 보면 말이다. 우리는 과연 인류라는 역사 속에서 전쟁이라는 기록을 지워낼 수 있을까. 결국 전쟁으로 비롯된 상처와 트라우마 속에서 허우적거릴 수밖에 없는 것이 인간됨의 숙명이 아닐까 하는 절망적인 인식만 생기게 된다. 인간의 역사는 본래 아무 것도 없었던 시간의 한 축에 시작점을 두고, 그곳으로부터 시간을 한 방향으로 누적시켜가며 어딘가로 나아가는 방식으로 만들어졌다. 지금은 그 시작의 지점으로부터 무려 2024년이나 지나 있는 것이다. 수천 년이나 되는 인류의 역사는 그렇게 차츰 발전해가면서 어떤 방향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 인류의 역사가 진보나, 발전의 관점으로 쓰일 수밖에 없는 것은 바로 이 같은 누적된 시간이라는 개념의 탓도 있으리라. 사실 꼭 시간이 그런 형태를 취해야 할 이유가 있던 것은 아니었다. 시간이 한 쪽 방향으로 흘러간다는 것은 단지 우리의 인식일 뿐으로, 시계의 추가 좌우로 흔들리는 것처럼, 인간의 시간도 세대를 거치며 발전하기도 하고 퇴보하기도 하니 말이다. 그래도 몇천 년의 인류의 역사라고 하면, 왠지 인류의 한 사람으로서 어딘가의 방향을 향해 발전해나가는 것에 책임감을 가질 수밖에 없게 된다. 문득 여전히 일어나는 전쟁 소식에 가슴을 쥐어뜯게 되는 것은 나 역시 인류로서 그러한 책임감을 공유하고 있는 까닭이리라. 우리는 지난 수천 년의 역사로부터 아무 것도 배우지 못한 것일까. 전쟁의 상처에 대해 쓰고 그렸던 문학과 미술로 인류를 뒤덮은 전쟁의 소용돌이를 막는 것은 역부족이었던 것일까. 인류의 역사가 어딘가의 방향으로 흘러간다거나 심지어 ‘진화’해간다고 할 때, 우리는 과연 그 방향이 잘못된 것이라는 사실을 알아차릴 수 있을 것인가. 문학예술이 하등 쓸모가 없거나 심지어 인류의 ‘퇴화’를 조장하는 것처럼 보인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보여주는 것 자체를 무시하지 말아야 하는 까닭은 인류가 한 번 잘못된 방향으로 나아가게 된다면, 그것을 돌리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인간은 같은 잘못을 반복하고, 전쟁은 일어나기 마련이겠지만. 지금까지 수많은 작가들이 전쟁의 상처에 대해 문학 작품으로 다뤘지만, 커트 보니것(Kurt Vonnegut, Jr.·1922~2007)만큼 개인적인 전쟁의 경험을 글쓰기 속에 투영했던 작가는 또 없을 것이다. 그의 ‘제5도살장’은 독자로 하여금, 그가 겪은 전쟁의 트라우마 한 가운데로 이끌어 그 공황에 가까운 기억을 공유하도록 만든다. 이 소설은 제2차 세계대전에 미국 병사로 참전했다가 포로가 된 빌리 필그림이 포로로 잡혀 독일 작센 지역의 드레스덴 근방의 도살장에 수용되었다가, 연합군의 드레스덴 폭격에 휘말렸다가 살아돌아온 이후의 이야기를 다룬다. 이렇게 줄거리를 소개하면, 마치 일반적인 소설 같지만, 이 소설은 전쟁의 상처를 겪은 빌리의 파탄난 기억을 바탕으로 하는 만큼, 그가 겪은 시간들을 자유롭게 이동하면서 두서 없는 서술로 이어져있다. 전쟁 이후의, 일종의 외상후스트레스장애(PTSD)라고 해도 좋을 공황은 그를 환각과 실제, 기억과 진술 사이를 오가면서 완결된 서사를 만들어내지 못하게 만든다. 두서 없는 시간의 서사 구성, 그 사이에서 다만 번뜩이고 있는 위트가 바로 커트 보니것의 전쟁의 트라우마이자, 전쟁에 대해 비판하는 소설의 기술 그 자체이다. 그래서 그의 문장은 아름다운 만큼 슬프고, 번뜩이는 위트만큼이나 우울하다. 마치 일어나지 말아야 할 비극에 휘말려갈 수밖에 없는 무력한 자신을 보는 것처럼 말이다. 그럴 때 우리는 빌리가 그렇듯, 참담하게 “뭐 그런 거지”라고 말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홍익대 교수

2024-10-15

‘차등 전기요금제’, 공정·투명성이 생명

심충택 논설위원 지난주(8일) 대구에서 열린 ‘영남권 미래발전협의회’에서 박형준 부산시장은 “정부가 지역별 차등 전기요금제 적용 기준을 3분할(수도권·비수도권·제주)하는데 무게를 두고 있다”면서 “원전이 집중된 남부권이 연대해서 지역별로 세분화된 전기요금 차등제 도입을 중앙정부에 건의하자”고 제안했다. 박 시장이 언급한 ‘차등 전기요금제’는 2026년 시행되며, 발전소가 밀집한 지역의 전기요금을 낮춰주는 대신 발전소에서 멀어질수록 전기요금이 높아지는 제도다. 지난해 5월 ‘분산요금제 특별법’이 국회를 통과하면서 법적 근거가 마련됐다. 경북도처럼 발전소가 몰려 있는 지역은 전기요금이 싸지고, 수도권 전기요금은 상대적으로 비싸진다. 박 시장이 우려한 것처럼, 정부가 국토를 3분할해서 차등요금제를 시행할 경우 발전소가 있는 지역도 비수도권 내 ‘N분의 1’ 지역이 돼 차등요금제가 무색해 질 수 있다. 대전을 예로들면, 전력 자급률이 2.9%로 전국 17개 시·도 중 가장 낮은데도 비수도권에 포함돼 낮은 요금 혜택을 받게 된다. 지난해 기준 발전소가 있는 지역의 전력자급률은 경북도를 포함해 부산, 충남, 인천은 200%를 넘는다. 정부는 차등 전기요금제와 관련해 아직 결정된 게 아무것도 없다고 밝혔지만, 전력당국은 올들어 두 차례 가격결정 워킹그룹(실무협의체) 회의를 열어 전국을 수도권과 비수도권, 제주로 3분할 해 전기요금을 차등 부과하는 안을 논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전력자급률이 높은 지방정부들은 수도권, 영남권, 강원권, 충청권, 호남권 등 광역자치단체 단위로 차등요금제를 시행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문제는 차등요금제 시행에 부정적인 수도권 정치권력의 이기주의다. 22대 국회 의석수는 254개 전국 지역구 중 서울 48석, 경기 60석, 인천 14석으로 수도권이 122석을 차지하고 있다. 벌써 경기지역 언론들은 차등요금제가 도입되면 반도체 산업 육성 프로젝트 동력까지 약화시킬 수 있다며 정치권을 자극하고 있다. 특히 2026년은 지방선거가 실시되는 해이자, 대통령 선거를 1년 앞둔 시기다. 이처럼 민감한 시기에 정부가 과연 수도권 주민들을 상대로 전기요금을 더 내라고 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박형준 시장이 영남권 미래발전협의회에서 남부권 지방정부가 연대해서 차등 전기요금제 결정에 대처하자고 제의한 것도, 이러한 정치적 함수관계 때문이다. 영남권과 호남권 등 남부정치권이 한목소리를 낼 경우, 정부도 수도권에 일방적으로 유리한 결정을 내리지 못할 것이라는 점을 염두에 둔 것이다. 사실 수도권에 집중된 기업을 지방으로 분산시키는 데는 차등 전기요금제만큼 실효성이 있는 제도가 드물다. 지역별 전기료가 대폭 차이가 나게 되면 전기를 많이 사용하는 반도체나 이차전지, 데이터센터 관련 기업들이 이전을 검토할 수 있는 동인(動因)이 생긴다. 정부는 국토균형발전 차원에서라도 발전소를 많이 보유한 지방정부와 긴밀하게 협의해서 차등 전기요금제 적용기준을 투명하고 공정하게 결정하길 바란다.

2024-10-15

슈퍼문과 낭만감

우정구 논설위원 보름달은 완전함, 풍요로움 그리고 목표의 완성을 나타내는 성취의 상징으로 표현된다. 17일은 올해 가장 큰 보름달이 뜨는 슈퍼문을 볼 수 있는 날이다. 슈퍼문은 지구에서 가장 가까이 뜨는 달로 지구에서 가장 멀리 보이는 미니문 때보다 14% 정도 더 커 보인다고 한다. 달은 동서양을 불문하고 많은 설화를 안고 있다. 중국의 달 탐사선 ‘창어’는 중국 설화에 나오는 선녀의 이름에서 따왔다고 한다. 우리나라에서도 토끼가 계수나무 아래서 방아를 찧는 옥토끼 설화가 전해져 온다. 지구에서 가장 가까운 달에 대한 동경심과 신비로움이 나라마다 낭만이 있는 설화로 탄생한 것으로 짐작이 된다. 달은 지구를 도는 유일한 위성이다. 지구와의 거리는 38만km. 크기는 지구의 약 4분의 1 정도다. 인류의 달 탐사가 일찍 시작된 것도 지구와의 근접성 때문이다. 현재 달착륙에 성공한 나라는 미국, 러시아, 중국, 인도, 일본 등 5개국이다. 우리나라는 6∼7번째 달착륙 국가를 희망한다. 우리나라는 2022년 12월 다누리호를 달 상공 100km 지점으로 쏘아 올려 현재는 달 주변의 변화를 관찰하는 수준에 있다. 정부는 2030년초 달 착륙을 목표로 프로젝트를 주진 중이다. 약 6000억원의 예산이 든다고 한다. 달 착륙 등 달에 대한 과학적 탐사의 진행으로 일반 시민들 사이 달을 바라보며 소원을 비는 낭만적 정취가 많이 반감된 분위기다. 이번 17일에도 과학원 등은 슈퍼문이 뜨는 영상을 유튜브를 통해 송출한다고 한다. 과학적 관찰이 달의 신비로움을 벗겨 내면서 문화적 관습으로 이어져 오던 달과 함께 느꼈던 낭만감이 사라지는 것 같아 안타깝다. /우정구(논설위원)

2024-10-15

소통은 최고의 경영 ‘스킬’이다

정상철 미래혁신경영연구소 대표·경영학 박사 사람은 혈액이 막히면 생명을 유지하기 어렵다. 조직도 소통 흐름이 막혀 동맥경화 현상이 발생하면 기업 생명력은 약해진다. 소통은 상호 신뢰 선상에서 형성되고 신뢰는 사람관계에서 만들어진다. 직장생활을 오랫동안 한 사람도 사람 관계는 쉽지 않다. 특히, 주제를 놓고 대화 할 때 본의와 다르게 전달되거나 공감대 형성이 낮은 경우가 많다. 조직과 사회의 어떤 위치가 되든 그 역할을 잘 하는 사람의 비기(秘器)는 소통이 근간이 된다. 한 사람의 리더십과 소통은 태도와 대화 방법에 따라 결과는 크게 달라진다. 소통은 개인이나 집단 간의 의사나 정보를 주고 받는 것을 의미한다. 언어, 제스처, 표정, 문화적 요소 등을 통해 이루어질 수 있으며, 상호간의 이해와 의사결정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소통은 정보를 전달하고 이해하는 데 필수 요소이다. 이를 통해 문제를 해결하고 의사결정을 내릴 수 있다. 소통은 개인간의 신뢰와 이해를 바탕으로 건강한 관계를 유지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조직 내에서 원활한 소통은 협력과 협업을 촉진하며, 혁신과 창의적인 아이디어의 발상을 돕는다. 리더의 성공적인 소통을 위해서는 첫째, 미래를 제시하고 동기부여 할 수 있도록 한다. 구성원의 성장과 함께 하는 소통은 맛이 난다. 둘째, 일이 잘 되게 하는 긍정의 대화다. 상대를 읽고 강점은 살려주고 부족한 것은 채워주는 배려가 필요하다. 셋째, 일을 해결하는 통찰의 대화법이다. 목표를 주고 달성하는 과정에서 기존의 지식과 경험을 뛰어넘는 새로운 시각으로 상황을 읽는 관찰력과 문제해결 통찰력의 대화가 중요하다. 넷째, 명확하고 일관된 말이다. 리더의 말은 구성원이 이해 못하거나 목표와 배경, 일의 가치 등 일관성 있게 해야한다. 다섯째, 신뢰와 솔선이다. 상대방의 의견에 경청하고 진정성의 대화와 난해한 일들은 직접 풀어주는 것이다. 필자가 여러 중소기업을 컨설팅 할 때 CEO와 본부장 등 경영층과 직책 간부나 일반 직원 간에 의외로 소통이 잘 안 되는 경우를 많이 볼 수 있다. CEO가 생산 현장을 방문할 때 담배 꽁초가 보이면 잔소리를 한다. 그러면 직원들은 CEO가 다가오면 피하게 된다. 조직의 수장과 중간 간부, 직원 간 기본적인 소통이 안 되면 아교가 생기고 신뢰는 무너져 시너지 창출은 불가능하다. 소통과 대화 그리고 코칭 방법을 제대로 하도록 시간과 공을 들인다. 평소 익숙한 습관에 변화를 주는 것이기에 쉽지 않은 경우도 많다. 경영층의 현장 방문 시 ‘대화의 장, 소통의 장, 코칭의 장’을 잘 해내지 못하면 동맥경화 현상이 생겨 기업 심장은 멈추게 되는 것이다. 21세기 관리의 시대는 끝났다. 이제는 관계의 시대이다. 기업에서 직원 간 신뢰를 얻고 소통을 원활히 하기 위해 사람과의 관계가 우선이고 소통의 시작이다. 사람은 관계 속에 삶을 살아가는 속성이 있고 그 관계 속에 신뢰가 형성된다. 신뢰가 형성되면 참된 소통은 시작되며, 건강한 조직, 시너지를 창출하는 경쟁력 있는 기업으로 성장한다.

2024-10-15

서예 꿈나무들의 육성과 희망

강성태 시조시인·서예가 하늘 높푸르고 흰구름 둥실 떠가니 억새가 손짓하며 반긴다. 정갈한 햇살에 마음의 습기마저 말려지는 듯한 10월, 과연 문화의 달 답게 시월은 연일 행사가 한창이다. 체육대회는 물론이고 전시·공연·음악회·백일장·기념·체험·버스킹·축제 등의 온갖 행사가 줄을 잇고 있다. 눈길 닿고 발길 머무는 곳마다 음악이나 함성소리가 들리고 문화시설마다 온갖 행사로 광고나 홍보물이 빼곡하다. 그만큼 날씨도 좋고 사람들이 북적대니 밝고 활기차 보인다. 그 중에서 특히 눈길이 가는 곳은 묵향이 피어나는 학생들의 서예작품이다. 삐뚤삐뚤 서툴고 미숙한 듯 투박하지만, 그래서 더 소박하고 순수하며 자연스럽게 다가오는 점획들이 정겹기만 하다. 마치 누구나 성장과정을 거쳐왔듯이 자신들이 아득한 학생시절로 되돌아가 티없는 순박함으로 무작정 붓 가는 데로 쓰고 그린 붓질처럼 여겨져 한결 친근하게 느껴진다. 철없던 시절의 흔적이랄까, 시간의 단면 같은 아득함이랄까, 박제된 그리움마냥 순진무구한 학생들의 작품에서 묻어나는 먹내음이 진하고 무던하기만 하다. 이러한 전시회는 최근 포항문화예술회관에서 열린 ‘충효학생서예대전’의 입상 작품전이다. 포항서예가협회가 주최·주관한 충효학생서예대전은 포항지역에서 가장 오래된, 타 시도에서는 보기 드물게 서예 꿈나무들의 발굴과 육성, 장려를 위해 지난 1992년부터 한번도 거른 적 없이 매년 개최해온 학생 서예 공모전이다. 갈수록 응모작품과 참가학생이 줄어드는 아쉬움이 있지만, 서예학원과 학교 출강 지도강사들의 꾸준한 노력으로 올해 33회째 명맥을 이으며 성황리에 열렸다. 스마트폰과 컴퓨터가 일상화되는 첨단기기의 정보화 사회에서 옛 선인들의 정신과 기예를 되살려 전통문화의 계승발전과 올바른 교육문화 형성에 보탬을 주는 서예 꿈나무 발굴·육성은 참으로 바람직하며 의미 있는 일로 여겨진다. 현대를 살아갈수록 자칫 소홀해지기 쉽고 등한시돼 버릴 수 있는 우리 고유의 전통문화예술이, 이와 같은 서예대회를 통해 명맥을 잇고 충효사상을 고취하는 계기가 된다면 전통의 가치제고와 정신문화 고양에도 큰 자양분이 될 것이다. 그리고 전통문화 계승과 예술적 감성을 북돋우는 학생서예대회는, 미래사회를 이끌어갈 학생들의 글로벌 정신과 다양한 콘텐츠 창작품을 예술작품으로 만들어가는 비전을 제시하는데 도움을 주기도 할 것이다. 동양 특유의 은은한 멋과 선비정신이 우러나는 서예를 평소 갈고 닦음으로써 정직한 마음과 바른 행실을 습관화할 수 있음은 물론, 청소년들의 정서순화와 건전한 인격형성에도 적잖은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다. 또한 부족한 예산과 출품 수 감소 등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매년 열리고 있는 충효학생서예대전은, 지역 서예계 꿈나무들의 발표 기회와 희망의 좋은 본보기가 되고, 후진양성과 서예인구의 저변확대에 큰 몫을 차지할 것으로 보여진다. 이러한 측면에서 학교 공부와 학원 수업에 쫓기면서도 틈틈이 갈고 닦으며 서예솜씨를 마음껏 발휘해 입상한 학생들에게 아낌없는 격려와 찬사를 보낸다. 갈수록 인구와 학생수가 감소하지만, 학생들에게 전통문화의 계승을 일깨우고 예술적 탐색을 통한 미래 인재 양성에 힘써 나가는 충효학생서예대회가 학부모들의 많은 관심과 지자체의 육성·지원으로 활성화되고 지속되기를 기대해본다.

2024-10-15

다시 마약 청정국이 되기를

김규인 수필가 검찰이 마약과의 전쟁을 선포하였는데 마약 복용자는 더 늘어난다. 예산도 늘리고 단속도 열심히 하는데도 그렇다. 마약은 수시로 형태를 바꾸며 사람들에게 다가간다. 마약의 유통 경로는 다양해지고 구석구석 스며든다. 누구나 원하면 인터넷에서 몇 번의 클릭만으로 마약을 살 수 있는 상태가 되었다. 유흥 업소를 중심으로 집단 투약이 늘어나고 이를 단속해야 할 경찰관마저 마약과 연류되어 사망하는 사례가 발생했다. 젊은이들은 물론이고 가정주부에서 어린 학생들까지 마약을 투약한다. 학생들은 단순한 호기심에서 일회성으로 투약하기도 하지만, 심지어 같은 또래의 학생들을 대상으로 마약을 유통하는 일까지 빈번하게 발생했다. 마약은 젊은 층을 중심으로 급속도로 확산한다. 공원이나 주택가, 지하철역에 이르기까지 어디에나 소비자를 기다리는 마약은 숨겨져 있다. 이제 마약은 보통 사람들의 일상이 된 느낌마저 든다. 마약으로 인한 사고도 점점 늘어나는 추세다. 마약을 한 상태에서 자동차를 몰다가 사고를 내거나 시내에서 비틀거리며 걷는 모습은 충격적이었다. 지금 우리 사회가 마약으로 휘청거리는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 같다. 우리 사회에서 마약을 뿌리 뽑을 수는 없는 것인가. 한때 마약 청정국이라 불리던 때가 있었는데 지금은 꿈같은 이야기다. 어디서 잘못된 것일까. 왜 안 좋은 방향으로 흐르는 걸까. 시민들의 염려에도 불구하고 상황은 자꾸만 모두가 걱정하는 방향으로 흐른다. 우리가 이것을 막을 수 없을까. 인터넷과 통신의 발달은 더 이상 지구가 여러 나라로 나누어진 게 아니라 하나의 거대한 소비국처럼 되었다. 온라인의 활성화로 시간마저 실시간으로 소통할 수 있다. 특히 세계에서 가장 빠른 인터넷 선진국이요 부유한 한국은 모든 산물이 모여드는 장소이기도 하다. 마약도 예외는 아니다. 우리 사회에서 마약 소비가 급속히 늘어난다. 마약의 유통은 다양한 형태로 만들어 세관의 눈을 피해 들어온다. 각종 과자나 음식의 모양을 한 마약은 손쉽게 소비자의 손에 들어간다. 공산품에 숨겨 들여오거나 배를 통한 밀수도 예외는 아니다. 수입하는 모든 물품을 조사하기는 힘이 들지만 방법을 찾아야 한다. 우리나라의 늘어난 경제 규모로 시간이 걸리더라도 해야 한다. 손을 놓고 있을 수는 없지 않은가. 정부는 마약에 대해 외국과의 공조와 수입하는 물품에 대한 효율적인 검사와 마약 유통 정보 수집에 인력을 늘려야 한다. 마약 생산지에 대한 조사와 마약 유통조직의 흐름을 파악하고 국내 유통을 근절해야 한다. 아울러 마약 공급자와 투약자에 대한 엄한 처벌과 일원화된 관리 체계가 필요하다. 가족 구성원 중 한 사람이 마약을 할 때 가족은 무너진다. 사회도 크게 다르지 않다. 사회의 구성원들이 이러한 고통에서 벗어날 때 나라의 미래도 이야기할 수 있다. 법을 다시 정비하고 단속을 강화하며 정보교류를 활성화하여 다시 마약 청정국의 지위를 회복하자. 건전한 정신이 우리 사회에 흘러넘쳐야 한다. 젊은이들은 내일을 개척하기에도 바쁘다. 우리는 마약에서 벗어나 인간의 존엄성을 지키며 살아야 한다.

2024-10-14

읽고 쓰는 즐거움

최병구 경상국립대 교수 고등학교 재학시절, 나는 평범한 학생이었다. 공부는 성실히 했지만, 특별히 잘하지도, 못하지도 않는 중상위권의 학생이었다. 아직 체벌이 있던 시대에 특별히 선생님께 매 맞을 일을 하지는 않았지만, 선을 넘는 선생님의 폭력에 속으로만 분노하던 경험도 있다. 그 시절 소위 노는 아이 몇 명을 제외하고 인문계 고등학교 대부분 학생은 대학입시를 위한 반복되는 일상을 살았다. 돌이켜보면 많은 학생이 입시를 위한 폭력적인 학교 교육을 묵묵히 견디며, 그 속에서 각자 즐거움을 찾으며 시간을 보냈던 것 같다. 아직도 기억이 선명한 고등학교 시절의 위기는 2학년이 되자 찾아왔다. 그럭저럭 고등학교 1년이 지나고 2학년이 되면서 똑같은 교과서로 정답 찾기만 강요하는 학교의 분위기를 견디기 어려웠던 까닭이다. 내가 닭장 속의 닭처럼 느껴졌다. 그러던 차, 앞자리에 앉은 친구의 책상에 놓여 있는 두꺼운 책 한 권이 눈에 들어왔다. 그 책은 칸트의 ‘순수이성비판’이었다. 그 친구와 책과 학교 이야기를 하며 금방 친해질 수 있었다. 친구는 나에게 똑같은 책으로 공부하며 똑같은 생각을 하게 만드는 일상을 다르게 바라보는 방법을 알려주었다. 다른 독서가 다른 생각을 만든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이다. 2020년 코로나바이러스가 전 세계를 휩쓸고 간 이후 대학생의 문해력 문제가 언론을 통해 꾸준히 보도되고 있다. 주로 ‘심심한 사과’‘사흘’ 등과 같은 한자어를 알지 못하는 대학생의 어휘력에 대한 비판이다. 또한 스마트 폰에 익숙한 학생들이 책 한 권을 제대로 읽기 어려운 경우를 자주 목격하게 된다. 하지만 초등학교 시절부터 스마트 폰과 함께 살아온 대학생의 문해력 저하가 학생들의 잘못이라고 할 수 있을까? 무엇보다 현재는 ‘챗 GPT’가 상징하는 AI의 시대가 아닌가! AI는 긴 문서의 요약 정리나 독후감 쓰기 등의 일을 해준다. 아직 정확하지 않은 부분이 있지만 성능은 시간이 지나면 좋아질 것이다. 문제는 AI가 대학 교육에 본격적으로 도입되며 긴 글을 읽고 요약하는 고전적인 교육 방법의 무용론이 고개를 들고 있다는 사실이다. AI를 사용하지 말자는 말이 아니라, AI를 적절히 쓰기 위해서 꼭 필요한 일은 무엇을 읽고 어떻게 다른 생각을 할지를 고민하는 과정이다. 다른 삶이 가능하다는 인식을 하기 위해서는 다른 삶을 상상할 수 있어야 한다. 다른 삶을 상상하고 일상으로 가져오는 과정을 쉽게 일반화하기는 어렵지만, 이를 훈련하기 위한 좋은 방법이 읽고 쓰는 행위라는 사실은 알고 있다. 가령 ‘심심한 사과’의 뜻을 몰라도 당장 내 일상이 불편하지는 않지만, ‘심심(深深)’이란 어휘를 알면 그만큼 세상을 다르게 볼 수 있다. 다른 세상을 알고 나의 삶을 변화할지 아니면 익숙한 세계에 남아 있을 것인지, 선택은 각자의 몫이다. AI가 만들 미래에 대한 논의가 활발하다. 지금과는 전혀 다른 삶의 모습에 흥분과 걱정이 교차한다. 그렇지만 다른 삶은 테크놀로지가 만드는 것이 아니라 읽고 쓰는 즐거움을 이해하는 사람이 만드는 것이다.

2024-10-14

한강이 내게 보내준 선물

방민호 서울대 교수·국문과 10일 밤에 멀리 스웨덴에서 들려온 소식은 한국문학의 의미를 단번에 바꾸어 버렸다. 한강의 수상 소식은 그 한 사람 작가의 영예가 아니었다. 그것이 한국문학 전체의 밝은 빛임을 누구나 깨달을 수 있었을 것이다. 첫날, 다음날에 사람들은 오로지 기쁨뿐이었다고 생각된다. 이틀째 되는 날 ‘조선일보’1면은 “‘한강 신드롬’ 대한민국이 종일 웃었다”였다. 한강의 노벨문학상이 한국문학만의 기쁨이 아니었다는 인식을 아주 명징하게 표현한 것이었다. 언론사의 기자분들, 그리고 문학인들과 전화로, 문자로, 직접 만나 이야기를 나누면서, 하룻새 달라진 한국문학의 색조를 실감할 수 있었다. 나부터 벌써 다음 날 있었던 ‘한국현대문학사’ 수업을, 한강의 ‘채식주의자’와 노벨문학상으로 ‘긴급 편성’을 해야 했다. 출생률 저하로 한국어 인구가 바싹 줄어들 것이라는 암울한 전망에 짓눌려온 한국문학을 앞으로 계속해서 공부해도 좋다는 푸른 신호를 받아든 것 같았다. 어두운 복도에 형광등이 일제히 켜진 것 같은 느낌이라고도 할 수 있었다. 반가운 소식을 받아들고, 그러나 동시에 나는 어떤 착잡한 심경에도 사로잡힌 것이었다. 기쁘지 않아서가 아니요, 너무나 기쁜 가운데 심중에 스며드는 한 가닥 세차지도 않은 쓸쓸한 바람은 무엇을 말하는 것이었을까? 과연 나의 문학은 어떻게 되고 있는 것일까? 어디로 가고 있는 것일까? 결코 부러워 해서도, 시샘해서도 아닌, 부드러운 회색빛의 마음의 어스름은 나 자신이 걸어온 문학의 길을 찬찬히 한번 되돌아보라고 주문하고 있었다. 명함을 가진 사람의 ‘논평’이 필요한 라디오나 티비에서 나를 부르기도 했고, 즐거운 마음으로 의미 부여하기도 했다. 해남에서는 카프카와 관련해서도 한강 이야기를 했고, 불광동에서도 작가 이호철 선생의 행로를 말하며 다시 노벨문학상 이야기를 했다. 김유정문학촌의 발표를 앞두고도 한강의 ‘채식주의’는 김유정과 크로포트킨의 ‘사랑의 투쟁’과도 비교될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한강 문학의 앞뒤 사정을 생각해 보고, 그것이 한국현대문학의 큰 나무의 소산일 수 있음을 명료하게 인식하면서도, 나는 계속해서, 나의 문학은?, 하고 자문하고 있었다. 문학인들은 한강으로 인해 자신의 길이, 선택이 나쁜 것은 아니었음을 다시 한번, 새삼스럽게 납득할 수 있었다. 나 자신이 바로 그러했다. 하지만 그러면서 나는 나 자신에게 계속해서 물었다. 잘은 보이지 않은 한 줄기 희미한 생각의 빛을 쫓아 시선을 먼 앞으로 던져 보고 있었다. 한강이 내게 준 선물은 바로 이 질문 그것에 있었다. 나는 짧은 며칠 사이에 지난 십 년 동안 생각해 본 것보다 더 많이 나 자신의 문학에 관해 생각해 볼 수 있었다. 내게 있어 시는 무엇이었나? 소설은 무엇이었나? 어떤 궁극의 질문을 가지고 있었나? 얼마나 좋은 일인가? 급한 걸음을 멈추고, 가만히 서서 생각해 볼 수 있음은. 걸어온 길과 남은 길을 ‘측량’할 수 있음은. 사위가 고요하고도 기쁜 날들이다.

2024-10-14

노벨문학상 수상자의 인간적 태도

홍성식 (기획특집부장) 1964년. 스웨덴 한림원은 그해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실존주의 철학자이자 소설가인 장 폴 사르트르(1905∼1980)를 지목한다. 노벨문학상이 가지는 위상이 지금보다 높을 때였다. 수상이 개인은 물론 국가의 영광으로까지 여겨지던 시절. 헌데, 흥미로운 일이 발생한다. 사르트르가 스웨덴 한림원으로 편지를 보낸 것이다. 이런 내용이었다. ‘나는 오래전부터 지금까지 나를 이해하고,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과 조그만 섬에서 살아왔을 뿐이다. 그게 상을 받을 일은 아니며, 노벨문학상 수상 여부가 문학의 가치를 판정하는 것 또한 아니다.’ 60년 전 사르트르의 태도는 소설가와 시인을 포함한 전 세계 작가 모두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상을 받으려고 작품을 쓰는 소설가와 시인은 세상에 없다. 문학은 그 자체로 이미 하나의 우주이고, 숭고한 의미를 지니는 것이므로. 만약 상에 욕심내는 작가가 있다면 그는 재론의 여지없는 삼류인간일 터. “노벨문학상 수상 여부가 문학의 가치를 판정하는 건 아니다”라는 언술은 수학 문제처럼 명료한 답이 없는 문학에 몸을 던진 이들의 현재를 위로하고, 미래를 추동한다. 사실 소설은 노벨문학상이 생기기 전부터 있었고, 노벨문학상이 사라진다 해도 존재할 것이 자명하다. 당연한 말이지만 작가에게 중요한 건 ‘상’이 아니라 지향해온 문학이다. 올해 노벨문학상을 받은 소설가 한강은 “전쟁으로 인해 사람들이 죽어가는 상황에서 수상 축하잔치를 벌이고 싶지 않다”고 했다. 한강은 국가폭력에 의해 희생된 이들을 문학적으로 위무하며 주목받은 작가다. 그가 보여주는 ‘인간적 태도’가 노벨문학상 수상보다 더 귀해 보인다. /홍성식(기획특집부장)

2024-10-14

축제의 성공은 인원수가 아닌 진정성

심한식 경북부 지난 10일부터 12일까지 청도야외공연장 일원에서 개최된 2024 청도반시축제 청도 세계 코미디 아트 페스티벌이 지방 축제가 나갈 방향의 길잡이 역할을 했다. 모든 지역에서 축제의 성공을 방문객의 수로 판단하고 있지만, 축제의 진정한 성공은 준비과정과 현장의 분위기, 지역의 참여도 등이 고려되어야 한다고 본다. 축제 참가 방문객의 수는 누구도 정확하게 알 수 없고 대부분 부풀린 숫자가 발표되는 관례를 생각하면 숫자보다는 축제를 맞이하는 진정성을 우선하는 것이 타당성이 있을 것이다. 많은 축제에서 대부분 방문객이 자치단체장이 참석하는 개막식과 가수들이 출연하는 음악회에 집중된다는 점을 고려하면 진정한 축제의 성공은 지속으로 사람들로 붐벼야 할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축제의 특색을 살리며 지루하지 않게 이어지는 프로그램들이 꼭 필요하다. 청도반시축제와 청도 세계 코미디 아트 페스티벌은 다양하게, 끊임없이 연결된 프로그램으로 시간을 따지지 않고 방문객으로 문전성시를 이루고 여기에다 준비과정과 지역의 참여도, 방문객을 위한 배려 등 모든 면에서 지방 축제가 모범으로 삼아야 할 사례들이 넘쳤다. 방문객들이 손에 잡을 수 있는 리후렛은 축제를 자세하게 안내하고 곳곳에 안내도를 설치해 방문객의 동선을 분리하는 등 세심한 배려가 다가왔다. 물론 제11회 경상북도 평생학습 박람회가 함께 진행돼 더 많은 방문객이 찾았다 해도 축제장의 곳곳에는 가족 단위의 방문객이 즐기고 입을 만족하게 할 먹거리가 넘치며 어린아이들의 웃음소리로 축제의 성공을 알려주었다. 많은 축제장이 어른 위주의 즐길 거리와 음악회 중심, 특히 축제의 주제를 벗어나는 프로그램으로 시간을 보내는 경우와 비교해 확실한 차별성을 보였다. 청도군은 군민운동장을 주차장으로 변모시키고 주변의 곳곳을 주차장으로 활용해 축제를 찾는 방문객을 배려하고 지역의 많은 기관이 봉사자로 나서 손님들을 맞았다. 특히 민의의 대의기관이라는 청도군의회도 축제장에 자리를 마련해 적극적으로 동참하며 지역민의 목소리를 경청하기도 하는 등 협동의 아름다운 모습을 보였다. 지역의 축제에는 많은 예산이 투입된다. 그러함에도 지역민이 즐기지 못하고 때가 돼 개최하는 행사라면 아무런 의미가 없다. 청도반시축제와 같이 축제의 주제를 잘 살리며 지역민과 외지의 방문객에게 다가서는 축제를 주변에서 자주 보기를 기대한다. /shs1127@kbmaeil.com

2024-10-14

‘애비’ 말은 안 듣고, ‘내비’ 말만 듣는 시대

이상규 경북대 명예교수 전 국립국어원장 추석날 가족 나들이 나서면서 아버지가 아들에게 던진 말이다. 점심 무렵 “다양하고 맛있는 뷔페는, 아이리스 뷔페”에서 베란다 ‘섀시’가 ‘샷시’로 ‘바이닐봉투’가 ‘비닐봉투’로 ‘프로페인가스’가 ‘프로판가스’로 ‘뷰테인가스’가 ‘부탄가스’로 표기된다. 뭐가 맞는지 도무지 헷갈린다. 생활 속에 침범해 들어온 외국어들이 넘쳐난다. 외국어, 외래어의 남용, 신조어와 축약어의 범람, 두문자만 이어 쓰는 등 올바른 소통의 장애는 셀 수 없이 많다. 우리말이 있는데도 외국어음차표기나 외래어를 사용하는 분위기는 이미 우리사회에 만연되어 있다. “파티, 톱, 라이프, 라인, 바캉스, 스팀, 레스토랑, 블라우스”는 일상화된 사례다. 우리말과 외국어음차표기가 마구 뒤섞인 “게임광, 깜짝쇼, 디지털화, 치킨집, 레게 음악, 휴대폰, 광케이블, 비피더스 유산균, 빵나라”도 있다. 외래어처럼 표기한 “예그리나, 타미나, 더존 전자 믹스, 조아 약국, 비치나, 유니나, 푸르미, 예스런, 맛나니, 새우깡, 조아라, 푸르지오” 등은 국적 불명의 언어로 변질된 예이다. 전문용어로 사용되는 경제, 패션, 컴퓨터, 공학, 과학 계열의 언어들은 일반 국민이 충분히 소통될 수 있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조선시대 한자어처럼 계급과 지식의 범주에 따른 언어 차등화가 심각한 수준이다. 필자가 방언을 강조하는 이유는 바로 우리 모국어의 조어능력을 확장시켜 새로운 문물을 우리말로 잘 다듬어내어 소통하는 능력을 키우기 위해 여러 지역에 흩어져 있는 방언들을 조금 더 미화시킨 문학용어로서 장려하기 위한 것이었다. 언어의 다양성을 위한 전략이었다. 나의 방언에 대한 인식은 방언을 단순히 표준어화하자는 것이 아니다. 방언과 표준어의 경계를 다소 느슨하게 하여 순수한 모국어의 운용의 폭을 넓혀줌으로서 고유어 조어능력을 키워내자는 의도이다. 표준어 한가지로만 소통하라면서 강제하던 국가어문정책이 쏟아져 나온 외국어, 외래어, 약어, 두문자 쓰기 등 공공언어의 소통 체계가 몰락하는 지경은 왜 방관하고 있는가? 경북 성주 출신의 고 문인수 시인의 “옛집은 사투리다”라는 시를 보자. “엉퍼드기 엉퍼드키 울어뿔고 싶다./웅굴을 뻐져나온 동캉맨치로 그래/아부지예, 어무이예, 부르미/배껕마당부터 우신에 모지리 적수고 싶다//우묵하이 짓은 풀대 풀 떼 새로 똥근 것들, 장꼬방이 비고/통시 여불데기 담우락엔 헌 수굼포 한 잘리 서 있다.//먼 산 산날망에 먹구름 걸려서/올라카나 말라카나 우쨀라카노 비,/매불대 씹은 매분 가심 묽쿠고 싶다.” 시인은 방언을 오래된 집, 곧 오래된 사유와 지식으로 지어진 집이라고 규정하고 있다. 비를 기다리는 농민의 심정으로 오래 묵은 방언으로 지은 한 채의 존재의 집이다. ‘엉퍼드기(웅덩이 물을 푸듯)’, ‘모지리(모조리)’, ‘수굼포(삽)’, ‘산날망(산꼭대기)’, ‘매불 때(여뀟대)’, ‘매분(매운)’ 등 경상도 방언을 하나하나 예술적 심성으로 담아내고 있다. 그러한 국어정책의 일환으로 국립국어원에서 한국시인협회에 지원하여 토박이말 시집 “니 언제 시건들래?”라는 시집이 만들어졌다. 이 시집에 실린 안동 출신 송종규 시인의 ‘고등어’라는 작품에 보석처럼 박혀 있는 방언들을 살펴보자. “다무 한 번의 태무심에 허를 찔렸니더 다무 한 번의 신뢰가 결국 지 모가지 줄을 잡아 땡겼니더 뭐 별꺼 있니껴? 이녁의 손가락 끄티에서 맛있는 밥풀떼기와 향기로운 불빛이 번들거리던 그맘때, 하마 게임은 끝났니더, 지는 젔니데이,//오늘 내 삶의 소용돌이와 먼 길의 고저장단 전부를/식탁 위에 올려놓는다 솟구치는,/흰 글씨들/어디론가 나도 솟구쳤다//내가 나를 기록할 수 없는 순간이 첫눈처럼, 닥쳐왔다/저녁의 불빛이 등을 구불이고 태연하게/입을 닦는다”. 그냥 슬쩍 읽고 넘어갈 작품이 아니다. 시골 안동 가람의 진한 말투는 깊은 심해에 유유히 헤엄치는 싱싱한 한 마리의 고등어, 그 고등어는 과거 안동의 처녀 송종규였다. 이녁(당신, 안동방언에서 2인칭 대명사)이 놓은 불빛 낚시에 코가 매였을 때 이미 잔치는 끝이 났다. 게임은 끝난 것이다. 현실의 밥상을 차리고 그 차린 밥상은 내 삶의 소용돌이와 고저장단으로 차린 흰 글씨들 고등어가 낚시에 낚여 올라갔듯이 “어디론가 나도 솟구쳤다”. 이 무렵 시인 송종규의 삶은 내가 나를 기록할 수 없는 순간의 첫눈처럼 은빛 반짝이는 생선 고등어였을 뿐이다. 고등어를 소재로 열여덟 살 안동 소녀의 꿈과 무너진 스토리는 문인수 시인의 “옛집은 사투리다”와 다를 바 없는 오래된 추억을 자아올리고 있다. 방언은 변두리의 무력한 언어가 아니라 이토록 가열찬 언어의 찬가이다.

2024-10-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