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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존재의 형식을 빌어 슬픔을 노래하다

`문학과 사회` 제1회 신인문학상으로 등단한 시인 하재연의 두번째 시집 `세계의 모든 해변처럼`(문학과 지성사)이 출간됐다. 사물과 현상, 삶의 단면을 내밀하게 포착하는 시선과 감정적 동요가 없는, 건조하면서도 절제된 시어들은 여전하지만 이번 시집을 장악하는 정서는 지극한 슬픔이다. 이러한 슬픔의 정서가 여러 가지 존재 형식을 빌어 시 속을 소리 없이 떠다닌다. 머리를 말아 올리고 속눈썹을 붙인 인형들, 꿈속에서 여러 번 살아본 적 있는 것 같은 흔적으로만 남은 유령들, 서로를 이해하지 못하는 해삼과 멍게 같은 동물들의 존재 형식들은 그러한 슬픔의 정서를 싣고 살아간다.이러한 슬픔의 정서, 센티멘털을 평론가 권혁웅은 “내면을 헐게 만드는 망치가 아니라 헐어버린 내면의 표현, 나아가 헐어버린 내면의 표현을 `결과`로서 담고 있는 하나의 기호”로 해석한다.`세계의 모든 해변처럼`에서는 실로 많은 일상의 배경과 사물이 등장한다. 그런 장면들 안에서 시인은 마치 있는 듯 없는 듯 고요하게 거한다. 음소거 된 화면 혹은 음향이 켜지지 않은 무대 같은 배경에서 그녀는 세상의 모든 면면을 조용히 그러모으면서 최소한의 감각으로 그것들을 마주한다. 그렇게 천천히 시간과 공간과 대상을 맴도는 그녀의 걸음들에는 소리가 없다.“말을 줄이는 것이 세상에 대한 조금 덜 나쁜 태도”(`인형들`)라고 말하는 그녀는 “견딜 수 있을 만큼 조금씩 살아간다”(`로맨티스트`). 어떻게 이렇게 힘을 빼고 말할 수 있을까 의심스럽지만, 대답은 금세 얻을 수 있다. 소리 없는 걸음에 더 큰 힘이 들어가는 법. 그것이 곧 세상에 대한 시인의 태도다.세계의 모든 호텔에서 체크아웃을 하며연인들은 작별한다.이제 정말 안녕이라는 듯이우리는 우리의 리듬을 이해하는 사람을 만나기 위해전 생애를 낭비한다.어제는 빙하처럼 얼어 있던 눈이녹아 흘러가고 있다.하양이 사라진 만큼의 대기를 나는 심호흡한다. - `4월 이야기`부분하재연은 우리 주변에서 일어나는 지난한 진실을 어떤 감상적 동요도 없이 똑, 똑 내뱉는다. 다만 물속에 잠겨 보일 듯 말 듯한 삶의 진실을 수면 위로 올려놓는다.그녀는 왜 그러한 평범한 진실들에 장난을 걸지 않는 걸까.이러한 시인의 태도는 `체념`의 형상을 띤다. 하지만 그것은 이내 슬픔의 정서를 불러내는 세상을 향한 움직임이 된다.나의 꿈 밖에서 일어나는 일들 안에내가 없다고 슬퍼져서는 안 된다.물구나무를 서고또 물구나무를 서도내 그림자는 같은 색깔이었다.철봉은 차갑고 녹이 슬어 간다.코에서 비린내가 난다.꼬리를 잡히지 않으려고그림자와 비슷하게 웃어본다. - `술래 놀이` 부분하지만 이때의 체념은 타자를 존중하는 시인만의 방식이다.이러한 체념은 사실은 다름 아닌, “당신이 살아 있는 사실, 그 아름다움을 아는 이는 나 하나뿐”(「안녕, 드라큘라」)이라고 고백하는 그녀의 사랑 방식이다./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12-02-24

공자와 제자들이 말하는 세상사는 이치

이남곡씨의 신간 `논어, 사람을 사랑하는 기술`(한겨레출판)은 공자와 그 제자들이 세상사는 이치, 교육, 정치, 경제, 처세, 문화 등 다방면에 걸쳐 허심탄회하게 논의한 이야기들을 묶었다.책은 논어 전문을 크게 열 가지 범주(탐구, 처세, 정치, 중도, 군자, 품성, 조직, 경제, 인생, 깨달음)로 분류하고, 10장을 다시 세부 주제별로 엮었다.`논어`가 우리 사회에 던지는 몇 가지 메시지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① 여러 사람이 미워해도, 좋아해도 반드시 살핀다공자는 사람을 평가할 때 다음과 같아야 한다고 말한다.“여러 사람이 미워하여도 반드시 살피며, 여러 사람이 좋아해도 반드시 살펴야 한다”즉 사람을 평가하는 데 함부로 단정해서는 안 된다는 중요한 진리를 일깨우고 있다. 비록 세상 사람들이 모두 “저 사람은 틀렸다”라고 비난해도 `정말 그런가?` 하고 깊이 생각해 봐야 한다. 이것을 공자는 `필찰必察`이라고 표현한 것이다. 필찰은 뭔가 흠을 잡아내는 것이 아니라, 선입견과 아집으로 잘못 판단하기 쉬운 것을 돌이켜보게 한다. 이것은 다른 사람을 평가할 때뿐만 아니라, 자신을 살펴볼 때도 중요하다.② 바른 정치의 요체인 인사(人事)가 바로 인(仁)이다아무리 제도를 잘 갖춰 놓아도 그것을 제대로 운용할 수 있는 사람이 준비되어 있지 않으면 이상적인 세계로 나아가지 못하고 오히려 여러 가지 왜곡된 형태로 변질되기 쉽다.지금의 실정을 보면 제도에 비해 사람의 의식이 뒤처지는 불균형 현상이 그 어느 때보다 두드러진다. 물론 제도도 계속 발전시켜 가야 하겠지만, 이 불균형을 시정하는 것이 이상 정치 실현의 중심 과제라 하겠다.이런 이유로 이 시대에 가장 절실한 숙제는 의식의 진보이고, 이때 진보 의식이란 공자가 말한 덕을 가리킨다. 덕으로써 정치를 한다면 주변의 흐름이 덕을 향해 움직이게 되어 있다. 이것이 순리다.③ 자신보다 못한 사람과 벗하지 말라`자신보다 못한 사람과 벗하지 말라.` 이 문장을 읽다 보면 공자 같은 사상가가 왜 이렇게 극단적인 말을 했을까 의아해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 말은 자기보다 못한 사람을 무시하라는 뜻이 아니다. 보통 사람들은 의식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든 자기가 대하기 쉬운 사람과 사귀려는 경향이 강하다.사람을 사귈 때 가르치려고 하기보다 배우려는 자세로 사귀어야 자신의 허물을 지적 받고 그것을 고치기 쉽다. 공자는 이 점을 지적한 것이다.④ 쓰이면 행하고, 안 쓰이면 간직한다세상에 `쓰임`을 구하는 이들은 이 구절을 깊이 음미해 볼 필요가 있다. 선거든 임용이든 취직이든 창업이든 뜻대로 나아가지 못할 때가 있고, 잘 나가다가도 어려움을 겪을 때가 있다.이때 자신을 있는 그대로 볼 수 있는 능력이 필요하다. 가령 낙선한 정치인이 `이제 나 같은 사람을 좋아하지 않는구나!` 하고 받아들일 수 있다면, 또 연예인이 인기가 떨어지면 `이제 대중은 이런 모습을 좋아하지 않는구나!` 하고 깨달아 현실을 제대로 본다면 새로운 진로를 모색할 수 있다./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12-02-24

이상국 시집 `뿔을 적시며`

전통적 서정과 강원도의 토속적 정서에 뿌리를 두고 시대현실과 기울어가는 농촌공동체의 아픔과 슬픔을 담백한 어조로 노래해온 이상국 시인의 여섯번째 시집 `뿔을 적시며`(창비)가 출간됐다. 7년 만에 펴내는 이번 시집에서 시인은 핍진한 현실인식을 견지하면서 자연과의 교감을 통해 우주적 질서에 순응하며 살아가는 순박한 삶의 풍경을 낮은 목소리로 전한다. 삶의 체험에서 우러나오는 따사로운 상상력과 정감 어린 묘사, 자연의 숨결이 생생하게 느껴지는 정갈한 언어들이 삶의 깊고 오묘한 의미를 되새기게 한다. 지나온 삶을 노래하는 이상국의 시는 애잔한 감정을 자아낸다. “대부분 상처이고 또 조잔한”(`그늘`) 삶 속에서 “늘 다른 사람이 되고자”(`용대리에서 보낸 가을`) 했던 시인의 꿈은 심상한 좌절을 맞는다. “사철나무 울타리에 몸을 감추고/누군가를 기다리던 한 소년”(`먼 배후`)이 “누구를 제대로 사랑한단 말도 못했는데//어느새 가을이 기울어서//나는 자꾸 섶이 죽을 수밖에 없”(`상강(霜降)`)다는 자조에 이르는 데서는 짐짓 세월의 무상함이 느껴진다. 그러나 시인은 마냥 서러움에 주저앉지 않고 “매일 얼어붙은 강을 내다보며”(`언 강을 내다보며`) 아직 누군가를 기다린다.“장에서 돌아온 어머니가 나에게 젖을 물리고 산그늘을 바라본다//가도 가도 그곳인데 나는 냇물처럼 멀리 왔다//해 지고 어두우면 큰 소리로 부르던 나의 노래들//나는 늘 다른 세상으로 가고자 했으나//닿을 수 없는 내 안의 어느 곳에서 기러기처럼 살았다//살다가 외로우면 산그늘을 바라보았다”(`산그늘` 전문)이상국은 바닷가 마을에서 자라나 생의 대부분을 그곳에서 보냈지만 특이하게도 `바다`보다는 주로 `땅`을 소재로 삼고 `흙`의 언어를 부리는 농경적 정서에 시의 뿌리를 내리고 있다.시인은 “나는 아직 대지의 소작”(`혜화역 4번 출구`)임을 자임하며, “붉은 메밀 대궁”에서 “흙의 피”를 떠올리고 “달밤에 깨를 터는”(`옥상의 가을`) 어머니를 연상하는 전형적인 농사꾼의 상상력을 보여준다.이번 시집에서 눈여겨볼 것은 국수(`국수 공양``폭설`), 장떡(`뿔을 적시며`), 라면(`라면 먹는 저녁`), 감자밥(`감자밥`), 모두부(`참 쓸쓸한 봄날`), 닭백숙(`조껍데기술을 마시다`) 등 음식을 소재로 삼은 시들이다.이러한 시편들은 우리 시사(詩史)에서 음식을 시의 소재로 즐겨 삼은 대표적 시인인 백석의 아취(雅趣)를 물씬 풍긴다. 1999년 시인이 수상했던 제1회 백석문학상의 영예에 고개가 끄덕여지는 대목이다.시인은 불교 용어 `공양`을 통해 먹는 일의 성스러움과 음식의 귀함을 새삼 환기한다. 그는 이천원짜리 국수 한그릇에서 “천릿길 영(嶺)을 넘어 동해까지 갈”(`국수 공양`) 기운을 얻고, 인간세의 도반의식을 깨친다.모진 세상살이의 정경 속에서 삶의 가치와 의미를 꿰뚫어보는 통찰력도 그러하거니와 자연의 질서와 조화를 관조하는 시인의 눈빛 또한 예사롭지 않다. 물떼새가 해안선을 따라가며 외다리로 종종걸음 치는 모습이 “마치 지구가 새 한마리를 업고 가는 것 같았다”(`다리를 위한 변명`)는 구절이나, “나뭇가지에 몸을 찢기며 떠오른 달”(`한천(寒天)`), 겨울날 “담장을 기어오르다 멈춰선 담쟁이의/시뻘건 손”(`매화 생각`), “어디서나 보이라고, 먼 데서도 들으라고/소나무숲은 횃불처럼 타오르고/함성처럼 흔들린다”(`소나무숲에는`)와 같은 시구(詩句)에서 보듯 시인의 섬세한 손끝에서 가슴 시린 절경이 고요히 태어난다./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창비 펴냄, 120쪽, 8천원

2012-02-17

`한무제 평전`

강한 개척 정신과 뛰어난 인재 관리로 세계 제국을 이룩한 한 무제의 삶과 치세를 담은 `한 무제 평전`(민음사)이 출간됐다. 한나라 제7대 황제인 한 무제는 54년간 재위하면서 활력 넘치는 개혁과 발전의 시대를 일궈냈다. 한 무제는 집권 후 무장을 강화하고 적극적으로 군대를 출병해 건국 이래 끊임없이 변경을 위협하던 흉노 세력을 약화시키고, 남월과 민월 서남이 등의 이민족을 평정해 안정적 국가 운영의 바탕을 마련했다. 또한 두 차례에 걸쳐 장건을 서역에 파견해 중국에서 중아시아와 서방 세계로 통하는 실크로드를 개척해 동서 교역과 문화 교류의 기초를 마련했다. 국내 정치 면에서도 한 무제는 과감한 정책을 통해 무제 이후 2000년간 이어진 통치 체제의 기틀을 확립한다. 이 책은 `사기`, `한서` 등 정사를 비롯해 최근의 연구 자료까지 아우르며 중국을 세계 제국으로 발돋움하게 한 무제의 치세를 세세히 재구성했다. 중국 역사상 가장 영향력 있는 황제 중 하나로 손꼽히는 한 무제의 천하 경영을 통해 현대 사회에 필요한 지도자상을 되새겨 본다.저자인 중국의 역사학자 양성민(楊生民) 전 수도사범대 교수는 로마 제국의 전성기에 비견되는 치세를 누린 한 무제의 공적과 잘못을 마치 복기하듯이 객관적으로 재구성한다.중국 최초로 통일 제국을 탄생시킨 이는 진시황이었다. 그러나 현대까지 이어져 온 통일 중국의 기초를 세운 사람은 한 무제였다.역사에 큰 족적을 남긴 지도자들이 모두 그러하듯이 한 무제 또한 인재를 중시한 제왕이었다. 카리스마 넘치는 통솔력 그리고 경력과 출신을 가리지 않고 능력을 바탕으로 인재를 채용하는 유연한 태도는 한 무제의 치세가 오래도록 이어지게 한 원동력이었다. 그리하여 무제 시대에는 정치가이자 경제학자 동중서, 정치가이자 교육가 공손홍, 대작`사기`를 남긴 역사가 사마천, 문학가 사마상여, 군사가 위청과 곽거병, 외교가 장건, 음악가 이연년 등 정치, 군사, 학문, 문화의 각 방면에서 뛰어난 인물들이 배출된다./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민음사 펴냄, 양성민 지음, 심규호 번역, 840쪽, 3만5천원

2012-02-17

푸른 눈에 비친 구한말 조선이야기

그동안 잘 알려지지 않았던 외국인들의 조선 탐방기를 철저한 사료 검토와 풍부한 상상력으로 되살린 `세상 사람의 조선여행(글항아리)`이 출간됐다. 이방인들에게 조선과 식민지 근대는 어떤 나라였을까? 그들은 무슨 목적으로 조선에 와서 무엇을 보고 느꼈으며, 그들의 기록엔 우리의 어떤 모습이 그려져 있을까? 이번 `세상 사람의 조선여행`에서는 바로 그러한 것들을 살펴보고자 했다.규장각 교양총서 제6권으로 나온 이번 책은 조선초기부터 근대시기까지 조선을 다녀간 이방인들의 여행을 다루고 있다. 세종 시기 명나라 칙사들부터 임진왜란 이후 일본의 사행과 같은 국가간 사신 왕래들부터 하멜로 대표되는 표류, 학술조사 차 배를 타고 건너온 학자들의 여행까지 다양한 형태의 여행기록을 전문가들의 꼼꼼한 사료검토와 풍부한 상상력 및 관련된 도판으로 입체적으로 다뤘다.17세기 네덜란드 선원 36명의 조선 생존기를 담은 하멜(1630~1692) 일행 표류기, 유럽의 몰락한 귀족 후손에서 조선 참판으로 도약한 묄렌도르프(1848~1901)의 인생 유전, 스웨덴 동물학자 스텐 베리만(1895~1975)의 조선 생물 탐사기 등이 다양한 사진 자료들과 함께 실렸다.조선시대에는 이웃 나라 일본과 중국인조차 함부로 들어와 사는 것이 금지됐고, 합법적으로 우리 땅에 들어올 수 있는 사람의 범위도 제한돼 있었지만, 조선에 왔다 간 흔적을 남긴 사람들이 꽤 있었다. 중국을 중심으로 한 동아시아 문명권에서 외교와 문화 전파의 통로이기도 했던 중국의 칙사와 일본 통신사가 대표적이다.`조선왕조실록`을 꼼꼼히 독해해 명나라와 청나라 칙사들의 유형과 방문 행태, 그리고 조선 측의 접대 방식을 통시적으로 살펴봄으로써 중화 체제의 단면을 엿볼 수 있다면, 임진왜란 직후에 굳이 한양에 입성하겠다는 일본 사신 일행에 대해 책임지고 접대하는 모습에서 과거의 적국에 대해서도 예를 다하는 조선의 문화를 발견하게 된다. 규장각은 조선의 22대왕 정조가 즉위한 해(1776)에 처음으로 도서관이자 왕립학술기관으로 만들어져 135년간 기록문화와 지식의 보고寶庫로서 그 역할을 다해왔다. 그러나 1910년 왕조의 멸망으로 폐지된 이후 그저 고문헌 도서관으로서만 수십여 년을 지탱해왔다. 이후 1990년대부터 서울대학교 부속기관인 규장각으로서 자료 정리와 연구 사업이 본격적으로 이뤄지게 됐고, 창설 230년이 되는 지난 2006년에 규장각은 한국문화연구소와의 통합을 통해 학술 연구기관으로서의 기능을 되살려 규장각한국학연구원으로 다시 태어났다.규장각은 조선왕조실록을 비롯한 국보 지정 고서적, 의궤와 같은 유네스코 지정 세계기록문화 유산, 그 외에도 고문서·고지도 등 다양한 기록물을 보유하고 있어서 아카이브 전체가 하나의 국가문화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고문헌에 담긴 방대한 지식과 정보를 토대로 그동안 한국학 전문가들이 모여 최고 수준의 학술연구에 매진해왔다. 최근에는 지역학으로서의 한계를 넘어서 한국학의 세계화, 그리고 전문 연구자에 국한되지 않는 시민과 함께하는 한국학으로 변신을 꾀하고 있다.학술지 `한국문화``규장각``Seoul Journal of Korean Studies` 등을 펴내고 있으며`한국학 자료총서`(총3권) `한국학 연구총서`(총18권) `한국학 모노그래프`(총40권) 등을 펴냈다./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글항아리 펴냄, 규장각한국학연구원, 432쪽, 2만3천800원

2012-02-17

세상과 나 자신의 도덕성 스스로 알게 하는 안내서

“선한 삶은 완벽하고 거부할 수 없는 완전한 상태라기보다 더 나은 균형을 찾으려는 시도다. “모든 것으로부터 도망치고 두려워하며 어디에서도 견뎌내지 못하는 사람은 비겁한 사람이지만 그 무엇도 두려워하지 않고 무작정 덤비는 사람은 무모한 사람이다. 또 모든 향락을 즐기고 아무것도 포기하지 않는 사람은 무절제한 사람이며, 거친 농부처럼 모든 즐거움을 거절하는 사람은 무감각한 사람이다.” 인생의 기술은 완전한 도덕적 선을 이룩하기를 바라는 비인간적인 것이 아니라 살면서 적절하게 반응할 수 있도록 자신의 감성을 교육하는 것이다” (179쪽)착한 사람. 어감은 좋지만 조금 바보 같은 느낌이 든다. 왜? 현재를 주도하는 세계관으로는 `착한 사람`이 그다지 훌륭한 사람이 아니기 때문이다. 세상은 `성장`을 위해 효율성을 강조하고 `이기주의`를 권장해왔다. `행복`을 `성장`과 동일선상에 놓게 하는 프레임을 만들고, 남을 밟고 올라서야 비로소 성공한 인생이라고 말해왔다. GDP를 예로 들어보자. 현재 거의 모든 국가에서 GDP로 국가의 성공과 국민의 행복을 측정한다. 하지만 GDP로는 국민의 행복을 논할 수 없다. 이는 단지 경제학의 목표다. GDP는 훌륭한 선생님, 친절한 이웃, 좋은 사회보험, 부의 균등한 분배는 고려하지 않는다. GDP가 올라가면 삶의 질이 올라간다고? 터무니없다. 자연보호구역과 거주지 주변으로 고속도로가 개발될 때도 GDP는 상승한다. 소음 공해, 스트레스, 불만 때문에 수백만 명이 의사나 카운슬러를 방문한다고 해도 GDP는 상승한다. 국가에서 사유 주차공간을 폐지하고 그곳에 차를 세우는 모든 사람에게 돈을 요구할 때도 GDP는 상승한다. 쓰레기 더미가 넘쳐나서 새로운 쓰레기 처리장과 소각로가 필요할 때도 GDP는 상승한다. 하지만 다행히, 사람들은 오로지 `위`만을 쳐다보다가는 디스크가 올 수 있다는 간단한 상식을 깨달은 것 같다. `성장`이라는 이름에 가려진 독재와 이기주의 사이에서 새로운 가치를 원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바닥을 드러내고 있는 성장의 마법에 겁먹었는지도 모른다. 이제 우리는 `협력` `함께` `동반` 같은 사라져간 가치를 원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세계적 베스트셀러 저자이자 독일 통일 이후 가장 대중적인 철학가로 평가받고 있는 리하르트 다비트 프레히트의 신작 `내 행복에 꼭 타인의 희생이 필요할까(21세기북스)`가 나왔다.총 3부로 이루어져 있는 이 책은 1부 `선과 악`, 2부 `이상과 현실`, 3부 `사회, 그리고 도덕` 순서로 전개된다. 구체적으로 1부에서는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처럼 철학이라면 빠질 수 없는 이들의 이름부터 등장한다. 하지만 그들의 이름에 질렸다고 돌아서지 말기를 당부한다. 그리고 독자 스스로가 나는 착한 사람이고 싶은데 세상은 왜 그렇지 않을까 고민하기 시작할 즈음 2부를 시작한다. 2부에서는 인간의 편협함을 보여주는 다양한 면모를 자세히 소개한다.3부에서는 드디어 저자의 `주장`이라 생각되는 이야기가 등장한다. 사회가 병들어가고 있다고 진단한 저자는 사회를 회생시키고 모두가 행복하게 잘 살기 위해 해야 할 고민, 행동, 판단에 대해 이야기한다. 국가 최고 목표를 국민의 행복으로 하는 부탄, 사업가와 경제, 진짜 성공, 시민의식, 도시와 국가의 일, 민주주의의 변화와 공공책임을 되찾는 법 등에 대한 이야기로 타인을 희생양으로 삼지 않고 보다 행복하고 나은 삶을 사는 방법을 안내한다.저자는 다양한 방식으로 선과 악에 대해 논하고, 우리의 선택과 실행, 사회의 요구에 대해 이야기한다. 기꺼운 마음으로 글을 좇다보면 이 책을 “다양한 질문들에 대한 답이자 스스로 도덕을 발견하게 하는 안내서”라고 소개한 저자의 말처럼 독자는 세상과 자신의 도덕에 대한 사색과 어렴풋한 답 또한 얻게 될 것이다./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12-02-10

“혁신과 창의의 본질은 혁명이 아닌 진화”

조직에서 기꺼이 위험을 감수하려는 진취적 기상과 혁신 의지를 유지하는 것은 쉽지 않다. 규모가 커지고 시간이 지날수록 조직은 더욱 위험 회피적인 성향으로 변하게 마련이다. 또한 기업가정신을 발휘하려는 노력을 포기하고 적극적인 불굴의 의지를 굽히며 중년의 관료주의에 안주한다.잘 다듬어진 경영 공식에 중독되고 새롭고 낯선 것을 회피하며 태도와 행동이 점점 더 경직되어가는 관료주의 조직은 `어떻게 사업을 성장시킬 것인가`라는 실질적인 질문은 거의 던지지 않는다. 이런 질문에 대한 답에는 상상력이 풍부한 마케팅과 연계된 성공적인 `혁신`이 포함돼야 한다.올 새해 벽두에 열린 다보스 세계경제포럼에서 하루 24시간, 일주일 7일도 부족한 25/8의 시대에 진정으로 필요한 것은 `창의적 혁신`이라는 주장이 나왔다. 인터넷과 미디어의 범람으로 끊임없이 생산되는 정보의 홍수 속에서 같은 시간이라도 더 효율적으로 활용해 기존의 제품과 서비스를 능가하는 혁신적인 제품과 서비스를 개발하는 기업이 경쟁우위에 서게 된다는 논리다. 이를 위해서는 조직 내의 획기적인 아이디어를 수확하고 이를 성과로 연결할 수 있어야 한다.세계적인 리더십 대가 존 어데어가 최근 펴낸`팀은 혼자 뛰지 않는다`(청림출판)는 혁신하고자 하는 조직이 새로운 아이디어를 수확하는 데 필요한 내부 시스템을 만들고 그 아이디어를 실제 성과로 연결하는 법을 알려주는 책이다. 이 책은 리더와 구성원이 조직의 창의적 혁신을 어떻게 이룰 것인지에 대한 구체적인 방법을 담아냈다. 혁신과 창의성에 대한 이해, 혁신적인 조직의 철학과 구조 및 경영 전략, 팀 창의성의 특징과 구성원들이 서로간의 아이디어를 취합해 더 나은 것으로 만드는 방법, 팀 창의성을 성장시키는 데 필요한 리더십, 그리고 창의적인 리더와 창의적인 팀원이 되는 데 필요한 영감을 알기 쉽게 풀어냈다./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12-02-10

애잔한 삶의 풍경과 감추어진 세계의 진실을 맑은 서정의 詩心으로 노래하다

끊임없는 시적 갱신을 통해 치열한 시정신과 문학적 열정을 보여주고 있는 이시영 시인의 열두번째 시집 `경찰은 그들을 사람으로 보지 않았다`(창비)가 출간됐다. 5년 만에 펴내는 이번 신작 시집에서 시인은 간명한 언어에 담긴 여백의 미가 돋보이는 밀도 높은 단형 서정시, 삶의 애잔한 풍경 속에 서정과 서사가 어우러진 산문시, 책의 한 대목이나 신문기사를 옮겨 적거나 재구성한 인용시 등 다양한 형식을 선보이며 개성적인 시세계를 펼쳐 보인다.삶의 속살을 들여다보는 예리한 통찰력과, 현실과 밀착된 “서정시 본연의 깊은 내면성과 높은 심미적 완성도”(염무웅, 추천사)를 갖춘 시편들이 오래도록 잊히지 않는 깊은 인상과 여운을 남긴다.이전 시집 `우리의 죽은 자들을 위해`(창비)에서 `인용시`라는 새로운 형식을 선보였던 시인은 이번 시집에서도 그와 맥을 같이하는 작품들을 통해 어떠한 구호나 주장을 내세우기보다는 `사실`을 가공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전달`함으로써 “감추어진 세계의 진실을 드러내”(`시인의 말`)고자 한다.맑은 서정의 시심을 잃지 않으면서도 `참여시인`으로서의 면모를 보여주는 시인의 관심은 무척이나 너르게 표출된다. 가깝게는, 철거민 다섯명의 목숨을 앗아간 용산 참사(`경찰은 그들을 사람으로 보지 않았다`),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 촛불시위 현장에서 “두 대의 경찰 살수차를 온몸으로 막아낸” `유모차맘`(`직진`), 구제역 파동으로 1백여 마리의 소를 살처분해야 했던 한 축산농가의 비극(`고급 사료`) 등 지금-이곳의 참담한 현실을 꿰뚫어보고, 나아가 “하루 16시간 노동에 시달리는” 인도의 어린이노동자들(`어린이노동`), 반정부 시위대에 대한 유혈 진압과 “인간 사냥”이 자행되던 2011년의 리비아 사태(`2011년 2월 24일, 리비아에선 무슨 일이 일어났는가?`), “망원경과 도시락 등을 준비해” 가자지구의 “전쟁 현장을 구경하러” 와서는 `브라보!`를 외치는 이스라엘인들의 비정함(`아, 이런 시는 제발 그만 쓰고 싶다`) 등 전지구적으로 확장되면서 야만과 불의, 전쟁과 폭력으로 얼룩진 세계의 뒷모습을 상기시킨다.`은빛 호각`(2003) 이후 `인물시`의 한 전범을 보여줬던 시인은 아릿한 기억 속에서 살아숨쉬는 인물들을 다시금 불러낸다. 아침에 나갈 때마다 아내(박용길 장로)에게 “소년처럼 한쪽 눈을 찡긋했다”는 문익환 목사(`조사받다가 남산 수사관들에게서 우연히 들은 말`), 수업 대신에 학교 앞 선술집에서 오장환과 이용악 시인의 이야기를 들려주다가 눈자위가 “촉촉이 젖어”들던 서정주 시인(`시론`), 1973년 지하신문 결심공판에서 “한마디로 좆돼부렀습니다!”라는 최후진술로 법정을 잠시 웃음바다로 만든 김남주 시인(`최후진술`), 남산 중앙정보부에 끌려갔을 때 손님에게 예의를 지키라며 소주를 달라고 했던 김지하 시인(`소주 한잔`) 등의 일화는 은근한 미소를 자아내며 이 시집을 읽는 재미와 즐거움을 더해준다.시인의 따뜻한 시선 속에 은은한 사람 냄새와 해학이 깃든 이러한 인물시편들은 한 개인의 자전을 넘어 지난 시대에 대한 생생한 증언이기도 하다./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12-02-10

세 무희의 사랑과 좌절, 그리고 열정

▲ 가와바타 야스나리인도의 타고르에 이어 동양에서 두번째이자 일본 최초의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가와바타 야스나리(川端康成, 1899~1972). 일본의 전통적인 아름다움을 표현해 독자적인 문학 세계를 구축한 작가로 널리 알려진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장편소설 `무희(舞姬)`(문학과지성사)가 출간됐다.가와바타 야스나리는 일본 제국주의 시기에 작품 활동을 시작했지만 당대의 사회적 상황에 대해 실천적인 행보를 하지 않았으며, 문학작품을 통해서 자신의 정치적 성향이나 입장을 뚜렷하게 표현하지도 않았다. 그보다는 일본이 군국주의로 치닫던 1930년대에 본격적으로 `무용소설`들을 발표하면서 `순수한 미의 세계`를 추구하였다. 야스나리는 이후 20여 년 동안 무용을 소재로 작품을 쓰며 무용과 무용가에 대한 자신의 끝없는 애정을 드러냈다.`무용은 보이는 음악이고 움직이는 미술이며, 육체로 쓰는 시(詩)이자 연극의 정화이다`라고 말하는 야스나리에게 무용은 외적인 육체의 미를 강조하는 것에 그쳐서는 안 되며 아름답고 순수한 정신과 더불어 춤추는 것이 이상적인 춤이었다.`무희`는 1950년을 배경으로 전후의 혼란 속에서 세 무희의 무용과 사랑, 가정이 전쟁으로 인해 굴절되고 다시 일어서는 모습을 섬세하게 그리며 가와바타 야스나리 무용소설의 계보를 잇는다.그러나 이 소설은 탐미주의의 거장인 야스나리의 예술적 성취에만 머물러 있지 않아 여타의 그의 무용소설과는 차별성을 보인다. 이 작품은 가와바타의 무용소설의 정점을 보여줄 뿐만 아니라, 이후 일본의 전통미를 중심으로 작품 세계를 전환해가는 과정에 있는 작품으로서 가와바타 문학을 이해하는 데 있어서는 중요한 지점에 위치하고 있다. 이 작품을 통해 야스나리는 풍부한 서정과 섬세한 감각뿐만 아니라 패전 후 서서히 붕괴해가는 일본 사회의 모습과 무기력한 현대인의 비극을 보여준다. 또한 등장인물들의 입을 통해 일본의 전통적인 아름다움, 고전의 세계, 영원성, 정신적인 것 등을 지향하는 작가의 의지와 흔적을 드러낸다.`무희`는 1950년 12월부터 1951년 3월까지 총109회에 걸쳐서 아사히신문의 연재소설로서 발표되고, 같은 해에 출판된 장편소설이다.소설의 주인공인 나미코는 젊은 시절엔 프리마 돈나를 꿈꿨지만 이루지 못하고, 그 딸인 시나코에게 무용에 대한 애정을 쏟고 있는 인물이다. 자신의 가정교사였던 야기와 애정 없는 결혼 생활을 20여 년 동안 이어오고 있다. 그녀의 실제 연인은 결혼 전부터 알았던, 이미 다른 가정이 있는 남자 다케하라다. 야기와의 결혼 생활에서의 해방과 다케하라와의 새로운 사랑을 꿈꾸지만 우유부단하고 소심한 그녀의 성격으로 인해 쉽게 결단을 내리지 못한다.나미코의 딸인 시나코는 유명 발레단인 오이즈미 발레단의 수석 무용수다. 그녀는 어머니의 재능과 예술적 소양을 물려받은, 장래가 촉망되는 무용수였으며 유럽에 유학을 갈 계획이었으나 전쟁으로 인해 그 꿈이 좌절된다. 소녀 시절 자신에게 무용을 가르쳤던 선생님 가야마를 향한 동경과 연정을 품고서, 그와의 추억을 간직한 채 살아간다.나미코의 제자이자 시나코와 자매처럼 지내던 도모코는 어려운 가정 형편으로 나미코 곁에서 일을 도우며 무용을 배우던, 진흙 속에 묻힌 진주 같은 무희이다. 그녀는 시나코가 입던 낡은 코트를 얻어 꿰매어 입어가면서도 밝게 생활하며 자신의 재능을 꽃피워간다. 그러나 가정이 있는 한 남자를 사랑하게 되어, 그 남자의 아이들의 치료비를 마련하기 위해 스스로 무용을 포기하고 유흥가 아사쿠사에 가서 스트리퍼가 된다.지금 우리의 시선에서 보면 답답하게 보일 수 있는 세 인물들은 시대와 사회에 정면으로 대항하지도 못하고, 그렇다고 마음으로부터 순응하지도 못하며 우유부단하게 살아왔다.가정문제뿐만 아니라 일적으로도 나미코는 무대의 꿈을 단념한 과거의 무희이고 시나코는 아직 프리마 돈나가 되지 못한 미래의 무희일 뿐이며, 소설 속에는 그녀들이 타인의 무대를 보는 것만 묘사되고 스스로의 힘을 승화시키는 무대는 그려지지 않는다.이러한 인물들이 결국은 어느 쪽으로든 자신의 선택을 하게 된다. 이 과정에서 드러나는 현대인의 비극과 극복의 아름다움은 무희나 여자의 경험을 뛰어넘은 본질적인 것으로 깊은 감동을 남긴다./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12-02-02

왕릉으로 해부한 조선 오백년 역사

이규원씨가 펴낸 `조선왕릉실록`(글로세움)은 조선의 왕릉을 통해 역사와 풍수를 한데 풀어낸 책이다. 조선왕릉이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후 단순 왕릉기행서들이 출간돼 안내서로서 역할을 하고 있다. 하지만 이 책은 왕릉을 통해 조선의 역사를 재미있게 스토리텔링해 역사의 이면을 보여주고, 권력과 욕망의 움직임을 통해 역사의 흐름을 읽게 하면서 이를 통해 독자들에게 역사의 산 교훈을 들려주고 있다. 조선 오백 년 역사를 왕릉을 통해 투시경처럼 들여다보았고 여기에 해박한 풍수까지 곁들여 읽을거리를 더했다는 것에 또 다른 가치가 있다. 그래서 이 책은 조선왕릉 기행서이자 조선 역사서이며 조선의 풍수까지 담겨 있는, 570쪽에 달하는 방대한 분량의 조선왕릉 백과사전이다.이 책은 남한에 있는 40기의 모든 왕릉과 역사의 중요한 맥을 이어주고 있지만 소홀하기 쉬운 주변 왕족의 무덤 7기를 일일이 답사했고, 북한에 있는 제릉과 후릉, 2기를 포함 총 49기 조선왕릉의 생생한 모습을 담았다. 나름의 특색을 간직하고 있는 왕릉은 권력의 무상함과 여인의 한, 굴곡진 인생사와 역사의 흐름을 말해준다. 또한 비슷한 듯 확연히 다른 모습을 간직한 사진은 좋은 자료이자 왕릉 체험의 기회를 제공한다.책은 단순한 왕릉기행서에만 만족하지 않고 역사를 스토리텔링하고 여기에 풍수까지 녹여냈다. 이외에도 왕릉 참배 시 지켜야 할 예절, 왕릉의 구조적 이해, 왕릉 풍수, 찾아가는 길 등 다양한 읽을거리도 수록했다.왕릉은 그 왕의 일생을 말해주고, 왕의 일생을 따라가면 난마같이 얽힌 조선의 역사가 보인다. 저자 이규원씨 역시 왕릉을 따라가며 조선의 역사를 하나하나 짚어냈다. `조선왕조실록`, `완산실록`, `선원보감`, `연려실기술`을 수도 없이 보며 잘 알려지지 않은 조선의 역사까지 풀어냈다.무엇보다 이 책의 가장 큰 특색은 오랫동안 풍수전문기자로 활동하며 풍수와 깊은 인연을 맺어온 저자는 다른 책에서 풀어내지 못한 왕릉 풍수를 풀어냈다는 것이다.조선 개국 때부터 과거시험 과목의 음양과에 포함됐던 풍수는 조선역사의 향방을 거머쥔 중요한 열쇠였다. 풍수사학자들은 조선왕릉 3대 명당 중 하나인 영릉 터에 세종대왕이 안장되면서 조선의 국운이 1백 년이나 연장됐다고 한다. 또한 흥선대원군은 왕이 나온다는 천자지지의 명당 터에 아버지 묘를 이장해 아들 고종을 왕으로 만들었다. 오페르트 도굴사건으로 유명한 남연군 묘가 바로 이곳이다. 모두 풍수를 모르면 이해할 수 없는 역사의 한 자락이다./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12-02-02

맑고 단단한 언어로 시대의 우화 풍자 그려

▲ 소설가 황정은2010년 한국일보문학상을 수상하며 문단의 큰 주목과 기대를 모으고 있는 소설가 황정은(36)의 두번째 소설집 `파씨의 입문`(창비)이 출간됐다. 시적인 압축이 돋보이는 간결한 언어운용의 미덕이 완성도를 더했고, 폭력적인 세계를 간신히 살아내는 인물들을 감싸안는 소설적 윤리는 더욱 단단해졌다. 문학에 대한 고민과 현실에 대한 고민이 단단히 맞물려 응축된 신작이다.한국문학에서 황정은은 지금 평단과 독자들이 가장 주목하는 젊은 작가 중 하나다. 그는 첫 소설집 `일곱시 삼십이분 코끼리열차`에서 독특한 상상력과 더불어 현실과 환상의 절묘한 결합으로 그 개성을 인정받았고, 첫 장편 `百의 그림자`로 단숨에 한국일보문학상을 수상하며 `고도의 윤리성을 바탕으로 새롭고도 완성도 높은 소설미학을 구축했다`는 고평을 받았다. 그의 발표작들은 사회정치적 관심과 소설적 미학이 성공적으로 합치된 사례로 즐겨 거론되며, 편편이 소재와 소설적 관심에서 다양하고 의미 깊은 변화를 보이며 눈 밝은 독자들을 사로잡아왔다. 그런 9편의 단편이 묶인 이번 소설집 `파씨의 입문`은 그가 받는 주목이 합당함을, 나아가 그가 2010년대 한국소설을 이끌어갈 유력한 작가임을 확인해주는 증거라는 평가다.잘 알려져 있다시피, 그의 소설은 간결하고 정제된 언어와 함축적인 대화가 먼저 눈길을 끈다. 한밤에 벌어지는 친지들 간의 갈등을 그린 소설집의 첫 단편 `야행(夜行)`부터 그렇다. 소설은 정황에 대한 구구한 설명 없이 간결한 행동 묘사와 생생한 대화만으로, 어쩌면 특별할 것도 없는 사건을 낯설고 강한 여운을 남기는 한 편의 부조리극으로 만들어낸다. 그뿐 아니라 모든 소설이 그렇다. 무심한 듯 능청스러운 듯, 간결하고 리듬감있게 흐르는 문장과 대화에 압축된 단단한 긴장감이야말로 황정은 소설의 매력이다.환상이나 기괴한 존재 없이 생활에 밀착한 현실적인 이야기를 다루는 작품들도 각별하다. `양산 펴기`는 일일 바자회에서 양산을 파는 아르바이트에 나선 주인공의 하루를 그린다. 순정하고 선한 황정은 소설의 인물이 마주하는 생활전선의 현장이 담백하고 생생하게 묘사되고, 어느덧 바자회 장소 건너편에 시위 인파가 등장해 양측의 소리가 겹쳐 울리는 장면에 이르러, 별안간 현실의 부조리가 낯선 모습으로 드러나며 웃을 수도 울 수도 없는 비애를 자아낸다.현실에 밀착한 또다른 작품 `디디의 우산`의 주인공 디디는 어렸을 때 도도의 우산을 빌려 쓰고 되돌려주지 못한 일을 오랫동안 마음의 빚으로 담아두고 있다가 어른이 되어 다시 만난 도도에게 자기 우산을 빌려준다. 주인공은 그 일을 계기로 도도와 함께 생활하게 되고, 비슷비슷하게 팍팍한 현실에 짓눌려 살아가는 동기생 친구들과 어울린다. 소설의 마지막에서, 무력하지만 선량한 이들이 함께 모여 웃는 장면은 서글픈 가운데서도 드물게 따뜻한 위로와 연대의 기운을 느끼게 하는 특별한 장면이다.그 위로와 연대의 바탕에는 “모두의 팔이나 다리나 머리를 밟지 않도록 조심하며” 이들에게 나눠줄 우산을 찾아 신발장을 열어보는 주인공의 마음이 있다. 황정은 소설의 온기는 그렇게 표나지 않게, 그러나 어디에나 드러나 있다. 항아리의 말을 끝내 무시하지 않고 나침반을 들고 서쪽을 찾아가는 `옹기전`의 주인공이 그렇고, 치욕을 감내하고 있는 노인의 발치에서 묘, 하고 우는 `묘씨생`의 고양이가 그러하며, 횡단보도 건너편에서 팻말을 걸고 선 시위대 남자를 가만히 바라보는 `양산 펴기`의 화자 역시 그렇다. 이처럼 작가는 간신히, 겨우 존재하는 이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그들을 차분히 오래 바라본다. 그리고 천천히, 사려 깊게 말을 고르며 그들의 이야기를 소설의 언어로 완성해나간다. 그의 맑고 단단한 언어는 그 고집스러울 만큼 사려 깊음의 산물이기도 하다.마지막으로 실린 표제작 `파씨의 입문`은 결국 이 모든 것의 기원에 관한 이야기이다. “파씨는 파씨일 뿐, 파씨로서 발생하고 부단히 파씨가 되고자 노력하면서 사라질 뿐”이라고 선언하는 주인공 파씨 혹은 작가, 언어 혹은 소설의 시작에 관한 인상적이고 매혹적인 이야기가 이 작품에 담겨 있기 때문이다. `파씨의 입문`이란 제목은 그러므로 황정은이라는 이름의 소설세계의 선언이기도 하고 그 세계로의 초대이기도 하다./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12-02-02

고요한 삶의 풍경과 싹트는 생명의 소리

삶을 바라보는 깊은 통찰력과 섬세하고 감각적인 시어가 반짝이는 선명한 이미지 묘사로 통상적인 서정시와는 다른 서정시의 새로운 경지를 열어온 문인수(67·사진) 시인의 여덟번째 시집 `적막 소리`(창비)가 출간됐다.불혹을 넘긴 나이에 늦깎이로 등단한 이후 미당문학상 등 여러 문학상을 수상하며 “황혼의 전성기”(정현종 시인)에 이른 듯 왕성한 창작열을 보여주는 시인은 이번 시집에서 “폐경기를 모르는 시인”이라는 젊은 시인들의 존경 어린 감탄에 걸맞게 “한편 한편 아름답다는 말로밖에 표현할 길이 없”(신경림`추천사`)는 빼어난 시편들을 선보인다.문인수의 시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대개 중심에서 비켜나 소외되어 있다. “죽은 남자를 부여잡고” “하염없는 넋두리에 빠져 있”는 미망인(`개펄`), “도심 인파 속을 홀로/온몸을 구부려” “다만 골똘히 걷는” 노인(`지팡이`), “뭉툭한 왼팔에 바구니를 걸고/성한 오른손으로 뻥튀기”를 파는 “전직 프레스공”(`파군재의 왼손`) 등. 시인은 그들이야말로 삶의 진경을 보여주는 사람들이라 여겨 이들의 애절한 사연을 끌어안는다. 그리고 한편으로 고요한 삶의 풍경을 그려내며 그 속에서 싹트는 생명의 소리를 귀담아듣는다.“적막도 산천에 들어 있어 소리를 내는 것이겠다./적막도 복받치는 것 넘치느라 소리를 내는 것이겠다./새소리 매미소리 하염없는 물소리, 무슨 날도 아닌데 산소엘 와서/저 소리들 시끄럽다, 거역하지 않는 것은/내가 본래 적막이었고 지금 다시/적막 속으로 계속 들어가는 중이어서 그런가,/그런가보다. 여기 적막한 어머니 아버지 무덤가에 홀로 앉아/도 터지는 생각이나 하고 있으니, 소주 몇잔 걸치니, 코끝이 시큰거려 냅다 코 풀고 나니,/배롱나무꽃 붉게 흐드러져 왈칵!/적막하다. 내 마음이 또 그걸 받아 그득하고 불콰하여 길게 젖어 풀리는/저 소리들, 적막이 소리를 더 많이 낸다.”(`적막 소리`부분)“비린 가난”(`햇잎`) 속에서 변두리의 삶을 살아온 사람들을 어루만지는 시인의 손길은 부드럽기 그지없으나, 연민에 빠지지 않고 일정한 거리에서 그들의 그늘진 삶을 관찰하면서 하나의 풍경으로 형상화하여 깊은 울림을 자아낸다. 그에 못지않게 사물을 바라보는 시인의 시선 또한 예사롭지 않다. “해 넘긴 달력을 떼”어낸 자리를 보며 시인은 “쌀 떨어진 것”처럼 허탈함을 느끼다가 “무슨 문이거나 뚜껑”인 것처럼 “열고 나가”거나 “쾅, 닫고 드러눕는” 곳으로 생각한다.“해 넘긴 달력을 떼자 파스 붙인 흔적 같다./네모반듯하니, 방금 대패질한/송판냄새처럼 깨끗하다./새까만 날짜들이 딱정벌레처럼 기어나가,/땅거미처럼 먹물처럼 번진 것인지/사방 벽이 거짓말같이 더럽다./그러니 아쉽다. 하루가, 한주일이, 한달이/헐어놓기만 하면 금세/쌀 떨어진 것 같았다. 그렇게, 또 한해가 갔다./공백만 뚜렷하다./이 하얗게 바닥난 데가 결국,/무슨 문이거나 뚜껑일까./여길 열고 나가? 쾅, 닫고 드러눕는 거?//올해도 역시 한국투자증권,/새 달력을 걸어 쓰윽 덮어버리는 것이다.”(`공백이 뚜렷하다`전문)평론가 권혁웅은 “세속의 삶을 점묘하는 시인의 탁월한 문체를 문인수류(類)라 불러도 좋을 것이다. 단문 사이에 툭툭 던져넣는 무심한 잠언들, 구어적인 문장들의 정점에 출현하는 문어적인 요약문들, (통상의 여운이 아니라 울음을 끌고 다니는) 뒤가 깨끗이 잘려나간 결구들, 인물의 일대기마저도 장면화하여 감치는 솜씨야말로 문인수의 시가 우리 시에 소개한 새로운 문체”라고 말한다. 그의 시는 필부필부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되 미학적으로는 엄격함을 추구한다. 그는 고통을 쉽게 미화하지 않는다. 가난한 삶에 대한 연민 없는 공감은 문인수의 시가 펼쳐보이는 서정의 진수다.“개펄을 걸어나오는 여자들의 동작이 몹시 지쳐 있다./한 짐씩 조개를 캔 대신 아예 입을 모두 묻어버린 것일까,/말이 없다. 소형 트럭 두 대가 여자들과 여자들의 등짐을,/개펄의 가장 무거운 부위를 싣고 사라졌다.//트럭 두 대가 꽉꽉 채워 싣고 갔지만 뻘에 바닥을 삐댄 발자국들,/그 穴들 그대로 남아/낭자하다. 생활에 대해 앞앞이 키조개처럼 달라붙은 험구,/함구다. 깜깜하게 오므린 저 여자들의 깊은 하복부다.(`만금의 낭자한 발자국들`전문)/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12-01-27

핑퐁외교로 죽의 장막 뚫은 키신저 그가 말하는 `以夷制夷` 중국외교

1971년 비밀리에 중국을 방문해 미중 수교의 첫 장을 연 헨리 키신저가 중국의 정치·외교사를 조명한`헨리 키신저의 중국 이야기`(민음사)가 출간됐다. 첫 방문 이후 수십 차례 중국을 오가며 중국 지도자들과 접견하고 대중국 외교를 성공적으로 이끈 헨리 키신저는 아흔의 나이에도 여전히 날카로운 식견을 드러내고 있다. 이 책에서 그는 자신이 소장하고 있던 중국 정상들과의 개인적 대화 기록과 최근 해제된 기밀문서들을 바탕으로, 중국과 근대 유럽 세력과의 첫 만남, 중소 연합의 형성과 와해, 한국 전쟁, 닉슨 대통령의 첫 방중, 톈안먼 사건 등 중국 현대사의 전환점이 된 여러 사건들을 통찰력 있는 시선으로 그려 낸다. 나아가 문화 혁명의 물결이 잦아들고 세대교체가 이루어지는 현재 중국을 바라보며 앞으로 중국이 나아갈 길, 그리고 미국과 아시아 주변국들의 변화될 역학 관계에 관해서 짚어 본다.1971년 7월9일, 수십 년간 높게 둘러쳐 있던 죽(竹)의 장막을 걷고 중국 땅에 첫 발을 내디딘 헨리 키신저는 서구식 외교와는 확연히 다른 중국의 외교 스타일에 적잖이 당황했다. 이때껏 지나치게 규칙에 얽매였던 다른 공산주의 국가들의 협상 스타일을 기대했던 터라 중국의 호의와 친절, 심지어 여유작작한 방문 스케줄까지 모두 예상을 빗나간 것이었다. 곧 그는 그것이 서양, 특히 미국과는 비견될 수도 없는 장구한 역사에서 비롯된 전통적 중국 외교였음을 깨달았다.그래서`헨리 키신저의 중국 이야기`는 이러한 중국의 전통적 외교 스타일을 파악하는 데서부터 시작한다. 중국의 대외 전략은 기본적으로 방어에 있었다. 다른 주변 이민족이 뭉쳐서 중국에 도전하는 일만 없으면 되는 것이었다.이러한 뿌리 깊은 전통에서 나타난 것이 `이이제이(以夷制夷)` 정책이고 이것이 지금까지도 중국 외교에서 큰 부분을 차지한다고 키신저는 분석했다. 또한 그는 어느 한쪽의 세력을 결정적으로 무너뜨리고 영웅주의적인 공적을 쌓기보다는 섬세하고 간접적인 전략으로 상대적 우위를 끈질기게 축적해 나가는 것이 중국의 스타일이며 이는 바둑(웨이치) 게임에서 상징적으로 나타난다고 말한다. 키신저는 이러한 `이이제이,` `웨이치` 외에도`손자병법`, 공자 등의 키워드를 통해 중국 외교 전통을 만들어 낸 핵심 개념들을 짚어 내면서 국제 질서에 대한 중국의 생각은 어떠한지, 그리고 근대 이후 국제 무대에서 보인 중국의 여러 행보들은 무엇에서 기인한 것인지 밝히고자 한다.한편 키신저는 첫 방문 이후 성공적으로 미중 수교를 맺고 나서도 수십 차례 중국을 오가며 마오쩌둥과 저우언라이, 덩샤오핑과 장쩌민 등 중국 현대사를 이끈 지도자들과 직접 만나 대화하고 교류했다. 키신저는 그들과의 대화를 모두 기록으로 남겼으며, 그 기록은 이 책의 중요한 원천이 됐다.2011년의 끝자락,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사망했다는 소식이 들리자 각국은 북한과 더불어 중국의 행보에도 촉각을 기울였다. 김정일 사망 이전에 미국에서 출간된 이 책에서도 키신저는 앞으로 대중국 정책과 전략에서 주요하게 다뤄야 할 이슈로 경제 문제와 북한 핵 문제를 꼽았다. 중국의 삼각 외교와 한국 전쟁을 주제로 다루고 있는 5장에서 키신저는 김일성의 전쟁 도발을 둘러싼 중국과 소련의 머리싸움을 세밀하게 보여 준다./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12-01-27

`권력의 통제 수단` 달력을 둘러싼 숨은 이야기

`시간과 권력의 역사`(문학동네)는 “율리우스가 달력 개혁에 성공한 이유는 무엇일까?” “일주일은 언제부터 7일이 되었을까?” “21세기의 시작은 2000년일까? 아니면 2001년일까?” “요일은 어째서 행성의 이름을 따서 지어졌을까?” “일본이 그레고리력을 받아들인 이유는 한 달 치 월급을 주지 않으려 했기 때문일까?”와 같은 질문에서부터 시간을 표시해주는 달력이 얼마나 강력한 권력의 수단이었는지에 대한 문제까지 달력을 둘러싼 숨은 이야기들을 들려준다. 다시 말해 단순하게 달력의 역사를 이야기하는 책이 아니라 문화사적인 측면에서 달력에 접근한다.권력 통제의 수단으로 달력이 이용된 경우는 수없이 많다. 그중 대표적인 예는 기원전 2세기 고대 로마에서 일어났다. 사람이 많이 모이는 장날에 민회가 열릴 경우 정치적인 문제가 발생할 수 있기 때문에 권력자들은 장날과 민회가 열리는 날이 겹치지 않도록 날을 계속해서 구분하는 것으로 해결책을 찾았다. 장날을 민회가 열릴 수 있는 파스(fas)가 아닌 네파스(nefas)로 규정해 사람이 많이 모이는 장날에는 민회를 열 수 없도록 한 것이다. 이 법안은 기원전 287년 제정된 호르텐시우스법에서 확인된다. 이러한 사례는 황제가 바뀔 때마다 통치에 용이하도록 수시로 발생했다.근대에 들어서도 달력을 통치 도구로 이용한 사례를 찾아볼 수 있다. 1873년 일왕 정부는 단 20일의 공지 기간만 두고 그레고리력 개혁을 단행해버렸다. 다음 해 달력이 이미 인쇄 중이었는데도 말이다. 천황 정부가 개혁을 이렇게 서두르는 데에는 이유가 있었다. 태음태양력에 따르면 1873년에 윤달이 있는데, 이때는 모든 관료에게 한 달 급료가 추가로 지급되어야 했다. 따라서 태음태양력을 따르게 되면 일본은 한 달 치 급여 지급으로 1873년의 일본 국가 재정에 큰 어려움이 따를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개혁을 통해 이 문제가 해결된 것이다. 줄어든 12월은 달력 교체까지 단 이틀만 들어 있었기 때문에 급료를 지급할 필요가 없었다. 그래서 일본 정부는 개력을 통해 재정적인 어려움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12-01-27

세상만사 마음먹기 달렸다

`마음 수업`(휴)은 오늘날 공교육 현장을 비롯한 수많은 단체의 인성교육 프로그램으로 각광받고 있는 원불교 마음공부의 핵심원리와 구체적 실천법을 밝힌 책이다. 마음공부는 안심입명의 도를 찾아 밖으로 헤매는 사람들의 시야를 안으로 돌려 자기 마음을 바라보게 하고, 마음의 원리를 깨우침으로써 스스로의 힘으로 마음병의 근원적인 해결책을 모색할 수 있는 길을 열어준다.마음공부인들 사이에서 숨은 멘토로 알려진 저자는`현대인의 마음치유`를 위해 봉사하는 것을 당신 인생의 가장 큰 서원으로 삼아왔으며, 이 책은 바로 그 결실이라 할 수 있다. 마음공부의 효과는 이미 다양한 현장에서 입증됐지만, 무엇보다 10여 년간 원불교라는 거대 종단을 이끌면서 보여준 굳건한 리더십과 구체적 활동상, 다양한 시국현안에 대한 깊은 통찰, 그리고 수십 년간 당뇨와 간경화라는 양극의 병을 몸에 지닌 채 유지해온 건강과 자상한 인품으로 대변되는 저자 개인의 삶이야말로 가장 확실한 증거라고 사람들은 입을 모은다.아침에 일어나서 밤에 잠자리에 들 때까지, 나의 일거수일투족을 좌우하는 것은 바로 나의 마음이다. `일체유심조`라는 말처럼 자연계의 변화를 제외한 세상사 모든 일은 결국 사람들이 각자의 자리에서 마음을 어떻게 먹느냐에 달려 있다. 그 개개인의 마음, 마음들이 모여 오늘의 역사를 만들어간다. 지금까지의 모든 인류사가 그렇게 이뤄져왔다. 다시 말해서 한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주체들이 어떤 마음을 내느냐에 따라 역사는 이렇게 될 수도 있고, 저렇게 바뀔 수도 있다. 남북문제부터 환경문제, 우리가 코앞에 두고 있는 온갖 시국현안들도 마찬가지다.결국 나의 마음 하나를 고쳐먹는 일은 나의 흥망성쇠와 생로병사와 행·불행을 넘어 세상사까지 좌지우지하는 일생일대의 문제인 것이다.그런 이유에서 저자는 지금처럼 중요한 시국일수록 동시대를 살아가는 구성원으로서 각자의 마음주권을 회복해야 하는 책임이 얼마나 막중한지 거듭 돌아봐야 한다고 강조한다.이제 마음의 원리와 마음 주권을 회복하는 일의 중요성을 알았다면 남은 것은 수행뿐이다. 절수행, 좌선수행, 위빠사나, 요가수행, 수식관, 참선수행…. 온갖 수행법이 난무하는 시대이다. 쇼핑하듯 수행현장을 기웃거리는 사람들도 눈에 띈다. 심해지면 마음병이 수행병으로 옮아갈 조짐도 보인다.`나에게 맞는 수행방법`과 스승은 따로 있을까? 저자는 아니라고 말한다. 우리의 과제는 강을 건너는 것(깨달음)이며, 이때 어떤 배(수행법)를 탈 것이냐는 큰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다.다만 한 가지, 속세를 떠나 조용히 공부해야 한다는 인식에 대해 저자는 크게 우려한다. 결국 마음공부는 이 세상에서 더욱 잘 살기 위한 방편이다. 그런데 세상 속에서 수행하지 않는 것은 운전연습을 위해 거리로 나가기를 거부하는 것이며, 수영을 배우기 위해 물가로 나가지 않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저자는 일상 속에서 부딪치는 모든 사건과 경계를 마음공부의 소재로 삼기 때문에 일상과 수행을 구분하지 않는다.또한 영성과 육체의 동시 단련, 정기훈련과 상시훈련, 일 있을 때와 일 없을 때 등 모든 경우의 수를 세분화한 것이 마음공부의 가장 큰 특징이다. 어느 한쪽만을 고집할 때 조각인격을 낳을 수 있는 우려를 애초에 차단하여 누수가 없도록 철저히 막은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어떤 수행법을 취하든, 마음공부인이라면 누구나 배워야 할 기본기를 담고 있는 교과서라고 할 수 있다./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12-01-13

`귀를 기울이면`

질펀한 서민들의 삶 담담하게 그려한국문단의 가장 공신력 있는 장편소설의 산실 `문학동네소설상`의 제17회 수상작`귀를 기울이면`(문학동네)이 출간됐다. 오랜 시간이 지난 지금까지도 날카롭게 빛나는 문장들로 사랑받는 은희경의`새의 선물`과 전경린의`아무 곳에도 없는 남자`, 치밀하고 발랄하고 경쾌한 필체 속에 소설쓰기에 대한 진지한 고민, 삶에 대한 진지한 고민을 녹여냈던 이해경의`그녀는 조용히 살고 있다`, `진정, 이야기란 무엇인가`에 대한 또하나의 해답을 내보이며 폭발적인 서사의 힘을 보여준 천명관의`고래`, 역사에 대한 전복적인 해석과 불온한 발상, 상식을 벗어난 신선한 상상력이 돋보인 박진규의`수상한 식모들`과 김언수의`캐비닛`, 그리고 다시, 극적인 효과를 겨냥한 과장기나 포즈에 대한 유혹으로부터 초연한 서술의 품위를 보여준 김진규의`달을 먹다`, 마성적 힘이 이끄는 매혹적인 성장소설인 김기홍의`피리 부는 사나이`까지, 항상 문학의 최전선에서 세계를 향한 날카로운 펜 끝을 겨눠온 전통이 올해에도 어김없이 이어진다.`귀를 기울이면`은 한 소년에 관한 이야기이다. 모자라고 아둔한 줄로만 알았던 그 아이의 비범한 재능이 발견되는 순간, 고단한 삶을 겨우 이어가던 아이의 부모와, 전성기가 지나 폐업 직전의 프로덕션의 피디와, 고사 직전인 재래시장을 살려보려는 상인회의 총무가 엎치락뒤치락하며 어떻게든 `잘` 살아보려고 고군분투한다. 속물적 욕망에 길들어 몸살을 앓는 세계, 그 속에서 펼쳐지는 소시민들의 이 따뜻하고 현실적인 비극은 우리로 하여금 이상한 뭉클함을 자아내게 한다. 시종일관 철저히 다큐적인 서술로 삶의 부조리와 소외를 다루고 있는 이 소설은 사회의 여러 문제점들에 대해 결코 둘러말하지 않는다. 눈에 보이는 것, 물질·돈으로 교환할 수 있는 것들이 우리 생활 대부분의 기준이 되어버린 사회, 어느새 그 자체로 미덕이 되어버린 `돈-경제`의 가치…. 이미 이 사회 안에, 우리 안에 익숙하게 자리잡아버린 것이기에, 제 아이를 이용해 어떻게든 가난에서 벗어나보려는 부모의 구차하기까지 한 행동들이나 모든 것들이 숫자로 환원되는 이 사회에서 인정받고 싶어 안달이 난 모습들은 씁쓸하기만 하다.소설의 마지막 장을 덮고 나면, 남들이 듣지 못하는 소리를 들을 수 있는 바보아이 일우의 귀를 통해 들려오는 어지러운 세상의 만휘군상, 권태와 습속으로 하루하루를 겨우겨우 버텨나가는 현대인들의 악다구니 섞인 노래가 이제 우리들의 무뎌진 귀에도 조금씩 들리기 시작할 것이다./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문학동네 펴냄, 조남주 지음, 328쪽, 1만2천원

2012-01-13

`검은개들의 왕`

성장의 비밀 찾아가는 세 소년의 모험이야기 거푸집처럼 일정한 틀이 고착화되고 있는 우리 청소년문학에 새로운 힘을 불어넣어 줄 제2회 문학동네청소년문학상 대상 수상작`검은개들의 왕`(문학동네어린이)이 출간됐다. `검은개들의 왕`은 세 소년의 모험을 통해 숨은 성장의 비밀을 찾아가는 이야기다. 엄마의 죽음과 아버지의 부재로 삼촌 집에 의탁된 나. 나는 언젠가부터 두 개의 달, 즉 달의 환영을 목격하는 인물이다. 엄마가 무허가 춤 교습소를 한다는 이유로 `춤쟁이 아들`이 된 동치. 동치는 엄마에 대한 책임감과 자신의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 소문난 싸움꾼이 되어 버린다. 또 하나의 문제적 인물 홍두. 홍두는 하루에 똥을 세 번 누고 위험을 감지하는 순간 영험한 가스를 분출하는 `똥쟁이`다. 부모를 잃고 할아버지와 단둘이 사는 홍두는 선천적 소아마비로 세 손가락이 짜부라져 있다. 자신의 손가락 치료를 위해 예수님, 부처님, 성모님을 찾아다니는데도 그분들에게서 응답이 없자, 마침내 귀신에게로 눈을 돌리고 귀신 전문가의 길로 들어선다.세 소년의 공통점은 현실에서 모성의 결핍을 안고 산다는 것이다. 하지만 풍요로운 상상력으로 결핍을 채우며 망설임 없이 모험 속으로 달려 나간다. 그런 소년들에게는 포악한 검은개조차 두려움의 대상이 될 수 없다.개성 넘치는 인물 표현과 그로테스크한 장면 묘사는 이 소설의 가장 큰 강점이다. 금속 이빨을 번쩍이며 경찰복을 입고 애국가를 부르며 다니는 정신이상자 금속경찰, 색색의 천조각을 담은 보따리를 보물처럼 여기는 미친 할머니 등 생생한 인물들이 곳곳에 배치되어 있다./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문학동네어린이 펴냄, 마윤제 지음, 276쪽, 1만1천원

2012-01-13

`오늘의 일본 문학:혼돈을 딛고 세계로`

패전 후 일본 현대문학의 성장과 원동력 일본 현대 문학은 1945년 일본의 패전에서부터 시작한다고 볼 수 있다.`오늘의 일본 문학-혼돈을 딛고 세계로`(웅진지식하우스)에서는 폐허에서 고도성장을 한 시기, 문학 역시 폐허의 혼돈 속에서 어떻게 몸부림을 쳤는지 일본 현대 문학의 성장 과정을 자세하게 그리고 있다. 또한 이런 시기를 거쳐, 세계적인 베스트셀러 작가를 배출하게 되는 원인들도 함께 유추해 볼 수 있다.1부에서는 전후 `전쟁`이라는 극적인 체험과 `패전`이라는 상실감 속에서 몸부림치는 일본 문학가들의 작품과 삶을 살펴본다.`풍요의 바다`를 쓰고 국가와 사회의 변화를 촉구하며 할복자살한 미시마 유키오, 문학적 행위의 연장선상에서 연인과 동반 자살한 다자이 오사무 등 시대를 극복하고자 한 작가들의 치열한 문학 세계를 만나볼 수 있다. 2부에서는 `학생 운동`과 `경제적 성장` 이라는 모순된 키워드로 고민이 깊어지는 1960년대 일본 문학을 다룬다.`만엔원년의 풋볼`로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양심적 지식인 오에 겐자부로로 대표되는 이 시기의 일본 문학은 모순된 시대를 살아가기 위한 고뇌를 담고 있다는 점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3부는 자본주의 경제의 발전을 바탕으로 피어나기 시작한 대중 문학의 여러 모습들을 살펴본다. 일본의 사회파 추리 소설을 탄생시킨 마쓰모토 세이초, 역사 소설의 황금기를 연 일본 국민 작가,`료마가 간다`의 시바 료타로 등 인기 작가들의 `인생을 사는 법`이 펼쳐진다. 4부에서는 세계적인 베스트셀러 작가가 된 나카가미 겐지, 무라카미 하루키 등 일본 현대 문학을 만들고, 현재 이끌어 가고 있는 일본 최고의 작가들과 작품들을 만나본다.이 책을 읽고 나면, 현재 일본의 작가들이 일본을 넘어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와 프랑스를 포함한 유럽으로 뻗어나갈 수 있었던 문학적-시대적 원동력에 대해 윤곽을 그려볼 수 있을 것이다./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웅진지식하우스 펴냄, 224쪽, 3만원

2012-01-13

터키의 근현대 역사 3代 100년의 이야기

`고요한 집` 민음사 펴냄, 오르한 파묵 지음, 이난아 번역, 280쪽, 1만2천원 2006년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터키 작가 오르한 파묵(60)의 장편소설`고요한 집(Sessiz Ev)`(전 2권, 민음사)이 출간됐다. 이 소설은 파묵이 발표한 두 번째 소설(1983년)로 그 스스로 “내 젊은 날의 영혼이 반영된 소설”이라고 밝힌 바 있다. 이스탄불 근교 소도시에 살고 있는 아흔 살 된 할머니의 집에서 세 남매가 보낸 일주일을 그린 이 작품은 터키에서 `마다라르 소설상`, 프랑스에서 `유럽 발견상`을 수상하면서 파묵이 처음으로 전 세계 문학계에 알려지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그의 첫 소설`제브데트 씨와 아들들`이 토마스 만을 연상케 하는 전통적 사실주의 기법을 보였다면, 이 소설은 포크너나 버지니아 울프와 같은 모더니즘적 서술을 보여 준다. 다섯 명의 인물을 화자로 등장시키는 `다층적 서술 방식`이나 현재와 과거를 오가는 할머니의 회상에서 나타나는 의식의 흐름 수법 등 파묵 문학이 변화되어 가는 모습도 볼 수 있다. 역사의 의미를 회의하는 역사학자, 모든 것을 새로운 눈으로 보게 된 혁명주의자 여대생, 미국에 가서 부자가 되는 것이 꿈인 고등학생, 약 한 세기 동안 급변해 온 터키 역사를 목격한 할머니, 그녀와 40년 동안 기묘한 동거를 해 온 하인, 급진적 민족주의자가 되어 세상을 바꾸려 하는 십대 소년을 통해, 터키 근현대 약 100년간의 정치, 사회, 문화의 변화와 그 속에서 개인들이 겪게 된 비극을 파묵만의 스타일로 풀어냈다.오르한 파묵은 `제브데트 씨와 아들들`로 `밀리예트`신문 소설상을 받으며 화려하게 등단했다. 1985년 발표한`하얀 성`으로는 “터키 작가 오르한 파묵, 동양에서 새로운 별이 떠올랐다.”라는 극찬을 받았다. 그사이에 발표한 두 번째 소설이 바로`고요한 집`이다.`제브데트 씨와 아들들`이 도스토예프스키의 `카라마조프 가의 형제들`, 토마스 만의 `부덴브로크 가의 사람들`을 연상시키는 전통적인 사실주의 소설이었다면, `고요한 집`은 다층적 서술 기법이나 의식의 흐름 기법 등을 사용해 그의 문학 세계가 변화하기 시작하는 모습을 보여 준다. 즉 이 소설은 파묵 특유의 문학이 무르익는`검은 책`, `내 이름은 빨강` 등으로 이어지는 변화의 단초를 보이는 작품으로 볼 수 있다.1980년 9월에 터키에서는 군사 쿠데타가 일어나는데, 이 소설은 그 두 달 전인 7월을 배경으로 하고 있어 작품 전체에 정치적 긴장감이 깔려 있다. 또한 전체 32장을 각 장마다 다른 화자가 등장해 1인칭 시점으로 서술함으로써 각기 다른 상황에 처한 인물들의 목소리가 생생하게 표현되고, 지식인에서부터 하인, 90여 년 전과 현재의 이야기를 동시에 들을 수 있다. 다섯 명의 화자는 아흔이 된 할머니 파트마, 그녀의 두 손자 파룩과 메틴, 하인 레젭, 레젭의 조카 하산이다. 이들을 통해 다양한 계층의 목소리와, 100년 가까운 시간 동안 터키의 정치, 사회, 문화가 변화해 온 역사가 생생하게 증언된다.바랜 종이 더미를 읽어 나갈수록 그런 기분이 서서히 펼쳐지기 시작한다. 긴 항해를 하다가, 항해 내내 당신을 답답하게 했던 안개가 걷히고, 나무와 돌, 새 들을 품은 육지가 갑자기 모습을 드러내 감탄하듯, 읽어 갈수록 펼쳐지는 종이들 사이에 서로 맞물려 있는 수백 만 개의 삶과 이야기가 갑자기 내 머리에 떠오른다.파묵은 `고요한 집`에서 약 100년에 걸친 삼대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파트마와 셀라하틴, 도안과 레젭, 세 손주들과 하산이 각 세대를 대표하는 인물들이다. 셀라하틴은 루소나 볼테르 등 서양 철학자들의 이름을 입에 달고 다니는 맹목적인 서양 추종자였으며, 파트마는 남편의 뜻을 묵묵히 따르기는 하지만 “나는 동양에서 나온 첫 번째 서양인이야, 서양이 된 첫 번째 동양!”이라고 하는 그의 사상과 행동은 이해하지 않고 냉담한 태도를 취한다. 그는 서양에 비해 발전하지 못한 동양을 구제하려 하는데, 이를 위해서 그는 40년 가까이 백과사전을 집필한다. 그러나 이 기획은 완성되지 못하고, 그는 동양을 위해서, 그리고 자신의 아내와 아들을 위해서 아무것도 실행하지는 못한 채 숨을 거둔다. 오히려 하녀에게서 두 아들을 낳음으로써 아내와 아들에게 평생 자기 대신 짊어져야 할 짐을 남기고 떠난다. 파트마는 이러한 남편 옆에서 끝까지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 더더욱 냉담해지고, 어린 시절의 추억을 회상하며 과거 속으로 침잠한다./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12-01-06

아픈 청춘과 소시민을 위한 희망찬가

`아무도 펼쳐보지 않는 책` 창비 펴냄, 김미월 지음, 260쪽, 1만1천원지난해 제29회 신동엽창작상을 수상하며 촉망받는 젊은 작가로서의 저력을 확인한 김미월(35)이 신작 소설집 `아무도 펼쳐보지 않는 책`(창비)을 펴냈다. 소설집`서울 동굴 가이드`와 장편소설`여덟번째 방`에서 이 시대 청춘들의 아픔과 고민을 보듬어온 작가는 두번째 소설집`아무도 펼쳐보지 않는 책`에서 한층 물오른 필력과 젊은 감각, 더욱 깊어진 통찰로 독자들의 기대를 모은다. 김미월의 소설에는 아무도 눈여겨보지 않는 사람들이 등장한다.`아무도 펼쳐보지 않는` 책을 `남몰래 펼쳐보는` 이 작가의 섬세한 눈길은 남다른 온기를 머금고 있다. 내세울 것 하나 없는 인생이라고 해서 섣불리 보잘것없는 삶으로 재단해서는 안된다는, 너무나 당연하지만 이제는 무시당하기 일쑤인 이 작은 진리를 작가는 차분하고도 곡진한 목소리로 전한다. 표제작에서, 번번이 꿈을 포기하고 “아무도 펼쳐보지 않는 책” 같은 인생을 살고 있는 편집자 `진수`는 다니는 회사에서 능력을 인정받지도 못할뿐더러 계약을 따내기 위해 만난 유명 시인과의 술자리에서 행패를 당한다. 하지만 동갑내기면서도 자신보다 훨씬 유능한 팀장에게 거리감을 느끼던 진수가 자신의 득실은 따지지 않고 위험에 처한 팀장을 구하는 장면에서 독자는 얼뜨기처럼 보이던 진수의 도덕적인 면모와 순수한 용기에 마음이 끌리고 만다. 마찬가지로 `정전(停電)의 시간`에서 초고층 주상복합아파트에 밀려 사라질 위기에 놓인 공원에서 일하는 `병태`는 공기업에 다니고, 치과를 개업하고, 대형 외식업체를 경영하는 소위 `잘나가는` 친구들에 비해 턱없이 가진 것이 부족해 보인다. 그러나 세면장에 갇힌 귀뚜라미를 딱하게 여기는 마음결과, “동백꽃 한 송이가 제 그림자를 조준하며 천천히 떨어지”(187면)는 순간을 응시할 줄 아는 눈썰미는 김미월만이 찾아낼 수 있는 병태의 귀한 본모습이다. `아무도 펼쳐보지 않는 책`의 등장인물들은 어딘지 볼품없는 겉모습이지만 작가는 끈기있게 그들을 지켜보고 지지한다. 소설 속 상황과 별 다르지 않은 처지의 수많은 보통 사람들은 작가의 이러한 태도에, 언젠가 나타날 누군가도 자신을 알아보고 `펼쳐봐`주리라 희망하며 안도한다./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12-01-06

詩로 풀어가는 윤동주의 생애와 시대상

`윤동주, 별을 노래하는 마음` 한겨레아이들 펴냄, 정지원 글, 임소희 그림어린이를 위한 인물 평전 시리즈 `한겨레 인물탐구`일곱 번째 책`윤동주, 별을 노래하는 마음`(한겨레아이들)이 출간됐다. 앞서`김구``간디``다윈``마틴 루터 킹``전태일``제인 구달`을 펴낸 `한겨레 인물탐구` 시리즈는 출시 이래 독자들의 꾸준한 반응을 얻고 있다. 쉽고 균형 있는 서술과 다양한 시각 자료, 여기에 인물과 시대를 바라보는 따뜻한 시선이 더해져 독창적인 어린이 평전으로 자리매김했다.윤동주는 우리나라 사람들이 가장 좋아하는 시인 중 한 명이다. 일제강점기였던 1917년 북간도에서 태어나 짧은 생애를 보내고 1945년 일본에서 옥사했다. 간결하고 아름다운 시어의 절정을 보여주는 윤동주의 시들은 초·중·고 국어 교과서에 20편이 넘게 수록되었으며 지금까지도 많은 사람들에게 애송되고 있다.이 책에서는 `서시` `별 헤는 밤``자화상` `쉽게 씌어진 시`같은 대표작을 포함해 총 28편의 시를 본문에 직접 인용했다.작가는 시를 한 편씩 놓고 독자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작품에 나타난 시대상과 인물상을 찾아본다. 시로 시인의 생애를 풀어 가는 방식이다. 책을 쓴 정지원 작가 역시 시인으로 특유의 감성과 표현을 잘 살려 윤동주 시를 해설하고 정감 어린 시선으로 시인의 삶을 탐색했다.`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괴로워했던` 맑은 마음을 닮아 가길, `별을 노래하는 마음`을 가슴에 품을 줄 아는 따뜻한 사람이 되길 작가는 이 책을 읽는 어린이들에게 당부하고 있다./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12-01-06

미래사회 모순 비판하는 청소년 성장소설

`메멘토 노라` 한겨레틴틴 펴냄, 앤지 스미버트 지음, 강효원 옮김 미국에서 살아가는 십대들의 일상을 다룬 청소년 소설`메멘토 노라`(한겨레틴틴)는 `알약 하나로 손쉽게 잊고 싶은 기억을 잊을 수 있는` 첨단 사회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하지만`메멘토 노라`가 보여 주는 가정 폭력, 계급에 따른 분리, 정보로부터의 소외, 끔찍한 현실에 눈감고 고통과 공포 속에서 소비에만 더욱 열중하는 사람들의 모습은 가까운 미래 사회라기보다 현대 미국 사회, 아니 더 나아가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보편적인 현대 사회의 알레고리로 읽힌다.사회가 사람들, 특히 `약자`들에게 저지르는 폭력에 눈감고 아름다운 세상이 기다리고 있는 `문 뒤로` 들어갈 수 있었던 노라가, 이제껏 만나지 못했던 친구들을 만나고, 보이지 않았던 세계에 눈떠가는 모습은 아주 흥미롭다.`메멘토`를 만드는 노라와 미카, 윈터의 `위험한 시도`는 어느 모험 소설에서도 맛보기 힘든 긴장감을 선사하며, `기억하는 쪽`을 택함으로써 고통스럽지만 사회의 본 모습에 눈떠가는 십대 청소년들의 모습은 훌륭한 성장소설의 면모를 보여 준다. 뿐만 아니라 우리 사회의 모순을 맹렬히 비판하는 사회 비판 소설로도 읽을 수 있다. 특히 미카가 노라를 잘 알고 있었던 데 반해, 노라가 TFC를 찾기 전까지 같은 학교에 다니고 있었던 미카와 윈터의 존재를 전혀 알지 못하고 있었다는 것은 세상과 약자들을 보이지 않는 존재로 치부하는 기득권의 상징으로까지 읽힌다.버지니아 공대와 케네디 우주센터에서 오랫동안 일해 온 앤지 스미버트의 첫 번째 장편소설인`메멘토 노라`는 `2011 청소년도서관협회 선정 도서`로 뽑혔으며, 청소년문학협회(YALSA) 선정 `2012 최고의 청소년 소설` 후보에 올랐다./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12-01-06

일상에 지친 우리를 위한 금과옥조 같은 삶의 지혜

`지금 이순간 그대로 행복하라` 더난 펴냄, 틱낫한 지음, 272쪽, 1만4천원`지금 이 순간 그대로 행복하라`(더난)는 베트남 출신 고승이자 평화운동가인 틱낫한사진 스님이 삶의 지혜를 전하는 책이다. 이 책은 전쟁과 같은 하루하루를 살고 있는 현대인들에게 짧은 명상의 글을 통해 한 주 한 주 새로운 생명의 에너지를 심어준다. 참여불교의 주창자로서 세계 평화를 위해 어려운 사람들을 돕는 일에 앞장서고 있는 틱낫한 스님은 이들의 고통을 목도하면서 “아픔을 통해 인간은 행복할 수 있다”는 진리를 깨달을 수 있었다고 한다.`지금 이 순간 그대로 행복하라`는 틱낫한 스님의 이런 삶의 깨달음을 담아낸 책으로 바쁜 일상에 지친 우리들의 마음을 따뜻하게 보듬어주고 위로한다.1년을 53주로 나눠 주 단위로 성찰에 도움이 되는 말을 실었다. 365일 한 주 한 주 담긴 그의 글 속에서 우리는 삶에 대한 감사와 여유, 그리고 잔잔한 기쁨을 느낄 수 있다. 또한 스쳐 지나가기 쉬운 주변의 아름다운 모습들을 담은 사진을 통해 `지금 이 순간의 삶`이 우리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순간이며, 신이 주신 선물이라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다.등산을 할 때는 아래를 보아서는 안 된다. 위를 보아서도 안 된다. 두렵기 때문이다. 삶도 등산과 마찬가지가 아닐까? 우리는 누구나 한 번은 죽게 된다. 세상을 호령하던 권력자도 결코 죽음을 피해갈 수 없다. 우리도 마찬가지다. 언젠가는 죽음이라는 대전제 앞에 마주하게 된다. 그냥 지금 머물러 있는 그 자리만 보자. 죽음도, 삶의 끝도 너무 깊게 생각하지 말고 지나온 세월도 많이는 돌아보지 말고. 다가오지 않은 내일을 너무 많이 걱정하지 말자. 그저 오늘 사랑하는 사람들과 편안한 하루를 깊이 호흡하며 보내는 것, 그것만 생각하자. 이런 삶이야말로 진정으로 행복한 삶이다.많은 사람들이 지나간 과거에 연연하고 아직 다가오지 않은 미래를 두려워한 나머지 지금 이 순간의 행복들을 놓치고 살고 있다. 밥을 지으면서도 숲길을 걸으면서도 잠든 아기의 얼굴을 보면서도 우리는 충분히 행복할 수 있다. 지금 느끼는 소소한 기쁨의 감정이야말로 당신이 소유한 행복, 그 자체가 아닐까?틱낫한 스님의 금과옥조 같은 삶의 지혜와 아름다운 사진이 함께하는 이 책은 독자들에게 지금 눈앞의 행복을 가르쳐주고 있다. 아름다운 풍경과 인물 사진을 통해 1년 365일 새로운 한주를 여는 우리들에게 꼭 필요한 기운을 불어넣어 줄 것이다.틱낫한 스님은 부처의 가르침을 사람들이 좀 더 쉽게 행할 수 있도록 명상을 구체적인 연습과 방법으로 전환시켰고, 그런 연습과 방법은 온 세상이 겪고 있는 고난과 시련을 우리가 성장하기 위한 자양분으로 바꾸어 놓았다./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11-12-28

빵과 포도주, 예수와 십자가…

`빵만으로는 살 수 없다`(열림원)는 지난 2007년 극적인 회심을 경험하고 기독교에 귀의한 이어령(77) 전 문화부장관이 펴낸, 텍스트로서의 성경읽기의 새로운 독법을 제시하는 책이다.이어령 전 장관은 문학을 가르친 교수로서, 그리고 기호학자로서의 호기심으로 틈틈이 성경을 연구해, 성경도 얼마든지 문학작품처럼 쉽게 읽고 재미있게 음미할 수 있는 텍스트임을 증명해 보이고 있다. 성경 읽는 즐거움을 전하기 위해 이어령 전 장관이 택한 방식은 성경에 등장하는 상징적인 아이콘들을 키워드 삼아서 문화사적 맥락과 컨텍스트를 추적해나가는 것이다. 마치 문학작품처럼 이야기를 구성하는 요소, 그리고 플롯 등을 하나하나 풀어서 해석해보는 것이다. 그렇게 하다 보면 성경 속에 숨겨진 놀라운 매혹과 조우하게 된다는 것이다. 저자는 성경읽기의 한 방편으로 시학적인 독서법을 주문하면서 성경에는 시학에서 주로 쓰이는 수사법이 가득하므로 이를 염두에 두고 읽어야만 성경이 감춰둔 섬세한 맛을 느낄 수 있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수사적 표현의 가장 비근한 예로 `빵`의 다양한 용례를 언급하고 있다. 저자는 성경 원서에 있는 빵을 우리 한글 성경에서는 떡이라고 번역했음을 주목한다. 그리고 그것이 `제유법`이라는 수사법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데서 온 오류임을 밝힌다. 주기도문에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의 영어원문을 보면 양식이 일용할 빵(daily bread)로 기록돼 있음을 확인할 수 있는데, 성경에서 빵은 양식 전체, 더 확장해서 의식주의 모든 물질적 생활을 상징하는 제유적 의미로 쓰였다는 것이다. 그것은 물론 유목을 기초로 했던 유대문화의 산물이다. 그렇기 때문에 빵처럼 식탁 위에 매일 오르는 음식물을 어쩌다가 명절 같은 잔칫날에나 먹는 떡으로 옮긴다면 제유적 의미가 사라진다는 것이다. 아울러 이와 같은 오류는 단어 하나의 잘못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고 곧 성경의 수사 구조 전체가 망가지는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다고 지적한다. 제유법이라는 수사학적 대칭물로 쓰인 빵을 통해서 성경 전체가 가지고 있는 거대한 수사학적 세계의 세밀한 구조와 상징 코드에 대한 섬세한 관찰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책의 표제를 `빵만으로는 살 수 없다`라고 붙인 데서 알 수 있듯이 저자는 성경이 가지고 있는 풍부한 문화적 상징성을 설명하기 위해 `빵`이 가지고 있는 의미 분석에 상당한 공을 들이고 있다. 빵을 떡으로 번역할 경우 앞에서 말한 것처럼 수사학적 오류를 범하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성경에서 가장 중요한 장면인 `최후의 만찬`의 의미 역시 제대로 전달되기 어렵다는 것이다. 최후의 만찬에는 빵과 포도주는 어울리는 조합인데, 떡과 포도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 그렇다고 해서 빵과 포도주를 우리에게 익숙한 떡과 막걸리로 번역한다면 최후의 만찬의 장면에서 성체의 비유 코드와 상징은 없어지고 말 거라는 것이다. 막걸리는 적색이 아니기 때문에 포도주가 가지고 있는 피의 상징성을 잃고 아울러 고유한 메시지도 희석된다는 것이다.이와 같은 수사학적 독법과 함께 성경을 읽을 때 중요한 것으로 저자는 문화와 생활양식에 대한 이해를 꼽는다. 예를 들면 최후의 만찬은 유월절 전날에 열렸는데 유월절에는 희생양을 바치는 유대인의 풍습을 알지 못하고서는 최후의 만찬이 갖는 의미를 제대로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유월절을 추석이나 단오로 번역할 수는 없는 것이다.빵에 이어 눈물, 새와 꽃, 아버지, 탕자, 양, 집, 목수, 접속, 낙타, 포도, 제비, 비둘기, 까마귀, 독수리, 지팡이, 사막과 광야, 예수, 십자가 등 성경에 빈번하게 등장하는 대표적인 키워드들을 프리즘 삼아서, 성경 읽기와 해석의 새로운 각도를 제공한다./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11-12-28

신비한 성가곡과 스릴러 소설의 절묘한 만남

`미세레레` 문학동네 펴냄, 장 크리스토프 그랑제 지음, 이세욱 번역, 388쪽, 1만3천원`미세레레`(문학동네)는 프랑스 서스펜스 스릴러 소설의 `황제`로 불리는 장 크리스토프 그랑제(50)의 일곱번째 장편소설이다.`검은 선`이후 3년 만에 국내에 소개되는 이 소설은 의문의 살인사건에서 출발해 음악과 종교, 건축 등 다양한 소재를 넘나들며 서구의 과거 어두운 역사로 뻗어나간다. 그랑제 소설의 특징인 저널리즘은 더욱 치열해졌으며, 현미경을 통해 들여다본 듯한 생생한 묘사가 작품 곳곳에 배치돼 있다.`미세레레`는 프랑스에서 출간되자마자 아마존 프랑스 판매 순위 1위를 기록했고 한 달 동안에만 28만 부가 판매됐다. 제목 `미세레레`가 그레고리오 알레그리의 성가곡`미세레레`(`불쌍히 여기소서`라는 의미의 라틴어)에서 비롯된 것에서도 알 수 있듯이, 그랑제는 스릴러 소설 속에 클래식 음악을 절묘하게 녹여냈다.소설은 그랑제가`시네 라이브`라는 프랑스의 한 영화 잡지사의 청탁을 받고 쓴 시놉시스에서 출발했다. 유명 작가들이 좋아하는 영화 한 편을 골라 속편의 시놉시스를 써보는 기획을 위해 그랑제는`마라톤 맨`의 속편을 쓰기 시작했고, 그렇게 완성된 원고를 잡지사 외에 그의 책을 출간하는 알뱅 미셸 출판사의 사장에게도 전달했다. 그런데 원고를 읽은 사장은 이런 대단한 구상은 반드시 소설로 만들어져야 한다며 책으로 출판할 것을 강력히 제안했다.이 시놉시스를 기반으로 7백여 쪽 분량의 소설로 탄생한`미세레레`는`범죄 소설`로 유명한 이탈리아 국민 배우이자 영화감독 미켈레 플라치도에 의해 영화화될 예정이다.천사의 음성으로 착각할 만큼 맑은 목소리가 부르는 신비한 성악곡`미세레레`는 소설 내내 극악무도한 연쇄 살인사건의 중심에 등장한다. `다이아몬드의 순수성`을 지닌 이 목소리들이 악의 근원을 향한 결정적 키워드이자 범죄의 핵심인 것이다./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11-12-28

`인생 멘토` 聖人 17명에 대한 한 사제의 묵상서

`나의멘토 나의성인`가톨릭출판사 펴냄, 제인스 마틴 지음, 600쪽, 1만8천원 미국 예수회 사제인 제임스 마틴이 펴낸 `나의 멘토 나의 성인`(가톨릭출판사)은 한 사제가 자신의 일생을 살아오면서 성스러운 인물(聖人)들이 어떻게 하여 자신의 삶에 동행하는 멘토가 되어 주었는지에 대한 묵상서다.저자 자신이 미지근한 종교인으로 머물러 있다가 직장 생활을 한 뒤 수도회에 입회해 부대끼면서 이런저런 인연으로 만나게 된 성인 17명을 친근하고 가깝게 소개한다.저자는 성인의 생애를 단순히 소개하는 차원을 넘어 성인으로부터 얻은 교훈, 느낌, 영감 등을 진솔하게 전한다. 잔 다르크, 마더 데레사, 교황 요한 23세, 요셉, 토머스 아퀴나스 등이 다뤄진다.“나는 또한 그들의 우정도 감지한다. 나는 성인들을 알면 알수록 하느님과의 삶을 즐기는 이들이 나를 돕고 있고, 그들은 나의 편이고, 그들은 내가 그리스도인의 삶을 훌륭히 살아내기 바라고 있으며, 그들은 내가 훌륭한 예수회원이요 사제가 되기를 바라고 있다고 느낀다.”(576쪽)저자 제임스 마틴은 철저히 현대적인 삶을 산 사람이다. 그는 어렸을 적, 집에서 종교 서적을 한 권도 본 적이 없을 만큼 신앙생활에 미지근했던 가정에서 자라, 가장 취업이 잘된다고 알려진 펜실베이니아 대학 경영대학원인 와튼 스쿨을 졸업하고, 대기업 GE에서 빠른 승진가도를 달리다가 예수회에 입회하여 여러 사도직을 경험한 후 사제가 되어, 지금은 뉴욕 맨해튼에서 정신없이 바쁜 가운데 미디어 관련 일을 하고 있다.그런 그가 이러한 단계를 거칠 때마다 놀라운 친구들과 함께 그 길을 걸었다. 그 친구들이 바로 가톨릭교회의 성인들인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는 이 성스러운 사람들이 단지 역사적 인물일 뿐이지만, 저자에게 그들은 절친한 벗이었고, 평생토록 함께해 준 소중한 멘토였다.이 책에서 저자는 특히 우리가 성인들과 맺는 관계가 `수호자`형과 `동반자`형이 있다며, 우리 교회가 성인을 수호자로만 모시는 데 대해 안타까워한다.그러고는 성인들이 우리의 동반자, 우리의 멘토가 되는 분들임을 역설한다. 또한 그리스도인은 누구나 성인이 되어야 할 의무가 있음을 다시 상기시키며, 성인이 되기 위해서는 특별한 희생이 필요한 게 아니라, 성인이 되기를 갈망하기만 하면 된다고 격려한다. 아울러 성인이 된다는 것 또한 다른 위대한 사람을 닮아야 한다는 식으로 다른 누군가가 되는 것이 아니라, 바로 자신이 되는 것이라 역설한다.대부분의 사람들처럼 성인에 대해 거의 아는 바가 없었던 저자는 예수회 수련자가 되면서 독서를 통해서 혹은 어떤 계기가 있어서 성인들을 한 분 한 분 알아갔다. 그리고 성인들의 생애나 그들에 대한 이야기에서 자신과 공통점을 확인하며 친밀감을 느끼곤 했다. 그리고 마침내 그 성인들이 자신과 늘 함께하면서 의견과 조언과 도움을 주는 형이나 누나 같은 멘토가 되었던 것이다.저자는 우리가 성인들과 관계를 맺게 되는 방식이 `수호자`형과 `동반자`형이 있음을 예리하게 바라본다. 그러면서 오늘날 대부분의 사람들이 성인을 수호자로만 여기지 동반자로 여기지 못한다고 지적한다.저자는 초대교회에서는 성인들이 `수호자`라기보다는 `동반자`에 더 가까움을 일깨워 준다. 그러니까 성화와 성인의 지위가 보다 평등했고, 친구 같은 관계였다. 그러한 예로서, 바오로 사도는 모든 그리스도 신자를 `성인`이라 지칭했음을 들 수 있다.(우리말 성경에서 `성도`라 옮겨서 책의 본문에도 `성도`라고 옮겼지만, 그리스어 원문은 `성인`이라는 뜻의 하기오스 a`gioj를 썼다.-편집자 주) 즉 성인들은 우리보다 앞서 가며 우리를 격려하는 친구이자 신앙 공동체의 형제자매이며 동시에 거대한 `증거자 집단`인 것이다./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11-12-22

상처받은 삶, 따뜻한 유머로 그려

`웃는동안` 문학과지성사 펴냄, 윤성희 지음, 312쪽, 1만1천원 자신만의 독창적인 소설 세계를 구축해 시간이 지나면서 이를 더욱 탄탄하게 형성해온 작가 윤성희의 신작 소설집`웃는 동안`(문학과지성사)이 출간됐다.올해 펴낸 첫 장편소설`구경꾼들`에서 그간 단편에서 보여줬던 소설 세계를 훌륭하게 확장해 선보인 바 있는 작가이기에 장편 이후 찾아올 소설집에 대한 기대 역시 컸다. 소설집으로는 2007년 펴낸`감기` 이후 4년 만이어서 그 반가움이 더한 이번 소설집에는 올해 황순원문학상 수상작인`부메랑`을 비롯해 총 10편의 작품이 실려 있다.세부적인 전후 상황 설명을 배제하고 철저한 단문 위주의 글쓰기를 고수하는 윤성희의 소설은 짧은 이야기소들을 풍성하게 활용하면서 상처받고 빈곤한 이들의 삶을 담담하면서도 따뜻한 유머로 그려내어 특유의 힘을 발휘한다. 그 안에는 우연한 불행이 늘 농담처럼 자리를 잡고 있다. 하여, 우연이 만들어낸 희극적 상황 앞에서 울어야 하는데 웃거나 웃어야 하는데 눈물이 나는 독특한 경험을 하며, 독자들은 종종 인간의 삶이 얼마나 무의미한가를 혹독하게 느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작가는 어쩌면 잔인해 보일 정도로 혹독한 이 우연성을 불가피하게 수용하는 것을 넘어서, 인간의 삶에서 가장 아름다운 일일 수도 있다는 태도를 보이기까지 한다.현재만을 보며 살아가는 지금의 `웃는 동안`과 내 손에서 빠져나간 부메랑이 다시 돌아와 거짓으로 포장된 자서전을 처음부터 고치게 하는 그 순간까지, 삶의 시간을 폭넓게 아우르는 깊이를 윤성희의 네 번째 소설집 `웃는 동안`에서 독자들은 느낄 수 있을 것이다./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11-12-22

로트만 사상 전과정 다룬 본격 연구서

`사유하는 구조-유리 로트만의 기호학 연구` 문학과지성사 펴냄, 김수환 지음현대 러시아 지성계의 대표적 학자 유리 로트만. 모스크바-타르투 학파로 지칭되는 소비에트-러시아 기호학파의 수장이며 흔히 `문화기호학`의 창시자로 알려져 있는 그는, 미하일 바흐친과 더불어 전 세계적으로 가장 많이 인용되는 대표적인 현대 러시아 사상가이다. 생전에 10여 권의 단행본과 500여 편의 논문을 발표하며 20세기 지성사에 한 획을 그었으며 현재까지도 영향력을 미치는 위대한 학자임에도 한국에서는 고작 몇 권의 번역서만이 소개됐을 뿐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로트만 사상의 전 과정을 다루는 최초의 본격 연구서가 출간됐다. 촉망받는 젊은 소장학자이자 국내 유일한 로트만 전공자인 김수환(외국어대학교 노어과 교수)의`사유하는 구조―유리 로트만의 기호학 연구`(문학과 지성사)가 그것.저자 김수환은 러시아 과학아카데미(학술원) 문학 연구소에서 로트만의 문화기호학 이론으로 박사학위를 받은 국내 유일의 로트만 전공자로, 2003년 모스크바에서 단행본 연구서인`유리 로트만의 이론적 진화의 근본 문제들`을 출간하는 등 활발한 연구·저술·번역 활동을 벌이고 있는 학자이다.`사유하는 구조`는 로트만에 관한 첫 논문을 발표한 이래 10년간의 연구결과를 집대성한 결정본이자 오랜 시간 공들여 쓴 노작이면서 저자 자신의 첫번째 저작이기도 하다. 저자는 이 책에서 1960년대에서 1990년대까지 30여 년에 걸친 로트만 사유의 흐름을 살피고 그 과정의 주요 국면들을 분석함으로써, 로트만 이론의 전모를 드러내고자 했다.이렇듯 로트만 사상의 `총체적 전유`라는 쉽지 않은 과제를 책의 목표로 삼은 저자는 그러나 놀랍게도 날카로운 통찰과 전공자다운 전문성을 바탕으로 로트만 사상 특유의 `다면적 성격`을 흥미진진하게 전개해나간다./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11-12-22

“지금 살아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당신은 절대강자다”

`절대강자` “새는 조그만 벌레 한 마리를 잡아먹는 일에도 철저한 집중력으로 온 몸을 투척하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어떤 일을 했을 때, 소득이 신통치 않을 때는 남을 탓하기 전에 자신이 최선을 다했는가부터 반성해 볼 일입니다. 어떤 단점을 지적받았을 때, 자신의 단점에 열심히 변명이나 이유를 갖다 붙이는 사람은 자신의 단점을 쉽게 쓰레기통 속에 내던져버릴 위인이 못 됩니다. 개인을 개선하고 발전시키는 디딤돌은 이유나 변명이 아니라 후회나 반성이기 때문입니다. 인생이라는 이름의 트랙에서 만날 수 있는 장애물 중, 가장 뛰어넘기 힘든 장애물은 바로 자기 자신이라는 이름의 장애물입니다. 명심하세요. 이 장애물은 변명에 의해서 더욱 견고해지고 반성에 의해서 더욱 허술해집니다”―`반성이 그대를 진보케 하고 변명이 그대를 퇴보케 하리라`, `1장 뇌에서 마음까지의 거리가 가장 멀다` 중좋은 학교, 훌륭한 집안, 멋진 이성친구 등 남 부러워할 만한 이유들 하나 갖지 못해 보이는 자신이 초라해 보인다면, 취업이나 승진 등 사회적 성공을 이루는 친구들 옆에서 주눅 들어 있다면, 어쨌든 뭐든 되겠지 같은 막연한 기대에 자신이 지쳐가고 있다고 느낀다면, 어쩌면 그것이 내 안으로 움츠러들고 있는 자신감 때문이라는 생각, 해본 적 있는가?베스트셀러 `하악하악``여자도 여자를 모른다``아불류 시불류`를 탄생시킨 이외수(65) 작가와 정태련 화백이 이번에는 `인생 정면 대결법`이라는 부제로 우리 시대를 살아가는 모든 이들에게 전하는 신작 에세이`절대강자`(해냄 펴냄)를 출간했다.70만 부 판매를 기록한`하악하악`을 포함, 에세이로만 통산 110만 이상의 독자들에게 사랑받은 두 작가의 네 번째 책으로, 세상에 대한 예리한 시각이 돋보이는 이외수 작가의 글 149편과, 인고의 세월을 견디며 전통적인 아름다움을 간직해 온 우리 유물들의 혼을 담아낸 정태련 화백의 세밀화 37점이 담겨 있다. 이와 더불어, 절묘하게 조화를 이루는 글과 그림의 장중한 무게감을 완화시키는 박경진 작가의 깜찍한 아이콘은 위트와 유머를 선사하며, 책의 말미에 수록된 문화재평론가 김대환의 유물해설은 우리 역사와 전통, 문화의 소중함을 일깨우기에 충분하다.30년 가까이 지기(知己)로 인연을 맺어온 두 작가들의 마음 속을 관통하는 것은 누가 뭐라든 “지금 살아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그대는 절대강자”라는 사실이다. 수천 년을 버티어내며 세상 풍파와 싸워온 유물들이 그 자체로 고유한 아름다움을 간직하고 있듯, 우리들 모두는 스러지지 않는 정신력을 품어내고 있는 바로 이 순간 `절대강자`인 것이다.1장 `뇌에서 마음까지의 거리가 가장 멀다`, 2장 `육안과 뇌안을 감고 심안과 영안을 떠라`에서는 우리가 일상적으로 겪고 있는 물질만능주의와 외모지상주의에 대한 비판과 경계를 담고, 3장`입은 비뚤어져도 말은 바로 합시다, 4장`마른 가슴에 물 주기, 5장 `손금 속으로 강이 흐르리`에서는 삶에서 놓치고 있는 감성을 북돋워주는 글로 채워져 있다. 이어 6장`배만 채우지 말고 뇌도 채웁시다`, 7장 `엉덩이로 버티기`, 8장 `먼 길을 가려거든 발이 편한 신발부터 장만하라`에서는 인생을 살아가는 데 필요한 마음가짐과 사랑의 중요성을 설파한다. 마지막으로, 살아온 날들에 대한 고백과 살아갈 시간들에 대한 다짐은 9장 `머리 닿는 부분이 하늘이고 발 닿는 부분이 땅입니다`와 10장 `마음에서 마음으로`로 이어지며 `꽃 피는 그날까지` 그대 살아 있으라고, 버티어내라고 당부한다./윤희정기자해냄 펴냄, 이외수 지음, 정태련 화백 그림, 268쪽, 1만3천8백원

2011-12-14

운명을 바꾼 만남, 정약용과 제자 황상

`삶을 바꾼만남` 200년 전 다산 정약용(1762~1836)과 그의 제자 황상(1788~1870) 사이에 이어진 도탑고 신실한 사제 간의 정리(情理)가 한 권의 책을 통해 커다란 의미로 되살아난다. 신간`삶을 바꾼 만남`(문학동네)은 고전 대중서 분야에서 폭넓은 독자층을 이끌고 있는 정민 한양대 국문과 교수가 다산과 황상이 시로 나눈 교유의 흔적을 44꼭지의 이야기로 정리했다.조선 후기 학자 겸 문신인 다산 정약용은 많은 제자와 후학을 거느린 조선 최고의 석학이었다.그런 그에게도 평생 잊을 수 없는 제자가 있었다. 신유박해 와중에 멀리 전라남도 강진으로 유배를 와 변변히 머물 곳도 없이 형언할 수 없는 고통을 겪던 정약용은 당시 머물던 동문 밖 주막집에 작은 서당을 열었고, 1802년 그곳에서 열다섯 소년 황상을 만난다.시골 아전의 아들이던 황상은 “부지런하고 부지런하고 부지런하라”는 다산 정약용의 `삼근계(三勤戒)`의 가르침을 마음에 새기며 평생 공부에 매진했고, 관 뚜껑을 덮을 때까지 한마음으로 공부하라는 스승의 가르침을 저버리지 않았다.1818년 스승이 해배돼 서울로 돌아간 뒤에는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하던 아전 노릇을 그만두고 백적동 깊은 산속에 거처를 마련하고 농사를 지으며 초서와 시 짓기 등의 공부를 놓지 않았으며, 늘그막에는“일속산방(一粟山房, 좁쌀 한 톨만 한 작은 집)”을 지어 오직 공부에만 전념하였다. 모두가 출세를 위해 공부할 때, 오직 황상은 스승이 입버릇처럼 일러주신 “유인(幽人, 어지러운 세상을 피해 조용한 곳에서 숨어사는 사람)의 삶”을 실천했던 것이다./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문학동네 펴냄, 정민 지음, 148쪽, 2만3천8백원

2011-12-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