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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속수(束脩)

스승을 처음 뵈올 때 존경의 뜻을 표하는 예를 `속수례((束脩禮)`라 한단다. “저희가 스승님께 가르침을 받고자 뵙기를 청합니다.” “내 학식이 부족하여 그대들에게 도움이 되지 않을까 저어하네.” 학생은 스승에게 낮은 자세로 열심히 배울 것을 다짐하고, 스승은 제자에게 겸손한 마음으로 깨우침을 전할 것을 결심한다. 몇몇 초등학교에서 인성 교육 및 전통 문화 계승 차원에서 이런 속수례 의식을 경험케 한다는 소식이 들린다. 봄꽃 소식만큼이나 반갑다. `속수`는 스승을 만나러 갈 때 인사 차 들고 가는 소박한 입학금 정도가 된다. 옛날 스승들에게 제도화된 수업료가 있었을 리 없다. 사마천의 `사기`의 `공자세가`에 의하면 공자는 제자를 가리지 않았다. 제자가 거의 삼천 명에 달했는데 신분의 귀천을 따지지는 않았다. 배우려고 하는 누구에게나 속수를 받는 것으로서 대신했다. 속수는 말린 고기 열 개를 묶은 것을 말한다. 가르침을 청하는 최소한의 예의로 육포 한 묶음을 삼은 셈이다.유교 문화를 계승한 우리 선조들도 당연히 배우고 가르칠 때 속수례를 행했다. 속수의 예를 평생 스승으로 모시고 가르침을 받고자 하는 마음가짐으로 여겼다. 성균관에 입학하는 왕세자도 속수례를 엄격히 지켰다고 선조 때의 기록에 나와 있다. 실제 육포의 형식을 취하고 아니고를 떠나 서로의 예를 행하는 자체에는 진정성이 짙게 배어 있었을 것이다.현대는 스승과 제자가 오롯이 돈독한 관계를 만들어가기는 어려운 시대이다. 안회를 비롯한 여러 제자처럼 스승만 바라보며 한 길을 갈 여건도 못 된다. 다사로워야 할 스승과 제자의 관계는 입시다, 스펙이다, 자격증이다 등등의 현실 앞에서 딱딱한 교육자와 학습자의 관계로 전락하기 십상이다. 스승을 찬미하고 존경하는 일조차 쑥스럽고 어색한 시대가 되어 버렸다. 하지만 살면서 존경심이 드는 스승을 얼마나 많이 만나게 되던가. 나이와 연륜에 상관없이 도처에서 스승을 만난다. 따뜻한 밥 한 그릇, 향긋한 차 한 잔의 현대판 속수로 내 맘을 전하고픈 스승들이 생각나는 봄이다./김살로메(소설가)

2014-03-31

매력적이거나 지루하거나

하고 싶은 말을 깔끔하게 한마디로 요약할 수 있다면. 온밤을 지새워도 어떤 상황이나 경험에 꼭 맞는 말을 얻는데 실패하곤 한다. 작가 오스카 와일드 같은 사람은 다르다. 촌철살인의 대가답게 아이러니와 패러독스로 가득 찬 어록을 숱하게 남겼다. 가령 이런 한마디는 어떤가. “사람을 좋고 나쁜 것으로 구분 짓는 것은 불합리하다. 사람은 매력적이거나, 지루하거나. 둘 중 하나이다.” 예를 들면 어떤 모임은 기다려진다. 자연스레 빠지지 않으려 노력하게 된다. 하지만 또 어떤 모임은 기다려지기는커녕 참석해도 별 재미가 없다. 소위 분위기 때문이다. 분위기는 누가 만드나? 사람이 만든다. 그때의 사람은 좋은 사람, 나쁜 사람으로서의 구분을 말하는 게 아니다. 오스카 와일드 식으로 매력적인 사람, 지루한 사람으로 말할 수 있겠다.매력적인 사람 곁에 있으면 웃음이 끊이질 않고 엔도르핀이 솟는다. 반면 지루한 사람 곁에 있으면 불편하고 빨리 그 자리를 뜨고 싶어진다. 이 말을 솔직하게 하면 이렇게 된다. 내가 타인에게 매혹적인 사람이 되면 모임 분위기가 좋게 느껴지고, 내가 지루한 사람으로 비치면 모임 분위기는 엉망으로 다가온다. 다행히 이런 감정은 상대적이다. 내게 매혹적인 사람도 다른 이에게는 지루할 수 있으며, 내게 지루한 사람도 다른 누군가에게는 매혹적으로 보이기도 한다.정서적 궁합이라는 게 있다. 궁합이 맞으면 재미가 있고, 그렇지 않으면 시큰둥해진다. 곰곰 생각하면 궁합이란 것도 결국 내 맘에 달렸다. 타자의 눈을 내가 관장할 수는 없다. 하지만 타자의 눈에 비친 내 모습은 어쩌면 가장 정직한 내 본연의 모습일 수도 있다. 누구든지 웃고, 배려하고, 양보하는 사람 앞에서 매력을 느낀다. 무표정하고, 배려심이 없는데다, 미련하기까지 하면 지루함을 느낀다. 두 범주로만 한정했지만 오스카 와일드의 인간 유형엔 온 우주가 들어 있는 셈이다. 매혹적이긴 어려워도 지루하기는 얼마나 쉬운가. 하지만 노력 없이 어려운 게 얻어질 때가 있던가. 오늘도 매진할 뿐./김살로메(소설가)

2014-03-28

파리의 날개처럼

`대동소이(大同小異)`란 말이 나오는 기사를 읽다가 엉뚱한 생각이 들었다. 거의 같다, 라는 뜻으로 쓰이는 이 말의 진짜 의미는 뭘까? 작게 보면 다를 수도 있지만 크게 보면 같다는 뜻일까, 아니면 크게 보면 같을 수도 있지만 작게 보면 다르다는 뜻일까. 원래 같다는 것을 말하려 했을까. 혹시 다르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한 숨은 의도가 있었던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꼬리를 무는 것이었다. 출처를 찾아보니`장자(莊子)`의`천하편(天下篇)`이다. 친구인 혜시(惠施)의 논리를 장자가 전하는 형식이다. `크게 보면 같다가도 작게 보면 다르니 이것을 소동이(小同異)라 하고, 만물은 모두 같기도 하고 다르기도 하니 이것을 대동이(大同異)라 한다.`고 되어 있다. `만물을 넓고 차별 없이 사랑하면 천지도 하나가 된다.`라는 말로 귀결된다. 개인적으로 흥미로운 것은 `혜시는 자기가 천하를 달관한 자라고 자부하여, 이로써 여러 사람을 가르쳤다.`라며 장자가 의견을 단 부분이었다. 그 뉘앙스에는 어쩐지 친구인 혜시를 못마땅하게 여기는 분위기가 스며있다. 그렇다고 우정에 문제가 있었던 건 아니고 둘의 관계가 친구이자 논적이었기 때문에 그랬을 것이다.혜시의 무덤 앞을 지나던 장자가 시종에게 말했다. `초나라 사람이 자기 코끝에 흰 흙을 파리 날개처럼 얇게 바르고 석수장이에게 그것을 깎아내게 했다. 바람소리가 날 정도로 도끼를 휘둘러도 믿고 꼼짝 않고 있었으니 흙은 다 깎이고 코도 조금도 다치지 않았다. 이야기를 들은 임금도 자기에게 그 솜씨를 보여 달라고 했다. 석수장이는 그 사람이 죽어 이제는 할 수가 없다고 했다. 나도 석수장이처럼 혜시가 죽은 뒤로는 함께 할 이가 없구나.`학문적으로는 티격태격했지만 우정에서는 지기(知己)였기에 장자는 혜시더러 `자기가 천하를 달관한 자라고 자부하여`라며 냉소적 의견을 덧붙일 수도 있었으리라. 토 달아도 좋으니, 내 코에 앉은 파리 날개처럼 얇은 흙을 깎아 줄, 믿을 만한 도끼 자루를 휘두를 친구가 있다는 건 얼마나 축복 받을 일일런가./김살로메(소설가)

2014-03-27

바람이 분다

내가 라면을 먹을 때 옆집 꼬마는 낙서를 한다. 옆집 꼬마가 낙서를 할 때 건넛집 아저씨는 조깅을 한다. 건넛집 아저씨가 조깅을 할 때 산 너머 할머니는 상추씨를 뿌린다. 산 너머 할머니가 상추씨를 뿌릴 때 이웃 나라 아주머니는 빵을 굽는다. 이웃나라 아주머니가 빵을 구울 때 더 먼 나라의 어린 소년은 쓰러져 있다. 내가 라면을 먹을 때 바람이 분다. 그때 바람이 불었다!유아용 그림인데다 쉬운 글씨마저 거의 없다고 어린이용 그림책은 아니다. 그런 책일수록 어른에게 맞춤한 경우가 많다. 가슴이 먹먹하고, 명치끝이 아려 도리어 어린 아이는 읽지 말았으면 하는 그림책 중의 하나가 하세가와 요시후미의 `내가 라면을 먹을 때`이다. 세상은 부조리로 가득하다. 내가 라면 국물을 마시며 예능 프로그램 앞에서 희희낙락할 때 먼 이웃나라 허기진 어린이는 한길에 쓰러져 있다. 웃음소리에 취하는 그 순간에는 아픈 이웃을 생각할 겨를조차 없다. 멀리 이웃나라까지 갈 것도 없다. 내가 떠들고 마시는 동안 누군가는 약을 못 사, 방값을 못 내, 라면 한 봉지를 못 구해 생을 마감한다. 혼자가 아니라 온가족이 극단적인 선택을 하기도 한다.꿈을 먹고 살기에도 모자랄 어린이들에게 가슴 아픈 현실을 알리는 건 불편하다. 그렇다고 아이들이 영원히 몰라야 하는 현실도 없다. 부조리한 세계를 먼저 경험한 어른들은 어린이들에게 조심스레 모두가 평화롭게 사는 건 아니라는 걸 말해 줄 수 있어야 한다. 모두 나와 같지 않다는 사실, 평범한 행복이 얼마나 큰 축복인지를 충분히 알 수 있게 점진적으로 말해줄 필요가 있다. 충분히 교감이 된 후라면 이 책은 아이들에게 아주 좋은 이웃 이해의 마당이 되어 준다.`그 맞은편 나라의 산 너머 나라 남자아이는 쓰러져 있다. 바람이 분다. 그때 바람이 불었다.` 화룡점정의 이 짧은 몇 마디가 여운을 남긴다. 그림 속 쓰러진 검은 나무 같은 아이를 가만 들여다본다. 세상은 기쁨과 슬픔이, 행과 불행이 함께 하는 자리인 것을. 바람이 분다. 그때 바람이 불었다!/김살로메(소설가)

2014-03-26

자유롭고 엄숙하게

황현산 산문집 `밤이 선생이다`를 읽다 이런 구절을 발견했다. `형식은 자유로워야하지만 그것으로 추구하는 내용은 엄숙해야 한다. 말을 바꾸자면 정치는 자유로워야 하고 문화는 엄숙해야 한다. 우리는 오랫동안 그것이 거꾸로 된 세상에서 살아왔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을 누군가 그것도 유명한 저자가 말해줄 때의 희열이랄까, 그런 기분을 느꼈다. 앞 내용을 뚝 잘라버리고 가져오는 바람에 저자의 의도가 완전하게 전달되는 건 아니다. 요컨대, 부질없는 형식에 집착해서 남는 게 무언인가. 형식에 집착하지 않더라도 기본이 된 사람이라면 필연적으로 자기 엄숙에 도달하게 되어 있다. 이런 요지의 말을 하고 있다. 따라서 저자가 말한 `문화가 엄숙해야 한다`라는 말은 `철학이(내면이) 엄숙해야 한다`라는 말로 돌려 말할 수 있을 것이다.이런 예는 어떨까? 자유분방하기 이를 데 없는 가난한 시인은 영진 설비 외상값 4만원을 갖다 주라는 아내의 심부름을 두 번이나 어긴다. 한 번은 빗길을 피해 들어간 슈퍼에서 `병맥주`를 마셔버렸고, 또 한 번은 꽃집 앞을 지나다가 `자스민 한 그루`를 사버렸다. 영진설비 아저씨의 `거친 몇 마디`가 아내에게 쏟아질 때 `아이의 고운 눈썹`이나 쳐다보게 되는 것, 이러한 한 때도 있을 수 있는 게 삶이다. 그렇다고 그 시인이 대책 없는 영혼을 지닌 건 아니다. 그들의 내면이야말로 자신에 대한 엄숙주의로 자기 검열을 강화한다. 고결한 시인들이 갖는 특성이기도 하다.형식에서 자유롭고 내면은 고결한 상황이 연출될 수 있다면 이 세상은 더할 나위 없이 살 만하다. 하지만 현실은 정치와 집단은 형식을 강요하고, 저마다의 삶의 척도는 무분별하게 가지치기를 한다. 정치가 융통성을 발휘하고, 개별자가 자기 염결을 발휘하는 세상이라야 온당할 텐데 우리에게 그것은 거꾸로 된 것만 같다. 규제하고 억압하고 지시하는 현실 앞에서 개인은 착해질 기회조차 박탈당한다. 박철 시인은 그런 상황을 비틀기 위해 `내겐 아주 멀고 먼 / 영진설비 돈 갖다 주기`라고 말하는지도 모르겠다./김살로메(소설가)

2014-03-25

늙어도 청춘

`꽃보다 할배`는 여타 예능 프로그램이 주는 재미 그 이상의 것을 시청자에게 안겨 준다. 먹먹한 감동을 주는 것도 모자라 삶에 대한 진지한 성찰의 시간을 갖도록 유도한다. 제작진이 처음부터 거기까지 의도하진 않았으리라. 출연자들의 연륜과 개성에서 오는 자연스러운 언행이 보는 이로 하여금 그리 나쁘지 않은 정서적 감흥을 불러일으킨다. 노구를 이끌고 배낭여행에 도전하는 자체도 대단한 일인데, 개별자 하나하나가 드러내는 캐릭터가 그토록 흥미로울 수가 없다. 어딜 가나 있음직한 투정 부리고 불끈하는 이, 무한 호기심에다 보기 좋은 웃음으로 제 낙관을 몸소 보여주는 이, 로맨티스트에다 티 나지 않게 타인을 배려하는 이, 나이를 잊은 듯 끓어오르는 책임감과 에너지로 직진 본능을 실천하는 이. 모두가 주변에서 만날 수 있는 고유한 캐릭터들이다. 각자 다른 개성을 인정하고 조화롭게 어울리는 그들을 보면서 시청자 자신도 객관적 시각을 유지하려는 자가 훈련을 하게 된다.타자를 제 입맛에 맞도록 고칠 수는 없다. 제 스스로도 변하기 어려운데 제 기준에 타인이 맞춰주기를 바라는 건 평생 해결하지 못하는 숙제가 되고 만다. 모든 타자는 자신이 마련한 기준의 행동 패턴을 따른다. 내가 마련한 그 기준과 다르다고 타자가 틀린 건 아니다. 다만 다를 뿐이다. 그들은 이미 이러한 기본 생활 철학을 다 알고 여행길에 오른 것 같았다.특히 이순재 어른은 고대로 본받고 싶을 정도로 매번 명쾌한 어록을 생산한다. `나이 먹었다고 주저앉아서 대우 받으려 하고 어른 행세하면 늙어 버리는 거고, 난 아직도 한다 하면 되는 거예요.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앞으로 쭉 가면 되는 거예요. 우리 나이쯤 되면 언제 어떻게 될 수 있다는 건 잊어버리고 주어진 대로 당장 할 일을 하는 거지요. 끝을 생각하기보다 지금 이 순간에 최선을 다하는 거지요.` 나이는 숫자에 지나지 않는다. 나이 먹어도 의식이 주저앉지 않도록, 나이 먹더라도 대접 받지 않도록 늘 연습하는 것, 이것이 젊게 사는 비법이렷다!/김살로메(소설가)

2014-03-24

가족의 의미

가족은 상처이자 위안이다. 특수한 경우를 제외하고 가족에겐 오늘이 상처의 시간이었다면 내일은 위안 모드가 되곤 한다. 혼인과 핏줄로 맺어진 가족은 그 어떤 조직보다 허물없고 가깝다. 계산이 필요 없는 편안한 관계이다 보니 느슨하다 못해 함부로 대하기도 한다. 부부 끼리는 간섭을 하게 되고, 부모 자식 간에는 잔소리와 반항이 교차한다. 타인을 대할 때의 조심성과 긴장이 사라지니 상처는 필연적이다. 가족 간의 상처는 물론 타인과의 그것에 비하면 오래 가지는 않는다. 가족이 주는 위안이 상처보다 더 큰 보상을 주기 때문이다. 대개 아무리 친한 타자라도 가족만큼 큰 위안을 주지는 못한다. 한마디로 가족은 한 구성원을 들었다 놨다 하는 그리 나쁘지 않은 요물이다. 상처와 위안의 근원인 가족은 보듬어 함께 갈 동지이다. 따라서 가족은 사랑의 대상은 될지언정 존경의 대상은 되지 않는다. 연민이자 나를 비추는 거울인 가족을 존경한다고 말하면 어쩐지 썩 어울리지는 않는다. 덜 편한 사이라서 아직 그만큼의 거리감이 있다는 뜻으로 들리니.한 노부인이 인도 여행을 하고 싶어 했다. 여행사에서는 노구를 이끌고 인도까지 가는 건 무리라고 말렸다. 그래도 고집을 피워 여행길에 올랐다. 아스람에서 위대한 스승을 알현하려니 줄이 너무 길었다. 사흘이나 걸리는 그 시간을 부인은 기다리겠다고 했다. 드디어 성스러운 문 앞에 도달했다. 스승과는 세 마디 이상을 나눌 수는 없다고 했다. 노부인도 그러겠다고 했다. 다른 사람들이 스승 앞에 엎드리는 동안 노부인은 가장 성스러운 자에게 팔짱을 낀 채 말했다.“여보, 그만 집에 가자.”가족과 존경과는 생래적으로 궁합이 맞지 않다. 밖에서 카리스마 넘치고 근엄한 사람도 집안에 들어오면 인간적인 가족 구성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몽테뉴도 말하지 않았던가. 하인과 가족에게 존경 받는 주인은 거의 없다고. 가족은 존경의 대상이 아니라 이해와 연민과 사랑의 대상이어야 온당하다. 가족에게 존경을 바라는 건 어리석거나 우둔하거나 둘 중 하나이다./김살로메(소설가)

2014-03-21

무지를 자각하기

어떻게 살 것인가, 어떻게 행동할 것인가? 이는 역사 이래 인간의 영원한 숙제였다. 지금 하는 고민을 그 옛날에도 했고, 그 옛날의 고뇌가 지금의 그것과 다르지 않았다. 인간의 철학적 사유는 시간과는 무관한 영원 테제이다. 사람이라면 옳은 삶에 대해 나름 끊임없이 고뇌한다. 소크라테스에 의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진정으로 알지 못하면서도 알고 있다고 여기는 게 문제였다. 그는 당시 아테네에서 가장 지혜로운 자라는 신탁까지 받은 입장이었다. 하지만 자신이 결코 지혜 자체에 가까운 사람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그가 자각한 건 오직 자신이 아는 게 아무 것도 없다는 사실 하나였다. 다른 이들보다 그가 지혜롭다는 신탁의 의미를 그는 이렇게 해석했다. 자신이 뛰어난 게 아니라, 자신의 무지함을 알고 있다는 것에서 뛰어나다는 것을 깨달은 면에서 지혜로운 것이라고.어떻게 살 것인가의 문제는 쉬우면서도 어렵다. 소크라테스의 전언대로라면`이 세상에 대해 아는 게 없음. 옳다고 생각하는 그것조차 내 무지에서 온 것임.` 이런 자세야말로 지혜로운 방법이다. 쉬워 보이지만 그 실천은 얼마나 어려운가. 삶의 진정한 가치는 시험을 통해서 완성된다. 상처를 주고받아봐야 상처의 속성을 이해하게 되고, 많이 아파본 자라야 아픔의 실체를 제대로 증언할 수 있다. 그렇게 축적된 다양한 경험치는 각자의 철학적 바탕이 된다.무지의 자각이 깨우는 종소리에 당황할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그 소리가 꼭 크게 울리는 것도 아니다. 하룻밤 새 붉은 꽃잎을 터뜨리는 명자나무의 숨소리일 때도 있고, 내 큰 목소리 앞을 끊는 누군가의 잔잔한 충고의 미소일 때도 있다. 다 갖춰 완벽한 것들은 그저 피어나고 나지막이 속삭일 뿐이다. 호들갑스럽지 않아도 그 향기, 그 목소리에 주변은 귀 기울인다. 현상적 욕망이 아니라 오직 본질에 다가가고자 했던 소크라테스의 성찰 앞에서 당황스럽기만 한 봄날이다. 빈 수레 끈다고 곳간에 쌀가마 쌓이지 않는다. 매 순간 무지를 자각하는 마음 심지만은 놓지 말아야겠다./김살로메(소설가)

2014-03-20

천성대로

급히 먹는 밥에 체한다. 내가 그 짝이다. 뭐든지 서두른다. 신중하게 이것저것 알아보거나 차분하게 요모조모 생각할 여유를 갖지 못한다. 게으르면 느긋하기라도 할 것이지, 게으른데다 급하기만 하니 일상생활에서 일을 그르치는 경우가 많다. 뒷일을 생각지 않은 채 일단 저질러놓고 수습을 못해 허둥댈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내 최대의 약점이다. 누군가 친구의 메일 주소를 물어왔다. 그 누군가도 친구를 잘 아는 터라 별 생각 없이 친구의 메일 주소를 가르쳐줬다. 하지만 친구에게 그 누군가가 불편한 메시지를 보냈다면 그 책임은 누구에게 있나? 당연히 일차적 책임은 메일 주소를 가르쳐준 내게 있다. 한 번만 돌려 생각하면 답이 나오지 않는가. 누군가는 친구의 전화번호를 아니까 직접 메일 주소를 물어 볼 수도 있었다. 그 사실을 의심하는 여유만 가졌어도 타인의 메일 주소를 함부로 가르쳐주는 실수는 하지 않았을 것이다. 내가 가르쳐주지 않아도 어떻게든 알게 되었으리라는 문제는 부차적이다. 그런 변명은 그야말로 자기 위안용에 지나지 않는다.위의 예처럼 급하다 보니 실수를 하는 건 맞지만 그렇다고 느긋한 사람들이 부러운 것도 아니다. 이게 더 스스로를 화나게 한다. 느긋하거나 여유 있는 모습을 보면 본받고 싶은 게 아니라 답답하다는 생각이 먼저니 이 무슨 아이러니인지. 아마 급한 성격이 꼭 나쁜 것만은 아니라는 생각 때문일 것이다. 급한 성격의 특징은 약속을 잘 지키는데다 주어진 일에 책임을 다한다. 게다가 추진력도 있다. 하지만 이런 장점도 급해서 낭패를 부르는 경우 앞에서는 자랑거리조차 못 된다. 역지사지하면 느긋하거나 차분한 사람들은 급한 사람들이 얼마나 성가시게 보일 것인가.물론 급하거나 느긋하거나는 옳고 그름의 문제는 아니다. 각자 장단점이 있다. 다만 내 가진 약점이 도드라진 순간에는 그 성정이 맘에 들지 않는다. 그렇다고 부정할 수도 없다. 급한 그 특징조차 제 정체성의 한 일면이기 때문이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게 성정이라면 달래가며 인정하는 수밖에./김살로메(소설가)

2014-03-19

획일성과 다양성

그 많던 어린 천재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예술계나 수학계 등 특수 분야에서 우리나라만큼 그 재기를 일찍 드러내는 아이들도 없다. 전문가들이 놀랄 정도로 우리에겐 미국이나 유럽 아이들에 비해 한 분야에 재능을 떨치는 아이들이 많다. 하지만 그 재능이 언제까지나 보장되지 않는다는 게 우리 현실이기도 하다. 여러 원인이 있겠지만 언젠가 한 칼럼에서 첼리스트 양성원이 한 말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아이들이 자기 정체성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자기도 모르게 의식의 기저에 깔려 있던 동양적인 가치 기준에 영향을 받기 때문이라는 결론에 이르게 되었다`는 게 그의 의견이다. 뿌리 깊은 유교 문화는 조직 문화를 낳고, 조직은 위계질서를 중요시하고 그 질서는 개인의 튀는 행동을 용납하지 않는다. 겸손과 절제가 미덕으로 칭송 받는다. 자신도 모르게 이런 문화적 습성은 재능 있는 아이들의 DNA 속으로도 침투된다. 치열한 자기 확신을 가지는 것에 앞서 획일화된 사고가 먼저 머릿속에 주입된다. 될 성 부른 떡잎에 햇빛 보다 그늘이 먼저 와서 가려버린다. 어느 순간 그늘이 햇빛인 줄 알고 받아들이게 된다.좋은 예로 중학교만 들어가도 교칙이란 것에 지배를 받는다. 교칙을 위반하면 타인에게 피해를 주고 나아가 사회나 국가에도 방해가 된다고 배운다. 옳은 말이다. 하지만 그 교칙 안으로 들어가 보면 은 온갖`하지마라`투성이로 가득하다. 그 내용은 실제 타인에게 피해를 주는 수준이 아니라 통제해야 하는 입장에서 저 편하고자 획일화를 강요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일제 강점기와 군사 독재 시절을 거치면서 윗선에서 편리하기만 한 그런 관습과 규범이 규칙이나 도덕이 되었을 뿐인데, 길들여지다 보니 반박하는 것조차 잘못이라고 생각하게 된다.획일화를 따르는 건 모범적인 것이요, 다양화를 시도하는 건 죄악에 가까운 것으로 간주하는 조직 문화야말로 개별자의 자긍심을 숨죽게 한다. 그 많던 어린 천재들이 획일성의 그늘 속에서 자신도 모르게 제 개성과 재능을 포기한다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김살로메(소설가)

2014-03-18

대통령의 글쓰기

“짧고 간결하게 쓰게. 군더더기야말로 최대 적이네.” “평소에 사용하는 말을 쓰는 것이 좋네. 영토보다는 땅, 식사보다는 밥, 치하보다는 칭찬이 낫지 않을까?” “단 한 줄로 표현할 수 있는 주제가 생각나지 않으면, 그 글은 써서는 안 되네.” 청와대 연설비서관을 지낸 강원국씨가 전하는 노무현 대통령의 글쓰기에 관한 생각이다. 글쓰기의 처음이자 마지막이 다 들어있다. 한 나라의 대통령이 자신의 글쓰기에 대해 이렇게 진지하고도 담백한 시각을 지니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신선하게 다가온다. 강원국씨가 펴낸 `대통령의 글쓰기`(메디치미디어)에는 자신이 모신 김대중, 노무현 대통령의 글쓰기에 대한 여러 생각들이 후일담 형식으로 나온다. 두 대통령 다 글쓰기와 연설문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연설문을 단순히 권위나 통치 수단의 도구로 쓴 대통령들도 있었다. 그들은 결과에 치중하는 문구에 신경을 썼다. 반면, 소통과 대화의 장으로 연설문을 활용하려는 대통령들은 결과 못지않게 그 과정도 문구에 넣는 것을 중요시했다.그동안의 편견으로는 굵직한 틀만 대통령이 이야기하면 글 자체는 연설비서관들이 알아서 쓰는 줄 알았다. 연설문의 섬세한 부분에 있어서는 대통령이 일일이 관여하지 않을 거라 생각했다. 그도 그럴 것이 어릴 때부터 우리는 딱딱하고 권위적인 연설문에 길들여져 왔다. 그러다 보니 판에 박힌 문체나 문구에 그러려니 하고 별 관심이 없었다. 하지만 대통령에 따라 연설문에 나오는 한 문구를 두고 얼마나 진지한 고민을 하는지를 알게 되었다.연설문은 분명한 메시지 전달력이 있어야 한다. 국민을 향한 대통령의 전언이라면 말해 무엇하랴. 이러한 글의 전달력과 소중함에 대해 잘 알고 있었던 두 대통령의 글에 대한 소신과 자신만의 표현 방식에 눈길이 간다. `인사 청탁하면 패가망신한다.`는 다소 직설적인 노무현 대통령의 어법이나 `햇볕정책`이란 김대중 대통령의 말도 그런 고민 끝에 나왔다는 것도 흥미롭다. 통치력과는 상관없이 글의 의미를 귀히 여긴 대통령들이 있었다는 것 자체에 관심이 간다./김살로메(소설가)

2014-03-17

사소한 것의 역사

우리가 교과서에서 배운 역사는 거창한 것들뿐이다. 인류의 탄생에서부터 각종 전쟁사와 왕조의 흐름에 이르기까지 굵직굵직한 것들을 연대순으로 공부해왔다. 그나마 그런 역사는 객관적이지 않고, 서술자의 시각이나 신념에 따라 의미가 달라진다. 역사란 한 마디로 특정집단의 눈으로 바라본 일정 부분의 기록에 지나지 않는다. 승자의 산물인 역사는 운명적으로 쓰는 자의 시각과 이데올로기가 투사될 수밖에 없다. 모든 사실을 객관적으로 기록한다는 것은 지나온 세월만큼의 긴 시간이 필요하다. `아전인수 격 부분적 기록`이 역사가 될 수밖에 없는 건 인류가 감당해야 할 필연적 아이러니다. 기왕 역사가 백퍼센트 진실을 담을 수 없을 바에야 거시적인 것만 다루지 말고 미시적인 것에도 눈을 돌리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학문적으로는 미시적 일상의 역사에 대해서도 연구하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하지만 내가 말하는 건 역사 교과서에도 `하찮은 것들, 혹은 시시콜콜한 것의 역사`에 대해서도 언급을 해보자는 것이다. 왕조 연대기나 전쟁사가 역사의 전부가 아니라는 걸 역사 속 필부필부의 삶을 통해 간접 체험해 보자는 것이다.유럽이나 미국 역사 교과서에는 이런 사소한 일상의 역사가 많이 나오는 편이란다. 며느리를 얻기 위해 집안의 재정 상태를 까발리며 고군분투하는 가장의 편지, 대중음악의 뿌리를 찾아 가는 음악적 여정, 담배나 스타킹의 기원 등 일견 하찮아 보이는 것들에 대한 것들도 역사적 시야 안으로 적극 끌어들인다. 한 유럽 교과서는 아예 비역사적 인물에 대한 장이 따로 있을 정도이다. `이들은 집을 짓고 사랑하며 가족을 부양했지만 나폴레옹처럼 커다란 발자취는 남기지 못했다. 그렇더라도 이들에 의해 세월은 흘러왔고, 그들의 삶에 의해 역사의 기반은 다져왔다.`평범하고 하찮은 것들, 기록되지 않는 그것들이 역사가 아닌 것은 아니다. 위의 인용문 말대로 역사의 기반을 그들이 다져왔다는 것은 역사적 진실이다. 그것만으로도 서민의 일상은 그 어떤 역사보다 역사적 힘을 갖는다./김살로메(소설가)

2014-03-14

희한한 계산법

집안에 뭔가를 설치할 일이 생겼다. 기본 약정 계약이 2년인데 3년으로 계약하면 3개월 치 사용료는 받지 않겠단다. 거기다 한 달 치 사용료를 상담자 자신이 추가로 부담하겠단다. 4개월이나 공짜로 사용할 수 있다고 홍보했지만 진실은 그게 아니다. 뒤이어 온 설치 기사의 말에 의하면 한 달 치를 부담한다는 것은 그 마지막 날짜에 사용한 하루 분의 요금인 천 원을 부담한다는 의미이고, 마지막 날짜에 계약을 했으니 상담자로선 실적까지 올리게 됐으니 이득을 챙긴 거란다. 겉으로 보기엔 그럴 듯한 말 같아 보이지만 따지고 들면 헛말인 게 어디 한 둘인가. 함익병 피부과 원장의 월간조선과의 인터뷰가 도마에 올랐다. 내용을 훑어보니 `양질의 독재자가 국정을 운영하는 건 나쁘지 않다, 안철수는 과대망상증 혹은 거짓말쟁이다, 4대 의무를 지키지 않는 국민은 투표권조차 호사다.` 이런 취지의 발언이다. 실제 발언은 저런 수위 이상이다. 특히 `여자는 4대 의무 중 국방의 의무를 지지 않았으니 권리는 4분의 3만 행사해야 한다`며 `권리만 누린다면 도둑놈 심보`라는 말에는 아연실색하지 않을 수 없다. `자식 두 명 낳은 여자는 예외이며 계산을 철저히 할 필요가 있다`고 선심까지 쓰는 척한다.함익병 식 주장대로라면 4분의 3만의 권리를 행사해야 하는, 뜨끔한 심정인 쪽은 여성이 아니라 다른 쪽일 것이다. 국방의 의무를 다하지 않은, 그 많은 지도자급 인사들은 다 어디로 간 걸까? 어떤 희한한 계산법이 그로 하여금 `자녀 수`와 `군대 가는 것`을 단순 동급으로 비교하게 만든 걸까.여성에게 국방의 의무란 꼭 군대를 가는 것만 의미하는 건 아니다. 함익병 식 사고 대로라면 군대 안 간 여성과 아이 두 명 낳지 않은 여성은 모두 국방의 의무를 다하지 않은 것이다. 어찌 그들이 사리사욕 때문에 군대를 회피한 정치 사회 지도자급들과 같은 급으로 취급되어야 하나? 4분의 3만 권리 행사해야 하는 무리들에 대한 타깃을 잘못 잡아도 한참 잘못 잡았다. 계산은 그렇게 하는 게 아니다./김살로메(소설가)

2014-03-13

함부로 낙관하지 않기

긍정하는 자세는 바람직하다. 하지만 인생을 지나치게 낙관하는 것도 정신 건강에는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근거 없는 낙관주의는 때에 따라 좋지 않은 결과를 불러온다는 게 연구자들의 이론이다. 잘 될 거야, 내일은 나아질 거야, 막연히 이런 희망을 품는다고 그것이 현실이 되지는 않는다. 약속된 희망의 날은 그리 호락호락하게 제 실체를 드러내주지 않는다. 낙관한 사람은 그 상황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절망하게 되고, 심할 경우 죽음까지 생각하게 된다. 반면 현실을 직시하고 그것을 인정하는 사람일 경우 어떤 어려움이 닥쳐도 그것을 헤쳐 나갈 수 있다. 스톡데일은 베트남전쟁 때 하노이의 한 포로수용소에 갇혔던 미군 최고위 장교였다. 1965년부터 8년간이나 수용소 생활을 했다. 다른 수용자들이 크리스마스에는 풀려 날 거야, 부활절에는 집에 갈 수 있을 거야, 이렇게 섣부른 희망에 부풀어 있을 때 그는 현실을 직시하고 인정했다. 부당함 앞에서 정면 대응을 택하는 한편 앞날을 대비했다. 신념을 잃지 않고 의지로 버텨냈다. 그는 끝내 살아서 돌아왔다. 영웅이 된 그의 전언은 이랬다. `가혹한 현실을 회피한 채 낙관주의로 일관한 사람은 상실감을 견디지 못하고 죽음에 이르렀다`고.역경에 처했을 때 그 현실을 외면하지 않고 의지로 버티면 살아남을 수 있고, 조만간 일이 잘 풀릴 거라고 낙관하면 무너지기 쉽다는 걸 말해주는 것이`스톡데일 패러독스`이다.도처에서 이런 현상을 만날 수 있다. 당신은 사랑 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이라고 아무리 부드러운 목소리로 노래 불러도 혜택 받지 못하는 많은 약자들은 넘쳐 나고, 당신 꿈은 이뤄질 것이니 걱정할 것 없다고 아무리 희망의 메시지를 보내도 현실적인 답은 `희망 없음`일 경우가 다반사이다. 이런 상황에 놓인 약자들이 섣부른 낙관주의에 현혹되면 극단적인 상황이 발생하기도 한다. 낙관주의의 뒤안길은 다름 아닌 상실감이기 때문이다. 함부로 낙관주의를 전파하는 것보다 냉정하게 현실을 직시하라고 하는 편이 훨씬 현명한 조언일 때도 있다./김살로메(소설가)

2014-03-12

모든 것의 빌미 2

`자기가 감정적으로 그렇게 격하게 반응했던 이유가 상대가 가한 상해 때문만이 아니라 자신의 예민한 기질도 그에 한몫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면서, 해결책을 스스로에게서 찾아볼 기회를 내담자가 갖게 되는 것.` - 독서 치료 교재 중에 비교적 널리 쓰이는 `따귀 맞은 영혼`에 나오는 한 대목이다. 밑줄을 그어 놓은 지 몇 년이나 지났다. 그래도 필요할 때마다 자주 들여다보는 대목이다. 신혼이었던 어느 날, 놀러 온 남편 친구들 중에 한 분이 짓궂은 말장난을 친 적이 있었다. 그때 내 표정은 관리가 되지 않았다. 거의 거의 울음보를 터뜨리기 직전까지 갔다. 어떤 내용인지 기억조차 없지만, 세상에 대한 내공이 아직 쌓이지 않은 순수한(?) 때라 뭐든 곧이곧대로 믿던 시절이었다. `시침 뚝 떼고 미끼를 던졌는데 덥석 물어줘서 재밌었다.`며 그 친구분은 그야말로 나를 들었다 놨다 하는 것이었다. 그제야 정신이 퍼뜩 들었다. 누군가 던진 미끼를 보고 미낀 줄도 모르고 고군분투하거나 부화뇌동하는 것보다 우스운 꼴은 없었다.그때의 교훈으로 될 수 있으면 미끼는 물지 말아야지, 혹 물더라도 의연하게 대처하지 흥분은 하지 말아야지, 하고 자기체면을 걸곤 했다. 하지만 눈치 없기로는 일등이고, 흥분 잘하기로는 이등인 나는 아직 갈 길이 멀었다. 여전히 잘 넘어지고 잘 깨진다. 부끄럽고 한심하다. 그 단계에 이르기 전까지는 가관이다. 미끼를 던진 상대가 가해자라라는 생각 때문에 한동안은 분해서 심장이 벌렁거린다. 하지만 이 세상 모든 일은 결국 자신에게 귀결되지 않던가.백 번 양보해 미끼를 던진 상대에게 일차적 잘못이 있다손 치더라도, 배르델 바르데츠기 여사의 저 가르침은 언제나 옳다. `자신의 예민한 기질도 그에 한몫한다`는 사실을 결코 잊어서는 안 되겠다. 미끼 던지는 대상과 마주하지 않는 것이 최선의 방법이겠지만, 삶이 어디 내가 원하는 대로 흘러가기나 하던가. 피할 수 없는 함정에 빠져 흥분하게 되거들랑 자신의 예민한 기질이 그것을 자초했거늘 하고 다독일 밖에./김살로메(소설가)

2014-03-11

저마다 구차한 꽃잎

꽃들이 핀다. 꽃들이 진다. 어느 시인의 말처럼 `빤스를 내렸다 올리는 그 새`를 기다려 주지 않고 변소 옆 봄꽃은 피어난다. 아쉬울 새도 없이 다른 한쪽에선 벌써 꽃잎이 진다. 일찍 핀 것도 억울한데 신발코에 묻은 마른 흙 한 번 쳐다보는 새 봄꽃은 진다. 둘 다 순간이요, 찰나의 시간이다. 차이점이라면 꽃 열리는 순간을 기다린 적은 많아도 꽃 떨어지는 순간을 기대한 적은 거의 없다는 거다. 아니, 아무도 그 순간은 기다리지 않는다. 누구에게나 일상은 구차하다. 필연적으로 구차함은 수치와 모멸이란 똥을 낳는다. 온몸은 화끈거리고 심장은 조여 온다. 그때야 돌아보게 되는 꽃잎의 시간들. 저 꽃들은 어디로 갈까? 순간순간 피고 지는 수많은 꽃잎들의 종착역은 어디일까? 저 먼 하늘로 올라 반짝이는 한 별이 될까? 더 먼 우주로 날아올라 한 무리의 은하별을 이끄는 수장별이 될까?다 부질없는 짓이다. 각자의 꽃들은 홀로 우뚝 선 별도 되지 않으며, 은하수를 이끄는 으뜸별도 되지 않는다. 한낱 먼지가 되어 사라질 뿐. 설사 사라진 그 먼지가 우주를 떠돌아 별이 되고 다시 몇 영겁을 거쳐 꽃으로 되돌아온다 해도 그것의 실체는 먼지가 되어 사라진다는 것.`잡다한 것들이 가득 들어찬 속을, 손을 넣어 하나하나 끄집어냈다. 쓰다 만 볼펜들, 커터칼, 연필, 캡슐에 든 알약들, 건전지, 명함, 압핀과 클립이 들어 있는 상자, 메모첩 등등이었다.` 서영은의 자전적 소설 `꽃들은 어디로 갔나`를 읽으면 인간이야말로 얼마나 하잘 것 없고 던적스러운 존재인가를 확인하게 된다. 우리 삶은 볼펜이고, 커터칼이고, 연필이고, 캡슐알약이며, 건전지며, 압핀이며 클립이다. 그 잡다한 그것을 확인하는 것이 사랑이며, 그 모멸을 견디는 것도 사랑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우리 모두는 수영복 입은 미스 모스크바 사진을 욕망하는 존재일 뿐이다. 그것은 명예와 지식과는 상관없고, 드러난 덕망과도 무관하다. 저마다의 꽃들은 저 먼 우주 속으로 가 별이 되지 않는다. 한 점 먼지가 될 뿐./김살로메(소설가)

2014-03-10

승자도 패자도 아닌 우리

한 남자가 있었다. 그에게는 세 명의 불알친구도 있었다. 그 중 전학생이었던 한 친구는 독보적인 존재였다. 모범적이고, 지적인데다, 자기 세계관이 분명했다. 하루아침에 그는 친구들을 사로잡았다. 남자를 비롯한 세 명은 속으로 자신만이 이 친구와 더 친하다고 생각했다. 싱클레어에게 데미안이 있었듯 남자를 비롯한 그들에겐 이 친구가 있었다. 고등학교를 마친 그들은 뿔뿔이 흩어졌고, 남자는 한 여자를 사랑했다. 그 여자도 남자를 사랑했는지 남자는 확신할 수 없었다. 모호한 태도에 질려 헤어지게 되었다. 얼마 뒤 데미안 같은 친구가 그 여자와 사귄다고 편지로 알려왔다. 그래도 되냐는 친구의 자문에 남자는 자신에겐 지난 일이니 괜찮다고, 대신 조심하는 게 좋겠다는 선에서 답을 보냈다. 얼마 뒤 친구가 자살했다는 소식이 날아들었다. 친구의 사연을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사십 년 세월이 흘렀다. 남자는 여자에게서 편지 한 통을 건네받는다. 젊은 시절 친구와 여자가 사귀게 되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자신이 친구에게 보냈던 편지였다. 남자가 기억하는 내용은 위에서 말한 `사귀어도 상관없고, 조심만 하면 될 것`이라는 정도의 상식적이고 건전한 수위였다. 하지만 편지를 읽은 남자는 충격에 휩싸였다. 잊었던 진실을 마주하게 되고 운명적인 사건들은 이어진다. 편지 내용은 스포일러가 되니 말하지 않겠다. 다만, 이 편지 하나로 다음과 같은 통찰에 이르게 된다는 건 말하련다.우리의 기억이 얼마나 믿을 게 못 되며, 조작될 수 있는지를. 우리가 기억하는 것이 얼마나 부분적이고 조각난 것인지를. 환경적 심리적 요인에 시간이 더해지면서 그 기억이 얼마나 다양하게 변주되는지를. 그런 사실과 편지 내용은 소설,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 에 나온다. 작가 줄리언 반즈가 안내하는 명제는 이렇다. `역사란 불확실한 기억이 불충분한 문서와 만나는 접점에서 이루어지는 확신`이라고. 승자도 패자도 아닌 찌질한 주인공 남자 그가 바로 우리 개인 역사를 이루는 자화상임을 환기시킨다./김살로메(소설가)

2014-03-07

당연하지 않을 이유

살면서 핏대 올릴 일은 참으로 많다. 그럴 경우 기질에 따라 제때 발산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귀찮거나 소심해서 그냥 묻어두는 사람도 많다. 삿대질과 고함으로 자신을 어필하는 사람은 자기 생각과 세상은 한몸처럼 같은 방향으로 흘러간다고 믿는다. 그렇다고 핏대 올리지 않는 사람이 그 반대인가하면 그렇지도 않다. 그들 역시 세상 이치에 내 생각은 부합하다고 생각한다. 표현 방법만 다를 뿐, 각자 `내가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건 당연한 것이다.`라는 명제로 자기 굴레를 씌운다. 가령 이런 의문은 어떨까. 어째서 아프리카가 유라시아에 비해 발전이 늦었을까? 다른 모든 이유는 뒤로 하더라도 우리는 이미 서양 사람들에 비해 그들이 인종적으로 차이가 있어서 그렇다는 확답을 준비해 놓는다. 너무 자명한 답이라서 이런 의문조차 지닐 필요가 없을 정도이다. 하지만 재래드 다이아몬드의 `총, 균, 쇠`라는 보고서의 마지막 장에 보면 진실한 답이 나온다.역사적으로 결코 출발이 늦지 않았던 아프리카가 뒤처진 이유는 식량 생산 구조에 있다고 보았다. 가금의 부족현상과 작물화 할 수 있는 식물의 부족을 그 첫 번째 이유로 꼽는다. 아이러니하게도 야생동물 천국이며 정글의 왕국인 아프리카에 제대로 된 가축과 작물식물이 들어온 것은 다른 두 대륙에 비해 수천 년이 지난 뒤였다. 또 다른 원인은 면적이 유라시아 대륙에 비해 절반인데다 대륙의 주요 축도 유라시아와는 반대로 남북방향이라는 점이다. 남북 축을 따라 움직이면 생식, 강우량, 질병, 문명 전파 등에서 불리할 수밖에 없단다.유럽이 아프리카를 식민지로 삼을 수 있었던 건 유럽인과 아프리카인의 차이점 때문이 아닌 건 자명해졌다. 그건 인종 차별주의자들이 주장하는 망상일 뿐이다. 아프리카와 유라시아의 궤적이 달라진 건 지리적, 환경적 우연성의 차이에 있는 것이지 인종 자체와는 별 상관이 없다. 당연하다고 생각한 것이 당연하지 않다는 걸 발견할 때의 이 숙연함이란. 작은 것에서부터 열리고 깨쳐 있으려고 노력해도 어렵기만 한 삶이라니./김살로메(소설가)

2014-03-06

봄 마중

무람없이 만날 수 있는 친구가 있다는 건 복 받은 일이다. 새 학기다. 강좌마다 손봐야 할 계획서와 강의록은 저만치 밀려 있고, 마감을 지켜야 할 개인적 원고도 쌓였다. 거기다 매일 1천 자의 생활칼럼까지 넘겨야 하니 조금씩 부담이 몰려온다. 여유 있을 때 너무 놀았다. 막판에 가서야 몰아붙이는 나쁜 습관을 원망하고, 천성적으로 게으른 성정까지 탓해보지만 별 뾰족한 수가 없다. 긍정의 믿음으로 헤쳐 나갈 수밖에. 이럴수록 힐링이 필요해. 마침 친구들과의 약속도 있겠다. 가벼운 맘으로 집을 나선다. 미세먼지가 사라진 하늘빛은 맑고 선명하다. 가장 깨끗한 선녀탕의 물빛을 밤마다 선녀들이 하늘로 퍼 나른 듯 투명하고 시리다. 만개한 꽃잎만큼 번져오는 백매향과 홍매향에 저마다의 낯빛이 환해지고, 봄 마중에 달뜬 마음들 금세 터질 것 같은 녹매 봉오리에 가서 달렸다. 납작하게 대지에 밀착한 봄냉이는 제 넓은 치마폭으로 덜 풀린 땅의 기운을 북돋운다. 기어이 봄이 오고 있었다.목까지 차올랐던 조급함도, 엉덩이까지 내려갔던 의기소침도, 순응하지만 거리낄 것 없는 자연 앞에서는 별 것 아닌 게 돼버린다. 머리 맑아지고 가슴 트이는 건 숨길 필요조차 없는 서로의 표정에서 드러난다. 따스한 분위기가 꺼질세라 예정에 없던 한 집을 방문한다. 버선발로 맞는 그미는 금세 인정 바이러스로 우리를 감염시킨다. 온몸과 마음으로 봄의 생기를 전해준다.지혜로운 사람은 마음의 주인이 되고 어리석은 자는 마음의 노예가 된다고 했다. 잠깐의 봄나들이로, 아니 친구들 덕에 마음의 노예에서 주인으로 거듭난 느낌이다. 기대는 자에게 자연은 가깝고, 많은 짐도 정(情) 앞에서는 가볍다. 정은 낭비할수록 마음 부자가 된다는 걸 알겠다. 오래 만났다고 돈독하고, 오늘 봤다고 얕은 맘이 되는 건 아니다. 여러 발걸음이 한 마음으로 되는 건 소위 마음 밭이 통하기 때문이다. 맘 아끼지 않고 멈칫거리지 않은 채 누군가와 길 나설 수 있다는 것, 그거야말로 이른 봄에 누릴 수 있는 최고의 호사이다./김살로메(소설가)

2014-03-05

고전으로 하는 자기계발

개인적으로 구미가 당기지 않는 책 분야 중의 하나가 자기계발서에 관한 것들이다. 많이 접하지도 않았지만 잘 나간다는 계발서의 대부분의 내용은 한 가지로 귀결된다. 자기 확신을 가지고 문을 두드려라. 그러면 길이 열린다. 이런 주장의 동어반복이다. 그런 것이 자기계발이라면 성경이나 도덕 교과서만으로도 충분하다. 진정한 자기계발은 내면의 성찰 없이는 불가능하다. 물론 자기계발서라고 다 내 취향에 맞지 않는 건 아니다. 최근에 출간된 `구본형의 마지막 수업`이라면 충분히 독자들의 공감을 살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은 엄밀히 자기계발서라고는 할 수 없다. 구본형 저자에게 바치는 존경의 의미로 내가 그렇게 의미부여를 했을 뿐이다. 우리나라 자기계발서 계의 초기 멤버였던 선생은 성공만이 전부라고 말하지는 않았다. 자기기계발서는 크게 성공 지향적인 삶을 안내하거나 자기 내면을 돌아보게 하는 두 부류로 나눌 수 있다. 구본형은 후자에 속한다. 무조건적인 성공만을 안내하는 게 아니라 자기 내면을 들여다보고 그것을 바탕으로 자기혁신에 이를 것을 주문한다. 고전 안내서인 이 책을 굳이 자기계발서의 의미로 읽으려는 것은 이런 저자의 생각을 신뢰하기 때문이다. 내면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나를 잃지 않고 내 가치를 찾아나서는 일 그것이 곧 자기계발의 기초이고, 그런 마인드로 고전 읽기를 꾸준히 하다보면 언젠가는 자기 혁신에 이르게 될 것이다.급작스런 발병으로 돌아가신 뒤 고인이 관여하던 연구소 연구원들에 의해 재구성된 이 책은 구본형식 고전읽기로 불릴 만하다. `다산문선`을 지나 `그리스인 조르바`를 거쳐 `안티고네`에 이르기까지 오롯이 고전에 몰두해 자신에게 이르고자 했던 저자의 숨결이 느껴진다. `고전의 창은 불완전한 인간을 찔러 깊은 상처를 입히고, 사랑의 피로 다시 태어나게 한다. 고전은 나를 바꾸는 지독한 유혹이자 삶에 기쁨을 쏟아주는 위대한 이야기다.` 아직 이런 단계까지는 생각도 못하지만 이 책을 통해 고전이 주는 매혹에 깊이 찔려 조금씩 나에게 이르고 싶다./김살로메(소설가)

2014-03-04