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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이익을 따지지 않는 사랑을 지켜나갈 때

조현일 경산시장 우리는 멋있는 삶, 행복한 삶을 살길 원한다. 남에게 베풀고, 용서의 용기를 실천해 칭찬받고 기억되는 삶이 되길 기대하며 남이 먼저 나에게 다가와 손을 내밀길 바란다. 결단코 쉽지 않은 이러한 삶의 바탕에는 ‘이익을 따지지 않는 사랑’이 존재한다. 먼저 손을 내밀 수 있는 용기도 여기에서 출발한다. 세상은 사랑을 크게 3가지로 분류했다. 남녀 간의 사랑인 ‘에로스’와 부모가 자녀에게 혹은 자녀가 부모에게 느끼는 가족의 사랑, 형제애 등을 지칭하는 ‘스토로게’, 무조건으로 베푸는, 종교적인 색채가 짙은 ‘아가페’ 등으로 구분하며 아가페 사랑을 최고의 사랑으로 손꼽고 있다. 그러나 현실은 너무나 달리진 현상을 보여주고 있어 이러한 사랑들을 이야기하는 것이 시대착오적인 현상처럼 보이기도 한다. 부모가 자식을, 자식이 부모를 상하게 하거나 죽음에 이르게 하는 일들이 곳곳에서 일어나는 세상을 우린 살고 있다. 이성 간의 사랑도 물질이 앞서는 변질한 모습으로 변했고 헌신적인 아가페 사랑은 기대하기 어려워졌고 국제적으로는 이익을 위해 전쟁을 불사하고 남의 인권은 안중에도 없다. 그러함에도 우리는 머리에 떠오르고 가슴이 느끼는 사랑의 모습을 지켜가야 한다. 나와 너뿐만 아닌 우리가 살아가는 현재를 지켜내고 후손에게 선한 영향력을 전해 미풍양속(美風良俗)이라도 존재할 수 있도록 자치단체들이 사랑과 나눔에 앞장서야 한다. 경산시는 지난 2016년부터 ‘기부데이 및 사랑 나눔 한마당 축제’를 진행해 사랑을 실천하고 있다. 지난 26일에도 2024년도 꽃피다 기부데이 한마당 축제를 개최해 착한 경산인을 표창하고 경산시청 착한 일터 모금액 5000만 원 전달, 기부타임, 문화공연 등으로 나눔과 기부 문화확산을 위한 뜻깊은 시간을 가졌다. 2022년 기부데이에서는 6027만 원, 2023년 기부데이는 8819만 원의 모금하는 등 해마다 모금액이 늘어나는 지역 사랑에 앞장서고 있다. 기부금은 위기가정 생계비와 의료비 지원, 소규모 복지기관 지원사업, 월동난방비, 명절 위문금으로 기부되고 아동·청소년, 장애인, 노인, 여성·다문화 가정을 위해 사용되고 있다. 경산시는 사랑의 열매 희망 나눔 캠페인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다. 2023년 11억3000만 원 목표에 13억1527만 원을 모금해 116도의 사랑의 온도를, 2024년 12억2000만 원 목표에 14억6450만 원을 모금해 사랑의 온도 120도를 기록해 2025년도 사랑 온도도 기대하게 하고 있다. 안전지원과 회복지원, 돌봄 지원으로 안전한 일상 회복을 위해 사랑의 열매가 추진한 ‘일상 회복 착!착!착!’나눔 캠페인에서도 경북 1위를 기록하는 열정을 보였다. 경산시의 또 다른 사랑의 실천은 착한 나눔에서 찾을 수 있다. 시의 착한 나눔은 2009년 착한 가게 1호가 탄생한 이후 지역 경기의 부침에도 나눔을 실천하는 손길이 끊이지 않아 현재는 착한 가게 325곳, 착한 일터 32곳이 사랑의 나눔을 실천하고 있다. 특히 1억 이상 고액기부의 아너소사이어티도 13명을 배출하는 등 착한 나눔 도시로 점점 진행되고 있다. 착한 가게는 중소규모의 자영업에 종사하며 매출액의 일정부분을 정기적으로 기부에 동참하고 착한 일터는 직장인의 나눔 프로그램이다. 경산시가 착한 나눔 도시로 뿌듯하게 생각하는 것은 고사리손에서 나온 동전을 모은 저금통으로 우리의 걱정과 달리 이웃의 아픔을 새로운 새싹들이 생각하며 실천하는 것을 보면서 희망을 품는다. 또 정기적인 기부활동뿐만 아니라 시시때때로 도움의 손길을 펴는 천사들이 많다. 이처럼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이웃을 먼저 생각하는 시민과 기업, 단체들이 십시일반으로 모아준 소중한 사랑이 주변의 소외된 이웃들이 힘찬 발걸음을 내디딜 수 있는 희망이 되도록 뒷받침하고 행정적으로 도울 방법을 찾고자 노력하고 있다. 한 번쯤이라도 이익을 따지지 않는 사랑을 실천할 수 있다면 우리의 내일은 행복할 것이다.

2024-11-03

닳아 가는 것들의 에필로그

이희정시인 가을이 닳고 있다, 바스락 바스락 몸살을 앓으며 시간이 닳고 있다 또 한 번 나이테 더하는 내 목숨도 닳고 있다 주변의 모든 것들이 나를 위해 닳아간다 신발이며 옷이며 책상이며 자동차까지 모두가 닳아 가면서 말이 없다 생색내지 않는다 자신만을 위해 닳아온 시끄러운 나의 소리 깎을 새 없이 닳아 있던 엄마의 손톱처럼 이 가을, 누군가를 위해 말없이 닳아지기를 ― 김귀현, ‘닳아 간다는 것’ 전문 (‘너라는 화두’, 좋은생각) 기꺼이 닳아 가며 누군가를 ‘위해’ 살아보겠다는 마음을 무조건적 사랑(agape)이라고 한다면 이 시가 그렇다. 시인은 “주변의 모든 것들이 나를 위해 닳아간다”고 했다. “가을이”“몸살을 앓으며”“닳고 있”는 “바스락”거리는 시간은 아낌없이 헌신적이다. 우리는 사소한 것에도 길들어 간다. 자주 사용하는 물건들, “신발이며 옷이며 책상이며 자동차까지” 일상의 모든 것들이 사막의 여우가 어린 왕자에게 한 말처럼 사랑도 길들어져 익숙해지는 것인지 모르겠다. “깎을 새 없이 닳아 있던 엄마의 손톱”처럼 말이다. 화자는 닳아 가는 가을 속에 슬그머니 “엄마의 손톱”을 부려놓고 “자신만을 위해 닳아온 시끄러운 나의 소리”를 해찰하고 있다. 시나몬 향 그윽한 가을이다. 렌즈에 담는다면 무엇을 담을 것인가. 아니 어떻게 담을 것인가. 첫 행엔 가을의 바스러지는 낙엽의 외양을 비추지만, 이후 이런 풍경들은 나이테를 더하며 닳고 있는 장엄한 목숨으로 점차 바뀌어 간다. 그 모든 슬프고 번잡한 일상으로부터 갑자기 뚝 떨어진 듯 초연한 느낌을 주기도 하지만, 결국 이렇게 내밀하게 들여다본 가을 풍경은 곡진하게 아름답다고 일러주고 싶어 하는 어머니의 마음을 담은 것처럼 보인다. 시간 속에 담긴 풍경이란 어떤가. 자신만을 위해 닳아온 시끄러운 나의 소리는 혼잡하고 시끄러운 현대의 우리들 삶 전체를 상징하는 부분처럼 느껴진다. 그러니까 삶의 모든 시절에는 그 시절만의 치열한 문제가 있다. 세월이 흐른다고 문제가 저절로 해결되지는 않겠지만 시간이 흐르면 문제가 달라 보이기도 한다. 오직 ‘나를 위해’라는 고유성은 결국 세월 속에서 ‘누군가’라는 익명성 속으로 녹아 들어가고 마는 것. 그것이 시간이 가진 위무일까. 그렇게 줌인으로 시작된 시인의 가을은 서서히 줌아웃 되면서 화자가 바라보는 주관적 시점에서의 묘사였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말하자면 화자는 바스러지는 낙엽의 시간 바깥에서 자신과 어머니의 헌신적 삶을 그대로 겹치면서 이 쓸쓸한 이야기는 온기 있는 이미지가 된다. 김귀현 시인이 걸어온 삶의 깊이만큼 진폭의 울림이 크다. 시인의 사유는 현역에서부터 지금까지 소외된 사람들을 보살펴 온 개인적 이력과도 무관하지 않겠지만 그보다 사회적인 인간으로서의 이타적인 세포가 생래적으로 내장되어 있음을 짐작할 수 있다. 그간 시인이 걸어온 시간이 욕망과 체념이 뒤섞인 풍경이었다면 닳아 가는 것들은 궁극의 화자가 닿으려고 한 시간 그 자체이다. 유채색 사유들이 무채색으로 등뼈 깊이 새겨진 나이테는 빛과 어둠이 그려내는 삶의 진경이 아닐까. 그 길을 향해 여기까지 온 것이다. 사람의 생의 끝이 처음처럼 아름다울 수 없다는 사실을 안다. 시의 전체적 조망은 단풍 든 나무를 현상으로 인식하고 스산한 늦가을의 허전한 정취에 화자의 모습이 겹쳐 있음을 알 수 있다. 자칫 단풍이 발색으로 보이지만 기실은 탈색이다. 색이 빠지면서 비로소 안 보이던 제 색이 나오는 것이다. 생색내지 않고 닳아 가는 것들의 탈색이 아름다운 마침표를 찍고 있는 풍광, 이 또한 자연의 반복된 여정일테니까. “이 가을, 누군가를 위해 말없이 닳아지기를”

2024-11-03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묻기보다는

유영희 작가 10월 7일 시작한 국정 감사가 11월 1일 끝났다. 정기국회의 꽃이라 불리는 국정 감사는 보통 9월부터 12월 사이에 열리는 정기국회 중간에 이루어진다. 국회의 17개 상임위원회는 해당 담당 기관의 예산이나 정책 등을 감시하고 평가한 후 시정 조치를 요구한다. 국정 감사는 1948년에 시작되었는데 유신독재가 시작된 1972년에 중단되었다가 1987년 9차 개헌 후 다시 시작되어 오늘에 이른다. 입법기관인 국회가 행정기관을 점검하는 일은 민주주의 실현에 꼭 필요한 일이다. 감사 대상이 되는 사건을 선택하는 것 못지않게 선택한 사건을 어떻게 감사할 것인가 하는 방법의 문제도 중요하다. 감사를 잘하기 위해서는 질문을 잘해야 한다. 주관적인 견해를 묻는 것처럼 질문하거나 열린 질문 방식은 의미 있는 결과를 도출하기 어렵다. 정동영 의원이 조혜진 KBS노조수석본부장을 증인으로 불러서 폐지된 여러 프로그램을 거론하며 ‘KBS의 제작 자율성 파괴 상황을 어떻게 보십니까?’라고 질문했는데 여기에는 두 가지 아쉬움이 있다. 하나는 KBS 제작 자율성이 파괴되고 있다고 자기가 미리 결론을 냈다는 점이다. 박민 사장이 제작 자율성이 파괴되지 않았다고 답변해버리면 더 이상 사실을 확인할 방법이 없다는 것이다. 실제로 박민 사장은 자율성 침해 아니라고 답했다. ‘어떻게 보십니까?’라고 질문하면 답변도 주관적인 견해처럼 보일 수 있다. 실제로 박민 사장이 프로그램 폐지를 지시한 적이 없다고 답변하자 조혜진 피디는 지시하지 않았어도 책임은 있다고 답한다. 이러면 설득력이 떨어진다. 그 대신 구체적으로 하나를 선택하여 질문하는 것이 좋다. 시청자가 가장 좋아한 프로그램으로 꼽혔던 ‘더 라이브’가 폐지된 이유를 단계적으로 질문하면 더 효과적이었을 것이다. 실제로 박민 사장은 정동영 의원이 거론한 여러 가지 프로그램에 대해 자기가 답변하기 좋은 것만 골라서 답하고 더 라이브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다. 그에 비해 최민희 과방위 위원장은 시작부터 단답형으로 하겠다고 선언하고 ‘그런 사실이 있습니까?’, ‘왜 안 했습니까?’라는 단답을 유도하는 질문만으로 증인의 위증 사실을 밝혔다. 류희림 방통위 위원장이 구글 부사장 마컴 에릭슨을 만나 유튜브의 불법 유해 콘텐츠를 신속하게 삭제하고 차단하겠다는 협조를 약속받았다고 발표했다가 MBC에서 그런 사실 없다고 보도한 것에 대해 최민희 위원장은 그 보도가 거짓이라면 ‘항의를 했느냐?’, ‘왜 한 번만 했느냐?’를 묻고 담당자가 답변을 못하자 그 이유를 증명하는 증거를 보여주는 식이다. 그 증거란, 마컴 에릭슨이 그런 확약을 한 적이 없다고 보내온 메일이다. 이렇게 하면 방송을 보는 국민은 방통위의 위증도 알게 되고 확약 자체도 거짓이었다는 것도 알게 된다. 국정 감사 영상 몇 개만 봐도 거짓말하는 증인이 너무 많았다. 이런 위증을 밝혀내기 위해서는 미리 결론을 내고 질문하기보다는 팩트 체크로 국민의 눈앞에 진실을 보여주어야 한다. 좋은 질문으로 국정 감사가 제 기능을 해주기 바란다.

2024-11-03

세상을 변화시키는 지혜 : 도도새의 법칙

신일철 포스코인재창조원 교수·컨설턴트 아프리카 동쪽 인도양에 모리셔스라는 아름다운 섬이 있다. 17세기 포르투갈 선원들이 이 섬에 처음 발을 디뎠을 때 도망도 못 가고 멍청히 쳐다만 보고 있는 새가 있었다. 도도새는 칠면조보다 크고 몸무게는 23㎏ 정도이며 부리는 23㎝ 정도이며 작고 쓸모 없는 날개를 가졌다. 그래서 선원들은 ‘바보, 멍청이’라는 뜻으로 이름을 ‘도도’라고 붙였다. 이 새의 날개는 기능이 퇴화되어 인간에게 쉽게 사냥을 당해 결국 멸종하고 말았다. 오랫동안 천적이 살지 않는 서식지의 환경으로 새는 생존 수단인 날개까지 포기해버린 것이다. 모리셔스 섬에 인간이 발을 들여 놓은 지 100년 만에 한때 많은 개체를 자랑하던 도도새가 희귀종이 되어버렸으며, 1681년에 마지막 새가 죽임을 당했다. 도도새의 법칙은 주어진 환경에서 변화나 도전 없이 편안하게 살려는 사람이나 조직은 결국 도태되고, 외부의 자극이 없으면 발전도 생존도 없다는 교훈을 주고 있다. 개인의 성장 뿐만 아니라 조직의 발전에도 적용될 수 있는 중요한 교훈이다. 도도새의 멸종은 변화하는 환경에 민감하게 적응하는 것이 조직과 기업에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주고 있다. 변화에 적응하지 못한 기업들의 사례를 살펴보자. 노키아는 1990년대 최대의 휴대폰 제조사였지만 애플의 아이폰과 삼성의 갤럭시폰에 밀려 시장에서 퇴출되었다. 결국 스마트 폰의 트렌드를 읽지 못한 전략적 실패이다. 또한 전세계 카메라 필름 시장을 석권한 코닥은 디지털 카메라 기술을 개발하였지만 기존 필름 사업에 지속적으로 의지하는 바람에 디지털 사업 전환에 실패하고 파산신청에 이르게 되었다. 미국 제조업의 대명사 GE 또한 그룹의 뿌리이자 생존 수단인 제조업을 등한시 하면서 몰락의 길을 걷고 있다. 제조업과 제조 현장은 하나의 생명체이다. 매일 조금씩 변화하고 있고 그 변화에 도전과 응전이 계속되는 것이 살아있는 모습이다. 이것을 “바람직한 제조 현장의 지속적인 개선”이라고 부른다. 변화하는 사람과 설비를 대상으로 지속적 인재육성과 예방적 설비 관리가 진행되어야 한다. 도도새의 교훈으로부터 세 가지 인식변화를 강조하고자 한다. 첫째, 환경변화를 올바르고 민감하게 인지하고 받아들여야 한다. 시장의 변화와 소비자 트렌드 등을 지속적으로 모니터링하고 적기에 대응해야 한다. 둘째, 변화에 대한 지속적인 응전과 혁신이 필요하다. 과거의 성공에 안주하지 않고 새로운 아이디어와 기술을 도입하여 경쟁력을 유지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위기 상황에서도 빠르게 대응하는 유연한 조직 구조와 리더십이 중요하다. 조직은 단기적 성과에만 집중하지 않고 지속성장 가능성을 고려한 경영 전략을 수립해야 한다. 특히 기업의 일하는 방식은 기업문화에 강하게 연결되어 있어 그 가치와 철학은 유지하되 시장의 변화와 고객의 트렌드에 맞추어 나가야한다. 천적없이 풍요로운 먹거리와 외적 변화가 거의 없는 평안함 속에 멸종된 도도새는 도전·시련이 없으면 발전도 없다는 교훈과 더불어 우리의 안일한 모습을 일깨워주고 있다. 꾸준한 변화와 개선으로 지속 가능한 기업문화를 계승하고 발전시켜나가는 것이 불확실한 미래의 유일한 생존해답이다.

2024-11-03

김장 담그기

우정구 논설위원 김장은 한국인의 오래된 전통문화이자 대표 음식이다. 2013년 유네스코가 한국의 김장문화를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했는데, 이는 김치보다는 지역사회가 공동으로 김장을 담고 이웃간에 정을 나누는 공동체 정신을 더 높게 평가한 결과라 하겠다. 신라시대부터 채소를 발효시켜 먹었다는 역사기록으로 보아 김치의 역사는 상당히 오래됐다. 그러나 고추가 도입된 조선시대에 들어와 매운 김치가 만들어지면서 김치는 민중의 김치로 대중화 길을 걸어왔다. 특히 겨울철을 앞두고 이웃 공동체가 모여 품앗이 하듯 김치를 담그는 행사는 음식을 떠나 한국인의 생활에 깊게 뿌리를 내린 문화가 됐다. 1970년대 초반만 해도 이웃끼리 모여 김치를 담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었다. 김장은 평균 기온이 4도 이하가 유지될 때 하는 것이 가장 좋다. 예로부터 입동(11월 2일)부터 소서(11월 22일) 사이를 적기로 보았다. 김장의 재료인 채소가 얼기 전에 담가야 하고 날씨가 너무 따뜻하면 쉽게 시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김장김치는 소금에 절인 배추를 고춧가루, 파 등의 양념에 버무려 옹기에 담아 땅속 깊이 묻어두는 발효음식이다. 배추가 생산되지 않는 겨울동안 먹기 위해 담아두는 것이지만 발효식품이기 때문에 소화가 잘되고 건강에도 좋다, 우리 조상들은 겨울철에 부족하기 쉬운 비타민을 김장김치로 보충했다. 올해는 늦더위가 이어지면서 배추값이 폭등하자 김장 담그는 가정이 확 줄 것 같다는 소식이다. 가뜩이나 식문화 변화로 김장을 담는 가정이 줄고 있는 마당에 배추값 때문에 김장을 포기하는 가정이 는다니 한국인 고유의 김장문화가 퇴색하지나 않을까 걱정이다. /우정구(논설위원)

2024-11-03

시간은 어디서 오는가?!

김규종 경북대 명예교수 2024년 달력이 얇아지고 있다. 10월 말이면 나이 든 사람들을 감상에 젖게 하는 유행가 ‘잊혀진 계절’(1982)이 거리를 소란스럽게 한다. 계절이 오직 10월에만 잊히는 것도 아닐 것인데, 어째서 유독 10월이 거명되는지 모를 일이다. 그런 10월에도 적잖은 비가 자주 내렸다. 그래서 ‘가을비 우산 속’(1978)이란 노래도 곳곳에서 불린 모양이다. 그런데 우리가 시간을 인식하는 방식은 두 가지다. 손목시계나 휴대전화에 내장된 시계에서 하루의 시간을 보는 것이 하나이고, 달력으로 1개월 단위의 시간을 포착하는 것이 그 둘이다. 미시적인 시간을 살면서 거시적인 시간을 의식하고 살아가는 유일한 존재가 성숙한 인간이다. 어린아이들은 개미나 매미처럼 지금과 여기에만 초점을 맞추며 시간을 보낸다. 그들이 철이 들 무렵을 사춘기라 하는데, 그것은 그들이 시간의 흐름을 비로소 인식하는 것을 의미한다. 과학기술이 발전하는 광속(光速)의 시간대에서 우리는 고도로 진척된 물리학 개념을 따라잡지 못하고 끝없이 표류한다. 이탈리아 양자물리학자 카를로 로벨리(1957∼)는 ‘시간은 흐르지 않는다’(2019)에서 우리가 가지고 있는 고전적인 시간 개념을 전복(顚覆)한다. 과거에서 현재를 거쳐 미래로 나아간다는 고정된 시간 개념을 분쇄해버리기 때문이다. ‘군도’의 작가 프리드리히 실러(1759∼1805)는 “현재는 쏜살같이 달아나고, 미래는 주춤주춤 다가오고, 과거는 영원히 정지해있다”라고 했다. 이 문장에 따르면, 시간은 미래에서 출발하여 현재를 거쳐 영원히 정지된 과거로 흘러간다. 미래는 현재로 슬금슬금 다가오고, 현재는 쏜살같이 과거로 달아나며, 과거는 죽음보다 견고하게 미동도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시간의 화살 시간의 순환’(2012)에서 과학사가(科學史家) 스티븐 제이굴드(1941∼2002)는 직선적인 시간과 순환적인 시간을 지질학으로 풀어낸다. 지층은 오래된 것일수록 아래에 자리하고, 새로운 것일수록 위에 자리한다. 지층만 생각해본다면, 시간은 분명히 과거에서 출발하여 현재를 거쳐 미래로 나아가는 직선적인 흐름을 가진다고 단언할 수 있다. 하지만 직선적인 시간에는 문제가 있다. 이를테면 색바랜 사진에 들어있는 어린 시절 당신의 모습을 보라. 중고교 졸업사진에 뚜렷하게 각인(刻印)돼 있는 당신은 지금 어디 있는가?! 그때의 당신과 지금의 당신은 같은 사람인가?! 사진 속의 당신과 사진을 보고 있는 당신이 진정 같은 사람이라 할 수 있겠는가?! 육신은 우리의 통제 영역을 벗어난 존재다. 인간을 구성하는 물질(오장육부, 피부, 뼈, 혈액, 세포 등등)이 순간순간 변한다는 사실에 주목하시라. 어제의 나와 1년 전의 나, 그리고 10년 전 나의 물질적 구성은 전혀 다르다. 우리가 정신 혹은 마음이라 부르는 것 또한 고정불변하지 않은 것이다. 어제의 마음과 오늘의 마음, 한 시간 전의 마음과 지금의 마음이 같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는 인간의 영혼과 육신이 항상(恒常)하지 않다는 사실과 만난다. 시간처럼 인간도 불변한 존재가 아니다. 그러니 사라진 과거와 오지 않은 미래와 작별하고 지금과 여기를 응시하시라!

2024-11-03

불조심 강조의 달, 우리 삶의 안전 ‘방화벽’

심학수 포항북부소방서장 선선한 바람이 불고 나들이하기 좋은 청명한 가을이 성큼 다가왔다. 11월은 불조심 강조의 달이다. 특히 11월부터 2월까지는 전체 화재 발생의 약 40%가 집중되는 기간으로, 화재 예방의 중요성이 절실히 요구되는 시기다. 11월은 난방 기기 사용이 늘어나고 공기가 건조 해지면서 화재 발생 위험이 커진다. 이에 우리 삶의 안전 방화벽을 함께 만들어 갈 수 있도록 몇 가지 화재 예방 수칙에 대해 소개하고자 한다. 첫 번째, 난방 기기 취급 및 사용에 주의하자. 일교차가 크고 쌀쌀해진 날씨로 인해 난방 기기나 전열기구 사용이 늘고 있으며 특히 주거시설에서의 부주의가 주 화재 원인으로 나타나고 있다. 전기 난방용품은 반드시 KC인증 제품을 사용하고 주변 가연물 적치 금지, 사용하지 않을 시 전원플러그 분리, 오래된 전선 및 멀티탭 교체 등을 통해 안전하게 사용하자. 두 번째, 공동주택 화재 예방 안전 수칙을 숙지하자. 공동주택 화재는 발생 시 다수의 인명 피해가 우려되므로 각별한 주의가 요구된다. 주방 화재 등 공동주택에서 발생할 수 있는 화재 예방과 더불어 피난, 대피에 대한 사전 대응 태세도 무척 중요하다. 세대별로 주택용소방시설인 소화기와 단독경보형 감지기를 설치하고 정기적으로 점검해야 하며 아파트 복도나 계단에는 물건을 쌓아두지 않고 철저히 대비할 필요가 있다. 세 번째, 전기자동차 등 충전시설 화재 예방 안전 수칙을 준수하자. 전기자동차의 보급이 늘면서 관련 화재도 증가하고 있어 전기차 화재 예방 수칙을 정확히 숙지하는 것이 중요하다. 충전 중 차량에 이상이 있는 경우 즉시 충전을 중단하고 점검받아야 하며, 충전 장소는 환기가 잘되는 곳에서 지정된 충전기를 사용하는 것이 좋다. 주행 중 차량에서 연기나 이상한 냄새가 발생하는 경우 즉시 차량을 안전한 곳에 정차시키고 119에 신고하자. 또한, 전기차 전용 소화기를 꼭 비치하여 긴급 상황에 대비하자. 화재는 한순간의 부주의로도 큰 피해를 초래할 수 있다. 작은 부주의가 큰 피해로 이어질 수 있음을 기억하고 각종 화재 예방에 주의를 기울여 우리 삶의 터전에 안전 방화벽을 튼튼하게 세울 수 있기를 바란다.

2024-10-31

원자력 발전의 부활

윤영대 전 포항대 교수 몇 년간 닫혀있던 원자력 발전소 건설의 문이 다시 열렸다. 지난달 30일 경북 울진의 한울원자력본부에서 신한울 원전 1·2호기 종합준공 및 3·4호기 착공식에 참석한 윤석열 대통령이 축사에서 ‘탈원전 폐기’를 선언한 것이다. 2017년 문재인 정부는 출범 직후, 고리원전 1호기의 영구 정지 선포식에서 ‘친환경적이지 않고, 값도 싸지 않고, 위험한 에너지’라며 ‘탈원전’을 외쳤고, 신규원전 백지화와 기존 원전의 단계적 감축 등으로 한국전력에 26조 원이라는 손해를 끼쳐놓은 굴레를 벗긴 것이다. 설계 수명을 다하면 폐기하겠다는 것이었는데 미국은 80년, 유럽은 무한이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운전 중인 원전은 26기이며 발전량은 세계 6위이고 국내 전력 생산량의 30%를 담당하고 있는데 2016년 새울 3·4호기 이후 8년 만에 신규 건설이 이뤄지게 된 것이다. 발전 방식에는 수력, 화력, 원자력과 친환경인 풍력과 태양열 등이 있으며 이 중 원자력 발전은 지속 가능한 자원의 활용으로 에너지 안전을 보장받을 수 있고 온실가스 방출 감소로 환경문제 해결에 도움이 되며 엄격한 안전관리로 안정적 운영뿐만 아니라 에너지 공급의 독립성과 경제적 미래를 보장받을 수 있으며, 연료도 우라늄 1kg은 석유 9천 드럼, 석탄 3천t의 발전량을 갖는다. 물론 핵폐기물과 방사능 유출, 또 사고 발생 시 환경 파괴 등 안전에 대한 염려도 많을 것이다. 원자력 개발은 19세기 말 방사선이 발견된 후 우라늄 핵분열을 연구하여 핵폭탄이 만들어지고 2차 대전 때 미국은 일본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떨어트려서 전쟁을 끝내게 된다. 이에 1953년 미국 아이젠하워 대통령이 ‘원자력 평화 이용’ 선언으로 많은 나라가 핵에너지 이용을 추구해 온 결과 미국이 최초로 원자력 시설을 만들었다. 우리나라는 1956년 당시 이승만 대통령이 원자력은 미래의 힘임을 간파하고 미국과 기술협력을 맺고 원자력법을 만들어 원자력연구소를 설립한 덕분에 핵연료 국산화 그리고 2012년 원자력 산업기술의 자립을 이뤘다. 이로써 에너지 안보와 탄소중립을 바탕으로 원전 르네상스를 기대하고 있으며 2009년 아랍에미리트에 원자로 4기를 수출했고 이어 요르단과 터키에도 기술력을 전했으며 최근에 체코와 수출계약을 하는 등 원전산업 재도약이 기대되어 K-원전이 뜨고 있다. 한국은 1971년 가압경수로를 만들었고 2011년에는 제3세대 개량형인 한국표준 원전도 제작했다. 우리의 원전 1기는 약 100만kW이며 발전 단가는 kWh당 50원 정도로 석탄 석유보다 훨씬 싸다. 우리의 기억 속에는 미국 스리마일, 구 소련의 체르노빌 그리고 2011년 일본 후쿠시마 원전 사고가 맴돌고, 우리나라도 8년 전 경주 지진으로 인해 원전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높아졌을 것이다. 원자력 발전에는 많은 공업용수와 냉각수가 필요하여 한울 6기는 울진, 월성 5기는 경주, 고리 5기와 새울 4기는 부산, 한빛 6기는 전남 바닷가에 배치돼 있다. 윤 대통령이 원전 생태 복원을 외친 ‘2050 중장기 원전산업 로드맵’을 실현하여 세계에 우뚝 서는 원전 강국을 이뤄 내기를 꿈꿔 본다.

2024-10-31

이성(理性)과 합리(合理)

김병래 수필가·시조시인 인류사회가 지금 이만큼 유지되는 것은 이성과 합리가 바탕이 되어 있기 때문일 것이다. 물론 종교적 신념이나 예술적 감성도 삶을 보다 깊고 풍성하게 하는 요소이긴 하지만, 인간사회의 기본 구조를 지탱하고 유지하기 위해서는 이성과 합리를 먼저 꼽을 수밖에 없을 터이다. 이성과 합리는 철학과 심리학의 근간을 이루는 중요한 개념이다. 현대 사회에서의 문제 해결, 개인의 판단력, 나아가 사회적·정치적 결정에까지도 깊이 관여하는 개념들로, 우리가 사물을 이해하고 선택하며 행동하는 방식을 형성한다. 두 개념이 서로 얽히고 맞물려 있지만, 그 차이와 상호작용을 이해하는 것은 중요한 통찰을 제공한다. 이성이란 논리와 객관적 사고의 근원으로 인간의 사유 능력, 즉 생각하고 논리적 결론을 내리는 능력을 말한다. 이성적인 사고는 객관적 데이터를 기반으로 하고, 감정보다는 논리와 근거에 따라 결론을 도출하는 과정이다. 이러한 능력은 우리가 삶에서 일어나는 다양한 문제를 분석하고, 상황을 예측하며, 목표를 향해 일관되게 나아갈 수 있도록 한다. 이성적인 사고의 장점은 개인의 주관적 경험이나 편견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다는 것이다. 이는 비판적 사고와 연관되며, 진실을 찾으려는 진중한 태도에서 비롯된다. 그러나 이성만으로는 인간의 복잡한 감정과 심리적 욕구를 충분히 설명할 수 없다는 한계가 있다. 합리는, 이성적 사고와 조금 다르게 현실적인 맥락을 고려하여 가장 적합한 결정을 내리는 것을 의미한다. 즉, 합리적이라는 것은 이론적으로 완벽한 해결책이라기보다, 주어진 상황에서 가능한 최선의 선택을 의미한다. 합리적 사고는 대개 비용, 시간, 에너지 등의 자원 제한이 있는 현실에서 실용성을 강조한다. 합리성의 장점은 현실에 근거하여 구체적이고 실행 가능한 결정을 내릴 수 있다는 점이다. 하지만 지나치게 실용성만을 추구하다 보면 윤리적 가치나 인간의 감정과 같은 요소들을 놓칠 수가 있다. 이성과 합리는 서로 다른 기준으로 행동을 이끌어내기도 하지만, 동시에 상호 보완적이기도 하다. 이성은 큰 그림을 보고 논리적 타당성을 갖춘 이론을 제시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합리는 그 이론을 현실적으로 적용할 수 있는 실질적 방법을 제공한다. 따라서 두 개념은 개인의 의사결정뿐 아니라 사회적 합의와 정책개발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영역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 우리나라 정국이 지금 극도로 혼란한 것은 바로 이런 이성과 합리가 실종되었기 때문이다. 공산주의국가들의 몰락과 함께 마땅히 폐기처분 되어야 할 구시대의 잔재가 21세기 첨단국가 중의 하나인 대한민국에서 이토록 창궐하고 득세하는 것은 도무지 이성적이 아니다. 더구나 온갖 범죄혐의로 수사나 재판을 받고 있는 당 대표를 ‘방탄’하기 위해서 최소한의 이성이나 양심까지 팽개친 무리들이 나라를 무법천지로 만들고 있다. 부디 이 해가 다 가기 전에 줄줄이 이어지는 재판의 결과가 신속하고 엄정하여 이 광란의 시국이 평정되길 바라마지 않는다.

2024-10-31

직장 떠나는 MZ공무원

우정구 논설위원 MZ세대란 일반적으로 1980년 초반부터 2010년까지 태어난 사람을 정의하는 표현이다. 우리나라에서는 베이비붐 세대의 자녀가 많다. 전 세계적으로는 출산율이 감소하는 시기에 태어난 세대라 이전세대와 구분되는 특징이 많다. 휴대폰, 인터넷 등 디지털 환경에 친숙하다. 빠른 정보수집 능력을 갖추고 있으며 광고나 마케팅에 민감하게 반응한다. 자신만의 가치관과 취향을 가지고 있으며 개인주의적 성향이 강한 세대로 평가된다. 세대간 의식의 차이는 굳이 MZ세대가 아니더라도 생기는 당연한 시대 흐름이다. 우리는 이를 ‘세대차이’라고 부른다. MZ세대 공무원들의 퇴직이 늘어나 공직사회가 비상이라 한다. MZ공무원을 붙잡기 위해 지자체마다 아이디어가 속출하지만 붙잡기가 만만치 않다. 장기재직 휴가를 늘리거나 대상 범위를 확대하고 새내기 휴가란 이름으로 재충전 기회도 제공한다. 또 가족이 병원에 진료 중이면 간병휴가도 준다. 최근 행안부는 중앙부처와 지방자치단체 MZ공무원을 모아 애로사항을 청취하고 여기서 모아진 의견을 정리해 공직사회 권고사항으로 발표했다. 근무시간외 무분별한 연락 자제, 상대방을 존중하는 언행, 눈치 야근하지 않기 등등이 이에 해당한다. 공직을 안정적 직장으로 생각하던 사회 인식이 MZ세대를 중심으로 바뀌는 분위기다. 낮은 보수와 경직된 공직사회 직장 분위기에 대한 MZ세대의 거부 반응이다. 통계에 의하면 지난해 재직 5년 이하 공무원의 퇴직자 수가 무려 1만3500여명이다. 5년 전보다 배가 증가한 것이다. MZ세대의 특성에 적합한 조치가 안 나오면 공직이 비인기 직장으로 전락하는 것은 아닌지 알 수 없다. /우정구(논설위원)

2024-10-31

‘大慶特別市’ 섬유패션 산업 부활의 길

신광조​​​​​​​사실과 과학 시민네트워크 공동대표 첨단산업과 중공업이 경제발전을 이끌어온 것 같지만 방적·나일론 의류와 신발 등 경공업 현장에서 흘린 우리 누님들의 땀과 눈물이 있었다. 사양(斜陽)산업은 없다. 인간은 과학기술로 돈을 만들고, ‘보고 듣고 맛보고 향(香)을 맡고 만지는 오감만족’을 위해 돈을 쓴다. 한국은 매력적인 이미지 문화적 유산에도, 세계에 통하는 브랜드 하나 못 만들고, ‘디올’백 타령만 하고 있다. 대구시의 ‘쉬메릭’브랜드만 해도 많은 돈을 들여 홍보한 지 몇 년이 되었건만, ‘황홀하다’는 뜻이 너무나 어렵다. 대구 의류의 브랜드로는 ‘Ambition(앰비션·야망, 포부)’ 정도가 적절하다. 삼성전자와 힙합 가수그룹 간 상표분쟁이 붙었으나, 삼성전자에서 상표등록만 하고 사용하지 않아 분쟁요소는 없다. 인간의 감성을 이용하여 너끈히 먹고 사는 경제 강국도 있다. 프랑스와 이탈리아, 스위스다. 대구·경북 특별시도가 ‘Ambition(야망·포부)’를 의류· 안경 등 지역 감성 상품 브랜드로 장착하였다면. 어떤 야망과 희망으로 채울 것인가? 의류 산업은 첨단 과학기술 산업이면서도 디자인 산업 즉 과학과 예술이 결합된 산업 분야이다. 의류 산업 구성요소는 뛰어난 재료인 원단 소재, 고객 만족의 디자인, 그리고 현대 산업의 특성인 유통마케팅 삼위일체로 구성된다. 10번째 유니콘 기업으로까지 성장하여, 의욕적인 도전을 펼치고 있는 ‘무신사’(‘무진장 많은 신발 사진’약자)의 젊은 조만희 대표나, “옷을 바꾸고 상식을 바꾸고 세계를 바꾼다”는 유니클로 창업주 야나이 타다시는 시대 흐름과 인간의 심리를 확실히 감지해 대단한 부자가 되었다. 대구의 의류 업체들은 뛰어난 기능성 원단 제조를 빼고는, 주로 온라인에서 현란하게 펼쳐지고 있는 유통마케팅 경쟁의 장(場)에서 위 기업들을 따라잡을 수는 없다. 묘수를 찾아야 한다. 바이오 과학기술이 빠르게 발전하고 있다. 체온1도 올리면 면역력이 5배 오른다. 내 몸의 적정체온을 36.5∼37.1도로 사수하는 의류 개발이 필요하다. 유니클로는 히트텍으로 대히트를 쳤다. 더 히트가 예상되는 것은 햇볕의 자가 치유능력을 결합시킨 첨단 의류소재 개발이다. 한국의 유력한 노벨과학상 후보인 서울대 남기태 교수팀은 자연계에 존재하는 단백질들의 자가 치유기술을 모방해 수용액 상에서 불안정한 유무기 복합 소재를 안정화시키고, 태양에너지 수소변환 소재로 활용하는 연구 성과를 2016년 창출했다. 남기태 나노융합 신소재 개발팀을 대구시 다이텍(DYETEC) 연구원과 결합시키면 의류소재 개발에 혁명을 가져올 것이다. 박태영 수영복은 상어의 지느러미에서, 고어텍스 의류 방수성은 물을 튀기는 연(蓮)잎들에서 왔다. 자연은 우리의 가장 훌륭한 스승이다. 자연에서 영감을 얻고 자연을 모방하면 지구 온난화 위기 해결과 인간을 풍요롭고 편리하게 하는 멘토를 가질 수 있다. 이를 발견하고 연구하며 적용하는 기술을 ‘청색기술’이라 부른다. 포항시나 경산시 같은 곳에 ‘청색기술 융·복합 연구기술재단’을 설립하여, 이 분야 일인자인 이인식 지식융합연구소장을 책임자로 앉혀 놓으면 된다. 대경권(大慶圈) 의류산업 진흥과 지구환경 보전, 지속가능 발전 금자탑이 될 것이다.

2024-10-31

편안한 수면

박용호 포항참사랑송광한의원장 인체의 삼대 욕구 중 하나인 수면욕은 건강한 삶을 위해 가장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 잠을 잘 때 척수액이 뇌를 씻어 하루 동안 쌓인 피로 물질을 씻어 낸다. 척수액은 동맥을 따라 뇌 안쪽으로 흘러들어 쌓인 독소와 필요 없는 물질을 걸러내 정맥을 통해 뇌 밖으로 나온다. 이는 인체의 피로를 줄여주고 면역력을 높여준다. 또 잠을 잘 때 깊은 수면과 얕은 수면이 반복되어 나타나는데 얕은 수면인 렘수면 중 우리는 하루 동안 있었던 일을 정리하고 쌓인 스트레스를 해소한다. 꿈도 이때 꾸게 되고 그날 있었던 일이나 나의 걱정거리가 꿈에 나타나기도 한다. 전부 정신적인 작용과 관련이 있고 렘수면 중 이런 스트레스를 해소한다. 따라서 렘수면이 부족하면 감정조절이 어려워지고 집중력이 떨어진다. 공부를 하는 학생들과 중요한 프로젝트가 있는 사람들은 밤을 새면 안 되는 이유다. 깊은 수면은 비렘수면이라고 하고 렘수면과 달리 이때 육체적 휴식과 충전을 하게 된다. 성장호르몬도 이 시기에 많이 분비가 되고 낮에 쌓인 피로물질과 노폐물이 처리된다. 따라서 잠을 충분히 자게 되면 피로가 풀리고 면역력도 강화된다. 특히 성장기에 있는 아이들은 깊은 수면이 충분해야 성장기의 키를 내 것으로 만들 수 있다. 이와 같이 수면은 육체의 피로와 정신적 피로, 스트레스를 풀어 몸의 피로를 없애주고 면역력을 높여준다. 그러나 잠은 자고 싶다고 해서 맘껏 잘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선천적으로 심장의 기능이 약하면서 가슴에 열이 많은 사람, 큰 스트레스를 지속적으로 몇 년 동안 받은 사람들은 쉽게 잠을 들지 못하고 유지하지도 못한다. 잠을 자려고 누워도 온갖 생각이 머리를 뚫고 머리를 헤집으며 그동안 받았던 스트레스가 머리에 떠오른다. 이렇게 수개월 수년을 지내면 정신만 피폐해지는 것이 아니라 육체도 약해지고 면역력도 떨어진다. 잠을 충분히 자면 해결 되는 문제이기 때문에 잠을 어떻게 하면 잘 잘 수 있을까에 대해 알아보자. 첫째, 매일 낮에 충분히 햇볕을 쬐어야 한다. 인체에는 신체 시계가 있고 태양이 떠있을 때 충분히 햇볕을 받으면 인체 시계는 정상 작동을 하게 된다. 쉬는 시간에 멍하니 컴퓨터를 하거나 스마트폰을 보지 말고 밖에 나가서 햇볕을 쬐자. 둘째, 하루 10분만 눈을 감고 가만히 있어 보자. 눈을 감고 호흡에 정신을 집중하며 가만히 있어 보자. 처음에는 많은 생각이 머릿속에 떠오르나 익숙해지면 머리가 맑아지고 스트레스로 복잡한 머리가 가라앉는다. 잠을 잘 때도 누워서 명상을 하듯이 눈을 감고 편안히 호흡에 집중을 하면 어느새 잠을 자고 있는 자신의 모습을 볼 수도 있다. 셋째, 산조인과 치자 대추를 같은 비율로 물에 끓여 시간이 날 때마다 조금씩 마셔 보자. 연하게 타서 시간이 날 때 물 대신 마시면 된다. 그리고 한의원에서 자율신경을 조절할 수 있는 한약과 약침 치료 등을 병행하면 좀 더 쉽고 빠르게 스트레스를 풀고 잠을 잘 수 있으니 주변 한의원에 들러 도움을 받아도 좋겠다.

2024-10-30

사찰 순례

이정옥 위덕대 명예교수 매월 3번째 일요일이면, 사찰 순례를 위해 새벽에 일어나 채비를 서두른다. 7월부터였으니 이번 달까지 4번째였다. 사촌언니가 몇 년째 다녔던 ‘청계사 108기도순례’팀에 나를 넣어주어 가게 되었다. 언니가 보여준 일정표에는 일 년 계획이 미리 짜여져 있었고, 전국 팔도를 망라했다. 낮이 긴 여름에는 대구에서 먼 곳인 전남 해남, 강원 동해나 금강산, 충남 계룡산, 경기 화성, 전북 완산으로, 해가 짧아지면 경남 밀양, 충북 영동, 경북 경주였다. 그렇게나 많은 절이 있다는 데에 한 번 놀라고, 내가 가보지 못하고 모르는 절 또한 많은 거에 두 번 놀랐다. 우리나라엔 1만7141개의 사찰이 있고, 그 중 전통사찰은 982개소라는 정보를 검색해 찾아 보기도 했다. 나는 불교도이긴 해서 새해엔 팔공산 거조암을 찾는 루틴이 있고, 일 년 한두 번 108기도하는 정도였다. 기도보다는 역사문화 답사 목적의 사찰기행이 훨씬 많았다. 나의 첫 동참인 7월 일정은 강원도 금강산 건봉사, 화암사였다. 금강산은 북한 쪽에 있는 산인데 우리 땅에도 금강산이 있다니 호기심이 컸다. 미리 검색해보니 강원도 고성에 있으며 우리나라 동해안의 최북단이자 금강산의 최남단에 있는 절이었다. 장마 끝이라 비가 오락가락하는 날씨였고, 가는 동안 보게 된 강이나 작은 시내조차도 싯누런 큰물이 넘실대고 있었다. 대구에서 거의 5시간 가까이 소요되는 먼 곳이었다. 관광버스 두 대에 꽉 찬 동반들은 대부분 나이 지긋한 여신도들이었다. 절에 도착하면 그들은 모두 곧바로 대웅전, 극락전, 삼성당을 차례로 찾아들어가 정성껏 절을 하고 기도를 올렸다. 나는 삼배 정도만 하고는 절의 역사와 문화재를 찾아 기웃거렸다. 건봉사에는 사명당의승병기념관과 만해 한용운기념관이 있어 그곳에서 더 오래 머물게 되었다. 화암사는 절 이름대로 우리나라 구비설화의 대표적 화제(話題)인 쌀바위 전설이 있는 절이었으며, 과연 절 건너 야트막한 산 위엔 매우 큰 쌀바위가 있었다. 50년 국문학을 공부했지만, 몰랐다. 이제야 이런 인연으로 이곳엘 올 수 있다니, 몰라서 부끄러웠고, 이제라도 알게 되어 다행이었다. 세상엔 정말 배우고 공부해야 할 곳이 너무나 많다. 공부한답시고 안다고 나섰다간 큰일 날 뻔했다는 깨달음을 얻었다. 첫 시작의 강렬함은 이후의 일정엔 되도록 빠지지 않는 열정을 키웠다. 더구나 먼 여행의 동반들이 재밌고 좋았다. 차 안에선 각자 챙겨온 간식들이 좌석의 앞뒤로, 옆으로 넘나들며 나누어지기 바빴다. 내가 가져간 과일 몇 개를 나누어 덜면 가벼워질 줄 알았던 가방이 더욱 무거워지는 따뜻한 마법. 얼마 되지 않은 동참금을 내면 아침과 점심을 실하게 먹고-강원도는 멀다며 저녁식사까지 챙겨주었다- 먼 길 편하게 다녀올 수 있는 이런 기회가 어디 있으랴. 남편에게 자랑했더니 남자도 갈 수 있느냐고 물었다. 내 기억엔 남자는 없더라며 손사래를 쳤다. 팔공산 갓바위에 종종 올라 열심히 기도하시는 안사돈께 말씀드려 한 번 동행한 적은 있다.

2024-10-30

초대하지 않은 손님

피귀자 수필가 텔레비전에 흐르는 자막처럼 황금 들판이 지나간다. 풍성한 차창 밖의 풍경에 저절로 자동차의 속도가 줄어들었다. 네모반듯하게 경지 정리된 논 속의 벼들이 옹골차게 익어가는 모습은 농부가 아니더라도 배가 부르다. 오래보아도 질리지 않는 따뜻한 풍경. 저리 윤나게 가꾸자면 농부의 다리는 더 가늘어지고 손은 더 거칠어졌을 게다. 한집의 논인 냥 고르게 익어가는 들판에 유독 삐죽 올라온 식물이 눈에 띄었다. 고개 숙인 벼보다 한 뼘씩은 높이 고개를 바짝 쳐든 것은 바로 농민들의 골칫거리, 벼의 천적 ‘피’였다. 꽃보다 더한 열정으로 꽃밭을 점령하는 풀처럼 위세가 당당했다. 서로 다른 목소리로 합창이 되지 못하는 논. 피가 벼보다 키가 큰 이유는 햇빛을 많이 받으려고 경쟁하듯 키를 키운다는 것이다. 가을이 익으면 우수수 몸부림치며 흘러내릴 저 몸, 내년을 더 걱정하며 어떻게 저 논에만 피가 저리 많을까 저마다 한마디씩 했다. 농부가 게으른 탓인가, 약을 치지 않고 유기농법으로 농사를 짓는 게 아닐까, 설전이 이어졌다. 딸의 긴 머리카락 사이에 섞여있는 흰 머리카락이 벼논의 피처럼 바짝 고개를 들었다. 아직 흰머리가 생기기엔 젊은 나이인데 임신을 하고 해산달이 가까워 몸조차 이기지 못할 정도가 되니 더 도드라졌다. 오죽 힘들면 저리 되었을까 눈이 아리다. 골고루 챙겨 먹지 않으면서 영양분을 나누느라 머리카락까지 저리 되었으리라 생각하니 소화가 되지 않았다. 저릿한 마음을 사위 앞이라 내색도 못하고 자꾸 딸의 머리만 쓸었다. 큰 외손자가 아홉 살이 되도록 동생을 보지 않아 무던히 애를 태웠었다. 아이 하나도 제대로 키우려면 여간 힘든 게 아니라며 둘째 낳을 생각을 하지 않아, 그래도 둘은 되어야 한다고 타일러 보았지만 더 이상 어쩔 도리가 없었다. 사돈댁에서도 간절히 원하는 것 같았고 남편도 본인은 뒷전에 있으면서 나를 통해 채근을 하는 세월이 그렇게 흘러간 것이다. 다행히 시간이라는 더딘 처방, 완화 처방이 효과를 보아 모두 감사하고 기뻐했는데 딸이 힘들어하는 모습은 지켜보기가 힘들었다. 해산일이 가까워지자 앉기조차 힘들어하는 딸을 보며 한 숟가락이라도 더 먹이려고 애를 써 봐도 그마저도 쉽지 않았다. 대신 해줄 수 있는 집안일과 큰손자 보는 일에 성심성의를 다하는 것이 고작이었다. 둘째 손자를 안자 힘들었던 시간은 사라지고 웃음이 떠나지 않고 활짝 핀 꽃이 되어 켜를 이룬다. 고통과 인내의 연속이 끝나고 걸어온 길에 흔적 하나를 더 보탠 딸네 가족의 모습이 더없이 아름답다. 셋보다 넷의 조화가 뿌듯하다. 딸이나 사위도 참 잘한 선택임을 뒤늦게 기뻐하고 있다. 갓난아기가 뿜어내는 기쁨의 파동이 온가족을, 친척들까지 들뜨게 한다. 연일 소리 없이 봄이 핀다. 봄바람에 돋아나는 새싹처럼 연한 살결의 손자는 쌔근쌔근 잘 자고 엄마 젖도 잘 먹으며 하루가 다르게 잘 자란다. 하지만 수유 때문에 염색도 못하니 한숨을 먹으며 자란 흰 머리카락은 얼굴이 점점 더 커져간다. 드디어 딸의 머리카락이 빠지기 시작했다. 해산 후 어느 정도 지나면 일어나는 현상이라지만 쓸어낼수록 늘어나는 긴 머리카락이 애잔한데 빠지는 건 검은 머리카락뿐이다. 흰색은 뻣뻣이 나 여기 있소, 기세가 더욱 등등하다. 익어가는 벼논의 불청객 피를 보는 농부의 마음도 이러하지 않았을까. 날마다 빠지는 검은 긴 머리카락을 치우며 흰 머리카락이나 빠지길 바라지만 어쩌랴. 그 흰 머리카락마저 귀해질 때가 오리니. 검고 희고를 떠나 빠지는 자체가 애석해질 때가. 벼논의 제초제처럼 흰머리에는 염색약이 있지 않은가. 먹을 것이 귀한 시절엔 요긴한 먹을거리가 되기도 했던 피(陂). 하지만 요즘은 천덕꾸러기 초대하지 않은 손님이 된 지 오래다. 농부가 얄미운 피를 뽑듯 뽑아버리고 싶었던 딸의 흰 머리카락. 하지만 한 때는 찬 가슴 데워준 열정의 몸, 나이가 부피를 키워갈수록 염색할 수 있는 그 흰 머리카락마저도 소중해진다지 않은가. 부풀렸던 마음속 미운 풍선을 터트리기로 했다.

2024-10-30

독도, 누가 흔드나

장규열 고문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 2차 세계대전을 마감하면서, 연합국들과 일본이 체결한 조약이다. 미국, 영국, 소련 등 관련국들이 참여하여 서명하고 1952년 4월에 공표되었다. 한국전쟁 중이었던 대한민국과 북한은 어느 쪽이 한반도를 대표하는지 불분명하다는 핑계로 초대도 받지 못하였다.‘일본은 한국의 독립을 인정하고 제주도, 거문도, 및 울릉도를 비롯한 한국에 대한 모든 권리와 소유권 및 청구권을 포기한다.’ 제2조 이 한 줄에 ‘독도’가 들어있지 않다면서, 일본은 지금껏 독도의 영유권을 주장한다. 독도가 일본의 영토로 ‘남은’ 증거라는 것이다. 저 조항의 해석은 물론, 조약이 대한민국의 영토주권에 미치는 영향에 대하여 우리의 입장을 분명히 해야 한다. 신한일어업협정. IMF사태 복판이었던 1998년에 체결되어 이듬해 발표된 대한민국과 일본 간의 어업협정이다. 협정이 양국 간에 설정한 ‘중간수역’에서는 두 나라의 국민과 어선이 상대국의 제한을 받지 않는다. 문제는, 대한민국의 영토여야 할 독도가 중간수역에 들어가 두 나라가 함께 관리하는 지역처럼 되어버렸다. 영토라면 당연히 누려야 할 배타적경제수역(EEZ)을 설정하지 않고 중간수역에 빠진 꼴이 된 것이다. 일본이 대한민국 영토 독도의 영유권적 지위를 최소 절반이라도 흔들 수 있는 빌미를 남긴 셈이다. 중간수역에 떨어진 독도의 운명은 누가 돌아보는가. 우리가 독도를 생각하며 다분히 정서적이며 감상적인 ‘독도는 우리땅’을 부르고 있을 때, 일본이 조직적인 논리로 그들의 주장을 뒷받침할 근거들을 모으며 국제적 분쟁거리로 독도문제를 준비하고 있다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전쟁의 참상과 IMF사태의 난관을 기억하는 일에도 몸서리를 치겠지만, 그 와중에 ‘우리땅 독도’의 운명이 위태로울 움직임들이 있었다는 걸 기억해야 한다. 샌프란시스코 조약이 뿌리깊은 역사를 배경으로 하는 ‘대한민국의 섬 독도’를 흔들 수 없음을 체계적으로 조리있게 세계만방에 고해야 한다. 신한일어업협정은 그야말로 어업에 관한 나라 간의 약속으로 대한민국 독도의 영토적 지위와는 아무 상관이 없음도 분명히 짚어야 한다. 대한민국의 목소리가 적절하게 반영되지 않았던 샌프란시스코 조약이나 지극히 지엽적인 어업을 대상으로 하는 신한일어업협정이 대한민국 영토 독도의 영유권적 지위를 침탈할 수 없음을 국제사회에 천명해아 한다. 국익의 관점에서 일본이 우리의 땅 독도의 지위를 흔드는 행태는 단호하게 막아야 한다. 일본은 중고등학교 교과서에 독도를 일본땅으로 가르치고 있다. 최근에는 독도를 일본땅으로 표기한 관광지도를 서울 한복판에서 배포하였다. 경상북도와 울릉군 등에서 확고한 독도 정책을 세우고 다양한 이벤트를 펼쳐 효과적으로 그들의 헛된 생각을 막아내야 한다. ‘독도는 우리땅!’을 끊임없는 다짐과 구호로 간직하면서, 구체적이며 실증적인 논거와 실효적인 수호논리를 확보해야 한다. 일본 뿐 아니라 우리 안에도 혹 독도를 가벼이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지 경계해야 할 일이다. 독도는 누가 뭐라고 해도 대한민국의 영토가 아닌가.

2024-10-30

돈이 있어야 결혼하는 세상

홍성식 (기획특집부장) 20세기 한국사회. 결혼은 삶의 필수항목에 가까웠다. 대부분의 청년들은 20대 중후반, 늦어도 30대 초반이 되면 친구들의 결혼식 참석으로 주말이 분주했다. 부어라 마셔라 또래가 모인 피로연도 시끌벅적했다. 세태는 급격하게 변화했다. 21세기에 들어선지 24년. 이제 20~30대에게 결혼은 ‘선택’이 됐다. “월급을 모두 가져다주고, 가사까지 도우면서도 잔소리나 듣는 결혼을 왜 하냐”고 냉소하는 젊은 남성과 “내가 무엇 때문에 남의 엄마, 아버지까지 신경 써서 모실 것인가” 회의하는 여성들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실상 기자의 주변을 둘러봐도 30대, 40대 미혼남녀가 흔전만전이다. 억지로 이성을 만나 부부의 연을 맺겠다는 사람들이 드물어지고 있다. 이는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엄연한 현실. 남녀가 함께 같은 공간에서 생활하며 미래를 설계하는 결혼에 관한 환상이 무너진 것에 더해 갈수록 피폐해지는 한국의 경제 상황도 ‘결혼 사양’의 냉소적 분위기를 심화시킨다. 얼마 전 한 여론조사업체의 발표에 따르면 성인 남녀 10명 중 9명(89.6%)은 ‘한국은 돈이 없으면 결혼하기 힘든 사회’라고 인식하고 있었다. 같은 조사의 응답자 82.9%는 “결혼은 개인의 선택”이라고 답했다. 결혼에 관해 부정적 시각을 가진 응답자들은 ‘안정적 주거 마련의 어려움’(57%)과 ‘경제적 상황이 여유롭지 못함’(41.4%)을 결혼이란 장벽이 높아 보이는 이유로 지목했다. 약간의 과장을 보태면 ‘돈이 있어야 결혼을 하고 아이도 낳는 세상’이 도래한 것이다. 결혼식장에 나란히 선 신랑, 신부를 보기 힘들어진 시대가 가까워졌다. 아니 이미 왔는지도 모른다. /홍성식(기획특집부장)

2024-10-30

추상은 현대미술의 위대한 발견

20세기 초 모더니즘 미술의 가장 혁신적인 미학적 발견은 추상(Abstract)이다. 고전미술은 이야기나 사건을 묘사하며 인물이나 대상의 외형을 섬세하고 정교하게 모방했다. 반면 추상미술에서는 구체적인 형체를 알아차릴 수 없고 무슨 내용을 전달하는지 정확히 읽어내기 어렵다. 이처럼 대상의 구체적인 형상을 모방하지 않는 미술을 추상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미술가들은 어떻게 대상을 그리지 않으면서도 미술이 가능하다는 것을 발견했을까? 추상미술을 이해하려면 추상 이전의 미술이 정립한 미술의 규범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고전 미술이 수백년 동안 추구했던 가장 중요한 가치는 ‘모방’과 ‘재현’이었다. 눈으로 경험하는 세계, 우리가 시각적으로 경험하는 대상의 외형을 그럴 듯하게 모방하는 것이 중요했다. 가령 사과를 그린다고 했을 때 누가 봐도 사과를 알아볼 수 있는 형태 그리고 그 형태에 사과의 색을 입혔다. 우리의 시각적 습관은 대상의 형태를 특정한 색과 연결 짓는다. 하늘은 하늘색, 나무는 나무색, 바다는 바다색 하듯이 하나의 대상은 그 대상의 고유한 색과 강하게 연결되어 있다. 고전미술에서는 작품의 형식 뿐만 아니라 내용 또한 규정되어 있었다. 고전미술을 규범화한 이른바 아카데미 미술은 회화를 주제에 따라 역사화, 인물화, 풍경화, 정물화, 풍속화로 분류하고 등급을 나누었다. 성서나 신화에 등장하는 위대한 인물들의 영웅적인 이야기를 담은 역사화가 가장 높은 등급을 차지했고 반면 평범한 사람들의 소소한 일상을 담은 풍속화는 가장 낮은 등급의 그림으로 여겨졌다. 현대미술은 고전미술의 이러한 틀을 하나하나 부정하며 미술 본연의 새로운 가치를 발견한다. 예를들어 인상주의는 시각적 경험을 직접적이고 즉각적으로 화면에 담으려는 시도를 했고 야수파는 대상과 고유색의 경직된 관계를 끊으면서 색채가 지닌 미적 가치를 발견했다. 야수파는 원근법적 질서에서 벗어나 새로운 회화적 공간을 창조했고, 표현주의는 그릴 대상을 외부에서 찾는 대신 창작자의 내면과 감정을 작품에 표현했다. 현대미술이 전개되면서 추상을 향한 움직임이 다양한 방식으로 나타난다. 추상미술의 탄생은 현대미술의 문을 연 모더니즘의 여러 발견들이 종합적으로 집결된 결과이다. 추상회화의 가능성을 가장 먼저 알아차린 사람은 러시아 출신으로 독일에서 활동한 화가 바실리 칸딘스키이다. 칸딘스키는 1913년 출판한 ‘회상록 (R00FCblicke)’에서 다음과 같은 경험을 기록했다. 어느 날 야외 스케치를 마치고 어둑해 질 무렵 작업실로 돌아왔는데 이제까지 한 번도 본 적 없는 너무나 아름다운 그림 한 점을 본 것이다. 그림에는 어떤 대상도 그려지지 않았고 오로지 색과 면으로만 구성되어 있었다. 이 그림을 본 칸딘스키는 큰 감동을 받았다고 한다. 그런데 다음 날 작업실을 찾은 그는 전날 본 그림이 거꾸로 세워진 자기의 그림이라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그리고 알아볼 수 있는 형체나 형태가 없더라도 선과 색의 조합만으로도 아름다운 그림이 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 경험으로 칸딘스키는 추상 미술의 가능성을 직감하게 된다. 음악에 조예가 깊었던 칸딘스키는 음악이 지닌 추상성을 잘 알고 있었고 신지학(Theosophy)의 이론을 자신의 미술에 접목시켜 색과 색, 형태와 형태, 색과 형태가 만나 불러 일으키는 조화 부조화 긴장 균형 등과 같은 정신현상을 이론적으로 정리하고 그것을 추상회화의 형식으로 표현했다. 추상미술이 출현하기까지 미술가들의 실험 못지 않게 이론가들의 저술 활동 역시 중요한 역할을 했다. 심리학적 접근 방법으로 ‘감정이입’을 미학적으로 해석한 테오도르 립스, 예술의 내적 동인을 ‘예술욕구’로 설명한 알로이스 리글, 그리고 결정적으로 인간의 내적 불안이 ‘추상충동’을 일으켰다는 빌헬름 보링어의 예술이론이 추상미술 태동에 중요한 영향을 끼쳤다. /김석모 미술사학자

2024-10-29

생토란 들깨나물

서리가 오기 전, 찬 바람이 불기 시작하는 10월은 각종 채소를 말려 보관하기에 가장 좋은 계절이다. 호박, 박나물, 토란대 등을 만들어 두기에도 적합하다. 여름철에는 햇볕이 강하고 습도가 높아 채소가 쉽게 상하기도 하지만, 가을의 신선한 기온은 채소를 말려 보관하기에 안성맞춤인 때이다. 이렇게 말린 채소는 맛과 영양이 농축되어, 제철이 지나도 그 풍미를 즐길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특히 말린 나물에는 나물의 본디 성분에 햇빛이 더해지기 때문에 천연의 비타민D가 생겨난다는 사실을 기억해 둘 필요가 있다. 땅의 달걀이라는 토란(土卵)이 제철이다. 고사리나 산나물, 고춧잎 등 대부분의 채소를 말릴 때는 삶아서 말리지만, 토란대는 가을볕에 생(生)으로 말리는 게 특징이다. 생토란대의 고유한 향과 부드러운 식감도 이맘때가 아니면 절대 맛보기 힘들다. 경상도에서는 토란대 수확철이 되면 토란을 다듬을 때 나오는 속대를 삶아 초장에 찍어먹는 ‘토란속대 숙회’를 별미로 친다. 토란대에 둘러싸인 속대는 특유의 노란색을 띠고, 삶아 놓으면 부드러운 식감이 그야말로 일품이다. 봄철 새순나물 별미로는 두릅을 손꼽는다면, 가을철은 ‘토란속대’라고 할 정도로 귀한 나물로 대접 받아왔다. 토란에 풍부한 식이섬유는 장운동을 활성화하여 장내 불순물 배출과 염증 완화에 효과적이다. 특히 토란대에는 베타카로틴과 비타민A 등의 다양한 항산화 성분이 함유되어 있어, 세포의 산화를 촉진하는 활성산소를 제거 하는데 도움을 준다. 이러한 항산화작용은 면역력 강화에 이로울 뿐 아니라, 불면증 개선에도 긍적적인 영향을 미친다. 토란은 이러한 효능 덕분에 오래전부터 가을철 건강을 지키는 귀한 식재료로 널리 인정받아 왔다. 예로부터 우리 조상들이 즐겨 먹어온 토란은 오랜 세월동안 우리의 식문화 속에 깊이 자리해 있는 관계로 조리방식이 지역에 따라 다양하다 서울. 경기 지방에서는 토란의 뿌리인 알토란을 사용해 시원한 탕을 끓여 명절 음식으로 즐겼으며 그 맛이 특별해 식탁에서 빼놓을 수 없는 요리로 자리 잡았다. 경상도 지방에서는 주로 토란대 나물로 제사나 명절음식으로 올라가다가 이후 육개장이나 매운탕, 민물요리 등 찌개에 빠지지 않는 식재료로 쓰여졌다. 1670년경 조선시대에 쓰인 ‘음식디미방’에서는 토란을 이용한 독특한 ‘수증계(酥篜鷄)’라는 요리가 소개되어 있다. 이 요리는 닭고기를 삶아 그 육수에 알토란을 함께 삶은 뒤, 닭고기는 결대로 찢어 담고 그 주변에 닭 육수에 익힌 알토란을 돌려 담는 방식으로 준비된다. 시대와 세대를 거쳐 전수된 토란을 활용한 조리법은 이제 다양하다. 특히 토란 요리에 들깨 가루를 함께 넣으면 구수한 맛이 한층 더해질 뿐 아니라, 토란대에 부족한 불포화지방산인 오메가3을 보충해 줄 수 있어 맛과 영양 두 가지를 모두 챙길 수 있는 훌륭한 음식 궁합이 된다. 가을 제철에만 맛볼 수 있는 신선한 생토란을 활용해 즐겨보는 것도 가을의 또 다른 묘미다. ◆생토란들깨나물 △재료 : 데친 생토란 600g, 들깨가루 3큰술, 다진 마늘 1큰술, 국간장 2큰술, 고운 소금 1작은술, 물 2/1컵, 참기름 1큰술, 통깨 약간 △만드는 법 1. 토란 손질 : 토란의 껍질을 벗기고 한입 크기로 잘라준다. 그런 다음 끓는 물에 토란을 넣고 데친 후 찬물에 헹궈 물기를 빼준다. 2. 토란 볶기: 데친 토란 600g, 마늘 1큰술, 소금 2/1작은술, 국간장 2큰술, 참기름 1큰술을 함께 넣어 조물조물 간을 맞춘 다음 약불로 1분 정도 더 볶아 준다. 3. 들깨가루 넣기 : 2번의 토란이 부드럽게 숨이 죽으면 육수 또는 생수를 2/1컵 부어주고, 국물이 뽀얗게 돌도록 들깨가루 3큰술을 고루 뿌려 준다. 4. 마무리: 국물과 들깨가루, 그리고 토란이 서로 잘 어우러지게 저어준 다음, 약불에서 국물이 자작해지도록 5분 정도 더 끓여 준다. 5. 완성 : 국물이 자작하게 졸아들면 그릇에 담아 통깨 또는 깨소금을 고명으로 뿌려 완성한다. Tip: 생토란 손질법 토란대를 고를 때는 굵게 자라 탄력 있는 것을 고르는 것이 좋다. 겉면이 깨끗하고 빛깔이 진한 녹색을 띠고 있어야 신선한 토란대이다. 토란 줄기를 실온에 하루 정도 놓아두면 약간 시들면서 수분이 줄어들어 껍질을 쉽게 벗길 수가 있다 . 토란대의 껍질을 벗길 때는 비닐 장갑을 착용하는 것이 좋다. 토란대에 뮤신이라는 성분이 있어 피부에 닿으면 일시적인 가려움증이 생길 수 있기 때문에 장갑을 끼고 손질하는 것이 안전하다. 박정남 전통음식칼럼니스트 △대구가톨릭대학교 대학원 외식산업학 박사 △안동 1호 조리기능장 △안동종가음식체험관 연구원장 △대구가톨릭대학교 산학겸임 교수 △(주)예미정별채 수석셰프 겸 대표 /박정남 전통음식칼럼니스트

2024-10-29

플라잉카 시대

우정구 논설위원 2020년 호주에선 우버에어가 처음 등장해 선을 보인 적이 있다. 우버의 항공택시는 옥상에서 옥상으로 승객을 이동시키며 요금은 택시요금 정도 받는다. 멜버른 공항에서 시내까지 육로로 1시간 걸리던 거리는 항공택시를 이용하면 10분이면 도착된다. 만화나 공상영화에서나 볼 수 있던 하늘을 나르는 택시가 곧 현실로 등장할 전망이다. 항공택시, 플라잉카 등으로 불리는 도심항공교통(UAM)은 이미 일부 선진국에서는 상용화를 준비하고 있고 우리나라도 2025년 상용화를 목표로 추진 중이다. 대구 엑스코에서 열린 대구 2024 미래혁신기술 박람회(FIX 2024)에서는 UAM 특별관이 별도 마련됐다. 가로 14m 전장 7m의 실물 크기 UAM이 전시돼 전시장을 찾은 많은 이들의 비상한 관심을 모았다. UAM은 전동 수직 이착륙기를 활용해 지상 450m 정도의 저고도 공중에서 이동하는 도심교통 시스템을 이르는 말이다. 육상과 지하 등 도심교통이 한계에 달하면서 나타난 신개념 교통수단이다. 배터리나 모터를 이용하기 때문에 친환경적이다. 초기에는 조종사가 탑승하지만 성숙기에 들면 자율비행 방식으로 운항할 것으로 전망한다. 도심에서 30∼50㎞ 거리를 오가는 항공택시지만 육지의 택시처럼 아무 곳에서나 탈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일종의 정류장인 수직 이착륙장이 필요하다. 대형건물의 옥상과 넓은 공원 등이 정류장 후보지로 검토된다. 첨단기술의 발달은 인류를 어떤 미지의 세계로 인도할지 아무도 쉽게 예측할 수가 없다. 하늘을 나는 플라잉카 시대가 멀지 않은 시간에 현실화 될 것 같아 가슴이 설렌다. 신종 교통수단인 UAM은 우리의 삶을 어떤 모습으로 바꾸어 놓을 지 궁금하다. /우정구(논설위원)

2024-10-29

세계가 人才전쟁인데 우리만 ‘의대블랙홀’

심충택 논설위원 포스코그룹이 포항시민들의 반발에도 수도권(성남 위례지구)에 미래기술연구원 분원(글로벌센터) 건립을 추진하고 있는 주요 이유는 핵심인재 확보 때문이다. 지난해 4월 포항산업과학연구원(RIST)에 둥지를 튼 미래기술연구원 본원에서도 기술총괄(CTO) 김기수 원장의 주도하에 S급 연구원들이 AI(인공지능)컨트롤타워와 이차전지소재·수소저탄소연구소에 소속돼 미래 기술 확보에 여념이 없지만, 향후 글로벌시장에서 포스코가 생존하려면 지속적인 우수인력 확보는 필수적이다. 최근 최상목 경제부총리 일행이 포항제철소를 방문했을 때 포스코측은 2030년까지 글로벌센터를 비롯한 그룹 인프라 분야에 16조원을 투입하겠다고 발표했다. 미래산업을 이끌 핵심인재들을 글로벌센터에 유치한 후 수도권 우수대학과 연구기관, 미국 실리콘밸리 등 해외 연구 거점과 협업해 기업의 기술경쟁력을 키워나가겠다는 구상이다. 포스코는 최근 미래교통수단인 도심항공교통(UAM) 수직이착륙장(버티포트) 기술연구 개발사업에도 뛰어들었다. 포스코뿐만 아니라 최근 국내 대기업들은 인재확보에 사운(社運)을 걸다시피 하고 있다. 최첨단 산업은 핵심 원천기술이나 초격차기술을 보유한 인재를 선점하지 못하면 시장에서 순식간에 도태되기 때문이다. 인공지능을 비롯한 디지털 분야를 예로 들면, 세계 주요국(미국 중국 일본 유럽)과 빅테크들이 이 분야 인재를 확보하기 위해 불꽃 튀는 경쟁을 벌이고 있다. 국가가 직접 나서서 삼고초려를 하고 수백만 달러의 연봉을 제시해야 인공지능 분야 인재를 스타우트 할 수 있다고 한다. 테슬라 최고경영자(CEO)인 일론 머스크가 “인공지능 인재 쟁탈전은 지금껏 본 것 중 가장 미친 전쟁이다”고 말했을 정도다. 그저께 동아일보 보도에 의하면, 빅테크 박사급 연구원의 평균 연봉은 오픈AI가 86만5000달러, 앤스로픽 85만달러, 테슬라 78만달러, 아마존 72만달러, 구글브레인 69만5000달러로 국내 대기업보다 5~10배가량 높다. 이러니 삼성, LG, SK 등 한국을 대표하는 기업들도 핵심인재 확보에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다. 빅테크들의 인재유치 경쟁이 치열해지자 우리나라 이공계 인재의 국외이탈도 러시를 이루는 모양이다. 2013년부터 2022년까지 10년간 해외로 떠난 이공계 인재가 30만명을 넘어섰다는 통계가 있다. 매년 3만~4만명에 달하는 이공계 인재가 국내 기업이나 연구소가 아닌 외국행을 택하는 것이다. 더 큰 문제는 우리나라 인재들의 이공계 기피현상이다. 특히 올해는 정부가 내년 대입시부터 의대정원을 대폭 늘리면서 ‘의대블랙홀’ 규모가 점점 커지고 있다. 의대에 진학하기 위해 명문대 이공계 학생들이 다시 수능을 보기 위해 자퇴하는 케이스가 급증하고 있다고 한다. 과학·산업계는 인재들이 너도나도 의사가 되기를 희망하면 연구인력을 어디서 구할지 고민이 많다. 해외 빅테크들이 막대한 자금력으로 전 세계 연구 인력을 쓸어가고 있는데, 우리 정부는 오히려 이공계 인재양성의 걸림돌이 되는 일만 하고 있으니 걱정이다.

2024-10-29

빈자리를 채우는 방법

최근 음악계의 동향 중 가장 반가웠던 것은 미국의 밴드 린킨파크의 복귀 소식이었다. 나는 이것이 가능할 것이라 생각하지 않았다. 린킨파크가 그 여정을 멈춘 까닭은 보컬리스트이자 핵심멤버인 체스터 베닝턴이 세상을 떠났기 때문이다. 린킨파크가 돌아오기 위해서는 그를 대체할 수 있는 보컬리스트를 찾는 것이 필수적인 일이라고 생각했고 이는 불가능하다고 믿었다. 일정하게 쭉 뻗는 가운데 적당히 목을 긁어서 파괴력을 극대화한 그의 보컬 스타일은 아무나 흉내 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보통 사람이 따라하다가는 한 곡도 채 부르지 못하고 쇳소리 섞인 기침을 연신 내뱉게 될 것이 분명하다. 그는 존재 자체가 기적이었고, 기적이 두 번 일어나기란 쉽지 않은 일이었다. 린킨파크가 돌아온다고 했을 때 나는 밴드 저니의 사례를 떠올렸다. 체스터 베닝턴 이전에 존재했던 불세출의 보컬 스티브 페리가 저니를 떠난다고 했을 때 많은 사람들이 이제 저니는 재기하기 힘들 것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스티브 페리가 누구인가. 1980년대를 주름잡던 당대 최고의 팝스타들이 모여 녹음한 ‘위 아 더 월드’ 녹음 현장에서도 단연 발군의 기량을 뽐냈던 세계 최고 수준의 보컬리스트가 아니었나. 그런데 저니는 뜻밖의 장소에서 스티브 페리의 완벽한 대체자를 발견해냈다. 바로 필리핀의 식당과 나이트클럽에서 노래를 부르던 무명의 보컬 아넬 피네다였다. 지구를 반 바퀴 돌아 동양의 언더그라운드에 그들이 찾던 보석이 있으리라 저니의 멤버들은 상상이나 할 수 있었을까, 그런데 그들은 결국 찾아내고 만 것이다. 그런 기적이 또 일어났나 싶었는데 그런 일은 없었다. 린킨파크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체스터 베닝턴의 빈자리를 채워나가겠다고 선언했다. 린킨파크의 새로운 보컬리스트는 뜻밖에도 여성이었다. 새 멤버 에밀리 암스트롱의 보컬이 체스터 베닝턴의 그것과 공통점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여성의 보컬로 남성의 보컬을 대체한다는 것은 상상도 하지 못할 일이었다. 그들의 라이브 영상을 찾아보았더니 ‘페인트’도, ‘인 디 엔드’도 내가 알던 것과는 전혀 다른 곡이 되어 있는 것 같았다. 그런데 과거의 향수를 잠시 미뤄두고 다시 들어 보니 나름 신선한 느낌이 들고 또 다른 매력을 가진 곡으로 재탄생했다는 느낌이 들기도 했다. 그들이 함께 만들어 발매한 신곡은 여태까지 린킨파크가 걸어온 것과는 다른 궤적을 그리고 있었지만 분명 진보된 모습을 보여 주고 있었다. 강백수 세상을 깊이 있게 바라보는 싱어송라이터이자 시인. 원고지와 오선지를 넘나들며 우리 시대를 탐구 중이다. 커다란 부재가 발생했을 때 과거에 존재했던 대상과 정확히 일치하는 대체재를 찾는다면 그것은 가장 편리한 방식의 대처가 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반드시 그것만이 옳은 방식인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린킨파크의 음악을 듣는 내내 머릿속을 맴돌았다. 전혀 다른 성격의 대체재로 부재를 극복하고 새로운 길을 모색하는 방안도 존재한다는 사실을 그들을 통해 배울 수 있었다. 살다 보면 소중한 무언가를 잃게 되는 일이 종종 발생한다. 그것은 사람일 수도 있고 물질적인 것일 수도 있고 무형의 어떤 것일 수도 있다. 무언가 잃으면 그것과 딱 들어맞는 것을 찾게 되고, 세상에 그런 것은 없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 깊은 좌절에 빠지기 일쑤인데 그럴 필요가 없었구나. 상실을 기점으로 인생의 방향을 전환할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어쩌면 때로는 그 부재를 비슷한 성격의 대체재로도, 다른 성격의 대체재로도 메우지 않는 것을 선택하는 것이 최선일 때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대뜸 떠오른 이들이 한국의 보이그룹 중 내가 가장 멋지다고 생각하는 팀인 ‘샤이니’이다. 그들 역시 걸출한 메인보컬을 안타깝게 잃었지만, 앞서 언급한 것과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대중 앞에 돌아와 활동을 하고 있다. 최근 그들의 모습을 보면서 남은 네 명의 멤버들이 5인조 시절 때보다 비약적으로 발전한 실력과 존재감으로 메울 수 없을 것처럼 보였던 구멍을 훌륭하게 메우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메인보컬이 아니었던 모든 멤버들이 메인보컬의 역할을 수행해내는 모습을 보며, 그들이 얼마나 필사적으로 노력했을지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되었다. 김광석의 ‘서른 즈음에’에는 ‘매일 이별하며 살고있구나’라는 노랫말이 등장한다. 우리는 매일 무언가를 떠나보내고, 잃고, 되찾지 못하며 남은 인생을 살아갈 것이다. 그 상실을 극복하는 방법은 내가 최근 찾은 것만 세 가지가 있다. 잃은 것과 딱 들어맞는 것을 찾는 것, 전혀 다른 대체재를 찾고 새로운 길을 모색하는 것, 여전히 남아있는 자원들을 적극 활용하고 발전시키는 것. 마냥 슬퍼만 하고 좌절만 하고 살기에는 인생이 너무 길다.

2024-10-28

눈을 보고 말을 믿고

최근 새롭게 생긴 습관이 있다. 사람들의 눈을 관찰하는 것. 소심하고 낯을 가리는 성격 탓에 처음 보는 사람의 눈을 쳐다볼 자신은 없지만, 누군가와 한 뼘 가까워졌다고 느끼면 나의 시선은 거침없이 그곳으로 향한다. 눈은 누구도 속일 수 없는 명명백백한 세계처럼 느껴진다. 파도처럼 일렁이는 눈동자를 마주하노라면 온 우주가 그 안에 담겨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러한 버릇은 다름 아닌 나 자신을 돌아보는 것부터 시작되었다. 바쁜 나날 속에서 내 안의 괴로움과 상반되게 잘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듣는 요즘이다. 정신없이 일하는 것을 하나의 미덕으로 보는 우리 사회의 기조 때문일까. 목표를 성취하기 위해서 일상을 전부 버려서라도 일에 매달리는 모습에 오히려 박수를 받으면서 ‘내가 아니면 안 돼’라는 강박에 사로잡히기도 했다. 내 안에는 웅크리고 울고 있는 사람이 있는데, 겉으로는 더 크게 웃고 더 빠르게 걸었다. 엉켜있는 내부를 타인에게 보여주고 싶지 않은 마음이었다. “고민 있어요?” 함께 일하는 동료의 질문이었다. 그 말을 들은 나는 무언가에 머리를 얻어맞은 기분이 들었다. 나는 내 앞에 놓인 업무를 잘하고 있다고 생각했고 나 자신을 증명하고 싶은 마음으로 최선을 다했다. 겉으로는 전투적인 기세로 일하고 있지만 심리적으로는 피로와 무기력증에 사로잡혀 있던 것을 모르는 건 아니었다. 그러나 타인이 그것을 눈치챌 것이라곤 생각하지 못했다. 입으로 뱉는 말은 얼마든지 거짓으로 꾸며낼 수 있다. “고민 같은 거 없어요. 하나도 힘들지 않아요.” 나는 그렇게 대답했지만, 상대는 계속해서 미심쩍음을 느꼈다. 나아가 어째서 내가 계속해서 거짓말을 하고 있는지 알고 싶어 했다. 안타깝게도 그에 대한 대답을 나는 알지 못했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단지 괜찮다는 말만 앵무새처럼 반복하는 것뿐이었다. 인간의 감정을 파악할 줄 안다는 것은 삶을 사는 데 필요한 정보를 습득할 수 있다는 것과 같다. 나 자신은 언제 기쁨과 충만함을 느끼는가? 무엇을 선택하고 또 무엇을 피해야 안정감을 느끼는가? 그것은 살아가며 필연적으로 맞닥뜨리는 선택지를 늘리거나 줄이는 일이 된다. 그렇게 자기 자신을 파악하는 일은 타인으로 확장될 수 있고 상대를 이해할 수 있는 시선으로 바뀌게 된다. 나는 힘들지 않다고 말했지만, 그것을 동료가 믿지 않은 이유는 내 안에 깊숙이 숨겨져 있는 무언가를 보았기 때문일 것이다. 정오의 소나기처럼 요동치는 눈동자를 포착한 순간 입 밖으로 나오는 모든 말은 거짓이 된다. 나는 계속해서 내 상태를 제대로 말해보려고 시도했지만 결국 실패하고 말았다. 어쩌면 그 실패야말로 나의 의도였을지도 모른다. 불명확한 감정들 사이에서 간신히 길어 올린 말은 나를 우려하는 동료에게 걱정을 끼치고 싶지 않다는 마음뿐이었다. 내게도 상대의 눈을 바라보는 습관이 생겼다는 것은 어떤 면에서 기만에 가까울지도 모른다. 나는 나를 들키고 싶지 않지만 상대의 진짜 마음을 들여다보고 싶다는 이기적인 욕망에서 기인한 행동이다. 그렇지만 알고 있다. 나는 결국 아무것도 알 수 없게 되리라는 것을. 폴 오스터가 말했던 것처럼. “누구도 경계를 넘어 다른 사람 속으로 들어갈 수는 없다. 누구도 자기 자신에게 다가갈 수 없다는 바로 그 간단한 이유로.” 문은강 ‘춤추는 고복희와 원더랜드’로 주목받은 소설가. 2017년 서울신문 신춘문예를 통해 작가로 등단했다. 안희연의 시 ‘나의 시드볼트’에는 이런 대목이 있다. “그는 귀신같이 내 눈빛을 읽는다/누가 누굴 구할 수 있다고 생각해? 신이라도 된 것처럼 말하네/너는 나의 진짜 얼굴을 본 적이 없어” “한 방울씩 물 떨어지는 소리가 들릴 거야, 그게 너의 영원이야”, “아무리 둘러보아도 물 새는 곳은 없다/그래도 물이 떨어진다” 시인이 표현하는 것처럼 우리는 영원히 ‘나의 진짜 얼굴’을 볼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어디선가 한 방울씩 물 떨어지는 소리는 들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어디서 물이 새고 있는지 찾아봐도 눈으로는 발견할 수 없는 아주 미세한 틈을 통해 우리는 매일 증발하고 있다. 그러한 기류를 눈치 채고 안부를 물어와 주는 동료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괜찮다고 말할 수 있는 근거는 충분하다. 오늘도 나는 상대의 눈을 바라본다. 그에 관해 무언가를 알거나 이해할 수 없다고 할지라도. 명확한 건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알지만, 그 안에 담긴 아름다움을 보는 것만으로도 상대에게 조금이나마 더 가까이 다가가고 있다는 기분이 든다.

2024-10-28

방언이라고 모두 시어가 될 옥돌은 아니다

이상규 경북대 명예교수 전 국립국어원장 조건어학회 사건 33인 가운데 한 분인 환산 이윤재 선생은 ‘조선어큰사전’ 편찬을 위한 기초 작업으로 사전의 올림말을 선정하는데 꼭 필요한 ‘사정한 조선어 표준말 모음’을 만들었을 뿐만 아니라 외래어를 선정하여 외래어 표기법의 기초를 마련하는데 크게 기여하였다. 당시 사전 올림말을 표준어로 한정하였지만 실제로 다양한 지역 방언을 조사하여 사전에 싣기 위하여 전국의 방언조사를 위해 최현배 선생이 작성한 ‘시골말 캐기 잡책’이라는 방언조사 질문지를 이용하여 전국 방언을 수집하였으며, ‘한글’잡지를 통해 조사된 자료를 연재하는 동시에 방학을 이용하여 경성에 있는 팔도 출신 대학생들에게 자기 고향말 수집을 독려하였다. ‘사정한 조선어 표준말 모음’을 만들기 위해 어떤 말을 표준어로 삼을 것인지를 결정하는 ‘표준어 발표식’에서 이윤재 선생이 설명한 글이 남아 있다. “이제 발표하는 ‘사정한 조선어 표준말 모음’은 조선어 학회에서 삼 년 전부터 조선어 표준어 사정 위원회를 조직하고, 이래 사정에 애써 오던 것입니다. 나는 이제 이 책의 내용에 대하여 말씀드리고자 합니다.”라고 하면서 표준어를 어떻게 선정할 것인지에 대한 원리원칙을 발표하였다. 상용어를 기준으로 하되 ‘같은 말’과 ‘비슷한 말’에 대한 기준을 세우는 매우 중요한 원칙도 제시하였다. ‘잠자리’의 경우, 이를 표준어로 하되 같은 말로는 ‘잠바리’, ‘잔자리’, ‘철갱이’, ‘철기’ 등과 같이 다양한 지역방언들이 나타난다. ‘같은 말’이라 함은, 한 사물에 꼭 같은 뜻이 있어 이렇게도 쓰고 저렇게도 쓰는 것이다. ‘잠바리’, ‘잔자리’와 같이 ‘잠자리’에 대한 음운론적인 변이형을 전등어(全等語)라 하여, 그 여러 개 가운데서 하나만 뽑아 표준어로 정하고, 남은 것은 다 버려야 한다. 대사전에 이렇게 다양한 방언들을 모두 실을 수 없기 때문이다. ‘잠자리’, ‘반자리’, ‘잠바리’와 같은 전등어 가운데 ‘잠자리’를 대표로 큰사전의 올림말에 싣게 되었다. 또 ‘갈구리’, ‘갈고리’, ‘갈쿠리’, ‘갈코리’, ‘갈구지’, ‘갈쿠지’, ‘갈고랑이’, ‘갈구랑이’, ‘갈코장이’, ‘갈쿠장이’ 등 십여 개나 되는 전등어도 있으나, 그중에서 한 개만 표준어로 세우고 그 밖의 것은 다 치워 버리는 것이다. 이렇게 음운론적으로 조금 차이가 되는 것만 있는 것이 아니라, ‘잠자리’에 대응해서 ‘철기’, ‘철갱이’, ‘철구’와 같이 형태는 전혀 다르되 ‘같은 말’도 있다. ‘범:호랑이’라든지, ‘옥수수: 강냉이’와 같이 소리가 아주 다르면서 뜻이 같은 말도 있다. ‘비슷한 말’은 얼른 보아서는 전등어로 보기 쉬우나, 실지 그 내용을 자세히 따지어 보면, 거의 같은 듯싶지만 어느 점으로든지 다른 것을 발견할 수 있고, 또 달리 쓰이는 때도 있으니, 이것을 각립어(各立語)라 한다. 곧 형태론적 변이형이라고 하는데 이러한 방언형은 지역적 특성으로 언어의 변화 시기와 방법의 차이 때문에 생겨나는 현상이다. 한반도 북방은 ‘벼’라고 하는데 동남방에서는 ‘나락’이라고 한다. ‘벼이삭’과 ‘나락이삭’, ‘볏단’과 ‘나락단’처럼 각립어는 새로운 어휘 합성을 하는 데까지 나타나 우리의 한국어를 보다 풍성하게 하는데 매우 중요한 기능을 담당하고 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는 표준어 사정 원칙 때문에 지역적으로 서울지역어가 아닌 때문에 ‘나락’은 방언이 되고, 사전의 올림말에서 구축당했다. ‘강냉이’는 그 분포지역이 워낙 넓은 덕에 구제되어, ‘옥수수’와 함께 표준어로 대접을 받는 행운을 차지했다. 1933년 맞춤법통일안이 만들어지고 조선어 대사전을 편찬하는 과정에서 조선어학회 회원들은 이처럼 매우 세심하게 표준어로 무엇을 올림말로 삼을 것인지 엄청난 노력을 기울였다. 이윤재 선생은 “표준어를 될 수만 있으면, 전 조선 각 지방의 사투리(方言)를 있는 대로 다 조사하여, 여기에 대조하여 놓는 것이 떳떳한 일이겠으나, 이것은 간단한 시일에 도저히 성취할 수 없는 것일 뿐더러, 분량이 너무 많아 인쇄에도 곤란을 면하기 어려울 것이므로, 그리 못된 것을 매우 유감으로 생각하는 바”라고 하면서 앞으로 방언을 살려서 지속적으로 우리의 국어를 보다 풍족하게 활용할 수 있도록 그 길을 열어 두었다. 따라서 방언에 대한 기본적 식견이 없이 마구잡이로 방언을 소리나는 대로 문학어로 끌어다 사용하는 것은 오히려 방언을 거칠고 남루한 언어로 밀쳐내는 일이나 다름이 없다. 특히 문학어로 사용하는 방언은 전등어와 각립어의 기준을 준수하여 잘 사용해야 한다.

2024-10-28

고대의 하늘을 훨훨 날아다녔던 날

나라(奈良)현 천리시에 위치한 천리대학에서는 10월 5일부터 6일에 걸쳐 이틀간, 조선학회가 열렸습니다. 조선학회는 무려 75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전통 있는 학회인데요. 저는 고도(古都)인 나라를 조금이라도 더 보기 위해서, 학회가 열리기 하루 전에 나라로 향했습니다. 아침도 굶고 7시에 시나가와역에서 교토행 신칸센을 탔습니다. 10시 30분쯤 나라에 도착한 제가 처음 향한 곳은 스케일이 큰 궁터와 오래된 사원으로 유명한 나라의 니시노쿄 지역이었습니다. 그 중에서도 가장 처음 향한 곳은 나라 시대 왕궁이 있던 헤이죠(平城) 궁터였는데요. 예전의 건축물 중에서는 정전에 해당하는 대극전이나 정문에 해당하는 주작문 정도만이 복원되어 있었습니다. 궁터에서 가장 볼만한 것은 1967년 유적이 발굴되어 1998년에 복원이 완료된 도인(東院)정원이었는데요. 제가 이 곳을 둘러볼 때는 관람객이 아무도 없어 아주 호젓했습니다. 혼자 정원을 둘러보고 있을 때, 그 곳의 관리자가 와서 자신이 한국을 여섯 번이나 방문했으며, 자신의 아내는 한국어를 배운다며 친근감을 표시했습니다. 한국의 역사에 관심이 많다던 그분은, 스마트폰을 꺼내 익산에서 찍은 미륵사지석탑 사진을 보여주기도 했는데요. 이 분은 도인정원이 일본식 정원의 원형이 되었으며, 한국으로 치자면 경주의 안압지와 비슷한 역할을 했던 곳이라고 설명해 주었습니다. 아주 핵심만 정확하게 짚어낸 좋은 설명이었습니다. 일본정원의 원형이 되어서인지, 도인정원이 일본 지폐에도 나올 정도로 유명한 우지시의 뵤도인과 비슷하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이후에는 버스를 타고 세계문화유산인 야쿠시지(藥師寺)로 이동했습니다. 야쿠시지는 국보인 동탑과 1981년에 재건된 서탑, 그리고 금당에 모셔진 약사삼존상으로 유명한데요. 처음 금당 양 옆에 있는 동탑과 서탑을 보았을 때, 나도 모르게 탄성이 터져 나왔습니다. 한국에서는 보기 어려운 목탑의 웅장함과 정교함이 정말 대단했던 것입니다. 또한 금당에 모셔진 일광보살과 월광보살은 너무나 요염하여, 불경스럽게까지 느껴질 정도였습니다. 가시지 않는 감흥을 안고 야쿠시지를 나와, 나라 관광의 거점이라 할 수 있는 나라공원으로 향했는데요. 버스정류장으로 향하는 길 옆에 토쇼다이지(唐招提寺)라는 사찰이 나타났습니다. 나라와 관련한 어떤 홍보물에서도 본 적이 없는 사찰이기에 저는 그냥 지나쳤습니다. 그런데 얼마를 더 가자 믿을 수 없는 광경이 펼쳐졌습니다. 글쎄 고대사를 다룬 빛바랜 책갈피 속에서나 보았던 전방후원분(前方後圓墳)이 눈앞에 나타난 것입니다. 전방후원분은 전면이 네모꼴이고 후면이 원형인 형태의 무덤으로, 주위에는 해자를 두른 거대한 고분입니다. 예기치도 않게 실물로 전방후원분을 보게 되니, 저는 저 먼 고대사의 하늘 속으로 날아오르는 기분이 들었습니다. 흥미로운 것은 이런 전방후원분이 한반도의 서남부 지역에서도 집중적으로 발견된다는 사실입니다. 이런 특이한 형태의 무덤이 바다를 사이에 두고 똑같이 나타난다는 사실이, 고대 한반도와 일본 열도의 긴밀한 관계를 떠올리게 했습니다. 저는 마치 대단한 발견이라도 한 것처럼 흥분하여, 그 넓은 무덤 주위를 몇 번이나 둘러보았는데요. 그 고분의 주인공은 2000년 전에 일본에 살다 간 스이닌(垂仁) 천황이었습니다. 특히 이 고분과 관련해서는 흥미로운 전설이 하나 있었는데요. 해자의 한 곳에 떠 있는 조그만 섬이, 스이닌 천황의 신하였던 다마치마모리의 무덤이라는 것이 그 전설의 내용입니다. 스이닌 천황은 ‘불로불사의 향기로운 과일(非時香果)’을 찾아오라는 명령을 다미치마모리에게 내렸고, 다미치마모리는 죽을 고생을 한 끝에 그 향과를 구해옵니다. 그러나 스이닌은 이미 죽은 후였고, 다미치마모리는 향과의 절반은 황후에게 바치고 절반은 고분에 바친 후에 자살하고 맙니다. 이후 사람들은 ‘불로불사의 향기로운 과일(非時香果)’을 귤로 생각했고, 그래서인지 고분 주위에는 감귤 나무가 곳곳에 심겨져 있었습니다. 이경재 숭실대 교수 여전히 풀지 못한 고대사의 비밀을 잔뜩 가슴에 품은 채, 나라공원에 가기 위해 버스에 급하게 올랐습니다. 너무 서둘렀던 탓일까요? 버스에 오른 지 10분 정도가 지난 후에야 거꾸로 버스에 탔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이미 4시가 가까워진 시간, 할 수 없이 나라공원으로의 이동은 포기하고, 그냥 지나쳤던 토쇼다이지에 가보기로 결심했습니다. 그런데 실제로 가 본 토쇼다이지는 결코 그냥 지나칠 절이 아니었습니다. 당나라의 고승 감진을 어렵게 초빙하여 세운 이 절은, 한 고승의 법력만으로 유지되는 절이어서 그런지 몰라도, 세속적인 느낌이 덜했습니다. 특히 불교 계율을 가르치던 도장답게 강당이나, 교육을 위해 사용되는 경전 등을 보관한 학교 창고 등이 더욱 경건한 느낌을 주었는데요. 푸른 주단을 펼쳐 놓은 듯한 이끼 정원 역시 빼놓을 수 없는 아름다움이었습니다. 이토록 멋진 절이 왜 다른 절만큼 홍보가 안 되는 것인지, 혹시 절 이름에도 당(唐)이 들어가고, 감진이라는 중국 승려와 관련되어서 그런 건 아닌지 하는 생각도 해보았습니다. 한반도 남서부에서 발견되는 전방후원분과 당나라로부터 온 고승이 세워 수천 년을 이어온 고찰을 떠올리며, 동아시아의 고대는 어쩌면 우리가 상상할 수 없을 만큼 가까운 사이였을지도 모른다는 공상의 나래를 맘껏 펼쳐본 나라 여행의 첫째 날이었습니다. 글·사진=이경재(숭실대 교수)

2024-10-28

팔레스타인 소녀의 힘겨운 짐

홍성식 (기획특집부장)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에 이어 레바논과 이란으로까지 전쟁을 확장시키고 있는 형국이다. 팔레스타인 가자지구는 이미 폐허가 됐고, 레바논의 무장정치조직인 헤즈볼라의 주요 지도자들은 이스라엘의 폭격에 다수가 목숨을 잃었다. 또 다른 앙숙 이란과는 서로 미사일을 주고받으며 엉뚱한 민간인 사상자만 유발하고 있는 상황. 전쟁의 어두운 그림자가 전쟁을 결정한 지도자가 아닌 힘없는 여성과 아이들을 덮치고 있으니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사람들의 걱정도 날이 갈수록 더한다. 남편과 아들을 잃은 팔레스타인 여성들은 눈물 속에서 살고 있고, 정치-종교적 갈등과는 무관한 아이들은 언제 어디서 날아올지 모르는 포탄을 걱정하며 공포에 질려있다. 최근 한 장의 사진이 전 세계인들의 마음을 쓰리고 아프게 했다. 8~9세로 추정되는 어린 팔레스타인 소녀가 자기만큼 큰 동생을 들쳐 메고 2㎞가 넘는 거리를 걷고 있다가 한 기자에게 발견됐다. 맨발로 황량한 길을 걸어온 소녀는 교통사고를 당한 여동생을 병원으로 데려가기 위해 ‘세상에서 가장 슬프고 무거운 짐’을 지고 아이로선 힘겨운 거리를 걸어왔던 것.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전쟁이 없었다면 보지 않아도 좋았을 장면이었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하마스의 불화로 현재까지 가자지구 주택의 90%가 파괴됐다. 삶의 기반이 무너진 곳에서 겨우겨우 버티던 팔레스타인 사람들 4만 명 이상이 죽었다. 사망자의 대부분이 여성과 아이들이라고 한다. 살아남은 자들의 고통도 죽은 자 못지않다. 열 살도 안 된 소녀와 동생의 생존까지 위협하는 이 광기는 언제가 돼야 끝이 나려는지. 해답 없는 질문을 받은 듯 답답하다. /홍성식(기획특집부장)

2024-10-28

김윤식 선생 전시회

방민호 서울대 교수·국문과 오전 열 시 반, 나는 규장각한국학연구원으로 향했다. 저녁에 있을 학술상 시상식 전에 한 번 더 김윤식 선생 전시회를 둘러보겠다고 생각했다. 9월 30일 개막해서 올해 말까지 이어지는 이 특별전시회 제목은 ‘혼신의 글쓰기’였다. 지하 1층 전시실 입구는 적막하게 느껴졌다. 시간이 이르다. 사람들이 아직 찾아들지 않았다. 좁지만은 않은 전시실. 김윤식 선생이 쓰신 저작들과 육필원고들, 연구를 위해 준비한 자료들, 그리고 당신의 생전 서재들. 적막한 전시실에 김윤식 선생의 생전의 말씀이 흘렀다. 소리를 따라 전시실 한쪽 공간으로 향했다. 설치된 티비에서 김윤식 선생의 강연, 대담 편집 영상이 상영되고 있었다. 당신만의 참으로 독특한 표정들, 당신은 표정을 많이 가지고 계시지 않았다. 정말 몇 개의 표정으로 당신의 삶을 요약할 수도 있을 것 같은, 적은 개수의 표정만을 가진 ‘사나이’였다. 소설 습작도 몇 편 남기신 선생은, 그러나 비평가였다. 가장 비평가다운 고독과 괴력의 사나이였다. 영상 속에서 선생이 말했다. 비평가는 자기표현을 금지당한 사람이라고. 또 자신은 ‘시체지기’처럼 남들이 쓴 것들 속에서 살아왔노라고. 나는 그 말씀 속에서 사르트르를 읽었다. ‘문학이란 무엇인가’에서 그가 비평가를 그렇게 규정했다.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의 ‘카게무샤’(影武者, かげむしゃ)에는 일본 전국시대의 무장 다케다 신겐의 ‘그림자 무사’가 등장한다. 그는 하찮은 신분의 사람이었는데, 다케다 신겐을 닮은 까닭에 죽은 그가 살아있는 것처럼 세상을 속이는 사람으로 ‘채용’된다. 모든 것이 서투르기만 한 그는 살아생전의 다케다 신겐처럼 전투에까지 나가야 하는 딱한 신세가 된다. 날아오는 화살들에 겁에 질려 벌벌 떠는 ‘그림자 무사’. 옆에서 성난 꾸짖음이 들려온다. 주군은 산과 같았고, 산은 움직이지 않는다는 질타에 가짜 무사는 어쩔 줄을 모른다. 나는 선생이 바로 그 ‘그림자 무사’ 같은 사람이었다고 생각한다. 어느덧 그는 진짜 다케다 신겐 같은 차림새를 얻는다. 진짜처럼, 진짜가 되려고 하면서 그는 이윽고 생전의 다케다 신겐을 꼭 닮은 사람으로 거듭난다. 하지만 그렇게 모든 것을 진짜처럼 연기할 수 있었을 때 그에게 뜻하지 않은 불행이 찾아든다…. 선생은 비평가란 그런 존재이지 않으면 안된다고 생각한 사람이었다. 그는 소설가도 될 수 있었고, 강렬한 문체를 가진 산문가였지만, 비평가로서 살아가야 한다는, 숙명적 의식을 체득한 사람이었다. ‘진짜’ 비평가였다. 세월이란 무상하다. 지난 10월 25일은 김윤식 선생의 6주기 기일이었다. 저녁에 김윤식 학술상의 제3회 시상식이 있었다. 수상자는 숭실대 이경재 교수, 수장작은 ‘한국현대문학과 민족의 만화경’(2023)이었다. 이 상의 기금은 김윤식 선생의 생전의 아파트에서 온 것이다. 가정혜 선생께서 당신의 아파트를 국문학 연구자들을 위한 기금으로 내놓으신 것이다. 그보다 먼저 한국문학관에는 김윤식 선생이 생전에 쓰신 저작들로 모아진 더 큰 기금을 내놓으시기도 했다. 미망인께서 한국문학 전체와 선생이 재직하신 곳을 위해서 각기 ‘희생적인’ 출연을 아끼지 않으신 것이다. 보통 사람들은 결코 쉽게 할 수 없다.

2024-10-28

자전거도로 유감

김규인 수필가 한국교통연구원 NMT센터에서 추정한 월 1회 이상 자전거를 이용하는 우리나라 인구는 1340만 명으로 발표했다. 자전거는 친환경 이동 기구로 자연환경과 건강을 생각하는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자전거를 타는 열풍이 불었다. 지자체는 앞다투어 자전거도로를 개설하고 이러한 분위기에 불을 지폈다. 시간이 나면 신천에 들른다. 신천에선 쇠백로와 대백로, 중대백로, 중백로, 청둥오리들이 먹이를 찾거나 휴식한다. 신천에서는 새뿐만 아니라 휴식이 필요한 많은 사람이 나온다. 개를 데리고 온 사람들, 끼리끼리 모여서 체조를 하는 사람들, 나이 드신 부부가 느린 속도로 자전거를 타기도 하고 가만히 앉아서 지나가는 사람들을 지켜보는 사람들도 보인다. 나는 자전거 타기를 즐긴다. 집에서 신천을 따라 난 자전거도로를 따라서 희망교까지 갔다가 다시 돌아오는 코스를 달린다. 11㎞의 짧은 거리이지만 매일 달리기에는 적당한 거리다. 느린 속도로 매일 달리며 신천에 나온 사람들을 만난다. 일과 중에 별로 할 일이 없을 때는 신천으로 나온다. 기분 좋게 나온 자전거 타기인데 마음을 상할 때도 있다. 자전거도로인지를 알지 못한 채 도로를 어슬렁거리거나 공사로 우회할 때도 늘어난다. 공사로 인한 건 할 수 없다 치더라도 자전거도로 위를 거니는 사람들은 안전교육을 시켰으면 하는 바람을 가진다. 사람들이 자전거도로로 뛰어들거나 이리저리 어슬렁거릴 경우는 자칫 사고가 나기 쉽다. 그나마 신천은 비교적 인도와 자전거도로가 잘 구분된 편이다. 거리로 나서면 자전거도로는 선을 그어 놓았지만, 그어놓은 선마저 끊어지기 일쑤고 인도 위에 한편을 내어 자전거도로를 만든 것이라 사람들과 부딪히기 쉽다. 심지어 자동차 도로 가장자리에 난 자전거도로는 더 위험하다. 좁은 도로의 가장자리에 자전거도로를 내느라 자전거도 차량도 운전하는데 신경이 곤두선다. 우리나라 자전거도로의 현실이 그러하다. 외곽지 강변을 따라 난 길은 비교적 잘 되어 있는데 시내로 들어오면 어느 쪽에서도 반기지 않는 자전거도로가 된다. 이것은 도로 사정만 그런 게 아니다. 자전거전용도로를 위한 법도 마찬가지다. 이미 만들어진 차도와 인도 사이를 오가는 모양이 위태롭기만 하다. 자전거 이용 활성화에 관한 법률은 자전거도로의 구분, 안전한 이용, 주차장의 설치를 규정하고 있으나 현실에서 자전거 전용도로는 사람과 같이 다니는 경우가 많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일반 보행자들이 자전거 전용도로를 걷는데 별 부담을 느끼지 않고 막 걷는 것이다. 이러한 경우 안전사고의 위험은 높아진다. 법의 실효성마저 떨어질 수 있다. 유럽을 여행할 때 내가 별다른 인식 없이 자전거 전용도로 위에 섰을 때 놀라는 가이드의 모습이 눈에 선하다. 현실에서 법이 살아있고 다치면 도로를 침범한 보행자의 책임으로 돌아가기 때문이다. 법은 누구나 지켜야 법으로서 존재가치가 있다. 일반 시민에 대한 자전거 전용도로에 대한 인식 개선이 필요하다. 정부는 자전거 이용 활성화를 위해 국민이 안전하게 이용할 수 있도록 도로나 주변 시설을 정비하고 홍보를 강화해야 한다.

2024-10-28

노벨문학상과 문해력

최병구 경상국립대 교수 지난 10일 한강 작가가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발표된 이후 작가의 소설 판매량이 급증하여 단시간에 100만 부가 넘게 팔렸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또한 작가가 과거 정권에서 블랙리스트에 올랐던 사실이 소환되어 정치적 쟁점이 되기도 했으며, 어떤 소설가는 한강의 소설이 역사를 왜곡했다고 주장하며 스웨덴 한림원 평가의 공정성에 의문을 표했고, 어떤 학부모 단체는 한강의 소설이 왜곡된 성 관념을 학생들에게 주입할 수 있다며 도서관 비치를 반대하기도 했다. 한 마디로 한강의 노벨문학상 수상은 정치와 경제, 그리고 교육 영역에 걸쳐 다양한 논쟁점을 만들었다. 한강의 노벨문학상 수상으로 평소 문학에 별 관심이 없던 사람들까지 작품을 구매하는 현상은 긍정적으로 생각할 수 있다. 어쨌든 소설책을 사서 읽고 한 번쯤 우리의 역사와 문화에 대해 생각해 볼 기회를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한강의 소설이 역사를 왜곡했으며, 청소년에게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친다는 주장은 그 자체로 왜곡된 역사관과 인식론을 증명하는 것이지만, 이로부터 작품을 깊이 읽고 해석하는 능력을 어떻게 기를 수 있을 것인가를 생각해 볼 수 있다는 점에서 중요하다. 나는 오래전부터 한강의 소설을 학생들과 읽어왔다. 특히 2016년 맨부커상을 받은 ‘채식주의자’를 많이 읽혔다. 이 소설집은 세 편의 연작소설로 구성되어 한국 자본주의 사회의 젠더 이분법과 가부장제의 폭력성을 다루고 있다. 그동안 많은 학생과 각자의 경험을 나누며 깊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지만, 일부 학생들은 ‘채식주의자’에 수록된 ‘몽고반점’에 강한 거부감을 보였다. 소설의 전체구조를 읽지 못하고 형부와 처제의 육체적 관계라는 사건에만 매몰되었기 때문이다. 삶의 윤리를 이야기하는 소설이 그들에게는 매우 부도덕한 작품으로 인식된 것이다. 차분하게 이야기해도, 그 학생들은 자신들의 신념을 굽히지 않았다. 소설을 깊이 읽고 해석할 수 있는 능력은 성인이 된다고 갑자기 생기는 것이 아니라, 청소년기부터 지속적인 훈련을 통해 만들어지는 것이다. 대학생, 즉 성인이 된 학생들의 인식력과 판단력은 어지간해서는 잘 바뀌지 않는다. 직접적으로 말해서 청소년기에 ‘채식주의자’와 같은 도서를 읽고 해석할 수 있는 능력을 키우지 않은 학생이 대학생이 된다고 갑자기 변하지 않는다. 아직 미성년이어서 성을 소재로 한 작품을 읽어서는 안 된다는 주장이 있을 수 있다. 어느 정도 이해가 되기도 하지만, 청소년기 학생들은 이미 온갖 성과 관련한 콘텐츠에 노출되어 있다. 부모나 선생이 통제할 수 있는 시대가 아니라는 것은 상식에 속한다. 이럴 때 검증된(?) 소설 텍스트를 읽고 토론하며 문해력을 키우는 것이 현명한 일 아닐까. 한강 작가의 노벨문학상 수상이 K-콘텐츠의 위상을 높이는 계기를 넘어서, 우리 국민이 사회를 읽고 해석하는 능력을 키우는 동력이 되길 바란다. 한강 작가의 소설에는 ‘한국’을 넘어서 전 세계인이 공감하는 통찰이 담겨 있다. 그렇지만 누구나 이 통찰을 읽어낼 수는 없다.

2024-10-28

대통령은 영부인 의혹을 어떻게 풀 작정인가

김진국 고문 윤석열 대통령 국정 지지도가 바닥이다. 지난주 한국갤럽 조사에서 대통령 직무수행 긍정평가는 20%. 9월 2주 차에 이어 윤 정부 출범 이후 최저점을 다시 찍었다. 부정 평가는 70%에 이르렀다. 4대 여론조사기관의 전국 지표조사(NBS)에서도 대통령 지지율은 역대 최저인 22%를 기록했고, 리얼미터 조사도 24.1%로 가장 낮은 기록을 세웠다.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 위원회 홈페이지 참조) 새삼스러운 일이 아니다. 취임 이후 곧바로 30%대에 묶인 지지율은 지난 4월 총선 이후 20%대에 갇혔다. 마침내 20%의 벽마저 깨질 기미를 보인다. 호전될 것 같지 않다. 부정 평가한 첫 번째 이유로 ‘김건희 여사 문제’를 꼽았다. 한국갤럽 조사에서는 ‘김 여사 문제’가 14%로 1위다. 그다음이 ‘경제·민생·물가’(14%), ‘소통 미흡’(12%), ‘전반적으로 잘 못한다’(6%), ‘독단적 일방적’(6%) 등이다. 경제 문제를 제외하면 사실상 모두 김 여사 문제와 얽혀 있다. 소통 미흡, 독단…. 이런 이미지를 만들어준 가장 큰 배경이 김 여사 문제다. 야당은 물론 집권당과의 관계도 모두 김 여사 문제에서 부딪치고 있다. NBS조사에서는 김 여사가 대외 활동을 중단해야 한다는 의견이 73%가 나왔다. 국민의힘 지지자 57%, 대구·경북 응답자 61%도 김 여사의 활동 중단을 요구했다. 김 여사 문제에 관한 의견이 출신 지역이나 지지 정당과 관계없이 비슷하다는 말이다. 국정 평가는 영남권에서도 저조하다. 보수세력의 지지기반이라 할 대구·경북(TK)에서 윤 대통령의 국정 수행 긍정 평가는 26%로 부정 평가 60%의 절반에도 못미친다. 부산·울산·경남(PK)에서도 긍정 평가 27%, 부정 평가 59%로 TK와 비슷하다. 리얼미터 조사에서 국정 수행지지율이 대구·경북은 35.2%에서 27.1%로 일주일 만에 무려 8.1%포인트, 부·울·경에서는 33.1%에서 26%로 7.1%포인트 추락했다. 그런데도 김 여사 문제는 여야 대립을 넘어 여야 갈등으로 비화했다. ‘친윤’은 김 여사 문제를 해결하라는 요구가 정략적이라고 생각한다. 한동훈 대표에 대해서도 ‘차기에 대한 욕심’에 눈이 어두워 자기를 키워준 대통령 내외를 배신했다고 주장한다. 정치를 하려는 한 대표에게 그런 욕심이 없다고 말할 수는 없다. 그렇지만 그보다는 민심이 먼저다. TK와 PK에까지 나타난 민심은 무엇인가. 이 민심이 ‘배신’인가. 아니면 지지기반의 신뢰를 윤 대통령이 배신한 건가. 당장 윤 대통령은 영부인에 대한 국민 의혹을 어떻게 풀 생각인가. 이대로 뭉개면 해결될 거라고 믿는 건가. 김 여사에 대한 의혹은 이제 열거하기도 힘들다. 물론 시중에서 제기되는 의혹이 모두 사실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렇다면 해소할 방법을 찾아야 할 것 아닌가. 김 여사의 개인적 억울함이야 죽을 때까지 지고 가든 말든 상관할 바 아니다. 그러나 그로 인해 국정이 흔들리고, 여권이 신뢰를 잃고, 사분오열해 차기 정권 재창출이 어려운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다. 똥 묻은 개와 겨 묻은 개가 서로 짖으며, 사법 질서가 신뢰를 잃었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의 사법 리스크까지 엉뚱한 방향으로 흘러가는 빌미를 만들고 있다. 김 여사가 명품 가방을 받는 모습은 온 국민이 자기 눈으로 봤다. 믿지 못할 사람들과 전화와 문자를 주고받으며, 천박한 언어로 대통령을 폄훼하고, 국정을 자기 손으로 주무르는 듯이 떠드는 오만한 언사를 귀로 들었다. 적어도 이미 드러난 문제에 대해서는 국민 앞에 해명하고, 백배사죄하는 것이 최소한의 도리 아닌가. 보수세력의 미래를 무너뜨리고, 국정을 혼란에 빠뜨렸으면 어떻게든 빨리 수습하려고 노력하는 게 지도자가 할 일이다. 그런데 치졸한 방법으로 고립시키고, 부인에 대한 애정을 드러내는 것을 보고 아연실색하게 된다. 윤 대통령이 당선된 이후 집권당 대표치고, 온전히 성해서 나간 사람이 없다. 자기 목소리를 내는 정치인치고, 협량한 보복을 당해보지 않은 사람이 있는가. 너도 나도 비위나 맞추며 사리를 도모하니 집권당 꼴이 말이 아니다. 김진국 △1959년 11월 30일 경남 밀양 출생 △서울대학교 정치학 학사 △현)경북매일신문 고문 △중앙일보 대기자, 중앙일보 논설주간, 제15대 관훈클럽정신영기금 이사장,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부회장 역임

2024-10-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