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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당신이 나를 죽창으로 찔러 죽이기 전에

지난 번에는 관동대진재에 대해 이야기했는데요. 며칠 전 학교 구내서점에서 시선을 사로잡는 특이한 제목의 책을 발견했습니다. 이용덕(李龍德)이 쓴 ‘당신이 나를 죽창으로 찔러 죽이기 전에’(あなたが私を竹槍で突き殺す前に, 河出書房新社, 2020)라는 장편소설이 바로 그 주인공인데요. 근대에 들어 죽창으로 사람을 찔러 죽이는 일은 매우 드문 일입니다. 일본의 경우에는 관동대진재 당시 죽창으로 많은 사람을 찔러 죽인 것으로 유명하죠. 당시 유언비어에 들려 있던 자경단원들은 칼, 창, 곤봉, 도끼, 심지어는 피스톨까지 동원해 조선인을 학살했습니다. 이때 가장 많이 사용한 무기 중의 하나가 바로 죽창이었던 겁니다. 실제로 재일 한인 3세인 이용덕은 다른 글에서 ‘당신이 나를 죽창으로 찔러 죽이기 전에’라는 제목이 1923년 관동대진재 당시 이웃에서 함께 생활하던 재일 조선인을 학살한 역사적 사실에 바탕한 것이라고 밝히기도 했더군요. 관동대진재가 재일 한인의 비극적 과거를 보여준다면, 이 작품은 재일 한인의 비극적 미래를 보여줍니다. ‘당신이 나를 죽창으로 찔러 죽이기 전에’는 배외주의자들이 꿈꾸던 재일 한인에 대한 차별이 완전하게 실현된 가상의 미래를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디스토피아를 살아나가는 다양한 재일 한인들의 분투기가 이 작품의 기본 서사라 할 수 있는데요. 거대한 반격을 준비하는 가시와기 다이치, 새로운 가능성을 찾아 한국으로 가는 박이화(야마다 리카), 냉소적인 자세로 일관하는 양선명(스기야마 노리아키), 한국행 페리에서 몸을 던지는 마수미, 완력으로 차별에 맞짱을 뜨는 다우치 마코토(윤신), 배외주의자들에게 강간당하고 살해당한 김마야, 동생의 죽음으로부터 새로운 각성에 이르는 김태수(기무라 야스모리) 등이 주인공으로 등장합니다. 400페이지에 이르는 이 소설에는 으스러진 뼈와 온몸을 철철 흐르는 피, 그리고 그보다도 훨씬 무서운 증오와 모멸의 헤이트 스피치가 빼곡한데요. 그러나 저에게 가장 끔찍하게 다가온 차별과 폭력은 마수미의 아버지가 체험한 것입니다. 마수미의 아버지는 우수한 엔지니어로 일본에 스카우트된 한국인이지만, 끝내 일본에서 견디지 못하고 한국으로 돌아옵니다. 그 이유는 자신이 혹시 차별받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의심과 공포가 지긋지긋했기 때문인데요. 그가 느낀 의심과 공포는 지극히 사소한, 그렇기에 일상에 편재한 것이었습니다. ‘병원 대기실에서 나보다 뒤에 온 사람이 먼저 진료실에 들어간 것은 혹시 차별 때문은 아닐까?’, ‘구청 직원의 냉정한 태도는 일본인에게도 똑같은 것일까?’, ‘한국식 이름을 밝힌 후 콜센터 직원의 태도가 변했다고 느끼는 것은 나의 착각일까?’, ‘재일 한인끼리 간 식당의 음식은 과연 깨끗할까?’와 같은 의심과 불안은 너무나도 일상적이고 사소한 것이기에, 떨쳐낼 수 없는 끈적함과 생생함을 동반하여 더욱 공포스럽게 다가올 수밖에 없습니다. 일상의 모든 것을 의식하고 살아야 하는 이 상황이야말로, 그 어떤 폭력적인 장면보다도 저에게는 더욱 아찔하게 느껴지더군요. 작품의 주인공이라 할 수 있는 다이치도 “제노사이드나 강제수용소의 반복만이 디스토피아가 아니야. 디스토피아는 지금이지”라며, “독가스 대신 단지 증오를 발산해서 공기를 더럽히고, 마이너리티를 숨막히게 하는 이 방법이야말로 새로운 학살법이야”라고 강변하기도 합니다. 이용덕의 ‘당신이 나를 죽창으로 찔러 죽이기 전에’ 표지. 과거라는 점과 미래라는 점을 연결하여 선을 그을 때, 그 중간쯤에 위치한 것이 현재라고 한다면, 관동대진재와 ‘당신이 나를 죽창으로 찔러 죽이기 전에’가 그려 보인 디스토피아의 중간쯤에 놓인 것이 아마도 재일 한인이 처한 현재의 상황일 겁니다. 그렇다면 그 현재는 결코 행복하다고만은 할 수 없을 텐데요. 이용덕은 몇몇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이 소설의 진정한 작가는 “시대(時代)”라고 밝히기도 했습니다. 그가 말한 ‘시대’란 도쿄 신오쿠보 등에서 헤이트 스피치가 울려 퍼지던 2010년대 초반을 말합니다. 이러한 극우단체의 데모도 2016년 시행된 ‘헤이트 스피치 금지법’과 인종차별에 맞선 카운터 데모에 의해 현재는 극적으로 줄어든 상황입니다. 그러나 사이버 공간 등에서는 재일 한인을 향한 차별적 발언이 유통되고 있는 것도 엄연한 현실이죠. 작품은 뜻밖의 상황으로 끝나며, 많은 생각거리를 던져줍니다. 다이치의 계획대로 양선명, 김태수, 윤신 등이 목숨을 잃은 후에, 그 죽음과는 무관하게 갑자기 한일 해빙 무드가 연출되며 재일 한인에 대한 차별이 사라지는 겁니다. 그것은 한일 공동의 적이 탄생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인데요. 서아프리카에 파견된 자위대가 습격을 받는 일이 발생하고, 이때 한국군이 자위대를 원조합니다. 이를 계기로 한일정상회담이 열리고, 대표적인 코리아타운인 오사카의 츠루하시에는 일본인 관광객들이 넘쳐나고 교류 이벤트가 성황을 이룰 정도로 화기애애한 상황이 펼쳐지는군요. 이제 헤이트 스피치는 재일 한인이 아닌 이슬람교도들을 향하게 됩니다. 거리에서는 이슬람교도에 대한 배외주의 운동이 펼쳐지고, 그 군중 속에는 태극기를 들고 있는 자와 일장기를 들고 있는 자가 공존합니다. 심지어는 한국인과 일본인이 어깨동무를 하기도 하는군요. 한국인과 일본인이 어깨동무를 하기 위해서 필요했던 것은, 바로 제 3의 적이었던 겁니다. 어쩌면 이용덕이 ‘당신이 죽창으로 나를 찔러 죽이기 전에’를 통해 진정으로 하고 싶었던 말은, 늘 적을 필요로 하는 인간의 슬픈 본성에 대한 것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글·사진=이경재(숭실대 교수)

2024-10-14

기후위기로부터 우리를 지켜낼 노래들

의미 있는 앨범 하나를 내게 되었다. 우리의 일상을 위협하는 기후위기에 대응하기 위해 만들어진 세 곡의 노래가 담겨있는 디지털 EP 앨범 ‘기후 레시피’다. 기후위기와 관련된 세 곡이 수록된 이 앨범은 오는 10월 15일 정오에 모든 음원사이트에서 만나볼 수 있다. 기후위기라는 문제에 본격적인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작년, 한 예술 사업을 만나면서부터이다. 한국예술인복지재단은 ‘예술로’라는 이름의 예술인 파견 사업을 꾸려나가고 있는데, 이는 사업에 지원한 각종 기관과 예술인들을 매칭하여 사회적으로 의미있는 활동을 하도록 지원하는 내용의 사업이다. 나는 작년부터 이 사업에 참여하게 되었고 여러 예술인들과 더불어 서울에 있는 마을 카페인 ‘즐거운 반딧불이’와 매칭이 되었다. 즐거운 반딧불이가 예술인들과 함께 해 나가려고 했던 일은 기후위기에 예술활동으로 한 번 맞서보고자 하는 것이었다. 나를 비롯한 참여 예술인들은 자주 모여 이 문제들에 대하여 공부를 하고 세미나를 갖기도 하며 우리가 직면한 상황의 심각성에 대해 배울 수 있었고, 우리가 가진 능력을 활용해 어떠한 방식으로 대응해 나가면 좋을지에 대해 함께 고민하기도 하였다. 우리가 내어 놓은 결과물은 몇 가지가 있었지만 내가 중심을 잡고 이끌었던 것은 일명 ‘기후송’이라 부르기로 한 캠페인 송을 제작하고 이를 디지털 싱글로 발매하는 프로젝트였다. 작년 10월에 발매된 ‘땅으로부터’가 그렇게 만들어진 노래이다. 당장 그 파급력이 발현되지는 않았지만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릴 수 있는 뜻 깊은 노래를 만들어 배포하는 것이 장기적으로 유의미한 결과를 이끌어낼 수 있으리라는 생각에 팀원들과 기관, 재단 관계자들까지 모두 공감해주었다. 대중들에게 널리 보다 즉각적인 결과를 이끌어낼 수 있는 방안은 없을까 하는 숙제를 남긴 채 첫 해의 사업은 마무리 되었다. 그리고 2년차, 즐거운 반딧불이와의 논의 끝에 기후송 제작에 조금 더 무게를 싣는 방향으로 사업을 진행하기로 결정했고 이에 따라 여섯 명의 예술인으로 이루어진 현재의 모습으로 예술인 집단을 재구성했다. 리더인 싱어송라이터 강헌구 님을 필두로 나(싱어송라이터 강백수)와 싱어송라이터 이매진 님이 각각 한 곡 씩을 만들어 세 곡으로 이루어진 앨범을 제작하기로 결정했다. 싱어송라이터 각자가 하나씩 기후 캠페인을 진행하여 이를 통해 곡의 내용을 확보하기로 하였다. 이 캠페인 전체를 지원하고 활동 전반의 컨트롤 타워 역할은 베테랑 연극인 권기대 님이 맡게 되었고, 영상예술인인 정훈 님과 최휘찬 님이 이 모든 과정을 기록하여 다큐멘터리로 제작하게 되었다. 강백수 세상을 깊이 있게 바라보는 싱어송라이터이자 시인. 원고지와 오선지를 넘나들며 우리 시대를 탐구 중이다. 첫 번째 곡인 ‘나의 작은 기후 선언’은 내가 만들고 부른 곡이다. 즐거운 반딧불이를 찾아주신 손님에게 기후위기를 막아내기 위해 직접 실천할 수 있는 작은 일들 한 가지씩을 적어달라고 부탁드렸다. 수십 분의 손님들이 사소하지만 중요한 실천거리들을 적어주셨고 이를 바탕으로 노랫말을 완성했다. 나는 이 노래를 통해 많은 이들이 자신이 행할 수 있는 작은 실천에 대해 고민해보길 바란다. 작고 사소한 걸음일지언정 모두가 함께 내딛는다면 그것은 그 어떤 도약보다 위대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두 번째 곡은 강헌구 님의 ‘기후 레시피’. 강헌구 님이 즐거운 반딧불이에서 운영하는 ‘탄생화(탄소 중립 생활화)’ 모임과 함께 친환경 세제 만들기 활동에 참여하며 만들게 된 노래다. 지구를 해치지 않고 청결을 유지할 수 있게 해주는 친환경 세제 레시피를 아주 깜찍하고 발랄한 멜로디에 담아 누구라도 한 번 쯤 만들어보고 싶게 만드는 중독성 있는 노래다. 세 번째 곡은 타이틀곡으로, 이매진 님의 ‘나는 나무잖아’. 이매진 님은 이번 활동 기간 중에 가로수의 생태에 관심을 갖자는 취지의 ‘트리허그’ 캠페인을 진행하였다. 수많은 시민들이 가로수를 힘껏 끌어안으며 감사와 애정의 마음을 일깨우게 된 의미 있는 행사였다. 이매진 님은 노래 속에서 직접 한 그루의 가로수가 되어 도시의 한켠을 지켜내는 외롭고도 고단한 마음을 서정적으로 노래했다. 우리는 이 노래들이 반드시 히트곡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다만 누군가의 귀에 닿고 마음에 닿아 그들의 삶의 궤적을 미세하게나마 이 행성의 생태계를 지켜내는 방향으로 틀어볼 수 있다면 대성공이라고 생각한다. 모두가 당장 제로웨이스트를 실천하고 비건채식주의자가 될 수는 없다. 다만 노래 몇 곡 들어보며 나와 이 아름다운 행성에 대해 생각해볼 시간을 잠시 가져볼 수는 있으리라 생각한다.

2024-10-14

은밀하게 선 넘기

사람들 안의 선은 결코 무의미하지 않다. /언스플래쉬 아, 정말 어렵네. 요즘 책상 앞에 앉아 가장 많이 하는 말이다. 머릿속에서 떠오르는 생각이나 손끝에서 나오는 문장이 모조리 틀린 것만 같다. 이것은 글쓰기가 제대로 풀리고 있지 않다는 투정만은 아니다. 내 안의 무언가가 조금씩 변하고 있는데 내가 가진 언어가 그것을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숙련되지 못한 까닭이다. 답답하다. 그러다 보니 자꾸만 편한 방식으로 문장을 쓰게 된다. 좋지 않다. 같은 자리를 계속해서 돌고 있는 기분이다. 이런 고민에 빠진 것이 나뿐만은 아닌 것 같다. 친구들을 만나면 이와 비슷한 이야기를 나누게 된다. 삼십 대가 되고 비로소 안정을 찾았다는 안도감은 허상이었던 걸까. 애인과 만난 지 육 년이 넘어가는데 결혼으로 나아가기엔 용기가 없다는 친구부터 십 년 넘게 다닌 직장을 그만두고 싶지만 먹고 사는 일이 걱정된다는 친구까지. 변화가 필요한 시점이라는 것을 느끼지만, 단 한 발을 내딛고 있지 못하다는 자각이 든다는 것이다. 어려운 일이지. 그들의 이야기에 맞장구를 친다. 내 이야기도 얹고 싶으나 그럴 수 없다. 그들에 비해 내 고민의 규모는 민망스러울 정도로 작기 때문이다. 비슷한 하루의 연속이다. 일을 하고 글을 쓴다. 정해진 시간에 출퇴근을 반복하고 마감일을 지켜야 한다. 다이어리에 빼곡하게 차 있는 일정에 하나씩 줄을 그으며 하루를 살아내는 중이다. 책임의 무게가 착실히 늘어나고 있다. 분명 나는 한 뼘 더 자랐다. 사회가 말하는 사회적 인간에 조금 더 가까워졌다. 이십 대에는 거침없이 국경을 넘어 다녔다. 커다란 배낭 하나 메고서. 단지 한 발 더 갔을 뿐인데 사용하는 언어가 바뀌고 풍경이 새로워졌다. 무엇 때문일까. 보이지 않는 선이 세계를 구분하고 있다. 선. 그것은 항상 내 눈앞에 놓여 있었다. 지금도 나는 어떤 선 안에 놓여 있는 것 같다. 사실 이것은 내가 최선을 다해 그어놓은 것이다. 망망한 백지만큼 막연한 건 또 없으니까. 최대한 반듯하게, 예쁘게. 그리하여 이 안의 내가 안온함을 느낄 수 있도록. 이것을 만들기 위해 나는 아주 많은 공을 들였다. 선을 넘으면 어떤 일이 일어나게 될까? 요즘의 나는 그런 것이 궁금하다. 내가 열심히 만들어 놓은 것을 자꾸만 밟고, 지우고, 넘고 싶어지는 것이다. 맘껏 엉망으로 만들어놓고 시치미 떼고 싶다. 금기된 영역으로 나아가는, 사회의 선을 거침없이 밟는 사람을 보면 해방감을 느낀다. 나 역시 그러려고 해봐도 도무지 되질 않는다. 강한 힘이 나를 자꾸만 주저앉힌다. 이상한 일이다. 나를 보호한다고 믿었던 견고함이 내 목을 옥죄고 있다는 기분으로 바뀌다니. 과감하게 선을 넘는 것이 어렵다면, 은밀하게 스리슬쩍 넘어볼까 싶었다. 처음에는 아주 사소한 것으로 시작했다. 평소라면 먹지 않았을 음식 먹기. 혹은 만나지 않을 사람들을 만나기. 나는 점점 더 과감해졌다. 속에 꾹꾹 누르며 하지 않았을 말을 해보기도 했다. 분위기를 깨지 않기 위해 억지로 미소 짓는 것도 관둔다. 상대의 말에 습관적으로 고개를 끄덕이는 것도 멈춰 본다. 이것은 나 혼자만이 느끼는 아주 미세한 변화. 물론 아무 일도 벌어지지 않았다. 문은강 ‘춤추는 고복희와 원더랜드’로 주목받은 소설가. 2017년 서울신문 신춘문예를 통해 작가로 등단했다. 이것은 글을 쓸 때도 적용할 수 있다. 너무 무거워서 평소엔 쓰지 않을 것 같은 단어를 사용해 본다. 문장 사이사이에 조금씩 장난을 쳐 본다. 꼭 필요하다고 믿었던 것을 완전히 삭제해 보기도 한다. 더하고 덜어내고 어쩐지 이상해 보이는 것들을 그대로 둔다. 언어라는 건 참 이상해서 가까이 다가가려고 하면 할수록 더욱 멀어지는 것만 같다. 안으로 가두려고 할수록 손에서 벗어난다. 그러니 놓아본다. 마음껏 선을 넘도록. 세상에, 이런 것이 재미있다니. 어린 시절 운동장에서 땅따먹기하던 것이 떠오른다. 너 선 밟았어, 나가! 그 외침이 정말이지 싫었다. 맥이 풀려 한쪽 구석에 쪼그리고 앉아 있노라면 저 멀리서 즐거워하는 친구들이 보였다. 나도 저 안으로 들어가고 싶어. 여전히 나는 그런 것을 바라는 것일까. 선 밖은 외롭다. 그러나 자유롭다. 규칙에 얽매이지 않고 무엇이든 할 수 있다. 알고 있다. 내 안의 선이 무의미하지 않다는 걸. 이 또한 삶을 살아가는 데 꼭 필요한 부분이다. 그러나 그것은 언제든 수정될 수 있다. 언제고 넘나들 수 있어야 한다. 좀 더 유연해질 필요가 있다. 선을 조금씩 옮겨 긋다 보면 내가 예상하지 못한 모양이 만들어질지도 모른다. 어떤 것일까. 이런 기대를 가지고 오늘도 책상 앞에 앉는다.

2024-10-14

김건희, 윤석열, 혹은 보수정권

김진국 고문 하지도 않은 일을 사과하라고 하면 복장이 터질 법도 하다. 논란이 되고 있는 명태균 씨 문제에 대한 대통령실 언급을 들어 보면 억울하다는 심정이 진하게 묻어난다. 명 씨가 김영선 전 의원 공천을 위해 뛰었다는 것 이외에 아직 확인된 사실은 없다. 명 씨가 김 전 의원 공천을 위해 뛴 것은 그 자체로 잘못은 아니다. 그런데 대통령실은 왜 점점 더 꼬이게 만드는 걸까. 명 씨를 잘 모르는 필자로서는 이준석 개혁신당 의원 말이 그럴듯하게 들린다. 이 의원은 명 씨가 “기본적으로 시나리오를 잘 짜는 사람”이고, “아이디어가 많다”라고 한다. 또 “자기가 능동적으로 움직여 일을 한 다음 성과를 주장하는 스타일”이라고 한다. 이 의원은 “정치하는 사람 입장에서 이런저런 가능성이나 아이디어를 만드는 사람들은 나쁘지 않은 대화 상대”라고 말했다. 명 씨가 많은 정치인들을 만난 이유가 설명되는 부분이다. 더구나 윤석열 대통령과 김건희 여사는 정치를 해본 적이 없다. 윤 대통령은 학생 시절 이후 검사로서 수사밖에 해보지 못했다. 김 여사는 미술 기획 일을 해 인맥이 넓다고 하지만 정치인들을 만난 건 아니다. 명 씨의 조언이 얼마나 적절했는지 모르지만, 이준석 의원이 저렇게 평가할 정도로 솔깃한 이야기였을 것으로 짐작이 간다. 윤 대통령이 정치를 시작하는 건 쉬운 결단이 아니었다. 정치인들에게는 다 자기 잇속을 챙기는 계산이 있다. 자신의 운명을 그런 사람에게 완전히 맡길 수 없는 형편이었다. 이럴 때 알려지지 않은, 감추어진 비밀 무기로 명 씨가 적임자였을 수 있다. 이준석 의원은 “윤 대통령 당선을 위해 이리저리 뛰었던 명 씨를 졸(卒)로 쓰고 버리려고 하니까 이런 사태가 발생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것도 좋게 생각하면 잘한 일이라고 칭찬받을 수도 있는 대목이다. 선거 때 도와줬다고 자리를 챙겨주고, 공천 지분을 나눠주면 나라 꼴이 어떻게 되겠나. 필요한 사람과 국정을 운영할 때 필요한 사람은 다르다. 그런데 선거 공신들이 전리품 잔치를 벌인다느니, 낙하산 공천을 한다느니 하는 비판이 나온다. 그러니 칭찬만 받기는 어려운 형편이다. 쉽게 넘어갈 일이 커지는 것은 정직하지 않기 때문이다. 대통령이, 혹은 영부인이, ‘저런 허접해 보이는 사람’의 훈수를 들었다는 게 창피한 건가. 왜 금방 드러날 거짓말을 해 의심을 사는지 모르겠다. 대통령실은 윤 대통령이 2021년 정치에 입문하는 과정에서 명 씨가 국민의힘 고위 당직자, 정치인과 자택을 찾아와 두 번 만난 게 전부라고 해명했다. 그런데 하루도 지나지 않아 사실이 아니라는 게 확인됐다. 하지 않으니만 못한 해명이 됐다. 의혹은 의혹을 불러 눈덩이처럼 커졌다. 자업자득(自業自得)이다. 명 씨와 김 여사가 문자를 주고받은 건 사실이다. 김영선 전 의원 공천 얘기를 나눈 것도 확인됐다. 대통령실 해명이 하루도 안 지나 논박당하니 이런 망신이 없다. 사실은 인정했어야 한다. 잘못이 있으면 사과하면 된다. 감추고, 도망치면, 최악의 시나리오를 상상하게 된다. 주변에서 사과를 말리는 사람들이 있다. 박근혜 전 대통령 때도 그랬다. 그들은 박 전 대통령이 “사과해서 망했다”고 주장한다. 정말 사과하지 않았으면 온전했을까. 문제는 사과가 때를 놓쳤고, 번번이 기대에 못미치는 뒷북이었기 때문이다. 해명이 하루 만에 뒤집히는 대통령의 권위를 누가 지키나. 외과 의사가 수술할 때는 암세포보다 더 넓게 잘라내야 한다. 생살이 아깝다고 환부에 바투 자르면 전이를 막지 못한다. 종국에는 환자를 죽이는 길이다. 그런 건의를 하는 사람은 환자를 보호하는 게 아니라 듣기 좋은 말만 하는 아첨꾼이다. 윤 대통령은 ‘사랑꾼’으로 소문나 있다. 김 여사에 대해서는 입도 뻥긋 못하게 한다고 한다. 그러나 입을 다문다고 해결될 단계는 지났다. 민심이 점점 더 흉흉하다. 서투른 해명으로 덧나게 할 이유가 뭔가. 김 여사에서 끝낼 건가, 윤 대통령이 직접 나서 상처를 입을 건가. 그도 아니면 정권을 내주더라도, 김 여사만은 털끝 하나 못 건드리게 기필코 지킬 건가. 결국은 게도 구럭도 다 잃겠지만. 김진국 △1959년 11월 30일 경남 밀양 출생 △서울대학교 정치학 학사 △현)경북매일신문 고문 △중앙일보 대기자, 중앙일보 논설주간, 제15대 관훈클럽정신영기금 이사장,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부회장 역임

2024-10-13

쓰기의 기술, 삶의 기술

유영희 작가 시를 전공한 선생님에게서 글쓰기를 배운 지 한 달이 되어간다. 시 쓰기를 배우는 것은 아니지만 아무래도 시를 많이 접하게 되는데, 그동안 몰랐던 시적 표현의 압축미와 비유에 새 세상이 열리는 것 같다. 아무래도 철학이 전공이다 보니, 논리를 강조하는 글을 써왔고 글쓰기 강의에서도 주로 대상에 대한 객관적 관찰과 묘사로 정확한 의미 전달에 중점을 두었기 때문에 시적 표현과는 거리가 멀었다. 예를 들면, “엄마는 햇빛을 가리기 위해 머리에 수건을 쓰고 세탁대에서 빨래를 했다. 허리에 앞치마를 두르고 오랫동안 손을 물에 담가 비누 거품을 많이 낸 다음 옷의 물기를 짜 줄에 널었다. 그러고는 집게로 고정했다. 무슨 옷이나 그렇게 차례대로 빨았다. 집안 형편이 어려워 파울랴베르 박사댁의 빨래를 맡아 했던 것이다.” 같은 분명하게 이해할 수 있는 글쓰기를 강조했다. 반면, “글이 어려운 만큼 글을 사랑하게 된다. 춤이 힘든 만큼 춤을 사랑하게 된다. 피아노가 두려운 만큼 피아노를 사랑하게 된다. 나는 피아노를 사랑하기 때문에 피아노가 두려운 것이다.”와 같은 글을 모범으로 삼기는 어려웠다. 이렇게 감성을 표현하는 글쓰기를 부정적으로 본 이유는 이런 방식이 개인을 닫힌 존재로 남게 하고 의사소통에도 방해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국어교육 전공자들 사이에서도 이 의사소통을 위한 글쓰기와 표현주의적 글쓰기를 두고 논란이 있다. 그러나 시적인 표현의 글쓰기가 의사소통에 효과적인 경우도 많다. 이수명 시인이 쓴 산문집 머리에 이런 말이 있다. “글이 움직이다가 형체를 이루거나 시처럼 이미지가 형성되려고 하면, 돌아나와 느슨한 호흡을 유지하고자 했다.…. 그래서인지 시간이 지나면서 이 글쓰기가 좀 다른 느낌을 주었다. 내가 글을 쓰는 것은 맞는데, 몇 마디의 언어, 몇 줄의 글에 내가, 하루가 의탁한다는 것이다.” 이런 글을 보면, 작가와 깊게 맞닿는 느낌이 든다. 지난 10일 2024년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한국의 작가 한강이 선정되었다는 소식이 한국을 흔들었다. 스웨덴 한림원은 한강을 “시적이고 실험적인 스타일로 현대 산문의 혁신가가 되었다”고 평했다. 그러자 바로 한강 작품에 실린 시적 표현들이 기사로 올라왔다. “당신이 죽은 뒤 장례식을 치르지 못해, 내 삶이 장례식이 되었습니다.”(‘소년이 온다’)나 “길었던 하루가 끝나면 침묵할 시간이 필요하다. 난롯불 앞에서 자신도 모르게 그렇게 하듯, 침묵의 미미한 온기를 향해 굳은 손을 뻗어 펼칠 시간이.”(‘흰’) 같은 문장이 보인다. 이런 표현은 곱씹어야 하기 때문에 읽기가 불편하고 제대로 이해했는지 확인하기도 어렵다. 그러나 시간은 걸리지만, 이런 글은 삶에 대한 작가의 태도를 더 감동적으로 전달해준다. 이런 시적 표현은 평소 작가의 깊은 문제의식과 절실함에서 나왔기 때문일 것이다. 거친 말, 거친 글은 물론이고, 평평하고 밋밋한 글쓰기도 결국은 삶에 대한 얄팍한 태도에서 나온다. 그런 글쓰기로는 깊은 소통을 할 수 없다. 쓰기와 살기는 하나다.

2024-10-13

氣살리기 활동

김종찬 포스코인재창조원 교수•컨설턴트 가을이 되면서 들판은 황금빛으로 일렁이고 풍요로움이 가득하여 저마다의 얼굴에는 미소가 가득한 이른바 수확의 계절이다. 지금의 결과는 이른 봄부터 씨앗을 파종하고 잡초를 제거하거나 적당한 거름을 하였던 수고로움의 결과일 것이다. 현재의 결과만 보고 미래를 대비하지 않으면 더 이상의 발전은 요원할 것이다. 지금 우리에게 보이는 결과는 과거에 행한 노력의 그림자일 뿐이다. 그러기에 과정이 관리돼야 결과를 제어할 수 있다. 2022년 9월 11호 태풍 ‘힌남노’로 인한 기록적인 폭우로 포항시 남구에 위치한 ‘냉천’이 포항제철소로 범람하여 제품 생산라인의 지하가 완전히 침수되어 조업이 중단되는 초유의 일이 일어났었다. 포스코 창사 이래 처음으로 전 공장 가동 중단을 겪은 포항제철소의 매출 피해는 약 2조400억 원, 피해 복구를 위해 임직원과 협력사 등 연인원 140만여 명이 복구 작업에 나섰고, 제철공정의 핵심인 2열연공장을 재가동하는 등 4개월여 만에 모든 공정이 정상 가동되었다. 135일 만에 완전 복구를 선언하고 정상조업을 이어갔지만 복구 과정에 발생된 불 필요품과 필요품이 섞여 있어 언제 문제를 일으킬지 아슬아슬한 상태로 조업을 하는 실정이었다. 이때 압연 부소장이 “냉천 범람 복구의 범 사회적 지원으로 큰 틀은 정상화되었으나 경영활동의 근간인 기본 조건의 정상 수준에는 의문이 있다”라는 지시를 계기로 정상 조건 갖추기를 위한 방법론을 고민했다. 압연 군 전체의 환경 쇄신을 통하여 쾌적한 작업환경 복원으로 직원들의 氣가 살아야 한다는 목표 아래 ‘氣살리기 활동’ 4단계를 제언하고 실행하였다. 1단계, ‘들어내氣’로 현장이나 사무실의 자그마한 문제라도 들어내는 단계이며, 대상은 현장의 통로 상에 일체의 불필요한 물품이 없이 안전이 확보되도록 하는 것이다. 전 공장이 Layout에 물건을 두는 장소를 표시하고 그 외 모두 들어내어 필요품을 표준화하였다. 2단계, ‘자리잡氣’로 필요한 위치를 쓰는 사람이 직접 정하여 꺼내기 쉽고, 사용 후 되돌리기 쉽도록 자리를 확정하여 운영하는 것이다. 대상은 안전, 환경. 설비 및 프로세스에 알맞은 복원작업과 지그(Jig)와 공구에 대한 정위치를 명확히 하여 재고품을 없애고 수량을 통제하여 자원을 효율화하였다. 3단계, ‘표시하氣’로 물건이나 자재류, 지그류, 각종 유틸리티 배관 및 게이지류에 대한 VM(Visual management)을 적용하여 수량 및 형적 관리를 통해 정상과 이상을 한눈에 알 수 있는 체계를 구축하였다. 마지막으로 4단계, ‘유지하氣’로 앞의 3단계가 지속 관리될 수 있도록 습관화 시키는 것으로, 주기적인 진단, Check 및 Audit, Survey 추진으로 Rule이 살아있는 현장 만들기 완성을 추진하였다. 본 활용 완료 후 압연 부소장이 현장을 방문하여 미비점에 대한 완성도를 높이도록 지원하고 격려하여 실질적으로 침수 피해에서 완전히 벗어날 수 있었다. 본 활동 컨설팅을 하면서 느낀 점은 ‘기억은 기록을 넘어서지 못하고, 기록은 실행을 이기지 못한다’이다. 성공이나 실패는 실행의 다른 이름이다.

2024-10-13

어떤 충고

김규종 경북대 명예교수 얼마 전 나의 누옥(陋屋)에 오래 알고 지낸 사람이 찾아왔다. 상당히 격조(隔阻)했던 터라 이야기가 여러 방향으로 흘러갔다. 그러다 지난 2월 20일 청도에서 시작한 나의 인문 강연으로 화제가 옮아갔다. ‘문명과 인간’을 주제로 한 강연이 거의 30회에 이르고 있는데, 두 차례 강연을 마치고 나면 ‘논어’함께 읽기로 방향을 전환할 요량이다. 강연이나 강의할 때 내가 취하는 태도가 이내 도마 위에 오른다. 나는 정해진 시각에 강의를 시작하여, 예정된 시각에 어김없이 강의를 마치는 습관을 오래도록 지켜왔다. 사적(私的)인 얘기는 꼭 필요한 것이 아니면 함구한다. 한 시간 강의나 강연을 위해서 나는 곱하기 3의 법칙을 준수하고자 애쓴다. 1시간 강연을 위해 최소 3시간 이상 준비한다는 얘기다. 언젠가 ‘가락 스튜디오’에서 영화에 관한 이야기를 하다가 명민한 청중에게 따끔한 충고를 듣게 되었다. 너무 많은 정보를 너무 빠른 속도로 듣는 사람을 전혀 배려하지 않고서 쏟아내는 나의 강의 방식에는 낭비되는 측면이 지나치게 많다는 것이다. 듣는 사람이 생각을 정리하고, 나름의 호흡으로 정보를 소화할 시간 여유를 주지 않는다는 것이 비판의 골자였다. 나의 강의 방식은 이른바 ‘최대 강령 주의’에 기초하는 것이다. 반대로 대중의 반응을 살피고, 그들의 지적-정신적 수준에 맞춰서 최소한의 정보나 지식을 전달하는 방식도 있는데, 그것을 일컬어 ‘최소 강령 주의’라 한다. 나는 예나 지금이나 최대 강령 주의에 기반하여 강의를 진행한다. 그것이야말로 대중을 향한 가장 기본적인 예의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하나의 강연에서 강연자가 제공해야 하는 최대한의 정보와 지식을 전달하지 않은 채 어정쩡한 상태로 대중과 작별한다는 것은 직무유기라 생각한다. 귀중한 시간과 정성, 따뜻한 관심을 가지고 강연에 참석한 대중의 교양과 지식을 고양하지 않을라치면 무엇 때문에 강단에 선다는 말인가?! 강연자의 농담과 헛헛한 개인사 혹은 허언(虛言)이 무슨 쓸모가 있단 말인가! 하지만 내게 충고한 사람들의 공통점은 청중의 심사도 고려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들의 정신적-정서적-지적인 용량을 충분히 고려하면서 강연에 임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한편으로는 지당하다는 생각도 든다. ‘쇠귀에 경 읽기식’의 강연이 된다면, 그 또한 난감한 일 아니겠는가?! 쉽고 재미있게 강연을 인도하는 것 역시 강연자의 기초적인 소양(素養)이므로! 그러하되 내 생각은 결이 아주 다르다. 강연에 참여하는 청중의 수준은 천차만별이다. 그들 하나하나의 눈과 마음을 통찰하여 강연의 난도(難度)와 속도를 조절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요구에 가깝다. 따라서 단 한 사람의 청중이 나의 강연에 몰입하여 무엇인가 깨우침이 있다면, 그것으로 나는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모든 이를 만족시킬 방도는 없기 때문이다. 만일 나의 강연으로 자신의 부족한 지식과 교양의 보완이 매우 절실하다는 사실을 각성하는 청중이 하나라도 있다면, 나는 그것으로 이미 충분하다고 믿는다. 적정 수준에서 만족하는 강연자와 청중의 어설픈 공존은 오히려 인문 강연의 심각한 질적 저하를 초래하기 때문이다.

2024-10-13

독서의 계절

우정구 논설위원 사람들은 가을을 왜 독서의 계절이라 할까. 그 이유에 대해 여러 설이 있다. 그중 하나가 당나라 학자 한유가 아들에게 책 읽기를 권하며 지은 시에 나오는 등화가친(燈火可親)이라는 사자성어다. “가을은 서늘하고 심신이 상쾌하여 등불 앞에서 글 읽기 좋은 계절”이란 뜻의 등화가친은 시대가 흘러 어느덧 가을을 대표하는 표현이 됐다. 우리나라에서는 서울의 한 신문사가 1920년대 가을을 독서의 계절로 표현한 것이 시초라 한다. 그밖에도 가을이면 행복 호르몬인 세로토닌의 분비가 줄어 사람이 고독감에 빠지고 사색에 잠기게 된다고 해 독서의 계절로 불렀다는 말도 있다. 독서는 새로운 정보와 지식을 제공할 뿐 아니라 사고력, 상상력, 문제 해결력을 향상시켜 사람이 살아가는 데 좋은 지혜를 준다. ‘나니아 연대기’ 소설가인 영국의 루이스는 ‘책 읽는 삶’에서 “독서는 내가 사는 세계가 너무 작다는 것을 알게 해준다”고 말했다. 독일의 철학자 칸트는 “즐거운 독서는 운동만큼 건강에 유익하다”라고 했다. 사람이 운동을 함으로써 건강해지는 것처럼 독서는 사람의 머리와 가슴을 발달시켜 준다. 사물을 제대로 바라볼 안목과 지혜를 가르쳐 주며 무엇보다 사람다운 인간성을 갖게 한다. 책읽는 사람이 많아야 나라와 국민이 똑똑해진다. 작년 우리나라 성인 독서율은 43%. 성인 10명 중 6명이 1년에 책 한 권 읽지 않는다는 통계다. 우울해지는 독서의 계절에 단비 같은 소식이 전해졌다. 한국인 최초 노벨문학상 수상 낭보가 그것이다. 작가 한강의 수상을 축하하며 책 읽는 국민이 많아지는 전기가 되었으면 한다. /우정구(논설위원)

2024-10-13

호미반도의 획기적인 발전 가져올 추모공원 조성

이강덕 포항시장 시대와 종교, 국가에 따라 죽음에 대한 인식은 다소 차이가 있지만, 동서양을 막론하고 죽음은 또 다른 시작으로 여겨져 왔다. 특히 장묘 시설과 문화는 사회 성숙도를 나타내는 척도로 인식되고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유독 생활 필수시설인 화장장과 공동묘지를 기피·혐오시설로 인식하는 경향이 강했다. 여러 원인이 있겠지만 일제 강점기부터 본격 조성되면서 노후화된 공간과 환경 문제 등 부정적인 이미지가 큰 영향을 미친 것으로 사회학자들은 분석하고 있다. 반면, 유럽 등 해외에서는 도심 한가운데 위치한 추모 공간이 기피 시설이 아닌 관광 명소로 자리 잡고 있다. 수많은 역사적 인물과 예술가들이 잠들어 있는 프랑스 파리의 ‘페르 라셰즈 묘지’는 그 자체가 관광 명소이자 ‘문화적 아이콘’으로 관광객 발길을 끊이질 않고 있다. 베토벤, 슈베르트 등이 묻힌 오스트리아의 빈 중앙묘지도 도심 속 공원으로 연간 100만 명 관광객이 들리는 명소이다. 우리 시가 만들려고 하는 추모공원 ‘영일의 뜰’ 역시 이렇듯 해외 선진 사례와 같이 기피시설이란 고정 관념과 부정적인 인식을 말끔히 떨쳐 버리고 도시 발전의 획기적인 전기로 삼고자 한다. 단순한 추모를 넘어 문화와 예술이 자연스럽게 어우러진 고품격 명품 공간으로, 추모객은 물론 시민과 관광객에게 평온함과 감동, 체험과 즐거움까지 전하고자 하는 철학에서 기획됐다. 포항시 남구 구룡포읍 눌태리 산 일원에 들어설 추모공원은 2028년 말 완공을 목표로 하고 있다. 무색·무취·무연의 친환경 화장시설과 봉안시설 2만기, 자연장지 6만기, 유택동산 1곳이 들어선다. 33만㎡(10만 평) 규모 부지의 20% 정도만 장사시설이며 나머지 80%는 조각 공원과 문화 공간 등으로 조성된다. 특히, 추모공원의 화장시설을 지하화해 주변 경관과 조화를 이루고, 상부에는 국내외 유명 건축가가 참여해 만든 아름다운 건축물과 조각공원을 설치해 유족과 방문객이 함께할 수 있는 힐링공간으로 만들 예정이다. 노르웨이 오슬로의 비겔란공원은 ‘북유럽의 로댕’이라 불린 조각가 비겔란과 제자들이 만든 탄생에서 죽음까지 인간의 일생을 표현한 조각품을 곳곳에 배치해 문화와 예술이 함께하는 복합적인 휴양지이자 관광지로 높이 평가받고 있다. 구룡포 눌태리에 조성하는 추모공원도 이에 못지않은 명품 조각공원을 만든다는 구상이다. 또한 구룡포 자연 경관과 인문학적 특성을 살린 동해를 조망할 수 있는 전망타워, 수목원, 민속학 박물관, 숲속 미술관 등을 조성해 지역 주민들과 관광객 모두가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도록 배치한다. 추모공원 조성을 계기로 구룡포를 중심으로 호미반도 일대를 환동해를 대표하는 해양 휴양관광 거점으로 조성하고자 하는 계획도 실현에 속도를 낼 방침이다. 호미반도가 보유한 천혜의 해안 경관과 말목장성, 구룡포항 등 자연과 역사적 자산을 모두 활용해 호미반도 명품 관광특구 조성을 추진하는 등 호미반도의 종합적인 발전을 가져올 계기를 마련할 방침이다. 이를 위해 호미반도 블루 레일로드를 건설해 추모공원과 인접한 해안선을 따라 모노레일을 단계적으로 설치하고, 다양한 해양관광 인프라를 마련하고 있다. 에코 트레킹로드와 오션 투어로드 등 자연과 어우러진 체험형 관광 코스를 만들어 시민뿐만 아니라 관광객들을 위한 특색있는 휴양지로 만들고자 한다. 단순한 추모공원 조성이 아닌 이렇듯 종합적인 접근은 지역 경제를 활성화하고, 구룡포와 호미반도가 환동해권의 새로운 관광 중심지이자 일류 생활공간으로 거듭나도록 해 시민들의 삶과 지역 사회에 도움을 되고자 하는 고민의 결과이다. 구룡포 주민들과 소통과 협업을 통해 조성될 포항 추모공원이 지속 가능한 환동해중심도시 또 다른 랜드마크이자 상생 발전의 모범사례로 자리매김하길 소망한다. 추모공원이 건립될 수 있도록 많은 관심과 성원을 해주신 시민 여러분과 전폭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은 구룡포 주민들에게 다시 한 번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2024-10-13

보물찾기

엄마는 한글을 모른 채 인생의 절반을 넘겼다. 둥글둥글한 엄마의 인생 중에 한 부분이 이가 빠져 있었다. 어려운 환경으로 놓쳐버린 것, 바로 엄마의 문자인생이다. 내가 글을 배우면서 엄마의 문자인생의 빈 공간에 조금씩 땜질을 할 수 있었다. 그것이 완전한 동그라미를 만들지는 못해도 문자로 답답해했던 엄마를 대신해서 이름과 주소, 전화번호를 적어주며 나는 엄마 나이 예순이 될 때까지 손발이 되어주었다. 외할아버지는 일찍 돌아가셨고 외할머니는 생활고에 시달렸다. 외할머니는 이런 저런 삶의 시련 끝에 장사를 시작했다. 자식들 배는 굶기지 말아야 한다는 강한 모성애였다. 외할머니가 장사를 나가면 장녀였던 엄마는 집안 살림을 도맡아야 했다. 이모와 외삼촌들은 고구마 줄기처럼 엄마의 치맛자락을 붙잡고 늘어졌고 할머니 이상으로 엄마의 삶도 고달팠다. 그러니 학교를 간다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내 고기 팔아 돈 많이 벌어 와서 학교 보내주께. 동생들 잘 보고 있거라.” 외할머니의 말이 엄마에게는 달콤한 사탕 같았다. 내일이 되어도 똑같은 삶의 연속이었다. 또 다시 엄마는 할머니를 졸랐다. 늘 똑같은 물음에 똑같은 대답이 이어지면서 세월은 야속하게 흘러갔다. 배우지 못한 것에 대한 한이 맺힌 채로 엄마는 아버지를 만나 결혼했고 나를 낳았다. 자식에게만은 한을 물려주지 않으리라. 다짐에 또 다짐을 한 엄마는 남들보다 두 배로 열심히 살았다. 자식을 통해 간접적인 한풀이를 하였다. 하지만 그것이 완전한 한풀이가 아니었음을 알았다. 10년 전 어느 날, 친정에서 일이다. 그동안 보지 못했던 책이 두 권 있었다. 한 권은 악보가 그려진 노래책이고 한 권은 ㄱ, ㄴ이 적혀있는 한글 기초 떼기라는 책이었다. 엄마는 지난달부터 노인학교에 한글반이 생겼다며 공부를 한다고 했다. 한글을 배워서 노래방에 가서 부르고 싶은 노래를 모두 불러볼 것이라 했다. 금방 터질 듯 부풀어 오른 풍선 같은 엄마의 모습에 나도 얼떨결에 기뻐해 주었다. 엄마의 각오는 대단했다. 한글은 엄마 인생의 목표였고 희망이었다. 김경아 작가 다음 해 봄, 엄마는 노인학교 한글 반에서 소풍을 간다고 했다. 백발이 무성한 할머니들이 한글공부라는 한에 동질감을 느끼며 ‘학교’라는 이름으로 처음 가는 소풍, 어쩌면 지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소풍이 될지 모른다. 엄마는 잠도 제대로 못 주무신 모양이다. 내 어릴 적 소풍 때 엄마처럼 나도 엄마의 소풍을 챙겼다. 뜨거운 김이 나는 하얀 밥에 참기름과 깨소금을 넣고 반지르한 김 위에 밥을 깔고 계란과 시금치무침, 우엉조림을 넣고 내 미안한 마음까지 돌돌 말았다. 나는 왜 엄마에게 지금까지 글 세상을 열어줄 생각을 못했을까. 엄마의 마음을 진작 읽어 드리지 못함에 자꾸 눈이 붉어졌다. 맛있는 간식을 사드시라고 용돈도 챙겨 엄마 생애 ‘첫 소풍 가방’을 챙겼다. 저녁 무렵 대문을 들어서는 엄마의 소풍 이야기는 시리즈로 이어졌다. 먼저, 노래자랑을 해서 받은 양은 냄비를 자랑했다. 그다음 보물찾기를 했는데 겨우 찾은 종이가 ‘꽝’이었는데 얼른 꽝 된 종이를 다시 숨기고 자리를 비켰단다. 다른 곳에서 엄마는 3장이나 더 찾았다. 보물찾기에서 받은 선물이라며 수세미, 비누, 치약들을 내놓았다. 엄마의 김밥이 최고 맛있었다는 다른 할머니들의 칭찬에 흡족해 하시는 엄마 모습에서 30년 전 내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칠순을 훌쩍 넘긴 엄마. 기나긴 인생의 여정 가운데 노래자랑 때처럼 설레는 순간도 있었겠고 처음 해 보는 보물찾기의 종이에 적힌 것처럼 `꽝’인 순간도 있었으리라. 그러나 이제는 손자의 받아쓰기를 불러 줄 수 있고, 노래방에서 글을 보고 노래도 부를 수 있을 만큼 엄마의 인생은 멋지고 아름답게 변했다. 소풍의 보물찾기에서 선물 받은 수세미나 비누, 치약이 엄마 인생의 보물찾기에서 선물 받은 한글에 감히 비길 수가 있겠는가. 엄마 인생 최고의 보물찾기는 남편도 아니고, 자식도 아니고, 돈도 아닌 한글일지 모른다. 신문도 보고 책도 읽으면서 엄마의 인생 소풍 끝나는 그날까지 더 많은 보물들을 속속 찾아내길 간절히 소망한다. 돋보기를 끼고 손자의 받아쓰기를 불러주고 있는 엄마의 목소리에 오늘따라 힘이 실린다.

2024-10-13

한강의 정신 승리, 한국어 글쓰기의 성취

소설가 한강이 올해의 노벨문학상 수상자라는 발표는 순식간에 전 세계 뉴스 1면에 도배되다시피 했다. 한글날 바로 다음날에 얻은 기쁜 소식이었다. 한강은 2016년 5월 소설 ‘채식주의자(The Vegetarian)’로 영국의 맨부커상을 수상하였을 때부터 작가로서의 뛰어난 기량을 전 세계에 알렸다. 이후 다양한 세계적인 문학상을 휩쓸더니 결국 노벨문학상에 도달했다. 한국어 글쓰기로 노벨문학상을 수상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었다는 점에서 매우 의미 깊다. 한국어는 영미권의 언어에 비해 어휘수와 문법적 논리가 부족하다는 비관적인 생각을 완전 히 벗어던지는 매우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세계적 작가가 나오기 어렵다는 자조를 뛰어넘을 수 있게 되었다. 현대의 젊은 작가들의 글쓰기에 쏟는 공력만큼이나 번역 능력과 그리고 우리나라 문화예술의 역량과 성숙도가 함께 버무려져 얻은 기쁜 결과다. 한강 작가의 개인적 글쓰기의 역량과 사유 세계의 깊이와 폭이 자랑스러울 뿐 아니라 그의 작품이 전 세계의 다양한 언어로 번역, 보급되리라는 생각을 하면 더욱 가슴 벅차다. 이는 한강 작가의 정신적 승리인 동시에 한국어와 한글 글쓰기의 위대한 성취이다. 영국이 산업혁명으로, 프랑스가 정치혁명으로, 독일이 정신혁명으로, 미국이 지식정보혁명으로 인류의 삶을 한 단계 추동했다면 이제 21세기는 대한민국의 문화 역량이 세계를 이끈다. 그런 취지로 2007년 국립국어원장으로 일할 때 한국어와 한글을 전세계에 보급하고 문화상호주의적 소통을 목표로 ‘세종학당’을 설립했다. 제국주의 국가들이 약소국가의 언어를 포식하는 것이 아니라 국가 상호간의 문화와 언어를 존중하는 탈제국주의적 언어문화의 소통이 중요하다는 판단에서였다. 이상규전 국립국어원장·경북대 명예교수 채 100년도 안된 기간에 민주화와 경제선진을 일군 대한민국이다. ‘한강의 기적’을 이룬 대한민국의 소설가 한강-공교롭게도 음이 같다-이 노벨문학상 수상이라는 기적을 이뤄 한류의 최정점을 찍었다. 전세계인들이 한강의 작품을 읽고 한강과 대한민국의 한국어와 한글 글쓰기를 명료하게 가슴에 새기는 것을 상상해 보라. 이는 해외에서 원자로나 대형 토목공사 수주로 가져오는 경제적 확장력에 비할 바가 아니다. 한강의 위대한 작가 정신이 인류 삶에 크게 기여하기를 기대하면서 연이어 한국의 시인과 작가들이 그 대열을 이어줄 것을 바란다.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대한민국의 문학 작품이 전세계 인류의 읽을거리가 되고 세계인에게 따뜻하되 강한 영향력을 미친다는 것은 정말 가슴 설레는 일이다. 한국어와 한국문화가 인류 보편성과 세계성을 지님을 입증한 가치있는 성과다. 노벨문학상의 한강은 위대하다. 그런 한강을 낳고 가진 한국은 더욱 자랑스럽고 위대하다.

2024-10-13

축제의 계절, 10월

윤영대 전 포항대 교수 폴짝폴짝 징검다리 뛰어 건너듯 쉬었던 10월 초순의 휴일은 한글날을 쉬고 또 주말을 맞아 그 기분은 이어지고 있다. 가을 축제가 많은 계절에 태풍 소식이 언뜻 들려오기도 하지만 가을비와 함께 추워진 날씨에도 행사들은 무사히 잘 치러졌으면 한다. 지난 5일 호미곶 해맞이광장에서는 ‘제20회 포항사랑 연날리기 한마당’이 열려 꼬리연 날리기와 사생대회가 성황리에 개최되었고, 오천읍 포은 정몽주 묘역 광장에서는 제20회 포은문화제가 열려 오천읍민 화합을 유도하며 배우들의 공연과 함께 볼거리, 먹거리, 즐길거리가 풍성하게 펼쳐졌었다. 이번 주에는 11일부터 사흘간 양덕체육공원에서 ‘수제맥주 페스티벌’이 열리고 먹거리와 기념품을 파는 벼룩시장도 열려 지난 폭염에 시달렸던 시민의 마음을 흥겹게 할 것이고, 13일에는 11월에 개최될 포항국제음악제 준비를 위한 작은 페스티벌이 문화예술회관 일원에서 진행될 것이다. 이외에도 만인당(萬人堂)에서는 50여 개 기업이 참여하는 취업박람회가 열려 현장 면접을 통하여 구직희망자에게 취업 기회를 제공한다고 하니 젊은이들에게는 좋은 기회가 되리라 생각한다. 그리고 19일부터는 ‘전환’을 주제로 ‘강철과 예술의 만남’ 스틸아트 페스티벌이 영일대해수욕장 인근에서 펼쳐지며, 이 밖에도 몇몇 공연과 전시회가 있으니 10월은 즐거운 축제의 달이 될 것이다. 한편 경주에서는 10일부터 제51회 신라문화제가 봉황대와 대릉원에서 열린다고 한다. 이 행사는 대릉원에서 신라복 패션쇼를 시작으로 갖가지 예술공연이 벌어지는 거리예술 축제이다. 이제 찬 이슬이 맺히는 한로(寒露) 절기이니 오곡백과를 수확해 마무리 타작하는 농부의 마음은 풍요로워 국화 꽃잎 따서 화전(花煎)을 구워서 술 한 잔 하며 가을 놀이를 생각할 것이고, 여름 더위로 잃은 원기 회복을 위해서 가을 고기 미꾸라지로 추어탕을 끓여 먹으면 좋겠지. 양수 9가 두 개 겹쳐진 음력 9월 9일은 ‘중양절’이라는 세시 명절이고, 10이 둘 겹쳐지는 양력 10월 10일은 ‘임산부의 날’이다. ‘모자보건법’에 의거 제정되어 임산과 출산이 줄어가는 국가적 위기에서 임산부들의 사회적 배려를 통해 사랑이 가득한 가정을 이루도록 한다는 취지이다. 이렇듯 다양한 축제를 기웃거리다 보면 많은 사람과 접촉하게 되는데 다시 급증하고 있는 코로나뿐만 아니라 독감에도 전염될 수 있기에 65세 이상 노인들은 반드시 독감 예방주사를 맞아야 하는데 이달 11일부터이다. 현재 의료계의 불협화음이 마음에 걸리기도 하지만 꼭 예방주사를 맞고 개인위생을 철저히 관리해야 할 것이다. 겨울철 독감은 절대 무시하면 안 된다. 이제 곧 단풍의 계절이다. 이번 여름의 긴 더위로 작년보다 6일가량 늦게 시작한 단풍은 설악산을 시작으로 남하 중인데 포항 동해안 지역은 10월 말경 절정에 이를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벌써 아침저녁으로 찬 기운이 돌아 일교차가 10도 이상이 되니 계절이 바뀌었나 보다. 여름옷은 세탁하여 집어넣고 깨끗한 겨울옷을 꺼내 입고는 강남으로 내려가는 제비들을 전송하고 북쪽에서 날아오는 기러기 떼를 마중하는 축제도 벌여야겠다.

2024-10-10

좌경화 한국

김병래 수필가·시조시인 1945년 8월 15일, 일본이 패망하면서 한반도는 일제의 식민지에서 해방이 되었다. 그러나 해방과 동시에 한반도는 북위 38도선을 기준으로 남쪽은 미국, 북쪽은 소련이 점령하고 군정을 실시했다. 1948년 5월 10일, 남한에서는 유엔의 감독 하에 총선거가 실시되었고, 이를 통해 제헌국회가 구성되었다. 1948년 7월 17일, 제헌국회는 대한민국 헌법을 제정하고, 8월 15일에는 이승만을 초대 대통령으로 하는 대한민국정부가 공식 출범했다. 1948년 12월 12일, 대한민국은 유엔 총회에서 한반도의 유일한 합법 정부로 승인받고 국제사회에서 독립국가로서의 지위를 확립했다. 해방 직후 남한은 국민의 70% 이상이 좌익 편이었다. 그러나 반공주의자 이승만의 지도력과 미군정의 지원으로 좌파들의 반발과 저항을 물리치고 자유민주주의 정부를 수립할 수 있었다. 하지만 좌·우의 갈등과 대립은 상존했고, 북쪽 공산군의 남침으로 동족상잔의 전쟁까지 겪게 되었다. 반공이 국가 존립의 근간이라는 걸 뼈저리게 학습한 셈이었다. 박정희 군사혁명위원회도 ‘반공을 국시의 제 일의로 삼고 지금까지 형식적이고 구호에만 그친 반공태세를 재정비 강화한다’는 것을 ‘혁명공약’으로 명시했다. 지금 60대 이상은 초등학생 때부터 철저하게 반공교육을 받은 세대이다. 오늘 우리가 이만큼 살게 된 것은 누기 뭐라 해도 투철한 반공정신으로 미국을 비롯한 자유우방들과 손잡은 결과이다. 소련을 위시한 공산주의 나라들 편에 선 북한이 최빈국으로 전락한 것을 보더라도 자명한 결론이다. 그런데 소위 문민정부가 들어서면서 학교교육에서 반공이 사라졌다. 누가 반공이란 말을 꺼냈다가는 ‘지금이 어느 땐데 색깔타령이냐’는 면박을 당하기 일쑤였다. 그러는 사이 노동운동 등을 명목으로 반정부 투쟁이 잦았고, 그것을 발판으로 친공·사회주의자들이나 종북·주사파들까지 고개를 쳐들고 일어났다. 좌파세력이 집권을 하고부터는 반공교육 대신 오히려 사회주의교육이 표면화되기 시작했다. 대학 강단과 서클에서 이념학습을 하고, 전교조를 통해 초·중·고에도 좌파이념이 주입되었다. 교육계, 노동계, 문화예술계에 침투한 좌파 이념은 어느새 우리 사회의 주도적 경향이 되어버렸다. 민노총이 장악하고 있는 노동계는 물론 지식인과 문화·예술인 치고 좌파성향이 아닌 경우를 찾아보기 힘든 게 현실이다. 그런 사회분위기 속에서 대다수 국민들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좌경화 되어갔다. 나라가 심각하게 좌로 기울어져도 자각증상이 없고 위기의식을 느끼지 못하는 것은 바로 그 때문이다. 그래서 기울어진 나라를 바로 세우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대통령의 지지율은 바닥이고, 좌파 범죄 집단이 국회를 장악하고 나라를 무법천지로 만들어도 먼 산의 불구경이거나 오히려 극력 지지하는 국민들이 과반수인 것이다. 문재인 정권이 한 짓을 보더라도, 정권이 다시 좌파들에게 넘어가면 회복불능으로 기울어져 대한민국은 결국 침몰하고 말 것이다. 다시금 반공교육, 반공의식의 고취가 절실한 까닭이다.

2024-10-10

가을 축제

우정구 논설위원 어느 시인은 가을이 봄보다 좋은 이유에 대해 화려하지 않지만 맑고 깨끗한 분위기에서 정을 느끼게 한다고 말했다. 그는 무덥고 지루했던 여름이 지나고 찾아온 가을의 상쾌함에 정을 느꼈을지 모른다. 그러나 가을은 아침 저녁으로 불어오는 신선한 바람과 청명하고 파란 하늘만으로 우리를 행복하게 하기에 충분하다. 계절의 변화가 주는 또 다른 행복감이다. 특히 가을은 하늘이 높고 곡식이 익어가는 풍요를 상징하는 천고마비(天高馬肥)의 계절이다. 여기에 전국 곳곳이 축제로 가득하니 가을을 우리가 어찌 반기지 않을 수 있으랴. 지금 대구와 경북도 가을 축제로 한창이다. 지난달 안동에서 열린 국제탈춤페스티벌은 100만명이 넘는 인파가 찾아올 만큼 대성황을 이뤘다. 세계 무대에 나서도 조금도 손색없는 명품축제로 자리를 잡아가는 모습이다. 대가야의 본고장인 고령에서는 문화유산 야행이란 이색 축제가 열렸고, 구미에서는 푸드페스티벌에 수만명 인파가 몰려 먹거리와 공연을 즐겼다고 한다. 상주의 모자축제도 무난히 성료했다. 이번 주에는 경주신라문화제와 영주 풍기인삼축제, 청도 반시축제가 열린다. 그밖에도 문경사과축제와 경산대추축제 등 각종 지방축제들이 줄줄이 준비돼 있어 이름 그대로 축제 풍년이다. 축제는 본래 신에게 풍요와 안녕을 기원하는 제의에서 출발했으나 이제는 지역민 모두가 즐기는 문화축제로 승화하고 있다. 특히 지역을 알리고 주민의 소통 수단이 되면서 경제적 가치도 높아져 주목을 받는다. 깊어가는 가을을 맞아 모두가 축제 속으로 한 번쯤 빠져보는 것도 좋은 일이다. /우정구(논설위원)

2024-10-10

초선의원 좌충우돌 여의도 적응기

더불어민주당 임미애 의원 9월은 결산국회, 10월은 국정감사, 11월은 예산국회다. 추석을 쇠고 나면 국회는 계속되는 일정으로 하루하루가 빡빡하다. 예결위에 소속되어 있어 결산 관련 대정부질의를 할 기회가 있었다. 지난해 결산에서 정부는 56.4조라는 역대 최고의 세수펑크를 냈다. 이 경우 어딘가에서 세출을 줄이거나 국채를 발행, 균형재정이 되도록 해야 한다. 그런데 정부는 지난해 단 한 차례의 추경이나 국채발행도 하지 않았다. 정부의 대응은 놀랍게도 지방정부와 지방교육청에 내려갈 돈 18조를 삭감하는 방식으로 세수결손을 때웠다. 더 황당한 일은 주겠다고 약속했던 돈 18조원이 지방에 내려가지 않았는데 행정당국이나 교육당국은 너무 조용했다. 마치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것처럼…. 하지만 현장에서의 상황은 달랐다. 당장 여러 부분에서 이 문제로 어려움을 겪었다. 공무원들의 초과근무수당 집행이 일부 중단되는가 하면, 소방관들의 출동수당 지급에 문제가 생겼으며 경찰들의 초과근무와 순찰업무에 제동이 걸렸다. 여기저기서 아우성이 나오면서 결국 행정당국이나 교육당국은 부족한 돈을 메우기 위해 어딘가에서 끌어오거나 줄이는 방식으로 살림을 살아야 했다. 지방교부세법에는 지방재정의 안정적인 운용을 위해 내국세가 덜 걷히는 경우 지방에 내려 보내는 예산을 2년간의 시차를 두고 조정하도록 명시하고 있다. ‘지방재정 평탄화 원칙’이다. 이 원칙은 지방정부가 재정을 운용하는데 급격한 변화를 주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다는 판단에 근거해 제정됐다. 중앙정부가 지방에 지난해 18조원을 미지급한 부분은 결국 지방재정법, 지방교부세법, 지방교육재정교부금법을 위반한 셈이다. 정부의 예비비 집행도 모순 자체였다. 규모가 크거나 재난재해 발생으로 긴급하게 사용해야 할 경우 지방에서는 의회와 사전 논의를 거쳐 동의를 구하는 경우가 일반적이다. 나라살림도 응당 대의기관인 국회 논의가 있어야 함이 타당하다. 그러나 이번 정부는 본 사업에서 확정된 예산보다 더 큰 규모로 예비비를 집행하면서도 해당 상임위와 어떤 논의나 동의 과정도 거치지 않았다. 필자가 군의회, 도의회에서 의정 생활을 할 때 지방의회의 모델은 국회였다. 지금도 지방의회 의원들은 그렇게들 생각하고 있다. 현실은 과연 그럴까. 국회에 들어와 몇 달을 지나보면서 느낀 건 국회가 지방의회의 모범이 되기에는 여러 가지 면에서 부족했으며 중앙정부 또한 지방정부의 모범이 라고 할 수 있을지 강한 의문이 들었다. 국회에서 제일 아쉬운 점은 발언권의 제약이다. 지방의회는 다른 의원과의 형평성 문제로 발언에 시간제약을 두는 경우는 있으나 횟수에 제한을 두는 경우는 없다. 하고 싶은 말이나 질문을 충분히 할 수 있도록 의원의 발언권이 보장되어 있는 편이다. 그런데 국회는 발언시간 뿐 아니라 횟수도 제한이 되어 있다. 답변시간 포함해서 1차 질의는 7분, 2차 질의 5분, 3차 질의 3분이니 조급해진 의원들이 질의 과정에 국무위원의 답변을 끊는다거나 언성이 높아지거나 말이 빨라지는 모습을 자주 보게 된다. 예산서를 통째로 놓고 페이지를 넘겨가며 질의를 했던 시절과 예산서 원본을 구경하기도 힘든 국회 예산심의는 무척 낯설다. 이래서 상시국감을 얘기하는가 보다.

2024-10-10

진시황제가 찾아 헤맨 최고의 건강식(중)

박용호 포항참사랑송광한의원장 채식을 하면 몸에 필요한 영양소가 부족하거나 편향되지 않을까 하는데 바르게 채식을 하면 오히려 충분한 영양소를 섭취할 수 있다. 잎과 뿌리 줄기 등의 채소를 골고루 섭취하고 해조류들도 반찬에 올려 섭취를 하면 영양 불균형을 피할 수 있다. 오메가3 지방산은 들기름에 많이 포함되어 있고 칼슘은 녹황색 잎채소를 통해 섭취할 수 있다. 비타민 A, E, 마그네슘 등은 채식을 하는 사람의 섭취율이 오히려 높다. 비타민 B12도 해조류나 식물성 발효식품으로 충분히 섭취할 수 있다. 이처럼 제대로 된 채식을 하면 우리 몸에 필요한 충분한 영양소를 섭취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몸에 부담을 주지 않아 인체가 필요 없이 많이 들어온 음식을 소화 시키느라 에너지를 소모하지도 않는다. 채소만으로 식사를 하긴 힘들다. 한국 사람은 밥을 먹어야 하는데 이제부터 백미는 멀리 치워 버리자. 현미나 잡곡으로 밥을 한다. 현미는 당지수가 50이하이고 백미는 당지수가 80 이상이다. 같은 밥이라도 당을 급격하게 올리는 백미는 현미보다 건강에 좋지 않다. 모든 음식은 당지수를 보고 낮은 음식을 먹는 것이 좋다. 혹시나 고기없이 채소와 밥만 먹으면 단백질이 부족하지 않을까 하는데 그렇지 않다. 하루 세끼 기준으로 현미밥을 먹는다면 우리 몸에 필요한 최소한의 단백질은 보장된다. 다만 현미밥은 백미에 비해 딱딱하고 까끌하기 때문에 꼭꼭 씹어서 먹어야 한다. 그래야만 온전히 그 안에 있는 모든 영양소를 섭취 할 수 있다. 대충 두어 번 씹고 꿀떡 삼기면 먹으나 마나다. 꼭꼭 100번 정도 씹어 입에서 죽을 만들어 삼켜야 한다. 이미 입에서 소화가 끝난 상태로 위장으로 넘기면 위장이 할 일이 줄어들고 간과 췌장 그리고 소장 등 모든 오장육부가 하는 일이 줄어든다. 오장육부의 휴식기간이 길어지는 것이다. 오장육부가 오래 쉴수록 내 몸은 살아난다. 면역력이 높아지고 아픈 것이 사라진다. 건강하게 장수의 길로 들어선다. 그리고 소식을 한다. 하루에 두끼 혹은 세끼만 먹는다. 소식은 특별히 어려운 것이 아니다. 현미식과 다양한 채소 위주로 먹으면 현미와 채소 특유의 그 질긴 식감 때문에 식사 시간이 오래 걸린다. 최대한 입에 들어온 음식을 죽을 만들 때까지 씹고 삼키면 식사시간은 30분 이상 걸리고 1시간 내외로 걸린다. 이렇게 먹으면 알겠지만 생각보다 많이 적게 먹게 되고 어느 정도 먹으면 배가 찬다. 이렇게 먹으면 적게 먹어도 나중에 심한 혈당저하 증상 같은 게 오지 않는다. 오히려 많이 먹을 때 3시간 후 손이 떨리고 허기지고 땀이 나는 혈당저하 증상이 나타나지 이렇게 식사를 하면 그동안 나를 괴롭혔던 증상들이 싹 사라진다. 채식과 현미식 소식을 하게 되면 공복감이 생긴다. 이는 그동안 내가 느껴보지 못했던 느낌으로 사람에 따라서 불안감을 느낄 수 있지만 걱정할 필요는 없다. 배가 든든하지 않다 뿐이지 공복감은 배가 고픈 것과 다른 것이고 힘이 없는 것과도 다른 것이다. 이는 내 몸속이 깨끗하고 속이 비워져서 생기는 느낌이고 이때 내 몸의 세포는 쉰다. 세포가 쉴 때 내 몸은 스스로 치유를 한다. 이제 몸이 살아난다.

2024-10-09

지구온난화와 환경미화원

이정옥위덕대 명예교수 더워도 너무 더웠다. 장장 40여 일 가까운 열대야를 기록하며 푹푹 찐 여름이었다. 마치 동남아 여행을 갔을 때, 공항에서 바깥으로 나서면 훅 끼치던 열기와 같은 무더위를 매일 겪어야 했던 여름이었다. 예년 같았으면 한여름 열흘 정도밖에 켜지 않았던 에어컨을 24시간 풀가동했다. 두 개의 선풍기도 꺼지는 시간이 없었다. 결국 10년도 더 된 선풍기 하나는 모터 과열로 고장이 나 버렸다. 더위를 잘 견디는 나는 여름나기가 겨울추위보다 더 수월했다. 여름철 더위 안부를 들으면 대답이 정해져 있었다. 뭐 그리 덥지 않다고. 거의 에어컨이 있는 실내, 차안, 집에서 지내니, 더울 틈이 없다. 잠시 에어컨 없는 데로 나와 이동할 때는 따뜻하다고 느낀다며 여름나기가 그다지 어렵지 않다고 생각했다. 더위보다 추위를 많이 타는 편인 나는 여름보다 겨울이 더 싫었다. 내복을 챙겨 입고 옷을 켜켜이 껴입어야 하는 겨울보다는 차라리 여름이 더 좋다는 나였다. 실제로 땀 빨빨 흘리는 여름이 추위에 덜덜 떠는 겨울보다 나았다. 그렇게 더위를 잘 이기는 나였으나 올해는 아니었다. 글쎄, 나이가 들면서 체질이 바뀐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렇다 치더라도 정말 버텨내기 어려운 폭염이었다. 폭염의 원인은 기후변화로 인한 기온상승이요, 그 주원인은 지구온난화라고 한다. 2021년 6월 IPCC 보고서에 따르면 인간 활동에 의해서만 200년만에 1.1도가 상승했다고 한다. 인간이 자초한 일이니 인간이 풀 수밖에 없다. 지구를 지켜야겠기에 일상생활에서 작은 변화를 감행했다. 내가 불편해지면 지구가 편하다니 감수해 볼 만한 가치가 있다. 세탁할 때 세탁망을 활용하면 미세섬유를 걸러내 수질오염을 방지할 수 있다고 하니 더 적극적으로 사용한다. 식기세척기는 물을 절약할 수 있는 가장 손쉬운 방법이다. 식기세척기는 9~12L의 물을 소비하는 반면, 손 설거지는 최대 40L의 물을 사용한다니 편리함보다 환경을 위해 식기세척기를 자주 쓰기로 한다. 일주일치 식단을 미리 계획하고, 한 주 동안 먹을 음식을 미리 요리해 소분해 둔다. 일요일 저녁에 일주일치 야채샐러드를 만들어 두면 육류보다 더 건강한 채소 식단도 챙기면서 냉장고도 비우고 음식물쓰레기도 줄인다. 당장은 어렵지만 조만간 자동차도 하나 팔 계획을 가지고 있다. 가까운 거리는 걷고, 혼자 이동할 때는 자가용보다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습관으로 나를 길들이기로 한다. 탄소포인트제에 동참하려 테라스에 작은 태양광발전시스템 설치도 해뒀다. 얼마나 에너지가 절약되는지는 알 수 없으나 그저 실천해보는 뿌듯함도 있다. 폭염이, 기후변화가, 지구온난화가 나의 일상을 이렇게나 바꾸었다. 지구온난화는 손녀의 장래 희망까지 바꾸었다. 얼마 전이었다. 린이 환경미화원이 될 거라고 말했다. 평소 아픈 사람 병 고쳐주는 의사가 될 거라면서, 할머니 허리도, 다리도 아프지 않게 해주고, 주름도 펴 줄 거라던 린이었다. 커서 의사가 될 때까지 오래오래 살라던 린이었다. 왜 꿈이 바뀌었냐고 물었더니 돌아온 대답이 백번 지당하다. “지구가 안 아파야 사람이 살지요. 사람보다 지구가 더 중요해요. 그러니 지구를 지키는 환경미화원이 될래요.”

2024-10-09

넘보는가, 넘보게 하는가

장규열 고문 일본이 독도를 넘보는가 싶지만, 중국은 대한민국의 역사와 문화를 훔치려 한다. 중국의 동북공정과 문화공정은 최근 한반도와 동북아시아를 둘러싼 쟁점의 하나로 떠오르고 있다. 동북공정은 중국이 그들 영토 내 소수민족들의 역사를 중국사의 일부로 편입시키는 프로젝트다. 문화공정은 한국의 전통문화, 의복, 음식 등을 중국 문화라 주장하며 국제적으로 문화적 정체성과 확장성을 강화한다. 이들 공정은 한국뿐 아니라 다른 아시아 주변 국가들에도 커다란 도전이 되고 있다. 동북공정의 핵심은 고구려와 발해 역사를 중국 동북지방의 지방사로 재해석한다. 고구려는 기원전 1세기부터 기원후 7세기까지 존재했던 한반도와 만주 지역에 걸친 고대 왕국으로, 한국사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그런 고구려를 한때 중국 영토의 일부였으며, 고구려사는 중국 소수민족의 역사로 봐야 한다고 주장한다. 발해 역시 고구려 유민들이 세운 우리 국가로, 중국은 이를 중국의 지방 정권으로 묘사하며 역사를 왜곡한다. 중국의 주장은 한국의 고대사 정통성에 대한 심대한 도전으로 받아들여지며, 학문적·정치적 논란을 불러일으킨다. 문화공정 역시 최근 강하게 나타난다. 중국은 최근 한국의 전통음식인 돌솥비빔밥을 중국의 음식이라고 소개한 바 있으며, 한복을 중국 소수민족이 입었던 전통 의복인 ‘한푸’의 일종으로 주장한다. 이는 한국과 중국 간의 민족적 자부심이 걸린 문제로 확대되면서 양국 간 문화적 갈등을 부르고 있다. 중국은 문화적 영향력을 확장하려는 일환으로 이같은 주장을 펼치고, 이를 통해 주변국의 문화를 자신들의 역사와 연결하려는 의도를 숨기지 않는다. 중국의 이런 역사·문화 공세는 단순한 학술적 논의에 그치지 않고, 외교적 문제로 발전할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다. 한국의 고유한 역사와 문화를 왜곡하고 중국의 것으로 재편하려는 중국의 시도는, 한국 국민들에게도 커다란 반발을 불러일으키고 있으며 이는 국가적 정체성과 국민적 자존감에 대한 위협으로 여겨질 터이다. 한국은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지 생각해 보아야 한다. 우선, 학문적 이론적 대응이 중요하다. 역사학계는 고구려와 발해의 독립적인 역사를 더욱 철저히 연구하여 국제사회에 적극적으로 알리는 노력을 지속해야 한다. 역사적 진실을 바탕으로 중국의 왜곡된 주장을 반박할 수 있는 객관적인 근거를 제시하는 것이 필수일 것이다. 정부 차원에서도 이러한 연구를 뒷받침하는 재정적 지원이 필요하겠다. 둘째, 문화외교를 강화해야 한다. 한국은 이미 여러 방면에서 세계적인 문화강국으로 성장했지만, 전통문화에 대한 체계적인 보호와 홍보 노력이 더해져야 한다. 셋째, 디지털 플랫폼을 활용한 적극적인 대응도 있어야 한다. 중국의 공세는 주로 온라인을 통해 퍼지고 있으므로 한국도 유튜브를 비롯한 소셜미디어를 통해 국제 여론을 주도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일본의 강공도 이겨내야 하지만, 중국의 끈질긴 공정에도 효과적으로 대처할 방도를 찾아야 한다. 우리에게 우리의 것을 지킬 의지와 결의가 확고한지 스스로 되물어야 하지 않을까.

2024-10-09

‘모시는 날’이 아직도?

홍성식 (기획특집부장) 최하위직 공무원인 9급 직원의 하소연이 눈물겹다. 이런 내용이다. “나는 9급 3호봉인데 매달 10만원씩 내는 게 부담스럽다. 월급을 500만원 받는 부서장들이 200만원으로 연명하는 청년 공무원의 돈으로 점심을 먹는 게 이상하지 않은가? 본인 몫의 식사비라도 자신이 부담했으면 좋겠다.” ‘모시는 날’이란 해괴한 관행이 여전히 한국 공무원사회에서 사라지지 않은 모양이다. 언필칭 ‘모시는 날’이 되면 하위직 공무원들은 자신들의 쌈짓돈을 털어 국장과 과장 등 고위직 공무원들에게 밥을 산다고 한다. 2024년 오늘. 자신의 업무와 관련된 일을 하는 업체 관계자들에게 ‘촌지’를 받아 흥청망청 술 마시고, 생활비에 보태던 공무원들의 불법은 눈에 띄게 사라졌다. 한국사회가 합리적이고 청렴하게 바뀌어간다는 증거다. 그럼에도 여전히 부하 직원의 옆구리를 찔러 밥과 술을 얻어먹는 몰염치한 공무원이 있다는 건 사람들의 놀라움을 넘어 분노까지 부른다. 국회의원 위성곤이 최근 공무원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아직도 공무원의 75.7%가 ‘모시는 날’에 관해 알고 있다고 답했다. 실제로 최근 1년 이내에 ‘모시는 날’을 직접 경험한 이들도 44%에 이른다고 한다. 혀를 찰 일이 아닌가. 시대가 바뀌었고, 그 시대 속을 사는 세대도 상전벽해(桑田碧海)처럼 변화했다. 그러니, 설문조사에 응한 공무원의 84%가 ‘모시는 날’을 “시대에 역행하는 불합리한 관행”이라 답하는 건 당연하다. 21세기임에도 여전히 20세기 방식으로 살고 있는 철밥통 공무원들의 공짜 좋아하는 좀스러운 관행은 대체 언제가 돼야 끝이 나려는지. 측은하고 딱하다. /홍성식(기획특집부장)

2024-10-09

당신의 풍차는 무엇인가

정미영 수필가 국립발레단만의 버전으로 재해석되었다는 ‘돈키호테’ 공연을 보러 갔다. 모처럼 발레를 감상한다는 생각에 설렘이란 낱말이, 내 머릿속을 온통 나비처럼 부유하고 있었다. 발레리나들이 무대 위로 등장했다. 나는 대사가 아닌 춤으로 표현하는 무용극에 숨을 죽이며 집중했다. 발레 동작은 우아하고 깃털처럼 가벼웠다. 매력적인 키트리와 멋진 바질의 사랑 이야기를 전달하는 장면에서는 그들의 연기력에 감탄했다. 발레란 단순히 몸의 테크닉으로만 연출하는 예술이 아니라는 말을 들었던 기억이 났다. 공연의 성공 요인은 훌륭한 안무 등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나는 이 작품이 ‘돈키호테’라는 서사를 품고 있기에 더 감동적이었다. 내게 있어 발레 공연의 묘미는 단연 피루엣(pirouette)이다. 쉬지 않고 연속적으로 팽이처럼 도는 동작을 피루엣이라고 한다. 나는 바질 역을 맡은 발레리노가 몇 번을 도는지 수를 헤아려 보았다. 그러면서 자연스레 미하일 바리시니코프를 떠올렸다. 그는 ‘백야’라는 영화에서 11번을 돌고 또 돌았다. 보통 무용수들은 5~6번 정도가 평균이라고 하는데 ‘일레븐 피루엣’이라는 명장면을 연출했다. 학창 시절, 시험을 치고 나면 ‘문화교실’을 갔다. 문화교실이란 학년별로 또는 전교생이 단체로 극장에 가서 영화를 보는 것이다. 수백 명이 소풍을 가듯 영화관으로 향했으니, 가끔은 영화 내용보다 친구들과 손잡고 걸었던 장면이 선명하게 남아 있다. 그때 본 영화 가운데 발레리노 미하일 바리시니코프가 주인공이었던 ‘백야(1986년)’와 ‘지젤(1988년)’이 있었다. 그는 구소련에서 미국으로 망명한 ‘살아 있는 전설’이었다. 두 편 모두 무용수들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기에, 그가 실제로 발레 하는 장면을 볼 수 있어 가슴이 벅찼다. 그 당시 나는 영화를 먼저 본 선배로부터 “미하일이 11번을 팽팽 도니까, 한 눈 팔지 말고 보거레이.”라는 말을 들었다. 그런 연유로 미하일이 발레 하던 중 ‘턴’을 하기 시작하자, 손가락을 꼽아 가며 수를 헤아렸다. 돈키호테는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기사도 문학을 탐독하다가 잠이 들었다. 꿈속에서 아름답고 고결한 여인 둘시네아를 만났지만, 그녀는 괴물들에게 납치를 당했다. 잠에서 깨어난 돈키호테는 그녀를 구하기 위해 산초 판자와 바르셀로나 광장으로 향했다. 돈키호테는 기사도를 이상으로 삼고 이를 실현하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그가 살던 세계는 이미 그런 가치가 사라진 사회였다. 자신의 신념이 받아들여지지 않는 곳에서 살아가는 일은 무척이나 힘들다. 나는 현실과 이상의 경계에서 끊임없이 싸우는 돈키호테를 보며, 우리네 인간사를 엿보았다. 사람은 현실에 안주하며 살 수만은 없지 않은가. 대부분 살아가면서 자주 돈키호테처럼 자신만의 풍차를 마주한다. 스스로 정해놓은 이상과 충돌하며 심리적으로 버거워할 때도 종종 있다. 사회는, 직장은, 때때로 현실을 직시하고 자기가 서 있는 자리에 발을 딛고 땅만을 바라보라고 요구하고 다그치기도 한다. 그러나 현실에 안주해 꿈과 이상을 따라가지 않고 정체된 생활을 한다면, 더 이상 개인의 발전과 성장은 이루어지지 않으리라. 발레 공연이 막을 내렸다. 돈키호테의 행동을 반추해 보았다. 다소 무모해 보이기도 했지만, 신념을 포기하지 않고 도전하는 모습은 호기롭게 느껴졌다. 그의 무기는 녹슨 창과 낡은 방패였다. 하지만 어쩌면, 삶을 지탱해 준 것은 ‘용기’가 아니었을까. “당신의 풍차는 무엇인가?” 돈키호테가, 아니, 인간의 본성과 사회적 현실에 대한 깊은 통찰을 작품으로 썼던 대문호 세르반테스가 나에게 질문을 던지는 것 같아 정신이 번쩍 들었다. 나도 돈키호테처럼 용기를 가슴에 품어볼 일이다. 내 눈앞에 놓인 장애물을 훌쩍 뛰어넘어도 보고, 손으로 힘껏 밀어도 봐야, 나중에 후회하지 않을 것 같다. 풍차 너머를 바라보며, 현실을 넘어, 삶의 목표를 곧추세우고 당당하게 살아가야겠다. 소중한 내 삶이 무의미하지 않도록.

2024-10-09

형산강 하구(河口)

들숨과 날숨을 나란히 교차시키는자맥질을 통해수평을 지향하는 강물의 긴 여정을지켜 보았네갈숲과 언덕들이무던히 응원해 주었네고마운 나날들윤슬이라고 했나우리는 반짝이고 빛났다그렇게 부서지고 무너지는 것을동시에 경험하면서먼 길이 먼 길이 아니었네맑은 종아리 튼튼해지며바다로 가네돌아오지 않을 거야잠시 머뭇거려도 멈춤은 없었지참 기특했어, 장점이었지바람과 구름이 협박하면서도또 힘이 되었지대체로 조화로웠지기술이 아니라 기교였지차선이 최선이었어지금 의미 없어도 그것이 화석이 되면언젠가 발굴이 될까의미 없음이 최고의 효율이야아득한 가능과 희망, 그것이 없다면우리는 이미 강물이 아니야. 오직 나아가는 것만이 최선은 아니지만 우리는 이미 시간에 의해 나아가고 있다. 거기에 얼마만큼의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 능동적 삶이라면 더욱 좋겠다. 성과는 염두에 두지 말아야 한다. 최선이면 된다. 성공과 능력을 지껄이는 자들은 무시해도 좋다. /이우근 이우근 포항고와 서울예대 문예창작과를 졸업했다.‘문학선’으로 작품활동을 시작해 시집으로 ‘개떡 같아도 찰떡처럼’, ‘빛 바른 외곽’이 있다. 박계현 포항고와 경북대 미술학과를 졸업했으며 개인전 10회를 비롯해 다수의 단체전과 초대전, 기획전, 국내외 아트페어에 참여했다. 현재 한국미술협회 회원이다.

2024-10-09

아파트라는 괴이한 알레고리

너무 우스꽝스러워서 이질감이 드는 기사를 봤다. 서울 반포 래미안퍼스티지 아파트 단지 내에 세워진 두 개의 시비(詩碑)에 대한 것이다. 구성달 시인이 쓴 ‘영원한 파라다이스-래미안 퍼스티지’라는 시는 이러하다. “서울은 나라 얼굴 반포는 그 눈동자/ 우면산 정기받고 한강의 서기 어려/ 장엄한 우리의 궁궐 퍼스티지 솟았다/ 해 같은 인재들과 별 같은 선남선녀/ 뜨거운 열정으로 냉정한 이성으로/ 겨레의 심장 되시는 고귀하신 가족들/ 반듯한 삶을 위해 따뜻한 내 정성을/ 씨 뿌려 가꾸면서 고운 꿈 키운 낙원/ 웅지를 품은 이들의 꽃숲속의 이상향” 이런 글을 시라고 해도 될까, 이런 걸 쓰는 사람을 시인이라고 할 수 있을까 싶지만 다음 시에 비하면 그래도 낫다. 나은 이유는 단 하나, 짧아서다. 박영석이라는 분이 쓴 ‘반포 래미안 퍼스티지-천년의 보금자리’다. “반포천 물길이/ 처음으로 강을 찾아 흐르고/ 서기로운 꿈들이 이 땅에서 자라날 때/ 한강변 남쪽 안자락에/ 희망을 묻어둔 준비된 땅/ 이제 사 염원의 물길이 호수를 이루고/ 포연의 역사를 가슴으로 건너온/ 천 년의 느티나무가 영겁의 뿌리를 내렸다/ 반도의 등뼈를 차지하고/ 웅대한 역사가 대륙으로 뻗어나가든/ 척량 산맥 금강의 집에서/ 풍상의 세월을 살던/ 빼어난 자태의 진수가/ 폭포를 품은 아름다운 꿈 동산이 되어 (…) 영원한 우리들 꿈의 보금자리/ 반포 래미안 퍼스티지” 염원의 물길, 포연의 역사, 풍상의 세월 타령이 마치 북한 조선중앙텔레비죤 앵커의 웅변 같다. 표현들이 낡고 고루하다 못해 썩었다. 하지만 진짜 썩은 건 언어가 아니라 정신과 태도다. 저 시비들 앞에서 입주민들은 가슴 벅차오르는 감동과 래미안퍼스티지인(人)으로서의 자긍심을 느낄까? 그래도 설마, 그 정도로 천박할까. 그런데 주민 동의 없이 저런 걸 세우진 않았을 테니, 역시 자본주의의 물신(物神)은 인간에게서 사유하는 능력을 제일 먼저 앗아가는가 보다. 고급 아파트에 사는 걸 어떻게든 과시해서 타인에게 질투와 인정을 받고 싶은 속물근성이 저들 공동체의 집단적 정체성인 모양이다. 철학자 발터 벤야민은 현대사회의 상품들은 모두 텅 비어 있는 알레고리이며, 자본주의시대에 개인들의 꿈은 상품으로 공동화된다고 말했다. 알레고리는 문학작품 내의 어떤 기호가 작품 밖 현실에서 그것이 나타내는 것과는 전혀 다른 독자적 의미를 구축하는 ‘다르게 말하기’다. 현진건의 ‘운수 좋은 날’에서 설렁탕은 우리가 맛있게 먹는 한 그릇의 든든한 음식이 아니라 아내를 향한 김첨지의 사랑과 회한, 일제강점기 조선인들의 남루하고 비참한 삶을 나타내는 알레고리로 기능한다. 설렁탕인데 설렁탕이 아니다. 벤야민은 현대사회의 상품들이 상품 그 자체의 효용이 아닌 자본시장구조의 인간 소외와 착취를 나타낸다고 보았다. 알레고리적으로 팜유는 ‘지구의 눈물’이고, SPC의 빵은 노동자의 절단된 손이다. 이병철 문학평론가이자 시인. 낚시와 야구 등 활동적인 스포츠도 좋아하며,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그러면 아파트는 무엇인가? 한국사회에서 아파트는 거주공간이 아니라 일종의 계급 명찰이자 구매력을 드러내는 액세서리다. 설계도나 자재에 대한 설명 없이 근사한 ‘이미지’만 보여주는 아파트 광고는 한국에만 있는 것이다. 이 이미지의 환상에 매료된 이들은 왜 거기 살아야 하는지도 모르면서 모두가 바라는 선망의 대상이라는 이유로 아파트를 꿈꾼다. 래미안퍼스티지라는 상품으로 공동화된 이들의 꿈은 사실 속물근성의 다른 이름일 뿐이다. 삶의 가치와 목적을 스스로 선택하는 주체적 실존이 아닌, 타인의 평가와 인정에 자신을 맞추어가는 노예적 속성에 불과하다. 서울대 부모들이 차량에 붙이고 다닌다는 ‘서울대 대디’, ‘서울대 맘’ 스티커도 마찬가지다. 명문대에 입학한 것, 고급 아파트에 사는 것이 인생의 최종 목적이고 가장 귀한 가치인가? 이토록 천박한 돈 자랑, 학벌 자랑이 팽창할 때, 각자 자리에서 저마다의 취향과 개성, 주체적 가치관으로 삶을 가꿔나가는 이들은 그 팽창하는 운동의 바깥으로 밀려나 패배자, 잉여인간, 게으름뱅이의 오명을 뒤집어쓰게 되고, 그 추방과 소외가 두려워 사회의 모든 이들이 ‘영원한 파라다이스-래미안 퍼스티지’만을 꿈꾸는 세상에는 경찰관과 소방관도, 음악가와 시인도, 타인을 위해 자신의 것을 내어주는 영웅들도 없을 것이다. 그러니 부디, 적당히 하자. 부끄럽지 않은가?

2024-10-07

고난과 달리기

달리기를 할 때 가장 중요한 것 중 하나는 바로 숨쉬기다. /언스플래쉬 무더운 날씨 탓에 런닝 머신 위로만 올랐던 날들을 뒤로하고 바깥 달리기를 시작하면 어딘가 몸이 적응하지 못해 낯선 느낌이 든다. 하지만 금세 서늘해진 공기, 달릴 때마다 바뀌는 풍경, 물소리, 풀내음과 함께 뛰다보면 잠자고 있던 몸의 감각이 다시금 깨어나 설레는 마음으로 뛸 수 있게 된다. 무언가 쫓기는 듯한 초조함이 든다면 재빨리 런닝복으로 갈아입은 후 바깥으로 뛰어나가는 것이 좋다. 과거의 일, 미래의 걱정보다는 현재 내가 지금 달리며 마주하는 힘듦을 몸으로 겪어내고 이를 정면으로 돌파하는 정직한 일은 달리기 만한 게 없기 때문이다. 달리기를 할 때 가장 중요한 것 중 하나는 바로 숨쉬기다. 코로 숨을 두 번 들이마시고, 입으로 두 번 내뱉으며 반복된 숨을 쉬다보면 더 멀리 큰 힘을 들이지 않고도 나아갈 수 있다. 또한 몸은 살짝 앞으로, 고개는 살짝 든 형태로 시선은 너무 멀리 가 있지 않고 내 앞을 바라본다는 생각으로 시선을 두고 뛰면 좋다. 달리기는 누구나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운동이면서도, 가장 기본적인 자세를 챙기며 뛰지 않는다면 가장 어려운 운동이기도 하다. 욕심 있게 마구 달리다 보면 결국 내 숨에 못 이겨서 바닥에 구르고 마는데, 그럴 때 가장 화가 솟구치기도 한다. 달리기에서 또 중요한 것은 욕심을 부리지 않는 것이다. 쉬지 않고 삼십분 정도 달리다보면 러닝하이가 찾아와 너무나도 상쾌한 즐거움을 느끼게 되는데, 러닝하이가 찾아오면 정말 이대로 쭉 영원히 계속해서 달릴 수 있을 것만 같은 기분이 들 때가 있다. 아무것도 방해 받지 않고, 몸도 더 이상 힘들지 않은 상태에서 찾아오는 러닝하이는 눈앞에 어떠한 장애물이 발생해도 뚝심 있게 계속해서 달리고만 싶게끔 만든다. 하지만 야외달리기를 하다보면 은근히 마주하는 장애물들이 있는데, 신호등의 신호가 걸린다던지 가파른 오르막길을 만난다던지, 수많은 사람들 사이에서 인파를 뚫고 더는 앞으로 빠르게 나아갈 수 없는 등의 문제를 마주하면 빠르게 구르던 발을 멈춰야 한다. 대신 가볍게 제자리 뛰기를 하며 기다림의 시간을 가져야 한다. 그럴 때 숨을 조금 더 차분히 몰아쉬며 거침없이 뛰던 심박수를 한 템포 낮추는 것 또한 좋다. 또 하나 달리기에서 중요한 것은 신발끈을 내 발에 맞추어 적절히 묶는 것이다. 너무 꽉 묶다보면 달릴 때 발이 부어 뛰기 어렵게끔 만들고 너무 여유롭게 묶다 보면 발이 신발 안에서 돌아다니기 때문에 빨리 달리 수 없게 된다. 모든 것은 욕심 없이 적절한 상태를 유지하는 것, 그것이 달리기에서 중요한 요소라고 볼 수 있다. 최근 새로운 직장에서 일을 시작하게 되면서 나는 빠르게 적응하기 위해 부던히 애를 썼다. 하지만 욕심만큼 실수가 잦았고, 빠르게 해내는 사람들 속에서 자꾸만 의기소침 해졌다. 어떠한 불필요한 자극에도 그저 묵묵히 내 길을 잘 개척하며 나아가면 되는 것인데도 자꾸만 타인이 눈치를 보고, 불필요한 말들을 마음속에 담아 오랫동안 묵혀뒀다. 후회와 걱정은 계속해서 지난 과거에 묶여 있게 만들었고 더는 나아갈 수 없는 걸까, 라는 포기가 들 때마다 좋아하는 노래를 들으며 달리고 또 달렸다. 윤여진 2018년 매일신문 신춘문예 시 부문에 당선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현재보다 미래가 기대되는 젊은 작가. 동시에 여름 내내 생애 한 번은 꼭 읽으면 좋다고 했던 성경책을 읽기 시작했다. 아직도 한 참 읽어야 할 것이 많고 공부해야 할 것도 많지만, 그 날 읽은 성경 구절이 좋다면 내 삶에 동일하게 적용해보는 방식을 살고 있다. 고단함이 느껴질 때마다 내가 다이어리에 적는 구절은 고린도전서의 10장 13절로, ‘사람이 감당할 시험 밖에는 너희가 당한 것이 없나니. 오직 하나님은 미쁘사 너희가 감당하지 못할 시험 당함을 허락하지 아니하시고 시험 당할 즈음엔 또한 피할 것을 내사 너희를 능히 감당하게 하시느니라’와 같은 구절을 힘주어 눌러 적어본다. 감당 못할 시련은 없는 것이고, 만약 감당 못할 시련이 찾아온다고 생각이들 때쯤 피할 길이 있어 능히 감당하게끔 한다는 뜻으로, 나는 이 구절에서 왠지 모르게 잔뜩 긴장하던 마음을 내려놓고 크게 숨을 내어 쉴 수 있게 된다. 그러니 지금 내가 마주하는 어려움이 아무리 크고 출구가 없어 보인다 할지라도 인내를 통해 달리고, 달리며 고난의 길을 뚫고, 그러면서 동시에 감당할 수 있는 세계로 나아가는 것뿐이다, 그러면 현재 내가 마주하는 이 어려움도 우습게도 가벼워질 것이다.

2024-10-07

보수정치, 길을 잃다

변창구 대구가톨릭대 명예교수·정치학 한국의 보수정치가 길을 잃고 좌충우돌이다. 야당과의 끝없는 정쟁, 의사들과의 ‘강 대 강’ 대치, 심지어 국정을 책임진 윤석열 대통령과 한동훈 대표의 갈등까지 어느 하나 조용한 곳이 없다. 대통령의 임기가 벌써 중반인데 아직도 가야 할 길을 찾지 못해서 헤매고 있으니 참으로 한심하다. 보수정치는 왜 길을 잃었는가? 가장 큰 원인은 대통령의 오만과 독선의 리더십 때문이다. 제왕적 권력을 가진 대통령의 권위주의적이며 거칠고 서투른 정치가 보수의 위기를 자초했다. 최근 여론조사(전국지표조사, 9월 4주차)는 대통령의 국정운영에 대해서 긍정평가 25%, 부정평가 69%라는 매우 저조한 지지율을 보여주고 있다. 국민이 인식하는 대통령의 오만·독선·불통은 심각한 수준이다. 민심 이반을 두고 현재권력(대통령)과 미래권력(당 대표)이 벌이고 있는 당·정 갈등은 공멸로 가는 보수정치의 현주소이다. 시대가 변화를 요구하고 있음에도 보수정치는 변화를 외면했으니 자업자득이다. 변화와 혁신의 전제는 성찰과 반성인데, 보수는 늘 말로만 약속하고 행동으로 실천하지 않았다. 특히 보수는 자신의 허물을 고칠 생각은 하지 않고, 상대방의 허물로 자신의 허물을 덮으려고만 했다. 남 탓만 하고 자기성찰에 인색한 보수가 어떻게 정도정치를 펼 수 있겠는가. 동·서양을 막론하고 성공한 보수정치는 언제나 변화에 민감했고, 비판과 고언을 경청했으며, 말보다 실행력이 강했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뿐만 아니라 보수는 시대변화에 부응하여 새로운 정체성을 정립하지도 못했다. 보수의 가치라고 할 수 전통·도덕·책임·품격·실용 등은 보수정치를 이끌어주는 나침판과 같은 존재다. 하지만 작금의 보수정치는 ‘전통이 수구’로, ‘도덕이 힘’으로, ‘책임이 무책임’으로, ‘실용이 이념’으로 전락함으로써 길을 잃었다. 윤대통령이 ‘공산전체주의’, ‘자유’ 등 이념에 얽매여 실용정치를 펴지 않은 것은 보수의 자가당착(自家撞着)이다. 강성팬덤과 꼴통보수에 의존하는 정치는 시대착오이며 중도로 외연확장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총선 3연패는 당연한 결과였다. 게다가 ‘실용’을 중시해야 할 정치지도자의 현실인식과 정치력도 문제다. 윤 대통령은 108 대 192라는 ‘극단적 여소야대 현실’을 무시하고 야당과 지속적으로 대립함으로써 국정의 성과를 낼 수 없었다. 윤석열 정부의 최대 개혁과제인 4+1개혁(의료·연금·노동·교육+저출생)은 국회를 장악한 야당의 협력 없이는 결코 이룰 수 없는 꿈에 불과하다. 정치초보인 윤 대통령의 독선과 아집의 정치는 실용을 중시하는 보수정치가 가야할 길이 아니다. 이상과 같은 문제들이 해결되어야 보수정치는 정상화 될 수 있다. 보수 재건의 길은 남의 잘못을 비판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나의 잘못을 고치는데 있다. 오만과 독선을 반성하고 원로와 전문가들의 고언(苦言)을 겸허히 수용해야 한다. 수구보수는 뒤로 물러서고 개혁보수가 변화의 중심에 설 때 비로소 보수정치는 부활의 길이 열린다.

2024-10-07

한국 비빔밥의 힘

홍성식 (기획특집부장) 고슬고슬하게 잘 지은 밥에 여러 가지 나물과 볶은 고기를 넣고, 참기름이나 들기름을 더해 고추장에 비벼 먹는 한국 전통음식 비빔밥은 인기 좋은 ‘K-푸드’ 중 하나다. 우리나라만이 아니라 외국인들도 그 맛에 매료당한 경우가 흔하다. 팝가수 마이클 잭슨은 미국과 한국을 오가는 비행기 안에서 오로지 비빔밥만을 기내식으로 먹었다고 한다. 유튜브나 인스타그램 등에서도 뚝딱뚝딱 비빔밥을 만들고, 그걸 맛있게 먹는 백인이나 흑인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옛날 궁중에선 비빔밥을 골동반(骨董飯)이라 칭했다. 이를 볼 때 비빔밥의 역사는 근대 이전에 이미 시작됐다고 봐야 한다. 탄수화물과 채소에 함유된 비타민, 고기의 단백질까지 한 번에 섭취할 수 있는 비빔밥은 현대인의 건강식이기도 하다. 비빔밥은 전라북도 전주를 대표하는 음식 중 하나고, ‘비빔밥 맛집’이 다수 있는 도시 또한 전주다. 최근 전주에서 시민과 관광객들 1963명이 함께 밥과 채소를 비비는 진풍경이 펼쳐졌다. 참여한 인원이 많고, 만들어진 비빔밥의 분량 역시 어마어마했기에 한국기록원(KRI)은 이를 비빔밥 관련 한국 기록으로 올리기도 했다. 이로써 전주는 다시 한 번 ‘비빔밥의 본산(本山)’임을 내외에 알렸다. 비단 전주뿐일까? 그렇지 않다. 경북 역시 비빔밥을 좋아하고 잘 만드는 이들이 적지 않다. 일부 지역에선 고추장이 아닌 간장으로 밥의 간을 조절해 먹는다. 제사에 사용된 나물로 만든 비빔밥은 ‘한국인의 소울푸드(Soul Food)’로도 불린다. 각기 다른 맛을 지닌 재료들이 어우러져 빼어난 풍미의 요리가 되는 비빔밥은 화합의 은유로 사용되기도 하니 여러모로 기특한 음식이다. /홍성식(기획특집부장)

2024-10-07

다른 전문가 시각

강길수 수필가 기후변화의 인위적 주원인이 온실가스 증가라는 것은 국제적으로 인정되고 있다. 온실가스를 억제하기 위해 유엔은 ‘기후변화에 관한 유엔 기본 협약’(약칭: 리우협약, 1992)을 시작으로 ‘교토의정서’(1997), ‘파리협정’(2015) 등을 채택하였다. 파리협정은 지구 평균 기온 상승을 산업화 이전 대비 ‘2℃보다 낮은 수준 유지’를 장기목표로 잡고, 이를 위해 ‘1.5℃ 이하 제한을 추진’하고 있다. 그럼에도 최근 보도되는 기후변화의 지표들은 절망적이다. WMO(유엔 산하 세계기상기구)가 발표한 2023년 지구 평균 기온은 산업화 이전(1850~1900)보다 +1.45℃를 기록했다. 또 2023년 6월~2024년 5월까지는 +1.63℃로 역대 최고 수준으로 분석됐다. 파리협정 제한 수치를 초과해 버린 것이다. 내가 느끼기도 올여름이 가장 무덥다. 반면, 지구 기후변화에 대해 다른 전문가 시각도 있다. 지난 7월 23일 포항 산림조합에서 ‘영남리더스 포럼’이 있었다. 영남경제의 보도에 따르면 동 신문이 주관한 이 행사는, 박석순 이화여대 환경문제 연구소장(미국 럿거스대학교 환경과학 박사)의 강의, ‘냉정한 진실’ 시사회, ‘기후 위기 허구론’ 출판 기념회도 함께 열렸다. 박 소장은 ‘사이비 과학으로부터 나라를 구하자’라는 주제의 강의에서 기후 위기론이 허구라는 것을 과학, 사회, 경제, 정치, 역사 등 분야별로 설명했다. 기후변화 소동의 원인, 역사, CO2(이산화탄소)의 과학적 이해를 통해 CO2와 지구온난화는 상관관계가 없다고 했다. CO2의 증가는 식물에 시비효과를 가져와, 수확량을 증가시키고 지구를 더 푸르게 한다고 주장했다. 또 기후 위기론은 1989년 유엔총회에서 시작된 근거 없는 정치적 선동이며 언론과 정부들, 과학자들이 동요한다고 말했다. 덧붙여, 이 위기론으로 일부 소수만 혜택을 받고 있으며 빈자는 더 빈자로 내몰리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우리는 과거 1970년에 유엔의 인구 폭탄, 식량부족 대비 인구감축안에 한 번 속았다며 이번 기후 위기론에서는 더는 속지 말아야 한다고 소리를 높였다. 다큐멘터리 기후 영화 ‘냉정한 진실(The Cold Truth)’에서 주장하는 시각도 박 교수와 같았다. ‘태양활동과 지구 기후의 관계’ 분야의 세계적 권위자 윌리 순(Willie Soon) 박사는, 박 교수와의 인터뷰에서 이 문제를 이렇게 정리했다. ‘기후변화는 태양의 활동, 구름에 의한 대류권의 에너지 변화, 해류 등에 의해 일어난다. 그 외 지구의 화산활동, 지면의 식생 변화 등도 원인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지구 대기의 0.04%에 불과한 초미량 CO2의 미약한 온실 효과는 기후변화와 무관하다.’ 하면, 진실은 무엇인가. 왜 믿던 유엔까지 정치 선동 장이 되었을까. 온실가스 기후변화를 주장하는 전문가들은 태양활동, 구름, 해류, 화산, 지면 식생 변화 같은 연구는 도외시한 것인가. 결국 이권 개입 때문일까. 헷갈린다. 부디 유엔은 기후변화 등 현안에서 정치 논리를 배제하고 해결해 나감으로써, 인류를 위한 참 기구로 거듭나면 좋겠다.

2024-10-07

순환경제

남광현 대구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 추석은 ‘한가위’라고도 하는데, ‘가운데 가을’이라는 뜻을 가진 순우리말이다. 오늘날까지 이어오며 추석을 계기로 어김없는 가을로의 계절 변화를 체감해 왔다. 그런데 올해는 차례상을 차리며 에어컨과 선풍기를 켜야만 하는 믿기지 않는 폭염과 열대야를 겪었다. 우려하던 수준보다도 더 심각하게 나타나는 기후변화다. “지금 당장, 지금 여기에서.” 기후위기에 맞서기 위해 탄소배출량을 줄이는 데에 더욱 적극적으로 행동을 해야 한다며 거리에 나선 ‘기후위기비상행동’ 참가자들의 외침이 크게 와 닿는다. 탄소배출량을 줄이기 위해서 다양한 실천 행동이 필요한데, 편리하고 윤택함만을 생각하는 경제활동은 이제 변해야 한다. 플라스틱 컵 등 일회용품을 과다 사용하거나 과도한 포장 그리고 제품의 수명을 의도적으로 짧게 설계하여 소비를 유도하는 계획된 노후화 등 생산-소비-폐기로 이어지는 ‘선형 경제시스템’이 너무 고착화 되어 있다. 한번 시작하면 끊기 어려운 담배처럼 우리의 소비도 습관화된 게 많다. 그러나 끊기 힘든 담배도 ‘폐암선고’가 나면 완전히 끊어야 되는 것처럼 우리도 이제 ‘폐암선고’ 같은 ‘기후위기’에 맞서 결연하게 경제활동을 바꾸어야 한다. 개인 텀블러를 사용하고, 바이오 플라스틱 등 재활용 가능한 친환경 포장재를 사용하며, 전자제품을 모듈형으로 설계하여 고장난 부품만 교체할 수 있도록 하여 제품의 수명을 연장하는 형태의 ‘순환경제’로 바꾸어야 한다. 이렇게 자원 흐름이 반복되어 제품수명이 길어져 질적 성장이 가능한 ‘순환경제’ 시스템으로 전환이 필요하다. 그러므로 자원고갈과 폐기물 발생을 막고, 궁극적으로 온실가스 배출을 줄이는 결과로 이어진다. 그리고 ‘순환경제’를 통해 새로운 시장이 만들어지고 일자리도 늘어나는 부수 효과도 가능하다. 지역사회 발전과 사회적 형평성 증진 등 사회적 가치의 창출도 기대할 수 있다. 독일은 세계 최고 수준의 폐기물 분리수거 및 재활용 시스템을 구축하여 자원 회수율을 높였다. 더 나아가 스웨덴은 폐기물 매립량을 최소화하고 재활용률을 99%까지 높이는 것을 목표로 하는 ‘폐기물 없는 사회’를 추구하고 있다. 일본에서는 Reduce(줄이기), Reuse(재사용), Recycle(재활용)을 중심으로 하는 ‘3R 운동’을 통해 자원 순환 사회를 구축하였다. 이렇게 이들 나라들에‘순환경제’의 좋은 성공사례가 만들어지는 것은 정부 차원에서 ‘순환경제’를 위한 법규와 정책을 마련하고, 이를 적극적으로 시행하려는 강력한 의지가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재활용 기술, 3D 프린팅 등 혁신적인 기술발전도 이에 크게 기여하고 있다. 무엇보다도 분리수거나 재활용 등 ‘순환경제’ 실천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려는 시민들의 인식 개선이 가장 큰 성공 요인이다. 2022년 ‘대구사회조사’에서 대구시민들은 11가지 대표적 환경문제에서 ‘쓰레기 증가’를 가장 높게(40%) 인식했다. 그렇게 인식하고 있다면 망설일 것 없이 우리는 이제 ‘순환경제’로 가야만 한다. 그것이 추석을 온전한 가을로 되돌리는 길이기도 하다.

2024-10-07

김종필 시인의 ‘뭉티기’에 차린 토박이 음식상

이상규 경북대 명예교수 전 국립국어원장 요사이 배추 값이 금값이다. 배추로 만든 음식 가운데 김치는 우리나라 사람들이 가장 애호하는 토속음식이다. 그러나 이제 김치는 세계 모든 나라 사람들이 찬사를 아끼지 않는 웰빙음식이 되었다. 남부 방언에서는 김치를 ‘짠지’ 또는 ‘짐치’, 또 ‘지’라고도 한다. ‘짐치’는 한자어 ‘침채(沈菜)’에서 온 말이고, ‘지’는 고유어 ‘디히’에서 온 고어이다. ‘지’의 종류로는 ‘짠지’, ‘오이지’, ‘무시지’, ‘고들빼기지’ 등 다양하다. ‘배추’나 ‘열무’로 김치를 처음 담글 때, 금방 담근 김치를 경상도에서는 ‘생지래기’, ‘생재래기’라고 하고 전라도에서는 ‘쌩지’라고 말한다. 아마 임시로 먹기 위해 배추를 양념에 무친 것, 곧 날로 절인 김치라는 의미다. 호남 지역에서는 ‘짓국’이라는 반찬이 있다. 이 말은 이 지방에서는 ‘김치의 국물’이라는 뜻도 있고, ‘열무에다가 물을 많이 넣어 삼삼하게 담근 김치’를 말하기도 한다. 후자를 이 지방에서는 ‘싱건지’라고 한다. ‘싱건지’의 ‘싱건’은 ‘싱겁다’의 관형사형이다. ‘짓국’ 또는 ‘싱건지’를 ‘물김치’라고도 말하는데, 이 ‘물김치’라는 말은 서울말에는 없었고 요즘 새로 생긴 말이다. 호남 지역에서는 김치를 담는 배추와 무를 통틀어 ‘짓거리’라고 부른다고 한다. 특히 전북 지역에 가면 음식에 곁들여 주는 ‘멀국’을 표준어 사정 원칙 제4절에서는 ‘국물’의 방언형으로 즉 ‘멀국’을 ‘국물’과 의미가 동일한 것으로 처리하여 ‘국물’을 표준어로 채택하고 ‘멀국’을 버릴 것으로 규정하고 있다. 토속음식을 소재로 한 우리나라 대표적인 시인은 백석이다. 함경도 토속적인 음식의 맛깔, 빛깔, 냄새, 씹는 소리와 식감을 버물어 내는 시는 향토적 맛의 향연이며 오랜 전통의 기억과 추억을 회생시켜낸다. 대구경북에서 김종필 시인이 시집 ‘뭉티기’에서 이 지역의 음식 72편을 소재로 하여 언어로 차린 엄청난 음식상을 우리들에서 선사하였다. ‘따로국밥’, ‘갱시기’, ‘뭉티기’, ‘양푼이찜갈비’, ‘과메기’ 등 대구경북의 토속음식 이름을 가져와 시로 버물어내었다. “소 엉덩이 뭉텅뭉텅 막 썬 뭉티기/구이 수육보다 먹기 거북스럽지만/다진 마늘 고춧가루 참기름 양념장에 찍어/눈 찔끈 감고 먹으면 인절미 맛….” 김종필 시인은 ‘뭉티기’라는 시에서 뭉티기 고기의 맛이 입속에서 쫄깃하게 씹히는 식감까지 그려내고 있다. 뭉티기는 대구경북에만 있는 특유의 소고기 생고기 음식으로 생고기를 잘게 썰어 양념을 한 육회와 달리 생고기를 토막토막 썰거나 뭉텅뭉텅 썬 음식이다. 포항 특유의 향토음식인 ‘과메기’는 서울 도성 사람들이 모르는 지방 음식이라고 하여 표준어에 올라가지도 못했지만 전국적으로 퍼져나가 최근 일본 사람 입맛에도 맞는지 수출까지 했다고 한다. “얼었다 녹았다//고소함 흘러내리는 꽁치과메기/첫눈 내려야 맛있다는데//저녁와도/아침 와도// 얼었다 녹았다//기다림에 애타는 마음 비릿하네/첫눈 내려야 맛있다는데” 과메기를 만드는 과정을 시로 쓰면서 기다림의 미학과 연결시키고 있다. 표준어에 없는 ‘과메기’, ‘아구찜’, ‘홍탁’과 같은 지방의 음식은 전국으로 확산되었어도 아직 그 이름은 방언의 신세를 못 면하고 있다. ‘과메기’, ‘과미기’라는 말은 한자어 ‘관목(貫目)청어’를 줄여서 ‘관목이’라 부르다가 변화된 말이다. 과메기는 원래 청어(방언형:등어, 비웃, 구구대, 고섭, 푸주치, 눈검쟁이, 갈청어, 울산치, 과목숙구기)를 얼리면서 말린 것이다. 일찍이 다산 정약용 선생이 포항 장기읍성 아래에 유배 와 있을 때 이웃 주민들이 탱자나무 가시 사이로 넣어준 과메기를 먹고 눈이 번쩍 뜨였다고 한다. 그 덕에 가난한 선비를 살찌게 해 준다는 말린 청어는 ‘비유어(肥儒魚)’라는 고상한 별명을 얻기도 했다. 그런데 이 청어가 일제시대를 거치면서 거의 잡히지 않게 되자 청어 대신 꽁치로 과메기를 만들게 되었는데 이것이 사람들에게 인기를 얻자 전국적인 상품으로 발전되었다. 과메기는 추운 날씨에 얼었다 녹았다를 반복하면서 내장의 즙이 고기 살에 고루 스며들어야 제 맛이 난다고 한다. 이처럼 대상물이 서울에는 없고 지역에만 있다는 이유만으로 그 낱말을 방언으로 처리하여 표준어 근처에 얼씬도 하지 못하게 하는 일이 허다하니 안타깝다. 어쩌면 방언인데도 표준어로 채택된 영광을 지닌 낱말이 있는가 하면 당연하게 표준어로 채택되어야 할 역사적 정당성이나 합리성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서울 사람들의 말이 아니라는 이유로 표준어에서 밀려나는 불행을 겪어야 하는 낱말도 있으니, 이 또한 인생살이의 모습과도 가히 다를 바가 없다는 생각이 든다.

2024-10-07

중세 유럽의 풍운아 카를 5세

합스부르크 막시밀리안 1세와 마리와의 사이에 필리프와 공녀 마르가레테 남매를 두었고, 에스파냐에 페르난도와 이사벨 사이의 장남 후안과 둘째 딸 후아나가 미혼이었다. 이들 두 제국이 겹사돈을 맺으면서 유럽을 동서로 연결하며 세기적 경사를 맞이한다. 에스파냐 후아나는 필리프 1세가 살던 네덜란드로 시집갔고, 오스트리아 마르가레테는 에스파냐의 후안에게 시집갔다. 두 제국의 결속은 동서로 프랑스를 고립시키는 효과와 동시에 세계가 두 제국의 눈치를 보는 형국으로 변했다. 그런데 아뿔싸! 세상에 뜻대로만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에스파냐 왕위 계승자 후안이 신방을 차린 지 몇 달 만에 급서하고 말았다. 이때부터 에스파냐는 왕위 계승을 두고 가계도가 얽히기 시작했다. 오스트리아 공녀 마르가레테의 뱃속에 후안의 아이를 잉태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녀의 절박한 희망에도 아기가 죽은 채 태어나고 말았다. 결국 마르가레테는 친정 네덜란드로 돌아가 재혼에 성공하면서, 훗날 카를 5세의 후견인을 자처하며 권력에 힘을 실어 준다. 이 와중에 1504년 카스티야이레온 왕국의 여왕 이사벨 1세가 53세의 나이로 죽었다. 아라곤의 페르난도 2세와 결혼으로 이베리아반도를 하나의 가톨릭국가로 묶었고, 아메리카 대륙의 황금을 축적했던 그녀였다. 왕위 계승자 아들 후안이 죽었으니 네덜란드로 시집간 유일한 혈육 후아나가 상속녀가 된다. 이사벨 1세가 죽자 남편 페르난도 2세가 카스티야이레온 왕국에 섭정을 펼치면서 그곳 대신들의 불만이 증폭된다. 이때 펠리페 1세가 아내 후아나와 함께 에스파냐로 오면서 장인 페르난도와 본격적인 힘겨루기가 시작되었다. 카스티야 왕국의 대신들은 강력한 드라이브를 일삼는 페르난도 2세를 무시하고 미남왕 펠리페 1세를 왕좌에 올린다. 이로써 펠리페 1세는 에스파냐에서 왕위를 차지하게 되는 첫 번째 합스부르크 출신이 된다. 펠리페 1세는 미남왕이라는 별칭이 붙을 만큼 사생활이 복잡했다. 곁눈질하는 남편을 두고 질투에 가슴앓이하던 후아나는 가끔 정신이상 증세를 보이기 시작했다. 하지만 미인박명(美人薄命)인가? 잘생긴 펠리페 1세의 운도 그리 길지 않았다. 스페인에서 권력을 다지기도 전인 1506년 9월, 부르고스에서 열병에 걸려 요절하고 만다. 그의 나이 28세였다. 이때 네덜란드에서는 미친 후아나가 독살했다는 소문이 나돌았다. 그러자 펠리페 1세와 후아나 사이에 난 아들 카를에게 모든 권한과 재산이 돌아갔다. 이로써 합스부르크 왕가는 멀리 에스파냐까지 광대한 영토를 지배하는 명가에 날개를 단다. 펠리페 1세가 죽은 뒤에도 합스부르크 왕가의 정략결혼 정책은 시들지 않았다. 펠리페와 후아나 사이에서 난 딸 네 명 중 첫째 엘레오노레는 포르투갈 왕비로, 둘째 이사벨라는 덴마크 왕 크리스티안 2세의 왕비가 되고, 셋째 딸 마리아는 헝가리와 보헤미아의 왕 루트비히 2세와 결혼했다. 합스부르크 왕가는 각 유럽의 왕실과 혼인을 맺어 존재의 가치를 드높였다. 펠리페 1세의 장남 카를은 네덜란드에서 태어나 자랐다. 때맞춰 1516년 아라곤 왕국의 페르난도 2세가 죽자, 왕위 서열 1위는 광녀 후아나를 제치고 열여섯 살이었던 아들 카를(Charles V)에게 모든 권한이 상속된다. 이로써 외할머니 이사벨 1세가 통치했던 카스티야이레온 왕국과 외할아버지 페르난도 2세의 아라곤 왕국까지, 이베리아반도가 오롯이 그의 품으로 들어왔다. 훗날 에스파냐 국왕, 도이칠란트 국왕, 신성로마제국 황제, 합스부르크왕가 오스트리아 대공, 시칠리아 군주, 부르고뉴 공작 등 이 외에도 그에 따르는 왕관과 직함은 이루 셀 수 없을 정도다. 카를 5세가 측근을 대동한 채 에스파냐로 왔다. 1519년 할아버지 막시밀리안 1세까지 죽으면서 오스트리아 황제에까지 등극하는 기염을 토한다. 이제 그가 지배한 땅은 프랑스만 제외하고 서유럽 전역과 대서양 건너 아메리카 대륙에 이르기까지 말 그대로 ‘해가 지지 않는 제국’이었다. 그러나 카를 5세에게 주어진 태생적 임무는 전쟁과 가톨릭이라는 종교뿐이었다. 프랑스와의 전쟁, 또 골수 가톨릭 수호자를 자처하는 두 제국의 황제인 터라 강적 이슬람제국의 성전을 막아야 했다. 무엇보다 루터의 종교개혁으로 불길처럼 번진 개신교와의 종교전쟁도 끊임없이 치러야 했다. 이모부 헨리 8세가 지배하고 있던 영국과 대결도 기다리고 있었다. 광활한 영토를 가진 제국이 그렇듯 내부 불만이 증폭된 폭동과 변방의 반란도 카를 5세를 괴롭혔다. 신대륙에서 끊임없이 들여오던 황금도 에너지가 딸리면서 해가 지지 않던 제국은 서산을 향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독한 가톨릭제국으로 거듭나기 위한 노력은 줄어들지 않았다. 무엇보다 제국은 쉽사리 무너지지 않는다는 진리를 믿었다. 카를 5세는 하늘이 내린 태생적 행운아로서 신이 선택한 자신의 힘을 지나치게 맹신했다. 하느님은 능력을 과신하면서 카를 5세를 창조한 것은 아닐까. 그는 반 지성주의로 기독교의 위기를 자처하였으니 말이다. (계속) /박필우 스토리텔링 작가

2024-10-07

정치인부터 법의 코뚜레를 꿰어야 한다

김진국 고문 대통령 부인 김건희 여사에 대해 여론이 분분하다. 검찰이 2일 청탁금지법 위반이 아니라며 ‘무혐의’ 처분하기로 한 것을 두고도 말이 많다. 고위공직자 부인이 수백만 원짜리 선물을 받아도 죄가 되지 않는다니 말이 되느냐는 것이다. 그런데 법이 그렇다. 남편인 윤석열 대통령의 직무와 관련성은 부인하기 어렵다. 선물을 준 최재영 목사는 김창준 전 미국 연방하원의원의 국정자문위원 임명, 사후 국립묘지 안장, 통일TV 송출 재개 등을 청탁했다고 주장했다. 모두 윤 대통령의 직무에 속하는 문제들이다. 최 목사는 2022년 6∼9월 사이에 300만 원짜리 디올백, 179만 원어치 샤넬 화장품 세트, 40만 원 상당의 양주를 김 여사에게 줬다고 했다. ‘뇌물’이다. 대가를 바라지 않고 그 많은 돈을 쓴다는 게 말이 되나. 그렇지만 부인은 처벌할 수 없다고 한다. 직무 관련성이나 대가성이 없다는 게 검찰 결론이다. 그 직무를 하는 대통령은 남편이지, 김 여사가 아니다. 검찰은 “수사팀이 ‘법률가의 직업적 양심’에 따라 내린 결론”이라고 주장했다. 검사의 ‘양심’에 대해서는 많은 사람이 난타했으니 차치하자. 법을 어떻게 만들어놨길래 이런 결론을 내릴 수 있나. 시장에게 인사 민원이 있으면 시장 부인에게 비싼 선물을 하면 된다는 말이 된다. 청탁할 일이 있는 사람이 국회의원 부인을 찾아가 ‘선의’이고, ‘친교’를 하기 위해서라며 뇌물을 먹이면 대가성이 없는 게 된다. 부패하고 망조가 든 나라가 떠오르지 않나. 사실 청탁금지법을 만들 때부터 국회의원에 대한 특혜 시비가 있었다. 가장 부패 위험이 큰 직군은 국회의원이다. 그런데 선출직 공직자가 공익 목적으로 제3자의 고충 민원을 들어주는 것은 예외로 했다. 국회의원이 민원은 들어야 한다. 하지만 ‘공익’이라는 규정은 모호한 고무줄이다. 엄격하게 선을 긋지 않았다. 가장 부패하고, 가장 불신받는 정치인은 제외됐다. 그 법을 만드는 사람이 국회의원들이기 때문이다. 더구나 공직자의 배우자에 대한 규제는 느슨하다. 배우자는 공직자의 ‘직무와 관련해’ 공직자에게 적용되는 것과 같은 액수의 금품을 수수·요구·약속하지 못하게 했다. 하지만 이를 어겨도 처벌 조항이 없다. 김 여사도 처벌할 수 없다. 민주당은 김 여사 문제를 연일 공격한다. 국민의 눈으로 보면 윤 대통령 부부를 공격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게 그런 일을 반복하지 못하게 만드는 것이다. 그런데 왜 법은 손 보지 않을까. 그래서 정권이 바뀔 때마다 똑같은 특혜를 누리려는 걸까. 의원 신분인 지금도 같은 처지여서인가. 민주당은 2일 법제사법위원회에서 ‘박상용 수원지검 부부장검사 탄핵 청문회’를 열었다. 이화영 전 경기도 평화부지사를 앉혀놓고, 해명을 들었다. 이재명 대표가 연루된 대북 송금 사건과 관련해 이 대표를 엄호하는 청문회다. 민주당은 이 밖에도 이 대표를 수사하는 검사들을 줄줄이 탄핵 소추했다. 헌법재판소에서 탄핵 결정할 가능성은 희박하다. 그렇지만 그동안 이들의 직무가 정지된다. 수사에 차질을 빚을 수밖에 없다. 다음 대통령 선거까지 어떻게든 대법원판결을 늦추려는 지연전술에는 특효약이다. 이 대표 관련 사건을 변호해 온 사람들을 대거 공천해 의원으로 만들었다. 의원 신분으로 검사와 판사를 겁박한다. 국회 다수당의 지위를 이용해 이들을 국회로 소환해 압박한다. 국회의원이 아니고는 할 수 없는 일이다. 아니 국회의원이라도 재판을 두고 사법부를 좌지우지하려는 이런 일은 이전에는 보지 못했다. 얼마 전 운동권 대부라는 장기표 씨가 타계했다. 그는 지난해 한 언론 인터뷰에서 “정치를 난장판으로 만든 가장 큰 원인은 면책특권과 불체포특권을 비롯해 국회의원들이 누리는 180여 개의 엄청난 특권”이라고 주장했다. 내각제 개헌론이 나올 때마다 걱정하는 게 국회의원들의 부패다. 부패한 정치인들이 국정을 자기 이익을 도모하는 방향으로만 이끌 수 있기 때문이다. 어떤 헌정체제이건 정치 부패를 방지하려면 사법제도가 정치권으로부터 독립해야 한다. 대통령은 부인 문제로, 야당은 당대표 문제로 검찰과 법원을 마구 흔들어대니 걱정이다. 김진국 △1959년 11월 30일 경남 밀양 출생 △서울대학교 정치학 학사 △현)경북매일신문 고문 △중앙일보 대기자, 중앙일보 논설주간, 제15대 관훈클럽정신영기금 이사장,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부회장 역임

2024-10-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