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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인간의 죄책감과 의무, 그리고 존엄성 그려

전경린(51). 삶의 진실을 꿰뚫어보는 통찰력 가득한 문장과 여성의 내면 심리를 정확히 짚어내는 섬세하고 감각적인 묘사로 그 이름만으로 독자들을 바짝 긴장시키는 그가 2년 만에 새 장편소설을 출간했다.`최소한의 사랑`(웅진지식하우스)은 결핍이 가득한 시대에 던지는 전경린의 혜안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특히 이전에는 볼 수 없었던 미스터리한 설정, 환상적인 장치로 작가 전경린에게 새로운 전환점이 되는 소설이다.`최소한의 사랑`은 어린 시절 잃어버렸던, 아니 사실은 일부러 버렸던, 배다른 여동생 유란을 찾아 나선 희수의 여정으로부터 시작된다. 수십 년 동안 모든 가족들이 없는 사람 취급했던 유란. 죽어가는 새엄마의 부탁으로 그녀의 행방을 찾아 나선 희수는 그녀가 북쪽 끝, 접경지대의 한 도시에 있음을 알고 찾아간다. 그러나 이미 유란은 자신이 지내던 집과 주변 사람들과의 관계의 흔적만 남긴 채 감쪽같이 사라졌다. 희수는 유란의 방에서 지내며, 유란을 기다리며, 유란이라는 타인의 삶을 흉내 내기 시작하는데….이 소설은 우리가 잃어버린 것들이 모여 있는 `유실물 보관소`와 같다. 읽다 보면 마치 내가 그 이상한 도시에 짐을 풀고 하루하루를 살고 있는 것 같은 체험 속에, 그동안 잃어버렸다는 것조차 느끼지 못했던 소중한 것들이 생각난다. 이 작품은 묻는다. 나에게는 꼭 찾아야 하는 소중한 것이 있는지? 나에게 가장 필요한 최소한 것은 무엇인지? 독특한 통찰력으로 이 시대의 아픔을 보듬는, 전경린만이 들려 줄 수 있는 물음이다. “그 애를 찾아야 해, 최소한, 우린 그래야 해.”이 말을 꺼내는 데 그렇게 오래 걸린 것이다.사랑 이야기를 지독하게 써 본 사람만이 쓸 수 있는 사랑 아닌 사랑 이야기가 있다. 온갖 형태의 사랑을 통해 사랑의 본질에 대해 끊임없이 탐구한 전경린. 그는 우리에게 사랑이라는 단어의 쓰임이 얼마나 풍부하고 다양하며, 얼마나 깊은지를 제대로 이해하게 해준 작가다.제목에 사랑이라는 말을 포함하고 있지만 `최소한의 사랑`은 사랑 이야기가 아니다. 궁극적으로는 인간의 죄책감과 의무, 그리고 존엄성에 대한 이야기이다. 이 소설은 자신이 해야 할 최소한의 일을 아는 한 여자의 고군분투를 통해 인간답게 산다는 것에 대한 결코 가볍지 않은 질문을 던진다. 그동안 남녀 간의 감정 묘사를 주로 다룬다는 작가에 대한 선입견을 가볍게 넘어 다양한 인간관계가 가지고 있는 수많은 빛깔들을 섬세하게 보여준다.무엇보다 삶의 아픔에 대한 독특한 통찰과 어디선가 갑자기 불쑥 튀어나와 사람들의 마음을 아프게 꼬집고 심하게 흔드는 문장의 힘은 더 강해졌다.“단추를 달면 돌아선 마음도 되돌릴 수 있어. 내 바느질은 특히 효험이 좋지.”주인공 희수에게는 다른 사람을 만나고 있는 남편이 있다. 집으로 돌아온 남편의 셔츠에서는 매번 여지없이 단추가 하나씩 떨어져있다. 하나뿐인 열여섯 살 딸은 고모가 있는 호주로 떠나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궁리만 한다. 떨어지는 단추처럼 인생의 한복판에서 허우적거리면서도, 꿰매어 달 용기도, 그렇다고 잘라버리지도 못하고 있는 희수에게, 거부할 수 없는 미션 하나가 주어진다. 요양원에서 죽을 날만을 기다리고 있는 새엄마가 희수의 팔을 절실하게 붙잡고 말한 것이다. “유란이 좀 찾아다오.”수십 년 동안 없는 사람 취급해 온 배다른 여동생 유란. 사실 희수는 어린 시절 오빠와 함께 일곱 살 밖에 안 된 유란을 길가에 버렸었다. 다시 찾기는 했으나 그 날 이후로 유란은 다시는 집으로, 자기 엄마의 품으로 돌아오지 못했다.`최소한의 사랑`에 나오는 희수의 여정은 마치 떨어진 단추를 꿰매는 과정과 같다.삶에서 정작 중요한 것들은 어쩌면 단추 같은 것들이다. 제대로 달려 있을 때는 작고 사소하지만, 떨어지면 그만큼 옷이 남루할 수 없고, 그 사이로 차가운 바람이 사정없이 들어오기도 한다. 누구나 느껴보았으리라. 한 번 떨어진 단추를 찾아 단단히 제대로 꿰매 다는 일이 생각처럼 쉽지 않다는 것을.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도, 인생에서 소중한 것들도 사실은 이런 것임을 이 작품은 예리하게 포착해낸다./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12-07-27

의심과 불안이 도사리는 숲 이야기

2011년 동인문학상, 2010년 오늘의 젊은예술가상, 2009년 이효석문학상, 2007년 한국일보문학상 수상으로 빛나는 한국문학의 중추, 작가 편혜영이 자신의 다섯번째 책이자 두번째 장편소설인 `서쪽 숲에 갔다`(문학과지성사)를 펴냈다. 이 소설은 숲에 들어간 사람들의 이야기이다.이야기는 그들이 전혀 짐작할 수 없을 만큼 숲이 복잡하고 빠져나오려고 하면 할수록 막막한 곳임을 점차 깨달아가면서 전개된다.숨 가쁘게 책장이 넘어가는 동안 독자들은 작가의 그 어떤 전작들보다 개성 강한 인물들과 그들이 벌이는 치열한 심리전에 매료될 것이고, 결국 `복잡하고 막막한 곳은 숲뿐이 아니라는 걸, 의심과 불안이 잠식하는 한 우리가 사는 곳은 그게 어디이든 애당초 다 그렇다`는 삶의 진실과 맞닥뜨릴 것이다.전작 `저녁의 구애`로 도시 문명 속에 길들여진 현대인의 불안과 고독, 황폐한 내면을 꿰뚫으면서 편리하고 안온한 일상이 끝모를 공포로 탈바꿈해가는 순간을 집요하게 파고들었던 작가 편혜영이다.“군더더기 없는 플로베르적 절제로 최대의 소설적 경제를 이끌어냈다”는 찬사와 함께 그해 동인문학상 수상의 영광을 안았던 편혜영이 이번에 발표한 신작 장편 `서쪽 숲에 갔다`의 무대는 서울에서 400여km, 차로 달려 네 시간 거리쯤에 위치한 숲이다. 이번 이야기는 이 숲에 들어간 사람들의 이야기이다.`서쪽 숲에 갔다`는 실종된 형 이경인을 찾아 외딴 마을을 찾은 변호사 이하인이 불친절하기 짝이 없는 마을 사람들을 상대로 형의 행적을 추적하다 의문의 죽음을 맞는 것으로 시작한다.마을의 모든 일을 관리하고 또 관여하는 듯한 진 선생과 은퇴한 벌목꾼들로 마을 상점가에서 가게를 운영하고 있는 이안남, 최창기, 한성수 모두가 거대한 숲을 둘러싼 범죄를 은닉한 공모자일지도 모른다는 의구심만을 낳은 채로 1부가 닫힌다./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12-07-20

박근혜의 대항마 안철수·문재인 해부

2012년 한국사회는 `18대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일대 변화의 기로에 서 있다. 후퇴하는 한국 정치와 경제의 악순환 고리를 끊어내고 진정한 민주주의 체제로 도약하느냐 하는 순간에 직면해 있는 것이다. 이 변화의 주체는 위정자들이 아니라 국민이다. 개개인 스스로 관심을 기울이고 파악하고 선택해야 한다.현재 18대 대선에 출마하게 될 인물들의 윤곽은 거의 드러났고 안철수 교수의 선택만이 초미의 관심을 모으고 있다. 과연 어떤 인물이 진흙에 빠진 한국 사회의 수레바퀴를 꺼내어 한국 사회를 양지로 안내할 것인가.`안철수냐 문재인이냐`(예옥출판)는 여러 후보들 중에서 안철수와 문재인을 주목하고 있다. 박근혜의 대항마로서 가장 많은 국민적 관심을 받고 있는 안철수와 문재인을 전격 해부하고자 하는 것이다. 안철수와 문재인은 `위로와 공감의 정치`그리고 `보편적 복지와 정의로운 사회`를 지향한다는 점에서 국민의 큰 관심을 얻고 있다.그런 한편 `한국 사회가 어디로 가야 하는가` 하는 개혁의 방향과 프로그램에는 차이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국민의 입장에서 이 두 인물의 국가 운영의 총체적인 역량에 대한 엄밀한 검증이 필요하다.이 책은 한국 사회가 나아갈 길을 생각한다는 대 주제 아래 안철수와 문재인이라는 인물에 대한 꼼꼼한 평가를 원하는 독자들을 위해 다각적인 비교 분석을 펼치고 있다.이 기획에 참여한 필자는 가계 분야에서 활동하는 7명의 오피니언 리더로서 고성국, 조정환, 황상민, 비케이 안, 박현수, 홍성식, 김영경씨이다. 방민호 서울대 교수가 엮었다. 전체 5장으로 구성돼 있으며, 1장에서는 안철수와 문재인의 출생부터 성장 과정을 거쳐 오늘날의 위치를 점검하고, 2장에서는 486과 청년세대가 보는 두 인물의 면면을, 3장에서는 지도자로서 누가 더 적합한 인물인지에 관한 비판적인 분석을, 4장에서는 세계의 정치적 흐름을 통해서 보는 한국 정치의 현황을 제시하고 있다.또한 5장에서는 안철수와 문재인의 가장 최근의 강연 및 콘서트 전문을 소개하면서, 그들이 현장에서 국민들과 어떻게 소통하고 어떤 이야기를 들려주었는지 그 생생한 현장의 모습을 담아내었다.한편 최근 대선출마를 공식선언하면서 야권 후보의 다크호스로 떠오른 김두관에 관한 이력과 발언을 마련하였으며, 진중권·최영미(시인)·박원순·우석훈·김제동의 견해를 듣는 코너도 마련했다./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12-07-20

“책 잘 읽는 사람이 삶도 풍요롭게 살아”

장르를 가리지 않는 방대한 독서와 생생하고 감각적인 글쓰기로 매번 신선한 감동을 선사했던 감각의 독서가 정혜윤의 `삶을 바꾸는 책 읽기(민음사)`가 출간됐다. 이 책은 우리가 흔히 던지는 독서에 대한 여덟 가지 질문으로 시작한다. “먹고살기도 바쁜데 언제 책을 읽나요?”, “책 읽는 능력이 없는데 어떡하나요?”, “삶이 불안한데도 책을 읽어야 하나요?”, “책은 써먹을 데가 없는 거 같아요. 책이 쓸모가 있나요?” 등.정혜윤은 독서 강연을 하며 숱하게 들어 왔던 이 여덟 가지 질문에 대해 답하기 위해 이 책을 썼다.이 질문들은 모두 누구나 원하는 `다른 삶`에 대한 답으로 이어지는 중요한 질문들이기 때문이다.이 책은 지독한 독서가로 이름을 떨치는 저자가 그동안 책을 읽고 서평을 쓰며 느꼈던 모든 것이다.저자는 그동안 읽어 온 수많은 책을 통해 삶의 현장에서 인터뷰를 하며 만난 `거리의 스승들`을 통해 질문에 답하며 그녀만의 독서론, 독서법, 그리고 인생론을 펼친다.늘 연재를 통해 먼저 독자를 만나고 후에 책으로 묶어 내는 방식이 익숙했던 저자가 처음으로 연재 없이 책을 출간해 독자들에게 처음 공개되는 글이기도 하다. 누구에게나 삶을 바꿔 보고 싶은 열망이 있다. 그리고 누구나 그만큼 현재 삶에서 불안을 느끼고 어딘가 의지하고 싶어 하며 도움을 받고 싶어 한다.저자는 앞서 말한 책에 대한 여덟 가지 질문이 단순히 `독서의 기술`에 한정된 것이 아니며 그 자체가 `삶의 기술`에 대한 질문이라고 말한다.가령 가장 흔하게 던지는 “먹고살기도 바쁜데 언제 책을 읽나요?”라는 질문은 우리가 단지 생존하고 연명하기 위해서만 한정된 하루의 시간을 보내지 않고 그 일부를 나에게 의미 있는 시간으로 보내려면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하는가라는 질문과 다르지 않은 것이다.정혜윤은 이에 대해 `자율성의 시간`이라는 개념을 `나를 키우는 시간`이라는 이름으로 바꿔 답한다. 우리가 하루 중 일부를 누가 시켜서가 아니라 순전히 자신의 의지와 욕망으로 기쁨에 몰두해 보내면, `그 시간이 아무리 짧더라도` 내 영혼을 조금씩 성장시키고 결국 삶의 나머지 시간까지 다른 의미로 바꿀 수 있다는 것이다.중요한 것은 `시간의 양`이 아니라 우리가 시간에 부여하는 `의미`이기 때문이다.누구나 쉽게 할 수 있는 말 같지만 정혜윤은 이 차이가 물리적 시간을 어떻게 지배하는지를 스탕달의 `적과 흑`, 베른하르트의 `야우레크` 등의 책과 실제로 인터뷰를 한 농부 할머니의 이야기를 통해 감동적으로 풀어 놓는다. 이런 식으로 저자는 질문 하나하나에 답하며 `삶을 바꾸는 독서의 기술`, 곧 `창조적 삶의 기술`을 말한다.“책 읽는 능력이 없는데 어떡하나요?”, “삶이 불안한데도 책을 읽어야 하나요?” 등의 질문들도 모두 마찬가지다.모두 삶의 문제로 바꿀 수 있다. 이 질문들에는 “사는 능력이 없는데 어떡하나요?”, “불안한데도 계속 살아가야 하나요?” 등의 질문이 숨어 있다.책 읽기에 대한 이 모든 질문은 결국 지금과 다른 삶에 대한 열망에서 나왔기 때문이다.저자는 말한다. 이 모든 질문의 답이 우리 삶에 있다고. 책을 잘(풍요롭게) 읽는 사람이 삶도 잘(풍요롭게) 살 수 있다고.이 책에서 가장 중요하게 꼽는 독서법 중 하나는 책에서 문자보다 삶을 먼저 읽는 것이다.혹자는 (대개 성공을 위한, 또는 리더가 되기 위한) 책 읽기에서 독해력이나 어휘력을 더 중요시하고 그것을 훈련하거나 공부하기를 요구하지만 정혜윤의 `삶을 바꾸는 책 읽기`에서 가장 중요하게 여겨지는 독서 능력은 공감하고 타인을 돌아보고 세상과 자신을 볼 줄 아는 능력이다.저자는 또한 책에서 삶을 읽어 내는 것만큼 삶에서 이야기를 읽어 내는 것도 중요하다고 말한다.정혜윤은 오랫동안 책을 읽고 서평을 쓰며 처음엔 책에서 삶을 발견하고 감탄했지만 후에는 오히려 삶의 현장에서 (책에서 봤거나 책보다 놀라운) 이야기를 발견하고 놀라곤 했다고 고백한다. 독서의 기술이 삶의 기술이 되는 것뿐만 아니라, 삶의 기술이 독서의 기술이 되는 순간을 목격한 것이다./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12-07-20

설핏 잠든 것 같은데 그곳은 시 공간이었네

김선재의 첫 시집 `얼룩의 탄생`(문학과 지성사)이 출간됐다. 2007년`현대문학`신인추천 시 부문에 당선돼시단에 나온 김선재는 앞서 소설로도 등단해 첫 소설집 `그녀가 보인다`로 탄탄한 서사와 파격적 이미지로 주목을 받기도 했다. 김선재의 이번 시집은 설핏 잠드는 순간의 경험처럼, 시가 만들어낸 시공간 속으로 독자들을 홀린 듯 잠겨들게 한다. 여름날 더위에 지쳐 빠져든 한낮의 오수처럼, 김선재는 시 속에서 선명한 풍경 대신 미지의 장소를 끊임없이 펼쳐내며, 꿈속에서 잊었던 슬픔과 담담하게 대면한다. 불평 없이, 처연하지 않게, 원래 삶이란, 사랑이란, 그러한 것이라는 듯.“지금은 오래된 얼룩에게 용서를 구할 시간모든 얼룩이 평등해지는 시간얼룩을 덮은 얼룩이 서로에게 기대는 시간저녁의 새들이 물고 온 종이에 그려진 종이 혼자 우는 시간하루를 지나온 숲은 서늘한 입김으로 어제보다 조금 더 늙어늙어서 기쁜 시간으로시간의 끝으로 달려간 어느 날,슬프지 않았다고 말할 수 있는 시간으로이 별의 모든 사잇길이 걸어갑니다”-`저녁 숲의 고백`부분얼룩은 본바탕에 의도하지 않게 생긴 다른 빛깔의 자국이다. 얼룩이 드러나는 것은 현재지만, 실은 현재의 사태가 아닌 과거로부터의 흔적인 것이다. 살아오면서 생긴 과거의 상처들이 기억 속에 자흔처럼 남아 그것들이 서로 덮이고 뭉쳐져 현재 속에 새로운 양태로 돋아나듯이 얼룩은 현재에도 과거에도 속하지 않은 고유한 시간성을 가지며 언제로부터의 얼룩인가를 떠나 평등해진다.“통증을 용서해요부분이면서 어느덧 전체가 된 나를,알지는 못하지만 그렇다고 모르는 사이도 아닌 사이,날을 세운 날은 아니지만 나면서 당신이고,당신이지만 나인시간을 견뎌요(….)통증을 용서해요 나를 잊어요”-`가시를 위하여` 부분사랑과 이별의 전 과정은 꿈처럼 모든 것이 모호하고, 상처를 내는 주체와 상처받는 객체가 구분될 수 없다. 혀와 바늘과 미각과 온도가 지배하는 그 통증의 세계 속에서 감각의 주체는 서로 뒤섞여버리고, 온전한 전체의 몸이 없는 것들은 “피 흘리지 않고 아”프며 “찾는 순간 서로를 지울” 수밖에 없다. 시간을 견뎌서 잊을 수 있길 기다릴뿐./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12-07-13

6·25전쟁 한복판 지나는 점득이네 가족

권정생사진 소년소설 `점득이네`(1990)의 개정판이 나왔다. `점득이네`(창비)는 해방직후부터 6·25 전쟁 시기에 이르는 혼란과 그로 인해 고통받는 사람들, 특히 아이들의 이야기를 점득이네의 가족사를 따라가며 그린 작품이다. 아이들이 목격한 전쟁을 사실적으로 기록함으로써 겨레의 비극을 전하는 한편, 절망스러운 시절을 서로 의지하며 견뎌낸 사람들의 체험을 들려주어 묵직한 감동을 선사한다. `몽실 언니``초가집이 있던 마을`과 함께 권정생의 6·25 소년소설 3부작 중 한 편으로 일컬어지기도 하는 책. 2012년 개정판에는 판화가 이철수의 신작 목판화가 실렸다.아동문학평론가 원종찬은 `점득이네`가 “한국 현대사의 가장 민감한 대목을 피가 돌고 가슴이 뜨거운 생생한 인물과 더불어 그려 나갔다”고 평하면서,`몽실 언니``초가집이 있던 마을`과 함께 이 작품을 `권정생 6·25 소년소설 3부작`으로 꼽으며 주목했다. 이데올로기라는 아동문학의 금기를 깨트렸을 뿐 아니라, 전쟁이라는 민족적 재앙을 통과하면서 이 땅의 아이들이 어떻게 살아남았나 하는 점을 생생하게 보여 준다는 점에서 아동문학에 대한 일반인의 인식을 뿌리째 흔들어 놓은 작품이라는 것이다.`점득이네`는 해방직후 만주에서 고향으로 돌아온 점득이네 식구들이 전쟁의 와중에 겪는 혼란과 갈등을 그린 작품이다. 이야기가 진행되는 동안 점득이와 누나 점례뿐 아니라 그들이 만나는 사람들은 역시 가족을 잃거나 다치고 이념대립에 휘말리는 등, 저마다의 비극을 겪으며 전쟁의 한복판을 지난다. 작가는 이들이 겪는 일을 과장이나 수식 없이 그려 간다. 순식간에 한 마을이 “커다란 초상집”이 되는 폭격 현장을 묘사하고 아이들이 목격한 전쟁을 사실적으로 그림으로써, 평범한 사람들의 삶의 터전까지 짓밟은 전쟁의 본질을 보여 주는 것이다. 또한 이 책에 나오는 아이들이 겪는 고난은 고스란히 우리 겨레가 겪은 고난을 상징한다. 해방 후 우리 민족에게 닥친 대립과 전쟁, 분단의 혼란이 평범한 사람들의 삶을 어떻게 바꾸었는지 곡진하게 그려져, 권정생이 `점득이네`를 통해 전쟁을 겪은 사람들의 한, 곧 겨레의 한을 달래고자 했다는 것을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다. /윤희정기자

2012-07-13

삶으로부터 떠나는 가장 먼 여행이란?

영미권에서 `천재 작가`로 불리는 인도 출신의 소설가 로힌턴 미스트리가 한국 독자들에게 선보이는 두 번째 장편 `그토록 먼 여행`(아시아). 1991년에 첫 출간 된 이 소설은 출간된 해에 저자가 거주하는 캐나다에서 캐나다 총독상을, 이듬해에 연영방 작가상을 수상하게 하는 영예를 안겼다. 인도 봄베이에 사는 한 가족에게 어느 날 갑자기 사라진 친구로부터 정체불명의 소포가 배달된다. 그 소포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미스터리한 사건들을 풀어가며 흥미진진하게 이야기가 전개되는데….주인공은 저자와 같은 인도 파르시(페르시아 계통의 조로아스터교도) 가족의 가장이다.`그토록 먼 여행`은 한 가족의 이야기인 동시에 아버지와 어머니의 이야기다. 세상의 부조리에 눈을 뜬 큰아들, 이성에 눈을 뜬 작은아들, 그리고 병에 걸린 막내딸을 지키기 위해 기적과 불행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는 부모의 이야기다. 로힌턴 미스트리는 톨스토이와 타고르를 떠올리게 하는 언어, 구조, 디테일로 세심하게 글을 쓴다. 그의 가장 큰 장점은 감상적이지 않지만 부드럽게 모든 갈망과 불완전함을 담은 인간의 마음을 묘사하는 데 있다. 샌프란시스코 크로니클 미스트리는 2009년 `적절한 균형(A Fine Balance)`으로 우리나라에 처음 소개됐다. 손홍규, 김별아 등 소설가들이 극찬한 이 소설로 첫 선을 보이며 알려졌지만, 영미권에서는 이미 거장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작가로 손꼽힌다. 그의 첫 장편이지만 우리나라에서는 두 번째 소개되는 `그토록 먼 여행`은 인도의 현실과 역사, 인도인들의 희노애락을 그리면서도 인도 이야기로 그치지 않고, 아시아의 이야기로, 다시 오늘날 한국의 이야기로, 당대를 살아가는 우리네 삶의 이야기로 이어진다. 이 소설의 제목은 엘리엇의 시에서 유래한다.그러나 주인공 구스타드 노블이 병원에서 죽어 가는 옛 친구인 빌리모리아 소령을 면회하기 위해 델리로 여행을 다녀오는 것 외에는 `먼 여행`을 떠나는 사람은 없다. 하지만 그들은 각자의 먼 여행을 떠난다. 명문 학교 입학시험에 합격하고도 예술가의 꿈을 이루기 위해 가출한 소랍, 집안끼리 사이가 좋지 않아 부모가 반대하는 또래 여자 아이를 좋아하는 다리우스, 병에 걸린 딸 로샨, 가정의 행복을 위해 점점 잔인한 주술에 끌려 들어가는 어머니 딜나바즈. (중략) 이처럼 가정의 모든 짐을 짊어진 채 괴로워하는 아버지 구스타드 노블.이 다섯 일가족을 둘러싼 인물들 역시 먼 여행을 떠난다. 그들은 모두 자신의 삶으로 여행을 떠났다. 그들이 원했거나 원하지 않았거나 그들은 살아 있기에 여행을 떠난 것이며 곧 삶이 `먼 여행`이다. 사람이 사람에게서 멀어지는 여행이야말로 가장 먼 여행인 셈이다./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12-07-13

정밀한 계산·치밀한 검증으로 미지세계 펼쳐

올해로 등단 20년을 맞은 시인 함기석의 신작 시집 `오렌지 기하학`(문학동네)이 출간됐다. 전작 `뽈랑공원`이후 4년 만에 나온 이번 시집은 따로 부가 나뉘지 않은 총 67편의 시가 엮였다.한국 현대시의 최전선에서 수학적 개념을 바탕으로 다양한 언어적 실험을 감행하는 함기석의 시는 독자들에게 그리 친절한 편이 되진 못한다. 하지만 그 시세계에 발을 담그면 우리가 발을 딛고 선 이 우주가 전혀 다른 차원으로 다가올 것이다.문자와 의미, 존재와 무한, 말의 한계와 가능성, 그 소멸의 과정을 온전히 담아내고자 진지하고도 고통스런 성찰을 전개해온 시인 함기석은 이번 시집에서도 정밀한 계산과 치밀한 검증을 바탕으로 미지의 세계를 펼쳐놓는다.무한을 사유하고, 거기서 무에 이르는 길을 쟁취해내는 데 바쳐지는 시. 그것은 시집 전반에서 복잡한 수학적 개념들을 연동시키고 여기에 온갖 언어 실험을 포개놓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글과 사유, 시 창작의 과정을 수학과 결부시켜 제반의 물음을 확장시켜나가는 일련의 작업은 그러나 “피로 물든 백지와 함께 나를 찾아온다”(`오렌지 기하학`). 불가사의한 인간의 운명이나 우주와 시간과 같은 개념을 수학적 사유를 빌려 시의 중심으로 끌어오는 시인의 작업은 왜 인식의 고통을 수반할 수밖에 없는 모험인가./윤희정기자

2012-07-06

지역 교수 출간 `도서 4권` 문화부 `우수학술도서` 선정

지역 교수들이 출간한 도서들이 `2012 문화체육관광부 우수학술도서`에 선정돼 눈길을 끈다. 문화체육관광부는 최근 우수 학술출판 활동 고취 및 지식문화 산업의 핵심기반산업으로 출판 산업을 육성하기 위해 2012년도 우수학술도서를 선정·발표했다.영남대 산림자원학과 이헌호·이도형·강미희 교수가 공저한 `숲의 세계`와 이장우 명예교수 외 2명이 역주한 `우리나라 선비들의 中國 시 이야기`(Ⅰ)(Ⅱ)(Ⅲ)과 대구가톨릭대 김동소 명예교수(한국어문학부)가 저술한 `만주어 마태오 복음 연구`와 유은경 교수(일어일문학과)가 쓴 `소설 번역 이렇게 하자` 등이 우수학술도서로 선정됐다. `숲의 세계`는 숲이 갖는 기능과 특성 등 다양한 주제를 각 장르별로 구분해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구성했다. 뿐만 아니라 최근 관심을 끌고 있는 치유의 숲, 휴양, 등산, 수목장, 생태관광 등의 내용들도 다뤄 숲과 자연생태계에 대한 관심과 흥미를 충족시킨다`우리나라 선비들의 中國 시 이야기`(Ⅰ)(Ⅱ)(Ⅲ)은 `우리나라의 선비들이 한문으로 된 중국 시의 내용을 얼마나 깊이 알고 있었으며, 어떤 생각으로 작품을 대했을까`라는 궁금증에서 출발해 중국의 광건행 교수가 한국시화 중에서 중국관련 자료를 가려 뽑아 펴낸 것을 역자들이 다시 중국 원시를 찾아 상세한 주석을 붙였다.고려의 `파한집`에서부터 근세 정재륜의 `한거잡록`까지 총 34편이 실려 있는데 한국시화에 언급된 중국시만 모아 일관성 있게 편집한 최초의 시도로 평가된다. `만주어 마태오 복음 연구`는 루이 드 푸와로 신부의 만주어 성경을 연구한 책이다. 만주어 성경 가운데 마태오 복음을 로마자로 표기하고 그 아래 한국어 역주를 달았다. 이와 함께 발간된 `만주어 마태오 복음 연구-자료편`에는 만주어로 된 성경 자료와 함께 만주어 마태오 성경에 나온 모든 어휘들의 색인이 수록돼 있다.`소설 번역 이렇게 하자`는 원문의 감동을 생생하게 전하는 번역 기술을 담고 있다. 올바른 문맥 파악의 중요성, 정확한 우리말 표현, 사전의 올바른 사용법, 역사적·문화적 맥락 고려, 음식·의복 ·가옥 등에 대한 번역, 삽화와 번역 내용의 문제 등 구체적인 번역 노하우가 실려 있다.경산/심한식기자 shs1127@kbmaeil.com

2012-07-06

포항문인협회 `문학만` 발간한흑구 작품 재조명 `눈길`

▲ 문학만 편집인 이대환 작가항공촬영한 영일만 전경사진 이미지를 표지에 지속적으로 실어 문학지의 정체성을 일깨우고 한국문학의 대하(大河)에 합류한다는, 포항지역에 기반을 둔 `문학만`이 야심찬 기획으로 해를 거듭할수록 빛을 발하고 있다. `시, 소설, 동화, 수필, 1· 2·3회 포항소재 문학작품 현상공모 수필 부문 수상작, 신간을 찾아서`가 수록된 포항문인협회 2012년 상반기 통권 37호 `문학만`에서는 `특집, 초대 에세이, 기획 에세이, 비평의 시선`이 특히 눈에 띈다.특집에는 “단 한 편의 친일문장도 남기지 않은 영광된 작가” 한흑구의 작품이 재조명됐다. 민충환 문학 연구자가 줄기차게 발굴해낸 한흑구(1909~1979, 평양 출생, 1948년 39세 때 포항으로 이주)의 작품(`한흑구 문학선집`· `한흑구 문학선집 Ⅱ`)이 `새로 찾은 흑구 한세광의 작품`이라는 제목으로 `문학만`에 수록된 것. 이로써 시 41편, 소설 16편, 평론 10편, 수필 31편 등은 한흑구 개인사를 넘어 한국문학의 귀중한 자산이 됐다.작가 장폴 사르트르(1905~1980, 프랑스 파리)의 `누구를 위하여 쓰는가`는 초대 에세이로, 작가 이대환의 `청암 박태준의 생애와 사상`, 한국학중앙연구원 교수 최진덕의 `주마간산, 터키 6박8일을 돌이켜본다`는 기획 에세이로 독자들에게 풍성한 읽을거리를 제공한다.포항시의 지속적인 관심과 후원으로 뽑힌 포항소재 문학작품 현상공모 시 부문 수상자 송유미·정도전 시인도 `문학만`의 참여자로 나서게 됐다. 신구세대를 가리지 않고 패기와 혁신과 변혁을 부단히 갈망하는 포항문인협회원들 중 윤석홍(시), 서숙희(시조), 김도형(수필) 또한 `문학만`을 다채롭게 하고 있다. 뿌리 내리기 쉽지 않은 새터민의 삶을 남한 독서 지도사의 시선으로 묘파한 `아폴로를 씹었어`(김산하, 단편소설), 간결하고도 명료한 문체로 문명의 이면을 탐구한 `멧돼지네 땅`(김일광, 단편동화)은 주제가 호락호락하지 않지만 정서적이라서 독자들의 공감대를 쉽게 이끌어낼 수 있을 듯.베트남이 낳은 세계적인 작가 바오 닌의 한국어판 `전쟁의 슬픔`에 서평을 쓴 작가 방현석의 `바오닌과 전쟁의 슬픔`(신간을 찾아서)과 젊은 문학평론가 이경재의`한국전쟁기 소설에 나타난 여성 표상 연구`(비평의 시선)는 분단 체제에서 살아가는 한국 독자들의 가슴을 진중하게 찾아간다.이대환 편집인(작가)은 “전국적인 현상이긴 하지만 포항에서도 문학이 하나의 취미활동 수준으로 쇠퇴하고 전락하는 상황에서 `문학만`은 진정한 문학이 자라는 한 거점으로 자리잡기를 바란다”고 했다./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12-07-06

中 잘못된 편견 바로잡고 韓 입장서 파악

국내 최고 중국 정치 권위자로 손꼽히는 서울대 국제대학원 조영남 교수가 `용과 춤을 추자 : 한국의 눈으로 중국 읽기(민음사)`를 펴냈다. 조영남 교수는 국내파 학자로는 보기 드물게 탁월한 연구 업적을 인정받아 2008년 부교수 승진과 함께 종신교수(tenure)가 된 재원이다.저자가 박사학위 논문을 쓰기 위해 1997년 베이징대학교 객원연구원으로 있을 때 어느 교수로부터 “중국의 부상이 시작되었다. 이제 한국은 중국의 그늘 아래에서 살아야 할 것이다”라는 말을 들었다.당시에는 그 말을 실감하지 못했지만 이후 2001년 다시 중국에서 의회와 지방정부를 면밀히 연구하고 나서 중국 공산당이 부정부패가 난무하는 낙후된 정치 체제가 아니며 체제상으로 많은 발전을 이뤘다는 점과 중국이 매년 10% 가까운 경제성장을 이룬 것은 결코 유리한 국제환경 같은 우연에 의해서가 아니라는 점을 깨달았다.이후 저자는 한국이 중국을 제대로 이해하지 않으면 중국의 부상과 그에 따라 재편되는 세계 질서에서 올바로 대처하지 못하겠다는 위기의식을 느끼기 시작했다.`용과 춤을 추자`는 첫째로 중국에 대한 잘못된 편견을 바로잡고, 둘째로 중국을 제대로 알고 세계의 시각이 아닌 한국의 입장에서 중국을 파악하고, 셋째로 올바른 대중국 전략을 제안하고자 하는 취지로 쓰였다.저자는 그동안 서울대 국제대학원 글로벌 리더십 프로그램(GLP), 인문대학 미래지도자과정(IFP), 사범대 교육행정지도자과정, 한국은행 교사직무연수 강좌 등에서 대중을 상대로 중국 정치에 대해 강의해 온 인기 강사이기도 하다.이 책은 많은 시민 강좌에서 저자가 가장 많이 받았던 질문들을 중심으로 구성했다. 예를 들어 “중국은 민주화가 될 것인가?” “중국이 소련처럼 망할 것인가, 아니면 미국을 제치고 슈퍼파워가 될 것인가?” “중국은 경제성장만 했지 낙후된 공산당은 일당 독재의 정치 후진국이 아닌가?”1부에서는 먼저 잘못된 편견과 타당하지 않은 주장들을 짚고 넘어가는 것으로 시작해, 2부에서는 중국의 변모한 현실과 이에 대한 각 나라들의 대응 전략을 살펴본다. 3부에서는 본론으로 들어가 중국의 강대국 부상 전략을 들여다보고, 4부에서는 중국의 권력 구조를 통해 공산당이 독재를 유지하면서도 어떻게 정치 안정을 이루어냈는지 그 이유를 살펴본다. 마지막으로 5부에서는 한국이 취해야 하는 전략을 제시한다./윤희정기자

2012-07-06

작가의 `특수교육 담론` 2가지 원칙 제시

대구대 특수교육과 김병하 교수가 오는 8월 말 정년에 즈음해 최근 몇 년간 학술대회 기조발표와 특강을 한 내용을 중심으로 `특수교육 담론 ·에세이`를 발간했다. 이 책은 1부 특수교육담론과 2부 (특수)교육관련 에세이 20편으로 구성돼 있다.서문에서 저자는 “우리나라 특수교육 담론(discourses)은 지금까지 너무 특수한 지말에 관심을 쏟은 나머지 근본(즉, 體用의 體)을 간과하지 않았는가?”라는 문제제기를 하면서 자신의 특수교육 담론을 지배하는 두 가지 원칙을 제시하고 있다.개인의 장애(disabilities)가 아무리 무겁더라도 인간 교육 가능성에 대한 무한한 믿음을 절대로 놓지 말자고 강조하는 등 이 책의 담론 기조는 하나의 이상적 기준으로 존재해야 할 `한국특수교육론`의 실재(實在; reality)를 정립하는 데에 모이고 있다.특수교육 에세이에서는 심층종교와 특수교육의 만남에서부터 김예슬 선언과 대학, `도가니` 현상에 이르기까지 저자의 평소 지적 관심사를 광범위하게 반영하고 있다.저자 김병하 교수는 2009년 세계 3대 인명사전 중 하나인 마르퀴즈 후즈후(Marquis Who`s Who in the World)에 등재되었으며 2010년 영국 국제인명센터(IBC)에서 선정한 21세기 지식인 2천 명에 선정되기도 했다.경산/심한식기자 shs1127@kbmaeil.com

2012-06-29

하늘·공기·대지를 잠식한 곳 숲에 들어간 사람들 이야기

▲ 소설가 편혜영2011년 동인문학상, 2010년 오늘의 젊은예술가상, 2009년 이효석문학상, 2007년 한국일보문학상 수상으로 빛나는 한국문학의 중추, 작가 편혜영이 자신의 다섯번째 책이자 두번째 장편소설인 `서쪽 숲에 갔다`(문학과지성사)를 펴냈다. 이 소설은 숲에 들어간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이야기는 그들이 전혀 짐작할 수 없을 만큼 숲이 복잡하고 빠져나오려고 하면 할수록 막막한 곳임을 점차 깨달아가면서 전개된다. 숨 가쁘게 책장이 넘어가는 동안 독자들은 작가의 그 어떤 전작들보다 개성 강한 인물들과 그들이 벌이는 치열한 심리전에 매료될 것이고 결국 `복잡하고 막막한 곳은 숲뿐이 아니라는 걸, 의심과 불안이 잠식하는 한 우리가 사는 곳은 그게 어디이든 애당초 다 그렇다`는 삶의 진실과 맞닥뜨릴 것이다.전작 `저녁의 구애`로 도시 문명 속에 길들여진 현대인의 불안과 고독, 황폐한 내면을 꿰뚫으면서, 편리하고 안온한 일상이 끝 모를 공포로 탈바꿈해가는 순간을 집요하게 파고들었던 작가 편혜영이다.“군더더기 없는 플로베르적 절제로 최대의 소설적 경제를 이끌어냈다”는 찬사와 함께 그해 동인문학상 수상의 영광을 안았던 편혜영이 이번에 발표한 신작 장편 `서쪽 숲에 갔다`의 무대는 서울에서 400여 km, 차로 달려 네 시간 거리쯤에 위치한 숲이다. 이번 이야기는 이 숲에 들어간 사람들의 이야기이다.다시 한 번 염두에 두자. 이 책은 `편혜영의 소설`이다. 때문에 독자들은 섣불리, 일상에 지친 도시민을 위무하는 쉼터이자 안식처로, 때로 녹색성장 운운하는 정책 입안자들의 공문서에 조림 수치와 함께 등장하는 그런 `푸르른 숲`을 기대하지는 않을 것이다.하늘과 공기와 대지를 잠식하고 어둠과 일체를 이룬 숲. 복수이자 한 덩어리의 전체로 존재하는 숲. 차고 거친 정적과 짙은 그늘 속에 교교한 바람 소리, 모호한 짐승 소리, 사방을 살피는 부엉이의 울음소리로 가득한 숲이다.이 숲에 실패한 자제력과 반복되는 결심, 실재 없는 감각의 환영에 시달리는 한 사내가 들어가면서 이야기는 시작된다.`서쪽 숲에 갔다`는 실종된 형 이경인을 찾아 외딴 마을을 찾은 변호사 이하인이 불친절하기 짝이 없는 마을 사람들을 상대로 형의 행적을 추적하다 의문의 죽음을 맞는 것으로 시작한다.마을의 모든 일을 관리하고 또 관여하는 듯한 진 선생과 은퇴한 벌목꾼들로 마을 상점가에서 가게를 운영하고 있는 이안남, 최창기, 한성수 모두가 거대한 숲을 둘러싼 범죄를 은닉한 공모자일지도 모른다는 의구심만을 낳은 채로 1부가 닫힌다. 그리고 다시 열린 2부와 3부에서 현재 이 숲의 관리사무실에 붙박여 주인 모를 스도쿠 책을 뒤적이거나 바람 소리와 짐승 소리 외엔 적막한 숲으로 나 있는 창틀을 배회하거나 간단한 일지를 정리하는 일로 하루를 보내는 박인수의 과거와 현재의 기억이 뒤엉키면서 마을에 짙게 드리운 불안과 폭력의 실상이 모습을 드러낸다.이번 작품에는 분명한 사건의 전조와 등장인물 개개별 성격, 그들 관계의 형성을 낳고 엮는 데 앞서 우리가 접했던 그 어떤 편혜영의 소설들보다 대화문이 풍부하게 실렸다.대화를 이어가는 한 단락 안에서 인물 화자가 교차하면서 심리 변화의 추이가 미묘하게 얽히고, 고조되는 갈등과 불안의 진폭은 읽는 이를 숨 가쁘게 한다. 갈등이 고조되고 종국에 한 인간의 삶을 송두리째 앗아버린 폭력으로 치닿는 과정 역시 이러한 대화의 과정에서 벌어진다.현재의 모순과 패배를 이미 예고했던 과거의 불행과 습관은 인물들을 옮겨가며 그 어떤 외부의 폭압보다 거세게 작동한다.짙고 거대한 숲과 그 속에서 퍼져 나오는 듯한 음습한 기운과 소음은 어쩌면 극도의 자기모순과 자아 분열, 순간적인 격분과 반복된 자기의혹에 매몰되는 우리 안의 소리일지도 모른다./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12-06-29

시대별 역사적 지명 실제 위치 기록 담아

역사란 무엇인가? 역사의 개념에 대한 관점은 학자마다 천차만별이지만, 과거 선조들의 삶을 통해 현재를 배우고 미래를 설계해가는 힘을 가진다는 데에는 모두들 동의할 것이다. 잘못하고 실수한 것은 타산지석으로 삼아 경계하고, 잘한 것은 귀감으로 여겨 삶을 변화시킨다면 선조들보다 조금 더 수월하고 풍성한 삶의 여유를 누릴 수 있는 것이 자명하다. 이렇게 볼 때 역사란 단순히 지나간 사실의 기록이 아니다.하지만 역사가 모두 옳은 것은 아니다. 짧게는 수십 년, 길게는 수천 년의 세월이 모여 이룬 역사는 그 과정에서 특정 세력에 유리한 내용이나 지배계급의 편향된 이데올로기 등이 삽입되어 사실이 변질되고, 퇴색되었을 가능성이 다분하다. 특히 우리나라는 일제 강점기를 거치며 수많은 역사 왜곡이 있었고, 사대사상, 즉 중국을 무조건적으로 우상시하던 역사관으로 인해 잘못된 역사 기록이 더욱 빈번했다. 일정 지역의 지리와 특징을 담은 지리지도 물론 예외가 아니다.`초주와 해주`(어드북스)는 현재 과학기술 역사아카데미 회장을 역임하고 있는 국학박사 김진경씨가 저술한 책으로 15년간 역사책을 독학해 얻은 주요 역사적 지명의 실제 위치에 대한 기록이 담겨 있다. 큰 틀에서 볼 때 고구려 평양성의 위치를 밝힌 `할아버지`의 논문을 토대로 손자 `천손`이 추정된 실제 위치를 찾아 나서는 역사 여행으로 구성돼 있다. 여기서 `할아버지`는 단순히 `천손`의 생물학적 `할아버지`라기보다는 잘못된 지명 표기에 수백 년의 세월 동안 헤어져 있었던 `조상`이라는 상징적 의미를 띈다.할아버지의 논문은 바로 저자가 오랜 시간 공들여 각종 문헌을 해석하고 분석해 추정한 결과물이다. 중국 25사 중 `한서`(전한서), `후한서`, `삼국지`, `진서`, `위서`, `남사`, `북사`,`수서`, `구당서`, `신당서`, `요사` 등의 지리지에 근거해 유주(幽州) 지역에 속하는 지명들이 시대별로 어느 지역에 위치하고 있었는지를 직접 밝혀 내었다. 모든 기록이 동일하게 나타나지 않고, 누락된 지명, 의도적으로 삽입된 위서 등이 곳곳에 눈에 띄지만, 흩어져 있는 지명을 종합해 각각의 배치관계를 파악했다.이 책은 역사적 지식이 부족한 일반인들도 쉽게 접할 수 있도록 구성한 책이다. 80여 개에 달하는 지도 그림을 실어 특정 지명의 추정위치를 하나하나 표시했다./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12-06-29

순정한 마음 담은 품격 있는 詩 선봬

1986년 `세계의문학`을 통해 작품활동을 시작한 이후 시집은 물론 산문집, 평론집, 동화집 등 장르를 넘나드는 왕성한 필력과 문학적 성취를 보여준 김윤배 시인의 열번째 시집 `바람의 등을 보았다`(창비)가 출간됐다. 5년 만에 펴내는 이번 시집에서 시인은 시적 대상에 대한 순정한 마음을 담아낸 품격있는 시편들을 선보인다. 그의 시들을 관통하는 키워드는 바로 욕망이다. 시인은 내내 자신의 욕망을 거리낌없이 드러낸다. 사랑의 애잔한 장면들을 담아내려는 욕망, 생의 깨달음을 얻고자 하는 욕망, 가치있는 시와 언어에의 욕망 등으로 다양하게 해석될 수 있는 그의 욕망들은 특유의 활달한 이미지와 너른 시선과 결합해 자못 인상적인 시적 울림을 선사하는 기제가 된다.“네게 영혼을 헌정한 후 혀를 깨물어 순결한 피를 삼키고, 한 손으로는 심장을 움켜쥐고 다른 한 손으로는 아름다운 목선을 어루만지며 내 푸른 뼈마디로 놓인 계단을 오르는 일생이었다 구름이 잉태하여 하늘을 낳고 바람이 잉태하여 나무를 낳고 욕망이 잉태하여 내 거룩한 성전을 낳았다”(`홀로페르네스의 마지막 성전`부분)“가슴에서 나는 낙타 발소리가 텅 빈 몸 울린다/낙타의 보이지 않는 길이 사구(沙丘)를 넘는다//보이지 않는 길은/보이지 않아서 두려운 길이지만/보이지 않아서 두렵지 않은 길이다”(`가시떨기나무`부분) 시인의 시에는 여전히 날카로운 아름다움이 각인돼 있다. 언어와 이미지를 다루는 시인으로서 미(美)에 대한 지향이란 놓을 수 없는 끈이라 믿는 듯한 그의 시선은 자못 매혹적인 시편들을 가능케 한다.“매혹도 독이었다 죽음처럼 황홀한 너는 꽃잎이 날개였다 산맥 넘을 때 달빛은 날개 아래 강물로 흘렀다 영혼의 기착지에서 황홀한 날개 접고 한 세기의 잠을 위해 날카로운 황금 조각들 목구멍 깊숙이 털어넣었을 것이지만//(…)//내 척박한 땅에 잠시 뿌리 내렸던 활련화, 저 황홀한 서러움//숨 멎는 줄 알았던 여름 한낮”(`여름 한낮`부분)/윤희정기자

2012-06-29

어른의 시야 너머 세계소년의 눈을 빌려 발견

“배워서 쓰는 것이 아니라 쓰고 싶어 쓰는”(김기택) 시인 이우성이 첫번째 시집 `나는 미남이 사는 나라에서 왔어`(문학과지성사)를 출간했다. 2009년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무럭무럭 구덩이`가 당선되며 등단한 후 햇수로 4년 동안 써온 시편 중 총 예순한 편을 가려 뽑은 이번 시집에서 이우성은 어른의 시야에 미처 포착되지 못했던 세계의 일부를 소년의 눈을 빌려 발견하고 있다. 무수한 “우성이”들의 경쾌한 나르시시즘과 온전히 이해하기 어렵지만 나름의 이미지를 떠올리게 하는 문장 구조의 생략을 통해 시인은 독자들을 자신이 떠나온 세계로 데려다놓는다. 이러한 나르시시즘과 미니멀리즘을 평론가 강계숙은 현실을 견디게 하는 “위로의 수사학”이자 “가능성”이라고 해석한다.“이우성의 `나`는 현재 한국 사회의 대중적 정서로 만연된 `피해자의 나르시시즘`과 정확히 반대되는 자리에 있다. (….) 이우성의 `나`는 고통이든 괴로움이든, 그런 감정을 겉으로 표 내는 일에 무심하며, 조금 주저하고, 잠깐 말한 뒤엔 남들이 알아채지 못하게 얼른 지워버린다. 피해자의 나르시시즘적 무능과 그것의 거침없는 표현을 조용히 거부하듯 “우성이”(`사람들`)는 작은 목소리로, 가장 적은 말을 사용하여 자기를 이야기하려 한다. (….) 긍정 어법이 스스로를 치켜세우는 과잉 예찬이 아니라 세계의 상실이 객관적 실재로 고착돼버린 이의 유용한 존재 기술(技術)이자 위로의 수사학이라면, (….) 자기 소진의 나르시시즘을 부추기는 현실을 죽거나 도피하거나 망가지지 않고 살 수 있는 힘을, 그리고 그러한 현실이 조금이나마 아름답게 바뀔 수 있는 가능성을 비추는 시적 비전을 찾게 하는 능력을 키운다면, 우리는 이 시인의 자기애를 기꺼이 환대할 필요가 있다” -강계숙(문학평론가)소년은 스스로의 개별성(`나`)을 강화하며 어른이 된다. 그렇다면 어른은 어떻게 다시 소년이 되는가. 시를 쓰는 이유를 생각하다가 결국 자신을 알기 위해 쓰게 됐다는 시인은 `나`에게로 파고들기보다 `나`를 확장시키는 것을 그 방법으로 선택한다. -`마음의 마음`부분 (p. 84)/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12-06-22

투쟁·자유의지의 詩 그리움으로 회귀하다

▲ 시인 양성우투쟁과 자유 의지의 양성우(70) 시인이 시의 본령인 그리움으로 회귀했다. 시인의 열네 번째 시집`내 안에 시가 가득하다`(실천문학사)는 서정시의 눈부신 향연을 보여준다. 첫 시집 `발상법`에서부터 `겨울공화국`을 거쳐 시력(詩歷) 40여 년 동안 양성우 시인은 투사적 이미지로 한국 시사의 돌올(突兀)한 별자리가 됐다.이번 시집은 끊임없이 현실과 호흡해온 거대한 산맥 같은 시정신의 뿌리가 간단없이 샘솟는 간곡하고 지극한 사랑으로부터 연원하고 있음을 보여준다.이번 시집을 통해 우리는 그의 언어가 출발하고 지향하는 세계의 기저에 자리한 상실과 그리움을 대면하게 된다. 상실과 그리움은 서정의 양면이다. 상실이 그리움을 낳고, 그리움은 현실의 불모성을 환기하면서 동시에 합일에 대한 지향을 낳는다. “아무리 지우려고 몸부림쳐도 지워지지 않는 얼굴”(`남포리`)들을 향한 긴 여정을 따라가다 보면 “비탈에 분홍 꽃잎 흐드러지고 왕소나무 구부정”(`산 하나`)한 고향 마을이 드러나고, 때론 “하염없이 비가 내리”면 광주 감옥에 갇힌 아들을 생각하며 “담장을 주먹으로 때리며 내 이름을 부르며 우시던 어머니의 눈물”(`봄비`)로 가슴을 적시기도 한다. 시인은 모든 상처를 적시던 어머니의 눈물처럼 “노래가 되어 꿈이 되어” “목이 쉬도록 부르고 또 부르며” “송곳 같은 바람 끝에” 몸이 부서져도 “하얀 강을 건너서”(`하얀 강`) 너에게로 가리라 한다. 시인이 찾아가고자 하는 너란 세상의 모든 애틋한 사물들과 풍경들, 그늘지고 외져서 함부로 잊힌 삶에 다름 아니다. 그리하여 마침내 “돌멩이나 지푸라기나 별이나 나, 온 길이나 갈 길, 슬픔이나 기쁨 등을 한통속으로 보는 그리움이 우주적 순환의 파동”(`해설`, 이경철)으로 확장된다.파동의 언어적 형식은 근원적인 리듬에 휘감겨 그의 고향 마을을 휘감는 영산강 줄기처럼 유장한 가락을 이루며 흘러간다. 뜨거운 역사의 중심부로부터 뿜어져 나오던 열기를 부드럽게 식혀주며 흘러가는 가락은 기운 데가 없어 이것이 시인의 천성이 아니었던가 하는 생각을 지울 수 없게 한다. “숲의 외로움이 나를 그에게 데려가리구슬픈 풀벌레 소리 여울물 소리가나를 그에게 데려가리아무 곳에도 보이지 않는 그에게소리 없이 떨어지는 마른 나뭇잎들이색 바랜 꽃잎들이 바람보다 앞서서나를 그에게 데려가리때가 되어 흔적 없이 사라져가는 것들과숨어서 우는 새들의 슬픔이 나를그에게 데려가리저 산의 새들처럼 울고 싶어라그에게 가까이 다가갈 수만 있다면맨발로 가시나무 덤불을 태우는 불길앞에 서고풀 한 포기 없는 빈 골짜기에서라도그의 목소리를 들을 수만 있다면끝 모르는 숲의 외로움을 따라서 나는그에게 가리”-`새들의 슬픔이 나를 데려가리` 전문어떤 시는 눈이 아닌 귀로, 소리 내어 읽고 싶은 욕망을 참을 수 없게 하는데 양성우의 시가 그렇다. 위 시는 리듬이 내용을 이끈다기보다 리듬 속에 뜻이 분리될 수 없는 한 몸으로 담겨 있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 형식단위와 내용단위의 긴밀한 연합을 절경으로 보여준다. 미처 뜻을 새기는 작업이 이루어지기도 전에 가락을 통해 뜻이 온몸으로 전달돼 온다고나 할까. 양성우의 시는 마침내 이처럼 자연스러운 리듬이 낯설게 느껴질 만큼 파편화된 산문적 삶을 살고 있는 현실을 돌아보게 만든다.추천사에서 신경림 시인은 “그의 시를 읽으면 무언가 애달프고 서럽고, 한편 따뜻하고 포곤하다. 오늘의 우리시가 가진 일부 문제점을 푸는 열쇠가 거기서 발견될 수도 있다고 생각되기 때문”이라며 폐쇄적인 언어 미학에 빠져버린 현재 시단의 병폐를 치유할 가능성을 그 독특한 가락으로부터 찾고 있기까지 하다. 삶의 진실에 대한 경건함과 경험에 대한 섬세한 미감이 호소력 있게 다가오는 이유를 또한 같은 맥락에서 짚을 수 있는 대목이다.양성우 시인은1943년 11월1일 전남 함평에서 태어났다. 1975년 교사로 일하고 있었는데 박정희 군사독재를 비판한 `겨울공화국`을 낭독해 교직에서 파면됐다. 1977년에도 저항시를 써 일명 노예수첩 필화 사건이 터졌다. 그 결과 1979년 감옥에서 지냈다. 2009년 8월11일 한국간행물윤리위원회 위원장에 선출됐다./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12-06-22

유배지에서 핀 담박한 한시

정민 교수의 `한밤중에 잠깨어`(문학동네)는 위대한 지적 성취를 이끌어냈던 조선후기 최고의 석학 다산 정약용(1762~1836)의 위대한 정신을, 쉽게 포기하거나 방기하기 쉬운 절망과 좌절의 상황 속에서 자신을 세워나갔던 정약용의 내면풍경과 인간 의지의 위대한 승리 과정을 처음으로 만나게 된다. `주역`에 감지(坎止)란 말이 있다. 물이 흘러가다가 구덩이를 만나면, 구덩이를 다 채워 넘칠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벗어나려고 발버둥치면 나올 수도 없을 뿐 아니라 상처만 남는다. 묵묵히 감내하면서 자신이 구덩이에 빠진 원인을 분석하고 반성하며, 구덩이를 다 채워 흘러 넘칠 때까지 수양하며 기다릴 뿐이다. 다산의 유배 한시는 이렇듯 환난과 역경과 시련 속에 처한 인간이 절망과 분노와 좌절을 극복하고 본래의 자신을 찾아가는 과정을 진솔하게 보여준다.“다산의 위대함은 그가 이룩한 놀라운 성취 때문만은 아니다. 그 성취가 이런 절망을 딛고 나온 것이어서 우리는 그에게 더욱 놀라고 경탄한다. 보통은 작은 시련 앞에서도 남 탓하며 세상을 향해 원망과 적의를 품게 마련이다. 좌절의 시간은 누구에게나 온다. 다만 그때의 내 자세를 생각해보자는 것이다.인생을 살아가다보면 누구에게나 시련이 닥쳐오기 마련이고, 좌절과 절망 속에서 자신을 가누기 힘들어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이치다. 조선 후기 최고의 석학 다산 정약용 역시 그러했고, 그에게 닥친 시련은 더 엄혹한 것이었다. 하지만 그는 그 시련과 절망에 넘어지지 않았다. 그 시련의 시간들 속에서 그는 조선 후기의 가장 위대한 지적 저작들을 내놓았다. 그 학문적 성취도 위대하고 아름답지만, 그 시련을 딛고 일어서기 위해 고뇌했던 그 인간적인 노력과 흔적들이 더 위대하고 아름답다. 그 비록 한 권의 책으로 묶여 있으나 18년에 이르는 전체 유배 기간 중 전반 10여 년 동안에 이뤄진 것이다. 그 긴 시간 동안 나를 버리지 않고 본연의 나를 찾으려 했던 다산의 길은 “환난에 처한 인간이 지녀야 할 바른 자세를 들여다보기에 부족함이 없다”(`머리말`에서)/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12-06-22

사소한 일상의 일들 詩 안에 녹아 흘러~

이근화 시인사람들을 놀라게 할 만한 자극적인 이미지와 구문의 파괴 없이도, 요설체와 장광설을 동원하지 않고서도 시 언어의 혁명적인 가능성을 조용히 밀고 나가는 이근화(34) 시인의 세번째 시집 `차가운 잠`(문학과지성사)이 출간됐다. 시인은 일상의 세목을 선별하고 배합하는 과정에서 노련한 바리스타처럼 감각적인 기동력과 순발력을 보여준다. 이러한 선별과 배합이 만들어내는 맛과 향이 예사롭지 않다. 사소하고 일상적인 일들이 시 안에서 어우러지며, 공동체의 `어려운 문제`를 향해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가 맞닥뜨리는 장면을 목격하는 것은 이 시집을 읽는 큰 즐거움 중의 하나다.시인에게 일상은 항상 미지의 것으로, 한없이 낯설다. 김밥은 무연히 “얻어터지는” 주체가 되고 국자는 위력적인 무기가 되는 식이다. 무분별한 생각의 덩어리들, 오해와 착각과 무모한 열정, 이름 붙여지지 않은 기분과 감정들, 사소한 즐거움과 오랜 열패감이 시인의 삶과 글을 이끈다는 한 산문(`꿀문학이라는 불가능한 말`, `문학과사회` 2012년 여름호)에서의 고백과 무관치 않은 듯하다. 그러나 시인은 이러한 정념들을 쉽게 토로하지는 않는다. 심연에서 들끓는 정념을 엄격하게 단속해 표면까지 끌어올릴 뿐이다. 그러는 동안 더욱 팽팽해지는 시적 긴장감이 눈길을 모은다.“살다 보면 그렇다 김밥 옆구리가 터지듯그냥 얻어터지는 날도 있고어제도 오늘도 만났던 사람을어느 날 갑자기 만날 수 없게 된다죽은 것도 아닌데 마음이 시커멓게 타들어간다`김밥에 관한 시`부분국 없이 밥을 먹고 영화를 보았다사람이 천천히 죽는 영화 한 편과사람이 빨리 죽는 영화 한 편국자를 휘두르면 한두 사람쯤 가볍게 쓰러뜨릴 수 있을 것도 같아장외로 날려버릴 수도 있을 것 같아그다음에는? ”(`국자 사러 가기` 부분)이근화 식 화법의 특징 중 하나는 무상함이다. “넘어져서 일어나지 않아도 좋겠”(`내게 없는 것`)다거나 “그래서 기분이 이런 것이군”(`물체주머니`) 하며 짐짓 무표정을 짓는다. 시인은 이러한 무표정에 도달하기 위해서 일단 명랑함을 가장한다. “우리는 오늘의 식사가 즐겁다”(`그물의 미학`)거나 “국수가 좋다/빙빙 돌려가며 먹는다”(`국수`)고 말하지만 이내 “실종된 유학생”과 “노동자의 마스크”와 “남편을 잃은 베트남 여인”(`그물의 미학`)을 불러들이고 “풀기 어려운 문제”(`국수`)를 만나기도 한다. 시인은 이러한 낙차를 만듦으로써 시 속에서 이야기가 생성될 수 있는 높이와 질량과 속도를 충전하는 것이다. 심상은 폭포처럼 쏟아지고, 그 베일 뒤에서 “오늘의 문제는 너무 어렵다는 표정으로 별이 몇 개 뜬다”(`너무 늦게 온 사람`). 그 별은 시적 화자가 짓고 있는 불안한 표정과 닮았다. `김밥에 관한 시`와 `김밥에 관한 시 2`는 이 시집의 특징을 함축하고 있는 연작시다. 시인은 김밥에 관해 개인적 경험을 열거한 시 한 편을 쓰고 나서 곧이어 “김밥에 관한 시는 다시 씌어져야 한다”며 앞의 시를 송두리째 뒤엎는다. 이유가 무엇일까. 어째서 “멸추김밥처럼 웃긴”, 김밥에 관한 시 쓰는 일을 다시 하려는 것일까. 문학평론가 조강석은 “입맛이 단지 개인의 기억에만 결부되지 않기 때문”이라고 진단한다. 개인의 입맛에 국한되던 김밥이 기억과 정념의 연쇄작용을 작동시켜 공동의 생존권과 연결되는 것이다. `김밥에 관한 시 2`에는 차가운 바닥에서 더러운 냄새가 밴 마스크를 쓰고, 막내가 보고 싶지만 그마저 뒤로한 채 바닥에서의 하루를 이어가야만 하는 이들이 등장한다. 시는 이들 열두 명에게 김밥이 고작 한 줄만 배달되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명랑`에서 `불안`으로 감정이 옮아가는 지점이라 할 수 있다.구체적인 정황은 숨겨져 있지만 시인은 어느 날 어느 곳에서 상상보다 훨씬 기괴하고 어이없는 현실을 목격했을 것이다. 시인은 그러한 현실에 `김밥에 관한 시` 연작으로 맞서고 있다./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12-06-15

사랑이란 관계로 매혹·고독 탐구

그의 소설은 `은희경`이라는 이름만으로도 독자를 설레게 한다. 특유의 섬세한 시선과 지적이고 세련된 문장, 삶의 진실을 날카롭게 파헤치는 통찰은 늘 우리를 열광하게 해온 은희경 소설의 위력이었다. 등단 16년, 매 작품마다 다양한 변신을 선보여온 그의 작품세계는 이제 더 깊어지고 여유로움마저 갖추었다. 2년 만에 선보이는 새 장편 `태연한 인생`은 그간 집적된 은희경 소설의 성취들이 고스란히 담긴 은희경 소설의 빛나는 정수를 보여준다. 현대사회에서의 개인들의 존재론과 그들이 맺는 관계의 양상을 냉철하게 묘파하는 것이 은희경 소설의 본령이었다면, `태연한 인생`(창비)은 사랑이라는 관계를 통해 매혹과 상실, 고독과 고통을 깊이 탐구하는 가장 은희경다운 소설이라 할 수 있다. 저마다의 외로움과 오해 속에서 흘러가고 얽히는 관계들이 있고, 그 속에서 우리 내면의 나약함과 비루함이 드러나는 순간들이 있다. 그것을 때로는 서늘하게, 때로는 유머러스하게, 때로는 따뜻하게 포착해내는 필치는 과연 은희경이라는 감탄을 자아내게 한다.냉소적이고 자유로운 소설가, 요셉“착한 여자들은 말야, 패턴을 강요해. 그것처럼 남자를 지겹게 만드는 건 없을걸. 살아 있는 것은 모두 변하잖아. 당연하지. 안 죽었으니까. 사랑이 변하는 게 아니라 사랑하는 사람들이 변하는 거거든.”세상 끝, 열정의 끝에서 사라진 여인, 류“매혹은 지속되지 않아, 열정에도 일정한 분량이 있어. 그 한시성이 사랑을 더욱 열렬하게 만들지…. 마지막 한 걸음을 남겨놓고 되돌아와버린 것을 후회하진 않아.”`태연한 인생`을 이끌어가는 것은 두 사람의 이야기이다. 냉소적이고 위악적인 소설가 요셉과 신비로운 여인 류. 그리고 그들을 둘러싼 개성적인 인물들이 이야기를 더욱 다채롭게 한다. 소설은 류의 아버지와 어머니에 대한 이야기로부터 시작한다. 무책임하고 즉흥적이며 한순간의 매혹에 쉽게 몸을 던지는 아버지와, 반면에 생활과 가족이라는 서사를 유지하기 위해 스스로 고독과 고통을 감내하기를 선택했던 어머니. 류의 전사(前史)에는 그렇게 서로 화해할 수 없는 두 세계가 있었다. 류는 고백한다. “살아오는 동안 류를 고통스럽게 했던 수많은 증오와 경멸과 피로와 욕망 속을 통과한 것은 어머니의 흐름에 몸을 실어서였지만 류가 고독을 견디도록 도와준 것은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삶에 남아 있는 매혹이었다.” 류는 그 매혹에 이끌려 한때 요셉을 열렬히 사랑했지만, 마지막 한 걸음 앞에서 그를 떠났었다.소설은 요셉의 일상과 류의 과거사가 교차되며 두 세계의 겹침과 엇갈림을 그려나간다. 자기 자신을 포함한 타락한 세계를 향해 던지는 요셉의 가차없는 독설은 날카로우면서도 한편으로 씁쓸한 연민을 자아내고, 감추어진 듯 언뜻언뜻 드러나는 류의 서사는 아련하고 서정적인 색채로 이야기 전체를 감싸안는다. 그리고 곳곳에 깔린 삶과 사랑에 대한 깊은 통찰이 섬세한 문장으로 겹겹의 층을 이루며 이야기를 풍성하게 한다. 매혹과 상실, 고독과 고통, 오해와 연민에 대해 오래 곱씹게 하는 그 빛나는 경구들은 물론 은희경 소설을 읽는 큰 즐거움이자 그 자체로 머릿속에 외우고 다니고 싶어질 정도로 매력적이다. 날렵함과 통쾌함을 지나 점차 깊고 묵직하고 어딘가 쓸쓸하기까지 한 느낌을 더하는 그 문장들에서 은희경 소설세계의 또다른 변모를 감지하는 것 또한 설레는 일이다.“타인이란 영원히 오해하게 돼 있는 존재이지만 서로의 오해를 존중하는 순간 연민 안에서 연대할 수 있었다. 고독끼리의 친근과 오해의 연대 속에 류의 삶은 흘러갔다. 류는 어둠 속에서도 노래할 수 있었다” (265면)모든 좋은 소설이 그러하듯, 어떤 측면에서 읽어도 흥미로운 깨달음과 감흥을 발견할 수 있는 복합적이고 다층적인 면모는 `태연한 인생`이 지닌 큰 매력이다./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12-06-15

남편 잃은 여인의 외로움과 고통 그려

알베르 카뮈를 창작의 세계로 이끈 `고통`(문학동네)은 프랑스 작가 앙드레 드 리쇼의 첫 장편소설이다. 1931년 발표된 이 작품은 출간 직후 프랑수아 모리아크, 조르주 베르나노스, 쥘리앵 그린 등이 참여한 `프리 뒤 프르미에 로망`(첫 소설에 수여하는 문학상) 심사위원단의 관심을 끌었으나 여성의 성적 욕망의 표현, 독일군 포로와의 육체관계 등 당시로서는 받아들이기 힘든 파격적인 주제를 다뤘다는 이유로 수상의 영예를 안지 못했다. 그러자 이 젊은 소설가의 탁월한 자질을 인정한 작가 조제프 델테이가 드 리쇼를 열렬히 옹호하며 논쟁을 촉발시켰고, 이로 인해 `고통`은 큰 인기를 끌었다. 앙드레 드 리쇼는 인간 존재가 자신들의 환상과 맞서는 끔찍한 상황을 섬세하게 그리고 서정적이면서도 시적으로 그려내는 데 탁월한 작가였다. 특히 인간 행위를 분석하고 등장인물의 내면을 깊이 파고드는 묘사는 이 작품 `고통`에서 단연 잘 드러난다.테레즈 들롱브르는 1차 세계대전 초, 남편 들롱브르 대위가 전쟁에 동원되자 어린 아들 조르제와 함께 전쟁의 포화를 피해 프랑스 남부의 어느 조용한 마을에서 지내던 중 남편의 사망통지서를 받는다.대위가 사망한 후 테레즈는 얼마 안 있어 정신적 외로움과 더불어 육체적 고통에 시달린다. 고통에 몸부림치던 테레즈는 그럴수록 아들 조르제에게 병적일 정도로 애착을 보이고, 아들이 어머니 품을 떠나는 상상만으로도 불안을 느끼면서 자신 이외의 다른 세상과 아들을 차단시키려 든다.그러던 어느 날, 테레즈가 자신의 불타오르는 욕망을 실현시킬 기회를 맞게 됐다. 포로로 잡혀와 마을에서 노동을 하던 독일군 오토와 만나게 된 것이다. 타인의 육체를 갈망하던 두 사람은 마을 사람들의 눈을 피해 밤마다 몰래 만나 사랑을 나눴다. 이 모든 일을 감지하는 아들 조르제는 어머니의 관심에서 점점 멀어진다는 사실, 어머니가 아버지를 배신했다는 사실, 심지어 그 상대가 독일군이라는 사실에 분노하며 고통스러워한다.그러나 테레즈는 육체적 욕구에 눈이 멀어 아들의 괴로움을 보지 못한다. 마을 사람들의 시선마저 알아채지 못한 채 테레즈는 사랑에 매달리지만, 그저 육욕을 채우고 싶을 뿐이었던 오토의 마음은 점점 식어갔고 결국 테레즈에게 이별을 통보하며 슬그머니 사라져버린다. 연인에게서 버림받은 여인, 어머니에게서 버림받은 아들이 느끼는 분노와 고독은 끝내 두 모자의 삶을 비극으로 이끈다./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12-06-15

쫓기는 삶 탈출 방법은? `뺄셈 미학' 이야기 담아

2011년 3월1일. 일본 후쿠시마 원자력발전소 사고 이후 전 세계는 하나의 전환점을 맞이했다. 이는 단순히 `탈원전'이나 대체에너지 사용 문제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3·11 이후 많은 사람들이 `경제 성장'을 삶의 목표로 삼아 끊임없이 무언가 `할 일'을 만들어내는 시대, `더 빨리, 더 많이, 더 효율적으로'를 미덕으로 여기는 시대 자체를 조금씩 돌아보기 시작했다. 우리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것이 `경제적 풍요'가 아니라 우리 아이들과 자손들이 그들의 삶을 영위해나가기 위해 먹고 마실 공기와 깨끗한 물, 그리고 안전한 음식임을, 그리고 이 지구가 서로 나누고 도우며 살아가는 사회임을 깨닫는 이도 하나둘 늘어가고 있다. 하지만 어떻게 해야 지금과 같이 쫓기듯 사는 삶에서 벗어날 수 있는 것일까? 과연 무엇이 우리를 행복하게 해줄 수 있을까? `슬로라이프' `행복의 경제학' 등으로 국내에도 잘 알려진, 삶을 누리며 느리게 살아가자는 운동 `슬로라이프'의 제창자 쓰지 신이치는 `슬로라이프를 위한 슬로플랜'(문학동네)에서 `돈과 경제 성장'에만 초점을 맞춘 사람들의 `할 일' 리스트가 우리가 현재 안고 있는 수많은 문제의 근원이라고 이야기한다. 가족 문제를 비롯해 소외감으로 인한 자살률 증가, 교통사고, 전쟁, 빈부격차,기업과 미디어의 횡포 등 전 세계에서 일어나는 분쟁이 모두 `시간의 문제'와 맞닿아 있으며 인간의 욕망에만 근거한 모든 `할 일'에는 결국 미래가 없다고 본다. 이 때문에 그는 우리가 시간과 화해하지 않고서는 한발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고 주장하며 `할 일 리스트'로 가득 찬 바쁜 삶을 `하지 않을 일 리스트'로 치환하는 방법을, `해야 할 일'이라는 집단적 강박에 시달리는 삶에서 벗어나 인간다운 삶으로 전환하는 방법을 하나씩 제시한다.쓰지 신이치사진가 제시하는 `하지 않을 일 리스트'는 쓸데없는 일을 잘라내 일의 효율성을 높여 보다 많이, 보다 빨리 수행한다는 소위 `시간 관리술'이 아니다. 쓰지 신이치의 `하지 않을 일 리스트'를 만드는 것은 `할 일'만을 우선시하는 사회 속에서 `하지 않을 일'을 채워감으로써 효율과 경쟁에 치이는 삶에서 빠져나오게 하고 있는 그대로의 나 자신을 느끼게 되어 진정한 행복을 맛볼 수 있게 하는 작업이다. “절대로 ~하지 않겠다”라는 식의 단정적인 표현을 쓰지 않기, 나무젓가락 쓰지 않기, 버스나 전철에 급히 올라타지 않기, 잠자는 시간을 아까워하지 않기, 내일 할 수 있는 일은 오늘 하지 않기, 자동판매기 이용하지 않기, 식사시간에 일을 들고 오지 않기, 화장실에서의 시간을 소중히 하기…. 쓰지 신이치는 이처럼 우리가 조금만 신경 쓴다면 어렵지 않게 실천할 수 있는 `하지 않을 일'을 제시한다. 그는 이런 작은 시작이야말로 할 일이 너무 많은 세계에서 빠져나올 수 있게 해주고, `지금 이 순간'을 즐기게 해준다고 말한다. “안녕하세요”가 점점 “바쁘신데 죄송합니다만….”으로 변해가는 현대 사회. 밥 먹듯이 야근을 하고, 몸이 별로 좋지 않은데도 출근을 하며, 유급휴가도 제대로 쓰지 못한 채 그저 아등바등하며 어지간해서는 줄지 않는 `할 일' 리스트를 끌어안고 살아가는 사람들. 신문에서도, 각종 미디어에서도 바쁘게 활동하는 사람이나 수면시간을 줄여 일의 효율을 높이는 사람을 치켜세우고, 광고를 통해 자양강장제 등을 앞다투어 판매한다. 이렇게 `할 일 리스트'에 등 떠밀리듯 살아가는 이들에게 쓰지 신이치는 `잘못된 부분'을 줄임으로써 삶의 행복을 채우는 `뺄셈의 미학'을 이야기한다.“보다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는, 우선 잘못된 부분을 줄여나가야 한다.”보다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한 방법에는 `좋은 것'을 늘리는 덧셈의 접근방법과 `잘못된 부분'을 줄이는 뺄셈의 접근방법이 있다.환경 문제를 예로 들자면, 이런 사업을 벌이고 저런 일을 해서 해결하자는 의견은 수도 없이 많지만, 무언가를 그만두자는 식의 주장은 별로 인기를 끌지 못한다. 오히려 이를 `소극적인 발상'이라고 비난하기 일쑤다. 하지만 실제로는, `할 일'의 과잉이 만들어낸 문제에 대처하기 위해 이런저런 `할 일'을 만들어 결국 문제를 더 크게 만드는 경우가 적지 않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12-06-08

자연은 자원이 아닌 위대한 `스승'

이인식씨사진의 `자연은 위대한 스승이다'(김영사)는 자연에게서 인류가 직면한 문제의 해답을 찾고 자연의 새로운 가치를 발견하는 생물영감과 생물모방과 같은 기술을 인간중심 기술에 상반되는 개념으로 `자연중심 기술'이라 이름 붙이고, 기존 과학의 틀을 벗어나 인류에게 지속 가능한 발전을 보장해줄 `자연중심 기술'에 주목해야 한다고 말한다.우리 주변의 생물은 대부분 수천만 또는 수억 년 동안 진화를 거듭하는 과정에서 생존을 위협하는 갖가지 도전에 슬기롭게 대처했기 때문에 살아남은 존재들이다. 이러한 생물의 구조와 기능을 본뜬다면 경제적 효율성이 뛰어남과 동시에 환경친화적인 물질을 창조할 수 있다는 것이 바로 자연중심 기술의 근본 원리다.`상어 피부 수영복' 0.01초 기적 창출..우리 사회 나아갈 방향 제시대표적인 예로 흰개미 집의 신비로운 환기시스템은 냉난방 없이 건물 안의 공기를 끊임없이 신선하게 유지하기 위한 핵심 원리를 제공했다. 공기 중의 수분을 포집해 생존에 필요한 물을 공급받는 나미브사막풍뎅이 날개 표면의 원리는 인류가 당면한 물 부족 문제의 해법을 보여주었다. 얼룩말의 줄무늬는 기계적 통풍장치 없이 표면온도를 낮추는 원리의 힌트를 주었고, 연잎 표면의 과학은 자체적 정화 기능을 갖춘 신소재 개발의 핵심 아이디어가 됐다. 또한 가느다란 거미줄이 강철보다 튼튼한 방탄물의 소재가 되는가 하면, 바닷물의 저항을 최소화할 수 있는 상어 피부 구조를 활용한 전신 수영복은 수영 선수들에게 0.01초의 기적을 이루어주기도 한다. 이와 같이 자연은 인류에게 지속 가능한 경제 발전에 기여할 수는 무한한 아이디어와 해법을 얻을 수 있다.자연의 지혜를 배우고 자연을 모방하려는 인류의 노력이 현대에 시작된 것은 아니다. 전화기는 사람의 귀를 모방했으며, 20세기 최고의 건축물로 손꼽히는 수정궁은 수련의 잎에서 영감을 얻어 설계됐고, 벨크로는 도꼬마리 씨앗에 달린 갈고리 모양의 가시를 흉내 낸 것이다. 이처럼 이 책은 생명공학에서 나노기술, 로봇공학, 집단지능까지, 자연에서 영감을 얻고 자연의 메커니즘을 모방한 자연중심 기술의 역사와 현주소는 물론 인류가 직면한 수많은 위기를 해결할 경이롭고 신비한 자연의 비밀을 한눈에 펼쳐 보여주고 있다.지금까지의 인류의 경제 성장을 이끌어온 것은 모두 인간을 위해 자연을 희생시켜 자원으로 이용하는 인간중심의 기술이었다. 이로 인한 생태계의 파괴 문제가 심각해지자 덜 쓰고 덜 생산하면서 쓰레기를 줄이는 것과 동시에 기업에게 환경 파괴에 대한 비용을 지불하게 하는 녹색경제가 새로운 흐름으로 자리 잡기도 했다. 그러나 녹색경제는 환경보호를 위해 소비자와 기업에게 큰 부담을 안겨주는 문제를 지니고 있다. 이런 이유로 녹색경제를 인구에 회자되는 것만큼 큰 실효성을 거두지 못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궁극적으로 경제 성장과 상충되는 결과를 피할 수 없다.이렇듯 한계가 분명한 녹색경제의 틀을 뛰어넘어 환경과 경제 성장이라는 상반되게 보이는 두 목표를 이룰 수 있는 해법이 바로 `자연중심 기술'에 있다. 그리고 자연중심 기술을 원동력으로 녹색경제의 한계를 극복하고 상생과 공존의 미래를 열어나갈 새로운 경제의 패러다임, 환경문제와 경제 성장이 조화되는 새로운 미래의 가능성을 보여주는 청색경제가 세계적인 흐름으로 자리잡고 있다. 그 근간이 되는 자연중심 기술의 모든 것을 보여주고 있는 이 책은 우리사회의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하고 있다./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12-06-08

행복을 온전히 느끼지 못하는 진짜이유는 뭘까

우리는 살면서 다양한 상황에 맞닥뜨리고, 많은 사람들을 만나며, 수많은 문제들을 해결해야 한다. 그 과정에서 성취도 하고, 인간관계도 넓어지며, 가정도 원만하게 굴러간다. 그런데 이렇듯 아무런 문제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왠지 마음 한쪽이 허전하고, 삶이 정체된 것만 같고, 또 뭔가 부족한 것만 같을 때가 있다. 심지어 “나는 행복하지 않아”라는 말이 불쑥 튀어나오기도 한다. 마치 내 행복을 무언가가 자꾸 휘저어놓는 것만 같다. 왜일까? 자꾸만 뭔가를 갈망하는 이유는 뭘까? 욕심이 많아서일까? 아니면 지금의 삶이 나에게 맞지 않아서일까?우리가 생각하기에 우리는 최선을 다해 살고 있다. 일할 때는 완벽하게 해내려고 노력하고, 사람들과의 관계에서도 진심으로 배려하고 친절하게 대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누구든 나처럼만 살면 세상은 참 평화로울 것이라는 생각까지 든다. 하지만 진실은 다르다. 우리 스스로 생각하는 것만큼 자기 자신은 진실되지도, 남에게 그리 친절하지도 않다. 이는 `방어기제'에 의해 본심(진짜 마음)이 가려진 반쪽짜리 마음으로 살고 있기 때문이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행복을 온전히 느끼지 못하는 진짜 이유다.방어기제는 자아가 위협받거나 상처받을 상황에 맞닥뜨렸을 때 무의식적으로 자신을 속이거나 상황을 다르게 해석함으로써 자신의 마음을 보호하는 심리적 행위다. 방어기제가 있어서 우리는 느끼기 싫어하는 감정을 외면할 수 있고, 불편한 감정이나 생각을 느끼지 않으며 살 수 있다.그러나 방어기제가 우리에게 도움만 주는 것은 아니다. 방어기제가 문제 상황을 모면하는 데는 도움을 주지만, 과도하게 반복적으로 사용할 경우 자신의 진짜 감정과 생각을 외면하는 것을 넘어, 해결해야 할 문제를 자꾸 피하게 된다. 그 결과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일에서, 사랑에서 번번이 어려움을 겪고 성취감·만족감·마음의 평화를 충분히 느끼지 못하게 만든다. 한 마디로, 방어기제는 마음을 보호한다는 미명하에 온전한 삶을 제한하고 행복을 가로막는다./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12-06-08

사라짐에 관한 깊은 사색 담은 에세이

수포스트모더니즘의 대가 장 보드리야르의 유작 `사라짐에 대하여'(민음사)가 출간됐다.이 책은 2007년 향년 77세의 나이로 타계한 장 보드리야르가 남긴 마지막 텍스트들 가운데 하나로, 사라짐에 관한 깊은 사색을 담고 있는 짧은 에세이다. 그는 근대와 함께 시작된 인간의 잠재적 사라짐에서부터 기술과 미디어의 발달로 초래된 이미지의 범람으로 인한 모든 실재의 사라짐에 이르기까지, 사라짐에 관한 다양하고 복잡한 사유의 변주를 이 짧은 텍스트 안에서 엮어 나간다. 이미 시뮬라시옹과 시뮬라크르 개념을 통해 현대 사회의 본질을 꿰뚫은 바 있는 그는 객관적 지식 습득과 기술 지배를 향해 나아가는 현대에 실제 세상과 인간은 사라졌으며 현대의 문화는 유령으로 가득 찼다고 이야기한다. 그는 사라졌지만 그가 던진 메시지는 공룡 같은 매스 미디어에 실체를 가늠하기 어려운 거대한 권력에 지배되는 이 세계를 이성적으로, 비판적으로 바라볼 것을 여전히 우리에게 촉구하고 있다.“따라서 인간이 사라져 버린 세상에 대해 말하자. 사라짐의 문제이지 고갈, 소멸, 또는 몰살의 문제가 아니다. 자원의 고갈, 종의 멸종은 물리적 과정이거나 자연적 현상일 따름이다. 바로 거기에 차이가 있다. 인류는 분명 자연 법칙과는 아무 상관없는 특수한 사라짐의 방식을 발명한 유일 종이다. 어쩌면 사라짐의 예술이라고 할 수 있겠다” - 본문 중에서이 책은 장 보드리야르가 2007년 죽기 직전에 남긴 텍스트 가운데 하나인 `POURQUOI TOUT N`A-T-IL PAS DEJA DISPARU?(WHY HASN'T EVERYTHING ALREADY DISAPPEARED?)', `왜 모든 것은 아직 사라지지 않았는가?'를 옮긴 것이다.프랑스를 대표하는 포스트모더니즘 문화 이론가, 현대성에 대한 가장 뛰어난 해석자, 하이테크 사회 이론가 등으로 불리는 장 보드리야르는 철학과 문학, 사회 이론, 사진, 영화, 공상과학 등을 넘나드는 다채로운 글을 통해 현대 사회를 분석하고 그 본질을 꿰뚫는 통찰을 보여 왔다. 그는 원본과 복사본, 현실과 가상 현실의 경계와 구분이 없어지고 이미지와 미디어가 지배하는 현대 소비 사회를 시뮬라시옹과 시뮬라크르 개념으로 논파해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12-06-01

사소한 것들을 향한 따뜻한 울림 사회를 향한 시인의 목소리 담아

▲ 안도현 시인올해로 등단 28년을 맞은 시인 안도현(52)의 열번째 시집 `북항'(문학동네)이 출간됐다. 전작 `간절하게 참 철없이' 이후 4년 만에 만나는 시집이라 반가움이 크다. 총 63편의 시를 엮은 이번 시집은 안도현 시인의 시세계를 다시 한번 확인하게 해줄 뿐 아니라, 작금의 사회를 향한 시인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다는 점에서 안도현 시인의 시집을 기다린 많은 독자들의 기대에 값한다. 따로 부를 나누지는 않았다. 다만 “어선과 여객선을 골고루 슬어놓은 북항”(`북항')처럼 시집은 63편의 시를 그 자리에 가만 띄워둔다. 시집을 여는 `시인의 말' 에서 “~ 잘 되지 않았다” “~ 여의치 않았다” “~ 형편없다”는 말로 자신을 낮추었지만 그 겸손함이 오히려 역설적으로 이번 시집에서 시인이 일궈낸 것의 가치를 더욱 빛나게 한다. “그렇다고 해도 이것 말고 무엇이 더 중요하다는 말인가”시가 들어가는 자리에 제사처럼 씌인 글은 `그 집 뒤뜰의 사과나무'의 1연을 그대로 옮긴 것이다. “적게 먹고 적게 싸는 딱정벌레의 사생활에 대하여/불꽃 향기 나는 오래된 무덤의 입구인 별들에 대하여/푸르게 얼어 있는 강물의 짱짱한 하초(下焦)에 대하여/가창오리들이 떨어뜨린 그림자에 잠시 숨어들었던 기억에 대하여”는 이번 시집의 정서를 그대로 아우르고 있다. 사소한 것들을 향한 따뜻한 울림은 안도현 시인의 시가 가진 큰 힘이다.서시인 `일기'는 시인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 무엇인지, 하여 이 시집에서 시인이 주목하고 있는 것들, 독자가 귀 기울여야 하는 것들이 무엇인지 알려준다. 소소한 일상을 나열하고 마지막에 “그렇다고 해도 이것 말고 무엇이 더 중요하다는 말인가”라고 끝맺는 이 시는 안도현 시인의 시적 태도를 말해주는 것이기도 하다. 그것을 증명이라도 하듯 이 시는 문인들이 뽑은 2011년 최고의 시에 선정되기도 했다. “안도현의 시에는 은일자적 태도 속에서 삶의 적막을 제 집으로 삼고 다스리는 태도가 긍정적으로 나타나 있다. 이 삶의 태도는 곧 시적 태도와 구별되지 않는다”는 심사평에서도 드러나듯이 “불빛 죽이고 두어 가지 찬에다 밥을 먹”는, 어찌 보면 보잘것없는 생활을 하는 시인은, 제자리를 지키며 세상과의 경계를 분명히 하고 있다. 그리고 그것의 중요함을 알고 있다. 그의 시가 주는 울림의 진폭은 바로 그 경계에서 나오는 것이 아닐까. 그런데 소소한 일상과 “무엇이 더 중요하단 말인가”의 앞에 붙은 “그렇다고 해도”가 뭔가 그냥 지나칠 수 없게 만든다. 그것의 속뜻은 앞에 비워진 한 행. 이번 시집의 해설을 쓴 문학평론가 황현산의 말을 빌리면 “짧거나 긴 성찰의 시간”이다. 그 비워진 한 행에 담긴 의미를 찾아나서는 것은 이 시집을 읽은 또 하나의 즐거움이 될 것이다.“나는 어두워서 노래하지 못했네”그렇다면 시인은 무엇을 성찰하는 것일까. 하찮을 수도 있는 일들이 사실 가장 중요한 일이라고 여기는 시인은, 그러나 “어두워서 노래하지 못했다”고 고백한다. “어두운 것들은 반성도 없이 어두운 것이어서” 시인은 노래하지 않고, 한 줄의 침묵 속에서 혼자 성찰했을 것이다. 그 성찰의 간절함 때문에 “혀 자르고 입술 봉하고 멀리 돌아”(`그 집 뒤뜰의 사과나무')와 지금 여기, “북항”에 이른 것은 아닐는지.이 어둠을 밝힐 수 있는 것은, 어린 시절부터 간직했던 내면의 `붉은 눈'일 것이다. “부엌”과 “아궁이”처럼 소소한 일상으로부터 번지는 시인의 상상력은 말을 타고 달리는 불꽃과 말이 우는 소리로 익어가는 밥을 떠오르게 했고, “어두워지는 부엌의 이글거리는 눈”을 만들어내었다. 그러나 지금은 “아무도 자신의 붉은 눈을 태우지 않”는 시절. “세상이 슬퍼도 분노하지 않”는 시인의 성찰은 여기에서 시작된다.“한 마리 짐승이 되어 크렁크렁 울자”지극히 평온한 외관 아래 그 공격성을 숨기지 않고 있는 이번 시집은 한 편 한 편의 시가 저마다 시론으로 읽히기도 하거니와, 더욱 깊어진, 우리가 알고 있던 것 너머의 시인 “안도현”을 볼 수 있는 계기가 될 것같다.“안도현의 새 시집에서 은유는 적중하기에 실패한 표적으로 자주 제시되나 시는 실패하지 않는다. 그들 실패담이 세련된 문체와 적절하고 울림 많은 리듬으로 쾌적하기 때문이 아니라, 그 하나하나가 현실의 어둠 속에서 작은 빛을 하나씩, 미소한 가능성을 하나씩 확인해나가는 길의 이정표이기 때문이다. 시는 영원한 빛과 날마다 만나는 어둠으로 이루어진다”황현산(문학평론가)/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12-06-01

“욕망이란 화두로 사회·개인의 내면을 들여다보며 문제 모색”

`헌법의 풍경' `불편해도 괜찮아' 등 우리 사회의 다양한 문제들을 종횡무진 파헤쳐온 김두식(경북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의 신작 `욕망해도 괜찮아'(창비)가 출간됐다. 제목에서 엿볼 수 있듯이 이번 책의 주제는 바로 `욕망'. 그가 기존에 펴냈던 사회과학서나 인문서가 아닌 에세이로 그동안 법, 인권 같은 어려운 주제도 쉽고 재미있는 이야기로 풀어내온 저자가 본격적으로 `자신만의 이야기'를 들고 나온 것이다. 이 책은 `욕망'이라는 화두를 통해 우리 사회와 개인들의 내면을 들여다보며 우리가 안고 있는 문제를 모색한다. 흔히 `욕망' 하면 억누르고 감춰야 할 것으로 여겨져왔다. 그러나 저자는 욕망을 억제의 대상이 아니라 건강하게 표출하고 이해해야 할 삶의 친구로 본다. 이에 욕망을 억압하는 기제, 분출되지 못한 욕망의 부작용과 일탈자에 대한 마녀사냥 식 대응, 남녀노소가 모두 욕망을 인정함으로써 비로소 가능해지는 삶의 진정성 등에 대한 이야기를 다양한 소재와 사회현상, 그리고 본인 스스로의 고백적인 이야기로 풀어냈다.“40대 중반에 이른 저도 여전히 성장하고 있는 `현재진행형'의 사람입니다. 제가 매일 겪고 있는 생각의 변화는 20대들과 다르지 않습니다. (…) 그런 저이기에 이번 글을 통해 멘토가 아니라 여전히 자라는 과정에 있는 40대의 이야기를 나눠보고 싶습니다. 우리 안에서 아직도 정리되지 않은 채 불타고 있는 소년 소녀의 열정에 대해 말하고 싶습니다. 그 열정과 욕망을 겸손하게 인정하고 싶습니다. ”-`프롤로그'에서저자는 책에서 “고백이 없는 사회는 억압이 활개치기 좋은 토양”이 된다고 말한다. 숨막히는 규범에 억눌려 제때 건강하게 분출되지 못한 욕망은 대개 적절치 못한 타이밍에 비뚤어진 방식으로 터져나오게 마련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잘못 분출된 욕망들은 비정상적인 사회갈등을 불러일으킨다는 것.저자는 또 자신의 마음속에 남아 있는 욕망의 존재를 인정하지 못하면 중년이 돼 불륜을 저지르는 일탈자가 되거나 욕망을 숨긴 채 희생양을 찾아 헤매는 사냥꾼이 되기 십상이라고 말한다. 때문에 저자는 먼저 자신의 마음을 솔직하게 들여다보고 욕망의 존재를 인정하는 일이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한다.`욕망의 인정'과 함께 저자가 강조하는 것은 `욕망과의 공존 또는 화해'다. 어려서부터 규범을 강요받으며 자라온 우리는 대개 욕망이란 잘 숨기고 억눌러야만 하는 것으로 생각하며 살아왔다. 실제로 규범을 잘 지키는 사람만이 성공할 수 있는 사회구조다. 원래는 10~20대 때 건강하게 욕망을 분출한 후에 어른이 되어야 하는데 우리 사회에서는 욕망을 잘 억제한 사람이 `훌륭한 어른'이 되고 사회지도층이 되는 것이다. 하지만 그럴수록 욕망은 점점 더 마음속 깊숙이 숨어들어간다.그리고 욕망과 공존 또는 화해하기 위해 필수적인 것이 바로 `고백'이다. 사실 다른 사람 앞에서 자신의 이야기를 꺼낸다는 것은 생각처럼 쉽지 않은 일이다. 아무리 작은 것이라도 모든 고백에는 위험이 따르기 때문이다. 그러나 고백이 없는 사회에서는 끊임없이 다른 사람을 감시하고 비난하는 사냥만이 존재할 뿐이다. 자신의 욕망을 고백하고, 다른 사람의 고백에 귀를 기울이는 문화는 우리 사회의 희생양 메커니즘을 깨는 중요한 출발점이 된다. 때문에 저자 역시 이 글을 통해 욕망의 건강한 고백을 시도하는 것이다.이 책은 저자 개인의 욕망에 관한 이야기지만, 한편 `욕망'이라는 관점에서 사회현상을 분석하는 글이기도 하다. `유명해지고 싶다'는 저자 개인의 오랜 욕망을 인정하는 1장에서부터 스캔들을 통해 우리 사회의 희생양 메커니즘과 중년 남성의 욕망을 살펴보는 2, 3장, 청춘들에게 욕망의 정글에서 살아남는 정신승리 비법을 전수하는 4장, 가족 이야기를 통해 중산층의 은밀한 욕망과 과도한 규범을 관찰하는 5, 6장, 몸과 살의 소통이 얼마나 중요한지 살펴보는 7장, 우리가 지켜야 한다고 믿어온 규범이 실상은 허약한 토대 위에 서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8장, 그리고 책의 전체 내용을 마무리하는 9장에 이르기까지, 저자가 들려주는 욕망과 규범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는 사회문제를 바라보는 흥미로운 분석틀이 돼 준다./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12-06-01

우울한 도시의 천사를 그린 솔직한 말투가 감동으로…

지난 1991년 `현대시세계' 신인상으로 시단에 나와 1995년 첫 시집 `불온한 검은 피'로 쓸쓸하면서도 아름답고 세련된 언어를 구사한다는 호평을 받았던 시인 허연(47·사진). 그는 13년 후 두번째 시집 `나쁜 소년이 서 있다'를 통해 도시 화이트칼라의 자조와 우울을 내비치며 독한 자기규정과 세계 포착으로 독자들을 사로잡았다. 그리고 최근 문학과지성 시인선`내가 원하는 천사'로 다시 돌아온 허연은 삶의 허망하고 무기력한 면면을 담담히 응시하며, 완벽한 부정성의 세계를 증언함으로써 온전한 긍정의 가능성을 찾아 나간다. 우울한 도시의 아름답지 않은 천사를 그려내는 그의 거침없고 솔직한 말투가 읽는 이의 마음속으로 성큼성큼 다가온다. “ 마을에 바람이 심하다는 건, 또 한 명이 죽었다는 소식이다. 밀밭의 밀대들이 물결처럼 일렁거렸다는 뜻이기도 하고, 언덕 위 백 년 넘은 나무 하나가 흔들리는 밀밭을 쳐다봤다는 뜻이기도 하다. 또 아이 하나가 태어났다는 뜻이기도 하다. 어김없는 일이기도 하고 아무렇지 않은 일이기도 하다”-`바람의 배경'부분일상의 상처를 이야기하면서도비탄에 빠지지 않는 건조함 유지허연의 시는 일상으로부터의 상처를 이야기하면서도 비탄에 빠지지 않는 건조함을 유지한다. 마치 폐허를 스치는 바람처럼, 수백만 년에 걸쳐 별일 아닌 듯 있어왔다며 대수롭지 않게 말하는 생의 `지독한 슬픔'. 더 강한 자가 약한 자를 밀어내버리고 세계와 동화되지 못한 개인은 더욱더 가장자리로 밀려나고 고립되는 세계. 이 난무하는 폭력을 관통하는 바람은 풍문처럼 허연의 시를 부유하며 세계의 왜곡을 증언하고 고발한다.“사라져가는 것들을 기억하는 주문겁내지 말라고내가 다 기록해놨다고죽어도 죽는 게 아니라고남자는 외치지만여자는 죽어간다신전은 세워지고 있지만 여자는 여전히 죽어간다죽어가는 여자보다사랑을 잊지 않으려는 남자가진화상으론 하수다”-`신전에 날이 저문다' 부분시인이 일상의 관찰과 그로 인한 속내를 진솔하게 펼쳐 보이는 이유는 어떤 삶을 반추하거나 기획하기보다는 잊지 않고 이야기를 하는 일이 하나의 삶을 값지게 이어가는 일임을 보여주기 위해서다. 황량한 사막에서 2천 년 전 흘렀던 강줄기를 더듬듯, 말의 무늬와 바람의 색깔과 차가운 새벽의 냄새를 기억하듯, 그의 시는 이미 없기 때문에 삶의 본질로 남을 수 있었던 것들을 찾아내고 불러온다.“나의 소혹성에서 그런 날들은 다른 날과 같았다. 난 알고 있었던 것이다. 생은 그저 가끔씩 끔찍하고, 아주 자주 평범하다는 것을.소혹성의 부족들은 부재를 통해 자신의 예외적 가치를 보여준다. 살아남은 부족들은 시간을 기억하는 행위를 통해서만 슬퍼진다. 어머니. 나의 슬픈 마다가스카르”-`나의 마다가스카르 3' 부분허연의 공화국은 이번 시집의 `마다가스카르' 연작에서 구체화된다. 아프리카 남동쪽의 인도양에 있는 섬나라 마다가스카르는 수십 만 년 동안 대륙과 괴리되어 인간의 간섭 없이 자연스러운 진화를 겪은 공간이다. 훼손되지 않은 날것의 세계이자 영원히 고립된 공간인 마다가스카르. “긍정이나 희망이 우리를 배신할 거라는 걸” 이미 알고 있는, “생은 그저 가끔씩 끔찍하고, 아주 자주 평범”한 개인의 고독한 삶을 표상하는 이름인 것이다.“그가 남긴 복제품들은 오늘도 이 장례 습관에 익숙해진다. 강력하고 조용한 저녁에 후회란 없다. 초원에서 죽음은 객관적이다. 세상이 몹시 좋았다고 짹짹대는 새들이 북회귀선을 날아간다.”-`새들이 북회귀선을 날아간다' 부분살아 있음에도 살아 있는 것에 대한 기억을 남기지 않으려는 듯, 일상을 기계적으로 무기력하게 반복하는 현대인의 삶을 비관하는 태도에서 볼 수 있듯 허연 시의 화자는 차라리 흠집이라도 새겨진, 세계와 불화하는 기억을 갈구한다. 이처럼 삶을 너무 오래 관찰한 이 화자들은 어느 시대에서든 개인의 생은 보편의 삶이 요구하는 규칙에 매끈하게 적응하기 불가능함을, 모든 생에는 부적응의 흠집이 새겨지기 마련이라는 것을 풍문으로 실어 전한다. 조금은 서늘하지만 담담하고 조용한 이 바람이 도시를 살아가는 독자들의 어깨를 쓰다듬으며 위로로 다가가기를 기대해본다.“뭔가를 덮어놓은 두꺼운 비닐을 때리는 빗소리가 총소리처럼 뜨끔하다. 기억을 두들겨대는 소리에 홀려 빗속으로 걸어 들어간다. 빗속에 들어가 나무처럼 서 있다.언제나 어깨가 가장 먼저 젖는다. 남들보다 좁아서 박복한 어깨가 비를 맞는다. 금서의 첫 장을 열듯, 빗방울 하나하나를 본다. 투명 구슬처럼 반짝이며 떨어지는 물방울의 마지막 순간을 본다. 자결하면서 쏟아지는 유리구슬. 핏방울이 튀듯 투명 구슬이 튄다.마당 하나 가득 깨어진 구슬로 가득하다. 나는 여전히 깨어진 구슬 한가운데 서 있다. 구슬이 나를 때린다. 뼈로 들어서는 통증. 나는 뼈아프게 서 있는 나무다. 자라지 못하는 나무다”- `자라지 않는 나무' 전문/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12-05-25

“몸은 자기 바깥으로서의 존재”

자크 데리다, 알랭 바디우와 더불어 프랑스에서 가장 중요한 철학자로 평가받는 장-뤽 낭시의 `몸'에 관한 독창적 사유를 담은 책이 문학과지성사에서 `파라디그마' 시리즈로 출간됐다. `코르푸스-몸, 가장 멀리서 오는 지금 여기'(김예령 옮김)가 그것. `코르푸스(Corpus)'라는 제목이 의미하는 바는 다름 아닌 `몸'이다.그러나 이 책에서 낭시가 이야기하는 몸은 종래의 형이상학이 자기 완결적·자기 충족적이라고 생각해왔던 단독자로서의 몸이 아닌 분절화되고 밖을 향해 열려 있는, 닫혀 있지 않은 몸이다. 낭시에 따르면 몸은 끊임없이 외부에 각인되면서 열려 있는 존재다. “몸은 확장과 관련된 것”이며, “이것이 바로 핵심”이다. 우리는 보통 `영혼'이나 `정신'에 상반되는 것으로 `몸'을 떠올린다. “단순히 닫히고 꽉 찬, 자체적이고 독자적인 어떤 것”으로 생각하는 것이다. 그러나 낭시는 몸은 매스(덩어리)가 아니며, 따라서 그것이 저 자신으로 닫힌 것이 아니고 스스로에 의해 침투되는 것이며, 그때 몸은 자기 자신의 바깥에 있다고 말한다. 몸은 바로 “자기 바깥으로서의 존재”이다. 또한 영혼이란 “몸이 몸 저 자신에 대해 가지는 차이,” 즉 “자기 자신에 대한 차이이고, 이 차이가 몸을 형성”한다고 낭시는 말한다.주로 정치철학 분야에서 활발한 의견을 펼치며 `공동체'와 `소통' `접촉' 등의 주제를 독자적인 관점에서 개진해온 낭시는 이 책에서 역시 “에고 밖의 에고” “경계에서 경계로서 일어나는 세계와 나의 공동의 동요” “주체 따로 대상 따로 나뉘지 않는, 즉 주체도 대상도 아닌 채 저마다에 고유한 무게이자 저 자신의 정확한 측정으로서 저울의 양팔처럼 펼쳐지는 몸-사유의 균형”에 대해 사유한다.결론적으로 이 책에서 낭시가 시도하는 모색과 실험은 앎의 불가능성과의 접촉을 통해 비로소 열리는 어떤 사유의 가능성, 저 자신의 한계에 닿아 열림과 파열로써 개진되는 글쓰기, 그리고 언어의 경계와 얼개를 끊는 그 글쓰기의 파열을 통해 저 자신과의 결렬이라는 낯선 경험으로서만 스스로를 드러내는 `있음'의 섬광(실존). 바꿔 말해 이 책은 글쓰기=존재론=몸의 도래(창조)의 테크네라는 등식이 어떻게 성립하는가에 대한 면밀한 성찰이자 그 등식을 몸소 입증하기 위한 형성 기술의 적용물이다.몸에 관한 낭시의 사유인 `코르푸스' 외에 같은 주제로 행한 낭시의 강연 `영혼에 관하여'와 다른 곳에 수록된 `영혼의 확장', 그리고 부록 격인 `몸에 관한 58개의 지표'가 함께 묶였다./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12-05-25

툭툭 내어 주는 63분의 스님 말씀 담아

여기, 시인이 만난 숨결처럼 고요한 스님 이야기가 있다. 시인 정영은 처처에서 우직하게 수행에 전념하는 스님들을 만나뵈며, 내주시는 말씀들을 글로 적고 스님의 모습과 절 안 풍경을 사진으로 담았다. 툭툭 내주시는 스님들 말씀이 때론 눈물짓게 하고, 때론 메시지가 되어 멍한 마음을 깨우는 죽비소리처럼 다가와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전해졌으면 하는 시인의 바람이, 마침내 `누구도 아프지 말아라'(문학동네)라는 이름으로 세상의 빛을 보게 되었다.책의 특성상 시인이 만나뵈었던 모든 스님의 말씀을 담지 못한 아쉬움이 컸지만, 불교와 관계된 사람들뿐만 아니라 우울한 이 시대에 방황하는 청소년들부터 마음의 위로와 성찰이 필요한 성인에 이르기까지 모든 사람들이 공감하고, 위로받고, 행복한 마음을 느낄 수 있는 서른 분의 스님들 말씀을 먼저 본문에 담았다. 그리고 본문 사이사이에는 게송(불교적 교리를 담은 한시의 한 형태)을 실어 옛 스님들의 인생에 대한 맑고 향기로운 생각을 엿볼 수 있는 유익함도 주었다. 그리고 책의 뒷부분에는 본문에 더 이상 실을 수 없었던 서른세 분 스님들의 한 구절 말씀을 담아 독자들에게 메시지가 될 만한 그 뜻을 더했다.이 책은 우울한 시대를 살아가는 요즘 사람들의 마음을 밝게 하고, 삶의 의미를 되돌아보게 하며, 세상에 물든 아픔을 보듬어 위로해줄 것이다. 자기를 바로보지 못하고 마음이 어지러운 사람들에게는 나를 깨우고 다독이는 죽비소리가 되며, 삶과 죽음, 집착과 미혹, 존재에 대한 인식처럼 낯설고 무거운 생각들을 친근하고 익숙하게 들여다볼 수 있는 마음의 거울이기도 하다.책은 마치 스님과 마주 앉아 이야기를 나누는 듯한 진솔한 경험이 되며, 한 줌 내주신 그 말씀들은 우리 가슴에 깊게 물들어 이 세상을 여행하는 동안 `행복'이라는 향기와 늘 동행하게 될 것이다./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12-05-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