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로가기 버튼
오피니언

베트남 다낭에서 NIBC그룹

▲ 구자문 한동대 교수호치민시티에서 비행기로 1시간 거리의 다낭으로 갔다. 비가 내리는 다낭공항에 내려 제자부부와 함께 이들이 진행 중인 아파트공사장을 둘러보았다. 모델하우스를 보니 55㎡ 넓이에 부엌, 목욕탕, 거실 등이 잘 시설된 멋진 아파트이다. 가격은 저소득층 대상의 1달러·400/㎡이다. 하지만 모델하우스를 보고 누구도 저소득층주거라고 말하지 않는다고 한다. 다낭시장이 깨인 분이라 토지는 무상으로 제공 받았다고 한다. 전체적으로 철근콘크리트의 10층 건물이 6동인데 한동대 졸업생들이 이룬 NIBC가 매니지먼트, 산하회사인 Handong Construction Co.가 공사를 맡고 있고 한동대 졸업생 1명이 프로젝트매니저로 일하고 있다. 30살의 어린나이인데 여러 입찰, 흥정, 그리고 건설과정에 잘 참여하고 있다. 베트남 사람들의 문화와 경제상황이 이들이 잘 활동할 수 있게 해준 것 같다.다낭은 인구 100만의 해변도시인데 오래전부터 30㎞의 이어진 해변이 휴양지로 이름이 높았다. 거리도 호치민시티와는 다르게 넓고 한적해서 휴양도시의 분위기를 풍긴다. 이곳에는 호주를 비롯해 유럽인들이 많이 찾는다고 한다. 한국의 두 항공사가 하루 1~2편씩 왕복할 만큼 한국인승객들도 많다.다낭은 베트남전쟁 당시에도 유명한 휴양지였음을 알고 있다. 1975년 북베트남정부에 의해 사회주의 체제가 공고히 되다가 1990년대 부터는 자본주의적인 요소들이 크게 유입되어, 다시금 국제적인 유원지로 개발되고 있다. 하지만 경제불황의 여파로 지어지다만 호텔이며 대형아파트들이 꽤 있다. NIBC도 다른 기업들이 1달러·1천500/㎡의 가격으로 분양하려다 포기한 건물을 인수 및 완공하여 1달러·1천/㎡ 정도에 분양하려고 하고 있다.이들의 지난 4년여에 걸친 노고는 대단하다고 보아진다. 외국에서, 더구나 경험도 그리 없는 젊은 대학 졸업생들이 이렇게 여러 회사를 세우고, 사업을 기획해 내고, 해외투자를 유치하면서 사업을 성공시켜가고 있다.이들의 나이는 현재 30~35세가 주축을 이룬다. 한국이라면 명함도 내밀지 못할 나이이다. 실제적으로 이들이 한국의 대기업 직원들을 만나게 되면 이들이 너무 젊어 위아래로 훑어보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대부분의 한국인 어른들은 영어도 못하고 베트남어도 못하니 동업하기가 힘들기도 하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이들 젊은이들과 비전을 공유하지 않으니 힘들다는 것이다.이들 NIBC 사장단들과 호텔 레스토랑의 셰프가 특별히 준비한 스테이크, 햄버거 등으로 점심을 들면서 여러 이야기를 나누었다. 이들은 대부분 한동대 출신들로서 외국에서의 어려움을 극복하고 저소득층 주택사업에 힘을 쏟고 있다. 이들은`저가에 낮지 않은 품질`로 승부수를 두고 있고 베트남인들의 신임을 얻고 있다.베트남 사람들은 과거 미군과 함께 한국군이 북베트남군과 싸웠음을 알고 있지만 지금은 한국인들에게 친근함을 보이고 있다. 그 이유는 첫째, 문화적으로 비슷한 면이 많다. 둘째, 한국경제가 발달되고 한국대기업들이 진출해 있어 베트남 발전의 롤 모델이며 실제적인 도움을 주고 있다. 셋째, 베트남여성 4만명 이상이 한국인과 결혼하여 한국에 거주하고 있다. 넷째, 이들이 한국드라마, K-Pop 등 한국문화에 열광하고 있다는 것이다.분명 베트남은 우리 한국의 우방이고 한국 젊은이들의 진출가능지가 될 것이다. 하지만, 베트남인들 머리에는 분명 자기들과 싸웠던 한국군에 대한 원망도 있을 것이며, 한국을 따라잡고자하는 경쟁의식도 없을 수 없음을 인식해야 할 것이다. 또한 우리 젊은이들의 동남아시아, 아프리카 등으로의 해외진출이 성공되기 위해서는 교육의 글로벌화가 중요하고, 젊은이들의 진취성이 요구되며, 정부의 학생 해외인턴십을 위한 지원이 우선적으로 필요하다고 본다.

2014-01-15

포항운하와 문화효소

▲ 구자문 한동대 교수학생들과 단지설계 과제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필자가 강의하는 과목은 아니지만 평소 관심 있는 분야라서 학생들이 상의차 찾아오는 경우가 많다. 주제는 이번에 개통된 `포항운하`인근의 도심개발에 관한 것이다. 포항도심에는 잘 알려진 동빈내항과 전통어시장인 죽도시장이 있지만 낙후된 상가와 주거지역이 밀집된 곳이기도 하다. 이 도심의 낙후에 오염된 동빈내항이 한몫했음도 사실이겠지만 교통 및 정보통신의 발달과 교외지역의 발전이 도심의 낙후를 더욱 가속화 시켰을 것이다. 이처럼 낙후된 도심공간을 재개발하고 재생하는 것이 대부분 도시들의 숙제가 되어 있다.학생들의 대부분은 포항운하 주변을 보행자 위주의 녹화공간으로 그 주변 낙후지역을 상업지역 이외에는 2,3층 정도의 주거단지로 개발할 계획들을 세우고 있었다. 속으로는 이거 되겠나하는 걱정도 크지만 어린 학생들의 참신한 아이디어를 기대하면서 잘 발전시켜 보라고 용기를 북돋아 주었다.포항시는 이 동빈내항 주변을 다양한 문화공간으로 발전시킨다는 계획을 가지고 있고 이어진 포항운하 주변도 호텔, 상가 등과 함께 다양한 테마 및 휴식공간을 계획하고 있다. 또한 그 주변의 낙후된 주거지역은 재정비촉진계획 수립 등을 통해 재개발할 계획을 가지고 있다.도심재개발 및 재생의 필요 및 방법에 대해 지금까지 많은 이론과 사례들이 있어왔다. 하지만 이를 제대로 적용하지 못함은 각 현장들이 제각기 다른 경제, 사회, 역사적인 여건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라고 본다. 하지만 그 이론과 사례들이 무시되어서는 안되고 적용을 위해 노력하여야 함이 우리의 큰 과제이기도 하다.포항운하의 건설을 위해 1천600억원의 자금이 투여되었는데 그중에는 포항시가 시드머니(Seed Money)로 직접 투여한 금액은 154억원이라고 한다. 그 이외에는 국비 322억원, 도비 24억원, 포스코 기부금 300억원, 그리고 LH공사의 800억원 투자가 공사비를 이루었다.이 투여된 금액이 지역경제활성화에 미치는 파급효과도 크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이로 말미암아 찾아오는 관광객과 업그레이드 될 도심지역의 지가이고 그로 말미암은 각종사업의 사업성 향상이다. 이 사업성에 대해서 누구도 정량적인 장담은 힘들 것이지만 포항운하가 정식으로 개통되고 크루즈가 왕래하며 관광객을 맞게 된다면 분명 높아질 확률이 큰 것이다.얼마전 포항시 간부공무원들의 특강강사로 초빙된 분은 `컬처엔지니어링(Cultural Engineering)의 전도사`로 국내에 잘 알려진 분이다. 필자도 귀한 기회라서 참석을 했었는데 그분 강의의 골자는 `너무 정량적인 것, 시설적인 것에만 신경쓰지 말고, 정성적인 것, 그 프로그램에 신경을 쓰자`는 것이다.그 방법으로서 그분은 `문화효소`의 중요성을 이야기 했는데 이는 창조적인 문화를 이룰 수 있는 사람들을 말하는 것이다. 포항시로서는 이러한 효소가 잘 싹 틀 수 있는 바탕을 마련해주는 것이다. 이러한 바탕은 경제, 상업, 문화전반에 모두 필요한 것이지만, 도심재생의 경우에도 뉴욕의 `소호`, 상하이의 `텐쯔팡`, 파리의 `라빌레트 라 그랑드 알`, 서울의 `문래동` 등 눈에 띄는 사례들이 많이 발견된다.또한 지역을 발전시키는 방법은 이미 언급한대로 랜드마크적인 것 빌바오적인 것들을 가져오는 것이다. 이미 포항도심은 포항운하를 완공하고 있다. 필요하다면 이와 결합될 제2, 제3의 랜드마크도 구상되면 좋을 것이다.지방도시라고 하지만 포항과 같이 새로운 것들이 언제나 토론 및 시도되는 다이나믹한 도시는 없는 것 같다. 도심재개발 내지 재생의 성공을 위해서는 역사성, 장소성도 중요하고, 랜드마크적인 시설도 중요하다. 그러나 또 하나 잊어서 않될 것은 창조적인 아이디어들이 싹틀 공간을 마련해 주는 것이다.

2014-01-08

호치민시티와 NIBC그룹

▲ 구자문 한동대 교수탄손넛국제공항에서 7~8분 거리에 위치한 the alcove library hotel에 도착했을 때는 자정에 가까웠다. 어둠속에서도 멋진 정원과 아담한 건물이 눈에 들어온다. 방은 매우 깨끗하고 시설이 잘되어 있다. 이 호텔은 NIBC그룹이 낡은 러브호텔을 인수하여 리모델링한 것인데 모든 방을 새롭게 바꾸고, 특히 로비를 도서관분위기로 꾸며 책장과 책들로 채워 놓으면서 이름도 라이브러리호텔로 바꾸었다. 새로운 컨셉트라서인지 로비에서 웨딩촬영도 많고 뮤직비디오를 찍기도 한다고 한다. 의외로 단골들이 많아져, 가격은 1박에 80달러 정도인데 100% 차고 있다고 한다. 우스갯소리로 `불륜을 꿈꾸며 왔다가 이성적으로 변모됨`이 또 다른 컨셉트라고 한다.이 호텔 5층에 있는 레스토랑은 작지만 분위기가 괜찮다. 이곳의 주인은 한국인 젊은이이다. 물론 이 호텔과 연계 하에 온 것이지만 한국에서 음악을 전공하고 유학을 준비하다가 프랑스요리사 자격증을 획득한 것을 기회로 이곳에 와서 레스토랑을 경영하게 된 것이다. 음식도 맛있고, 자세도 반듯하고 친절하여 잘 운영되어 가고 있는 것 같다. 서양식 레스토랑이지만 필자는 아침메뉴로 베트남 쌀국수 `포`를 시켰다. 물론 빵, 커피, 과일은 따라 나오며 매우 맛이 좋다.이곳은 멋진 건물들이 많지만 길은 좁고 공공교통도 발달되지 못했다. 자동차 가격을 보면 비싼 세금 때문에 한국산 소나타가 5만달러에 이를 정도이니 일반인들은 자동차는 엄두도 못내고 오토바이를 타는 수 밖에 없다.NIBC그룹은 부부를 포함한 18명의 한동대 출신들로 이루어져 있고 NIBC를 모회사로 Handong, Shin Young, NHO, Alcove Hotel 등 몇 개의 회사로 구성되어 있다. 직접고용인은 200명이며 하위 건설사까지 포함하면 1천명 정도의 고용인을 거느린 셈이라고 했다.이들은 `이것이냐 저것이냐 결정의 순간에 대부분의 사람들이 택하지 않는 방법을 택하라`는 스승의 말씀을 다짐하면서, 손해를 보더라도 신의를 택하고 있다고 했다. 이것이 베트남인 및 싱가포르 투자자들의 신임을 얻게 되었다고 했다.베트남의 호치민시티는 몽골의 울란바타르와는 많이 다르다. 우선 인구가 많고 밀집되어 있어서 거리에 생동감이 넘친다. 한동안 정통적인 사회주의 국가였지만 지금은 두 나라 모두 시장경제 도입을 위해 애쓰고 있다.분명한 언급이 힘들긴 하지만, 두 나라의 차이점은 국민성과 경제발전방향에도 있는 것 같다. 몽골인들이 아직 풍부한 지하자원 개발을 통한 수입창출에 크게 의존하고 있음에 반하여 베트남인들은 농업, 건설업, 제조업, 첨단산업 등에 걸친 좀 더 다양한 경제발전을 꾀하고 있는 것 같다.어느 정부든 문제가 없다고 하기 힘들지만 개발도상국 정부들의 권위적이고, 비효율적인 행태와 부정부패가 국가발전에 큰 장애가 되고 있음은 잘 알려져 있다. 이들 두 국가도 예외는 아니라고 보나, 어느 국가가 더 그러한지에 대한 개인적인 견해는 유보하고자 한다.아침 9시부터 NIBC그룹 산하의 Handong Construction Co.와 Shin Young Construction Management Co.의 대규모 저소득 아파트 건설을 위한 시공기념식이 열렸다. 한국에서도 그러하지만 이곳에도 많은 이들이 초빙되었고 음악이 울리고 관련인사들의 긴 인사말들이 있었다. 우리 팀원들도 한자리 차지하고 있으면서 영화 같은 장면들을 지켜보고 있었다.이들 NIBC멤버들의 지난 4년여에 걸친 노력과 성과는 대단하다고 아니할 수 없다. 외국에서, 더구나 경험도 크게 없는 젊은 대학 졸업생들이 이렇게 여러 회사를 세우고, 사업을 기획해 내고, 해외투자를 유치하면서 사업을 성공시켜가고 있다. 필자는 이들의 건투를 빌면서 또 하나의 부탁을 하고 있다. 너무 일찍 샴페인을 터트리지 말라고….

2013-12-18

호치민시티와 NIBC그룹 (1)

▲ 구자문 한동대 교수호치민시티는 인구가 740만으로 베트남에서 가장 큰 도시이며, 1975년 이전 이름은 사이공이다. 100여년 프랑스의 통치하에 있었던 관계로 시가지와 건물들에 프랑스 스타일이 많이 남아 있는 이 도시는 지금도 `동양의 파리`로 불리고 있다. 이른 아침에 거리에 나갔더니 대규모의 오토바이 행렬이 놀라울 지경이다. 대기오염도 꽤 심한 것 같다. 물론 중국이나 몽골 대도시의 극심한 오염과는 다르다고 할 수 있지만 인구도 많고 대중교통이 활성화되지 못한 상황에서 대기오염을 피할 수는 없으리라. 모두들 헬멧을 쓰고 눈 이외에는 얼굴도 가리고 집단으로 질주하는 듯 보인다.건물들은 낡은 경우도 많지만 아름다운 것들이 많다. 가로수도 우리 한국과는 비교가 안될 정도의 거목들이다. 좁은 골목들에도 아름다운 3~4층 주거들이 들어차 있고 각층마다 대형 화초들을 키우고 있다.아파트라기보다는 다세대주택이라고 보아야 할 것 같은데 큰 대문에 열대화초나 넝쿨로 뒤덮인 마당을 찌닌 경우도 흔하다. 아무리 봐도 국민소득 2천달러도 안되는 나라의 도시 같아 보이지 않는다.베트남은 2차대전 이후 분단되었다가 오랜 전쟁 끝에 1975년 북베트남에 의해 통일이 되었다. 공산화된 베트남은 한동안 사회주의국가 건설을 위해 매진하다가 1990년대 초반부터 국가를 개방했고 자본주의적인 요소들을 많이 받아들이고 있다.하지만 아직 사회주의 정부가 요소요소를 지배하고 있어 완벽한 시장경제체제라고 부르기는 힘들다.경제활동차원에서는 비교적 개방적이고 해외투자를 적극 유치하고 있다. 그러나 토지는 국가의 소유이고, 요소요소에 높은 세금이 부과되고 있고 종교단체의 선교활동도 엄격히 금지되고 있다.하지만 베트남에서는 생기가 느껴진다. 한국인에 대한 친절함도 느껴진다. 일본이나 몽골에서 느껴보지 못한 다이나믹함이요 다정함이다. 외국기업의 유치에 적극적이고 이웃의 좀 더 발전된 자유주의국가인 타일랜드 등과 비교해도 좀 더 적극적으로 삼성, 엘지 등 외국기업, 특히 첨단산업을 유치하고 있는 것 같다.우리 한국 젊은이들이 이룩한 NIBC 그룹을 방문했다. 이들은 건설기획 및 재정, 시공, 프로젝트매니지먼트, 호텔 등의 사업을 거느리고 있는 신생기업으로서 한동대 공간환경시스템공학부 졸업생들인 20대 후반부터 30대 중반의 젊은이들이 주축을 이뤄 경영해가는 회사이다.이들은 기존의 건설사들과는 다르게`저소득층을 위한 주택사업`에 힘을 쏟는 기업들로서 정직한 경영과 가난한 이들을 위해 일한다는 정신 하에 ㎡당 분양비용을 350~400달러로 하되 품질은 우수하게 50㎡ 이하의 주택건설에 힘을 쏟고 있다. 다른 베트남 건설사들은 600달러 이상, 한국의 대형건설사들은 1천500달러 이상의 것들을 건설하는 것과는 대조를 이룬다. 이러한 건설단가는 한국이나 같은 개발도상국가인 몽골과 비교해도 엄청나게 낮은 가격이다.이러한 회사가 성공할 수 있었던 이유는 차차 연구해보아야 할 과제이다.구태여 지금 꼽아본다면 첫째, 베트남에는 호치민시티 같은 인구 밀집된 대도시가 존재하고 둘째, 정부에서 공공주택을 직접 짓지는 못해도 빌딩허가과정과 토지획득과정에서 직간접적인 지원을 해오고 있고 셋째, 이들 한국의 젊은이들의 `정직함`, `협상력`, 그리고 `치밀한 기획과 경영`이 빛을 보고 있다는 것이다.정직함과 외국어실력, 그리고 해외지향적인 도전력은 이들이 대학시절부터 끝없이 강조되고 연마되어 온 것이리라.

2013-12-11

영일만항 이름을 바꾸어야 할까?

▲ 구자문 한동대 교수필자가 미국에 살 때 항상 겪는 불편함 중 하나가 이름을 소개하는 것이었다. 한국인들 사이에서야 “구자문입니다”라고 말하면 “아, 자문위원 할 때 자문이시네요”하는 식으로 쉽게 기억이 되었지만, 미국인들에게는 차문 쿠, 샤문 쿠, 카문 쿠 등 읽게 하기도 기억하게 하기도 쉽지 않았다. 하지만 몇 년 지내다 보면 `자-문` 하고 부르는 사람들이 생긴다. 그러나 아주 가깝게 지내는 사람들 경우일 뿐이며 대다수에게는 역시 어려운 이름이며 접근하기 어려운 인상을 줄 뿐이다. 따라서 많은 이들이 한국이름을 싫어해서가 아니라 남들에게 기억나게 하기 위해서라도 미국이름을 만들어 놓는다.`한국사람이 한국이름을 가져야지`, 혹은 `기억 못하는 건 자기들의 문제이지 왜 우리의 문제냐?`라고 질문하는 분들도 있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막상 국제적인 환경에서 처하게 되면 사업상 편리를 위해서든지 친구들과 좀 더 빨리 사귀기 위해서든지 등 여러 이유로 좀 더 부르기 쉽고 기억하기 쉬운 미국식 이름을 가지게 된다.얼마 전 일본 후쿠치야마에 심포지엄차 갔을 때 그곳 대학에 근무하고 있는 한국인 교수로부터 비슷한 말을 들었다. 일본인들은 영일만항(迎日灣港)을 어떻게 읽어야 할지 읽는 법을 가르쳐 줘도 발음자체가 어려워 난감해 한다는 것이다. 이를 영어로 쓰면 Youngilman Port인데 미국인들에게도 읽기 어렵고 기억하기 힘든 것은 마찬가지 일 것이다.포항에는 오래전부터 있어왔던 포항구항이 있다. 이는 보통 동빈부두로 불리며 어항, 시멘트 하역부두, 울릉도 선착장 등 여러 부두가 있다. 또한 포항에는 1970년대 초에 개항된 포항신항과 몇 년전 개항된 컨테이너항인 영일만항이 있다.항만이 많은 것은 좋은데 문제는 사람들의 혼동이다. 이름이 현재와 같이 바뀐지 얼마 되지 않기에 영일만항에 갈 사람이 택시로 `신항가자`고 했다가 포스코 옆의 포항신항으로 가는 경우가 없지 않다고 들었다.이를 막기 위해서라도 포항의 항만 이름들을 혼동없는 형태로 다시 바꾸어야 하지 않을까? 영일만항이 `포항신항(Pohang New Port)`, 포항신항이 `포스코항(POSCO Port)`, 포항구항은 그대로 `포항구항(Pohang Old Port)` 내지 포항항(Pohang Port)이라고 불린다면 큰 혼동이 없을 것 같다. 영일만항을 `포항북항(Pohang North Port)`, 포항신항을 `포항남항(Pohang South Port)`, 포항구항(Pohang Old Port)은 그대로 두던지 `동빈항(Dongbin Port)`이라고 부를 수도 있을 것이다.얼마 전 일본 교토부에 갔을 때 `마이즈루항`의 이름을 `교토항`으로 바꾸려 한다는 소식을 들었다. 오사카나 고오베에 밀려서 서안의 마이즈루항은 침체를 못 면하고 있는데 교토부에서는 이 마이즈루항을 교토부의 중심항만이자 환동해권의 거점항으로 개발한다는 계획하에 이름도 너무 지역적이고 잘 안 알려진 마이즈루 보다는 세계적으로 잘 알려진 교토라는 이름을 사용하고자 한다고 들었다.이름 내지 명칭을 바꾸기가 쉽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어떠한 이름을 가지냐에 따라 장래의 경제사회적인 운명이 크게 달라진다면, 또한 이름 변경으로 인해 혼동으로 인한 손해 및 사고를 크게 줄일 수 있다면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필자는 포항에 20년 가까이 거주하고 있으며 포항인들의 영일만이라는 명칭에 대한 애착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영일만항을 포함한 지역항만의 이름들이 혼동을 주고 있고 발음에 어려움을 주고 있어서 이러한 제안을 하는 것이다.다시 항만의 이름을 바꾸게 되면 포스코는 물론 포항신항만주식회사 등에서도 발생하는 비용이 클 것이다. 하지만 바꾸려면 되도록 빨리 바꾸는 것이 더 큰 비용을 줄이고 더 큰 수익을 창출할 수 있는 길이라고 생각된다.

2013-12-04

사막화 방지 기술

▲ 구자문 한동대 교수아침저녁으로 제법 쌀쌀해졌다. 저녁식사 후 운동 삼아 마을 인근을 산책하려 해도 좀 두꺼운 점퍼로 무장해야 한다. 하지만 차가운 대기가 얼굴에 상쾌함을 주고 있으니, 몇 십분의 산책이 또 다른 즐거움을 주는 것 같다. 요즈음엔 지구온난화의 여파로 급격한 기후변동, 폭우 및 가뭄 등이 자주 보도된다. 얼마전 수많은 사망자와 이재민을 낸 필리핀도 그러하지만 이웃 일본도 예년과 다른 폭풍과 물난리로 어려움을 겪었다. 중국의 경우 땅덩어리가 넓으니 갖가지 사건들이 자주 보도되지만 폭우, 홍수, 지진 등이 매년 보도되는 내용들이다.오늘 언급하고자 하는 사막화의 경우에도 중국이나 몽골을 빼놓을 수 없다. 내몽골로 불리는 중국 북서부도 그러하지만 외몽골로 불리는 몽골공화국은 현재 40%의 국토가 사막화되어 있고 20년 후에는 90%가 사막화 될 것이라고 한다. 따라서 인접한 우리나라도 황사로 인한 건강 및 산업상의 피해가 커질 것이다. 물론 기후변화로 인한 수자원 부족도 큰 문제가 될 수 있다.요즈음 주요 국제기구들에서도 이러한 사막화를 포함한 기후변화에 대응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교토의정서 등 `탄산가스 배출량 규제노력`도 그러하고 1972년 리우회의에서부터 주창된 `지방의제 21`도 그러하다.우리나라에서도 이와 같은 국제적인 노력에 보조를 맞춰 탄산가스 배출량을 줄이고, `지방의제 21`을 통해 각 마을의 환경친화적인 개발을 추진하고 사막화를 막기 위해 나무를 심는 등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국내 모 그룹에서 전국의 대학생 및 대학원생들을 대상으로 모집한 `글로벌 챌린저`라는 공모전에서 필자가 지도한 학생들이 `사막화` 관련 주제로 입상을 해서 이번 여름방학 중 2주일 동안 관련지역과 연구기관들을 돌아보았다. 그리고 그 탐방결과 및 연구성과를 제출하고 발표회도 가졌는데 입상했던 30개 팀 중 1등을 했다고 전해왔다.이 공모전을 주도한 학생은 `도시환경공학`이 주전공이고 `기술경영`이 부전공인데 필자를 도와 개발도상국 연구를 수행하기도 했고 1년 동안 아프리카와 중동지역에서 국제기구 산하 개발기구에서 인턴십을 하기도 했었다. 이번 공모전은 사막화에 대한 문제점 분석과 함께 각 지역 및 마을에서 사막화를 방지하고 수자원을 보전하기 위한 방안을 제시했었다.전세계적으로 해마다 600만ha가 사막화 되고 있다고 한다. 사막화는 지구 온난화 뿐만 아니라 과도한 경작, 산림의 과잉벌채 등으로 인하여 일어나고 있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서 유엔사막화방지협약(UNCCD)이 맺어졌고 각종 회의 및 행사가 개최되고 있으며 우리나라에서도 산림청, 각종 NGO, 그리고 기업들을 중심으로 국내외 녹화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하지만 나무를 심는다하여 사막화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나무만 심다보면 나무뿌리들이 물을 모두 빨아들여 그 지역의 수자원이 더욱 고갈된다는 연구결과도 있다. 따라서 효율적으로 사막화를 방지하기 위해서는 지구온난화를 저지할 다양한 방안 중 하나인 나무심기도 무턱대고 심기보다는 종합적인 수자원분석과 함께 시행되어야 할 것이라는 것이다.이번 한동대 팀은 화학물질을 모래에 투입하여 지하지반을 단단히 하여 수자원 유실을 막도록 하는 방안을 제안하였다. 이는 수림대나 초지를 조성하는데 꼭 필요한 방법이라고 여겨진다.국내의 한 환경단체는 `사막에 10억그루 나무심기` 운동을 전개하고 있다. 초기에는 식목된 나무의 70~80%가 착상에 실패했지만 알카리성 토양에 강한 `나문재` 라는 식물을 식생한 후 5년 만에 5천ha의 내몽골 사막을 초지로 변모시켰다고 한다. 이제는 지구 온난화 방지를 위해서도 사막화 방지를 위해서도 세계 각국들이 힘을 모으고 새로운 기술개발에 힘쓰지 않으면 안된다.

2013-11-27

후쿠치야마 기행

▲ 구자문 한동대 교수아침 일찍 포항을 떠나 김해공항에서 비행기를 타고 오사카 간사이공항에 내리고 거기서 전세낸 승합차를 타고 목적지인 후쿠치야마에 도착하니 점심시간이다. 이곳은 인구 8만의 작은 도시이지만 고대 일본의 수도였던 교토부에 속해 있고 한반도와 동해바다를 사이에 둔 일본 서해안에 위치하고 있다. 후쿠치야마에는 필자의 방문목적지인 세이비대학이 있고 그 옆 도시는 마이즈루이다. 세이비대학은 전교생이 300명 정도인 소규모 대학이지만 오랜 역사를 지닌 사립대학이며 이번에 이 지역 도시들과 포항시가 추진하고 있는 영일만항-마이즈루항의 정기항로개설에 대한 세미나를 개최했다.오사카, 고베 등이 위치한 인접 동해안지역에 비해 후쿠치야마, 마이즈루 등의 서해안 도시들은 크게 발전되지 않은 소도시의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이들 도시들은 이번 여름의 태풍으로 인해 큰 피해를 입었다. 태풍이 한반도에는 미치지 못한 반면 이들 도시들은 예년과 다른 폭풍과 폭우로 강물이 범람하고 주택지와 평야가 물에 잠겼었는데, 아직도 그 피해가 눈에 보인다.지난 20년간 일본경제가 어려움을 겪고 있지만 이 서부지역은 더욱 더 어려웠다고 할 수 있다. 지금 이들 도시들은 한 탈출구로서 한국의 항만을 포함한 환동해권 항만들과의 정기항로 개설을 원하고 있다. 이를 통해 관광객의 증가를 바라고 있고 지역경제 활성화를 바라고 있다.이 지역은 고대로부터 한반도의 문화가 전해오고 사람들이 이주하던 통로로서 중요성을 가진 지역이었다. 오카니시 야스히로 교토부 부지사도 이곳이 한반도로부터의 문화와 기술의 전래 통로로서 중요성을 갖는 지역이고 앞으로도 이 지역들이 중심이 되어 한일교류 및 협력을 증진시키자는 내용의 발표를 하기도 했다.이곳에는 후쿠치야마성이 있다. 이곳의 성주였던 아케치 히데미츠는 도요토미 히데요시에 반대하던 사무라이로서 그가 패하지 않았다면 임진왜란도 일어나지 않았고 한일간의 역사도 달라지지 않았을까라는 질문을 던지는 사람들도 있다.이 후쿠치야마성은 1870년대 명치유신때 사무라이제도가 폐지되며 파괴되었는데 1996년에 새롭게 복원되었다. 현재 건물들은 전통적인 나무구조가 아닌 철근콘크리트구조에 나무를 씌운 형태인데 그 모습이 매우 웅장하다. 둘레에는 도랑이 있고 이를 높다란 다리를 통해 건너면 성으로 올라가는 비탈길이 있다.후쿠치야마성의 축대며 기단은 튼튼하지 않을 수 없어 보이면서도 가까이에서 보면 특이하다고 할 정도로 엉성해 보인다. 큰 돌덩이 사이를 작은 돌멩이로 대충 채워놓은 것도 그렇고, 다른 용도로 쓰이던 돌덩이가 그대로 쓰인 것도 그렇다. 하지만 전반적인 후쿠치야마성의 풍모는 대단하다고 할 만하며, 앞마당에는 일본에서 제일 깊다는 50m 우물도 남아있다.이곳은 일본에서도 온천으로서 유명한 곳이라는데 필자가 머물던 호텔에도 노천온천이 있다. 엄밀하게는 반노천 온천이다. 지붕과 담이 있어 밖에서의 시선을 차단하게 되어있지만 외부의 차가운 기운을 맞으며 따뜻한 온천욕을 즐길 수 있다.이 지역은 눈이 많이 오는 지역이라서 스키장도 유명하다. 저렴한 골프장도 여럿 있다고 한다. 한국에도 이러한 리조트가 많이 있지만 외국의 색다름과 한적함을 느끼고 싶은 사람들이 자주 찾을 수 있을 것 같다.지금까지 이곳은 연결교통의 불편함으로 한국인들이 찾기에 좀 부담스러운 곳이었다. 영일만항-마이즈루항 정기항로가 개설되면 이 지역은 이러한 관광자원을 바탕으로 한국인 관광객들을 유치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이 지역 일본인들도 영일만항을 통해 포항과 인근의 관광지를 찾게 될 것이다.

2013-11-20

화초 싹 틔우기

▲ 구자문 한동대 교수서울에 위치한 부모님댁에 들렀는데 식사 후 내온 단감이 작기도 하고 색깔도 우중충해서 감이 왜 이러냐고 여쭈었더니 집 앞 감나무에서 딴 것이라고 한다. 테라스하우스 스타일의 빌라라서 조그맣게나마 앞뒤마당이 있고 연로하신 어머님께서 아침, 저녁으로 화초 가꾸기에 시간을 보내신다. 단감 몇 조각을 맛보다가 씨 몇 개를 받아 두었다. 포항 집에 가서 베란다 화분에 심어 볼 참이다.필자는 화분 가꾸기를 좋아하는 편인데 좋은 화초들을 사서 가꾸는 스타일이 아니고 산이든 들이든 눈에 뜨이는 방금 싹튼 듯한 작은 것들을 옮겨 심거나 씨앗을 얻어서 싹틔워 내기를 좋아하는 편이다. 이러한 습관은 취미라기 보다는 약간은 센티멘탈한 필자의 성격 탓일 것이고 절약을 핑계로 화초든 뭐든 큰 돈 쓰지 못하는 성격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예를 들어 미국산 야자나무, 아보카도, 아주까리 등은 씨를 직접 심은 것이고 홍콩야자, 홍단풍 등은 작은 것들을 얻어다 키워낸 것이고 떡갈야자, 동양난 등은 꽤 자란 것들을 선물 받아 키우고 있는 중이다. 검정대나무는 이 지역에선 드믄 것인데 한 뿌리 얻어다가 심어 놓았더니 키가 1.5m 넘게 자라났다.하지만 밤나무처럼 씨로 키워 내어 어느 정도 자라다가 죽어버린 것도 있고 대추나 석류처럼 아예 싹트지 않은 것들도 있다. 물론 키위나무처럼 꺾꽃이를 시도하다가 실패한 경우도 있다.40~50cm로 자라난 잎 넓은 야자나무는 캘리포니아 주립대 포모나 캠퍼스에서 아주 작은씨를 주워와 싹틔운 것이다. 지금 80cm 높이로 길게 자란 아보카도나무는 아보카도열매를 먹고 남은 커다란 씨를 물병에 띄워 싹을 틔워내고 화분에 옮기기를 여러 차례 끝에 성공한 것이다.아주까리는 나무가 아닌 1년생 풀이지만 서울 북촌에 살던 한 노신사의 이야기를 읽고 같이 따라 해보려는 참이다. 이 분은 지난 40년 동안 북촌 뒷골목 한 모퉁이에 아주까리를 심어 골목을 푸르게 하고 잎은 따서 이웃과 나물로 무쳐먹고 가지는 잘라 말려두고 등산용 지팡이를 만들고 그 위에 잉크로 글도 쓰고 그림도 그렸으며 이를 짚고 서울 근교 산에 안가본 곳이 없다고 했다.키위는 선친께서 수십년전 일본에서 한그루 얻어다 고향집에 심어 크게 덩굴로 자라난 것인데 가지 몇 개 잘라다가 싹 틔워보려 했으나 실패해서 안타까움이 크다. 함께 가져온 무화과나무도 실패했다. 포항이 그곳보다 남쪽이므로 잘 자라날 것도 같은데 잘 되지 못했다.그 외에도 인도고무나무, 테이블야자, 해피추리, 관음죽, 산세베리아, 덩굴장미, 옹옥선인장, 접란 등이 잘 자라고 있다. 기회가 나면 소나무 분재, 다년생 토마토, 레몬 등도 심어보고 싶다.필자가 살던 로스앤젤레스 집 뒤뜰에는 키가 6~7m에 달하고 직경이 5cm가 넘는 갈대숲이 있다. 대나무 같이 40~50개가 높게 자라났는데 이웃들은 이것이 대나무인지 갈대인지 논쟁을 하는 경우가 많다. 이것은 20여년전에 필자가 앤젤리노 마운틴 언저리에서 조그맣게 자라던 갈대를 옮겨 심은 것인데 토지도 비옥하고 물도 풍부하므로 굵게 자라는 것 같다.과거 선조들은 집터 뒤에 대나무 숲을 조성해놓고 앞뜰에는 감나무, 석류, 그리고 매화를 심고 사시사철 자연을 즐기며 살았다. 하지만 아파트 생활에 길들여진 우리는 베란다에 몇 개 화분이나 가꿀 뿐이다.그러나 작은 공간에서도 생태공간을 꾸밀 수 없는 것은 아니다. 작은 정원 가꾸기 지침서도 서점에 나와 있지만 도심의 작은 공간이나 베란다와 옥상을 생태정원으로 꾸밀 수 있다. 서울 명동의 유네스코회관 옥상정원도 아기자기한 꽃과 나무들이 이색적이다. 로스앤젤레스 `리틀도쿄`에도 건물 사이의 조금만 틈바구니들을 이색적인 정원으로 꾸며 놓은 곳이 많다.

2013-11-13

포항의 가을 정취 속에서

▲ 구자문 한동대 교수가을이 깊어가고 있다. 볼일이 있어 외곽순환도로를 타고 가다 연화재를 넘어오는데 창밖의 풍경이 갈색톤 위주의 가로수와 함께 매우 아름답다. 국민은행사거리 근처에 차를 맡기고 걸어가는데, 시가지의 풍경 또한 정겹게 다가온다. 대도시의 화려한 건물과 쇼 윈도우가 아닌 중소도시의 평범함이지만, 아기자기한 건물들의 모습에서 그리고 소박한 광고판들에서 정겨움이 묻어난다.이 거리는 뉴욕의 `그리니치 빌리지`나 서울 `마포의 한 골목` 같은 느낌을 준다. 이들 거리는 주민들의 삶의 애환을 함께 간직하며 조금씩 변모되어 요즈음의 모습을 이루었다. 하지만 우리는 지난 수 십년간 이러한 가로들을 많이도 허물었는데, 이와 연관된 역사, 문화, 그리고 커뮤니티도 함께 사라져버렸으니 아쉬움이 크다.중앙통으로 발길을 옮기자 포항의 대표적인 디자인으로 알려졌던 `중앙상가 실개천`이 나타난다. 돌과 콘크리트로 조성된 실개천에는 예나 다름없이 맑은 물이 흐르고 있는데, 주변의 목조데크는 많이 낡아있다. 약간의 손만 보아도 예전과 같은 빛을 발할 것인데, 아쉬움이 크다. 원작자의 의견을 물어 아예 돌이나 콘크리트 데크를 만들어 보면 어떨까 싶기도 하다. 역사가 일천한 포항, 공장과 술집만 있던 포항이라지만, 찾아보면 전국적인 명성을 가질만한 장소나 시설들이 꽤 된다. 호미곶은 대표적인 해맞이 명소이고, 포스텍은 국내 최고수준의 연구중심대학이고, 죽도시장은 전국 굴지의 재래시장이다.얼마 전 준공된 영일대 누각은 영일대해수욕장을 빛내면서 한국의 전통누각의 형태를 선보이면서 전국적인 명성을 지닐 만하다. 인근 해변에서 열리고 있는 스틸아트페스티벌에 출품된 30가지 철강조형물들도 포항시가 구매하여 이곳 현장에 영구히 전시될 것이라고 한다.이번에 완공된 포항운하도 빼 놓을 수 없다. 동빈운하와 형산강을 잇는 이 운하는 바닷물과 민물이 합치는 곳이고, 소형크루즈가 관광객을 태우고 왕래하는 곳이면서, 동빈내항의 오염물질들을 정화해줄 첨단 엔지니어링의 결정체이다. 이 포항운하는 서울의 청계천이 그러하듯 포항을 더욱 알리고 관광객들을 끌어 모을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포항도심에는 화려한 영일대해수욕장뿐만 아니라 아직 개발을 기다리는 송도해수욕장이 있고, 좀 더 교외로 가면 칠포해수욕장, 월포해수욕장 등이 유명하다. 이에 더하여 내연산, 그 언저리의 천년고찰인 보경사, 상옥마을, 그리고 경북수목원 등 가볼 곳도 많다.이렇게 알려진 것들 말고도 포항에는 아름다운 곳들, 감상할 만한 시설들이 많다. 우선은 대학캠퍼스들을 들 수 있다. 포스텍의 노벨광장, 학생회관과 인근의 연못, 벚꽃 화려한 국제관 인근 가로수 길. 한동대 입구에서부터 정문까지에 이르는 아름다운 가로수 길, 붉은 벽돌의 현동홀, 푸른 물빛 천마지와 99고지 천마산.그밖에도 포항에는 소소한 스토리 내지 아름다움을 간직한 곳이 많다고 본다. 포항에 오래 살았고 잘 아는 이들만이 알고 있는 추억의 장소도 많을 것이다.필자와 친분있는 향토작가 L씨는 포스코 이전의 동빈내항 언저리를 매우 잘 기억하고 있다. 그만이 아니라 건축가 C씨, 사업가 Y씨도 물닭을 비롯하여 많은 물새들이 숨어있던 너른 갈대 숲을 기억하고 있다. 20년 못 미치는 비교적 거주경력이 짧은 필자의 경우에도 많은 장소들을 정겹게 기억하고 있다. 도서관으로 변모된 구 시청사, 멋쟁이 건축가였던 고인이 된 K씨의 작품인 육거리 인근 골목안의 3층 커피숍 건물, 그 안쪽에 자리 잡은 과거 금강호텔 건물, 포항의 3·1운동 발상지와도 같은 구 제일교회건물...이러한 장소와 시설들이 지역신문에도 소개되고 좀 더 많은 이들이 찾아와 그 정취를 느껴보는 그러한 곳이 되면 좋겠다. 오늘도 필자는 가을햇살을 맞으며, 포항의 소소한 풍치와 이야기들을 즐겨가며 일상을 꾸며가고 있다.

2013-11-06

해외지향적인 노력과 그 결실들

▲ 구자문 한동대 교수절친한 선배 한 분이 은퇴를 하고 미국, 스페인, 베트남, 중국, 북한 등 세계 여러 곳을 여행하는데 그냥 여행이 아니라 건축가 및 도시계획가로서의 경력을 살려 다양한 사업들을 돕고 추진하고 있다. 이익을 얻기 보다는 NGO적인 마음가짐으로 매사에 임하고 있다.이 분을 만난 지 15~16년의 세월이 흘렀고 같은 직장에 몸을 두고 있었지만 무언가 바쁘게 추진함을 인식만 하고 있었을 뿐 자세한 내용을 캐묻지도 않았었다. 하지만 가난한 이들, 불쌍한 이들을 돕겠다는 평소의 목표들이 은퇴한 후에도 지속적으로 실행되고 있음을 알게 되니 새삼 존경스러움이 느껴진다.이 분은 공군시설장교로서 군복무를 마친 후 도미하여 저명한 건축가인 아이엠 페이 밑에서 건축수업을 하고 미국에서 건축가로서 오랜 세월을 보냈었다. 귀국해서는 외진 곳이라 할 수 있는 포항에 직장을 가지고서도 세계 곳곳을 누비던 분이다.그중 눈에 띄는 것은 중국 연변은 물론이고 북한 땅을 여러 차례 방문했던 것이다. 추운 겨울에 최고급 호텔에서도 연료부족으로 너무 추워 잠바입고 이불 둘러쓰고 밤을 지새우던 이야기, 최근엔 가뭄과 홍수로 다 무너진 북한의 산야를 이야기 해 주었다.같은 동네의 후배 한 분도 한러 국경 근처의 러시아에서 수백만평의 땅을 리스해서 농사를 짓는다고 한다. 러시아 하면 우리는 보통 북한을 지원해서 남침을 감행했고 2차대전 중에는 연해주에 거주하던 우리 한국인들을 저 멀고 먼 우즈베키스탄 지역으로 쫓아 보낸 원흉이라고 생각하고 있지만 요즈음의 그들은 과거와 다르다고 할 수 있다.이 후배는 그곳에서 우즈베키스탄 지역에서 요즈음 되돌아오는 가난한 우리 동포 3, 4세인 카레이스키들을 고용해서 농사를 짓고 있으며 이것이 본인의 이익, 국가의 이익일 뿐만 아니라 이들 카레이스키들을 돕는 방안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장차 기업의 규모가 커지면 북한동포들도 활용할 수 있는 방안을 고려하고 있다고 한다.먼저 이야기 했던 선배의 경우에는 이미 노력한 결과들이 나타나고 있다. 이분은 한동안 캄보디아에서 어린제자들과 함께 마을도 고쳐주고, 소규모 초등학교도 지어주고, 대학도 그곳 정부와 합작 설립하는 등 사업을 펼쳤었는데, 그 제자들 중 일부가 베트남에서 제법 큰 건설회사그룹을 운영하고 있다.후에 언급한 후배도 러시아에서의 농업비지니스를 기반으로 우리 한국의 국익신장에 큰 공헌을 하고 있다. 또한 지금 계획하는 대로 환동해권에서의 페리노선 개설, 영일만항의 농업중개지로서의 활성화 등을 통해 포항을 포함한 경북지역의 경제발전에 크게 이바지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보아진다.필자의 경우에도 지난 5~6년 동안 학생들과 일년에 두어 차례씩 몽골 울란바타르를 방문했고, 도시환경 관련 연구를 진행했고 그곳 정부기관들과 정기적인 세미나를 진행했고, 우리 중소기업인들과 함께 건설시장 왜곡을 막고 가난한 이들을 돕기 위한 벽돌공장 건설, 수자원 개발 등 다양한 일들을 시도하고 있었다. 그 구성원 중에는 제자인 몽골인도 있었고 꽤 많은 한국인 제자들이 있었는데 아직 결과를 보여줄 만한 단계에 이르지는 못했다.다른 나라에서 연구를 하고, 세미나도 하고, 그리고 정책조언을 한다는 것이 쉽지 않았다. 또한 우리 기업인들 및 학생들과 사업이나 NGO적인 활동을 추진함이 쉽지 않았다. 다른 문화와 경제여건, 그리고 그들 사회의 관습과 그리고 정부기관의 규제 등이 쉽게 다룰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하지만 우리 학생들이 이러한 과정을 통해서 해외지향적이 되어 중남미, 아프리카 등에서 남다른 커리어를 구축해가고 있으니 지금까지의 사업들이 실패했다고 볼 수 없을 것이고, 제자들에게 기대를 걸어보고 싶다.

2013-10-30

영일만항 페리 운항

▲ 구자문 한동대 교수포항시가 몇 년전 부터 공들이는 것들 중 하나가 영일만항에서 환동해권 주요 항만들 간에 페리 내지 크루즈를 띄우는 것이다. 국제컨테이너항인 영일만항을 지닌 포항으로서는 환동해권 주요 항만들과의 물류 네트워크 개척이 포항을 포함한 대구·경북지역의 다음단계 발전을 위해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있다. 하지만 이 사업이 제대로 실행되지 못하는 것은 항만들 간의 여객이나 운송물량 부족 등의 이유로 투자가가 나서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환동해권은 환황해권에 비해서 대도시가 적고 항만시설이나 관련 인프라가 부족한 편이다. 각 나라별로 살펴보아 환동해권 지역은 다른 지역에 비해 경제산업 발전이 더디고 낙후된 경우가 많다. 하지만 이 지역들은 지하자원, 해양자원, 교통요충지 등에 걸쳐 다양한 가능성을 지니고 있음이 사실이고 근래 들어 각 나라에서도 이 지역의 개발을 위해 예전과 다른 노력들을 기울이고 있다. 특히 지방정부들의 야심찬 활동들이 두드러진다.포항시는 포항-마이즈루-블라디보스톡(혹은 자루비노)을 연결하는 페리 내지 크루즈노선 개설에 관심이 크다.교토부 마이즈루시는 포항 영일만항과의 사이에 정기항로 개설을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그래서 2012년 7~8월 크루즈 퍼시픽 비너스호가 마이즈루 시장을 포함한 400명의 일본인을 태우고 포항을 방문했고 포항에서도 포항시장을 포함한 200명이 마이즈루를 방문했었다. 포항시장은 마이즈루시장 등 교토 북부지역 7개 자치단체장과 한·일 지역 간 교류추진을 위한 공동선언문을 채택했다.포항시의 입장에서는 매우 반가운 일이고 그간의 노고가 일부 결실을 맺는 셈이라고 본다. 하지만 포항시로서도 이 계획의 실행과 지속성을 위해 최대한 협력하지 않으면 안된다. 이 노선을 통해 서로 방문하고 관광하고 다양한 문화스포츠 교류를 통해 방문객들이 늘어나게 하지 않으면 안된다.우선 우리는 일본인들이 우리지역에 관심을 가지고 찾아오도록 다양한 문화관광상품들을 준비해야 할 것이다. 이는 테마파크, 테마거리, 휴양시설, 죽도시장의 활어, 미역, 김 등 수산물, 한우불고기, 한방삼계탕 등 먹거리, 그밖에도 공예품, 명품관 등 많을 것이다.이들을 리무진버스를 이용해 경주, 안동, 대구 등으로 연계할 필요도 크다. 1~2년 후면 포항KTX역이 완성되고 서울과 2시간 이내로 연결되므로 포항을 방문한 일본인 관광객들의 서울행이나 수도권으로 입국한 해외관광객들의 포항방문도 용이해질 것이다.페리로 20시간, 크루즈로 12~13시간 걸리는 마이즈루를 포함한 교토부에는 니조성을 비롯한 역사유적, 수많은 사찰, 온천, 우거진 숲과 원숭이 등 아름답고 재미있는 관광지가 많고 전통있는 학교와 연구기관들도 많다. 당연히 한국인 관광객들의 흥미를 끌 것으로 본다.또한 물류산업 활성화를 위해서 노력함이 중요하다. 여러 정황상 영일만항-마이즈루항-자루비노의 3각 물류네트워크의 운영이 중요할 것 같다. 이미 영일만항이 자동차 수출기지가 되어 있기도 하지만 포항 및 대구·경북의 기업들은 중장기적으로 환동해권 고객들을 위한 상품개발 및 마케팅을 위해 노력해야 하고, 국가와 지자체의 큰 틀에서의 지원도 지속되어야 할 것이다.요즈음 지역 기업인 중에 러시아 자루비노항 인근의 하산지역에서 대량으로 배추 등 채소농사를 지어 한국으로 들여오고 이를 가공하여 국내는 물론 해외로 수출하려는 사례가 있는 것으로 아는데, 이를 계기로 포항이 농산물중개항 및 농산물가공산업의 중심지가 될 수 있도록 노력함도 중요하다고 본다. 냉동 및 냉장창고가 영일만항에 지어진다면 농산물만이 아니라 수산물들도 영일만항을 통해 입하할 수 있고 환동해권에서의 페리 물동량도 크게 증가할 것이라고 본다.

2013-10-23

포항운하 통수의 의미

▲ 구자문 한동대 교수포항운하 공사가 마무리 되며 형산강과 운하 사이를 막고 있던 뚝이 제거되었다. 수문도 다음 달에는 본격적으로 열리게 될 것이다. 포항시민들로서는 오랫동안 고대하던 일이다. 수질오염이 심각한 동빈내항이 이로 인해 차차 정화될 것이며 중장기적으로 도시이미지 향상과 경제파급효과도 크게 나타날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요즈음 생태계(Eco System)라는 단어가 자주 쓰이는데, 이는 보통 산, 들, 하천,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살아가는 물고기와 짐승들을 포함한 동식물들의 살아가는 체계를 표현한 것으로 이해되고 있다. 좀더 엄밀히 해석한다면 이 자연을 배경으로 살아가는 동식물들뿐만 아니라 우리 인간들의 삶의 모습과 체계를 모두 지칭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도시생태학은 영어로 Urban Ecology인데 이는 도시에 모여 사는 인간의 행태에 중점을 둔 학문으로 인간생태학(Human Ecology)이 중심이 되어 있었다. 그러나 근래에는 도시생태학이 인간만이 아닌 모든 동식물들을 포함한 시스템의 작동체계를 연구하는 분야로 이해되고 있다.자연생태계에서는 모든 것들이 조화로워 보인다. 하지만 긴 세월에 걸쳐 다양한 환경변화 속에 각 생명체들의 경쟁, 점령, 계승의 사이클이 계속된다. 하지만 아주 긴 세월 속에서 변화가 일어나기에 평온을 유지한듯 보여지기도 한다.우리의 도시는 우리 인간들이 문명을 이루며 생산과 소비 속에 유지되는 체계이다. 이 도시에서 새로운 사상이 싹트고 새로운 물품들이 생산된다. 하지만 많은 이들이 모여 있기에 자연환경이 변형되고 오염되고 있다.우리의 도시는 지극한 환경오염에 노출되고 우리 인간들은 그 속에서 피로, 짜증, 질병에 시달리고 있다. 어떻게 하면 이렇게 많은 이들이 모여 사는 도시가 좀 더 쾌적해지고 지속가능하게 될 수 있을 것인가?이번 포항시의 포항운하 건설은 오염된 도시생태계를 우리 시민들이 살기 좋은 모습으로 바꾸기 위한 작업이다. 막혀서 오염되고 냄새나던 동빈내항을 자연이 아닌 인간의 힘으로 짧은 시일 내에 바꾸는 작업인 것이다.막혔던 강물이 연결되고 오염된 수질이 정화된다. 이 강물을 통해서 동빈내항과 형산강의 바닷고기와 민물고기가 만나고 공생하게 될 것이다. 형산강과의 연결부분에 갑문이 있지만 홍수기에나 닫혀질 것이기에 평소에는 물고기들의 왕래에 문제가 없을 것으로 본다.이 운하주변은 많은 부분이 녹지대로 조성될 것인데 이는 새와 곤충들이 날아드는 도심의 자연생태계를 이루게 될 것이다. 새로 도입되는 건물들에는 옥상정원이나 건물 표면에 식생이 가능하도록 함도 좋을 것 같다.운하도 좀 더 폭이 넓어지고 녹지대도 좀 더 컸으면 좋겠지만 재정적인 제한 때문에 현재의 크기로서 결정된 것이므로 현 상태에서라도 최선의 노력을 기울여야 함은 당연하다.이러한 유사한 노력들을 서울의 청계천에서 그리고 미국 텍사스의 샌 안토니오에서 발견할 수 있다. 이 사업들은 환경오염 제거만이 아니라 테마적인 시설을 겸비하여 도시이미지가 쇄신되고 많은 관광객들이 찾아오는 관광명소로 발전되었고, 주변 도심지역들이 활성화되는 결과를 보여주고 있다.이 포항운하와 수변유원지의 건설도 삭막했던 포항도심에 `차별화된 매력`을 제공하게 될 것이다. 이는 인간에게만이 아니라 물고기와 나무와 잔디에게도 공생의 기회를 제공하는 사건이다. 이로 인해 포항은 `철의 도시`임에 더하여`환경도시` 또는 `생태도심을 지닌 도시`로 알려지게 될 것이다.하지만 하루아침에 모든 것을 이루어 낼 수는 없다. 이제 방향을 잘 잡았으니 지속적인 추진이 장기적인 성공의 관건이 될 것이다. 현재는 물길을 뚫어낸 것, 그것만으로도 큰 가치가 있다고 본다.

2013-10-16

우리 민족과 흉노 논쟁

▲ 구자문 한동대 교수요즈음 많이 듣는 이야기가 우리 민족, 특히 고대 신라인들과 흉노와의 관계에 관한 것이다. 흉노는 고대 중국의 만리장성 밖에 이합집산하며 살아가던 일부 유목민들을 일컫는다. 필자도 오래전부터 흉노 내지 훈족에 관해 관심이 컸었다. 전공분야와는 아주 미약한 연계가 있을 뿐이지만 필자는 유학시절부터 고대사에 관심이 커서 틈틈이 관련 서적들을 뒤적여 보고 있었다. 원래의 관심은 고대도시에 있었고 그러다 보니 수메르, 그리스로마, 바이킹, 그리고 훈족에 대해서 조금씩 알게 되었다. 그리고 훈족의 뿌리가 동북아시아의 흉노이고 우리 한국인들과도 연계가 될지 모른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필자의 유학시절에 건축사를 가르치던 한 건장한 미국인 교수가 자기의 조상은 헝가리인이며, 전투를 잘하고 축구도 좋아한다고 자랑했었다. 그리고 미국 중북부의 금발과 옅은 눈동자 속에서 자기는 어두운 머리털과 눈동자를 지녀 좀 이상한 기분이 든다며 한국인인 필자를 보고 좀 멋쩍게 웃기도 했었다.이 훈족은 몽골초원에 유목하며 만리장성 너머로 중국계 제국들을 공격하던 흉노의 일파로 알려졌으며, 강성해진 한나라에 밀려 서천하였으나, 이들은 오히려 러시아와 중동초원은 물론 유럽의 대부분을 정복했었다. 그들 중 가장 강력했던 지도자는 `아틸라`로서 5세기 초반부에 걸쳐 유럽의 중기마병단들을 격파시키며 유럽을 큰 두려움에 떨게 했었다.역사적으로 유럽인들은 이 훈족에게 큰 두려움과 함께 콤플렉스를 지니고 있었다. 자존심 높은 유럽인들이 `보지도 듣지도 못했던 종족들`로 인해 죽음의 공포에 떨었었다. `아틸라`가 대제국 수립 후 갑자기 사망하게 되자, 왕위 다툼 끝에 제국은 해체되고 훈족들은 흑해 북부초원으로 되돌아갔고 일부가 프랑스며 헝가리에 남아 동양적인 모습의 서양인들로 남게 되었다고 한다.물론 이렇게 유럽을 침공했던 동양계 유목민들이 이들 훈족만이 아니며, 13세기에 몽골족인 징기스칸과 그 자손들이 유라시아에 걸친 더 큰 제국을 세웠다. 하지만 유럽 깊숙이 진격하고 정복했던 이들은 훈족이며, 몽골족들은 폴란드에서 공격을 정지했고, 그 후에도 중국 본토 경영에 열중했었다.현재의 `몽골로이드`라는 인종적 분류는 몽골인, 한국인, 일본인뿐만 아니라 좀 다른 계통인 중국인들을 포함한 폭 넓은 분류이다. 한국인은 `몽골로이드` 범주에 있지만 몽골족도 중국계도 아니다. 흉노족의 일파인 훈족은 현재의 분류로는 `몽골로이드`라고 해야 할지 백인종인 `코카소이드`라고 해야 할지 잘 모르겠다.몇 년 전 독일ZDF방송이 훈족과 한국의 고대국가인 신라 및 가야를 같은 족속으로 규정했다. 미국 디스커버리TV에서도 훈족과 그 당시 동북아의 패자였던 고구려를 같은 족속으로 규정했다. 이들은 우리 고대 역사서 및 고구려의 무덤벽화에 나타난 말 잘 타고 활 잘 쏘며, 강력한 맥궁을 사용한데서, 그리고 가야인들의 편두, 금속세공기술, 말 안장 및 뒤에 실은 청동솥 등에서 훈족과의 연계를 찾고자 했다.우리 한반도에는 고대로부터 여러 차례의 부족이동이 있었을 것이다. 기원전 수십세기에 걸친 고아시아계의 이동, 예맥족의 이동, 부여고구려계의 이동 등 다양할 수 있겠다. 이중 이색적인 것은 신라가야지역의 무덤 속 부장품 등에 나타난 바와 같이 멀리 유럽으로 떠나간 훈족과의 유사성과 교류의 흔적 내지 이들 일파의 한반도 이동의 흔적이다.한국인은 중국계가 아니다. 한국인은 북방유목민으로서 실크로드를 장악했던 훈족일파를 수용한 신라가야계, 그리고 이웃사촌이었던 부여고구려계가 주축이 되어 한반도를 포함한 동북아에서 수 천년 정체성을 보이며 살아왔다. 중국의 동북공정, 일본의 우경화추세 속에서 우리 한국인의 역사에 대한 더욱 활발한 연구가 필요하다고 본다. 우리 인류역사학자들의 건투를 빈다.

2013-10-02

외국인 학생들과 새마을운동 토론

▲ 구자문 한동대 교수·공간환경시스템공학부한동대에는 외국인 학생들이 많은데 이번 교내 새마을아카데미를 통해 만난 학생들은 대부분국제개발대학원과 Global MBA 과정의 학생들이었다. 이들에게 한국의 새마을운동을 소개하고 새마을운동을 개발도상국에 접목하기 위한 방안에 대해서 토론했다. 이들 외국인 학생들은 가나, 나이제리아, 케냐, 르완다, 이디오피아 등 아프리카, 방글라데시, 네필, 미얀마, 캄보디아, 필리핀, 베트남 등 동남아시아, 그리고 러시아, 중국, 몽골, 우즈베키스탄, 키르키즈스탄 등 동북 내지 서남아시아 출신들이다. 이들 개발도상국들은 가난하다는 것 이외에는 기후도 다르고 역사문화, 정치경제 등 많은 요소들이 다르다. 이들 나라들은 지난 수 십년간 우리 한국이 과거 그랬던 것처럼 국가발전을 위해 노력하고 있지만, 그 결과는 그리 신통치 못하다. 국가적으로 볼 때 평균소득도 늘지 않았고, 늘었다 하더라도 빈부차이가 극심해져 일부 계층들만 잘 살게 된 경우가 많다. 국제적으로도 나라간의 빈부격차가 줄어들지 않고 오히려 늘어나는 추세이다. 이러한 현상에 대해 학자들의 다양한 해석이 있을 수 있지만, 문제는 그 해결을 위한 정책수립이나 협력이 쉽지 않다는 것이다. 이번 아카데미에서 개발도상국의 학생들은 한국의 성공적인 경제개발과 새마을운동을 부러워하고 있고 배우고자 했다. 하지만 시대와 상황이 다른 만큼, 한국의 정책과 실행방안들을 그대로 답습한다기 보다는 새마을정신의 도입이 중요하고, 이를 바탕으로 그들 나름의 농촌과 국가경제 발전전략수립이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있었다.한편, 한국의 경제발전 단계에서의 강력한 정치적 리더쉽의 공헌에 대해서 대부분 불가피성을 인정하고 있었다. 이로 말미암은 부정적인 측면에 대해서 언급하는 이들도 있었지만, 그 리더쉽의 결과에 대해서는 누구나 부러움을 보내고 있었다. 요즈음 이들 나라에 많은 국제기구와 NGO단체들이 빈곤퇴치 등을 위해서 활동하고 있다. 하지만 이들은 이로 인한 폐해에 대해서도 언급하고 있었다. 이들 활동이 협력적으로 이루어지지도 않을뿐더러, 그 필요성이나 효과성면에서 문제가 큰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이번 토론들을 통해서 개발도상국의 문제점 해결을 위한 세계적인 공동노력과 남과 북 협력의 중요성을 공감하게 되었다. 또한 개발도상국에서의 ODA사업이 성공하기 위해서 공여국의 `참여관찰`의 중요성과, 공여국과 수혜국의 `파트너쉽`의 중요성에 대해서 공감하게 되었다.현재 경상북도는 아프리카와 동남아시아에서 다양한 새마을사업을 펼치고 있다. 포항시도 마다가스카르, 중국 등지에서 새마을사업을 펼치고 있으며, 앞으로는 러시아 하산지역에서도 이를 펼칠 예정이라고 한다. 러시아와 중국 및 북한의 접경지역에 있는 연해주 하산지역은 땅이 넓으나 인구가 희박하다. 그곳에는 스탈린에 의해 이차대전 중 우즈베키스탄 지역으로 쫓겨났다가 소련 해체 후 독립된 이들 나라들에 더 이상 살지 못하고 되돌아오는 가난한 `카레이스키`들이 많다고 한다. 이들 한국인 후손들은 연해주에 재정착하여 가난하게 커뮤니티를 이루어 살아가고 있다. 이곳에 우리 기업들이 진출하여 대규모 농업을 시도하고 이익을 창출하되, 가난한 이들을 고용하여 소득을 만들어 줌이 중요하다고 본다. 이들을 포함한 이곳의 가난한 커뮤니티에 새마을운동을 도입함도 중요하고, 환경친화적인 개발 개념을 도입함도 중요하다고 본다.경상북도와 포항시의 `새마을운동 세계화`에 대한 의지는 매우 크며, 그 실행에 있어서도 매우 선도적이다. 아무쪼록 중앙정부와 협력 아래, 한국국제협력단 및 지역의 대학들과도 협력적으로 다양한 새마을사업들을 추진하여, 이 새마을운동이 세계적인 커뮤니티 개발운동으로 평가를 받게 되기를 바란다. 우리의 새마을운동은 현재의 우리가 이를 어떻게 재정립하고, 어떻게 이들 개발도상국 내지 지역들에 도입하느냐에 따라 그 세계적인 인식이 크게 달라질 것이다.

2013-09-25

새마을기념관에서

▲ 구자문 한동대 교수한동대 국제개발대학원에 재학 중인 외국인 학생들과 함께 포항시 북구 기계면 문성리에 있는 새마을기념관을 방문한 것은 지난달 30일이었다. 필자는 자주 오는 곳이지만 가나, 나이제리아, 케냐, 르완다, 방글라데시, 네팔, 미얀마, 필리핀 등 개발도상국 학생들이 대부분이고 미국과 러시아 학생들도 있는 이들은 처음 방문인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이들은 각자 자기나라에서 공무원 내지 공공기관 재직자들로서 한국국제협력단의 후원으로 한동대 석사과정에 유학 온 사람들이었다. 이들 중 일부는 일주일전 한국에 도착하였고 나머지는 1년전 도착한 그룹들이었다.물론 선택된 사람들이기도 하지만 이들은 영어도 잘하고, 토론도 잘하고, 개발정책 등에 관해 나름대로의 견해를 지니고 있다. 물론 수업에서는 강의가 주된 부분을 차지하지만, 필자는 이들과 토론을 통해서 서로 많은 것을 얻을 수 있었다.이들은 한국의 새마을운동에 대해서 알고 있다. 한국의 경제개발과 새마을운동의 성공에 대해서 많은 부러움을 지니고 있고 지난 수 십년간 세계가 변했다 하더라도 그 성공사례는 자기들에게 큰 지침을 준다고들 했다. 그 당시 한국의 새마을운동, 그리고 경제개발을 수립하고 추진했던 강력한 한국정부에 대한 부러움도 표명했었다. 물론 그 공과에 대한 논쟁도 장시간 토론의 대상이 되었었다.이날은 오랜만에 더위가 가시고 약간의 빗방울이 날리던 아침이었다. 대절된 리무진버스가 새마을기념관에 도착하자 `새마을노래`가 흘러 나왔고 미리 연락을 해두기도 했지만 기념관 관장님이 계단 끝까지 마중을 나왔다.우리는 우선 2층에 위치한 소극장에서 새마을 관련의 단편홍보물을 15분간 감상하고 1층과 2층에 마련된 전시실에서 관장님의 설명을 통역을 통해 들을 수 있었다. 학생들은 그 사이 사이 사진도 찍고 벽에 마련된 방명록에 메시지도 남기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었다.이날 이곳에는 이 지역 시의원께서도 자리하고 있었는데 필자는 구면이기도 하지만 반갑게 인사했고 기념관 뒤편에 완성되어가는 한옥을 함께 구경하기도 했다. 이 전통 한옥은 박정희 대통령이 1971년 이곳을 방문했을 때 배경으로 보여지는 건물이었는데 포항시에서 9억원을 들여 재정비하고 있는 것으로 거의 완성이 되었다.이 건물은 새마을기념관 바로 뒤에 위치해서 기념관 안에서도 유리벽을 통해 내려다보이기에 궁금증을 더해주던 아름다운 한옥이었는데 직접 들어가 보니 사랑방으로부터 안방에 이르기까지 전통적인 모습으로 복원되어 있었다.아궁이가 있는 부엌이 있고 그 옆에 곡식저장고가 있었다. 쇠솥이 걸린 조그만 목욕탕이 있고 그 옆에 복원된 실제 우물이 있었다. 마당은 아직 완성이 덜되었지만 전통적인 정원으로 꾸며질 것이라고 한다. 대문은 이미 크게 나무로 짜서 세워 놓았는데 아직은 비틀림을 없애려 말리는 중이라 열어 볼 수는 없었다.필자가 이 주택을 감상하며 감탄했던 것은 이방 저방을 직접 돌아보며 이모조모를 훑어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어느 전통마을에서도 이러한 건물의 안에까지 들어가 감상하게 하지는 않는다. 친절히 안내해주던 시위원께서는 필자를 보고 10월말쯤 복원공사가 완성이 되면 1박2일 머물 수도 있을 거라는 귀띔을 해주었다.떠날 때 쯤 비가 크게 쏟아져서 모두가 기념관 밖 필로티 부분에 서서 비를 피하며 기념촬영을 하고 있었다. 주변에는 멋진 현대식 주택이 몇 채 들어서 있어서 근대화된 농촌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하지만 뒤편에는 전통적인 모습의 넓은 전통한옥이 우리를 반기고 있다. 배웅을 받으며 이곳을 떠나면서도 필자를 포함한 일행 30명 모두가 즐거운 표정이었다.

2013-09-11

비행기 이착륙 시의 바깥 풍경

▲ 구자문 한동대 교수얼마 전 샌프란시스코에 우리나라 항공사의 보잉777기 한 대가 착륙 중 사고가 났으나 불행 중 다행히 대부분의 승객들이 무사할 수 있었다. 하지만 사고의 원인을 두고 아직도 조사가 진행 중이며 쉽게 밝혀지지 않는 듯하다. 이 문명의 이기 때문에 우리의 삶이 얼마나 많이 변해왔는가? 일반적으로 교통·통신혁명이 우리 지구를 바꾸었다고 하는데 교통기관은 자동차, 철도, 비행기, 선박 다양할 수 있지만 이 지구를 지구촌이라 불릴 수 있게 한 것은 역시 항공기라고 할 수 있겠다.필자의 경우도 1980년대 초반부터 비행기를 타기 시작했지만 이때는 이미 초음속의 대형 여객기들이 개발되어 서울에서 로스앤젤레스를 10시간에 주파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 10시간도 지루하기 짝이 없어서 죽 잠도 자보고 영화를 몇 편씩 보기도하며 시간을 보낸다.어쩌다 낮시간에는 창밖에 의외의 풍경이 펼쳐지기도 한다. 북극해의 무수히 떠있는 빙하들이 보이기도하고, 눈 덮인 후지산이 보이기도 하고 캘리포니아의 해변들이 내려다 보이기도 한다.그 동안 김포-시카고, 김포-뉴욕, 인천-로스앤젤리스, 인천-마닐라, 인천-프랑크푸르트, 인천-울란바타르, 김해-상하이, 호놀룰루-동경 등 많은 노선을 다녀 보았지만, 이착륙 시에는 잠시 잠시 불안한 마음이 든다. 하지만 약간의 불안 가운데서도 즐거움을 주는 것은 창밖의 풍경이다. 한밤이 아니라면 착륙시 지상의 풍경들이 한눈에 들어온다.인천공항의 경우는 섬 지역이라서 서해바다의 아름다움이 돋보이고, 로스앤젤레스공항에서는 끝없이 펼쳐진 시가지가 이색적이다. 요즈음 자주 가는 몽골의 울란바타르의 경우, 여름에는 초록의 초원이 끝없이 펼쳐지고, 겨울에는 눈 덮인 평야가 끝없이 펼쳐진다.포항의 경우 비행기 이륙 시 철강공단과 형산강이 내려다 보인다. 우편으로는 넓은 영일만, 저 우편 북쪽으로는 넓다란 포항시가지가 내려다보인다. 53만의 도시가 이렇게 크고 아름다움을 다시금 느끼게 되는 순간이다. 그리고는 경상북도의 산악지대 위를 떠가게 된다.착륙시에는 남행하던 비행기가 경주평야 쯤에서 서서히 좌편으로 180도 방향을 바꾼다. 오른쪽에는 푸르른 동해바다와 해변마을의 모습들이 보인다. 비행기가 더욱 착륙지점을 행해 나갈 때는 인덕산 정상을 거쳐 동해면의 작은 마을들을 지나 활주로에 착륙하게 된다.몇 년전 미국이 콜로라도 덴버를 방문한 적이 있는데, 공항에 접근할 때 평야에 그려진 거대한 기하학적인 도형들을 보고 놀랐었다. 이는 분명 덴버시에서 남아메리카의 고대로부터 전해온 거대한 불가사이한 기하학적인 도형들을 본따 만든 것으로 보아진다. 차이점은 남아메리카의 것들은 지면에 조성된 것이라면, 콜로라도의 것은 끝없는 평원의 목초지 내지 밀밭을 깎아 만든 것이라는 것이다.우리나라의 경우에도 비행노선이나 이착륙 지점 즈음하여 이러한 도형이나 구조물들을 배치해도 좋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물론 비용 상의 문제가 발생할 것이나, 무엇을 어떻게 설치하느냐에 따라 브랜드효과가 클 것이라고 보아진다.포항의 경우에는 첨단산업이나 RD를 상징하는 물리학 공식들이나 고차원적인 이해를 구하는 도형이 보여 질 수도 있겠다. 도시화지역이 넓으므로 공공건물이나 대규모 구조물들이 무언가 상징적인 의미를 전달해 줄 수 있도록 할 수도 있을 것이다.장차 울릉도에 비행장이 건설되면 포항-울릉도 노선이 가장 큰 수익을 창조하게 될 것이다. 또한 포항시가 계획하고 있는 울릉도행 위그선 운행이 활성화되면 이러한 도형들이 좀 더 효과를 발휘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

2013-09-04

대학을 지역발전의 원동력으로

얼마 전 경북매일신문에 `변화의 견인차로 포스텍·한동대를 움직여라`라는 기사가 났었다. 이 기사에서 기자는 포스텍의 수준 높은 RD를 지역에서 제대로 활용하지 못함에 대한 아쉬움을 피력하면서 포스텍총장을 포함한 미국방문단이 피츠버그 등 유명 산업도시에서 벤치마킹한 `지역발전과 대학의 역할`, `지역과 대학의 협력` 등에 관해 지면을 할애했다.많은 이들이 이 기사에 크게 동감하고 있고 진작부터 그 필요성이 주장되어 왔다고 생각된다. 하지만 그 실현을 위한 구체적이고 지속적인 노력은 크게 기울이지 못했음도 사실이다. 어느 정도 시도는 했더라도 정부정책 내지 다른 지자체들과의 형평성 논란 속에 제대로 추진되지 못했다고 본다. 정부나 주민들 자체가 대학의 가치와 문화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을 수도 있다.지금도 가끔은 지역에서 듣는 말이 있다. “포스텍 및 한동대가 기숙사에 학생들을 수용하니 지역경제 파급효과가 적고 포항거리에 대학문화가 형성되지 않는다” 때로는 “지역학생들이 손쉽게 입학할 수 있는 대학이 세워졌어야 했다”라는 소리가 들리기도 한다. 이러한 주장에 대해 필자도 크게 반대의사를 표명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속으로는 대학의 역할이 그런 것만이 아닌데 하며 좀 아쉬워하고는 있었다.교육은`백년대계`로 추진되어야 한다. 대학생들이 거리로 나와 청소도 하고 지역민들 사이에 집을 얻어 살면 손에 닿는 이익이야 크다고 할 수 있겠지만 대학의 역할이 이러한 것들에 초점이 주어져서는 안된다. 현재와 같은 글로벌 경쟁시대에 세계적인 연구중심대학을 가진다는 것은 누구나 부러워할 축복이다. 내 자식이 그 학교에 들어가고 못 들어가고를 떠나서 많은 인재들이 이곳에 모여들고, 연구업적을 내고, 지역사회 및 국가발전에 이바지 하는 것, 이것이 우리의 바람이어야 한다.한동대에 몸담고 있는 사람으로서, 필자는 지난번 신문기사에서도 표제에만 다뤄졌을 뿐 본문에서 제대로 다루지 못한 한동대에 대해서 좀 더 설명해 보고자 한다.한동대에는 4천명의 학부생과 200여명의 대학원생이 재학하고 있다. 이들은 전국각지에서 지원해 오고 아프리카, 동남아시아 등에서도 온다. 국제어문, 경영경제, 언론, IT, 기계, 건설도시, 생명, 복지, 산업디자인 등 10개 학부와 일반대학원 및 특수대학원들이 있다. 국제법률대학원은 국내 유일의 미국변호사 배출기관이고, 국제개발대학원은 한국국제협력단과 함께 개발도상국 공무원들에게 석사과정을 제공하고 있다. 초중고 과정인 한동국제학교도 성공적으로 운영 중이다.한동대는 지금까지 7천700명의 졸업생을 배출했는데 이들은 삼성, LG 등 기업에 취직하고 동남아시아나 아프리카에 NGO멤버로 가고 서울대, KAIST, 하버드 등 국내외 유수 대학원으로 진학하고 있다. 하지만 포항지역에 남아 있는 경우는 많지 않은데 이는 우리 지역사회와 대학이 풀어가야 할 과제이기도 하다.졸업생들이 정착할 터전 마련을 위해서는 포스코와 포스텍 관련의 벤처기업, 영일만항 및 배후단지의 국제비지니스, 동빈내항을 중심으로한 관광산업, 한동대를 중심으로 추진되고 있는 국제기구 유치 및 국제협력센터의 활성화가 중요하다. 물론 그 바탕에는 지역과 대학의 긴밀한 협력과 기업사랑운동이 자리 잡고 있어야 한다.`포스텍과 한동대를 움직여라`는 말은 지역사회가 이 성격이 다른 두 대학과 RD, 경제문화활동, 정책연구, 혹은 국제적인 활동에 있어서 좀 더 연계협력하자는 것이다. 이는 일방적으로 주는 것이 아닌 서로 주고받고 아끼는 관계 속에 발전을 도모하자는 것이다. 그리하여 우리가 꿈꾸는 글로벌 첨단과학비즈니스도시를 이뤄내자는 것이다. 이러한 것들이 지난 미국방문단이 추천하는 바일 것이다.

2013-08-28

2013년 여름의 울란바타르 2

▲ 구자문 한동대 교수새벽 5시. 창밖이 밝아오고 있다. 아직 도심의 불빛이 빛나고 자동차 소음이 간간이 이어질뿐 사방은 조용하다. 창밖의 미루나무 닮은 자작나무가 크게 자라서 무성한 잎들이 3층 건물 전면을 뒤덮고 있다. 이곳에 오면 보통은 새소리에 잠이 깨고는 했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새소리가 들리지 않아 아쉽다. 새들이 다른 곳으로 집단 이주를 했다는 말인가? 기후며 주변여건이 새들에게 맞지 않게 되었다는 말인가?자이승전망대 인근의 산들도 너무 많이 바뀌었다. 필자가 울란바타르에 처음 왔었던 2006년쯤을 기억해 보고 있다. 그 당시 이곳은 아름다운 자연이었다. 하지만 거대한 고층아파트들이 들어서면서 전혀 다른 풍경을 연출하고 있다.더구나 이번에는 자이승전망대 계단 중턱쯤에 거대한 식당 및 휴게소 건물이 지어져 전망을 가로 막는다. 계단 중턱쯤에서도 아름다운 톨강과 울란바타르 시가지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아래쪽에서도 꽤 넓은 지역에서 자이승전망대의 모습이 가려져 보이지 않는다. 이제 이곳에서는 동식물 생태계도 크게 위협을 받고 있을 것이다. 여우며 너구리도 찾아오지 않을 것이며 수많은 식물군들도 사라지고 있을 것이다.몽골의 대표적인 불교사원인 간단사원으로 갔다. 간단은 Gandantegchinlen이라는 티벳말로서 `극락으로 가는 길` 이라는 뜻이다. 아침이라 사람들은 많지 않지만 큰 마당 가득히 비둘기들이 먹이를 쪼고 있다. 후루루 날아오르면 그 깃털과 먼지가 대단한데, 사람들은 이 가운데 먹이를 주며 행복을 빌고 있었다. 1년 동안에 변한 것은 크게 없어 보인다. 전통적인 사찰 옆 대지에 커다란 규모의 사찰 비슷한 형태의 콘크리트 건물이 높이 솟아 거의 완공단계에 와 있다는 것 이외에는.전통적인 건물에 콘크리트 건물, 아무리 형태가 비슷하다고 하더라도 잘 어울려 보이지는 않는다. 전통적인 사원 건물들은 비둘기 배설물로 덮여 있지만 세심한 장식들과 함께 역사를 보여주고 있는데 이 새로운 건물은 어떻게 나타내어지고 오래된 것들과 어떻게 조화를 이룰 것인지 자못 궁금해지기 까지 한다.비가 내린다. 울란바타르 북부의 오래된 아파트촌으로 가서 몇몇 주민들과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수십 년 전 지어진 낡고 허술한 6~7층짜리 아파트촌이다. 아파트 가격에 대해서는 대답을 회피하는 경향이 컸지만, 어렵게 알아낸 바에 의하면 가장 싸다고 할 수 있는 60㎡ 크기의 가격이 5만~8만 달러, 방 4개인 좀 큰 것은 월세만도 80만~100만원이라는데 놀랐다.교외로 넓게 펼쳐진 게르지역도 방문했고, 주민들과 몇 차례 인터뷰도 시도 했었다. 나름대로 좋은 연구자료를 얻을 수 있었으나 술이 취해 해롱거리거나 시비조로 나오는 사람들도 있었다.울란바타르는 1년전과도 다르게 많은 곳이 파헤쳐져 있고, 많은 건물들이 세워지고 있다. 분명 빌딩코드를 잘 따르지도 않고, 터무니없는 위치와 모양으로 집을 짓고 있다. 자재가격이나 건축비용도 매우 높다. 2009년 시멘트 가격이 1부대 당 5천500Tg이었는데 2013년 현재 9천Tg이다(1원=1.3Tg). 건설비용은 1㎡당 200만Tg 정도이다.현재 고소득층을 위한 아파트들이 여기저기 세워지고 있다. 질적인 면에서 한국의 대형평수 아파트들과 큰 차이가 없어 보인다. 가격은 2억~3억원대, 그이상도 많다고 한다. 하지만 중저소득 가구들은 비싼 가격에 그리고 낮은 품질에 고통을 받고 있다.울란바타르는 도시인구 급증으로 그리고 애초부터 인프라가 부족했고 국가재정이 열약했으므로 오늘날의 심각한 도시환경을 초래했을 것이다. 2000년대 이후 국제적인 광물 값의 폭등으로 국가경제가 갑작스럽게 좋아지고는 있으나 경제산업기반 마련이며 인프라 구축이 아직은 쉽지 않다.

2013-08-21

2013년 여름의 울란바타르 1

▲ 구자문 한동대 교수몽골의 여름은 아름답고 평화롭다. 끝없이 펼쳐지는 연녹색 넓은 초원에 소떼 양떼들이 풀을 뜯고 있다. 더구나 요즈음 몽골의 날씨는 예년과 다르게 낮은 편이다. 찌는 듯한 7~8월 더위와 싸우던 한국인들이라면 정말 살만한 곳에 왔다고 탄성을 지를 만큼 날씨가 쾌적하다. 포항의 기온이 낮 35도, 밤 25도라면, 울란바타르는 낮 25도, 밤에는 서늘함이 느껴지는 15도이다. 하지만 대도시인 울란바타르는 교통체증이 심하다. 도로망과 공공교통이 부족한 반면 각자 갖가지 종류의 차들을 몰고 나오기 때문이다. 신호등도 많지 않지만 이를 따르는 이들도 적고, 차든 사람이든 틈만 나면 비집고 들어오기에 무질서하고 매우 위험해 보인다.자원부국인 몽골은 세계에서 가장 높은 경제성장을 보이고 있는 나라이다. 울란바타르는 곳곳이 파헤쳐져 있고 새로운 건물들이 속속 세워지고 있다. 하지만 화려하게 보이는 건물들 너머로 예전과 다를 바 없는 넓게 확산된 빈민촌인 게르지역의 모습이 보인다.대부분의 물가는 한국을 뺨친다. 국민소득 4천달러 정도의 나라에서 먹고 입는 것이 국민소득 2만달러가 넘는 한국보다 비싸다면 도대체 이들 국민들은 어떻게 살고 있다는 것인가? 몇 가지 저렴한 것들, 소 한 마리가 20만원이고 양 한마리가 6~7만원이므로 서민들은 천막 게르에서 소고기와 양고기만을 먹으며 기본적인 삶만을 유지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자원개발로 인해 발생하는 많은 이익들은 상위 0.5 ~ 1% 그룹들이 독차지하고 있다.여름이면 많은 한국인들이 찾아온다. 젊은이들로 구성된 선교단체, 구호단체, 좀 나이든 이들로 구성된 관광단체 등. 편도 3시간도 채 않되는 거리에 왕복항공료가 85만원에 이른다. 작년에는 75만원, 재작년에는 65만원 등 독점체제에 인상폭도 크다. 이유는 알 수 없지만 몽골정부에서 한몽노선의 경우 몽골항공과 대한항공 이외 항공사의 취항을 금하고 있다.이번에 통역하는 학생은 몽골국립대 4학년인 `라라 오`이다. O로 시작되는 성은 너무 길어서 성을 보통 `O.`. 이렇게 한 자로만 표시하는 경우가 많다.몽골족은 과거에는 인구도 많고 융성했다고 생각되나 청나라 지배하에 독립운동을 벌이던 몽골인들에 대한 대규모 학살과 다양한 민족말살정책으로 인해 인구가 대폭 줄어 들 수 밖에 없었다. 또한 청나라는 몽골 귀족들이 라마승이 될 수 밖에 없게 하였고, 사찰 앞에 유곽을 차려 이들이 성병에 걸리고 자식을 못 낳게 하고, 성을 없애 가문을 알지 못하게 했다고 한다.그 후 인구가 100만도 안되게 줄어든 가운데 1921년에 러시아의 도움으로 몽골은 독립을 하게 되었고 그후 인구증가 정책을 펼쳐서 지금은 270만이 되었다. 성도 부활시켰다. 몽골은 보통 외몽골로 불리고, 중국 영토안의 몽골인 거주지역을 내몽골이라고 부른다. 그곳 몽골인의 수는 400만으로 몽골의 인구보다 많다. 몽골도 민족이 분단된 국가라고 할 수 있다.울란바타르에 자주 오지만 필자는 아직도 도시의 풍경이며 사람들의 행동에 익숙하지는 못하다. 한국인과 가장 가깝다고 할 수 있는 민족이지만 의외로 언어가 크게 다르고, 말과 행동이 더욱 터프하고 와일드해 보인다.웃는 모습 보다는 험상궂게 쳐다보는 경우가 많다. 조용히 묻거나 요청한다기보다는 `어이` 크게 소리친다. 하지만 사귀어보면 정이 많고 기분파이기도 한 우리 한국인들과 비슷한 정서들을 가지고 있기도 하다.인근의 한국식당에 가서 식사를 했다. 처음에는 건물 안이 너무 덥고 종업원들이 한국말을 못 알아들어서 그냥 가려고 하는데 목포가 고향이라는 주인여자분이 나타나 우리를 붙든다. 몽골에서는 돼지고기가 비싼 편이라 그동안 소고기 내지 양고기를 주문했었는데, 물 좋고 맛 좋다는 권고에 돼지목살을 1인당 200g씩 잘 구워 먹었다.

2013-08-14

무더위 속에서 미래를 꿈꾸며

▲ 구자문 한동대 교수때 아닌 전력수급상의 문제 때문에 한국사회가 무더위와 싸우고 있다. 공공기관의 실내온도를 섭씨 28도로 맞춰놓던지 아예 가동을 멈춘 경우도 많기 때문에 실내외를 막론하고 후텁지근한 한국의 더위를 겪어 보지 못한 사람들은 그 고통을 이해하기 힘들 것이다. 7월 몇 주를 캘리포니아에 머물던 필자의 경우 낮에는 섭씨 30~35도의 더위에 노출되지만 습기가 없어서 그늘에서는 견딜만했고 해가 지면 놀랄 만큼 서늘한 바람이 불어 왔다.다시 한국에 되돌아오니 더위가 굉장하다. 집안에서도 사무실에서도 참아보려 노력은 하지만 잠시나마 에어컨의 힘을 빌려야 살 것 같다.수십년전 만해도 우리 한국인들은 에어컨 아닌 선풍기로, 냉장고 아닌 아이스박스로 여름을 보내야 했었다. 하지만 경제산업이 발달하여 다양한 편의시설들과 함께 전력소모량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다. 자동차 운전 중에도 에어컨은 필수이니 휘발유 사용량도 덩달아 올라간다. 생활습관이란 무서운 것이라서 그 더운 여름을 재래식 기기로 견디어 내던 기성세대인 필자로서도 에어컨 없는 여름이 너무나 견디기 힘든 것이다.국가적으로 볼 때 문제가 되는 것은 전력의 블랙아웃이다. 이로 인해 모든 게 멈출 수 있고 그 혼란과 손해는 상상을 초월 할 것이다. 이를 우리 국민들이 절약정신으로 막아야 할 것이라고 보지만 전력생산을 늘려야 함도 당연한 이치이다.이와 별도로 우리 사회가 전 지구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것은`지속가능한 사회조성 운동`이다. 이는 환경친화적인 개발이나 자원절약적인 삶과도 연계되며 우리의 집, 건물, 도시가 자연환경을 최대로 활용하되 전기 내지 석유에너지의 사용을 최대한 억제하며 효율적으로 활용하도록 노력하는 것이다. 또한 장기적으로는 대량생산 대량소비의 사회가 아닌 새로운 패러다임의 생활습관을 가진 사회로 변모시키는 것이다. 물론 이러한 사회가 가능할 것인가에 대한 이견이 있기도 하고 가능하더라도 오랜 세월이 필요할 것이다.사실 대량생산 대량소비의 현대생활의 장점은 생산가격의 하락과 시민들의 구매력 증가이고, 이로 인해 모든 계층들의 삶의 질이 한층 개선되었던 것이다. 자원절약적인 삶은 지구자원보전이라는 측면에서는 바람직하지만, 지금 전력사용 제한에서 보듯이 시민 및 국가산업으로서도 어려움이 매우 큰 것이다.전력생산을 증가시키려면 우리의 현재 상황에서는 원자력이나 화력발전소의 건설이 불가피하다. 하지만 사회적인 여론수렴 문제와 함께 그 해결이 쉽지 않다. 아직 대체에너지원들은 가격이나 대량생산 면에서 그 대체제 역할을 감당할 수 없다. 우리 정부를 포함한 사회가 넘어서야할 벽이 여기에 있는 것이다.필자가 지금 여행 중인 곳은 몽골의 울란바타르이다. 이곳도 매우 덥지만 습기가 적어 견딜만하다. 이 나라는 국토가 넓고 자원도 풍부하지만 인구도 적고 경제산업도 발달되지 못하였고 역사적으로 주변국가로 부터 영토적인 위협을 받고 있다. 우리 한국이라면 이러한 대지와 자연을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 몽골은 이러한 우리나라가 가질 수 없는 것들을 지닌 부러움을 주는 나라이다.우리 한국은 좁은 국토와 제한된 자원을 가진 나라이지만 양질의 인적자원과 다사다난함 가운데서도 잘 살아 보겠다는 사회적인 강한 의지로서 현재의 발전을 이루었다. 현대사회에서 지리적인 영토 늘리기는 불가능에 가깝지만 있는 영토를 효율적으로 이용하기 위한 전국토의 스마트화는 최대한 추진되어야 할 것으로 본다. 화교들만큼은 아니지만 전 세계에 펼쳐져 있는 한민족 네트워크의 활용도 우리가 추진해야 할 큰 과제라고 보아진다. 아무쪼록 이 여름이 전력의 블랙아웃 없이 잘 지나가기를 바라며 세계적인 경제불황 가운데서도 우리 경제와 산업이 창조적 선도적으로 불황타개의 모습을 보여주기를 기대한다.

2013-08-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