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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유토피아 이야기(3) 자크 아탈리의 `긍정의 경제`

▲ 구자문 한동대 교수·공간환경시스템공학부도시는 주거, 도로, 상하수도 등 물리적인 요소들의 발전과 경제산업, 사회문화활동 등의 지속적인 향상 내지 정비가 필요하다. 이러한 요소들은 서로 연계되어 장기간에 걸쳐 함께 상향이동하며 도시가 발전하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발전과정은 단독적이 아닌, 주변 그리고 국내외 상황과 크게 연계되어 있다. 내 고장의 발전전략은 복잡다단한 주변과 국내외적인 요소들의 종합적인 분석 하에 도출되어야 한다. 하지만 그 해결전략이 만족스럽지 못한 것은 포함해야 할 요소들이 많고 예측불가한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과거에는 산속 외진 곳에 독자적인 유토피아의 건설이 가능했을지 모르나, 지금은 아니다. 우리는 복잡계 속에 살고 있고 그 안에서 무언가 유토피아를 이룰 요소 내지 패턴을 지속적으로 찾아내고 추진해야만 한다.필자가 매주 방문하는 소도시도 비전적인 중장기개발계획을 지니고 있다. 그 비전을 이루기 위해서는 물리적, 경제적, 사회문화적 요소들이 잘 결합된 이러한 계획들이 차질 없이 수행되어야 할 것이다. 그리하여 아름답고, 편리하며, 지속가능한 도시가 되어야 하는 것이다. 또한 이를 통해서 `도덕적 양심`이 가장 큰 원칙이 되는 그러한 곳이 되어야 한다면 지나친 욕심일까?지금 이 지역의 도시들도 글로벌자본주의의 영향 하에 있다. 미국적인 대량생산 대량소비의 패턴을 물려받고 있고, 또 그에 따른 빈부격차, 자원고갈, 그리고 환경오염에 시달리고 있다. 이러한 어려움 속에 이 소도시들도 글로벌 네트워킹과 지속가능한 개발을 함께 추진하지 않으면 안된다.`프랑스 최고의 지성`이라는 자크 아탈리는 현재의 경제위기를 끝낼 방법에 대해서 이익을 목적이 아닌 수단으로 보는`긍정의 경제(Positive Economy)`가 해법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이것은 현세대의 즉각적인 만족이 아니라 미래세대의 이익을 우선으로 감안하는 경제이며, 이타적이며 인내하는 자본주의라고 말하고 있다.이는 1991년 빈부격차 심한 브라질에서 시작된 포콜라레(Focolare)운동에 바탕을 둔 `공유의 경제(The Sharing Economy)`와 유사해 보인다. 이 개념 속에는 `인간을 위한 경제 만들기`가 용해되어 있다. 공유경제의 기업들은 경제적인 어려움이 있을 때 이익의 일부를 할애하여 서로 도와주며, 지역공동체 등과도 신뢰를 최우선으로 삼고 있다.아탈리는 이러한 `긍정의 경제`로의 패러다임 변화가 우리가 직면하게 될 경제위기에 대한 해답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에 따르면 미국은 향후 20년 동안 패권적 지위를 누리지만 혁신적 기업들이 떠나게 되고 늘어나는 부채를 감당하지 못하고 심각한 사회양극화를 겪게 되며 몰락하게 될 것이라는 것이다. 그후 시장과 기업이 국가권력을 대신하고, 국제규제가 없는 무질서한 시장이 등장하고, 곳곳에서 전쟁이 터질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있다.그는 이러한 비극 후에 지금과 전혀 다른 형태의 법치국가가 등장할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이 국가는 가공상품의 생산과 무분별한 자연개발을 제한하고, 이익을 최우선으로 생각하지 않는 경제체제이며 개별 인간이 가진 창조적 능력을 전체가 공유하는 시스템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그의 주장은 모어나 멈퍼드의 유토피아 이야기와 닮은 부분이 많다. 또한 근래의 지속가능개발론자 내지 생태론자들의 주장과도 맥을 같이 하고 있다. 이러한 사회가 유토피아일 것이냐? 많은 이들이 그렇다고 대답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이러한 경제체제가 정말 이루어질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의문은 항상 존재할 것이며 이루어지더라도 그때쯤 우리는 또 다른 유토피아를 그리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2014-06-04

유토피아 이야기(2) 모어와 멈퍼드

▲ 구자문 한동대 교수·공간환경시스템공학부영국의 토마스 모어의 소설 `유토피아`는 제목 자체가 `어느 곳에도 없는 장소`라는 뜻으로 1516년에 발간되었다. 당시 유럽사회는 근대화 바람이 불며 귀족들의 부가 크게 늘어났으나 농민들이나 도시노동자들은 심한 빈곤에 시달렸다. 모어는 이러한 사회상을 보면서 새로운 사회인 유토피아를 그려내었는데 그곳에는 사유재산제 폐지, 공평한 노동과 분배의 경제체제, 교육과 종교의 자유 등이 완벽하게 갖추어져 있었다. 이러한 이상사회(理想社會)는 모어 개인만이 아니라 르네상스시대 인문주의자들이 공통적으로 동경했던 사회이기도 했다.20세기 미국의 위대한 휴머니스트로 알려진 루이스 멈퍼드의 `유토피아 이야기(1922)`가 있다. 그는 도시학자, 역사학자, 문예비평가, 건축비평가 등으로 활약하면서 현대인에게 유토피아의 비전을 제시했다. 그의 유토피아 이야기는 존재하지 않는 장소를 말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현실 속에 개척 가능한 유토피아를 전제로 하고 있다.그는 1차 대전 이후 지나친 산업주의, 상업주의, 소비주의의 폐해, 인구과잉과 공해로 인한 균형 상실된 어두운 사회현실을 새로운 질서로 재건하기를 희망하였다. 그는 현대인들이 문명화와 함께 날로 심화되어 온 세분화, 전문화, 그리고 편파성으로 인해 인간과 사회와 자연을 더 이상 통합적으로 볼 수 없게 되어 버렸으므로, 이들이 되찾아야 할 것은 유토피안의 전체적 시각이라고 주장하고 있다.인간생활을 `잡다한 우연사의 혼합`으로 보고 상호 관련되는 유기체적 전체로 보지 못한다면 진정 더 좋은 삶, 더 나은 사회를 위한 `현실의 이상적 비판`과 `미래의 현실적 구상`도 더이상 기대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는 `우리에게 미래가 있다면 생태학(Ecology)이야 말로 미래의 주된 과학이며, 전체를 보려면 이러한 전체의 과학이 필요하다`고 주장하였다.또한 그는 과학과 기술이 인간의 예술적 영혼과 만나기를 기대하면서 그렇지 못하면 그것은 파괴의 무기가 된다고 주장하였다. 그는 거대한 도시가 기술적인 풍요와 안락을 가져다준다는 믿음을 거부하면서 그보다 작은 규모의 유기적 생명공동체를 대안으로 일깨우고 있다.멈퍼드는 유토피아에 관한 다른 작품들도 분석했는데, 대상을 인간사회의 개선책이 완전한 이상국가 형상으로 구체화된 것에 한정했다. 그가 검토한 작품들은 플라톤의 `국가 (BC 380년경)`, 토머스 모어의 `유토피아 (1516)`, 요한 안드레의 `기독교 도시(1619)`, 프랜시스 베이컨의 `새로운 아틀란티스(1624)`, 윌리엄 모리스의 `에코토피아 뉴스(1893)`, 헐버트 조오지 웰스의 `현대 유토피아(1905)` 등이다.멈퍼드에 따르면 이러한 대표적인 유토피안들은 단순히 몽상가나 이상주의자가 아니라 당대 현실의 문제를 제대로 파악한 `현실주의자`들이자 `현실적 불만분자`들이었다.허균의 `홍길동전`도 이러한 작품들만큼 사회혁신을 부르짖고 있다. 그는 이 소설을 통해 적서차별 및 봉건적 신분제도 타파, 탐관오리 응징, 빈민구제, 그리고 이상국 건설을 주장했다. 연암 박지원의 허생전도 실학사상의 영향을 받아 성리학에 매몰된 당시 사대부들의 허위성을 통렬하게 비판하였다.모어, 멈퍼드, 허균 등은 샹그릴라와 같은 상상속의 유토피아 대신에 사회개혁을 부르짖었다. 이들의 노력은 유토피아를 이 땅에 이룰 수 있다는 유토피아니즘에 바탕을 둔 것이다.이들의 유토피아는 대부분의 시민들이 동의할 바람직하다고 생각되는 사회의 모습을 그려내고 있다. 이들의 이상사회는 우리 시민들로 하여금 현실의 부조리함을 비판하게 하고, 나아가 이러한 현실을 개혁하는데 필요한 기준과 목표를 제공함으로써 우리 사회가 보다 낫게 나아가는 힘으로 작용하는 것이다.

2014-05-28

유토피아 이야기(1) 도시 미화운동과 샹그릴라

▲ 구자문 한동대 교수·공간환경시스템공학부요즈음 매주 토요일 아침 30여분을 운전하여 한 이웃 도시를 방문하고 있다. 예전에도 가끔 들러보던 이 도시는 한 도농통합시의 일부로 존재하고 있는데, 필자에게는 평범한 소도시라는 인상 이외에는 별다른 감흥을 주지 못했다. 하지만 지난 토요일, 좀 천천히 차를 몰아가며 사방을 보니 이 지방에서 보기 드믄 넓은 들에 산줄기가 삼면을 에워싸고 있는 지세 좋은 곳으로 보여 졌다. 이날따라 약간의 안개가 끼어 신비해 보이는 이 벌판을 운전해가며 이 소도시를 새롭게 보게 되었다.지리적으로는 `명당`같이 보여지는 이 소도시가 사람들에게 깊은 인상을 주지 못하는 것은 주변의 광역도시들에 밀려 고속화된 교통로상의 한 작은 마을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또한 도심이 작은 구릉이나 녹지대 없이 너무 밋밋한 것, 랜드마크적인 건물이나 구조물의 부재, 토질 탓인지 산에 울창한 산림이 보이지 않는 것 등 여러 원인이 있을 것이다.`유토피아(Utopia)`이야기를 하려다가 난데없이 한 마을 이야기를 꺼내는 것은 필자가 “삼사십년 중장기발전계획을 잘 수행한다면 이러한 도시들도 유토피아로 변모될 수 있을까?”라는 기본적인 질문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명당이란 풍수지리에서 아주 좋은 묏자리, 집터 그리고 도읍 터를 이야기 하고 있다. 풍수지리는 산세(山勢), 지세(地勢), 수세(水勢) 등을 판단하여 이것을 인간의 길흉화복(吉凶禍福)에 연결시켜 설명하려는 이론이며, 우리나라의 전통적인 사회문화의 근거이기도 했다.인구가 밀집하고 첨단의 인프라가 깔린 현대도시에서 풍수지리가 예전과 같은 역할을 감당할 수는 없다. 아직도 풍수지리에 따라 뫼를 쓰거나 집을 지어 액운을 막고 자손을 잘되게 하려는 심리가 남아 있다고 보나 지금은 오히려 햇빛, 바람, 수자원, 지가상승 등을 염두에 둔 입지결정론의 한 부분으로서 취급된다고 할 수 있고, 개인의 취향 정도로 취급된다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요즈음 말하는 명당이란 몫이 좋아 장사가 잘되거나 학군이 좋고 교통이 편리해 집값이 비싼 곳을 일컫게 되었다고 보아진다. 또한 동네가 아름답거나 공원, 쇼핑 등 인프라가 잘 갖추어진 곳이라고 말 할 수도 있겠다.20세기 초 구미에서는 도시를 아름답게 꾸미자는`도시미화운동(City Beautiful Movement)`이 유행했었다. 거대한 계획, 아름다운 디자인을 통해서 도시를 아름답게 꾸미고 이를 통해 시민들의 행복과 삶의 질을 높이자는 것이다.하지만 환경결정론 내지 물리결정론에 기반을 둔 이 운동은 후에 많은 이들의 비평을 받게 되었다. 시민의 행복은 단순히 아름다운 도시기반에 의해서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고 사회경제 그리고 문화적인 요소들이 함께 고려되어야 함을 깨닫게 되었기 때문이다.유토피아는 우리 인간이 이상(理想)으로 그리는 완벽하고 평화로운 사회라고 할 수 있다. 무릉도원(武陵桃源), 이상향(理想鄕), 혹은 샹그릴라(Shangri-La) 라는 단어도 같은 뜻으로 쓰인다고 할 수 있다. 제임스 힐튼은 `잃어버린 지평선`이라는 작품에서 가공의 장소인 샹그릴라를 그려내었다. 이는 쿤룬산맥의 서쪽 끝자락의 숨겨진 장소에 존재하는 신비롭고 평화로운 계곡, 영원한 행복을 누릴 수 있고 외부로부터 단절된 유토피아로 묘사되었다.이 장소는 소설이 대중적인 인기를 얻으면서 지상의 어딘가에 존재하는 천국(天國)을 가리키는 보통명사가 되었다. 이곳 사람들은 평균적인 수명을 훨씬 뛰어넘어 거의 불사(不死)의 삶을 살 수 있다고 한다.이 샹그릴라는 우리가 꿈꾸는, 이룰 수 없어 더욱 간구하는 유토피아를 잘 그려내고 있다고 보아진다. 반면에 풍수지리나 도시미화운동은 좀 더 현실적이고 인간적인 범주 내의 염원을 추구하고 있다고 생각된다. 이중환의 `택리지`도 마찬가지이다.

2014-05-21

5월의 호치민시티

▲ 구자문 한동대 교수·공간환경시스템공학부얼마전, 반년 만에 베트남의 호치민시티를 다시 방문했다. 한국은 늦봄 내지 초여름이라 하더라도 아침저녁으로 기온이 차갑게 느껴져 꼭 겉옷을 입어야 하는 시기이지만 호치민시티에 내리니 더운 기온이 확 느껴진다.호치민시티는 인구가 900만명이나 되는 대도시인데 고층건물이 드물고 대개 3~4층의 작은 건물들이 끝없이 시가지를 형성하고 있다. 오래된 프랑스풍의 건물들이 많고 대개가 주상복합의 형태로서 1층이 가게이고 2~3층은 주거인 경우가 많다. 낡은 건물들이지만 이색적인 빌딩 화사드, 주변의 큰키나무, 그리고 발코니의 식물들로 인해 멋진 도시경관을 연출하고 있다.10여년 전 베트남에 왔을 때는 아침식사와 커피 한잔을 핑계로 시내에 나가도 크게 갈 곳이 없어서 시장통 칼국수 집에서 손짓발짓으로 며칠 아침을 베트남 국수 `포`로 때웠었다. 점심 후에 커피 한잔하러 주변 재래식 커피 집에 가면 구식필터에서 한 방울씩 걸러져 나오는 커피는 15분은 족히 기다려야 한잔이 만들어졌다. 하지만 이제는 커피빈, 할리스, 스타벅스 등 친숙한 브랜드의 현대식 커피숍들이 많아졌다.음식점이며 커피숍에 가면 한국인들과 자주 마주친다. 젊은 여자 분들 모임도 있고, 한국 남자 베트남 여자 커플들도 있다. 베트남에는 외국기업들이 많이 들어와 있는데 LG, 삼성, 대우 등 한국기업들이 가장 먼저 들어왔고 가장 친숙하다고 한다. P사가 지은 다이아몬드백화점과 K건설이 지은 금호플라자가 잘 알려져 있고, 한동대 출신 젊은이들이 세운 저소득주택 전문업체인 NIBC그룹과 그 산하의 한동, 신영, NHO 등도 있다.베트남인들은 한국인들을 친숙하게 느끼는 것 같다. 이는 문화적, 인종적 유사성 때문일 수도 있겠지만 경제산업발전 성공사례로 벤치마킹 및 네트워킹하고 싶은 나라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라고 보아진다.호치민시티에도 몇 개의 고층건물들이 있는데 262m `바이텍스코 타워`도 그중 하나이다. 도심의 5~10층 건물군 사이에서 군계일학으로 돋보이는데 주변 거리의 폭이 넓지 않기에 서울이라면 교통대책 수립이 가장 큰 이슈였을 것이다. 하지만 이곳은 건물 내 공간들이 비어있기도 하고 고객들도 오토바이와 택시를 주로 이용하기에 아직은 큰 문제가 없는 것 같다.이 건물 50층에 있는 스카이라운지 격인 커피숍에 갔다. 시설이 화려하지 않고 평범하나 사방으로 호치민시티 전경이 바라다 보인다. 넓은 평지에 작은 건물들이 끝없이 이어져 있는데 시선 끝은 구름에 가려 잘 보이지는 않지만 지평선일 것으로 짐작된다.도시면적이 서울의 3배 이상으로 확산되어 있는데 도로가 좁고 공공교통이 제대로 발달되지 않아 문제가 큰 것으로 보인다.지금 일본정부의 지원으로 지하철을 계획하고 있다는데 도심을 정점으로 X자 형태의 노선이 될 것이라고 한다. 어느 정도 계획수립이 진행되었는지 모르지만 경전철의 건설도 한 옵션으로 천거되면 좋을 것 같다. 도심에서는 도로 중앙에 철골구조로 해서 공중철도, 비도심에서는 지상철도로 건설하면 되니까. 지하철의 경우 약한 지반 때문에 터널 설치가 용이치 않고 고비용일 것이기에….이 건물 바로 옆에는 넓은 사이공강이 흐르고 있다. 물은 진흙 빛인데 크고 작은 배들이 떠있다. 2천t은 되어 보이는 화물선도 있고 해군 경비정들도 여럿 정박해 있다. 강 건너에는 늪이 포함된 광활한 녹지대가 있다. 중심가라서 금싸라기 땅이라고 할 수 있는데 정부에서도 어떤 용도로 개발해야 할 지 잘 모르겠고 개발하겠다고 나서는 업체도 없고 해서 그냥 보전지역 형태로 남겨져 있는 것이라고 한다.

2014-05-14

봄철 냄새공해

▲ 구자문 한동대 교수·공간환경시스템공학부얼마 전 필자의 사무실 인근에서 며칠간 하수관 공사가 진행되어서 목련, 철쭉, 유채 등 활짝 핀 꽃들과 좀 어울리지 않는 모양새가 연출되었었다. 며칠이 지나 냄새가 다 가셨으리라고 생각했는데 지난 4일 외국에서 방문한 분들 몇몇이 무슨 냄새인지 궁금해 한다. 분명 평소에 맡아보지 못한 역한 냄새라고 생각 할 것이다.사실 우리나라 도시들이 건물이며 도로가 잘 건설되어 있지만 심한 하수구 냄새는 아직 고쳐지지 않은 것들 중 하나이다. 대부분 우수와 오수관이 분리되어 있고 폐수처리 시설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아직 완전하지 못한 탓도 있겠고 폐기물을 길거리나 우수구에 함부로 버리는 경향 때문이라고 생각된다.봄이 되면 특별한 냄새 때문에 며칠을 불편해 하던 기억이 있다. 이는 필자만이 아니라 주변에 있는 모든 이들이 겪는 일인데 직장 인근 채소밭에 비료를 주어 역한 냄새가 꽤 떨어진 곳까지 일주일 넘게 영향을 미치곤 한다는 것이다.이는 전통적인 거름이나 비료냄새가 아닌, 제대로 처리되지 않은 음식물쓰레기 비료이기 때문이라고 생각된다. 몇 년간에 걸쳐 봄철마다 온 동네 사람들이 며칠씩을 고생하고 있으니 무언가 조치가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인근에 사는 지인에게 물어보았더니 농사를 지어야하는데 어쩔 수 없는게 아니겠는가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물론 어느 정도 이해는 해야 하겠지만 이러한 심한 악취는 분명 제한의 대상이 되어야 할 것으로 본다.음식물쓰레기 퇴비화는 처리하기 쉽지 않은 쓰레기를 재활용하는, 분명 바람직한 방안임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신문지상을 통해 본다면 아직 그 기술이나 법적인 기준에 문제가 있는 것 같다.수도권의 한 지자체의 예를 보면 시민들은 음식물쓰레기 비료로 인해 생활공해가 심하다고 호소하고 있다. 하지만 문제가 된 업체는 `음식물쓰레기 활용 비료공급을 지자체로부터 허가를 받았고, 음식물쓰레기를 적법한 절차에 따라 계분과 생석회 등을 혼합해 비료를 제조했기에 법률적인 하자가 없다`는 것이다. 또한 `농민들이 필요하다고 해서 공급했다`는데 무엇이 문제냐는 것이다.이 업체는 이 비료가 특수효소를 이용해 발효과정을 거친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물론 필자는 자세한 내막을 모른다. 업체 측이 제대로 된 제조과정을 따르지 않은 것인지 제조방법 자체가 제대로 개발되지 못한 것인지….아직도 봄철이면 악취 심한 비료를 쓰는 경우가 흔히 발견된다. 15~20년전 김포국제공항 인근에서 풍기던, 그래서 근처를 지나던 내외국인들을 당황하게 하던 그 비료냄새가 우리 지방도시에서는 아직 해결되고 있지 못하다는 것이 안타까울 뿐이다.이러한 역한 냄새는 분명 호흡기 질환을 일으킬 수 있다. 특히 질병에 대한 저항력이 약한 영아, 유아나 노인, 환자들에겐 더욱 해로울 수 밖에 없다고 본다. 불쾌한 실내외환경이 한창 감수성이 발달하는 어린이와 중고생들뿐만 아니라 어른들의 정신건강에도 악영향을 미치게 된다고 본다.우리는 쓰레기 소각장을 세우기 위해서도 많은 토론과 다툼을 벌이고 있는데 소음과 진동 문제도 있고, 경관 부조화 문제도 있고, 경제사회적인 영향을 논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역한 냄새도 주요 공해임에 틀림없고, 허가과정에서 이를 줄이기 위해 여러 조건들을 부여하고 있다.요즈음 정부에서도 냄새에 관한 규정을 강화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 이에 관한 저감기술들이 좀 더 개발되어서 쓰레기소각이나 음식물쓰레기 재활용 등에 있어 주민들에게 큰 피해를 줌 없이 사업들이 계획대로 잘 추진되기를 바란다. 물론 시민 각 가정들도 음식물쓰레기를 포함한 생활쓰레기를 줄이도록, 또한 효율적으로 재활용 할 수 있도록 함께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2014-05-07

세월호의 비극과 우리 한국인

▲ 구자문 한동대 교수·공간환경시스템공학부`이어도`는 섬 이름이면서 시, 소설, 연극, 영화, 대중가요 등 수많은 예술 장르의 주제이기도 하다. 옛 제주도 사람들은 이어도를 어부들이 한번 가면 돌아오지 않는 섬, 어부들이 죽으면 가는 환상의 섬으로 믿고 있었다. “한 어부가 배를 타고 폭우가 쏟아지는 바다에서 방향을 잃었다가 처음 보는 작은 섬에 도착했는데, 그곳은 무릉도원이었다.” 이어도는 이러한 설명과 함께 제주인들의 마음속에 크게 자리 잡은 미지의 이상향이었다.예로부터 제주도 사람들은 어업에 종사했다. 남자들은 먼 바다로 고기잡이를 나가고, 여자들은 근해에서 미역 등을 따면서 생계를 유지 했을 것이다. 하지만 폭풍이 불고 파도가 세니 어선들이 난파되어 돌아오지 않는 경우가 흔했다.이 제주여인들은 돌아오지 않는 남편을 기다리다 지쳐서 전설속의 이어도를 생각한 것이다. 돌아오지 않는 남편이 그 이상향인 이어도에서 잘 살겠거니 생각하며 눈물 속에 먼 바다를 보며 아이들을 키우고 물질하며 일상을 이어갔던 것이다.제주도에서 남서쪽으로 149㎞ 떨어진 곳에 이어도 혹은 파랑도로 불리는 섬이 있다. 이 섬의 영어명은 소코트라 암초(Socotra Rock)이다. 약 2㎢ 면적의 이 수중암초는 최정상이 해수면에서 4.6m 잠겨 있어 10m 이상 파고의 파도가 칠 때를 제외하면 그 모습이 잘 드러나지 않는다고 하는데 전설상의 이어도와의 상관관계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고 한다.최근 진도 인근 해역 맹골수도에서 어린 학생들을 포함한 많은 승객들을 태운 배가 전복하여 많은 이들이 죽고 온 국민을 슬픔에 빠지게 했다. 금지옥엽 키우던 아이들을 잃어버린 부모님들의 기막힌 심정을 다 느낄 수는 없겠지만 조금은 이해할 것 같다.살아남은 그 학교 선생님들, 그리고 구조차 모여든 잠수부, 자원봉사자, 관련 공무원들의 마음도 조금은 헤아릴 수 있을 것 같다. 너무나 원통한 죽음이었다. 이것은 임무를 제대로 수행 못한 선장 및 선원들의 책임이기도 하지만 우리 어른들 모두의 책임이다.텔레비전 뉴스를 보면서 필자도 여러 차례 울고 있었다. 탈출할 기회도 제대로 잡지 못하고 급하게 기울어지고 바닷물이 차들어 오는 선실 안에서 그 어린 학생들이 얼마나 힘들었을까. 너무나 가엾고 기가 막힌다. 부모님들의 `내 아들아` `내 딸아` 부르짖음이, 그 절규가 내내 가슴을 쥐어짜고 있었다.생각해보면 우리 역사 속에서 억울한 죽음이 너무나 많았다. 일제강점기 관동대지진 조선인학살, 종전 후 귀국동포들을 실은 일해군 수송선 우키시마호의 폭침, 그리고 6·25전쟁을 통해 수많은 이들이 죽어 갔었다. 이후 나라여건이 훨씬 나아졌음에도 여객선 침몰, 수학여행버스 사고, 지하철 화재, 리조트강당 붕괴, 그리고 이번 화객선 침몰로 많은 이들이 죽거나 다쳤다.더 이상 전쟁이 없어야 하고, 더 이상 이러한 안전사고로 인한 억울한 죽음이 없어야 한다. `꺼진 불도 다시보자` 다짐 다짐들을 하지만, 반복되는 사고들, 그것도 인재로 불리는 대형사고들에 국민 모두가 자책을 느끼고 있다.우리는 `아리랑`을 즐겨 부른다. 그 고난의 아리랑 고개들을 넘어서며 우리 민족은 끈질기게 살아 왔었다. 안타깝게도 지금 우리에게 닥치는 것은 힘없고 못살 때의 설움속의 고난의 고개가 아니라, 할 만한데도 대충대충 넘어가려는 이 사회의 부실이 주는 고난의 고개이다. 우리 한국인들, 얼마나 많은 고난의 고개를 더 넘어야 하는 것인가?맹골수도에서 세월호에 갇혀 죽어간 많은 이들, 젊음을 피워보지도 못하고 안타깝게 죽어간 이 학생들, 온 국민의 기원 속에 고통 없는 그곳 `하늘나라`에서 모두 다 안식하기를 빌 뿐이다. 다시는 이런 비극이 없도록 우리 국민 모두가 매사에 더욱 충실하고 조심하도록 노력에 노력을 더해야 할 것이다.

2014-04-30

포항KTX 역세권 개발

▲ 구자문 한동대 교수·공간환경시스템공학부올 연말이면 포항에도 KTX가 들어오고 서울까지 2시간 정도에 연결된다. 지금은 승용차로도 1시간~1시간반을 달려 신경주역이나 동대구역으로 가야함에 비하면 아주 획기적이다. 이론상으로는 신경주며 동대구가 멀지 않아 보여도 실제 이용하기에는 부담이 적지 않은 거리와 시간인데 포항에 KTX가 들어온다는 것은 시민들의 편의가 대폭 증가됨과 동시에 포항의 경제발전의 기회가 더욱 커졌음을 의미하기도 한다. 지금까지 도심에 있던 포항역이 이제는 교외지역인 흥해읍 이인리로 옮겨가게 되는데 도심에서 그리 멀지 않은 지역이라 지금의 포항역 보다는 주차편리 등을 고려하면 이용이 더욱 편해졌다고 할 수 있겠다. 이제 서울을 가게 되면 택시나 버스를 타고 잠깐사이 포항역에 가서 KTX를 타면 된다. 포항역에 도착하는 경우에도 다양한 방법을 통해 금방 집에 도착할 수 있게 되었다.시민들이 KTX를 편하게 이용하기 위해서는 택시정차장은 물론이고 다양한 노선의 시내버스 정류장이 포항역에 위치해야 한다. 또한 구룡포, 영덕, 울진 등으로 연결되는 시외버스터미널도 짐을 들고 걷는데 지장 없을 가까운 곳에 위치해야 한다.고속버스터미널의 경우에는 KTX와 서울, 대전 등의 노선이 겹치기 때문에 포항역에 위치함이 도심에 위치함에 비교하여 장단점이 있을 것이나 함께 위치함이 나쁘지만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시외버스터미널의 경우에는 이곳만이 아니라 문덕쯤에 남부터미널이 추가되어도 좋을 것이다.포항시와 철도건설공단에서 포항역의 완공을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데 아무쪼록 예정된 시간에 완공되고 하루 10차례 운행이 문제가 되지 않을 만큼 많은 이들이 포항권에서 이용하게 되었으면 좋겠다. 하지만 남은 문제는 역세권의 개발이다. 얼마만한 규모로 어떻게 개발할 것인가가 문제이다.우선은 포항역사만 완공되는데 물론 이안에 일부 편의시설들이 들어설 것이라고 보지만 이것들만으로는 불충분하다. 지형적으로 협소한 곳이지만 교통중심의 압축형태로 역세권 개발이 이루어져야 할 것인데 그 규모는 포항시의 발전 방향, 도심과의 관계 등에서 정립 되어야 할 것으로 본다.경주 KTX역사 주변의 개발이 별로 이루어지고 있지 않은데 비해 포항역사 는 포항도심, 흥해중심, 그리고 신도시격인 양덕 및 장성동지역에서도 멀지 않기에 호텔, 쇼핑 등 상업용도개발이 용이 할 것이다. 이 지역의 개발을 너무 시장경제에만 맡기지 말고 1, 2, 3단계의 발전방향 정립 속에 좀 더 체계적으로 개발해 나갈 필요가 있다고 본다.포항역 및 역세권은 포항도심, 포항시, 포스텍, 한동대, 영일만항과 손쉽게 연결이 될 것이다. 물론 포항도심의 죽도시장, 포항운하, 영일대, 울릉도 선착장과도 연결될 것이다. 이곳은 영일만항을 통해 국내외 수화물 및 여객들이 일본, 러시아, 그리고 장차 북한으로 연결되는 개방 축을 연결하는 출발점이 될 것이며 영덕, 울진, 삼척으로 연결되는 동해선의 중심권이 될 것이다.포항에 테마적인 해수욕장, 특징적인 해양박물관이나 동물원, 특색있는 뮤지엄이나 문화행사가 존재한다면 방문객들이 수도권을 비롯한 많은 KTX 연결지역에서 오게 될 것이다. 포항지역의 대학에도 좀 더 다양한 국내외학생들이 입학하게 될 것이고, 해병대 캠프도 더욱 알려지게 될 것이고 포항의 과메기, 물회, 시금치, 부추 등도 더욱 팔려 나갈 것인데 앞으로는 이 역세권이 포항을 상징하면서 일차적인 편의를 제공할 것이다.결론적으로 포항역과 그 역세권의 실제적이고 상징적인 기능과 그 영향이 지대 할 수 밖에 없다고 보는데 우리는 이를 강화시키고 활용해야 한다. 포항에 이만한 경제사회발전의 기회가 다시 오기가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2014-04-23

가깝고도 먼 일본, 그리고 가슴 아픈 이야기

▲ 구자문 한동대 교수·공간환경시스템공학부일본 총리인 아베 신조와 그 내각의 극우적인 성향이 한국과 중국을 주축으로 한 동북아의 불안을 조성하고 있을 뿐 아니라 전 세계의 지탄을 받고 있다. 하지만 이 사람의 가계도를 살펴보면 한국계라고 할 만한 근거가 적지 않다. 물론 한국인인 필자의 경우에도 700여년전 몽골족의 흥기를 피해 이주해온 북중국 장수가 선조로 되어 있으니 수백년 전을 거슬러 올라가며 누가 중국계이고 한국계인지를 따지는 것 자체가 무의미하다고 할 수 있겠다. 그냥 재미로 자료를 뒤져보았더니 아베 신조의 외할아버지 기시 노부스케는 일본의 제 56, 57대 총리대신을 역임했으며 그의 친동생인 사토 에이사쿠도 제61, 62, 63대 총리대신이었다. 그런데 사토 에이사쿠는 자신이 한국 출신임을 숨기려 하지 않았고 임진왜란 이후인 300여년 전 건너간 일족임을 언급했음이 임진왜란 때 끌려간 유명한 도공 심수관의 14세손과의 대화를 통해 전해지고 있다.아베 총리의 부친인 아베 신따로는 야마구치현에서 11차례 중의원을 역임하고 1980년대 일본 외무상을 역임했다. 2006년 10월6일자 슈칸 아사히는 그가 오래전 한반도 발해지역에서 건너온 한국인의 후손임을 밝히고 있었음을 이 집안의 오랜 가정부였던 분의 증언을 통해 기사화하고 있다.사실 우리가 그토록 미워하는 일본인들도 따지고 보면 우리 한국인과 혈연적으로나 문화적으로 가장 가까운 민족임을 부인하기는 힘들 것이다. 하지만 오랜 세월동안 서로 미워하고 싸워가며 살아온 것이다.오늘은 일본과의 소소한듯 하면서도 가슴 아픈 얘기들을 해보고자 한다. 필자가 포항에 와서 알게 된 한 분은 부산에서 태어났는데 부친이 일본에서 태어나 동경제대까지 졸업하고 교사로 재직하다가 해방된 조국을 크게 꿈꾸며 약혼녀도 놓아둔 채 잠시 귀국했는데 한일간의 관계악화 등으로 일본으로 되돌아가지 못하고 부산에 눌러 살게 되었다고 했다. 부산에는 잠시 들렀다가 돌아가지 못한, 한국말이 서툰 재일교포들이 많았다고 한다.이 분의 부친은 조부의 고향인 경북 의성의 한 규수와 결혼하여 아들 둘, 딸 둘을 두었는데 한이 맺혀 어려운 가운데서도 자녀들 교육에 열심이었다고 했다. 이제 부모님은 돌아가시고 자식들은 발전된 한국 땅에 살고 있지만 주위에 이 같은 슬픈 사연을 지닌 이들이 한 둘이 아니라고 했다.더욱 가슴 아픈 것은 `재일학도위용군`의 이야기이다. 6·25전쟁이 발발하고 642명의 재일교포학생들이 조국을 위해 전선에 뛰어 들었다. 오키나와 미군기지에서 겨우 3일 훈련을 받고 유엔군과 함께 인천상륙작전에 참전한 이들은 그 후 323명이 3.1대대로 창설되고 200명이 한국군에 편입되고 30명은 육군종합학교에 입교하여 초급장교가 되었다. 이들은 원산, 혜산진, 백마고지 등에서 치열한 전투를 치르며 135명이 전사하였다.전쟁이 끝난 후 살아남은 242명이 일본으로 되돌아가고자 했으나 일본정부는 이들의 입국을 거부하였다. 그 결과 이들은 가족들과 생이별하게 되고, 한국말이 서툰 이들은 한국에서 생계를 잇기 어려운 삶을 이어 갔다고 한다.이러한 것들 이외에도 한일 사이에는 일본군 위안부 문제, 독도문제 등 해결되지 못한 사안들이 많이 있다. 더구나 요즈음은 일부 극우단체들이 `한국인 물러가라`는 격한 데모까지 하고 있으니 어이가 없고 가슴이 아프다.동아시아는 왜 유럽의 경우같이 과거를 청산하지 못하는가? 하지만 생각해보면 반복되는 역사 속에서 누구도 국가와 국가 간의 관계를 긍정적으로만 장담하기는 힘들 것이다. 남의 잘못을 고쳐줌도 중요하겠지만 우리의 지속가능한 생존을 위해서는 경제, 사회, 문화, 정치, 외교 등에 걸친 총체적인 힘을 키워감이 더욱 중요한 포석일 것 같다.

2014-04-16

유카나무 분재하기

▲ 구자문 한동대 교수·공간환경시스템공학부한동안 베란다에 키울 유카나무를 찾고 있었다. 어릴 때부터 많이 보아온 나무인데 막상 구하려니 쉽지 않았다. 어릴 때 부모님이 앞마당에 키우던 유카나무는 실유카로서 잎은 풍성하나 나뭇가지가 길게 자라나지 않는 것이었다. 실유카 잎 가장자리에서 실이 풀려 나오는데 중남미에서는 이 실을 이용하여 직물을 짜기도 한다. 하지만 내가 찾는 것은 가지가 높게 자라는 실없는 유카나무로서 어찌 보면 야자나무와 비슷하다.미국에 유학 갔을 때 세 들었던 2층집 뜰에 커다란 유카나무가 있었는데 나무 자체가 2층 창문 높이까지 자라고 여름이면 긴 꽃대에 하얀 꽃들이 만발하여 매우 보기 좋았다.이 식물의 뿌리에서는 독특한 냄새의 추출물이 나오는데 이를 섞으면 물질들이 잘 보존된다고 하여 차, 의약품, 화장품, 향신료 등에 사용된다. 또한 유카나무 조각은 부드럽고 독이 없어 앵무새의 씹기 놀이기구로도 이용된다.박사과정을 끝낸 후 로스앤젤레스 교외에 내 집을 갖게 되었는데 집안 곳곳에 용설란이 자라고 있었다. 이 식물은 우리나라에도 흔한 선인장의 종류로서 알로베라가 부드러운 선인장이라면 이것은 매우 완강하고 가시가 있고 높이와 폭이 1~2m로 크게 자라는 것이다. 이 용설란은 100년에 한번 꽃이 핀다고 하여 백년초라고도 불린다.그러던 어느날 우리 집 차고 뒤편에 5~6m 높이의 장대 같은 기둥이 하나 솟아나더니 무더기로 하얀 꽃을 피웠다. 유카나무 꽃과 비슷했는데 그 꽃대가 어마어마하게 큰 것이 차이점 이었다.몇 년전 집안에 너무 큰 용설란이 많아 위험하기도 하여 낑낑대면서 큰 삽으로 힘들게 퍼내고 몸살까지 알았던 적이 있는데 하나가 차고 뒤에 남아 남 몰래 장대꽃을 피운 것이다. 매우 신기하고 반갑기도 했다. 100년에 한번 피는 꽃이 피어났으니….한국에 와서 많은 세월이 흘렀다. 우리 집 아파트 베란다에 40개는 족히 넘는 화분들이 있으니 이제 화초 가꾸기가 필자의 취미라고 할만하다. 어쨌든 유카나무를 구하기 위해 집 근처 화원에도 두어 곳 가 보았으나 작고 예쁜 칼라유카는 있었지만 내가 찾는 종류는 없었다. 화원 여주인도 `요즈음 그게 안보이네요.``봄이 되면 나올까요?`미국 네바다주에도 커다란 유카나무가 있다. 대단히 특징적인 모습의 유카나무인데 특별히`여호수아 나무`라고 부른다고 한다. 서부개척 초기에 모하비사막을 헤매던 이주자들이 힘겹게 마주친 이 나무들의 모습이 천사 같기도 하고 기도하는 사람 같기도 해서 그렇게 이름이 붙여졌다고 한다.이러한 여호수아 나무는 추운 한국땅에서 잘 자라지 못할 것 같다. 하지만 비슷한 종류인 유카나무는 잘 자라니 한번 키워보려는 것이다. 용설란은 작은 것이면 몰라도 10년을 키우게 되면 너무 크고 위험하고 베란다가 아니라 마당에서 키우기에도 버거울 것이지만, 유카나무는 베란다에서도 마당에서도 키울 만하고, 아열대의 분위기를 풍기지 않는가?어느날 직장인 학교로 통하는 입구 멀리 수림 사이에서 유카나무 같이 보이는 식물을 발견했다. 둘째 날에는 차를 세우고 직접 가 보았더니 유카나무가 맞았다. 높이가 1.5m는 되어 보이는 잎이 풍성한 모습인데 7~8년전 식목일에 필자도 기념식수를 하던 학교 땅에 누군가가 화분에 있던 조그만 것을 옮겨 놓았으리라.그래도 아열대 식물이라서 인지 추운 겨울을 지나 봄인데도 어딘지 덥수룩하고 메말라 보였다. 하지만 그 커다란 모나무 옆에 40cm는 됨직한 새끼가 뿌리로 연결되어 자라나고 있었다. 옳거니 이것이다. 삽을 가져와 새끼를 잘라내고 다듬어서 화분에 옮겨 놓았다. 잘 키워 멋진 모습을 만들어 볼 요량이다. 언제 시간이 나면 아무도 돌보지 않던 모나무도 좀 다듬어주고 물도 주어야지 생각하고 있다.

2014-04-09

국가발전과 삶의 질 논쟁

▲ 구자문 한동대 교수·공간환경시스템공학부인도 비하르주에 다녀온 몇몇 지인들이 그곳 사람들의 열악한 생활환경에 대해서 이야기 해주었다. 그곳 주민들의 생활이 아프리카 주민들보다 못하다고 말하기도 했다. 일부 동남아시아, 라틴아메리카, 그리고 아프리카 국가들의 극심한 빈곤과 지역격차의 이유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다른 해석이 있을 수 있다. 또한 지난 수 십년 동안 각 국가는 물론이고 많은 나라들이 함께 힘을 기울이고 있음에도 여전히 문제를 풀어내지 못함에 대한 해석도 다를 수 있다.인도는 인공위성을 쏘아 올렸고, IT분야의 전문가들이 세계를 주름잡고 있고, 국토가 넓고, 자원도 많고, 역사가 긴 나라이다. 하지만 막상 가보면 상상할 수 없을 정도의 빈곤함과 함께 카스트제도 등 전근대성이 큰 나라이고, 이러한 어려움들을 스스로 풀어내지 못하고 있다.몇 년전 아시아의 빈국인 한 국가를 방문했을 때, 그곳 정부기관의 높은 분과 사석에서 그 나라의 경제발전에 대해서 논한 적이 있다. 필자가 국민들이 가난하니 이러저러한 경제산업정책을 수립해야 하는 게 아니냐고 이야기 했더니, 정색을 하며 반발했었다. `우리들은 한집에 양 20마리만 있어도 먹고 사는데 걱정이 없으니, 우리들은 가난하지 않다`라고 항변했었다.약간 자존심이 상해서 그런 말을 했다고도 보아지지만, 어이가 없으면서도 일말이나마 이해가 되는 부분이 있기도 했다.2~3년전 인도에 관한 연구를 하면서 동료인 미국인 국제법률대학원 교수와 토론을 벌였던 주제가 있다. 한국의 한 글로벌 기업이 인도의 한 지방에 대규모 공장을 짓고자 하는데, 그 입지처인 넓은 국유지에서 정부의 허가 없이 살아오던 주민들이 그 사업에 저항하며 주장하기를 `자기들은 이곳에서 고기 잡고, 야생열매 따고, 소규모 경작을 통해 지금까지 살아오던 방식을 지켜가고 싶고 자기들의 삶을 바꾸는 어떤 것도 싫다`는 것이었다.물론 그 말이 순수한지 아닌지는 잘 모르겠지만, 이러한 원주민들에게 현대적이 삶, 혹은 문명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가르쳐 줌이 옳은가 그른가가 필자와 미국인 교수 사이의 논쟁거리였었다.사실 근대화 내지 현대화라는 명제하의 국가발전을 세계 각 나라들이 추진하고는 있지만 그렇다고 전근대적 내지 전통적이라고 표현되는 것들이 꼭 나쁘고 바꾸어야 되는 것은 아니라고 본다. 물론 밀림 거주자들의 경우에는 이러한 논리를 논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세상의 다른 족속들이 모두 다 향유하는 기본적인 인간으로서의 존엄을 유지하기 위한 의식주, 의료시설, 교육시설 등에 관해 알게 하고 누리게 하고자 함에 대한 논쟁이었다.각자의 선호하는 방법대로 살아가는 것에 대한 옹호가 클 수 있음이 사실이다. 하지만 굶주리고, 질병에 고통 받고, 또는 남들에게 억압받아야 하는 경우라면, 그들 자신이 이를 옹호할 지라도 문제는 달라진다.또한 이러한 상황이 아닌 자기들의 지극히 선호하는 문화와 전통이라 할지라도 다른 이들에게 크게 해가 되는 경우라면 문제가 달라진다.요즈음 세계화(Globalization), 세계시민(Global Citizen) 등의 단어들이 자주 사용되는데 이는 세계 모든 이들과 통할 수 있는 가치관과 매너를 지닌 사람들을 일컫는다. 이는 세계 모든 이들이 평화를 위하고 또한 함께 살아가는 상황들을 말하고 있다고 본다.물론 우리도 이를 충실히 추구하고 있다. 아쉬움이 있다면 우리가 세계화되고 세계시민이 되는 것은 좋은데, 우리의 전통과 문화가 사라지고 너무 미국화 내지 유럽화 되는 것은 아닌지. 또는 세계시민이라는 이름아래 우리나라의 상황 내지 이익이 너무 등한시하는 것이 아닌지에 대한 걱정이다.

2014-04-02

지역개발과 지속가능성 확보 노력

▲ 구자문 한동대 교수1960년대 이후 우리 한국이 성공적으로 급속한 발전을 이룰 수 있었던 것은 강력한 리더십, 연속적인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의 수행, 수출주도형 경제 정책의 수행 등 다양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지난 10여년에 걸친 반복적인 국내외 불황으로 우리네 삶이 그리 녹녹치 않음도 사실이지만 지금도 많은 국가들이 우리 한국을 부러워하고 있고 배우고자 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 삶의 질이 다른 많은 나라들보다 더 낫다 하기 힘든 경우도 많은데 그 이유는 삶의 질 향상 내지 사회발전을 경제발전 내지 소득의 향상만으로 규정하기는 어렵기 때문이다.사회발전이란 경제, 사회, 문화 등 다양한 요소들이 함께 상향이동 함을 뜻한다. 이는 의식주 해결은 물론이고 자기의 꿈을 실현할 수 있는 사회, 남녀 혹은 계층 간에 차별이 없는 사회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UN에서 활용하는 발전지표는 평균소득, 평균수명, 평균교육연한, 이 3가지인데, 이들도 사회발전의 한 단면만을 함께 보여줄 뿐이나 모든 나라에 적용가능한 객관화 할 수 있는 지표를 찾다보니 그렇게 된 것이라고 한다.현재 각 지자체들은 각자 자기 고장의 발전을 위해서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과거에는 이를 위해 가장 큰 과제가 경제발전이라고 할 수 있었으나 지금은 사회문화적인 발전을 함께 결합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또한 이러한 노력의 결과가 지속가능해야 함이 중요한데, 이는 경제, 사회, 문화, 환경적인 지속가능성을 함께 포함하고 있는 것이다.요즈음 가장 큰 이슈 중 하나인 도심활성화의 경우에도 과거와 같이 허물고 새로 짓는 도심재개발이 아니고 기존의 역사, 문화, 커뮤니티가 살아있는 도심재생, 그리고 도심의 지속가능성을 추구하고 있다.포항의 경우에도 지난 40여년간의 철강산업 위주에서 관광문화산업, 항만물류사업 등을 통해 사업다각화를 꾀하고 있다. 도시발전도 확산 일변도에서 압축도시화 및 공공교통의 공급을 꾀하고 있다. 얼마 전 공사를 마친 포항운하의 경우도 동빈내항의 환경오염제거를 위한 획기적인 사업이다. 이를 활용해 크루즈를 띄우는 것도 경제활성화를 위한 또 다른 산업이다. 하지만 좀 더 중요한 것은 이를 기회로 주변이 활성화되고 지속가능한 도심으로 탈바꿈하는 것이다.신도시 내지 주거단지 개발도 이러한 몇 가지 원칙들이 주어져야 할 것이다. 그것이 도심이든 교외든 주변과의 조화, 환경친화개발, 그리고 지속가능성을 위한 마을기업이라든지 경제산업 활성화가 중요한 것이다.필자는 한동안 영일만항의 활성화와 배후단지 개발에 대해서 자주 언급했는데 이것도 새로운 성장동력의 개발이라는 산업다양화의 노력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이를 위해서도 환경친화적인 개발과 지속가능성이 중요하다.포항에는 포항신항과 영일만항이 있는데 이들을 차별화시키면서도 보완적이 되게 함이 중요하다고 본다. 포항신항은 지속적으로 철강산업 관련의 벌크부두로 지정하고, 장기적으로는 파도가 약한 형산강 안쪽으로 부두를 조성하여 5천t 정도의 선박이 개폐교를 통해 현대제철 등 철강공단에서 직접 선하적할 수 있도록 함이 중요하다고 본다.영일만항은 컨테이너 및 크루즈 전용부두로 조성하되, 앞으로 지어질 부두들은 7만~8만톤급 선박의 정박이 가능해야 할 것이며, 배후단지도 첨단산업, 고부가가치 농업, 생태테마파크 등을 조성하여 항만의 기능과 관광의 기능을 겸하게 하면 좋을 것이다. 이곳에 공해산업이 자리 잡든지 공해유발 물질을 선하적하게 되면 주변의 관광문화 및 주거기능에 큰 해가 될 지도 모르므로, 지역의 지속가능성을 높이기 위해서는 다각적인 분석과 예측에 바탕을 둔 전략의 수립이 요구된다고 할 수 있다.

2014-03-26

집단 우울증 해소방안은?

▲ 구자문 한동대 교수봄이 오는 듯 하면서도 아직 추운 날이 많다. 몇 주전 인근 시골마을을 방문했을 때 나물 캐는 아주머니들을 본 것 같은데 동네 공원의 잔디밭은 아직 푸른 싹을 내보이지 않고 있다. 지난 여름에 동네 빈터를 가득 채우던 억새며 잡초들이 말라버리니 보이는 것은 크고 작은 쓰레기들이다. 빈터만이 아닌 골목길에도 라면컵, 빈 플라스틱 병 등 버려진 것들이 많다. 큰길가는 좀 덜하지만 조금만 안쪽 골목으로 들어가면 쓰레기 천지인 이곳이 교외의 신시가지이다.상가 골목 안은 주차문제가 심각하다. 세울 곳을 찾기도 힘들고 교행도 힘들다. 새로 세워진 건물들이고 신시가지인데도 주차시설이 제대로 준비되어있지 않음이 안타깝다. 일보러 잠시 동네 인근에 나올라치면 마주치는 이러한 풍경들이 우울함을 준다. 분명 고쳐져야 할 문제들인데 하나같이 방치되어 있다.얼마 전 동계올림픽 때 우리나라 출신의 저명 피겨스케이터가 억울하게 금메달을 놓치게 되어 많은 이들이 화나고 억울하고 우울했었다. 직접적인 내 일이 아닌데 이로 인해 우울했었다.거의 같은 시기 금융권을 통한 개인정보 유출사건과 그로인한 파장이 아직도 큰데 많은 이들이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으며 우리사회에 대한 자괴감이 너나 할 것 없이 컸었다고 본다. 그 당시 통상적인 업무로 아침 9시에 단골은행에 갔다가 닫힌 문 앞에 줄지어선, 그리고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이는 분들의 모습을 보았다.금융위기 이후 아파트 가격 하락 충격으로 많은 이들이 집단 우울증 상태를 보이고 있다고 한다. 물론 아파트 가격에 대한 해석들이 다를 수 있고 이에 대한 개인들의 사정이 다를 수 있지만 꽤 많은 이들이 대출이자 지불에 어려움을 겪고 있고 집 하나가 전 재산인 많은 시민들이 재산가치 하락으로 우울증을 겪고 있다고 들었다.살펴보면 우리 사회를 우울증에 빠트리는 일들이 매우 많다. 우리의 경제가 많이 발전했다고는 하지만 과거와 같은 빈곤은 없어졌다고 하지만 불황으로, 남북 대치 및 종북 논란으로, 학력경쟁의 스트레스 등으로 각 가정이 우울증에 시달리고 있다.요즈음 각 개인의 우울증의 심각함에 대해서 그 예방 및 치유의 중요성에 대해서 많은 논의가 있어 왔다. 하지만 집단적인 우울증은 어떻게 진단되고 치유될 수 있을 것인가? 개인적인 우울증과 집단적인 우울증은 다르면서도 엄격하게 분리하기도 힘들다. 사회가 우울하니 개인적인 일들도 우울하게 전개되기 쉽고 각 개인들이 우울하니 사회현상 자체도 우울하게 표출되기도 하는 것이다.하지만 살다보면 우울하기만 한 것이 아니다. 일상에 기쁜 일, 슬픈 일이 없을 수 없는 것이다. 기쁜 일이 있으면 우울함이 그때 그때 잊혀지기도 한다. 물론 심각한 고민이 잠시 기쁘다고 해결되는 것은 아니지만 그 기쁘거나 웃는 순간들이 내 자신을 만성적인 우울증에 빠짐을 막아줄 것이다.아주 오래전 `웃으면 복이와요`라는 TV프로그램을 보면서 깔깔대던 생각이 난다. 웃으면 그때뿐이라 하더라도 마음이 후련해진다. 요즈음 프로그램 중 `진짜 사나이`의 연예인 장년 병사들의 고로쇠나무 스키훈련을 보면서 웃음을 참지 못하던 것도 그 예이다.하지만 부조리하거나 불안정한 사회적인 구조 내지 모습에서 오는 우리 시민들의 집단적인 우울함은 어떻게 해결할 수 있는 것인가? 잠시 웃으며 잊어버린다 해서 그러한 문제들이 해결 될 수 있는 것은 아니나, 마을공동체가 힘을 합쳐 조그마한 문제부터 풀어나가고, 범국민적인 사회운동을 통해서 좀 더 근원적인 것들을 풀어나가고…. 요즈음의 불확정성시대에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이러한 공동체운동일지도 모르겠다. 문제는 누가 언제 어떻게 리드해 나가느냐가 관건일 것 같다.

2014-03-19

경북도청 제2청사

▲ 구자문 한동대 교수같은 역사와 정체성을 지녔던 대구와 경북이 다른 광역자치단체로 나누어지면서 대구시내에 있던 경북도청을 경북도 영역으로 이전작업이 추진되었다. 어디로 이전할 것인가가 큰 과제였는데 도청이전추진단, 후보지선정위원회 등의 활동으로 2008년에 안동과 예천 중간지점에 계획인구 10만명의 도청신도시를 건설하기로 결정되었다. 교통편리성, 중심성, 대지의 입지 및 규모, 낙후지역 개발 등이 경북도에서 수립한 평가지표로 기억된다. 그때 필자는 포항유치위원으로서 `국제성` 내지 `항만 및 공항 접근성` 등을 지표에 포함하자고 주장했었던 기억이 난다.현재 신도청사는 2014년 말을 목표로 건설공사가 진행되고 있는데 도청의 고유기능에 입각하여 다음과 같은 사항들이 함께 추진되어야 되어야 할 것이다. 첫째, 도민들의 행정서비스의 질 제고 및 편의를 위한 각 시군들과의 교통 및 접근 편이성, 둘째, 경북도의 경제산업 발전을 위한 공항, 항만, 그리고 고속도로와의 연결성, 셋째, 도청직원들의 도청신도시 정착을 위한 기본 인프라 구축, 넷째, 이전시 주장되었던 대로 낙후 북부지역의 연계 발전 등이다.하지만 가장 큰 문제가 신도시 건설에 필요한 막대한 비용이다. 물론 도청사 및 진입로 등 주요공사 건설비용 5~6천억원의 50%가 국비로 지원되고 인구 10만의 신도시 형성을 위한 기본 인프라 및 주거건설 등 2조원에 달하는 비용은 경북개발공사가 사업시행을 통해 해결한다고 하지만 남아있는 문제는 이 정도 비용의 투자로 지속가능한 도시로의 발전이 가능하냐는 것이다.또 다른 문제는 접근성의 문제이다. 도청이 도내 다른 지역들, 특히 인구와 산업시설이 밀집한 포항·경주지역과 교통연계가 불편한 먼 곳으로 옮겨가니 이 지역의 공무원, 기업인, 시민들 모두가 도청방문에 더욱 많은 시간을 소모해야 할 것이라는 것이다.광역지자체의 행정은 각 기초지자체 및 시민들과의 밀착된 행정서비스가 중요하다고 본다. 도청이 멀리 있는 게 아니고 `우리들 가까이에서 서비스`를 제공하고 또한 `시민들 곁에 있다는 의지`를 보여줌이 중요하다고 본다.광역지자체로서 도청의 지역개발 기획 및 투자, 인허가 등의 기능과 기초지자체와의 긴밀한 협력을 위해서, 또한 고용인원 많은 도청의 입지로 인한 경제, 문화, 사회에 걸친 간접적인 파급효과가 지대할 수밖에 없기에 `가까이 있는 도청`은 도내 모든 기초지자체의 바람이라고 본다. 포항과 경주가 있는 동남권은 인구 및 인구밀도가 높고 첨단산업 및 연구개발 기능이 집중되고 외국인을 포함한 내방객이 많고 국제컨테이너항인 영일만항이 있는 곳이다.우선 도청신도시를 완성해놓고 문제가 있으면 그때 해결하자는 의견이 있는 것으로 아는데 이미 큰 문제가 확인되고 있는 상황에서 또한 경북도의 진취적인 대외경제산업 활동이 기대되는 시절에 이러한 사안을 장기간 방치해 둘 수 없다고 본다. 2008년 입지 선정 시에도 도청의 역할, 도의 장래 발전을 위해 신도청사가 항만 가까이로, 인구가 집중된 곳으로 가야한다는 의견이 컸었다.경북도의 면적은 경기도의 2배에 이를 정도 큰 지역이다. 이렇게 넓게 펼쳐진 경북도의 행정서비스차원에서 제2청사는 필히 요구된다고 본다. 그렇지 않다면 신도시 입지 선정 당시부터 제기되어온 포항·경주 주민들의 불편함과 불만이 커질 수 있다고 본다.아무쪼록 신도청사가 계획대로 잘 건설되기를 바란다. 그러나 이번 기회에 경북 동남권인 포항지역에 제2청사 내지 동남본부의 설치를 심각히 토론하는 계기가 마련되었으면 좋겠다. 이러한 노력으로 인해 100만 동남권 도민들의 불편함이 감소됨은 물론이고 대구·경북의 관문항구인 영일만항의 활성화가 이루어지고 우리 경북의 새로운 성장동력 창출이 좀 더 용이하게 이루어질 수 있기를 바란다.

2014-03-12

포항의 도심재생 추진 방향

▲ 구자문 한동대 교수1995년에 포항시와 영일군이 합해져 통합시가 된 이후, 포항시의 면적은 20배로 늘었다. 인구는 크게 증가하지 않았지만 도시화지역은 크게 확산되고 있는 반면 도심은 공동화를 겪고 있다. 소득의 상승과 생활양식의 변화, 그리고 이에 따른 시장경제의 대응은 자연스러운 것이나 현재시대는 모든 것을 시장경제에 맡겨두고 있지 못하다. 도시들은 도시행정을 통해서 개개인의 자유를 일부 제한하고 있다. 개개인의 이익추구가 존중되어야 할 중요성이기는 하지만 전체적으로는 공공성 유지에 문제점을 만들어 내기 때문이다.현재 세계적인 도시행정의 화두는 지속가능한 도시 내지 환경친화적인 도시의 건설이다. 따라서 압축도시의 형성, 공공교통 체계 수립, 도심재생 등이 그 실천을 위한 목표이자 전략들인 것이다.오늘 중점적으로 토론하고자 하는 것은 도심재생이다. 이미 사업성과 공공성 확보노력에 대해서 언급했지만 도심재생의 성공은 이 두 가지를 어떻게 확보할 것이냐에 달려있다.포항에서도 오랫동안 도심공동화가 진행되고 있었다. 포항운하의 개통이 도심활성화의 계기가 될 것이라고 보여지나 차별화된 도심재생사업이 또 다른 계기인 동시에 전략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도심재개발에 비해서 도심재생은 복합적인 개념이고 종합적인 전략을 필요로 한다. 이는 헐고 새로 짓는 재개발을 넘어서서 도시의 역사성, 장소성을 살리며 기존 커뮤니티를 유지하고 좀 더 나아가 테마성 가미와 함께 관광객 유치 등 새로운 경제활동을 강화하자는 것이다. 이때 사업성이 중요하고 정부의 인센티브가 필요하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도심을 지속가능하게 하기 위한 종합적인 재생전략의 수행이다.유럽이나 중국, 혹은 일본의 경우처럼 역사적인 건물들이 많고 오랜 전통의 문화활동들이 지역마다 존재한다면 좋을 것이다. 우리네 도시들은 그렇지 못하다.보존할 가치 내지 향상시킬 이유를 찾기 힘든 낡은 건물들로 구성된 거리며 커뮤니티를 도심재개발이 아닌 도심재생을 통해 활성화하고자 한다면 어떤 전략들을 채택해야 할 것인가? 어떤 지역을 보전하고자 하더라도 경제가 돌지 않으면 약간의 인센티브만으로는 커뮤니티의 기능은 커녕 미관향상도 힘들 것이다. 어떤 지역을 새로 건설해 낸다 하더라도 사업성에 맞춘 아파트 건축 이외에 크게 할 만한 것이 없음이 딜레마이다.포항에서도 도심재생사업이 추진되고 있다. 정부의 도심재생 선도지역에 선정되기 위해서 포항역사 이전적지, 오거리, 중앙통 등을 포함한 광범위 한 지역을 대상으로 도심재생계획을 수립하고 있다.이 사업이 선정되기 위해서는 평가항목들을 잘 만족시킬 수 있는 방안들이 구상되어야 할 것인데, 그중 중요한 것은 이 지역의 역사와 문화, 그리고 마을공동체를 살려나가는 작업이라고 본다. 이 말은 시가지정비, 건물개량 등 물리적인 투자도 중요하지만 특색 있는 지역문화와 전통의 보전, 이와 연관된 마을기업 육성 등 차별화된 경제산업 육성전략이 필요하다는 것이다.거리와 커뮤니티를 좀더 자세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 3·1운동의 흔적을 지닌 교회, 4~50년대의 모습이 남아 있는 시장통, 철공소거리, 작고한 지역건축가의 작품 등 잊혀진 장소 혹은 사연들이 남아 있는지…. 좀 허술해 보이더라도 보존대상이 되어야 한다.남겨질 포항역사 인근에 고층아파트 건설계획이 있는데 기존 주민들이 많이 입주하고 기존 도심기능 및 역사적 장소성과 잘 조화되는 혁신적인 방안을 내놓아야 할 것이다. 아파트 건물과 광장 자체가 주거기능과는 별도로 주변의 포항역사와 함께 관광객들의 흥미를 끌 수 있도록 형태 및 기능을 테마적으로 조성하면 더욱 좋을 것이다.

2014-03-05

영일만항과 북방사업

▲ 구자문 한동대 교수경북도는 동북아자치연합 사무국을 운영하고 있다. 포항시는 2012년 1월`환동해 허브`정책을 선언하는 등 환동해권 지자체간의 교류와 협력을 위해 애쓰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노력들이 아직은 만족할만한 수준에 이르고 있지 못하고 있는 것도 사실인데 그 이유는 국가 간의 역사적 갈등, 지역적인 낙후, 인프라 부족, 지자체들의 정치적 한계 등 다양할 것이다. 하지만 지자체들의 차원에서 중요하면서도 비교적 용이하게 추진할 수 있는 사업은 항만물류라고 본다. 대구경북의 관문항인 영일만항도 일본, 중국, 동남아 항만들만이 아니라 환동해권 항만들과 항로개설이 이루어지도록 노력해야 한다. 또한 화물들을 TSR을 통해 유럽전역과 연계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개항한지 얼마 되지 않은 탓도 있겠지만 영일만항은 인지도가 낮고 아직 대구와 경북의 물동량 조차 제대로 확보하지 못하고 있다. 이러한 문제의 해결을 위해서는 적극적인 홍보 및 물동량 유치, 지역기업의 지역항만 이용 노력, 경북도를 비롯한 지자체와 시민들의 적극적인 지원이 필요하다.강원도의 경우에는 동해안에 제2청사격인 환동해본부를 두어 항만물류 및 수산자원 개발에 힘을 쏟고 있으며 속초-자루비노(훈춘)항로 개척 등 다양한 환동해권 내지 해양지향적인 활동을 펼치고 있다. 물론 그 결과는 어려움의 연속이지만 그 노력에 박수를 보내지 않을 수 없다.경북도의 경우 강원도 보다 인구, 재정, 인적자원, 경제산업 대부분의 분야에서 우위를 점하고 있으나 환동해권 관련 활동에 있어서는 강원도에 비해 결코 앞선다고 하기 힘들다. 경북도가 대외지향 내지 해양지향적인 정책노선을 공격적으로 추구해 나가기 위해서는 영일만항이 있고 인구가 집중된 동해안 지역에 제2청사 내지 출장소 설치를 크게 고려해야 할 것으로 본다.환동해권의 활성화에 대해서 지난 수십년간 많은 기대와 함께 실망도 컸다고 본다. 하지만 국가 차원에서나 동해안권 지자체들 차원에서 환동해권을 그대로 방치할 수는 없는 것은 이 지역의 지정학적인 중요성과 발전가능성이 더욱 가시화되고 있기 때문이다.현재 정부에서도 북러 경협사업인 나진-하산 프로젝트에 관심이 크다. 이 프로젝트의 핵심은 북한과 러시아의 철도연결을 통해서 물류사업을 확대하는 것이다.러시아는 극동지역 발전을 위해 풍부한 에너지 및 천연자원을 동아시아, 특히 한국이나 일본으로 수출하려고 계획하고 있다. 이를 위해 러시아는 2013년 9월에 하산과 나진을 연결하는 철도를 재개통했고 나진항 현대화사업을 곧 마무리 할 것이라고 한다.나진항을 통해서 한러, 그리고 북러의 협력이 높아진다면 북한의 입장에서는 통과료 확보만이 아니라 파급되는 경제적 이익이 클 것이다. 우리 한국의 입장에서도 하나의 물류거점 확보 이상의 큰 의미가 있을 것이다.경북도, 포항시 등 동해안 광역 및 기초지자체들로서도 항만연계를 통한 물류사업 뿐만 아니라 위와 같은 국가적인 노력에 발맞춘 지자체 차원의 협력된 노력이 필요하다고 본다. 환동해권 지자체들간의 문화사회적 교류를 좀 더 활성화 시켜야 할 것이며 지역의 중소기업들이 러시아 하산, 중국 창지투, 그리고 나진지역을 대상으로 사업지역을 넓혀갈 수 있도록 지속적인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지자체나 NGO 차원에서 러시아 하산이나 북한 나선지구를 대상으로 농업개발이나 커뮤니티 개발협력도 필요하다고 본다.이러한 장기적인 목표달성을 위해서는 대구경북의 관문항구이자 차별화된 배후산업 및 인적인프라를 갖춘 영일만항의 활용이 중요할 수 밖에 없다. 이러한 노력을 바탕으로 대구경북의 북방항로와 북방교역이 개척되고 남북을 아우르는 우리나라 발전의 신성장동력이 되었으면 좋겠다.

2014-02-26

영남의 근대미술사

▲ 구자문 한동대 교수최신 핸드폰임에도 소리가 고르지 못해 일찍 퇴근하여 서비스센터에 들렸더니 기기고장이 아닌 프로그램상의 문제라서 잠깐 사이 일을 마칠 수 있었다. 이렇게 시간이 어정쩡 남을 때는 무엇을 해야 하나? 아 그렇다. 미술관에 가자.그리 멀지않은 도심해변 인근 공원 안에 위치한 포항시립미술관에 들렀다. 날씨가 추워서인지 그 넓은 공원 안에 몇몇 외에 인적이 드물었다. 미술관 안도 그런 면에서 적막하다고 할 수 있었다. 하지만 필자는 그러한 적막함을 즐기는 것 같다.적막함이라기 보다는 고급스러운 어두운 회색톤, 간결 속의 고고함을 주는 듯한 건물 내부에서 때로는 소박하고, 때로는 화려하며, 때로는 알 듯 말 듯한 그림이며 조형물들을 감상하며, 숨겨진 내 자신의 순수를 이끌어내는 것이다. 필자는 그래서 이 시간을 즐기는 것이라고 강변하고 싶다. 이날은 `영남의 구상미술`이라는 주제 아래 영남권에 거주하시던 초창기 근대미술가들의 작품들이 전시되었다. 대부분 1900년대 초반에 출생하여 1950~60년대에 돌아가신 분들의 작품으로서, 1930~40년 혹은 50년대에 그려진 작품들이었다.이 그림들은 국립미술관이나 전쟁기념관 등에서 볼 수 있는 큰 주제의 대작들이 아니고 생활소품이라고 할 수 있는 것들이다. 풍경화 중에는 지금도 같은 모습의 산과 바다를 그린 것도 있고 영화에서나 보임직한 옛 거리의 모습도 있고 우리 어릴 적에 자주 뵙던 이모나 조부모님들의 모습도 있었다.대부분의 작품들이 우리나라가 일제에 나라를 빼앗기고 암울한 시절에 그려진 것들인데 작품들에서 그러한 역사가 보여지고 있어 안타까웠다. 기모노 입은 여인이 섞여 활보하는 소도읍 거리에 집집마다 게양된 태극기, 일제 강점기인 1930년의 작품이다. 조그만 재생지 위에 그려지고 채색된 6·25전쟁 당시의 형산강 전투 장면, 1950년의 작품이다.이들 작가들은 지금 97세로 생존해계신 한 분을 빼고는 대개 50~60대에 돌아가셨고, 여러분들이 30대에 폐병 내지 다른 지병으로 세상을 하직하셨다니 더욱이 안스러웠다. 이게 우리나라이고 선조들의 힘든 인생살이였다.다. 2층에서는`경계와 탈경계`라는 제목으로 40대가 주축을 이룬 젊은 작가들의 비주얼아트 전시회가 열리고 있었다. 움직이는 동영상의 상징적인 이미지들의 작품이다. 좀 난해하기는 하지만 그냥 감상도 해보고 작가의 설명을 읽으며 감상해보기도 했다.이러한 비주얼아트들은 인터넷과 스마트폰에 익숙한 신세대들에게는 크게 새로울 것이 없는 것들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스케일에 있어서 스마트폰 이나 텔레비전 화면과는 비교가 안되는 웅장함을 준다. 하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그 작품에 함축된 스토리들이다.영남의 구상미술전에 전시된 작품들을 대상으로 그 그림의 예술적인 완성도로만 가치를 매기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허나 그 그림이 그려진 그 시대의 갖가지 이야기들이, 그리고 작가들 삶의 일면이 함축되었다고 생각하면 그 그림들은 그냥 그림들이 아닌 것이다.밖으로 나오니 추운 바람이 옷깃을 여밀게 한다. 외설적이라 할 만한 조각 작품들을 지나서 물 마른 폭포수를 지나니 비닐에 쌓인 동물우리들이 보인다. 이 추운 날씨에 창살높이 매달린 것은 빨간 얼굴의 일본원숭이다.이 도시에 잠시 시간을 내어 갈수 있는 곳은 많다. 도심거리의 우아한 커피숍, 영일만해수욕장 해상누각, 활어가 있는 죽도시장, 그리고 최근 개장한 포항운하 크루즈 등.하지만 이 환호해맞이공원의 포항시립미술관은 방문객들에게 또 다른 인상과 추억을 만들어 주는 곳이다. 올 들어 첫 방문이지만 작년에 그랬던 것처럼 올해에도 학생들과 외국인 친구들과 혹은 혼자서라도 작품이 바뀌고 계절이 바뀜에 따라 몇 차례 더 방문하고 싶은 곳이다.

2014-02-19

한 대학의 총장 이·취임식

▲ 구자문 한동대 교수며칠 전 지역의 한 대학총장 이·취임식이 있었다. 이 대학은 개교 20년이 채 안되었지만 혁신적인 교육프로그램 등으로 전국적인 지명도를 지닌 학교로 발전했다. 이날 행사에 인근 지역의 대학총장들, 지방자치단체장들, 그리고 많은 지역유지들이 참석했었다. 이 학교에 몸 담고 있는 필자도 당연히 이 행사에 참석했다. 초대총장으로서 지원기업 없는 소규모 지방사립대학의 경제사회적인 어려움을 극복하고 명망있는 대학으로 키워낸 분의 은퇴식으로서 이 행사는 소중했다. 그리고 학교 구성원들 모두가 오랫동안 찾고 기대하던 신임총장의 취임식이라는 점에서도 매우 소중한 자리였다.하지만 이날을 더욱 의미 깊게 했던 것은 지역 지자체장 및 관련 인사들의 색다른 축사였다. 보통 때라면 써온 것을 낭독하거나 말 그대로 축사를 하는 경우가 많을 것인데 이날은 내용도 형식도 달라 보였다.“지방의 소규모 대학으로서, 경제적인 어려움 가운데서도 대학교육의 새로운 방향을 제시하는 대학으로 키워냈다.” “포항이 53만의 중소규모의 도시지만, 앞으로 다른 도시들과의 차별화를 이끌어낼 것임을 믿는 것은 지금 함께 자리하고 있는 두 총장들이 맡고 있는 두 대학이 있기 때문이다.”“올해 말이면 포항에 KTX가 들어오고, 서울과 2시간에 연결이 되어 포항도 수도권화 된다고 할 수 있는데, 더 가까운 대도시인 대전이나 대구 보다 포항이 더욱 수도권화 될 수 있고 차별화될 수 있는 것은 이 우수한 대학들 때문이다.” “경북도가 원자력발전소 등 에너지 클러스터로서의 열망을 지니고 있는데, 세계적인 핵공학박사가 총장으로 왔으니, 그 계획은 크게 성공적일 수밖에 없다.”물론 덕담 내지 과찬 일 수 있다고 본다. 하지만 이날 이러한 말들을 통해서 이들의 지역대학에 대한 관심이 많은 분들 앞에서 밝혀진 셈이다. 이들도 세계적인 테크노폴리스며 혁신도시들에서 보듯이 지역발전에 있어서 대학의 역할과 중요성을 잘 알고 있다는 것이다.세계적으로 창의적이고 혁신적인 도시들을 본다면 거의 모두가 우수 대학이 있고,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창의적인 대학생들이 있고, 이들을 용인하며 지역의 경제산업과 잘 연계하려 노력하는 지자체 및 관련기관들이 있다. 이는 미국, 영국, 일본. 스웨덴 등 성공적인 곳에서는 예외 없이 관찰되는 현상이다.한국의 경우 교육의 창의성에도 문제가 있지만 지역사회도 역동성 내지 포용성이 부족하여 대학의 RD가 지역과 연계되기도 힘들고 대학졸업생들도 창업이 힘들다. 하지만 포항이 우리나라의 다른 도시들과 차별화 되는 것은 이러한 어려움을 극복해나갈 창의적이고 우수한 대학들이 있고 이들을 포용해갈 혁신적인 리더 군이 존재한다는 것이다.이러한 행사에서 덕담을 주고받는 것은 관례일 수도 있다고 본다. 하지만 본 행사가 특별했던 것은 지역의 주요 인사들이 많은 사람들 앞에서 지역사회의 비전적인 미래가 관학민 공동의 노력으로 성취될 수 있고 그 기반이 이미 이루어져 있음을 확인하는 기회였다는 것이다. 지난 20년 동안 국외자인 듯 했던 이 학교가 지역사회의 당당한 일원임을 서로가 깨닫게 되는 순간이기도 했다.신임총장의 취임사를 통한 이 대학의 발전방향 중 하나는 지역을 연구하고 지역과 함께 발전해가는 것이고, 또 하나는 교수와 학생들이 이론만이 아니라 좀 더 구체적인 현장사업을 통해서 아프리카, 동남아시아 등 개발도상국을 돕는 등 글로벌 이슈 해결에 앞장서겠다는 것이다.아무쪼록 신임총장을 맞은 이 대학이 글로벌 교육비전을 성공적으로 이루어내기 바란다. 물론 이를 통해서 지역사회가 동반발전할 수 있기를, 서로 힘이 되는 학교와 지역사회가 될 수 있기를 기대한다.

2014-02-12

영일만항 활성화의 전제조건

▲ 구자문 한동대 교수포항에 살면서 영일만항에 대한 관심이 없을 수 없다. 더구나 영일만항 언저리에 직장과 거처를 지니고 있는 필자로서는 그 관심이 좀 더 특별할 수 밖에 없다. 수업시간에 관련 사안들을 언급하기도 하고 외국인 학생들을 대동하고 견학을 가기도 한다. 이 영일만항이 이 지역 모든 이들의 자랑이면서 이 지역을 먹여 살릴 성장동력임을 크게 기대하고 있다. 영일만항은 우리나라 대여섯 번째의 컨테이너 부두를 지닌 길이 1km, 폭 600m, 3만t급 4척이 동시 수용 가능한 국제항만이다. 2013년 영일만항의 물동량이 14만3천866 TEU이며, 2014년에는 19만5천 TEU를 목표로 삼고 있고 장차 50만 TEU 정도를 연간목표로 하고 있다.현재 가장 시급한 것은 대구 경북지역의 물동량 확보라고 한다. 포항지역의 물동량은 항만배후단지가 개발되는 등 장기적인 관점에서 추진되어야 할 것이지만 대구와 구미지역의 물동량은 이미 크게 존재하고 있는데 영일만항이 아직 확보하지 못하고 있음이 문제이다.대구와 구미지역의 기업들이 영일만항을 이용하지 않는 이유는 `항로가 없어서`, `서비스 빈도가 낮아서` 등이라고 한다. 신생 영일만항으로서는 항로와 항차가 부족한 것은 사실인데 화물이 늘어나야 이도 확보될 수 있으니 어려움이 여기에 있다. 현재 영일만항은 상해 및 천진으로 정기선과 비정기선이 주 2회 이상 연결되고 동남아항만들도 1회 이상 연결되고 있다.기업으로서는 물류비용이 중요할 수 밖에 없는데 영일만항을 억지로 이용하라고 애향심에만 호소하기는 힘들 것이다. 하지만 부산항 등에 비해 영일만항이 물류비용, 운송기간 등에 유리한 점이 없지 않으므로, 이 지역의 기업이라면 영일만항을 이용하려는 기업 자체의 노력도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된다.영일만항은 대구 경북의 관문항구가 되어야 하고 대외진출 거점이 되어야 한다. 대구 경북 수출입물량의 원활한 수송을 영일만항을 통해 이룰 수 있도록 해야 하고, 이를 통해 시민들의 국내외 나들이도 이루어져야 한다. 이를 위해서 경북도와 포항시 등 지자체들, 기업들, 시민들의 적극적인 지원이 필요하다.물론 포트세일즈가 적극 확대되어야 하고, 부산항과는 연안피더선을 통한 협력항으로서의 위치도 확보되어야 할 것이다. 영일만항과의 인입교통망만이 아니라 대구, 구미, 안동 등과 편리하게 연결되어야 한다. 항만운영을 위한 소프트웨어적인 것들도 중요하지만 하드웨어적인 시설들은 신속히 준비되어야 한다.현재 대구 경북의 주요 농수산물 수출입물량이 부산, 광양, 그리고 강원도 항만들을 통해서 처리되고 있는데, 이들의 수출입을 영일만항을 통해서 처리하도록 해야 한다. 어서 빨리 냉동·냉장창고, 활어수조 등이 신축되어야 할 것이다.영일만항의 물량확보에 문제가 생긴 것은 세계불황의 여파로 배후단지 개발이 제대로 추진되지 않은 이유도 있다. 이 항만배후단지에 물류기업, 소재산업, 고부가가치 농산물재배 및 가공업 등이 어서 빨리 자리 잡아야 한다.이미 많은 이들이 환동해권 활성화의 중요성을 주장하고 있다. 경북도와 포항시로서는 중장기적인 관점에서 러시아 및 중국의 북방항구들과의 연계, 그 배후지역의 개발 내지 협력사업에 좀 더 적극성을 가지고 참여하지 않으면 않된다.물론 국가적인 차원에서도 TSR과의 연계, 두만강유역개발 참여, 시베리아 자원개발 참여, 북극항로의 개발 등 모두가 중요하다. 앞으로는 북한 나진항을 통한 중국 동북3성과의 연계만이 아니라 남북연계사업에 있어서도 나진선봉지역과의 연계가 중요하게 될 것이다. 아무쪼록 국가차원에서 좀 더 북방대륙 및 북방항로에 힘을 기울이고 영일만항의 북방전진기지로서의 역할에 좀 더 힘을 실어주었으면 한다.

2014-02-05

LA 코리아타운에서

▲ 구자문 한동대 교수오랫만에 LA 코리아타운에 들렀다. LA를 떠난지 20년이 되어가기에 방학 중 가끔 들러보게 되면 감개가 무량하다. 코리아타운은 올림픽가에 몇 개 중대형 건물들이 들어선 것 이외에는 크게 변한 것이 없는 것 같다. 코리아타운에 오면 한국인 대형마켓에 가서 과일, 채소, 김치 등을 사고 건너편 한국인 빵집에 들러 빵도 사고 커피도 마신다. 자주 들러 점심을 먹는 곳은 한국식 중국집, 설렁탕집, 순두부집, 베트남 쌀국수집 등이다.점심때 제자를 만났는데 한국에서 대학 졸업 후 미국에 와서 건축대학원을 졸업하고 지금은 몇 년째 미국인 건축설계사무소에서 일하고 있다. 영주권이 없기에 보험도 없이 낮은 임금을 받으며 일했었는데 이제 영주권이 나와 제법 살만해 졌단다. 이제는 몇 년 안으로 건축사시험을 패스하고 귀국하여 건축설계사무소를 직접 운영하는 것이 꿈이라는 맹렬 여성이다.LA 코리아타운은 또 하나의 한국이다. 막일을 하면서도 은퇴하여 노인아파트에 살면서도 모두가 한국을 그리고 있다. 이제 2~3세들이 성장하게 되어 공인회계사, 변호사, 의사들도 많아졌지만 아직도 코리아타운은 막일을 하면서도 자식 뒷바라지에 온 정성을 쏟는 1세대 한인들로 이루어져 있다.지난 번 만난 노신사분의 초대로 코리아타운에 위치한 그분 집에 들렀더니 커다란 2층집인데 1층은 교회이고 2층은 살림집으로 되어있었다. 오래전에 사서 은행 모기지를 다 갚았기에 부담이 없다는데 넒은 뒷마당에 많은 화초들을 키우고 있었다.이 분으로부터 화분 여러 개를 얻었는데 거대한 나팔 같은 노랗거나 하얀 꽃 피는 `천사의 나팔`이라는 커다란 화분 2개, 향내 진한 `로스마리` 화분 1개, `하와이언 러브` 화분 1개 등이다. 뒷좌석에 간신히 실어 집에 가져오니 집이 환해지는 것 같다.차를 몰아 윌셔거리로 갔다. 이곳은 아름다운 건물들이 들어찬 동서 관통로인데 고전풍의 교회, 새롭게 세워진 오피스빌딩, 높게 늘어선 야자나무가 아름답다. 신호등에 걸리기는 해도 필자는 이 길을 드라이브하길 좋아했었다. 계속가면 베벌리힐스가 나오고 또 산타모니카비치가 나온다.이 노신사의 설명에 의하면 이곳에 많은 야자나무(Palm Tree)가 있지만 대추야자가 열리는 종려나무(Date Palm)는 벌몬트에서 노르만디 구간 사이에만 있다고 한다. 야자나무는 종류가 수 백가지에 이를 정도로 많은데, 종려나무는 다른 야자나무와 비슷해 보이지만, 자세히 보면 잎이 바늘같이 날카롭고 간결하게 죽 죽 뻗어있다.사막기후인 팜 스프링스에는 종려나무가 수 만 그루 있고 그 지역에서는 이것을 지역 특산으로 심고 있다고 한다. 열매는 말려서 곶감같이 만들어 놓았는데 얼마든지 드시고 사가시라고 선전한단다.대추야자가 한그루에서 매년 350파운드 정도가 열리는데 1파운드가 5달러 정도라서 그 수입이 대단하다고 한다. 또한 종려나무 한그루가 큰 것은 1만달러에 달하기에 라스베가스의 호텔이나 카지노 혹은 부자들 저택 앞에나 심을 수 있는 나무라고 한다.우리나라 제주도에서도 종려나무를 들여와 재배해보려 했지만 기후 탓에 실패했고 아직도 여기저기 작은 나무들이 남아 있고 한다. 서귀포 등지에 높게 솟은 야자나무는 종려나무가 아니다.제주도는 감귤로 유명한데 요즈음 로스앤젤레스에서 맛보는 감귤 때문에 깜짝 놀랐다. `블루재이`라는 상표인데 한국에서 먹어본 어떠한 감귤보다 당도가 높고 맛이 좋기 때문이다. 기후가 좋으니 맛있게 자라나는 것인지….외국에 오면 누구나 애국자가 된다고 한다. 이곳에 사는 교포들도 마찬가지이다. 이들은 국적과 관계없이 우리 동포요 우리의 큰 자산인데, 우리사회가 제대로 신경이나 쓰고 있는 것인지….

2014-01-29

겨자씨나무

▲ 구자문 한동대 교수남북으로 긴 캘리포니아는 지역마다 기온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겨울에도 온화한 편이다. 특히 필자가 휴가 중 머무는 로스앤젤레스 지역은 더욱 온화한 편이라서 밤에는 기온이 5~10도로 내려갈지언정 대낮기온은 20~25도 이상을 기록하고 있다. 더구나 겨울은 우기라서 무더운 갈수기의 여름 보다는 정원의 나무며 풀들이 더욱 무성하게 자라고 있다. 여름에는 스프링클러로 물을 자주 주어도 잔디밭이 말라버리기 십상이지만, 겨울에는 땅속에 잠자던 수선화 같은 알뿌리식물들도 슬며시 고개를 들고 있다.앞뜰에 있는 3그루의 야자나무는 수 십년째 같은 모습으로 넓은 잎을 펴 보이고 있다. 현관입구를 둘러싼 동백나무들도 윗가지를 쳐주니 높이가 1m 남짓이지만, 이 집의 나이만큼이나 60~70년의 수령을 자랑할 것이다.뒷뜰에는 수없이 가지치기를 해야 했던 거대한 단풍나무와 참나무가 있다. 노란 열매를 무수히 맺고 있는 레몬나무가 있고, 하늘 높이 치솟은 사이프러스가 있고, 5~6m의 높이로 자라난 직경 5~6cm의 대나무 형태의 갈대숲도 있다.무화과나무는 정원사들이 멋모르고 잘라 버려 가슴이 아프다. 개옷나무 비슷하게 생긴 나무에 무더기로 맺힌 씨들이 바람에 날려 여기 저기 싹이 트는데 자꾸 뽑아내고 잘라내도 몰래 자라 거목이 되어 버리니 골치가 아프다.옆집 마당에는 푸른 잔디밭가에 빨간 장미와 하얀 자작나무를 심어 놓았다. 우리나라에도 요즈음 고속도로가에 식재한 자작나무 숲들이 눈에 뜨이지만 원래 이 나무는 시베리아나 몽골 등 추운 지방에 자라는 나무이다. 불에 너무 잘 타서 요즈음은 정원수로서 기피 품종이 되기도 했지만 추운 타이가 기후대에서는 목재로서나 땔감으로서나 용도가 매우 크고, 또한 사람 몸에 매우 좋다는 차가버섯이 자란다.어떤 집에는 일본인들이 무척 열매를 좋아한다는 비파나무가 심어져 있다. 이 열매는 암치료에도 효능이 있다는데 필자도 두어 개 화분에 심어 커다란 잎사귀를 감상하고 있다.며칠 전 70대 후반의 한 노신사분을 만났는데 이분은 은퇴 후 약용식물에 관심을 쏟고 계신다고 했다. 필자의 안색이 좋지 않다고 천연 비타민과 계피가루를 추천해주기도 했는데 건물 한쪽 정원으로 나를 데려가더니 한 조그만 나무를 가리키며 `겨자씨나무`란다.겨자씨나무는 성서에도 등장하는 나무로서 씨가 아주 작은데 크게 자라서 새들이 깃들곤 한다는 나무이다. 하지만 이를 직접 본 한국인은 드물다고 할 수 있다. 이 나무는 이스라엘 인근에만 있는 것이 아니고 캘리포니아에서도 수없이 찾아 볼 수 있다고 하는데 이를 겨자나무가 아닌 겨자씨나무라고 불러야하는 이유는 겨자씨의 비유 때문이기도 하고 겨자나 와사비의 재료인 채소들과 구분하기 위해서라고 한다.필자가 본 것은 2m 남짓의 작은 나무인데 금강초롱 같은 노란 꽃이 피고 잎은 푸성귀와 비슷했다. 이 잎사귀 즙을 상처난 피부에 바르면 금방 낫는다는데 너무 강해서 먹어서는 안된다고 한다.씨는 겨자씨라는 말 그대로 놀랄 만큼 아주 미세한데 꽃이 진후 조그만 초롱이 생겨 그 속에 수 많은 작은 씨들이 담겨져 있다. 이 노신사가 주는 대로 포자 몇 개를 얻어와 앞뒷뜰에 뿌려 놓았다. 씨가 너무 미세해서 흙을 덮으면 않된다고 한다. 같이 있던 은퇴한 방송국 PD라는 분도 자기도 화분에 심었더니 1년에 2m까지 자라났다는 것이다.이곳에서 싹 트는 것을 보게 되면 그 씨를 한국으로도 가져가 베란다 화분에도 심어볼 참이다. 아마 그 약성에 관해서는 생의학자들이 연구를 하고 있겠지만 한국에도 겨자씨나무가 자랄 수 있는지 얼마나 오래 그리고 크게 자라날 수 있는지 보고 싶고 학생들이 겨자씨에 관한 비유를 직접 느껴보게도 하고 싶다.

2014-01-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